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광교산 자락의 야학에서 만난 1987년
1987년 6월을 떠올리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내게는 광교산 자락의 야학 교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하나둘 들어오던 학생들의 얼굴,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먹던 떡볶이와 라면, 그리고 막걸리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던 어설프지만 진지했던 시국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나는 1987년 2월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되어 군에 입대한 처지였으니, 제대 후에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막연한 시절이었다. 시대는 무거웠고, 내 앞날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후배의 소개로 수원 광교산 자락에 있던 제일야학(현재는 [수원제일평생학교]라는 이름으로 인계동에서 수업을 계속하고 있다)에서 교사로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야학 교사 활동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아니, 흥미롭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곳은 학교이면서 일터였고, 교실이면서 세상과 연결된 작은 창이었다. 수업은 저녁 6시에 시작했지만, 그 시간에 맞추어 등교하는 학생은 절반 정도였다. 나머지는 수업 중간에 들어오거나, 때로는 수업이 다 끝난 뒤에야 모습을 보였다. 낮 동안 공장에서, 가게에서, 사무실에서 일하고 온 학생들이었다. 피곤한 얼굴로 들어와도 책상 앞에 앉으면 눈빛이 달라졌다. 늦었다고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들이 학교에 늦은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들에게 배움의 시간을 충분히 허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근처 분식집에 들렀다. 떡볶이와 라면, 조금 나이가 많은 학생들과는 막걸리도 마시면서 시국 이야기, 더 살기 좋은 미래 이야기, 노동자의 삶과 노동, 노동조합 등에 대한 생각도 나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내가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책에서 배운 민주주의가 아니라, 삶으로 겪는 불평등과 억울함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워가고 있었다.
2. 수원의 거리에서 마주친 야학 학생들
그해 6월, 거리는 생기를 찾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6월항쟁은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된 전국적 ‘시민항쟁’이었다. 1987년 6월 10일을 기점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이어졌고, 결국 6·29선언과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역사는 교과서의 몇 줄 문장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그 역사는 거리의 먼지와 최루탄 냄새, 흩어졌다 다시 모이던 발걸음, 낯선 사람과 눈을 맞추며 느꼈던 이상한 용기 속에 있다.
수원에서도 거리의 움직임을 활발했다. 어느 날은 팔달문에서 시작한 시위가 수원역 방향으로 이어졌고, 어느 날은 중동파출소 앞에서 출발해 아주대 방향으로 행진이 이어졌다. 대학생들이 앞에 있었고, 시민들이 그들을 지켜주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했지만, 그날 거리에서는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독재를 끝내야 한다는 것,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 더는 침묵할 수 없다는 것. 그 마음만은 분명했다.
그런 거리에서 가끔 야학 학생들을 마주쳤을 때 나는 반가웠고 대견했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던 민주주의가 교실 밖 거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걱정도 되었다. 학생들의 수업은 어쩌나,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일터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그래서 나는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꾸짖기도 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 말했다.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던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선생이 아니었다. 우리는 함께 배우는 시민이었다.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그날처럼 선명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내가 가르쳤다고 생각했던 말이 그들의 발걸음으로 되돌아와 나를 가르쳤다. 민주주의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며, 시민은 누가 임명해주는 자격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자리라는 것을.
시위가 마무리된 뒤 그들과 함께한 뒷풀이 자리는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고, 불안했고, 앞날을 알 수 없었지만, 그날만큼은 우리가 역사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확신과 함께 우리가 사는 이 도시의 거리도 민주주의의 무대가 되고 야학의 학생들도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했다.
3. 2024년 12월 3일, 민주주의는 다시 질문이 되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직선제를 얻었고, 선거를 치렀고, 지방자치를 부활시켰고, 여러 차례 평화적 정권교체를 경험했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되었고, 절차가 되었고,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을까?
2024년 12월 3일의 밤은 그 질문에 다시 답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했다.
계엄, 군, 국회, 포고, 통제라는 단어들이 한밤중에 다시 등장했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결코 자동으로 유지되는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밤과 그 이후의 광장에서 우리가 본 것은 두려움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다시 모였다. 예전의 거리에서 손수건과 유인물과 결연한 다짐으로 어깨를 맞댄 스크럼이 있었다면, 2024년 이후의 광장에는 형형색색의 빛과 노래와 새로운 언어가 있었다. 나는 그 빛 속에서 1987년 거리의 시민들을 보았다.
응원봉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시대 시민들이 자기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표현하는 언어였다. 누군가는 분노를 품고 나왔고, 누군가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나왔고, 누군가는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혹은 혼자 광장에 섰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 올린 빛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헌법을 지키자는 것, 권력은 국민 위에 설 수 없다는 것,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 앞에서 시민이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
4. 달라진 광장, 달라지지 않은 시민의 민주의식
1987년의 거리와 2024년의 광장은 닮았고, 또 달랐다. 달라진 것은 많다. 1987년의 우리는 군사독재를 끝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언론은 통제되었고, 집회는 폭력적으로 탄압받았고, 거리에는 온통 최루탄 가스와 매케한 냄새가 짙었고 정보는 사람을 통해 전해졌다.
2024년의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확인했고, 온라인에서 서로를 불러냈고, 각자의 방식으로 광장을 만들었다. 청년과 여성 시민들이 보여준 주체성과 창조적 표현력은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세대의 언어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권력은 여전히 시민의 감시를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탱크와 총칼만은 아니다. 때로는 음모론이, 때로는 냉소가, 때로는 무관심이, 때로는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이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기념일의 언어로만 말하면서, 정작 일상의 권한과 책임은 나누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시민사회의 언어는 다음세대에게 닿고 있는가. 우리가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민주주의를 새롭게 만드는 일에는 둔감해진 것은 아닌가. 늘 자신에게 묻고, 가끔은 상대방에게 슬쩍슬쩍 던져보는 질문들이다.
5. 광장의 열기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옮기는 일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언제나 미래를 향해 열려있고, 창조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가는 미래진행형이다. 완성되었다고 믿는 순간, 민주주의는 약해진다. 민주주의는 늘 다시 배워야 하고, 되돌아보며 점검해보아야 하며, 다시 만들어야 가야 한다. 1987년의 성취가 오늘의 민주주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듯, 2024년 광장의 뜨거움도 내일의 민주주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광장의 에너지는 뜨겁지만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구호는 높지만 일상은 복잡하다. 분노는 사람을 모이게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결국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열정과 창의력이다.
여기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시작된다. 시민사회는 광장의 열기를 일상의 변화로 전환해야 한다. 거리에서 확인한 주권자의 힘을 지역의 공론장, 마을의 의제, 생활 속 공익활동으로 이어가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육은 교육에서, 대화에서, 감시에서, 참여에서 자란다.
6. 기억을 살아 있는 언어로 바꾸는 시민사회
몇 가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첫째, 시민사회는 기억을 살아 있는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6월항쟁을 기념하는 일은 ”우리는 위대했다”는 회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1987년의 거리가 오늘의 청소년과 청년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말해야 한다. 야학 학생들이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다”고 말했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역사 교과목의 한 단원이 아니라, 내가 일하는 곳과 사는 동네와 사용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매일 부딪히는 삶의 방식이고 습관이어야 한다.
둘째, 시민사회는 민주주의를 지역의 문제로 옮겨와야 한다. 민주주의는 시청과 도청, 구청과 군청, 주민자치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복지관과 공원, 마을버스 노선과 보행로, 청년 주거와 돌봄 정책 속에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묻는 일, 우리 동네 조례가 누구의 삶을 바꾸는지 살피는 일, 지역일꾼의 공천과 선거가 얼마나 공정한지 감시하는 일이 민주주의의 근육을 키우는 활동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가장 가까운 얼굴이다. 시민사회는 지역에서 좋은 후보를 키우고, 지방의회를 감시하고, 주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 지방자치의 퇴보를 비판만 하지 말고 실천적인 대안을 마련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
셋째, 시민사회는 극단화에 맞서되 시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혐오와 음모론, 폭력적 선동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헌정질서를 부정하거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민사회는 왜 어떤 사람들이 극단적 주장에 흔들리는지도 살펴야 한다. 불안정한 삶, 고립, 불평등, 지역의 소외, 정치에 대한 불신은 극단주의가 자라는 토양이 된다. 민주주의는 단호함과 포용을 함께 필요로 한다. 파괴적 선동에는 선을 긋되, 불안한 시민을 민주주의의 언어 안으로 다시 초대하는 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시민사회는 다음세대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우리는 청년에게 참여하라고 말하면서, 이미 정해진 회의의 말석만 내어주지는 않았는가. 새로운 방식의 표현을 가볍게 여기거나, 낯선 정치 감각을 미숙함으로만 판단하지는 않았는가. 2024년의 광장은 다음세대가 민주주의를 모르는 세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알고 있었고, 다른 언어로 표현했으며, 다른 감각으로 광장을 만들었다.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들과 함께 배우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계승은 기억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다. 권한을 나누는 것이다.
7. 다시, 제일야학의 학생들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제일야학의 학생들을 떠올린다. 늦은 시간에 교실로 들어오던 학생들, 수업이 끝난 뒤 분식집에 모여 앉던 학생들,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려고 나왔다”고 말하던 학생들. 그들은 내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서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민주주의는 상호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다. 때로는 젊은 세대가 오래된 세대를 가르치고, 거리의 시민이 제도를 가르치며, 광장의 빛이 정치의 어둠을 가르친다.
1987년의 거리와 2024년의 광장으로 이어지는 사이 한국 민주주의는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멈칫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후퇴의 위험 앞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민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다시 나타났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노래를 부르고, 다른 도구를 들었지만, 시민은 다시 광장을 만들었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것은 과거의 형식이니 기억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식과 감각이다.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느끼는 감각, 권력이 국민 위에 설 수 없다고 말하는 감각, 나와 다른 사람의 권리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감각, 내 삶의 문제를 공동의 의제로 바꾸는 감각. 그 감각이 세대를 건너 이어질 때 민주주의는 살아 있다.
8.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기에 희망이다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 말은 절망의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희망의 문장이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참여할 수 있고, 다음세대가 새롭게 만들 수 있으며,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광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시민들이 다시 외로운 개인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시민사회는 곁에 있어야 한다. 분노가 냉소로 식지 않도록, 참여가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기억이 다음세대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도록, 지역 곳곳에 민주주의의 작은 교실과 공론장과 실천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거대한 순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야학의 교실에도 있었고, 수원의 거리에도 있었고, 2024년의 광장에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가 사는 동네, 일터, 학교, 온라인 공간, 시민단체의 작은 회의실 안에 있다. 그곳에서 민주주의는 오늘도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무엇을 이어갈 것인가. 그리고 다음세대와 함께 어떤 민주주의를 새로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일, 그것이 6월항쟁을 기념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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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7※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사람으로 살다가 안산에 정주한 사람이 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서 찐 안산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잇는 ‘기억과 약속의 길’ 시민 안내자이며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의 직무 지도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슴에 ‘별을 품고 사는 사람’으로 ‘춤추는 나무’. 4월이라 더 바쁜 고명선 활동가를 소개한다.
자신을 ‘춤추는 나무’라고 소개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20대 때부터 상담소에서 닉네임으로 ‘나무’를 썼다. 내 주변엔 뿌리 깊은 나무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이미 너무 많더라.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이웃들과 바람이 가는 대로 춤추며 살고 싶었다. 거창한 존재보다 주변과 어우러지는 사람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춤추는 나무로 매일 출근하는 일부터 소개해 달라.
안산의 한 카페에서 성인 발달장애인 바리스타 6명 곁에서 ‘직무지도원’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바리스타들이 샷 추출이나 음료 제조 실력은 정말 뛰어나다. 다만 숫자 계산, 재고 파악, 그리고 동료 간의 의사소통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속도에 맞춰 호흡하며 일상을 나누고 지역사회 안에서 당당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도록 곁을 지키는 ‘다정한 이웃’이 되는 일이다.

기억교실에서 '기억과 약속의 길'이 시작된다 사진 제공 4.16기억저장소

춤추는나무는 걷기를 좋아한다 사진 제공 고명선
장애인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와 이전의 이력이 궁금하다.
대학 시절,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재가장애인들에게 책을 배달하며 장애인 인권에 눈을 떴다. 이후 ‘장애여성공감’ 상담원으로 일했고, ‘성공회 나눔의집’에서 어린이와 어르신을 돌보고 성인장애인들과 함께 일했다.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활동의 뿌리가 됐다.
서울 사람이 어떻게 안산의 시민 활동가가 되었나?
결혼하면서 안산에 왔다. 세 아이 엄마로서, 2014년 4월 16일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다가 세월호 소식을 접했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믿고 큰 걱정 안 했다가, 저녁에야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화면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에 발만 동동 굴렀다. 다음 날,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아이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무작정 단원고로 달려갔다.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비는 밤이었다. 운동장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다. 여러 번 촛불을 들었지만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그 촛불이 제일 간절했다. 그 이후 화랑유원지, 안산문화광장, 광화문광장에서 나는 계속 촛불을 들었다.

기억과약속의길 시민안내자로 활동하는 '춤추는 나무' 모습 사진 제공 고명선
시민안내자로서 걷는 ‘기억과 약속의 길’은 무엇인가?
참사 직후부터 정부합동분향소와 단원고 교실을 찾아가는 ‘기억과 약속의 길’이 있었다. 나는 2017년 4.16기억저장소 ‘4.16 민주시민교육’에서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고잔동에서 별이 된 아이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수료생들과 함께 “누가 오든 안 오든, 우리끼리라도 한 달 한 번은 꼭 이 길을 걷자”고 다짐했다. 4.16기억교실에 모여서 단원고 추모조형물, 4.16기억전시관, 고잔동 마을의 골목골목을 지나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까지, 2~3시간을 시민들과 걷고 있다.
지난 7년여 동안 이 길을 지키며 느낀 건 ‘기억의 힘’이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떤 날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때론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모두 노란 우산을 쓰고 끝까지 걸었다. 걷는다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기억공간에서 서로의 기억을 꺼내고, 어떻게 기억하고 약속할까 이야기했다. 태풍 때 한 번 취소된 거 말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이 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이라고 본다.

기억교실 영상실에서 7반 허재강 어머니 양옥자 님(좌)과 1반 한고운 어머니 윤명순 님(우)과 함께 사진 제공 4.16기억저장소

가만히 있지 않겠다, 뭐라도 함께 해야 했다 사진 제공 고명선
‘기억과 약속의 길’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의례가 있다고 들었다.
매번 출발을 4.16기억교실에서 한다. 3월엔 3반, 4월엔 4반 이런 식이다. 교실에 모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출석’ 시간이 있다. 시민 안내자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그 아이 자리에 앉은 시민이 “네!”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아이들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그들의 삶과 꿈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기억과 약속의 길은 함께 기억하고 약속하는 연대의 길이다.
춤추는 나무는 별을 품은 사람들(이하 ‘별품사’)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2018년경 4.16 안산시민연대에서 ‘별을 품은 이웃’이라는 마을별 세월호 모임을 제안했다. 그때 나는 '함께크는여성울림'에서 상근 활동가로 피켓팅과 서명전 등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활동가들과 고민하다가 “울림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 활동하고 마음을 나누자”라며 회원들을 모아 소모임 ‘별품사’로 의기투합했다.

'별품사'는 단원고 약전부터 함께 읽었다 사진 제공 고명선

세월호 꽃누르미 공방의 5반 큰 건우 어머니 김미나 님 (좌) 4반 정차웅 어머니 김연실 님(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대단한 목표보다 그저 참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별이 된 아이들을 우리 가슴에 품고 살아가자는 뜻이었다. 별품사 첫 활동이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의 약전 읽기였다.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은 1반 1권으로 시작해 10반 10권까지, 그리고 선생님들과 일반인들 이야기 2권으로 책이 12권이다. 책을 펼쳐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이야기하는 게 처음엔 우느라 너무 어려웠다. 아이들의 꿈, 좋아했던 음식을 이야기했고 아이가 좋아한 음악을 모임에서 함께 들었다. 아이와 부모님들의 일상을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우리는 많이 울고 또 웃었다. 약전 전권을 2년에 걸쳐 완독 토론한 후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썼다. 그 결과물로 250편의 편지 모음집 《잊지 않을게 행동할게》를 펴내 기억교실 각 반에 갖다 두었다.
별품사는 세월호의 진실과 별이 된 아이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공부방’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세월호 관련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고 기억식 등 관련 행사에 참여해 왔다. 세월호 공방 어머니들을 모셔 와 꽃누르미와 다양한 기억 물품을 만들며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다. 416 희망 목공소에 가서 아버지들과 목공 실습도 했다. 올해는 별품사 새 회원들과 함께 약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3월에는 약전에 빠진 아이 중 1반 문지성 이야기를 어머니 안명미 님을 모셔서 생생히 듣는 시간도 가졌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유가족들 곁에서 안산의 한 귀퉁이를 지키는 온기가 되려고 한다.

약전에 빠진 1반 문지성 어머니 안명미 님(정면 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별품사가 엮은 284쪽 짜리 편지집 사진 제공 고명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소리를 내며 사진 제공 고명선
그 외에도 매달 피케팅과 생명 안전 공원 예배에 참여하지 않나.
피켓을 드는 것은 시민들에게 참사의 진실을 알리며 잊지 말자고 호소하는 직접적인 소통 창구다. 매월 둘째 수요일 5시 30분 광화문광장에서 ‘기억공간 지키기 집중 피케팅’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차가운 시선이나 “인제 그만 좀 해라”, “지겹지도 않냐?”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피켓을 놓지 않은 건, 다시는 어떤 참사도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고, 밝혀지지 않은 진상규명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매달 첫 일요일 오후 5시, 공사가 진행 중인 거친 흙바닥 위에서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노래한다. 예배에서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시간이 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이 모두 안산으로 돌아올 걸 믿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엄마아빠 마음이다. 4.16 생명 안전 공원은 별이 된 아이들의 봉안당을 포함해서 모든 시민이 찾아와 머무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생명안전공원 예배 사진 제공 고명선
생명 안전 공원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공원 부지 앞에서 반대하는 분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 “너희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라며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이 느끼는 불안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의 불안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깃을 눈앞의 노란 리본으로 정해버린 거다. 생명 안전 공원은 특정 누군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사를 성찰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다짐하는 공간이다. 그분들과도 결국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내 삶에 일어난 변화가 있다면?
배우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마누라가 바빠져서 얼굴 보기 힘들다”라더라. 그래서 “참사 이전에도 세 아이 엄마로 늘 바빴거든?” 농담해 줬다. 첫째 변화는, 내가 안산이라는 도시에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학교도 다녔기에 결혼하고 살게 된 안산이 늘 낯설었다. 그런데 참사가 터졌다. 어느 순간 차마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없더라. 그렇게 비로소 안산에 정주하는 진짜 ‘안산 사람’이 됐다.
둘째는, 참사 이후 그분들이 겪는 사회적 고립과 혐오를 보면서, “이분들 또한 우리 이웃으로서 존중받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함께 숨 쉬어야 하듯, 세월호 가족들도 우리 공동체 안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분들이 외롭지 않게 안산이라는 공동체의 품을 넓히는 것이 내 활동의 동력이자 철학이다.

별품사와 6반 신호성 어머니 정부자 님(앞줄 가운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세월호 가족들 곁에서 특별히 배운 점이 있다면?
10주기 때 ‘유류품 기록’ 작업을 함께했다. 아이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기록하며 부모님들이 들려주시는 목소리를 듣고, 다시는 어떤 참사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감히 “그 마음 다 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함부로 ‘공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됐다. 나는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이웃’이 되기로 했다.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고!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는 소회는 어떤가?
생명 안전 공원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건립되어 흩어져 있는 우리 아이들이 비로소 안산이라는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공사 부지를 지날 때마다 지난 10년여의 갈등과 눈물,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곳은 단순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무거운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산책하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일상을 나누고, 생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희망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그날, 안산이 비로소 참사의 아픔을 딛고 생명과 안전을 상징하는 새로운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춤추는 나무의 남은 꿈도 나눠달라.
내 곁에서 함께 일하는 발달장애인 동료들의 속도,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서로 연결된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살린다.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걸어가고 싶다.

생명안전공원이 완공돼도 계속 다정한 이웃으로 사진 제공 고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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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
작년 9월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된 시민참여기본법 제정과 국가시민참여위원회 설립이 본격화되고 있다. 작년 말 이해식 의원 등 29인으로 발의되었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추진부서를 신설하고, 올해 5대 핵심 입법과제 중 하나로 시민참여기본법 채택하여 추진 중에 있다. 시민사회에서도 114개의 시민사회단체와 네트워크가 참여한 ‘국가시민참여위원회 설립 시민사회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입법에 집중하고 있다. 오랫동안 시민사회 법 제정을 추진해 온 당사자 입장에서 볼 때 시민참여기본법 제정 여건이 우호적이고 기대감도 적지 않다. 이 법 제정과 기구 설립이 현실화된다면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활성화에 획기적인 큰 변화와 전환이 기대된다.
시민참여기본법 제정 배경과 목적
우선 시민참여기본법 제정 배경과 목적을 살펴보면, 먼저, 12.3 내란 극복 과정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보전과 확대의 제도적 보장 필요성이다. 요약하면 ‘광장’의 민주주의를 넘어 ‘일상’의 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시민참여기본법이 제기된 것이다. 대의제를 넘어 주권자인 시민이 일상에서 공공의 정책 결정이나 사회문제 해결과정에 직접적인 참여를 제도적·구조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되돌릴 수 없는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와 필요성에서 제안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사회 활성화의 제도·정책 발전과정에서 이루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87년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는 94년 민간운동단체지원법 발의, 2000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제정, 2003년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설치, 2020년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 대통령령 제정 등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시민사회 활성화 제도·정책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발전시켜 왔다. 지난 윤석열 정부의 극단적인 시민사회 제도의 폐지를 계기로 시민사회 관련 법 제정 및 체계 구축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내란을 극복하고 탄생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시민사회 과제로 반영된 것이 바로 시민참여기본법 제정과 국가시민참여위원회 설치이다.
시민참여기본법의 주요 내용 및 특징은 다음과 같다.
법의 목적으로는 ‘시민참여를 보장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종합적인 추진체계를 구축함으로서 민주주의와 지속가능한 발전, 공공의 이익증진 및 사회통합 향상(제1조)’을 명시했다. 2조에서는‘시민’의 정의를 최초로 규정하였고, ‘시민참여’영역 및 활동으로 시민정책참여, 시민숙의․공론화, 민주시민교육, 시민사회 등도 정의하였다. 3조에 이러한 참여를 ‘시민의 권리’로 명시하고, 4조에는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등 6개항을 기본원칙으로 제시하였다.
주요 시책으로는 ‘시민참여 종합체계 구축’으로 시민정책참여, 숙의․공론화, 민주시민교육, 시민사회 활성화 4개 영역의 실행과제로 구체화하였다. 이를 위해 5년 단위로 시민참여 종합계획 수립하게 하고, 중앙행정기관과 시도가 매년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실적을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모든 정부 조직이 시민참여 정책을 상시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가장 핵심이 되는 국가시민참여위원회 설치 조항에서는 우선 행정안전부 소속 차관급 행정위원회로 설치하도록 하고, 위원은 40명․4개 소위원회로 구성하고, 상임위원은 위원장 등 3명으로, 사무국은 별도로 구성하도록 하였다. 다만 위원회의 독립성 보장하고자‘필요한 업무를 독립적으로’수행·지원하도록(15조) 규정하였다.
아울러 지역시민사회위원회 관련해서는 시·도는 의무조항, 시·군·구는 임의조항으로 지역 조례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시·도의 경우 25조에 위원회를‘심의·의결 및 집행’기구로 규정해 사실상 국가시민참여위원회와 같은 행정위원회로 의무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 외 지역 시민참여지원센터의 경우 시·도와 시·군·구 모두 임의조항으로 규정랬으나, 다른 영역별 지원센터 등과의 충돌 또는 혼선을 막고자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 영역별 지원센터를 자율적으로 설치·운영할’수 있도록 하였다.
시민참여기본법이 공론화되면서 몇가지 쟁점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간단히 살펴보면
첫째, 시민참여의 4대 기능 포괄성이 갖는 논란과 의미다.
시민정책참여, 숙의·공론화, 민주시민교육, 시민사회 활성화로 제시된 시민참여 4대 기능이 서로 다른 기능과 성격이라는 점에서 통합이 타당한가에 대한 지적이다. 4대 기능이 다른 성격인 것은 맞지만 타당성이 지적될 사항은 아니다. 4대 기능을 크게 구분하면 시민정책참여·숙의공론화는 시민참여‘절차’로, 민주시민교육·시민사회 활성화는 시민참여‘기반’으로 나뉜다. 즉 당초‘절차’와 ‘기반’이 포괄된 형태의 통합법안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정책(행정)참여나 숙의·공론과 같은 시민참여 절차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절차를 활용할 시민적 역량, 시민사회적 역량이 갖춰지지 않고서는 제도적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기 어렵다. 민주시민교육은 시민의 참여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 기능으로, 시민사회 활성화는 시민이 보다 효율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조직을 결성하고 자원을 조달하고, 운영을 민주적으로 하기 위한 제도·정책적 기반을 만드는 기능이다. 그동안 절차법과 기반조성법의 분리 제정에 따른 비효율성을 시민참여기본법을 통해 통합적으로 구성․설계되었다는 것이 이법의 특징 중 하나이다.
둘째, 국가 기구화의 필요성과 우려. 그리고 기대
국가시민참여위원회와 같은 행정기구 설립이 타당한가 하는 논란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나 국민권익위원회(초기 국가청렴위원회)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 내 국가인권위나 국민권익위에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나 무용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기구가 한국의 인권보호와 향상, 부패척결 및 청렴도 향상에 기여한 바는 무시할 수 없다. 정권교체기마다 독립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세계적 선진 인권국가, 청렴한 국가로 인정받거나 도약하는데 두 기관의 존재는 매우 크다. 시민참여가 민주주의를 담보하는 핵심요소라고 한다면 국가시민참여위원회는 국가 주도성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층 강화하는 기구적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영국, 호주,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이 오래전부터 국가 차원의 행정기구인 공익위원회나 시민사회청을 설립·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민사회 포획화 우려보다는 시민사회 활성화 및 이를 통한 민주주의 강화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크다.
셋째, 지역 시민참여위원회의 역할과 구성에 대한 우려, 지역혁신기구로서의 가능성
법안 상 지역 시민참여위원회는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제시되었다. 지역 시민사회로 보면 매우 생소한 구조고, 과연 목적한 바대로 구성․운영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그동안의 시행착오 등을 고려하면 우려 지점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주어진 기회와 가능성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실제 시민참여위원회가 지역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변화·혁신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기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설립된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의 「서울민주주의위원회」의 선행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서울민주주의위원회는 ‘더 넓고, 더 깊고, 더 많은 시민참여와 민관협치 활성화 등 시민민주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서울시 시민민주주의 기본조례’에 의해 구성되었다. 이를 위해 「1국(2급)–4과-16팀」으로 50여명의 전담인력(개방직 공무원 포함)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위원장은 민간 상임으로, 위원은 민간 비상임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다. 주요 과와 업무는 • 온·오프 시민공론장과 민주시민교육, 행정참여 등을 담당하는 민주주의담당관, • 숙의예산제를 운영하는 시민숙의예산담당관, • 시민사회 공익활동, 민관협력을 담당하는 협치담당관, • 주민자치와 마을공동체를 담당하는 마을공동체담당관으로 운영되었다. 시민참여기본법에서 제시된 4대 기능과 매우 유사하다. 시·도 시민참여기본조례의 선행모델로 서울시 시민민주주의기본조례를, 시·도 시민참여위원회 선행기구로 서울민주주의위원회를 참조한다면 지역 시민참여위원회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비전, 구성과 운영 등을 보다 전략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 사례에 대한 평가 논란이 있지만 시·도 차원에서 시민참여와 시민사회 활성화, 지역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합의제 행정기관을 혁신적으로 도입한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지역별로 어떻게 시민참여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지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한단계 발전시키는 전략기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지역 합의제 행정기관이 2019년 서울 1개 지역이었다면, 향후 1-2년 내에는 17개 광역 시도에서 전면 시행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 풀뿌리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활성화, 행정변화의 전환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시민참여기본법과 국가시민참여위원회의 성과적 추진을 위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시민사회 과제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간 -주창형, 민주시민교육, 마을, 사회적경제, 공익활동 등 –의 긴밀하고 전략적인 연대와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시민사회는 제도 및 정책 대응에서 전체 영역간 연대보다는 개별 영역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영역간 상시적이고 긴밀한 연대의 부족은 시민사회 전체의 전략실행과 사회적 영향력 제고가 어려웠다. 그러나 통합법 형태로 제시된 시민참여기본법이나 지역의 시민참여기본조례는 시민사회 다양한 영역이 함께 구성․운영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이다. 영역간의 전략적 연대와 협력 없이 추진이 불가능하다. 특정한 영역이 과도하게 주도할 경우 소외된 영역의 불만 제기나 영역간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 지역 변화의 전략적 수단으로 제도와 위원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자 한다면 영역별 시민사회의 연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영역별로 나누어져 시민사회의 연대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지난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 스스로 영역간 대화나 합의 회의, 숙의·공론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준비해야 한다.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지역에서의 상시적 연대․협력의 틀을 강화해야 한다. 이번 과정이 시민사회의 연대의 재구성, 지역운동과 지역 시민사회 재구성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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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5“성장을 넘어 성숙으로, 경기도민의 삶을 바꾸는 경기도” 만들기 위한 경기시민사회의 대장정이 시작되다!
2026년 지방선거 경기도 12대 정책과제 발표 -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 1월 6일 오전 11시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2026년 지방선거 경기도 12대 정책과제’ 기자회견을 갖고 6월 3일 지방선거 대응의 대장정에 나섰다.
이번 12대 정책과제 선정 배경은,
- 헌정질서를 위협한 계엄 시도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중앙정치의 문제를 넘어 지방정부의 책임성과 민주성, 일상적 행정과 정책의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 그리고 이번 2026년 지방선거는 단순한 인물 선택과 성장 위주 정책이 아니라 도민주권 회복과 도민의 삶을 바꾸는 성숙한 정책 선택의 선거가 요구된다.
- 또한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개별 의제를 넘어, 시민참여·인권·성평등·돌봄·기후·교육·평화가 연결된 종합적 경기도정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


그동안의 경과는 아래와 같다.
- 2025년 2월 25일(화) 정기총회 : 2026년 지방선거 대응 결의
- 2025년 9월 10일(수) 운영위원회 : 2026년 지방선거 대응 TF 구성 결정
- 2025년 9월 29일(월) 2026년 지방선거 대응 TF 1차회의 : TF 구성 및
방향 수립과 정책과제 선정 추진 일정 확정
- 2025년 11월 5일(금) 각 영역별 정책과제 제안 취합 및 정리
- 2025년 12월 10일(수) 운영위원회 및 1차 정책워크숍 : 제안 정책 총정리
- 2025년 12월 23일(화) 2차 정책워크숍 : 각 정책과제 발표 및 핵심정책과제 선정 논의
- 2025년 12월 29일(월) 2026년 지방선거 대응 TF 2차회의 : 12대 핵심정책과제 선정 및 기자회견 준비 논의
또한 이번 12대 정책과제 선정의 원칙은,
- 민주주의·기본권 중심 원칙으로 시민 참여 확대와 행정의 투명성·책임성 강화, 차별 없는 도민의 존엄과 권리 보장, 일상에서 체감 가능한 정책을 핵심 기준으로 설정했다.
- 위기 대응과 사회전환 원칙으로 기후위기, 사회적 양극화, 성차별, 돌봄 위기에 대응하는 구조적 전환 과제를 우선 반영했다.
- 실행·협치 기반 원칙으로 지방정부의 조례 등의 제도화가 가능하며, 시민사회·도민·의회가 함께하는 거버넌스 방식으로 추진 가능한 정책 중심으로 선정했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 도민의 삶을 바꾸는 경기도’라는 슬로건 아래 내세운 ‘경기도 12대 정책과제’는 아래와 같다.
① 시민참여 : < (가칭)경기도민주권 시민참여위원회(또는 경기도시민참여위원회) 설치를 통한 경기도정의 민주성·개방성·책임성·혁신성 강화 >
- (가칭)경기도민주권 시민참여위원회(또는 경기도시민참여위원회) 설치
- 경기도 시민참여 플랫폼 및 정책환류 시스템 구축
② 성평등 : < 경기도 성평등 추진체계 강화 >
- 포괄적 성평등 기준의 도입을 반영한 「경기도 성평등 기본 조례」 개정
- 여성 노동환경 개선 정책 확대를 위한 추진체계 강화
- 「경기도 여성 평화 정책 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
- 성평등 기후 정책 추진을 위한 전담 부서 신설
- 젠더 정의 실현을 위한 노동·돌봄 정책 추진체계 구축
③ 기후환경 : < 경기도 물관리 일원화 정책 시행 – 수자원관리국(가칭) 신설 및 물순환·하천복원 전략 구축 >
- 경기도 물관리 일원화 및 ‘수자원관리국’(가칭) 신설
- 경기도 물순환 촉진 종합계획 수립
- 경기도 하천 복원 및 재자연화 전면 추진
- 물순환 취약성 개선형 인프라 구축
④ 교육 : < 경기도-시·군 공동 ‘교육격차 해소 종합전략’ 수립 >
- 경기도 차원의 교육격차 해소 종합계획 수립 및 지역 맞춤형 예산 배분
- 원도심·농촌 교육력 회복을 위한 별도 교육·문화·진로 인프라 집중 투자
⑤ 문화·예술 : < 예술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사회보장 확대 >
- 청년 예술인 기본소득 도입
- 예술인 참여소득 도입
- 예술인 기회소득 대상 및 금액 확대
⑥ 복지 : < 모든 경기도민이 누리는 돌봄 보장 – 경기도형 통합돌봄 구축 >
- 경기도통합돌봄지원 체계 확대 및 강화
- 경기도형 단기회복형 지원주택(중간집) 모형 개발 및 확산
- 경기도형 지역사회 재활모델 개발
⑦ 사회적경제 : <행정-당사자조직-NGO-의회가 함께하는 정책결정 거버넌스 제도화>
- 「경기도사회적경제 4자 협치 위원회」 설치 및 실질적 권한 부여
- ‘기본사회’ 핵심 공급 주체 지정
- 시·군별 '균형발전 로드맵' 추진
- 다자간 합동 정책 평가 및 환류
⑧ 언론미디어 : <지역신문 공적 지원 체계 구축>
⑨ 인권 : <경기도 차별금지 조례 제정>
⑩ 장애인 : <장애인의 권리가 권리답게 보장되는 경기도>
-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인건비 별도 편성 및 도비 지원 확대를 통한
도입대수당 운전원 2.5인 보장 계획 수립
- UN탈시설가이드라인에 기반한 경기도 장애인 탈시설 5개년 계획 수립 및 탈시설 지원 강화
⑪ 주거·도시계획 :
- GH 공급 주택 '100% 사용 승인 후 분양' 의무화
- 후분양 재원 안정화 기금 조성 및 재무 구조 개혁
- 무주택자 맞춤형 '경기도형 후분양 브릿지론' 도입
⑫ 평화통일 : <경기도의 평화정책 사업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참여·협력 제도화>
- (가칭)경기도 평화센터 신설 및 (가칭)경기평화회의 구성
- (가칭)경기도 평화.통일.민주시민교육위원회 구성

함께 참여한 단체는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소속 단체와 연대단체들인 경기교육희망네트워크,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경기복지시민연대, 경기시민사회포럼, 경기여성단체연합, 경기여성연대,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경기환경운동연합, 경기민예총, 경실련경기도협의회, 다산인권센터, 참교육학부모회 경기지부, 평화비경기연대, YMCA경기도협의회, YWCA경기도협의회, 경기시민연구소 울림, 사회적경제활성화 경기네트워크, 경기자주통일평화연대, 경기평화교육센터 등 경기도 내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했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1월 말까지 경기도 소재 각 정당을 찾아 12대 정책과제를 전달하고 경기도지사 공약반영을 요구하였다.



앞으로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출마예정자, 후보자들 대상으로 정책간담회와 정책제안서를 공식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또한 언론 홍보(보도자료, 기자회견, 언론 정책과제 공론 및 인터뷰) 그리고 대도민 대상 정책과제 온오프라인 홍보(카드뉴스, SNS 캠페인 등)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리고 각 정당의 후보자들이 선정이 되면 후보자별 정책협약식 추진(공개적 서명·사진 공개)과 지방선거 이후에는 후보자별 공약 및 정책 반영 현황을 분석하고 정책선거 대응 평가 및 향후 과제 토론회 개최할 예정이다. 향후에는 당선자 공약 이행 점검 시스템 가동하여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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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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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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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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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합창단(광주): 2015년 6월 ‘합창’을 통해 민주 인권 평화로 상징되는 ‘광주정신’을 전달하고, ‘광주공동체’의 희망을 노래하고자 창단했다. 2017년, 2018년 창작 뮤지컬 ‘빛의 결혼식-임을 위한 행진곡’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615시민합창단(서울): 2009년 8.15행사 공연을 시작으로, 민족의 역사와 겨레의 삶에 수많은 아픔을 안긴 분단 장벽을 허물고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창단했다.
1987합창단(광주): 광주 전남의 1980년 5.18민중항쟁의 불꽃을 1987년 6월 항쟁의 횃불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헌법을 쟁취한 그 뜻을 노래와 합창으로 계승하고자 2018년 창단했다.
광주흥사단합창단(광주):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민족운동 단체 흥사단. 독립운동, 대한민국의 민주화, 청소년 계몽, 육성 운동으로 2017년 3월 창단, 형화와 자유를 노래한다.
박종철합창단(부산):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와 6월 항쟁의 정신을 기리고, 시민문화운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2016년 8월 16일 창단했다.
416합창단(경기 안산):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일반 시민으로 2014년 창단됐다. 소외와 불의, 불평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에 함께 한다.
이소선합창단(서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의 영결식을 계기로 2011년 결성된 노동자 합창단이다. 서울시로부터 2020년 전문예술 단체로 지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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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항쟁의 연원 오월광주로 연어처럼 몰려오는 민주시민들.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하는 오월 광주 공동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금남로에서 새로운 세계를 전망하다.
항쟁의 연원 5·18: 계엄의 밤, 장갑차 앞을 맨몸으로 가로막은 시민들의 용기는 광주 시민군의 헌신이었습니다. 남태령의 새벽, 고립된 농민들을 끝내 지켜낸 연대의 마음은 오월 어머니들의 사랑이었습니다. 한남동의 눈보라를 맞으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낭만은 민주대성회의 횃불이었습니다.
승리의 약속 5·18: 오월의 기억으로 내란과 맞서 싸우고 있는 국민들이 민주주의 승리의 염원을 안고 광주로 달려올 것이며, 광주 공동체가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내란 청산과 민주 승리를 약속하는 축제를 펼칩니다.
미래의 표상 5·18: 5·18은 미래의 표상으로 승화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민주국가, 국가 주권이 실현되는 자주 국가는 오월 광주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입니다. 계급과 계층, 성별과 세대를 넘어 누구나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대동세상을 오월 광주가 먼저 체험했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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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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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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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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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재난 참사 연대기,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
2023년 12월 16일 발족한 재난 참사 피해자 단체들의 연대체다. “누구도 우리처럼 오래, 우리만큼 깊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마음으로 활동한다.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 소속 9개 단체는 다음과 같다.
1) 2.18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2003. 2. 18): 대구 중앙로역 방화 화재로 최소 192명이 희생된 사건. 전동차 내장재, 1인 승무원제,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의 미흡한 초기 대처가 피해와 고통을 키웠다. 추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2) 4.16 세월호 참사(2014. 4. 16): 인천발 제주행 여객선이 진도 해상에서 침몰, 국가의 구조 방임으로 단원고 학생 250명을 비롯한 승객 등 304명이 희생된 재난 참사이자 국가 폭력 사건.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생명 안전 공원 건립 등의 문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3) 7.18 공주 사대부고 병영 체험학습 참사(구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2013. 7. 18): 학교 체험학습으로 참가한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공주 사대부고 2학년 5명이 희생된 참사. 학교의 관리 감독 미흡, 무자격 교관 운영, 태안군의 관리 감독 소홀, 복종의 문화 역시 참사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4) 가습기 살균제 참사: 1994년부터 17년 동안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시민이 심각한 건강 손해를 입은 한국 최초의 생화학 제품 재난. 2023년 12월 31일 현재 공식 사망자 1,843명, 피해 인정자 6,048명으로 현재도 매일 피해가 드러나는 중이며, 피해 인정 싸움이 진행 중이다.
5) 광주 학동 참사(2021. 06. 09.): 학동 4구역 재개발을 위해 HDC현대산업개발의 하도급 업체가 철거를 진행 중 빌딩이 붕괴하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한 사건. 안전조치 미흡 무리한 철거 등이 주요 원인. 현재까지도 피해 보상과 추모 문제가 남아 있다.
6)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1999. 06. 29.): 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한 사건. 단일 재난으로 최대 피해자 발생. 사주의 탐욕적 이윤 추구와 관계 공무원들의 결탁이 원인으로 지적되었으나 처벌은 미흡. 현재까지도 추모의 문제가 남아 있다.
7)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2017. 03. 31.): 남대서양을 항해하던 철광석 운반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선사 폴라리스의 과실로 침몰해 22명이 희생된 사건. 원인 규명과 미수습자 수습이 해결되지 않았다.
8)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1999. 06. 30.): 유치원생 등 23명이 사망한 화재 사건. 모기향에 의한 발화로 결론지었지만, 유가족들은 누전과 관리 소홀, 비리 결탁 주장.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요구가 있다.
9)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인천 학생 화재 참사, 1999. 10. 30.): 상가 화재로 청소년 등 5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친 사건. 불법영업과 공무원 간의 유착 비리가 원인을 제공했으나 피해자들(평균연령은 17세)의 호프집 출입에 대한 비난으로 2차 가해가 심각했다. 일부 피해자의 피해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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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재난피해자권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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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의 진실도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되어 공개되지 않고 봉인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2년 반이 되었음에도, 이태원 참사 특조위는 아직 진상조사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유가족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참사의 모든 진실을 밝히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순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부디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이 긴 여정에 저희와 함께해 주십시오. 이 땅의 아이들이 안전한 일상을 누리며 각자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든 재난 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 고 이재현 군 어머니 송해진 님 발언문 중
16살 고등학생 고 이재현 군(2006. 4. 17.~ 2023. 12. 12.)은 이태원 참사의 159번째 희생자로 세상을 떠났다. 참사로 가장 가까운 친구 2명을 잃고 극심한 죄책감과 2차 가해로 고통받았다. “이태원에 놀러 간 게 잘못”이라는 말을 비롯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나 허위 정보 유포, '순수한 유가족다움' 강요, 노골적인 조롱·혐오 표현, 성희롱 및 욕설 등이었다. 정부는 2차 가해에 적절한 대처 대신 ‘상처를 딛고 일어나려는 본인의 노력과 의지가 문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심한 참사 생존자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계속 지적하고 있지만 달라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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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의 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또래가 세월호를 계기로 처음 광장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때 어른들은 저희 세대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세월호 세대’, 4.16 세대라 명명된 저희 또래는 “그러면 나는 어떤 어른이자 시민이 되어야 할까?”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풀리지 않은 질문을 20대 내내 품고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세월호가 청년 세대에게 던졌던 그 질문들이 우리를 2024년 계엄의 광장으로 불러들였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무장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우리를 위협하더라도,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우리를 엮어주는 연대의 끈이자 신뢰의 안전망이 되었고, 세월호는 우리가 다양한 색깔의 깃발과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서 춤출 수 있게 해 준 프리즘이었습니다. 20살의 세월호가, 30살의 계엄령을 막아주었습니다. 윤석열 탄핵 결정문에는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습니다. 세월호 이후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
- 남아름 님 발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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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 광장에서 집회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엄마의노란손수건분들이 거기서 서명 받으니까 저도 그냥 껴서 서명 받고. 그러다 장마잖아요, 7월이면. 서명지가 젖어요. 그러면 몸으로 가리고 이렇게 밑에 집어넣고 그랬었는데 지나가던 분이 편의점 앞에 파라솔 있잖아요. 그걸 사 오셨더라고요. 10만 원 줬대요. 그런 돌봄의 형태로 표현하는 분이 되게 많았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나도 애 키우는 엄마라서, 나도 아빠라서, 나도 선생님이라서, 그냥 지나가던 사람 아무나 가서 연대하고. 모두가 환영받고 모두가 평등하게 고생하고. 시민운동의 문화를 바꾼 굉장히 결정적인 계기가 세월호 부모님들의 활동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현재의 광장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평등인 거 같아요, 평등. 안전.”
- 정보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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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