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휠체어와 함께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한다. 늦게 시작한 공부와 일, 아이를 키우며 멈춰야 했던 시간, 그리고 다시 장애인 활동가로 살기까지, 그는 휠체어로 스스로 길을 내며 살아왔다.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총괄팀장이자 동료상담가 조은상 활동가를 소개한다.
= ‘동료상담가’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소개부터 부탁해요.
- 저는 안산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IL’)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도움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을 상상하잖아요. 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의 정신은 장애인을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바라보는데요, 장애인 당사자가 또 다른 장애인 동료와 하는 상담이죠. 단순히 ‘비슷한 처지끼리 하는 대화’가 아니라, 기존의 전문가 중심 상담 모델로부터 해방된 고도의 정치·사회적 치유와 임파워먼트Empowerment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정신과 의사나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을 진단과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상담이죠. 동료상담은 그런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로부터의 해방된 평등한 관계 모델이라 할 수 있어요. 장애인 스스로가 자기 삶의 전문가라고 선언하는 거죠. 자격증의 권위가 아니라 장애를 안고 살아온 ‘생존의 역사’ 자체가 상담의 강력한 도구죠. 상담의 목표 역시 상담가가 아니라 내담자 스스로 ‘자기결정권’으로 설정하고요.
동료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대등한 관계로 진행해요. 한쪽이 가르치거나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나도 그랬다”는 공감을 서로 나누는 거죠. 이 모든 과정이 자립생활 모델과 결합해요. 내면의 힘을 길러서 결국 시설이나 집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살아가게 하는 힘. 더 나아가 개인의 변화를 넘어, 사회의 책임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동력이 되고요.
= 와~ 자립생활센터가 어떤 곳인지도 소개해 주셔야겠어요.
장애인복지관과 비교해 볼게요. 이전엔 서비스를 받거나 이용하러, 즉 이용자로서 장애인복지관을 드나들었어요. IL센터에서는 장애인이 행동의 주체가 돼요. 이용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이 직접 일하고 활동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단체죠. 환경과 사회를 장애물이 없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사회 변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을 돕는 것을 넘어서 사회를 바꾸는 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삶의 운동이자 삶의 일부예요.
IL의 가장 기본 정신이 권리옹호, 자기결정권과 자기선택권인데요. 어디서 살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와 같은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인생의 큰 항로까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해요. 거기엔 실패할 권리도 포함돼 있고요. ‘장애인을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장애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라는 당사자주의고요. 소장부터 내부의 주요 의사결정자들까지 센터 인력의 과반수가 장애 당사자인 것도 그 때문이고요.
장애가 있다고 사회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야 할까요? IL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우러져 사는 것을 지향해요. 물리적 건물만이 아니라 교육·노동·문화생활 등 모든 사회적 기회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죠. 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문제로 보는 사회적 장벽Social Barrier’이 문제라고 보는 겁니다. 이 운동의 핵심은 개인의 재활이나 극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있는 거죠.
= 어쩌다 이렇게 엄청난 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을까요?
- 처음엔 아는 언니 따라왔죠. 사진 동아리 ‘포커스휠’에 나가면서도 별로 적극적인 회원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센터에서 동료상담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동료상담을 진행해본 게 첫 출발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센터활동도 하게 되고 그러다가 집단동료상담 리더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죠. 내가 ‘불쌍하고 불행한’ 장애인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구조적 모순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거죠. 장애인 동료상담가들이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직업을 갖기 위해 자격증도 따고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센터 활동과 동료상담을 하면서 왜 자립생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센터에서 간사부터 팀장, 센터장까지 경험했고, 지금은 상록수IL센터 총괄팀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IL센터이지만 일에 집중하다 보면 가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갈등이 생길 때도 있어요. 그래서 현장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스스로 돌아보게 돼요.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업무 회의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사무실 책상 앞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IL센터 활동 동료상담 사진제공 조은상
= 공부를 늦게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장녀로 태어나 돌 무렵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걷지 못하게 됐어요. 동생이 셋이었으니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부모님은 저만 집중해서 돌보기 어려웠을 거예요. 입학할 나이가 됐지만 학교까지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고, 동생들을 희생시킬 순 없지 않냐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럴 때마다 부모님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 말 못 하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집에서 가정교사를 통해 조금씩 공부했지만 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책을 읽었어요.
20대에 직업 훈련원에서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고 보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대 후반에 검정고시를 시작했어요. 결혼하고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느낌이 더 컸어요. 방송대 교육학과를 계속 장학금 받으며 졸업했어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어요. 서로 과제를 알려주고 시험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했던 경험이 컸어요. 그때 공부는 혼자보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느꼈어요.
= 장애 여성으로서 전에 하신 일과 사회생활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어요?
- 장애인이라고 하면 부모가 희생하거나 당사자가 희생하거나 그런 구조잖아요. 공부 기회를 놓치고 사회에 나갔기 때문에 저는 더 열심히 배우고 일했어요. 장애인기능대회가 있었는데 나가서 금메달을 땄어요. 이제 세계 대회를 나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연습했고 프라하 세계 장애인 기능대회 나갈 티켓도 땄어요. 그런데 저한테 기술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그렇게까지 할 거 있냐고 반대하시더라고요.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하든지, 장애인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구나, 상처를 많이 받았죠. 튀지 않고 착한 장애인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어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작업장이었는데, 수녀님들이 제 결혼을 걱정하고 반대했어요. 부모님도 심하게 반대해서 5년을 미루다 결혼했어요. 동료상담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비슷했어요. 장애 여성은 교육, 결혼, 출산, 일 등 여러 선택에서 뒤로 밀리고 편견의 대상이에요.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놀라고, 집이 깨끗하다고 놀라고,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놀라요. 장애인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해요. 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 비장애인 여성도 두려워하는 결혼인데 참 씩씩하게 사셨어요. 아이 낳고 키우며, 또 워킹맘으로 살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 30대 후반에 아이를 가졌을 때도 일을 쉬지 않았어요. 배가 불러서 운전하기 힘든데 사장님이 나와서 같이 밥이라도 먹자며 부르셨어요. 당시엔 생소했던 강아지 옷 만드는 일이었는데 일이 많아서 새벽 7시에 출근해서 야근까지 하는 날이 많았어요. 한번은 폭설이 내려 청계 터널에서 2시간을 갇혀 있었는데, 다음 날 보니 타이어가 터져 있더라고요.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 아이랑 저랑 정말 주님이 살려주셨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결혼할 때도 그랬어요. 장애인이 어떻게 살 거냐, 아이는 어떻게 키울 거냐. 저도 아이는 낳지 말자 생각했었죠.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양육에 자신도 없었죠. 어느 날 밤늦게 퇴근하면서, 일만 하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갖기로 했어요. 임신과 출산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이동도 어렵고 병원 가는 것도 힘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일을 할 수 없었어요. 맡길 곳이 없어서 제가 아이를 돌보게 되었어요.

안산의 리프트 택시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 센터에서 진행된 안산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착한 장애인’이라는 기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 가족 안에서 화목하게 살기 위해서는 많이 참아야 했어요. 장애인이기도 하고 여성이라는 점이 겹치면 어떨까요? 장애인 여성은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어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자존감은 많이 낮아져 있었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남들보다 사회생활도 그렇고 뭐든 다 늦었으니까 나는 더 빨리 잘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었어요. 이걸 ‘맏딸 콤플렉스’라고 하죠? 부모님한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고, 장애인이라 못한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딱딱 다 잘 해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10년 IL 활동을 하며 조금씩 달라졌어요.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서로 힘들게 하잖아요. 이제는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말해요. 어머니에게도 이번에는 못 간다고 말하게 되었어요. 그럴 힘이 생겼죠.
=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아이를 키우다가 어느 순간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한 언니가 등록금을 내줄 테니 공부를 꼭 하라고 말했어요.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버지도 응원해 주셨어요. 마흔 넘어 다시 공부할 때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엄마가 보내준 김치 통 사이에 아버지가 학비에 보태라고 몰래 30만 원이 든 봉투를 넣어두셨는데, 김칫국물에 젖은 그 봉투를 보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나 삶의 전환점이 있었나요?
- 2014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를 많이 도와주던 언니도 돌아가시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어요. 그 시기에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요. 솔직히 우울함도 있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 사건이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그냥 뉴스에 나오는 사건이 아니라 내 아이의 일처럼 느껴졌죠.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이래도 되는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힘든 시기를 통과하며 지역에서 하는 집회나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됐어요. 큰 역할은 아니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연대하고 같이 있는 사람,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4.16시민대학 사진제공 조은상

세월호참사 10주기 4160인 합창에 참여하고 사진제공 조은상

안산시민연대 촛불문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장애인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라고 보십니까?
- 일은 삶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센터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분이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사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라던 말을 잊을 수 없어요. 큰 변화라고 느꼈어요. 일하고 돈을 벌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게 장애인의 삶의 위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살게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중증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수입 이상의 의미를 가져요. 사회의 구성원으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더 커요.
그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 불러요. 시혜적 성격을 거부하고, 이동권, 탈시설, 교육 등 장애인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날이죠. 올해도 3월 26일에 청와대 앞에서 <22회 3.26 전국장애인대회 및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식>을 열었어요. 최옥란 열사 기일에 열린 22회 3.26 대회였죠. 효자동 복지센터 인근에서 출발해서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하고 집회와 열사들을 기리는 추모제도 진행했어요. 많은 활동가들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전국에서 모여요.

3.26 전국장애인대회 사진제공 비마이너

장애인 권리 보장 다이인(die-in) 행동 사진제공 조은상

장애인 접근권 보장 기자회견 참여 중 발언 사진제공 조은상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삭발 투쟁 사진제공 조은상
=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 지금까지 활동하고 또 아이를 기르면서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앞으론 어떻게 살지?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소소하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서로를 지지하고 나누면서 사는 삶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IL센터의 활동가로, 동료상담가로 목소리를 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면서 살아야죠.
돌아보면 누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그때그때 부딪히며 길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큰 계획보다는 지금처럼 살 것 같아요. 필요한 자리에 가 있고 연대하며 살고 싶어요.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았다 싶어요. 앞으로도 휠체어와 함께 제가 길을 만들며 살아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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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공익활동, 혼자서는 지속되지 않는다
경기도 어느 시·군의 작은 공익활동 단체를 상상해 보자. 환경, 아동, 복지, 문화 등 각자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모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마주치는 현실은 이상과 다를 때가 많다. 단체를 법인으로 등록하는 절차는 복잡하고, 보조금 신청서 작성은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며, 회원 모집과 홍보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같은 고민을 나눌 동료나 단체를 찾기 어렵다. 공익에 뜻은 있지만 그것을 지속시킬 자원과 구조가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중간지원조직'이다. 중간지원조직은 공익활동 단체와 행정, 기업, 시민 사이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허브 역할을 한다. 이 중간지원조직의 생태계가 가장 체계적으로 발달한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다.
일본 내각부(2022) 정의에 따르면 중간지원조직이란 "다원적 사회에서 공생과 협동이라는 목표를 향해, 지역사회와 NPO의 변화와 필요를 파악하고 인재·자금·정보 등의 자원 제공자와 NPO를 연결하며, 넓은 의미에서 각종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을 조율하는 조직"이다. 요약하자면 'NPO를 지원하는 NPO'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약 30년에 걸쳐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의 지원 구조를 촘촘하게 구축해 온 일본의 경험은, 현재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포함해 여러 행정구역 단위의 공익활동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를 키워가고 있는 한국에 여러 시사점을 전한다.
자원봉사 원년 1995년, 일본 NPO 생태계의 출발점
일본의 NPO 생태계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는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이 있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일본 효고현 남부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대지진, 한신·아와지 대지진이다. 사망자 6,434명이라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 이 재난에서, 지진 직후 피해 지역에서 이재민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에 참여한 사람은 하루 평균 2만 명이 넘었으며 3개월간 연인원 117만 명에 이른다. 현지에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헌혈이나 기부, 물자 지원 등 후방 지원에 자원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최대 16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1995년은 일본에서 '자원봉사 원년'으로 불린다. 수십만 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일본 사회는 처음으로 시민사회의 힘을 실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한계도 드러났다. 자원봉사자들의 열의는 넘쳤지만 이들을 조직하고 연결할 구조가 없었다는 점이다. 자원은 넘치는데 배분이 안 되고, 현장마다 중복 지원이 발생하는가 하면 사각지대가 생기기도 했다. 시민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졌다.
일본 정부는 비영리단체를 손쉽게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1997년에 '특정비영리활동 촉진법(NPO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일본의 시민사회와 비영리 섹터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NPO법 제정 이전에는 일본의 소규모 시민단체들은 법인격을 취득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거 등장한 소규모 풀뿌리 시민단체들은 기존의 공익법인제도의 틀 내에서는 법인격을 부여받기가 쉽지 않아 임의단체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조직 기반이 약하고, 인지도나 사회적 신용도가 낮아 공익활동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NPO법 제정으로 이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법인격을 취득한 단체는 은행 계좌를 법인 명의로 개설하고, 계약의 주체가 되며, 사회적 신용도를 얻을 수 있었다. NPO법의 제정·시행을 계기로 그동안 임의단체로 활동해 왔던 시민단체들이 대거 법인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NPO법 시행 이후 일본의 NPO법인 수는 꾸준히 늘어 현재 수만 개에 달하는 생태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중간지원조직의 구조 :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의 촘촘한 네트워크
NPO법 제정과 함께 일본 전역에서 중간지원조직도 빠르게 증가했다. 중간지원조직의 설립 시기를 조사한 결과, 1995년 이후에 설립된 것이 전체의 82%를 차지했으며, 특히 민설·민영 형태의 중간지원조직은 그 비율이 92%에 달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NPO법 제정이 중간지원조직 확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구조는 크게 두 층위로 나뉜다.
- 전국 단위 : 일본NPO센터
일본NPO센터는 1996년 11월 NPO 관계자들의 협력으로 설립되었으며, 1999년 특정비영리활동법인, 2011년에는 인정특정비영리활동법인*으로 인정받았다. 정보 교류, 인재 개발, 조사·연구, 정책 제언 등의 활동을 통해 NPO의 기반을 강화하고, 기업·행정과의 파트너십 구축을 목표로 한다.
일본NPO센터는 분야와 법인격의 유무에 상관없이 NPO 등 민간비영리 섹터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데 힘쓰며, 각종 연수와 네트워킹 기회 제공, IT 지원, 자금 중개 프로그램 등을 통해 활동을 뒷받침한다. 기업을 대상으로는 NPO와의 협동 사업을 제안하고 상담하는 창구 역할도 한다.
* NPO 법인중에서 운영조직 및 사업활동이 적정하고, 공익의. 증진에 기여가큰 법인으로, 관할기관 (도도부현・정령시)으로부터 인정을받은 NPO
- 지역 단위: 도도부현 NPO지원센터 네트워크
일본NPO센터는 전국 도도부현별로 NPO지원센터 목록을 관리하고 있으며, 각 지역의 지원조직과 지원시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각 지역 센터는 NPO의 조직 상담에 대응할 수 있는 상근 스태프를 두고, 분야를 가리지 않는 종합 지원을 원칙으로 한다.
중간지원조직의 형태는 NPO, 타운 매니지먼트 기관 등 제3섹터적인 것, 자치체 내부에 설치된 것, 사회복지협의회가 설치한 것 등 다양하다. 공설公設 및 민설民設 양쪽의 형태가 있으며, 공설 중에는 민영(운영을 NPO법인 등 민간에 위탁하는) 형태도 있어 '공설민영' 형태가 증가하는 추세다.
중간지원조직의 주요 기능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상담과 정보 제공이다. 법인 설립부터 보조금 신청, 회계 처리까지 단체가 필요로 하는 실무적 지식을 지원한다. 둘째는 역량 강화 교육이다. 단체 운영, 모금, 홍보 등 다양한 주제의 연수를 제공한다. 셋째는 자원 연계다. 기업의 사회공헌 자금이나 재단 보조금을 NPO와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넷째는 네트워크 구축이다. 단체들이 서로 만나고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
일본NPO지원센터의 구체적 활동 : NPO서포트센터와 협동 모델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례는 NPO서포트센터다. NPO서포트센터는 1993년에 설립되어 일본 최초의 민간에 의한 NPO 지원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설립 당시는 NPO라는 개념이 '발견'되어 이입되기 시작한 시기로, 버블 붕괴, 한신·아와지 대지진, 지하철 사린 사건 등으로 상징되는 저성장과 혼미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 선구자들은 NPO의 가능성에 목소리를 높여 NPO법이라는 기반을 만들었다.
NPO서포트센터는 도쿄 중앙구와 협력해 '협동스테이션 중앙을 운영하며, 행정과 NPO의 실질적 협동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델에서 핵심은 행정이 공간과 일정 재원을 제공하지만 운영의 주도권은 민간 NPO가 갖는다는 점이다. 행정 주도로 운영될 경우 나타나는 경직성 문제를 최소화하면서도 공공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일본NPO센터가 행정과의 협동을 정의할 때 "이종·이질의 조직이 공통의 사회적 목적을 위해 각자의 자원과 특성을 모아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하여 함께 일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협동이 공동 의존이나 유착 관계가 되지 않도록 정보 공개를 철저히 하고 사업마다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행정으로부터 지원을 받되 독립성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중간지원조직의 존재 의의이기 때문이다. 일본NPO센터는 행정과 협동하는 NPO가 갖춰야 할 자세로 "행정에 의존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독립할 것"을 핵심 덕목으로 꼽는다.
국내 중간지원조직과의 공통점 및 차이점
필자가 6기 아카이브 에디터로 활동 중인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경기도민과 공익단체들의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증진하기 위해 경기도와 시민사회가 함께 설립한 중간지원조직으로,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구조와 비교할 때 몇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드러난다. 유사점으로는 먼저 행정과 시민사회의 협력 구조가 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경기도의 지원 아래 운영되면서도 시민사회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구조를 갖고 있다. 공익활동 단체 지원, 네트워크 구축, 콘텐츠 아카이빙 등 일본 중간지원조직의 주요 기능과 상당 부분 겹친다. 양성교육 프로그램 운영, 정기회의를 통한 네트워크 구축, 공익매거진 발간 등은 일본 지역 센터들의 활동과 흡사하다.
차이점에서는 역사의 두께가 가장 크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는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1998년 NPO법 제정을 출발점으로 삼아 약 30년의 축적을 가지고 있다. 전국 단위에 일본NPO센터가 있고, 47개 도도부현에 각각 지역 지원 조직이 있으며, 더 아래로는 시·구·정·촌 단위의 자원봉사센터와 협동 거점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이후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었고,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그 흐름 위에서 성장하고 있지만 역사의 두께 면에서는 아직 차이가 있다.
또한 일본은 NPO법이라는 명확한 법적 근거 위에 전체 생태계가 세워져 있어, 어느 지역에 어떤 종류의 지원 조직이 있는지 체계적으로 파악된다. 한국은 공익 관련 법인 형태가 분산되어 있고, 중간지원조직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법적 근거가 상대적으로 덜 명확하다.
기업 연계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본은 기업의 사회공헌(CSR·CSV) 활동과 NPO를 연결하는 매개 기능이 중간지원조직의 중요한 역할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 자원이 공익활동 생태계에 흘러드는 구조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반면, 한국은 이 연계가 아직 초기 단계인 경우가 많다.
일본 사례가 보여주는 중간지원조직의 세 가지 원칙
일본의 사례에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비롯한 국내 중간지원조직 생태계가 참고할 만한 점을 세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 법적 기반이 생태계를 안정시킨다. 일본 NPO 생태계의 폭발적 성장은 1998년 NPO법 제정 이후에 일어났다. 법인격 취득이 쉬워지자 단체들이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위에서 중간지원조직도 자라날 수 있었다. 한국도 공익활동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의 논의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단체 등록, 세제 혜택, 보고 의무 등 법·제도적 환경이 공익활동의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 밀착성이 핵심이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은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전국 단위 센터가 정책 제언과 정보 허브 역할을 한다면, 지역 센터는 실제로 단체들의 현장과 맞닿아 개별 상담, 역량강화 교육, 지역 네트워크 구축을 담당한다. 경기도는 31개 시·군이라는 방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만큼, 남부센터와 북부센터 체계를 기반으로 지역별 밀착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독립성을 지켜야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살아난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들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행정 의존 탈피'다. 재정 지원을 받되, 공익활동 현장의 목소리를 행정에 전달하는 정책 제언 기능, 단체들이 서로 연대하는 네트워크 기능을 유지하려면 운영의 자율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생태계 전체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일본의 NPO 중간지원조직 생태계와 국내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를 비교하면 역사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1995년 대지진을 계기로 자원봉사의 원년을 선언하고, 1998년 NPO법을 제정하고, 그 위에서 30년에 걸쳐 촘촘한 지원 구조를 쌓아온 일본과, 공익활동의 제도화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된 한국의 차이는 단순히 따라잡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방향은 같다. 공익활동이 혼자서는 지속될 수 없다는 인식, 그것을 지원할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그 중간지원조직이 행정과 시민 사이를 '진짜 다리'로 연결해야 한다는 인식은 일본과 한국이 공유하고 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아카이브 에디터와 함께 공익활동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쌓아가는 것도 그 방향의 일부다. 30년 전 일본의 시민들이 대지진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보여준 시민사회의 힘처럼, 오늘 경기도의 공익활동을 기록하는 한 줄, 한 줄이 미래의 생태계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카드뉴스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참고 자료
일본NPO센터 공식 홈페이지 https://www.jnpoc.ne.jp/
내각부 - 중간지원조직의 현황과 과제에 관한 조사 보고(2002)
https://www.npo-homepage.go.jp/uploads/h13b-2.pdf
NPO CROSS - "중간지원조직이란 무엇인가" https://npocross.net/1881/
복지타임즈 -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재해 지원 시스템 구축" https://www.bokj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865
민병로 (2010). 일본 시민 사회의 구조와 법인화 - NPO법인 제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10(2), 125-160.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469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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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 안산의 밤, 평화를 묻다
2026년 4월 2일, 안산 중앙동 월드코아 광장에서
차가운 아스팔트에 누운 사람들
4월의 안산은 아직 춥다. 바람이 몰아치는 중앙동 월드코아 앞 광장, 그 바닥에 사람들이 눕기 시작했다. 스스로 선택해서,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팔을 벌리고, 그대로 멈췄다. 다잉 퍼포먼스. 죽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행위. 이란에서, 베네수엘라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집어삼킨 이름들.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바라봤다. 어떤 이는 그냥 걸어갔다. 그것도 하나의 대답이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자주 그냥 걸어가는가. 전쟁은 멀리 있고, 뉴스는 흘러가고, 오늘도 밥을 먹어야 한다. 그 무심함이 세계를 지금 이 꼴로 만들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안산평화연대와 안산민중행동이 이번 집회를 열었다. '미국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긴급평화촛불'. 이름이 길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우리 아이들을 전쟁터로 보내지 말라는 것.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감상적인가. 그러나 감상적인 것과 옳은 것이 반드시 다른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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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미친 운전자를 끌어내려야 할 때
한겨레평화통일포럼의 강신하 씨가 여는 말을 맡았다. 그는 트럼프가 말하는 '힘에 의한 평화'가 일제강점기 이토 히로부미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평화를 외치면서 자국 이익을 위해 국제법을 위반하고,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고, 이란을 침공하고, 이제 쿠바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 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그 논리의 익숙함이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졌다.
“미친 운전자는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그는 2차 대전 말기, 히틀러에 의해 순교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말을 인용하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날 세계는 인터넷과 무역 등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한 사람의 광인이 그 연결망 전체를 고통에 빠뜨리고 있으며, 세계 시민이 연대하여 트럼프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트럼프는 지구를 떠나라."
구호는 과격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연료처럼 쓰는 모든 방식에 대한 거부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외쳤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2026년 4월 2일, 안산 중앙동 월드코아 광장에서 열린 긴급평화촛불 여는말을 하고 있는 강신하 (사)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
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다음 차례는 어디인가
첫 번째 자유발언자는 지금 이 순간의 전쟁을 이야기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략전쟁이 한 달을 넘겼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런데 트럼프는 오늘도 '극도로 강력한 타격'을 언급했다. 다른 나라의 주권과 그 나라 국민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발언자는 이번 전쟁이 기울어가는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의 발악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를 겨냥한 우크라이나 전쟁, 베네수엘라 침공, 쿠바 겨냥, 이란 침공. 그다음은 어디인가. 결국 미국이 패권을 지키려면 최후의 경쟁자는 중국이다. 불타는 서남아시아의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광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뒤이어 발언자가 짚은 것은 한국 정부의 태도였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는 서방 공동성명에 이재명 정부가 동참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 침공과 민간인 학살에는 침묵하던 나라들이 이란의 자위적 조치에는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했다. 그 성명에 한국도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리고 작년 관세협상 팩트시트에 담긴 이른바 ‘동맹 현대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미국 무기 구매, 주한미군 현금 지원-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한미 연합훈련 프리덤 실드FS·Freedom Shield가 대북 작전에서 대중국 작전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읽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이런 합의를 했다면 강한 비판을 받았을 것이며, 민주당이라고 해서 나라의 안보와 국익을 파는 행위에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발언자의 말이 맞다. 여야가 한통속으로 미국의 압박에 끌려다니는 상황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정파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이라크 파병으로 김선일 씨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시민이 나서야 한다. 민중의 힘으로 정부를 견제하고 국익과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
3대의 병역,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이름들
두 번째 발언자는 국립영천호국원에 잠든 한 아버지의 딸로서 그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6·25 전쟁 당시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 날짜를 잡아놓은 상태에서 보국대로 끌려간 아버지는 1951년 이승만의 긴급 명령으로 강제 동원된 민간인 부대, '지게 부대'에서 총도 군복도 없이 지게와 맨손으로 물자를 날랐다고 한다. 굶주림과 질병, 가혹한 폭격 속에서 아버지는 다시 영덕에서 제주도로 끌려갔고, 넉 달간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모두들 전사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냈다. 전사 통지서를 기다리며 눈물로 살았던 할머니와 고모들, 예비 신랑이 전사했다는 소문에 고통받던 어머니, 그 충격으로 석 달 만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까지. 휴전 후 아버지는 살아 돌아와 두 사람은 결혼했지만,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했다고 한다. 또 전쟁이 일어날까, 또 끌려가진 않을까. 가슴이 벌렁거리는 삶.

긴급평화촛불 두번째 발언자의 모습 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그의 오빠는 10·26사태와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군부 시절 32개월간 군생활을 하며 소식을 닿지 않아 어머니는 밤새 울며 기도했다고 한다. 남동생은 노태우 정부 시절 27개월 포병으로 복무했고, 무거운 장비를 들다가 허리를 다쳐 지금도 후유증이 있다.
그의 큰아들은 박근혜 정부의 북풍 몰이 속에 군대에 갔다. 작은아들은 최전방 GPGuard Post, 감시초소에서 복무하는 동안 시국 뉴스에 심장이 벌렁거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미국에서 일하는 큰 아들은 배낭여행으로 이란을 몇 번 다녀온 것이 문제가 되어 비자를 받으러 왔다가 5개월간 발이 묶였다. 아버지부터 오빠, 남동생, 아들까지 3대가 '병역명문가'로 검색된다. 참전용사요, 숨은 영웅이라지만 뒤집어 말하면 3대에 걸친 전쟁 피해자다.
그는 호주 시드니 안작 메모리얼Anzac Memorial에서 본 동상 이야기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전사한 군인 한 명을 여성 세 명이 어깨로 받치고 서 있는 동상. 어머니, 아내, 딸. 그 앞에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전쟁은 결코 남성들만의 일이 아니다. 그 무게와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건 결국 수많은 여성이다. 국가는 그 여성들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 기록하지도, 기억하지도 않는다. 두번째 발언자는 말했다. 3대 병역명문가 말고, 3대 평화명문가의 역사를 쓰고 싶다고, 우리 아들딸들에게 물려줄 가장 좋은 선물은 평화라고.
휘파람과 촛불 - 광장이 끝나도 남는 것
집회의 마지막 순서로 휘파람의 노래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구호 대신 노래. 주먹 대신 촛불. 어떤 이는 눈을 감고 들었고, 어떤 이는 옆 사람 어깨에 살짝 기댔다. 분노와 슬픔이 잠시 다른 형태를 취하는 시간이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노래는 끊어지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흩어졌고, 광장은 다시 그냥 광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 있다는 확인.
작은 불꽃들이 가까이 모여 있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다. 오늘 밤 안산의 광장이 그것을 보여줬다. 우리 아버지가 겪은 비극을 손자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아픔을 손녀들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차가운 4월의 밤에 촛불을 들었다. 그 불꽃은 오늘도 꺼지지 않는다.

사진 제공 6기 아카이브 에디터 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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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7※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안산 다문화 작은 도서관의 공간은 폐쇄되었다
하지만 질문은 폐쇄되지 않는다
1. 푸른 대문에 대하여

안산 다문화 작은도서관 입구의 파란 대문. 지금은 문패가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도서관은 그냥 도서관이다. 책이 있고, 의자가 있고, 조용한 곳. 하지만 안산역 지하보도를 빠져나와 다문화 거리의 소음을 헤치며 걷는다. 다문화 지원센터 지하 1층으로 내려가던 사람들에게, 그 좁고 낮은 공간은 다른 장소였다. 24개국의 언어로 된 책들이 빼곡히 꽂힌 서가 앞에서 그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자신이 이 도시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되찾았을 것이다.
17년이었다. '안산 다문화 작은 도서관'이 이 땅에 뿌리 내린 이주민들의 곁에 있던 시간. 낯선 나라에서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고 돌아온 밤, 모국어로 된 문장 하나가 주는 위로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17년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런데 지난 2월, 그 공간은 공문 한 장과 함께 사라졌다. 협의도 예고도 없었다. 3년간 이 도서관을 운영해 온 박서연 관장은 재위탁 심사를 준비하던 중 폐관을 통보받았다. 청천벽력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사서 선생님들과 함께 출근해서, 함께 퇴근했다." - 도서관을 이용하던 한 중국인 어머니의 말
이 문장을 읽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한 번도 낯선 땅에서 혼자였던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도서관은 이미 학교였고, 사랑방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던 장소였다. 그 푸른 대문 안에, 이제 온기가 없다.
2. 한창 일할 때는 못 갔지만, 쉬는 날에는 꼭 찾았다
공립 작은 도서관이라는 이름에는 조건이 붙는다. 저녁 여섯 시면 문을 닫아야 한다. 이주 노동자들이 퇴근하는 시간보다 먼저. 그러니 한창 일하던 시절에는 들르고 싶어도 들를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이 도서관을 오가던 이들은 자주 했다. 공립이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한계였고, 도서관 스스로도 이 아이러니를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찾아왔다. 몇 년 만에 오는 이도 있었다. 잠시 일을 쉬게 된 틈에, 혹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두었다가 드디어 시간이 생긴 날에 그들은 도서관을 찾았다. 그리고 오래된 단골처럼 서가 앞에 섰다. 작지만 이주민에게는 고향 같은 곳이었다. 다른 도서관에서는 찾을 수 없는 편안함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단지 모국어 책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속도로,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었다.
한국 정착이 아직 낯선 이들에게 이 도서관은 또 다른 의미였다. 이 건물 1층에는 출입국 사무소가, 2층에는 외국인지원본부가 있다. 행정적으로는 완벽하게 갖춰진 구조다. 그런데 2층에서 제대로 안내를 받지 못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리는 곳이 지하 1층, 다문화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은 단지 직원이 방문객을 응대하는 곳이 아니었다. 누군가 들어와 질문하거나 이야기를 걸어오면, 책을 읽던 사람, 신문을 보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향인이면 자기 언어로 말을 건네고, 말이 잘 통하지 않으면 영어든 한국어든 섞어가며 함께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제도가 설계한 서비스가 아니었다. 공간이 오랜 시간 쌓아온, 사람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결이었다. 관공서가 끝나는 곳에서 도서관이 시작되었다.
3. 산속으로 밀어낸 권리들
안산시는 대안을 내놓았다. '관산 도서관'으로 서적을 이전하겠다고 했다. 관산 도서관은 원곡동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이주민들이 매일 오가는 다문화 거리와는 다른 세계에 있다. 번화가를 벗어나, 산 쪽으로 치우친 곳. 지도상의 거리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하고 돌아오는 이주민 노동자가 버스를 갈아타고, 산기슭의 도서관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대체 누가 진지하게 계산했을까.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안산 중앙도서관 관장은 관산도서관을 '상호문화 도서관'으로의 리뉴얼이라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새로운 개관, 새로운 운영 방식, 거창한 방향들이 논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논의의 어느 자리에도 다문화 도서관은 없었다. 정작 '상호문화 도서관' 주체인 관산 도서관 담당자들도 그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책을 어떻게 이동하고 재배치할지에 대한 예산도 아직 책정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소멸은 폭력보다 더 모욕적이다. 무관심으로 집행될 때.
이주민의 언어로 쓰인 책들이, 상호문화 도서관을 열겠다는 계획이 논의되는 동안, 그 논의의 근거가 되었어야 할 사람들과 책들은 완전히 소외되었다. 수만 권의 모국어 책들은 지금 보관실 한구석에 쌓여 있다.
안산시가 이주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타 지자체와 비교를 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타 지자체들은 독자적인 다문화 도서관 건물을 짓고, 이주민 지원을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는 지금, '다문화 선도 도시'를 자처해온 안산시의 다문화 도서관 폐관 결정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주민은 도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지만, 그들의 언어와 문화는 수납되거나, 소거되어도 좋은 부수적인 것이라는 선언이 아닐까? 명시되지 않았을 뿐, 그렇게 나는 그렇게 읽힌다.

안산문화도서관에 있던 수만 권의 모국어책들은 방치된 채로 싸여 있고 책장은 텅 비어있다

폐관된 안산다문화 도서관의 서적들이 이전될 예정인 관산 도서관
4. 이민청을 유치하겠다는 도시
안산시는 지금 이민청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주민이 많은 도시라는 조건이 유리하게 작동할 것이라 본다. 그 기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민청이라는 건물을 유치하는 데는 열성이면서, 이주민들의 일상을 지탱하던 작은 도서관 하나는 예산 효율화를 이유로 없애버리는 이 도시가, 진정으로 이주민을 위한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드웨어에는 투자하고 소프트웨어는 삭제한다. 간판은 걸면서 내용은 비운다. 이것은 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이주민을 대하는 방식의 축소판이다. 그들의 노동은 필요하지만, 그들의 언어와 감정과 기억은 도시의 설계에서 자꾸 뒷전으로 밀린다.
진정한 상호문화도시는 구호에 있지 않다. 그것은 좁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모국어로 된 책을 펼치는 이주민들의 일상을 행정이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난다. 지금 그 책들은 창고에 있다. 그 사실이, 이 도시의 현재 좌표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공간은 폐쇄되었다. 하지만 질문은 폐쇄되지 않는다. 방치된 서가 아래에서,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안산시와 이 사회에 묻는다. 당신이 만들고 싶은 도시는 무엇인가. 경제적 지표 위에 세워진 효율의 도시인가, 아니면 낯선 이의 고단함도 품어낼 수 있는 공동체인가. 둘 다 원한다면, 먼저 그 창고 문을 열어야 한다.


폐관된 다문화 작은 도서관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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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2※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디지털 시대, 공익활동의 새로운 흐름
스마트폰 하나로 은행 업무를 보고, 장을 보고, 심지어 투표 정보를 확인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우리 동네 가로등이 고장 났을 때 어디에 신고해야 하지?", "내 지역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시민들이 자신의 일상과 직결된 문제를 공적 영역에 전달하는 일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높은 문턱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개념이 바로 '시빅테크Civic Tech'다. 시빅테크란 시민의 민주적 참여와 공공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분야를 가리킨다. 단순히 정부가 전자민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는 다르다. 시빅테크의 핵심은 기술이 '정부의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도구'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시민이 먼저 문제를 인식하고, 기술을 통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며, 그 결과로 공공 기관을 움직이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이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역사와 영향력을 가진 단체가 바로 영국의 ‘마이소사이어티mySociety’다. 2003년 설립 이후 20여 년간 영국 시민들이 지역 문제를 신고하고,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보내고, 정부 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일을 기술로 쉽게 만들어온 이 비영리단체의 이야기는, 공익활동 생태계를 키우고자 하는 한국 시민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영국 마이소사이어티(mySociety) 홈페이지 mysociety.org
마이소사이어티의 설립 배경과 철학
마이소사이어티는 영국 기반의 등록 자선단체로, 원래 이름은 'UK Citizens Online Democracy 영국 시민 온라인 민주주의'였다. 1996년 UKCODUK Citizens Online Democracy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단체는 2003년 마이소사이어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온라인 기술을 활용해 시민들이 시민 참여의 첫걸음을 내딛도록 돕는 선구적인 비영리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설립자 톰 스타인버그Tom Steinberg는 당시 동거인이었던 제임스 크랩트리James Crabtree와의 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 크랩트리가 온라인 민주주의 저널
마이소사이어티의 비전은 '사람들이 정보를 갖추고, 연결되며, 자신의 공동체와 세상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공정한 사회'이며, 미션은 '민주적 참여의 장벽을 허무는 디지털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마이소사이어티가 '최소한의 기술'을 철학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화려한 인터페이스보다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단순함을 추구했고, 사용자가 우편번호 하나만 입력해도 자신의 지역 의원이 누구인지, 어느 기관에 신고해야 하는지 바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기술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한 것이다. 현재 마이소사이어티는 민주주의, 투명성, 기후, 커뮤니티라는 네 가지 실천 영역에서 40개국 이상의 시민들을 돕고 있다.
지역 문제를 지도 위에 올리다 : 픽스마이스트리트(FixMyStreet)
마이소사이어티의 플랫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2007년에 시작된 '픽스마이스트리트'다. 이름 그대로 '내 거리를 고쳐라'는 뜻이다. 작동 방식은 간단하다. 시민이 스마트폰이나 웹사이트에서 우편번호나 현 위치를 입력하면 지도가 열린다. 거기서 문제가 있는 지점을 핀으로 표시하고, 파손된 도로, 고장 난 가로등, 방치된 쓰레기 등 문제 유형을 선택한 뒤 사진과 설명을 첨부해 제출하면 끝이다. 시스템은 해당 지점이 어느 지방의회 관할인지 자동으로 판단해 담당 기관에 신고를 전달한다. 시민은 자신이 어느 구청에 전화해야 하는지 알 필요도 없다. 신고 이후 처리 과정도 공개적으로 추적할 수 있어, 같은 문제를 공유하는 주민들이 함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픽스마이스트리트는 2007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왔다. 픽스마이스트리트는 2024~2025년 뉴스픽 하우스 정치기술상에서 '시민들이 지역 인프라 문제를 관련 기관에 직접 신고할 수 있게 해주는 시빅 리포팅 도구'로 평가받으며 실시간 공공 참여를 지원하고 투명성을 높이며 일상적인 지역사회 참여를 강화하는 공로로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이 플랫폼의 코드는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있어, 다른 나라의 단체나 개인이 자국 상황에 맞게 변형해 사용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의 NGO GongGrađani organizirano nadgledaju glasanje이 'Popravi.to(고쳐라)'라는 이름으로 자국판 서비스를 만든 것처럼, 현재 픽스마이스트리트 플랫폼은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2018년 한 해에만 마이소사이어티의 영국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이 900만 명을 넘었다.

영국 마이소사이어티가 운영하는 공익활동 플랫폼 중 하나인 픽스마이스트리트 fixmystreet.com
권력에게 말 걸기 : 라이트투뎀(WriteToThem)과 왓두데이노(WhatDoTheyKnow)
'픽스마이스트리트'가 지역 환경 문제를 다룬다면, '라이트투뎀'과 '왓두데이노'는 시민과 권력 사이의 소통 방식 자체를 바꾼다.
'라이트투뎀'은 시민이 자신의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지역구의 하원의원, 상원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을 자동으로 찾아주고, 그 자리에서 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수신자의 이메일 주소를 찾을 필요도 없고, 어떤 의원이 자신의 지역을 담당하는지 미리 알 필요도 없다. 라이트투뎀은 영국 전역의 시민들이 우편번호를 입력해 자신의 선출직 대표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로, 많은 구성원과 많은 대표자 사이의 소통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독보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라이트투뎀' 이용자의 절반 이상은 선출직 대표에게 처음 연락해본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참여 경험이 없던 사람들이 이 플랫폼을 통해 처음으로 민주주의에 참여했다는 의미다. 단순히 기존 참여자를 돕는 것을 넘어, 참여의 문턱 자체를 낮춘 것이다.
'왓두데이노'는 영국의 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따라 시민이 공공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청구 양식이나 법적 지식 없이도, 원하는 기관을 선택하고 원하는 내용을 입력해 제출하면 된다. 모든 청구 내용과 기관의 답변은 공개적으로 기록되어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같은 내용의 청구가 중복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방지된다. 왓두데이노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보공개 청구는 영국 중앙정부에 제출되는 전체 청구의 15~20%를 차지하며, 45,000개 이상의 공공기관이 등록되어 있고 80만 건 이상의 청구가 이 서비스를 통해 이루어졌다.
2023~2024년에는 약 12만 건의 정보공개 청구가 왓두데이노를 통해 제출되었으며, 이는 전년 대비 3% 증가한 수치다. 또한, 라이트투뎀 서비스의 한 활용 사례로, 기후 및 생물다양성 입법을 위한 초당적 지지를 끌어내려는 'Zero Hour' 캠페인이 라이트투뎀 도구를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통합해 지지자들이 각자의 지역 대표자에게 직접 연락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두 플랫폼이 공유하는 공통점은 '출발점은 시민'이라는 원칙이다. 정부가 원하는 방식으로 민원을 접수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방식으로 소통을 시작할 수 있다.
한국 현황과 비교 : 정부 주도와 시민 주도의 차이
한국에도 유사한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신문고와 청와대 국민청원이다. 국민신문고는 행정 민원을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정부 운영 시스템으로, 전국 어느 기관에나 민원을 넣을 수 있는 단일 창구로 기능한다. 편의성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한계도 드러난다. 답변까지 몇 주에서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관료적 검토 과정을 거쳐 나온 답변은 형식적 내용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된 제도로, 30일 안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 정부 관계자가 직접 답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시민의 관심을 정치적 의제로 전환하는 힘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연구자들이 지적한 문제점도 있었다. 법적 근거 결여로 인한 폐쇄적 운영, 권력집중 및 권력남용의 통로로 악용, 일부 세력의 다중 투표 등을 통한 여론 왜곡 가능성, 부실한 답변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결국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사실상 폐지되었다.
마이소사이어티의 플랫폼들과 한국의 이러한 시도들 사이에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 '정부가 문을 열면 시민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폐지된 것이 대표적이다. 플랫폼의 존속 자체가 권력의 결정에 달려 있다. 반면 마이소사이어티의 플랫폼들은 민간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며, 코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해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서비스가 지속되고 다른 곳에서 복제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픽스마이스트리트는 시민이 문제를 제기하면 자동으로 해당 기관이 통보되는 구조라, 시민이 '어디에 말해야 하는지'를 알 필요가 없다. 반면 국민신문고는 어느 기관에 민원을 넣어야 하는지 시민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차이도 있다.
물론 제도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시민이 출발점인 설계'와 '지속 가능한 독립적 운영'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서 한국의 공익 디지털 생태계가 배울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마이소사이어티의 사례는 경기도 공익활동 단체와 활동가들에게도 여러 질문을 던진다.
첫째, 기술은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마이소사이어티의 성공은 복잡한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단순함'에서 비롯됐다. 우편번호 하나, 지도 위의 핀 하나로 시작하는 설계는 IT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경기도의 31개 시·군에서 다양한 공익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활동들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닿고 있는지, 참여의 첫 문은 얼마나 낮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둘째, 공공 데이터와 오픈소스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 마이소사이어티는 플랫폼 코드를 공개해 크로아티아, 그리스 등 여러 나라가 자국 버전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경기도의 공익활동 데이터와 자원도 공개적으로 공유될 때 더 큰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기록하는 공익활동 콘텐츠가 단순히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것을 넘어 더 넓은 공익 생태계와 연결되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지속 가능성은 독립성에서 나온다. 마이소사이어티는 보조금과 상업적 서비스를 결합해 재정적 독립성을 유지한다.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의 공익활동 지원 구조에서도 이런 지속 가능성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된다. 단기 프로젝트 방식의 지원을 넘어 공익활동의 생태계 자체를 키우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넷째, 참여의 기록이 곧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왓두데이노가 80만 건 이상의 정보공개 청구를 공개 기록으로 남겨온 것처럼, 시민의 참여와 목소리가 기록되고 축적될 때 그것은 개인의 행위를 넘어 사회적 자원이 된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아카이브 에디터 활동이 추구하는 바도 같은 맥락에 있다. 기록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공익활동이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는 방식이다.
마무리 : 기술보다 중요한 것
마이소사이어티가 20년 넘게 영향력을 유지해온 비결은 기술이 아니다. 물론 플랫폼은 잘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시민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이 설계에 반영되었다.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시민, 의원에게 편지를 보내는 시민, 동네 도로를 사진으로 찍어 신고하는 시민 — 이 모든 행위가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마이소사이어티는 그 작은 행위들이 모이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해왔다.
경기도에서 공익활동을 이어가는 단체와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한 편의 기사가, 한 번의 취재가, 한 장의 사진이 혼자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쌓이고 연결될 때 그것은 공익활동 생태계의 토양이 된다. 마이소사이어티의 사례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살아있는 증거 중 하나다.




카드뉴스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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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2026년 3월 24일 화요일 오후 2시,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4.16생명안전교육원 미래희망관 4층 민주홀을 찾았습니다. 이날 열린 ‘4.16생명안전 웨비나 4차’는 <기후 위기와 재난, 모두의 안전을 묻다>라는 주제로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현장과 4.16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안산에서 오랫동안 안전교육 활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 웨비나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질문 앞에 다시 서는 일이었습니다. 기후 위기가 만들어내는 재난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동네,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되고 있었습니다.

416생명안전교육원에 부착된 안내포스터
기후 위기로 인한 한국 사회의 재난 경험
첫 번째 발표는 녹색전환연구소 황정화 연구원이 맡아주셨습니다. 스크린 가득 펼쳐진 자료에는 충격적인 통계가 담겨 있었습니다. 기상특보 발령 현황을 보면 2010년과 2024년을 비교할 때 경보와 주의보 모두 급격히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온열 환자 수는 2024년 3,704명에서 2025년 4,460명으로 1년 만에 크게 늘었습니다.
또한 1910년부터 100년간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9도 상승했지만, 최근 10년 만에 0.9도 오르면서 기온 상승이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제기되었습니다. 2025년 여름 평균 기온은 25.7도, 평균 최고 기온은 30.7도로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한 해로 기록되었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한국 사회의 재난 경험'을 주제로 발제하는 황정화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황정화 연구원은 지금의 재난은 단지 불운이 아니라 기후 변화가 원인이며, 이는 이미 확정적인 사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목표로 해야 할 방향을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재난을 운 좋게 피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재난을 당하고도 회복할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재난 이후 심리 회복과 관계 회복, 두 가지 모두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말도 인상 깊었습니다. 강릉의 산불 피해 사례를 인용하며, 보상과 재기를 이뤄냈어도 마을과 이웃이 사라진 상실감이 회복을 가로막는다는 이야기는 자리에 앉은 모든 이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연대하고 연결될 수 있다는 경험, 피해자를 수동적인 지원 대상이 아닌 회복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 기후 재난 대응의 핵심 원칙이라는 발표였습니다.
폭염과 재난, 더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두 번째 발표는 환경정의 활동가 김명철 선생님이 맡아주셨습니다. 기후 위기 당사자들을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발표였습니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온열 질환 추정 사망자 29명 중 70%가 어르신과 장애 당사자였습니다. 신체적, 생물학적 취약성뿐 아니라 경제적 취약성과 주거 취약성이 복합적으로 겹칠수록 피해가 커진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폭염과 재난, 더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주제로 발표하는 김명철 환경정의 활동가
발표에서 소개된 사례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실제 삶의 이야기였습니다. 고시원 거주자는 복도에 에어컨이 한 대 있지만 온도 조절 권한은 관리자에게만 있었습니다. 시원한 공기를 쐬려면 방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러면 사생활이 침해되기 때문에 결국 더위에 그대로 노출된 채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달장애 당사자는 낮에는 지하철에서, 밤에는 공원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이분에게 가장 필요한 대책이 무엇이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옥상 탈출’이었습니다.
동자동 쪽방에 거주하는 어르신은 에어컨도 없이 여름을 버티면서, 공공임대주택 신청 대기 번호가 260번 대였다고 하셨습니다. 2년이 지났어도 겨우 몇 십번 대로 내려갔을 뿐이었습니다. 어르신이 바라는 집은 “욕실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결코 과한 바람이 아닌데도 현실에서는 너무 멀었습니다.
쪽방촌 주민들의 연간 탄소 발자국은 3.98톤으로 한국인 평균 12.7톤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기후 위기를 만든 책임은 훨씬 작은데, 피해는 훨씬 크게 받는 불균형이 숫자로 드러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에너지 바우처 정책, 무더위 쉼터 정책 등의 한계도 짚었습니다. 지원 제도가 있어도 모르거나, 지원금이 초과될까봐 에어컨을 켜지 않고, 대피소까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이용조차 어렵습니다. 또한 관련 정보가 발달장애 당사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으로 전달되어 실질적으로 무용지물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알아보는 '재난 속 지역공동체'
세 번째는 2023년 7월 15일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현장에서 활동해온 김혜란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의 발표였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극한 호우 속에서 미호강 인근 제방이 무너지며 약 6톤의 강물이 430미터 지하차도로 유입되어 14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당한 참사였습니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발생한 명백한 인재였습니다.
충북도의 지하차도 침수 통제 기준은 50cm, 청주시는 30cm였는데 서울·부산의 10~15cm와 비교하면 매우 느슨한 기준이었습니다. 미호강 폭 확장 계획이 오랫동안 지연되다 급하게 추진되면서 안전을 무시하고 제방 절개가 먼저 이루어진 점도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충북도와 청주시의 재난안전본부가 각자 따로 대응하며 정보 공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드러났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충북도는 당시 3년 연속 재난안전 평가 우수 기관이었습니다. 형식적인 훈련과 현실 대응 사이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었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알아보는 재난 속 지역 공동체 구축 방안'에 대해 발표 중인 김혜란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참사 4일 만에 충북 시민사회, 노동단체, 진보 정당이 결집해 시민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4.16재단이 피해자 권리 교육을 지원했고,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위와도 연대했습니다. 시민 주도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지역 자원을 총동원해 사고 경위를 밝혔고, 이는 2025년 국회 국정조사로 이어졌습니다.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는 재난 대응 체계 전면 개편, 피해자 중심의 회복과 배상이라는 대안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록 최고 책임자인 충북도지사는 불기소 처분 상태이며, 충북도의회는 추모 조형물 예산을 삭감하고 ‘혐오 시설’이라는 말로 2차 가해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합동 분향소는 아직도 청주시청 좁은 별관에 머물러 있습니다.
경북 산불로 알아보는 재난 속 시민사회의 역할
마지막으로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의 김서린 활동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2025년 3월 20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무려 10일간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과 경남 산청·하동·울산 등 10개 시군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총 10만 3,879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되어 1987년 산불 피해 통계 작성 이래 단일 산불 중 최대 규모로 기록되었습니다. 사망자 31명, 총 이재민 3,509명, 피해액 1조 818억 원으로 2022년 동해안 산불의 4.51배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만 약 366만 톤 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산불 직후 성명을 내고, 피해 실태 조사, 시민사회 간담회, 주민 간담회, 언론 보도 모니터링, 토론회를 체계적으로 이어나갔습니다. 임시 대피소에서 원불교 단체가 식사를 배급하고, ‘덕 프라미스’라는 단체가 비누 받침대를 제공하는 등 국가가 채우지 못한 빈틈을 시민사회가 채우는 모습이 현장 곳곳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안동에서 열린 주민 간담회에는 5개 피해 지역 주민 40명이 모였습니다. 지역별 주민대책위원회는 있었지만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 자리가 서로를 연결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실태 조사 결과에서는 고령 피해자 지원 체계 미비, 임시 주택의 사생활 침해, 재난 심리 회복 체계 부족, 피해 주민의 권리 보장 부재 등이 핵심 과제로 도출되었습니다.
새로 조성될 마을에 대해 피해 주민들이 바라는 모습을 물었을 때, “에너지 자립 마을”, “공동체가 활발한 마을”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더 나은 공동체를 꿈꾸는 목소리가 남아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경북 산불로 알아보는 재난 속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발제한 김서린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활동가
이날 웨비나에서 네 명의 발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모두 하나였습니다. 기후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오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아프고, 홀로인 사람에게 더 깊이, 더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재난 앞에 서는 일은 곧 불평등의 문제를 마주하는 일입니다.
4.16 이후 안산에서 안전교육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서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안전은 지식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혼자 아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웃이 안전한지, 내 마을이 괜찮은지, 함께 묻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 진짜 안전의 시작이라는 것을 오늘 이 자리가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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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요즘처럼 마음까지 차가워지는 날에는, 이상하게도 오래 머무는 이야기 하나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일명 ‘왕사남’으로 불리는 이 작품이 저에겐 그런 영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역사 속 왕의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는데, 보고 나니 마음에 오래 남는 건 왕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권력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이야기가 재미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매년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에 ‘공익이란 무엇일까’, ‘공공성이란 어디에서 시작될까.’ 묻게 됩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결국 이런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영화 속에서 공익은 거창한 말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장면들 속에 숨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 마음, 규정만 들이밀지 않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 이런 것들이 쌓여서 공공성이 되고, 그 공공성이 공동체를 지탱한다는 걸 영화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공익이란, 약한 사람 곁에 머무는 일
정태식 경북대 인문학술원 교수의 말처럼, 타인의 존엄을 지키는 책임이야말로 공익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공익’이라는 말은 보통 법이나 제도, 행정 같은 단어와 함께 떠오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 공익은 그보다 더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약한 이의 말을 귀찮아하지 않고 끝까지 듣는 자세, 이해하지 못해도 다시 설명해 주는 마음. 이런 것들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금세 차가워집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특히 마음에 남는 건, 힘을 잃은 존재를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왕이라는 이름을 가졌어도 실제로는 가장 약한 자리에 놓인 사람. 그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외면할 수도 있고, 그저 예를 갖춘 채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함께 밥을 먹고, 말을 건네고, 곁을 지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힘이라는 걸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공익도 결국 그런 것 같습니다. 법과 직책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책임을 나누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현장에서 민원을 응대하는 사람, 아이를 돌보는 교사, 환자를 살피는 의료진, 어르신의 손을 잡아 주는 복지 현장 종사자들. 이분들이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 갈 때 공공성은 비로소 숨을 쉽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는 늘 현실적인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인력이 부족하면 누군가의 사정을 끝까지 듣기 어렵고,
예산이 부족하면 필요한 도움을 지속하기 어렵고,
연대가 약하면 결국 모두가 지쳐버립니다.
그래서 공익은 이상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고,
서로를 지켜 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셋이 함께할 때만 공동체는 약한 사람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공익은 멀리 있는 거대한 개념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드는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작은 행동은 대부분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는 것 말입니다.
“괜찮으세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다시 설명해드릴게요.”
“혼자 두지 않을게요.”
이런 말들이야말로 사람을 살립니다. 때로는 히터보다 더 따뜻하고, 난방보다 더 깊게 마음을 녹입니다. 몸은 금세 추위를 느끼지만, 마음은 말 한마디에 오랫동안 온기를 기억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서 공익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공익이라는 말을 들으면 제도, 정책, 행정, 복지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먼저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떤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지,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 주는지, 어떤 태도로 약한 사람을 대하는지. 공공성은 결국 그런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말 한마디가 히터보다 따뜻하다
특히 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었다는 사실은 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한국 영화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왕과 사는 남자」는 다시 한번 사람들의 마음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단순히 숫자의 성공이 아니라, 한국 영화가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준 작품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재미만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고, 스쳐 지나가는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그런 영화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는 건 참 고마운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강한 사람’의 이야기만 보아 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는 약한 사람 곁에 머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공익은 결국 강한 사람이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 덜 외로워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걸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단지 좋은 사극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추운 시대에 사람의 온기를 다시 떠올리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말들을 듣고, 또 너무 많은 말을 하며 지냅니다. 그중에서 정말 오래 남는 말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습니다. 내 편이 되어 주는 말, 내 처지를 알아주는 말,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말.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선명하게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말 한마디가 히터보다 따뜻하다” - 유튜브 <내 이름은 춘복이> 쇼츠에서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공익과 공공성의 본질을 아주 잘 담고 있는 말 같습니다. 공동체는 결국 말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상처받고,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니 공공성은 제도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따뜻한 말과 행동 속에서 완성된다고 믿게 됩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그걸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 준 작품이었습니다. 역사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끝내 사람의 온도를 잃지 않았고, 권력의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존엄의 이야기였으며, 멀리 있는 공익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옆 사람의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아마 그래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한 번 더 조심하게 되는 영화. 그런 영화가 천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은 참 반갑고, 또 희망적입니다.
한국 영화가 힘든 시기를 지나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준 작품, 그리고 우리에게 “사람을 살리는 건 결국 따뜻한 말과 마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알려 준 작품. 저에게 <왕과 사는 남자>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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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안녕하세요, 경기도 공익활동가와 도민 여러분 어느덧 만물이 소생하는 4월입니다. 우리 동네 곳곳에도 봄꽃이 피어나듯, 우리가 사는 지역의 민주주의에도 새로운 변화의 싹이 트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지난 3월 19일, 전국 20여 개 지역 경실련이 힘을 합쳐 '지방 정치개혁과 자치분권 운동본부'를 공식 출범했습니다. 이들이 왜 모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경기도와 우리 동네를 위해 어떤 활동을 펼칠지 핵심만 콕콕 집어 소개해 드립니다.

1. 30년 된 지방자치, 왜 아직도 '중앙' 눈치만 보나요?
1995년 민선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벌써 30년입니다. 강산이 세 번 변할 시간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지방정치의 현실은 여전히 '중앙정치의 하부조직'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대 양당이 공천권을 독점하면서, 지역의 일꾼들이 주민이 아닌 중앙당과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는 구조가 고착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민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지방정치, 이제는 진짜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주민의 품으로 되찾아올 때입니다.
2. "지방 정치, 이대로는 안 됩니다"
▲ 지난 3월 19일 진행된 '지방 정치개혁과 자치분권 운동본부' 출범식 현장. 활동가들이 주민을 배제한 행정통합 반대와 지방의회 독립을 외치며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3. 운동본부가 약속하는 '3대 분야 9대 개혁 과제'
운동본부는 이번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 동네 정치를 바꿀 세 가지 큰 약속을 준비했습니다.
① 정치 기득권 타파: "진짜 일꾼을 뽑게 해주세요"
* 중대선거구제 실질화 : 한 선거구에서 2명만 뽑아 양당이 나눠 먹는 구조를 깨고, 3~5명을 뽑아 다양한 전문가와 소수 정당이 의회에 진입하게 합니다.
* 무투표 당선 방지 : 후보가 혼자 나와도 그냥 당선되는 건 NO! 유권자가 찬반을 선택하는 '승인투표제'를 도입해 심판권을 복원합니다.
* 지역정당(로컬파티) 허용 : 우리 동네 문제에만 진심인 '진짜 동네 정당'이 활동할 수 있게 법적 장벽을 허뭅니다.
② 주민 직접 참여 강화: "우리가 직접 결정합니다"
* 주민참여 3법 장벽 철폐 : 주민소환, 주민투표 등의 문턱을 낮춰 정치인들이 주민을 무서워하게 만들겠습니다.
* 주민참여예산제 실질화 : 소소한 민원 해결을 넘어, 주민이 직접 우리 동네 핵심 예산을 짜고 집행할 권한을 가집니다.
③ 자치권 및 재정 분권 확립: "지방의회의 독립성을 지킵니다"
* 지방의회 독립 보장 : 지자체장을 감시해야 할 의회가 인사권과 예산권을 지자체장에게 구걸하지 않도록, 의회의 독립성을 완전히 확보하겠습니다.
4. 이런 공약은 '절대 사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들
운동본부는 지역을 망치는 '나쁜 의제'들에 대해서도 단호히 맞설 예정입니다.
* 밀실 행정통합(메가시티) : 주민 동의 없는 단체장들만의 '메가시티' 추진은 멈춰야 합니다.
* 선심성 특구 유치 : 재원 대책 없는 이름만 거창한 '특례'는 결국 지역의 재정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 묻지마 신도시 개발 : 구도심을 슬럼화시키고 토건 카르텔의 배만 불리는 개발보다 구도심 재생이 우선입니다.
* 수도권 규제 완화 묵인 : 지역의 대표라면 지방 소멸을 부추기는 중앙의 정책에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5.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운동본부는 말로만 외치지 않습니다. 이미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① 철저한 모니터링: 최근 전국 17개 광역의회 의원들의 출석률 실태 조사를 발표해 '일 안 하는 의원'들을 가려냈습니다.
② 공천 개혁 질의: 각 정당에 질의서를 보내 기득권을 내려놓을 의지가 있는지 묻고, 그 답변을 도민 여러분께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입니다.
③ 부적격자 명단 발표: 재산, 전과, 이해충돌 등 후보자의 됨됨이를 꼼꼼히 검증해 '이런 후보는 안 된다'는 명단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6. 경기도민 여러분, 함께해 주세요
이번 지방선거는 단순히 누군가를 심판하는 장이 아닙니다. 우리 동네를 위해 누가 가장 열심히 땀 흘릴지 결정하는 자리입니다.
정당만 보고 뽑는 '묻지마 투표' 대신, 후보자가 공천권자의 심부름꾼인지 아니면 진짜 우리 동네 일꾼인지 꼼꼼하게 살피는 여러분의 '매의 눈'이 필요합니다. 경기도 공익활동가와 도민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이 우리 동네를 바꿉니다
[문의 및 참여]
* 전국경실련 지방 정치개혁과 자치분권 운동본부 ☎ 031-253-2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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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우리는 공익을 말할 때 보통 거창한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름이 붙은 운동, 조직화한 캠페인, 많은 사람이 모인 현장 혹은 뉴스에 등장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일 수도 있겠네요. 개인보다는 공익을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특별하거나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내 코가 석 자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내 마음 밖으로 새어 나오는 순간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춘삼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뉴스레터 <공익ON>은 군포의 한 동네의 작은 빵집에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이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사람은 고재영 대표인데요. 구호보다는 루틴으로, 특별한 자격보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일상의 공익을 실천하는 분입니다. 여러분도 <공익ON> 3월호의 주인공인 고재영빵집의 고재영 대표님을 함께 만나보시면서 함께 일상 속 공익활동의 비밀을 파헤쳐 보지 않으시겠어요?

<공익ON> 3월호의 주인공인 고재영빵집의 고재영 대표님
군포시 오금동 퇴계 1차 아파트 상가 1층에 위치한 고재영 빵집은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빵을 사랑하는 마음과 빵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고재영 대표님은 늘 간결하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군포에서 빵집을 하는 고재영입니다’. 이 담백한 말 안에는 어떠한 과장도 없죠. 하지만 고재영 대표가 매일 문을 열고, 반죽을 치대고 오븐을 달구는 그 공간에서는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늘 변함없이 빵을 구워내고 있는 고재영 대표님
고재영 대표가 꾸준히 하고 있는 공익활동 중 하나는 빵을 기부하는 것입니다. 매화종합사회복지관, 늘푸른 노인복지관, 군포시노인복지관, 1388공유냉장고, 군포시노인요양센터, 늘푸른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비롯한 여러 곳에 빵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식단에 늘 유의해야 하는 당뇨 환자를 위한 현미미강건강 빵을 만들기도 했죠. 고재영 대표는 자신이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해 나갔습니다. 고재영 대표에게 빵은 추억이자, 현실이고 동시에 사랑이었습니다. 그런 빵을 나누면서 자신의 따뜻했던 추억과 사랑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빵으로 추억과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헌혈증을 모아서 기부하는 활동에도 동참했습니다. 현재는 민원이 제기되어 잠시 쉬어가고 있지만, 시민들이 헌혈증을 가지고 가면 식빵과 바꾸어 주고 필요시 위급 환자에게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약 3,000여 장이 기부되었답니다. 이 역시 고재영 대표의 빵에서 시작된 활동입니다. 고재영 대표는 이 활동을 통해서 여러 공익활동에 대한 참여를 권유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다시 참여하게 된 활동이 바로 ‘미리내 가게 운동’입니다. 그는 군포에서 1호로 미리내 가게에 참여한 사람이기도 한데요. 미리내 가게 운동은 전국 약 600여개의 점포가 참여하고 있는 공익활동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탈리아의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 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은 다음 사람을 위해 카페에 간 사람이 미리 돈을 내주던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고재영빵집 역시 누군가 뒷사람을 위해 빵을 더 계산하고 가면 빵조차 사 먹기 어려운 이들이 빵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고재영 대표의 공익활동은 현재까지도 빵에서 시작해서 점차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공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활동에는 중요한 공익활동의 전환이 숨어 있는데요. ‘도와주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을 구분하기 보다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도움이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다는 점입니다. 손님은 자신의 선의를 남기고, 가게는 관리를 하면서 이어주고 이를 통해 누군가는 도움을 받죠. 그렇게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이 다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하면서, 누군가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도움의 선순환 속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재영빵집은 거창하지 않은 단순한 방식으로 공익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업을 이어 나가면서도 주변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으려는 노력이 지금의 고재영빵집과 고재영 대표를 만든 것이죠.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하려고 하지 마시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로 다른 이들을 도울 방법을 떠올려 보는 것이 일상 속 공익의 첫걸음이 아닐까요?
고재영 대표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는 늘 자신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소감보다는 활동에 참여해 준 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줍니다. 가령, 이사 갔던 주민이 다시 자신의 빵집을 찾아와 크리스마스 때 저소득층을 위해 케이크값을 미리 내고 가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는 이야기나, 멀리서 빵을 배달하는 손님이 주문한 금액보다 더 결제하면서 미리내 가게 운동에 동참해 주었다는 이야기는 모두 그의 남다른 ‘자랑’입니다. 가수를 하는 분들은 노래교실 무료 이용권을 놓고 가기도 한다는 그의 말에는 일상처럼 공익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향한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으니 말입니다.

군포시자원봉사센터 홍보 기자단으로 활동하는 고재영 대표님
고재영 대표님의 공익 실천은 빵을 매개로 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을 향합니다. 군포시자원봉사센터 홍보 기자단, 군포시직업체험처, 교육부인증진로체험기관, 군포시 1388 청소년지원단으로 활동하고 군포시 100인 위원회의 지역경제 소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지역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이유로 고재영 대표님이 유독 관심을 두고 하는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지원입니다.


(위, 아래) 청소년들에게 재능 기부를 실천하고 있는 고재영 대표님
고재영빵집은 교육기부 진로체험 인증기관이 되어 파티시에(patissier)라는 직업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재영 대표님은 경기도교육청에서 진행한 휴먼 라이브러리 활동에 참여하면서 빵집과 나눔에 대해서 학교마다 찾아다니면서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면서 인생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한 청소년기에 더 많은 학생이 자신의 직업과 기부, 공익활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그의 값진 노력입니다. 특히 요즘 청소년기에 있는 학생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공동체와 단체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이 사라지기도 했는데요.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인 만큼 그들이 일상 속 공익활동에 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우리가 모두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익활동이지만, 모두의 참여와 관심으로 이어지고 완성된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는 것이 오래 행복한 마음으로 공익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의 비밀이 아닐까요?
일상 속 공익활동의 마지막 비밀. “공익활동은 원래 우리 삶의 일부였습니다.”
사실 고재영 대표의 빵집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후기가 여럿 나오는 군포 맛집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매장에 들어서면 여러 표창장과 활동 인증서들이 놓여 있죠. 방송 출연도 여러 번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빵집에 더 많은 표창장과 상이 놓여도, 맛집을 인증하는 후기들이 계속 쌓여가도 그가 공익활동에 참여하면서 떠올리는 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김제의 시골 마을입니다.
고재영 대표님은 전라북도 김제 시골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기억은 ‘무엇이든 함께 했던 기억’이라고 하는데요. 어려운 일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서던 사람들, 밥을 안 먹은 사람이 있으면 들어와서 한술 뜨고 가라고 권했던 목소리가 고재영 대표를 자연스럽게 나눔의 길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김제농업고(현 김제농생명마이스터고)에서 식품가공과를 나와 제빵사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여러 제과점에서 일을 배웠죠.
이후 먼저 군포시에 자리 잡고 있던 처형을 따라 군포에 자리를 잡으며 고재영빵집을 열기까지 아주 바쁜 삶을 이어왔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먹고 살길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그렇듯,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죠. 군포시로 오기 전에도 고재영 대표님은 굿네이버스에 기부하는 등 일상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에서 무엇인가 빠진 것만 같은, 부족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나누고 함께 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은 자신 안의 마음에 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고재영빵집을 열면서는 화려한 결과보다는 지속성과 선순환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군포소상공인 소셜클럽 일원으로서 코로나-19로 고생하는 보건소에 물품을 기부한 모습

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 중인 고재영 대표님
그 옛날 우리가 자연스럽게 나누었던 따뜻한 정의 회복을 꿈꾸며, 고재영빵집은 오늘도 매일 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열고 닫습니다. 공익활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이 아닐까 합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큰 이벤트를 만드는 것도 물론 나름의 역할이 있지만 오래 이어지는 작은 실천을 유도하는 것이 공익의 확산에 있어서는 필수적이죠. 고재영 대표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익활동의 방향이 ‘우리가 잊었던 것을 기억해 내는 것’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바쁜 일상에 존재해 왔지만, 우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마음을 되돌아보는 것이 바로 일상 속의 공익을 실천하는 마지막 비밀이 아닐까요?
<공익ON> 3월호의 주인공인 고재영빵집의 고재영 대표님을 만나보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는 공익활동에 임하는 내 마음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심의 크기보다는 지속의 길이가 중요하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실천하고 계시는 고재영 대표님을 보면서 공익활동의 본질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게 되었답니다. 흔한 격언이기는 하지만, 성공의 비결은 바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죠. 빵이 발효를 거쳐야 비로소 제맛을 내듯, 실천도 그만큼의 시간과 지속이 필요한 것이죠.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재영 대표님의 빵집과 꼭 똑같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의 공간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일상은 과거의 어떤 따뜻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될까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질문을 하고 싶은 날입니다. 여러분의 일상 속 공익도 따뜻한 봄에 태양을 만난 새싹처럼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언제나 한결 같이 일상 속 공익을 실천하는 고재영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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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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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