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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변화, 아이들의 삶에 닿다

     

    스시히로미 이형락 대표의 일상 속 공익 실천

    그 아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아이의 첫 초밥이 제가 만든 것이라면,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공익을 이야기할 때 종종 거창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현장이나 조직화된 캠페인, 혹은 이름이 알려진 활동가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공익은 어딘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조금 다른 곳에서 시작됩니다. 의정부의 한 초밥집, 그리고 그곳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는 한 사람의 실천입니다.

     

    스시히로미를 운영하고 있는 이형락 대표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저는 그냥 초밥집 하는 사람입니다.”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준비하고 만들어 아이들에게 건네는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활동은 특별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시골에서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서울에 와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그는 장사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초밥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이들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아원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구조적인 이유로 지속적인 활동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지역아동센터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고, 그 선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계획보다 마음이 먼저였다는 점입니다. 한 번의 마음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활동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형락 대표의 활동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직접 초밥을 만들어 보게 하며 ‘1일 요리사상장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돈은 금방 사라집니다. 그런데 경험은 남습니다.”
    현재는 여건상 체험을 줄이고 식사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해본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3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 이틀 행복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오래 갑니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자신에게 더 깊게 남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감정을 중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못 갔을 때 미안할 뿐입니다.”
    실제로 그는 봉사 일정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 일정을 맞추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공익활동이 삶의 일부가 된 모습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그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기 것을 먹지 않고 할머니께 가져다드리겠다고 싸 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그는 결핍이 아니라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익활동은 단순히 주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따뜻한 마음을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이형락 대표는 자신의 활동을 개인의 선행으로 보지 않습니다.
    제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가게 손님들이 함께하는 일입니다.”
    손님들이 지불한 금액의 일부가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직원들과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 활동은 자연스럽게 공동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같이 하는 거지,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에는 공익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에게 공익의 의미를 묻자 그는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자기 만족입니다. 그게 아니면 못 합니다.”
    이 말은 공익활동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공익은 의무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느껴야 이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이형락 대표의 나눔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만나며 시작된 활동은 한 대상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더 넓은 사회를 바라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더 많아졌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특히 그는 최근 탈북민에 대한 부분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탈북민분들도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라도 도와보고 싶습니다.”

    이 생각은 별도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온 나눔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초밥을 만들어 주던 경험이 누구를 더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그 시선이 더 넓은 사회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 초밥 나눔은 하나의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향해 확장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영업자 역시 공익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영업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현실적인 조건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장사가 잘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공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현실과 구조가 함께해야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형락 대표의 이야기는 결국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그 아이의 첫 초밥이 제가 만든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에는 음식이 아니라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에게 남는 것은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고 마음을 쏟아준 경험입니다.

    이 글은 하나의 질문을 남깁니다.
    공익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형락 대표는 거창한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매달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는가.”

    공익은 어쩌면 거창한 일이 아니라, 오래 이어지는 작은 실천일지도 모릅니다. 초밥 한 접시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접시가 누군가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변화, 아이들의 삶에 닿다
    관리자

    조회수 202

    2026-05-03
  •  

    5월을 가정의 달이라들 한다. 가정이란 뭘까? 아내는 밖에서 일하고 남편이 두 아이 육아와 살림을 맡은 가정은 어떤 풍경일까? ‘집사람아빠가 엄마를 쉬게 하자며 이웃 아빠들과 연대했다. 그림작가이자 안산 해양동 마을활동가, 학교 앞 교통안전지도를 하는 김인찬 자율순찰대 회장을 만나 보았다.

     

     

    Q ‘자율순찰대란 이름이 낯선 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려요.

    2021년부터 준비하고 2022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안산 그랑시티 자이 아파트 단지에서 자율순찰대를 구성하여 지금까지 활동 중인 김인찬입니다. 현재 해양동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단체의 운영진으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매일 아침이면 비가오나 눈이오나 학교 앞으로 나가 아이들의 안전한 등굣길을 위해 교통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Q 자율순찰대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자율방범대랑은 다른 거죠?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릴 수 있는데, 자율방범대는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지구대와 협력해 야간 순찰하는 관소속 단체예요. 반면 자율순찰대는 제가 이곳에 이사 오기 전 단체에서 아이를 키울 때 엄마를 좀 쉬게 하자는 순수한 취지에서 시작됐어요. 주말 낮에 아빠들이 애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임이죠. 토요일에는 아빠들이 직접 짠 놀이 프로그램으로 가족 관계를 회복하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 새로 형성된 단체에선 아빠들과 평일 밤에 단지와 학교 주변을 돌며 활동을 하는 과정이 쌓이다 보니 자율순찰대의 형태를 띠게 된 겁니다. 이전 단체와 달리 지금 이곳 우리 단체는 예산이나 회비를 일절 받지 않는 자율 모임도 됐어요. 이전에 회비가 개입되면서 권력 싸움이 일어나는 걸 겪었거든요. 지금의 자율순찰대는 회비도 없고,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단체의 활동 경우 시의 보조지원을 받을 때도 보조금 전액을 주민들과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투명하게 사용하고 조직 구성도 수평적인 구조를 유지했어요.

     

     

    Q 이전에 무슨 일을 하셨길래 육아에 그렇게 적극적일 수 있었을까요?

    평생 그림 그리는 일을 해왔어요. 90년대에는 출판사 단행본 프로덕션에서 수작업 극화를 그렸고, 지금은 컴퓨터로 삽화와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입니다. 옛날엔 종이 원고를 들고 합정동 출판사를 직접 찾아다녔는데, 수십 명의 출판사 직원이 원고 말풍선에 식자를 일일이 붙이던 풍경이 눈에 선하네요. 원고 한 장에 7~8천 원 받으며 고생도 많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해 다 컴퓨터 작업이 됐죠.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애들이 좋아하는 판타지 그림을 그려 유치원 봉사도 가고, 같이 놀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직접 만들었어요. 서울에서 35년을 살다 2009년에 아내 직장을 따라 안산 고잔동으로 이사 왔는데, 삭막한 서울과 달리 조용하고 녹지가 많아 참 좋더라고요.

     

    Q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쉽지 않은 구조잖아요.

    집사람이 도로 포장하는 건설회사에 다니는데 경력이 30년이 넘은 베테랑 부장이에요. 능력자라 회사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고 저보다 수입도 훨씬 좋았죠. 솔직히 저는 그림 그리며 도와주는 처지라 수입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첫애 태어나면서 제가 집안일을 전담하기로 했죠. “당신이 밖에서 잘 버니까 내가 안살림을 할게한 거예요. 출산 휴가만 몇 달 쉬고 집사람이 출근하면서, 육아하고 살림하는 걸 제 역할로 받아들인 거죠.

     

    Q 100% 독박육아를 직접 하셨다고요? 만만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집사람은 산후조리원도 안 갔어요. 제가 집안일은 몹시 서툴렀고 집에서 산바라지도 한다고 했지만, 매우 부족했죠. 집사람이 출근한 후엔 짜놓은 모유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데워 먹이고, 분유 타는 법부터 기저귀 가는 법까지 책으로 익혔어요. 제 일은 아무래도 뒤로 밀리는 거죠. 근데 이게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애한테만 24시간 몰입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지더라고요. 신경이 예민해져서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고, 택배 아저씨가 벨 누르는 것도 싫어서 문을 안 열어준 적도 있어요. 고립되니 사람 보는 게 무서운 거죠. 지독하게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밖에서는 남편이 애 봐주니 좋겠다라고 칭찬했지만, 제 내막은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우울에 갇히더라고요.

     

    Q 임신출산육아로 여성이 겪는 산후우울증을 남성으로서 경험하셨네요. 이게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 게 보이네요. 어떻게 빠져나오셨나요?

    ,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면 그럴 수 있는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애가 걷기 시작하면서 탈출구를 찾았어요. 애 데리고 공원 나가서 놀게 하며 거기 비슷한 엄마들이 보이더라고요. 저 혼자 남자라 처음엔 어색했죠 물론. 차츰 육아하는 엄마들 수다떠는 거 듣고 섞여서 물어보고 애 이야기도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교류가 시작된 거죠.

     

    또 하나는 인터넷이었어요. 애들 잘 때 게시판에 글 남기고 소통하면서 숨구멍을 틔웠죠. 밖을 못 나가니까 바깥 환경을 촬영한 케이블 TV 코너 같은 거 열심히 보고 글을 올렸어요. 댓글 하나 달리나 기다리고, 안 달리면 서운해하면서요. 그렇게 손가락으로라도 세상과 연결되려 애쓴 시기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병적인 집착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Q 아들 둘을 키우셨는데, 그 힘든 육아를 둘이나 할 결심을 하셨을까요?

    원래 둘째 계획이 있었지만, 첫째를 키워보니 너무 힘들어서 4년이라는 터울을 두고 낳았어요. 둘째 때는 더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가 다른 부모들과 어울렸죠. 그런데 두 아이 성향이 참 달라요. 큰애는 무덤덤한 보통 남자애인데, 둘째는 섬세하고 여성성이 강해요.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아기자기하게 놀죠. 초등학교 땐 엄마 옷을 입고 나와 예쁘냐고 묻기도 했는데, 처음엔 덜컥 겁이 났어요. 사회가 보수적이니 군대 가서 적응 못 할까 봐 일부러 남자가 그러면 안 된다라며 화도 내고 갈등도 많았죠. 이제 중3이 된 아이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것도 결국 제 편견이었다는 걸요. 이제는 아이의 개성을 존중합니다.

     

    Q ~ 멋진 말씀이에요. 그렇게 사셨다면 참 보람 있게 느끼시겠어요.

    결혼 후 남자도 집 안일 한다고 받아들인 점이 제 삶에서 가장 큰 보람이에요. 시작은 육아였지만 놀이터에서 만난 힘든 엄마들의 처지를 보며 아빠들이 하루라도 애들을 맡아 엄마들을 쉬게 하자라고 마음을 모았죠. 공식 단체도 아닌 아빠들 동호회처럼 시작해, 토요일 아침 8시면 애들을 싹 데리고 나갔어요. 용산전쟁기념관도 가고 병점 빙상장도 갔어요. 대부도 선감 학생수련원 12일 여름캠프로 바지락을 캐며 아이들을 돌본 아버지들과 그 시간과 경험으로 이곳에선 자연스럽게 새로운 다른 아버지들과 구성한 마을을 살피는 자율순찰대로 이어진 겁니다.

     

     

    Q 5월을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하죠. 가정에 대해 말씀 좀 더 해주세요.

    5월과 12월은 좋아하는 달이기도 해요. 가정의 가장이라면 우리 사회에선 왠지 돈 잘 벌고 강한 남자 같지만, 저는 그렇지 못해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좀 더 노력하고 싶은 욕심은 있었죠. 처음에는 내 아이, 내 가족만을 생각했는데 아파트 단지와 마을과 함께 행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진행하면서 관심이 점점 확장됐어요.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우리 가족에게 소홀했던 부분이 많아 아쉽고 집사람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대한민국에서 남편 역할과 아빠 역할로 어려워하시는 분들에게 제가 배우고 아는 장점들을 공유하고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저도 한쪽으로만 치우친 생각은 버리고 아이들을 다그치기보다 눈높이를 맞추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이제는 젊은 분들에게 제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역할을 넘겨주고, 가족을 조금 더 챙기고 싶습니다.

     

    Q 말씀 듣다 보니 집사람이란 단어가 낯설어요. 집에서 육아하고 살림하는 사람은 선생님이었는데, 바깥일 하는 부인을 계속 집사람이라 하셔서요. 이상하지 않나요?

    하하하, 맞는 말씀이네요. 관습이 무섭네요. 어디 가서 솔직히 남자가 집사람이라 말하지 못하잖아요. 사실 제가 군대 특공대 출신이라 진짜 남자 중의 남자를 꿈꿨고 강한 남성성에 집착했더랬어요. 그런데 직접 살림을 해보니 제 안에 모성이자 부성 같은 여러 성격이 나오더라고요. 폭군 네로가 시를 썼듯 제 안에도 여러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방에선 앞치마를, 밖에서는 밀리터리 복장을 하고 교통지도를 하고 있으니까요. 필요할 때 필요한 자아를 꺼내 쓰는 거지, 바깥사람 집사람 이분법 이상한 거 맞네요.

     

     

    Q 그런 점에서 부인과의 파트너십이 궁금해요. 부인은 만족하셨나요?

    가끔은 아내도 힘들어하죠. 직장 동료들이 남편 자랑이나 집 사는 걱정 할 때 아내는 공감하기 어려웠나 봐요. 회사에서 힘든 일 있을 때 저에게 화살이 돌아오기도 했고요. 처음엔 미안해서 서둘러 자리 잡으려 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상태를 인정하는 단계예요. 아내가 기다려준 덕분에 제가 더 능동적 활동과 아직도 서툰 살림을 할 수 있게 됐죠. 아내가 밖에서 당당하게 일할 수 있도록 안에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게 우리만의 파트너십입니다.

     

    Q 기혼 여성의 고용중단처럼 선생님은 직업적 성공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여성들의 고용중단과 닮은 점이 있긴 하죠. 벌이가 적은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저는 그림을 놓은 적은 없어서 계속하고 있어요. 대신 지역 활동가로서 얻는 보람이 큽니다. 안산의 역사와 환경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거든요. 여기가 원래 갯벌이었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산책하다 로드킬 당한 고라니를 보면 신고하고 센터에 연결하는 일도 제 업처럼 합니다. 동네에 발을 붙이고 산다는 건 이런 구석구석을 살피는 일이라고 믿어요.

     

     

    Q 지역 활동가로 살도록 가치관에 영향을 준 게 뭘까요?

    이북이 고향이신 아버지와 할머니의 영향이 커요. 아버지는 항상 통일전망대에서 북녘을 보며 눈물지으셨죠. 그런 환경 탓인지 탈북민이나 고려인 문제에 마음이 많이 쓰여요. 제 뿌리가 거기 있다 보니 소수자나 이방인들에게 포용적인 시선을 갖게 됐죠. 마을 활동하며 권력다툼도 보았기에 저는 회비 없는 자율 모임을 지향해요. 누가 저를 밀어내면 그냥 물러납니다. 햇볕이 외투를 벗기듯, 제가 지속 가능하게 그 자리에 있으면 욕심부리던 사람들은 떠나고 결국 제 역할이 돌아오더라고요. 저는 대장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Q 매일 아침 아이들의 등굣길을 지키는 일, 단순해 보이지만 대단한 일이죠.

    위험한 길에서 교장 선생님까지 나와 등굣길 교통지도 하시는 걸 보고 자원해 시작한 지 벌써 5년이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아이를 위해 차를 끌고 와 불법 유턴을 하며 다른 아이들을 위협하는 부모님들을 봐요. 아이들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말이죠. 제가 서 있는 그 짧은 멈춤이 생명을 살린다는 사명감에, 그리고 아침마다 고생 많으시다라고 인사해 주시는 학부모님들과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며 매일 아침 길 위에 섭니다.

     

     

    Q 그림작가 김인찬으로서, 그리고 마을 활동가로서 앞으로 꿈꾸는 모습은 무엇인가요?

    거창한 건 없어요. 건강하게 이 활동들을 오래 하는 게 꿈이죠. 제가 없으면 없어질 모임이 아니라 작게라도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저는 육아와 살림을 통해 여성들의 노고를 뼈저리게 배웠고 공공성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수직적 권력이 아닌 수평적 관계 속에서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엄마를 쉬게 하자”, 아빠는 집사람이자 자율순찰대
    관리자

    조회수 136

    2026-04-28
  • [기획] 탈북민의 겨울은 더 춥습니다 — 거대한 이질감과 단절의 장막을 넘어, 경기도 골목마다 다정한 온정과 연대의 푸른 숲을 일구어내는 감동의 여정

    낯선 땅의 매서운 세밑 한파와 쉴 새 없는 고립의 그늘 뒤편에서, 묵묵히 버텨온 탈북민들의 시린 마음을 마주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생존의 경쟁과 바쁘게 돌아가는 수도권의 일상 속에서, 정작 고향을 떠나 낯선 남쪽 땅에 정착해 묵묵히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는 탈북민들에게 유독 더 시리고 가혹하게 다가오는 혹독한 겨울바람.

    "우리는 과연 ‘남의 일이니까 알아서 하겠지’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모든 탈북민 이웃이 따스한 안식처에서 온기를 나누는 진정한 ‘정착 지원과 상생의 품’을 어떻게 넓혀갈 수 있을까?" 탈북민들이 마주한 고단한 정착의 실체를 고발하고, 경기도 전역에 생명 존중과 포용의 자치 숲을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탈북민의 겨울은 더 춥습니다’가 품은 3가지 핵심 과제와 비전

    1. 방관과 고립의 장막을 허무는 ‘탈북민 취약계층 겨울철 생계 안전망 및 정착 지원 구축’

      • 난방비 부담과 생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민 가정을 발굴하고, 실질적인 방한용품 지원과 따뜻한 김장 나눔 등 밀착형 생태계 다지기.

      • "진정한 평화와 포용의 완성은 거창한 통일 담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네 골목에서 탈북민 이웃의 시린 손을 꼭 잡고 온정을 나누는 소박한 연대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2. 이질감을 넘어 신뢰를 잇는 ‘시민 참여형 문화 공감 및 정착 연대’

      • 문화적 차이와 낯선 환경에서 오는 외로움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서로를 이해하는 지혜로운 공론장 창출.

      • "혼자서 낯선 고통을 견디면 시리고 무섭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함께 손을 잡고 돌보면 그 어떤 매서운 추위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3.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안전의 그물망으로 잇는 ‘다문화·탈북민 자치 생태계’

      •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공익단체들과 활동가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탈북민을 위한 복지와 상향식 자치 안전망 실현.

      •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실천과 교감의 시간들

    도내 각지에서 모인 정착 지원 활동가들과 탈북민 주민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낯선 땅에서의 고충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경기도를 진정한 '모두의 포근한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공론장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고향을 떠나 홀로 남쪽에 와서 맞이하는 겨울마다 뼛속까지 시린 외로움을 느끼곤 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우리의 아픔을 보듬고 진짜 이웃이 되어주겠다는 경기도민들의 따뜻한 다짐을 들으니 비로소 마음 깊은 곳까지 훈훈한 온기가 피어나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도민들의 뭉클한 순간들.

    • 경기도형 포용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탈북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김장을 담그고 수다를 떨며 정을 나누는 '우리동네 어울림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겨울철 위기 상황이나 정착 고충 시 언제든 도움을 청하고 서로를 돕는 '경기 온기 나눔 핫라인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이질감의 벽과 세밑 한파의 파고가 높고 거셀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연대의 손길들이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손길로 그려가는 경기도의 찬란한 내일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포용과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정착 지원금 통계 보고서나 거창한 통일 정책 발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골목길에서 시린 이웃의 손을 먼저 잡고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공익활동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단절과 추위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온정의 숲을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탈북민의 겨울은 더 춥습니다.
    주야

    조회수 5604

    2023-12-29
  • 거창한 구호 대신 나란히 걷는 길, 일상에서 피어나는 작은 통일

    남과 북이라는 오랜 분단의 벽을 넘어, 우리가 서로를 온전한 이웃으로 느끼는 순간은 과연 언제일까?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란 거창한 선언이나 복잡한 이론만으로는 쉽지 않다. 오히려 마주 앉아 흙냄새를 맡고, 나란히 걸으며 이웃의 쓰레기를 함께 주워 담는 소박한 일상의 실천 속에서 진짜 온기가 피어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미래의 통일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오늘 이 골목길을 깨끗이 쓸어내리는 작은 손길에서부터 시작된다." 탈북민과 지역 주민들이 손을 맞잡고 묵묵히 거리와 하천을 가꾸며 다정한 평화의 연습을 이어가는 ‘탈북민과 함께 통일을 준비하는 쓰레기줍기 봉사활동’.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웹진에서는 차별과 경계를 지우고 진정한 하나 됨을 배워가는 그 감동적인 현장을 깊이 들여다본다.

    이들이 함께 주워 담은 3가지 평화와 연대의 가치

    1. 이방인이 아닌 다정한 이웃으로 마주하는 일상적 만남

      • 남과 북이라는 서로 다른 배경을 잠시 내려놓고, 똑같은 장갑을 끼고 집게를 든 채 나란히 걸으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자연스러운 소통의 장.

      •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깊은 공감을 통해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진정한 동반자로 거듭나기.

    2. 지구의 아픔을 보듬듯 우리 사회의 상처를 쓸어내리는 환경 정화

      • 무심코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땀방울 속에서, 우리가 사는 터전을 깨끗이 가꾸는 동시에 서로의 마음속에 쌓인 편견과 오해의 찌꺼기까지 말끔히 비워내기.

      • 자연과 사람이 함께 숨 쉬는 건강한 지역 공동체를 손수 일구어가는 풀뿌리 실천.

    3.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싹트는 작고 단단한 평화의 씨앗

      • 거창한 통일의 청사진을 그리기에 앞서, 일상에서 소외되거나 낯설음을 느끼는 이웃들이 주체로 나서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 전파.

      • 작은 봉사와 땀방울이 모여 마침내 커다란 연대의 파도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 만들기.

    현장의 온기로 채워졌던 뜨거웠던 웃음과 교감의 시간들

    이번 봉사활동 현장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환한 미소와 다정한 온기로 가득 채워졌다.

    • 나란히 걷고 함께 웃던 거리 정화 세션: "여기는 이렇게 치우면 되겠네요!"라며 서로 넌지시 건네는 말 한마디와 환한 웃음 속에 이질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정한 동료애만 남던 순간.

    •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나눈 진솔한 수다: 쓰레기를 모두 치운 뒤 둥글게 모여 앉아 고구마와 차를 나누며 각자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털어놓던 뭉클한 교류의 장.

    •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오늘 흘린 이 땀방울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씻어내고 진짜 평화로 이어지는 단단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던 감동의 연대.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손길로 그려가는 경기도의 찬란한 내일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위대한 힘은 거대한 정치가 아니라, 낯선 이와 손을 잡고 오늘 가장 필요한 곳에 먼저 몸을 낮추는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헌신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분단의 아픔을 딛고 일상 속 작은 실천으로 평화의 길을 묵묵히 다져나가는 탈북민과 경기도의 공익활동가들.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다정한 연대와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차별과 경계 없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탈북민과 함께 통일을 준비하는 쓰레기줍기 봉사활동
    목소리해결사

    조회수 4612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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