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스런 역사, 그러나 기억해야 할 역사
-제14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이하며-

일본은 중일전쟁을 시작하던 1930년대 초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던 1945년 8월 15일까지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 점령지였던 중 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동티모르 등 여성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로 삼았다. 그러나 그 당시 일본군 문서에는 그 여성들을 ‘위안부’라고 표시했다. 피해여성의 수는 20여만 명을 비롯해 여러 추정치가 있으나 관련 자료가 전면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수치를 알기 어렵다. 한국인 생존 여성들의 경우 동원 당시 나이가 11세의 어린 나이에서 27세까지로 보고되어 있으며, 14세~19세 때 동원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위안부’여성은 일본 육군성의 직접적인 지시와 정부 기관, 조선총독부, 대만총독부 등이 협력을 통해 강제 동원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UN 특별보고관은 이 문제를 명확하게 ‘전시 중 군대 성노예제(Military sexual slavery in wartime)로 규정하였다.
‘위안부‘여성들은 엄격한 감시와 통제 아래 하루에 많게는 몇십 명에 이르는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고, 병사들로부터 폭력, 고문, 자살 강요 등의 학대를 받았다. 성병이나 임신, 질병 등이 확인되면 강제적인 시술이나 낙태를 받아야 했고 군인들을 통해 마약을 주사 받거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마약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위안소에 있던 여성들은 종전이 되자 자살을 강요당하거나 집단 죽임을 당하였고, 머나먼 타지에서 고국으로 생환하기 위해 갖은 어려움을 겪거나 귀환을 포기하기도 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위안소’에서 얻은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대다수가 성병, 자궁 이상, 불임, 가혹행위로 인한 외상 등이 확인됐고, 대인공포증, 불안, 수치심, 자기 비하 등의 심리적 후유증도 심각했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죄인으로 여기며 숨죽여 살아야 했고 그리하여 대부분 빈곤과 궁핍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본군‘위안부’피해 역사는 해방 후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대에 이르러 윤정옥 이화여자대학교 교수(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초대 공동대표 1925 ~ )가 해방 후 돌아오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의문과 책임감으로 집념 어린 조사를 시작했고. 한국교회여성연합회와 한국여성운동 단체들이 힘을 모아 1988년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아직 세상으로 드러난 피해자가 없던 당시,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임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김학순(1924~1997)의 기자회견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개설된 ‘정신대 신고 전화’를 통해 피해 사실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과 피해자 접수가 시작되었지만, 일본은 정부의 관여를 계속 부인했고, 이에 정대협과 여성계는 1992년 1월 8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곱 가지 요구사항-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수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을 촉구하며 첫 번째 수요시위를 시작했다. 이후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정대협 주최로 이어져 2011년 12월 14일에 1000회를 맞이하여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군‘위안부’역사에 대한 일본과 세계인의 반응
이러한 일본군‘위안부’ 역사는 세계인의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전쟁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규탄하고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물꼬를 튼 것이 미국 연방의회 일본군 위안부 사죄(HR121) 결의안이다. 2007년 7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일본계 미국인인 마이클 혼다(Michael Honda)의원이 제기한 일본군위안부 관련 결의안이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 결의안은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명백하게 인정하고 사죄할 것과 끔찍한 범죄 행위에 대하여 현재와 미래 세대들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를 계기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새로운 국면를 맞이했다. 2008년 10월 30일, 유엔인권이사회(UNHRC)와 유럽의회 등 각국의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피해 여성들의 적극적인 증언과 국내외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단체의 헌신적인 활동, 재미 한인 사회의 노력이 함께 이룬 결과였다.
2014년 UN 인권위원회의 최종 권고문은 이러한 세계의 목소리를 집약하고 있다. 이 권고문은 일본의 제6차 국가보고서를 심의한 뒤 채택한 최종 견해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 권고한 최종 내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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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 대하여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입법 및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 1. 전시 중에 일본군이“위안부”에 대해 저지른 모든 성노예 또는 기타 인권 침해 혐의가 효과적이고 독립적이며 공정하게 조사되고 가해자는 기소되고 유죄 판결 시 처벌을 받도록 한다. 2.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정의로운 접근과 완전한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3. 가능한 모든 증거들을 공개해야 한다. 4. 적절한 참고 자료를 포함시킨 교과서로 성노예제 문제에 대하여 학생과 일반 대중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5. 당사국의 책임에 대하여 공식 인정하고 공개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 6. 위안부 역사를 부정하거나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비난받아야 한다. |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응
유엔과 양심적인 세계인의 반응과 달리 일본 정부가 내민 것은 1965년에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이었다. 일본은 이 협정을 근거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인 배상 문제는 이미 종결된 사안’이라며 '도의적인 수준의 책임'으로 대응해왔다. 일본의 최고 재판소는 1990년대 제기된 위안부 피해자, 징용자 소송에서 "한국이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여 최종적으로 청구권을 소멸시켰으므로 더 이상 청구권은 없다"며 패소 결정을 내렸다.
이후 한국과 세계의 여론에 밀려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의 과오 인정과 사과 발언이 있었고, 이어 1993년에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총리 담화를 통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공식 발언이 나왔다.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밝혀 위안부 문제의 책임이 군에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1995년 7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했다. 기금은 한국 피해자에게 '쓰고 나이킨(償い金, 속죄금, 당시 언론은 위로금으로 해석)' 명목으로 지원했고, 국민 모금 방식으로 기금을 조성함으로 피해 여성들이 요구했던 정부의 사죄와 법적 배상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게 바로 ‘2015 한일 위안부 협상’(이하 2015 한일 합의)이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하고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으나, '굴욕 협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TF’의 보고서는 이 합의의 문제점을 공식 확인했다. 국가 간 협약이기에 파기는 못하지만, 문제가 많은 굴욕적인 외교 협상이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한.미.일 간의 안보 협력 강화를 위해 한일 간의 걸림돌이 되었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한 외교 참사였다는 것이다. UN 인권위원회의 지적대로 무엇보다 협상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이 배제된 채 이뤄졌다는 점,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 처리에 대한 이면합의가 존재한다는 점은 인권문제를 다루는 기본자세가 결여된 외교참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했다.
이처럼 일본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사실상 진정성 있는 사죄나 배상을 한 적이 없다. 겉으로는 외교적인 수사로 일관하며 뒤로는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는 것을 방해하고, 학생들에게는 위안부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으며 국내외 극우 세력을 통해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를 능욕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국회에서는 2026년 2월 12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서 위안부 피해 여성을 모욕하는 경우 처벌할 근거를 마련하였다.
계속해서 기억하고 언급해야 할 이 역사
명백한 증인과 증언, 증거가 존재하는 일본군‘위안부’역사를 대하는 일본 정부와 대비되는 국가가 있다. 바로 일본과 같은 2차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행해진 유대인 학살은 인류의 근현대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역사 중 하나다. 그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모아 그 유대인 학살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폴란드 바르샤바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재단(Auschwitz-Birkenau Foundation)을 2009년에 설립하였다. 이 재단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유적의 보존과 관리 기금 조성을 맡고 있으며 수많은 유물·문서의 보존, 복원, 목록화하여, 고통스러운 기억을 미래 세대에 전하는 그것을 핵심 사명으로 삼고 있다. 2019년 12월 6일, 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안젤라 메르켈 총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역사는 (계속)언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와 미래에 모든 개인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으며, 그것이 그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명예롭게 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총리는 아우슈비츠를 방문할 때마다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독일의 수도 베를린 한복판(브란덴부르크 문 남쪽)에 크기가 다른 2,711개의 격자형 콘크리트를 세운 ‘유대인 학살 추모 공원’이 약 1만 9,073㎡(약5,750평)의 광대한 면적에 조성되어, 전 세계인들이 방문하는 추모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나치 정권의 전쟁과 유대인학살에 대한 역사교육은 독일에서 의무화되어 있다. 다시는 그런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전 세계인에게 밝힌 셈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일 년 내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추모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곳에는 수용되었던 이들의 신발과 가방, 그리고 머리카락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당시의 참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반지하실로 조성된 가스실과 화장장 화로를 보고 있으면 모두가 숙연해진다. 전쟁이 인간의 양심과 지성을 어디까지 파괴하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역사적인 현장이다.
그 수용소 현장 벽면에 걸려있던 스페인 태생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1863~1952)의 글귀가 많은 방문객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들은 그것을 다시 겪게 될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역사가 고통스러운 역사지만 잊지 말고 계속해서 말하고 기억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 기억의 시도는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일본대사관 앞 정기 수요집회로 시작되었다. 수요집회 1000번째 맞이하는 시점인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여성을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조형물의 제작과 건립의 모든 과정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이후 평화의 소녀상(평화비)는 다양한 형태와 이름으로 국내외에 확산되어, 2026년 7월 현재, 국내 155곳, 일본과 미국, 중국, 호주, 독일 등 10개국 35곳에 세워져 있다. 이제 평화의 소녀상은 전쟁 중에 당한 성노예제 피해 여성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정의로운 해결과 전쟁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기억 문화는 기록문화와 함께 인류의 양심을 일깨우고 보편적인 가치와 원리를 추구함으로 인간 내면에 자리한 야만성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는 인류 문화의 두 축이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저장하고 되살리는 행위다.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맥락에 의해서 과거는 기억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됨으로 역사의 진보를 이루는데 기여한다. 기억 문화로서 평화의 소녀상은 과거 고통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 없는 평화 세상을 염원하는 인류의 소망을 담아내면서 세계적인 평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제14차 세계 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매년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지킨다. 이날은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날을 기려 정해졌다. 이후 2012년 타이완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매년 8월 14일을 세계 기림일로 정했고, 한국에서는 2017년 법 개정을 거쳐 2018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정해졌다.
이날은 단순한 추모일이 아니다. 피해자의 용기와 증언을 기억하고 일본군 성노예제의 진실 규명, 사죄, 배상, 역사 교육을 촉구하는 날이다. 전시 성폭력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가 책임 있게 배우고 행동하자는 의미에서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야 할 기념일이다.
제14차 세계 일본군‘위안부’기림일 총주제는 “그들의 굳센 바람, 우리의 힘찬 바람이 만나”로 정해졌다. 기억은 말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기억은 책임으로 이어져야 하고, 책임은 교육과 연대로 이어져야 한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현실에서, 기림의 날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 서서 정의와 화해의 길을 묻는 날이 되어야 한다. 특히 다음 세대에게 이 역사를 정확히 전하는 일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시민의 책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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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5
1. 에너지의 날, 불을 끄는 행위를 넘어 삶의 양식을 묻다
매년 8월 22일은 ‘에너지의 날’입니다. 밤 9시가 되면 전국 곳곳의 공공기관과 아파트 단지, 상가 건물에서 10분간 불을 끄는 일괄 소등 행사가 진행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절전 캠페인이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어둠 속에서 잠시 꺼진 전등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 에너지의 날은 단순한 절전 캠페인을 넘어서야 합니다.
예측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빈번한 이상기후는 이미 우리 삶의 안전과 생존 기반을 흔들고 있습니다.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은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과연 어떤 에너지 시스템과 지역사회의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이 엄중한 질문들 앞에 시민과 지역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깊이 성찰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탄소 중립 실천과 재생에너지로의 과감한 전환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에너지 전환을 이라는 국가적·문명사적 과제에 대해 지극히 단편적인 ‘기술’이나 ‘산업 발전’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갇혀 있습니다. 저는 경기 북부의 중심도시 의정부에서 주민들의 뜻을 모아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를 향해 다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정교한 기술과 막대한 자본만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요?”
저는 지역사회 현장에서 이웃들과 눈을 맞추는 과정에서 한 가지 단단한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에너지 전환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지역, 그리고 사람과 자원 사이의 ‘관계의 변화’라는 사실입니다. 누가 에너지를 생산하는 주체인가, 중요한 의사결정 구조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있는가, 에너지를 통해 창출되는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는가, 그리고 그 추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지역 내 갈등을 우리는 어떤 민주적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답을 하는가에 따라 참된 의미의 에너지 전환이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토건 사업의 변종으로 전락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핵심 열쇠입니다.

도시발전개념도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18)
2. 수동적 ‘소비자’에서 주도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책임지는 '에너지 시민'으로
우리가 경험해 온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은 대단히 중앙집중적이고 일방적이었습니다. 거대한 석탄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가 바닷가나 외곽 지역에 들어서고, 거기서 만들어진 전기는 거대한 송전탑을 거쳐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대도시로 전달되었습니다. 도시의 시민들은 그저 전력 공기업이 정해놓은 요금을 다달이 내며 전기를 관성적으로 소비하는 ‘소비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기존 중앙집중형 에너지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듭니다. 햇빛과 바람, 지열은 특정 대기업이나 전력 독점 기업만의 소유물이 아닌 ‘인류 공통의 자산(Commons)’입니다. 이제 발전소는 바닷가의 거대한 부지에만 들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날마다 걸어 다니는 동네의 지역 구석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수많은 유휴공간이 깨끗하고 안전한 친환경 발전소로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역으로 권한과 역할이 분산되는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속에서, 주민은 더 전기를 사서 쓰기만 하는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출자금을 모아 협동조합의 주주로 참여합니다. 발전소 용지를 함께 발굴하고, 조합원 총회를 통해 민주적으로 운영 방침을 결정하며, 생산된 전력에서 발생하는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지역사회 및 이웃과 정당하게 나누는 ‘에너지 시민’으로 당당히 거듭나게 됩니다.
제가 있는 의정부 자연에너지협동조합 역시 이러한 시민주도형 에너지 민주주의 철학에서 출발했습니다. ‘시민 햇빛발전소’는 단순히 전기를 만들어 팔아 수익을 올리는 상업 시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지역의 에너지 생산 주체가 되고, 공공의 의사결정과 정책 수립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의 미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해 나가는 ‘생활 속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이자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실천공간’입니다.
협동조합의 가장 소중하고 커다란 자산은 설비의 ‘발전용량(kW)’이나 계좌의 잔액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기후위기 앞에서 능동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시민으로 성장해 나가는 그 모든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지역에서 이뤄낸 가장 값진 에너지 전환의 결실입니다.
3. 갈등은 사업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숙성되는 과정이다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이나 태양광 발전소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주민 갈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합니다. 일부 언론이나 개발업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보며 주민들의 이기주의나 재생에너지 자체의 한계 때문이라고 쉽게 치부합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재생에너지나 친환경 발전소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자신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된다는 사실입니다.
사업 계획은 이미 외지 개발업자와 자본에 의해 비밀리에 수립되고, 법적 요건을 채우기 위해 개최되는 주민설명회는 형식적인 통과의례에 불과하며, 막상 발전소가 들어서서 발생하는 경제적 수익은 모조리 외부 자본가들이 독식하고 지역에는 어떠한 혜택도 돌아오지 않는 구조라면, 그 어떤 지역의 주민이라도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재생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 추진 방식이 가진 불통과 독점의 문제입니다.
반대로 사업의 첫 기획 단계부터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투명한 정보가 공유되며, 생산된 전력 수익이 지역의 사회복지 기금이나 마을 공동체 발전 기금으로 환원되는 구조를 만든다면 현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물론 주민이 주도하는 협동조합 방식은 수월하지 않습니다. 조합원 모임과 주민 간담회를 수없이 개최해야 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다양한 의견을 조정하기 위해 밤늦도록 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효율성을 따지면 느리고 답답한 과정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랜 대화와 진통, 타협을 거쳐 도출된 사회적 합의는 그 어떠한 오해나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뿌리를 갖게 됩니다. 협동조합은 바로 이러한 ‘선한 비효율성’의 가치를 존중하며, 속도보다 민주적 절차를 최우선으로 삼는 조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너지 전환은 기후위기 극복을 넘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귀중한 공동체 학습의 과정입니다.
4. 경기 북부에서 협동조합과 공익활동이 지니는 특별한 역사적 의미
경기 북부 지역은 오랫동안 ‘수도권’이라는 틀 안에 묶여 있으면서도 정작 수도권이 누리는 개발과 성장의 혜택에서는 소외됐습니다. 각종 중첩 규제는 산업 기반을 약화하고 지역경제의 오랜 정체로 이어졌습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 경기 북부 주민들이 오랜 세월 희생을 감내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기 북부의 구조적 조건과 한계가, 기후위기 시대에는 오히려 ‘가장 혁신적인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개발이 제한된 경기 북부의 자연환경과 공공 유휴부지들을 가치 있는 ‘공공 자산’으로 재평가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경기에너지협동조합을 포함한 각 시군의 에너지협동조합에서는 관 내외의 공공시설 옥상, 공공기관 주차장과 지붕, 도로변 유휴부지 등을 발굴하여 ‘시민 햇빛발전소’를 지속해서 건립해 왔으며 새로운 햇빛 부지를 발굴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경기 북부에서의 에너지 전환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기준은 바로 ‘발전 시설의 소유권과 이익이 어디로 흘러가는가’입니다. 지역 주민과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직접 출자하고 함께 소유하며, 발전소 운영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이 다시 지역사회 내부로 흘러 들어가는 ‘지역순환경제(Local Circular Economy) 모델’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제가 몸담은 의정부 자연에너지협동조합도 시민 햇빛발전소를 통해 얻은 이익의 일정 부분을 지역의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한 에너지 복지 사업에 먼저 재투입하고 있으며 찾아가는 환경 교육과 탄소 중립 생활 실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5. 에너지가 사람을 잇고, 사람이 마침내 공동체를 회복하다.
전기는 오직 기술적인 발전기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따뜻한 공익적 연대 속에서 비로소 ‘지속할 수 있는 생명의 에너지’로 완성됩니다.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저에게 가장 깊은 감동을 주었던 순간은, ‘이웃들과 조합원들의 삶이 눈에 띄게 변화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우리 집 전기요금을 조금이나마 절감해 볼까?" 하는 지극히 소박한 관심이나, 이웃의 권유로 소액 출자금만 내고 이름을 올렸던 평범한 조합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 교육을 듣고, 햇빛발전소 현장 탐방에 참여하면서 이분들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여러 체험과 활동을 통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깨달은 조합원이 공부를 거쳐 직접 단상에 서는 기후위기 전문 시민 강사로 변신하고 열정적인 지역 공익활동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지역의 햇빛과 바람으로 지역에서 깨끗한 전기를 직접 만들고, 그 전기를 지역의 가정과 기업이 소비하며,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이 다시 우리 동네 이웃들의 복지와 아이들의 교육 환경 개선으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 이러한 선순환은 단순한 경제적 이득을 넘어, 이웃 간의 무관심을 깨뜨리고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회복시켜 줍니다. 에너지 자립은 결국 우리 지역의 자립이자,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시민 자립의 완성입니다.
7월 9일 조합원 만남의 날(출처: 의정부자연에너지 협동조합)
6.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며, 관계가 미래를 만든다.
지금 전 세계는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 중립이라는 명제 아래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른 속도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 성공적인 전환을 이루어 낸 지역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첨단 기술이나 설비보다 먼저 ‘주민’이 존재했고, 거대한 발전소나 인프라보다 먼저 사람 간의 ‘신뢰’가 쌓여 있었으며, 차가운 자본보다 먼저 이웃을 살피는 ‘따뜻한 공동체’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태양광 패널의 숫자를 몇 개 더 늘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후위기 문제를 나와 내 아이들의 절박한 삶의 문제로 깊이 인지하는 더 많은 에너지 시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이루어 내는 더 깊은 협동의 경험, 그리고 내가 사는 지역을 스스로 바꾸어 나가는 주체적인 공익적 활동입니다.
에너지 전환은 생존을 위한 전략이자, 우리 지역사회의 민주주의를 풀뿌리에서부터 확장하고 숙성시켜 나가는 거대한 과정입니다. 협동조합은 그 민주주의와 공익적 가치를 우리의 삶터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따뜻하고 단단한 그릇입니다. 한 사람의 시민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동참하고, 한 장의 태양광 모듈이 지역의 소중한 공공 자산이 되며, 그 작은 협동의 경험들이 촘촘히 모일 때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당당한 거대한 동력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에너지 전환의 진정한 출발점은 차가운 기술이 아닌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성숙하게 이어주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지역의 미래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고 단단하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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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5※「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로 그리는 환경교육, 시흥YMCA에게 길을 묻다

/ ⓒ에디터 해지
기후위기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다.
뉴스에서도, 학교에서도, 동네 게시판에서도 흔하게 마주친다. 그러나 위기를 이야기만 하는 것과, 그 위기에 대응할 교육 체계를 갖추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다. 한 사람의 목소리로는 만들 수 없고, 결국은 여러 단체가 손을 맞잡아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에서 이 물음에 가장 구체적으로 답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가 시흥시다. 시흥시는 환경부 지정 환경교육도시이며, 관내 여러 환경단체와 중간지원조직들이 힘을 모아 시흥 환경교육플랫폼이라는 협력체계를 함께 꾸려가고 있다.
시흥시는 2023년 환경부로부터 법정 환경교육도시로 지정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하나다. 환경교육도시는 환경교육 추진 기반과 성과, 앞으로의 계획이 우수한 지자체를 환경부가 선정해 지원하는 제도로, 지정 이후 시흥시는 환경교육 전담 조직을 꾸리고 지역 환경교육 종합계획을 세우는 등 기반을 차근차근 다져왔다. 시흥환경교육플랫폼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결과물 중 하나다.

/ ⓒ에디터 해지
그 협력의 한 축에는 30년 가까이 지역 청소년활동을 이어오다, 환경과 인권, 공익활동 지원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온 시흥YMCA가 있다. 취재를 위해 시흥YMCA 사무국을 찾았다. 오래된 단체 특유의 차분한 공기가 흐르는 사무실에서, 서종호 사무총장을 만나 환경교육플랫폼이 만들어진 과정과 그 안에서 시흥YMCA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예상보다 솔직했다. 성과를 앞세우기보다, 지금 이 네트워크가 가진 한계와 고민까지도 가감 없이 꺼내놓는 자리였다. 미리 준비된 답변보다는, 질문을 받고 그 자리에서 곱씹어 나온 말들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지금 진행형인 이야기들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아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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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 : 사라진 네트워크의 빈자리에서 시작된 논의
시흥시에는 원래도 환경교육과 관련한 네트워크가 존재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엔가 그 네트워크는 활동을 멈추었고, 시흥의 환경교육은 한동안 구심점 없이 각 단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흩어져 이어가는 모양새였다. 상황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 시흥시가 환경부 지정 환경교육도시로 선정되면서부터다. 관내에 있는 여러 환경단체와 중간조직들 사이에서 "이제는 통일된 환경교육을 함께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기 시작했고, 그 논의는 지난해 실제 발족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지금의 환경교육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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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나아가기 위해 연대하다.
환경교육은 흔히 한 기관, 한 프로그램의 몫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역 안의 여러 주체가 자원과 정보를 나누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한 단체가 아무리 열심히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그 단체가 힘이 빠지는 순간 지역의 환경교육 전체가 함께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흥이 겪었던 '네트워크의 공백'은 바로 이런 취약함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단체가 필요했다. 공동으로 대처할 곳이 필요했다." 서종호 사무총장이 이 지점을 짚으며 꺼낸 말이다. 개별 단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환경교육을 이어가는 것과, 여러 단체가 하나의 창구를 통해 목소리를 모으는 것은 확연히 다른 무게를 가진다. 흩어져 있던 목소리들이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이면, 행정을 상대할 때도, 사업을 기획할 때도 훨씬 단단한 근거를 갖게 된다. 사무총장 말에 따르면 경기도 안에서도 이런 형태의 환경 교육 협력체는 흔치 않다고 한다. 그만큼 시흥의 시도는 의미 있는 실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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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흥YMCA의 동행
여기서 한 가지,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환경교육플랫폼은 시흥YMCA가 만든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플랫폼의 중심에는 시흥에코센터가 있고, 시흥환경교육네트워크가 간사단체로서 실무를 지원하는 구조다. 시흥YMCA는 이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여러 단체 가운데 하나이며, 주도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다.

/ ⓒ에디터 해지
사무총장은 인터뷰 내내 이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짚었다.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서, 이건 꼭 참고해달라"는 당부가 유독 또렷하게 남았다. 여러 단체의 몫으로 돌려놓으려는 태도였다. 환경교육 플랫폼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여러 단체가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맡으며 함께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시흥YMCA는 그 여정에서 성실한 동행자의 자리를 택하고 있었다.

/ ⓒ에디터 해지
4. 거버넌스 구축: 협력 구조로 단단해지는 환경교육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단체는 생각보다 많다. 규모가 크지 않은 단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활동하다 보니, 서로의 활동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과제였다. 최근에는 시흥시 차원의 기후 관련 행사를 여러 단체가 함께 시도했고, 올해부터는 이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환경기금의 지원을 받아 홍보를 진행한 환경교육주간에는, 6월 초를 기점으로 열 개 단체가 각자의 장소에서 체험 활동을 열었다. 한 곳에 모여 큰 규모의 통합 행사를 만드는 단계라기보다, 각 단체가 자기 자리에서 준비한 활동을 열고 서로의 소식을 공유하는 정도라고 사무총장은 담담히 말했다.

/ ⓒ에디터 해지
의미 있는 지점은 또 있다.
시흥에코센터는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환경교육사 2급 양성기관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 인터뷰가 이뤄질 당시만 해도 전국에서 이런 인증을 받은 곳은 천안과 시흥, 단 두 곳뿐이었다. 이후 2026년부터는 경남환경재단이 새롭게 지정되며 세 곳으로 늘었지만, 수도권 안에서는 여전히 시흥이 유일하다. 시흥에코센터를 중심으로 이 네트워크가 발족한 배경에는 이런 전문성의 축적도 자리하고 있다. 단순히 여러 단체가 모였다는 것을 넘어, 실제로 환경교육 인력을 길러내는 인증 체계까지 지역 안에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각 단체가 개별적으로 따내던 공모사업들도, 이제는 네트워크 차원에서 모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사업 하나하나를 개별 단체가 따로 준비하고 보고하던 방식에서, 네트워크가 창구가 되어 자원을 나누는 방식으로 옮겨가는 것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변화가 아니다. 단체 간의 신뢰가 쌓여야 가능한 일이고, 동시에 그 신뢰를 다시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올해부터는 현장에서 거버넌스 형태를 갖추기 위한 준비를 여러 단체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방향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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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마다 마을학교가 있는 도시
네트워크 활동이 실제 시민의 삶에는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을까. 사무총장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단체 규모가 크면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겠지만" 하고 운을 뗀 뒤, 시흥의 사례로 와글학교와 댓골마을학교를 꺼냈다. 댓골마을학교에서는 우유팩이나 폐건전지를 모아오면 화장지나 식용유로 바꿔주는 활동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거창한 캠페인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으로 이어지는 방식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시흥시에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동마다 마을학교가 다 있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촘촘한 구조다. 다만 모든 마을학교가 환경 관련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중에서도 시흥시 차원에서 환경 관련 활동을 이어가는 마을학교들이 있는 것이다. 시가 직접 관여하는 사업이기에 가능한 특이점이라고 사무총장은 짚었다. 동 단위까지 촘촘하게 퍼져 있는 마을학교의 존재는, 환경교육이 생활권 안으로 스며들 수 있는 잠재적인 통로이기도 하다. 동네 마을학교에서 반복되는 작은 실천들이 결국 더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인터뷰 내내 떠나지 않았다. 댓골마을학교의 사례는, 아직 시흥 전역으로 넓게 퍼지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다른 동의 마을학교들이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6. 민(民)과 관(官) 사이, 예산이라는 현실
네트워크가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방향은 무엇일까. 사무총장의 답은 환경 정책이라는 것이 민간이나 행정 어느 한쪽만의 힘으로 주도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함께 참여하겠다는 의제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예산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늘 따라붙는다. 좋은 취지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렵고, 결국 누가 어떤 자원을 대고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시흥에는 이미 몇십 년째 활동을 이어온 환경교육 연합이 있다. 그 안에서도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 캠페인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 등 성격이 저마다 다른 여러 단체가 얽혀 있다. 성격이 다른 단체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모이다 보니, 지향점을 맞추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다. 여러 단체가 모여 만든 네트워크이다 보니 한계도 뚜렷하다는 것이 솔직한 진단이다. 예산이 없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쉽게 나서기 어렵고, 상급 기관과의 협의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환경교육네트워크가 아직 고유번호증을 발급받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정식 등록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다 보니 직접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그래서 지금은 시흥YMCA라는 단체명을 빌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환경교육주간 행사 역시 시흥YMCA가 사업을 수주하고 공모를 통해 각 단체에 나누어주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름을 갖추지 못한 네트워크가 이름을 가진 단체의 어깨를 빌려 걸음을 떼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 드러난 활동의 화려함 뒤에는, 이렇듯 아직 제도의 틀 안에 자리 잡지 못한 현실이 함께 있었다. 여러 단체가 뜻을 모아 만든 협의체라 하더라도, 법인격이나 고유번호증 같은 최소한의 행정적 장치가 없으면 지원 사업 하나에 지원서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결국 그 빈틈을 메우는 몫은 시흥YMCA처럼 이미 법인격을 갖춘 단체의 몫으로 돌아가고, 그 단체 역시 넉넉한 여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지역을 위해 기꺼이 짐을 나누어 지고 있는 셈이었다.

/ ⓒ에디터 해지
"지역의 색을 담은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환경교육을 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교육이 실제 환경 보호라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 이 지점에서 사무총장은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전제를 달고 앞으로의 과제를 짚었다. 표준화된 교보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지만, 지역마다 처한 환경 의제가 다른 만큼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교육 프로그램과 교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은 갯벌이 의제이고, 어느 지역은 대기질이 의제일 수 있다. 하나의 틀로 모든 지역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 단체가 필요에 따라 이를 각색해서 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이런 작업을 해낸다면, 개별 단체 차원이 아니라 네트워크 차원에서 함께 추진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사무총장은 덧붙였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구상이지만, 네트워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언젠가 여러 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역 맞춤형 콘텐츠를 만드는 날이 온다면, 그 출발점은 오늘의 이 인터뷰에서 나온 소박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시흥 YMCA의 뿌리
시흥의 환경 활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체가 하나 더 있다. 시흥에서 가장 오래 활동해온 시흥 환경운동연합이다. 전국 단위의 플로깅 활동은 물론, 철새를 비롯한 생태 모니터링까지 폭넓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이런 활동들이, 지금의 환경교육 플랫폼이 설 수 있는 토양이 되어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시흥YMCA가 있다. 시흥YMCA가 가장 공을 들여온 활동은 생태환경 보전이다. 터널 건설을 반대하며 생태 보존을 지켜낸 운동은 지금까지도 시흥YMCA를 대표하는 활동으로 꼽히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30년 가까이 청소년활동을 중심에 두었던 단체가, 어느새 생태를 지키는 일에도 오랜 시간 발을 담가온 것이다. 처음부터 환경단체로 출발한 곳이 아니기에, 시흥YMCA가 걸어온 궤적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청소년의 삶을 고민하던 자리에서 출발해, 그 삶을 둘러싼 자연과 지역 사회, 그리고 인권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넓어져 온 셈이다. 청소년활동과 환경활동, 인권활동이 서로 멀지 않다는 것을 시흥YMCA의 걸음이 보여주고 있다. 이번 환경교육플랫폼 참여 역시, 그런 오랜 확장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 밖의 활동 연혁은 시흥YMCA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함께 걷는다는 것
환경교육플랫폼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시흥의 단체들은 저마다 다른 역사와 방식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몇십 년째 생태를 지켜왔고, 누군가는 마을 단위에서 우유팩과 폐건전지를 모으며, 누군가는 아직 정식 등록조차 마치지 못한 채로 활동을 이어간다. 그 사이에서 시흥YMCA는 동행자의 자리를 지키며, 네트워크의 한 축을 묵묵히 받치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국을 나서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완성된 체계를 자랑하는 것보다, 지금 가진 한계를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더 단단한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 네트워크가 다른 단체의 이름을 빌려 사업을 이어가고, 큰 통합 행사 대신 몇 단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체험을 여는 지금의 모습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음이다. 예산도, 제도적 근거도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여러 단체가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가며 걷고 있다는 것. 그것이 지금 시흥의 환경교육이 서 있는 정직한 자리다. 그리고 그 걸음의 한편에는, 30년 가까이 지역과 함께 걸어온 시흥YMCA가 여전히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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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9※「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사이자 공익활동가의 시선으로 본 평생학습 현장 르포
"AI라는 말을 들으면 왜 중장년·시니어들은 어렵게 느낄까?"
"AI(인공지능)입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중장년과 시니어들은 "그건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 "너무 어려운 기술", "컴퓨터 전문가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AI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AI를 설명하는 방식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현재 AI를 소개하는 대부분의 자료에는 프롬프트, 생성형 AI, 머신러닝, 딥러닝, 알고리즘, 챗봇과 같은 낯선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전문 용어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에게 심리적인 장벽을 만든다. "처음부터 너무 어렵다"는 인식이 생기면 배우려는 의욕도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스마트폰을 잘못 눌러 중요한 정보가 사라질까 걱정하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되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든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은 "배워도 금방 바뀐다"는 부담감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중장년과 시니어들은 AI를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폰 음성검색, 사진 자동 보정, 길찾기, 번역, 유튜브 추천 영상, 은행의 금융사기 탐지 서비스 등은 모두 AI 기술을 활용한 기능이다. 다만 그것이 AI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중장년·시니어 대상 AI 교육은 기술을 설명하는 데서 출발하기보다 생활 속 사례를 통해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AI는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일상을 도와주는 똑똑한 비서"라는 인식을 심어줄 때 학습에 대한 부담은 줄어든다. 교육도 전문 용어보다 "사진 속 글자를 읽어주는 기능", "문장을 대신 써주는 도우미", "여행 일정을 함께 짜주는 친구"처럼 실제 생활과 연결된 예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 이해도와 활용도가 크게 높아진다.
결국 중장년과 시니어가 AI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기술 자체보다 낯선 용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나와는 거리가 먼 기술'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것이 AI 교육의 첫걸음이며, AI는 누구나 배워 활용할 수 있는 생활 속 도구라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I는 글을 대신 쓰지 않았다
"선생님, AI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

/ ⓒ에디터 럭비공
수원 신한 학이재 배움터의 오후 강의실, 삼삼오오 모인 수강생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7월의 과정은 주제는 '스마트폰 AI를 활용한 글쓰기'였다.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정작 수강생들의 첫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다.
"선생님, AI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
교실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AI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 순간 필자는 이 교육의 진짜 목적이 AI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 ⓒ에디터 럭비공
배움터에서 만난 새로운 도전
신한 학이재 배움터에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50~60대, 손주와 소통하고 싶은 70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싶은 시민들이 모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AI를 배우고 싶다."
그러나 수업이 시작되면 AI보다 먼저 넘어야 할 벽이 나타난다.
스마트폰 글자를 크게 만드는 방법.
음성 입력 버튼을 찾는 방법.
복사와 붙여넣기를 하는 방법.
앱을 설치하고 로그인하는 과정.
젊은 세대에게는 익숙한 기능이지만, 중장년과 시니어에게는 AI보다 먼저 익혀야 할 또 하나의 언어였다. 한 수강생은 웃으며 말했다. "AI는 어렵지 않은데 스마트폰이 저를 시험하네요." 교실에는 웃음이 번졌지만, 그 말 속에는 디지털 전환 시대를 살아가는 중장년 세대의 현실이 담겨 있었다.
프롬프트보다 어려운 것은 '내 이야기를 꺼내는 일'
AI는 질문한 만큼 답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강생은 처음에 이렇게 입력한다.
"글 써줘."
AI는 짧고 평범한 글을 보여준다. 그러자 실망한 표정이 이어진다. 나는 다시 질문을 바꿔 보자고 제안한다.
"40년 전 첫 직장에서 퇴근하던 겨울 저녁을 떠올리며 따뜻한 에세이를 써 주세요."
"대만 여행에서 만난 친구와의 추억을 감성적으로 정리해 주세요."
"손주에게 들려주고 싶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써 주세요."
같은 AI인데도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수강생들은 놀란다.
"질문이 이렇게 중요했네요."
그 순간 필자는 프롬프트 교육이 단순히 AI를 잘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AI는 기억을 만들지 않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간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쓰는 시간이었다. AI가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한 수강생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선생님, 이 글은 잘 썼는데 제 마음은 안 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AI에게 글을 맡기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자고 말했다.
조금씩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싸 주시던 도시락.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사 드린 내복.
군 복무 시절 전우들과의 추억.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던 날.
AI는 그 기억을 문장으로 다듬어 주었지만, 기억을 꺼내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그날 필자는 AI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정리해 주는 도구라는 사실을 수강생들과 함께 배웠다. 교육은 끝났지만 배움은 멈춘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질문은 계속된다.
"집에 가니까 다시 모르겠어요."
"지난번 대화가 없어졌어요."
"업데이트가 되면서 화면이 바뀌었어요."
AI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교육은 대부분 한두 번의 특강으로 끝난다. 평생학습 현장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도 바로 여기였다. 배운 내용을 생활 속에서 반복해 볼 수 있는 환경이 부족했다. 수료증은 받았지만 혼자 연습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AI 활용 능력은 한 번의 교육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복해서 사용하고, 질문하고, 서로 알려 주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역량이 된다.
배움에서 공익활동으로 이어지는 길
수업이 끝난 뒤 한 수강생이 다가와 말했다.
"저도 나중에 다른 어르신들에게 스마트폰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 말을 들으며 일본의 공민관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서포터' 제도가 떠올랐다. 교육을 받은 주민이 다시 지역의 강사가 되고, 새로운 학습자를 돕는 구조다.
평생학습관에서 AI를 배운 시민이 도서관에서 디지털 멘토가 되고, 경로당에서 스마트폰 봉사를 하고, 마을배움터에서 글쓰기 모임을 이끌 수 있다. 배움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공동체의 자산이 될 때 더 큰 가치를 만든다.
공익활동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내가 배운 것을 이웃과 나누는 순간부터 공익은 시작된다. 강사가 아니라 함께 배우는 사람으로 필자는 강단에 서 있지만, 매 수업마다 배우는 사람은 오히려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AI는 새로운 기술이지만,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수강생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AI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삶의 기록이다. 나는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는 일이다. 평생학습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장 취재 기자의 시선
신한 학이재 배움터에서의 AI 글쓰기 교육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중장년과 시니어에게 AI는 디지털 기기가 아니라 잊고 지냈던 자신의 삶을 다시 기록하게 만드는 계기였다. 하지만 현장은 정책보다 한 걸음 앞서 있었다. 교육 횟수를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학습자가 혼자서도 계속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평생학습관, 도서관, 마을배움터, 공익활동지원센터가 연결되어 교육 이후에도 학습동아리와 디지털 멘토링이 이어진다면 AI 교육은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공익 활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AI 시대에도 결국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배움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다.

/ ⓒ에디터 럭비공
신한 학이재에서 만난 수강생들의 눈빛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도 누군가는 스마트폰 화면 앞에서 첫 질문을 입력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히 AI를 향한 질문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첫걸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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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7※「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년 경기도 평생학습 정책연구과제 수요조사」 참여로 더 나은 평생학습 정책을 제안하다

/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급변하는 인공지능(AI) 시대와 초고령사회,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는 평생학습의 의미를 새롭게 바꾸고 있다.
이제 평생학습은 단순한 취미 활동이나 자기계발을 넘어 일자리, 디지털 역량, 사회참여,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필수적인 사회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은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정책 연구에 반영하기 위해 '2026년 경기도 평생학습 정책연구과제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번 수요조사는 경기도 평생학습 정책이 행정 중심이 아닌 현장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앞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 연구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현장의 의견을 담는 '2026년 경기도 평생학습 정책연구과제 수요조사', 이번 조사는 2026년 7월 13일부터 7월 24일 오후 6시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경기도 내 평생학습 관련 기관과 단체, 평생교육시설 종사자, 강사, 활동가, 연구자 등 평생학습 분야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은 매년 정책연구를 통해 경기도 평생학습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올해 역시 실제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주제를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
특히 이번 조사는 단순한 설문조사에 그치지 않는다. 평생학습 정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지, 어떤 분야를 우선적으로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장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수렴하여 향후 정책 개발의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평생학습은 지역마다 환경이 다르고 학습자의 특성도 다양하기 때문에 현장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수요조사는 실제 현장에서 활동하는 관계자들의 경험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의미 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내용을 제안할 수 있을까
이번 수요조사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을 중심으로 의견을 받고 있다.
첫 번째는 평생학습 정책 현안 및 연구가 필요한 주제이다. 예를 들어 AI 시대 디지털 문해력 교육, 중장년 재취업 교육, 노년층 스마트폰 활용교육,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평생학습, 장애인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평생교육 확대 등 현재 현장에서 필요성을 느끼는 다양한 정책을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연구 분야이다. 최근 평생학습은 단순한 강좌 운영을 넘어 지역사회 문제 해결과 연계되고 있다. AI 활용 교육, 디지털 격차 해소, 1인 가구 평생학습, 베이비부머 재도약 지원, 탄소중립과 환경교육, 시민참여형 학습공동체 마을교육 활성화, 평생학습도시 발전 모델 등 앞으로 경기도가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할 분야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기타 정책 제안 및 자유 의견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사항이나 제도 개선사항, 행정지원, 강사 역량 강화, 예산 지원, 프로그램 운영 방식 등 평소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내용을 자유롭게 작성하면 된다. 특히 구체적인 정책 아이디어가 있는 경우에는 별도의 제안서를 제출하여 보다 심층적인 연구과제로 제안할 수도 있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조사
참여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포스터에 안내된 QR코드 또는 온라인 설문 주소에 접속하면 5~10분 정도의 시간만으로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연구과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경우에는 별도의 제안서를 작성하여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온라인 설문은 짧은 시간이면 참여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내년 경기도 평생교육 정책 연구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즉, 현장에서 활동하는 강사 한 사람의 경험, 작은 학습공동체의 의견 하나가 새로운 정책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평생학습 정책은 현장에서 시작된다.
평생학습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생애 전 과정에 걸쳐 지속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는 교육이다. 최근에는 AI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 고령화, 기후위기 등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중장년층의 재취업,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 문제는 평생학습이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또한 지역 공동체 활성화와 시민참여 확대, 문화예술 활동, 환경교육, 건강한 노후 준비까지 평생학습이 담당하는 역할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행정기관만의 고민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강사와 기관 종사자, 학습자들의 생생한 경험이 함께 반영될 때 비로소 현실적인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수요조사는 단순한 의견조사가 아니라 경기도 평생학습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중요한 정책 참여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장의 작은 의견이 미래 정책을 만든다
평생학습 현장에는 수많은 경험과 아이디어가 존재한다. 강사는 교육과정 운영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알고 있으며, 학습자는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다. 기관 종사자는 지역의 특성과 행정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경험들이 정책 연구로 이어질 때보다 실효성 있는 평생학습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특히 AI 활용 교육, 디지털 문해력, 고령사회 대응, 지역공동체 활성화, 1인 가구 지원, 평생학습 강사 전문성 강화 등은 앞으로 경기도가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할 분야이다.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이 실시하는 이번 정책연구과제 수요조사는 이러한 현장의 경험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소중한 통로가 될 것이다.
5분 남짓한 설문 참여가 내년 경기도 평생학습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평생학습의 미래는 행정기관만이 아닌,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든 관계자와 도민이 함께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이번 수요조사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평생학습 정책과 현장의 간극, 숫자로는 보이지 않는 현실


/ ⓒ에디터 럭비공
평생학습 정책은 매년 발전하고 있다.
전국의 평생학습도시는 늘어나고 있고, 디지털 문해교육과 AI 활용교육, 마을공동체 사업도 확대되고 있다. 정책 보고서에는 참여 인원과 운영 횟수, 만족도 등의 성과가 기록된다. 그러나 현장을 취재하면서 만난 시민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었다. 정책은 분명 좋은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지만, 현장에서는 작은 불편과 제도의 한계가 시민들의 참여를 가로막고 있었다.
사례 1. "교육은 좋은데, 갈 방법이 없습니다."
경기도의 한 학습마을에서 스마트폰 교육을 수료한
78세 김모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평생학습관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해요.
교육은 정말 좋은데 왕복 두 시간이 걸립니다."
정책은 '누구나 평생학습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교통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도심에서는 다양한 강좌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외곽 지역이나 농촌에서는 이동 자체가 어려워
교육 참여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 평생학습 담당자는 "예산은 프로그램 운영에 집중돼 있지만,
이동지원 예산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교육의 기회는 마련했지만,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까지는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것이다.
사례 2. 디지털 교육은 끝났지만, 집에 가면 다시 막막하다
최근 많은 지자체가 스마트폰 활용교육과 AI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을 마친 어르신들은 키오스크 사용법과 모바일 뱅킹을 배웠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의왕시의 한 교육장에서 만난 수강생은 말했다.
"수업 시간에는 잘 따라갔는데 집에 오니까 순서를 다 잊어버렸어요.
옆에서 한 번만 더 알려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평생학습은 대부분 2시간짜리 강의로 끝난다.
그러나 디지털 역량은 반복 연습과 사후 지원이 있어야
비로소 생활 속에서 정착된다.
강사는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 이후"라고 말했다.
정책은 교육 횟수를 성과로 평가하지만,
시민들은 지속적인 디지털 멘토링을 더 필요로 하고 있었다.
사례 3. 배운 사람이 봉사하고 싶어도 연결되지 않는다
평생학습을 통해 스마트폰 활용법을 익힌 한 수강생은 교육을 마친 뒤
강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이제 저도 다른 어르신들을 도와드리고 싶은데 어디에 신청하면 되나요?"
안타깝게도 이를 연결해 줄 체계는 없었다.
평생학습관, 자원봉사센터, 공익활동지원센터는 각각 운영되고 있었지만
정보가 연계되지 않아 시민들이 참여할 창구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많은 시민들은 배우는 데서 멈추고 있었다.
배움이 공익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결망이 부족한 것이다.
사례 4. 강좌는 많지만 주민이 원하는 내용은 부족하다
한 평생학습관의 강의실 게시판에는 수십 개의 프로그램이 안내되어 있었다.
캘리그래피, 꽃꽂이, 요가, 라인댄스 등 다양한 강좌가 운영되고 있었지만, 주민들이 실제로 원하는 교육은 조금 달랐다.
인터뷰에 참여한 주민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AI를 배우고 싶어요."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이 필요합니다."
"유튜브 영상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전자책 출판을 해보고 싶습니다."
프로그램은 여전히 문화·취미 중심이었고,
시민들이 체감하는 디지털 전환 속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책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프로그램 개편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의견도 나왔다.
일본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일본의 공민관과 마을공동체에서는 교육이 끝나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동아리와 자원봉사 활동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강좌를 수료한 주민은 '디지털 서포터'가 되어 다른 고령층을 돕고, 환경교육을 받은 주민은 하천 정화 활동과 생태 모니터링에 참여한다. 행정은 교육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배움과 실천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즉, 평생학습이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정책은 '몇 명이 배웠는가'보다 '얼마나 삶이 달라졌는가'를 물어야 한다. 평생학습 정책의 성과는 흔히 참여 인원, 강좌 수, 운영 횟수로 평가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변화를 이야기했다. 한 어르신은 스마트폰 교육을 받은 뒤 처음으로 손주와 영상통화를 했고, 또 다른 시민은 AI 글쓰기 교육을 통해 자신의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디지털 금융사기를 피할 수 있었고, 누군가는 평생학습을 계기로 마을기록 활동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통계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지역사회를 바꾸는 가장 중요한 성과다.
현장 취재를 통해 확인한 정책과 현장의 간극은 예산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연결'의 부족이 더 큰 문제였다. 평생학습 정책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교육 운영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 학습자의 필요와 경험을 중심에 두는 전환이 중요하다. 주민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교육 수요를 꾸준히 살피고, AI·디지털 문해력·금융안전·1인 미디어와 같은 생활밀착형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한다. 또한 교육은 수업이 끝나는 순간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실천과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를 위해 디지털 멘토단이나 학습동아리와 같은 지속적 학습 기반을 함께 지원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평생학습관, 자원봉사센터, 공익활동지원센터 간의 연계를 강화해, 교육을 마친 시민이 자연스럽게 공익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배움이 개인의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로 확장될 수 있도록 돕는 연결 체계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참여 인원이나 강좌 수를 넘어, 학습 이후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지역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함께 반영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배움은 교실에서 시작되지만, 그 가치가 완성되는 곳은 마을이다. 정책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평생학습은 단순한 교육사업을 넘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공공정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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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7※「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저녁, 수원에 모인 사람들

/ ⓒ경기시민연구소 울림
2026년 7월 14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화센터 예당마루에서 "시대와 세대를 잇다 — 리영희가 던진 질문을 오늘에 다시 새기다"를 주제로 제11차 경기사회포럼이 열렸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시민과 활동가들이 참여한 이번 포럼은 언론인이자 사상가 리영희(1929~2010)를 청년 세대와 함께 조명하고 그의 질문을 오늘날에 재해석하고자 마련됐다.
경기사회포럼은 2025년 하반기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경기시민연구소 울림, 경기평화교육센터가 출범시킨 경기 지역의 격월제 시민 담론 플랫폼이다. 이날 행사는 개회 인사와 영상 상영에 이어 김효순 리영희재단 이사장의 기조 발제, 김학민 경기사회포럼 자문위원, 모정하 전교조 경기지부 부지부장, 정용준 청년 활동가의 좌담으로 진행됐다.
진행자는 리영희가 평생 던진 질문들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도 유효하다고 밝히며, 시대를 넘어 그의 질문으로 현재의 현실을 돌아보는 것이 이번 포럼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리영희는 누구인가 ㅡ 국경을 넘나든 생애

/ ⓒ에디터 엄프로
리영희는 1929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국립해양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전쟁 당시 통역장교로 복무한 뒤 1957년 예편했고, 합동통신과 조선일보 외신부장을 거치며 외신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1960년에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기자로서 그는 두 가지 보도로 큰 이정표를 남겼다. 1964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검토 안건을 보도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쟁 취재를 통해 미국의 개입 성격을 비판 시각으로 전하다 1969년 해직되었다.
1972년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학계에서 저술 활동을 본격화했다. 1974년 첫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를 펴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977년 『8억인과의 대화』와 『우상과 이성』을 잇달아 출간했다. 이 세 권은 1980년대 당국이 집계한 '불온서적' 목록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당대 젊은 지식인들의 의식 형성을 이끌었다.
이에 따라 권력의 탄압이 이어졌다. 1976년 한양대에서 해직되었고, 1977년 『우상과 이성』 출간 직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1980년까지 옥고를 치렀다. 1980년 복직 후에도 시국선언 참여로 재해직되었다가 1984년에야 복직했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해 논설고문을 맡았으나, 이듬해 방북 취재 기획 혐의로 다섯 번째 구속을 겪었다. 평생 9차례 연행, 5차례 구속, 4차례 해직을 당하며 총 1,012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95년 정년퇴임 후에도 냉전 해체와 한반도 정세 등 첨예한 의제를 지속 연구했고, 1998년 햇볕정책 시기 고향을 방문해 친지와 상봉했다. 2005년 대담집 『대화』를 펴낸 뒤 2010년 12월 5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왜 '사상의 은사'였는가 — 저작이 가진 무게

/ ⓒ에디터 엄프로
리영희를 다루는 연구와 평문들은 그를 '사상의 은사' 혹은 '의식화의 원흉'이라는 상반된 별칭으로 부른다. 이 극단적인 평가 자체가 그가 한국 사회에 남긴 충격의 크기를 보여준다.
그의 문제의식 핵심은 '사실'과 '진실'을 향한 집요한 추구였다. 냉전 반공주의가 지배하던 시절, 베트남전쟁, 중국 혁명, 북한, 주한미군 등의 주제는 정해진 답 외의 사고가 허락되지 않았다. 리영희는 이 영역에 정면으로 뛰어들어 베트남 개입의 정당화 과정, 주한미군 기지의 함의,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실상을 실증적 자료로 파헤쳤다. 『전환시대의 논리』 서문에서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일화를 인용하며, 자신의 글이 경직된 한국 사회에 조심스러운 '가설'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다.
1994년 펴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의 제목은 그의 문제의식을 압축한 표현으로, 한국 정치 담론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경구가 되었다. 그는 광복 후 한국 사회가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고 지적하며, 새가 양날개의 균형으로 날듯 사회의 건강한 사고도 한쪽 극단만으로는 지탱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 표현은 냉전 반공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쓰였으나, 훗날 보수 진영에서 양측의 '균형'을 강조하는 수사로 인용되며 원래 맥락과 다르게 소비되기도 했다. 이는 리영희라는 텍스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전유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감옥 속의 인연들 — 김학민이 전한 뒷이야기

/ ⓒ에디터 엄프로
이날 좌담에서 청중의 몰입을 끌어낸 대목은 리영희와 사적 인연을 맺어온 김학민 자문위원의 회고였다. 연세대 졸업 후 한길사 편집장, 학민사 대표를 지낸 그는 1970년대 학생운동 시절 감옥에서 리영희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다고 전했다. 당시엔 동명이인의 다른 언론인과 혼동할 정도로 정보가 단절된 시절이었으나, 감옥 안에서 『전환시대의 논리』 출간 소식을 들은 뒤 출소 후 그의 책을 직접 편집·출간하는 인연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김학민은 리영희가 감옥 안에서도 결코 수동적이지 않았던 일화를 전했다. 1977년 광주교도소 복역 당시 재판 대응을 위해 밖에서 통계 자료 등을 몰래 들여보내 주었는데, 이를 도운 인물 중에는 말단 교도관 전병용이 있었다. 그는 해직과 구속 위험을 무릅쓰고 양심수들을 도왔으며, 훗날 교정 당국이 그를 표창하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는 송건호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이 증인으로 나서 유리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1977년 나온 『우상과 이성』 초판은 압수되어 남아 있지 않은 반면, 1980년 판본은 도서관에서 확인되는 뒷이야기도 소개됐다. 계엄령 하 서울시청 지하 검열실에서 방대한 분량을 읽어야 했던 검열관들의 고충과 이전 판본과 동일함을 내세워 통과를 받아낸 과정이 전해져 웃음을 자아냈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표현의 자유가 봉쇄된 시절 지식인의 글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이의 위험한 조력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청년 패널들이 처음 만난 리영희

/ ⓒ에디터 엄프로
이번 포럼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리영희를 만나본 적 없는 청년 세대 패널들이 그의 방대한 저작을 읽고 소회를 전한 데 있었다.
경기평화교육센터 청년 활동가 패널은 정치외교학 전공자임에도 리영희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다고 솔직히 밝혔다. 대학 도서관에서 『우상과 이성』이 최근 10년간 단 두 차례 대출되었고 그중 하나가 자신이라는 사례를 통해 오늘날 청년 세대와 리영희 간의 단절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대담집 『대화』를 읽으며 청년 세대가 잃어가는 것은 인물 자체가 아닌 '질문하는 태도'라고 진단했다. 정답 맞히기엔 익숙하지만 질문엔 주저하는 오늘날, 리영희의 시대가 '국가와 이념'의 우상에 맞섰다면 지금은 '나의 확신'을 성찰할 때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또 다른 청년 패널은 『대화』 속 "사상의 자폐증은 자살이다"라는 문장이 깊이 남았다고 전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며 사고를 멈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700쪽이 넘는 『대화』를 하루 만에 완독했다는 그는 역사를 교과서 속 서술이 아닌 개개인의 고통스러운 삶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며,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소회를 전했다.
전교조 경기지부 패널은 2020년 군포 산본으로 이사하며 지역사회를 통해 리영희를 접한 사연을 전했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아버지가 구독하던 지면에서 처음 이름을 접했던 기억과 함께, 리영희기념사업회의 '발자취 기행'을 통해 윤영자 여사가 지키는 산본 자택 서재를 방문한 경험을 나눴다. 앉은뱅이책상 위 읽다 만 책과 책장 사이 감춰진 술병 등은 '전설적 지식인'이 아닌 인간적인 리영희를 느끼게 했다.
오늘날 왜 다시 리영희인가
이날 포럼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 질문은 '왜 지금, 다시 리영희인가'였다. 패널들은 오늘날 정보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를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정보가 일방적으로 하달되어 부족했던 반면, 오늘날은 정보가 넘쳐나 선호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접하면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새로운 사회적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AI 기술의 확산으로 스스로 사고하는 훈련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리영희가 평생 강조했던 것은 특정한 이념적 결론이 아니라, 권위나 통념에 안주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해 스스로 사고하는 태도, 그리고 그 결과를 감수할 용기였다. 교육 현장의 패널은 이러한 '질문하는 자세'와 '사고하는 힘'이야말로 오늘날 교육이 다시 화두로 삼아야 할 가치라고 강조했다. 리영희가 다룬 개별 사건들은 시대와 함께 지나갔지만, 사건을 대하던 그의 지적 태도와 진실을 향한 집요함은 세대를 넘어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포럼의 잠정적 결론이었다.
맺으며
한 시간 반 남짓 진행된 이날 포럼은 화려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패널들은 리영희의 방대한 사상 세계를 다 이해하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앞으로 더 깊이 읽고 배우겠다는 다짐으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완결된 정답이 아닌 계속되는 질문으로 자리를 마쳤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리영희가 평생 지향했던 지적 태도와 가장 닮아 있는 결말이었다.
경기사회포럼 측은 이날 행사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밝히며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후원을 당부하고 마무리했다. 리영희가 감옥과 해직을 오가며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 한 사회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자유였다면, 그 자유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이어줄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 조촐한 지역 포럼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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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