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모두를 위해 필요한 배리어프리, 장벽을 넘어 모두를 위한 세상으로
안녕하세요. 2026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Hana입니다.
저는 비장애인으로서 계속 경기도와 수도권에서 생활하며 지냈는데, 관공서, 공원, 산, 바다 등 다양한 공간에 다녀가며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유아, 유모차에 탑승한 어린이, 노인, 젋은 휠체어 이용자 등) 특히 학교와 비교하면, 외부에서는 휠체어 이용자가 더 자주 보입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5년도 등록장애인 현황 통계>에서는 등록장애인의 수가 2,627,761명으로 2024년 기준인 2,631,356명보다 3,595명이 감소했으나, 2025년에도 여전히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5.1%라는 비율을 차지하는 만큼 절대 무시할 수 있는 비율이 아닙니다.
장애는 여러 유형으로 나뉩니다.
(1) 내부장애: 신장, 호흡기, 간 등 신체 기능에 장애가 있어 외관으로는 쉽게 알아보기 힘든 유형
(2) 정신장애: 비슷하게 외관으로는 크게 다른 점이 없지만, 자기조절, 신체 표현, 언어, 지적 능력 등이 불충분-불완전하여 적응하기 힘들어 행동 및 정서에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는 유형(지적장애, 자폐, 정신장애 등)
(3) 외부장애: 신체 기능에 장애가 있는 유형(시각, 청각, 뇌병변, 지체, 안면, 언어 등)
위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제도적인 보호를 받기 위해서 시-군-구에 엄격한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무분별한 등록을 막기 위해 시-군-구에 등록하는 절차는 불가피합니다만, 이러한 등록 절차가 낳는 폐해도 있습니다. 예시로 ‘3개월 이상의 투석 기록(신장 장애), 질환이 발생한 후에도 충분히 치료하였으나 장애가 고착화된 경우(6개월 또는 2년)’ 등의 기준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공백기가 생기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따라서 공백기에는 장애인 등록이 불가해 혜택을 받을 수 없으며 만약에 기준이 미달된다면, 장애가 있음에도 비장애인으로 등록되어 계속 지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까지 고려한다면, 통계 그 이상으로 더 많은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사회에서는 점차 배리어프리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배리어프리는 장애인,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물리적-심리적-제도적 장벽이 되는 요소를 없애는 모든 것을 의미하며 배리어프리 활성화 정책-사업을 실현하거나 경사로 설치 기준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배리어프리를 실천합니다. 지자체, 시민 단위의 활동부터 국가에서의 홍보 활동 등 여러 활동이 있다 보니, 배리어프리는 공익, 사회적경제 등에서도 자주 관심을 두는 주제입니다.
대표적으로 경사로,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이 덕분에 휠체어-유모차 이용자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오랫동안 걷거나 계단을 오르기 힘든 고령자, 화물 등을 고층까지 운반해야 하는 사람들까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취지는 장애인이 일상을 사는 데에 생기는 불편함을 개선하자는 의미였지만, 이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배리어프리의 목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PEOPLE/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지향하며 연령, 성별, 국적, 장애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제품, 건축, 서비스 등을 이용하고, 누릴 수 있게 합니다.

이번에 방문한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토당청소년수련관의 경우에는 공원 안에 시설이 있어 경사가 낮은 공원 입구에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갈 수 있고, 시설 내에도 경사로, 엘리베이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시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건물의 구조를 넓게 잡아둠으로써 배리어프리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배리어프리, 모두를 포용하기 위해 넘어야 할 한계점
배리어프리의 취지가 정말 좋지만, 아직 넘어야 할 한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오래전에 건설한 시설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건물의 구조를 변경하기 어려워 경사로 설치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배리어프리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한, 건물 구조의 한계로 경사로가 좁거나 경사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번째, 배리어프리는 지체·시각·청각·발달장애 등 다양한 장애 유형의 접근성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실제 논의와 정책은 경사로, 엘리베이터처럼 물리적 이동 장벽을 없애는 데 주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배리어프리 정책은 휠체어 사용자를 포함한 지체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이동편의시설 확충 중심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건복지부의 「2025년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등록장애인 262만 7,761명 가운데 지체장애인은 42.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청각장애인(17.1%), 시각장애인(9.3%), 지적장애인(9.0%), 뇌병변장애인(8.9%)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배리어프리 정책 역시 이처럼 다양한 장애 유형별 접근의 어려움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책과 사업이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수가 배리어프리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배리어프리가 단순히 경사로, 에스컬레이터 설치처럼 기존의 방법뿐만 아니라 그 외의 다양한 방법으로도 실현할 수 있기에 소수인 장애 유형을 생각하는 것도 정말 필요합니다.
실제로 지금의 배리어프리는 지체장애인들을 위한 시설(경사로, 엘리베이터 등)을 중심으로 설치-운영됩니다. 물론, 오래전부터 운영했던 시설에는 점자 건물 안내도도 일부 있고, 몇몇 미술관 및 박물관 등에서는 자막, 해설 등을 제공하지만, 보편적인 배리어프리 사례는 아닙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시-청각장애인을 포함한 몇몇 장애인들은 배리어프리를 체감하지 못하는 현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처음에는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이하 ‘HAFS’)가 2024년(18~20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교내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던 중, 버튼에 붙여진 점자가 반대로 설치되었던 충격적인 사실, 그리고 카페, 문화시설, 정류장 등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메뉴판, 팜플렛 등이 구비되지 않았던 점을 계기로 배리어프리 점자를 직접 설치하는 ‘Project Tob(Trail of Braille)’를 시작했습니다.
Project Tob의 꿈은 “즐겁게 여행하면서 세상을 바꾸자!”입니다.
또한, Project Tob 부원들은 유엔 공보국 협력 NGO인 <미래희망기구>의 제안으로 UN 출판 도서 및 장애인 권리 선언 등 6권의 책을 녹음하고, 국내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맹학교 중 한 곳에 전달했습니다.


2026년에는 Project Tob 2기(20~22기)가 시작됩니다.
2기를 맞이하며 “모두에게 배울 기회가 있는, 모두에게 즐길 기회가 있는, 모두에게 권리를 주장할 기회가 있는 배리어프리 사회(Barrier Free Socity)”를 목표로 활동을 더욱 활기차게 이어갔습니다.
먼저, 국내 최대 규모 시각장애인 복지센터(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센터) 산하 기관 <설리번학습지원센터>에 방문해 라벨점자도서 제작 교육(2026.3.)을 진행해 점자 역량을 강화했습니다. ㈜닷의 점자 닷패드를 사용하며 그림, 글자, 점자 버튼을 통해 비장애인의 문장, 단어가 점자로는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교육을 통해 역량을 강화한 후, 교내에서 펀드레이징(2026.3.)을 기획-진행해 활동 자금 약 1,200,000원을 모았습니다. 점자 키링/학교 굿즈 판매 및 시각장애인 체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교내 구성원인 청소년, 교사, 그 외의 근로자들에게 시각장애인 및 배리어프리에 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펀드레이징으로 확보한 금액은 점자 라벨도서 만들기 사업에 사용했습니다. 먼저, 기증받은 도서 30권을 한글로 타이핑하고, 한국점자인쇄라는 점자 인쇄 기업에 타이핑한 내용을 전달해 점자로 번역한 점자 라벨을 받았습니다. 점자 라벨은 Project ToB 부원들이 한번 검토한 후, 도서에 부착해 점자 도서를 완성했습니다.


완성한 점자 도서는 지난 7월 8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 기증했습니다. 점자 도서 1권당 약 20장 정도의 분량(전체 약 600장)의 도서를 기부했으며 실제로 도서를 읽을 유아-어린이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점자책으로 번역해 준비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실제 점자책은 책 위에다 점자를 부착한 모습이었으며 제목, 내용마다 꼼꼼하게 부착해 시각장애인도 동화를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이후,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전문가(사회복지사 등)를 만나 시각장애인이 직접 겪는 점자, 불편함 등에 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어 관련 체험 활동을 진행했는데요. 바로 ‘[2차 시도] 목소리가 빛이 되는 순간(Guide)’입니다.
이 활동은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주는 동행자 및 당사자 체험 활동으로, 한 명이 안대를 쓰고, 파트너가 가이드가 되어 구체적인 말로만 안내하는 활동입니다.
비장애인의 경우에는 거리에 관한 개념을 어느 정도 인지하기 쉽지만, 실제 시각장애인은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기 쉽지 않아 걸음걸이, 보폭 등으로 짐작하여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동행하는 사람을 붙잡고 이동하는 경우가 꽤 있으며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이 겪는 불편함을 체감해보고, 시각장애인의 삶에 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과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점자도서관에 방문해 기부한 도서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과 점자책에 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사회복지사의 말에 따르면, 안대와 지팡이를 짚는 시각장애인의 이야기, 시각장애인을 위한 센서 제품들(보행 보조기기, 스마트 안경 등)이 사람들의 움직임만으로도 감지되어 센서가 울리는/오류가 많은 애로사항, 시각장애인이 생활할 때는 보조인 및 자신의 감각에 의지하는 현실, 전자책을 읽을 때에 온라인에서는 줌으로 소통하고, 보호자(부모님, 그중 주로 엄마)가 대독을 도와준다는 점, 점자를 읽는 시각장애인들도 맞춤법에 상당히 예민하다는 경험 등 궁금할 만한 경험들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HAFS Project Tob 부원들은 점자책을 만드는 기간이 6개월(점역 프로그램 1차 변환 후, 점역사 및 교정사의 소리 내어 읽는 과정)이 걸린다는 점, 그래프나 그림을 만드는 과정(점자 프린터로 출력 후, 점을 하나씩 수작업으로 추가해 입체적으로 제작), 후천적 시각장애인을 기준으로 꾸준한 교육 시에 점자 활용까지 약 1년/장인처럼 읽으려면 약 4~5년이 걸린다는 점 등 다양한 질문을 통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술, 경험이 어떤 상황인지를 상세하게 배웠습니다.
작은 관심에서 시작해 배리어프리로 세상을 배운 Tob 프로젝트!

1)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황은서 A: 안녕하세요!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HAFS’) 국제계열 3학년(20기)이자 ToB에서 2년 차로 함께하고 있는 황은서입니다. Tob는 처음에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우리의 활동이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의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에 많은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사회에 보이지 않는 베리어들을 없애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지안 A: 안녕하세요!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 국제계열 3학년(20기) 이지안입니다. 저는 사회의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데 관심이 많아 이를 계기로 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Tob 활동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겪는 학습의 사각지대를 이해하고, 이를 해소하는 데 작게나마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반수은 A: 안녕하세요,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 국제계열 3학년(20기) 반수은입니다. 뇌과학 관련 진로를 희망하고 있으며 작년부터 Project ToB 멤버로 활동해 왔습니다.
2) Project Tob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Tob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HAFS 인권문화제 부스에서의 체험이었습니다. 안대를 쓰고 학교 복도를 걸어보았는데,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공간들이 시각장애인에게는 커다란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문제 해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주변의 작은 문제부터 찾아보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학교 주변 카페들의 메뉴판이었습니다. 실제로 점자 메뉴판을 갖춘 카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휴대용 점자 인쇄기로 점자 라벨을 제작해 메뉴판에 부착한 뒤, 이를 카페들에 무료로 보급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활동의 영향력을 넓힐 방법을 고민하다가 시각장애인의 자립에는 어릴 때부터의 점자 교육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교내 펀드레이징 및 점자도서 제작 활동으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3) 이번 기증에서 겪은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A: 점자책 기증을 준비하며 가장 많았던 에피소드는 바로 점자 라벨 붙이기에서 나왔습니다. 라벨을 잘못 자르거나 잘못 붙이거나 혹은 라벨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몇 페이지들은 직접 볼로기로 일일이 뽑아서 하기도 했습니다. ㅎㅎ) 그 때문에 여러 번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여러 번 확인해야만 했었고, 오탈자가 있으면 고치는 과정을 수없이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에겐 사소한 실수가 이 책을 읽을 시각장애인 분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라는 가장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을 직접 방문해서 시각장애인분들이 점역된 책을 사용해 공부하는 법을 배웠는데, 복잡한 그래프와 긴 글, 심지어 사진들까지 점자로 만지며 배울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복지관 관계자분들께 점자의 인식과 현실에 대해 여쭤보며 다음 방향성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ToB가 시각장애인분들께 직접 한발 다가갈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4) 청소년으로서 배리어프리에 관심을 두고, 알아가려는 노력이 왜 필요할지, 그리고 경기도 청소년이 배리어프리에 관심을 두고, 알아가면 생기게 될 긍정적인 변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배리어프리는 “모두가 결계 없이 함께하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사회에 이제 막 들어가는 과정을 겪고 사회에 대해 올바르게 적응해야 하는 시기인 청소년기야말로 배리어프리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할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리어프리 자체가 ‘장애는 특별한 소수기 때문에 도와줘야 한다.’라는 일차원적인 생각뿐만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제가 다양한 이들에게는 어떻게 인식이 될지 아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기에서는 학교-사회에서 정식적으로 체험하고 배우는 과정이기에 이런 상황을 점차 겪을 수 있고 배리어프리를 미리 알게 된다면, 사회에 불편을 겪는 자들을 도울 수 있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배리어프리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주위에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을 깨닫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고 동아리원들도 직접 사회에서 배리어프리가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배리어프리에 관심을 가지면 이렇게 작은 실천이 누적되어 사회의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5) 향후 활동 계획, 목표가 궁금합니다!

A: 동화책 점역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교내 2차 펀드레이징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굿즈, 점자 키링 등을 제작해 판매하며 재료비를 마련할 계획이며 저희가 동화책 30권을 기부한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외에도 시각장애를 가진 초등학생이 쉽고 재밌게 점자를 학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도서를 점역하여 기부할 예정입니다.
또한, 시각장애인의 학습 격차 개선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이어갈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수학 학습을 위한 교재를 제작하고,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다양한 문화와 진로 등을 묻는 인터뷰 프로젝트를 계획 중입니다.
시각장애인에게 학습 시 겪는 불편과 어려움을 묻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나가며 “점자로 시작하는 시각장애인의 학습 격차 해소”라는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배리어프리는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수혜자)들이 직접 체감하여 의견을 제기하면, 이를 정부 및 지자체에서 반영하는 모습이 자주 보여왔습니다. 즉, 당사자의 목소리와 의견을 거치며 배리어프리는 이용자의 편의를 수용할 수 있게 변화해왔던 것입니다. 이동 약자의 막힘없는 이동(배리어프리)을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인 <계단뿌셔클럽>, 장애인의 여행을 위한 여러 단체 및 기업들(무빙트립, (사)그린라이트 등)처럼 장애인의 다양한 수요에 맞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간격을 좁히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 넓게 본다면, 일자리, 보조기기 등 생활 전반으로 확대하는 기술-제도적인 변화도 포함됩니다.)
한편, 이를 뒷받침할 법제화 및 의무화도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장애인의 권리를 역으로 침해하거나 불편함을 끼치는 사례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도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소상공인의 사정을 듣지도 않고, 무작정 도입하려고 하니, 정책 실현 과정에서 마찰이 생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목적은 근린시설의 배리어프리 확대였지만, 반발이 심했다는 뉴스가 있었고,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아서 반기지 않았던 정책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정책과 실제 현장에서 실현되는 배리어프리의 실효성을 위해 현장을 확인하고,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해 당사자들이 만족하는 배리어프리가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에디터 역시 배리어프리에 관심을 두고, 현장에서 상시로 점검하는 사람으로서 청소년들이 배리어프리 활성화를 위해 생각했었고, 경사로, 엘리베이터 등 배리어프리 시설이 많지만, 여전히 불편함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지역에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배리어프리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었습니다.
지금도 지자체, 정부, 단체, 기업에서 여러 방법으로 배리어프리를 활성화하는 움직임이 보이지만, 그중에서 향후 자라날 청소년들의 활동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배리어프리를 실천하는 모습이 더 와닿았던 것만 같습니다.
무엇보다 점자 동화책 발간, 캠페인 등의 활동을 통해 학교, 점자도서관 기부까지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공익 활동에서는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는 과정, 실행력이 정말 중요하다.”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HAFS 청소년들이 시작한 Project Tob는 시각장애인 배리어프리를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청소년들이 다른 장애 유형을 위한 배리어프리 활동을 시작한다면,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에 한층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배리어프리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상황을 체감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게 성장할 수 있었으면, 그리고 배리어프리가 지역으로 확대되어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경기도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청소년들의 배리어프리 활동이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 https://test.kbuwel.or.kr/Braille
- https://nise.go.kr/onmam/front/M0000155/agency/list.do
- https://youtu.be/YrWWIXkrGFE?si=mhb-9KBjdd2jViez
- https://www.043w.or.kr/www/contents.do?key=151
- https://barrierfreefilms.or.kr/board_hrgp25/679
- https://blog.naver.com/ggsic/223294444290
- https://www.nrc.go.kr/portal/html/content.do?depth=td&menu_cd=04_01_02
- https://www.nrc.go.kr/portal/html/content.do?depth=td&menu_cd=04_01_01
- https://www.nrc.go.kr/portal/html/content.do?depth=td&menu_cd=04_01_03
-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3883
-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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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7※「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뉴스레터 필진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필자의 의견과 관점이 담길 수 있으며 일부 내용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명절 아침의 도시는 조금 낯설다. 골목의 셔터는 많이 내려와 있지만 도시 전체가 잠든 것은 아니다. 새벽 첫차는 역을 떠나고, 고속도로 전광판에는 정체 구간이 뜬다. 구급차는 신호를 가르며 달리고, 요양시설의 주방에서는 아침밥이 올라간다. 공항의 출국장은 일찍부터 붐비고 호텔의 세탁실과 음식점 주방에는 불이 켜진다.
우리는 이 풍경 속에서 쉬고 있고 누군가는 그 풍경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거나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떠난다. 휴게소에서 밥을 먹고 늦은 밤에는 택시를 부른다. 식사 준비가 힘들면 배달앱을 열고, 집을 비울 때는 반려동물을 돌봐줄 사람을 찾는다. 차가 멈추면 보험회사에 전화하고 갑자기 아프면 연휴에도 문을 여는 병원을 검색한다. 이 모든 편리함 뒤에 명절에도 일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명절 노동을 공익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일하는 사람을 가엾게 여기자는 뜻이 아니다. ‘고생하십니다’라는 인사에 머물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계속되어야 할 노동이 무엇인지 함께 살피고, 그 일을 맡은 사람에게 안전과 휴식,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는지를 묻는 일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결국 시민의 생명과 안전, 서비스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일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길 위에는 먼저 출근한 사람들이 있다.
한 가족이 이른 아침 열차에 오른다. 기관사는 앞을 살피고 관제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열차의 움직임을 통제한다. 역무원은 승객을안내한다. 시민이 잠든 밤 차량과 선로, 신호 설비를 점검한 정비 노동자와 객차를 청소한 사람의 손길도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노동일수록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철도가 닿지 않는 곳에서는 버스와 택시가 사람을 이어준다. 자가용을 이용해도 혼자 길을 만든 것은 아니다. 도로관리 노동자는 사고와 낙하물에 대응하고, 톨게이트 노동자는 하이패스 오류를 처리한다. 휴게소에서는 조리·판매·청소 노동자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맞는다. 사고가 나면 경찰과 소방·구급대원이 출동한다.
차량이 고장 났을 때 전화를 받는 상담사, 갓길로 달려가는 긴급출동 기사, 견인 노동자도 있다. ‘조금만 빨리 와 달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만 이들이 서 있는 갓길은 2차 사고 위험이 큰 일터다. 재촉하지 않는 몇 분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한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시간이 된다.
명절 교통 대책은 증편 횟수와 정체시간뿐 아니라 그 이동을 만드는 사람의 노동도 살펴야 한다. 운행을 늘릴 때 인력도 함께 늘리고, 교통정체로 운전 시간이 길어져도 식사와 휴게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명절에 일한 사람에게는 정당한 보상과 대체 휴식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휴가는 누군가의 성수기다
공항에서는 발권·보안·수하물·정비·청소 노동이 맞물려 움직인다. 호텔에서는 프런트 직원이 문의를 처리하는 동안 객실 정비 노동자가 짧은 시간 안에 침구를 바꾸고 욕실을 청소한다. 음식점에서는 조리와 서빙, 설거지가 동시에 바빠지고 문화시설에서는 안내·보안·시설관리·청소 노동자가 관람객의 하루를 지킨다.
지연과 결항, 객실 준비와 음식점 대기, 예약 오류가 생기면 해결 권한이 없는 현장 직원과 상담사가 고객의 분노를 먼저 받아낸다. 여행을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안전을 위한 지연을 받아들이고, 기다릴 시간을 조금 넉넉히 잡고, 눈앞의 노동자에게 폭언하지 않는 여행을 하자는 것이다. 기업도 성수기 인력과 순환 휴식, 폭언 고객 응대를 중단시킬 권리와 대체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돌봄에는 휴일이 없지만, 사람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명절날 요양시설에도 아침 햇살이 든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이 몸을 일으키도록 돕고 식사와 약을 챙긴다. 장애인 거주시설과 공동생활 가정, 방문요양, 장애인 활동지원, 아이돌봄 서비스도 이용자의 생활에 따라 계속 된다.
명절은 누군가에게 더 외로운 날이다. 찾아오는 가족이 없는 시설 거주자, 혼자 사는 고령자, 익숙한 지원이 끊기면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있다. 이들에게 돌봄은 호의가 아니라 권리다.
동시에 돌봄 노동자도 가족과 명절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다. 이용자의 권리를 노동자의 끝없는 희생으로 지킬 수는 없다. 충분한 인력과 순환근무, 휴일 보상과 대체 휴식이 있어야 두 사람의 권리가 함께 지켜진다.
지역단체와 자원봉사자는 혼자 지내는 이웃에게 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다. 영국 일부 지역의 크리스마스 공동식사와 방문 활동처럼, 한 끼보다 오래 남는 것은 ‘당신을 잊지 않았다’ 는 관계다. 다만 자원봉사가 전문적인 돌봄과 상담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봉사는 이웃을 발견해 공공서비스로 연결하는 활동이어야 하며, 봉사자에게도 교육과 보험, 적정한 활동시간과 휴식이 필요하다.

반려동물과 명절 식탁에서 발견하는 노동
여행을 떠난 집에는 펫시터가 들어와 사료와 물을 채우고 건강과 행동을 살핀다. 반려동물 호텔과 동물병원, 유기 동물 보호시설도 명절 동안 운영된다. 반려동물 돌봄은 먹이를 주는 단순 서비스가 아니라 생명 상태를 관찰하고 질병과 사고에 대응하는 노동이다. 그러나 소규모 업체와 플랫폼·프리랜서가 많아 이동시간과 야간 돌봄의 보상, 사고 책임과 보험이 불분명한 경우가 있다. 적정 수용 기준과 표준 계약, 교육·보험체계를 갖추어야 하며 소비자도 미리 안전한 돌봄 환경을 확인하고 준비해야 한다.
집 안에도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다. 명절 식탁은 장보기, 재료 손질, 조리, 상차림, 설거지와 청소, 아이와 부모 돌봄을 거쳐 만들어진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가계생산 위성계정에 따르면 국내 무급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약 582조 원으로 추산했다. 여성의 1인당 가사노동 가치는 여전히 남성의 약 2.7배였다.
‘도와준다’는 말에는 원래 담당자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장보기부터 설거지까지 필요한 일을 가족이 함께 나누고 음식의 종류와 양을 줄이면 명절은 한 사람의 수고가 아니라 모두가 만든 시간이 된다. 외식과 배달로 가사 노동을 줄일 때도 한 사람의 휴식이 음식점 노동자와 라이더의 과로로 옮겨가지 않도록 주문을 재촉하지 않고 지연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명절 선물을 미리 주문해 물량을 분산하는 일도 작은 공익적 실천이다.
편리함 뒤의 사람을 발견하는 공익
같은 역사와 병원, 고속도로와 복지시설에서 일해도 공공기관 직원과 자회사·용역 노동자, 기간제·단시간 노동자, 플랫폼·프리랜서의 보호 수준은 다를 수 있다. 공익의 시선은 노동의 가치를 회사 이름과 계약 형태로 차별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노동자의 휴식은 노동자만의 이익이 아니다. 충분히 쉰 운전자는 승객을 안전하게 데려가고, 적정 인력으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이용자를 더 세심하게 돌본다. 출동 기사의 충분한 작업시간은 2차 사고를 막고, 객실정비 노동자의 적정 작업시간은 이용자의 위생 안전으로 돌아온다.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시민이 받는 서비스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공익이다.

서로의 명절을 지키는 공익활동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임금과 근무표를 직접 정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던 노동을 시민의 언어로 드러내고 노동자·시민단체·노동단체·기업·지방정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시민기록자가 교통·안전·돌봄·관광·외식·배송 등 현장을 찾아 ‘명절을 만드는 사람들’을 기록하면 어떨까? 힘든 사연뿐 아니라 무엇이 바뀌면 안전하게 일하고 쉴 수 있는지를 묻고, 그 답을 온라인 명절 노동 지도와 사진전, 시민 대화로 이어가는 것이다.
‘서로의 명절을 지키는 시민 약속’도 만들 수 있다. 명절 안부 인사와 선물, 명절준비 물품을 미리 보내고 천천히 받기, 안전을 위한 기다림 받아들이기, 현장 직원에게 폭언하지 않기, 음식과 돌봄을 함께 나누기, 혼자인 이웃에게 안부 묻기 같은 약속이다.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노동시간과 안전에 연결되어 있음을 함께 배우는 활동이다.
시민의 배려가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 캠페인이 지방정부·공공기관·기업·플랫폼·노동단체·공익단체가 적정 인력, 휴일 보상과 대체휴식, 감정노동 보호와 공통 안전기준을 약속하고 이행을 점검하는 ‘명절 노동·휴식 지역협약’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모두의 명절은 서로의 휴식에서 시작된다
밤이 깊어져도 응급실과 소방서, 철도 관제실과 복지시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심야버스와 택시는 늦게 도착한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고 누군가는 호텔의 다음 아침을 준비한다. 오늘 일한 사람도 다른 어느 날에는 가족과 웃으며 쉴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명절은 아무도 일하지 않는 날만을 뜻하지 않는다. 생명과 안전, 이동과 돌봄을 위해 계속되어야 할 일이 있다. 그 일을 특정한 사람의 희생에 맡기지 않고 공정하게 나누고 보상하며 충분한 회복과 휴식을 돌려주어야 한다.
공익은 당연하게 누린 편리함 뒤의 사람을 발견하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지금 누가 나의 하루를 지켜주고 있을까? 그 사람의 안전과 휴식은 누가 지켜주고 있을까?’ 시민과 기업,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답할 때 명절은 쉬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 모두가 존중받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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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5※「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화요일 저녁 7시, 스페이스오즈에서
화요일 저녁이면 스페이스오즈의 불이 켜진다. 퇴근한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는다. 누구는 가방을 무릎에 올려둔 채, 누구는 아직 다 식지 않은 커피를 들고.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풍경이, 사실은 10년이 걸려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 8,799명의 서명, 그리고 조례 한 장
2017년, 안산 시민 8,799명이 서명을 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조례 하나를 스스로 만들겠다고, 59개 단체와 400여 명이 손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결과로 남은 건 '4.16정신 계승 및 도시비전 실천 조례'라는, 다소 딱딱한 이름의 문서 한 장. 하지만 그 문서 뒤에는 이런 질문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질문은 곧 하나의 확신으로 자랐다. 안전은 운이 좋으면 지켜지는 행운이 아니다. 국가가 베푸는 시혜는 더더욱 아니다. 시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이 확신이야말로 4.16 안산시민대학이 서 있는 자리다. 그러니 이 대학이 시민들에게 건네려는 건 지식 이전에 태도다. 안전을 요구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좀처럼 배운 적 없는 태도.

3. 슬픔에서 시작해 넓어진 강의실
그 질문에서 4.16 안산시민대학이 태어났다. 지금은 벌써 5기째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같은 무거운 단어들만 다루던 강의실은 어느새 AI와 기후위기와 민주주의와 문학까지 끌어안는 자리로 넓어졌다. 안전이라는 게 사고 하나 막는 일이 아니라, 결국 우리가 사는 방식 전체와 맞닿아 있다는 걸 시민들 스스로 배워온 셈이다.
그 배움은 강의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노동 현장의 위험을 시민이 직접 살피는 모니터링, 여성과 장애인과 이주민의 일상까지 넓혀간 감시의 눈. 배운 사람이 다시 지키는 사람이 되는 순환. 시민대학이 정말로 의도한 건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시민을 행동하는 주체로 세우는 자리.
4. 그런데 왜, 아는 사람들만 올까
솔직히 말하면 아쉬운 지점이 있다. 강의실을 채우는 얼굴들이 대체로 낯익다.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해온 분들, 이미 안산의 아픔을 오래 통과해온 분들. 정작 이 강의가 가닿아야 할 '보통의 시민'들은 좀처럼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퇴근하고 나서까지 무거운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루치의 피로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무거운데. 하지만 그 무거움을 피해가면, 정작 그 이야기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영영 닿지 못한다. 시민대학이 진짜 넓히고 싶었던 건 강의 주제만이 아니라, 이 문턱을 넘는 사람들의 폭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했다.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건네는 방법은 없을까.

5. 소설 이야기만 하는 강의
8월 18일, 5기의 문을 연 사람은 김애란 작가였다. 강연 제목은 「소설의 음계, 삶의 사계」. 세월호 이야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사계와 음계, 평범한 일상과 시간, 성장과 상실과 애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과 세상을 쉽게 단정하지 않고, 떨림과 망설임 속에서 계속 살피고 이해하려는 태도. 그게 강연 내내 흘렀다.
삶이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난 뒤에도, 사람들은 서로의 숨소리를 듣고 자신의 숨을 보태며 살아간다. 그 말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4.16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을 것이다. 결국 이것도 같은 이야기라는 걸. 무장하지 않은 채로 슬쩍 들어와, 마음 한켠에 무언가를 놓고 가는 강의. 시민대학이 앞으로 더 많이 시도해야 할 방식은 아마 이런 것일 테다.
6. 다음 화요일, 그리고 그다음
다음 순서는 김혜정 지속가능발전연구센터 대표다. '3대 메가프로젝트'라는, 언뜻 딱딱해 보이는 제목으로 기술의 발전이 우리 삶에 던지는 질문을 다룬다. 이 역시 시민대학이라는 간판을 굳이 앞세우지 않는다. 그저 지금 우리 삶과 맞닿은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을 뿐이다.
문학으로 열고, 기술로 잇는다. 그 사이 어딘가에 안전과 생명이라는 말이 조용히 놓여 있다.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시민대학은 그렇게 스며들 준비를 하고 있다.

7. 결국 남는 건 사람
시민대학이 안산 시민들에게 주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지식이라면 책 한 권으로도 충분하다. 이곳이 진짜로 주는 건, 화요일 저녁마다 낯선 얼굴들과 나란히 앉아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경험. 그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우리'라는 말이 조금 더 넓어진다. 그리고 그 넓어진 '우리'가,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든 서로를 먼저 챙기는 도시를 만든다.
10년 전 안산은 슬픔의 도시라 불렸다. 지금의 안산은 그 슬픔을 배움으로, 배움을 다시 일상의 안전으로 옮겨 심고 있는 도시다.
김애란 작가의 문장처럼, 삶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살아간다. 다음 화요일, 스페이스오즈의 불은 또 켜질 것이다. 이번엔 조금 더 낯선 얼굴들이 섞여 앉아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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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4※「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노조’ 하면 왜 남성 노동자를 떠올렸지?
인터뷰가 계속될수록 내 안에 올라오는 질문이었다. 8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 여공으로 일하다 TC전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조위원장이 된 사람.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안산과 서울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 서울지부장을 역임한 사람.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연장근로 수당 2.5배 쟁취하고, 서울 초등돌봄전담사 4시간 시간제 노동자들의 차별 시정 소송을 대법원 승소로 이끈 사람. 김정임 님은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여성 노동운동의 ‘역사’였다.

Q 역대급 폭염에 건강하게 활동하며 일하는 일상이 궁금하다.
현재 요양보호사로 주 5일 일하고 있다. 요즘 퇴근길에 더워서 서점에 들른다. 책 보며 마음을 식히다가 선선할 때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공원 산책하며 운동한다. 한 달에 한 번 수지 에니어그램 강사 모임에 참여하고, 줌(Zoom)을 통해 화상으로 스님과 책을 읽는다. 인사동에서 써클댄스도 추고 친구와 만나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도 부른다. 8월에는 딸과 사위들 생일에 부모님 제사까지 집안 행사로 바쁘지만 아주 즐겁게 보내고 있다.
Q 요양보호사로 좀 멀리 출퇴근한다고 들었다.
영등포에서 마곡으로 출근한다. 돌보는 어르신은 69세 파킨슨병으로 요양 등급 2급이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식탁과 의자를 깨끗이 닦는다. 파킨슨병 환자는 거동이 불편해 음식을 자꾸 흘리기 때문이다. 나는 식사 수발하고, 목욕시키고, 빨래 청소 음식 조리까지 한다. 가끔 휠체어로 공원산책도 하고 같이 장도 보고, 수명산 도서관에서 큰 글자 유아용 책을 빌려와 읽어드리거나 색칠 공부, 누워서 하는 요가 동작도 함께 한다.
왕복 출퇴근 시간만 2시간 넘지만, 서로가 잘 맞아 정성으로 마주하고 있다. 예전에 안산에서 서울로 경기도 전역으로 하루 4시간 출퇴근하며 활동하던 경험이 쌓여서 힘든 줄 모르고 한다. 한 달에 120만~150만원 4대 보험 빼면 빠듯한데, 큰 빚 없이 자립해서 감사하다.
Q 강사로 활동한다는 수지에니어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소개한다면?
'수지에니어그램'은 180장의 카드를 가슴과 양팔에 붙였다가 떼어가며 내가 누구인지, 나답게 사는 게 뭔지 ‘참 나를 찾는’ 프로그램이다. 수산나(수지) 선생님이 대안학교 청소녀들을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시작했는데 전국에 10개 센터와 해외에 2개센터를 두고 있다. 나는 9번 유형인데,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넓은 품과 조용한 힘이 있는 유형’이다. 나를 제대로 알면 나다운 삶을 살게 된다. 2018년부터 지인들에게 성당, 학교, 상담실과 집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하였고 일하는여성아카데미 교육위원으로 강의해 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부담 없이 수지에니어그램을 하는 게 꿈이다.


Q 청년 시절 마산수출자유지역 노동자로 들어갔고, 그 지역에서 노동 운동한 걸로 안다.
나는 거제도 출신이고 1남 5녀 중 셋째 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당연히 대학에 갈 줄 알고 모범생으로 공부했는데, 어머니가 강하게 반대했다. 남동생을 대학 보내야 한다는 이유였다. 울며 싸우다 결국 대학을 포기했다. 인문계 졸업하고 대학 안 가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동네 친구를 따라 공장에 취업하러 마산으로 갔다.
“고등학교까지 시켜놨더니 왜 공장에 가냐.”
내가 공장 간다니까 어머니는 울고불고 말리다가 쌀 한 되박을 싸서 보내주셨다.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있는 일본계 전자 회사에 들어가 도장 날인 작업을 했다. 나중에는 임금과 환경이 훨씬 좋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 ‘TC 전자’로 이직해 본격적인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Q 공장 생활 중 삶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고 했다. ‘아욱실리움 기숙사’와 ‘가톨릭여성회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가톨릭고등학교에 다닌 인연으로 살레시오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들어가 공장에 다녔다. 거긴 수녀님들과 함께 매일 새벽미사를 하였고, 1980년 광주 항쟁 비디오도 거기서 처음 볼 수 있었다. 가톨릭 여성회관에서 이경숙 선생님이 진행하는 ‘여성교실’ 강좌를 들었는데, 내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온 성차별,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공순이'라 불리며 받아온 차별이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알게 된 계기였다.
Q 그러다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7~9월 전국적으로 분출한 노동자들의 노동쟁의와 민주화운동) 당시 하루가 다르게 옆 공장들은 노조를 만드는데 우리 회사만 노조가 없었다. 어느 날 과장이 나를 불렀고, 현장분위기가 시끌시끌하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자 조회대 앞에 모아 놓고, 조용히 시키라며 나한테 마이크를 주었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여러분 어떻게 할까요? 일할까요? 나갈까요?” 뜻밖에도 모두 “나가자!”“나가자!”소리쳤다. 순식간에 1,500명이 넘는 여공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임금 인상하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회사는 목요일부터 4일간 휴업을 선포했고 우리들은 분임장 60명이 모여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모여 밤새워 노조를 결성하였다, 월요일 노조 결성보고를 홍보하러 갔다가 회사 간부들에게 잡혀가 빨갱이라는 욕을 먹고 노조 간부였던 친구 2명과 함께 대구새마을연수 보내졌다. 2주후 회사로 복귀하니 60여명을 모아 놓고 노조강제 해산을 하게 했다. 그리고 기술과와 설비과로 부서이동을 당하였다. 온갖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1988년 5월 비밀리에 여성 동지들과 노조를 재창립했다.

Q 노조를 와해하려는 구사대의 폭력이 대단했을 텐데 어떻게 계속 싸울 수 있었나.
노조를 재창립하자 회사는 남자 구사대(救社隊, 노동운동 파괴를 목적으로 회사측이 만든 노동자 조직) 300명을 동원해 무자비한 폭행을 저질렀다. 온몸이 멍들고 집단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소식이 창원 지역 남성 노동자들에게 전해지면서 지역 전체의 투쟁으로 번졌고, 결국 회사로부터 노조 인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위장 폐업을 시도했고, 우리는 기계 출고를 막으며 1년 가까이 공장 점거 투쟁을 해야 했다. 198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전원 연행되었고, 나는 ‘업무방해 및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마산교도소와 원주교도소 독방에서 꼬박 실형을 살고 1991년 5월에 출소했다.
Q 감옥 생활은 어땠나? 감옥에 가기 전과 후를 비교해 달라.
내가 감옥에 가기 전 농성장에서 동지들과 농성장 사수팀과 재정팀으로 다양한 재정사업을 했다. 볼펜 판매 양말 판매 대학축제 때 김치전 판매도 하고, 서울 본사 대사관 부산 영사관등을 다녔다. 교도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독서와 편지쓰기였다. 원주교도소 독방에 홀로 수감되어 너무 외롭고 힘들 때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답장으로 마음을 나누었고, 출소하는 날 원주교도소 정문으로 그와 TC동지들이 대형 버스로 꽃다발과 두부를 들고 찾아왔다. 그도 나처럼 구속된 경험이 있어 노동자의 삶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것 같다. 그 후 1992년에 우리는 결혼했고 두 딸을 낳았다.
Q 경남의 여성 노동 활동가가 어떻게 안산시민이 되었나?
2003년 남편이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서 나를 올라오라 했다. 나는 마산창원 여성노동자회에서 일하며 지역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안산여노 회장과 남편이 먼저 만나 아파트 전세를 얻으니 나도 아이들과 함께 이사와서 다음 날부터 안산여성노동자회로 출근했다. 여성 노동자복지센터와 고용평등상담실을 맡았다. 한부모자녀들과 체험학습 등, 실업계고등학교 노동법·최저임금 내 권리찾기 등 강의활동과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 강사 활동을 하였다.
특히 직장 내 갑질과 최저임금 위반으로 힘들어하던 청소 노동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를 노동부 진정으로 처벌받게 하고, 출산·육아휴직 상담, 홈플러스 매대 노동자 상담으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를 노조 조합원으로 연결했다. 한양대 안산캠퍼스 청소미화원 조합원들과는 풍물과 민요를 함께 배우고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Q 그러다 안산을 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과 서울지부장이 된 건가.
안산시흥지부, 부천지부. 영양사지회. 사서지회가 주춧돌이 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를 창립하였고 나는 안산여노 고용평등상담실 일과 안산시흥지부장를 겸하다 경기지부 조직국장이 되었다. 이후 경기지부장이 되었다. 안산 한양대 청소미화원 조직과 안산 지역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처우개선 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중식·석식으로 하루 4시간 넘게 연장근로를 하는데 학교는 2시간만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연장근로’ 근로기준법이 바뀌는 시점이었다. 조리원들은 억울해하며 어떻게 하면 일한 만큼 댓가를 받을 수 있는지 상담해 왔다. 공동교섭을 요구했으나 경기도 교육청은 사업주가 아니라며 교섭에 임할 수 없다고 했다.
1년 가까이 고등학교를 돌며 교섭을 벌인 결과 연장근로 수당을 1.5배가 아닌 2.5배로 받는 단체협약을 타결해 냈다. 또한 서울지부장 시절에는 시간제 돌봄전담사들을 조직하여 4시간 시간제 초등돌봄전담사들의 차별 시정 투쟁을 시작하여 지노위 중노위 지법 고법 대법원까지 가서 차별 시정 판정을 받았고 그동안 차별 받았던 것을 보상받았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억울하면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급식 조리원들도 초등돌봄전담사들도 똘똘 뭉쳐 싸운 결과다. 유능한 김재진 노무사님과 공감 변호사님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연대해 준 덕분이다.

Q 안산여성노동자회에서의 활동과 연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안산여노에서 근무할 때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이 주 업무였다. 직장 내에서 여성노동자가 받는 성차별과 불합리한 차별에 대한 상담전화를 받고 무료 변호사를 선임하여 행위자인 상사가 처벌받고 억울한 노동자가 제 자리로 돌아갈 때 행복했다.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이 삭감되니 퇴사했다. 그래도 한 달 한 번 ‘뚜뚜(뚜벅뚜벅 걷기)’ 소모임 회원들과 함께 걷고 여행한다. 늘 일에 쫓기고 바빴지만, 페미니즘 토론토임 ‘이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줌이라 퇴근 후 할 수 있어 좋다. 무디어지기 쉬운 여성 노동과 성평등 이슈를 다양한 연령의 남녀가 함께 책과 영화로 토론한다.

Q 평생 여성 노동운동을 해왔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싸워왔는데, 중년에 가장 저임금 돌봄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이런 여성의 노동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20대 때는 공장에서 ‘산업역군’이라며 착취당하고, 30~40대에는 IMF를 거치며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는데, 60이 된 지금도 최저임금 수준의 돌봄 노동자다. 그동안 대학원도 나오고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등 자격증을 땄지만 중년 여성노동은 여전히 단시간·저임금 비정규직이다. 급식, 청소, 돌봄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노동임에도 적정임금도 정당한 대우도 거리가 멀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며 그렇게 싸웠는데 딸 세대마저 2년 계약직을 전전하는 걸 볼 땐 마음이 아팠다.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걸 경험했는데, 세상은 여전히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요즘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평정심을 찾으려 한다.
Q 현재 삶에 어려움, 또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말해 달라.
남편과의 관계가 숙제로 남아 있다. 동지적으로 잘 살 줄 알았는데 그는 지금 나 말고 다른 곳이 좋다고 멀리 떠나 산다. 내가 오래 가슴에 품어온 버킷리스트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10월에 16박 17일로 친구들과 함께 다녀오게 됐다. 그리고 곧 태어날 첫 손주 만날 날을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할 때 가장 당당하고 에너지 넘쳤던 것처럼, ‘수지 에니어그램’이라는 좋은 도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활동을 마음껏 펼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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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3※「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잘 나가던 은행원이 ‘현모양처’ 꿈을 안고 결혼했다. 남편의 잇따른 사업 실패와 채무, 도박으로 결혼생활은 18년 만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생계형 한부모 여성노동자는 닥치는대로 일했다. 식당 아줌마, 공장 노동자, 국민건강보험 전화상담사를 거쳐 지금도 비정규직 일자리로 먹고산다. “이혼 10년을 살아내니 내 삶에 눈이 뜨였다”라 고백하는 이문옥 님을 소개한다.
여성에게 일과 가정이란 무엇인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들어보자.
Q 현재 행정복지센터 비정규직 직원이다. 맡은 일이 무엇인가?
안산시의 7개월짜리 계약직 ‘디딤돌’ 일자리로 행정복지센터에서 일상생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독거 어르신들을 방문해 안부와 일상의 문제들을 돕고, 사무실에선 행정 보조도 한다. 3월부터 시작했으니 어느새 6개월째다. 안산에서 두 딸을 키우며 쉬지 않고 일해온 30년 차 ‘일하는 엄마’다. 최근 몇 년은 계약직으로 일하고, 끝나면 또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일을 찾아서 일한다. 며칠 전 국세청 홈택스에 들어갔다가 체납관리단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해 뒀다.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일자리라 내 조건에 맞더라.

Q 1996년까진 일 잘하는 여성 은행원이었다. 좋은 보수의 일자리를 버리고 서울에서 안산으로 오게 된 계기는 결혼이었나?
결혼을 앞두고 은행에서 퇴사해야 했다. 당시 내 월급이 200만 원이 넘었다. 여상 졸업하고 입사해서 2년 만에 주임 달고, 3년 만에 계장 달 만큼 진급도 빨랐다. 하지만 은행 일이라는 게 현금을 직접 다루고, 매일 마감 시간에 맞춰 정산하니까 항상 팽팽한 긴장 속에 살았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라는 중압감에 시달리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위장병으로 병원 가기 일쑤였다.
<고용보험법>도 없던 시절이라 여성은 결혼하면 퇴사하는 게 규정이었다. 언니들 중엔 비밀리에 결혼하고 쉬쉬하며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8년 경력자로 과장 시험을 앞두고 결혼 날짜가 잡혔다. 그때는 ‘현모양처’가 되는 게 여자의 행복인 줄 알았다. 모아놓은 돈으로 신랑을 도왔다.

Q 낯선 안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는데, 현모양처 할만하던가?
주산 부기 타자 학원 선생 소개로 그의 동생을 만났다. 선생을 믿고 만났는데, 막상 보니 결혼 준비에 대책이 없더라. 5남매의 막내지만 집에서 도움이 없었다. 첫 단추부터 싸했지만 ‘내가 참고 노력하면 되겠지!’ 하고 내 돈을 꿔주며 결혼했다. 안산에서 남편이 빵 배달 대리점을 시작했다. 100% 현금거래라 저녁마다 현금을 셀 땐 금방 돈을 벌 것처럼 보였다.
총판으로 사업을 넓히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사업 자금이 부족하니까 내 돈 천만 원에, 8년 부은 국민연금 환급금까지 다 깨서 대줘야 했다. 하지만 그는 밤마다 도박과 게임에 빠져들더라. 현금이 줄고, 거래처 미수금이 쌓이는데, 확인해 보면 이미 돈을 당겨쓰고 날려버린 상태더라. 내 명의로 은행 대출, 보험약관 대출, 사채와 카드까지 메꾸다가 결국 마지막 벼랑에 몰리더라.
Q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빚더미에 이혼이라니, 쉬운 결정 아니었을 거 같다.
2012년부터 내가 이혼을 요구했지만 2014년에야 끝났다. 결정적인 계기는 우리 큰애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한부모 가정’이며 저소득층 자녀장학금과 급식비 지원 안내문을 보냈다. 내가 딱 깨달았다. ‘아, 내가 남편 울타리를 못 버리면 빚에 쫓기다가 아이들의 미래까지 망치겠구나.’ 서류상으로라도 깨끗하게 정리해야 애들 공부를 시키겠더라.
남편은 서류 정리를 안 해주려 버텼다. 내가 “법원에 가서 서류 사인만 해주면 우리 생활엔 아무 변화 없게 해주겠다”, 설득했다. 법원 상담관한테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 처리해 주는 게 맞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서명하더라. 4주간의 숙려기간 후 서류가 정리되던 날, 서운함이나 슬픔은 1%도 없었다. ‘아, 이제 드디어 이 지옥 같은 늪에서 벗어났구나!’ 엄청난 해방감만 느꼈다.

Q 애 둘 딸린 이혼녀로서 새출발할 때, 마음이 여유가 없었을 거 같다.
애 둘 데리고 나와서 바로 동사무소에 찾아갔다. “내가 애 둘이랑 살길이 뭐냐?” 물었더니 LH 임대주택을 가르쳐 주더라. 바로 신청했는데 떨어졌다. 다른 조건은 다 똑같은데 ‘청약저축’이 없어서 가점을 못 받았다더라. 기가 막히고 서러워서 직원한테 그랬다. “청약저축에 넣을 돈 있었으면 애들 생활비에 다 보탰지, 이런 게 있는 줄 알고도 안 넣었겠냐.”
그길로 은행으로 달려가 “청약저축 제일 적게 넣는 금액이 얼마냐?” 물었다. 매달 2만 원씩 차곡차곡 부었다. 1년 남짓 지나 다시 LH 공고가 떴다. 아이 둘 손잡고 임대주택 후보지를 직접 둘러본 후, 교통과 편의시설이 좋은 중앙동으로 정했다. 마침내 당첨 통보를 받고 집 문을 열었을 때,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한부모로 기초생활수급 주거 급여 대상이 되었다.
Q 한부모 여성 가장으로서 생계를 홀로 책임지며 걸어온 길에 박수를 보낸다. 노동자로서 해온 일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노동의 역사를 약술해 보자.
홀로서기 본격 시작은 식당 아줌마였다. 아는 동생이 쌈밥집을 열며 도와달라 했다. 남들은 10분 만에 하는 쪽파 한 단을 나는 눈물 흘리며 2시간 다듬었다. 하루 12시간 노동하고 한달 150만 원, 눈물이 나더라. 1년 하니 온몸이 만신창이로 골병이 들었다.
핸드폰 부품 공장에서 3년 가까이 일했다. 시급 4,860원을 받으며 주야간 잔업에 주말 특근까지, 어떨 땐 24시간 근무로 뼈가 부서져라 일했다. 일이 끊기면 용역 과장한테 주말 알바를 받아내고, 큰애까지 알바를 시켰다. 요양보호사 교육원을 거쳐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원을 하다, 비정규직 병원동행 매니저, 일상생활 매니저까지 이어 왔다.

Q 국민건강보험 상담 일은 어떻게 하게 됐나? 일하던 중, 100일 만에 1,000명의 조합원을 모아 노동조합을 세우고 역사를 쓴 비밀이 뭐였나?
국민건강보험 상담원으로 들어가니, 간접고용 용역업체 구조가 참 야속했다. 1년마다 용역이 바뀌면 퇴직금을 정산해 버려서 경력이 다 끊기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제대로 없는 열악한 조건이었다. “용역업체 중간 착취 말고 공단에서 직접 고용해라. 우리도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속에서 끓어올랐다.
2019년에 뜻있는 동료들과 결의하고, 100일 동안 비밀 작전으로 조합원을 모았다. 10주 만에 1,000명의 조합원을 조직해 창립총회를 열었다. 대의원 선거로 내가 부위원장이 되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지만 사측과의 충돌은 심했다. 조합원들의 단결과 투쟁으로 휴가와 생리휴가를 자유롭게 쓰고, 눈치 안 보고 화장실 갈 수 있는 기본권리를 쟁취해 냈다. 동료들이 나를 두고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조의 역사적 인물”이라 불러줄 때, 보람을 느꼈다.
Q 노조활동을 통해 안산여성노동자회로 연결된 건가? 여성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을 거 같다.
처음엔 ‘노동조합’의 ‘노’자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일할 때 팩스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안내문이 들어왔길래, 강의 들으러 간 게 안산여성노동자회와의 첫 인연이었다. 교육 후 수강생들과 후속 모임으로 책 모임을 만들고,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토론한 게, 지금 10년 차 페미니즘 토론모임 ‘이프’의 시작이었다.
여성노동자회 활동을 통해 세상과 노동을 보는 눈이 180도 달라졌다. “내가 겪는 부조리와 차별이 내 개인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2023년부터 안산여성노동자회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여성들이 존엄하고 평등하게 일하는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탠다.
특히 안산여성노동자회 회원 소모임 '뚜뚜(뚜벅뚜벅 걷기)'의 모임지기로서 한달에 한번 회원들과 함께 뚜벅뚜벅 걷고 여행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

Q 한부모 여성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전남편과의 관계는 깨끗이 정리됐다. 그러나 이혼 후 홀로서기로 힘들 때 일로 연결되어 오랫동안 마음 쓰던 인연이 있었다. 나는 그의 일을 봐주고 그는 경제적으로 나를 좀 도와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가 자기 맘대로 전화해서 내게 요구하고 자기 말만 하는 등 이기적인 태도를 보였다. 예전의 나라면 속 끓이며 끌려다녔을 텐데, 아주 단호하게 선을 긋고 관계를 정리했다.
남의 기분이나 사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주도권을 딱 쥐고 나니, 가슴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더라. 타인이나 부모, 자식이나 남편에게 의지하려 했던 마음을 완전히 털어내고, 내 힘으로 바로 서는 것이 진짜 해방이고 자립이라는 것을 배웠다.
Q 박봉의 일용직·계약직 노동을 전전하면서도 마침내 여성노동운동에 헌신하기까지, 살아온 과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문옥 님만의 노동과 삶의 철학이 있다면?
비록 내가 매달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사글세 걱정하며 사는 것도 아니다. 은행원 시절부터 몸에 밴 절제된 생활 습관이 있어서 헛돈을 쓰지 않으니까, 적은 수입으로도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가끔 생각한다. 은행 입사 동기 남자들은 퇴직하기까지 은행원인데 여직원은 왜 퇴사하게 했을까? 나는 왜 지금까지 계약직을 전전할까? 이게 바로 사회 구조적인 불평등이더라.
그럼에도 내 손으로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해서 두 딸을 키워낸 건 내 자부심이다. 얼마 전 알고 지내던 70대 언니가 사기를 당해 힘들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형편도 박봉이지만 푹푹 찌는 더운 날 시원한 음식이라도 한 그릇 사드시라고 10만 원을 송금했다.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적지만 힘든 이웃에게 베풀 수 있게 마음이 넉넉해진 게 감사하고 뿌듯했다.
Q 엄마로서, 딸들과의 관계도 궁금하다. 험난했던 노동과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 두 딸에게 지금 전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가?
두 딸은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보석이자 버팀목이다. 빚더미 속에서 이혼하고, 식당에서 공장에서 고생하는 걸 본 아이들이라선지 참 바르게 자라주었다. 한때 둘째 아이와 오해가 생기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무렵 둘이 떠난 대부도 여행을 잊을 수 없다. “엄마가 먹고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버텨온 시간”을 전했을 때 아이가 “엄마 고생 많이 했구나 몰랐어”라며 이해해 주었다.
아이들에겐 늘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지만, 당당하게 일하고 불의에 맞서 노조로 싸운 엄마를 본 게 아이들에게 ‘어떤 역경이 와도 스스로 일어서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Q “이혼 후 10년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내 삶에 눈이 열렸다”라고 했다. 여성의 삶에서 참 의미있는 말이다. 앞으로 꿈꾸는 삶과도 연결된 말로 들린다.
결혼생활 후반 10년간 결혼의 문제를 처절히 인식했다. 이혼 후 홀로서기 10년을 버텨내며,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열렸다. 전에는 부모나 남편을 의지했고 아이들을 중심으로 살았다. ‘현모양처’말고, ‘이문옥’ 자체가 삶의 주인이 되었다. 그 누구를 의지하거나 매이지 않게 되었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점점 너그러워지고 연대하게 됐다.
큰 욕심은 없다. 적십자 봉사회(고잔1 봉사회), 안산-유기농먹거리와 건강개선지원사업 반찬도시락 참여, 노란리본 희곡산책 낭독극에 참여하며, 프롭테라피와 줌바 댄스도 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며 봉사하고 연대하며 살고 싶다. 내 힘으로 일해 내 삶을 책임지며, 이웃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 노동자 이문옥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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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청소년인권공동체 세움 활동가 이계은 님을 만났다.
이계은 활동가는 대학생 시절 학보사에서 글을 썼다. 어느 날, 시민단체인 부천연대 활동가가 찾아왔다. 청소년 언론학교를 준비하는데 이 활동가가 대학 신문기자로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해주길 요청했다. 비청소년인 이계은 활동가 삶에서 청소년을 만날 첫 계기였다. 이계은 활동가는 ‘포로리’라는 별명으로 청소년을 만났다. 포로리는 청소년을 만나며 자신의 꿀꿀했던 청소년 시절을 회고하기 시작했다.

포로리는 ‘부천청소년IT기자단 놀토’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청소년들과 함께 ‘부천시청소년인권공동체 세움’을 창립했다.
포로리는 청소년 시절, 삶은 불안정했고 그 불안을 해석할 자기 언어가 없었다. 학교 교사나, 부모, 사회가 규정하는 청소년의 모습만 둥둥 떠다녔다. 그건 지금 청소년들도 비슷하다. 그래서 부천시청소년인권공동체 세움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자기 언어를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비청소년이 먼저 청소년 이야기를 듣는다. “원래 그래”, “그럴 때야, 괜찮아”라며 이야기를 허투루 넘기지 않고 귀하게 듣는다. 청소년은 말하고 또 말하면서 자기 삶을 자기 언어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기 언어를 가진 세움 청소년들과 비청소년들은 작년에 영화 상영회를 열었다. 11월 3일 학생의날을 기념하며 부천노동영화제에서 한 꼭지로 ‘3학년 2학기’를 상영했다. 상영 후에는 세움 청소년들이 자기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 행사를 진행했다. 포로리는 “청소년은 주인공이 되기 위해 거쳐 가는 시기로 여겨지지만, 토크 행사에서는 그들이 주인공이었고 그들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타인에게 들려주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선 여러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 행사를 알리고 장소를 섭외하고 음향과 각종 기기를 만진다. 그런 노력은 보통 유명하거나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이 행사는 달랐다. 유명하지 않은, 입시를 준비하거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준비해 가는 청소년들이 무대 주인공이 되어 발언권과 관객의 집중을 독점했다. 그것은 관객으로 온 청소년과 비청소년, 그리고 무대에 서 있는 청소년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기존 사회가 청소년에게 부여하는 위치성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변화의 씨앗이었다.
세움에 회원이 늘 북적북적했던 것만은 아니다. 7년 전에는 입시제도의 변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점점 모이지 않게 되었다. 입시제도의 변화 측면에서는 학교 밖에서 하는 활동(자원봉사 등)이 입시에 쓸모없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청소년들은 세움을 찾아오지 않았고 양육자 또한 내 자녀가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세움에 가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새로운 회원들이 등장하지 않았고, 기존 회원들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포로리는 청소년이 다양한 경험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입시제도에서 그런 다양성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세움은 밥 모임을 시작했다. 청소년과 만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었다. 밥을 짓고 먹으면서 포로리는 생각했다. 청소년이 자기 힘을 가지려면 사회와 어른으로부터 어떤 정성과 힘을 받아야 하는데, 밥을 주는 것도, 그런 에너지를 주는 방법이다. 그래서 포로리는 더 열심히 밥을 차려 함께 먹었다. 지금은 밥을 같이 차려 먹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공동체 활동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밥은 주문해서 먹는다. 지금 세움은 카메라로 소통하는 사진 모임을 하고 있고, 글로 소통하는 언론학교를 시작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포로리와 함께 걸어온 ‘부천청소년인권공동체 세움’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세움을 지켜온 포로리는 이계은이라는 사람의 일부일 뿐이다. 활동가라는 타이틀 하나로 다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이계은 님은 삶의 여러 자리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깊이 있게 쌓아왔다.
이계은 님은 본인을 ‘책을 출간했으며 육아를 전담하는 불안정 노동자이자 활자 중독자’로 소개한다. 두 아이를 키우고, 노동인권 강사이며, 자기 언어로 난임 경험을 써 내려간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계은 님은 노동인권을 청소년에게 가르친다. 청소년이 듣고 싶은 수업을 하기 위해 청소년의 언어를 공부하고, 청소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 청소년 대상으로 강의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잘 소통하고 싶은 청소년과 교육 현장에서도 계속 만날 수 있기에 덕업일치인 셈이다.

또한, 난임을 당사자의 언어이자 페미니즘 시각으로 바라보는 에세이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를 출간했다. 이계은 님에게 난임은 삶에서 몸도 마음도 고된 시간이었다. 임신 성공 수기 말고는 난임 당사자의 서러움이나 고통에 관해 참고할 텍스트는 너무 적어서 더 외로웠다. 그 어려움을 풀기 위해 익명성을 두고 블로그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아이를 출산했지만, 난임 시기에 본인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들과 대답, 이런저런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공적인 목소리로 표현하고 싶었다. 난임 시절에 외로웠던 나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
활동가이자 양육자이고, 작가이자 강사라는 여러 역할을 소화하는 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이계은 님은 그것을 ‘숨구멍이자 변명거리’라고 표현했다. 양육자로서 자기 욕구와 아이들의 필요가 갈등하고 협상하며 큰 중압감을 느낄 때, 작가 이계은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숨구멍을 가진다. 활동가로서 자기 자신에게 기대하는 성취나 성과를 이룰 수 없을 거라는 꿀꿀한 기분이 들 때면 두 아이의 양육자 이계은이 변명거리가 되어준다.

이계은 님은 여러 역할로 벅찰 때 ‘내가 활동가이자 양육자로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과연 내가 쓸 자기 언어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서로 시간을 내어달라며 역할끼리 충돌하지만, 그 역할들이 서로 보완과 성장의 기제로 작동한다. 더 나아가 작가 혹은 읽는 사람으로서 부족한 시간임에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으니까 더 읽고 싶고 더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다층적인 정체성을 가지고서 자기 삶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의 글을 더 찾아서 읽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직장인이면서 작가였던 조지 오웰,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 글을 쓴 박완서의 글처럼 말이다. 이계은 님 또한, 활동가로서 여러 모습의 맥락을 가지고 조율하면서 협상하면서 자신을 완성하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이계은 님에게 앞으로의 꿈에 대해 질문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동지를 만나고 싶다. 좋은 관계를 만난다면 뭐든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활동가로서 대답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곧, 지금 하는 것들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말이 뒤따랐다. 갈등하면서도, 숨구멍이 되고, 성장을 촉구하는 역할들, 그 자체가 이계은 님의 자기 언어였다.
이계은 님은 여러 정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협상하며 자신만의 언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단 하나의 직함이나 역할로 정의되지 않는 삶, 그 어지럽고도 치열한 과정 자체가 자기 언어를 만드는 여정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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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3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년 7월 13일 월요일 오후,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교육장에는 시민추진위원회 위원들이 모여 앉았다. 'AN전도시에 SAN다' 시민추진위원회 전체회의였다. 이날 가장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은 순서는 특별강연이었다. 강연 제목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강사로는 국회생명안전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용혜인 국회의원이 나섰다.
올해 5월 7일,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으로부터 꼭 12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이 글은 그날 강연에서 짚어준 법의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에디터가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함께 담아 정리한 기록이다.
솔직히 말하면, 강연을 들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안도감보다는 무게감이었다. 법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반가웠지만, "이제 다 됐다"는 홀가분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채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재난안전기본법에는 '피해자'가 없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만들어지기 전, 우리나라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 가장 먼저 작동하던 법은 재난안전기본법이었다. 그런데 이 법에는 애초에 '피해자'라는 규정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국가가 재난을 어떻게 대응하고 관리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짜인 법이다 보니, 국가와 각 부처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만 규정하고 있을 뿐 피해자의 관점은 반영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국가는 자체적인 조사와 수습만 진행했을 뿐, 피해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대형 참사의 피해자들은 회복과 치유의 과정을 거치기는커녕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거리에서 한겨울 혹한에 잠을 자야 했다. 심지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이 '반정부 세력'으로 매도되는 일까지 있었다.
이 대목에서 에디터로서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뉴스로 스치듯 봤던 유가족들의 모습, 삭발식, 단식 농성. 그때는 그저 안타까운 뉴스 한 줄이었는데, 그것이 '법에 피해자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구조적인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걸 이번 강연을 통해 처음으로 또렷하게 이해하게 됐다.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제도의 공백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생명안전기본법이 갖는 네 가지 의미

이날 강연에서는 생명안전기본법이 갖는 의미를 크게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국민의 안전권을 법률로 명시함으로써 헌법적 기본권을 확장했다는 점.
둘째, 그동안 흩어져 있던 재난안전 관련 법체계의 상위에 서는 기본법이 만들어졌다는 점.
셋째, 참사 때마다 반복해서 제기됐던 예방 미흡·부실 조사·피해자 방치라는 문제를 해소할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
넷째,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조사를 실질화하고 상설화했다는 점. 강연에서는 이 네 번째 대목을 "법의 심장 같은 부분"이라고 표현했다.
네 가지를 순서대로 듣다 보니, 결국 이 법의 뼈대는 '권리'와 '체계'와 '반복 방지'와 '독립성', 이 네 단어로 요약되는 것 같았다. 법 조문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 네 가지로 정리해 들으니 왜 이 법이 필요했는지가 한결 선명해졌다.
1. 헌법적 기본법의 확장 - 안전을 '권리'로
생명안전기본법 4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등에 관계없이, 일상생활과 노동현장 등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 안전이 권리로써 명문화된 것이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는 이 조항의 주어를 두고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국민'이 아니라 '사람'으로 규정해야 실질적이라는 반대 의견이 있었고, 결국 이번 법에서는 '국민'으로 정리됐다. 대신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 별도로 담겼다.
이 부분을 들으며 에디터로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태원 참사와 화성 아리셀 참사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겪었던 차별적 대응을 이미 우리는 목격한 바 있다. '모든 국민'에서 '모든 사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은, 이 법이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 자라야 할 법이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이 권리는 피해자에게는 더욱 구체적으로 확장된다. 신속하게 구조받을 권리, 예방부터 복구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고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고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시신을 인도적으로 인계받을 권리, 생활·의료·심리 지원을 받을 권리, 조사에 참여할 권리, 그리고 기억하고 추모할 권리. 그동안 피해자들이 스스로 짊어져야 했던 부담감을 이제는 국가가 보장해야 할 권리로 바꿔놓은 것이다.
2. 상위 기본법 제정 - 흩어진 법체계의 뼈대를 세우다
두 번째 의미인 '법체계의 상위 기본법'은, 그동안 재난안전 관련 법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이를 하나로 꿸 설계도가 없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생명안전기본법은 바로 그 설계도 역할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이다.
이 뼈대를 실제로 움직이는 장치로는 대통령 소속의 국민생명안전위원회, 그리고 5년마다 국가가 수립해야 하는 생명안전종합계획이 소개됐다. 안전 정책 전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두는 동시에, 흩어져 있던 정책과 예산, 교육을 하나로 모아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3. 반복된 문제를 풀 근거 — 안전영향평가와 알 권리

세 번째 의미인 '반복되는 문제 해소'는 크게 두 가지 제도로 구체화된다.
하나는 안전영향평가다. 정부와 지자체가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사업을 추진할 때, 그것이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분석·평가하도록 하는 제도다. 새로운 규제를 풀거나 사업을 벌일 때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지 않도록 하는 예방장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의 알 권리 보장이다. 앞으로 피해자들은 조사 결과와 판결문, 사고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 유해 물질 정보까지 요청할 수 있고, 요청받은 국가나 기업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응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성분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감춰졌던 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둘러싼 문서 목록 하나 공개되기까지 12년이 걸렸던 일이 그 배경으로 언급됐다.
이 대목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보를 '요청해서 받아내는 것'과 '당연히 받는 것' 사이에는 결과만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피해자가 감당해야 했던 시간과 싸움의 무게가 있다. 이 법이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국가 쪽으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변화라고 느꼈다.
4. 독립조사기구, 법의 '심장'
네 번째 의미인 독립조사의 실질화·상설화는 국무총리 산하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 설치로 구체화됐다. 사고 조사, 정책 개선 권고, 그리고 권고 이행 여부 점검까지 이 위원회가 맡는다.
조사기구를 상설화하고 민간 출신 상임위원을 확보하는 것이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가장 첨예했던 쟁점이었다고 한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그때그때 조사위원회를 새로 꾸리면, 매번 처음부터 사람을 모으고 자료를 다시 모으느라 조사가 지연되고, 결국 조사위원의 전문성과 연속성이 이어지지 않아 '셀프 조사' 비판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동안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겪었던 한계였다.
여기에 더해 조사가 끝난 뒤 권고사항이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조항도 새로 담겼다. 어렵게 조사하고 권고안을 만들어도 이행 여부를 아무도 확인하지 않으면 그 노력과 시간이 무의미해진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또 하나 눈에 띈 조항은 지역과 추모, 공동체 회복에 관한 내용이다. 추모시설 조성이나 기록 사업 등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도록 명시한 것인데, 그동안 정부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회복'이라는 영역이 국가의 의무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느꼈다.
12년, 발의와 폐기를 거듭한 시간
법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공동발의로 힘을 모았지만, 이번에도 국회 안에서 순탄하게 논의가 진전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결국 국회 안에서 스스로 길을 연 것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앞두고 유가족과 시민들이 다시 목소리를 낸 것이 계기가 되어 4월 29일 법안소위를 통과하고 5월 7일 본회의에서 최종 가결됐다.
12년이라는 시간은 강연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교 5, 6학년이 될 만큼의 시간"이라고 표현됐다. 이 표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법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아이가 그만큼 자랄 시간이 걸렸다는 것,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이번 법 통과로 유가족분들이 조금은 위안을 받으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 위안이 12년의 기다림에 비하면 너무 늦게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법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법이 통과된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 강연 내내 반복됐다. 실제로 남은 과제는 적지 않다.
첫째는 시행령 제정이다. 피해자의 범위, 조사위원회 구성, 안전사고의 정의처럼 법의 실제 알맹이를 결정할 핵심 내용들이 대통령령에 위임돼 있다. 방향에 대한 의견은 주고받았지만, 실제 시행령이 어떻게 나올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둘째는 안전약자의 범위 확대다. 청소년이나 미등록 외국인처럼 더 취약한 사람들까지 폭넓게 포괄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이 다듬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셋째는 통합 컨트롤타워 문제다. 분산된 재난 조사를 한데 모아 결과와 사후 대책까지 통으로 점검하는 역할을 이번 법에 담고 싶었지만, 다른 부처들의 반발로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고 앞으로의 개정 과제로 남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들으며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법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연자 스스로 숨기지 않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12년 만에 어렵게 만든 법이니만큼 앞으로 더 탄탄하게 다듬어가야 한다는 과제가, 오히려 이 법이 살아있는 법이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무대는 이제 지역, 안산이 먼저다
법은 국가 전체를 규율하는 법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작동하려면 지역의 조례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리고 그 무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으로 안산이 꼽혔다.
사업을 추진할 때 피해자와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담겼다. 곧 조성될 4·16생명안전공원, 그리고 안전도시 시민추진위원회가 앞으로 만들어갈 추모·회복 사업들이 이 법의 지원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안산시 실정에 맞는 조례를 연구해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법과 조례가 있어도 이를 운영할 주체가 없으면 그저 종이에 적힌 글씨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왔다. 지역에서 안전 거버넌스를 세우고 시민들의 안전 역량을 키우는 일이 중요한 과제이며, 안산에서는 이미 시민추진위원회가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 대목에서 에디터로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법과 시행령은 국회와 정부의 몫이지만, 그 법을 지역에서 실제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 몫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져 이 법이 세상에 나온 만큼, 안산에서 먼저 이 법이 잘 시행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질의응답 — 시행령 일정과 예산, 그리고 남은 쟁점

시행령은 언제쯤 완성되나. 시행령 제정 기한을 정한 조항이 있는지, 언제쯤 완성된 법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법이 지난 5월 공포되었고 심사 과정에서 시행령의 방향까지 함께 논의했지만 강연 시점까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나온 시행령안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사위원회 구성에 시민사회 몫이 있나. 특정 참사를 다루는 한시적 조사기구라면 피해자 대표 추천 몫을 두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조사기구는 상설로 운영되는 성격이라 추천 대상을 특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재난안전 분야에서 활동해온 시민사회와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인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예산은 충분히 확보될 수 있나. 상설 조사기구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일반회계에서 편성되는 것이라 확보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는 답이 나왔다.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세월호 참사 12주기 이전 제정을 요청했던 이유 중 하나도 각 부처의 예산 편성 시점과 맞물려 있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중대재해처벌법과의 관계는.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이미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생명안전기본법이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사례를 짚어가며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질문들을 듣고 있자니,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단순히 강연을 '듣는' 입장이 아니라 이미 이 법을 '어떻게 써먹을지'를 고민하는 입장이라는 게 느껴졌다. 시행령, 예산, 안전약자 범위처럼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질문들이 이어졌다는 것 자체가, 안산이 이 법을 그저 뉴스로 흘려보내지 않고 있다는 증거로 보였다.
나오며 — 에디터의 생각
강연을 들으며 내내 든 생각은, 12년 만에 만들어진 법인 만큼 앞으로 잘 만들어지고 잘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법 제정으로 유가족분들은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으셨을 테지만, 정작 시행령을 채우고 지역 조례로 구체화하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가 더 크게 남아 있다는 느낌이 강연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 결실을 맺은 법인 만큼, 앞으로는 더 탄탄한 법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이 법이 통과되기까지 유가족과 시민사회, 그리고 국회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졌다는 것을 이번 강연을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안산에서 먼저 이 법이 잘 시행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법은 국회가 만들었지만, 그 법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은 결국 지역에서, 우리 손으로 해나가야 할 몫이다. 이번 시민추진위원회 전체회의가 그 시작점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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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1※「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담벼락을 넘는 일요일

나는 '월담'이라는 이름을 그저 예쁜 은유쯤으로 생각했다. 담을 넘는다, 라니. 시적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그 이름의 내력을 알고 나면 은유는 사라지고 구체적인 얼굴이 남는다.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은 2013년,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권리찾기 모임'이라는 긴 이름으로 시작했다. 모임이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얻은 건 2021년 10월이다. 8년이 걸렸다. 그 사이 이름은 짧아졌지만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담을 넘는다는 건, 공장과 공단 사이에 놓인 담벼락 하나를 넘는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개별 사업장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지역의 노동자들이 함께 서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반월·시화공단은 자동차 부품과 휴대전화 부품을 만드는 작은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다. 전국에서 불법 파견과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곳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많은데 목소리는 작다. 사업장이 작을수록 노조를 만들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월담은 그 작음을 이유로 아무도 지켜주지 않던 자리에 들어가, 5인 미만 사업장 차별 철폐를 외치고, 원·하청의 사슬을 공론화하고, 안산과 시흥에 사는 노동자라면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노동권 공부 모임을 꾸려왔다. 임금 협상만 하는 조직이 아니라, 인권이 지켜지는 동네를 만들겠다는 조직이라는 말은 그래서 과장이 아니다.

-. 일요일에만 열리는 문
안산역 동측 공영주차장, 월담노조 사무실 안이었다. 그 안에 새로운 문 하나가 생겼다. 안산시흥이주노동자상담소, 2026년 5월 17일에 문을 연 곳이다.
안산과 시흥에는 16만 명이 넘는 이주민이 산다. 반월·시화공단은 이들의 노동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구조다. 그런데도 많은 이주노동자는 언어 장벽과 불안정한 비자, 정보 부족 속에서 인권을 침해당한다. 실제로 공단 노동자의 55.74%가 인권 침해를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상담소는 이 숫자를 뒤에 두고 만들어진 공간이다.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월담노조, 이주노조, 경기이주평등연대가 뜻을 모았다.
이 상담소가 다정한 이유는 문을 여는 시간에 있다. 평일 오후에는 아무도 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만 문을 연다. 그 세 시간 안에 노무사가 임금 체불과 산업재해와 부당해고를 상담하고, 변호사가 민형사상의 어려움을 듣고, 행정사가 체류 자격과 비자 문제를 함께 들여다본다. 홍보물은 14개 언어로 만들어졌다. 서울예대 노학연대모임 '불나비'의 학생들과 지역 시민들이 자원 활동가로 앉아 상담 기록을 돕는다. 거창한 말이 필요 없는 구조다. 그저 문을 열어놓고, 올 수 있는 시간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기다리는 것. 다정함도 이렇게 시스템으로 설계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 문 앞에서 새삼 생각했다.

-. 광장의 손팻말들
2026년 5월 17일, 상담소 개소식보다 먼저, 광장에서는 집회가 있었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주최한 migrant workers' rally였다.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라, 강제노동을 철폐하라,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마이크를 타고 광장에 퍼졌다.
각국의 노동자들이 돌아가며 연대사를 했다. 발음은 저마다 달랐지만 문장의 결은 비슷했다. 어떤 이의 손에는 사진이 들려 있었다. 오물이 넘치는 이동식 화장실, 안전 장비없이 일하는 작업환경, 창문도 없는 비닐하우스 기숙사 방 사진이었다. 이동식 화장싱의 오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람도 있었다. 손팻말의 문장은 짧았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 짧아서 오히려 무거운 문장들이었다.

이 요구가 왜 이렇게 절박한지는, 상담소가 다뤘던 사례 하나를 알면 이해가 빨라진다. 개소식 후 바로 이루어진 첫 상담은 한 캄보디아 노동자가 회사 기숙사로 배달된 법원 서류를 제때 전달받지 못했다. 서류는 한국어로만 쓰여 있었다.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정식 재판을 청구할 기회조차 놓쳤고, 하마터면 강제 출국 위기까지 갈 뻔했다. 상담소는 정식재판 청구권을 되살리는 절차를 도왔다. 월담노조와 상담소는 이 문제를 개인의 불운으로 남겨두지 않고, 대법원 앞 기자회견을 통해 '약식명령서 모국어 번역 의무화'를 요구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광장의 손팻말과 상담소의 서류 한 장은, 알고 보면 같은 싸움의 다른 얼굴이었다.


-. 담을 넘은 후에
리본을 당기는 순간의 박수는 크지 않았다. 대단한 세리머니도 없었다. 그러나 그 작은 문 너머에 노무사와 변호사와 행정사가 앉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팻말의 문장들과 숫자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55.74퍼센트, 16만 명, 14개 언어, 일요일 오후 세 시간. 숫자는 차갑지만, 그 뒤에 놓인 얼굴들은 뜨거웠다. 월담(越牆)이라는 이름의 노조는 이제 공장 담벼락뿐 아니라 언어의 담, 제도의 담, 무관심의 담까지 넘으려 하고 있다.
거리는 다시 평소의 얼굴로 돌아갔다. 베트남 식당에서는 여전히 고수 냄새가 났고, 사람들은 각자의 걸음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안산역 동측 공영주차장 한켠, 상담소의 불은 다음 일요일에도 켜질 것이다. 조합원으로, 후원인으로, 통역 서포터즈로 이 담을 함께 넘을 사람이 있다면 그 불은 더 오래 켜져 있을 것이다. 담을 넘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니까.

월담노조와 이주노동자상담소는 차별의 벽 때문에 움츠러들었던 노동자들이 다시 어깨를 펴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작은 씨앗입니다. 일요일 오후, 안산역을 지나다 마주치는 이 따뜻한 공간에 여러분의 응원 한 자락을 더해 주시길 바랍니다.
안산시흥 이주노동자 상담소는
1. 문턱을 낮춘 ‘일요일’ 상담소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운영됩니다. 안산역 동측 공영주차장 내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매우 높습니다.
2. 전문가들의 무료 전문 상담소
단순한 조언을 넘어 실질적인 권리 구제를 위해 전문가들이 직접 나섭니다.
* 노동 상담: 임금 체불, 산업 재해, 부당 해고 등 (노무사)
* 생활 법률 상담: 민·형사상 법률적 어려움 (변호사)
* 비자(체류) 상담: 체류 자격 및 비자 문제 (행정사)
3. 다국어 지원 및 자원 활동처
14개국어로 된 홍보물을 제작하여 이주 커뮤니티에 상담소의 존재를 알리고 있으며, 서울예대 노학연대모임 ‘불나비’ 학생들과 지역 시민들이 자원 활동가로 참여하여 상담 기록과 운영을 돕고 있습니다.
상담소는 이주노동자가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우리 곁의 ‘사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합니다.

함께하는 방법
1. 조합원 가입: 공단의 변화를 위해 월담노조의 운영과 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습니다.
2. 후원인 참여: 월담노조와 상담소가 지속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세요.
3. 자원 활동: 언어별 ‘통역 서포터즈’나 상담 내역을 관리할 자원 활동가들의 손길이 절실합니다.
상담소 위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중앙대로 462 (안산역 동측 공영주차장 내 월담노조)
* 상담시간: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 5시
* 문의전화: 031-491-2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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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명과 이동의 불편 속에 살아가는 노령 참전 어르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조용한 방 안에서도 멈추지 않는 소리
“귀에서 계속 소리가 납니다.”
어르신은 창문을 닫고 잠시 말을 멈췄다.
주변은 조용했다.
하지만 어르신의 귀에는 조용하지 않았다.
‘삐—’
‘웅—’
누군가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진다.
밤에도,
식사할 때도,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도.
젊은 시절 전쟁터에서 들었던 폭음과 긴장 속의 시간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다.
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참전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념하고만 있는가.
살아남은 이후의 시간
전쟁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전장을 떠올린다.
그러나 전쟁은 총성과 함께 끝나지 않는다.
그 후의 삶으로 이어진다.
특히 고령의 참전 어르신들에게 남은 것은 훈장보다 더 긴 시간의 신체적 변화일 수 있다.
청력 저하,
이명,
관절 기능 저하,
보행 어려움,
만성 통증,
사회적 고립.
이 문제는 하나씩 따로 오지 않는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면 외출이 줄고,
외출이 줄면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고,
움직임이 줄면 건강이 더 악화된다.
이동권 문제는 결국 삶의 문제로 연결된다.

현장 메모
“병원 한 번 다녀오면 하루가 끝나요”
오전 8시 40분.
한 어르신이 집 문을 나선다.
천천히 계단 손잡이를 짚는다.
잠시 멈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숨을 고른다.
목적지는 병원이다.
왕복 이동시간 약 세 시간.
진료 시간은 10분 남짓.
하지만 어르신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진료가 아니라 이동이다.
버스 시간 확인.
승하차.
대기.
귀가.
하루 일정 대부분이 이동에 쓰인다.
그리고 다음 예약을 고민한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데 자꾸 밖에 나가기 어렵게 돼요.”
그 말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점점 좁아지는 생활반경을 의미했다.
오전 10시 17분, 11시17분
복지기관 셔틀을 기다리는 어르신.
“오늘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요.”
그 말 속에는 이동의 피로뿐 아니라 생활의 축소가 담겨 있었다.
복지는 있는데 닿지 않는 사람들
현재 다양한 복지서비스가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 이용률과 체감은 다르다.
왜일까.
첫째, 정보 접근의 어려움
둘째, 신청 과정의 복잡성
셋째, 이동의 부담
넷째, 도움 요청에 대한 심리적 부담
특히 고령층은 디지털 환경 변화 속에서 더욱 멀어진다.
앱 예약,
온라인 신청,
전자 안내.
제도가 있어도 닿지 못하면 복지가 아니다.
지역 복지 관계자가 말하는 현장의 과제
Q. 가장 필요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A. 서비스 확대보다 전달 방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복지가 아니라 찾아가는 복지가 되어야 합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가요.
A. 이동지원, 동행지원, 통합 안내, 방문 상담입니다. 특히 고령 보훈대상자는 건강·복지·교통이 함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공익적 해결은 가능한가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시도되고 있다.
문제는 규모와 지속성이다.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① 찾아가는 보훈·복지 통합서비스: 한 번 방문으로 건강 상담, 복지 안내, 생활 지원, 이동 상담까지 함께 연결.
② 이동권 지원 확대: 병원 동행 서비스, 생활 이동 차량, 예약 지원, 근거리 순환 이동체계 구축
③ 청각 건강 관리 체계: 정기 청력 확인, 이명 상담, 생활 적응 교육, 보청기·보조기기 접근 개선
④ 지역 안전망 구축: 통장, 주민, 복지관, 자원봉사, 병원을 연결하는 공동체 네트워크.
우리 동네가 실천할 수 있는 다섯 가지
□ 보훈 어르신 이동 동행단 운영
□ 세대공감 방문 인터뷰
□ 디지털 안내 지원
□ 건강·복지 통합상담
□ 생활 불편 신고 창구 확대
전쟁은 끝났지만 공동체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긴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질문받고 있다.
그분들이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무엇을 준비했는가.
보훈은 기억의 의식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다.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권리.
그 권리가 보장될 때,
비로소 감사는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때,
보훈은 과거를 기념하는 일이 아니게 된다.
현재를 책임지는 일이다.
현충일 추모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364일도 중요하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 병원을 갈 수 있는지,
혼자 생활하지 않는지,
필요한 정보를 받을 수 있는지.
그 질문이 보훈의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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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9※「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뉴스레터 필진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필자의 의견과 관점이 담길 수 있으며 일부 내용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제헌국회 개원식 후 일동 기념사진(출처_위키백과)
다시 쉬는 날이 된 7월 17일
7월 17일 제헌절은 헌법이 제정된 1948년 이듬해부터 국경일․공휴일이었다. 국경일(國慶日)은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는 날이니 헌법을 제정한 날이 빠질 수 없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은 1949년 10월 1일 제정되었다.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을 국경일로 삼았다. 2005년에 한글날이 추가되었다. 주 5일제 도입으로 2008년부터 제헌절과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올해부터 둘 다 다시 공휴일이다.
공휴일(公休日)은 국가에서 정하여 쉬는 날이다. 특별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니 각자가 원하는 대로 쉬면 된다. 설날이나 추석은 전통적으로 하는 의례가 있지만, 제헌절은 그렇지 않다. 어린이날엔 어린이를 위해 뭔가를 하면 좋지만, 그렇다고 그날만 어린이를 존중하고 아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버이날이 공휴일이 아니라고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공휴일로 정하는 일은 꼭 그날만이 아니라 늘 함께 그날의 의미를 새기자는 뜻이다. 제헌절에 ‘함께 쉼’(共休) 역시 평소에도 헌법의 의미를 생각하고 실천하자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이 되기까지 — 헌법의 눈으로 보면
먼저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이 되는 과정부터 헌법 관점에서 살피자. ‘공휴일에 관한 법률’은 국경일법과 달리 2021년 7월 7일에서야 제정되었다. 그 이전에 공휴일의 법적 근거는 법률이 아니라 1949년 6월 4일 제정된 이래 개정되었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으로서 대통령령이다. 엄밀하게는 모든 시민이 함께 쉬는 게 아니라 관공서가 쉬는 것이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하고(헌법 제40조),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을 정할 수 있다(헌법 제75조). 헌법 제정 이후 한참 동안 공휴일제도는 헌법에 부합하지 않았다. 공휴일인 제헌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헌법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까닭이다.
헌법은 시민의 법이다
대개의 법령은 시민의 생활을 규율 대상으로 한다. 즉, 시민은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 헌법은 다르다. 거의 모든 헌법 규정은 시민에게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에 의무를 지우는 내용이다. 국민의 기본 의무인 납세의 의무나 국방의 의무조차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는 헌법적 제한에 따라, 시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 부과가 전근대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법치주의에 따라 통제한다. 헌법은 제정 주체도 법률과는 다르다.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한다(헌법 제53조 참조). 헌법은 ‘대한 국민’이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헌법전문, 헌법 제130조 제2항). 헌법은 명실공히 국민의 법이고 시민의 법이다.
국민은 주권자로서(헌법 제1조 제2항) 하나의 의사를 가진 통일체이다. 시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을 의미한다. 기본권의 주체인 ‘모든 국민’은 시민을 말한다. 어찌 보면 모순이다. 시민의 생각은 다 다른데, 그 의사를 하나로 모아 하나의 국가 의사로 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순적인 시민과 국민을 이어주는 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직업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활동이고, 직업 정치인의 정치는 시민의 정치 활동을 전제로 한다. 시민의 참정권을 비롯하여 탄핵 제도는 다양한 헌법 제도는 시민의 대표를 시민이 통제하는 장치다. 국민은 개헌을 통해 민주주의 제도를 얼마든지 새로이 창설할 수 있다.
시민은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누리면서 공적인 이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존재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시민이라는 말은 시민의 공공적 성격을 강조하려고 ‘민주’를 덧붙인 것이다.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겼더니 모든 시민의 권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서 직접 민주제 또는 ‘협치’(거버넌스)를 통해 시민의 직접 결정 또는 참여가 필요하게 되었다.
함께 쉬어야 함께 결정할 수 있다
서구의 근대 입헌주의에서 피선거권은 물론 선거권도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먹고 사는 문제로 골몰하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만 돌볼 뿐 함께 살아가는 공적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오늘날 레저(leisure)는 취미 생활에 한정되는 느낌의 용어지만, 넓은 의미의 ‘쉼’은 생계 외에 사적 활동과 함께 공적 활동을 보장하는 전제 조건이다. 혼자 쉬지 않고 함께 쉬어야 함께 결정해야 할 일을 상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헌헌법이 품은 공익의 정신
제헌헌법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라는 제5조가 눈에 띈다. 공공복리(公共福利)는 지금 헌법 제37조 제2항에도 등장한다. 공휴일(公休日)에 함께 쉰다는 공휴(共休) 의미가 담긴 것처럼 ‘공공’(公共)은 국민의 삶과 시민의 삶이 결합한 개념이다. 공공복리는 사회 전체로서 공익(公益)과 공동의 이익으로서 공익(共益)을 함께 말한다.
제헌헌법은 위의 제5조 외에도 전문(前文)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문구는 현재 헌법의 전문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제헌헌법 이래 대한민국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는 자유주의적 또는 정치적 민주주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그리고 문화적 민주주의까지 포괄한다. 제헌헌법의 기초자인 유진오는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가 제헌헌법의 기본이념이라고 말한다. 과거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 즉 각인의 자유를 정치적으로 확보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도 각인의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인의 자유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다.
자유방임주의 체제에서는 우승열패(優勝劣敗)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약자는 도리어 자유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상례(常例)라는 것이다.
- 유진오, 제헌헌법의 기초자
제헌헌법 제5조는 제84조로 이어진다. 즉, 대한민국의 경제질서가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시민들이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해야 함께 쉼이 가능해지고 거기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활성화한다. 시민들이 연대하여 공공의 복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그것을 위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소수자 또는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선다.
경기도 조례와 공익활동 — 헌법 정신의 구체화

경기도에는 ‘경기도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 활동 증진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그 목적은 경기도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공익 활동을 증진함으로써 경기도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조례 제1조).
시민사회는 시민, 법인 또는 단체 등 공익 활동을 하는 주체와 공익 활동의 영역이다(조례 제2조 제2호). 공익 활동은 시민, 법인 또는 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공익성이 있는 활동으로 영리 또는 친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활동이다(조례 제2조 제4호). 이때 시민은 지방자치단체의 구역 안에 주소를 가진 사람이어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등록한 외국인도 포함한다(조례 제2조 제1호).
위 조례의 기본 원칙은 각 주체가 상호 간의 다양성, 자발성 및 창조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조례 제3조 제1항).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 정신의 구체화다.
공화국은 군주가 통치하지 않는 국가의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들이 함께 결정하는 정치 체제다. 모든 시민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영역에서 동등해야 하므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 또는 계층이 우위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는 체제다.
국민 또는 시민은 주권과 기본적 인권의 주체로서 국가의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신민(臣民)이 절대 아니다. 헌법은 인권의 주체 자격에서 국적을 따지지 않고 외국인에게도 인권을 보장한다.
헌법의 민주공화국은 지금의 현실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 개념이다. 조례가 제시한 다양성, 자발성, 창조성은 시민으로서의 실천 목표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의 관계는 일차적으로는 시민과 국가의 관계다. 모든 국민, 즉 시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제1문).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제1문).
헌법에서 시민과 시민의 관계는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의 자발성과 창조성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화주의에서는 국가의 공적(公的) 영역에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共同) 결정을 강화한다. 위의 조례에서 시민사회활성화위원회(조례 제7조)와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조례 제15조)를 설치한 맥락이다. 위원회와 센터는 시민의 의사와 참여 그리고 활동을 매개한다. 이들 조직은 기존의 선출직 공직자 또는 일반공무원과 나란히 시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중간 조직으로서 공공적 민주 정치를 확장한다.
민주공화국은 시민들을 나누지 않는다
사실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때로는 상충한다. 그렇지만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은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제로섬 게임 상태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반면, 권위주의 통치 체제는 오히려 시민들을 분리하여 통치(divide & rule)한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내국인과 외국인 등을 구별한다.
민주공화국은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 반목이 생기지 않도록 제3의 길을 찾거나 조정과 타협을 끌어내려 한다. 시민들 사이 이해 충돌이 생길 때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일은 민주공화국의 공직자, 정치인, 시민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헌법은 시민이 직점 써 나가는 혁신의 법이다
헌법은 종이 위에 글자로 쓰인 법전이 아니다. 헌법은 시민이 매일매일 직접 써나가는 혁신의 법이다. 헌법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활짝 열려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고민은 누가 집권하도록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민주시민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 삶만 돌보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스러운 삶에 무관심 하다거나 사회의 부정의에 침묵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 가면서도 동료 시민과 함께 끊임없이 말하며 곁에 설 수 있는 사람이다.
개헌은 조문 수정이 아니라 시민의 실천이다
우리는 제헌 78주년을 지나면서 제헌헌법을 계승하면서도 핵의 위험과 기후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헌법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제헌헌법은 최초의 헌법인 점에서 헌법을 제정한 후에 그것을 구체화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순서를 밟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개헌은 단순히 헌법 조문을 수정하는 일이 아니다. 시민들의 실천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국회의 법률로써 해결하려 노력하고, 그것만으로 해소할 수 없는 문제를 찾아 국민적 합의를 거쳐 헌법에 담아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헌 문제는 시민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바꾸지 않는 추상적인 수사(修辭)에 머물거나 시민의 삶과 동떨어진 국가 조직의 변경 사안에만 골몰하게 된다.
시민의 민주주의적 결정은 의회를 통한 방법 외에도 때로는 유권자 범주를 넘어서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또는 지역에 터 잡은 주민들의 직・간접적 의사결정을 통해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의 재배치야말로 헌법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다.
정치인이 개헌을 말할 때, 시민이 물어야 할 것들
제헌의 주체가 국민 또는 시민이므로 개헌의 주체 또는 국민 또는 시민이다. 제헌절이 공휴일인 의미는 7월 17일 하루의 휴일에 머물지 않는다. 공휴일이 된 제헌절은 민주시민이 함께 인간다운 삶과 쉼을 누리고 민주 공화주의의 정치를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늘 고민해야 하는 출발점이 되는 날이다.
누군가 87년 헌법이 문제라고 말한다면, 그 헌법 탓에 국회에서 입법하지 못한 법률이 무엇이 있냐고 되물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이 헌법을 고치자고 말한다면, 다음을 따져 물어야 한다.
·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 일인지,
· 그걸 위해 어떤 입법 활동을 했는지,
· 개헌 이후에는 어떤 과정을 거쳐 목표하는 바를 성취할 것인지
다양한 시민들의 의사를 결집한 국민의 의사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가 대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곁의 사람들과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묻고 살피며 돌보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온다.
내가 곧 헌법이 된다
인간다운 존엄한 삶을 살 권리의 주체는 각자 시민으로서 다 다르지만,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다를 수 있지만,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어야 나의 인간다운 삶이 전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민주시민으로서 공익을 생각한다고 함은 내가 가장 마지막에 권리를 주장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자리에 서는 일이다. 내가 존엄한 존재임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완전무결한 사회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는 아니다. 우리는 늘 국가 또는 사회의 부정의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때 내가 부정의에 대해 항의하고 소수자 또는 약자 편에 설 때, 내가 그리고 우리가 곧 헌법이 된다.
제헌절, 우리 시대의 '제헌'을 시작하는 날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78년이 지나는 시점임에도 우리는 1945년 해방 이전과 해방 직후 또한 한국전쟁과 권위주의 시대에 있었던 부정의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더욱이 기후 위기와 같은 지구 차원의 문제 역시 풀어야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헌법의 밑바탕에 인권, 민주주의, 시민, 공익, 지방자치 등의 기초를 다지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래야 공휴일(公休日)이 된 제헌절이 공존과 공생을 위한 시작일이 되어 우리는 우리 시대 ‘제헌’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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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