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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4월 16일(수)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1년이 되는 날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동안 우리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무엇이 변했을까? 세월호는 사람들의 기억에 희미해졌을까? 4월 12일(토), 광화문의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약속 시민대회’ 현장에 가서 확인해 보자.
     
     
    
    출처: 4.16연대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2025년 4월 12일, 기억·약속 시민대회장은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기억은 무엇이며 우리는 누구일까? 세상을 바꾸는 주체가 “기억하는 우리”라고? 과연 서십자각에서부터 광화문 앞까지 행사장엔 ‘기억하는 우리들’이 가득했다. 비가 오고 점점 바람이 세찬 날씨 속에도 기억하는 사람들 5천여 명이 다녀갔다(집회 측 추산).
     
    10년이 더 흘렀다고 세월호 참사를 잊는 게 아니라고 사람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윤석열 한 사람 파면으로 사회 대개혁이 보장되는 게 아님을 똑똑히 아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생명 안전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까? 어떻게 사회 대개혁을 이룰까? 탄핵 집회장에 나갔던 그 깃발들이 펄럭였다.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슬로건은 ‘애도’와 ‘기억’과 ‘연대’의 힘이었다.
     
     
    출처: 4.16연대
     
     
    ‘기억하는 우리’ 중에 ‘세월호와 이태원 세대’가 돋보였다. 시민참여 마당 활동 속에도 자유 발언대 마이크에도, 우산 속에 듣고 박수 치는 청중에도 젊은이들이 많았다. 노래하고 춤추고 행사 진행하고 자원봉사하고, 모두 세월호와 이태원 세대 청년들이 했다. 아니, 세월호 참사는 나이와 세대를 통합해 이루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시민운동임을 볼 수 있었다.
     
     
    시민참여 마당, 놀며 체험하며 기억하며
     
    출처: 4.16연대
     
    시민들은 오후 2시부터 25개의 노란 ‘시민참여 마당’ 천막을 자유롭게 방문하며 즐길 수 있었다. 구경하고 체험하고 질문하고 대화하고 만들며 노는 공간이었다. 노란 리본을 만드는 사람, ‘기억 엽서’를 쓰고 ‘리본 리폼’을 하고 ‘기억의 벽’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사람. 노란 옷을 입은 4.16 가족협의회 부모님들의 공방과 기억 상점에서 기억 물품을 만들며 함께할 수 있었다.
     
    눈에 띄는 건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비롯한,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라는 이름의 연대체였다. 사회적 참사는 결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다. 기간제교사노동조합원들은 “김초원 선생님~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배지를 나눠주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천막에서는 아이들이 세월호 책을 보고 있었다. ‘비건 감자튀김’ 푸드트럭은 이 광장의 다양성과 포용성의 상징처럼 보였다.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대한민국 재난 참사 연대기,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
    2023년 12월 16일 발족한 재난 참사 피해자 단체들의 연대체다. “누구도 우리처럼 오래, 우리만큼 깊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마음으로 활동한다.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 소속 9개 단체는 다음과 같다.
    1) 2.18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2003. 2. 18): 대구 중앙로역 방화 화재로 최소 192명이 희생된 사건. 전동차 내장재, 1인 승무원제,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의 미흡한 초기 대처가 피해와 고통을 키웠다. 추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2) 4.16 세월호 참사(2014. 4. 16): 인천발 제주행 여객선이 진도 해상에서 침몰, 국가의 구조 방임으로 단원고 학생 250명을 비롯한 승객 등 304명이 희생된 재난 참사이자 국가 폭력 사건.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생명 안전 공원 건립 등의 문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3) 7.18 공주 사대부고 병영 체험학습 참사(구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2013. 7. 18): 학교 체험학습으로 참가한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공주 사대부고 2학년 5명이 희생된 참사. 학교의 관리 감독 미흡, 무자격 교관 운영, 태안군의 관리 감독 소홀, 복종의 문화 역시 참사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4) 가습기 살균제 참사: 1994년부터 17년 동안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시민이 심각한 건강 손해를 입은 한국 최초의 생화학 제품 재난. 2023년 12월 31일 현재 공식 사망자 1,843명, 피해 인정자 6,048명으로 현재도 매일 피해가 드러나는 중이며, 피해 인정 싸움이 진행 중이다.
    5) 광주 학동 참사(2021. 06. 09.): 학동 4구역 재개발을 위해 HDC현대산업개발의 하도급 업체가 철거를 진행 중 빌딩이 붕괴하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한 사건. 안전조치 미흡 무리한 철거 등이 주요 원인. 현재까지도 피해 보상과 추모 문제가 남아 있다.
    6)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1999. 06. 29.): 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한 사건. 단일 재난으로 최대 피해자 발생. 사주의 탐욕적 이윤 추구와 관계 공무원들의 결탁이 원인으로 지적되었으나 처벌은 미흡. 현재까지도 추모의 문제가 남아 있다.
    7)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2017. 03. 31.): 남대서양을 항해하던 철광석 운반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선사 폴라리스의 과실로 침몰해 22명이 희생된 사건. 원인 규명과 미수습자 수습이 해결되지 않았다.
    8)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1999. 06. 30.): 유치원생 등 23명이 사망한 화재 사건. 모기향에 의한 발화로 결론지었지만, 유가족들은 누전과 관리 소홀, 비리 결탁 주장.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요구가 있다.
    9)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인천 학생 화재 참사, 1999. 10. 30.): 상가 화재로 청소년 등 5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친 사건. 불법영업과 공무원 간의 유착 비리가 원인을 제공했으나 피해자들(평균연령은 17세)의 호프집 출입에 대한 비난으로 2차 가해가 심각했다. 일부 피해자의 피해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출처: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영상]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 출처: 4.16연대
     
     
    [영상] 누가 이태원 참사 159번째 희생자를 만들었나 / 출처: 뉴스타파
     
    
    통합과 연대의 민주시민 발언대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2시 반부터 65분간 시민 10명이 자유발언대에 올랐다. 4.16 약속 지킴이 도봉 모임의 이경숙, 4.16 해외 연대의 유준조,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선물, 개인 시민 로라, 민주노총 노동안전 보건실장 최명선, A 학교 사안 공대위 교사 지혜복, 녹색연합 활동가 이다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동물해방물결 소장 김도희, 전국 불안정노동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김혜진. 가려졌던 목소리가 드러나는 자리이자 통합과 연대의 발언대였다.
     
    첫 발언자인 이경숙 님은 12.3 이후 첫 탄핵소추안이 부결되던 날 실망하고 집에 왔는데, 응원봉을 든 청년들은 그 추운 날 저녁에도 여의도를 지켰다는 걸 알게 돼서 부끄러웠다며 고백했다. “그때부터 각성한, 아니 계몽된 도봉 엄마들 카톡 방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듯한 차랑 주먹밥 만들어 학생들한테 주고 싶다. 그래, 좋아요, 주먹밥 만들까? 카톡 방에 있던 네 명 모두의 뜨거운 찬성으로 주먹밥 연대를 결의하였습니다.”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선물은 “모든 죽어간 이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내며” 세월호 세대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2014년 4월 16일, 고등학생 2학년이었던 저는 희생자의 대다수인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입니다. 같은 경험을 했는데 저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죄스러웠습니다. 그때 사회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 서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세월호 참사 유가족 간담회에 참가했습니다.”
     
    동물해방물결의 김도희 활동가는 며칠 전 충북에서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되는 닭들 “17만 9천 명(命)”을 소환했다. 더 이상 죽여서 지키는 사회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고. “지워진 생명을 다시 불러내는 일, 안전의 기준을 새롭게 다시 쓰는 일, 그리고 그 기준에 인간과 비인간, 모든 생명이 함께하는 일, 그 일을 하겠다”라고 다짐하며 호소했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되새기는 일이 아닙니다. 기억은 외침이 되어야 하고, 외침은 전환이 되어야 합니다.”
     
     
    세월호와 이태원 세대의 목소리
    본 행사는 비상 행동 활동가이자 군 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단원고 2학년 9반 고 진윤희 양의 어머니 가족협의회 김순길 사무처장은 “10년하고 1년, 기억·약속 시민대회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로 시작해 “가만히 있지 않겠다, 다짐하며 서로의 버팀목이 돼 온 시민들”에 대해 일일이 감사했다. “우리의 발걸음이 우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로 지난해 12월 3일부터 이 광장에 응원봉을 들고나온 2030 세월호 이태원 세대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청년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라고.
     
     
    출처: 4.16연대
     
     
    발언대에는 박세희 4.16연대 공동대표, 송해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호림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 공동의장, 남아름 영화 <애국 소녀> 감독이 차례로 올랐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재현 군의 어머니 송해진 님의 목소리는 봄비에 젖어 있었다. “소중한 자녀를 잃은 아픔을 안고, 세월호 부모님들이 지난 11년간 감내해 오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박근혜와 윤석열, 이 두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일어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닌, 국민의 생명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한 결과라 지적했다. “두 정권 모두 참사 이후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비난과 혐오를 제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진상 규명과 책임 소재 파악을 방해했다"라는 사실을 말할 때 “비통한 마음”을 고백했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의 진실도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되어 공개되지 않고 봉인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2년 반이 되었음에도, 이태원 참사 특조위는 아직 진상조사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유가족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참사의 모든 진실을 밝히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순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부디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이 긴 여정에 저희와 함께해 주십시오. 이 땅의 아이들이 안전한 일상을 누리며 각자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든 재난 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 고 이재현 군 어머니 송해진 님 발언문 중
     
    16살 고등학생 고 이재현 군(2006. 4. 17.~ 2023. 12. 12.)은 이태원 참사의 159번째 희생자로 세상을 떠났다. 참사로 가장 가까운 친구 2명을 잃고 극심한 죄책감과 2차 가해로 고통받았다. “이태원에 놀러 간 게 잘못”이라는 말을 비롯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나 허위 정보 유포, '순수한 유가족다움' 강요, 노골적인 조롱·혐오 표현, 성희롱 및 욕설 등이었다. 정부는 2차 가해에 적절한 대처 대신 ‘상처를 딛고 일어나려는 본인의 노력과 의지가 문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심한 참사 생존자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계속 지적하고 있지만 달라진 게 없다.
     
     
    남아름 님은 세월호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애국 소녀>를 만든 감독이다. 자신을 4.16 청년 세대라고 소개하면서도, 세월호에 대한 부채감과 복잡한 감정에 도망치기 바빴던 20대를 다룬 고백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그러나 세월호가 가르쳐 준 가장 큰 것은 ‘연대’하는 데에 어떤 ‘자격’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고, ‘참사’란 그저 지나칠 남의 일이 아니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배웠기에 용기를 냈단다.
     
     
    20살의 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또래가 세월호를 계기로 처음 광장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때 어른들은 저희 세대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세월호 세대’, 4.16 세대라 명명된 저희 또래는 “그러면 나는 어떤 어른이자 시민이 되어야 할까?”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풀리지 않은 질문을 20대 내내 품고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세월호가 청년 세대에게 던졌던 그 질문들이 우리를 2024년 계엄의 광장으로 불러들였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무장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우리를 위협하더라도,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우리를 엮어주는 연대의 끈이자 신뢰의 안전망이 되었고, 세월호는 우리가 다양한 색깔의 깃발과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서 춤출 수 있게 해 준 프리즘이었습니다. 20살의 세월호가, 30살의 계엄령을 막아주었습니다. 윤석열 탄핵 결정문에는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습니다. 세월호 이후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
    - 남아름 님 발언문 중
     
     
    
    출처: 4.16연대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기억하는 사람들은 행사 영상에도 있었다. 현장에도 참가한 《저주 토끼》의 정보라 작가는 영상에서 세월호가 “시민운동의 문화를 바꾸었다”라고 정리했다. 11년 전 고3이던 세월호 세대 가수 ‘버둥’에 이어 나온 3인조 가수 ‘브로콜리 너마저’는 노래 ‘졸업’을 부르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이 노래를 만들면서 이 시기 지나면 이 노래 부를 기회 많이 없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그런데 세상이 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일들이 많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넌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청계 광장에서 집회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엄마의노란손수건분들이 거기서 서명 받으니까 저도 그냥 껴서 서명 받고. 그러다 장마잖아요, 7월이면. 서명지가 젖어요. 그러면 몸으로 가리고 이렇게 밑에 집어넣고 그랬었는데 지나가던 분이 편의점 앞에 파라솔 있잖아요. 그걸 사 오셨더라고요. 10만 원 줬대요. 그런 돌봄의 형태로 표현하는 분이 되게 많았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나도 애 키우는 엄마라서, 나도 아빠라서, 나도 선생님이라서, 그냥 지나가던 사람 아무나 가서 연대하고. 모두가 환영받고 모두가 평등하게 고생하고. 시민운동의 문화를 바꾼 굉장히 결정적인 계기가 세월호 부모님들의 활동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현재의 광장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평등인 거 같아요, 평등. 안전.”
    - 정보라 작가
     
     
    출처: 416합창단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기억·약속 시민대회는 4.16 합창단의 노래와 함께 마무리됐다. 비가 잦아든 덕분에 합창단 순서 직전에 무대의 천막이 치워졌다. 노란 단복을 입은 30명의 목소리로 ‘돌덩이’와 ‘봄날’이 울려 퍼졌다. 마지막 노래 '화인'과 함께 “반드시 진상 규명” “끝까지 책임자 처벌” 등이 적힌 작은 현수막이 단원들 손에 손에 펼쳐졌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약속 시민대회
    꿀벌

    조회수 358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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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도종환 시인은 시 화인에서 4월을 이렇게 말한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도 지난 날의 바다가 아니란다. 2014416일 그날 때문이다. 그게 어디 시인 한 사람만의 고백일까. 11년 전 4월 그날 이후 삶이 바뀌었노라, 고백하는 한 사람을 소개한다. 4.16 합창단원이자 활동가 파주 시민 김서원(도로시) 님과의 일문일답이다.
     
     
    사진출처: 416합창단
     
     
    자기소개와 근황 인사 부탁한다
    파주에 있는 여성 위기 청소년 쉼터에서 밥하는 일을 한다. 24시간 생활시설인데 활동가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도록 맛있는 밥을 해 주는 게 내 일이다. 청소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게 내 즐거움이다. 예산에 맞게 좋은 재료 공급 시스템을 만들었다. 매주 월요일 퇴근 후 안산으로 4.16 합창단 연습하러 가고, 다양한 공연 활동도 한다.
     
    윤석열 파면 결정 나오는 순간 제일 먼저 4.16가족들이 떠올랐다. 4.16 합창단에서 노래한 건 3년이지만 세월호 가족들 곁에 있는 건 11년째다. 세월호 참사로 나는 정치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다. 정치에 무관심한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투표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유언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다.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자기 인생을 나누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내 삶도 그렇다. 그날이 나를 깨웠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다른 삶을 살게 해줬다. 남태령에 트랙터 몰고 온 농민들 얘기 중에 그곳에 세월호 아이들이 와 있는 거란 말이 있었다. 맞다. 나도 합창단에서 노래할 때 항상 아이들이 함께 있음을 느낀다.
     
     
    20140416 참사 당일의 기억은?
    애들 키우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아파트 평수랑 좋은 대학 보낼 생각하고 살았다. ‘애들은 왜 나를 따라주지 않나, 남편은 왜 이렇게 무식할까, 나는 왜 이렇게 고생할까라며 늘 화가 차 있었다. 노는 날도 놀 줄 모르고 신나는 생각은 죽어도 못 하는 일 중독자였다. 그런데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갑자기 내 삶이 다 부질없어 보였다.
     
    당일 제일 먼저 찾은 게 우리 애들이었다. 애들이 어디 있지? 아들하고 연락이 돼서, 배고프지, 라며 짜장면을 사줬다. 짜장면을 먹이는데 더 할 말이 없었다. 우리 애들은 교복 입고 이러고 다니는데 그 애들은 못 돌아왔잖아. 더 얘기할 수가 없고 마음이 안 잡혔다.
     
     
    생일 가족 포스터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4.16 활동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있었나?
    갈피를 못 잡다가 지역에서 진실 규명을 위해 서명받는 사람들이 있길래 참여하고 그 곁에 있게 됐다. 2015년 들어서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을 한다는 말이 들렸다. ‘, 그럼 내가 음식을 할 수 있겠다싶어 김경환 목사님과 네댓이 안산으로 갔다.
     
    가 보니 안산의 치유 공간 이웃이었다. 우리는 각각 작은 개다리소반에 밥상을 받았다. 정말 정성스럽게 차려진, 울컥 뜨거운 눈물이 나는 밥상이었다. 가족들에게 차려지는 밥상이라는 생각에 나는 계속 울면서 밥을 먹었다. 이영하 선생님이 그러더라. “이곳은 야전병원이라고. 투쟁하고 다치고 지치면 잠깐 쉬어 가는 곳이라고. 그게 4.16 활동과의 연결이었다.
     
    봉사자 엄마들이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창비, 2015)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길래 함께 했다. 혼자서는 엄두를 못 내던 책을 같이 낭독하며 실컷 울었다. 점차 노란 리본을 만든다든가 동네에서 세월호 특별법 서명대에도 섰다.
     
     
    치유공간 이웃(이웃): 20149~20212월까지 안산에 있었던 치유 공간. 정신과 의사 정혜신·심리기획자 이명수 부부가 제안하고 시민단체 활동가 이영하 전 대표(50)가 실무를 맡았다. 수많은 활동가와 봉사자들이 4.16 가족들이 안심하고 울고, 편하게 밥 먹고 쉴 수 있게 함께 했다.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밥은 먹었어요?(이영하, 걷는사람, 2022)와 영화 <생일>(2019, 이종언 감독)에 이웃 이야기가 더 있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과 밥 이야기
    첫 생일 상차림을 위해 연 계좌에 80만 원이 모였다. 양을 대중 못해 장 보고 나니 딱 만원 남더라. 이 정도로 돈이 든다면 내 카드 긁을 각오까지 했다. 그렇게 준비된 영만이 생일 모임에 단원고 아이들과 사람들이 엄청 왔다. 50인분이란 음식이 100명 먹고도 남아, 화수분이라며 싸 주었다.
     
    다음 모임은 다음팀이 단톡방을 열어 준비했다. 별이 된 아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좋아하는 메뉴로 준비했다. 나는 그런 팀을 조직하고 식재료를 연결하고 음식도 만들었다. 수많은 봉사자들이 함께하는 이웃밴드에 모여들었다. 저명한 여성들인 십자매회를 비롯해 신부님, 선교사님 그리고 시민들의 후원과 봉사로, 매달 40만 원 정도로 생일 모임을 할 수 있었다.
     
    2015년 겨울에는 가족들을 위해 김장을 했다. 고양파주 생협과 유기농 식당 네트워크에서 재료를 댔다. 괴산 농부님들이 연결됐다. 몇백 포기 배추가 트럭으로 오고, 성당에서 기도하던 할머니들이 나와서 배추를 절이고 소금, 고춧가루, 깨 등을 아낌없이 가져오고, 뒷정리를 도왔다. 가족들께 보내고 쌍용차나 투쟁하는 분들에게도 보내고, 이웃에서 먹을 수 있었다.
     
     
    단원고 2학년 6반 고() 이영만(1998.2.19.~2014.4,16.) 은 형제 중 막내로 약하게 태어났지만 건강하게 자라 축구를 좋아하고 5km 마라톤에서 상을 받았다. ‘미소천사로 밝고 순한 성격에 엄마와 학교와 친구들을 좋아하고 공부도 잘해 우주공학자를 꿈꾸었다. 2023이영만 연극상이 제정됐다.
     
     
    4.16 활동 이전에도 음식하기 좋아했나?
    나는 41남 중 막내딸인데, 아버지가 내 밑에 남동생이 난 후로 서원이가 제일 예쁘다라는 얘기를 자주 하셔서 그렇게 알고 컸다. 어깨동무 잡지에서 나는 요리 칼럼을 제일 먼저 읽는 아이였다. 신문도 잡지도 요리 쪽을 1번으로 봤다. 중학교 때 레시피를 보고 낯선 피자를 직접 만들어 봤다. 할라피뇨, 피망 등 없는 건 집에 있는 재료로 대체했다.
     
    엄마가 정육점에서 살이 치렁치렁하게 큰 돼지고기 덩이를 사 온 적이 있는데 내가 신문에 나온 레시피를 보고 돈까스를 만들었다. 소금 후추만 쓰란 법 있냐, 간마늘로도 재고, 양파로, 우리 아버지 좋아하시는 청양고추 양념으로도 재어 튀겼다. 온 식구가 얼마나 맛있게 먹겠어. 입 짧은 남동생과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니, 우리 엄마는 늘 내게 고마워했다.
     
    언니들은 나를 요리 천재라고 불렀다. 장사하고 늦게 돌아오는 엄마에게 내가 만든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 드리면 서원이 때문에 내가 한숨 돌린다라며 좋아하셨다. 엄마가 아침에 도시락을 10개 싸던 시절, 내가 만든 반찬 덕에 엄마 수고가 줄어드는 게 좋았다.
     
     
    참사 이후의 달라진 삶 이야기
    돈도 안 벌고 안산과 파주를 오가며 생일상 차리는 일을 한 2년 했다. 아이디어로 생각하던 음식을 다 만들어 봤다. 그러나 절대 나 혼자 한 게 아니란 걸 말하고 싶다. 연대의 힘을 배웠다. 같이 메뉴 짜며 마음을 나눈 유가족들과 십시일반 힘 보태 함께 한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런 중에 나는 이혼했다. 2015년 봄, 불교팀 주방에서는 고기 요리를 할 수 없어서 우리 집으로 장을 봐서 모였다. 남편이 폭발해 소리쳤다. “세월호 참사 안 났으면 어찌 살았겠냐, 죽은 아이들 생일상 차리느라 가족들 밥은 안 차려주냐?” 그는 상을 뒤엎고, 빌려온 큰 팬을 내 쪽으로 던졌다. 남편이 일베처럼 보였다. 그날 나는 온 가족을 모아 놓고 이혼을 선언했다.
     
    살아온 날들을 부정해야 했고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던 때였다. 내 마음은 그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혼이 정리되는 몇 달간 남편이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 내 몸이 아프고 소화가 안 됐다. 딸이 나서서 이혼 서류를 갖다 줄 정도였다. 그는 안 하겠다고 버텼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18년의 결혼 생활, 연애까지 25년의 관계가 그해 말 허무하게 끝났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이혼 후에도 계속 활동가로
    내가 저질렀으니 더 절실하게 활동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시국에 민중총궐기 촛불집회가 매주 있었다. 생일 모임 후에 벙커 원 교회 친구들과 토요일에 청계천으로 갔다. 매주 집회 광장에서 뭘 해볼까 궁리하다 주먹밥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잘 안 팔리더라. 그래서 그냥 나눠줬더니 사람들이 돈을 던지고 가더라. 그 후 뭐든 나눔으로 했다.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 청와대 앞 법외 노조, 비정규직 집회, 블랙리스트 예술인들. 노숙 농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토요일 새벽에 밥을 해서 싸우는 분들에게 가서 나누었다.
     
    가진 것 까먹으며 살았다. 고기 안 사 먹고 애들 학원 안 보내고 보험 깨고 적금 해지하고 연금 없어지고 전세가 월세로 줄었다. 불만 많던 아들이 생일 모임에 참여해 보고 반항을 끝내더라. 세월호 당시 중2였던 딸도 생일 모임에 다녀간 후 엄마를 이해하더라.
     
    박근혜 탄핵 후 지역에서 소수당 진보당에 입당했다. 4.16 활동할 때 제일 묵묵히 함께한 그분들과 파주에서 4.16과 함께 노래하는 일을 시작했다. 음식 만들던 사람들과 함께 공모사업으로 파주 4.16 합창단을 3년 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안산 4.16 합창단까지 하게 됐다. 4년 정도 한 동네 부엌 천천히에서 청소년 시설로 올해 직장을 옮겼다.
     
     
    그동안 소진되는 느낌은 없었나?
    성과 위주의 인간이었는데 왜 없겠나. 파주 시민 합창단 3년 차 공연을 지역에 있는 5개 팀 연합으로 잘 올린 후였다. 장애인 가족팀이 40여 명이 참여해서 한 100명이 했다. 행복하게 끝나고 손뼉 치고 각계 인사들이 인사하고 있는데, 김서원 때문에 불편한 일이 많다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이 올라왔다. 한 번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내 욕심대로 활동한 적 없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맡은 일을 많이 정리하고 직장 일과 4.16 합창단만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삐끗대는 몸도 돌보며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4.16 참사 11주기를 맞는 소회는?
    11년간 할 만큼 활동하고 나니 속에 화가 많이 풀리고 너그러워졌다. 대규모 음식을 몇 년 하다 보니 나는 음식 전문가가 돼 있었다. 이제 나는 몸도 마음도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성과 위주의 인간이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다. 밥하는 일과 파주랑 안산 4.16 합창단 활동이 날로 재미있다.
     
    그런 중에 작년에 엑스 남편하고 재결합하고 혼인신고도 했다. “당신은 활동 자유롭게 하고 내가 이제 당신한테 은혜 갚게 해 줘라는 그의 말에 내 마음이 열린 거다. 밥이나 사나 했더니 그는 점점 밥을 해 주고 싶다더라. 그는 원하던 삶을 되찾은 셈이다. 가족밖에 모르는 성실한 남자였으니까. 바꿔 말하면 나에게도 완벽주의를 요구하고 자식과 남편만 바라보길 원했더랬다. 그 집착과 강요와 구속이 내겐 화로 쌓였던 거다.
     
    4.16 참사와 함께 깨졌던 관계가 4.16 활동 덕분에 다시 이어진 거다. 남편은 노년에 내 수발을 잘 들려고 자기 몸 관리 열심히 했다는 사람이다. 우리 관계도 이전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나이 든 연인이 되었다. 내가 4.16 합창단 공연하고 늦게 오는 날 그는 세탁기 돌리고, 냉장고 채우고, 맥주 두 캔 먹을 안주 준비해 놓고, 나 데리러 나온다. 돌아보면 이혼은 신의 한 수였다. 아니면 우리가 서로의 가치를 몰랐을 거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이후의 계획이나 꿈은?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이젠 장사하는 곳에서 밥을 상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소질이 없다. 내 엄마, 아버지에게 밥해줬던 재미, 우리 엄마가 늦게 들어왔을 때 내가 밥 퍼서 김치하고 줘도 세상에, 서원이 덕분에 엄마가 이렇게 밥을 맛있게 먹는구나.”라며 내 자존감을 키워준 밥이다. 밥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해 주는 일이 나는 즐겁다. 매일 출근할 때 일하러 가는 마음보다는 아이들을 키우러 가는 마음이다. 먹이고, 입히고, 안전하게 재우고, 내 밥을 먹고 애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4.16 가족 곁에서 4.16 합창단을 오래 하는 게 꿈이다.
     
     

     
     
     
    이제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꿀벌

    조회수 471

    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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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노래 가사 중)
     
     
    오늘따라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말이 제 질문에 답처럼 들립니다. 에디터 두 번째 글쓰기에서, 질문에 멈춰 섰거든요. “공익 에디터 글쓰기는 평소의 내 글쓰기랑 뭐가 다르지?”에서 공익과 공익 아닌 것의 경계는 뭐지?로 갔다가 내가 이걸 쓰는 게 맞나?”까지. 4.16합창단 이야기라서 더 어려운가 봅니다. 제가 별 존재감은 없지만 4.16합창단원이라고 밝히기로 했습니다. “수고했어 오늘도노래의 힘에 기대어 글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416합창단 연습 사진(출처: 416합창단)
     
    출처: 안산마음건강센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 대책위원회,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4.16가족협의회 강당 벽면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잊지 않을게, 4.16합창단 연습실 스케치
     
    “46, S12, A15, T8, B7” 이건 무슨 암호일까요? 324() 저녁 7:30-10:00, 4.16합창단의 정기연습 기록입니다. 안산에 있는 4.16가족협의회 강당에서, 소프라노12, 알토15, 테너8, 베이스7, 지휘자, 반주자, 영상 담당 그리고 사회복지사, 참여자가 46명이란 뜻이죠. 한쪽 벽면 가득 250명의 별이 된 아이들사진이 노란 걸개로 걸린 컨테이너 강당 연습실입니다.
     
    4.16합창단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떠나보낸 유가족과 생존한 아이들의 가족 그리고 시민 단원으로 구성된 합창단입니다. 201412월 작은 노래모임을 시작할 때, “자식 잃고 뭐가 좋다고 노래하냐던 분들이 11년 차 합창단이 되었습니다. 3월 말 현재 통산 456회 공연으로.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고 알리며, 사회적 참사와 아픔이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정기연습 시간은 매주 월요일 저녁입니다.
     
    합창 연습은 먹방후에 시작합니다. 준비된 저녁밥은 김밥과 라면이지만, 오늘은 단원의 모친상 답례떡, 신입단원이 쏜 곱창 순대볶음과 어묵 그리고 준우 맘의 쌀 과자 등이 더해집니다. 박미리 지휘자가 연습 시작을 알리네요.
    맛있게 드셨죠? 떡 두 봉지씩 챙기신 거죠? 하나만 드시면 안 된대요.”
    키득키득 누군가는 떡 한 봉지 더 챙겨 오고, 지휘자는 덧붙입니다.
    오늘 연습으로 4회 공연이 이어지는 거 아시죠? 대구 공연 주최 측 요청곡이 <돌덩이>인데 아직 신청 인원이 좀... 계속 더 힘 모아 주세요. 그리고 공연 때 원하는 신입단원은 악보 들고 하셔도 된다고 다시 말씀드려요.”
     
    첫 곡은 <수고했어 오늘도>입니다.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맞는 유가족들과 시민들을 따뜻하게 토닥이는 노래입니다. 이어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기쁨에게>, <포카레카레아나>, <돌덩이>, <조율>을 부릅니다.
     
     
    416합창단 공연 모습 (출처: 416합창단)
     
     

    <별 기억식>
    326: 독학으로 배운 피아노로 교회에서 거의 모든 예배 때 반주를 한, 음악 심리치료사가 꿈인 양온유(2반)
    328: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좋아하고 마술사가 되고 싶은 김용진(4)/ 책임감이 강하고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치즈케이크를 좋아하는 구태민(6)/ 기타도 잘 치고 손재주가 좋아 프라모델도 능숙하게 조립하고, 자동차 공학박사를 꿈꾸는 안주현(8)
    329: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모든 것이었던 외동딸, 웃으면 입술 끝에 주름이 생겨서 별명이 '주름'인 김주희(10)
    331: "음악은 소울이 가장 중요하지!"라며 언제나 음악과 함께하는 '츤데레' 강승묵(4)
    42: 성당에 갈 때나 시장을 볼 때, 언제 어디서나 엄마랑 다니고 무엇이든 엄마와 함께하는 엄마의 동반자 '반자' 권지혜(10)
    43: 섬세하고 다정하면서도 듬직한 성품으로 엄마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아들,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인 정휘범(4)/ 직장 다니는 엄마를 늘 걱정하고 위로하는 아들, 작가, 만화가, 기타리스트, 천문학자 등 꿈이 많은 이준우(7)
    44: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행복을 주는 아들, 부모님이 하시는 음식점에서 모든 음식의 간을 도맡아 볼 정도라 별명이 간쟁이인 강혁(4)
    45: 엄마와 걸음걸이까지 닮은 일 번 친구, ‘태권 소년’, ‘단원구 장동건조봉석(8)
    46: 잔소리 할 일 없이 키운 실거운(슬거운)’, 단 한 번도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딸,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인 권민경(9)

     
     
    연습 1부와 2부 사이엔 중간 휴식이 있고 별 기억식이 있습니다. 다음 월요일에 연습이 없으니 324~46일 사이에 생일이 든 아이들의 이름을 알토 뿅뿅이 하나하나 호명합니다. “326일입니다. 독학으로 배운 피아노로 교회에서 거의 모든 예배 때 반주를 한, 음악 심리치료사가 꿈인 2반 양온유에서 시작해 “9반 권민경까지. 지휘 없이 피아노 반주와 함께 잊지 않을게를 부를 때 오늘도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납니다.
     
     
    출처: 4.16연대, 4.16재단
     
    416합창단 두 번째 앨범 기획공연 사진 (출처: 416합창단)
     
     
    길 위의 합창단
     
    5년 전 제가 4.16합창단에 처음 들어온 그날도 잊지 않을게를 불렀습니다.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부를 때, 부모님과 인사할 때, 목소리가 자꾸 막히고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그런 목으로 계속 노래하는 신기한 합창단이었습니다.
     
    326() 3시 안산마음건강센터 개소식 장소는 햇빛 부신 마당입니다. 합창단은 2시 현장 리허설 후 대기실에서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또 연습합니다. 수없이 부르고 월요일에 연습했지만 오늘은 29(S5, A11, T4, B7)이 호흡을 맞춥니다. “수고했어 오늘도기쁨에게4.16합창단은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 10년간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과 안산 지역사회의 치유를 위해 수고한 안산마음건강센터와 거기 모인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공연 후 합창단은 서둘러 자리를 뜹니다. 저녁 630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 공간에서 4.16기억문화제를 합니다. 리허설 시간 530분까지 차로 전철로, 속속 모여든 단원은 낮 공연보다 많은 37명입니다. 초연곡인 포카레카레아나Pocarecareana’, ‘기쁨에게그리고 돌덩이를 잘 불렀습니다. 여기서 331()엔 스텔라데이지호 8주기 추모로 또 모일 겁니다.
     
    4월의 5개 공연 중 저는 대구 여정남 열사 50주기 대동한마당에 마음이 쓰입니다. 장거리에다 3월 말 현재 갈 수 있는 단원이 22명인데 알토가 저를 포함해 4명입니다. 평소 가장 수가 많은 알토가 무슨 일일까요? 행사 주최 측에서 요청한 곡이 <돌덩이>. 길고 에너지 넘치는, 알토가 특히 어려운 곡입니다. 잘하는 동료들에게 기대어 가기엔 4명이 너무 적지 않나요? 후엔 9() 연세대 채플, 12() 11주기 서울집중문화제, 그리고 16()에 안산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에서 노래합니다. 멀리 실상사로 가 선지식과 함께 걷는 순례길에서 노래하면 4월이 갑니다.길 위의 합창단입니다.
     
     
    출처: 에디터 직접촬영
     
    출처: 416합창단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10년 동안 길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픈 사람들과 손잡고 걸어가는 동행이었고 모난 세상을 향한 우리의 외침이었다.”
     
    작년 104.16합창단 두 번째 앨범 기획공연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를 여는 프롤로그였습니다. ‘길 위의 합창단의 목에 5색 스카프가 처음 등장한 무대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됐지만 아픈 마음과 연대해서 온 세상을 향해 노래하는 합창단이니까요. 재난 참사가 반복되니 마음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고 리본 색깔도 늘어나는 현실. 연대와 동행의 5색 스카프를 제작해 두르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노랑,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의 주황,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초록, 이태원 참사의 보라 그리고 아리셀 참사의 하늘색.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416합창단 두 번째 앨범 기획공연 [너의 볕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 / 출처: 416합창단 유튜브
     
    두 번째 앨범은 4.16합창단을 위한 창작곡을 포함한 CD와 음원으로 나와 있습니다. 창작곡 <>는 태어나던 날부터 18살 수학여행 가는 날까지의 아이 인생을 노래합니다. 봄날, 두 개의 세계,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종이연, 노래여 우리의 삶이여, 그날처럼 오늘도, 돌덩이,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그리움을 담은 노래 사이에 부모님들의 육성 편지 -하늘로 가는 우체통도 담겨있습니다. 첫 앨범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2020)4.16합창단 6년의 이야기는 책으로, 노래는 CD, 북 CD란 거 아시죠?
     
    예은아, '노래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요.' 1학년 일기장 속 너의 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너의 마음을 담아서 외칠게, 노래할게, 바꿔낼게, 멈추지 않을게. 그리고 안산으로 꼭 데려올게. 사랑해, 예은아.”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양의 엄마, 소프라노 단원 박은희 님의 육성 편지입니다. 한 매체 인터뷰에서 예은 엄마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못한 말을 하려고,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걸어온 길 같아요. 그래서 애들이 원하는 게 뭘까 늘 궁리하면서 살았어요. 세월호는 한국 사회에 선명한 선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과 다른 세상을 만드는 기준점이 되어야 해요.”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노래하는 합창단입니다.
     
     
    출처: 4.16합창단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제게 세월호 참사는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탈출하는 선장과 선원들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으로 들립니다. 그해에 우리 집 셋째가 세월호 아이들과 학교만 다른 고2였거든요. 그 봄에 저는 몸이 심하게 아팠고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가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병이 도져서 죽을 거 같았습니다.
     
    몸이 더 아플까 봐, 살고 싶어서 세월호 기억활동에 참여하다 4.16합창단에 들어왔습니다. 짝꿍과 함께 활동하며 늙어가자 했습니다. 노래는 존재감 없지만, 가만히 있진 말자, 곁에 있는 건 할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합창단 활동 5년이 됐지만 여전히 노래는 자신이 없어서 동료들에게 묻어가는 알토입니다. 참사 11주기를 맞으며, “수고했어 오늘도가 특별하게 와닿습니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워온 분들의 실망을 알기 때문입니다. 땀과 눈물 어린 얼굴들이 떠오르고 별이 된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수고했어 오늘도, 노래합니다.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라라 라 라 라 라 라 라라 라....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노래 가사 중)
     
     
    '4.16생명안전공원' 함께 하는 노래! [다함께 만들어요] 뮤직비디오 / 출처: 4.16재단

     


     

    “수고했어 오늘도”, 4.16합창단 이야기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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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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