“세월호참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날의 아픔만을 떠올리는 것이 아닙
니다.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안전이 기본이 되는 사회, 믿고 살아갈 수 있는 나
라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 기억 편지 낭독 중(세월호참사 생존 학생 장애진 씨)

매년 4월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다양한 자리를 만듭니다. 2025년 4월 16일은 세월호참사 이후 열한 번
째 맞는 4월 16일이었습니다. 16일 오후 3시부터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세월
호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렸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들, 노란 팔찌를 끼고 노란 리본 배지를
가슴에 단 많은 시민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또 참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고자 해양수산부 장관, 국회의장, 안산시장, 각 정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 및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의 참여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억식 행사는 304명 희생자에 대한 묵념, 각 분야를 대표하는 분들의 추도
사, 영상 상영과 뮤지컬 공연, 생존 학생의 편지 낭독, 4.16합창단의 합창 공
연으로 이어졌는데요. 현장에 참석한 3,000여 명의 시민들을 비롯해 언론사
의 생중계로 수많은 시민이 기억식을 지켜봤습니다. 사


기억식을 함께 준비한 4·16재단의 박승렬 이사장은 무대에 올라 “세월호참사
가 일어난 지 11년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사회적 참사와 자연 재
난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슬픔을 겪고 있습니다.”라며 “생명의 소중함과
일상의 안전이 최우선시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 세월호참사를
평생 잊지 않고 꼭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생명존중과 안
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4.16생명안전공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들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단원고 2학년 1반 故 김수진
학생의 아버지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참사 이후
11년이 지나도록 아직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
켜주지 못했는지 우리 가족들은 알고 있지 못합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어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
는 참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의무를 성실히 지키면서 국가를 믿고
의지하듯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임을
명심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추도사에 이어 상영된 <10년의 세월, 그리고 다시 첫 시작>이라는 제목의 영
상은 참가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는데요. 절대 변할 수 없는, 그래서 결국 그 무엇도 이겨내는
엄마의 약속
(중략)
10년 하고도 다시 1년 이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서야 아이들이 돌아올 보금자리의 첫 삽을 떴다. 아이들이 우리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면 그때는 진짜 봄이 올까?
진짜 진실이, 진짜 사죄가, 진짜 새 세상이 올까?
10년 하고도 다시 1년 오늘도 다시 약속한다. 꼭 밝히겠다고, 꼭 밝혀내고 말겠다고
- 영상 <10년의 세월, 그리고 다시 첫 시작> 중
참사 이후 10년이 넘도록 아이들이 왜 희생되어야만 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
고자, 나아가 안전사회를 만들고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지켜내고자 걸어
온 세월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반드시 약속을 지켜내
겠다는 엄마들의 굳건한 의지가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영상을 다 같이 본 후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공연 ‘나, 여기 있어요’가 펼쳐졌습니다. 지난해 10주기 기억식 무대에서 시
낭송을 했던, 그리고 세월호참사 10주기 프로젝트로 제작된 영화 <목화솜 피
※ 파일명 : (제출월일)제목_이름(활동명) / 사진파일 별도첨부
※ 경기천년바탕 Regular, 글자크기 13p(본문), 줄 간격 160%, 상하여백 15, 좌우여백 25, 머리말·꼬리말 15, 300단어 기준 양식에 벗어난
자료를 받았을 시 기준에 따라 수정하여 원고료 지급범위를 정함. ※ 1매에 27행을 기준으로 30%(8행)미만 작성된 매수는 지급매수로 산정하지 않으며 이미지는 홈페이지 업로드 크기와 별도로 센터
양식 기준 최대 10행으로 취급
는 날>의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박원상 배우가 열연을 펼쳐, 참가한 시
민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음 순서로 세월호참사 생존 학생인 장애진 씨가 무대에 올라 기억의 편지
글을 낭독했는데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
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고 언젠가는 괜찮아지리라 생각했지만, 봄이 올 때
마다 아직 마음 한편은 차가워지고 봄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두 번 다
시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그대들과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
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지만, 또 다른 비극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우
리가 아직 멈춰서 있는 것은 아닌가 자책도 하게 됩니다. 그날의 봄은 멈춰있
지만 언젠가는 영원히 따뜻한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며 진심을 눌
러쓴 편지글을 전했습니다. 기억식의 마지막 순서는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든 4.16
합창단의 공연이었습니다. 4.16합창단의 노래는 기억하고 행동하는 모든 시민
들의 마음을 울리는 빛나는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기억식이 진행되는 도중 오
후 4시 16분, 1분간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304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 사이렌이 안산시 전역에 울려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11주기를 맞은 4월 16일에는 오후 3시 안산에서 열린 기억식 뿐
만 아니라 오전 10시 30분에는 참사가 벌어진 해역에서 ’선상 추모식‘이, 오
전 11시에는 인천에 위치한 세월호일반인희생자 추모관 광장에서 ’일반인 희
생자 추모식‘이, 오후 4시 16분에는 서울에 위치한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시
민 기억식‘을 진행해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아카이브 자료
에디터 활동명 또봉 이 름 강진원
해시태그 #어린이 #놀이권 #보호권 제 출 일 2025년 4월 24일
제 목 놀이터엔 왜 아이가 없을까?
첨부파일명 (없을 경우 생략)
아직도 가끔 힘이 드는 날이면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 모래바람을 휘몰아치던, 구
름사다리 너머로 세상을 내려다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동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네모난 철봉과 미끄럼틀, 모
래 대신 깔린 고무매트, CCTV 아래 놓인 그네... 어쩌면 이건 ‘아이들을 위한 공
간’이 아니라 ‘어른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만든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곤 했습
니다. 사라진 놀이권, 아이들은 도시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사진 1 (출처 : 에디터 직접촬영)
“뛰면 혼나는 세상, 누구를 위한 놀이터인가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우리나라의 관리대상 놀이터는 총 83,810
개입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53.7%가 주택단지 내에 있으며, 이는 많은 놀이터
가 해당 단지 주민만 이용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도시공원 내 놀이터는
전체의 14.5%로, 아파트 외 거주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출처 : 행정안전부. (2025). 『전국 어린이놀이시설 안
전관리시스템(2024년 4월 기준)』. https://www.cpf.go.kr/cpf/ko/nori/0001/index.jsp)
공원은 또 다른 인간의 동반자인 반려견 산책로로 바뀌고, 방과 후 시간은 학원으
로 향하는 아이들의 스케줄에 밀려 놀이 시간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출생으로
아이 수가 줄어들었다는 말은 자주 들리지만, 그렇다고 놀이공간까지 줄어드는 것
이 당연한 일일까요?
사진 2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놀이가 사라진 아이들, 성장에도 틈이 생긴다
놀이는 단순한 시간이 아닌 감정 조절, 사회성, 창의성을 키우는 아이들의 필수
활동입니다. WHO와 유니세프는 놀이를 아동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유
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에서도 “모든 아동은 적절하고 균등하게 여가와 놀이를 누
릴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놀이를 ‘사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초등 입학
전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방과 후 시간을 채우는 학원 스케줄, 그리고 놀이를 위
한 공간은 점점 유료화되고 있습니다. 더하여, 관리 주체가 불분명한 놀이터는 민원이나 안전의 이유로 통제되는 놀이시
설도 많습니다. 미끄럼틀에서 넘어졌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그 시설을 없애는 경우
나 공원에서 ‘아이들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놀이터를 폐쇄한 사례도 흔치 않
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안전’을 이유로 아이들의 모험과 자율은 통제되고, 놀이
터는 규칙 속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아이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놀이를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기
쁨과 행복 같은 감정을 체험합니다. 이 자유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만큼, 이를 박
탈당하면 무력감에 빠지고 맙니다.” 라고 말합니다. (출처: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61006051800805)
놀이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놀이가 단지 여유가 아닌 권리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
다.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이 ‘놀이의 자유’입니다. 사라진 놀이권을 되찾기 위한 노력들 – 국내외 사례로 본 실천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실제 지역사회에서는 어떤 실천이 이루어
지고 있을까요? 제도적 한계를 넘어 아이들의 놀이권을 회복하고자 했던 국내외
의 시도들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살펴봅시다.
[경기도] 놀이활동가 파견사업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은 2022년부터 경기도 내 아동 돌봄시설과 놀이공간에 놀이활
동가를 파견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 사업은 전문 놀이활동가가 각 기
관에 상주하거나 정기적으로 방문해 아동의 발달 단계에 맞는 놀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회복하고
놀이를 통해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었으며, 기관 내 돌봄
교사의 부담을 줄이고 놀이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위축된 아동의 놀이 경험을 회복하는 데 기여한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
았습니다. (출처: 경기도여성가족재단, 2022)
사진 3 (출처 : 경기도여성가족재단 홈페이지)
[전북 완주군] 이동형 플레이버스
완주군은 교통이 불편하거나 놀이터가 없는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이동형 플레이
버스’를 운영하였습니다. 전문 놀이강사가 장착된 차량을 타고 마을을 순회하며
놀이 프로그램을 제공해 아이들이 매주 규칙적인 놀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
습니다. 이 사업은 놀이권 사각지대 해소와 더불어 지역 공동체 회복에도 기여했
습니다. (출처: 완주군청 아동청소년과, 2022)
[독일 프라이부르크] 자연 그대로의 놀이터 조성
독일 프라이부르크시는 기존의 인공적인 시설물 대신 자연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자연 놀이터’를 조성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흙, 나무, 돌 등을 활용해 아이들이 자
유롭게 탐색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위험 요소도 최소
화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 통제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부모들의 높
은 만족도와 지역 아동의 정서 안정에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
니다. (출처: Freiburg City Council, 2021)
사진 4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놀이터는 단지 미끄럼틀이 아닙니다. 그곳은 아이들이 사회를 배우고 자신을 시험
해보는 실험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공간을 줄이고, 통제하고 있습니다. 아이
들이 다시 놀이터로 돌아오게 하려면, 단지 공간만이 아닌 ‘놀이할 권리’ 자체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놀이권은 단순한 문화가 아닌, 아이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자 사회가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어른들의 작은 변화가 아이들의 큰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놀이터 옆 벤치에 앉기
보다, 아이 옆에서 한 번쯤 그네를 밀어주는 사회, 그게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첫걸음 아닐까요?
[참고자료]
경기도여성가족재단. (2024). 『아동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연구』. https://www.gwff.kr/storage/board/privacy/2024/11/11/PRIVACY_ATTACH_17313
04910929.pdf
경기데이터드림. (2024). 『어린이 놀이시설 현황』. https://data.gg.go.kr/portal/data/service/selectServicePage.do?infId=I6Y5W00421
151P0RPW7Y12521845&infSeq=1
행정안전부. (2025). 『전국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시스템(2024년 4월 기준)』. https://www.cpf.go.kr/cpf/ko/nori/0001/index.jsp
연합뉴스. (2016). 『놀이의 박탈이 만드는 감정의 상처』.
https://www.yna.co.kr/view/AKR201610060518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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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8도종환 시인은 시 ‘화인’에서 4월을 이렇게 말한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도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란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 때문이다. 그게 어디 시인 한 사람만의 고백일까. 11년 전 4월 그날 이후
삶이 바뀌었노라, 고백하는 한 사람을 소개한다. 4.16 합창단원이자 세월호
시민 활동가 파주 시민 김서원(도로시) 님과의 일문일답이다.

자기소개와 근황 인사 부탁한다
파주에 있는 여성 위기 청소년 쉼터에서 밥하는 일을 한다. 24시간 생활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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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데 활동가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도록 맛있는 밥을 해 주는
게 내 일이다. 청소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게 내 즐거움이다. 예산에 맞게
좋은 재료 공급 시스템을 만들었다. 매주 월요일 퇴근 후 안산으로 4.16 합
창단 연습하러 가고, 다양한 공연 활동도 한다. 윤석열 파면 결정 나오는 순간 제일 먼저 4.16가족들이 떠올랐다. 4.16 합창
단에서 노래한 건 3년이지만 세월호 가족들 곁에 있는 건 11년째다. 세월호
참사로 나는 정치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
다. 정치에 무관심한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투표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고, 유언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다.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자기 인생을 나누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내
삶도 그렇다. 그날이 나를 깨웠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다른 삶을 살게
해줬다. 남태령에 트랙터 몰고 온 농민들 얘기 중에 그곳에 세월호 아이들이
와 있는 거란 말이 있었다. 맞다. 나도 합창단에서 노래할 때 항상 아이들이
함께 있음을 느낀다. 20140416 참사 당일의 기억은?
애들 키우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아파트 평수랑 좋은 대학 보낼 생각하고 살
았다. ‘애들은 왜 나를 따라주지 않나, 남편은 왜 이렇게 무식할까, 나는 왜
이렇게 고생할까’라며 늘 화가 차 있었다. 노는 날도 놀 줄 모르고 신나는 생
각은 죽어도 못 하는 일 중독자였다. 그런데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갑자기 내 삶이 다 부질없어 보였다. 당일 제일 먼저 찾은 게 우리 애들이었다. 애들이 어디 있지? 아들하고 연락
이 돼서, 배고프지, 라며 짜장면을 사줬다. 짜장면을 먹이는데 더 할 말이 없
었다. 우리 애들은 교복 입고 이러고 다니는데 그 애들은 못 돌아왔잖아. 더
얘기할 수가 없고 마음이 안 잡혔다.


4.16 활동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있었나?
갈피를 못 잡다가 지역에서 진실 규명을 위해 서명받는 사람들이 있길래 참
여하고 그 곁에 있게 됐다. 2015년 들어서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을 한
다는 말이 들렸다. ‘아, 그럼 내가 음식을 할 수 있겠다’ 싶어 김경환 목사님
과 네댓이 안산으로 갔다. 가 보니 안산의 ‘치유 공간 이웃’이었다. 우리는 각각 작은 개다리소반에 밥
상을 받았다. 정말 정성스럽게 차려진, 울컥 뜨거운 눈물이 나는 밥상이었다. 가족들에게 차려지는 밥상이라는 생각에 나는 계속 울면서 밥을 먹었다. 이영
하 선생님이 그러더라. “이곳은 야전병원”이라고. 투쟁하고 다치고 지치면 잠
깐 쉬어 가는 곳이라고. 그게 4.16 활동과의 연결이었다. 봉사자 엄마들이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창비, 2015)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길래 함께 했다. 혼자서는 엄두
를 못 내던 책을 같이 낭독하며 실컷 울었다. 점차 노란 리본을 만든다든가
동네에서 세월호 특별법 서명대에도 섰다. 치유공간 이웃(이웃): 2014년 9월~2021년 2월까지 안산에 있었던 치유 공간. 정신과 의사 정혜신·심
리기획자 이명수 부부가 제안하고 시민단체 활동가 이영하 전 대표(50)가 실무를 맡았다. 수많은 활
동가와 봉사자들이 4.16 가족들이 안심하고 울고, 편하게 밥 먹고 쉴 수 있게 함께 했다. 별이 된 아
이들의 생일 모임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책 《밥은 먹었어요?》(이영하, 걷는사람, 2022)와 영화
<생일>(2019, 이종언 감독)에 이웃 이야기가 더 있다.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과 밥 이야기
첫 생일 상차림을 위해 연 계좌에 80만 원이 모였다. 양을 대중 못해 장 보
고 나니 딱 만원 남더라. 이 정도로 돈이 든다면 내 카드 긁을 각오까지 했
다. 그렇게 준비된 영만이 생일 모임에 단원고 아이들과 사람들이 엄청 왔다.
- 4 -
50인분이란 음식이 100명 먹고도 남아, 화수분이라며 싸 주었다. -다음 모임은 다음팀이 단톡방을 열어 준비했다. 별이 된 아이 이야기를 공유
하고 좋아하는 메뉴로 준비했다. 나는 그런 팀을 조직하고 식재료를 연결하고
음식도 만들었다. 수많은 봉사자들이 ‘함께하는 이웃’ 밴드에 모여들었다. 저
명한 여성들인 ‘십자매회’를 비롯해 신부님, 선교사님 그리고 시민들의 후원
과 봉사로, 매달 40만 원 정도로 생일 모임을 할 수 있었다. 2015년 겨울에는 가족들을 위해 김장을 했다. 고양파주 생협과 유기농 식당
네트워크에서 재료를 댔다. 괴산 농부님들이 연결됐다. 몇백 포기 배추가 트
럭으로 오고, 성당에서 기도하던 할머니들이 나와서 배추를 절이고 소금, 고
춧가루, 깨 등을 아낌없이 가져오고, 뒷정리를 도왔다. 가족들께 보내고 쌍용
차나 투쟁하는 분들에게도 보내고, 이웃에서 먹을 수 있었다. 단원고 2학년 6반 고(故) 이영만(1998.2.19.~2014.4,16.) 군은 형제 중 막내로 약하게 태어났지만 건
강하게 자라 축구를 좋아하고 5km 마라톤에서 상을 받았다. ‘미소천사’로 밝고 순한 성격에 엄마와 학
교와 친구들을 좋아하고 공부도 잘해 우주학자를 꿈꾸었다. 2023년 ‘이영만 연극상’이 제정됐다. 사진5, 6
4.16 활동 이전에도 음식하기 좋아했나?
나는 4녀 1남 중 막내딸인데, 아버지가 내 밑에 남동생이 난 후로 “서원이가
제일 예쁘다”라는 얘기를 자주 하셔서 그렇게 알고 컸다. 어깨동무 잡지에서
나는 요리 칼럼을 제일 먼저 읽는 아이였다. 신문도 잡지도 요리 쪽을 1번으
로 봤다. 중학교 때 레시피를 보고 낯선 피자를 직접 만들어 봤다. 할라피뇨, 피망 등 없는 건 집에 있는 재료로 대체했다. 엄마가 정육점에서 살이 치렁치렁하게 큰 돼지고기 덩이를 사 온 적이 있는
데 내가 신문에 나온 레시피를 보고 돈까스를 만들었다. 소금 후추만 쓰란 법
있냐, 간마늘로도 재고, 양파로, 우리 아버지 좋아하시는 청양고추 양념으로
도 재어 튀겼다. 온 식구가 얼마나 맛있게 먹겠어. 입 짧은 남동생과 아버지
가 너무 좋아하니, 우리 엄마는 늘 내게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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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은 나를 “요리 천재”라고 불렀다. 장사하고 늦게 돌아오는 엄마에게 내
가 만든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 드리면 “서원이 때문에 내가 한숨 돌린다”라
며 좋아하셨다. 엄마가 아침에 도시락을 10개 싸던 시절, 내가 만든 반찬 덕
에 엄마 수고가 줄어드는 게 좋았다. 참사 이후의 달라진 삶 이야기
돈도 안 벌고 안산과 파주를 오가며 생일상 차리는 일을 한 2년 했다. 아이
디어로 생각하던 음식을 다 만들어 봤다. 그러나 절대 나 혼자 한 게 아니란
걸 말하고 싶다. 연대의 힘을 배웠다. 같이 메뉴 짜며 마음을 나눈 유가족들
과 십시일반 힘 보태 함께 한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런 중에 나는 이혼했다. 2015년 봄, 불교팀 주방에서는 고기 요리를 할 수
없어서 우리 집으로 장을 봐서 모였다. 남편이 폭발해 소리쳤다. “세월호 참
사 안 났으면 어찌 살았겠냐, 죽은 아이들 생일상 차리느라 가족들 밥은 안
차려주냐?” 그는 상을 뒤엎고, 빌려온 큰 팬을 내 쪽으로 던졌다. 남편이 일
베처럼 보였다. 그날 나는 온 가족을 모아 놓고 이혼을 선언했다. 살아온 날들을 부정해야 했고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던 때였다. 내 마음
은 그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혼이 정리되는 몇 달간 남편이 현관문 열고 들
어오면 내 몸이 아프고 소화가 안 됐다. 딸이 나서서 이혼 서류를 갖다 줄
정도였다. 그는 안 하겠다고 버텼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18년의 결혼 생
활, 연애까지 25년의 관계가 그해 말 허무하게 끝났다. 사진7,7-1, 8,
이혼 후에도 계속 활동가로
내가 저질렀으니 더 절실하게 활동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시국에 민중총
궐기 촛불집회가 매주 있었다. 생일 모임 후에 벙커 원 교회 친구들과 토요일
에 청계천으로 갔다. 매주 집회 광장에서 뭘 해볼까 궁리하다 주먹밥을 만들
어 팔기로 했다. 잘 안 팔리더라. 그래서 그냥 나눠줬더니 사람들이 돈을 던
지고 가더라. 그 후 뭐든 나눔으로 했다.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 청와대 앞
법외 노조, 비정규직 집회, 블랙리스트 예술인들. 노숙 농성하는 사람들이 많
았다. 토요일 새벽에 밥을 해서 싸우는 분들에게 가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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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까먹으며 살았다. 고기 안 사 먹고 애들 학원 안 보내고 보험 깨고
적금 해지하고 연금 없어지고 전세가 월세로 줄었다. 불만 많던 아들이 생일
모임에 참여해 보고 반항을 끝내더라. 세월호 당시 중2였던 딸도 생일 모임
에 다녀간 후 엄마를 이해하더라. 박근혜 탄핵 후 지역에서 소수당 진보당에 입당했다. 4.16 활동할 때 제일
묵묵히 함께한 그분들과 파주에서 4.16과 함께 노래하는 일을 시작했다. 음식
만들던 사람들과 함께 공모사업으로 파주 4.16 합창단을 3년 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안산 4.16 합창단까지 하게 됐다. 4년 정도 한 ‘동네
부엌 천천히’에서 청소년 시설로 올해 직장을 옮겼다. 그동안 소진되는 느낌은 없었나?
성과 위주의 인간이었는데 왜 없겠나. 파주 시민 합창단 3년 차 공연을 지역
에 있는 5개 팀 연합으로 잘 올린 후였다. 장애인 가족팀이 40여 명이 참여
해서 한 100명이 했다. 행복하게 끝나고 손뼉 치고 각계 인사들이 인사하고
있는데, 김서원 때문에 불편한 일이 많다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페이스북
에 관련 내용이 올라왔다. 한 번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내 욕심대로 활동한
적 없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맡은
일을 많이 정리하고 직장 일과 4.16 합창단만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여기저
기 삐끗대는 몸도 돌보며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9,9-1, 10
4.16 참사 11주기를 맞는 소회는?
11년간 할 만큼 활동하고 나니 속에 화가 많이 풀리고 너그러워졌다. 대규모
음식을 몇 년 하다 보니 나는 음식 전문가가 돼 있었다. 이제 나는 몸도 마
음도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성과 위주의 인간이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
다. 밥하는 일과 파주랑 안산 4.16 합창단 활동이 날로 재미있다. 그런 중에 작년에 엑스 남편하고 재결합하고 혼인신고도 했다. “당신은 활동
자유롭게 하고 내가 이제 당신한테 은혜 갚게 해 줘”라는 그의 말에 내 마음
이 열린 거다. 밥이나 사나 했더니 그는 점점 밥을 해 주고 싶다더라.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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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삶을 되찾은 셈이다. 가족밖에 모르는 성실한 남자였으니까. 바꿔 말
하면 나에게도 완벽주의를 요구하고 자식과 남편만 바라보길 원했더랬다. 그
집착과 강요와 구속이 내겐 화로 쌓였던 거다. 4.16 참사와 함께 깨졌던 관계가 4.16 활동 덕분에 다시 이어진 거다. 남편
은 노년에 내 수발을 잘 들려고 자기 몸 관리 열심히 했다는 사람이다. 우리
관계도 이전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나이 든 연인이
되었다. 내가 4.16 합창단 공연하고 늦게 오는 날 그는 세탁기 돌리고, 냉장
고 채우고, 맥주 두 캔 먹을 안주 준비해 놓고, 나 데리러 나온다. 돌아보면
이혼은 ‘신의 한 수’였다. 아니면 우리가 서로의 가치를 몰랐을 거다. 이후의 계획이나 꿈은?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이젠 장사하는 곳에서 밥을 상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소질이 없다. 내 엄마, 아버지에게 밥해줬던 재미, 우리 엄마가 늦
게 들어왔을 때 내가 밥 퍼서 김치하고 줘도 “세상에, 서원이 덕분에 엄마가
이렇게 밥을 맛있게 먹는구나.”라며 내 자존감을 키워준 밥이다. 밥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해 주는 일이 나는 즐겁다. 매일 출근할 때 일하
러 가는 마음보다는 아이들을 키우러 가는 마음이다. 먹이고, 입히고, 안전하
게 재우고, 내 밥을 먹고 애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4.16 가족
곁에서 4.16 합창단을 오래 하는 게 꿈이다.
조회수 41
2025-04-11“세월호 엄마 아빠들 대부분 젊은 날 이곳 안산에 이주해서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이곳에서 아이를 잃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니 제가 웃고 있더라고요. 그건 언제나 우리 옆에서 함
께해 준 시민들 덕분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부모들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거죠.”
“시민들의 마음 그 고마움을 생각해서라도 생명이 존중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서 다시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산이 아픔의 도시, 슬픔이 도
시가 아니라 생명의 도시, 희망의 도시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부모들이 앞장서
겠습니다.”
- 단원고 2학년 6반 故 신호성 군의 어머니(정부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
회 추모부서장) 인사말 중


4.16생명안전공원 착공을 알리고, 세월호참사 11주기를 기억하기 위한 4.16
생명안전공원 시민 동행 캠페인 ‘4.16별빛 걷기’ 개막식이 3월 22일(토) 오후
5시부터 안산 화랑유원지 수변 산책로 소광장에서 열렸습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재단, 4.16연대, 안산마음건강센터, 4.16안산
시민연대가 함께 주최하는 4.16별빛 걷기는 3월 16일부터 시작됐고, 세월호
참사 11주기가 있는 4월 내내 매주 토요일 진행됩니다. 매번 저녁 6시, 안산
화랑유원지에 시민들이 모여 함께 4.16km를 걷는 캠페인입니다. 매주 같은
시간 대면해서 걷는 방식 외에도 전국 어디에서든 각자 원하는 시간에
4.16km를 걷고 애플리케이션 ‘워크온’을 통해 참여하거나 SNS에 해시태그를
걸고 인증사진을 올리는 등 비대면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월호참
사 11주기를 기억한다는 의미로 전국에서 모아낼 걸음 인증 공동 목표도 있
다고 하는데 무려 1,100,000,000(11억) 걸음입니다. 4.16별빛 걷기는 세월호
참사 10주기였던 지난 2024년 처음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도 세월호참사에
대한 마음을 담아 매일 같이 걷고 인증사진을 공유하는 시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사진1


세월호참사 11주기 4.16별빛걷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이날 개막식은 걷는
것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가죽공예, 0416키링 만들기, 매듭 팔찌 만들기 등 세월호 엄마들이 직접 운영하는 다양한 체험 부스가 운
영되어 공원을 찾은 시민들의 발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체험 부스와 함께 한쪽
에서는 4.16생명안전공원 리플렛을 나누며 시민들을 만나 4.16생명안전공원
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4.16별빛 걷기가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진행되는 중
요한 이유가 바로 4.16생명안전공원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4ᆞ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추진되는
4.16생명안전공원은 올해 2월 착공 행사를 열었고 드디어 본격적인 공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세월호참사 13주기를 맞이하는 2027년 봄, 개관해 시민들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개막식 행사는 풍물마당 터주·꿈드림 밴드의 축하공연으로 이어졌
고, 무대에 세월호 엄마 한 명이 올라 시선을 끌었는데요. 개막식에 참여한
시민을 맞이하기 위해 단원고 2학년 6반 故 신호성 군의 어머니(정부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가 마이크를 잡고 “우리 아이들이 돌아
올 이곳, 4.16생명안전공원이 건립되는 데 11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고 있
지만, 그동안 시민 여러분이 함께 기다려주고 또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또“2027년
250명의 우리 아이들이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면, 안산은 생명안전의 도시가
될 것이라 확신해요. 그것은 우리 아이들과 엄마 아빠들이 안산시민들에게 그
동안 받아온 것에 대한 선물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마음,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진심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사진3

개막식 순서가 마무리되고 4.16별빛 걷기에 참가한 시민들은 4.16생명안전공
원 건립을 기원하며 응원봉을 들고 화랑유원지 호수 주변 산책로를 걸었습니
다. 함께 참여한 모임이나 가족 단위로 서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담소를 나
누며 4.16km를 걷는 시민들의 밝은 모습에 안전 사회와 4.16생명안전공원
건립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어 나오는 듯했습니다.
※ 파일명 : (제출월일)제목_이름(활동명) / 사진파일 별도첨부
※ 경기천년바탕 Regular, 글자크기 13p(본문), 줄 간격 160%, 상하여백 15, 좌우여백 25, 머리말·꼬리말 15, 300단어 기준 양식에 벗어난
자료를 받았을 시 기준에 따라 수정하여 원고료 지급범위를 정함. ※ 1매에 27행을 기준으로 30%(8행)미만 작성된 매수는 지급매수로 산정하지 않으며 이미지는 홈페이지 업로드 크기와 별도로 센터
양식 기준 최대 10행으로 취급
4.16별빛 걷기에 참여한 한 시민은 “별이 된 아이들과 동행한다는 마음으로
걸었어요. 4.16생명안전공원이 완성될 때까지 뭐라도 함께 하겠다는 그런 의
미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 문제와 생명안전공원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요.”라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11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기억하며, 생명 존중·안전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다양한 추모 사업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4월 12일(토) 오후 2시
에는 안산문화광장 전망대 광장에서 ‘안산 기억문화제’가 열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이 안산으로 찾아옵니다. 또 세월호참사 11주기 당일인 4월
16일(수)은 오후 3시 안산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에서 세월호참사 11주기 기
억식이 열려 전국의 시민들이 함께할 예정입니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노란 물
결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합니다. 안산을 찾지 못하더라도 전국 곳곳에서 세월
호참사 11주기를 앞두고 또는 16일 다양한 추모행사가 준비되고 있으니, 관
심을 가지고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조회수 42
2025-03-28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노래 가사 중)
오늘따라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말이 제 질문에 답처럼 들립니다. 에디터 두
번째 글쓰기에서, 질문에 멈춰 섰거든요. “공익 에디터 글쓰기는 평소의 내
글쓰기랑 뭐가 다르지?”에서 “공익과 공익 아닌 것의 경계는 뭐지?”로 갔다
가 “내가 이걸 쓰는 게 맞나?”까지. 4.16합창단 이야기라서 더 어려운가 봅
니다. 제가 별 존재감은 없지만 4.16합창단원이라고 밝히기로 했습니다. “수
고했어 오늘도” 노래의 힘에 기대어 글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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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2,3
잊지 않을게, 4.16합창단 연습실 스케치
“46,S12,A15,T8,B7” 이건 무슨 암호일까요? 3월 24일(월) 저녁7:30-10:00,
4.16합창단의 정기연습 기록입니다. 안산에 있는 4.16가족협의회 강당에서, 소프라노12, 알토15, 테너8, 베이스7, 지휘자, 반주자, 영상담당 그리고 사회
복지사, 참여자가 46명이란 뜻이죠. 한쪽 벽면 가득 250명의 ‘별이 된 아이
들’ 사진이 노란 걸개로 걸린 컨테이너 강당 연습실입니다.
4.16합창단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떠나보낸 유가족과 생존한 아이들의 가족
그리고 시민단원으로 구성된 합창단입니다. 2014년 12월 작은 노래모임을 시작할 때, “자식 잃고 뭐가 좋다고 노래하냐”던 분들이 11년 차 합창단이 되었습니다. 3월 말 현
재 통산 456회 공연으로.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고 알리며, 사회적 참사와 아픔이 있
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정기연습 시간은 매주 월요일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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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연습은 ‘먹방’ 후에 시작합니다. 준비된 저녁밥은 김밥과 라면이지만, 오
늘은 단원의 모친상 답례떡, 신입단원이 쏜 곱창순대볶음과 어묵 그리고 준우
맘의 쌀과자 등이 더해집니다. 박미리 지휘자가 연습 시작을 알리네요. “맛있게 드셨죠? 떡 두 봉지씩 챙기신 거죠? 하나만 드시면 안 된대요.”
키득키득 누군가는 떡 한 봉지 더 챙겨 오고, 지휘자는 덧붙입니다. “오늘 연습으로 4회 공연이 이어지는 거 아시죠? 대구 공연 주최측 요청곡이
돌덩이인데 아직 신청 인원이 좀... 계속 더 힘 모아 주세요. 그리고 공연 때
원하는 신입단원은 악보 들고 하셔도 된다고 다시 말씀드려요.”
첫 곡은 <수고했어 오늘도>입니다.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맞는 유가족들과
시민들을 따뜻하게 토닥이는 노래입니다. 이어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
에게>, <기쁨에게>, <포카레카레아나>, <돌덩이>, <조율>을 부릅니다.

사진4
<별 기억식>
3월 26일: 독학으로 배운 피아노로 교회에서 거의 모든 예배 때 반주를 한, 음악 심리치
료사가 꿈인 양온유(2반)
3월 28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좋아하고 마술사가 되고 싶은 김용진(4반)/ 책임감이
강하고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치즈케이크를 좋아하는 구태민(6반)/ 기타도 잘 치
고 손재주가 좋아 프라모델도 능숙하게 조립하고, 자동차 공학박사를 꿈꾸는 안주현(8반)
3월 29일: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모든 것이었던 외동딸, 웃으면 입술 끝에 주름이
생겨서 별명이 '주름'인 김주희(10반)
3월 31일: "음악은 소울이 가장 중요하지!"라며 언제나 음악과 함께하는 '츤데레' 강승묵
(4반)
4월 2일: 성당에 갈 때나 시장을 볼 때, 언제 어디서나 엄마랑 다니고 무엇이든 엄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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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1부와 2부 사이엔 중간 휴식이 있고 ‘별 기억식’이 있습니다. 다음 월요
일에 연습이 없으니 3월 24일~4월 6일 사이에 생일이 든 아이들의 이름을
알토 뿅뿅이 하나하나 호명합니다. “3월 26일입니다. 독학으로 배운 피아노로
교회에서 거의 모든 예배 때 반주를 한, 음악 심리치료사가 꿈인 2반 양온
유”에서 시작해 “9반 권민경”까지. 지휘 없이 피아노 반주와 함께 ‘잊지 않을
게’를 부를 때 오늘도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납니다.

함께하는 엄마의 동반자 '반자' 권지혜(10반)
4월 3일: 섬세하고 다정하면서도 듬직한 성품으로 엄마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아들,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인 정휘범(4반)/ 직장 다니는 엄마를 늘 걱정하고 위로하는 아들, 작가, 만화가, 기타리스트, 천문학자 등 꿈이 많은 이준우(7반)
4월 4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행복을 주는 아들, 부모님이 하시는 음식점에서
모든 음식의 간을 도맡아 볼 정도라 별명이 ‘간쟁이’인 강혁(4반)
4월 5일: 엄마와 걸음걸이까지 닮은 일 번 친구, ‘태권 소년’, ‘단원구 장동건’ 조봉석(8반)
4월 6일: 잔소리 할 일 없이 키운 ‘실거운(슬거운)딸’, 단 한 번도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딸,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인 권민경(9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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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6
길 위의 합창단
6년 전 제가 4.16합창단에 처음 들어온 그날도 ‘잊지 않을게’를 불렀습니다.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부를 때, 부모님과 인사할 때, 목소리가 자꾸 막히고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그런 목으로 계속 노래하는 신기한 합창단이었습니다. 3월 26일(수) 3시 안산마음건강센터 개소식 장소는 햇빛 부신 마당입니다. 합창단은 2시 현장 리허설 후 대기실에서 오색스카프를 두르고 또 연습합니
다. 수없이 부르고 월요일에 연습했지만 오늘은 29명(S5,A11,T4,B7)이 호흡
을 맞춥니다. “수고했어 오늘도”와 “기쁨에게”로 4.16합창단은 마음을 전합합
니다. 지난 10년간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과 안산 지역사회의 치유를 위해
수고한 안산마음건강센터와 거기 모인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공연 후 합창단은 서둘러 자리를 뜹니다. 저녁 6시 30분 서울시의회 앞 세월
호기억공간에서 4.16기억문화제를 합니다. 리허설 시간 5시 30분까지 차로
전철로, 속속 모여든 단원은 낮 공연보다 많은 37명입니다. 초연곡인 ‘포카레
카레아나Pocarecareana’, ‘기쁨에게’ 그리고 ‘돌덩이’를 잘 불렀습니다. 여기
서 3월 31일(월)엔 스텔라데이지호 8주기 추모로 또 모일 겁니다. 4월의 5개 공연 중 저는 대구 ‘여정남 열사 50주기 대동한마당’에 마음이 쓰
입니다. 장거리에다 3월 말 현재 갈 수 있는 단원이 22명인데 알토가 저를
포함해 4명입니다. 평소 가장 수가 많은 알토가 무슨 일일까요? 행사 주최측
에서 요청한 곡이 <돌덩이>. 길고 에너지 넘치는, 알토가 특히 어려운 곡입니
다. 잘하는 동료들에게 기대어 가기엔 4명이 너무 적지 않나요? 후엔 9일(수)
연세대 채플, 12일(토) 11주기 서울집중문화제, 그리고 16일(수)에 안산 세월
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에서 노래합니다. 멀리 실상사로 가 ‘선지식과 함께 걷
는 순례길’에서 노래하면 4월이 갑니다. ‘길 위의 합창단’입니다.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약속 시민대회
일시 : 2025년 4월 12일 오후 2시 / 오후 4시 16분
장소 : 경복궁역 4번 출구(안산 및 각 지역에서 동시에)
주최 :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내용 : - 시민참여마당 오후 2시 : 시민참여부스, 시민발언대
- 시민대회 : 오후 4시 16분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 (안산으로 오세요!)
일시 : 2025년 4월 16일 (수) 15:00 ~ 16:17
장소 : 안산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
식순 : 식전공연, 개식 및 국민의례, 추도사, 기억영상 상영, 기억
뮤지컬, 기억 합창 공연
문의 : ☎ 070-4248-8673 4.16재단
https://416act.net/29/?idx=158705632&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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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8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10년 동안 길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픈 사람들과 손잡고 걸어가는 동행
이었고 모난 세상을 향한 우리의 외침이었다.”
작년 10월 4.16합창단 두 번째 앨범 기획공연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노래
할게’를 여는 프롤로그였습니다. ‘길 위의 합창단’의 목에 5색 스카프가 처음
등장한 무대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됐지만 아픈 마음과 연대해서 온
세상을 향해 노래하는 합창단이니까요. 재난 참사가 반복되니 마음 아픈 사람
들이 늘어나고 리본 색깔도 늘어나는 현실. 연대와 동행의 5색 스카프를 제
작해 두르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노랑,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의
주황,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초록, 이태원 참사의 보라 그리고 아리셀 참사의
하늘색.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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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VuG-kTXO9MQ
두 번째 앨범은 4.16합창단을 위한 창작곡을 포함한 CD와 음원으로 나와 있
습니다. 창작곡 <너>는 태어나던 날부터 18살 수학여행 가는 날까지의 아이
인생을 노래합니다. 봄날, 두 개의 세계,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종이연, 노
래여 우리의 삶이여, 그날처럼 오늘도, 돌덩이,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그리움을 담은 노래 사이에 부모님들의 육성 편지 “너-하늘로 가는 우체통” 도 담겨있습니다. 첫 앨범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2020)은 4.16합창단
6년의 이야기는 책으로, 노래는 CD로, 북CD란 거 아시죠?
“예은아, “노래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요.” 1학년 일기장 속 너의
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너의 마음을 담아서 외칠게, 노래할게, 바꿔낼
게, 멈추지 않을게. 그리고 안산으로 꼭 데려올게. 사랑해, 예은아.”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양의 엄마, 소프라노 단원 박은희 님의 육
성 편지입니다. 한 매체 인터뷰에서 예은 엄마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못한 말을 하려고,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걸어온 길 같
아요. 그래서 애들이 원하는 게 뭘까 늘 궁리하면서 살았어요. 세월호는 한국
사회에 선명한 선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과 다른 세상을 만드는
기준점이 되어야 해요.”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노래하는 합창단입니다.

사진 9,10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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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세월호 참사는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탈출하는 선장과 선원들”의 이미
지로 각인돼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으로 들립니다. 그해에
우리 집 셋째가 세월호 아이들과 학교만 다른 고2였거든요. 그 봄에 저는 몸
이 심하게 아팠고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가 저를 따
라다녔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병이 도져서 죽을 거 같았습니다. 몸이 더 아플까 봐, 살고 싶어서 4.16합창단에 들어왔습니다. 짝꿍과 함께 활
동하며 늙어가자 했습니다. 노래는 존재감 없지만, 가만히 있진 말자, 곁에
있는 건 할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합창단 활동 6년이 됐지만 여전히 노래
는 자신이 없어서 동료들에게 묻어가는 알토입니다. 참사 11주기를 맞으며, “수고했어 오늘도”가 특별하게 와 닿습니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워온 분들의 실망을 알기 때문입니다. 땀과 눈물 어린 얼굴들이 떠오르고
별이 된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수고했어 오늘도, 노래합니다.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
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수
고했어 오늘도/ 라 라라 라 라 라 라 라 라라 라....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노래 가사 중)
https://www.youtube.com/watch?v=HdkLHGu8fDc
조회수 49
2025-03-28
무관심과 쉴 새 없는 기억의 공백 뒤편에서, 굳건한 예술의 손길로 아픔을 보듬고 찬란한 연대의 내일을 빚어내는 눈부신 발자취를 마주하다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맞이하여 묵묵히 진실을 마주하고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수많은 연극인들과 시민들. 차가운 망각의 장막을 깨부수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세월호 참사 11주기_연극으로 기억하기, 4월연극제 <바라, 봄>’ 기획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지나간 아픔을 예술로 되새기는 일은 그저 슬픔을 자극할 뿐, 일상에 변화를 주지 못한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연극인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예술적 기억을 통해 꽃피우는 문화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예술 자치와 연대의 문화적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치유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방관과 망각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예술 기억 및 자발적 추모 생태계 구축’
참사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기억을 지우려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공익활동가들이 동네 소극장과 연극제 마당에서부터 직접 무대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기억하고 소통하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진정한 예술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기념 공연의 개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소극장 작은 객석에 모여 앉아 이웃들과 손을 잡고 무대 위 이야기에 공감하며 따스한 눈물을 나누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치유 감수성 및 연대 강화’
세월호 참사가 남긴 깊은 상흔과 고립감을 개인의 슬픔으로 치부하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혼자서 거대한 슬픔의 벽과 마주하면 막막하고 버겁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연극을 관람하며 마음을 나누면 그 어떤 상처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치유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기억 네트워크’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문화 예술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기억과 존엄이 차별 없이 존중받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문화 자치 실현.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도내 각지에서 모인 연극인들과 예술의 힘으로 연대를 꿈꾸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4월연극제 <바라, 봄>'을 통해 아픔을 기억하고 희망을 노래하며,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이의 아픔도 외면당하지 않는 평화와 기억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가슴 한켠에 남아있던 아픔을 연극을 통해 마주하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손을 잡고 '우리가 영원히 기억하고 함께 살아가자'며 온정을 나누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가슴 깊은 곳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경기도형 예술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연극을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동네 예술 치유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따뜻한 손길을 모아 더 큰 기억의 망을 만드는 '경기 4월연극제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침묵의 파고와 망각의 벽이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예술의 손길들이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예술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통계 지표나 거창한 정부의 행사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경기도의 작은 소극장 객석과 골목길에서 이웃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당신의 아픔을 우리의 온기로 기억하며 평화롭고 다정한 내일을 함께 열어간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공익활동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망각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치유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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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