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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함께 사는 즐거움을 알리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하며,
나이 듦의 지혜를 배워가고 있는 사회주택 활동가, 김수동(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전세사기 피해자가 된다는 것
전세사기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잃는 경제적 문제를 넘어 한 개인의 삶 전체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재난과 같다. 안식처여야 할 집은 불안과 공포의 공간으로 변한다.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고, 직장 생활이나 학업 등 기본적인 일상조차 유지하기 어렵다.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 소박하게 꿈꾸던 모든 미래 계획이 산산조각 나고, 삶은 오직 사기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법적 싸움으로만 채워진다. 이는 곧바로 정신적 파멸로 이어진다. 피해자들은 극심한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깊은 불신이 생겨 대인관계마저 단절된다. 가장 힘든 것은 '네가 부주의해서 당한 것 아니냐'는 식의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적 시선이다. 도움과 위로를 받아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피해자들은 깊은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사기꾼을 잡고 피해를 복구하는 모든 과정을 오롯이 피해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이들을 더욱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경기도의 피해현황
2025년 6월 말 기준으로 전세사기피해지원 특별법상 피해 사실이 인정된 피해자는 총 3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 중 경기도 거주자가 6,657명으로 전국 두 번째로 많다. 20~30대 청년층 피해자가 75%를 차지한다. 2024년 6월부터 2025년 9월까지 약 1년 4개월간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액은 6,664억 원에 달하며, 주로 수원, 화성, 부천, 안산, 용인 등 청년층 주거 수요가 많은 지역에서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경기도의 주요 대규모 전세사기 사례로는 화성 동탄 오피스텔 사기와 수원 다세대주택 사기 사건이 있다. 화성 동탄 사건에서는 임대인 부부가 오피스텔 268채를 무자본 갭투자로 사들여 170억 원의 보증금을 편취했으며, 145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수원에서는 한 임대인 일가족이 수백 건의 피해를 입히고 잠적하여 150건 이상의 피해 신고가 접수되었으며, 이들 사건 모두 사회초년생 등 젊은 층이 주요 피해자였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의 탄생
2023년 초 경기도 화성 동탄 지역에서 대규모 오피스텔 전세사기 사건이 터졌을 때도 막막한 현실 앞에서 피해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외롭고 고립된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화성동탄 전세사기' 167명에 214억 가로채… 무더기 재판행(출처 : 경기일보)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30629580294
하지만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는 대신 함께 손을 잡고 연대와 협력으로 맞서 보자고 나선 이들이 있었다. (사)한국사회주택협회가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피해를 치유하는 모델을 제안했고, 여기에 21명의 피해 당사자와 7명의 사회주택 활동가들이 마음을 모았다. 2023년 5월 12일, ‘피해자는 약자’라는 통념을 깨고 당사자들이 직접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는 ‘탄탄주택협동조합’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고립된 싸움이 아닌 함께 일어서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탄탄주택협동조합 총회
서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세사기 피해자는 금전적인 피해는 물론이고 정신적 고통, 사회에 대한 불신,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이 크다. 그래서 탄탄주택협동조합이 하는 일을 우리는 단순한 피해 '보상'이 아닌 '치유'라 부른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계약한 오피스텔을 가해자로부터 인수했다. 인수한 주택을 10년 장기임대주택으로 등록하고 임대주택 사업자가 되었다. 다음으로 조합은 조합원들과 시세 90% 이하(HUG 보증보험 가입 기준)로 임대차 계약을 새로이 체결한다. 그리고 10%는 협동조합 출자금으로 약정한다. 이후 장기저리인내자금1)을 조달하여 보증부 월세로 전환하고, 월세 수익으로 이익잉여금2)을 누적하여 출자금 반환자금을 마련하는 사업모델이다. 조합원들은 역전세가 발생한 만큼 일부 손실(6.5%)을 감수해야 했지만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고 안정적으로 거주하거나 필요시 보증금을 반환받아 퇴거할 수 있었다.
가시밭길을 걷다: 공공의 외면과 불신
탄탄주택협동조합의 길은 이름과 달리 결코 ‘탄탄’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서로 믿고 협력해야 할 공공 부문의 차가운 외면과 불신이었다.
경기도 정책자금 연계가 무산되었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가입을 거절했다. 심지어 일부 공공 인사는 사회주택 활동가들을 ‘보조금 헌터’라 음해했고, 공공의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조차 탄탄주택협동조합에 대해 부정적인 상담으로 일관했다. 이에 불안을 느낀 한 조합원은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3)을 신청했고, 법원은 해당 여부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임차권등기명령을 수용하여 결과적으로 조합이 임차보증금 미반환 가해자 처지가 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도 조합은 오피스텔 인수 과정에서 1억 4천만원이 넘는 취등록세를 국가에 고스란히 내야 했다.
이처럼 제도의 사각지대와 거버넌스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의 여정은 더욱 고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난관은 보증금 반환을 위한 자금 마련이다. 경기도의 공익 목적 정책자금을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실무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쟁점이 부각되어 결과적으로 무산되었다. 가능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다행히 우리의 진심은 시민사회의 공감과 함께 사회적 연대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의 사회적금융 지원, 화성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지역 신협의 협동금융 지원, 그리고 뜻을 함께한 시민들과 전문가들의 기부와 자문이 더해져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불가능해 보였던 길을 열 수 있었다.
마음치유 100% : 신뢰와 희망의 회복
설립 2년 만에 탄탄주택협동조합이 이뤄낸 피해 회복률 93.57%는 정부의 특별법은 물론 그 어떤 다른 대안보다 빠르고 실효성 있는 놀라운 성과다. 하지만 경제적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치유’와 ‘사회의 신뢰 회복’이다.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 조합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이 낯설고 쉽지 않았는데… 이번 일로, 아직 우리 사회에 누군가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언젠가 받은 마음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조합원은 “항상 마음 한편에 같은 상처를 받은 분들이 함께 힘내고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우리에게 마음을 전했다.
사회적경제박람회 수상 모습
이는 단순한 경제적 보상을 넘어, 사회적 재난으로 무너졌던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온기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치유’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조합은 '2024 대한민국 사회적경제박람회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남은 과제와 새로운 시작
탄탄주택협동조합의 성공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이 소중한 경험이 더 널리 확산되고 제2, 제3의 탄탄주택협동조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탄탄주택협동조합 성과공유회 및 전세 대책 토론회
무엇보다 민간의 자발적인 노력을 폄훼하고 불신하기보다, 공공과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는 거버넌스의 복원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협동조합의 활동을 뒷받침할 장기저리의 공급자 금융과 취등록세 등 세제 지원이 절실하다. 이를 통해 피해자들이 겪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 상실, 노동력 손실 등 깊은 내상을 지속적으로 보듬는 사회적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은 사회적 재난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 그러나 ‘함께’일 때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희망의 증거이다. 이들의 용기 있는 도전이 더 많은 연대를 이끌어 내고,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고 탄탄하게 만드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돌이켜보면, 공공의 외면과 불신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던 그 막막했던 시간에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필요한 자원을 연결하며,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와 같은 기관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렇게 탄탄주택협동조합의 경험을 공유할 기회를 주신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에 감사드립니다.
1) 장기간 낮은 금리로 빌려줄 수 있으며, 투자자가 단기 수익보다 사회적 가치나 장기 성장을 목표로 기다려주는 성격의 자금
2) 기업의 순이익 중 배당금이나 자본전입 등으로 주주에게 분배되지 않고 회사 내에 유보된 누적액
3) 주택 임대차 계약 종료 후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 임차인이 법원에 신청하여 임차권 등기를 마치는 제도. 이 등기를 통해 임차인은 보증금을 받을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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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의 국민연금 개혁, 그 의미와 과제 : 국가와 사회의 존재 이유
제갈현숙(한신대학교 강사)
대한민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일까?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본 사람보다 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인구에 회자했고, 무엇보다 제목이 담고 있는 강렬함으로 한 번 듣게 되면 잊기 어렵다. 영화의 제목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대한민국은 그런 국가가 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노인빈곤율 통계를 공개하기 시작했던 2009년부터 한국은 줄곧 1위를 차지해 왔다. 최근 발표된 노인빈곤율은 38.2%로(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4명은 빈곤층에 속한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K-컬처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는 상당히 모순되는 우리 사회의 이면이다.
누구든 노인이 되고, 노인이 되면 소득 활동에 제한이 온다. 사회적으로는 은퇴가 강요되고, 새로운 일자리는 구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신체적 노화로 마음먹은 대로 일하기도 어렵다. 사회적, 신체적 배경으로 노인이 되면, 대다수 사람은 소득단절에 직면하고, 소득이 단절되면 누구든 빈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산업화와 함께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생산성 높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 고령 노동자 퇴출을 요구했고, 이를 위해서 노년기 소득단절 문제에 대한 해법이 필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고령 노동자 퇴출을 위해 퇴직제도를 본격화하면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공적 연금제도를 보편화하기 시작했다. 즉 퇴직이라는 강제 규정은 퇴직 이후의 소득보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국가가 공적연금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배경이 됐다.
노인을 위한 나라의 출발은 공적연금제도를 통해 적어도 노인 빈곤을 예방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의 책임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높은 노인빈곤율을 보면,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
국민연금이 ‘내 돈 내 산’ 또는 ‘적금’이라고요?
국가가 국민연금을 운영하는 목적은 노후 빈곤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노후 빈곤 예방을 위해 국민연금 급여를 통해 보장돼야 할 소득수준은 어느 정도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재정 방식은 어떻게 돼야 할지가 가장 제도의 핵심축이 된다. 국민연금은 사회보험방식으로 운영한다. 대부분 국가에서도 사회보험방식으로 공적연금을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처럼 GDP의 2/3 이상인 1,200조 원 이상을 연금기금을 적립하지 않는다.
사회보험은 민간보험과 다르게 각자가 낸 보험료만큼을 급여로 지급하지 않는다. 그 대신 ‘소득대체율’을 적용해서, 모든 가입자의 월평균 소득 대비 연금급여 수령액의 비율을 사회적으로 정한다. 이번 개혁 이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로, 은퇴 전 월평균 소득이 200만 원이라고 가정할 때, 약 80만 원을 보장하는 것이다. 즉 급여 수준을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확정급여(Defined Benefit) 제도이다. 그러므로 가입자 각자가 낸 보험료 총액과 받게 될 급여 수준은 직접 관련되지 않고, 전체 경제활동 상태가 중요하다. 한 사회에서 일정 나이에 이르러, 소득 활동을 하게 되면 강제적으로 공적연금에 가입되고, 사회가 파괴되지 않는 한 새로운 가입자와 새로운 수급자는 연속해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경제활동을 하는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를 기반으로 연금 수급자에게 급여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필요 재정 이상의 재원을 적립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건강보험처럼 대다수 국가는 연금기금을 적립하지 않고 그 해 필요한 재원을 걷어서 바로 지급한다. 그러므로 많은 미디어에서 국민연금을 ‘내 돈, 내 산’처럼 또는 적금처럼 취급하는 것은,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의도적인 혼란 야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은 국회와 정부로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제3차 국민연금 개혁, 왜 오래 걸렸을까?
대통령선거 전인 3월 20일, 국회는 지난 3년간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국민연금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1988년 1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시작됐던 국민연금은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 개혁 이후 18년 만에 제도적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1, 2차 연금개혁은 제도가 시행된 이후 매우 빠르게 진행됐던 반면, 3차 국민연금 개혁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차이는 이전 두 번의 연금개혁이 모두 소득보장은 축소하면서 보험료만 인상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그 결과 노후 빈곤 예방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선 두 차례의 연금개혁을 통해 보험료율은 3%에서 현재 9%로 세 배 인상됐지만, 소득대체율은 70%에서 40%로 절반 가까이 축소됐다. 보험료율 인상에 대해서 초기 제도 유입을 위해 낮게 설정했던 보험료 수준이 정상화됐고, 더 인상해야 한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그러나 제도 도입 20년 만에 소득대체율을 이렇게 낮춘 국가는 이례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인하지 않는다. 그 결과 한국의 공적연금은 OECD 국가 중 낮은 소득대체율 국가에 머물고 있다. OECD 회원국 평균 소득대체율은 50%를 넘지만, 한국은 31.2%로 19.5% 낮다. 두 번에 걸친 소득대체율 인하 조치로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 빈곤 예방은 어려워졌다.
주: 평균소득자 기준의 의무연금(mandatory schemes: 공적연금+의무민간연금) 제도의 소득대체율로,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가정함.
낮은 소득대체율은 결국 급여 적정성으로 연결된다. 국민연금 수급자의 73.7%가 60만 원 미만의 저급여 상태에 머물고 있다. 기초연금을 추가하더라도 노후최소생활비에 도달하지 못한다.
주: 국민연금 공표통계(2023. 11월 말 기준)
이러한 이유로 3차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 사항을 소득보장 강화를 위한 소득대체율 인상과 적립 기금의 규모를 국민연금의 안정으로 보면서 소득대체율은 더 낮추고 보험료율을 인상하자는 의견으로 갈리며 대립해왔다. 이에 지난해 국회에서는 연금개혁 최초로 시민대표단을 조직하면서 연금개혁 공론화를 추진했다.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두 입장에 대해 시민들은 똑같은 조건에서 학습하고 토론하면서, “더 내고(보험료율 13%), 더 받는(소득대체율 50%)” 개혁안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윤석열 내란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새롭게 정부안을 내면서, 세대 간 갈등을 조장했다. 1년 넘는 사회적 쟁점은 올해 국회 협의를 통해 표면상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보험료는 9%에서 13%로 44.4% 인상됐지만,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7.5% 상향됐을 뿐이다. 이러한 개혁은 시민대표단의 결정과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한다.
국민연금 개혁은 계속될 테지만, 어떻게?
제3차 연금개혁이 단행된 이후 당시 일부 언론과 대통령 후보자들을 중심으로 세대 갈등의 불씨가 더욱 지펴졌다. 이번 개혁을 통해 기성세대가 더 많이 받고, 청년세대는 덜 받게 됐다는 불공정 시비였다. 이 시비를 가리기 위해서 먼저 소득대체율 하락 과정을 봐야 한다.
1차 개혁으로 70%에서 60%로 축소, 2차 개혁으로 50%로 하락시킨 후, 2028년까지 매해 0.5%씩 하락시켜 40%까지 낮추도록 했다. 이는 뒤집어 보면, 1970년생 이상은 국민연금 시행과 동시에 가입할 수 있었고, 그러므로 소득대체율이 높았던 시기의 적용을 받으므로 최근 가입자에 비대 소득대체율이 높은 편이다. 바로 이 점을 시민대표단은 중요하게 봤다. 현세대 노인 빈곤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 즉 청년세대의 노인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득대체율 상향이 정답이 된다. 소득대체율이 43%가 아니라 50%로 상향될 때, 노후최소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제10차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노후최소생활비는 월 136만1천 원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43%일 때 급여액 평균은 119만5천 원으로 최소생활비에 미치지 못하지만, 소득대체율 50%로 상향하면 급여액 평균은 139만 원으로 최소생활비를 달성하게 된다. 소득대체율 50%로 상향할 때, 실제 혜택을 받게 되는 세대는 50대 이상이 아니라, 보험료 기여 기간이 많이 남은 청년세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과 일부 정치인들은 이러한 측면을 부각하지 않고, 단지 보험료 총액과 급여액 총액만 단순 비교하며 세대 간 위화감을 조성했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은 세대 내 연대(계층 간 재분배)뿐만 아니라, 세대 간 연대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이 된다. 그런데 재정을 둘러싸고 세대 간 연대보다는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국가는 ‘내가 노인이 돼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를 불식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키워왔다. 대한민국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국민연금은 중단될 수 없다. 또한 연금기금이 설혹 고갈돼도, 이는 국민연금 중단과 관련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적연금을 운영해 온 독일에서 나치 정권은 전쟁을 일으키며, 적립됐던 기금을 모두 탕진했지만, 현재까지 연금제도는 잘 유지되고 있다. 대신 전쟁 후 적립식 재정 운용에서 부과식, 즉 한 해에 지출된 재원을 가입자에게 걷어서 그 해 지급하도록 개혁했다. 이는 국가가 노후소득 자금을 멋대로 사용하거나, 거대 기금으로 국민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줄이기 위한 개혁으로 평가됐다. 독일의 연금기금은 총급여의 한 달 정도의 규모보다 적게 적립되어 운영한다. 독일제도에 비추어 보면, 국민연금기금은 거대규모로 2064년까지 유지될 뿐만 아니라(기금 유지를 위한 개혁 지속), 보험료의 급격한 인상을 완충해 줄 수 있다. 즉, 국민연금기금은 제도를 좌우하는 키가 아니라, 보험료 인상을 조절해 줄 수 있는 완충 기금 또는 준비금적 성격을 띤다. 이 오해를 국가가 제대로 풀 때, 청년들의 불안은 연대로 전환될 수 있다.
당장 적은 소득과 월급으로 사회보험료를 내는 게 부담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국민연금제도가 강제 가입이 아니라면, 우선 절반의 재정 책임을 지고 있는 기업은 당장 사회보험료를 거부할 수 있다. 또한 시민들도 인생의 다양한 질곡에서 먼 미래의 보장을 위해 현재 보험료 기여를 피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개인 투자나 개인연금으로 시장을 통한 상품계약으로 진행될 경우, 시장의 위험 요소를 개인이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정 소득 이상이 되지 못할 경우, 미래를 위한 대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민연금이 제도화되기 이전 세대는 노후를 위한 준비가 불가능했다. 그때보다 경제가 발전했으므로 개인의 상황이 좋아졌다고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임금노동자 8명 중 1명이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이고, 5명 중 1명은 200만 원 미만 임금을 받고 있다. 즉 노후소득 보장은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일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서 국가와 사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간 사회적 부양제도에 국가가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 한국 사회는 초저출생이 심화되었고,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인간에 대한 존엄이 노후까지 보장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 빈곤 예방이 실현돼야 한다. 이에 대한 국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관심과 감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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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