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도시가 식탁을 바꿀 수 있을까?

한 도시가 시민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를 먹지 말자"고 제안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무엇을 먹을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고, 특히 고기를 사랑하는 문화권이라면 그런 제안은 반발만 부를 것 같다. 벨기에는 홍합과 감자튀김, 소고기 맥주 스튜로 유명한, 그야말로 육식의 나라다. 그런데 바로 그 벨기에의 한 도시가 세계 최초로 도시 차원의 '채식의 날'을 선언했고, 그것을 성공시켰다.
인구 약 26만 명의 항구도시 겐트(Ghent).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에 위치한 이 도시는 2009년 5월 13일, 매주 목요일을 '채식의 날(Donderdag Veggiedag, 목요일 베지데이)'로 공식 선언했다. 시민들에게 목요일 하루만이라도 고기와 생선을 내려놓고 채식을 해보자는 캠페인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도시 전체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관공서 구내식당, 시립 학교와 어린이집이 목요일마다 채식 식단을 기본으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도시의 식당들이 채식 메뉴를 개발했으며, 시민들의 식습관 자체가 바뀌었다.
겐트의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환경·건강·동물복지라는 공익적 가치가 어떻게 개인의 선택을 넘어 도시의 제도와 문화로 정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행정이 어떻게 협력했는지, 강제가 아닌 방식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기후위기 시대에 먹거리 정책을 고민하는 한국의 여러 도시, 그리고 경기도에도 실질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2. 시작 — 시민단체에서 출발한 아이디어

겐트의 채식의 날은 정부가 위에서 만들어낸 정책이 아니었다. 그 출발점은 EVA(Ethisch Vegetarisch Alternatief, 윤리적 채식 대안)라는 벨기에의 채식 시민단체였다. 벨기에 최대의 채식 관련 비영리단체인 EVA는 플랑드르 지역 전역에 채식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EVA의 접근 방식은 영리했다. 처음부터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도시의 채식 친화적인 장소들, 즉 채식 메뉴를 파는 모든 식당, 호텔, 슈퍼마켓, 감자튀김 가게를 일일이 조사해 '채식 지도(Veggie Map)'를 만들었다. 이 지도를 본 식당들이 스스로 채식 메뉴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없던 수요가 지도를 통해 가시화되자, 공급이 따라온 것이다.
2005년 플랑드르 정부가 재정 지원에 나섰고, EVA는 2007년 겐트시와 협력해 첫 번째 '목요일 베지데이'를 시작했다. 이 캠페인의 목적은 명확했다. 육류 소비를 줄이고, 환경을 지원하고, 윤리적 식생활을 받아들이며, 사람들에게 채식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9년 5월 13일, 겐트시의 환경·사회 담당 부시장 톰 발타자르(Tom Balthazar)가 매주 목요일을 공식 '채식의 날'로 선언하면서, 이 캠페인은 유럽 정치사에 기록되는 사건이 됐다. 시민단체가 씨앗을 뿌리고, 도시 정부가 그것을 제도로 공식화한 협력 모델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흥미롭게도 왜 하필 목요일이었는지에 대한 답은 의외로 소박하다. EVA 관계자에 따르면 목요일을 고른 것은 전략적 결정이라기보다 미적 선택에 가까웠다. 네덜란드어로 '돈더르닥 베지데이(Donderdag Veggiedag)'가 운율이 좋게 들렸기 때문이다. 거창한 명분보다 시민들이 기억하기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름을 택한 것이다.
3. 왜 채식인가 — 환경·건강·동물복지의 교차점

겐트가 채식의 날을 도입한 배경에는 명확한 근거들이 있었다. 채식이라는 하나의 실천이 환경, 건강, 동물복지라는 세 가지 공익적 가치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환경 측면의 근거가 가장 강력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당 부분이 축산업에서 발생한다고 평가해왔다. 가축, 특히 소가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효과를 가진다. 게다가 육류 생산은 막대한 양의 물과 토지를 소비한다. 겐트시는 이 논리를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수치로 번역했다. 겐트시의 계산에 따르면, 만약 24만 3천 명의 겐트 시민 전체가 목요일 채식의 날에 참여한다면, 그 효과는 도로에서 자동차 1만 9천 대를 없애는 것과 맞먹는다.
건강 측면의 근거도 분명했다. 육류 섭취가 많은 식단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고, 이는 심혈관 질환, 일부 암, 당뇨병의 위험을 높인다. 세계보건기구와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심장질환, 암, 당뇨, 비만 예방을 위해 하루 최소 400그램 이상의 채소와 과일 섭취를 권고한다. 채식의 날은 시민들이 이 권고에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동물복지 측면의 가치도 빼놓을 수 없다. 육류 소비를 줄인다는 것은 곧 공장식 축산에서 고통받는 동물의 수를 줄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VA라는 단체의 이름 자체가 '윤리적 채식 대안'인 만큼, 동물에 대한 윤리적 고려는 이 캠페인의 근본 정신 중 하나였다.
이 세 가지 가치가 하나의 실천으로 수렴된다는 점이 채식의 날의 강점이었다.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도,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도, 동물을 생각하는 사람도 모두 같은 행동에 동참할 수 있었다.
4. 어떻게 정착시켰나 — 강제가 아닌 설계
겐트의 채식의 날이 성공한 진짜 비결은 '어떻게'에 있다. 도시는 시민들에게 채식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채식이 자연스럽고 쉬운 선택이 되도록 환경을 설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 부문이 먼저 움직였다는 점이다. 2009년부터 겐트의 시립 학교와 어린이집은 목요일에 따뜻한 채식 점심을 기본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싸 오는 아이들에게도 목요일엔 채식으로 준비하도록 권장했다. 관공서 구내식당과 공공 서비스도 목요일엔 채식을 기본 메뉴로 삼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기본값(default)'이었다는 점이다. 고기를 원하는 학부모는 별도로 신청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채식이 제공됐다. 선택의 자유는 보장하되, 기본 방향을 채식으로 설정한 넛지(nudge) 전략이었다.
식당과 요식업계를 끌어들인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겐트시와 EVA는 '베지케이션(Veguca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요리사들에게 채식 요리법을 교육했다. 도시는 채식 요리사 양성에 수만 유로를 투자했고,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채식 요리의 비법을 가르치는 강좌도 열었다. 채식이 '맛없는 희생'이 아니라 '맛있는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요리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자원을 집중한 것이다.
소통 전략도 치밀했다. 겐트시는 25만 명의 시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매년 대규모 행사를 열고, 시민들이 참여를 약속하는 서명 명단을 만들고, 전용 웹사이트와 월간 매거진을 운영했다. 요리 강좌와 요리책을 통해 가정에서도 채식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눈에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런 다층적 설계의 결과, 채식의 날은 겐트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채식의 날은 2009년 미래세대를 위한 대상(Big Prize for Future Generations)을, 그 전해인 2008년에는 최고의 프로젝트로 식품건강상(Food and Health Award)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5. 성과 — 도시의 식탁이 바뀌다

겐트의 채식의 날은 실제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을까. 수치들이 그 답을 보여준다.
우선 시민 인지도와 참여율이 높았다. EVA에 따르면 겐트 시민의 다섯 명 중 네 명이 이 캠페인을 알고 있었고, 세 명 중 한 명이 참여했다. 캠페인이 특정 소수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문화로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식습관의 실질적 변화도 확인됐다. 연구에 따르면 벨기에인의 43%가 목요일 베지데이 덕분에 이전보다 고기를 덜 먹게 됐고, 약 40%는 목요일이 아닌 다른 날에도 채식을 하게 됐다. 하루의 캠페인이 일주일 전체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의 인구 구성 자체가 바뀌었다. 겐트의 채식 인구 비율은 약 7%에 이르러, 벨기에 전국 평균인 2.3%를 크게 웃돌게 됐다. 채식의 날이라는 정책이 실제로 더 많은 시민을 채식으로 이끌었다는 증거다.
식당 생태계도 변했다. 캠페인 이전 겐트에서 채식 메뉴는 제한적이거나 아예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지금 겐트의 채식 지도에는 100곳이 훌쩍 넘는 음식점이 등록되어 있고, 완전 채식 식당만 15곳 안팎에 이른다. 겐트는 인구 대비 채식 식당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며 '유럽의 채식 수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국제적 파급력도 상당했다. 겐트의 사례는 캐나다에서 일본, 호주에서 스웨덴까지 국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브라질 상파울루, 독일 브레멘, 미국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등 세계 여러 도시가 유사한 캠페인을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벨기에 국내에서도 브뤼셀, 하셀트, 메헬렌 등이 목요일 채식의 날을 따랐다.
6. 캠페인을 넘어 정책으로 — '겐트 엔 가르드'
겐트의 진정한 성취는 채식의 날을 일회성 캠페인으로 끝내지 않고, 도시의 종합적 먹거리 정책으로 발전시켰다는 데 있다.
2013년 겐트시는 '겐트 엔 가르드(Gent en Garde)'라는 이름의 도시 먹거리 전략을 출범시켰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독자적인 도시 먹거리 정책을 수립한 사례 중 하나다. 이 전략은 짧고 지속 가능한 먹거리 공급망 구축,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 먹거리를 통한 사회적 부가가치 창출, 음식물 쓰레기 감축, 음식물 폐기물의 재활용이라는 다섯 가지 전략 목표를 중심으로 한다.
겐트시는 이 전략을 이끌기 위해 농업, 유통, 요식업, 시민사회, 지식기관 등 먹거리 시스템의 다양한 부문에서 온 약 30명으로 구성된 '먹거리 위원회(Food Council)'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2018년부터 자체 예산을 갖고 혁신적인 먹거리 프로젝트를 지원해왔다. 연간 약 6만 유로의 예산으로 지금까지 27개 프로젝트가 지원을 받았다.
성과는 구체적이다. '푸드세이버스(Foodsavers)' 프로젝트는 2년 만에 1,000톤이 넘는 잉여 식품을 5만 7천 명 이상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했다. 채식의 날 캠페인은 이 종합 전략 안에서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으며 지속됐다.
겐트의 먹거리 정책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2019년 유엔 글로벌 기후행동상을 받았고, 2021년에는 유로시티즈 어워드의 '농장에서 식탁까지' 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2021년 11월, 겐트는 벨기에 최초로 지역 단백질 전환 실행 계획을 발표하며, 2050년까지 기후중립적인 먹거리 공급망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캠페인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도시의 장기 비전으로 확장된 것이다. 개인의 실천에서 시작된 것이 제도와 문화로 정착하는 완결된 경로를 겐트는 보여준다.
7. 한국·경기도와의 비교 —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한국에서도 채식 급식과 저탄소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겐트의 경험과 비교하면 접근 방식에서 배울 점이 뚜렷하다.
한국의 여러 교육청과 지자체가 '채식의 날'이나 '그린 급식의 날'을 도입해왔다. 서울시교육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그린 급식 활성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한 달에 두 번 채식의 날을 운영하는 방침을 세웠고, 인천·울산·부산·전북·광주 등에서도 초중고 채식 급식을 도입했다. 경기도 역시 공공기관과 기업체 급식소 등에 '채식의 날' 운영을 권장하고 경기도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도록 채식 생활 실천을 지원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했다. 2025년 9월에는 경기도의회·경기도교육청의 후원으로 '2025 기후급식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채식 급식 도입 과정에서는 갈등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채식의 날 방침을 내놓자 축산관련단체협의회가 "일방적 채식주의 확산 정책이 육식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조장한다"며 반발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채식급식이 나오는 날이면 동네 치킨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말이 나오거나, 성장기 학생들의 영양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조리 인력 부족 등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하는 교육 당국 관계자들도 있었다.
겐트의 경험은 이런 갈등에 대한 힌트를 준다. 첫째, 겐트는 강제하지 않고 '기본값'으로 설정하되 선택권을 남겼다. 고기를 원하는 사람은 신청할 수 있게 함으로써 반발을 줄였다. 둘째, 겐트는 '맛'에 투자했다. 채식이 희생이 아니라 매력적인 선택이 되도록 요리사 교육과 메뉴 개발에 자원을 집중했다. 채식급식이 '먹을 게 없는 날'이 되면 실패하지만, '맛있는 새로운 경험'이 되면 성공한다. 셋째, 겐트는 시민단체와 행정이 협력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아니라, EVA라는 시민단체가 먼저 문화를 만들고 행정이 뒷받침하는 구조였기에 저항이 적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이런 접근이 효과를 보인 사례가 있다. 한 채식 급식 연구학교에서는 채식이 지구환경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는 학생 비율이 사전 59.2%에서 사후 90.9%로 크게 증가했다. 무작정 도입하기보다 구성원의 공감과 동참을 끌어내며 시행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결론이었다. 겐트의 교훈과 정확히 일치한다.
8.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겐트의 사례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만한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공익적 가치는 '쉬운 실천'으로 번역될 때 확산된다. 겐트는 "기후를 위해 채식하라"는 거대한 구호 대신 "목요일 하루만 고기를 내려놓자"는 작고 구체적인 행동을 제안했다. 경기도의 환경·먹거리 공익활동도 시민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의 형태로 설계될 때 더 널리 퍼질 수 있다.
둘째, 시민단체와 행정의 협력이 지속 가능성을 만든다. 겐트의 채식의 날은 EVA라는 시민단체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행정의 제도적 뒷받침으로 완성됐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와 같은 중간지원조직이 시민단체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행정의 자원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때, 공익활동이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지속적인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다.
셋째, 기록과 확산이 변화를 굳힌다. 겐트가 채식 지도를 만들고, 성과를 수치로 측정하고,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경험을 공유한 것이 캠페인을 세계적 모델로 키웠다. 경기도의 공익활동도 그 과정과 성과가 꼼꼼히 기록되고 공유될 때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실제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아카이브에도 '기후 위기의 대안, 채식 밥상' 같은 콘텐츠가 기록되어 시민들에게 채식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지역의 먹거리·환경 공익활동을 기록하는 일은, 겐트가 그랬듯 작은 실천이 문화로 자리 잡는 과정을 뒷받침하는 일이다.
마무리 — 하루의 변화가 도시를 바꾼다
2009년 겐트가 목요일을 채식의 날로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육식의 나라에서 그런 시도가 성공할 리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 겐트는 유럽의 채식 수도가 됐고, 시민의 3분의 1이 채식의 날에 동참하며, 전국 평균의 세 배에 달하는 채식 인구를 가진 도시가 됐다.
이 변화의 비결은 강제가 아니라 설계였다. 시민단체가 씨앗을 뿌리고, 도시가 그것을 제도로 키우고, 요리사와 학교와 식당이 함께 참여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하루, 그것도 일주일에 단 하루의 작은 변화가 도시 전체의 식탁을, 나아가 도시의 정체성을 바꿔놓았다.
먹는 것만큼 개인적인 일도 없다. 그러나 겐트는 그 개인적인 선택이 모이면 도시를 바꾸고, 환경을 지키고, 문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경기도의 식탁 위에서도, 작은 실천 하나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상상해볼 만하다. 공익은 거창한 곳이 아니라, 목요일 점심 한 끼에서 시작될 수 있다.
<참고 자료>
- Stad Gent(겐트시) 공식 홈페이지 — Sustainable food / Gent en Garde : https://stad.gent/en/city-governance-organisation/city-policy/making-ghent-climate-neutral-2050/gent-en-garde-towards-more-sustainable-food-system
- Visit Gent(겐트 관광청) — Green travel and mindful food consumption : https://visit.gent.be/en/good-know/practical-information/why-ghent/green-travel-and-mindful-food-consumption
- SBS Food — How Ghent in Belgium became the vegetarian capital of Europe : https://www.sbs.com.au/food/article/how-this-meat-loving-city-became-the-vegetarian-capital-of-europe/4blk3o39i
- Mic — How the meat-loving city of Ghent became the veggie capital of Europe : https://www.mic.com/articles/185650/how-the-meat-loving-city-of-ghent-became-the-veggie-capital-of-europe
- NYC Food Policy Center — Veggie Thursday, Ghent: Urban Food Policy Snapshot : https://www.nycfoodpolicy.org/veggie-thursday-ghent-urban-food-policy-snapshot/
-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 — Ghent en Garde: Creating Structural Change through Local Food Policy : https://unfccc.int/climate-action/momentum-for-change/planetary-health/ghent-en-garde
- Eurocities — Ghent's food revolution : https://eurocities.eu/stories/ghents-food-revolution/
- Metropolis — Ghent en Garde : https://use.metropolis.org/case-studies/ghent-en-garde
- Interreg Europe — Local food strategy Gent en Garde : https://www.interregeurope.eu/good-practices/local-food-strategy-gent-en-garde
- Interreg Europe — Gent en Garde Sustainable Food Strategy of Ghent : https://www.interregeurope.eu/good-practices/gent-en-garde-sustainable-food-strategy-of-ghent
- Vegsphere — Donderdag Veggiedag: Nearly 50% of Ghent population goes veggie every Thursday : https://vegsphere.com/blog/donderdag-veggiedag-nearly-50-ghent-population-goes-veggie-every-thur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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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산(安山). 사람들은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도 결국 사는 곳이 안산이라고.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뭔가 씁쓸한 진실이 담겨 있다. 집값이 싸서, 공장이 가까워서, 달리 갈 데가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도시. 그러나 나는 이 이름을 다르게 읽고 싶다. 안전하게(安全하게) 산다. 안전하게 살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의 도시. 그것이 안산이어야 한다, 그래서 5월 9일의 행진은 말하고 있었다.

오후 세 시, 두 갈래의 물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원고 앞 원고잔 공원 입구에서 한 줄기가, 중앙동 월드코아 광장에서 또 한 줄기.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따뜻한 봄볕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깃발을 들고 있었다. 깃발이란 원래 선언이다. 내가 여기 있다는, 내가 이것을 원한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라퍼커션의 드럼 소리가 먼저였다. 타악기의 진동은 공기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슴팍을 두드리고,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무릎을 움직이게 한다. 사람들이 걸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이윽고 자연스럽게, 마침내는 즐겁게. 선두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배치가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안전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 한마디 없이 그 줄 세움이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뒤로 시민들이 이어졌고, 후미에는 노동자들이 든든하게 받쳤다. 안산시청 앞에서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그것은 이미 강이었다.

나는 깃발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손으로 만든 깃발, 글씨를 써넣은 깃발, 그림을 그려 넣은 깃발. 깃발 컨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은 일동 지역아동센터가 만든 '우산 깃발'이었다. 우산. 비바람으로부터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그 단순하고 완벽한 상징. 어른들이 수십 장의 기획안과 정책 문서로 표현하려 했던 것을 우산 하나로 해냈다.

안전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비가 올 때 곁에 우산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혼자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산업단지에서 일하다 다친 이주노동자에게 말이 통하는 안내가 있다는 것. 노후 건물에 혼자 사는 노인에게 누군가의 시선이 닿는다는 것. 장애인이 휠체어를 밀며 이 도시의 어느 골목이든 막힘없이 갈 수 있다는 것. 이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걸었다.

며칠 전, 조용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이 있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꼭 12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12년. 그 긴 시간 동안 유가족들은 거리에 섰고, 시민들은 광장에 모였고, 활동가들은 국회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법이란 선언이다. 이제 안전은 국가가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라고 이 나라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늦었다. 그러나 왔다. 그리고 온 것들은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안산은 희생자 250명이 학교에 다녔고, 골목에서 뛰어놀았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안산은 세월호의 도시였다. 슬픔의 도시, 기억의 도시. 그러나 안산 시민들은 슬픔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물었다. "세월호 이후 안산은 정말 안전해졌는가." 기억이 기억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고. 질문은 행동이 되었고, 행동은 130개의 지역 주체가 모인 시민추진위원회가 되었다. '304개의 노란 테이블' 시민대토론회가 되었고, 마침내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되었다. 이제 안산은 세월호의 도시가 아니라, 안전의 도시로 거듭나려 한다. 슬픔을 동력 삼아, 변화를 향해.


안산문화광장 물의광장. 시장 후보들이 나란히 섰다. 더불어민주당 천영미 후보, 국민의힘 이민근 후보, 조국혁신당 조안호 후보, 진보당 홍연아 후보. 서로 다른 정당,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섰다. 이주민 대표가 앞으로 나왔다. 언어가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이 도시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안전해야 한다고. 장애인 대표가 나왔다. 도시의 턱을 없애달라고, 경사로와 점자블록이 방치되지 않는 도시를 만들어달라고. 노동자 대표가 나왔다. 산업단지에서 매년 반복되는 사고를, 더 이상 개인의 불운으로 처리하지 말아달라고. 시민 대표가 나왔다. 이 모든 요구가 선거철 공약이 아니라, 임기 내내 지켜야 할 약속이 되어달라고.

다섯 가지였다.
1. 도시 비전 및 행정계획 수립: 4.16 정신을 계승한 중장기 안전 전략 마련
2. 「시민안전센터」 설치: 시민과 소통하며 일상 속 안전 교육을 전담할 기구 마련
3. 안전투자 적극 확대: 재난관리기금 조성 비율 상향 및 안전 인프라 예산 증액
4. 「안전영향평가」 제도화: 취약계층의 관점에서 정책의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점검
5. 전담 행정조직 확대: 분산된 안전 부서를 통합하고 민관 협력 거버넌스 내실화
생명·안전 가치를 담은 도시 비전 및 행정계획 수립. 시민안전센터 설치. 안전 예산과 재난관리기금의 적극적 확대. 안전영향평가 제도화. 생명·안전 전담 행정조직 확대와 민관협력 거버넌스 강화. 어렵지 않은 말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실제 예산이 되고, 조례가 되고, 담당 부서가 생기고,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정책 설계 단계부터 반영되는 일은, 누군가 끊임없이 요구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걸었다. 그래서 전달했다.
정치인의 약속이란 언제나 유효기간이 불분명하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이주민과 장애인과 노동자의 손에서 직접 건네받은 요구안을 들고 한 약속은 조금 다르다. 증인이 있는 약속은 그 무게가 다르다. 이날 광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그 약속의 증인이다.

행진이 끝나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깃발은 접혔고, 드럼 소리는 멎었고, 광장은 다시 평범한 광장이 되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달라졌다. 그것은 도시의 표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변화다. 함께 걸었다는 사실, 같은 방향을 향했다는 기억, 우리가 원하는 것을 큰 소리로 말했다는 경험. 이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도시란 무엇인가. 건물과 도로와 행정구역의 합산이 아니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책임감의 총합이다. 내 옆집 사람이 오늘 안전한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지, 이주민 아이가 아플 때 말이 통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이것을 묻고, 따지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함께 걸었던 5월 9일의 안산은, 그래서 잠깐 더 나은 도시였다.
안전하게 산다. 그래서 안산이다. 함께 걸었던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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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6※「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먼저,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주세요
윤금이.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에서 주한미군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여성입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 기지 주변에 형성된 '기지촌'에서 살았습니다. 기지촌이란 미군 기지 주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역으로, 극심한 가난 속에서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많은 여성들이 미군을 상대로 일하며 살아가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 구조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조직적으로 만들고 관리한 체계였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여성들에게 "달러를 버는 민간 외교관"이라며 애국심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안전은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살해당한 기지촌 여성은 윤금이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동두천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습니다. 캠프케이시 정문 앞에 시민 2천 명이 모였고, 동두천 상인들은 미군 출입을 거부했으며, 택시 기사들은 미군 승차를 거부하는 저항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동두천에서 시작된 이 목소리는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 시민의 힘이 역사를 바꿨습니다
윤금이 사건은 '주한미군의 윤금이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이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미군의 범죄는 대한민국 법정에서 다룰 수 없었습니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즉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라는 협정 때문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미군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한국 법원이 아닌 미국 군법에 따라 처리되는 구조였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한국 법정에 서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살인을 저지른 미군 케네스 마클을 대한민국 법정에 세웠고, 그는 최종 15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또한 불평등한 SOFA를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두 차례(1991년 1차 개정의 실질적 이행 및 2001년 2차 개정)의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윤금이씨의 죽음은 단순한 개별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한미 관계가 수직적 관계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온 국민에게 각인시킨, 가슴 아프지만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이었습니다.
■ 지금도 계속되는 기억
동두천에서는 매년 10월 사건 당일을 추모일로 정해 '기억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주관으로 열리는 이 행사에는 매년 30여 명의 시민이 모여 그날을 기억하며 평화를 향한 다짐을 이어갑니다. 올해 2026년이면 34주기가 됩니다.
기억은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계속 붙잡고 있기 때문에 남아 있습니다.
■ 이제,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2026년, 윤금이씨 사건이 있었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작은 건물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건물주가 시민들에게 매입 의사를 타진해 온 것입니다.
이 건물을 시민의 힘으로 매입해, 기억과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는 미래입니다. 복수나 응징이 아닌, 기억과 평화, 화해와 연대의 공간. 그곳에서 윤금이씨를 기억하고,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누는 것. 그것이 이 공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도 함께 지켜주세요
이와 함께, 지금 동두천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요산 초입에 서 있는 낡은 2층 건물, 1973년에 세워진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입니다.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성병 검사를 받고, 격리 수용되었던 곳입니다. 전국에서 당시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동두천시는 이 건물을 철거하고 관광시설을 지으려 합니다. 시민들은 600일이 넘도록 이를 막아왔습니다. 2024년 10월에는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포클레인 앞에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2025년에는 UN 특별보고관 세 명이 대한민국 정부에 공식 권고안을 보내왔습니다. "피해자들의 서사가 복원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을 다하고, 철거 계획을 철회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4월, 마침내 국가 주도 대화협의체가 출범했습니다.
이 건물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보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 새겨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역사가 지워지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 기억해 주세요.
윤금이라는 이름을, 동두천 성병관리소라는 공간을, 그곳에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세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이 역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둘. 알려주세요.
이 글을 주변에 공유해 주세요. 더 많은 시민이 알수록, 이 공간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커집니다.
셋. 함께해 주세요.
매년 10월 동두천에서 열리는 '윤금이 기억의 날' 행사에 참여해 주세요. 30명이 함께하던 자리에 300명이 모인다면, 그 의미는 달라집니다.
넷. 기금에 함께해 주세요.
윤금이씨 사건 현장의 건물을 시민의 힘으로 매입하는 기금 모금에 참여해 주세요. 작은 힘이 모여 공간이 되고, 공간이 기억이 되고, 기억이 평화가 됩니다.
■ 마지막으로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제야 국민이 되었다!"
2026년 3월, 국회 토론회에서 한 피해 여성이 외친 말입니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살아왔지만 늘 그늘에서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처음으로 국민으로 불린 날의 외침이었습니다.
이 외침이 오래 울리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평화가 미래입니다.
그 미래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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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하고 싶다면
문의 :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031-823-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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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6
“생명과 안전을 위한 약속,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2025년 11월 1일, 가을이 깊어 가는 안산 화랑유원지 수변 산책로. 이곳에서
열린 ‘4·16생명안전공원 문화제 – “만나요”’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과, 생명을 지키겠다는 다짐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이번 문화제는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재단, 4·16연대, 4·16안산
시민연대, 안산마음건강센터가 공동으로 주관했습니다.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
과 시민 약 500명이 함께하며, 생명안전공원 건립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지지
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날 모인 시민들은 ‘안전’과 ‘생명’이라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연대의 의미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
니다.

우리는 왜 지금, ‘생명안전공원’을 이야기할까?
4·16생명안전공원이 필요한 이유는 단지 과거의 아픔을 되돌아보자는 데 있
지 않습니다. 세월호참사가 남긴 상처와, 그 이후 우리 사회가 겪은 수많은
고통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같은 슬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생명과 안전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 바
로 4·16생명안전공원입니다. 이 공원은 단순한 추모 공간을 넘어, 우리 사회의 안전과 생명의 가치를 되새
기고, 시민들이 머무르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설계되었습니
다.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약 7,377m2 규모의 공간에는 추모 시설뿐
아니라 문화·교육·치유·휴식이 가능한 복합 공간이 포함될 예정입니다. 이곳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장소이자, 공원을 찾는 아이들, 가
족, 시민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다시 생각하는 상징적 공간이 될
것입니다. 단순한 기억의 장소를 넘어, 생명과 안전, 그리고 연대를 체험하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자리하게 될 4·16생명안전공원은, 우리 모두의 미래와 연
결된 약속입니다.

문화제 현장, “시민이 만든 기억과 연대의 무대” 문화제는 오후 2시, 시민참여 마당으로 막을 열었습니다. 방향제 만들기, 압
화 엽서 공예, 자개 공예, 양모 펠트 공예 등 다양한 체험 부스가 시민들을
맞이했습니다. 부모와 아이, 친구와 연인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참여하는 모
습이 곳곳에서 펼쳐졌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생명’과 ‘안전’이라는 다소 무
거운 주제를, 일상의 손끝과 몸짓으로 나누는 시간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
다. 오후 4시 16분, 특별한 무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공연과 기억, 연대의 목소리
가 하나로 모인 자리였습니다. 밴드 헤이븐, 가수 예람, 그리고 퍼커션 팀 타
쇼와노립의 무대가 이어지며, 음악과 리듬은 차갑던 늦가을 공기를 따뜻한 분
위기로 바꾸었습니다. 무대는 또한 피해 가족과 시민이 함께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가족인 정부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단원고 2학년 6반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안산 시민 활동가, 서울에서 참여한 시민이 무대에
올라, 생명안전공원 건립에 대한 간절한 바람과 시민 참여의 의미를 나누었습
니다.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과 연대의 눈빛으로 함께했습니다. 이어 무대에 오른 김순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처장(단원고 2학년
9반 진윤희 학생의 어머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4·16생명안전공원은 단순한 추모 시설이 아닙니다. 애도의 장소이자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배우는 배움터, 시민들이 일상에서 머물며 서로를 돌보는 열린
공간,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약속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또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시민 한 분 한 분의 발걸음이 공원의 한 그루 나
무가 되고, 바람이 되어 이곳을 지켜 나갈 것이라 믿어요. 그 힘이 세월호참
사가 남긴 상처를 넘어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고 따뜻한 방향으로 이끌 것입
니다. 시민 여러분이 있었기에 세월호 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공연과 토크가 끝난 뒤, 시민들은 노란 별 모양의 응원봉을 들고 공사 부지
펜스 앞에 모였습니다. 그곳에서는 기억과 약속을 담은 퍼포먼스가 펼쳐졌고, 손짓 하나, 발걸음 하나마다 이 공원을 지키고 가꾸겠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담겼습니다.


문화제는 끝나지만, 기억의 불빛은 어둠을 밝히고
이번 문화제는 단순히 아픈 과거를 떠올리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함께 울
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만들고, 함께 약속하며, 앞으로의 길을 서로 함께 걸
어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기억과 약속, 그리고 그날 남긴
꿈은 문화제가 끝난 뒤에도 공원 부지에 작은 불빛으로 남았습니다. 윤희 어머님의 말씀처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은 공원의 나무가 되
고, 바람이 되며, 부드러운 약속이 되어 뿌리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억
의 불빛은 어둠을 밝히며, 안전 사회를 위한 시민들의 노력을 이어갈 것입니
다.
“잊지 않겠다.”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모두가 안전하고,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자.”
이 말들은 바로 4·16생명안전공원이 품을 미래에 관한 약속입니다. 이 공원은
앞으로 생명의 가치를 배우고, 안전을 지키고, 연대를 쌓아가는 공간이 될 것
입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어른들이 쉬며, 서로를 돌보는 장소. 바로 그런
공간입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작은 관심, 누군가의 재난이 곧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느끼는 공감, 그리고 고통에 귀 기울이는 연대. 이것이 4·16생명안
전공원이 품고 있는 진짜 의미입니다.
이번 문화제를 찾은 시민의 발걸음, 세월호를 기억하며 노란 스티커를 붙이
고, 노란 팔찌를 끼는 작은 실천, 그 모든 순간이 안전한 내일을 만드는 힘이
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작은 관심과 의문도 누군가에게는 큰 안심
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 우리가 함께 만드는 사회가 서로의 생
명과 안전을 지키는 공간이 되도록, 관심을 이어가야 합니다. 4·16생명안전공원은 현재 공사 중이지만, 그 의미와 가치는 이미 여기, 당신
과 나, 우리 속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기억이 빛이 되어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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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3좋은이웃 & 캄보디아 친구들과 함께한 1박 2일 강릉 여행기
"출발합니다!"
버스가 움직이자마자 터진 꺄르르 웃음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무려
48명이 함께한 이번 여행, 출발부터 소풍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밀양, 전주, 여주, 아산, 인천, 시흥, 서울, 안산에서 모인 캄보디아 친구 중
몇몇은 한국에서의 첫 여행이라며 설레는 눈빛을 반짝였다. 버스 안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간단한 자기소개를 나눴다. 팔테이랏, 시언
시낫, 꽁스레이립... 쉽게 기억하기 힘든 이름들이었다. 그들에게도 우리 한
국 이름이 똑같이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내 이름은 윤희웅입니다. 부르기 어렵죠? 그냥 미스터 윤이나 윤 씨라고
불러 주세요.“

첫 번째 시험대, 추어탕
전망대 휴게소에서 멀리 보이는 강릉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쉼
없이 터지는 까르르 웃음소리에 여고생 수학여행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점심으로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추어탕을 먹었다. 진행자는 추어탕이 미꾸라
지 요리라는 말을 나중에야 했다. 선입견을 줄이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생
각해 보면 우리는 의도하지 않아도 언제나 보이지 않는 선입견의 그림자
속에서 상처받으며 살아간다. 옆자리에 앉은 나빈은 무 짠지와 열무김치로만 밥을 먹고 있었다. 추어탕
한 그릇을 퍼주며 먹어보라고 권했지만, 살짝 맛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에도 나빈은 어느새 밥 한 공기를 깨끗이 비웠다.
"여기요! 밥 한 공기하고 밑반찬 좀 더 주세요."
내가 손을 들고 소리쳤다.

바다에서 하나 되다.
강릉 순긋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조별 게임이 시작되었다. 꼬리잡기와 무궁
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뛰다 보니, 어색했던 사이도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캄보디아에도 꼬리잡기와 비슷한 놀이가 있어요. 오랜만에 하니까 정말 재
미있네요."
이어진 물놀이는 한마디로 '난장판 즐거움'이었다. 수중 기마전에서 승리한
팀은 챔피언이라도 된 듯 서로를 번쩍 안아 올렸다. 바닷물 속에서 비명과
웃음소리가 섞여 터져 나왔고, 그 순간만큼은 국적도 나이도 모든 경계가 사라졌
다.

해변 파티, 흥이 폭발한 밤
저녁을 먹고 시원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해변으로 모였다. 안산에서 멀리
강릉까지 함께해준 민주노총 커피차였다. 역시 흥이 많은 캄보디아 친구들
이었다. 낮에 수줍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캄보디아 친구들
은 춤과 노래로 해변을 가득 채웠다. 특히 가수가 꿈이라는 시낫이 마이크를 잡자, 모두가 환호했다. 작은 체구
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에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담느라
정신없었다. 한국 대표도 질 수 없다며 마니또 청년 한 명이 '막걸리 한 잔'을 열창했다. 그러자 시낫을 비롯한 캄보디아 친구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막춤을 추며 빙글빙글 돌았고, 때로는 한 명씩 중앙으로 나와 춤솜씨를 뽐냈다. 폭죽이 터지고 바닷바람이 불고, 웃음소리가 파도를 덮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를 바라보며 홀로 앉아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 곁에 앉았다.
"바다 처음 봐요?"
"아니요. 캄보디아 고향에도 바다가 있어요. 여기와 비슷해요."
"그럼, 고향 생각이 나겠네요."
"생각나요."
그가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내 가족도 아닌데 사진을 보
는 나는 왜 눈물이 고이는 걸까.

한옥에서의 긴 밤
숙소는 나도 처음인 강릉 선교장의 오래된 한옥이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별을 올려다보니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여름밤을 보내던 기억이 스르르
떠올랐다. 캄보디아 친구들에게 한국 전통주의 맛을 보여주고 싶어 아껴두던 인삼주
를 강릉까지 들고 왔다. 역시 호불호가 갈렸다. "술이 아니라 약이에요!"라
는 내 말에 캄보디아 친구들은 한 잔, 두 잔 마시더니 마침내 "역시 약은
몸에 좋다!"며 웃어댔다. 우리는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한국 친구가 바닥에 놓인 안주들을 건너뛰어 돌아오자, 여기저기서
짧은 ‘어~’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캄보디아에서는 음식 위로 지나가면 안 되는 거죠?"
"네."
"우리도 그래요. 밥상 위에 음식이 있으니까, 밥상을 뛰어넘지는 않죠. 그런
데 오늘은 바닥이다 보니 생각 없이 넘었네요. 미안해요."
그 작은 순간, 문화의 차이가 또렷이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이런
차이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사소한 일이라
치부하며 무심히 지나쳐 온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차이는 어색함이
아니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음
을 배운다.
친구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
반월동에서 살고 있는 유혜림은 "반월은 도시 같기도 하고 시골 같기도
해서 딱 좋다"며 10년째 그곳에서 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며칠 전 한 명
이 이사 와서 이제 캄보디아 사람이 3명이나 되었다며 기뻐했다. 동네 자랑
이 어찌나 진심이던지, 듣는 나도 반월이 괜히 좋아졌다. 소피에룬은 캄보디아에 두고 온 아이 사진을 꺼내 자랑하며 "잘 키우고
싶다"라는 진심을 전했다.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의 마음은 국적과
상관없이 똑같았다. 내 아들과 나이와 이름이 같은 요셉은 "캄보디아에 오면 한국에서 번 돈
으로 지은 여관에서 공짜로 재워주겠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취기가 오르자
나를 아빠라고 불렀다. 나빈은 평소 일터에서 같은 나라 동료가 없어 말 한마디 못 하고 지냈는
데, 이번에는 모국어로 수다를 나누며 행복해했다.
12월에 돌아가는 띠나는 한국에서의 가장 좋은 기억으로 오늘을 꼽았다. 캠은 "한국에서 이렇게 많이 웃은 건 처음"이라며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췄다.
둘째 날의 따뜻한 마무리
아침에는 선교장을 산책하며 전통문화를 함께 느꼈다. 선교장 해설사는 외
국인들에게 한마디라도 더 쉽게 설명해 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뜨거운 강
릉의 햇살도 그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선교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추억을 사진에 담았다.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으로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그리고 여행의 클라이맥
스인 1박 2일 조별 성과 시상식과 또래 마니또들이 준비한 선물 시간이 기
다리고 있었다. 수건, 모자, 텀블러 같은 작은 선물이었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을
얻은 듯 환했다.
여행을 마치며

이번 강릉 여행은 단순한 1박 2일이 아니었다. 캄보디아 친구들의 삶과 땀,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눈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들은 한국에서 모두가 피하는 일터에서, 젊은 사람 한 명 없는 농촌에서
묵묵히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그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살아간다. 그 모습이 존경스럽고, 또 부럽기도 했다. 부디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은 오늘처럼 웃음이 가득하고 좋은 기억만 쌓이
길 바란다. 힘든 기억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돌아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꿈을 잃지
않고 지내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
인 노동자가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웃고 어울리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왜냐
하면 우리는 다 같은 노동자이니까. 마지막으로 이번 자리를 마련해주고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의 마
음을 전한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오늘의 웃음과 추억이 가능했
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외국인 노동자들 모두 항상 우리 곁의 좋은 이웃으
로 함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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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9“세월호 엄마 아빠들 대부분 젊은 날 이곳 안산에 이주해서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이곳에서 아이를 잃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니 제가 웃고 있더라고요. 그건 언제나 우리 옆에서 함
께해 준 시민들 덕분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부모들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거죠.”
“시민들의 마음 그 고마움을 생각해서라도 생명이 존중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서 다시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산이 아픔의 도시, 슬픔이 도
시가 아니라 생명의 도시, 희망의 도시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부모들이 앞장서
겠습니다.”
- 단원고 2학년 6반 故 신호성 군의 어머니(정부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
회 추모부서장) 인사말 중


4.16생명안전공원 착공을 알리고, 세월호참사 11주기를 기억하기 위한 4.16
생명안전공원 시민 동행 캠페인 ‘4.16별빛 걷기’ 개막식이 3월 22일(토) 오후
5시부터 안산 화랑유원지 수변 산책로 소광장에서 열렸습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재단, 4.16연대, 안산마음건강센터, 4.16안산
시민연대가 함께 주최하는 4.16별빛 걷기는 3월 16일부터 시작됐고, 세월호
참사 11주기가 있는 4월 내내 매주 토요일 진행됩니다. 매번 저녁 6시, 안산
화랑유원지에 시민들이 모여 함께 4.16km를 걷는 캠페인입니다. 매주 같은
시간 대면해서 걷는 방식 외에도 전국 어디에서든 각자 원하는 시간에
4.16km를 걷고 애플리케이션 ‘워크온’을 통해 참여하거나 SNS에 해시태그를
걸고 인증사진을 올리는 등 비대면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월호참
사 11주기를 기억한다는 의미로 전국에서 모아낼 걸음 인증 공동 목표도 있
다고 하는데 무려 1,100,000,000(11억) 걸음입니다. 4.16별빛 걷기는 세월호
참사 10주기였던 지난 2024년 처음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도 세월호참사에
대한 마음을 담아 매일 같이 걷고 인증사진을 공유하는 시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사진1


세월호참사 11주기 4.16별빛걷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이날 개막식은 걷는
것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가죽공예, 0416키링 만들기, 매듭 팔찌 만들기 등 세월호 엄마들이 직접 운영하는 다양한 체험 부스가 운
영되어 공원을 찾은 시민들의 발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체험 부스와 함께 한쪽
에서는 4.16생명안전공원 리플렛을 나누며 시민들을 만나 4.16생명안전공원
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4.16별빛 걷기가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진행되는 중
요한 이유가 바로 4.16생명안전공원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4ᆞ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추진되는
4.16생명안전공원은 올해 2월 착공 행사를 열었고 드디어 본격적인 공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세월호참사 13주기를 맞이하는 2027년 봄, 개관해 시민들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개막식 행사는 풍물마당 터주·꿈드림 밴드의 축하공연으로 이어졌
고, 무대에 세월호 엄마 한 명이 올라 시선을 끌었는데요. 개막식에 참여한
시민을 맞이하기 위해 단원고 2학년 6반 故 신호성 군의 어머니(정부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가 마이크를 잡고 “우리 아이들이 돌아
올 이곳, 4.16생명안전공원이 건립되는 데 11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고 있
지만, 그동안 시민 여러분이 함께 기다려주고 또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또“2027년
250명의 우리 아이들이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면, 안산은 생명안전의 도시가
될 것이라 확신해요. 그것은 우리 아이들과 엄마 아빠들이 안산시민들에게 그
동안 받아온 것에 대한 선물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마음,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진심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사진3

개막식 순서가 마무리되고 4.16별빛 걷기에 참가한 시민들은 4.16생명안전공
원 건립을 기원하며 응원봉을 들고 화랑유원지 호수 주변 산책로를 걸었습니
다. 함께 참여한 모임이나 가족 단위로 서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담소를 나
누며 4.16km를 걷는 시민들의 밝은 모습에 안전 사회와 4.16생명안전공원
건립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어 나오는 듯했습니다.
※ 파일명 : (제출월일)제목_이름(활동명) / 사진파일 별도첨부
※ 경기천년바탕 Regular, 글자크기 13p(본문), 줄 간격 160%, 상하여백 15, 좌우여백 25, 머리말·꼬리말 15, 300단어 기준 양식에 벗어난
자료를 받았을 시 기준에 따라 수정하여 원고료 지급범위를 정함. ※ 1매에 27행을 기준으로 30%(8행)미만 작성된 매수는 지급매수로 산정하지 않으며 이미지는 홈페이지 업로드 크기와 별도로 센터
양식 기준 최대 10행으로 취급
4.16별빛 걷기에 참여한 한 시민은 “별이 된 아이들과 동행한다는 마음으로
걸었어요. 4.16생명안전공원이 완성될 때까지 뭐라도 함께 하겠다는 그런 의
미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 문제와 생명안전공원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요.”라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11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기억하며, 생명 존중·안전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다양한 추모 사업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4월 12일(토) 오후 2시
에는 안산문화광장 전망대 광장에서 ‘안산 기억문화제’가 열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이 안산으로 찾아옵니다. 또 세월호참사 11주기 당일인 4월
16일(수)은 오후 3시 안산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에서 세월호참사 11주기 기
억식이 열려 전국의 시민들이 함께할 예정입니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노란 물
결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합니다. 안산을 찾지 못하더라도 전국 곳곳에서 세월
호참사 11주기를 앞두고 또는 16일 다양한 추모행사가 준비되고 있으니, 관
심을 가지고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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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8
무관심과 쉴 새 없는 기억의 공백 뒤편에서, 굳건한 예술의 손길로 아픔을 보듬고 찬란한 연대의 내일을 빚어내는 눈부신 발자취를 마주하다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맞이하여 묵묵히 진실을 마주하고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수많은 연극인들과 시민들. 차가운 망각의 장막을 깨부수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세월호 참사 11주기_연극으로 기억하기, 4월연극제 <바라, 봄>’ 기획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지나간 아픔을 예술로 되새기는 일은 그저 슬픔을 자극할 뿐, 일상에 변화를 주지 못한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연극인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예술적 기억을 통해 꽃피우는 문화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예술 자치와 연대의 문화적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치유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방관과 망각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예술 기억 및 자발적 추모 생태계 구축’
참사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기억을 지우려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공익활동가들이 동네 소극장과 연극제 마당에서부터 직접 무대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기억하고 소통하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진정한 예술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기념 공연의 개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소극장 작은 객석에 모여 앉아 이웃들과 손을 잡고 무대 위 이야기에 공감하며 따스한 눈물을 나누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치유 감수성 및 연대 강화’
세월호 참사가 남긴 깊은 상흔과 고립감을 개인의 슬픔으로 치부하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혼자서 거대한 슬픔의 벽과 마주하면 막막하고 버겁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연극을 관람하며 마음을 나누면 그 어떤 상처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치유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기억 네트워크’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문화 예술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기억과 존엄이 차별 없이 존중받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문화 자치 실현.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도내 각지에서 모인 연극인들과 예술의 힘으로 연대를 꿈꾸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4월연극제 <바라, 봄>'을 통해 아픔을 기억하고 희망을 노래하며,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이의 아픔도 외면당하지 않는 평화와 기억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가슴 한켠에 남아있던 아픔을 연극을 통해 마주하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손을 잡고 '우리가 영원히 기억하고 함께 살아가자'며 온정을 나누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가슴 깊은 곳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경기도형 예술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연극을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동네 예술 치유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따뜻한 손길을 모아 더 큰 기억의 망을 만드는 '경기 4월연극제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침묵의 파고와 망각의 벽이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예술의 손길들이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예술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통계 지표나 거창한 정부의 행사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경기도의 작은 소극장 객석과 골목길에서 이웃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당신의 아픔을 우리의 온기로 기억하며 평화롭고 다정한 내일을 함께 열어간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공익활동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망각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치유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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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5유채꽃이 만개하는 4월의 제주는 어느 곳보다도 따뜻하고 볼 것이 많은 곳
입니다. ‘폭싹 속았수다’, ‘우리들의 블루스’ 같이 유명 드라마의 배경이 되며, 누구
든 마음이 동하면 떠나는 한국인의 여행지인 제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아름
다운 섬이지만, 그 뒤에는 아픈 역사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77년 전 봄, 제
주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사진 1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1948년, 제주의 봄>
“오널 삼일절 기념식이랜 행 람들 하영 모여이수다. 3시쯤 되어신가.
탄 경찰이 지나감신디 이 막 앞에 이신 아이를 차분거 아니마씸? 겐디
순경이 그냥 가부런게. 막 부애나부난 람들이랑 고치 쫓아가그냉 돌 던져부렀주
게. 그때, 큰 소리가 들려오는거라. 순경들이 폭도인줄 알아신지, 람들한테 총을
쏴분거 아니?” (*사건 당시 가상의 목격자 시점으로 작성)
⇒ “오늘 삼일절 기념식이 열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오후 3시가
되어갈 때였습니다. 기마 경찰이 타고 있던 말이 갑작스레 흥분하기 시작하
며 앞에 있던 아이를 차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런데 저 기마 경찰은 아
이를 살펴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겁니다. 화가 난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그를
쫓아가 돌을 던졌습니다. 그때,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경찰들이 폭동으로
오인한 것인지,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아댄 것입니다.”
https://youtu.be/sVFu6kh3sI8?si=IEfqbcLe5qbccffJ
(출처 : 제주 4.3 평화재단 유튜브, 영상 삽입 부탁드립니다.)
사건의 시작은 1947년 3월 1일, 제주에서 열린 3.1절 기념행사에서의 ‘제
주 삼일절 발포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날, 6명의 도민이 총에 맞아
사망하였고, 이에 격분한 도민들의 분노가 커져 총파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로당이 조직적으로 참가한 것을 본 미군정은 ‘제주의 70%는
좌익 동조자’라며 제주에 ‘빨갱이 섬’이라는 굴레를 씌웠습니다. 이후 경찰
과 서북청년단을 동원하여 1년간 2,500여명을 구금하고 폭행하였습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제주 오름마다 붉은 봉화가 솟아올랐습니다.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봉기를 일으켰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들은
경찰서와 서북청년단을 습격했고, 5.10 총선거를 반대하였습니다. 결국 제
주는 과반수 미달로 인해 투표가 무효 처리되었으며, 남한에서 유일하게 선
거를 거부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이를 ‘공산 폭동’으로 규정하였습니다. 1948년 11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된 후 군과 경찰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이 진행되었으며, 무장대뿐만 아
니라 민간인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희생되었습니다. 마을이 불태워지고, 빨갱
이로 몰린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습니다. 심지어 어린아이와 노인, 여성
까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제주도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산
으로, 동굴로 숨어 목숨을 부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54년, 7년여 만에 군과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4.3 사건은
막을 내렸습니다. 아이들이 뛰놀던 마을은 파괴되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오
랜 세월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와 사회는 이 사건을 금기시했고, 제주도민들은 ‘4.3’이라는 숫자조차 입 밖에 내기 어려웠습니다. 추정 희생
자는 총 3만명, 제주 인구의 10%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참조)
<봄이 지나간 제주>
큰 비극을 겪은 제주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
니다. 중산간마을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공비출몰지역’이라
는 이름표가 붙어 그곳을 떠나고는 하였습니다. 제주 각지에는 이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잃어버린 마을’이 많았습니다. 4.3 사건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은 당대에 그치지 않고 유가족들에게 대물림되었습니다. 희생자 유가족
들은 연좌제에 의해 감시당하고 사회 활동에 심한 제약을 받았습니다. 현재까지도
제주 4.3 평화재단은 연좌제 피해사례를 접수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주도민들에
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폭도’라는 꼬리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픈 사건
을 더욱 꽁꽁 감추게 되었습니다.
1978년 발표된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은 잊혀지기를 강요당한 4.3의 비
극적 역사를 끄집어내는 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4.3 사건의 아픔을 개인의 이
야기로 풀어내 그로 인한 피해가 개인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강렬
하게 보여주었고, 당시 그 사건을 침묵해야 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제주 4.3
을 널리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2000년대에 들어서야 정
부 차원의 진상 조사와 명예 회복이 이루어졌으며,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되어
4.3 사건을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었습니다. 2003년, 대한민국 대통령이 공식적으
로 제주 4.3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후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보상이 진행되었으며, 4.3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그날의 아픔을 기억
하고자 했습니다.
사진 2

(출처 : 제주특별자치도, 공공누리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recommendIdx=38750&division=img#)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4.3 사건을 기억하는 활동들이 많아졌
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4.3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로 사람들에게 당시의 비극을 담담히
그리고 사무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2023년부터 ‘제주 4.3 영
화제’를 열어 4.3뿐만 아니라 평화와 인권에 대해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어오고 있
습니다. 제주 4.3의 역사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2025년에 열릴 여러
행사에서 함께 마음을 나누고, 깊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소개합니다.
*2025년 제주4.3 기억하는 방법
1.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이야기> 제주 전시
- 2024년 12월 3일부터 2025년 5월 6일까지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이야기' 전시가 열립니다. 이 전시는 보스니아 War
Childhood Museum과 협력하여 진행되며,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경험을 조
명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아이들의 삶을 살펴보며 4.3사건이 아이
들에게 어떤 비극이 되었는지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jeju43peace.or.kr/kor/schedule/list.do?search_year=2025&search_month=03)
2. 제77주년 제주4.3 경기도청 특별 전시회 <만화, 4·3과 시대를 그리다 展 in
경기>
- '만화, 4·3과 시대를 그리다 展 in 경기'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2025년 3월
저의 고향은 제주입니다. 이번 글을 작성하면서 어머니께 4.3 사건에 대해 전해
들을 것이 있는지 여쭤보고자 전화를 드렸습니다. 면사무소에서 근무하시던 어머
니의 이모부께서 4.3 사건 당시 희생되셨다는 이야기, 어머니의 동네에서는 같은
날 열댓 가구가 동시에 제사를 지낸다는 이야기 등을 듣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잠
시 후, 어머니는 다시 전화를 걸어오셨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4.3
이야기는 밖에서 함부로 하지 마라.”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사진3
2
28일부터 2주간 진행되며, 경기도청(수원)과 경기도청 북부청사(의정부) 1층 로
비에서 열립니다. 이번 전시는 전국시사만화협회와 함께하며, 현직 시사만화가
들이 다수 참여하여 '만화로 보는 4·3'이라는 주제로 4·3 사건을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경기도민들에게 4·3의 역사적 의미를 전달하고자 합
니다. 이러한 전시는 제주 4·3 사건의 전국화와 대중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
로, 경기도 지역에서도 4·3의 역사를 되새기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데 큰 역
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가 아닌 지역에서도 함께 4.3을 기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www.headlinejeju.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4722&utm_source=chatgpt.com)
3. 제주4·3평화재단 주최 온라인 추모관
- 제주4·3평화재단의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추모관을 운영하고 있어 온라인으로
도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습니다. 마련된 행사에 참여하기 어려운 분들은 제
주4·3평화재단의 온라인 추모관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희생자들에게 마음을 전
할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peace43.jeju.go.kr/board/memory/list.do?utm_source=chatgpt.com)
4. 영화 ‘목소리들’
- 다큐멘터리 영화로, 한 헌신적인 제주 4.3 연구자의 길을 따라가며, 어둠 속
에 봉인되어 온 제주 여성들의 경험, 침묵 속에 잠겨있던 그들의 목소리를 세
상 밖으로 끌어냅니다. 2025년 4월 2일 개봉 예정이니 꼭 관심 갖고 함께 찾
아보면 좋겠습니다.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70년이 넘도록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제주는 아직 그날의 봄에 살고 있습
니다. 따뜻한 바람 속에서도, 피어난 유채꽃 사이에서도, 그날을 기억하는
이들의 눈빛 속에서는 아직도 두려움과 슬픔이 아련히 남아있습니다. 하지
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날의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제주
가 온전히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어루만지는 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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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5보이스피싱 범죄는 날로 진화하며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검찰, 경찰 등 공공
기관을 사칭한 사기 수법이 증가하면서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보이스피싱 서류 진짜인지 알려줘 콜
센터’, 일명 ‘찐센터’를 운영하며,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을 위한 대응 체계를 마련
하였습니다. 찐센터는 국민들이 수사기관에서 발송한 것으로 보이는 서류나 전화
의 진위를 즉각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입니다. 본 글에서는 찐센터의 개
념, 주요 기능, 이용 방법, 보이스피싱 범죄의 문제점 및 예방책에 대해 상세히
다루겠습니다. ● 보이스피싱 범죄의 문제점
1. 금전적 피해 발생
보이스피싱 범죄는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금전적 피해를 입히는 심각한 범죄입니
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찰, 경찰, 금융기관 등을 사칭하여 피해자로부터 금전을
편취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릅니다. 대표적인 수법으로는 검찰을 사칭해 "당신
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라고 속이며 예금을 안전한 계좌로 이체하도록 유
도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또한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해 "대출이 승인되었으니 보
증금을 송금해야 한다"라거나 "기존 대출을 상환해야 한다"라는 등의 거짓 정보로
피해자의 돈을 빼앗습니다. 이러한 사기 수법은 주로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범죄 조직은
피해자가 의심할 시간을 갖지 못하도록 협박하거나, 수사기관을 사칭해 불안감을
조성하여 빠르게 돈을 송금하도록 만듭니다. 특히, 노인층이나 금융 지식이 부족
한 사람들은 이러한 협박에 쉽게 속아 송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스피싱
에 당한 피해자는 대부분 송금한 돈을 되찾기가 어렵습니다. 사기범들은 피해자가
돈을 보낸 직후 이를 여러 계좌로 분산시키거나 해외로 송금하여 추적을 어렵게
만듭니다. 금융기관에서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피
해를 입은 후 빠르게 조치하지 않으면 돈을 돌려받기 어렵습니다.
또한, 보이스피싱을 통해 대출을 유도하는 경우 피해자는 원치 않는 부채를 떠안
게 되며, 이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부담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보이스피싱
은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개인의 재산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범죄입니다.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의심스러운 전화나 메시지를 받았을 때 즉시 확인하는 습
관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심리적 피해와 2차 피해
보이스피싱 범죄는 단순한 금전적 피해를 넘어, 피해자에게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손실을 입은 피해자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책감에
시달리며, 이는 정신적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자신의 실수로
인해 가족의 재산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
피해자는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등의 정신적 질환을 겪기도 합니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숨기려고 합니다.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창피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특히 가족들에게 피해
사실이 알려졌을 때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피해자가
혼자 문제를 감당하게 만들며, 결국 더욱 심각한 심리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습니
다. 또한,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당한 경제적 손실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노후자금을 모두 잃어버린 노인, 결혼자금을 사기당
한 신혼부부, 학자금 대출을 빼앗긴 대학생 등 피해 사례는 다양합니다. 보이스피
싱은 단순한 금융 사기가 아니라 개인의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범죄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2차 피해입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개인 정보가 유출된 상
태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기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기범들은 피해자
의 정보를 다른 범죄 조직과 공유하며, 이후 추가적인 금융사기나 협박 전화를 걸
어 추가적인 피해를 유도합니다. 또한,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했다는 사
실이 유출될 경우, 사회적으로 신뢰를 잃게 되어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
습니다. 이처럼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금전적 피해를 넘어, 피해자의 정신 건강과 삶 전반
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칩니다.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상담과 지
원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사회적 신뢰 저하
보이스피싱 범죄가 증가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 대한 신
뢰가 저하되고 있습니다.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례가 많아지면서, 실제 수사기관에서 걸려오는 전화조차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는 법 집행 기관의 업무 수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사기관
에서는 중요한 범죄 수사나 행정 절차를 위해 국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
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스피싱이 만연해진 현재 상황에서는, 이러한
전화조차도 의심을 받게 됩니다. 수사기관의 정당한 요청이 보이스피싱으로 오해
받아 국민들이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 법 집행의 효율성이 저하될 수밖
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전화 상담도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은행 직원이 고객에
게 금융상품 가입이나 대출 상담을 위해 전화를 걸어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이
스피싱으로 의심하며 응답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정당한 금융 서
비스가 위축되고, 금융기관과 고객 간의 신뢰 관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으로 인해 사회적 불신이 심화되면, 국가 기관과 금융기관이 수행하는
중요한 업무에 차질이 생길 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예
를 들어, 수사기관이 국민의 신고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어려워질 수 있으며, 금융
기관의 보안 정책이 강화되면서 고객들이 더 많은 불편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보이스피싱 범죄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신뢰 체계
를 흔드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금융기관이 협력하여 국민들에게 보이스피싱 관
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식적인 확인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민들도 의심스러운 전화를 받았을 때 곧바로 찐센터와 같은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 확인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 찐센터란 무엇인가?
찐센터는 서울중앙지검이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진위 확인 서비스였으나 최근 대
검찰청으로 이관되었습니다. 찐센터는 국민들이 검찰을 사칭한 서류나 전화에 속
지 않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증가
하였는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허위 공문서나 가짜 구속영장에 속아 금전적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을 막기 위해 검찰이 직접 나
서서 보이스피싱 여부를 확인해주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찐센터가 도
입되었습니다. 찐센터를 운영하는 가장 큰 목적은 국민들이 보이스피싱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찐센터를 통해 검찰 사칭 서류의 진위를 즉시 확인함으로
써 피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특히, 노인이나 금융 사기에 취약한 계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으며, 실시간 상담을 통해 빠른 대응이 가능합니다. ● 찐센터의 주요 기능
1. 보이스피싱 서류 및 전화 진위 확인
찐센터에서는 검찰, 경찰, 금융기관 등을 사칭한 문서나 전화의 진위를 신속히 확
인해줍니다. 국민들이 의심스러운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 찐센터로 보내면, 해당
문서가 실제 검찰에서 발송한 것이 맞는지 확인한 후 답변을 제공합니다.
2. 의심 전화번호 조회 서비스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찰청, 경찰청, 금융감독원 등의 대표번호를 사칭하여 전화를
걸기도 합니다. 찐센터에서는 국민들이 받은 전화번호가 실제 수사기관에서 사용
하고 있는 번호인지 확인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허위 전화번호
에 속아 피해를 입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3. 실시간 보이스피싱 상담 지원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실시간
지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국민들이 찐센터에 연락하면 수사관이 직접 응대하여
해당 상황이 보이스피싱인지 판단해주고, 대처 방법을 안내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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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찐센터 이용 방법
1. 찐센터 연락처 및 운영 시간
찐센터는 국민들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
됩니다. 언제든지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찐센터에 연락하여 신
속한 확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찐센터의 공식 전화번호는 **010-3570-8242**이
며, 문자나 전화로 상담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2. 서류 진위 확인 절차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하여 가짜 구속영장, 공문서 등을 보내
피해자를 속이는 수법을 사용합니다. 만약 검찰이나 경찰 명의의 서류를 받았다
면, 먼저 해당 문서를 사진으로 촬영해야 합니다. 이후 찐센터 전화번호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문서의 진위 확인을 요청하면 됩니다. 찐센터의 담당 수사관이 해
당 문서를 확인한 뒤, 이것이 실제 수사기관에서 발송한 문서인지 아니면 보이스
피싱 조직이 위조한 서류인지 판별하여 답변을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에 속지 않고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3. 보이스피싱 전화 확인 방법
수사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공식 전화번호를 변조하여 전화를 걸거나, 검찰청·경찰청 등의 기관명을 내세워 신뢰를 얻으려 합니다. 만약 검찰이나 경찰
에서 걸려온 전화가 의심스럽다면, 먼저 해당 전화번호를 기록해야 합니다. 이후
찐센터에 전화번호의 진위 확인을 요청하면, 담당자가 해당 번호가 실제 검찰·경
찰·금융감독원 등의 공식 전화번호인지 확인한 후 답변을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사기 전화를 신속하게 식별하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수칙
1. 수사기관이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 100% 사기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 등 공식적인 국가 기관에서는 절대 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계좌 이체를 요구하거나, 특정 계좌로 돈을 송금하라고 지시하지 않습니다. 그러
나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이러한 기관을 사칭하여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고, 마
치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겁을 주고 협박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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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귀하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안
전한 계좌로 돈을 이체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하며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
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100% 사기이므로 절대 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수사
기관을 사칭한 전화가 걸려오면, 즉시 전화를 끊고 찐센터에 문의하여 해당 연락
이 보이스피싱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가 겁을
먹고 빠르게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본인이 직접
검찰청이나 경찰청의 공식 번호로 연락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
다.
2. 의심스러운 링크 및 앱 설치 금지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찰청, 경찰청, 금융기관 등을 사칭한 가짜 웹사이트 링크를
발송하거나, 피해자가 특정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하여 피해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
습니다. 이러한 앱에는 악성코드가 포함되어 있어, 설치하는 순간 피해자의 휴대
폰이 원격 조종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러한 악성 앱을 통
해 피해자의 문자메시지를 가로채거나, 금융거래 정보를 탈취하며, 심지어 원격으
로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기도 합니다. 특히, "검찰청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라거나 "금융감독원의 보안 앱을 깔아야 한다"라는 등의 요구는 모두 사기이
므로 절대 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전달된 의심스러운 링크는 클릭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만약 실수로 클릭했다면, 즉시 인터넷 연결을 차단하고 찐센터나 경
찰청에 문의하여 추가 조치를 받아야 합니다. 스마트폰의 보안 강화를 위해 공식
앱스토어(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 외의 경로에서 앱을 다운로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며,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과 관련된 내용은 반드시 공식 홈페이
지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 낯선 전화번호는 반드시 확인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발신 번호 변조 기술을 사용하여 검찰청, 경찰청, 금융감
독원 등의 공식 전화번호로 위장한 전화를 걸기도 합니다. 따라서 전화를 받았을
때 상대방이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하더라도, 먼저 해당 기관의 공식 대표번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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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찾아 연락해보는 것이 안전한 방법입니다. 수사기관에서 전화가 왔다고 주장
하는 경우, 상대방이 제시하는 정보를 무조건 믿기보다 직접 검찰청이나 경찰청의
공식 대표번호를 찾아 전화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낯선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을 때, 상대방이 금전적 요구를 하거나 개인정
보를 묻는다면 일단 전화를 끊고 찐센터에 문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
다. 특히,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라거나 "검찰 조사가 필요하니 신분증
정보를 알려달라"라는 식의 요구는 모두 사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들은 이
러한 전화가 오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하는 습관을 길
러야 합니다. ● 찐센터 전화번호 및 쉽게 외우는 방법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고 검찰 사칭 사기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찐센터 전화
번호를 기억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찐센터의 공식 전화번호는 010-3570-8242
입니다.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 번호로 즉시 연락하면 수
사관이 직접 보이스피싱 여부를 확인해 줍니다. 찐센터 전화번호를 쉽게 기억하는
방법은 숫자를 의미와 연결하여 외우는 것입니다. "삼오칠공, 팔이사이"라고 읽으
면, "진짜(찐)와 가짜(사기)를 가려주는 사이"라는 의미로 기억하기 좋습니다. 숫자
를 단순한 나열로 외우기보다 의미 있는 문장으로 연결하면 기억에 오래 남고, 긴
급한 순간에도 빠르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순간의 판단 실수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찐센터 전
화번호를 미리 기억해 두고,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순간 즉시 연락하여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찐센터의 성과 및 향후 계획
찐센터는 운영 이후 많은 국민들에게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으며,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를 차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
을 하고 있습니다. 찐센터를 통해 보이스피싱 의심 서류나 전화번호를 즉각 확인
할 수 있어, 국민들이 불필요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찐
센터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이 검찰을 사칭하는 수법이 점점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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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찐센터는 더욱 많은 국민들이 쉽게 이용
할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며,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여 더욱 신속
하고 정확한 진위 확인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또한, 금융기관 및 이동통신
사와 협력하여 보이스피싱 차단 시스템을 강화하고, 피해 예방을 위한 교육 및 홍
보 활동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보이스피싱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
는 범죄이므로, 국민들은 찐센터를 적극 활용하여 피해를 예방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는 즉시 상담을 받아 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빠른 대처와 정확한 정
보만이 보이스피싱 범죄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조회수 59
2025-03-19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3·1만세운동은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월 1일을 기
해 일어난 조선의 독립운동입니다. 전국에서 각계각층이 함께 "조선독립만세" 를 외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총칼로 무장한 일본의 경찰과 군대 앞에
맨몸으로 항거한 비폭력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2005년은 3·1만세운동 106주년입니다.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경기도 안산 지
역에서 시민들이 모여 만세를 외쳤습니다. ‘3·1만세운동 106주년 기념! 한반
도의 자주와 평화를 위한 안산 만세길 걷기’가 3월 1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수암동에 위치한 3·1운동기념탑 앞에서 진행된 것입니다. 6.15안산본부, 안산
지역사연구소, 지역사교육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안산시흥지부가 함께 준비
한 안산 만세길 걷기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1919년 당시 안산에서 3·1만세
운동이 진행된 실제 역사 현장을 따라 함께 걸었습니다. 안산 지역에서 3·1만세운동이 가장 활발히 이뤄졌던 수암동에 지난 2022년
3·1운동기념탑이 준공했고, 선조들의 항거를 잊지 않기 위해 시민들이 3월 1
일이면 매번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이날 안산 만세길 걷기는 기념탑을 시작
으로 안산초등학교, 비석거리, 향교터, 객사터로 이어졌습니다.

신길중학교 교사이면서 안산지역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신대광 선생님의
생생한 해설이 있어 만세길을 걷는 시민들은 더욱 역사 속으로 몰입할 수 있
었습니다. 신대광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1919년 3월 1일 일제의 무단 통치에 고통받
던 우리 국민들이 외친 독립 만세는 2달 가까이 이어졌고, 안산 사람들도 손
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특히 만세운동이 활발
히 일어난 수암동은 조선시대 수리산 수암봉의 능선을 따라 세워진 읍성을
중심으로 안산 군수가 머물던 안산 관아를 비롯해 향교, 사직단(제를 올리는
곳) 등이 있었던 안산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일제가 국권을 찬탈한 20세기
초에도 수암동(당시 수암면)은 면사무소와 경찰 주재소, 보통학교, 향교 등이
모여 있어 중심지 역할을 했고, 총 1,592가구 8,120명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
다. 수암면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0일 오전 10시경에 비석거리에서 시작되
었다고 하는데요. 비석거리는 현재 수암농협 근처로 조선시대 당시 안산군에
부임했던 지방관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가 모여 있어 그렇게
불렸다고 합니다. 이 날 수암면에서 대략 2,00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
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수암면 인구가 8,000명 정도였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경찰관 주
재소, 수암면사무소, 안산공립보통학교(지금의 안산초등학교), 안산 향교 앞으
로 몰려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신대광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 속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
기 시기 수암면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안산 사람들이 그린 독립 국가의 모습
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답을 와리에 살았던 홍순칠이라
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홍순칠은 마을 사람들과 만세운동
을 준비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조선이 일제로부터 독립하면 일제가
가졌던 땅은 모두 땅 없는 소작인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독립을 위
해 만세 시위에 나서는 것이 우리에게 이득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들이 꿈꾸
던 해방된 조국은 땀 흘려 일하는 농민들이 자기 땅을 갖는 ‘평등한 나라’였
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안산 만세길 걷기에 참가한 시민들은 안산 객사 앞에서 소감을 나누며 행사
를 마무리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한 한 시
민은 “안산 지역에서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3·1운동에 참여했고, 현재를 살아
가고 있는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데, 잘 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수암동 일대의 역사를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당시 만세운동
을 주도했던 분들을 기억하는 추모비 건립 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후대들도 기억할 수 있죠.”라고 호소해 참가자들의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소감 나눔에 안산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정성조 선생님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역사의 한가운데 있던 안산초등학교의 역사를 바로 세운 이야기였습니다. 안
산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교장이 부임해 '안산 공립보통학교'로 재개
교한 1912년 4월 1일로 개교일을 정해 오랜 시간 유지해 왔고, 지난 2012년
동문회에서 학교에 개교 100주년 기념탑을 세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개교 기준으로 삼은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있었고, 정성조 교
장선생님은 교직원·동문회와 함께 10년여의 노력으로 결국 1899년 9월 15일
로 개교일을 바꾼 후 본관 현관에 '안산초교 역사판'을 새롭게 게시했다고 합
니다. 이는 1899년 9월에 설립된 '안산군 공립소학교'를 안산초교의 역사적
뿌리이자 공식 개교일로 변경한 것이며, 기존의 100주년 기념탑도 113주년
기념탑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6.15안산본부 김현주 사무국장은 “1919년 당시 우리 지
역에서 독립운동 역사의 현장에 서 있던 한 당시 시민들의 위대한 모습을 알
아가는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안산 만세길 걷기는 그 모습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독립과 민주주의, 자주와 평화의 의미는 무
엇인지 돌아보는 자리로 기획되었습니다."라고 취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 파일명 : (제출월일)제목_이름(활동명) / 사진파일 별도첨부
※ 경기천년바탕 Regular, 글자크기 13p(본문), 줄 간격 160%, 상하여백 15, 좌우여백 25, 머리말·꼬리말 15, 300단어 기준 양식에 벗어난
자료를 받았을 시 기준에 따라 수정하여 원고료 지급범위를 정함. ※ 1매에 27행을 기준으로 30%(8행)미만 작성된 매수는 지급매수로 산정하지 않으며 이미지는 홈페이지 업로드 크기와 별도로 센터
양식 기준 최대 10행으로 취급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되새겨지는 시간이었습니다. 3·1만세운동은 식민 통치라는 거대하고 두려운 벽 앞에 평범했던 민초가 저
항했던 불과 100여 년 전 역사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얻을 것인가 고민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지역 역사
를 알고, 또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조회수 57
202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