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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일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자원순환은 시민의 참여에서 완성된다

    - 공동주택 종이팩 분리배출이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 -

    김현정(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매년 73일은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International Plastic Bag Free Day)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날을 '비닐봉투를 사용하지 않는 날' 정도로 기억하지만, 그 의미는 훨씬 크다.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가 소비한 자원이 어떻게 다시 순환되는지, 그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함께 돌아보는 날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자원순환은 더 이상 쓰레기 처리의 문제가 아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반이며, 시민의 실천과 공공의 책임이 함께 작동해야 가능한 정책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깨끗이 씻어서 분리배출합시다"라는 캠페인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시민들은 한편으로 질문한다.

    "내가 분리배출한 것이 정말 재활용되고 있나요?"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시민들의 참여 부족이 아니라, 참여 이후를 책임지는 수거·선별·재활용 체계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종이팩이다.

     

    우유팩과 두유팩, 주스팩은 대부분 최고급 천연펄프로 만들어지는 고품질 자원이다. 국내에서도 제지 원료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지만, 실제 재활용률은 오랫동안 10%대에 머물러 왔다. 시민들이 정성껏 씻고 말려 배출하더라도 일반 폐지와 함께 수거되거나 선별 과정에서 분리되지 못해 결국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국 문제는 시민의 의식이 아니라 시스템이었다.


    종이팩 재활용의 현실

     

    경기환경운동연합은 지난 3년 동안 종이팩을 하나의 재활용 품목이 아니라 순환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출발점으로 바라보며 활동을 이어왔다. 공동주택 주민교육, 시범사업, 정책 제안, 조례 제정 지원 등을 진행하면서 확인한 사실은 분명했다.

     

    시민들은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참여가 실제 재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공공 시스템이 부족하다.


    홍보물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시흥시와 함께 추진한 종이팩 별도 분리배출 사업은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공동주택에 전용 수거함을 설치하고, 공공이 수거와 선별을 책임지는 체계를 구축하면서 주민들은 자신이 배출한 종이팩이 실제 재활용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시민들의 참여를 높였을 뿐 아니라, 공공이 자원순환의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시흥시는 전국 최초로 종이팩 분리배출 활성화 조례를 제정했고, 공동주택 관리제도와 연계하여 종이팩 전용 수거체계를 제도화했다.

     

    성남시 역시 공동주택과 클린하우스를 중심으로 전용 수거함을 확대 설치하여 종이팩 재활용량을 크게 늘리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사례는 분리배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와 함께 공공의 책임 있는 수거·선별체계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경기환경운동연합은 지난 610공동주택 종이팩 분리배출 활성화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를 개최한 이유는 단순히 종이팩 분리배출을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2026년 공동주택 종이팩 별도 분리배출 제도가 시행된 상황에서,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부와 지방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성남시와 시흥시가 구축한 공공 중심의 순환경제 모델이 소개되었고, 현장 활동가들은 민간 수거의 한계, 공공선별장 부족, 통계 관리체계 미비 등 현장에서 확인한 문제를 공유했다. 제지업계는 종이팩 회수량 부족으로 국내에서 사용할 원료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며 안정적인 공공 수거체계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무엇보다 토론회에서 확인된 가장 중요한 결론은 하나였다.

    종이팩 분리배출 정책은 시민참여만으로 성공할 수 없고, 공공수거와 선별, 재활용까지 연결되는 순환경제 체계가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장의 논의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동주택 종이팩 분리배출 제도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정부는 공동주택 전용 수거함 설치 기준 마련과 공공 수거체계 개선, 선별시설 확충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방정부 역시 공동주택 지원과 인센티브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는 시작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만들어져도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반대로 시민들이 아무리 성실하게 분리배출해도 수거와 선별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원은 다시 쓰레기가 된다.

     

    그래서 시민참여와 공공의 책임은 서로를 대신할 수 없는 두 개의 축이다.

    공익활동은 바로 이 두 축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시민들의 생활 속 실천을 조직하고, 현장의 문제를 정책으로 연결하며,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일이다.

     

    종이팩 운동은 특정 품목 하나를 분리배출하는 운동이 아니다. 시민의 작은 실천이 제도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 전체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공익활동의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을 맞아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얼마나 많이 분리배출했는가'가 아니라, '내가 분리배출한 자원이 끝까지 순환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기후위기 시대의 자원순환은 시민 한 사람의 실천만으로도, 정부의 정책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의 참여와 공공의 책임,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공익활동이 함께할 때 비로소 순환경제는 일상이 된다.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일회용품 하나를 줄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원이 다시 자원이 되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종이팩 하나를 따로 모으는 이유이며, 공익활동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버리면 쓰레기, 모으면 자원, 종이팩 분리배출 의무화 제도를 만들어요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김현정

    조회수 220

    202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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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헌국회 개원식 일동 념사진(출처_위키백과)

     

    다시 쉬는 날이 된 717

    717일 제헌절은 헌법이 제정된 1948년 이듬해부터 국경일공휴일이었다. 국경일(國慶日)은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는 날이니 헌법을 제정한 날이 빠질 수 없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1949101일 제정되었다. 31,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을 국경일로 삼았다. 2005년에 한글날이 추가되었다. 5일제 도입으로 2008년부터 제헌절과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올해부터 둘 다 다시 공휴일이다.

    공휴일(公休日)은 국가에서 정하여 쉬는 날이다. 특별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니 각자가 원하는 대로 쉬면 된다. 설날이나 추석은 전통적으로 하는 의례가 있지만, 제헌절은 그렇지 않다. 어린이날엔 어린이를 위해 뭔가를 하면 좋지만, 그렇다고 그날만 어린이를 존중하고 아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버이날이 공휴일이 아니라고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공휴일로 정하는 일은 꼭 그날만이 아니라 늘 함께 그날의 의미를 새기자는 뜻이다. 제헌절에 함께 쉼’(共休) 역시 평소에도 헌법의 의미를 생각하고 실천하자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1948531일 오후, 중앙청 홀에서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

    오전 제1차본회의에서 초대 국회의장으로 피선된 이승만이 개원사를 낭독하고 있다(출처_위키백과)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이 되기까지 헌법의 눈으로 보면

    먼저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이 되는 과정부터 헌법 관점에서 살피자. ‘공휴일에 관한 법률은 국경일법과 달리 202177일에서야 제정되었다. 그 이전에 공휴일의 법적 근거는 법률이 아니라 194964일 제정된 이래 개정되었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으로서 대통령령이다. 엄밀하게는 모든 시민이 함께 쉬는 게 아니라 관공서가 쉬는 것이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하고(헌법 제40),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을 정할 수 있다(헌법 제75). 헌법 제정 이후 한참 동안 공휴일제도는 헌법에 부합하지 않았다. 공휴일인 제헌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헌법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까닭이다.

     

    헌법은 시민의 법이다

    대개의 법령은 시민의 생활을 규율 대상으로 한다. , 시민은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 헌법은 다르다. 거의 모든 헌법 규정은 시민에게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에 의무를 지우는 내용이다. 국민의 기본 의무인 납세의 의무나 국방의 의무조차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는 헌법적 제한에 따라, 시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 부과가 전근대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법치주의에 따라 통제한다. 헌법은 제정 주체도 법률과는 다르다.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한다(헌법 제53조 참조). 헌법은 대한 국민이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헌법전문, 헌법 제130조 제2). 헌법은 명실공히 국민의 법이고 시민의 법이다.

     

    국민은 주권자로서(헌법 제1조 제2) 하나의 의사를 가진 통일체이다. 시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을 의미한다. 기본권의 주체인 모든 국민은 시민을 말한다. 어찌 보면 모순이다. 시민의 생각은 다 다른데, 그 의사를 하나로 모아 하나의 국가 의사로 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순적인 시민과 국민을 이어주는 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직업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활동이고, 직업 정치인의 정치는 시민의 정치 활동을 전제로 한다. 시민의 참정권을 비롯하여 탄핵 제도는 다양한 헌법 제도는 시민의 대표를 시민이 통제하는 장치다. 국민은 개헌을 통해 민주주의 제도를 얼마든지 새로이 창설할 수 있다.

    시민은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누리면서 공적인 이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존재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시민이라는 말은 시민의 공공적 성격을 강조하려고 민주를 덧붙인 것이다.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겼더니 모든 시민의 권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서 직접 민주제 또는 협치’(거버넌스)를 통해 시민의 직접 결정 또는 참여가 필요하게 되었다.

     

    함께 쉬어야 함께 결정할 수 있다

    서구의 근대 입헌주의에서 피선거권은 물론 선거권도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먹고 사는 문제로 골몰하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만 돌볼 뿐 함께 살아가는 공적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오늘날 레저(leisure)는 취미 생활에 한정되는 느낌의 용어지만, 넓은 의미의 은 생계 외에 사적 활동과 함께 공적 활동을 보장하는 전제 조건이다. 혼자 쉬지 않고 함께 쉬어야 함께 결정해야 할 일을 상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호 유진오-제헌헌법 초고 (출처_국가기록원)

     

    제헌헌법이 품은 공익의 정신

    제헌헌법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라는 제5조가 눈에 띈다. 공공복리(公共福利)는 지금 헌법 제37조 제2항에도 등장한다. 공휴일(公休日)에 함께 쉰다는 공휴(共休) 의미가 담긴 것처럼 공공’(公共)은 국민의 삶과 시민의 삶이 결합한 개념이다. 공공복리는 사회 전체로서 공익(公益)과 공동의 이익으로서 공익(共益)을 함께 말한다.

    제헌헌법은 위의 제5조 외에도 전문(前文)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문구는 현재 헌법의 전문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제헌헌법 이래 대한민국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는 자유주의적 또는 정치적 민주주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그리고 문화적 민주주의까지 포괄한다. 제헌헌법의 기초자인 유진오는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가 제헌헌법의 기본이념이라고 말한다. 과거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 즉 각인의 자유를 정치적으로 확보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도 각인의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인의 자유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다.

     

    자유방임주의 체제에서는 우승열패(優勝劣敗)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약자는 도리어 자유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상례(常例)라는 것이다.

    - 유진오, 제헌헌법의 기초자

     

    제헌헌법 제5조는 제84조로 이어진다. , 대한민국의 경제질서가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시민들이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해야 함께 쉼이 가능해지고 거기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활성화한다. 시민들이 연대하여 공공의 복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그것을 위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소수자 또는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선다.

     

    경기도 조례와 공익활동 헌법 정신의 구체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로고
     

    경기도에는 경기도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 활동 증진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그 목적은 경기도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공익 활동을 증진함으로써 경기도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조례 제1).

     

    시민사회는 시민, 법인 또는 단체 등 공익 활동을 하는 주체와 공익 활동의 영역이다(조례 제2조 제2). 공익 활동은 시민, 법인 또는 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공익성이 있는 활동으로 영리 또는 친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활동이다(조례 제2조 제4). 이때 시민은 지방자치단체의 구역 안에 주소를 가진 사람이어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등록한 외국인도 포함한다(조례 제2조 제1).

     

    위 조례의 기본 원칙은 각 주체가 상호 간의 다양성, 자발성 및 창조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조례 제3조 제1).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 정신의 구체화다.

     

    공화국은 군주가 통치하지 않는 국가의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들이 함께 결정하는 정치 체제다. 모든 시민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영역에서 동등해야 하므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 또는 계층이 우위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는 체제다.

    국민 또는 시민은 주권과 기본적 인권의 주체로서 국가의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신민(臣民)이 절대 아니다. 헌법은 인권의 주체 자격에서 국적을 따지지 않고 외국인에게도 인권을 보장한다.

     

    헌법의 민주공화국은 지금의 현실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 개념이다. 조례가 제시한 다양성, 자발성, 창조성은 시민으로서의 실천 목표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의 관계는 일차적으로는 시민과 국가의 관계다. 모든 국민, 즉 시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제1).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제1).

    헌법에서 시민과 시민의 관계는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의 자발성과 창조성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화주의에서는 국가의 공적(公的) 영역에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共同) 결정을 강화한다. 위의 조례에서 시민사회활성화위원회(조례 제7)와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조례 제15)를 설치한 맥락이다. 위원회와 센터는 시민의 의사와 참여 그리고 활동을 매개한다. 이들 조직은 기존의 선출직 공직자 또는 일반공무원과 나란히 시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중간 조직으로서 공공적 민주 정치를 확장한다.

     

    민주공화국은 시민들을 나누지 않는다

    사실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때로는 상충한다. 그렇지만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은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제로섬 게임 상태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반면, 권위주의 통치 체제는 오히려 시민들을 분리하여 통치(divide & rule)한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내국인과 외국인 등을 구별한다.

    민주공화국은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 반목이 생기지 않도록 제3의 길을 찾거나 조정과 타협을 끌어내려 한다. 시민들 사이 이해 충돌이 생길 때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일은 민주공화국의 공직자, 정치인, 시민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헌법은 시민이 직점 써 나가는 혁신의 법이다.

    이미지 제안] 시민들이 함께 토론하거나 집회하는 현장 사진

    헌법은 종이 위에 글자로 쓰인 법전이 아니다. 헌법은 시민이 매일매일 직접 써나가는 혁신의 법이다. 헌법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활짝 열려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고민은 누가 집권하도록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민주시민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 삶만 돌보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스러운 삶에 무관심 하다거나 사회의 부정의에 침묵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 가면서도 동료 시민과 함께 끊임없이 말하며 곁에 설 수 있는 사람이다.

     

    개헌은 조문 수정이 아니라 시민의 실천이다

    우리는 제헌 78주년을 지나면서 제헌헌법을 계승하면서도 핵의 위험과 기후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헌법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제헌헌법은 최초의 헌법인 점에서 헌법을 제정한 후에 그것을 구체화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순서를 밟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개헌은 단순히 헌법 조문을 수정하는 일이 아니다. 시민들의 실천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국회의 법률로써 해결하려 노력하고, 그것만으로 해소할 수 없는 문제를 찾아 국민적 합의를 거쳐 헌법에 담아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헌 문제는 시민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바꾸지 않는 추상적인 수사(修辭)에 머물거나 시민의 삶과 동떨어진 국가 조직의 변경 사안에만 골몰하게 된다.

    시민의 민주주의적 결정은 의회를 통한 방법 외에도 때로는 유권자 범주를 넘어서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또는 지역에 터 잡은 주민들의 직간접적 의사결정을 통해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의 재배치야말로 헌법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다.

     

    정치인이 개헌을 말할 때, 시민이 물어야 할 것들

    제헌의 주체가 국민 또는 시민이므로 개헌의 주체 또는 국민 또는 시민이다. 제헌절이 공휴일인 의미는 717일 하루의 휴일에 머물지 않는다. 공휴일이 된 제헌절은 민주시민이 함께 인간다운 삶과 쉼을 누리고 민주 공화주의의 정치를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늘 고민해야 하는 출발점이 되는 날이다.

    누군가 87년 헌법이 문제라고 말한다면, 그 헌법 탓에 국회에서 입법하지 못한 법률이 무엇이 있냐고 되물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이 헌법을 고치자고 말한다면, 다음을 따져 물어야 한다.

    ·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 일인지,

    · 그걸 위해 어떤 입법 활동을 했는지,

    · 개헌 이후에는 어떤 과정을 거쳐 목표하는 바를 성취할 것인지

    다양한 시민들의 의사를 결집한 국민의 의사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가 대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곁의 사람들과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묻고 살피며 돌보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온다.

     

    내가 곧 헌법이 된다

    인간다운 존엄한 삶을 살 권리의 주체는 각자 시민으로서 다 다르지만,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다를 수 있지만,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어야 나의 인간다운 삶이 전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민주시민으로서 공익을 생각한다고 함은 내가 가장 마지막에 권리를 주장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자리에 서는 일이다. 내가 존엄한 존재임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완전무결한 사회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는 아니다. 우리는 늘 국가 또는 사회의 부정의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때 내가 부정의에 대해 항의하고 소수자 또는 약자 편에 설 때, 내가 그리고 우리가 곧 헌법이 된다.

     

    제헌절, 우리 시대의 '제헌'을 시작하는 날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78년이 지나는 시점임에도 우리는 1945년 해방 이전과 해방 직후 또한 한국전쟁과 권위주의 시대에 있었던 부정의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더욱이 기후 위기와 같은 지구 차원의 문제 역시 풀어야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헌법의 밑바탕에 인권, 민주주의, 시민, 공익, 지방자치 등의 기초를 다지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래야 공휴일(公休日)이 된 제헌절이 공존과 공생을 위한 시작일이 되어 우리는 우리 시대 제헌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공휴일이 된 제헌절
    아주대학교 법학과 오동석 교수

    조회수 127

    2026-06-29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안전을 지나친다.

    휴대전화가 울린다.

    고령 어르신 실종. 발견 시 신고 바랍니다.”

    호우경보 발효. 외출을 자제하시고 침수 위험지역 접근을 삼가 바랍니다.”

    잠시 후 길을 걷다 이런 표지들을 마주친다.

    미끄럼 주의”, “공사 중”, “어린이 보호구역”.

    우리는 이런 문구들을 지나치게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때로는 무심코 넘기고, 때로는 알림을 끄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짧은 문장과 작은 표지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사고를 막고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경고가 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안전은 더 이상 개인의 주의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위험을 감지하고, 알리고, 함께 행동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안전안내문자와 안전표지판은 이러한 공익적 안전망의 가장 가까운 현장에 있다.

    이번 취재에서는 우리 일상 속 안전안내문자와 안전표지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실제 생활 속 예방 효과는 무엇인지, 그리고 시민이 함께 만들어야 할 안전문화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위험은 갑자기 오지만 안전은 미리 준비된다

    사고는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특징이 있다.

    집중호우, 폭염, 강풍, 산불, 화재, 교통사고, 감염병 등은 순간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멈추게 만든다. 그러나 많은 위험은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안전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사고를 줄이는 핵심 요소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위험의 인지

    둘째, 정보 전달

    셋째, 행동 변화

    이 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이 바로 안전안내문자와 안전표지판이다.

    안전은 사고가 난 뒤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멈추게 하는 것이다.

     

    손안의 경고 시스템, 안전안내문자

    안전안내문자는 재난 발생 또는 위험 상황을 시민에게 신속하게 전달하는 공공 커뮤니케이션이다.

    예전에는 재난 소식을 뉴스나 주변 사람을 통해 뒤늦게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휴대전화 문자 한 통으로 위험을 실시간 공유한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면 야외활동 자제를 안내하고,

    한파가 오면 수도 동파 예방을 알린다.

    호우가 예상되면 하천 접근 금지를 전달한다.

    문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행동을 유도하는 공익 메시지.

    예를 들어,

    외출 자제

    창문 고정

    지하차도 통행 금지

    실내 냉방 유지

    이런 문장은 시민이 위험을 인식하고 행동을 바꾸도록 돕는다.

     

    왜 사람들은 안전문자를 귀찮아할까

    인터뷰를 해보면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너무 자주 와서 안 보게 돼요.”

    지역이 아닌데 문자 와서 불편했어요.”

    알림 소리가 놀라워요.”

    실제로 반복되는 알림은 피로감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문자의 개수가 아니라 경각심의 감소다.

    사람은 익숙해질수록 위험을 과소평가한다.

    이를 정상성 편향이라고 부른다.

    설마 별일 있겠어.”

    이번에도 괜찮겠지.”

    이 생각이 사고를 키운다.

    안전문자는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험을 현실로 인식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다.

     

    거리 위의 무언의 안내자, 안전표지판

    안전표지판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위험을 알려준다.

    학교 앞의 어린이 보호구역,

    공사장 접근금지 표시,

    엘리베이터 비상안내,

    지하철 대피 유도선.

    우리는 매일 수십 개의 안전표지를 지나친다.

    표지판의 목적은 단순하다.

    사고를 예방하는 것.’

    표지판은 정보를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색과 형태, 상징으로 즉시 이해하게 만든다.

    빨간색은 금지,

    노란색은 주의,

    파란색은 지시,

    초록색은 안전과 피난.

    눈으로 보는 즉시 행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작은 표시 하나가 만드는 큰 변화

    지역 생활 현장을 취재해 보면 안전표지는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 있다.

    아파트 계단의 미끄럼 방지 안내,

    공원의 야간 이용 주의 표시,

    시장 내 소화기 위치 안내,

    횡단보도 주변 교통안전 표시.

    이 표지들은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다.

    하지만 위급한 순간에는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

    실제로 화재 상황에서 비상구 안내 표지가 생존율을 높였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재난은 순간이지만, 안전은 평소의 준비에서 시작된다.

     

    공익은 일상, 서로의 안전을 지키는 일

    공익이라는 말을 들으면 거대한 정책이나 국가사업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공익은 멀리 있지 않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지키는 것,

    재난문자를 확인하는 것,

    안전표지를 훼손하지 않는 것,

    위험 상황을 신고하는 것.

    이 작은 행동이 공동체 전체의 안전 수준을 높인다.

    특히 고령자, 어린이, 장애인처럼 정보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안전 정보는 더 중요하다.

    누군가에게는 문자 한 통이,

    표지 하나가,

    귀가할 수 있는 길이 된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안전문화

    최근 안전 시스템은 더 똑똑해지고 있다.

    지역 맞춤형 재난 알림,

    실시간 위험 안내,

    스마트 교통 표지,

    음성 안내 시스템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 안전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정보를 읽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안전은 전문가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여할 때 완성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 감수성

    안전 감수성이란 위험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예방 행동으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 생활 속에서 다음을 실천할 수 있다.

    안전안내문자는 반드시 확인하기

    안내 내용을 가족과 공유하기

    표지판을 무시하지 않기

    위험 요소 발견 시 신고하기

    아이와 어르신에게 안전정보 설명하기

    안전은 특별한 날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하루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생활 습관이다.

     

    안전은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다

    표지판은 인간의 실패를 전제로 만들어진다.

    멈추지 않을 수 있으니 신호를 만들고,

    넘어질 수 있으니 경고를 만든다.

    하지만 성숙한 사회는 규칙보다 문화가 앞선다.

    누가 보지 않아도 멈추고,

    알려주지 않아도 배려한다.

    공익은 통제가 아니라 관계의 기술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안전 규칙이 아니라 서로의 안전을 자연스럽게 챙기는 안전 감수성이다.

    우리는 하루를 평범하게 보내길 원한다.

    무사히 출근하고,

    안전하게 귀가하고,

    가족과 저녁을 먹는 일.

    그 평범함 뒤에는 수많은 안전장치가 있다.

    휴대전화의 짧은 문자,

    골목의 작은 표지판,

    누군가의 신고,

    보이지 않는 예방 시스템.

    안전안내문자와 안전표지판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서로에게 보내는 약속이다.

    당신의 일상이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안전안내문자와 안전표지판, 우리 일상을 바꾸는 공익의 언어
    럭비공

    조회수 211

    2026-06-29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94223일 오전 6,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 해저 탄광 장생탄광(長生炭鉱)에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당시 갱 안에 있던 183명은 탄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 중 다수가 조선에서 끌려온 노동자들이었다. 사고는 단 몇 시간 만에 183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오랫동안 역사의 기록 바깥에 머물러야 했다.

     

    이 사고는 천재지변이 아니다. 인재이고, 산업재해다. 해저탄광은 안전을 위해 해저면으로부터 47m 이상 깊이에서 작업해야 했다. 그러나 장생탄광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해저면으로부터 깊이가 법적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37m였다. 너무 얕게 판 탄광이었고, 그것이 바닷물 유입으로 이어졌다. 규정을 어긴 채 운영되던 탄광이었다. 더 많은 석탄을 캐내기 위해 안전을 무시한 결과였다. 위험한 작업환경 탓에 일본인들은 그곳에서 일하기를 피했고, 그 자리를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이 채웠다. 게다가 그들은 창씨개명으로 이름마저 바뀐 상태였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뒤에도, 그들은 본래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고, 가족들은 사고 사실조차 알 수가 없었다. 식민지 지배의 구조가 죽음 이후까지 사람의 흔적을 지운 셈이었다.

     

    그 이름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시작된 건 사고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990년대였다. 1991년에 일본 시민단체 장생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이 발족했다. 일본 시민들은 조선인 희생자 명부를 발견하고, 한국으로 편지를 보냈다. 희생자들의 창씨 성이 아닌, 본래 성을 찾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국가도 기관도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손에서 출발한 연락이었다. 그 편지 한 통이 한국 유족회 창설로 이어졌고, 이후 추모비도 세울 수 있었다. 오랫동안 이름 없이 바다 아래 잠들어 있던 희생자들에게, 비로소 추모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사진 1] 빗속의 장생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추모비. 나란히 선 두 기둥에는 각각 '강제연행 한국 조선인 희생자', '일본인 희생자'라고 새겨져 있다. 두 기둥이 분리된 데는 이유가 있다. 희생자 중에는 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인도 있었지만, 조선인 유족회는 일본인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새기는 모임'은 그 마음을 받아들여, 두 개의 기둥을 따로 세웠다.

     

    이 흐름의 중심에 있는 단체가 바로 새기는 모임이다. 일본 현지에서 활동하는 시민 모임으로, 탄광 현장 안내와 추모 행사, 유족과의 연대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현재 이노우에 요코(井上洋子)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에는 문재인 정부에 장생탄광 현장 방문을 요청하는 서한을 직접 보내기도 했다. 이 요청은 실제로 이어져, 행정안전부 담당 부서가 현장을 방문했고, 이후 한국 정부는 유족 약 80명의 DNA를 보관하기로 했다. 언젠가 유골이 수습될 때 유족과 연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림 자료화면 : 오마이 포토 2026.02.27. 김지운

     

    그리고 그 '언젠가'가 현실이 됐다. ‘새기는 모임은 시민들의 후원금을 모아 2024, 오랫동안 닫혀 있던 탄광 입구(갱구)를 다시 여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러 시민과 단체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일이었고, 자원한 잠수부들이 직접 수중 작업에 나섰다. 20258월과 20262월에, 각각 유골 한 구를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유골에 붙어 있던 치아 덕분에 유전자 감식도 가능해졌다. 2026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장생탄광 DNA 감정 추진이 합의됐고, 한국 정부는 같은 해 5월 발굴 유해를 대상으로 DNA 감정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 2] 2024년 재개방된 장생탄광 갱구. 파란 방수포와 모래주머니로 둘러싸인 갱구 입구에 "희생자의 존엄 회복을 위해, 일본정부의 신속한 유해 수습과 반환을 요구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갱구까지 이어지는 접근로는 탄광을 운영했던 회사의 자손이 소유한 사유지로, 작업에 있어 협조를 얻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작업 중 잠수부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의 이름은 웨이 수, 대만 국적의 베테랑 잠수사였다. 웨이 수는 장생탄광 유해 발굴 소식을 듣고 국적은 다르지만,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고 싶다고 자원한 사람이다. ‘새기는 모임은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1년간 유골 수습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림 자료화면 : 현대불교 2026.02.09. 관음종 웨이 수 잠수사, 왕생극락 기원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다 아래 있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고, 이름을 돌려주려는 사람들도 있다. 국경을 넘은 편지에서 시작해, 유족회와 추모비로, 정부 방문 요청으로, 갱구 재개방으로 이어진 이 흐름은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새기는 모임의 활동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묵묵히, 오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계속되고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KBS 508회 수몰83갱구를 열었다. https://youtu.be/WsWUD5KRnZU?si=W02zGBzdtFreWSVE

     
    바다 아래 잠든 이름들을 찾아서 – 장생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연두

    조회수 159

    2026-06-29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문화도시, 유네스코도시가 되기 위해 문화 활성화에 이바지해온 경기도 부천시>


    안녕하세요. 2026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Hana입니다. 학창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거주하는 동안 부천에 거주하면서 가장 많이 봤던 문구는 바로 <문화도시>였습니다. 이에 맞게 부천시에서는 전국의 영화-만화 산업의 진흥을 위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만화축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까지 3대 축제를 중심으로 문화 산업을 활성화했으며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진행해왔습니다. (시민들이 주역이 되는 축제 다락, 미디어를 활용해 문화-예술 범위를 확장하는 시민미디어교육 및 축제 등) 이처럼 부천시 내에서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덕분에 부천시는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유네스코 창의도시는 문학, 공예 및 민속예술, 미디어아트, 영화, 디자인, 음식, 음악, 건축까지 총 8개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주요 전략으로 창의성을 반영하는 도시를 지정하는 유네스코의 사업을 의미합니다. 그중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는 이러한 도시의 영향을 통해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성공하는 것이 목표이며 전 세계 중 6개 대륙, 44개 국가, 63개 도시가 지정되어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고, 광범위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부천시의 경우,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가입했다는 점, 세계에서는 21번째로 지정되었다는 점, 그리고 평화와 인권 존중에 초점을 두어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추구한다는 걸 인정받았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부천시와 부천문화재단에서 관련 산업만 잘 진행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적극적-열정적으로 참여하기에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문화도시, 유네스코도시로 알려진 부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부천악기은행>

    그리고 여러 사업들 중 부천문화재단에서는 2026년에 새로운 문화-예술 사업으로 <부천악기은행>을 시작했습니다. 부천악기은행은 경기도 부천시 시민(경기도 부천에 주소를 두고 있거나 소재 학교 및 직장에서 근무하는 경우)이라면 누구나 악기를 통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공공 대여 서비스입니다. 이에 따라 악기를 처음 시작하고 배우고 싶은 입문자나 초보자 중심의 시민들이 부담 없이 저렴하게 악기를 대여하여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악기는 꾸준히, 조심히 관리해야 하기에 일반 시민들이 관리하기 쉽지 않으며 가격도 비싸기에 일반 국민들이 악기를 이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악기를 활용한 예술 분야가 확대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를 고려해 악기 구입이 부담스러운 시민 및 청소년들을 위해 공공에서 악기를 확보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끔 하여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경기도 부천시의 음악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부천문화재단 차원에서 부천악기은행 서비스를 준비했습니다.

     

    <부천악기은행 악기 대여, 적절한 규칙을 통해 원활한 이용을 돕는다.>


     

    부천악기은행은 저렴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으로 다양한 악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2026년을 기준으로 타악기/건반악기/현악기/타악기/국악기를 대여하고 있는데, 부천악기은행은 음악을 처음 시작하려는 초보자들과 입문자들이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는 대중적인 악기들 중심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현악기, 타악기, 국악기 등 다채로운 종류가 마련되어 있어, 처음 악기를 접하는 시민들도 본인의 취향에 맞는 악기를 폭넓게 선택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피아노처럼 이동이 어려운 무거운 악기는 대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대여한 악기는 1개월(30) 이용 기간을 중심으로 대여 가격을 매기며 기존 가격 외에 대여한 악기는 1개월(30) 이용 기간을 기준으로 저렴한 대여료가 책정됩니다. 그래도 취약계층을 고려해 부천악기은행에서도 이용요금 감면 혜택과 정확한 환불기준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증빙서류를 제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장애인, 노인 등에게 대여료의 50%를 감면하는 혜택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만료일까지 반납하지 않을 경우에는 연체료를 부과하며 악기 파손 및 관리에 대여자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


     

    1인당 1개의 악기를 대여할 수 있으며, 기본 대여 기간 1개월에서 시작해 연장을 통해 최대 6개월까지 대여가 가능합니다. 다만, 해당 악기에 대기자가 있을 경우에는 연장이 불가하므로 장기 대여를 계획 중이시라면 대기 현황과 대여 규칙을 미리 확인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악기 재고가 없을 경우에는 대여 기간 연장이 불가하다는 점도 참고해주세요.) 또한, 부천악기은행 신청 홈페이지에서 사용 희망일을 기준으로 최소 2일 전, 최대 14일 전까지 온라인으로 예약신청이 가능합니다. (부천시 통합회원으로 가입한 이후에 부천악기은행 온라인 서비스 이용 가능)

     

    부천악기은행 이용 정보: 주소(복사골문화센터(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장말로 107, 4(상동))), 운영시간(화요일~토요일(일요일 및 월요일과 법정 공휴일에는 휴무), 오전 10~오후 5(, 통상적인 점심시간 오전 12~오후 1시에는 업무가 중단되며 점심시간 이후부터 다시 대여-반납 등 업무를 진행합니다.))

     

    <부천악기은행은 방치되고, 버려지는 악기의 새 삶을 부여하는 데에 이바지한다.>


    부천악기은행이 있는 복사골문화센터 4층에는 <당신의 나눔이 누군가의 첫 연주가 됩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처럼 부천악기은행을 운영하는 주체는 바로 시민 개인, 단체가 된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악기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기타를 배우기 위해 구매하였으나, 바빠지고, 관심이 떨어지면서 어느 순간에는 기타를 쓰지 않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중고로 판매할까 생각해봤지만, 시중에 좋은 제품들이 많고, 다른 중고 물품들과 비교해도 크게 메리트가 없을 것으로 보여 결국에는 버렸습니다.

     

    이를 고려해 부천악기은행에서는 가정, 학교, 단체 등에서 사용하지 않는 악기를 기증받아 공공 자원으로 순환합니다. 기증자의 관점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아 많은 공간을 뺏기는 단점, 관리하지 않을 경우에는 나중에 악기를 사용할 때,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단점보다 지속적인 관리를 확실하게 보장받고, 저렴한 가격에 대여하는 부천악기은행으로 기증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부천악기은행에서는 공공이 관리한다는 관점에서 악기 자체는 개인 및 단체에게서 기증받고, 부천악기은행에 기증한 악기들을 관리-대여하고 있습니다. , 연주가 불가능할 정도의 악기는 기증받지 않고 있으므로 기증 이후에 악기가 원활하게 활용될 수 있는 상태인지 미리 확인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악기 기증자에게는 기증 증서를 발급하고, 복사골문화센터 4층 벽면에 있는 부천악기은행 명예의 전당에 기증 악기 목록 및 이름 기재 혜택을 제공합니다. 이 기재를 통해 악기 공공 기여를 인증할 수 있습니다. (기부자 명단은 부천악기은행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 공공자산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기증한 악기를 반환할 수 없으니, 신중하게 생각하고 기증해주세요.)

     

    <부천악기은행에서 예술 및 기술을 나누는 활동도 같이 진행합니다.>


     

    부천악기은행은 단순히 악기를 대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을 나누는 교육 활동도 진행합니다. 그 시작은 이달의 악기 워크숍으로 무료로 진행하여 교육생의 부담을 덜어주고, 새로운 악기를 연주해본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에 관한 인식을 확대하는 장점이 있으며 경기도 부천시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역시 문화를 나누는 주체가 되므로 서로의 니즈를 충족하는 win-win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부천악기은행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맺은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


     

    지난 330, 부천악기은행 개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시민의 음악 시작을 위해 경기도 부천시에서 활동하는 여러 기관이 모여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를 결성했습니다. (여기서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1) 악기 관리, 교육, 공연 등 실제 사업 운영에 함께하는 실행 파트너 실무협력단 (2) 악기 기증 및 후원을 통해 사업 기반을 지원하는 후원 파트너 기부후원단 (3) 음악교육, 문화 활동에 참여해 문화복지 확산을 함께 만드는 참여 파트너 문화나눔단으로 구성됩니다.)

     

    부천악기은행 개소식을 진행할 때,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의 역할을 체감할 수 있었는데, 악기대여자들은 현장에서 기타, 바이올린, 가야금을 대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실무자들은 부천악기은행이 가져올 장점을 현장에서 알기 쉽게 소개했습니다. 이후에 부천악기은행에 마련된 데스크, 악기보관실, 악기교육실 공간을 둘러보면서 피드백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특히 악기보관실에 직접 다녀갔을 때는 악기 보관을 위해 항온항습기를 상시로 가동하는 모습을 통해 악기 관리에 필수불가결인 존재, 공기 질을 크게 신경 쓰는 점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를 통해 부천시립예술단 아드리앙 페뤼숑 상임지휘자가 홍보대사를 맡아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부천시 내 협력 지정악기사, 관내 대학교수, 협회 관계자 등이 지닌 풍부한 실무 경험과 전문 자문을 바탕으로 한층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운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사골문화센터의 경우, 공간 자체가 배리어프리가 보장되어 있기에 누구나 악기를 대여할 수 있다는 장점도 돋보입니다. 복사골문화센터는 복사골스포츠센터, 부천문화재단, 부천시청소년센터 및 부천여성청소년재단 등 여러 기관이 입주하며 경기도 부천시 시민들의 이용률이 높은 생활 공간인데, 부천문화재단이 있는 4층의 유휴 공간을 활용했다는 점, 해당 공간이 엘리베이터 및 경사로가 잘 갖춰졌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공간에 부천악기은행을 마련한 덕분에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부천악기은행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악기은행의 활성화는 문화-예술 활성화라는 공익적 목적을 입증하였다.>


    한편, 부천문화재단 부천악기은행이 개설되기 이전에 경기도 화성시에서는 이미 2022년에 화성시 악기은행을 오픈했고, 경기도 오산시에서는 2019년에 전국 최초 악기 전문 도서관이자, 대여가 가능한 시설로 소리울도서관을 시작했으며 경기도 성남시에서는 2016년부터 악기도서관 악기랑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각각 시작한 시기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시민 및 생활권자(학교, 직업 등)들에게 악기를 저렴한 가격에 대여한다는 점을 통해 지역에서 문화를 활성화하려고 합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악기은행이라는 공공 차원에서 대여하는 공익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서는 제주월드컵경기장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서귀포시 악기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시에서는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 및 송파구(사업명: 뮤직스튜디오)에서 악기공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육 목적으로 제한되긴 하지만, 경상남도교육청 예술교육원 해봄/경상북도교육청문화원 악기뱅크 카테고리/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악기지원센터 및 잠자는 악기 깨우기(학교별 안 쓰는 악기를 이관하는 사업), 서울특별시교육청 체육건강예술교육과 예술교육팀 악기공유마당 사업에서도 대여를 진행합니다.

     

    , 부천문화재단에서 해당 사업을 새롭게 실시했다는 점은 방치되는 악기를 나누는 환경적인 측면, 그리고 이를 활용해 문화를 나눈다는 공익적인 역할 및 영향력이 이미 입증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직 해당 문화가 활성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파주시, 수원시 등 문화재단 내에서 공간과 함께 악기를 이용할 수는 있겠으나, 외부에서 활용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기에 지자체마다 상황이 조금씩 다른 점이 원인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지역 내에 문화예술을 활성화하기 위해 악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연주하며 문화의 주체가 되려는 방향, 이를 지원하는 것을 통해 문화의 주체가 되고, 다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양질의 문화 확산으로 이어가기를 희망합니다.

     

     

    <출처>

    https://schoolart.sen.go.kr/musicshare/fus/html/cont0030v.do

    https://www.songpa.go.kr/learn/youth/campus/instrum_lib_rental_list.do

    https://www.nakwon-communityart.or.kr/bbs/music02

    https://chsl.cne.go.kr/msi/cntntsService.do?menuId=MNU_0000000000002024

    https://yeyak.jne.kr/yeyak/main.do?sysId=yeyak

    https://www.gbe.kr/edushare/main.do

    https://artcenter.gne.go.kr/ins/in/ins/requestList.do?mi=11633

    https://service.gne.go.kr/yeyak/tl/tlList.do?insttId=artcenter#none

    https://blog.naver.com/seogwipo-si/223390621039

    https://ilibr.snart.or.kr/

    https://gnews.gg.go.kr/news/news_detail.do?number=202204111500478574C049&s_code=C049

    https://www.gggongik.or.kr/page/archive/archiveinfo_detail.php?board_idx=2348

    http://bucheoncityofliterature.or.kr/site/homepage/menu/viewMenu?menuid=023003001

    https://www.bcf.or.kr/base/contents/view?contentsNo=186&menuLevel=3&menuNo=162

    https://www.bcf.or.kr/bmib/main/view


     
     
    안 쓰는 악기, 부천악기은행을 통해 나누어 우리 주위로 확산한 문화
    HANA

    조회수 179

    2026-06-29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해 지역의 자원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꾸마 청개구리>

     

    안녕하세요. 2026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Hana입니다. 2026년을 돌아보면, 그 어느 때보다 청소년이라는 이슈를 돌아볼 때, 빼놓을 수 없는 몇몇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스트레스 인지율, 우울감 경험률, 학습-교육입니다. 실제로 성평등가족부가 발간한 <2025 청소년 통계>를 살펴보면, <건강>에서는 스트레스 인지율, 우울감 경험률, 경제활동, 학습-교육 등 총 8가지 지표를 다루고 있으며 스트레스 인지율이 전체 청소년의 42.3%, 우울감 경험율은 27.7%, 여가는(인터넷 이용 시간) 20%로 나타났습니다. 학교에 가는 상황이 즐거운가에 관해서는 초등학생 79.4%, 중학교 71.2%, 고등학교 66.2% 결과가 나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뉴스에서도 청소년의 우울감이 증가했다, 정부 및 학교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지역-국가 차원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니즈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서 나오는 결과이며, 저 역시 청소년 시기를 보내며 정책과 사업이 제 니즈에 맞게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직접 체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청소년 시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시설은 청소년의 니즈를 고려한 다양한 사업을 통해 지역에서 청소년들의 활동하고,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여러 청소년 시설들의 사업 중 지역 차원에서 청소년의 니즈를 찾고, 지역과 교류하는 고리울청소년센터(약칭 꾸마)의 활동 사례인 <청개구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청소년들이 언제든지 방문해도 좋은, 무엇이든 배워갈 수 있는 꾸마 청개구리>

    꾸마 청개구리는 매년 3~12월까지 진행하는 꾸마만의 청소년 사업으로 지역 내에서 학교에 다니고, 생활하는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청소년활동입니다. (*청소년기본법 제3조 정의 제1항을 기준으로 25세까지를 기준으로 정함.)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도 하고, 세상을 배워갈 수 있는 다양한 부스 및 체험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 실제로 참여한 청소년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큽니다.

     

    원래는 한 건물을 대여해 해당 공간과 인근 공간(공원 등)에서 식사 및 체험활동을 진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되었으나 공간의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부천시 오정구 고강본동에서 청소년들이 가깝게 방문할 수 있는 초등학교와 지역 공원에서 청개구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식사의 경우, (1) 참여 청소년이 카운터에다 1,000원을 지불하면, (2) 식사 및 뒷정리를 마친 후, (3) 카운터에 정리를 완료했음을 확인한 후에 500원을 돌려받는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여기서 뒷정리는 책상 정리, 설거지를 의미합니다. 공간에서 활동하는 경우에는 설거지를 진행하고, 초등학교 및 공원에서 진행하는 경우에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분리수거를 하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책임지고 정리하는 방법과 환경을 생각하는 분리수거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식사 전/후로 부스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매주 부스의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다음과 같은 부스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육체적-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나고, 새로운 정보들을 배워갈 수 있어 청소년들의 호응이 좋습니다.

     

    (1) 신체 활동으로는 엉터리청소년센터 부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서 배드민턴, 프로펠러 장난감 등을 대여해 청개구리를 진행하는 동안에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습니다. 이때, 같이 노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청소년 지도사, 청소년/청년 자원봉사자, 청년 상근 활동가들과 함께 놀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기획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운동장을 활용한 놀이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경찰과 도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2) 만들기 활동으로는 요리/체험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요리의 경우에는 청소년들의 입맛을 고려해 부스를 운영하는데요, 일반적으로 청소년/청년 자원봉사자들이 쉽게 만들 수 있는 활동으로는 청소년 다방(아이스티, 레몬에이드 등 간단한 음료 제조)이 있으며 요리사인 청년 자원봉사자가 주도하는 샌드 만들기 부스를 운영합니다. (경우에 따라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달고나처럼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활동도 진행합니다.

     

    대표적인 체험활동으로는 물품 만들기(와펜, 키링 등), 미니게임(신발 던지기, 공 굴리기 등) 부스가 있으며 그 외에도 타로, 벚꽃사진관, 가족사랑 이벤트(사랑의 문구 작성 등)처럼 청소년/청년 자원봉사자와 청년 상근 활동가들에게 의견을 받아 체험활동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 오정보건소(금연클리닉: 금연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부스), 대학교 동아리(체험활동)처럼 다른 단체나 기관에서 부스를 운영해 정책-사업을 홍보하고, 동시에 부천시 오정구 고강본동에서 거주하는 청소년들과 소통-교류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과 협력으로 만들어지고, 이어가는 꾸마 청개구리>

     

    청개구리 활동은 지역 청소년들이 배우고, 놀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고,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도움을 주었기에 지금까지 청개구리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당장 장소만 하더라도 기존의 공간이 사라졌을 때는 새롭게 활동할 공간을 찾는 것 자체가 과제였는데요, 청소년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게 쉽지 않았기에 당시에 여러 공원들을 후보로 정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행히 초등학교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청개구리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 학교 차원에서 청소년들에게 공간을 대여한 덕분에 지역에서 거주하는 청소년들도 학교 공간(운동장, 산책로 등)을 폭넓게 이용할 수 있었으며 청개구리 활동을 통해 학교라는 공간에서 안정감을 찾고, 안전이 보장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지역 주민 및 단체와도 자연스럽게 교류-소통할 수 있으니, 한 번 청개구리를 이용한 청소년들은 계속 청개구리를 찾아오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청소년들과 만나기 위해 청개구리 트럭을 사용해 물건을 옮기고, 청개구리 활동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약 2년 동안 청개구리 활동을 유지해왔습니다. 매번 공간을 다시 조성해야 하는 만큼 번거로울 수 있지만, 꾸마에서 근무하는 청소년 지도사와 청소년/청년 자원봉사자, 청년 상근 활동가들이 매번 힘써주는 덕분에 학교에 다니는 3~12, 매주 수요일에 청개구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지도사, 청소년/청년 자원봉사자, 청년 상근활동가들이 청개구리 공간에서 부스 운영, 안전 관리의 역할도 맡으며 부스 운영만을 도와주는 지역 주민 단체들의 역할도 더해져 안정적인 청개구리 운영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청개구리에서는 총 6곳 이상의 지역 단체, 유관기관(청개구리맘, 고강본동새마을협의회/부녀회, 루모스봉사단, 고강본동주민자치회, 고강마을탐사단, 오정보건소)이 자원봉사 형태로 꾸마에 참여하고 있으며 단체들은 청소년들의 행복 증진과 교류-소통을 위해 매주 수요일에 모여서 즐겁게 활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로 체험활동 부스/식당 운영을 지원하며 특히 3주에는 수주체크인(미니게임, 타로상담)을 정기적으로 운영해 청개구리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몇몇 인원들이 카운터와 식당 운영을 지원하여 원활한 청개구리 활동 운영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번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날 때에 청개구리 활동을 도와주고, 참여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리 부스를 선보이는 자원봉사자, 대학생 자원봉사자 등) 이처럼 청개구리 기획부터 운영(부스, 질서 유지, 청소년과의 소통-교류 등), 피드백까지 모두 지역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청개구리의 역사는 지역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개구리는 청소년들의 활동을 알리는 무대, 도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청개구리는 청소년들이 배우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꾸마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지역에서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청개구리를 찾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청개구리와 꾸마 청소년운영위원회(약칭 청운위)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청소년 자격으로 운영하는 자치기구인 청운위를 스스로 홍보하는 모습, 꾸마 소속 동아리가 직접 청소년 버스킹 무대를 선보이는 모습 등 기존에 꾸마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이 청개구리에서 활동을 더 넓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청개구리는 부천시 오정구 고강본동 청소년들과 지역이 교류하는 만남의 장!>

    청개구리가 왜 만남의 장이 되는지는 지역자문회의, 성과보고회에서 나온 자료를 통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개구리에서는 향후 활동 방향을 정할 때. 참고할 자료로 참여 청소년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합니다. 제가 활동하는 2024~2025년에는 제가 그 역할을 맡았는데요, 직접 2024~2025년에 청개구리를 방문하는 이유를 물어본 결과, 재미/활동(37.0%), 식사(39.1%), 사람/관계(13%), 기타(10.9%)라는 결과가 나왔으며 좋았던 점에 관한 서술형 답변에서도 <어른들이 착하고 활기가 넘친다.>, <밥이 맛있다. / 밥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행사가 많아졌다. 노래방이 재밌었다.>라는 답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 경제적, 지리적, 심리적 상황을 고려해 청소년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결과, 청소년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동시에 지역 주민들은 청소년들의 니즈와 관심 분야 등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어 향후 청소년 대상 공익 정책과 사업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지역 주민(청소년 지도사 등)들과 친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큰 고민도 조금씩 털어놓을 수 있게 되며 이는 앞에서 언급한 건강-심리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을 빠르게 확보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청개구리 활동 중에 발생한 사고나 다툼이 있으면, 지역 주민들이 직접 중재하고, 해결하는 만큼 청소년들은 청개구리에서 활동하는 지역 주민들을 믿을 수 있다는 점도 청개구리의 특징입니다.

     

    <청개구리를 통해 공익을 위한 청소년 사업이 지향해야 할 길을 짚어봅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사업은 해당 지역의 자원(사람, 자연, 공간 등)을 고려하고, 니즈를 파악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기관, 단체에서는 청소년의 니즈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방법만으로는 청소년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자료로서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의견을 수렴하여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의견을 적극 보내는 것으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의 참여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청소년들이 변화를 위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 향상으로도 이어져 초반에 언급했던 청소년들의 심리적-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청개구리는 제가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며 초중고등학교에 다녔을때도 이미 운영하고 있었을 정도로 16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거쳐온 청소년 사업입니다. 비록 저의 경우에는 성인이 되고, 청년 상근활동가에 지원하면서 그때서야 청개구리 사업을 알게 되었지만, 만약 제가 청소년이었을 때에 청개구리에 참여했다면, 지금의 저는 어떤 모습일지, 어떤 의견을 제시했을지 궁금증이 생기고, 한편으로는 어렸을 적부터 참여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세대 간에 쌓인 격차를 풀어내고, 니즈를 반영하는 것은 청소년 사업에서 제일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러한 사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가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도 정책-사업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 애로사항을 줄여가는 방향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역 사회가 청소년을 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참고>

    https://www.law.go.kr/%EB%B2%95%EB%A0%B9/%EC%B2%AD%EC%86%8C%EB%85%84%EA%B8%B0%EB%B3%B8%EB%B2%95

    https://ggyouth.or.kr/05_provideInfo/youthStatsView.do;jsessionid=CFF9BE5F083B705C832C4B04BE97DB73?idx=261070&searchCondition=&searchKeyword=&pageIndex=1&typ


     
     
     
    지역 내 청소년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모인 부천시만의 공익 활동: 청개구리
    HANA

    조회수 323

    2026-06-29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 양 엄마 임선미 님

     

    날씨가 더워지니 올해 첫 수박을 샀다. 큰 쟁반에 놓고 쩍! 소리내며 가른다. 붉은 과육에 까만 씨에, 단물이 쟁반에 흐른다. 이래서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생의 마지막에 그린 수박 정물화에 ‘인생 만세(Viva la Vida)’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박을 한입 베어 먹으며, 나도 모르게 “비바 라 비다”를 외치니 말이다. 스페인어는 전혀 모르면서도 수박이 주는 달콤한 청량감에 삶의 기쁨을 노래한다.

    수박만이랴. 꽃과 나무와 하늘과 햇빛이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는 계절이다. 안산 상록구청 1층 갤러리 ‘혜안’에 가면 생명 가득한 그림을 볼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의 유화전(6월 12일~7월 3일)이다. 삶의 고통을 생명의 빛으로 그린 “빛의 정원, 또바기 유화전’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치유되고, 삶은 아름다웠다.”라 고백하는 사람. 세월호의 별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 양 엄마 임선미 님을 만나 보았다.

     

    또바기 유화전 갤러리 지킴이

    Q 또바기 유화전 축하합니다. 자기소개와 근황을 들려주세요.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 엄마 임선미입니다. 이번 전시회에 유화 여섯 작품을 냈어요. 한 10년 또바기 모임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어요. ‘또바기’는 아름다운 순우리말인데요.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겠다”는 모임이죠. 저는 원래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세월호 참사 전에는 어린이집 교사도 하고 아이돌보미도 했어요. 참사 이후에 도저히 아이들 보는 게 어려워서 못 하다가 올해 3월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어린이집 등원 도우미로 오전 두 시간 돌보는데, 세 살 네 살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아이들이 안기고 웃어주면 저도 모르게 웃게 돼요. 오늘도 아이들과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왔어요. 아이들이 주는 에너지가 참 커요. 집에 돌아올 때 기분이 좋아지고 삶에 의욕이 생겨요.

     

    연년생 두딸과 젊은 부부, 평범한 행복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Q 결혼 후에 계속 일하셨나요?

    결혼 전에는 광명시청에서 비정규직 공무원으로 근무했어요.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애들 키웠죠. 그때는 당연하게 그랬어요. 아이들도 직접 키우고 싶었고요. 두 딸을 연년생으로 낳아 키우며 전업주부로 오래 지냈죠. 둘째인 혜선이가 IMF 때 태어났는데, 남편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아끼고 살아도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죠. 그래도 아이들 키우는 재미로 버텼어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 봐도 행복했거든요. 애들이 중학교 가면서 어린이집 보조교사 일을 시작했고, 아이돌봄 서비스도 했어요. 저는 원래 아이들하고 있는 걸 좋아했어요. 아이들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노는 게 즐거웠어요.

    빛의 정원 또바기 유화전 리플릿 양면

     

    안산상록구청 1층 갤러리 혜안은 입구쪽 전시공간과 안쪽 공간이 벽 하나로 나뉘어진 열린 전시공간이다(좌)

    또바기 유화전은 갤러리 '혜안'의 안쪽 전시 공간. '빛의 정원' 포스터가 보인다(우)

    Q 지금 하고 있는 ‘빛의 정원-또바기 유화전’에는 언제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세월호 참사 이후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생명센터’를 운영했어요. 그 안에 여러 치유 프로그램이 있었죠. 도예도 하고 천아트도 하고 미술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끝난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그림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그림 선생님 강사료, 작업실에 그림 도구며 밥값까지 다 지원되니 계속할 수 있었어요. 와동성당 홍 신부님이 정말 큰 힘이 돼주셨어요. 신부님은 늘 우리를 가족처럼 대해주셨어요. 기도도 함께하고, 엄마들이 조금이라도 숨 쉴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셨죠. 그 덕분에 그림을 배우고 이렇게 전시회도 할 수 있게 됐어요.

    혜선이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길, 임선미 님 작품 '아득히 먼 곳'

    Q 그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그림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도 미술 시간이 제일 싫었어요. 소질도 없고 자신도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1년 늦게 들어왔어요. 다른 엄마들이 너무 잘 그리는 거예요. 저는 창피해서 제 그림을 다른 사람이 못 보게 돌려놓고 다녔어요. ‘나는 왜 이것밖에 못 그리지?’ 그랬는데 하다 보니까 조금씩 달라졌어요. 색을 쓰는 법도 배우고 빛을 표현하는 방법도 배우고요. 생각하며 그리다 보니 ‘똥손’이 ‘은손’ 정도는 된 거 같아요. 지금도 어렵지만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졌죠. 그림 그리는 시간을 좋아하고요.

     

    Q 그림 그린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던가요?

    가장 큰 건 마음이 치유되는 거죠.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 시간만큼은 그림에 집중하게 돼요. 저는 원래 음악 들으면서 뭘 못 하는 사람이에요.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림만 봐야 해요. 색을 맞추고 명암을 넣고 붓질하다 보면 집중하게 되고 마음이 정리되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힘들어서 한동안 쉰 적도 있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하고 싶더라고요. 왔더니 엄마들이 예전과 똑같이 맞아줬어요.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요. 그게 참 고마웠어요. 우리 세월호 엄마들은 서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거든요. 왜 힘든지, 왜 말이 없는지, 왜 갑자기 울게 되는지, 왜 쉬고 싶은지, 다 아니까요.

     

    꽃의 생명력이 뿜뿜하는 또바기 작품들

    Q 지금 함께 그림을 그리는 엄마들 이야기도 좀 해 주실까요?

    지금은 여덟 명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어요. 8반 엄마들이 많아요. 강지은(지상준 엄마), 고이경(임건우 엄마) 송미점(박선균 엄마), 이미숙(임현진 엄마) 이지연(김제훈 엄마), 그리고 1반 안명미(문지성 엄마), 10반 김경애(구보현 엄마), 그리고 저. 예전에 더 많을 때도 있었지만 힘들어서 떠난 분들도 있고 건강 문제로 못 나오는 분들도 있어요. 우리는 매주 화요일에 본오성당에 모여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림을 그려요. 그림 한 점 완성하기까지 몇 달 걸리기도 해요. 부지런한 어떤 엄마는 집에서도 계속 작업하지만 저는 화요일만 해요. 전시회를 열 때면 서로 작품을 봐주고 응원해요. 서로 비교하기보단 자기 작품을 끝까지 해낸다는 게 더 중요해요. 서로 응원하며 하죠. 건우 엄마가 디테일 표현이 탁월해요.

     


     

    혜선이는 아빠를 무척 좋아했다

    Q 혜선이 이야기해 주세요. 어떤 아이였나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어요. 제가 혜선이를 너무 이뻐해서 ‘우래기(우리애기)라 불렀어요. 연년생이었지만 혜원이도 동생을 ‘우래기’라고 했죠. 언니와 엄마를 무수리처럼 부리는데도 우리는 혜선이 말이라면 무조건 오케이였어요. 참 신기했어요. 삼겹살 비계도 발라 주고 바지락도 까줘야 하는 상전이었죠. 여섯 살 때부터 안경을 썼어요. 아기가 거꾸로 있어서 수술로 낳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태변을 먹어서 눈이 나빠진 게 아닌가 싶었어요. 선천적이라 라식도 라섹도 할 수 없는 상태라니 늘 마음이 쓰였죠. 집에서는 조용한 애가 학교 행사에선 노래하고 춤추는 걸 너무 잘했어요. 무대만 올라가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안산시 청소년 종합예술제에 나가서 2등을 한 적도 있어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혜선이가 집에 와서 울더라고요. 자기 팀이 더 잘했는데 친구가 1등을 한 게 억울했대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아, 우리 딸이 승부욕이 있구나. 노래를 정말 잘하는구나!’ 깜짝 놀랐어요. 평소에는 잘 몰랐던 모습이었죠.

     

    Q 혜선이의 꿈은 방송작가 국어 선생님이었잖아요?

    글 쓰는 걸 참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다고 했고, 나중에는 동국대 국문학과에 진학해서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나 꿈을 정했어. 수학여행 갔다와서 공부 열심히 할 거야.”라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돌아요. 2018년 11월 사단법인 한국방송작가협회가 혜선이를 ‘명예 방송작가’로 위촉해 줬어요. 명예회원증으로 혜선이의 꿈을 기억해 주니 감사히 받았어요. 저는 글쓰는 건 혜원이가 잘하고 음악 쪽 재능은 혜선이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일기도 열심히 썼고 글 쓰기 좋아했지만, 피아노도 잘 쳤고 노래도 정말 잘했어요. 절대음감이 있었어요. 혜원이가 먼저 음악 쪽으로 방향을 정하니 혜선이는 공부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어떤 길을 가도 자기 몫은 충분히 해냈을 아이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혜선(세실리아)

    Q 엄마로서 가장 미안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사춘기 때 일이에요. 친구 관계 때문에 왕따 비슷한 경험으로 힘들어했는데 제가 “혹시 너한테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한 적이 있어요. 부모로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 건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큰딸 혜원이도 이야기했어요.

    “엄마는 그때 무조건 혜선이 편을 들어줬어야 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혜선이는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었을 텐데 저는 오히려 상처를 준 거죠. 지금도 미안해요. 그리고 더위를 타고 땀을 많이 흘리는 혜선이는 에어컨 집에 살아본 적 없다는 게 마음 아파요. 에어컨 켜는 게 미안해요. 이모네 갔다오면 “엄마, 우리는 언제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으로 이사가?”라고 말하던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지금 우리는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에 사는데 혜선이는 없네요.

    사랑스런 혜선이

    Q 참사 이후 새롭게 알게 된 혜선이의 모습이 있나요?

    친구들을 만나면서 많이 알게 됐어요.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러더라고요.

    “혜선이는 늘 남을 먼저 챙겼어요.”

    “배려심이 많았어요.”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요. 남을 배려하느라 자기 속마음은 얼마나 숨겼을까 싶은 거죠. 그리고 엄마는 몰랐던 첫사랑 이야기도 있었어요. 학원 같이 다니던 친구였는데, 일기장에 그 아이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아, 우리 혜선이도 그런 감정을 느낄 만큼 컸구나’ 싶었어요.

    고2 수학여행 앞둔 봄날의 혜선

    Q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 기억은 무엇인가요?

    아직도 생생해요. 수학여행 가기 전에 캐리어를 사달라고 해서 분홍색 캐리어를 사줬어요.

    집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러더라고요.

    “엄마, 나 이거 끌고 가기 창피해.”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가방 메고 가는 애들이 더 창피하지. 너 인기 짱일 거야.”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도 분홍색 캐리어만 보면 그날 모습이 떠올라요. 계단을 내려가던 뒷모습, 목소리, 표정까지 다 기억나요. 내가 해 준 마지막 음식은 유부초밥이었어요. 평소에 별로 안 좋아하던 아이가 그날은 다섯 개나 먹고 갔어요. 제가 지금도 유부초밥을 잘 못 먹고 있어요.

     

    Q 지난 12년간 가족들은 어떻게 버텨왔나요?

    참사 후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활동을 같이 하면서도 남편은 힘들어하며 술로 버티는 시간이 길었어요. 일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았고요. 큰딸 혜원이도 마찬가지였어요. 원래 음악하던 아이였는데 결국 그 길을 포기해야 했어요. 참사 났을 때 같은 단원고 3학년이었으니 어땠겠어요. 혜원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곤 했어요. 세 식구 중에 제일 힘든 사람이 혜원이었으니까요. 글쓰기 응모에서 당첨돼서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을 통해 자기 미래를 다시 설계하고 돌아왔어요.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재수해서 대학에 갔어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 잘하다가 최근 더 높은 연봉으로 스카우트 돼서 이직한 게 너무 기특해요. 가족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온 것 같아요.

     

    혜선이를 생각하며 그렸어요. 작품 앞에서 전시회장 임선미 님(좌)/ 그림 앞에 선 혜선 아빠 박진오 님(우)

    Q 세월호 이후 임선미 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독해졌어요. 예전에도 할 말은 하는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더 그래요. 남 눈치를 덜 보고 남한테만 좋게 하려 하지 않게 됐어요. 가족들 챙기고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믿었건만, 세월호를 겪고 나니까 세상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는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어요. 하느님께 삿대질하며 원망하기도 했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그 과정을 버텨내면서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Q 지금 혜선이를 다시 만난다면 무엇을 보여주고 싶나요?

    많은 말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엄마가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 마음을 치유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게 됐다는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다시 어린이집 아이들과 잘 놀고 있다는 것도요. 혜선이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아이예요. 그래서 저는 그림을 그릴 때도, 어린이집 아이들과 놀 때도, 혜선이만 생각하면 미소가 넘쳐요. 제가 새로운 꿈을 꾸고 있어요. 혜선이가 음악을 좋아했듯, 저도 피아노를 배워서 성당에서 봉사하고 싶어요. 혜선이가 이런 엄마를 보면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지 않을까요. “엄마, 잘하고 있어.” 이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아요.

     

    Q ‘빛의 정원, 또바기 유화전’의 그림은 꽃과 자연이 많다. 특히 노란 해바라기가 생명력이 넘치게 피어 있다. 소재를 자연으로 택한 의미가 있을 거 같다.

    그렇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그렇지만 꽃과 자연이 우리 마음을 많이 위로하고 치유해 줬다.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노란색 꽃을 좋아하는 엄마들에게 노란 해바라기는 아이들 같다. 아이들의 웃음, 아이들의 생명력, 아이들과의 추억, 그리고 꿈, 모든 걸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꽃으로 피는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내 그림도 그렇다. 혜선이에게로 가는 ‘아득히 먼 곳’은 혜선이를 생각하며 그렸다. 빨간 동백꽃은 혜선이에게 못다 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림 그리기는 사랑스러운 우래기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노란꽃만그린건아니다. 현진 엄마 이미숙 님은 장미를 그리고 또 그렸다

    호박꽃도 노란색, 보현 엄마 김경애님 작품

     

      

    지성이 엄마 안명미 님은 자연과 함께 지성이 아빠 얼굴도 그렸다

    나무와 숲이 주는 치유. 선균 엄마 송미정님 작품 '힐링'

     

    파란 하늘과 하얀 목련이 혜선이로 보인다. 임선미 님 작품 '너와의 추억'

    아이를 생각하며 다녀온 '졸업여행'사진으로 그린 건우 엄마 고이경님 작품

     

    처연한 동백꽃 꽃술이 노랗다. 임선미 님의 작품 '못다한 사랑'

     

    "엄마 잘하고 있어! - 그림은 치유이자 딸의 목소리"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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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9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될 수 있었을까?

     

    30여 년 전인 1990년대 후반부터 시민사회에서는 아파트를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생활 공동체'로 바라보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특히 1998년 한 시민단체가 아파트공동체연구소를 설립해 아파트 분쟁 중재, 임대아파트 주민 권리 확대, 주민자치조직 활성화, 공동체 프로그램 개발 등에 나서며 이웃 간 단절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모델을 모색했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는 관리와 소유의 대상일 뿐 '마을'로 인식되지 않았지만, 시민사회는 꾸준히 아파트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특히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임차인이라는 이유로 관리비 내역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고, 입주자대표회의와 같은 주민자치조직을 구성할 권리도 보장받지 못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주민들의 노력 끝에 2000년 1월 임대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임차인대표회의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관리규약의 제·개정, 관리비 운영, 공용시설 유지·보수 등에 대해 임대사업자와 협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위스테이별내

    경기도 남양주에 조성된 국내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현재 491세대 약 1,400명의 주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단순한 아파트를 넘어 주민들이 직접 공동체를 만들고 운영하는 ‘마을형 주거 모델’을 실현하며 주목받아 왔다.

    단지 내에는 6개의 협동조합과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운영되고 있으며, 30여 개 동아리에서 300여 명의 주민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의 재능과 시간을 나누는 활동화폐 ‘별’을 운영하며 공동체 경제를 실험하고 있다.

    위스테이별내는 공동육아와 돌봄, 주민자치와 사회적경제가 어우러진 새로운 주거 공동체 모델로 평가받으며 한국 사회의 대안적 주거 문화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 6월 8일, 서울 명동의 커뮤니티 공간 '동네마실'에서 열린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 북토크 현장을 찾으며 자연스럽게 30여 년 전 아파트 공동체를 꿈꾸던 사람들의 고민이 떠올랐다. 그들이 상상했던 공동체의 모습이 오늘날 위스테이별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당시의 문제의식과 실천들이 20여 년의 시간을 거쳐 협동조합형 주거 모델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위스테이별내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주거 실험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아파트 공동체 운동과 주민자치의 흐름 위에서 탄생한 결과물처럼 보였다. 과연 위스테이별내 주민들과 협동조합은 어떻게 아파트를 공동체로, 마을로 만들어 왔을까?

     

    "8년 임대 아파트인데 의무 임대 종료 기간이 28년까지 2년 정도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조합이 만들어지고 입주하기 전까지 약 3년, 그리고 입주해서 지금까지 약 6년. 그 9년의 시간 동안 아파트 곳곳에서 마을을 만들며 살아왔습니다. 그 기억과 기록들을 이제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인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이 그간의 공동체 활동을 기록한 단행본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의 시작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상우 상임이사는 "이 자리는 엄숙한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왔는지 편하게 대화하며 나누는 축제"라며 행사의 문을 열었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출판 기념회를 넘어, 수직적이고 단절된 공간으로 여겨지던 아파트가 어떻게 수평적이고 연결된 '마을'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자리였다. 40여 명의 주민 작가들이 직접 써 내려간 360페이지 분량의 생생한 기록은, 주거 불안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공동체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절박함과 자부심이 빚어낸 10년의 기록

     

    위스테이별내 사회적협동조합 김경환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책을 출간하게 된 두 가지 이유를 밝혔다.

    첫째는 '절박함'이었다.

    "우리는 의무 임대 기간 8년 종료를 2년 정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많은 성과를 내고 수직적 구조의 아파트에서도 수평적 마을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음에도, 이런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있었습니다. 이런 아파트를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둘째는 '자부심'과 '책임감'이었다.

    김 이사장은 "우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협동조합 공동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많은 시행착오와 모범 사례를 갖고 있다"며, "이 사회적 자산을 묻혀두기 아까워 또 다른 위스테이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이자 매뉴얼로 이 책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책은 기획부터 원고 작성, 편집까지 모든 과정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 491세대 1,400여 명의 주민 중 300여명이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로 참여하고 있으며, 그중 40여 명이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다.

     


     

    변호사에서 주거 혁신가로, 양동수 대표가 말하는 '시작’

     

     

    이날 북토크의 첫 번째 토크 세션 '시작의 이야기'에는 위스테이 모델을 설계한 사회혁신기업 '더함'의 양동수 대표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로펌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한국 사회의 가장 구조적인 문제인 금융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겠다는 절박함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난민, 이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돕다 보니, 한국 사회가 점점 각자도생의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 전체가 점점 더 어려워지겠구나 싶었죠. 해외 사례를 보니 공동체 토지 신탁(CLT) 같은 좋은 제도가 많았지만 한국 법체계에서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임대주택 관련 법이 바뀌는 것을 보고, 일반 건설사가 아닌 사회적 경제 주체가 관여하면 훨씬 좋은 방안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양 대표는 위스테이별내 부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엔 허허벌판이었지만 뒤로 보이는 불암산과 청명한 날씨가 너무 좋았습니다. 여기서 뭔가를 하면 정말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는 이후 국토부, LH와 협의하며 사회적 협동조합 방식, 지분 구조 설계, 커뮤니티 공간 확보 등 위스테이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형제 아파트의 연대, 그리고 주거 중립성의 실현

     

    이날 자리에는 위스테이별내의 '형제 아파트'라 불리는 고양시 위스테이지축 사회적협동조합의 전승욱 이사장도 참석해 축하를 전했다. 전 이사장은 "별내가 2년 먼저 시작하며 겪은 어려움과 시행착오, 이를 풀어가는 방법들이 책에 잘 정리되어 있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며, "집이 돈이 아니라 삶을 지켜주는 공간이자 이웃과 연결되는 플랫폼으로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행사의 깊이를 더한 것은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隨處作住)'의 최경호 소장의 미니 강연이었다. 최 소장은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주거 문제, 특히 청년 세대의 '임대 세대화' 현상을 지적하며 위스테이 모델의 사회적 의미를 짚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의 주거 사다리가 끊어진 상황에서, 임대와 자가 사이의 이분법을 깨는 '주거 중립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0년, 40년을 저축해도 살 수 없는 집값을 빚내서 사게 하는 구조는 결국 다음 세대의 진입 장벽만 높일 뿐입니다. 임대와 자가 사이에 큰 구분이 없는 상황, 즉 '주거 중립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협동조합을 통해 간접 소유하면서도 임대차 관계를 맺는 위스테이가 바로 그 대안적 영역입니다."

    "협동조합을 통해 간접 소유하면서도 임대차 관계를 맺는 위스테이는 소유이면서도 소유가 아니고, 임대인이면서도 임대가 아닌 제3의 영역입니다. 이런 모델이 많아져야 임대로 살든 자가로 살든 큰 차이가 없는 사회가 됩니다. 또한, 위스테이처럼 다양한 평형이 섞여 있어야 노후에도 평생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이사하며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가 가능해집니다.”

     

    최 소장은 특히 '커뮤니티 시행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건축물만 짓는 시행사가 아니라, 갈등을 조율하고 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마을 활동가와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위스테이별내가 보여준 9년의 기록은 바로 그 커뮤니티 시행의 성공적인 사례입니다.”라며 위스테이별내가 커뮤니티 공간을 단지 외부와 나누고, 다양한 평형을 섞어 세대 간, 계층 간 어울림을 만들어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는 아파트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지역 사회와 호흡하는 진정한 의미의 마을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파트, 다시 마을을 꿈꾸다

     

    북토크 현장은 주민 작가들이 자신들의 얼굴이 새겨진 도장을 찍어주며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는 따뜻한 풍경으로 가득 찼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등 다양한 주거 공동체 관계자들도 참석해 연대의 뜻을 밝혔다.

     

    행사를 진행한 이상우 상임이사는 "위스테이별내의 아파트 공동체가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만의 섬으로 고립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청년과 시니어가 함께 어우러지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계속해서 흐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치열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그 속에는 내 집을 넘어서 우리 마을을 고민했던 진심이 녹아 있습니다."

     

    김경환 이사장의 말처럼,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이웃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콘크리트 숲 속에서도 온기 넘치는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다.

     

    의무 임대 기간 종료라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위스테이별내 주민들은 여전히 함께 밥을 먹고, 신문을 만들고, 책을 펴내며 마을을 가꾸고 있다. 이들의 치열하고도 따뜻한 기록이 앞으로 대한민국 주거 문화에 어떤 변화의 씨앗을 틔울지 기대해 본다.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이웃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콘크리트 숲 속에서도 온기 넘치는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다. 의무 임대 기간 종료라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위스테이별내 주민들은 여전히 함께 밥을 먹고, 신문을 만들고, 책을 펴내며 마을을 가꾸고 있다. 이들의 치열하고도 따뜻한 기록이 대한민국 주거 문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파트는 어떻게 마을이 되었나: 위스테이별내 북토크 현장을 가다
    두근

    조회수 148

    2026-06-26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공익(公益)’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떠올리는 풍경이 있습니다. 세련된 회의실, 정갈하게 인쇄된 브로슈어, 혹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비장한 표정의 활동가들. 하지만 인간의 자잘한 발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싶은 저에게, 공익은 종종 엉뚱한 곳에서 낡은 슬리퍼를 신은 채 발견되곤 합니다. 이를테면, 안산의 어느 버스 정류장 앞, 조잡하게 쓰인 커트+염색 만원이라는 입간판 같은 곳에서 말이죠. 제가 발견한, 세상에서 가장 싸고 가장 향기로운 어느 미용실의 이야기를 만원의 공익으로 재구성했습니다.

     
     
     

    1. 만원이라는 비현실, 추억이라는 현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손바닥만 한 입간판에 씌어 있는 네 글자. ‘커트+염색 만원’. 처음엔 뭔가 잘못 읽은 줄 알았다. 2층을 올려다보니 '김량현 헤이클럽'이라는 간판이 창문에 붙어 있었다. 창문에도 커트+염색 만원문구가 크게 쓰여 있었다.

     

    요즘 세상에 만원의 가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카페에 앉아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조각 케이크 하나를 더하면 가볍게 만원을 넘어선다. 내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는 비용은 동네 미용실에서도 어느덧 만 원권 지폐 한 장을 더 요구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커트와 염색 합쳐서 만원이라니. 이건 자본주의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종의 유쾌한 도발이다.

     

    그 낡은 입간판을 보는 순간, 내 안의 오래된 서랍 하나가 삐걱거리며 열렸다. 고등학교 시절, 동인천 대한서림 사거리에 있던 미용 기술학교. 주말이면 미용을 배우는 학생들이 실습 겸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머리를 깎아줬다. 어머니에게 이발비를 받아 싼 맛으로 이발하고, 남은 돈으로 만화책을 봤던 얄팍한 추억이 살아났다. 때로는 고등학생인 나보다 어린 학원생이 손을 바들거리며 가위를 들었다. 가끔은 쥐가 파먹은 듯 삐죽거리는 머리를 보며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뒤에서 쓱 가위를 뺏어 들고 능숙하게 수습해 주던 선생님의 손길이 있어 안심했던 시간이었다. ‘커트+염색 만원이면 아마 그때와 비슷할 듯 속으로 웃음이 비죽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비현실적인 가격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설령 머리를 망친다 한들 어떠랴. 내가 카메라 불빛을 받는 연예인도 아니고, 머리카락이란 결국 자라나기 마련인 유한한 세포 뭉치일 뿐인데. 호기심이라는 유치한 연료를 채우고, 나는 2층 계단을 올랐다.


     

    2. 미용실의 외피를 두른 기묘한 대피소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잠시 공간의 좌표를 잃었다. 그곳은 미용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한 창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온전한 살림집도 아니었다. 미용 도구와 정체불명의 살림살이들이 기묘한 동거를 나누는 공간 한가운데, 낡은 미용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초현실적인 풍경에 압도되어 슬그머니 발을 빼려던 찰나, 사장님이 튀어나왔다.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그러나 눈빛만큼은 지독하게 해맑은 얼굴로.

    머리 깎으러 오셨어요?”

    , 아니에요. 지나가다 궁금해서다음에 올게요.”

    평일 오전이라 한산하지, 주말엔 장난 아닙니다. 아무도 없을 때 깎고 가세요.”

    그의 자연스러운 호객에는 묘한 자력이 있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의자 위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개 두 마리였다.

    미용실에 개가 있네요?”

    저 칸막이 뒤에 네 마리 더 있어요. 총 여섯 마리죠. 개 좋아하세요?”

    아니요겁이 많아서 동물은 다 무서워합니다.”

    내 고백에 사장님은 호탕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 녀석들은 손님만 오면 알아서 창가 지정석으로 가요. 안 짖어요.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그러네. 신기하죠?”

    공간에 가득한 미약한 개 내음과 비염이 있는 내 코의 긴장감 속에서, 그렇게 기묘한 이발이 시작되었다.

     
     

     

    3. 안산에서 가장 싸고,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가위질 소리 사이로 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가격으로 운영이 돼요?”

    사장의 대답은 단순했다.

    저는 강아지 밥값만 벌면 돼요.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딱 필요한 만큼만 벌죠.”

    그는 이전에 본오동에서 미용실을 할 땐 커트와 염색에 6천 원을 받았다고 했다. 국회의원도 단골이었고, 직원도 둘이나 뒀던 잘나가는 원장님이었다. 혼자 이곳으로 옮겨오며 가격을 인상한 게 고작 만원이란다. 이야기 도중, 사장님이 갑자기 창문으로 돌진하더니 창밖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엄마! 그거 열무야? 맛있겠다! 나도 줄 거지? 땡큐! 그럼, 내일 9시에 와요, 파마하게!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

     

    돌아선 그의 얼굴엔 멋쩍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동네 어르신인데 파마할 때가 지났는데도 안 보이시길래, 언제 지나가나 창밖을 매일 살폈단다.

    여기로 이사 온 후부터는 혼자라 파마는 안 하는데, 80세 이상 할머니들만 아침 일찍 해드려요. 우리 가게는 80세 이상이면 파마든 커트든 염색이든 다 무료거든. 폐지 줍는 어르신들도 오시고어떤 날은 하루 종일 공짜 손님만 치러요.”

    그럼, 강아지 밥값은요?”

    내가 걱정스레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대신 주말에 손님이 많아요. 평일엔 택시 기사님들이 오시고. 강아지 밥값은 충분합니다.”

     
     
     

    4.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의 무게

    염색약이 머리카락에 스며드는 긴 시간 동안, 나는 한 남자의 행복론을 들었다. 강아지들과 살다 보니 아무리 청소해도 개 냄새가 나고, 그게 미안해서 손님들에게 비싸게 돈을 못 받겠다는 남자. 어르신들을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가위를 쥔 손에 차마 돈을 쥐지 못하겠다는 남자. 저녁 6시에 문을 닫고 청소를 끝낸 뒤, 창밖을 보며 소주 한 잔을 기울일 때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는 남자. 머리가 끝났다. 거울 속 내 모습은 꽤 단정했고,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묵직해져 있었다.

    고맙습니다. 여기 만 원이 참 부끄럽네요.”

    지갑을 열려는데 사장님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왕이면 계좌이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보통은 세금이나 탈세를 떠올리며 의아해할 타이밍이다. 하지만 그의 다음 대답은 내 세속적인 짐작을 기분 좋게 무너뜨렸다.

    다음에 오실 땐 현금 주시고요, 오늘 처음이잖아요.

    첫 손님은 계좌이체로 받으면 고마우신 손님 이름이 찍히니까.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래요.”

    싸게 머리 깎은 내가 더 고마운데요.”

    아니에요. 나한테는 우리 애들 밥값 주시는 고마운 분입니다. 이름은 알고 있어야죠.”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상거래를 넘어, 당신과 나 사이에 하나의 유대를 맺겠다는 선언이었다. 만 원짜리 한 장에 이름의 기억을 덤으로 주는 미용실이라니. 이 얼마나 위트있고, 다정한 경영 방식인가.

     

    5. 창밖의 소주 한 잔, 우리가 잊었던 공익

    그 후로 종종 나는 그 2층 창가를 바라본다. 어떤 날은 사장님이 홀로 창밖을 보며 쓸쓸히, 그러나 유연하게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고, 또 어떤 날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하게 잔을 부딪치고 있다. 그 풍경을 보며 나는 공익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쓴다. 공익은 멀리 있지 않다. 거창한 사회 운동이나 대단한 기부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버려진 유기견들을 거두어 제 식구로 키워내고, 지나가는 동네 노인의 안부를 창문 너머로 소리 높여 물으며,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의 머리를 대가 없이 다듬어주는 것. 그리고 나를 찾아온 낯선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

     

    비염이 있는 나에게 그 미용실은 코끝이 간지러운, 그리 녹록지 않은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만간 그곳의 문을 다시 열 것 같다. 이미 그 남자의 따뜻한 가위질에 중독되어 버렸으니까. 행복이 만 원짜리 한 장으로 거래되는 그 이상한 미용실은, 오늘도 안산의 한구석에서 세상을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구원하고 있다.


    김량현 사장
     
    만원의 공익
    윤작가

    조회수 163

    2026-06-26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행사 포스터)

     

    안산(安山). 사람들은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도 결국 사는 곳이 안산이라고.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뭔가 씁쓸한 진실이 담겨 있다. 집값이 싸서, 공장이 가까워서, 달리 갈 데가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도시. 그러나 나는 이 이름을 다르게 읽고 싶다. 안전하게(安全하게) 산다. 안전하게 살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의 도시. 그것이 안산이어야 한다, 그래서 59일의 행진은 말하고 있었다.

     

    (행사 진행 요원)

    오후 세 시, 두 갈래의 물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원고 앞 원고잔 공원 입구에서 한 줄기가, 중앙동 월드코아 광장에서 또 한 줄기.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따뜻한 봄볕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깃발을 들고 있었다. 깃발이란 원래 선언이다. 내가 여기 있다는, 내가 이것을 원한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행진 전)
     
     
    (안전도시에 산다 깃발)                                                   (선두에 선 라퍼커션)
     

    라퍼커션의 드럼 소리가 먼저였다. 타악기의 진동은 공기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슴팍을 두드리고,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무릎을 움직이게 한다. 사람들이 걸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이윽고 자연스럽게, 마침내는 즐겁게. 선두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배치가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안전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 한마디 없이 그 줄 세움이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뒤로 시민들이 이어졌고, 후미에는 노동자들이 든든하게 받쳤다. 안산시청 앞에서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그것은 이미 강이었다.

     
     
    (행진)
     

    나는 깃발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손으로 만든 깃발, 글씨를 써넣은 깃발, 그림을 그려 넣은 깃발. 깃발 컨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은 일동 지역아동센터가 만든 '우산 깃발'이었다. 우산. 비바람으로부터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그 단순하고 완벽한 상징. 어른들이 수십 장의 기획안과 정책 문서로 표현하려 했던 것을 우산 하나로 해냈다.

     
    (우산 깃발)
     

    안전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비가 올 때 곁에 우산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혼자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산업단지에서 일하다 다친 이주노동자에게 말이 통하는 안내가 있다는 것. 노후 건물에 혼자 사는 노인에게 누군가의 시선이 닿는다는 것. 장애인이 휠체어를 밀며 이 도시의 어느 골목이든 막힘없이 갈 수 있다는 것. 이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걸었다.

     
     
    (몸 깃발)
     

    며칠 전, 조용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이 있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꼭 12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12. 그 긴 시간 동안 유가족들은 거리에 섰고, 시민들은 광장에 모였고, 활동가들은 국회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법이란 선언이다. 이제 안전은 국가가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라고 이 나라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늦었다. 그러나 왔다. 그리고 온 것들은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시청 앞)
     

    안산은 희생자 250명이 학교에 다녔고, 골목에서 뛰어놀았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안산은 세월호의 도시였다. 슬픔의 도시, 기억의 도시. 그러나 안산 시민들은 슬픔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물었다. "세월호 이후 안산은 정말 안전해졌는가." 기억이 기억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고. 질문은 행동이 되었고, 행동은 130개의 지역 주체가 모인 시민추진위원회가 되었다. '304개의 노란 테이블' 시민대토론회가 되었고, 마침내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되었다. 이제 안산은 세월호의 도시가 아니라, 안전의 도시로 거듭나려 한다. 슬픔을 동력 삼아, 변화를 향해.

     
     
    (광장)
     
    (살판 식전 공연)
     

    안산문화광장 물의광장. 시장 후보들이 나란히 섰다. 더불어 민주당 천영미 후보, 국민의힘 이민근 후보, 조국혁신당 조안호 후보, 진보당 홍연아 후보. 서로 다른 정당,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섰다. 이주민 대표가 앞으로 나왔다. 언어가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이 도시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안전해야 한다고. 장애인 대표가 나왔다. 도시의 턱을 없애달라고, 경사로와 점자블록이 방치되지 않는 도시를 만들어달라고. 노동자 대표가 나왔다. 산업단지에서 매년 반복되는 사고를, 더 이상 개인의 불운으로 처리하지 말아달라고. 시민 대표가 나왔다. 이 모든 요구가 선거철 공약이 아니라, 임기 내내 지켜야 할 약속이 되어달라고.


    (시장후보)
     

    다섯 가지였다.

    1. 도시 비전 및 행정계획 수립: 4.16 정신을 계승한 중장기 안전 전략 마련

    2. 시민안전센터설치: 시민과 소통하며 일상 속 안전 교육을 전담할 기구 마련

    3. 안전투자 적극 확대: 재난관리기금 조성 비율 상향 및 안전 인프라 예산 증액

    4. 안전영향평가제도화: 취약계층의 관점에서 정책의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점검

    5. 전담 행정조직 확대: 분산된 안전 부서를 통합하고 민관 협력 거버넌스 내실화

     

    생명·안전 가치를 담은 도시 비전 및 행정계획 수립. 시민안전센터 설치. 안전 예산과 재난관리기금의 적극적 확대. 안전영향평가 제도화. 생명·안전 전담 행정조직 확대와 민관협력 거버넌스 강화. 어렵지 않은 말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실제 예산이 되고, 조례가 되고, 담당 부서가 생기고,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정책 설계 단계부터 반영되는 일은, 누군가 끊임없이 요구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걸었다. 그래서 전달했다.

     

    정치인의 약속이란 언제나 유효기간이 불분명하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이주민과 장애인과 노동자의 손에서 직접 건네받은 요구안을 들고 한 약속은 조금 다르다. 증인이 있는 약속은 그 무게가 다르다. 이날 광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그 약속의 증인이다.

     
     

     

    행진이 끝나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깃발은 접혔고, 드럼 소리는 멎었고, 광장은 다시 평범한 광장이 되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달라졌다. 그것은 도시의 표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변화다. 함께 걸었다는 사실, 같은 방향을 향했다는 기억, 우리가 원하는 것을 큰 소리로 말했다는 경험. 이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도시란 무엇인가. 건물과 도로와 행정구역의 합산이 아니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책임감의 총합이다. 내 옆집 사람이 오늘 안전한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지, 이주민 아이가 아플 때 말이 통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이것을 묻고, 따지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함께 걸었던 59일의 안산은, 그래서 잠깐 더 나은 도시였다.

     

    안전하게 산다. 그래서 안산이다. 함께 걸었던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2026년 5월, 안산에서*
    안전하게 산다, 그래서 안산이다
    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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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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