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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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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길의 온도는 어느새 겨울의 그림자를 데려오고 있습니다. 집 앞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하루를 비우는 이 시간이 저는 참 좋습니다.
    그런데 몇 주 전, 익숙한 저녁 풍경 사이에서 낯선 신경이 잠깐 스쳤습니다.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에 이어 “지나갈게요”라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고, 저는 잠시 걸음을 조심스레 옆으로 옮겼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 몸이 가볍게 긴장하는 감각이 남았습니다.
     
    며칠 뒤에는 그 반대 장면을 봤습니다. 휴대전화를 보며 걷던 이가 산책로 한가운데서 멈추는 바람에, 뒤따르던 러너가 속도를 잃고 당황스레 웃어넘기는 모습. 이유는 달랐지만, 두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서로를 방해하려 한 사람은 없었고, 그저 같은 공간을 조금 다른 속도로 지나가려 했을 뿐이었습니다.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팬데믹 이후 우리는 실내의 시간을 다시 바깥으로 옮겨왔습니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자기 안으로 숨어들던 시기에서, 다시금 사람들 속으로 조심스럽게 돌아온 것이죠. 달리기와 산책은 그 복귀의 방식을 달리 선택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러너들은 몸의 한계와 감정을 함께 넘나들며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산책객들은 속도를 낮추며 도시의 숨을 천천히 들이마십니다. 누군가에게는 회복이고, 누군가에게는 연결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생존 기술입니다. 같은 길이지만 서로 다른 이유로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어쩌면 도시가 오래 묵혀두었던 감각을 다시 꺼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둘 중 어느 것도 누군가를 위협하지 않는 건강한 일상이라는 점에서 이 변화는 매우 반갑습니다.
     
    다만 요즘 우리는 한 질문 앞에 마주 서 있습니다. 서로의 속도가 다를 때, 공원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까?
     
     
    여의도 공원에 설치된 러닝 시 주의 사항 안내판 / 출처 : 조선일보
     
     
    최근 여의도에서 러닝 크루를 대상으로 한 ‘러닝 크루 No 4’ 문구가 온라인을 타고 널리 퍼졌습니다.
    “박수·함성 금지”, “비켜요 금지”, “무리 지어 달리기 금지” 같은 문구는 언뜻 보면 과해 보이지만, 이 표지판이 생긴 이유는 단순합니다. 특정 집단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급격히 성장한 생활 문화가 스스로 경계를 정리하는 과정. 도시가 새로운 리듬을 맞이할 때마다 한 번 거치는 흔한 통증이기도 합니다.
     
     
    러닝에티켓(런티켓) / 출처 : 서울시
     
    서울시가 러너들과 함께 ‘런티켓’ 캠페인을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금지 조항을 나열하기보다, 도시가 갖춰야 할 태도를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입니다. 규칙이 아니라 ‘문화’에 기대는 접근이라 더 유효해 보였습니다.
     
    이런 흐름은 경기도의 여러 생활 체육 모임에서도 이미 자연스럽게 퍼지고 있습니다. 출발 전 “오늘은 천천히”라고 말하며 주변을 살피는 모임,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새벽이나 늦은 밤을 선택하는 크루, 혹은 산책로가 좁은 구간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는 개인 러너들. 이름 붙이지 않았을 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물론, 배려와 감각만으로는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속도의 차이가 반복되는 장소라면 그에 맞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어떤 공원은 보행 동선을 분리하고, 어떤 도시는 붐비는 시간대를 안내합니다. 지역 러닝 모임과 주민회가 함께 러닝 시간대를 조율하거나, 산책로 일부를 ‘정적 구역’으로 정하는 시도도 가능합니다. 단속과 규제보다 더 오래가는 방식은 늘 비슷합니다. 사용자들이 서로를 보며 규칙을 조율하고, 행정이 그 흐름을 뒤에서 받쳐주는 구조. 도시가 성숙해지는 과정은 결국 제도가 시민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합의가 제도를 앞질러가는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사실 공존은 거대한 제도나 정책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어폰을 잠시 빼고 주변을 살피는 일, 반려견이 놀라지 않도록 줄을 잡아주는 일, 누군가의 등 뒤를 지날 때 조용히 속도를 줄이는 일. 그 작은 몸짓들이 쌓이면 길은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서로의 속도는 위협이 아니라 다양성이 됩니다.
     
    공원은 누구의 것이 아니고, 동시에 모두의 것입니다. 어느 한쪽의 속도가 다른 이의 휴식을 잠식하지 않고, 느린 사람이 빠른 사람의 자유를 억누르지 않는 풍경. 그곳에 우리가 꿈꾸는 도시가 있습니다.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달리기와 산책은 서로의 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같은 공간을 다른 리듬으로 사용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태도이며, 우선권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방식입니다. 아마 이 배려의 연습이 계속된다면, 도시는 점점 더 편안한 저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길의 사용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서로를 조금 더 선명하게 의식하고, 때로는 한 걸음 양보하는 일이 쌓일 때 그 길은 모두의 것이 됩니다. 우리가 연습하는 건 속도가 아니라 공존입니다. 그리고 그런 도시가 결국 가장 걷기 좋은 도시가 될 것입니다.
    
     

     
    같은 길, 다른 리듬-도시의 공존을 연습하는 일
    또봉

    조회수 179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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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타래,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
     
    ‘실타래처럼 얽혔다’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됩니다. 하지만 홀로 떨어져 있는 실이 홀로 있지 않고 하나로 뭉쳐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실타래가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실 한 올, 한 올은 손끝을 지나며 방향을 틀고 때로는 얽히면서 다시 이어지죠. 이 실은 한 줄의 기록일 수도, 사람일 수도, 오래된 사건일 수도, 오래된 사건 혹은 잊힌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의 현장은 그런 실들에 주목하고 이들이 얽혀 만든 실타래에 주목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가 진행된 경기상상캠퍼스 전경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경기상상캠퍼스 멀티벙커로 시민기록자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올해 시민기록 컨퍼런스의 부제는 ‘깁다, 엮다, 잣다, 잇다’였습니다. 기록 속에 담긴 마음을 꿰매고, 함께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엮고, 진동하는 사유를 잣고, 각자의 결을 맞대어서 잇는 이 모든 과정의 끝에 있는 기록에 관해 다 함께 사유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날의 컨퍼런스는 실타래를 풀고 다시 묶는 여정이었는데요. 그 매듭을 꿰는 바늘이자 매개는 바로 ‘공익(公益)’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익이란 단어는, 사전 속에서는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만 남고 말죠. 그리고 그 정의만으로는 흩어진 것을 잇고, 찢어진 것을 기워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그 정의의 바깥에서, 몸으로 공익을 잇는 사람들, ‘시민기록자(에디터)’들이 모였습니다!
     
    우리 에디터들은 세월호의 노래를 기록하고, 만세길의 발걸음을 담으며, 영케어러의 하루를 글로 남기고, 이주민의 언어를 번역하며, 기후 정의 행진과 시민 햇빛 발전소, 전세사기 대응까지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였습니다. 에디터들이 포착한 현실은 때로는 처절했고 어떤 때는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1기부터 5기까지의 에디터들이 남겨온 기록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는데요. 그간 에디터들이 모아온 세상의 목소리를 엮고 이어서, 세상과 유리되지 않은 숨 쉬는 기록을 만들기 위하여, 오늘의 자리가 마련된 것이랍니다.
     
     
    마음을 깁다 - 전시 체험 부스
     
    경기상상캠퍼스는 완연한 가을이었습니다. 더운 여름에 고통받으며 가을을 그리워하던 때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인 가을 풍경이 펼쳐져 있었는데요. 상상캠퍼스의 잔디밭과 건물 사이에 참가자들이 시민기록자들의 활동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와 참여형 부스가 운영되었습니다. 먼저 기록자들의 실제 필체를 따라 원고 속 문장을 직접 써볼 수 있는 ‘필사 체험’과 타자기로 엽서를 직접 완성할 수 있는 ‘타자기 엽서 체험’ 부스가 운영되었습니다. 타자기는 최근에는 만나보기 힘든 물건이다 보니 ‘타닥타닥’ 타자기 소리를 직접 들어보면서 가을의 낭만과 함께 신기한 기분을 느껴보려는 참가자들이 많았습니다.
     
     
     
    타자기 엽서 체험을 해보고 있는 참가자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오)
     
     
    귀로 듣는 기록물 전시 체험 중인 참가자들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오)
     
     
    한쪽에서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자리에 앉아 기사를 귀로 감상하고 있는 참가자들이 보였습니다. 원고를 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에디터들의 음성으로 느껴볼 수 있는 기록 전시 방식이었습니다. ‘심지’ 에디터를 비롯한 3인의 에디터가 자신의 기록물을 직접 녹음하여 귀로 들을 수 있는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신기한 체험은 ‘챗봇과 대화하면서 글쓰기’였는데요. 최근에는 AI가 아주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죠. 그래서 AI와 나누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나만의 기록집이 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준비되었습니다. AI가 어떻게 기록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체험해 볼 수 있어서 아주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실뜨기 놀이 체험 부스 현장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다음으로는 추억의 ‘실뜨기 놀이’ 부스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추억을 되새겨보는 참가자들도, 어른들에게 실뜨기 놀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도 즐겁게 부스 체험을 이어 나갔습니다.
     
     
     
    ‘단어 교환소(우드 버닝)’ 체험 현장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단어 교환소(우드 버닝)’ 부스에서는 나무 조각 위에 불로 그림을 새기며 ‘기록의 흔적’을 남기는 체험이 진행되었습니다. 뜨거운 인두펜의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나무에서 나는 향은 마치 한 해의 기억을 조심스레 새기는 의식 같았답니다. 그리고 이 부스의 이름이 단어 교환소인 이유! 그건 바로 내가 새긴 글귀를 내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앞선 사람이 새긴 글귀를 내가 가져가고 나의 기록은 뒷사람을 위해 남겨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록을 내가 이어받아 보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오늘의 주제이기도 한 ‘잇다’를 직접 체험하는 것만 같았답니다.
     
     
     
    닉네임 상상도 부스 체험 현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마지막 부스는 ‘닉네임 상상도(아날로그 감성 그림 그리기)’였습니다. 에디터들의 개성 있는 닉네임을 부스 참가자들이 그림으로 그리는 활동이었습니다. 하나의 단어도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결과물을 낸다는 사실이 정말로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부스 체험을 즐긴 참가자들은 본격적으로 1부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시간은 원고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함께 토크쇼를 진행하는 시간이었답니다.
     
     
    생각을 잣다 - 1부: 원고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공연이 있는 토크쇼!
     
     
     
    개회사를 하고 있는 유명화 센터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유명화 센터장님의 개회사가 본격적인 행사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저희가 여기서 행사를 하자고 결정하면서 에디터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기획하고 꾸밀지가 참 기대됐습니다. 그런데 어제 미리 와서 보니, 저희가 5기까지 진행되어 오는 과정, 노력, 역량의 성장이 다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타래라는 말을 들으면 각자 실타래라는 말에서 느끼는 느낌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실타래를 깁고 엮고, 잣고 잇기도 하니까요. 이 네 가지 표현들이 그동안 우리 에디터들이 해온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글을 쓴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부분이에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활동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매우 멋진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익활동지원센터가 공익 활동의 다양한 부분들을 기록으로 남기면 그 기록은 현장을 남기는 의미뿐만 아니라, 공익활동 활성화의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 행사는 5기 에디터들이 8월부터 기획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낸 것이 여기에 이렇게 구현이 잘 되어 기쁩니다. 이런 공간에서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성장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성장할지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주시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푸른 잎이었던 에디터들이 이제 단풍나무의 빛깔처럼 각자만의 색깔로 피어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또 하나의 역사와 기록을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공연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연영상 보기 @지구인수어합창단
     
     
    센터장님의 개회사 뒤에는 이번 컨퍼런스를 더욱 뭉클하게 만든 특별한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바로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공연이었는데요. 이들은 수어로 노래하는 팀으로, 언어의 경계를 넘어 마음으로 소통하는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이 무대의 주인공들은 5기 에디터 윤 작가님의 글, '손으로 노래하는 지구인들' 속 주인공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공연은 노래의 새로운 정의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몸과 눈으로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니 이날의 자리가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본격적인 토크쇼가 시작되었습니다. 토크쇼의 주인공이 될 기록 속 주인공들은 5기 에디터 두 분(윤 작가님, 꿀벌님)과 그 기록 속의 주인공 두 분(전연 단장님, 얼쑤 활동가님)이었습니다.
     
     
     
     
    1부 토크쇼 진행 현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단장인 전연 님은 중국에서 오셔서 안산에서 다문화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에디터 ‘윤작가’와의 인연을 통해 글의 주인공이 된 전연 단장님은 한국에 처음 오셨을 때의 어려움과 수어를 배우게 된 계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셨답니다.
     
    “한국어도 못하는 외국인들이 왜 한국 수어를 배우는지 많이 질문해 주십니다. 처음에 제가 한국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어요. 문화도, 언어도 달라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그때 안산시 외국인 지원본부에 한국어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었어요. 그때 우연히 안산 작은 다문화 도서관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도서관에 중국어책이 있더라고요. 그 책장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이 땅에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도서관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고 수어 수업을 들은 것은 아주 우연이었어요. 그런데 그 수어는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연 단장님이 겪었던 이국땅에서의 어려움과 외로움은 새로운 따뜻함을 찾아 나서는 원동력이 되었고 결국 수어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고 하는데요.
     
    “저는 수어를 배우기 전에 청각 장애인분들이 저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수업을 하면서 서로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이주 여성들은 한국말이 서툴러서 마음에 있는 말을 다 전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데, 이런 것이 청각 장애인분들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아도 눈빛과 손짓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수어를 통해 배웠습니다. 같은 언어를 통해야만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더라고요. 언어를 진심으로 느낀 그 마음의 울림이야말로 진짜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장님이 생각하는 소통에 대해 들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소통과 협력이 아니라 표면적인 관계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기록이 기록 대상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대상과의 진정한 소통이 필수적인데요. 진정한 소통의 본질이 비단 말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단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토크쇼의 다른 주인공인 얼쑤 활동가님은 안산 YWCA, 환경운동연합 등에서 44년째 활동하고 계시는 '찐찐 안산 시민'이십니다. 꿀벌 에디터님은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얼쑤 활동가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워낙 광폭으로 활동하는 시민 활동가라서 어디 가나 계신 분"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토크쇼를 통해서 얼쑤님의 헌신적인 공익 활동 방식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자그마치 26개의 단체를 후원하면서도 나중에 자신의 수입이 줄어들 것에 대비하여 8개 단체에 평생 회비를 납부했다는 얼쑤 활동가의 행보는 최선을 다해 공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함께 토크쇼에 참여한 꿀벌 에디터님의 이야기 중에서는 글쓰기를 ‘침묵에 길들여진 여성’으로서 자신을 깨는 하나의 방식임을 역설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 해소 과정으로서의 글쓰기에 관해 들으면서 많은 참가자가 기록과 기록자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게 되었답니다.
     
     
    서사를 엮다 - 2부: 실타래를 만들며 소감을 공유하기
     
    2부에서는 '지금, 우리 이야기'라는 주제로 모든 참석자가 함께하는 '실타래 엮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사회자가 던진 실타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 실타래를 굴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물리적인 실타래가 얽히면서 참가자들의 이야기와 마음도 함께 연결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사의 주요 키워드인 ‘실타래’를 통해 행사의 의미를 살려낸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실타래를 옮겨 가면서 참가자들에게 기록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고 있는 의미 있는 현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기록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쌓여갔습니다. 유명화 센터장님은 이 자리에서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나누셨습니다. 과거 권위적이고 평가 중심으로 여겨졌던 '기록'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 많았지만, 에디터들의 활동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셨습니다. 센터장님은 이러한 '말랑말랑한' 기록의 힘이 공익 활동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음을 강조하며, 자신도 다시금 기록 활동에 열정을 쏟아보겠다는 다짐을 전하셨습니다. 전시 기획에 참여하신 한 분은 에디터들의 글을 접한 소감을 나누며 깊은 통찰을 주셨습니다. 그는 에디터들을 '삶으로서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며, 이들의 '진실 말하기'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어떤 때는 물러나거나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도 그것들이 어느 지점에는 나선형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시민 기록 활동이 당장 눈에 띄지 않더라도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나선형의 진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하고 있다면 잠깐의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힘이 될 수 있겠죠.
     
    또한, 기록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이야기들도 이어졌습니다. 한 에디터는 구술 기록 작업을 하며 제대로 된 기록이 부재한 상황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례를 본 경험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활자 권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기록이라는 게 글을 쓸 수 있고 글로 남길 수 있는 사람들의 권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옛날 기지촌 할머니나 이런 분들을 보면 자기 얘기를 남길 수가 없었죠. 국가가 남긴 기록은 그분들의 역사를 대신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런데 이런 기록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동두천에는 쌓아 두었던 공공 기록물이 홍수로 인해 소실되어 1950년대 자료는 없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이런 일들을 보면서 누구의 기록을 어떻게 남길까, 또 이런 기록을 어떻게 잘 보존할까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기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이것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힘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곤 하는데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지금 맡고 있는 기록이 먼 미래에는 참 절실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고 기록자인 내가 사라져도 세상에서 오래 살아남을 테니까요.
     
     
    사람을 잇다.
     
    이번 제5회 시민 기록 컨퍼런스 ‘실타래’는 단순한 기록의 공유를 넘어, 우리 시대의 진정한 공익 활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선사한 자리였습니다. 물리적인 실타래가 얽히고설키며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듯, 각자의 자리에서 써 내려간 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서로를 만나고 엮이며 거대한 ‘연대의 실타래’를 완성했습니다. 이는 컨퍼런스의 이름처럼 각자의 이야기가 “결국은 하나의 큰 흐름이 된다는 뜻”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실타래'라는 이름처럼, 우리의 삶은 단순히 각자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감싸안고 엮어지는 하나의 공동 운명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에디터와 그 삶의 주인공이 만나 서로의 존재를 빛나게 했듯이, 기록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사소한 발걸음이 이웃의 삶과 사회 변화의 큰 그림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민 기록이 가진 근원적인 힘입니다.
     
    이제 컨퍼런스는 막을 내렸지만, 우리 안의 기록자 정신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기록은 우리가 더 이상 타인의 역사를 읽는 방관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삶을 기록하여 타인에게 마음의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존재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다짐입니다. 필사에서 AI에 이르는 기록의 진화처럼, 우리의 소통 방식 역시 단순한 정보의 전달을 넘어선 깊은 공감의 영역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오늘도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겠지요.
     
    경기도 공익활동 지원센터가 시작하고 이어가고 있는 기록의 역사는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큰 뿌듯함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각자가 잡고 있는 기록의 끈을 놓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계속 엮어 나간다면, 우리는 분명 더 따뜻하고 의미 있는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겠죠? 손으로 노래하고, 삶으로서의 작업을 이어가는 모든 기록자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끝없이 이어질 다음 페이지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남기는 퍼포먼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현장스케치] 오늘의 인연으로 오늘과 내일을 잇다 –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
    옐로 구피

    조회수 336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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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리터러시, 시민의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
    2025년 10월 27일, 경기도의회 중회의실
     
    '시민역량 강화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방향 연구
    - 시민참여 기반 미디어 활동을 중심으로’
     
     
    행사 웹자보 /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행사 제목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쳐다봤다. 분명 한글인데, 무슨 말인지 잘 와닿지 않았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뭐길래 시민 역량을 강화한다는 걸까? 어려운 단어들의 총집합 같은 이 제목 앞에서 나는 문득, 옛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 읽을 수 없었던 공고문들
    90년대 초,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하던 때였다. 회사 공문은 한문 일색이었다. 현장직 사원들을 위해 중요한 공고문을 식당 입구에 붙여놓곤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고문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 IMF가 끝나고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이번엔 회사 공문이 영어 일색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식당 입구의 공고문 앞을 지나가는 현장직 사원들의 눈길은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한문과 영어를 모르는 현장 사원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일까? 아니면 정보를 감추려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일까? 나는 가끔 사무직 사원들조차 그 공문을 다 읽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는 어쩌면 그런 것 같다. 숨기고자 하는 사람과 숨긴 것을 밝히려는 사람 사이의 끝없는 싸움.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는 밝히려는 사람들을 돕는 교육이 아닐까?
     
     
    포럼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 조금씩 채워지는 자리들
    시작 30분 전, 회의실은 행사 진행자 외에는 텅 비어있었다. '과연 사람들이 올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14시가 가까워지자 조금씩 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유명화 공익활동지원센터 센터장과 전자영 도의원의 간단한 인사말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유명화 센터장님은 인사말 중에 은근슬쩍 화두 하나를 던지셨다. "어디까지가 공익일까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공익은 어디까지일까? 공공의 이익이라는 말의 줄임말인 공익. 쉽게 말하면 사회 전체의 이익인데, 그렇다면 그동안 소외되어 온 소수자의 이익까지 포함해야 진정한 공익이 아닐까? 그런데 지금의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정말 소외된 소수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을까? 때로 나에게 공익이란 단어는 그저 공무원들의 이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유명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장(왼), 전자영 경기도의원(오)의 인사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 50년 앞서간 나라들의 이야기
    첫 번째 주제발표는 정혜실 연구책임자(단원 FM 공동체 라디오 본부장)의 '국내외 미디어 리터러시 현황과 사례'였다.
     
    '탈진실의 시대'라는 키워드로 시작된 발표는 유럽평의회가 제시한 '모두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의 주요 특징들을 차근차근 풀어놓았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나침반 같았다.
     
    - 정부나 상업적, 교육적 기관 및 정당으로부터의 독립
    - 비영리적 지향
    -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에 시민사회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
    - 사회적 이익과 공동체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
    - 공동체에 대한 책무성과 그들에 의한 소유
    - 포용적이고 상호 문화적인 실천에 대한 헌신
     
    해외 사례를 정리하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핀란드였다. 무려 1950년대부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시작했고, 2014년부터는 정규 교육과정의 필수 과목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호주, 스페인, 아일랜드도 아무리 늦어도 1980년대에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과정에 포함시켰다.
     
    우리보다 50년, 적어도 40년은 앞서간 셈이다. 해외 사례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명확했다.
    - 시민의 정보 접근권과 표현권 보장
    - 지역 미디어와 학교 교육의 연결
    - 지역적 연대 구조 강화
    - 소수자를 위한 미디어 교육 실시
     
     
    # 우리의 현주소
    반면 국내 사례 발표는 법과 기관의 역할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들었던 교육을 올해 또 듣는 형식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반복. 그것이 지금 우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한계처럼 느껴졌다.
     
    국내외 사례를 비교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방향은 '교육'이 아닌 '참여'로, '일방'이 아닌 '소통'으로, '기관' 중심이 아닌 '건강한 풀뿌리'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
     
     
     
    정혜실 단원FM 본부장(왼), 천원석 공동연구자(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 삶을 바꾸는 미디어 교육
    두 번째 발제는 천원석 박사(공동연구자)의 '시민역량 강화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방향'이었다. 18명의 전문가와 교육자를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발표였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
    - 팩트체크 → 사실과 의견 구분 → 내용 분석 → 비판적 사고
    - 삶의 변화 주도
    - 주변 인식의 변화
     
    여기서 지역 미디어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남녀노소 모든 세대가 문턱 없이 미디어 활동에 참여하고, 자유로운 공론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시민이 주체로서 공론장에 참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구현이다.
     
    옥천신문 이현경 님의 말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저희가 미디어 리터러시를 해야 되는 본질적인 이유는 결국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소통하고,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이고 그게 민주 사회 아닙니까?"
     
     
    # 현장의 목소리들
    10분의 정리 시간 후, 세 분의 토론이 이어졌다.
     
     
    정선욱(성남FM 공동체 라디오 본부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정선욱(성남FM 공동체 라디오 본부장)
    "과거에는 미디어 사용법이나 정보 검색법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정보가 왜 만들어졌는가?', '누구의 관점이 담겨있는가?'를 스스로 묻는 비판적 사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서현정(성서FM 공동체 라디오 전문강사)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서현정(성서 FM 공동체 라디오 미디어 전문강사)
    "저는 참여형 미디어 교육이 사람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옮겨가는 순간, 책임이 생기고 검증이 시작됩니다."
     
     
    전자영(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전자영(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
    "학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의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유토론에서는 더 많은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요약하면 이렇다.
     
    -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은? (사실과 주장을 구분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 넘치는 정보와 뉴스의 세상에서 정보나 뉴스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인, 이주민 등)
     
     
    단체 사진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 모두의 언어로
    3시간에 걸친 긴 여정을 마치며, 오늘의 토론을 한 줄로 정리해 봤다.
     
    **미디어는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잘 읽고, 잘 쓰고, 잘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미디어 리터러시가 가야 할 길이며 방향이다.**
     
    90년대 식당 입구의 한문 공고문을 지나치던 현장직 사원들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들이 읽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읽을 수 없게 만든 언어로 써놓은 것이 문제였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결국 '모두의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식당 입구의 공고문처럼 모든 사람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그래서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배운, 미디어 리터러시의 본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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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의 햇살이 회의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왔다. 텅 비었던 회의실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빈자리에는 무언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우리가 함께 고민한 질문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찾아가야 할 길에 대한 희미한 지도 같은 것들이 남았을 것이다.
    

     

     

    [현장스케치] 미디어 리터러시, 시민의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
    윤작가

    조회수 243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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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2025 공익활동 페스타의 주제세션4 이야기를 해볼까요? 세션 4의 제목은 공익활동의 혁신과 전환. 데이터가 시민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활용되는 디지털 민주주의 실험 사례들이 소개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환경을 시민사회가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할지 그 인사이트를 얻는 시간이었지요.
    참여단체들이 공동주관한 본 세션은 비영리IT지원센터 정지훈 이사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온 오프라인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고자 특별히 타운홀에 접속해 자유롭게 의견 남기는 타운홀 미팅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세션 4 사회: 정지훈 이사(비영리IT지원센터)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발표 1. ‘코팩츠 타일랜드 사례’로 보는 태국 시민들의 가짜뉴스 대응활동
     
    첫 번째 순서는 온라인과 동시통역으로 진행한 해외사례 발표인데요. 멀리 태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발표자는 방콕의 사회적기업 ‘오픈드림’을 설립하고 팩트체킹 플랫폼 ‘코팩츠 타일랜드’에서 활동하는 파티팟 수숨파오(Patipat Susumpao)님입니다.
     
     
    발표 1: 온라인 동시통역으로 진행한 해외사례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발표자는 2021년 태국에서 <가짜뉴스 수사게임 606>이라는 모바일 게임을 출시했습니다. 플레이어들이 스토리를 따라 미션에 도전하면서 에코챔버 효과를 인지하게 되는 게임이라고 해요. ‘에코챔버 효과’란 반향실, 즉 닫힌 공간에서 메아리를 듣듯이, 기존 관점의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확증편향을 점점 더 강화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정보만 계속 받아들이는 현상이라니, 유튜브 알고리즘에 조종당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죠?
     
    606게임은 캐릭터와 채팅도 하고 정보의 진실/허위 여부를 체크해가면서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올바른 종합정보를 입력해야만 미션이 완료돼요. 흥미로운 게임 요소 때문에 20만 명 이상이 다운을 받았다는데요. 사후 테스트 결과, 무려 플레이어의 95%가 이 게임을 통해 에코챔버 효과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고, 10~15%가 가짜정보 조사능력을 향상시켰습니다. 가짜뉴스 대응에도 재미있는 게임을 활용해야 할 이유를 보여주네요. 코팩츠 타일랜드는 앞으로 여러 지역에서 팩트체커를 양성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온라인 플랫폼에 이 인력들을 활용할 예정입니다.
     
     
    발표 2. AI와 함께한 2년
     
    두 번째로 구구컬리지 박용 대표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구구컬리지는 ‘99%를 위한 교육’이라는 모토 아래, 교육 불평등 해소에 힘쓰는 비영리단체입니다. 검정고시 온라인 학습사이트를 개발·운영하면서 여기에 AI를 활용한 경험을 나눴습니다.
    재작년에 DO MAT이라는 수학 검정고시 앱을 새로 개발할 때는 10년 치 기출문제 풀이를 작성하다 보니 콘텐츠 제작에만 4개월이 소요됐다고 해요. 그런데 인공지능 비서를 활용한 이후 제작 기간이 1주일로 단축되었습니다. 물론 콘텐츠 전담자의 고충도 크게 덜었죠. 그 덕에 수학뿐 아니라 전 과목 5년 치를 업로드할 수 있었습니다.
     
     
    발표 2: 박용 대표(구구컬리지)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구구컬리지의 다른 한 축은, 비영리단체가 사용하면 좋을 도구들을 모아놓은 TOOLS99입니다. 지출결의서, 결과보고서 등 각종 서식을 공유합니다.
    열심히 작성해 봤자 아무도 읽지 않는 비영리단체의 회의록도 이제는 AI로 분석합니다. 내용 요약 및 화자별 분석으로 회의록의 가독성을 높였더니 회의의 밀도가 같이 높아졌다고 해요. 구구컬리지 사이트에 들어가면 무료 분석이 가능합니다. 적용 범위를 시의회 자료까지 넓혀서 AI를 활용한 회의록 분석과 예산안 시각화 등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구구컬리지의 최근 행보는 ‘1%를 위한 앱’입니다. 비영리단체들을 컨설팅하면서 시장 논리와는 반대로 소수자를 위한 앱을 개발하고 있죠. 구구컬리지의 바람대로 거대 IT기업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온라인 공간도 시민자산화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발표 3. 변화가 모이는 내 손안의 광장, 빠띠
     
    세 번째 발표자는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권오현 대표입니다. 연결된 시민들이 함께 협력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이것이 빠띠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빠띠는 시민들이 대화하고 행동하는 디지털 광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매월 10~20만 명의 시민들이 빠띠 플랫폼의 온라인 캠페인과 공론장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발표 3: 권오현 대표(빠띠)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그 밖에도 1 대 1 오프라인 대화실험 ‘별별대화’, 주제별 이슈 글쓰기 ‘쓰다 프로젝트’, 코로나 때 공익 마스크 앱으로 잘 알려진 공익 데이터랩 등 다양한 디지털 민주주의 실험이 빠띠에서 펼쳐집니다. 얼마 전에는 이태원 참사 포스트잇 메시지를 시민들이 함께 디지털로 옮기는 작업도 했다는군요.
    빠띠의 발표를 듣자니 기술력보다 중요한 건 역시 기술의 방향이었습니다. IT분야 발표가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다니! 누군가는 연결이 세상을 망친다고 하는데요.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연결 대신 우리에게는 안전, 신뢰, 존중 같은 좋은 연결이 필요합니다. 주요 테크기업의 목표가 단순히 축적과 연결이라면 빠띠의 목표는 더 나아가 공유와 협력입니다. 빠띠처럼 공공선에 기여하는 시민협력 플랫폼을 통해 일상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를 바랍니다.
     
     
    참여업체 안내판: 구구컬리지(좌) & 빠띠(우)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끝으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온라인 자료관 ‘톺’과 ‘공익위키 프로젝트’에 대한 짧은 소개가 있었고, 빠띠의 타운홀 미팅에 남긴 질문들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좋은 앱을 개발해도 이용자가 너무 늘면 도리어 서버 비용 때문에 중단해야 하는 현실, 그래서 친환경 전기를 사용하고 전기 절약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데이터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싶다는 구구컬리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네요. 아예 서버를 덜 쓰는 방향으로도 해법을 모색 중이라고 합니다.
    팩트체크 교육이나 팩트체크 컨텐츠 제작을 미디어 리터러시와 연계해서 지역의 공익활동 단체가 지속적으로 해나가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주제세션4 강연장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이제는 공익 캠페인도 인플루언서가 참여해야 반응이 뜨겁다네요. 공익단체가 해온 고유한 활동을 인플루언서나 AI에게 알려서 일반 시민들의 핫한 관심과 만나게 하는 것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입니다. 기술이 그 만남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도 2025 공익활동 페스타 4세션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우리의 미래는 한층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는데요. 그럴수록 기술의 변화를 위기 아닌 기회로 여기면서 적극적인 도전으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자고, 60초 영상 시대에 긴 글 남겨봅니다.
    
     

     
    [현장스케치] 2025 공익활동 페스타 주제세션4: 공익활동의 혁신과 전환
    참비움

    조회수 186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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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세션에서 공익활동을 지속하는 데 활동가들이 마주한 현실적인 고민을 들었습니다. ‘공익활동과 로컬리티 집담회’가 주제인 세션 3에서는 또 어떤 생각을 나누고 과제를 지니게 될지 궁금합니다. 어느 지역이나 풀어야 할 고유한 사회 문제가 있게 마련인데, 이들 문제에 어떻게 맞서고 해법을 찾는지 지혜를 모으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2025 공익활동 페스타 배너(왼), 세션3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오)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세션3 공익활동과 로컬리티 집담회
    경기도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과제
     
     
    사회 이상우(공유공존공공을 위한 연구소 이사)
    해외 사례 한창희(일본 요코하마시민협동추진센터 센터장)
    발표 김동윤(사)세움 공동체이사)
    김남주(일동청소년공간 그늘 대표)
    김성길(경기 중북부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권예성(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장)
     
     
    사회 이상우(공유공존공공을 위한 연구소 이사)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유공존공공을 위한 연구소’ 이상우 이사의 사회로 일본 요코하마 사례와 경기 북부와 남부에서 4개 단체가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관련한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한창희(일본 요코하마시민협동추진센터) 센터장의 사례 발표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한창희(일본 요코하마시민협동추진센터 센터장)
     
    ‘일본 요코하마시민협동추진센터’는 요코하마 시청사 1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루 방문객만 2만 4천 명이 넘을 정도로 시청의 민원 창구 기능을 톡톡히 합니다. 생활하기 쉬운 요코하마를 만들기 위해 행정, 시민, 기업, 대학 등의 협력체를 구축해 도시 문제를 지속가능한 형태로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단체입니다. 
     
    발표자인 한창희 센터장은 건축 설계를 전공했고, '다기능 커뮤니티 공간과 마을을 어떻게 연결하고 만들어 나갈까'라는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쓴 것을 계기로 센터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센터에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16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각자 다른 도시 정책과 의제를 고민합니다. 한 센터장은 직원의 나이 구성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주요 사업으로는 최근 공모사업으로 보이스 피싱 예방 사업을 했고, 발달 장애 치료 센터와 협업해서 발달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양육 부담을 줄이는 활동을 합니다. 상담 활동 지원으로 최근에는 기립성 조절 장애로 학교생활이 힘든 청소년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빈집을 학교 밖 청소년들의 커뮤니티 공간과 연결하는 문제도 고민 중이에요. 협동적 학습과 공동 창조와 관련한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고 지역 사회 구성원들에게 맞는 의제를 발굴합니다.
     
    “한국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분이 저희 센터를 방문하는데요. 센터에 와서 보시는 사업들은 대부분 성공한 사례들이고 사실 실패한 사업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런 부분을 항상 생각하면서 저희 사례를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김동윤(사)세움 공동체) 이사의 사례 발표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김동윤(사) 세움 공동체 이사)
     
    저희 ‘세움 공동체’의 슬로건은 ‘다 함께 세우는 세상이 든든하고 아름답습니다.’입니다. 경기 북부 지역에 있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왜’라는 질문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왜 우리 아이는 학교로 가지 못하지?', '왜 우리 아이는 다른 지역에 가서 교육받아야 할까?'라는 고민이 있었고, 이를 함께 고민하는 시민단체와 함께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발달장애인 방과 후 교실, 재활 보장구 무료 수리 사업 등을 했고, 발달장애인 주간 활동센터와 공용 카페까지, 당사자들의 생애 주기로 세움은 성장했습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징검다리 축제’는 비장애인과 발달장애인 학생들이 서로 교류하는 축제인데, 의정부에서 최초로 시작했습니다. 장애인 운동으로 확대하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동두천에 야학을 설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포천에는 장애인 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해 이동권 개선과 관련된 활동들을 함께 하였고 특수학교 설립까지 함께하였습니다.
     
    김남주(일동청소년공간 그늘) 대표의 사례발표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김남주(일동청소년공간 그늘 대표)
     
    저희 동네는 안산시 상록구 일동입니다. 일동의 지역아동센터를 다녔던 보호자들이 모임을 시작해 지역아동센터에서 겪었던 다양한 놀이 문화를 나누고 사춘기에 동네 친구 간에 관계가 깨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안산에는 '울타리너머'라는 오래된 마을공동체가 있는데요. 여기를 주축으로 세월호 참사 때는 마을에 '카페 마실'을 함께 만들기도 했어요. 마을 공동체가 좀 오래 활동하고 이런 분위기가 있는 동네였기 때문에 저희도 용기를 내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동네 특성이 아파트가 없고 다가구들만 있습니다. 바로 옆에 산과 식물원이 있고 그래서 이런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많이 놀아서 동네 동생들에게 놀이지도를 만들어 배포하거나 동네 플로깅 활동도 하고 연결 지어 환경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활동을 했습니다.
     
    마을 만들기 지원 사업을 받아 본격적으로 청소년 공간 마련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성남 등 다양한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있는 지역에 탐방을 가기도 했고요. 청소년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해 볼지 워크숍을 하면서 저희의 공간을 꿈꾸었습니다. 그렇게 ‘그늘’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늘’은 ‘그들은 늘’의 줄임말입니다. 아이들이 지은 이름이에요. 청소년들은 그늘에서 뭘 더 하고 싶다기보다, 동네에서 청소년의 얘기를 더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청소년이 더 주도적으로 그늘의 활동을 계획하고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청소년들과 함께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재정 마련과 관계 기관과의 협력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김성길(경기 중북부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의 사례 발표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김성길(경기 중북부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먼저 경기 북부 10개 시군 시민활동가들과 함께 10대 의제를 선정한 경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양, 파주 권역에서는 DMZ 접경 지역과 관련한 공익활동 방안을 찾고, 동두천, 의정부 권역에서는 생활 폐기물 문제 해결이 시급한 과제로 선정되었습니다. 가평과 구리 권역에서는 공익활동에 시민이 참여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과제를 선정하였고요. 각 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예를 들어 동두천에서는 1회 용품 없는 축제를 운영한다거나, 의정부의 경우는 1회 용품 줄이기를 활성화하는 지원 조례를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지역에 있는 마을과 마을 간에 자매결연을 하여 저희 단체가 빠지더라도 지속적으로 관련한 사업을 마을 사업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권예성(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센터장의 사례 발표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권예성(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장)
     
    저희가 소개해 드릴 사업은 광명 시민과 교육 활동가가 함께 만들어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공론장 ‘의제의 시간’입니다. 이 사업을 하게 된 데는 되게 슬픈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가 23년도에 센터 위탁을 받았는데 24년도에 사업비가 60%가 삭감됐습니다. 주어진 보조금만으로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어 저희가 외부 공모 사업을 추가로 받아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광명 시민이 제안하고 해결을 바라는 현안을 3개의 큰 대주제로 나눴고, 세 차례의 공론장을 통해서 각각의 대 주제별 의제 15개를 선정했습니다.
     
     
    광명센터에서 추진한 의제사업 / 출처: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홈페이지
     
     
    광명 시민이 주축인 의제 발굴단과 함께 총 2천 명의 시민이 의제 선정에 참석했습니다. 행정과 협업을 함으로써 민간 협치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광명시의 여덟 번째 의제 중에서 청소년 부모의 건강한 자립을 위한 올케어 지원이라는 의제가 발굴됐는데 이 청소년 부모에 관한 조례가 광명시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론장을 통해서 광명시 청소년 부모 지원 관련 조례가 만들어지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대부분 그 토론장이 어떤 제도화나 실천이 되게 제한적인데 저희는 10개월 동안 시민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의미 있었다는 피드백을 받아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종합토론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플로어 질문과 종합 토론
     
    ● 요코하마 센터는 대단히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데, 센터 직원 수는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아서 어떻게 엄청난 규모의 일을 그 적은 수의 사람들과 하실 수 있는지 비결이 궁금합니다.
     
    한창희: 업무를 나눌 때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일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근무자들의 특성이라든가 근무자들의 시간 이런 거를 잘 배려해서 업무가 연속성 있게 하고, 저희 직원 중에서 시의 공무원 출신들이 5명 정도 있어서 관과 원활하게 협력하는 구조로 돼 있는 점도 성과를 내는 요인입니다.
     
    ● 처음엔 개별적인 문제를 해결하던 당사자의 움직임이 제도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익적인 모습으로 확장된 단체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김동윤: 저희 단체에서 어려웠었던 점은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제도가 부재한 상태에서 단기성과 위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있고요. 재정이 안정적이지 못하니까 공모에 의존하다 보니 거기에 노력과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기관의 유지나 연속성이 좀 위협받았었던 경험도 있고요. 참여하시는 분들만 계속 참여하니까 공동체에 피로감이 쌓이고 분열을 하는 아픈 경험도 했습니다.
     
    김남주: 민관이 같이 협력할 때 저는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저희가 공간이 생긴 지 3년 차인데 아직도 동이든 시든 저희를 파트너로서 여기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상황도 대단히 많았습니다. 관계 기관과의 관계는 숙제인 것 같습니다.
     
    권예성: 저희 센터는 개관한 지가 2년 조금 지났거든요. 광명 지역 주민들에게 저희 센터를 알리는 것 자체가 되게 어려웠습니다. 제가 명함을 600장을 찍었는데 600장이 이제 거의 다 소진 상태예요. 그 정도로 시민들을 많이 만나고 명함을 나눴고요. 제가 시민들과의 관계 확장을 위해서 노력했던 것 중의 하나는 시민이 있는 곳을 저희가 찾아갔습니다. 지역의 많은 축제나 동마다 하는 주민자치회에도 갔는데, 심지어 잡상인으로 오해를 받고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시민들이 저희 센터에 쉽게 접근하실 수 있도록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센터의 지원 영역을 단체에서 동아리와 개인한테까지도 확대하고 있기도 합니다.
     
    김성길: 저는 아직도 구시대적 활동가라서 당사자 운동을 하는 분들을 찾아가 협의하고 파악을 하는 편입니다. 환경운동뿐만 아니라 이제는 시민들하고 접촉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요즘도 환경운동연합에서 어디 집회 가자고 그러면 아무도 안 나오시는데, 물고기 조사하러 가자 그러면 한 30~40명 모이시거든요. 그러니까 저희 회원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해야 합니다. 실제적인 요구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당사자 운동을 넘어서 실제로 나에게 필요한 흥미 있는 활동을 했으면 하는데 아직 길을 잘 못 찾아서 그걸 개발하려고 노력합니다.
     
    한창희: 거점을 만들고 창구를 365일 열면서 운영하고 있는 건 저희 센터밖에 없습니다. 이게 많은 업무가 몰리니까 장단점이 있는데요. 저도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람과 저 사람을 연결하면 좋겠다’는 식의 협업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합니다.
     
    ● 끝으로 보람을 느낄 때나 요즘 중점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을 나눠주세요.
     
    한창희: 저희 활동을 다음 세대에 연결해 줘야 하는데, 예산이라든가 임금과 처우 부분에서는 그리 좋지가 않으니까, 활동을 권장하고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도 젊은 분들이 한두 명씩 간간이 활동가로 들어오면 그분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과제이고 성장한 면을 보는 것이 보람입니다.
     
    권예성: 저희가 예산을 안 줘도 결국에는 해낸다는 점을 보여줘 자긍심이 크고요. 그만큼 광명시 의제 선정 활동이 저희 센터에 굉장히 중요한 사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남주: 가정사가 굉장히 복잡한 청소년들이 어디 의논할 어른도 마땅치 않고 근데 가끔 저희 공간에 와서 한 번씩 수다를 떨고 갑니다. 그럴 때마다 이 친구들이 마음 편히 터놓을 누군가가 있구나! 느껴질 때 우리 공간이 지속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늘’ 활동을 하며 자란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공간 운영을 하려고 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김동윤: 장애인 내 병변 뇌출혈로 쓰러진 분이 계셨는데 누구도 이분은 자립을 못 하고 혼자 못 살 거라고 했는데, 단체에서 이분을 모셔 와서 한 4년에 걸쳐서 지역에서 자립하도록 지원했습니다. 그분이 하실 수 있는 말은 ‘바보야’, ‘멍청아’ 이거밖에 없으셨는데 자립하시고 나더니 ‘최고야’, ‘천재야’ 이렇게 하시고 그렇게 수십 년을 생활 시설에 사시다가 한 7년간 자유를 누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중심이 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면, 이 맛에 활동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성길: 지역에 쓰레기 소각 시설이 들어온다고 하면 그럴 때 막으러 가자! 그래서 주민들하고 가서 막고 싸움에서 이기고 이런 과정이 다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시민들이 하신 거고, 저는 다만 환경에 대해서 조금 더 먼저 공부를 했으니까, 이렇게 가면 어떨지 제안할 뿐이거든요. 시민들과 뭐든 함께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 활동의 의미 아닌가 합니다.
     
     
    패널 단체사진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마무리
     
    이상우: “지역사회 안에서 아주 개별적인 문제지만 굉장히 비슷한 경로로 서로 모이고 모아져서 그것이 어떤 조례라든지 제도화의 경로로 갈 수도 있고 당사자들의 어떤 힘에 나머지 역량들이 또 붙어서 계속 자생적인 모양을 갖춰 가기도 하는 다양한 모습들의 사례를 오늘 보았습니다. 이 다섯 지역의 사례 가운데 하나라도 인사이트가 있어서 각 지역에서 원하시는 활동을 유익하고 재미있게 진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각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활동가들의 노고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듯 묵직하게 느껴지는 세션 3이었습니다. 활동의 기쁨과 슬픔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공익활동가들의 모습이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장스케치] 2025 공익활동 페스타 주제세션3: 공익활동과 로컬리티 집담회
    다름

    조회수 238

    2025-10-29
  •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박미경

     

      지난해 6, 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19세 청년 노동자의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남에 대한 얘기 함부로 하지 않기, 하기 전에 겁먹지 말기, 기록하는 습관 들이기, 운동하기, 구체적인 미래 목표 세우기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한 청년의 다짐이었습니다. 그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배워가며 성장하길 바랐습니다. 이 글은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진1. 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청년 노동자의 메모장

     



      55년 전, 19701113, 서울 평화시장에서 분신 항거한 스물두 살 청년 노동자 전태일도 그랬습니다. 그가 남긴 대학노트 7권의 일기장에는 절망은 없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습니다. 배움을 갈망한 나머지 입던 잠바를 팔아 중·고등 수험서를 사고, 평화시장의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근로기준법을 지키며 일하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고, 미래를 구체적으로 꿈꾸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누구보다 진실했으며, 인간답게 일하며 살고 싶었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 바람은 다르지 않습니다.

    사진2. 전태일의 일기에 적힌 글씨 

     

     

    인간의 나라를 향한 미완의 여정

      전태일은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인간적인 존중과 대접을 받는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그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지 55년이 지났지만, 그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전태일의 외침은 한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긍지는 무엇인가?’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건만, 전태일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불평등과 양극화는 오히려 깊어졌습니다. 비정규직, 플랫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이주노동자, 프리랜서 등 이름은 달라도 불안정한 일자리에 놓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청년 세대는 미래를 설계하기보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고, 퇴직 후에도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나라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전태일이 말했던 덩이’, 끝내 목적지까지 굴리지 못한 과업은 지금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덩이를 이어 굴려야 할 책무는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아직도 머나먼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과정보다 결과, ‘사람보다 이익을 우선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습니다. 불안정한 노동의 확대는 노동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이기도 합니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경기도 곳곳의 산업단지, 물류센터, 봉제공장, 돌봄 현장에는 전태일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노동 환경이 남아 있습니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 산재와 과로의 위험, 불공정한 하도급 구조 속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기계 부품처럼일하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이러한 문제를 가장 생생하게 품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전국 최대의 산업지대를 품고 있으며, 제조업·운수·돌봄·플랫폼 노동이 함께 얽혀 있습니다. 그만큼 경기도의 변화는 곧 한국 노동 현실의 변화를 상징합니다. 경기도민이 인간의 나라를 향한 발걸음에 함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연대와 나눔, 전태일 정신의 다른 이름

      전태일 정신의 핵심은 연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보다 동료의 고통을 먼저 생각했고, 자신이 아닌 우리를 위해 싸웠습니다. ‘바보회삼동회라는 이름으로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고, 법을 읽고,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거대한 조직이 아닌 작은 연대로 첫 발을 디뎠습니다. 오늘날 이 연대의 정신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청년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연대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지역 시민들과 함께 문화 프로그램을 열며, 돌봄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을 세워 서로의 권리를 보호합니다. 이런 움직임은 거창한 구호보다 훨씬 더 전태일답습니다’. 연대와 나눔은 전태일이 남긴 가장 현실적인 유산입니다.

     

    사진3. 동료 시다, 미싱보조들과 함께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전태일)

     

     

    1113, 국가기념일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

      ‘1113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할까요? 기념일 제정은 과거를 추모하기 위한 절차가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가 노동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인간의 존엄을 제도적으로 천명하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휴일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의 방식입니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노동 존중의 가치를 시민 모두가 공유하고, 사회가 제도적으로 기리는 일입니다.

      1113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다면 그날은 과거를 기리는 날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내일을 약속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노동 없는 성장이 아니라 노동이 존중받는 발전을 향한 대한민국의 선언이 될 것입니다.

     

    사진4. 11월 13일 국가기념일 지정 전태일 시민행동 추진 [전태일과 다시 만난 세계 토론회]

     

     

    경기도민이 함께 만드는 변화

      국가기념일 제정은 중앙정부의 몫이 크지만, 그 출발은 시민에게 있습니다. 특히 경기도는 이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습니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노동자 수가 가장 많고, 청년과 이주노동자, 플랫폼 종사자 등 다양한 노동 형태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경기도는 이미 노동권 보호를 위해 여러 정책을 선도해 왔습니다. 노동국 설치, 노동복지센터 운영, 4·5일제 시범업체 추진 등은 일하는 사람이 살기 좋은 경기도를 향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여기에 전태일 정신을 기리는 국가기념일 운동이 더해진다면 주권자인 시민의 자발적 연대는 더욱 단단해질 것입니다.

      시민과 지방정부, 학교, 노동단체가 함께 1113일의 의미를 알리고, 작은 기념행사를 열며 전태일의 뜻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린다면 기념일 지정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그의 바람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람이 사람답게,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바랐을 뿐입니다.

      인간의 나라는 경제지표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고, 약한 이웃의 삶을 함께 책임지는 사회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비로소, 전태일이 꿈꾸던 인간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전태일의 죽음이 20세기 한국 사회가 노동 존중 사회로 거듭나는 출발점이었다면, 국가기념일 지정은 노동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경기도민과 함께 전태일이 이루지 못한 덩이를 굴려, 목적지에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획]전태일이 꿈꾸었던 인간의 나라/11월 13일 국가기념일 지정 경기도민이 함께
    박미경(전태일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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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8
  •                                                 

     

    청년의 시선으로 더 나은 미래 정책을 고민하는 경기도 청년활동가 박시우(청년다음랩연구소)

     

    청년 당사자로서 모두의 지속 가능한 다음을 고민하게 된 계기

    어렸을 적부터 장래희망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번듯한 정답을 하나 골라 말하곤 했습니다. 직업명을 듣고 별다른 질문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반응이 익숙해질 무렵, 어느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질문을 마주했습니다.

     당신이 살고 싶은 사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폭우로 반지하 주택이 침수되고 산불로 삶의 터전이 사라졌다는 기사, 즐겁게 떠난 수학여행에서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 이태원 거리에서 또래 친구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 사회초년생 청년 노동자나 실습생들이 일하다가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가 주변 학교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10대에서 20대까지 자라오면서 잊기 어려웠던 기사들의 내용입니다.

    나의 교육도, 집도, 일터도, 살아갈 지구마저도 무엇 하나 지속가능하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이대로 정말 괜찮은 것인지 함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모두의 삶이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한 발 나아가고 싶은데, 도대체 무엇부터 해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습니다.

    해결되어야 하는 현실의 문제들은 무엇인지 당사자로서 고민하고,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계획하고 시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상상하고 싶었습니다. <청년다음랩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청년 다음학교청년정책 실험실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그 답을 찾아가기 위한 한 걸음이었습니다.

    특히, 올해 초에는 수많은 시민이 광장에 모여 제가 진정 바라는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지 외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경쟁과 격차 속에서 무기력해지는 아이들을 방임하지 않는 사회, 포기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회,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존중하는 차별 없는 사회, 모두가 공동체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회, 일터와 집과 거리가 안전한 사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어떤 정부 정책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는지 다함께 고민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청년미래사회정책을 상상하는 프로젝트에 함께 진행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우리들의 피로에도 대안이 필요하다.

     저는 대학생 당사자로 구성된 연구팀 우리 사이의 팀원으로 속하여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대학생의 일상이 된 아르바이트, 학업을 병행하기 위해 휴식과 여가 시간을 줄이며 피로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주변 대학생 친구들을 떠올리며 연구 주제를 발굴하고자 했습니다.

      공교육은 공적 주체에 의해, 공적 재원으로, 공적 절차에 따라 운영되는 교육으로 공익을 목적으로 합니다. 헌법 제311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헌법에 명시된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는 초··고등학교 교육을 공교육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교육 현실은 입시 전쟁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의 삶이 중노동에 가까운 학습 노동과 치열한 입시 경쟁 스트레스에 놓여 있기에 한국의 공교육은 위기라고 합니다. ‘청소년 자살률 1’, ‘과도한 사교육비’, 어디서부터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대학생 당사자인 우리 연구팀은 공교육이 된 대학 교육을 상상해 보는 것부터 출발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대학 교육이 초··고등학교 교육처럼 공교육에 포함되어 대학 등록금이 무상화된다면, 대학생들에게 어떤 생활적 변화가 있을지 알아보고자 공교육에 포함된 대학 교육이 주는 생활적 변화에 대한 인식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나와 관련된 연구 주제를 직접 발굴하고 실현가능한 연구 주제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팀원들과 정책연구를 지원하는 코치님과 함께 다듬어지지 않은 질문이더라도 하나씩 쌓아가며 길을 찾아나가는 경험 자체를 배우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인식 조사의 참여 대상은 사립대학교에 다니고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대학생으로 설정하였으며, 연구팀원들 주변의 대학생 12명을 대상으로 1:1 인터뷰를 진행해 시사점을 도출하였습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대학생 인터뷰이들과 인터뷰 시간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고, 시험공부와 장시간의 알바로 잠을 5시간밖에 못 잔 인터뷰이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충분히 생각하고, 몰입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적극적으로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를 팀원들과 종합했을 때, 경제적 어려움으로 등록금 이외의 대학 교육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생들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학습권 침해에 대한 실태조사와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에게 익숙한 국가장학금제도를 낯설게 보기

      시사점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인터뷰이와 인터뷰 진행자 모두 국가의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등록금 인상을 통제해 왔고, 이미 국가장학금을 통해 공적 자원이 투입되고 있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 등록금 2천만 원 시대?’, 반값 등록금 운동으로 대학의 등록금 상한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의학 계열뿐만 아니라 2010년대에 이미 모든 계열의 등록금이 천만 원 이상으로 치솟았을지도 모릅니다. 인터뷰를 통해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와 국가장학금 연계 규제, 대학 재정지원으로 등록금 동결을 유도하는 정책적 효과를 통해 대학생과 학부모들의 등록금 부담이 실질적으로 완화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높은 보증금으로 청년으로서 주거 공간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지금의 현실에, 그에 준하는 의 무게가 하나 더 얹어졌을 일상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숨이 막힙니다. 2000년대 초중반의 학생들이 이미 살인적인 등록금을 감당해 내고 있었다는 것조차 이번 연구를 하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국가에서, 지역의 단체에서, 부모님의 기업에서 다양한 형태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왜 만들어졌는지 과거의 상황을 통해 비로소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부가 국가장학금을 통해 공적 재원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서울에 내 집 한 채를 대출 없이 마련하겠다는 말처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대출 없이 다니겠다는 말 역시 절대 닿을 수 없는 꿈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다양한 활동과 학습에 집중해야 할 학생들을 저임금 아르바이트로, 더 착취적으로 일상을 구성하도록 몰아넣어서는 안 되기에 등록금 인상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의 필요성이 더욱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인터뷰를 통해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국가장학금 정책은 소득분위별, 계열별 차등을 두고 지원하고 있고, 성적 등의 자격조건을 갖춰야 하는 등 지원을 받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바탕에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기조가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공고한 철학은 저를 포함한 주변 청년들이 대학 교육이 공교육화된다면 어떤 생활적 변화가 있을지 다양한 상상을 펼쳐보기 어려운 배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사립대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 대학들이 계속해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의문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국가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대학을 운영하는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왜 막대한 등록금이 사립재단의 재산 축적에 사용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장학금 제도가 우리에게 당연해진 것처럼, 등록금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대학 교육도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이 되어갈 수 있지 않을지 하는 기대와 함께 연구를 마무리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이 어떤 변화를 거쳐 구성되었는지 알게 되는 경험은 뜻밖이었습니다.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이 전에 비해 나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민도 연구자가 될 수 있다.

      2025322, 청년다음정책실험실의 5개 팀이 최종 연구결과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피드백 청취를 진행하는 결과공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5개의 연구 주제는 공교육에 포함된 대학교육이 주는 생활적 변화에 대한 대학생 인식조사’, ‘학교와 지역이 함께하는 미래교육공동체 가능성 탐구’, ‘· 주거비부담 완화를 위한 부동산 정책 청년 인식조사’, ‘청소년 · 청년의 사회참여활동 영향 연구’, ‘넷제로 시대 공공교통 활성화를 위한 액션플랜 연구였습니다.

    사진1. 청년다음정책실험실 결과공유회

    이미지1. 공교육에 포함된 대학교육이 주는 생활적 변화에 대한 대학생 인식 조사 표지

     

      우리 사이팀은 전문가 특강과 자료를 통한 탐색을 바탕으로 대학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의 도입 배경을 정리하고, 인터뷰이들의 고민과 질문을 참고하여 사립대학 등록금 관련 Q&A’를 제작하여 결과 공유회 보고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첫 번째 발표 순서라 긴장되었지만, 공유회에 초청한 인터뷰이들이 인터뷰 중 들었던 질문들을 해소하고 새로운 관점의 고민을 이어나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다른 팀의 발표를 들으며, 5개의 연구 주제들이 서로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청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복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공유회와 리뷰 모임에서, 1기 청년다음정책실험실에서 고등교육 분야의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 참여자들의 소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전 연구 결과 남았던 질문이나 실제 대학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사례를 덧붙여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스스로 연구하고, 새롭게 알게 된 인사이트를 서로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변화를 만드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당사자로부터 출발한 상상에는 힘이 있다.

      사회의 변화가 너무 거대해 보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한 걸음은 무엇인지 함께 객관화하고, 실제로 실천해 보는 경험이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당사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에 몰두하기보다 빠르게 돈을 모아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압박을 받으며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막막한 미래 속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청년들의 밀접한 현실에서부터 시작된 상상일 수 있음을 기억하고, 앞으로 자기 문제를 주체적으로 고민해 가는 청년들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그 기회를 만들어가는 일을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기획]청년당사자로서 나의 삶을 바꾸기 위한 한걸음
    박지우(청년다음랩연구소)

    조회수 283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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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션 2 공익활동의 지속가능성 수다회
    : 비영리(공익) 활동과 조직운영 활동의 변화, 세대의 전환
     
     
    사회 이인신(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패널 허밍슈(국립대만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최승환(청년플로우 위원)
    김재순(유스보이스 대표)
    김별(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이광호(펭귄의 날갯짓 공동대표)
     
     
     
    2025 공익활동 페스타 세계시민대회, 세션 2의 주제는 공익활동의 지속가능성입니다. 이인신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의 사회로, 오전 행사 기조강연자였던 국립 대만대학교 허밍슈 교수와 4명의 공익활동가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공익 활동을 하며 현장에서 경험한 활동의 부침과 의미를 되짚어보았는데요. 공익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간략한 단체 소개로 시작한 두 번째 세션 이야기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션 2 공익활동의 지속가능성 수다회가 진행되고 있다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 각자의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김재순(유스보이스 대표): 학교 밖 청소년을 잇고 나답게 성장하는 청소년 단체 ‘유스보이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별(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수원 지역 2030 여성 청년 커뮤니티인 ‘허밍버드클럽’을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광호(펭귄의 날갯짓 공동대표): 정신질환과 고립, 은둔 당사자 청년들과 동행하는 단체로, 수원에서 동료 지원 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승환(청년플로우 위원):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청년 활동가 네트워크 ‘청년플로우’ 2기 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 단체 활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주시겠어요?
     
    김재순: 2002년 다음 세대 재단이라는 재단 법인의 청소년 사업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청소년이었어요. 제 청소년기에 아주 큰 울림을 준 활동이라 청년 활동가로도 계속 활동하다가 어느 날 '유스보이스'를 담당하는 직원이 되었습니다. 2020년도에 좀 더 제가 하고 싶은 활동에 집중하는 지금의 유스보이스를 분사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별: 다산인권센터 자원봉사 활동을 하다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운영하게 되었어요. 계엄령과 탄핵 광장 이후에 주목받았던 2030 여성 청년들의 목소리가 응원봉 불빛에 국한되어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우리 일상과 연결 지을 수 있을까 고민을 바탕으로 시작한 커뮤니티가 허밍버드클럽이고, 연애, 노동, 주거, 상담 4개 주제를 정해 수다회와 강연을 열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이광호 활동가, 김별 활동가, 김재순 활동가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이광호: 저희는 정신 질환과 고립을 경험했던 당사자 청년들이 모여 있는 단체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돌봄의 주체 혹은 서비스 받는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똑같은 시민으로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혹은 돌봄을 주고받는 존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추석 때 가족들이랑 있는 걸 힘들어하거나 혹은 다들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 데 나만 혼자인 것 같은 박탈감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저희 쉼터에 와서 명절 음식도 먹고 간단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왼쪽부터 허밍슈 교수, 최승환 활동가, 이광호 활동가, 김별 활동가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최승환: 청년 플로우는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청년들의 정책 의견을 듣고 정책의 과정에 반영하기 위한 작은 위원회이고요, 16명이 참여하고 있고, 최근에는 오늘 자리와 비슷한 공익활동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 단체 안에서 세대 간 소통에 어려움이 있나요? 어떻게 해결하나요?
     
    최승환: 제가 신입 활동가일 때 저랑 제 사수는 15년 이상 활동에 차이가 있었어요. 보도 자료 하나 써봐 이러는데 보도 자료가 일단 뭔지도 모르겠는 거예요. 그 소통이 그 간극이 너무 큰 거죠. 그분은 저한테 어디까지 알려줘야 되지?라는 생각을 하는 거고 저는 내가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지?라는 그 간극이 너무 컸던 경험이 있습니다.
     
    김별: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보다 2030 여성과 청년을 시민사회에서도 이럴 것이라는 약간 도상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김재순: 저는 젊은 분들과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어쨌든 비영리 단체로서 사실 많은 급여를 줄 수 없는 거는 대부분 알잖아요. 그럼에도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는 어쨌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인정이 저는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요즘에는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일을 왜 잘했는지 또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운영하는 담당자나 대표가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자리가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이광호: 일단 저희 조직은 다 20~30대거든요. 이게 장점이면서 단점인데 어느 정도 수평적인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희는 수평어를 원래 사용했었어요. 이게 서로에 대한 존중이 기반으로 돼야 하는데 이게 처음부터 이 조직에 있던 사람들은 이걸 이해하고 있는데, 중간에 들어오는 사람은 이걸 반말로 인식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하다 보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이게 굉장히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수평어를 사용하지 않아요. 그리고 또 다른 문제의식은 공익 활동 자체의 중간 소통 구조가 없지 않나 하는 건데요. 저희만 그런 건가 싶고, 직업으로 이 활동을 하는 분들과 자원활동으로 하는 분들 사이 생각의 갭도 상당히 커서 이 부분도 소통이 필요한 것 같아요.
     
     
    ● 허밍슈 교수님께 질문드립니다. 선배들 세대는 사실은 활동에서 자원봉사의 개념이 컸어요. 권위주의 정권이랑 싸우기 위해서 나의 일상은 당연히 버리고 활동하는 돈도 받지 않고요. 근데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이제 공익활동이 하나의 직업이 되었거든요. 여기로 취업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고 여기에서 오는 혼란도 있습니다. 혹시 대만은 상황이 어떤지요?
     
    허밍슈: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 사회가 대만보다 선후배 관계에 있어서 더 혼란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만에도 이러한 세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젊은 사람들이 제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익단체가 의사 결정을 민주적으로 하고 젊은 세대의 기여를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대격차를 해소해야 공익활동도 생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단체마다 조직의 의사 결정 구조를 평가하는 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재순: 저희는 프로젝트 매니저분들이 다 계세요. 프로젝트마다 담당자가 따로 있어서 의사결정 구조는 충분히 여러 토의나 회고를 해서 진행하고요. 그래서 저희 동료들은 의사결정 부분은 많이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승환: 5인 이하 사업장에서 조직 문화 점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었었어요. 그리고 선배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조직 문화 점검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는 결론이었어요. 하지만 지리산 이음이라는 단체는 3명인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조직 문화 점검이 유의미한 결과를 낳는다고 해서 작은 단체는 조직 문화 점검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입니다.
     
    이광호: 조직 문화에 대해 점검하는 것도 노동입니다. 그렇죠. 이게 가장 큰 문제인데요. 저는 너무나 고민인데 아까 말씀드린 직업으로서의 활동가로 살고 있는 분들에게 이런 것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그리고 너무나 제한적인 자원이 우리에게 있는데 그 자원 안에서 이것들에 기여한 것들을 어떻게 보상을 만들 것인가도 고민입니다.
     
    허밍슈: 공익활동이라는 단어를 여기서 처음 들었습니다. 대만에서는 시민사회 NGO나 에드보커시라는 단어를 씁니다. 대만의 NGO도 소규모고 보수도 적습니다. 안정적인 펀딩이 중요하다고 보고요. 이 길을 선택한 젊은이들의 희생은 막아야 합니다. 사회적 기업을 통해 기금을 조성하는 실험이 공익 활동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안정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더 전문성을 갖춘 활동을 한다면 대중으로부터 존중받을 것이고 공익 활동 영역도 자격과 권한이 더 커지리라 기대합니다.
     
    김별: 지금 이 세션에서 되게 중요한 키워드 두 개가 지속 가능성과 세대 전환이었는데 사실 지속 가능성과 세대 전환을 원하는 이유 그리고 이걸 중요한 가치로 삼는 이유가 이 활동이 지속되기 위해서고 그러기 위해서 조금 더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고 싶다고 저는 해석을 했거든요. 근데 우리가 만나길 바라는 2030에게는 조직과 단체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선이고 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얼굴을 만나기 위해 준비되지는 못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려 봅니다.
     
     
    ● 시민사회단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활동가로 키워낼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고민을 요즘은 좀 하고 있거든요.
     
    이광호: 저는 사실 벌어놨던 돈을 쓰면서 그냥 거의 자원봉사 활동을 했는데 보통 사람들이 자기의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면서 이 활동판의 언어를 익혀가면서 활동을 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우리는 다른 언어를 쓰고 있고요. 통역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판에 들어오면요. 그게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 홍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홍보할 때 신경 쓰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김재순: 예전에 했던 방식의 공익 활동보다는 요즘 청년들이 저 활동이 되게 참신하고 재밌다 즐겁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느낄 수 있게끔 홍보합니다. 10대나 20대 분들이 가장 많이 보는 게 인스타그램이더라고요. 템플릿 만들어서 나름 좀 예쁘게 올리고 네이밍 같은 경우도 그냥 지원 사업 이렇게 올리는 게 아니라 요즘 분들이 궁금해할 만한 정도로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최승환: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대에서 40대까지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그에 맞는 포스터를 만들고, 전 시민을 대상으로는 하는 건 욕심이 아닌가 합니다.
     
    박별: 홍보 자체도 고민이지만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연애, 노동, 주거 이런 것들을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노동이나 주거 이런 단어들에 대해서 오는 어떤 편견 같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게 굉장히 허밍버드 클럽이 좀 오픈되어 있다고 느끼지만, 막상 이렇게 활동을 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인권 센터에서 하니까 뭔가 딱딱한 걸까 편견을 가지는 분들이 좀 계시더라고요.
     
    이광훈: 저희 홍보의 기준은 재미입니다. 우리가 봤을 때 재미없으면 홍보안을 다 고쳐야 합니다. 근데 요즘에는 점점 더 정형화되고 있긴 합니다. 인스타에 아무래도 청년분들이 가장 많다고 느껴서 주로 인스타에 홍보합니다.
     
     
     
    플로어 토론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 대만에서는 각 단체가 안정적인 재정 확보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허밍슈: 대만도 안정적인 재정 확보는 되고 있지 않습니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NGO나 다른 커리어를 갖고 일을 하면서 공익 프로젝트를 만들어 크라우드 펀딩을 받기도 합니다. 이건 상업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NGO는 대만에도 없습니다.
     
     
    ● 시민단체가 새로운 공익 활동가를 맞기 위해서 어떤 조직 문화와 고민이 함께 되어야 할지 듣고 싶습니다.
     
    김별: 활동가가 학생 운동을 거쳐서 노동 운동을 거쳐서 너무 자연스럽게 투입되는 이런 스타일은 이제 조금 올드 스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을 시작할 때 예전처럼 뭔가 이 조직에 충성해야 하고 어떤 운동이 내 하나의 삶과 일치시키는 거는 요즘 2030에게는 통하지 않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허밍슈 교수님께 궁금한 점인데요. 대만은 최근에는 일상에서 어떤 공익활동을 하고 있나요?
     
    허밍슈: 대만도 시민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시대가 지나 열의가 식었습니다. 2014년 대만의 해바라기 운동1) 이후 시민운동은 제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거나, 시골 서점이나 지역 신문을 운영하거나, 다른 커리어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회활동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지금은 전반적으로 사회복지 아웃소싱 영역에서 서비스 제공 위주의 활동이 많습니다.
     
     
    세션2 단체사진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 마지막으로 오늘 참여한 소감을 나눠주세요.
     
    최승환: 공익활동의 지속가능성, 이런 얘기를 되게 mpo 지원센터부터 오랫동안 얘기를 해왔고 조금 조금씩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광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연대와 환대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너무 각자 살기가 너무 바쁘고 각자 눈앞의 이익이나 자본에 대한 것들을 축적하는 것들이 너무 중요한 가치가 돼버렸는데 그거에 투쟁해야 하는 것 같아요.
     
    김별: 우리가 지속할 수 있고 세대 전환을 정말 원한다면 지금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 어떤 단체에 가입하지 않아서 또는 조직 안에 없어서 그렇게 발화하지 못한 채 떠도는 말과 얼굴을 떠올려 본다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또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요?
     
    김재순: 최소한 유스 보이스라는 곳에서 일할 때만큼은, 더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급여나 나름의 문화와 복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업하고 파트너십을 할 때 비용을 당당하게 제시도 하기도 합니다. 공익 활동을 할 때 돈에 대한 부분들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사회나 문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젊은 청년분들이 더 일하고 싶어 하고 더 가치 있게 활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허밍슈: 대만에서는 NGO 패널 토론은 이렇게 흥미롭지 않습니다. 창의적인 의견 교환이 인상적입니다. 공익 활동의 생명성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고요. 한국 공익활동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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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만 해바라기 운동은 2014318일부터 410일까지 23일 동안 대만의 대학생과 사회운동세력이 대만의 국회인 입법원을 점령한 사건으로, 졸속처리한 양안서비스무역협정에 대해 항의 활동을 벌였다.
     
     

     

     

    [현장스케치] 2025 공익활동 페스타 주제세션2: 공익활동의 지속가능성 수다회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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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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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은 10월의 어느 토요일, 경기도 전역에서 공익활동을 이어가는 청년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10월 18일과 19일, 화성 YBM연수원에서 열린 ‘청년 활동가 네트워크 캠프 – 쉼, 그리고 ( )’는 말 그대로 바쁘고 치열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는 시간,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연결의 시간이었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주최, 청년 활동가 네트워크 위원회 ‘청플(청년 플로우)’ 2기 위원들의 주관으로 진행된 캠프는 청플 위원들이 직접 기획과 운영을 맡아, 그 어느 때보다도 청년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긴 프로그램으로 채워졌습니다. 저 역시 참여자로 함께하며 청년 활동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왜 이 길을 걷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 만남, 그리고 ( )
     
     
    행사 현수막(왼), 청년 황동가 네트워크 담당자 강민진 대리(오)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캠프의 첫날, 청년 활동가 네트워크 담당자인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강민진 대리의 인사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는 반가움과 약간의 설렘이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 공간은 금세 따뜻해졌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유명화 센터장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이어 단상에 오른 유명화 센터장님은 청년다운 감각으로 비워둔 ‘쉼, 그리고 ( )’의 괄호를 언급하며, 그 안에는 각자의 가능성과 상상력이 담겨 있다고 전했습니다. 공익활동의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으며,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청년들이 그 답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세 사람만 모여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데, 여러분은 그 여덟 배나 되니 오늘의 이 만남이 더 큰 변화를 만들 것”이라는 말에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청년 플로우(청플) 2기 김정현 위원장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이후 청년 플로우(청플) 2기 위원장 김정현 활동가가 무대에 올라 캠프의 취지와 기획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청년 활동가 간담회에 이어 오랜 기간 준비한 이번 캠프는 TF팀이 직접 머리를 맞대며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준비했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진심으로 채워가고 싶다는 다짐, 함께 웃고 쉬며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가자는 바람이 전해졌습니다. 그렇게 “쉼, 그리고 ( )”의 첫 장이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열렸습니다.
     
     
    2. 활동, 그리고 ( )
     
     
    청년 네트워크(청플) 2기 류지현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첫 번째 프로그램은 류지현 활동가가 진행한 ‘질문의 책 : 나만의 힐링노트 만들기’였습니다. 바늘과 실로 바인딩북을 직접 엮어 나가며, 손끝으로 천천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송곳으로 종이에 구멍을 뚫고, 실을 엮어 묶는 그 과정은 마치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꿰매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서툴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 느린 리듬 속에서 잊고 있던 ‘나의 속도’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활동가들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바인딩 북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완성된 힐링노트 안에는 각자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과 답이 담겨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무엇이 나를 버티게 하는가’,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페이지마다 묻고 답하는 문장들이 쌓이고 있었고 아직은 어색했던 활동가들에게 조금은 따뜻한 질문들이 하나 둘 오가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1박 2일을 함께하기 위한 ‘우리의 약속’을 함께 만들어보았습니다. 포스트잇 위에는 서로를 향한 작은 약속과 다짐들이 하나씩 적혔습니다.
     
     
    '우리의 약속' 포스트잇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조금 부족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따뜻한 격려와 응원 부탁드려요.’
    ‘숙소에서는 조용히, 음악은 홀로 들어주세요.’
    ‘아프지 마세요.’
    ‘조금 시끄럽더라도 함께 즐겨요.’
     
    짧은 문장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와 연대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캠프의 시작을 알리던 첫 손 글씨는 그렇게 모두의 마음을 잇는 문장이 되어 벽면에 차곡히 붙었습니다.
     
    그날의 약속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함께 웃고, 다정하게 쉬고, 조금은 느슨해져도 괜찮다는 서로의 허락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품은 채, 각자의 노트를 들고 다음 프로그램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1일차 단체 사진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3. 놀이, 그리고 ( )
     
    이어서 진행된 팀빌딩 프로그램 ‘놀이, 그리고 ( )’는 캠프 TF의 이끔이이자 청플 2기 부위원장인 조한나 활동가가 안내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한 게임이 아닌, ‘신입 공익활동가의 하루를 살아보는 방탈출’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청플 2기 조한나 위원의 방탈출 프로그램 소개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참가자들은 신입 활동가로 빙의해 각자의 단체에서 사라진 기밀문서를 되찾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끝없는 행정업무와 쌓인 서류, 예기치 못한 실수와 갑작스러운 협업 미션 속에서 ‘나는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스쳤습니다. 눈을 감고 동료의 목소리에만 의지해 미션을 수행하거나, 서로의 감을 믿고 퍼즐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활동가로서 마주하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담아낸 시간이었습니다. 퍼즐을 풀며 마주한 질문들은 결국 우리가 함께 고민해온 공익활동의 본질로 이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그 ‘기밀문서’는 바로 조별로 나눈 대화 속에서 적어 내려간, “우리가 생각하는 공익활동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방탈출 프로그램 진행 중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캠프 공고 때부터 가장 기대가 높았던 ‘방탈출’은 그만큼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각 조가 한마음이 되어 미션을 해결하는 동안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우승팀에게 주어진 박수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며 터져 나온 웃음소리였습니다.
     
     
    방탈출 프로그램 진행 중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처음엔 어색했던 사람들 사이에 어느새 농담이 오갔고, 조 이름 ‘어떡하조’, ‘일등하조’처럼 유쾌한 호흡 속에서 연대의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낯선 이들이 하나의 팀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그 자체로 이 캠프의 의미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함께 웃고, 손뼉 치며 가까워진 그 순간이 가장 따뜻한 결과였습니다.
     
     
    4. 연결, 그리고 ( )
     
    저녁 식사 시간에는 고기 굽는 냄새와 함께 대화가 피어올랐습니다. 비건식도 따로 준비되어 있었는데,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는 참여자들도 많았습니다. 식사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저녁시간 / 출처 : 에디터
     
     
    “활동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게 힘이 된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지금은 그냥 친구 같아요.”
     
    짧은 대화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공감이 느껴졌습니다.
     
    청년 활동가의 길은 때로 외롭고 지치지만, 이 시간만큼은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5. 힐링, 그리고 ( )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짧았던 밤이 지나고 둘째 날 아침은 웃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임정택 강사의 ‘웃음치료와 회복탄력성’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단순히 재미있는 강의가 아니라 ‘활동가로서의 회복력’을 일깨워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스스로를 위해 웃어주세요.” 강사님의 한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활동가와 눈을 마주치고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는 순간, 묘한 울컥함이 스쳤습니다.
     
     
     
    웃음치료와 회복탄력성 프로그램 진행 중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마이 파우라(Mai paura) - 두려워하지 마라.” 강사님이 전해준 이탈리아 속담처럼,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겪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새로운 용기를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웃음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웃음치료와 회복탄력성 프로그램 진행 중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6. 쉼, 그리고 ( )
     
     
     
    청플 2기 이혜림 위원의 캠프 마무리 프로그램 진행 /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마지막 프로그램은 청플 이혜림 위원이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포스트잇에 이번 캠프를 마무리하며 ‘두고 가고 싶은 것’과 ‘가져가고 싶은 것’을 적었습니다.
     
    누군가는 ‘지친 마음’을 두고, 누군가는 ‘연결된 관계’를 가져가겠다고 썼습니다. 가져가고 싶은 것은 서로에게 공유하며 마음속에 품고, 두고 가고 싶은 것은 종이비행기에 담아 하늘로 날려보냈습니다. 가벼운 웃음과 함께 그동안의 피로와 걱정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캠프 마무리 발언하는 청년활동가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한 참여자는 “잊고 있던 휴식과 웃음, 행복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라고, 또 다른 이는 “활동가로서 포기하지 않을 용기와,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짧은 1박 2일이었지만 그 시간 안에는 공감과 위로, 그리고 진심이 촘촘히 쌓였습니다.
     
     
    종이비행기 퍼포먼스 / 출처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이번 캠프는 힘겹게 달려온 청년 활동가들이 모여 ‘쉼’을 갖는 시간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어느덧 ‘쉼’은 하나의 사치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짧은 1박 2일이었지만, 그 시간 안에는 공감과 위로, 그리고 진심이 촘촘히 쌓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번 캠프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다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웃으며, 다시 힘을 내는 과정이 바로 이 캠프의 진짜 성과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비치는 석양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괄호를 어떻게 채우면 좋을까?’
    그 답은 각자 다르겠지만, 한 가지는 모두에게 분명했습니다. 그 안에는 ‘연결’과 ‘지지’, 그리고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괄호 안을 어떤 말로 채우고 싶으신가요?
     
    

     
     
    [현장스케치] 청년 활동가 그리고 ( )
    또봉

    조회수 297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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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의 마지막 날, 월말이라 분주한 마음이면서도 왠지 설레는 건 황금연휴가 코앞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단체가 공들여 준비한 2025공익활동페스타가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날이었거든요. 올해 페스타의 주제는 세계시민대회. 오전에 두 차례 기조강연이 있었고, 점심 식사 후 오후부터는 4개의 주제 세션에 돌입했습니다.
     
     
    세션 1 사회: 조철민 박사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제가 취재한 세션 1의 주제는 공익활동과 비영리 생태계입니다. 비영리 일자리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시간이었는데, 사회는 ‘사단법인 시민’의 조철민 박사님이 맡았습니다. 세션 1을 선택한 이들의 관심 키워드는 아마도 ‘일자리’였을 것 같네요. 공익활동이 그저 착한 일이 아니라 이제는 어엿한 일자리가 될 수 있을까? 저도 이런 고민과 기대로 세션 1을 찾아갔습니다.
     
     
    발표 1. 경기도 비영리 일자리 정책의 현황과 과제
     
    ‘보이지 않는 일자리에서 (썩) 괜찮은 일자리로’라는 부제가 눈길을 끕니다. 발표자인 이명신 NPO경영연구소 대표님은 ‘경기도 비영리 일자리 활성화 정책 연구’를 수행 중이었고, 발표 당시 연구가 거의 막바지 단계였습니다.
    정책에서는 일자리와 고용 관계를 함께 말합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99년 처음 제시한 ‘Decent Job’은 괜찮은 일자리, 양질의 일자리, 품위 있는 일자리 등으로 번역되지요. 연구자는 더 나아가 ‘Meaningful Job’(의미있는 일자리) 개념을 제시합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근무 환경에서 개인적 성장과 사회적 기여 등 생의 의미 추구가 가능한 일자리. 여러분의 일자리는 과연 ‘의미 있는 일자리’인가요?
     
     
    발표 1: 이명신 소장(NPO경영연구소)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비영리 일자리를 하나의 산업으로 명확히 분류하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공식적인 국가 통계가 없고 주무부처도 제각각인 실정입니다.
    이번 연구는 비영리법인과 비영리민간단체에 더하여 사회적경제까지 범위에 포함시켰는데요. 연구 결과, 많은 비영리 단체가 경기도에 몰려 있으면서 GRDP(지역내총생산)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IMF나 팬데믹 같은 위기 때 비영리 일자리는 오히려 고용이 늘어 충격 흡수 효과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경기도 기회소득 / 사진 출처: 경기도 홈페이지
     
     
    그런데도 고용 안정성, 사회적 안전망, 경력 인정 등에서 비영리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낮네요. 규제만 있고 지원은 거의 없습니다.
    중앙부처 일자리 정책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돼 있고, 그나마 낫다는 경기도에서조차 ‘베이비부머 라이트 잡’과 ‘청년복지 포인트’ 정도만 신청 가능합니다. 예술인, 체육인, 농어민 등 다양한 분야의 도민에게 지급하는 경기도 기회소득도 현재 공익활동가는 해당이 없는데, 사회적 기여로 봤을 때 우리가 행정에 충분히 요구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미흡한 공익활동 활성화 정책도 더 많은 지자체의 조례 제정과 실효성 있는 고용 연계가 필요합니다.
     
     
    발표 2. 『중장년층 공익활동가의 활동과 삶』실태조사로 본 지원정책 방향
     
    두 번째 발표로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여진 사업처장은 중장년 활동가 당사자들의 정책적 요구를 살폈습니다. 동행은 전국의 공익활동가 3천 명이 조합원으로 상부상조하며 안전망을 만들어가는 조직입니다.
     
    동행이 2023년 12월 40~69세 현직 및 퇴직 활동가를 대상으로 온라인 진행했던 설문조사에 따르면, 활동가들의 임금 수준은 같은 중고령층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월 100만 원가량 현저히 낮습니다. 이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도 취약합니다. 특히 오래된 상급 책임자일수록 스트레스 강도가 더 심한데요. 본인의 임금이 조직의 열악한 재정에 부담을 준다고 느끼지만, 막상 떠나려고 해도 후임을 구하기가 힘듭니다.
     
     
    발표 2: 여진 사업처장(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이러한 상황의 중장년 활동가들이 가장 바라는 건 그래도 공익활동 분야에서 전임제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가치지향적인 활동을 해왔던 이들은 여전히 비영리 생태계에 머물기를 희망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 이들을 위한 정책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장려금 등 직접적인 금전 지원이 제일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다면, 현행 경력지원제도를 개선해서 비영리 일자리를 조성하고, 활동 경력을 살린 새로운 소득 모델 개발이 필요합니다. 그 밖에도 자기돌봄 프로그램이나 네트워크 등 중장년 활동가들이 고립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지향을 이어갈 수 있는 종합지원정책이 마련되어야겠습니다.
     
     
    발표 3. 청년 비영리 노동자의 목소리
     
    마지막 발표는 정책 설계에서 배제된 청년 활동가들의 경험과 의미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틈사이청년연구 박정효 연구원을 비롯한 4명의 청년은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계기로 만나 경기도미래세대재단 연구사업을 위한 팀을 꾸렸습니다. 이들은 주변에서 젊은 활동가들이 자꾸만 떠나는 현실이 안타까워 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발표 3: 박정효 연구원(틈사이청년연구)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선행연구 자료를 찾아 고찰하고, 경기청년포털에서 크롤링 기법으로 정책을 분석하며, 비영리단체 및 개인 활동가들을 심층 면접하는 등 다양한 연구 방법을 통해 얻은 결론은 역시나 사각지대 발견이었네요. 청년 정책이 주로 영리적인 취업이나 창업 중심이라 비영리 청년 노동자가 배제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에서도 안타까운 사례를 접할 수 있었는데요. 5인 미만 단체에서 일하는 청년 활동가는 단체의 사정이 뻔하다 보니 4대보험 얘기를 차마 꺼내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남을 돕는 일을 하면서 정작 자신은 병원비조차 없어 ‘동행’의 도움을 받는 사연도 아이러니했지요. 20대에 갓 들어왔을 땐 몰랐는데 30대에 접어드니 친구들의 급여와 비교해서 자괴감이 든다는 인터뷰이도 있었습니다. “미래 계획은 꿈도 못 꾼다"라는 말은, 활동가로서의 경력이 정당하게 인정되는 기여적 정의가 실현되어야만 사라지지 않을까요?
     
     
     
    주제 세션 1 강연장(왼), 한창희 센터장(요코하마 시민협동추진센터)(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주제 세션 3 발표자이기도 한 요코하마 활동가의 질문에 나름의 시사점이 있었습니다. 비영리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10년 전의 일본과 그대로 닮았는데, 우리는 왜 굳이 비영리의 틀을 고집할까? 기업의 CSR(사회적 책임), ESG 경영 등 외연을 더 확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번 페스타의 모토가 “연결되는 세계, 변화와 도전의 시민사회”인 만큼 비영리 생태계에도 유연한 태도가 요구됩니다. 중장년과 청년 활동가 사이에 조금은 다른 결이 존재하지만, 의미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이 줄어든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개인 활동가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을 뿐이죠. 이러한 시대 흐름을 포착해 내면서도 지켜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예민하게 점검하는 일이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
     
    

     
    [현장스케치] 2025 공익활동 페스타 주제 세션1: 공익활동과 비영리생태계
    참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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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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