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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대받는 한 끼가 만드는 아이들의 이바쇼

    어린이 식당운동은 도쿄 외곽의 작은 동네 골목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큰 재난으로 일본 사회는 어두워졌고, 아동 빈곤율은 치솟았다. 방학에도 돌봐줄 사람이 없이 배회하는 동네 아이들의 모습은 누구나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좌절감이 사람들 사이에 스며있었다. 

    그때 도쿄의 한 채소가게 주인 『곤도히로시』는 달랐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2012년 여름. 동네 아이들 몇몇을 자신의 채소가게로 불러 모아서 식사를 대접하고, 어린이 식당이라고 명명했다. 이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 움직임은 2026년 일본 전역에 12천 개가 넘는 거점으로 확산되었다. 어린이 식당은 빈곤 아동만을 위한 급식소가 아니다. 어린이 식당은 아이와 어른, 이웃과 이웃이 밥상 공동체를 통해 무너진 지역 사회의 관계를 회복하는 마을의 거실이다.

    이 운동의 핵심 키워드는 이바쇼(居場所)’. 이바쇼는 한국어로는 단번에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라고 한다. 장소를 뜻하면서도 내 모습 그대로 있어도 되는 곳, 평가받지 않는 곳, 기댈 사람과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또한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람에게도 당신은 나의 이바쇼입니다라는 식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안식처비빌 언덕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우리 사회의 아이들 또한 재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19가 남긴 가장 아픈 상흔은 고립단절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세상은 부모 외에는 믿을 사람도, 기댈 곳도 부족한 각박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학교 문을 나서면 돌봄 시설과 학원을 전전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영양분이 아니다. 자신을 온전하게 반겨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이곳에 존재해도 좋다는 안도감, 이바쇼(내 자리가 있는 곳)’의 경험이다.

     

     

    공릉동 어린이 식당 작은 숲’, 마을의 느슨한 연대가 차려낸 식탁

    서울 공릉동에서도 이 따뜻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어린이 식당 작은 숲2011년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개설 이후 15년간 다져온 꿈마을공동체’(다양한 사람과 단체가 느슨하게 연결된 지역 네트워크이며, 마을 교육공동체)의 자발적인 에너지가 응축된 결과물이다이곳의 식탁은 어느 한 기관의 힘으로만 차려지지 않는다. 지역의 작은 교회와 성당, 주민자치회와 작은 도서관, 학교와 복지관, 마을협동조합원 등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식당을 열고 있다.

     

    어린이 식당에 온 손님들과 운영진
     

    이곳의 식당은 2024년 말부터 매달 열리고 있다. 여러 단체가 힘을 모으고 있고,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책임을 나누니, 음식을 만드는 일은 1년에 한 번만 담당하면 된다. 완벽한 급식 서비스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어린이와 이웃이 만나 이야기를 꽃피우는 관계의 식탁이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은 어린이 식당이라고 표기한다. 오타가 아니라 어린이어른의 만남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을 기업 나눔과 이음은 알록달록한 비빔밥을 준비하고, ‘한살림 북서울노원지구는 생명의 가치를 담은 정성 어린 주먹밥을 만든다. 시간을 내어서 일부러 방문한 주민자치회장님은 달콤한 디저트를 선물한다. 여기에 수공예 작가 모임인 마디상회는 라탄 바구니와 꽃병으로 식탁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소박한 한 끼지만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아이들의 얼굴은 싱글벙글 즐겁다. 친구와 함께, 부모님과 같이 온 아이도 있고 가끔 혼자 온 아이도 식당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외롭게 서 있다. 즐겁게 음식을 준비하고 어른들이 다가가 환대하며, “어린이 식당에 왔구나! 어서 오렴이라고 다정한 말을 건 낸다. 청소년들은 손님으로도 오지만 테이블 매니저로도 함께한다. 동네 형, 누나들은 아이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맵기는 어떻게 해줄까?”, “요즘 학교에서 재밌는 일은 뭐야?”라 물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내는 유능한 일꾼이 된다.

     

    어린이 식당을 마치고,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작은숲 운영위원회

    지속 가능한 어린이 식당 운동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

    우리는 식당을 운영하며 일본 어린이 식당 운동본부인 무스비에가 정한 다섯 가지 원칙을 가슴에 새긴다.

    첫 번째는 자발성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아이를 아끼는 마음과 베푸는 즐거움에서 스스로 시작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다양성이다. 모든 아이의 개성이 다르듯, 식당 또한 엄격한 매뉴얼로 정형화되지 않고 운영 주체의 형편에 맞게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다.

    세 번째는 포용성이다. 특정 대상만을 위한 선별적 서비스가 아니기에, 저소득을 증명할 필요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네 번째는 공익성이다. 어린이가 영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종교적 강요나 사익 추구의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마지막은 지역성이다. 아이들이 돌봄 시설을 찾아 멀리 가지 않아도 골목에서 친구와 이웃을 만날 수 있을 때, 마을은 비로소 살맛 나는 공동체가 된다.

    이러한 다섯 가지 원칙은 어린이 식당이 단순히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복지나 교육 서비스를 넘어, 평범한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작은 변혁(무브먼트)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실제로 이 원칙들은 식탁에 앉은 아이들과 식탁을 여는 이웃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공동체 식탁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파트 층간소음 갈등의 대상에서 반가운 이웃으로 전환된다. 일 중독과 빈둥지증후군으로 상실감에 빠져있던 중년의 시민들에게는 사회적 양육자라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준다. 아이들의 미소로 연결된 시민들은 아동친화도시라는 행정의 선언을 살아 숨 쉬게 만들 수 있다.


    어린이 식당 활동가 대회

    어린이 식당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에너지는 공릉동을 넘어서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 열기를 확인한 자리가 바로 20251016일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서 열린 어린이 식당 활동가 대회였다. 서울, 경기 뿐 아니라 제주, 부산, 대구, 광주, 충북 전국에서 어린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 어린이 식당을 해본 사람들, 어린이 식당 운동이 지역에서 펼쳐지길 희망하는 사람들 85명이 모였다. 그 사람들은 복지관 사회복지사, 청소년센터 직원, 협동조합 구성원, 일반시민과 학부모들로 다양했다. 우리는 이 운동의 확산 가능성을 실감했다.

    이후 내가 일하는 노원구 지역에도 어린이 식당이 퍼져나가고 있다. 상계동에 위치한 청소년센터로, 경춘선 숲길 작은 도서관으로, 중계동 어린이도서관 근처 작은 공간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타 지역에서 어린이 식당 사례를 듣고자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린이 식당 운영진

    문턱을 낮추면 마을 곳곳이 식당이 된다.

    어린이 식당은 거창한 전용 건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엄청나게 많은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최고의 음식을 제공할 필요도 없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역시 작은 싱크대 하나로 식당을 운영한다. 마을의 문턱을 조금만 낮추면 우리 곁의 모든 공간이 아이들의 식탁이 될 수 있다. 낮 시간에 비어있는 주민센터 회의실, 마을회관, 작은 도서관, 동네 작은 교회나 성당, 심지어 학부모들이 모이는 작은 카페 공간도 훌륭한 식당이 된다. ‘누가 밥을 주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하는가이다.

    마을 곳곳에서 식당이 펼쳐질 때, 아이들은 어른을 신뢰하게 되고 어른들은 아이 뿐 아니라 삭막한 이 도시를 함께 돌보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된다. 경기도 전역에, 그리고 우리가 사는 모든 동네에 이 관계 회복의 식탁이 차려지기를 소망한다.

     

    어린이 식당 4월 홍보지
    어린이 식당, 관계 회복을 위한 가장 따뜻한 초대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센터장 이승훈

    조회수 86

    2026-04-16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휠체어와 함께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한다. 늦게 시작한 공부와 일, 아이를 키우며 멈춰야 했던 시간, 그리고 다시 장애인 활동가로 살기까지, 그는 휠체어로 스스로 길을 내며 살아왔다.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총괄팀장이자 동료상담가 조은상 활동가를 소개한다.


    = ‘동료상담가’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소개부터 부탁해요.

    - 저는 안산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IL’)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도움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을 상상하잖아요. 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의 정신은 장애인을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바라보는데요, 장애인 당사자가 또 다른 장애인 동료와 하는 상담이죠. 단순히 ‘비슷한 처지끼리 하는 대화’가 아니라, 기존의 전문가 중심 상담 모델로부터 해방된 고도의 정치·사회적 치유와 임파워먼트
    Empowerment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정신과 의사나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을 진단과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상담이죠. 동료상담은 그런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로부터의 해방된 평등한 관계 모델이라 할 수 있어요. 장애인 스스로가 자기 삶의 전문가라고 선언하는 거죠. 자격증의 권위가 아니라 장애를 안고 살아온 ‘생존의 역사’ 자체가 상담의 강력한 도구죠. 상담의 목표 역시 상담가가 아니라 내담자 스스로 ‘자기결정권’으로 설정하고요.

    동료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대등한 관계로 진행해요. 한쪽이 가르치거나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나도 그랬다”는 공감을 서로 나누는 거죠. 이 모든 과정이 자립생활 모델과 결합해요. 내면의 힘을 길러서 결국 시설이나 집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살아가게 하는 힘. 더 나아가 개인의 변화를 넘어, 사회의 책임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동력이 되고요.


    = 와~ 자립생활센터가 어떤 곳인지도 소개해 주셔야겠어요.
     

    장애인복지관과 비교해 볼게요. 이전엔 서비스를 받거나 이용하러, 즉 이용자로서 장애인복지관을 드나들었어요. IL센터에서는 장애인이 행동의 주체가 돼요. 이용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이 직접 일하고 활동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단체죠. 환경과 사회를 장애물이 없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사회 변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을 돕는 것을 넘어서 사회를 바꾸는 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삶의 운동이자 삶의 일부예요.

    IL의 가장 기본 정신이 권리옹호, 자기결정권과 자기선택권인데요. 어디서 살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와 같은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인생의 큰 항로까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해요. 거기엔 실패할 권리도 포함돼 있고요. ‘장애인을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장애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라는 당사자주의고요. 소장부터 내부의 주요 의사결정자들까지 센터 인력의 과반수가 장애 당사자인 것도 그 때문이고요.

    장애가 있다고 사회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야 할까요? IL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우러져 사는 것을 지향해요. 물리적 건물만이 아니라 교육·노동·문화생활 등 모든 사회적 기회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죠. 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문제로 보는 사회적 장벽Social Barrier’이 문제라고 보는 겁니다. 이 운동의 핵심은 개인의 재활이나 극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있는 거죠.


    = 어쩌다 이렇게 엄청난 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을까요?

    - 처음엔 아는 언니 따라왔죠. 사진 동아리 ‘포커스휠’에 나가면서도 별로 적극적인 회원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센터에서 동료상담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동료상담을 진행해본 게 첫 출발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센터활동도 하게 되고 그러다가 집단동료상담 리더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죠. 내가 ‘불쌍하고 불행한’ 장애인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구조적 모순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거죠. 장애인 동료상담가들이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직업을 갖기 위해 자격증도 따고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센터 활동과 동료상담을 하면서 왜 자립생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센터에서 간사부터 팀장, 센터장까지 경험했고, 지금은 상록수IL센터 총괄팀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IL센터이지만 일에 집중하다 보면 가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갈등이 생길 때도 있어요. 그래서 현장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스스로 돌아보게 돼요.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업무 회의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사무실 책상 앞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IL센터 활동 동료상담 사진제공 조은상



    = 공부를 늦게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장녀로 태어나 돌 무렵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걷지 못하게 됐어요. 동생이 셋이었으니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부모님은 저만 집중해서 돌보기 어려웠을 거예요. 입학할 나이가 됐지만 학교까지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고, 동생들을 희생시킬 순 없지 않냐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럴 때마다 부모님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 말 못 하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집에서 가정교사를 통해 조금씩 공부했지만 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책을 읽었어요. 

    20대에 직업 훈련원에서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고 보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대 후반에 검정고시를 시작했어요. 결혼하고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느낌이 더 컸어요. 방송대 교육학과를 계속 장학금 받으며 졸업했어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어요. 서로 과제를 알려주고 시험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했던 경험이 컸어요. 그때 공부는 혼자보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느꼈어요. 
     

    = 장애 여성으로서 전에 하신 일과 사회생활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어요?

    - 장애인이라고 하면 부모가 희생하거나 당사자가 희생하거나 그런 구조잖아요. 공부 기회를 놓치고 사회에 나갔기 때문에 저는 더 열심히 배우고 일했어요. 장애인기능대회가 있었는데 나가서 금메달을 땄어요. 이제 세계 대회를 나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연습했고 프라하 세계 장애인 기능대회 나갈 티켓도 땄어요. 그런데 저한테 기술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그렇게까지 할 거 있냐고 반대하시더라고요.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하든지, 장애인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구나, 상처를 많이 받았죠. 튀지 않고 착한 장애인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어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작업장이었는데, 수녀님들이 제 결혼을 걱정하고 반대했어요. 부모님도 심하게 반대해서 5년을 미루다 결혼했어요. 동료상담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비슷했어요. 장애 여성은 교육, 결혼, 출산, 일 등 여러 선택에서 뒤로 밀리고 편견의 대상이에요.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놀라고, 집이 깨끗하다고 놀라고,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놀라요. 장애인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해요. 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 비장애인 여성도 두려워하는 결혼인데 참 씩씩하게 사셨어요. 아이 낳고 키우며, 또 워킹맘으로 살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 30대 후반에 아이를 가졌을 때도 일을 쉬지 않았어요. 배가 불러서 운전하기 힘든데 사장님이 나와서 같이 밥이라도 먹자며 부르셨어요. 당시엔 생소했던 강아지 옷 만드는 일이었는데 일이 많아서 새벽 7시에 출근해서 야근까지 하는 날이 많았어요. 한번은 폭설이 내려 청계 터널에서 2시간을 갇혀 있었는데, 다음 날 보니 타이어가 터져 있더라고요.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 아이랑 저랑 정말 주님이 살려주셨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결혼할 때도 그랬어요. 장애인이 어떻게 살 거냐, 아이는 어떻게 키울 거냐. 저도 아이는 낳지 말자 생각했었죠.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양육에 자신도 없었죠. 어느 날 밤늦게 퇴근하면서, 일만 하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갖기로 했어요. 임신과 출산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이동도 어렵고 병원 가는 것도 힘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일을 할 수 없었어요. 맡길 곳이 없어서 제가 아이를 돌보게 되었어요.


    안산의 리프트 택시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 센터에서 진행된 안산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착한 장애인’이라는 기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 가족 안에서 화목하게 살기 위해서는 많이 참아야 했어요. 장애인이기도 하고 여성이라는 점이 겹치면 어떨까요? 장애인 여성은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어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자존감은 많이 낮아져 있었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남들보다 사회생활도 그렇고 뭐든 다 늦었으니까 나는 더 빨리 잘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었어요. 이걸 ‘맏딸 콤플렉스’라고 하죠? 부모님한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고, 장애인이라 못한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딱딱 다 잘 해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10년 IL 활동을 하며 조금씩 달라졌어요.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서로 힘들게 하잖아요. 이제는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말해요. 어머니에게도 이번에는 못 간다고 말하게 되었어요. 그럴 힘이 생겼죠. 


    =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아이를 키우다가 어느 순간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한 언니가 등록금을 내줄 테니 공부를 꼭 하라고 말했어요.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버지도 응원해 주셨어요. 마흔 넘어 다시 공부할 때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엄마가 보내준 김치 통 사이에 아버지가 학비에 보태라고 몰래 30만 원이 든 봉투를 넣어두셨는데, 김칫국물에 젖은 그 봉투를 보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나 삶의 전환점이 있었나요?
     

    - 2014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를 많이 도와주던 언니도 돌아가시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어요. 그 시기에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요. 솔직히 우울함도 있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 사건이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그냥 뉴스에 나오는 사건이 아니라 내 아이의 일처럼 느껴졌죠.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이래도 되는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힘든 시기를 통과하며 지역에서 하는 집회나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됐어요. 큰 역할은 아니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연대하고 같이 있는 사람,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4.16시민대학 사진제공 조은상


    세월호참사 10주기 4160인 합창에 참여하고 사진제공 조은상


    안산시민연대 촛불문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장애인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라고 보십니까?

    - 일은 삶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센터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분이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사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라던 말을 잊을 수 없어요. 큰 변화라고 느꼈어요. 일하고 돈을 벌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게 장애인의 삶의 위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살게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중증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수입 이상의 의미를 가져요. 사회의 구성원으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더 커요.

    그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 불러요. 시혜적 성격을 거부하고, 이동권, 탈시설, 교육 등 장애인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날이죠. 올해도 3월 26일에 청와대 앞에서 <22회 3.26 전국장애인대회 및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식>을 열었어요. 최옥란 열사 기일에 열린 22회 3.26 대회였죠. 효자동 복지센터 인근에서 출발해서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하고 집회와 열사들을 기리는 추모제도 진행했어요. 많은 활동가들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전국에서 모여요. 



    3.26 전국장애인대회 사진제공 비마이너



    장애인 권리 보장 다이인(
    die-in) 행동 사진제공 조은상


    장애인 접근권 보장 기자회견 참여 중 발언 사진제공 조은상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삭발 투쟁 사진제공 조은상 


    =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 지금까지 활동하고 또 아이를 기르면서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앞으론 어떻게 살지?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소소하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서로를 지지하고 나누면서 사는 삶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IL센터의 활동가로, 동료상담가로 목소리를 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면서 살아야죠.

    돌아보면 누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그때그때 부딪히며 길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큰 계획보다는 지금처럼 살 것 같아요. 필요한 자리에 가 있고 연대하며 살고 싶어요.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았다 싶어요. 앞으로도 휠체어와 함께 제가 길을 만들며 살아갈 것 같아요.
     


    “휠체어와 함께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어요.”
    꿀벌

    조회수 230

    2026-04-16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사람으로 살다가 안산에 정주한 사람이 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서 찐 안산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잇는 ‘기억과 약속의 길’ 시민 안내자이며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의 직무 지도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슴에 ‘별을 품고 사는 사람’으로 ‘춤추는 나무’. 4월이라 더 바쁜 고명선 활동가를 소개한다.
     

    자신을 ‘춤추는 나무’라고 소개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20대 때부터 상담소에서 닉네임으로 ‘나무’를 썼다. 내 주변엔 뿌리 깊은 나무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이미 너무 많더라.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이웃들과 바람이 가는 대로 춤추며 살고 싶었다. 거창한 존재보다 주변과 어우러지는 사람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춤추는 나무로 매일 출근하는 일부터 소개해 달라.
    안산의 한 카페에서 성인 발달장애인 바리스타 6명 곁에서 ‘직무지도원’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바리스타들이 샷 추출이나 음료 제조 실력은 정말 뛰어나다. 다만 숫자 계산, 재고 파악, 그리고 동료 간의 의사소통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속도에 맞춰 호흡하며 일상을 나누고 지역사회 안에서 당당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도록 곁을 지키는 ‘다정한 이웃’이 되는 일이다. 

     


    기억교실에서 '기억과 약속의 길'이 시작된다 사진 제공 4.16기억저장소


    춤추는나무는 걷기를 좋아한다 사진 제공 고명선

     

    장애인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와 이전의 이력이 궁금하다.
    대학 시절,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재가장애인들에게 책을 배달하며 장애인 인권에 눈을 떴다. 이후 ‘장애여성공감’ 상담원으로 일했고, ‘성공회 나눔의집’에서 어린이와 어르신을 돌보고 성인장애인들과 함께 일했다.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활동의 뿌리가 됐다. 

     

    서울 사람이 어떻게 안산의 시민 활동가가 되었나?  
    결혼하면서 안산에 왔다. 세 아이 엄마로서, 2014년 4월 16일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다가 세월호 소식을 접했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믿고 큰 걱정 안 했다가, 저녁에야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화면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에 발만 동동 굴렀다. 다음 날,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아이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무작정 단원고로 달려갔다.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비는 밤이었다. 운동장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다. 여러 번 촛불을 들었지만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그 촛불이 제일 간절했다. 그 이후 화랑유원지, 안산문화광장, 광화문광장에서 나는 계속 촛불을 들었다. 



    기억과약속의길 시민안내자로 활동하는 '춤추는 나무' 모습 사진 제공 고명선
     

    시민안내자로서 걷는 ‘기억과 약속의 길’은 무엇인가?
    참사 직후부터 정부합동분향소와 단원고 교실을 찾아가는 ‘기억과 약속의 길’이 있었다. 나는 2017년 4.16기억저장소 ‘4.16 민주시민교육’에서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고잔동에서 별이 된 아이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수료생들과 함께 “누가 오든 안 오든, 우리끼리라도 한 달 한 번은 꼭 이 길을 걷자”고 다짐했다. 4.16기억교실에 모여서 단원고 추모조형물, 4.16기억전시관, 고잔동 마을의 골목골목을 지나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까지, 2~3시간을 시민들과 걷고 있다. 

    지난 7년여 동안 이 길을 지키며 느낀 건 ‘기억의 힘’이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떤 날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때론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모두 노란 우산을 쓰고 끝까지 걸었다. 걷는다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기억공간에서 서로의 기억을 꺼내고, 어떻게 기억하고 약속할까 이야기했다. 태풍 때 한 번 취소된 거 말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이 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이라고 본다. 
     


    기억교실 영상실에서 7반 허재강 어머니 양옥자 님(좌)과 1반 한고운 어머니 윤명순 님(우)과 함께 사진 제공 4.16기억저장소


    가만히 있지 않겠다, 뭐라도 함께 해야 했다 사진 제공 고명선

     

    ‘기억과 약속의 길’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의례가 있다고 들었다.
    매번 출발을 4.16기억교실에서 한다. 3월엔 3반, 4월엔 4반 이런 식이다. 교실에 모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출석’ 시간이 있다. 시민 안내자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그 아이 자리에 앉은 시민이 “네!”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아이들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그들의 삶과 꿈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기억과 약속의 길은 함께 기억하고 약속하는 연대의 길이다. 

    춤추는 나무는 별을 품은 사람들(이하 ‘별품사’)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2018년경 4.16 안산시민연대에서 ‘별을 품은 이웃’이라는 마을별 세월호 모임을 제안했다. 그때 나는 '함께크는여성울림'에서 상근 활동가로 피켓팅과 서명전 등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활동가들과 고민하다가 “울림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 활동하고 마음을 나누자”라며 회원들을 모아 소모임 ‘별품사’로 의기투합했다. 

     


    '별품사'는 단원고 약전부터 함께 읽었다 사진 제공 고명선


    세월호 꽃누르미 공방의 5반 큰 건우 어머니 김미나 님 (좌) 4반 정차웅 어머니 김연실 님(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대단한 목표보다 그저 참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별이 된 아이들을 우리 가슴에 품고 살아가자는 뜻이었다. 별품사 첫 활동이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의 약전 읽기였다.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은 1반 1권으로 시작해 10반 10권까지, 그리고 선생님들과 일반인들 이야기 2권으로 책이 12권이다. 책을 펼쳐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이야기하는 게 처음엔 우느라 너무 어려웠다. 아이들의 꿈, 좋아했던 음식을 이야기했고 아이가 좋아한 음악을 모임에서 함께 들었다. 아이와 부모님들의 일상을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우리는 많이 울고 또 웃었다. 약전 전권을 2년에 걸쳐 완독 토론한 후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썼다. 그 결과물로 250편의 편지 모음집 《잊지 않을게 행동할게》를 펴내 기억교실 각 반에 갖다 두었다. 

    별품사는 세월호의 진실과 별이 된 아이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공부방’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세월호 관련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고 기억식 등 관련 행사에 참여해 왔다. 세월호 공방 어머니들을 모셔 와 꽃누르미와 다양한 기억 물품을 만들며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다. 416 희망 목공소에 가서 아버지들과 목공 실습도 했다. 올해는 별품사 새 회원들과 함께 약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3월에는 약전에 빠진 아이 중 1반 문지성 이야기를 어머니 안명미 님을 모셔서 생생히 듣는 시간도 가졌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유가족들 곁에서 안산의 한 귀퉁이를 지키는 온기가 되려고 한다. 


    약전에 빠진 1반 문지성 어머니 안명미 님(정면 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별품사가 엮은 284쪽 짜리 편지집 사진 제공 고명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소리를 내며 사진 제공 고명선

     

    그 외에도 매달 피케팅과 생명 안전 공원 예배에 참여하지 않나.
    피켓을 드는 것은 시민들에게 참사의 진실을 알리며 잊지 말자고 호소하는 직접적인 소통 창구다. 매월 둘째 수요일 5시 30분 광화문광장에서 ‘기억공간 지키기 집중 피케팅’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차가운 시선이나 “인제 그만 좀 해라”, “지겹지도 않냐?”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피켓을 놓지 않은 건, 다시는 어떤 참사도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고, 밝혀지지 않은 진상규명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매달 첫 일요일 오후 5시, 공사가 진행 중인 거친 흙바닥 위에서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노래한다. 예배에서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시간이 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이 모두 안산으로 돌아올 걸 믿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엄마아빠 마음이다. 4.16 생명 안전 공원은 별이 된 아이들의 봉안당을 포함해서 모든 시민이 찾아와 머무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생명안전공원 예배 사진 제공 고명선

     

    생명 안전 공원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공원 부지 앞에서 반대하는 분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 “너희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라며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이 느끼는 불안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의 불안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깃을 눈앞의 노란 리본으로 정해버린 거다. 생명 안전 공원은 특정 누군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사를 성찰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다짐하는 공간이다. 그분들과도 결국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내 삶에 일어난 변화가 있다면?
    배우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마누라가 바빠져서 얼굴 보기 힘들다”라더라. 그래서 “참사 이전에도 세 아이 엄마로 늘 바빴거든?” 농담해 줬다. 첫째 변화는, 내가 안산이라는 도시에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학교도 다녔기에 결혼하고 살게 된 안산이 늘 낯설었다. 그런데 참사가 터졌다. 어느 순간 차마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없더라. 그렇게 비로소 안산에 정주하는 진짜 ‘안산 사람’이 됐다. 

    둘째는, 참사 이후 그분들이 겪는 사회적 고립과 혐오를 보면서, “이분들 또한 우리 이웃으로서 존중받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함께 숨 쉬어야 하듯, 세월호 가족들도 우리 공동체 안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분들이 외롭지 않게 안산이라는 공동체의 품을 넓히는 것이 내 활동의 동력이자 철학이다. 



    별품사와 6반 신호성 어머니 정부자 님(앞줄 가운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세월호 가족들 곁에서 특별히 배운 점이 있다면?
    10주기 때 ‘유류품 기록’ 작업을 함께했다. 아이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기록하며 부모님들이 들려주시는 목소리를 듣고, 다시는 어떤 참사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감히 “그 마음 다 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함부로 ‘공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됐다. 나는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이웃’이 되기로 했다.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고!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는 소회는 어떤가?
    생명 안전 공원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건립되어 흩어져 있는 우리 아이들이 비로소 안산이라는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공사 부지를 지날 때마다 지난 10년여의 갈등과 눈물,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곳은 단순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무거운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산책하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일상을 나누고, 생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희망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그날, 안산이 비로소 참사의 아픔을 딛고 생명과 안전을 상징하는 새로운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춤추는 나무의 남은 꿈도 나눠달라.
    내 곁에서 함께 일하는 발달장애인 동료들의 속도,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서로 연결된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살린다.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걸어가고 싶다. 

     


    생명안전공원이 완공돼도 계속 다정한 이웃으로 사진 제공 고명선


    “이웃의 손을 놓지 않는 든든하고 다정한 배경”, 내 이름은 춤추는 나무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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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0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 안산의 밤, 평화를 묻다
    2026년 4월 2일, 안산 중앙동 월드코아 광장에서

     

    차가운 아스팔트에 누운 사람들

    4월의 안산은 아직 춥다. 바람이 몰아치는 중앙동 월드코아 앞 광장, 그 바닥에 사람들이 눕기 시작했다. 스스로 선택해서,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팔을 벌리고, 그대로 멈췄다. 다잉 퍼포먼스. 죽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행위. 이란에서, 베네수엘라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집어삼킨 이름들.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바라봤다. 어떤 이는 그냥 걸어갔다. 그것도 하나의 대답이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자주 그냥 걸어가는가. 전쟁은 멀리 있고, 뉴스는 흘러가고, 오늘도 밥을 먹어야 한다. 그 무심함이 세계를 지금 이 꼴로 만들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안산평화연대와 안산민중행동이 이번 집회를 열었다. '미국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긴급평화촛불'. 이름이 길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우리 아이들을 전쟁터로 보내지 말라는 것.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감상적인가. 그러나 감상적인 것과 옳은 것이 반드시 다른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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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미친 운전자를 끌어내려야 할 때

    한겨레평화통일포럼의 강신하 씨가 여는 말을 맡았다. 그는 트럼프가 말하는 '힘에 의한 평화'가 일제강점기 이토 히로부미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평화를 외치면서 자국 이익을 위해 국제법을 위반하고,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고, 이란을 침공하고, 이제 쿠바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 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그 논리의 익숙함이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졌다.

    “미친 운전자는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그는 2차 대전 말기, 히틀러에 의해 순교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말을 인용하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날 세계는 인터넷과 무역 등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한 사람의 광인이 그 연결망 전체를 고통에 빠뜨리고 있으며, 세계 시민이 연대하여 트럼프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트럼프는 지구를 떠나라."

    구호는 과격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연료처럼 쓰는 모든 방식에 대한 거부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외쳤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2026년 4월 2일, 안산 중앙동 월드코아 광장에서 열린 긴급평화촛불 여는말을 하고 있는 강신하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 
    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다음 차례는 어디인가

    첫 번째 자유발언자는 지금 이 순간의 전쟁을 이야기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략전쟁이 한 달을 넘겼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런데 트럼프는 오늘도 '극도로 강력한 타격'을 언급했다. 다른 나라의 주권과 그 나라 국민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발언자는 이번 전쟁이 기울어가는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의 발악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를 겨냥한 우크라이나 전쟁, 베네수엘라 침공, 쿠바 겨냥, 이란 침공. 그다음은 어디인가. 결국 미국이 패권을 지키려면 최후의 경쟁자는 중국이다. 불타는 서남아시아의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광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뒤이어 발언자가 짚은 것은 한국 정부의 태도였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는 서방 공동성명에 이재명 정부가 동참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 침공과 민간인 학살에는 침묵하던 나라들이 이란의 자위적 조치에는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했다. 그 성명에 한국도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리고 작년 관세협상 팩트시트에 담긴 이른바 ‘동맹 현대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미국 무기 구매, 주한미군 현금 지원-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한미 연합훈련 프리덤 실드FS·Freedom Shield가 대북 작전에서 대중국 작전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읽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이런 합의를 했다면 강한 비판을 받았을 것이며, 민주당이라고 해서 나라의 안보와 국익을 파는 행위에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발언자의 말이 맞다. 여야가 한통속으로 미국의 압박에 끌려다니는 상황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정파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이라크 파병으로 김선일 씨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시민이 나서야 한다. 민중의 힘으로 정부를 견제하고 국익과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 


    3대의 병역,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이름들

    두 번째 발언자는 국립영천호국원에 잠든 한 아버지의 딸로서 그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6·25 전쟁 당시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 날짜를 잡아놓은 상태에서 보국대로 끌려간 아버지는 1951년 이승만의 긴급 명령으로 강제 동원된 민간인 부대, '지게 부대'에서 총도 군복도 없이 지게와 맨손으로 물자를 날랐다고 한다. 굶주림과 질병, 가혹한 폭격 속에서 아버지는 다시 영덕에서 제주도로 끌려갔고, 넉 달간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모두들 전사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냈다. 전사 통지서를 기다리며 눈물로 살았던 할머니와 고모들, 예비 신랑이 전사했다는 소문에 고통받던 어머니, 그 충격으로 석 달 만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까지. 휴전 후 아버지는 살아 돌아와 두 사람은 결혼했지만,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했다고 한다. 또 전쟁이 일어날까, 또 끌려가진 않을까. 가슴이 벌렁거리는 삶.



    긴급평화촛불 두번째 발언자의 모습 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그의 오빠는 10·26사태와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군부 시절 32개월간 군생활을 하며 소식을 닿지 않아 어머니는 밤새 울며 기도했다고 한다. 남동생은 노태우 정부 시절 27개월 포병으로 복무했고, 무거운 장비를 들다가 허리를 다쳐 지금도 후유증이 있다. 

    그의 큰아들은 박근혜 정부의 북풍 몰이 속에 군대에 갔다. 작은아들은 최전방 GPGuard Post, 감시초소에서 복무하는 동안 시국 뉴스에 심장이 벌렁거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미국에서 일하는 큰 아들은 배낭여행으로 이란을 몇 번 다녀온 것이 문제가 되어 비자를 받으러 왔다가 5개월간 발이 묶였다. 아버지부터 오빠, 남동생, 아들까지 3대가 '병역명문가'로 검색된다. 참전용사요, 숨은 영웅이라지만 뒤집어 말하면 3대에 걸친 전쟁 피해자다.

    그는 호주 시드니 안작 메모리얼Anzac Memorial에서 본 동상 이야기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전사한 군인 한 명을 여성 세 명이 어깨로 받치고 서 있는 동상. 어머니, 아내, 딸. 그 앞에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전쟁은 결코 남성들만의 일이 아니다. 그 무게와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건 결국 수많은 여성이다. 국가는 그 여성들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 기록하지도, 기억하지도 않는다. 두번째 발언자는 말했다. 3대 병역명문가 말고, 3대 평화명문가의 역사를 쓰고 싶다고, 우리 아들딸들에게 물려줄 가장 좋은 선물은 평화라고.


    휘파람과 촛불 - 광장이 끝나도 남는 것

    집회의 마지막 순서로 휘파람의 노래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구호 대신 노래. 주먹 대신 촛불. 어떤 이는 눈을 감고 들었고, 어떤 이는 옆 사람 어깨에 살짝 기댔다. 분노와 슬픔이 잠시 다른 형태를 취하는 시간이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노래는 끊어지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흩어졌고, 광장은 다시 그냥 광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 있다는 확인.

    작은 불꽃들이 가까이 모여 있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다. 오늘 밤 안산의 광장이 그것을 보여줬다. 우리 아버지가 겪은 비극을 손자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아픔을 손녀들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차가운 4월의 밤에 촛불을 들었다. 그 불꽃은 오늘도 꺼지지 않는다.
     


    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 안산의 밤, 평화를 묻다
    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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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7
  •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지난 3월 17일 화요일 오후 2시 안산 지역 시민사회, 사회적경제, 문화예술, 마을, 노동, 청년, 장애인, 이주민 단체 등 130개 단체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마다 활동하는 영역도 다루는 이야기도 달랐지만, 이들이 이날 모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모두가 안전한 도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 질문 하나를 붙들고 지난 1년을 준비해 온 안산 시민사회가, 마침내 시민추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을 선언하는 날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12년이 흘렀습니다.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다짐해 왔던 말들이, 실행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 날인 거죠. 안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민추진위원회 출범식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시민주진위원회 전체회의 및 출범식 장소 입구 포스터사진


    4.16안산시민연대 공동대표 김은호 공동추진위원장 진행모습


    전체회의 : 지난 1년의 여정을 돌아보다

    출범식에 앞서 먼저 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에서는 지난 1년간의 추진 경과와 2026년 주요 활동 계획이 공유됐어요. 회의를 이끈 김은호 4.16안산시민연대 공동대표이자 공동추진위원장은 이렇게 운을 뗐습니다.

    “2024년, 우리는 안산을 생명과 안전의 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담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생명안전도시 안산 만들기 프로젝트가 작년부터 시작되었고, 지난 1년의 여정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여덟 번의 포럼이 쌓아올린 공통의 언어

    그중 2025년 8월부터 10월까지 총 8회에 진행된 ‘안산생명안전포럼은’ 이 모든 준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강 ‘위험사회의 이해와 시민의 안전한 권리’로 시작한 포럼은 2강에서 안전권이 헌법과 국제 인권 규범에 근거한 사회적·국가적 책임임을 짚었고, 3강에서는 광주 5·18 사례를 통해 회복적 도시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했습니다. “기억은 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반복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광주가 인권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약속을 제도와 문화로 확장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4강은 경주 지진 사례를 통해 ‘마을이 곧 매뉴얼’이라는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재난 발생 후 가장 중요한 것은 훌륭한 매뉴얼이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아는 관계다.” 

    5강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시 재난·안전 분야 실태 연구 용역 결과가 발표되었죠. 결론은 냉정했습니다. “안산시는 생명안전도시를 만들어갈 충분한 역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세권 중심의 고밀도 복합 개발에 집중하면서 생명과 안전이 외면되고 있다.”

    6강에서는 거버넌스 전략을 논했습니다. “작더라도 시민이 직접 정책을 이야기하는 경험을 쌓으면, 그것이 행정의 방향을 바꾼다.” 7강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시민사회 활동에 대한 성찰적 진단이었어요. 우리는 쉽게 연결되어 있지만, 뭘 할 수 있는 힘은 약해졌다는 뼈아픈 자기 점검이었죠. 

    그리고 마지막 재난과 안전에 관한 지역사회 커뮤니티의 역할을 다룬 8강까지, 총 여덟 번에 걸친 포럼은 안산 시민들의 공통 언어를 만들어냈어요. 그것은 바로 안전은 특정 사고에 대응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조건이라는 것,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와 도시의 책임이라는 것, 그리고 시민 참여 없이 지속가능한 안전 정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홉 번의 워크숍이 연결한 다양한 목소리

    포럼 다음에는 전체 비전 수립 워크숍 2회, 노동·마을·이주민·여성·청년·청소년·장애인 7개 부문 워크숍을 합해 총 9회 워크숍이 이어졌고, 150여 명이 참여해 각자의 경험으로 도시 안전을 이야기했어요. 포럼이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자리였다면, 워크숍은 그 언어를 각 부문의 현장으로 가져간 과정이었습니다. "나의 안전이 도시의 안전"이라는 인식이 확장되고, 서로 다른 부문의 주체들이 연결되면서 비로소 이번 출범이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여기에 지역 23곳, 30회에 걸친 '찾아가는 사업 설명회'를 통해 100명 이상의 활동가들이 공감대를 함께 형성한 것도 빼놓을 수 없어요. 이 모든 과정이 쌓여, 130개 단체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죠.



    지난 1월 30일 열린 2차 워크숍 현장사진
     

    정식 출범 : 다른 목소리, 하나의 결론

    이번 출범식에서 가장 핵심적인 순서는 ‘안전약자 릴레이 발언’이었어요. 청년,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를 대표하는 네 명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자신이 살아온 현장의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가장 먼저 청년 대표로 나선 영화감독 김윤정 씨가 2014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처음 광장에 나섰던 기억을 꺼내 놓았어요. 당시 친구를 잃은 많은 또래들이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25시 광장’에 모였고, 그 역시 처음 그곳에서 목소리를 냈다고 했습니다. 스물여섯이 됐을 때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스물여덟이 됐을 때는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났어요. 

    “왜 우리는 삶의 시간을 지나올 때마다 또 하나의 참사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 걸까요. 참사는 한순간에 일어나지만, 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불안은 우리의 일상 속에 계속 존재합니다. 안전은 구조입니다. 누구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위험을 말할 수 있는지, 책임지는 시스템이 있는지 그 구조가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안산나무를심는장애인야학 교장 김선영 씨는 장애인의 일상에서 안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구체적으로 전했습니다. 저상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불안과 초조함으로 기다리는 시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집 밖을 나올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 재난 매뉴얼 속에 장애인은 빠져 있는 현실까지. 청각장애인은 대피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없고, 시각장애인은 누군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화재나 붕괴 사고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요. 

    “장애인 안전은 복지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입니다. 사고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입니다.”



    청년,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대표 4인의 ‘안전약자 릴레이 발언’

    와이즈우멘협회 대표 도르카스 씨는 이주민의 목소리를 전해주었어요. 안산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지역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위험한 노동 환경과 정보 비대칭으로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생명과 안전은 국적을 넘어 모든 사람의 권리입니다. 위기 상황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모든 이주민이 차별 없이 예방, 지원, 구조, 보상 체계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안산지회장 황순화 씨는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했습니다. 2025년 3월 기준, 185명이 결원인 상황에서 만성적인 인력 부족은 학교 급식 노동 현장에서 산재 사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검진 대상 중 폐결절 등 이상 소견을 보인 급식실 노동자는 3,981명에 달했고, 폐암으로 15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200여 명이 폐암 의심 진단을 받았다고 해요.

    “노동자가 아프고 떠나는 급식실에서 안전한 급식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안전은 사고가 난 뒤에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지켜야 할 권리입니다.”

    네 사람의 상황과 이야기는 각자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로 모였어요. 안전은 개인이 알아서 챙겨야 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지자체가 구조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는 힘은 바로 시민의 참여에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출범 선언문 : 함께 외친 세 마디


    공동선언문 읽는 모습

    이어서 출범 선언문 낭독이 이어졌어요. 공동추진위원장들이 함께 단상에 올라 선언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됐어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묻습니다. 생명과 안전은 이 사회에서 어디에 놓여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적 재난과 일상의 위험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기억은 남아 있지만 변화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선언문의 핵심 다짐은 세 가지였습니다. ▲ 생명과 안전을 도시 운영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세우겠다 ▲ 위험이 집중되는 사람들의 삶을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겠다, ▲ 시민의 참여가 도시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도록 하겠다. 

    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회의장은 한 목소리로 물들었습니다. "함께 만드는 변화, 모두가 안전한 도시, AN전도시에 SAN다!" 박수와 함께 울려 퍼진 세 마디차 출범식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2026 활동 계획 : 기억이 정책이 될 때까지

    시민추진위원회가 올해 추진하는 활동은 크게 네 단계로 구성됩니다. 

    첫째, 시민 공론 형성이에요. 가장 먼저 3월 17일부터 4월 5일까지 ‘생명안전도시 안산 시민 설문조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데, 목표는 안산 시민 1,000명 이상입니다. 전체 회의에서 위성태 사무국장은 “130개 단체가 각각 10명씩만 조직해도 1,300명이 됩니다. 천 명, 2천 명, 만 명까지 한번 우리의 실력대로 해봅시다.”라고 독려했고, 현장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졌습니다.

    4월 11일에는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아 안산문화광장에서 '304개의 노란 테이블' 시민 대토론회가 열립니다. 304는 희생자의 수이자, 시민 1,000명이 직접 둘러앉아 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테이블의 수이기도 합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시민이 직접 논의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둘째, 시민 참여 확대예요. 5월 한 달간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벌이고, 5월 9일 오후 3시에는 안산문화광장에서 생명·안전 시민대행진 ‘노란 빛 동행’이 펼쳐질 예정이라고 해요. 시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 안산의 안전을 우리 사회 전체의 의제로 만드는 자리기도 합니다.

    셋째, 정책·제도 변화 추진입니다. 시민 공론의 결과를 생명 안전 정책 요구안으로 정리해 6·3 지방선거 출마 후보와 정당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전체 회의에서 정책 협약 무용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시민추진위원회 측은 “약속해놓고 당선되면 아무것도 안 지키더라는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행을 관철하기 위한 후속 액션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넷째, 시민 참여 거버넌스 구축입니다. 올해 하반기 8월부터 11월까지 시민 참여 안전 모니터링 활동을 진행하는데요, 교육 4회와 워크숍 1회로 역량을 키운 뒤, 법·조례·위원회·현장을 시민들이 직접 점검하고 모니터링 합니다. “모니터링 → 시민공론 → 정책 요구 → 캠페인”의 선순환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시민추진위원회의 주요활동 방향을 논의하는 공동추진위원장 14인


    시민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준비 되었던 활동안내 자료

     

    맺음말 : 현장을 기록하며

    이날 전체회의에서 나온 한 마디가 오래 머릿 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는 쉽게 연결되어 있지만, 뭘 할 수 있는 힘은 약해졌다.” 130개 단체가 모였음에도, 연결이 실행의 힘으로 전환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솔직한 성찰이었습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12주기이자, 안산시 승격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거기에 6·3 지방선거까지 맞물린 해이기도 하지요. “역사적인 도시 전환의 분기점이 돼야 한다”는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안산은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피해를 경험한 도시입니다. 그 아픔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도시의 정책과 구조를 실제로 바꾸어 내는 것, 그것이 시민추진위원회 스스로가 부여한 역할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면서, 안산의 이번 실험이 경기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롤모델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워크숍 참가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안산에서 진짜 안전한 도시, 생명의 도시가 탄생한다면, 아마 세계적인 롤모델이 되지 않을까요.” 기억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일상이 되는 날을 향한 안산 130개 단체의 발걸음이 시작됐습니다.


    시민추진위원회 출범식 단체사진
     


    기억을 넘어 정책으로, 안산이 움직인다
    안산사라

    조회수 389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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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추석 잘 보내셨나요? 이번 추석 연휴는 다른 공휴일과 겹쳐 최장 7일간의 쉬는 날이 생겼었는데요. 따라서 가족, 친구, 연인 간 국내외를 놀러 다니며 좋은 추억을 쌓는 분들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연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일터로 향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우리의 가족, 친구, 연인에게 커피, 택배, 택시 등을 제공했었던 사람들. 누군가의 황금연휴를 책임졌었던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이웃, 명절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 음식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 기사의 모습
    (출처: Pixabay, Surprising_Media 제공)
     
     
    명절 노동자 즉, 공휴일에도 일하는 노동자의 직종은 대표적으로 어떤 업계에 주로 분포되어 있을까요? 관련 통계를 찾아보았습니다. 비농(非農) 전 산업을 기준으로 1인 이상 기업의 상용 총 근로시간(평균 177.9H)을 분석한 결과 숙박/음식점업(183.9H), 사업시설 관리/사업 지원/임대 서비스업(178.5H), 협회·단체/수리·기타 개인 서비스업(182.2H)이 상대적으로 근로 시간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1) 이로 미루어 보아 해당 업종들에서 휴일 근무가 더욱 높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대우는 어떨까요? 일부 직업에서는 합당한 보상 체계가 상대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앞서 말한 직종에서 비교를 해볼까요?
     
    상용 임금 총액을 기준으로 숙박/음식점업에서는 약 184시간의 노동에 비해 2,803,179원을 받아 시간당 임금이 약 15,243원으로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였습니다. 사업시설 관리/사업 지원/임대 서비스업에서는 약 179시간의 근로에 비해 2,988,894원을 받아 시간당 임금이 약 16,745원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또한 협회·단체/수리·기타 개인 서비스업에서도 약 182시간의 노동에 비해 3,322,316의 임금을 받아 시간당 18,234원의 수입을 기록해 산업 평균 임금인 약 25,000원보다 30% 정도의 낮은 금액을 기록하였습니다.2)
     
    나아가 명절 노동자들의 인터뷰에서도 불편한 현실이 드러납니다. 예로 복지와 관련한 불만 사항으로 외국계 화장품 매장 매니저 B 씨(45)는 "대체 휴무를 사용해도 토요일과 일요일을 이어서 쉬는 직장인들처럼 이틀 연속 쉬는 날은 드물다", "특히 매장이 바쁜 주말을 껴서 연속으로 쉬는 경우는 없다"라고 밝혔습니다.3) 또한 성동구 아파트 경비원인 이모 씨(75)는 "휴가가 아예 없다 보니 명절 때 가족들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다", "아무래도 작은 아파트다 보니 내가 빠지면 대신 일할 사람이 없다"라고 털어놨습니다.4)
     
    이와 더불어 휴일 근무의 인식 측면에서도 근로자들은 불편함을 호소했는데요. 예로 노동절 근무와 관련해 2024년 조사(인크루트·응답자 1076명)에서도 출근자 10명 중 4명은 수당이나 대체휴일 없이 근무하였습니다. 특히 상시 근로자 수 5인 미만 기업의 출근율은 41.3%를 기록하였고 근로기준법상 휴일 근로 수당(50% 이상) 지급 의무도 없어 아예 수당이 누락되기도 해 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기도 하였습니다.5)
     
     
    ▶과로에 지친 직장인의 모습
    (출처: Unsplash, 사진가 Vitaly Gariev.)
     
     
    이러한 현상이 생겨나는 이유는 비단 개인만의 문제일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구조적 문제도 있습니다. 이를 세 가지의 주요 내용으로 추려보았습니다.
     
    첫째. 저부가가치·고노동 집약 산업일수록 공휴일 근무를 통해 매출을 올립니다.
     
    서비스업, 운수·물류·배달업, 도·소매업 등은 상대적으로 저부가가치·고노동 집약 산업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단가가 낮은 편입니다. 예로 높은 비중의 카페 운영 고정비·인건비, 배달 플랫폼의 배달비 경쟁, 마트의 높은 노동 의존도와 낮은 노동생산성 등의 원인이 해당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업장은 명절 특수와 함께 장시간 노동을 통한 카페의 회전율 증가, 배달비 인하와 기사 운임비 삭감(배달 기사의 근로 시간 증가)6), 마트의 단기 인력 간접 고용으로 고정 인건비 절감 등의 방식으로 수익을 얻고자 합니다. 따라서 근로자들은 휴일에도 출근해 매출에 기여하지만 뚜렷한 보상은 받지 못하는 일도 다수 발생하고 있습니다.
     
    둘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대기업 vs 중소기업, 정규직 vs 비정규직)가 공휴일 근무와 근무조건에 영향을 줍니다.
     
    2024년 주 52시간 초과 비중은 1∼4인(8.4%)>5∼29인(5.6%)>30∼299인(5.2%)> 300인 이상(4.6%)이었고7) 상용 300인 미만 사업체의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3,700천 원으로 300인 이상의 6,988천 원과 약 2배 차이를 보였습니다.8) 또한 올해 6~8월 월평균 임금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는 208만 8천 원으로 정규직의 389만 6천 원과 약 181만 원의 차이를 보였습니다.9) 근로복지(시간외수당·휴가)에서도 비정규직은 약 35%(정규직 약 78%)의 수혜를 받았습니다.10) 따라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는 인력난, 재정 규모, 인사·복지 운영 체계 미흡 등의 이유로 비교적 취약한 근무 환경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올해 노동 시장의 전체 고용 89%는 중소기업에서 이루어지고11) 비정규직 근로자는 38.2%를 기록12)하였으므로 꽤 큰 규모의 노동자들이 이를 겪고 있다.
     
    셋째. 휴식권보다 고객 만족과 운영 편의를 우선시하는 사회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흔히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사회’여서 편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요. 이처럼 소비자의 고객 편의와 기업과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소비 활성화와 내수 진작 등의 목적으로 명절을 평일처럼 보내는 근무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통·돌봄 서비스·관광 산업 등이 해당하는데요. 특수한 예시인 의료의 경우 생명과 직결되기에 공휴일 근무도 필요하지만 누군가의 권리를 위해 누군가의 휴식권을 희생하는 것을 감사할 줄 모르는 시선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 쉼이 필요한 노동자의 뒷모습
    (출처: Pixabay, planet_fox 제공)
     
     
    반면 공휴일 근무에 찬성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를 앞서 언급한 내용을 기반으로 반박하는 세 가지의 주요 입장으로 추려 보았습니다.
     
    첫째. 특정 산업뿐만 아니라 공공안전·사회기반/냉장 체인·연속공정 업종도 공휴일 근무가 필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력·수도·통신 등의 생활 인프라 산업은 365일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상시 운영 업종입니다. 이는 영업 매출과 별개로 공공안전·기본권 보장의 이유로 근로자들이 명절에도 교대 근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즉석·신선식품을 생산하고 운송하는 냉장 체인과 반도체·정유·화학 등의 연속 공정이 들어가는 산업도 가동을 멈추면 품질 저하·대규모 손실·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명절에도 정상 근무를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처럼 공휴일 근무가 필수적인 업종 상황의 특수성도 유연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둘째. 법적으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공휴일 근무와 보상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예로 근로기준법 제56조의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 시 근로자에게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13), 근로기준법 제60조의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 제공14), 근로기준법 제52조의 근로일 종료 후 다음 근로일 시작 전까지 근로자에게 연속하여 11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 제공15), 산업안전보건법 제128조의 2의 사업주는 근로자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 제공16)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해당 법을 적용하는 것은 근로자와 사업주 간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셋째. 소비자의 욕구 만족과 산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권리도 보장받아야 합니다.
     
    명절을 이용해 소비자들은 여가 생활을 보내며 더 많은 선택폭과 편의를 누리고 소비한 브랜드의 안정감과 만족감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기업에서도 매출 확대, 생산성에 따른 휴일 탄력 운영, 충성 소비자의 확보도 노릴 수 있게 됩니다. 예로 「한글날 공휴일 지정에 관한 연구」에서는 대체 공휴일 지정으로 1.5일의 관광이 증가할 경우 2조 8,239억 원의 관광 지출로 4조 9,178억 원의 생산유발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17) 따라서 소비자 욕구와 기업체의 자유의지를 억제하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보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크리스마스에도 영업하는 백화점
    (출처: Pixabay, Peggy_Marco 제공)
     
     
    그렇다면 이처럼 상반되는 여론을 합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노·사·정의 입장에서 마련할 수 있는 주요 해결책을 세 가지로 추려보았습니다.
     
    첫째. 노동계에서는 노동자의 합당한 휴식권 보장과 보상의 표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노동계에서는 1.5배 공휴일 수당의 법적 최소 보장과 함께 근로환경과 산업 특성을 반영한 합리적 수당 상향 논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공휴일 근무 유급휴일·가산수당·보상휴가제 등의 적절한 임금과 복지를 확실히 명시하는 노동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생활 필수 서비스업 등의 공휴일 의무 근무에서는 근로자들의 업무 일정 조정 참여·누적 보상휴가제 부여·추가 건강 검진 등의 기준안을 마련하는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공휴일 근무에 대한 동일노동·동일 임금, 휴일 근무자 위로금·명절 수당 지급, 식대와 교통비 제공 등의 개선안도 제안할 수 있습니다.
     
    둘째. 경영계에서는 복리후생/워라밸/생산성 등을 고려하며 효율적인 기업 운영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로 경영진은 AI를 활용해 공휴일 전후의 생산·소비 등을 예측 후 공휴일 인력을 조절해 인건비 등의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휴일 주간에 휴일 근무 대신 평일 근무 시간을 조정하되 복지포인트·휴가비를 보상으로 지급하는 탄력근무제를 확대해 생산성과 직원 만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반면 공휴일 근무자에게는 성과연동 휴일 근무 인센티브·선택형 보상휴가제(수당 or 휴가)·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 등의 제도를 마련해 법적 리스크 완화와 장기근속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함께 사람 중심 경영의 CSR을 실천하는 회사 브랜드 선호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셋째. 정부는 노동자들의 휴식권과 보상, 기업의 운영 안정성을 마련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부는 기업이 노동자의 공휴일 근무에 대한 수당·휴가·근로 시간 등의 법을 지키지 않을 시 처벌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에 정부에서는 국가/자치단체 등의 지원금 신청 제한, 국가·지방 계약법상 입찰 참여 시 불이익, 금융기관의 대출·이자율 산정 불이익 등의 제재를 가한다고 밝힌 만큼18) 법의 강제가 더욱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근로자의 휴식권과 기업의 운영 안정성도 보장할 의무가 있는데요. 예로 노사정 협의체를 통해 업종별 공휴일 근무 표준 모델 협약, 중소기업 세제지원·보조금 인센티브, 지역 공휴일 상생 협약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나아가 공휴일 근로자들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거나 필수적으로 여기는 사회 인식을 경계하는 캠페인도 진행해야 합니다.
     
     
    ▶광주광역시의 제135주년 노동절 기념행사에 참석한 광주 노사민정 대표들
    (출처: 광주광역시청, 「광주 노사민정 대표들, 135주년 노동절 맞아…」, 공공누리 제1유형 출처표시.)
     
     
    즐거운 황금연휴를 보내면서 마주쳤었던 수많은 명절 근로자들. 그들은 누군가의 재밌는 윷놀이와 맛있는 송편 시식을 위해 마치 보름달처럼 묵묵히 추석 명절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게 그들의 노동을 일종의 미덕으로 치부하며 당연시 여기고 있진 않았을까요? 이제는 복잡한 이해관계 속 한 사람의 노동 가치가 빛을 잃지 않는 사회를 조심스레 바라도 되지 않을까요? 모든 주체들과 공평하게 어우러지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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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연휴는 딴 세상 일 아닌가요?_명절 노동자 이야기
    초스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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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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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의 마지막 주, 가을밤의 선선한 공기가 기분 좋은 어느 날.
    저는 한 달 전 우천으로 연기되었던 경기도기숙사 「2025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행복 더하기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축제’라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그곳은 기숙사 입사생뿐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 가족 단위 방문객까지 함께하는 자리로, 공연·입사생 운영부스·홍보부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제가 도착한 오후 4시 무렵, 기숙사 잔디광장은 이미 북적였습니다. 무대에서는 한창 음향 체크가 진행 중이고, 저 멀리서는 수제 문구류 판매, 무알코올 칵테일, 수제비누 만들기 체험, 비즈 식물 등 입사생들이 보기만 해도 기대되는 입사생 운영 부스들이 분주히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공연을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주변 부스를 둘러보고, 잔디 위를 걷는 발걸음마다 웃음소리와 음악이 스며들어 축제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도민축제 입사생 부스 전경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던 부스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부스였습니다. 화려한 색감의 룰렛과 다양한 상품이 진열된 센터 홍보부스는 축제 입구에 자리 잡아 방문객들의 눈길을 한눈에 사로잡았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부스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그중에서도 사진의 포스터가 매우 눈에 띄었습니다. 올해 행복 더하기 축제에서 진행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홍보부스는 단순한 센터 소개의 공간을 넘어 다음 주 11월 8일에 열릴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 〈실타래–깁다, 잣다, 엮다, 잇다〉」를 알리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웹진을 보시는 여러분들에게도 간단하게 소개 드리자면, 이번 시민기록 컨퍼런스는 ‘시민기록자(에디터)’들의 기록이 예술과 체험으로 확장되는 자리입니다. ‘마음을 깁다’라는 주제 아래, 기록자의 실제 필체를 따라 써보는 필사 체험, 타자기로 엽서를 완성하는 타자기 체험, AI와 대화를 나누며 글을 써보는 대화형 기록 체험, 나무 위에 단어를 새기는 우드버닝 교환소 등 감성적인 체험 부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공연과 대화를 엮은 이야기 프로그램 ‘생각을 잣다’, ‘서사를 엮다’, 마지막에는 모두가 실타래를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 ‘사람을 잇다’까지 이어집니다.
    센터는 이번 부스를 통해 “나의 경험이 기록이 되고, 기록이 다시 사회의 변화를 만든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이번 컨퍼런스가 공익의 현장을 예술로 확장하는 과정임을 알렸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부스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부스에서는 시민기록컨퍼런스를 비롯해 방문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이벤트도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이벤트는 아래의 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STEP 1. 센터 인스타그램 팔로우 또는 뉴스레터 구독 → 맛있는 간식과 룰렛 기회!
    STEP 2. QR코드 스캔 후 시민기록컨퍼런스 사전 신청 둘 다 참여했다면? → ‘꽝 없는 룰렛’ 돌리기 1회 추가 기회!
     
    참여자들은 “한 번만 더 돌려보고 싶어요!”라며 즐겁게 웃었고, 룰렛 경품으로는 수건, 샤워볼, 에코백 등 실용적인 센터 굿즈부터 입사생 맞춤형 컵라면과 햇반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작은 보상이지만 공익활동을 향한 첫 관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부스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경기도기숙사 관장님과 수원여자대학교, 수원권선경찰서 등 축제에 협력하는 다양한 유관기관과의 만남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부스를 방문하며 소개도 들어보고 공연을 소개하고 명함을 나눠가지며 센터와의 앞으로의 협력을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홍보부스는 행사 내내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축제 속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스 중 하나였습니다. 취재를 하러 왔던 저도 모든 부스를 체험해 보며 자꾸만 본분을 잊고 재밌게 즐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부스를 즐겨본 에디터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이번 축제 참여는 경기도기숙사와의 협력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2024년 4월, 양 기관은 업무협약(MOU)을 맺고 공익활동 확산을 위한 공동 노력을 약속했습니다. 작년 입사생축제 홍보부스에 이어 이번 축제 참여는 협약의 실질적 성과를 보여주는 현장이었습니다.
     
     
    2024년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경기도기숙사 업무협약식 / 출처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센터는 기숙사 입사생을 비롯해 도민들에게 공익활동을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었고, 기숙사 역시 입사생들의 공익활동 참여 기회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센터 홍보부스를 통해 ‘시민기록 컨퍼런스’와 저와 같은 ‘아카이브 에디터’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전하며, 향후에도 경기도기숙사와 지속적으로 함께하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부스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저녁 7시 무렵, 무대 조명이 켜지며 축제의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달아올랐습니다. 해병대 시범단과 경기대 응원단 ‘거북선’의 치어리딩으로 시작된 공연은 커다란 환호를 이끌어냈고, 이어 가수 한민우, 아주대 밴드 ‘5분 쉼표’ 등의 무대가 잔디광장을 채웠습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경품 추첨 무대가 이어지자, 관객석 곳곳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남기는 모습이 줄을 이었습니다.
     
     
     
    해병대 시범단과 경기대 응원단 ‘거북선’의 치어리딩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웃음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가운데, 센터 홍보부스에도 마지막까지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습니다. 시민기록 컨퍼런스 포스터를 살펴보고 QR코드를 스캔하는 사람들, 굿즈를 챙기며 부스를 떠나는 사람들, 내가 사는 지역에는 공익활동지원센터가 있을지를 궁금해하며 브로슈어를 한 손에 쥔 채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이번 축제에서 나눈 짧은 대화와 참여가, 누군가의 새로운 공익활동의 첫 장이 되었길 바랍니다.
     
     
     
    축제를 구경하는 사람들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센터는 이번 축제를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가올 「2025 시민기록컨퍼런스 〈실타래–깁다, 잣다, 엮다, 잇다〉」에서 더 많은 도민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공익활동 현장의 이야기가 시민의 시선으로 기록되고,
    그 기록이 예술과 체험으로 확장되는 따뜻한 자리.
     
    11월 8일, 경기상상캠퍼스 공간 1986 멀티벙커에서 당신의 마음 한 올도 이 실타래에 엮이길 바랍니다.
     
     

     
    [현장스케치] 밤하늘에 번진 공익의 열기 - “2025 경기도기숙사 행복더하기 축제”
    또봉

    조회수 926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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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쑤~~” 민요나 판소리를 부를 때 자주 쓰는 추임새다. 흥을 돋우고 소리꾼을 응원하며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마법의 소리다. 안산에는 한 20년 “얼쑤!”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광폭 시민 활동가 얼쑤 김미숙의 일문일답 추임새를 들어 보자. “각자도생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로, 얼쑤!”
     
     
    후원하고 활동하는 단체 목록을 세어보니 26개더라. 조금만 소개해 달라.
     
    안산YWCA의 평생회원이자 현재 회장이다. 활동비를 받는 자리가 아닌 비상근 활동가다. 4.16안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안산평화연대 공동대표, 안산 기후위기 비상행동 공동대표기도 하다. 오라는 데 많고, 가야 할 데도 많다. 사랑하는 4.16합창단 소프라노 단원, 시화호생명지킴이와 안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이자 강사이며 (사)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에서 환경 방송 ‘얼쑤의 얼쓰Earth’를 진행하고 있다.
     
    안산·시흥 지역 노동자들의 생활안정과 권익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사)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의 생활안정팀에서 오래 활동하고 있다. 올해는 캄보디아 노동자들과 만나 잔치 음식도 해 먹고 지지하는 만남을 6번 진행하는데, 8월에는 여행도 간다. 양계장에서 일하는 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는 한 달에 휴일이 두 번뿐이다. 이동의 자유도 이웃과의 소통도 없다. 외부에서 병원균이 옮겨 와 닭이 조류독감에 감염될 수 있다는 이유다. 모임에서 뭐가 좋았냐 물으니, 올 때 전철도 타고 나무도 보고 자동차도 보고, 사람들과 얘기한 거라고 하더라.
     
     
     
    안산환경운동연합 활동사진(왼), 안산YWCA 활동사진(오) / 사진출처: 얼쑤
     
     
    단원FM 활동사진(왼), 4.16합창단 활동사진(오) / 사진출처: 단원FM, 4.16합창단
     
     
    단체 상관없이 제일 신경 쓰는 건 탈핵이다. YWCA가 2년마다 집중 과제를 선정하는데 10년 넘게 ‘탈핵’이 있다. 우리 아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환경운동연합, 안산YWCA 등이 버스 한 대로 월성 원전 이별 퍼포먼스에 갔다.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는 정말 무서웠다. 핵에너지가 안전하고 경제적이라 하지만 잘못된 정보다. 고장도 잦고 터지면 끝이다. 탈핵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운동이 중요하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에서는 작년에 발전 수익으로  사회 기여를 1억 원 했다. 발전 수익을 낼 수 있고,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 귀한 사례다. 그래서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홍보위원으로 활동하며 햇빛발전에 대해 홍보하고 조합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열심히 권유하고 있다.
     
     
    월성 원전 이별여행 / 사진출처: 얼쑤
     
     
    여성 단체 YWCA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이를 낳고 나니 환경이 망가진 게 보이더라. 내가 배워서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었다. 당시에 돌도 안 된 아기의 사교육을 위해 선생님을 집으로 부르는 주변 사람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와 직접 재미있게 놀고 싶어 아이를 안고 도서관, 서점, 미술관을 다녔다. 아이 교육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싶어 찾아간 게 YWCA였다.
     
    처음 권유받은 게 NIE(Newspaper In Education) 지도사였다. 당시 N.I.E.가 붐이었다. 신문을 활용한 교육 자료로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는 활동이다. 심화 과정 수료 요건이 60시간인가 80인가 봉사 후 보고서 제출이었다. 5살 딸아이를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N.I.E. 교육 봉사를 했다. 2년, 3년 계속하니 ‘검증된 강사’ 소리 들으며 강의 요청을 받았다. 새로 문을 연 지역아동센터나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작은 도서관에서 봉사 수업을 하다 보니 입소문이 나고 점점 강사 경험이 쌓였다. ‘시화호생명지킴이’라는 단체도 찾아가 교육을 받고 지역에 봉사하게 되었다. 지금 내 주업이 강사다. 독서 강사, N.I.E. 강사, 환경 강사 등으로 영역이 넓어졌다.
     
     
    아이 잘 키우려던 엄마가 광폭 시민 활동가가 된 어떤 전환점이 있었나?
     
    4.16세월호 참사였다. 단체라고는 YWCA, YMCA, 시화호생명 지킴이, 환경운동연합 정도만 알다가 4.16 참사를 계기로 수많은 시민과 연결되었다. 안산에 연대하는 작은 시민단체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이상하게 여겼던 이 사회가 그래도 여기까지 굴러온 건 이분들 덕분이겠구나, 알겠더라. 시간이 되면 달려가 힘을 보태고, 행동하고 후원하게 됐다. 내 삶이 '각자도생'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로 전환했다.
     
    우리 집이 단원고등학교 근처 빌라 101호다. 302호가 단원고 2학년 4반 고 박수현 군의 집이었다. 2002년 3월에 이사 와서 제일 처음 사귄 이웃이 수현이 엄마 영옥 언니였다. 언니는 “배추전 먹으러 와.” “떡볶이 했으니 올라와.” 하고많은 날 우리를 불러주거나 음식을 갖다주었다. “밥이 똑떨어졌어, 밥 한 공기 줄 수 있어?” “언니 달걀 좀 주세요.” 이게 우리 일상이었다. 수현이가 고2 때 우리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외동인 딸에게 수현이는 가장 가까운 오빠요, 놀이 상대이었다. 수현이는 연년생인 누나의 가방을 들어주고, 밤이 늦으면 누나 마중을 나가는 동생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14년 4월 16일, 집에서 컴퓨터로 N.I.E. 수업 자료를 만들다 인터넷 속보를 본 거다. 세월호와 단원고, 이걸 보는 순간 수학여행 간 수현이 생각이 나 바로 영옥 언니한테 전화했다. “걱정하지 마, 다 구했대. 그래도 다 젖었을 테니 깨끗한 옷 챙겨서 지금 형부랑 내려가는 중이야.” 그랬다. “너무 다행”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놀란 가슴에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게 없어 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먹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애들을 못 구했다는 거다.
     
     
    세월호가 내 이웃의 일이자 내 일로 연루되었군요.
     
    그날 아이가 학교에서 오길래 “수현이 오빠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대. 우리 같이 학교로 가볼까? 사람들이 모여 소식을 듣는 것 같아.” 말하며 단원고에 갔다. 4월 16일,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랐던 첫 번째 촛불 기도회로 4.16활동이 시작됐다. 멈출 수가 없었다. 영옥 언니가 진상 규명이라든가 서명 활동을 계속하니 나는 뭐라도 언니를 도와야 했고 돕고 싶었다. 참사 4일째, 남편과 아이랑 셋이 진도 체육관에 갔다. 영옥 언니와 은희 언니와 유가족이 된 지인들을 보았다. 두 언니는 당시 내 인생의 롤 모델이었다. 울고 소리 지르고 쓰러지고, 민간 잠수사가 어떻고, 왜 찍어, 카메라 뺏고, 막 드잡이하고, 그걸 다 보았다. 사복 경찰이 진짜 많았다.
     
     
    얼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 사진출처: 얼쑤
     
     
    감히 그분들만큼 큰 아픔, 슬픔에 빠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그 슬픔을 같이 겪었다. 너무 끔찍한 세월이었다. 영옥 언니가 진도에 계시면서, “뉴스에서 나오는 거 저거 다 거짓말이야”라며 진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뜨거운 폰을 얼마나 눌러댔던지 오른쪽 집게손가락이 아파서 아직도 잘 못 쓴다.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지낸 지인하고 의절하는 일도 있었다. 참사 후 며칠 안 돼서 노란 리본 이미지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쓰는데, 저작권에 걸린다고 1인당 몇백만 원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딸 학교 보내기 전에 노란 리본으로 머리를 묶어주고 뒤통수를 찍어서 그걸 지금까지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다. 못 바꾸겠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세월호 참사는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군요?
     
    그렇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언니와 함께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다. 대학을 왜 가는지 몰랐다. 그런데 내가 대학에 갔더라면 더 일찍 진보적인 사상을 접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을 텐데, 모르고 살아 너무 안타깝더라. 나는 부당한 일을 보면 조용히 떠나는 식으로 살았다. 일만 하다 결혼했고, 아이 낳고서야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는 거리를 둘 수 없는 내 일이었다. 우리 애는 수현이네 집에서 먹고 놀기 좋아했다. 오빠 놀아 줘, 하면 수현이는 뭐 하고 놀까, 물어보며 다리에 미끄럼을 태워주는 오빠였다. 수현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유치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커서 오빠랑 결혼한다고 했다. 수현이가 부모님에게 무언가 사 달라고 하면 “넌 1층 장모님한테 가서 얘기해라” 놀림받을 정도였다. 그런 수현이가 우리 곁을 떠나 너무 안타까웠다.
     
     
    참사가 아이한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거 같은데 괜찮은지?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장을 찾은 얼쑤 가족 / 사진출처: 얼쑤
     
     
    아이가 한동안 수현이를 입 밖에 못 내더라. 딸은 모태신앙이었는데 참사 후 하나님은 없다 했다. 수현이 오빠가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거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수업 중에 자꾸 다른 책을 읽었다. 왜 그러느냐니까 “내일 죽을지도 모르잖아. 지금 안 읽으면 모르고 죽잖아.” 그랬다. 수현이 오빠를 며칠 만에 찾았냐 하길래 일주일쯤이라 했더니, 배 안에서 하루만 살고 죽었으면 좋겠다더라.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럽고 무섭고 춥고 보고 싶고 그랬겠냐고. 딸아이는 여주로 고등학교를 갔는데, 어느 날 택시 기사가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안산이라 했더니 ‘세월호!’ 라며, “말 잘 듣는 애들은 가만히 있어서 다 죽고, 말 안 듣는 애들만 살았다”라고 하더란다. 아이가 “그 기사를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라면서, 그 자리에서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세월호의 기억은 여전히 아이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있었다.
     
     
    시민 활동가로서 바쁜 중에 4.16 합창단 활동도 한다.
     
     
    4.16합창단 공연장에서 얼쑤 가족(왼쪽부터 친언니 만주벌판, 얼쑤님 어머니, 얼쑤)과 단원고 2학년 5반 이창현 군 엄마 최순화님 / 사진출처: 얼쑤
     
     
    4.16합창단이 생길 때부터 마음이 갔는데 몇 년 전에야 결합했다. 친언니 ‘만주벌판(별명)’도 단원이다. 좋은 목소리와 건강한 정신을 주신 엄마도 합창단 행사로 자주 본다. 아픔이 있는 곳에서 노래로 폭넓게 연대하니 참 좋다. 최근엔 전태일 의료 센터 건립을 위한 공연도 했다.
     
     
    현재 가장 마음 쓰는 활동이나 고민도 좀 나누자.
     
     
    2025 안산YWCA 김미숙 회장(얼쑤) 취임식이 진행되었다. / 사진출처: 얼쑤   
     
     
    아무래도 YWCA 회장이라는 중책이 마음 쓰인다. 지금 회원 증모 기간인데, 이걸 내가 잘 못한다. 대신 남편이 평생회원에 가입하게 했고, 내년에 우리 딸 돈 벌면 평생회원 가입시키려 한다. YWCA는 기독청년여성회(Young Women Christian Association)이다. 나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 신앙이 왜 필요한가, 계속 질문한다. 내가 나가는 교회와 한국 기독 교회들이 정말 예수를 따르는지, 세상의 빛과 소금인지,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을 때 함께 좋아해 주는가, 의심스러웠다.
     
    남편은 교회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내가 “왜 교회를 비판하지 않아?”라고 하면 그는 "나는 좋은 것만 들으려고해, 부분적으로 동의되지 않는다 해서 굳이 기분나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라는 식이다. 답답함을 느끼지만, 그 말이 또 틀린 건 아니다. 나는 일부 교회가 없어져도 된다고 본다. 교회 안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게 아니니까. 헌금도 교회 말고 사회로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인데, 남편은 다르다. 그가 우리 가정의 주 수입을 담당하니 내 뜻대로 할 수 없다. 내 수입은 사회로 12조 13조도 낸다. YWCA가 있어서 사회 정의나 연대의 갈증이 해소되고 내 신앙을 이어가는 거 같다.
     
     
    YWCA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좋아하는군요?
     
    그렇다. 7월 초 YWCA 신입 직원 교육이 있었다. 작년에 못 해서 올해 교육 대상이 꽤 많았다. 사람들은 삼성이나 SK에 입사 지원할 때 그 회사에 대해 공부한다. 그런데 모 법인에 대해서는 모르고 오는 사람이 태반이다. 회장으로서 YWCA의 100년 역사와 안산YWCA의 40년 역사를 강의하며, “YWCA를 알고 나면 내가 참 좋은 기관에서 일하고 있구나, 자부심을 느낄 거예요.”라고 말해 줬다. YWCA가 교회는 아니지만, 이젠 교회보다 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목소리와 행동을 계속해야 한다.
     
     
    안산YWCA 소속으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 얼쑤님 모습 / 사진출처: 안산시민사회연대, 4.16안산시민연대
     
     
    YWCA 회장으로서 자부심 뿜뿜인데, 어려움은 없는지?
     
    역사 인물 최용신 선생은 안산의 자랑이자 YWCA의 자랑이다. YWCA에서 공부하고 농촌 계몽 운동(을) 하셨는데, YMCA로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 최근에는 내가 어느 단체에 가니 안산 YMCA에서 오신 얼쑤라고 소개를 해서 ‘YWCA’라고 바로잡곤 한다. 최용신 기념관 관련 기사에도 몇 년에 한 번씩 YMCA라고 나온다. 재작년에도 메일로 항의했다. 시에서 발행한 책자도 스티커로 다 수정하게 한 적 있다. 남성이 디폴트인 사회라 여성 단체를 더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얼쑤 / 사진출처: 얼쑤
     
     
    ‘회장님’, ‘이사님’ 호칭 보다 ‘얼쑤’가 좋다. 사람들은 ‘얼쑤’ 말고 ‘회장 김미숙’을 쓰라 한다. 공적인 자리에서야 어쩔 수 없지만, 활동가로서는 ‘얼쑤’가 편하다. 지금까지의 내 활동을 보고 “대단하다, 기왕이면 학위를 좀 업그레이드해서 더 많이 강의하고 돈도 더 받아봐”라고 말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러면 지역에서 적은 돈만 줄 수 있는 데서 누가 활동하나.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더러는, “왜 그렇게 활동이 많냐", “정치할 거냐” 한다. 정치하란 말은 10년 전부터 들었지만, 내 대답은 같다. 너무 열심히 하다 병나서 죽을 거라고. YWCA 회장만으로도 ‘거룩한 부담감’이 큰데 더는 아니다.
     
    효순이 미선이 저금통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우리 딸이 재작년엔가 “엄마 생일 선물 뭐해줄까?” 하다가 “엄마는 물건은 안 좋아하니까 엄마 이름으로 기부해 줄게.” 그러더니 효순이 미선이 평화공원 짓는 데 딸이 5만 원을 기부해 준 적 있다.
     
    그때그때 마음 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위해, 내 할 만큼만 한다.

    

     
     
     
    “회장님”보다 활동가 “얼쑤”가 좋아요!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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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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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 흘리는 도시, 안산
     
    안산은 땀 흘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공장들, 쉼 없이 돌아가는 일터들이 밀집해 있고,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 속에서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삶의 안전망이 필요하고, 서로를 보듬는 손길이 절실한 곳이기도 하지요. 누군가는 오늘도 혼자서 무너져가는 집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누군가는 아이 손을 잡고 차가운 방에서 내일을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2015년 3월 22일, 한 알의 씨앗
     
    바로 그런 고민에서 시작된 단체가 있습니다. 이름도 마음도 따뜻한 곳, '사단법인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 공제회 좋은 이웃'입니다. 어느 날 좋은 이웃 회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언제까지 단순히 '요구하는 존재'로만 머물러야 할까요? 우리도 스스로 나누고 실천하는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시 창립을 함께한 김태환 님의 이 말이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동자 봉사 단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준비모임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특별한 것 없었습니다. 미용사, 전기 기술자, 페인트공, 배관공… 화려한 재능이라기보다는 삶에서 익힌 '직업'의 손 기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에서 익힌 이 기술들이 누군가에겐 삶을 다시 세우는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2016년 4월, 첫 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단체가 바로 '따숲네'입니다. 이름처럼, 따뜻한 숲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따숲네 봉사모임 단체사진 / 사진출처: 따숲네
    따숲네 신미향 회장 / 사진출처: 따숲네
     
     
    저는 참여할 생각이 없었어요.
     
    지금은 따숲네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미향 님도 처음엔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봉사는 시간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로 생각했죠. 저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마음도 몸도 바쁘게 살고 있었거든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일상. 남을 도울 여유 같은 건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그녀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어르신 염색 좀 도와줄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어요. 오래된 미용사 자격증이 있었거든요. 한 번쯤은 괜찮겠지, 하고 갔죠. 그날, 그녀는 오랫동안 방치된 머리카락으로 인해 움츠러들어 있던 할머니의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정리해 드린 후 거울을 보며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얼굴 또한 봤습니다. 그 모습에 오히려 제가 행복해졌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어느새 계속 함께하고 있더라고요." 봉사는 여유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녀는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봉사의 숨은 뿌리들.
     
    현재 따숲네는 약 50여 명의 회원이 있으며, 그들 대부분이 여유롭지 않은 생활을 하지만 이 작은 마음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운영비는 회비와 다양한 지원 사업, 노동조합과 지역단체의 기부금으로 마련됩니다. 고대 병원, 삼화페인트, 서안산 로터리클럽 등에서 정기적으로 후원과 봉사를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예전엔 당근 마켓을 뒤져가며 물품을 구했어요. 싼 가전, 헌 가구를 수리해서 썼죠. 요즘은 좀 여유가 생겨 가구당 100~150만 원 정도는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해 드립니다."
     
    1년에 8번, 여름(7, 8월) 과 겨울(12, 1월) 을 제외한 시기에 봉사가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누적 80여 회. 정기적으로 모이는 봉사자 수는 평균 15명 정도. 따숲네 회원들 외에도 4.16 가족, 청년 조직 마니또, 삼화페인트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도배, 장판은 뜻을 함께하는 사장님이 비용을 최소화해 도와주고, 전기, 청소, 정리, 정돈은 회원들이 직접 나섭니다. 상황에 따라 가전과 가구를 새로 들여놓기도 합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돈으로 주세요"라는 말.
     
    "우리의 진심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사진만 찍고 가는 거 아니냐?', '형식적으로 왔다가 대충 하고 가는 거 아니냐?'라며 차라리 돈으로 달라는 경우도 많았죠.“
     
    세상에 차가운 바람이 많이 불어서, 따뜻한 손길마저 의심하게 된 사람들이 있죠. 그것이 봉사자들에게는 가장 큰 상처였습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의 집을 찾았다가, 독립한 자녀의 반대로 하루 전날 취소된 적도 많습니다. 경계의 눈빛. 의심의 말투. 하지만 봉사자들은 그 모든 것을 견디고, 결국은 바꿔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다해, 손을 보태면… 그들의 표정이 달라져요. 고마움, 안도, 환함. 그걸 보면 우리도 변해요. 그게 봉사의 기쁨이에요."
     
    의심이 신뢰로, 경계가 감사로,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바뀌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따숲네 사람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건, 아이들의 웃음이에요"
     
    대상자는 드림스타트, 장애인 단체, 동사무소 등에서 소개받습니다. 요즘은 다양한 가족형태가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고, 청소와 정리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아이들이에요.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시기에 방치되어 있죠. 건강도, 정서도 위험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따숲네는 단순히 집을 고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젊은 봉사자들이 아이들과 놀아주고, 멘토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달라집니다.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그 웃음소리가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거예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면, 보호자들의 얼굴도 조금씩 밝아집니다. 그렇게 한 가정이 조금씩 회복되어 갑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기억에 남는 집.
     
    "시각 장애인의 집이었어요. 집 전체에 곰팡이가 가득했죠. 보이지 않으니, 본인도 몰랐던 거예요." 그 집에 들어선 순간, 봉사자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시각 장애인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했습니다.
     
    "도배, 장판을 새로 하고 화장실을 청소하는데 냄새가…, 말 그대로 전쟁이었죠. 바퀴벌레가 떼로 몰려다니는 집도 있었어요. 소리 지르고 도망치며 청소했어요. 그 집들은 이제 깨끗하게 변했답니다.“
     
    나는 그,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이 담겨있는지, 신미향 회장의 상기된 표정을 보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따숲네가 바라는 것.
     
    "기부와 봉사, 저도 처음엔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군요.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신미향 회장 역시 한 부모로 아이를 키웠고, 한때 전구 하나 못 갈아 어둠 속에서 살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땐 누가 전구 하나만 갈아줬으면 좋겠다, 그랬거든요. 지금은 따숲네가 전구를 갈아드려요. 봉사가 끝난 뒤에도 연락해 주시면 언제든지 달려갑니다."
     
    자신이 받고 싶었던 작은 도움을, 이제는 누군가에게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따숲네의 가장 큰 바람은 젊은 사람들의 참여입니다.
     
    "살기 어려워서겠지요. 그래도 한 번만 용기 내어 오셨으면 좋겠어요. 매달 아니어도 괜찮아요. 시간 날 때, 마음 동할 때 오시면 됩니다. 부담 없이 오셔서, 따뜻한 숨결을 함께 나눠주세요."
     
     
      
    사진출처: 따숲네
     
     
    따뜻한 숲이 되다.
     
    이름 없는 손길들이 모여 만든 숲. 그곳에선 오늘도,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너져가는 집이 따뜻한 보금자리로 바뀌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희망을 품게 되고, 혼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변화의 이름은 바로 '따숲네'입니다.
    따뜻한 숲처럼, 지친 사람들에게 쉼을 주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절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
     
    그곳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전구를 갈아주고, 누군가는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누군가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봉사는 여유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따숲네 회원들은 삶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뜻한 숲, 따숲네. 그곳에서 오늘도 사랑이 자라고 있습니다.
    
     

     
     
     
     
    따숲네, 따뜻한 숨결을 나누는 사람들
    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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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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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이 선출됐습니다. 4월 4일 탄핵이 선고된 이후 약 2개월의 짧고도 긴 국정 공백기의 마침표가 찍혔는데요. 무엇보다 45년 만의 비상계엄이라는 정치적 긴장과 혼란 속 이루어진 선거라는 점에서 국민과 정치권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동시에 법사위 청문회,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대선 후보별 유세 발언 등의 중대 국면에 이례적인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기도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최종 투표율 79.4%를 기록하며 15대 대선 이후 28년 만에 최고 투표율을 기록하였습니다.1) 이에 대한민국 정치사의 중요한 분기점에서 뜨겁고도 무거웠던 민심이 표현된 선거 현장을 돌아보며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습니다.
     
     
     
    (왼) 사전 투표소, (오) 본 투표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경기도 양주시 옥정 2동의 5월 30일 사전 투표소와 6월 3일 본 투표소를 방문하였습니다. 에디터도 먼저 투표에 참여한 후 13명의 시민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민주주의를 학습한 세대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해 온 세대를 포함하는 20~70대 시민을 아우르며 폭넓고 균형 잡힌 정치 참여에 대한 시각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이후 세대 흐름을 고려해 2·30, 4·50, 6·70대로 연령층을 묶은 후 각 세대별 인식을 비춰 볼 수 있는 세 분을 중심으로 정치에 대한 인식, 민주주의의 의미, 선거의 상징성 등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을 기록하였습니다. 
     
     
    ※ 다음의 인터뷰는 녹음을 기반으로 가명을 사용해 정리하였고, 발언의 취지는 유지한 채 표현 방식만 다듬거나 편집자 판단에 따라 주요 발언을 인용해 재구성했습니다.
     
     
    1. 이전 선거와 달리 이번 선거를 치르고 느낀 소감은 어떠셨나요?
    (이공익.25세) - 유권자들이 후보 공약의 중요성을 덜 느낀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로 제 또래들이 생각보다 후보 공약에 집중하지 않고 인터넷 여론에 치중을 많이 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또한 혐오를 드러내는 행동들이 보일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최미연.42세) -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기에, 무언가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민수.60세) - 지금의 정치적 혼란을 투표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 매번 선거에 임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시나요?
    (이공익.25세) - 내 소중한 한 표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기에 반드시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 지 얼마 안 됐기에 여성분들이 투표에 활발히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최미연.42세) - 자식들과 미래를 위한 마음으로 늘 투표에 임했습니다.
    (강민수.60세) - 이전에는 잘하는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고, 혹여 아니더라도 맞춰가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유권자의 판단이 더욱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3. 사전투표 첫날의 투표율이 19.5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만큼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세상을 꿈꾸며 투표에 참여하셨나요?
    (이공익.25세) -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의사 표현하며 특히 여자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이들이 안전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투표하였습니다.
    (최미연.42세) - 우리 사회가 가짜 뉴스도 많고 색깔론으로 너무 나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사라지고 정치적 갈등이 해소됐으면 좋겠습니다.
    (강민수.60세) - 부모 세대보다는 우리 후 세대들이 살만한 세상을 꿈꾸며 투표하였습니다. 저는 87항쟁의 주역이었습니다. 과거의 민주화운동을 통해 사회가 진보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12월 3일 이후 우리 사회가 마주한 현실을 깊이 성찰하며 투표에 참여하였습니다.
     
    4.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광장에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이를 보면서 느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평가해 주실 수 있나요?
    (이공익.25세) -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습니다. 광장에 모인 각각의 시민들에게 어려운 결정일 수도 있는데 국민으로서 당연하게 나서야 한다는 태도가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이 없으면 나라도 없는 거니까요!
    (최미연.42세) - 놀랄 정도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자긍심이 솟기도 하였습니다.
    (강민수.60세) - 100점 이상입니다. 뒤에 서서 지켜보는 것이 아닌 누구나 나서서 민의를 전달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직접 하고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또한 이를 표현하는 것이 비폭력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며 선진화된 민주주의 의식의 가치가 실현되는 현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5. 20/40/60대 시민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와 투표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공익.25세) - 20대는 투표를 처음 하거나 몇 번 경험한 세대입니다.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더욱 가지거나 혐오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미연.42세) - 투표는 국민이 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고 전반적으로 언행일치가 되는 후보들이 당선되는 것에서 제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민수.60세) - 사실 민주주의를 완전히 구현하는 표현 방식은 한계도 존재할 수 있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투표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이런 수단이 작동이 잘 안될 때 광장에 나가서 목소리를 낼 수도 있죠.
     
    6.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태도나 행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공익.25세) -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혐오를 접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미연.42세) - 지역감정을 버리고 젊은 세대들을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민수.60세) - 뜻이 다른 상대의 의견도 들어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약속입니다. 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정치적 혼란을 만듭니다. 시민과 정치세력 등 모든 사회 구성원이 나라의 시스템을 움직이는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7.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나 공공기관들도 어떤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공익.25세) - 용기 내서 말하지 못하는 민의를 모아서 전달하는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관련 시민 운동을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특히 시민단체가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인터넷으로 홍보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최미연.42세) - 국민을 대변하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관련 설문조사도 자주 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매체가 되길 바랍니다.
    (강민수.60세) - 우선 만들어진 목적에 충실해 적극 활동해야 합니다. 사회가 이를 원할 시 자연스레 융성시키고 원하지 않으면 저절로 쇠퇴하게 할 것입니다.
     
    8. 우리 사회가 국민의 목소리를 잘 반영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이공익.25세) - 서로 달라도 경청하고 수용하려는 태도와 정부, 지자체, 시민사회가 국민의 정치 참여도를 올릴 수 있게 가깝게 다가오길 바랍니다. 예로 학교에서 청소년이나 대학생에게 정부와 지역사회의 좋은 활동을 소개하거나 체험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지역센터에서는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노력을 하길 바랍니다.
    (최미연.42세) - ‘소통’이 중요합니다. 특히 매일매일 소통한다는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민수.60세) - 과거 공직사회가 국민들의 1-10까지의 기본적인 요구를 해결했다면 현시대는 매우 복잡해 1.5, 3.75 등의 다양하고 세부적인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각지대를 소외하지 않고 폭넓게 대변하는 조직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표하는 시민의 모습 / 출처 : Pixabay © geralt
     
     
    이번 선거는 단순히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절차를 넘어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체감하고 참여하는지 여실히 보여준 시간이었습니다. 투표에 숨겨진 현장의 목소리는 정치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일상의 선택과 행동에서 비롯됨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선거를 준비하며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스스로 다양한 사회적 의제와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 참여하며 온 오프라인에서 활발히 토의하고 연대하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를 집단적인 퍼포먼스와 상징으로 만들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승화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약 7개월간 펼쳐진 빛의 물결로 불린 ‘응원봉 집회’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등장한 독창적이고 자발적인 집회 형태는 단순히 즐기는 K-POP 문화가 아닌 비폭력·비 대립, 세대 통합, 시민 주체성 등의 가치를 전달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정치적 위기 상황을 꺼지지 않는 LED와 풍자하는 피켓으로 극복하며 지속적인 주권 의지와 해학적인 면모를 선보였기에 큰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 여의도 국회 응원봉 집회를 담아낸 일러스트 / 출처: AI 기반 도구를 활용해 제작
     
     
    기존 시민 주도 활동도 능동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전형적인 소셜 미디어 캠페인, 거리의 발언, 지역 커뮤니티의 활동 등이 이어졌고 우리 사회는 노동, 환경, 예술 등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들이 교류되고 발전하는 공론의 장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점차 이를 뛰어넘어 국민 청원과 고발장 제출,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의 국민 참여,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토론회 등 실제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신·구의 융복합적인 정치·문화적 현상은 일종의 ‘생활 민주주의’의 형태로 오늘날 민주주의를 탄생시켰습니다.
     
    투표함은 닫혔지만 민주주의는 계속됩니다. 제도적 혼란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스스로 민주 질서를 판단하고 느끼며 한 표를 행사하는 시민들을 목도하였습니다. 특히 개개인의 적극적 참여와 집단적 표현 문화는 향후 일종의 ‘감각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소 실천하며 체득했던 민주적 경험은 선거 결과를 넘어 온몸의 감각으로 남아 후대에 전해지고 민주주의를 진화시키는 불씨가 돼 다가오는 시대에 깊은 여운을 남길 것입니다.
     
    “민심은 물과 같아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방향을 잃은 배를 가라앉히기도 한다.” 다양한 시민들과 소통했던 2일간의 기록은 직접 대의민주주의를 체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무엇보다 극단적인 정치 갈등 속 허무주의를 느끼기보다 작아 보이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투표용지에 주권을 행사하는 시민들을 보며 민심의 무서움과 민주주의가 생생히 살아있어 작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52년부터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선출해 온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하지만 그 이후 민주주의의 정착 과정은 멀고도 험난했습니다. 2024년 12월 3일의 밤과 대통령 선거, 그리고 헌정질서의 의미와 민주주의의 방향에 대해 우리 역사는 어떤 평가를 할까요?
     
     
     
    ▶에디터의 투표 인증샷 /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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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초스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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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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