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익활동은 대개 누군가를 향해 나아갑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더 나은 마을을 바라는 주민에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마음과 시간, 노력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 공익활동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위해 오래 애써온 사람들은 어디에서 쉬어갈 수 있을까요? 공익활동하는 이들의 마음을 챙기면서 힐링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지난 7월 8일, 군포시 자원봉사센터 4층 교육장에서는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만한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2026년 군포시 공익활동단체 협력사업으로 진행된 ‘희망을 싣고 나는 새, 솟대 만들기’ 프로그램입니다.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가 재능나눔으로 준비한 이날 활동은 지속적으로 지역에서 봉사해 온 개인 및 단체 공익활동가를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날의 주인공은 오랜 시간 지역을 위해 손을 보태온 공익활동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이끈 사람은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의 유호현 작가님이었습니다.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는 약 10명의 회원이 함께하는 생활문화 공동체로, 전통문화의 의미를 지역사회에 알리는 공익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유호현 작가님은 자신이 쌓아온 목공, 인두화, 서각, 솟대 작품을 작업한 경험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에게 전통문화의 의미와 손작업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경기이룸학교, 지역 아동센터 등에서도 문화체험재능 기부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이 전통예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고 있기도 합니다.
문화가 공익활동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드실 수도 있을텐데요. 공익활동은 물질적인 것을 제공하거나 물리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과 기회, 심리적·문화적 지원을 하는 것 역시 공익활동의 중요한 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와 유호현 작가님은 이 분야의 공익활동을 오랫동안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공익활동의 확산을 돕고 있답니다.

/교육장에 전시된 인두화 작품들과 솟대를 활용한 작품들 ⓒ에디터 옐로 구피

/수업 시작 전, 공익활동가들을 위한 솟대 만들기 체험 재료들을 점검하고 있는 유호현 작가님과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 회원들 ⓒ에디터 옐로 구피
교육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멋진 인두화 작품, 솟대와 인두화를 접목한 작품들이었습니다. 공익활동가들은 본격적으로 솟대 만들기 체험을 하기에 앞서, 행복한 인두화 동호회 회원들이 만든 작품을 미리 보면서 앞으로 할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가득 채웠습니다. 물론 이날의 체험을 위한 재료도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었답니다.

/솟대 만들기의 의의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유호현 작가님 ⓒ에디터 옐로 구피
이날 체험은 총 2회차로 구성되었는데요. 유호현 작가님은 2회차의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활기차게 수업을 이어 나갔습니다. 유호현 작가님은 본격적인 만들기를 시작하기 전에, 고생한 공익활동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왜 ‘솟대’ 만들기를 준비했는지 그 취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솟대는 오래전부터 우리 역사의 일부였습니다. 자그마치 삼한 시대에 소도(蘇塗)라는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는 데에 솟대가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역할에서 확장되어서 마을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솟대는 말 그대로 솟아 있는 형태로, 희망과 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래 우리나라에 풍요, 다산, 성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놓아둔 마을 공동체의 상징물과 같은 것이 바로 솟대였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일부는 인테리어용으로 작게 만들어 집안에 두는 형태로 바뀌어 왔답니다.”
유호현 작가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눈앞의 얇은 나뭇가지와 자그마한 나무 새가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마을의 평안, 가족의 행복, 나 자신의 소망이 함께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체험에 참가하는 공익활동가들의 마음도 조금 더 편안해지는 듯 보였습니다.

/솟대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시범을 보이는 유호현 작가님 ⓒ에디터 옐로 구피

/솟대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 주고 있는 유호현 작가님 ⓒ에디터 옐로 구피
유호현 작가님은 재료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서 솟대 만들기 수업을 끌어 나갔습니다. 공익활동가들이 설명을 들으면서 차근차근 손끝에 집중력을 담아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솟대를 만들면서 힐링하고 있는 공익활동가들 ⓒ에디터 옐로 구피
공익활동가들은 각자 나무 받침을 고르고, 작은 가지를 살피고, 새 모양의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 보았습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과정이었지만, 완성될 솟대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균형과 방향을 잘 살피는 섬세한 작업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작업물을 만들고 있었지만, 가지의 길이와 휘어진 모양에 따라 새의 느낌이 달라졌고 받침 위에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손작업은 빠르게 결과를 내는 일은 아니죠. 나무의 결을 살피고 가지의 방향을 보고, 작은 조각을 맞추며 천천히 완성해 나가는 일입니다. 이것은 유호현 작가님과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가 오랫동안 이어온 작업 태도와도 닮아있었습니다. 인두화는 나무 위에 선을 빠르게 그려 내는 작업이 아니라, 뜨거운 인두로 나무를 조금씩 태우며 그림과 글씨를 새기는 작업입니다. 서각 역시 나무를 깎고 다듬으며 마음을 새기는 일이죠. 결국 이들이 전한 것은 단순히 솟대 제작법만이 아니라, 나무를 대하는 태도, 손으로 무언가를 완성하는 시간의 가치, 그리고 그 결과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마음이었습니다.



/각자 만든 솟대를 감상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공익활동가들 ⓒ에디터 옐로 구피
솟대를 만들면서, 공익활동가들은 처음에는 ‘이게 맞나?’하는 표정으로 재료를 만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작품에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옆 사람의 작품을 바라보며 아이디어를 얻고, 누군가는 자신의 새가 어느 쪽을 바라보면 좋을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만드는 사람마다 다른 바람과 감각이 담기면서 조금씩 각자의 솟대가 완성되어 갔습니다. 작품이 완성된 다음에는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서로의 활동에 관한 담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완성된 솟대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만들어진 것은 작품만이 아니었습니다. 봉사자들이 자신을 돌보는 시간, 지역의 재능이 다른 봉사자를 응원하는 시간, 전통문화가 오늘의 공익활동과 만나는 시간이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솟대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상징이었다면, 이날의 솟대는 공익활동가들의 마음에 세워진 작은 응원의 표식처럼 보였습니다.
이날 활동이 특별했던 이유는 솟대가 지닌 의미가 공익활동가의 삶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기 때문입니다. 공익활동가는 자신의 시간을 내어 누군가의 어려움을 덜고, 지역의 빈틈을 메우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동체를 지탱합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이웃과 나누고, 내가 가진 시간을 공동체를 위해 할애하고 누군가의 수고를 보며 응원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이죠.
마을의 안녕을 빌던 솟대처럼, 공익활동가 역시 지역사회의 평안과 회복을 위해 묵묵히 서 있는 이들,
이들이 바로 공익활동가들입니다.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 활동 모습 ⓒ에디터 옐로 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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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4※「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도입 — 은퇴 이후, 남자들은 어디로 가는가
한 남자가 있다. 평생 일했고, 가정을 부양했고, 직장에서 인정받았다. 그런데 은퇴하는 순간, 그를 규정하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 매일 나가던 일터가 없어지고, 동료들과의 관계가 끊기고, 사회적 역할이 증발한다. 아내는 이미 자기만의 관계망을 갖고 있지만, 그에게는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가 별로 없다. 감정을 털어놓는 데 익숙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다. 그렇게 그는 집 안에서, 혹은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서서히 고립된다.
이것은 특정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중년과 노년의 남성들이 공통으로 겪는 현실이다.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건강과 안녕에 관심을 덜 두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많은 남성이 여성보다 건강하지 못하고, 술을 더 많이 마시고, 고립과 외로움, 우울에 더 취약하다.
호주에서 시작된 '멘즈 셰드(Men's Shed)'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놀랍도록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해법이었다. 남자들에게 갈 곳(somewhere to go), 할 일(something to do), 이야기 나눌 사람(someone to talk to)을 제공한다는 철학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목공과 수리 같은 활동을 함께 하는 작업 공간을 통해 고립된 남성들을 다시 관계망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 모델은 호주를 넘어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뉴질랜드 등 전 세계로 퍼졌다.
'남자들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한다(Men don't talk face to face, they talk shoulder to shoulder)'. 멘즈 셰드의 이 슬로건은, 이 운동이 남성의 심리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주 앉아 "네 문제가 뭐냐"고 묻는 대신, 나란히 서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며 자연스럽게 마음을 여는 방식이다. 한국이 지금 직면한 중장년 남성 고립 문제에, 이 오래된 창고의 지혜는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2. 탄생 — 한 아버지의 우울에서 시작된 아이디어
멘즈 셰드의 개념은 호주의 전통적인 '뒷마당 창고(backyard shed)' 문화에서 왔다. 많은 호주 남성들이 집 뒤편 창고에서 혼자 목공을 하거나 물건을 고치며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있었는데, 이 개인적인 공간을 공동체의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 멘즈 셰드였다.
멘즈 셰드 운동의 뿌리를 찾아가면, 한 여성과 그녀의 아버지에게 닿는다. 흔히 세계 최초의 멘즈 셰드로 인정받는 것은 1993년 호주 남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굴와(Goolwa)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노인들을 위한 활동 센터 '헤리티지 클럽(Heritage Club)'의 코디네이터였던 맥신 체이슬링(Maxine Chaseling)이 그 주인공이다.

/ⓒPexels
체이슬링이 멘즈 셰드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는 개인적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를 겪은 후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우울증에 빠지고 집 안에 갇힌 듯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노인 복지 분야에서 오래 일해온 그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노년학, 남성 건강, 그리고 남성을 위한 서비스의 부재에 관해 여러 학회에서 발표해왔다. 남성들이 은퇴 이후 갈 곳도, 할 일도, 이야기 나눌 사람도 잃어버린다는 문제의식이 그 바탕에 있었다.
이후 '멘즈 셰드'라는 이름을 단 첫 공간은 1998년 7월 26일 호주 빅토리아주 통갈라(Tongala)에서 문을 열었다. 설립자 딕 맥고완(Dick McGowan)의 이름을 따 '딕 맥고완 멘즈 셰드'로 불렸다. 어느 것이 '진짜 최초'인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지만, 중요한 것은 1990년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와 빅토리아의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남자들의 작업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혼자 하던 일을 여럿이 함께 하게 되면서, 창고는 고립의 장소에서 연결의 장소로 바뀌었다.
3. 확산 — 호주에서 전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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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즈 셰드는 호주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다. 특히 농촌과 원주민 공동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2007년에는 호주멘즈셰드협회(Australian Men's Shed Association, AMSA)가 설립되어 새로운 셰드의 설립을 돕고 기존 셰드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호주 정부도 멘즈 셰드가 남성 건강과 안녕에 기여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재정 지원에 나섰다. 오늘날 AMSA는 호주 전역 1,300개가 넘는 셰드를 지원하는 전국 조직으로 성장했다.
호주에서의 성공은 전 세계로 영감을 주었다. 아일랜드멘즈셰드협회(IMSA)가 2011년 설립됐고, 영국멘즈셰드협회(UKMSA)와 뉴질랜드의 멘즈셰드협회가 2013년, 스코틀랜드멘즈셰드협회(SMSA)가 2015년, 미국멘즈셰드협회가 2017년, 남아프리카공화국멘즈셰드협회가 2022년에 차례로 설립됐다.
멘즈 셰드 운동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배리 골딩(Barry Golding) 교수의 집계에 따르면, 2015년 5월 기준 전 세계에 1,416개의 멘즈 셰드가 있었다. 이 가운데 호주에 933개, 아일랜드섬 전역에 273개, 영국(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에 148개, 뉴질랜드에 57개가 분포했다. 이후로도 덴마크, 스웨덴, 캐나다 등으로 계속 확산되어, 이 운동은 명실상부한 국제적 흐름이 됐다.
특히 아일랜드는 이 운동을 국가 차원의 정책으로 받아들인 대표적인 사례다. 아일랜드는 2008~2013년 국가 남성 건강 정책(National Men's Health Policy)에서 멘즈 셰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장려했다. 시민운동으로 시작된 것이 국가 보건 정책의 일부로 격상된 것이다.
4. 영국의 사례 — 고립 대응의 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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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즈 셰드가 가장 활발하게 뿌리내린 나라 중 하나가 영국이다. 영국멘즈셰드협회(UKMSA)는 2013년 설립 당시 영국 내 셰드가 30개에 불과했지만, 2024년 3월 기준으로 그 수가 1,100개를 넘어섰다. 매주 3만 3천 명 이상의 남성과 여성이 멘즈 셰드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UKMSA는 앞으로 8년 안에 셰드 수를 2,400개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영국에서 멘즈 셰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 효과가 구체적인 데이터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셰더(Shedder, 멘즈 셰드 이용자를 부르는 말)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셰드에 오기 전 자신을 외롭다고 묘사한 사람이 44%였는데, 셰드에 가입한 후에는 이 수치가 단 3%로 크게 떨어졌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였다. 아일랜드와 영국 협회의 조사에서는 셰더의 96% 이상이 셰드에 가입한 후 덜 외롭다고 느끼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답했다.
더 극적인 것은 생명과 관련된 수치다. UKMSA의 2023년 건강·안녕 조사에 따르면, 셰드 리더의 39%가 자신의 셰드가 최소 한 명 이상의 회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막았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남성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인 영국에서, 멘즈 셰드가 실질적인 자살 예방 기능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멘즈 셰드는 다양한 특화된 형태로도 발전했다. 호스피스 안의 멘즈 셰드, 치매나 기억 장애가 있는 남성을 위한 '메모리 셰드(Memory Shed)', 뇌졸중 회복을 돕는 셰드 등이 그것이다. 또한 영국에서는 멘즈 셰드가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의 한 형태로 활용된다. 의사가 외롭거나 우울한 환자에게 약 대신 지역 멘즈 셰드 참여를 '처방'하는 방식이다. 국립보건연구원(NIHR)의 보고서는 멘즈 셰드를 사회적 처방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지역사회 조직으로 꼽았다.
5. 왜 효과가 있는가 — '나란히'의 심리학
멘즈 셰드가 다른 복지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지점은 접근 방식의 철학에 있다. 핵심은 '건강'이나 '치료'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남성들은 "당신은 외롭습니다", "정신 건강 상담을 받으세요"라는 직접적인 접근에 거부감을 느낀다. 특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약함으로 여기도록 사회화된 세대일수록 그렇다. 멘즈 셰드는 이 벽을 우회한다. 이곳은 '외로운 남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작업장'이다. 참여자는 우울증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의자를 고치거나 새집을 만들거나 자전거를 수리하러 온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의 삶을 나누게 된다.
이것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라는 슬로건의 진짜 의미다. 남성들은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같은 작업대 앞에 나란히 서서 손을 움직이며 이야기하는 것은 편안해한다. 작업이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기에 대화의 부담이 줄고, 침묵도 어색하지 않다. 무언가를 함께 만든다는 성취감은 상실했던 효능감과 자존감을 회복시킨다.
배리 골딩 교수는 2014년 이런 남성 특유의 학습·소통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셰다고지(shedagogy)'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일부 남성들이 선호하는, 함께 무언가를 하면서 배우고 소통하는 독특한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이 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멘즈 셰드의 건강 효과에 관한 근거가 대체로 소규모 표본의 자기 보고에 의존하고 있어, 검증된 건강 지표를 활용한 정량적 연구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운동이 전통적 남성성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즈 셰드가 고립된 남성들에게 사회적 연결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6. 한국의 현실 — 5060 남성이라는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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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2025년 11월 발표한 '2024년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고독사 사망자는 3,924명으로 공식 통계가 있는 201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63명(7.2%) 증가한 수치다. 이 통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바로 중장년 남성의 취약성이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3,205명(81.7%)으로 여성(605명, 15.4%)의 5배 이상이었다. 연령대별로는 60대가 1,271명(32.4%), 50대가 1,197명(30.5%)으로 5060 중장년층이 가장 많았다. 70대(497명, 12.7%)보다 오히려 50대와 60대의 고독사가 더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성별과 연령을 종합하면 60대 남성(1,089명, 27.8%)과 50대 남성(1,028명, 26.2%)이 고독사에 가장 취약한 집단으로 나타났다. 50~69세 남성이 전체 고독사의 절반이 넘는 54%를 차지했다.
이 수치들이 그리는 그림은 명확하다. 실업이나 은퇴, 이혼이나 사별로 인한 관계 단절을 겪은 중장년 남성이 사회적 고립의 가장 큰 위험군이라는 것이다. 고독사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가족(26.6%)이 아니라 임대인이나 경비원(43.1%)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는 사실은, 이들이 얼마나 깊이 고립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부터 고독사 예방 사업 대상을 사회적 고립 위험군으로 확대하고, 특히 실업·사회적 관계 단절 문제를 겪는 50~60대 중장년을 대상으로 일자리 정보 제공을 통한 취업 지원과 함께 '중장년 자조모임' 등 사회관계망 형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국의 멘즈 셰드 경험이 중요한 참고가 된다.
7. 무엇을 배울 것인가 — 한국형 멘즈 셰드의 조건
멘즈 셰드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할 수는 없다. 문화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핵심 원리에서 배울 점은 분명하다.
첫째, '활동'을 앞세우고 '치료'를 숨겨야 한다.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에게 "고립 위험군이니 자조모임에 나오세요"라는 접근은 낙인처럼 느껴질 수 있다. 멘즈 셰드처럼 목공, 자전거 수리, 텃밭 가꾸기, 전자기기 수리 같은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활동을 전면에 내세우고, 사회적 연결은 그 부산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하는 설계가 효과적이다.
둘째, '나란히'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상담실이 아니라, 함께 손을 움직이며 곁눈질로 대화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 역시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과정이 대화의 매개가 될 수 있다.
셋째, 지역 공간과 연결해야 한다. 멘즈 셰드는 거창한 시설이 아니라 동네의 작은 창고나 공터에서 시작됐다. 한국에도 활용도가 낮은 주민센터, 경로당, 유휴 공공시설이 많다. 이런 공간을 중장년 남성들의 '작업장'으로 전환하는 것은 큰 예산 없이도 시도할 수 있다.
넷째, 남성의 강점을 자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은퇴한 중장년 남성들은 평생 쌓아온 기술과 경험을 갖고 있다. 목수, 전기 기술자, 엔지니어, 회계사 등 다양한 전문성이 있다. 멘즈 셰드는 이들의 기술을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으로 전환한다. 고장 난 물건을 고쳐주거나, 지역 행사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거나, 젊은 세대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도움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기여하는 주체가 될 때, 잃어버렸던 효능감이 회복된다.
8.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멘즈 셰드 사례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만한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고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설계로 풀어야 할 과제다. 멘즈 셰드는 "외로우면 나와서 어울리라"고 개인에게 요구하는 대신, 어울릴 수밖에 없는 구조와 공간을 만들었다. 경기도의 중장년 고립 문제도 개인의 의지에 맡기기보다, 참여의 장벽을 낮춘 구체적인 공간과 활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31개 시·군의 유휴 공간을 활용한 '작업장형 커뮤니티'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모델이다.
둘째, 시민단체와 행정의 협력이 지속 가능성을 만든다. 멘즈 셰드는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시작됐지만, 호주·아일랜드·영국 정부의 정책적 인정과 재정 지원을 통해 전국적 규모로 성장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같은 중간지원조직이 지역의 자발적 모임과 행정 자원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때, 작은 시도가 지속 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셋째, 남성 고립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익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 아동, 청소년, 여성, 노인에 대한 공익활동에 비해 중장년 남성의 고립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해온 사각지대다. 그러나 고독사 통계가 보여주듯 이는 시급한 사회 문제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이런 사각지대의 공익 이슈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 자체가, 사회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에 빛을 비추는 공익활동이다.
마무리 — 창고 문을 열며
맥신 체이슬링이 우울증에 빠진 아버지를 보며 떠올린 작은 아이디어는, 30년이 지나 전 세계 수천 개의 창고로 퍼졌다. 그 창고들 안에서, 갈 곳을 잃었던 남자들이 다시 갈 곳을 찾았고, 할 일을 잃었던 이들이 다시 할 일을 찾았으며,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던 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할 친구를 찾았다.
멘즈 셰드의 성공은 거창한 이론이나 막대한 예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남성들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들이 편안해하는 방식으로 다가간 데서 나왔다. 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감정을 캐묻지 않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면서 말이다.
한국의 5060 중장년 남성들이 매년 수천 명씩 홀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창한 복지 제도가 아니라, 목요일 오후에 나가서 함께 톱질하고 커피 한잔 나눌 수 있는 작은 창고 하나일지도 모른다. 경기도의 어느 동네에서, 그런 창고의 문이 열리는 상상을 해본다. 공익은 때로 가장 소박한 공간에서 시작된다.
<참고 자료>
- UK Men's Sheds Association(UKMSA) 공식 홈페이지 : https://menssheds.org.uk/
- UKMSA — Press and Media information(2024년 3월 기준 통계) : https://menssheds.org.uk/media/
- UK Men's Sheds 통합 디렉토리(4개국 협회 안내) : https://ukmensheds.co.uk/
- Scottish Men's Sheds Association — 사회적 고립·외로움 대응 브리핑 보고서 : https://scottishmsa.org.uk/briefing-report-how-mens-sheds-are-addressing-male-social-isolation-and-loneliness/
- UK Parliament — UKMSA가 제출한 남성 정신건강 관련 서면 증거(IMH0034) : https://committees.parliament.uk/writtenevidence/124266/html/
- PMC(미국국립보건원) — Men's Sheds: A conceptual exploration of the causal pathways for health and well-being :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6772158/
- Ipsos — UK Men's Sheds Association 의뢰 남성 정신건강 조사 : https://www.ipsos.com/en-uk/ipsos-survey-uk-mens-sheds-association
- Australian Historical Studies — The Men's Shed Movement in Australia(Boucher & Robinson, 2021) :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1031461X.2021.1901946
- The Missing Library — The Men's Shed Movement(배리 골딩 연구 소개) : https://themissinglibrary.com.au/the-mens-shed-movement/
- 보건복지부 — 2024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 보도자료 : https://www.mohw.go.kr/board.es?mid=a10503010100&bid=0027&act=view&list_no=1488039
- 머니투데이 — 작년 고독사 3924명…수도권 5060 중장년 남성 취약 : https://www.mt.co.kr/policy/2025/11/28/2025112720032322415
- 한국헬스경제신문 — 고독사는 왜 중장년 남성에 많을까 : https://www.healtheconomy.co.kr/news/article.html?no=34216
- 뉴스웍스 — 작년 고독사 사망자 3661명…5060 남성 취약 : https://www.newswork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9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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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행사 포스터)
안산(安山). 사람들은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도 결국 사는 곳이 안산이라고.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뭔가 씁쓸한 진실이 담겨 있다. 집값이 싸서, 공장이 가까워서, 달리 갈 데가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도시. 그러나 나는 이 이름을 다르게 읽고 싶다. 안전하게(安全하게) 산다. 안전하게 살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의 도시. 그것이 안산이어야 한다, 그래서 5월 9일의 행진은 말하고 있었다.

오후 세 시, 두 갈래의 물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원고 앞 원고잔 공원 입구에서 한 줄기가, 중앙동 월드코아 광장에서 또 한 줄기.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따뜻한 봄볕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깃발을 들고 있었다. 깃발이란 원래 선언이다. 내가 여기 있다는, 내가 이것을 원한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라퍼커션의 드럼 소리가 먼저였다. 타악기의 진동은 공기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슴팍을 두드리고,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무릎을 움직이게 한다. 사람들이 걸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이윽고 자연스럽게, 마침내는 즐겁게. 선두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배치가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안전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 한마디 없이 그 줄 세움이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뒤로 시민들이 이어졌고, 후미에는 노동자들이 든든하게 받쳤다. 안산시청 앞에서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그것은 이미 강이었다.

나는 깃발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손으로 만든 깃발, 글씨를 써넣은 깃발, 그림을 그려 넣은 깃발. 깃발 컨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은 일동 지역아동센터가 만든 '우산 깃발'이었다. 우산. 비바람으로부터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그 단순하고 완벽한 상징. 어른들이 수십 장의 기획안과 정책 문서로 표현하려 했던 것을 우산 하나로 해냈다.

안전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비가 올 때 곁에 우산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혼자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산업단지에서 일하다 다친 이주노동자에게 말이 통하는 안내가 있다는 것. 노후 건물에 혼자 사는 노인에게 누군가의 시선이 닿는다는 것. 장애인이 휠체어를 밀며 이 도시의 어느 골목이든 막힘없이 갈 수 있다는 것. 이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걸었다.

며칠 전, 조용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이 있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꼭 12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12년. 그 긴 시간 동안 유가족들은 거리에 섰고, 시민들은 광장에 모였고, 활동가들은 국회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법이란 선언이다. 이제 안전은 국가가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라고 이 나라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늦었다. 그러나 왔다. 그리고 온 것들은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안산은 희생자 250명이 학교에 다녔고, 골목에서 뛰어놀았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안산은 세월호의 도시였다. 슬픔의 도시, 기억의 도시. 그러나 안산 시민들은 슬픔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물었다. "세월호 이후 안산은 정말 안전해졌는가." 기억이 기억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고. 질문은 행동이 되었고, 행동은 130개의 지역 주체가 모인 시민추진위원회가 되었다. '304개의 노란 테이블' 시민대토론회가 되었고, 마침내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되었다. 이제 안산은 세월호의 도시가 아니라, 안전의 도시로 거듭나려 한다. 슬픔을 동력 삼아, 변화를 향해.


안산문화광장 물의광장. 시장 후보들이 나란히 섰다. 더불어 민주당 천영미 후보, 국민의힘 이민근 후보, 조국혁신당 조안호 후보, 진보당 홍연아 후보. 서로 다른 정당,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섰다. 이주민 대표가 앞으로 나왔다. 언어가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이 도시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안전해야 한다고. 장애인 대표가 나왔다. 도시의 턱을 없애달라고, 경사로와 점자블록이 방치되지 않는 도시를 만들어달라고. 노동자 대표가 나왔다. 산업단지에서 매년 반복되는 사고를, 더 이상 개인의 불운으로 처리하지 말아달라고. 시민 대표가 나왔다. 이 모든 요구가 선거철 공약이 아니라, 임기 내내 지켜야 할 약속이 되어달라고.

다섯 가지였다.
1. 도시 비전 및 행정계획 수립: 4.16 정신을 계승한 중장기 안전 전략 마련
2. 「시민안전센터」 설치: 시민과 소통하며 일상 속 안전 교육을 전담할 기구 마련
3. 안전투자 적극 확대: 재난관리기금 조성 비율 상향 및 안전 인프라 예산 증액
4. 「안전영향평가」 제도화: 취약계층의 관점에서 정책의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점검
5. 전담 행정조직 확대: 분산된 안전 부서를 통합하고 민관 협력 거버넌스 내실화
생명·안전 가치를 담은 도시 비전 및 행정계획 수립. 시민안전센터 설치. 안전 예산과 재난관리기금의 적극적 확대. 안전영향평가 제도화. 생명·안전 전담 행정조직 확대와 민관협력 거버넌스 강화. 어렵지 않은 말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실제 예산이 되고, 조례가 되고, 담당 부서가 생기고,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정책 설계 단계부터 반영되는 일은, 누군가 끊임없이 요구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걸었다. 그래서 전달했다.
정치인의 약속이란 언제나 유효기간이 불분명하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이주민과 장애인과 노동자의 손에서 직접 건네받은 요구안을 들고 한 약속은 조금 다르다. 증인이 있는 약속은 그 무게가 다르다. 이날 광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그 약속의 증인이다.

행진이 끝나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깃발은 접혔고, 드럼 소리는 멎었고, 광장은 다시 평범한 광장이 되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달라졌다. 그것은 도시의 표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변화다. 함께 걸었다는 사실, 같은 방향을 향했다는 기억, 우리가 원하는 것을 큰 소리로 말했다는 경험. 이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도시란 무엇인가. 건물과 도로와 행정구역의 합산이 아니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책임감의 총합이다. 내 옆집 사람이 오늘 안전한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지, 이주민 아이가 아플 때 말이 통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이것을 묻고, 따지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함께 걸었던 5월 9일의 안산은, 그래서 잠깐 더 나은 도시였다.
안전하게 산다. 그래서 안산이다. 함께 걸었던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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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6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 온마을 네트워크 자원봉사단 이야기
1. '온마을'이라는 이름에 담긴 뜻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자리한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 주민의 삶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복지기관입니다. 어르신 돌봄, 아동·청소년 교육, 가족 상담 등 다양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지역사회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데 꾸준히 힘을 쏟아온 곳이기도 합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초지복지관은 2026년 봄, 지역 주민 스스로가 기획자이자 실행자가 되어 시니어를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자원봉사 모델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바로 '온마을 네트워크'입니다.
'온마을'이라는 이름 안에는 두 가지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온 마을 사람이 함께한다는 뜻, 그리고 온기로 가득 찬 마을을 만들겠다는 뜻. 이 두 가지가 겹쳐진 이름처럼, 온마을 네트워크는 마을 안의 사람들이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공동체의 모습을 꿈꾸며 출발했습니다.
이 글은 그 온마을 네트워크의 주민기획단 다섯 명이 어떻게 모였고, 어떤 마음으로 어르신 곁에 서 있는지를 기록한 현장 이야기입니다.

2. 2026년 3월,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초지복지관은 2026년 2월~3월, 시니어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분을 찾는 주민기획단모집을 시작했습니다. 나이도, 직업도, 살아온 방식도 서로 다른 다섯 명의 사람이 이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이들은 대학생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성인 봉사자까지 연령대가 폭넓습니다. 복지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지역사회 활동 경험이 풍부한 중장년 봉사자, 아이를 키우는 주부, 재능을 나누고 싶은 직장인까지. 서로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이들은 단순한 봉사자 모임이 아닌, 하나의 팀으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초지복지관과 함께 준비 기간을 거치면서, 각자의 강점을 나누고 역할을 분담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기획을 담당하는 사람, 홍보를 맡는 사람, 현장 진행을 이끄는 사람, 물품 준비와 기록을 책임지는 사람.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로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온마을 네트워크가 단순한 봉사 모임을 넘어 체계적인 팀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역할을 찾고 채워나가는 방식. 그 안에서 봉사자들은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빠르게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3. 어르신을 위한 세 가지 선물 — 음악, 두뇌, 손끝
온마을 네트워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됩니다.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활동이 아니라, 어르신의 몸과 마음과 손끝을 모두 살피는 통합적인 돌봄 프로그램입니다.
첫 번째는 음악을 활용한 신체활동 시간입니다.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리듬에 맞게 박수를 치거나 간단한 동작을 따라 하는 이 시간은, 어르신들이 가장 즐겁게 참여하는 순서이기도 합니다. 음악은 기억을 깨우고, 감정을 움직이며, 몸을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킵니다. 치매 예방과 우울감 해소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동작의 난이도를 조율하고, 친숙한 옛 노래와 트로트 곡을 함께 선정하는 등 매번 세심하게 준비합니다.
어르신들은 음악이 흐르는 순간부터 표정이 달라집니다. 쑥스럽게 앉아 계시던 분도 노래가 시작되면 어느새 몸을 흔들고 손을 두드리십니다. 이 짧은 순간이 쌓여 활동의 즐거움이 되고, 다음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 됩니다.

두 번째는 두뇌를 자극하는 퀴즈 타임입니다.
상식 퀴즈, 단어 맞추기, 그림 연상 퀴즈, 간단한 계산 문제 등 다양한 형식의 문제들을 통해 어르신들이 두뇌를 활발히 사용하도록 돕는 시간입니다. 뇌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경험이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의학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봉사자들은 너무 어렵지도, 너무 단순하지도 않은 적절한 난이도의 퀴즈를 매 회 새롭게 준비하며 어르신들의 집중력과 성취감을 동시에 높이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소근육을 활용하는 만들기 시간입니다.
손을 사용해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활동은 소근육 발달과 집중력 향상에 효과적이며, 완성된 작품을 보는 성취감은 어르신들의 정서적 안정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봉사자들은 재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꼼꼼하게 챙기며, 어르신이 손을 움직이기 어려운 부분에서는 나란히 앉아 함께 작업합니다. 이 시간이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어르신과 봉사자가 나란히 앉아 손을 맞대는 교감의 시간이 되도록 늘 신경 씁니다.

이 세 가지 프로그램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을 깨우고, 두뇌를 자극하고, 손끝으로 표현하는 흐름이 하나의 활동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어르신들은 한 시간 남짓의 프로그램 안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활기를 찾게 됩니다.
4. 스승의 날, 양말목 카네이션으로 전한 마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진행된 양말목 카네이션 만들기 시간이었습니다.
양말목 공예는 버려지는 양말 자투리 천, 즉 '양말목'을 활용하여 꽃이나 소품 등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공예입니다. 버리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친환경 활동으로, 만들기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결과물이 아름다워 어르신들에게도 인기가 높습니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을 생각하며 함께 양말목으로 카네이션을 직접 만들고, 그것을 인생의 선배님이자 인생의 스승님인 어르신들께 선물로 드리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꽃 한 송이를 두 손으로 받아 드신 어르신 몇 분은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이 카네이션 하나가 단순한 공예 작품이 아니라, 곁에 있어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나한테 주는 거예요? 참 예쁘다... 고마워요."
꽃을 받아 드신 어르신의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어르신들은 그저 받기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손으로 행운을 뜻하는 네잎클로바를 만들며세대와 세대가 마음을 나누는 진짜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양말목 클로바만들기는 만들기 프로그램이기도 했지만, 환경 상식을 전하는 에코 활동이기도 했습니다. 버려지는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업사이클링의 의미를 어르신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환경에 대한 인식을 일상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5. 활동을 넘어 — 환경 상식과 따뜻한 안부 인사
온마을 네트워크 활동이 다른 봉사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지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매 회 활동 안에 환경 관련 상식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분리배출 방법, 일상 속 에너지 절약 습관, 친환경 소재 이야기 등 생활 밀착형 환경 정보를 짧은 코너로 구성해 어르신들과 함께 나눕니다. 어렵고 딱딱한 환경 교육이 아니라, 우리 동네 이야기처럼 친근하게 전달하는 방식이어서 어르신들의 반응도 좋습니다. 환경이라는 주제가 봉사 활동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식, 온마을 네트워크만의 특색 있는 접근입니다.
또한 봉사자들은 활동 시간 안에서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와 일상을 자연스럽게 살핍니다. "요즘 잘 주무세요?",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세요?", "지난주엔 외출도 하셨어요?" 이런 일상적인 말 한마디가 어르신들에게는 진심 어린 돌봄으로 느껴집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될 위험이 높은 노인 1인 가구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봉사자의 존재 자체가 안심의 이유가 됩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프로그램 운영을 넘어, 지역사회 내 시니어 돌봄의 촘촘한 연결망 역할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6. 2회 만에 느낀 감동 — 만족도와 보람
온마을 네트워크는 한 달에 걸친 준비 기간을 거쳐 202년 봄, 첫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총 2회의 정규 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임에도 활동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기다려지는 날이 생겼다"고 하십니다. 봉사자들은 "이런 보람은 처음"이라고 말합니다. 준비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고, 다음 회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봉사자들 사이의 팀워크도 눈에 띄게 탄탄해졌습니다.
참여 어르신들의 반응도 대단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앉아 계시던 분이 시간이 지날수록 먼저 손을 들어 답을 외치시고, 옆 어르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만들기 작업에 열중하시는 모습. 그 변화가 봉사자들에게 가장 큰 보람이 됩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202년 11월까지 월 2회 정기 활동을 이어갑니다. 앞으로 더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마을의 온기를 더해나갈 예정입니다.
봉사자들은 한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이 활동이 어르신들에게만 선물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삶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고. 봉사란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받는 것임을 온마을 네트워크는 매 회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7. 다섯 명의 이야기 —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사람들
온마을 네트워크를 이끄는 다섯 명의 봉사자는 저마다의 이유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 명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모두가 받는 봉사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지혜를 배우고, 팀원들과 기획하며 협력하는 법을 익히고, 낯선 어르신께 먼저 말을 건네며 용기를 키웁니다.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가 이 젊은 봉사자들에게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됩니다.

8. 공익의 관점에서 — 온마을 네트워크가 중요한 이유
초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지역사회 기반의 시니어 돌봄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국가와 지방정부의 공식 복지 서비스만으로는 모든 어르신의 일상적 필요를 채우기 어렵습니다. 이웃이 이웃을 살피고, 마을이 마을의 구성원을 돌보는 공동체 돌봄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바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실천입니다. 시설이나 제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연결로 만들어지는 돌봄. 전문 복지사가 아닌 마을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프로그램. 이것이 가진 힘은 친숙함과 지속성에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낯선 전문가보다 익숙한 이웃에게 더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봉사자 자신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성장합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어르신과 봉사자 모두에게 "내가 이 마을의 주인이자 구성원"임을 실감하게 해주는 공익적 실천입니다.
화려한 인프라나 큰 예산 없이도, 사람의 마음과 시간이 모이면 지역사회가 달라진다는 것을 온마을 네트워크는 매 회 직접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모여 따뜻한 마을이 됩니다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 온마을 네트워크의 이야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2026년 11월, 마지막 회 활동이 끝나는 날까지 다섯 명의 봉사자들은 매달 두 번씩 어르신들의 곁에 설 것입니다. 음악과 함께 몸을 움직이고, 퀴즈로 두뇌를 깨우고, 손끝으로 무언가를 함께 만들며, 그 안에서 삶의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어르신들의 웃음 속에, 눈가의 눈물 속에, 그리고 "다음에 또 오지요?" 라는 한 마디 속에 이 활동의 모든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의 마음이 모여 더 따뜻한 마을이 되길 바랍니다.“

마을은 결국 사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곳에 공동체가 생깁니다. 안산초지종합복지관에서 시작된 온마을 네트워크의 이야기가, 경기도 곳곳의 더 많은 마을로 퍼져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글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웹진 6기 에디터 안산사라
취재 |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 온마을 네트워크 현장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 #온마을네트워크 #경기공익활동 #마을공동체돌봄 #주민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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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각자도생의 소용돌이 뒤편에서, 굳건한 환대의 손길로 온기를 빚어내고 찬란한 연대의 내일을 마주하는 눈부신 발자취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경기도 구석구석의 골목을 지켜내며 아이들의 웃음을 보듬어 온 수많은 동네 가게 상인들과 공익활동가들. 팍팍한 삶의 무게와 보이지 않는 방관의 거대한 장막 앞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작은 가게의 문턱을 낮추고 아이들의 일상을 따스하게 품어 안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깊은 울림의 질문 앞에 섰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걷어내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숨결을 보듬으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변화, 아이들의 삶에 닿다’ 이야기 속 진솔한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아이들의 복지와 돌봄은 국가의 제도나 거대 기관에만 맡겨야 할 숙명일 뿐, 평범한 동네 상인들과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손을 잡고 따스한 환대와 나눔의 마당을 펼칠 수는 없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골목 가게 사장님들, 그리고 공익활동지원센터가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동네 가게의 문턱을 넘어 꽃피우는 돌봄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환대 자치와 상호 존중적 아동 돌봄 생태계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생명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환대 감수성 및 자발적 돌봄 생태계 구축’
아이들의 결핍과 소외를 남의 일로 여기거나 무심히 지나치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골목 상인들이 동네의 마당에서부터 직접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따스한 밥 한 끼, 마음 한 조각을 나누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진정한 돌봄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복지 정책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네의 작은 가게 마당에 모여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우리 동네의 아이들은 우리 모두가 함께 키우는 귀한 보물이다'며 어깨를 토닥이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공감 감수성 및 연대 강화’
골목 안에서 마주하는 양극화와 막막함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혼자서 거대한 현실의 벽과 냉소의 파고에 마주하면 숨이 차고 시리지만, 경기도 도민들과 상인들이 손을 잡고 함께 환대의 온기를 나누면 그 어떤 냉담함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환대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골목 네트워크’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다양한 상인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아이의 안전한 성장과 다정한 돌봄이 차별 없이 보장되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시민 자치 실현.
"모든 도민과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도내 각지에서 모인 골목 상인들과 따스한 돌봄을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선한 영향력의 의미를 나누고 뜨거운 열기를 나누며,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아이의 발걸음도 외롭게 방치되지 않는 평화와 자치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지 고민이었는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손을 잡고 '우리의 작은 문턱이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되도록 하자'며 마음을 모으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손끝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경기도형 돌봄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골목 상인들이 함께 모여 아이들의 안부를 돕고 지혜를 나누는 '우리동네 환대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반짝이는 에너지를 모아 더 큰 돌봄의 망을 만드는 '경기 골목상생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무관심의 벽과 각자도생의 파고가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환대의 물줄기가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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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1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변화, 아이들의 삶에 닿다
– 스시히로미 이형락 대표의 일상 속 공익 실천
“그 아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아이의 ‘첫 초밥’이 제가 만든 것이라면,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공익을 이야기할 때 종종 거창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현장이나 조직화된 캠페인, 혹은 이름이 알려진 활동가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공익은 어딘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조금 다른 곳에서 시작됩니다. 의정부의 한 초밥집, 그리고 그곳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는 한 사람의 실천입니다.
스시히로미를 운영하고 있는 이형락 대표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저는 그냥 초밥집 하는 사람입니다.”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준비하고 만들어 아이들에게 건네는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활동은 특별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시골에서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서울에 와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그는 장사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초밥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이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아원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구조적인 이유로 지속적인 활동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지역아동센터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고, 그 선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계획보다 마음이 먼저였다는 점입니다. 한 번의 마음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활동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형락 대표의 활동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직접 초밥을 만들어 보게 하며 ‘1일 요리사’ 상장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돈은 금방 사라집니다. 그런데 경험은 남습니다.”
현재는 여건상 체험을 줄이고 식사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해본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3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 이틀 행복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오래 갑니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자신에게 더 깊게 남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감정을 ‘중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못 갔을 때 미안할 뿐입니다.”
실제로 그는 봉사 일정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 일정을 맞추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공익활동이 삶의 일부가 된 모습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그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기 것을 먹지 않고 할머니께 가져다드리겠다고 싸 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그는 결핍이 아니라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익활동은 단순히 주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따뜻한 마음을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이형락 대표는 자신의 활동을 개인의 선행으로 보지 않습니다.
“제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가게 손님들이 함께하는 일입니다.”
손님들이 지불한 금액의 일부가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직원들과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 활동은 자연스럽게 공동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같이 하는 거지,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에는 공익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에게 공익의 의미를 묻자 그는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자기 만족입니다. 그게 아니면 못 합니다.”
이 말은 공익활동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공익은 의무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느껴야 이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이형락 대표의 나눔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만나며 시작된 활동은 한 대상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더 넓은 사회를 바라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더 많아졌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특히 그는 최근 탈북민에 대한 부분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탈북민분들도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라도 도와보고 싶습니다.”
이 생각은 별도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온 나눔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초밥을 만들어 주던 경험이 ‘누구를 더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그 시선이 더 넓은 사회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즉, 초밥 나눔은 하나의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향해 확장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영업자 역시 공익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영업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현실적인 조건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장사가 잘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공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현실과 구조가 함께해야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형락 대표의 이야기는 결국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그 아이의 첫 초밥이 제가 만든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에는 음식이 아니라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에게 남는 것은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고 마음을 쏟아준 경험입니다.
이 글은 하나의 질문을 남깁니다.
공익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형락 대표는 거창한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매달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는가.”
공익은 어쩌면 거창한 일이 아니라, 오래 이어지는 작은 실천일지도 모릅니다. 초밥 한 접시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접시가 누군가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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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3
도입 — 풍요 속의 빈곤, 그리고 나눔의 역설

세계 10대 농업 수출국 중 하나인 네덜란드. 좁은 국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 기술로 막대한 식품을 생산하는 이 나라에서, 동시에 수십만 명이 식품 지원 없이는 한 주를 버티지 못하는 현실이 공존한다. 풍요와 결핍이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이 역설은 비단 네덜란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나라이면서, 동시에 결식 아동, 독거 노인, 저소득층의 먹거리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음식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먹는 것을 함께한다는 것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음식을 나누는 방식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단순한 구호 활동이 지역 공동체를 잇는 공익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푸드뱅크(Voedselbank) 운동은 이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2002년 로테르담의 한 부부가 시작한 작은 나눔에서 출발해, 오늘날 전국 179개 거점과 500개 이상의 배급 포인트를 갖춘 시민 주도 공익 네트워크로 성장한 이 운동은, 음식 나눔이 어떻게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
2. 푸드뱅크의 탄생 — 로테르담의 한 부부에서 시작된 이야기
세계 최초의 푸드뱅크는 1967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탄생했다. 존 반 헹겔(John van Hengel)이라는 자원봉사자가 지역 교회 급식소에서 일하다가, 슈퍼마켓에서 버려지는 멀쩡한 식품들을 모아 가난한 가정에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다. 그의 아이디어는 미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1984년 프랑스에서 최초의 유럽 푸드뱅크가 열렸다. 벨기에가 1986년에 뒤를 이었다.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었다. 2002년, 로테르담에 사는 샤크(Sjaak)와 클라라 시스(Clara Sies) 부부가 네덜란드 최초의 푸드뱅크를 설립했다. 두 사람은 사업 실패로 직접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후, 과잉 생산된 식품과 빈곤층의 식품 부족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싶었다. 이들이 세운 비영리단체 '마이너스플러스(MinusPlus)'는 처음에 30가구에 식품을 전달하는 작은 프로젝트였다.
초기에는 기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다 2002년 11월, 지역 신문에 기사 하나가 실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기사가 나간 다음 날부터 전화가 폭주했다. 차량, 창고, 로고 디자인 지원이 쏟아졌고, 도움을 원하는 가정과 식품을 기부하겠다는 기업이 동시에 몰려왔다. 2003년 2월에는 TV 뉴스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로테르담의 작은 실험은 급격히 확산되었다.
2005년 9월 전국에 22개였던 푸드뱅크는 불과 석 달 만인 12월에 40개를 넘어섰다. 2008년에는 경제 위기를 계기로 전국 단위 재단인 '스티흐팅 푸드뱅크 네덜란드(Stichting Voedselbanken Nederland)'가 결성되었고, 2013년에는 '네덜란드 푸드뱅크 연합(Vereniging van Nederlandse Voedselbanken, VNV)'으로 재편되어 공식 전국 조직으로 자리잡았다.
3. 구조와 운영 방식 —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운영한다

오늘날 네덜란드 푸드뱅크 네트워크는 전국 179개의 독립 푸드뱅크와 500개 이상의 배급 포인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거대한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한다는 점이다. CEO부터 식품 포장 담당자, 배송 기사까지 모든 역할이 무보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전국적으로 약 11,000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 중이다.
운영 방식은 명확하고 효율적이다.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 사이, 자원봉사자들이 슈퍼마켓, 식품 제조사, 유통 업체를 돌며 판매하지 못하는 잉여 식품을 수거한다. 유통 기한이 임박했거나 포장이 손상됐지만 식품으로서는 문제가 없는 것들이다. 목요일에는 수거한 식품을 가정별 꾸러미로 포장하고, 금요일에는 이용자들이 직접 푸드뱅크를 방문해 꾸러미를 가져가거나, 거동이 어려운 경우 배달을 받는다. 로테르담 지부의 경우 주당 약 80,000kg의 식품을 처리하며 6,700가구를 지원한다.
식품 공급의 안정성은 오랜 협력 관계 덕분에 가능해졌다. 푸드뱅크 연합은 알버트 하인(Albert Heijn), 점보(Jumbo), 리들(Lidl), 알디(Aldi) 등 네덜란드 주요 슈퍼마켓 체인과 장기 계약을 맺어 정기적으로 잉여 식품을 공급받는다. 2016년에는 이 협력 체계를 더욱 공식화하는 대형 계약이 체결되었다. 네덜란드 정부도 2018년 '음식 낭비 제로(United Against Food Waste)' 캠페인을 통해 기업이 잉여 식품을 기부할 경우 법인세 전액 공제 혜택을 부여해 식품 기부를 제도적으로 촉진했다.
지원 대상은 명확한 기준을 갖는다.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이고 의무적인 지출(임대료, 의료비, 채무 상환 등)을 제외한 가처분 소득이 거의 없는 가구가 대상이다. 지원은 원칙적으로 일시적이다. 푸드뱅크의 철학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자립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 지역 푸드뱅크는 채무 상담, 취업 연계, 지역 복지 서비스 등 다른 공익 기관들과 긴밀하게 협력해 이용자의 자립을 지원한다.
4. 음식 너머의 공동체 — 나눔이 만드는 사회적 연결

네덜란드 푸드뱅크 운동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음식 지원 자체를 넘어선 공동체적 기능이다. 연구자들은 푸드뱅크가 단순한 식품 재분배 기관을 넘어, 빈곤과 고립 속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와 연결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만나고, 자원봉사자와 이용자가 관계를 형성하며, 지역 사회의 유대가 만들어진다.
암스테르담의 푸드뱅크 지부는 주당 1,300가구에 약 5유로(약 7,000원)의 비용으로 식품 꾸러미를 전달한다. 저렴한 비용으로 대규모 지원이 가능한 이유는 자원봉사 기반 운영 구조와 기업의 잉여 식품 기부 시스템 덕분이다.
네덜란드의 식품 나눔 운동은 푸드뱅크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붜르트뷔크(BuurtBuik, 동네 배)' 같은 이니셔티브는 슈퍼마켓과 레스토랑의 잉여 식품으로 지역 주민이 함께 무료 식사를 만들어 나누는 방식으로, 음식 나눔이 동시에 고립과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장이 된다. 자원봉사자와 이웃들이 함께 모여 요리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이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테이스트 비포 유 웨이스트(Taste Before You Waste)'는 2012년 설립된 단체로 음식 낭비 방지와 공동체 형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암스테르담, 위트레흐트 등에서 매주 '낭비 없는 저녁 식사(Wasteless Dinner)'를 열어 버려질 뻔한 식품으로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며 음식 낭비에 대한 인식을 높인다. 헤이그에서 활동하는 '버르스 앤 브레이(Vers & Vrij)'는 지역 레스토랑의 남은 음식을 도시 곳곳의 공용 냉장고 26개에 채워두는 방식으로 누구나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게 한다. 신뢰와 연대를 원칙으로 운영되며, 각 냉장고는 월 약 250명에게 식품을 제공한다.
이 모든 이니셔티브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것이 있다. 식품 낭비를 줄이는 환경적 목표와 빈곤층을 지원하는 사회적 목표, 그리고 이웃 간의 연결을 만드는 공동체적 목표가 하나로 묶인다는 점이다. 음식은 그 모든 목표를 동시에 실현하는 매개가 된다.
5. 수치로 보는 현황 — 성장의 이면에 있는 과제
2026년 초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네덜란드 푸드뱅크 이용자 수는 전년도 144,750명에서 7.5% 증가한 155,600명으로 늘었다. 연합 측은 보충 연금이 없는 고령자, 자영업자, 저임금 근로자 등 새로운 계층이 점점 더 식품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2년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요금 급등이 겹치면서 2022년 4분기 이용자가 전 분기 대비 30% 급증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22년 한 해 동안 네덜란드 푸드뱅크 네트워크는 총 4,000만 킬로그램의 식품을 190,000명에게 배분했다. 이는 동시에 엄청난 양의 음식물 낭비를 막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푸드뱅크의 성장 자체가 역설적인 측면도 있다. 연합 측은 이 지원이 어디까지나 임시적이어야 하며, 복지 국가가 충분한 안전망을 갖추고 있다면 장기 이용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용자의 9%가 최대 허용 기간인 3년 내내 푸드뱅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풍요로운 사회에서도 구조적 빈곤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푸드뱅크 연합은 단순한 식품 배분에 그치지 않고, 네덜란드 정부에 빈곤 정책 개선을 촉구하는 정책 제언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친다. 2026년 초에는 의회 원내교섭단체 대표들에게 서한을 보내 노동 참여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취약 계층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시민 주도 공익단체가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6. 한국 푸드뱅크와의 비교 —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한국에도 푸드뱅크가 있다. 1998년 IMF 경제 위기 직후 노숙인과 결식 아동 급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한국 푸드뱅크는, 현재 전국 푸드뱅크 1개소, 광역 17개소, 기초 푸드뱅크 297개소, 기초 푸드마켓 131개소 등 총 450여 개소가 운영 중이다. 2022년 기준 월평균 약 41만 명이 이용하고, 한 해 약 1,517억 원 상당의 식품이 지원됐다.
구조적으로 보면 한국 푸드뱅크는 보건복지부의 지도·감독 아래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위탁 운영하는 반관반민 체계다. 광역 자치단체와 기초 자치단체의 행정 체계 안에서 작동하며, 정부 예산이 운영의 핵심 재원이 된다.
네덜란드 푸드뱅크와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난다. 네덜란드 모델은 완전한 시민 주도 자원봉사 체계로 운영되며, 운영 비용의 상당 부분을 기업 후원과 자원봉사로 충당한다. 정부가 세제 혜택 등 제도적 지원을 하지만, 운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시민 자원봉사 조직이다. 반면 한국 모델은 정부 보조금과 행정 체계에 의존하는 구조가 강하다. 이로 인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민 자발성과 지역 밀착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측면도 있다.
또 다른 차이는 네트워크의 성격이다. 네덜란드의 각 지역 푸드뱅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도 연합 조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역별 필요와 특성에 맞게 운영 방식을 조정할 자율성이 있으며, 지역 기업, 교회, 지역 단체와의 협력 관계를 각자 구축한다. 한국의 경우 전국 단위 물류 체계와 행정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지만, 지역 단위의 자발적 공동체 형성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음식 나눔이 지역 공동체를 잇는 문화적 기능, 즉 함께 먹고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웃과 연결되는 경험은 네덜란드의 붜르트뷔크나 테이스트 비포 유 웨이스트 같은 풀뿌리 이니셔티브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공동체 식사 문화가 사라지는 추세와 함께, 먹거리 지원이 '물건을 전달하는 행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7.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네덜란드 푸드뱅크 운동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수 있는 점은 세 가지다.
첫째, 음식은 공익활동의 강력한 접점이다. 먹거리는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나 공감하며,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공익에 참여하게 만든다.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농산물 잉여 문제와 저소득층 먹거리 지원 문제는 동시에 존재한다. 지역 농산물 잉여를 취약 계층에 연결하는 방식, 지역 기업과 식품업체의 잉여 물품을 지역 내에서 순환시키는 구조 설계는 충분히 가능한 과제다.
둘째, 자원봉사가 공익 생태계의 뼈대가 된다. 네덜란드 푸드뱅크가 전국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약 11,000명의 자원봉사자가 이 모든 것을 운영한다. 공익활동의 지속 가능성은 재정만큼이나 사람의 참여에 달려 있다. 자원봉사자 참여를 공익활동의 중심에 놓고, 그 경험이 의미 있게 기록되고 공유될 때 생태계는 자생력을 갖는다.
셋째, 나눔은 고립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급격한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로 인해 사회적 고립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붜르트뷔크처럼,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나누는 활동이 이웃 간 연결을 만들고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은 경기도의 다양한 시·군에서도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먹거리 복지가 단순한 지원을 넘어 공동체 형성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무리 — 음식 한 꾸러미가 만드는 세계
2002년 로테르담의 샤크와 클라라 시스 부부는 한 달에 30가구에 식품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시작한 운동은 매주 155,000명 이상을 먹이고, 수천만 킬로그램의 음식이 쓰레기가 되는 것을 막으며,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지역 공동체를 잇는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이 성장은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 버려지는 음식이 아깝다는 생각으로, 가능한 것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경기도 곳곳에서 공익활동을 이어가는 단체들과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변화는 종종 가장 일상적인 것, 가장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된다. 음식 한 꾸러미, 이웃의 밥 한 끼, 함께하는 식사 한 번이 공동체를 잇는 씨앗이 될 수 있다.
참고 자료
Voedselbank Rotterdam 공식 홈페이지 — 역사 : https://voedselbank.nl/20jaar/verhaal/lesje-geschiedenis
Canon Sociaal Werk Nederland — 2002년 푸드뱅크 로테르담 : https://mobile.canonsociaalwerk.eu/nl/details.php?cps=47
IsGeschiedenis — 푸드뱅크의 역사 : https://isgeschiedenis.nl/nieuws/de-geschiedenis-van-de-voedselbank
IamExpat — 네덜란드 푸드뱅크 : https://www.iamexpat.nl/expat-info/dutch-news/food-banks-netherlands
Leiden International Centre — 네덜란드의 푸드뱅크 : https://www.leideninternationalcentre.nl/get-advice/blogs/food-banks-in-the-netherlands
Food Bank Limburg South — 일반 정보 : https://www.voedselbanklimburg-zuid.nl/en/algemene-info/
NL Times — 2026년 푸드뱅크 이용자 증가 : https://nltimes.nl/2026/03/09/food-bank-use-netherlands-jumps-75-155600-amid-rising-cost-living
NL Times — 2023년 이용자 안정화 : https://nltimes.nl/2023/03/06/number-people-requiring-food-bank-help-stabilized
PMC — Food insecurity and the covid pandemic: uneven impacts for food bank systems in Europe :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9628314/
BuurtBuik — Amsterdamian 소개 : https://amsterdamian.com/see/photos/food-waste-initiatives-netherlands/
Taste Before You Waste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tastebeforeyouwaste.org/
전국푸드뱅크 공식 홈페이지 — 기관 소개 : https://www.foodbank1377.org/introduce/foodbank.do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복지넷 — 푸드뱅크 사업 소개 : https://www.bokji.net/ssn/bin/08.bok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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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3
공익활동, 혼자서는 지속되지 않는다
경기도 어느 시·군의 작은 공익활동 단체를 상상해 보자. 환경, 아동, 복지, 문화 등 각자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모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마주치는 현실은 이상과 다를 때가 많다. 단체를 법인으로 등록하는 절차는 복잡하고, 보조금 신청서 작성은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며, 회원 모집과 홍보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같은 고민을 나눌 동료나 단체를 찾기 어렵다. 공익에 뜻은 있지만 그것을 지속시킬 자원과 구조가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중간지원조직'이다. 중간지원조직은 공익활동 단체와 행정, 기업, 시민 사이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허브 역할을 한다. 이 중간지원조직의 생태계가 가장 체계적으로 발달한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다.
2022년, 일본 내각부(内閣府)의 정의에 따르면 중간지원조직이란 "다원적 사회에서 공생과 협동이라는 목표를 향해, 지역사회와 NPO의 변화와 필요를 파악하고 인재·자금·정보 등의 자원 제공자와 NPO를 연결하며, 넓은 의미에서 각종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을 조율하는 조직"이다. 요약하자면 'NPO를 지원하는 NPO'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약 30년에 걸쳐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의 지원 구조를 촘촘하게 구축해 온 일본의 경험은, 현재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포함해 여러 행정구역 단위의 공익활동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를 키워가고 있는 한국에 여러 시사점을 전한다.

자원봉사 원년 1995년 - 일본 NPO 생태계의 출발점
일본의 NPO 생태계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는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이 있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일본 효고현 남부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대지진, 한신·아와지 대지진이다. 사망자 6,434명이라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 이 재난에서, 지진 직후 피해 지역에서 이재민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에 참여한 사람은 하루 평균 2만 명이 넘었으며 3개월간 연인원 117만 명에 이른다. 현지에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헌혈이나 기부, 물자 지원 등 후방 지원에 자원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최대 16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1995년은 일본에서 '자원봉사 원년'으로 불린다. 수십만 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일본 사회는 처음으로 시민사회의 힘을 실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한계도 드러났다. 자원봉사자들의 열의는 넘쳤지만 이들을 조직하고 연결할 구조가 없었다는 점이다. 자원은 넘치는데 배분이 안 되고, 현장마다 중복 지원이 발생하는가 하면 사각지대가 생기기도 했다. 시민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졌다.
일본 정부는 비영리단체를 손쉽게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1997년에 '특정비영리활동 촉진법(NPO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일본의 시민사회와 비영리 섹터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NPO법 제정 이전에는 일본의 소규모 시민단체들은 법인격을 취득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거 등장한 소규모 풀뿌리 시민단체들은 기존의 공익법인제도의 틀 내에서는 법인격을 부여받기가 쉽지 않아 임의단체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조직 기반이 약하고, 인지도나 사회적 신용도가 낮아 공익활동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NPO법 제정으로 이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법인격을 취득한 단체는 은행 계좌를 법인 명의로 개설하고, 계약의 주체가 되며, 사회적 신용도를 얻을 수 있었다. NPO법의 제정·시행을 계기로 그동안 임의단체로 활동해 왔던 시민단체들이 대거 법인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NPO법 시행 이후 일본의 NPO법인 수는 꾸준히 늘어 현재 수만 개에 달하는 생태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중간지원조직의 구조 :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의 촘촘한 네트워크
NPO법 제정과 함께 일본 전역에서 중간지원조직도 빠르게 증가했다. 중간지원조직의 설립 시기를 조사한 결과, 1995년 이후에 설립된 것이 전체의 82%를 차지했으며, 특히 민설·민영 형태의 중간지원조직은 그 비율이 92%에 달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NPO법 제정이 중간지원조직 확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구조는 크게 두 층위로 나뉜다.
** 전국 단위: 일본NPO센터
일본NPO센터는 1996년 11월 NPO 관계자들의 협력으로 설립되었으며, 1999년 특정비영리활동법인, 2011년에는 인정특정비영리활동법인(NPO 법인중에서 운영조직 및 사업활동이 적정하고, 공익의. 증진에 기여가큰 법인으로, 관할기관 (도도부현・정령시)으로부터 인정을받은 NPO) 으로 인정받았다. 정보 교류, 인재 개발, 조사·연구, 정책 제언 등의 활동을 통해 NPO의 기반을 강화하고, 기업·행정과의 파트너십 구축을 목표로 한다.
일본NPO센터는 분야와 법인격의 유무에 상관없이 NPO 등 민간비영리 섹터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데 힘쓰며, 각종 연수와 네트워킹 기회 제공, IT 지원, 자금 중개 프로그램 등을 통해 활동을 뒷받침한다. 기업을 대상으로는 NPO와의 협동 사업을 제안하고 상담하는 창구 역할도 한다.
** 지역 단위: 도도부현 NPO지원센터 네트워크
일본NPO센터는 전국 도도부현별로 NPO지원센터 목록을 관리하고 있으며, 각 지역의 지원조직과 지원시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각 지역 센터는 NPO의 조직 상담에 대응할 수 있는 상근 스태프를 두고, 분야를 가리지 않는 종합 지원을 원칙으로 한다.
중간지원조직의 형태는 NPO, 타운 매니지먼트 기관 등 제3섹터적인 것, 자치체 내부에 설치된 것, 사회복지협의회가 설치한 것 등 다양하다. 공설(公設) 및 민설(民設) 양쪽의 형태가 있으며, 공설 중에는 민영(운영을 NPO법인 등 민간에 위탁하는) 형태도 있어 '공설민영' 형태가 증가하는 추세다.
중간지원조직의 주요 기능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상담과 정보 제공이다. 법인 설립부터 보조금 신청, 회계 처리까지 단체가 필요로 하는 실무적 지식을 지원한다. 둘째는 역량 강화 교육이다. 단체 운영, 모금, 홍보 등 다양한 주제의 연수를 제공한다. 셋째는 자원 연계다. 기업의 사회공헌 자금이나 재단 보조금을 NPO와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넷째는 네트워크 구축이다. 단체들이 서로 만나고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
일본NPO지원센터의 구체적 활동 : NPO서포트센터와 협동 모델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례는 NPO서포트센터다. NPO서포트센터는 1993년에 설립되어 일본 최초의 민간에 의한 NPO 지원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설립 당시는 NPO라는 개념이 '발견'되어 이입되기 시작한 시기로, 버블 붕괴, 한신·아와지 대지진, 지하철 사린 사건 등으로 상징되는 저성장과 혼미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 선구자들은 NPO의 가능성에 목소리를 높여 NPO법이라는 기반을 만들었다.
NPO서포트센터는 도쿄 중앙구와 협력해 '협동스테이션 중앙을 운영하며, 행정과 NPO의 실질적 협동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델에서 핵심은 행정이 공간과 일정 재원을 제공하지만 운영의 주도권은 민간 NPO가 갖는다는 점이다. 행정 주도로 운영될 경우 나타나는 경직성 문제를 최소화하면서도 공공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일본NPO센터가 행정과의 협동을 정의할 때 "이종·이질의 조직이 공통의 사회적 목적을 위해 각자의 자원과 특성을 모아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하여 함께 일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협동이 공동 의존이나 유착 관계가 되지 않도록 정보 공개를 철저히 하고 사업마다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행정으로부터 지원을 받되 독립성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중간지원조직의 존재 의의이기 때문이다. 일본NPO센터는 행정과 협동하는 NPO가 갖춰야 할 자세로 "행정에 의존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독립할 것"을 핵심 덕목으로 꼽는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와 비교하면 어떨까
필자가 6기 아카이브 에디터로 활동 중인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경기도민과 공익단체들의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증진하기 위해 경기도와 시민사회가 함께 설립한 중간지원조직으로,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구조와 비교할 때 몇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드러난다.
유사점으로는 먼저 행정과 시민사회의 협력 구조가 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경기도의 지원 아래 운영되면서도 시민사회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구조를 갖고 있다. 공익활동 단체 지원, 네트워크 구축, 콘텐츠 아카이빙 등 일본 중간지원조직의 주요 기능과 상당 부분 겹친다. 양성교육 프로그램 운영, 정기회의를 통한 네트워크 구축, 공익매거진 발간 등은 일본 지역 센터들의 활동과 흡사하다.
차이점에서는 역사의 두께가 가장 크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는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1998년 NPO법 제정을 출발점으로 삼아 약 30년의 축적을 가지고 있다. 전국 단위에 일본NPO센터가 있고, 47개 도도부현에 각각 지역 지원 조직이 있으며, 더 아래로는 시·구·정·촌 단위의 자원봉사센터와 협동 거점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이후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었고,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그 흐름 위에서 성장하고 있지만 역사의 두께 면에서는 아직 차이가 있다.
또한 일본은 NPO법이라는 명확한 법적 근거 위에 전체 생태계가 세워져 있어, 어느 지역에 어떤 종류의 지원 조직이 있는지 체계적으로 파악된다. 한국은 공익 관련 법인 형태가 분산되어 있고, 중간지원조직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법적 근거가 상대적으로 덜 명확하다.
기업 연계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본은 기업의 사회공헌(CSR·CSV) 활동과 NPO를 연결하는 매개 기능이 중간지원조직의 중요한 역할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 자원이 공익활동 생태계에 흘러드는 구조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반면, 한국은 이 연계가 아직 초기 단계인 경우가 많다.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배울 것들
일본의 사례에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와 경기도 시민사회가 참고할 만한 점은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법적 기반이 생태계를 안정시킨다. 일본 NPO 생태계의 폭발적 성장은 1998년 NPO법 제정 이후에 일어났다. 법인격 취득이 쉬워지자 단체들이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위에서 중간지원조직도 자라날 수 있었다. 한국도 공익활동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의 논의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단체 등록, 세제 혜택, 보고 의무 등 법·제도적 환경이 공익활동의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 밀착성이 핵심이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은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전국 단위 센터가 정책 제언과 정보 허브 역할을 한다면, 지역 센터는 실제로 단체들의 현장과 맞닿아 개별 상담, 역량강화 교육, 지역 네트워크 구축을 담당한다. 경기도는 31개 시·군이라는 방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만큼, 남부센터와 북부지부 체계를 기반으로 지역별 밀착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독립성을 지켜야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살아난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들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행정 의존 탈피'다. 재정 지원을 받되, 공익활동 현장의 목소리를 행정에 전달하는 정책 제언 기능, 단체들이 서로 연대하는 네트워크 기능을 유지하려면 운영의 자율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생태계 전체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30년의 차이, 그러나 같은 방향
일본의 NPO 중간지원조직 생태계와 국내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를 비교하면 역사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1995년 대지진을 계기로 자원봉사의 원년을 선언하고, 1998년 NPO법을 제정하고, 그 위에서 30년에 걸쳐 촘촘한 지원 구조를 쌓아온 일본과, 공익활동의 제도화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된 한국의 차이는 단순히 따라잡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방향은 같다. 공익활동이 혼자서는 지속될 수 없다는 인식, 그것을 지원할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그 중간지원조직이 행정과 시민 사이를 '진짜 다리'로 연결해야 한다는 인식은 일본과 한국이 공유하고 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아카이브 에디터와 함께 공익활동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쌓아가는 것도 그 방향의 일부다. 30년 전 일본의 시민들이 대지진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보여준 시민사회의 힘처럼, 오늘 경기도의 공익활동을 기록하는 한 줄, 한 줄이 미래의 생태계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일본NPO센터 공식 홈페이지 https://www.jnpoc.ne.jp/
내각부 - 중간지원조직의 현황과 과제에 관한 조사 보고(2002)
https://www.npo-homepage.go.jp/uploads/h13b-2.pdf
NPO CROSS - "중간지원조직이란 무엇인가" https://npocross.net/1881/
복지타임즈 -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재해 지원 시스템 구축" https://www.bokj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865
민병로 (2010). 일본 시민 사회의 구조와 법인화
- NPO법인 제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10(2), 125-160.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469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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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3
어린이 식당, 관계 회복을 위한 가장 따뜻한 초대
환대받는 한 끼가 만드는 아이들의 ‘이바쇼’
‘어린이 식당’ 운동은 도쿄 외곽의 작은 동네 골목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큰 재난으로 일본사회는 어두워졌고, 아동 빈곤율은 치솟았다. 방학에도 돌봐줄 사람이 없이 배회하는 동네 아이들의 모습은 누구나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좌절감이 사람들 사이에 스며있었다. 그 때 도쿄의 한 채소가게 주인 『곤도히로시』는 달랐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고, 시작했다. 2012년 여름. 히로시는 동네 아이들 몇몇을 자신의 채소가게로 불러 모아서 식사를 대접하고, 어린이식당이라고 명명했다. 이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 움직임은 2026년 일본 전역에 1만 2천개가 넘는 거점으로 확산되었다. 어린이식당은 빈곤 아동만을 위한 급식소가 아니다. 어린이식당은 아이와 어른, 이웃과 이웃이 밥상 공동체를 통해 무너진 지역 사회의 관계를 회복하는 ‘마을의 거실’이다.
이 운동의 핵심 키워드는 ‘이바쇼(居場所)’다. 이바쇼는 한국어로는 단번에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다. 장소를 뜻하면서도 ‘자신 모습 그대로 있어도 되는 곳, 평가받지 않는 곳, 기댈 사람과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또한 ‘이바쇼’는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람에게도 “당신은 나의 이바쇼입니다”라는 식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안식처’, ‘비빌 언덕’, ‘안전한 사람과 장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코로나19, 환경위기, 연속된 사회적 대참사 등 우리사회 또한 재난의 시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가장 아픈 상흔은 ‘고립’과 ‘단절’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세상은 부모 외에는 믿을 사람도, 기댈 곳도 부족한 각박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특별한 사람만을 구제하고, 치유할 수준이 아니다. 잠재되어 있지만 모두가 아프다. 일본에서는 지금의 사회를 이렇게 표현한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상처를 나무 의사가 치유하고, 비료를 줄 때가 아니고, 전체 토양과 공기를 바꿔야 할 때다.” 학교 문을 나서면 돌봄 시설과 학원을 전전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영양분과 최고의 서비스만이 아니다. 자신을 온전하게 반겨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이곳에 존재해도 좋다는 안도감, 즉 ‘이바쇼(내 자리가 있는 곳)’의 경험이다.
공릉동 ‘어릔이식당 작은숲’, 마을의 느슨한 연대가 차려낸 식탁
서울 공릉동에서도 이 따뜻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어릔이식당 작은숲’은 2011년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개설 이후 15년간 다져온 ‘꿈마을공동체’(다양한 사람과 단체가 느슨하게 연결된 지역 네트워크이며, 마을교육공동체)의 자발적인 에너지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곳의 식탁은 어느 한 기관의 힘으로만 차려지지 않는다. 지역의 작은 교회와 성당, 주민자치회와 작은 도서관, 학교와 복지관, 마을협동조합 등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식당을 열고 있다. “작은숲”은 2024년 11월부터 지금까지 매달 열리고 있다. 여러 단체가 힘을 모으고 있고,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책임을 나누니, 음식을 만드는 일은 각 단체가 1년에 한두번 정도만 담당하면 된다. 음식은 단순하고, 소박한 한 끼를 지향한다. 영양균형이 완벽한 급식 서비스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어린이와 이웃이 만나 이야기를 꽃피우는 관계의 식탁이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은 ‘어릔이식당’이라고 표기한다. 오타가 아니라 ‘어린이’와 ‘어른’의 만남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린이식당 작은숲의 일상은 이렇다.
마을 기업 ‘나눔과이음’은 알록달록한 비빔밥을 준비하고, ‘한살림 북서울노원지구’는 생명의 가치를 담은 정성 어린 주먹밥을 만든다. 시간을 내어서 일부러 방문한 주민자치회장님은 달콤한 디저트를 선물한다. 여기에 수공예 작가 모임인 ‘마디상회’는 라탄 바구니와 꽃병으로 식탁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소박한 한 끼지만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아이들의 얼굴은 싱글벙글 즐겁다. 친구와 함께, 부모님과 같이 온 아이도 있고, 가끔 혼자 온 아이도 식당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외롭게 서 있다. 어른들은 즐겁게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밝은 얼굴로 “어린이식당에 왔구나! 어서 오렴, 밥 먹고 가라”고 다정한 말을 건 낸다. 중고생 청소년들은 손님으로도 오지만 역할을 가지고 함께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곳에서 동네 형, 누나들은 테이블 메니저가 된다. 동생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맵기는 어떻게 해줄까?”, “요즘 학교에서 재밌는 일은 뭐야?”라 물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내는 유능한 일꾼이다.
지속 가능한 어린이식당 운동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
우리는 식당을 운영하며 일본 어린이식당 운동본부인 ‘무스비에’가 정한 다섯 가지 원칙을 가슴에 새긴다. 첫 번째는 ‘자발성’이다. 어린이 곁에서는 일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아이를 아끼는 마음과 베푸는 즐거움에서 스스로 시작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다양성’이다. 어린이식당은 운영주체에 따라서 모두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모든 아이의 개성이 다르듯, 식당 또한 엄격한 매뉴얼로 정형화되지 않고 운영 주체의 형편에 맞게 저마다의 색깔을 담고 있다. 세 번째는 ‘포용성’이다. 어린이식당은 특정 대상만을 위한 선별적 서비스가 아니다. 이용하는 어린이는 저소득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자원봉사로 참여할 기회도 마을 어른들뿐 아니라 청소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네 번째는 ‘공익성’이다. 어린이식당이 영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판촉행사와 연계하여 사익 추구의 수단이 되거나, 정치적·종교적 강요가 있어서도 안 된다. 마지막은 ‘지역성’이다. 어린이식당은 아이들의 삶과 가까운 곳에서 펼쳐져야 한다. 아이들이 돌봄 시설과 서비스를 찾아 멀리 가지 않아도 골목에서 친구와 이웃을 만날 수 있을 때, 마을은 비로소 살맛나는 공동체가 된다. 이러한 다섯 가지 원칙은 어린이식당이 단순히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복지나 교육 서비스를 넘어, 평범한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작은 변혁(무브먼트)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실제로 이 원칙들은 식탁에 앉은 아이들과 식탁을 여는 이웃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공동체 식탁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파트 층간소음 갈등의 대상에서 반가운 ‘이웃’으로 전환된다. 제 자녀의 양육에만 집중하다 빈둥지증후군으로 상실감에 빠져있는 중년의 이웃들에게는 ‘사회적 양육자’라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준다. 어린이식당에서 시민들은 연결된다. 아이들의 미소로 동네사람들이 연결될 때 아동친화도시라는 행정의 선언은 살아 숨 쉬게 된다.
어린이식당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에너지는 공릉동을 넘어서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 열기를 확인한 자리가 바로 2025년 10월 16일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서 열린 ‘어린이 식당 활동가 대회’였다. 서울, 경기 뿐 아니라 제주, 부산, 대구, 광주, 충북 전국에서 어린이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 어린이식당을 해본 사람들, 어린이식당운동이 지역에서 펼쳐지길 희망하는 사람들 85명이 모였다. 그 사람들은 복지관 사회복지사, 청소년센터 직원, 협동조합 구성원, 일반시민과 학부모들로 다양했다. 우리는 이 운동의 확산 가능성을 실감했다. 이후 내가 일하는 노원구 지역에도 어린이식당이 퍼져나가고 있다. 상계동에 위치한 청소년센터로, 경춘선숲길 작은 도서관으로, 중계동 어린이도서관 근처 작은 공간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타 지역에서 어린이식당 사례를 듣고자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문턱을 낮추면 마을 곳곳이 식당이 된다.
어린이식당은 거창한 전용 건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엄청나게 많은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최고의 음식을 제공할 필요도 없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역시 작은 싱크대 하나로 식당을 운영한다. 한 달에 한번만 2층 로비를 장식해서 어린이식당으로 변신시킨다. 마을의 문턱을 조금만 낮추면 우리 곁의 모든 공간이 아이들의 식탁이 될 수 있다. 낮 시간에 비어있는 주민센터 회의실, 마을회관, 작은 도서관, 동네 작은 교회나 성당, 심지어 학부모들이 모이는 작은 카페 공간도 훌륭한 식당이 된다.
어린이식당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묻는다. “어린이식당을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준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나요?” 나는 이렇게 답한다. “어렵지 않아요.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어린이식당인 걸요. 일 년에 한번만 해도 좋고, 힘들면 중간에 포기해도 돼요. 안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렇게 쉽다고요. 에이 그래도 막상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 걸요” 일본에서는 어린이식당운동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의 걱정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펼쳐진다. 많은 지자체가 어린이식당운동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이 간단한 양식으로 의향서를 제출 할 수 있게 만들어두었다. 어린이식당을 하겠다는 신고 단체에게는 약간의 식재료비를 지원한다. 장소가 필요하면 공공시설 사용 가능 여부를 알아봐주고, 지역의 어린이와 가정에 어린이식당이 어디에서 언제 열리는지 홍보를 돕는다. 지자체 뿐 아니라 어린이식당과 어린이식당을 연결하고, 여러 어려움 해결을 돕는 중간지원조직(비영리 단체)도 운영되고 있다.
마을 곳곳에서 어린이식당이 펼쳐질 때, 아이들과 양육자는 작은 사회적 신뢰를 경험하게 된다. 또 어린이식당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재난의 시대, 삭막한 이 도시를 함께 돌보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된다. 우리가 사는 모든 동네에 이 ‘관계 회복의 식탁’이 차려지기를 소망한다.


그림 숲길도서관에서 어린이식당 운영을 준비하는 도서관봉사자들의 모습

그림 어릔이식당 작은숲 운영을 위해 20여개의 마을 단체가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둘러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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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2
혐오의 그늘과 쉴 새 없는 왜곡의 소용돌이 뒤편에서, 굳건한 진실의 손길로 인권을 빚어내고 찬란한 연대의 내일을 마주하는 눈부신 발자취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경기도 구석구석의 이웃을 품어내며 따스한 공동체를 염원해 온 수많은 장애인 학부모들과 공익활동가들. 근거 없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라는 낡은 편견과 이기주의의 거대한 장벽 앞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모든 아이들이 차별 없이 교육받을 권리를 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깊은 울림의 질문 앞에 섰다. 방관과 무관심의 장막을 걷어내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숨결을 보듬으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집값 떨어진다고요? 특수학교 설립에 붙은 가짜 뉴스’ 이야기 속 진솔한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특수학교가 세워지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근거 없는 가짜뉴스와 님비 현상은 개인이 감내해야 할 갈등일 뿐, 평범한 이웃들과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손을 잡고 진실과 환대의 마당을 펼칠 수는 없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장애 아이들의 부모들, 그리고 공익활동지원센터가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가짜뉴스를 뛰어넘어 꽃피우는 교육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교육 인권 자치와 상호 존중적 환대 생태계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포용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방관과 왜곡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인권 감수성 및 자발적 환대 생태계 구축’
장애인 시설이나 특수학교 설립을 무조건 반대하던 낡은 편견과 가짜뉴스에 휘둘리던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이웃들이 동네 마당에서부터 직접 진실을 마주하고 모든 아이들의 교육권을 지지하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진정한 교육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통합 교육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네의 작은 공원에 모여 앉아 학부모들과 손을 잡고 '우리의 이웃인 모든 아이들은 소중하게 배울 권리가 있다'며 따스한 지지를 보내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공감 감수성 및 연대 강화’
지역 사회 내 갈등과 혐오의 목소리를 방치하지 않고, 주민들과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사실을 바로잡고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혼자서 거대한 이기주의의 벽과 가짜뉴스의 파고에 마주하면 숨이 차고 막막하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진실의 목소리를 내면 그 어떤 편견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환대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교육 네트워크’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다양한 인권 및 시민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아동의 교육적 권리와 존엄이 차별 없이 보장되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시민 자치 실현.
"모든 도민과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도내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과 따스한 공존을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특수학교 설립을 가로막는 가짜뉴스의 실상을 파헤치고 올바른 인식을 나누는 뜨거운 열기를 나누고,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아이의 배움도 차별받지 않는 평화와 자치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근거 없는 소문에 우리 동네가 닫힌 사회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손을 잡고 '편견을 거두고 진실을 바라보니 모든 아이들이 우리의 소중한 자녀였다'며 마음을 모으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손끝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경기도형 교육 인권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모여 가짜뉴스를 바로잡고 소통하는 '우리동네 인권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반짝이는 에너지를 모아 더 큰 환대의 망을 만드는 '경기 교육상생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편견의 벽과 갈등의 파고가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진실의 물줄기가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시민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부동산 통계 데이터나 거창한 정부의 행정 조치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경기도의 좁은 골목길과 현장에서 이웃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우리의 정직한 인권 감수성과 다정한 연대로 경기도의 찬란한 공존 역사를 활짝 밝힌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장애인 학부모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편견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포용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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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