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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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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모두 이야기이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로 가득한 걸까요?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 중에는 공익활동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기록자로서 기록하는 방식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의 기록자로서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한 시민 기록자 양성교육 심화과정 네 번째 프로그램이 세 번째 정기 회의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록이 한 발짝 더 발전하는 모습 함께 보고 가실래요?
     
     
     
    사진(왼). 최중명 사진작가의 ‘사진으로 기록하기’ 이론 교육 장소였던 희망둥지협동조합
    사진(오). 회의 진행 장소였던 수원행궁 어울림 카페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정기 회의와 시민 기록자 양성교육은 수원 행궁 인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에디터들은 밝은 미소로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습니다. 이날 먼저 진행된 ‘경기도 공익활동 시민 기록자 양성교육 4강’의 주제는 ‘사진으로 기록하기’였으며, 실습 중심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어서 특히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사진(왼). 강의 시작 전 강의를 위해 꼼꼼히 사전 준비를 하고 있는 최중명 사진작가님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담당자들
    사진(오). 에디터들을 상대로 열정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최중명 사진작가님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이날 프로그램은 최중명 포토이즘 대표님이 진행했습니다. 국제 생명의 카메라 프로젝트 대표이며, 2018 무심한 풍경전 및 2023년 안정리 예술인 광장 결과 전시 ‘하루 모색’, 남아프리카 공화국 초대전 등 다양한 전시회 및 수상을 한 전문 사진작가로서 주로 평택 안정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섭외가 쉽지 않은 유명 전문가의 실전 경험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의미와 사진을 찍는 방법에 대한 진솔한 강연, 사진 찍기 실습을 통해 사진으로 기록하기에 대해 진지하게 배울 수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사진 실습 전 사진과 관련한 수업을 경청하는 에디터들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교육의 핵심은 사진에 대해 우리가 평소에 지니고 있던 선입견을 깨고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점을 배우는 데에 있었습니다. 최중명 대표님은 사진을 찍는 도구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필자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과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비싼 사진 장비가 없는 저는, 사진을 찍을 때 비싼 장비를 쓸수록 사진이 더 잘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간혹 주눅 들기도 했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자신감이 조금 더 생겼습니다.
     
    최중명 대표님은 카메라는 그저 도구일 뿐이고 사진을 찍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눈에 보이고 마음이 가는 대로 쉽게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최중명 대표님은 사진을 찍을 때 우리가 늘 신경 쓰는 수평이나 구도에도 너무 구애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사진으로 하는 기록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기술이나 도구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표님의 다양한 사진 작품을 보면서 아카이브 에디터들은 사진을 기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공부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도구나 기술에 구애되지 않는 사진은 어떤 사진이고 무엇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사진 기록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최중명 대표님은 역시 사진을 찍는 ‘자신’을 중시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이야기하든, 내 감성으로 보았을 때 마음으로 느껴지는 사진이 좋은 작품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좋은 사진의 기준이 남들이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드는 사진이라는 이야기도 했는데요. 한 번 보고 나서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사진이 진짜 잘 찍힌 사진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진은 내가 있는 장소에서 그 찰나를 기록하는 기다림의 미학이니, 그 순간을 잘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전시와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그 순간을 담아내는 방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팁도 전해주셨습니다.
     
    최중명 대표님의 사진에 대한 강의는 사진을 찍는 주체인 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도구는 카메라지만 결국 그 뒤에 기록자인 내가 있다는 사실은 기록자에게 꼭 필요한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 사진을 많이 보여주려 하셨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설명하다 보니 내용이 잘 이해되었습니다.
     
    강연에 앞서 작가님은 두 차례 현장을 사전 답사하며 강의자료로 활용할 사진을 미리 촬영해두셨고, 강연에서는 그 사진들을 중심으로 주요 포인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후 에디터들은 작가님과 함께 행리단길을 직접 걸으며, 강의에서 본 사진 속 장소들을 다시 찾아가 같은 장면을 스스로 촬영해 보는 실습을 진행했습니다. 각자 촬영한 사진을 서로 보여주고,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조건이나 구도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작가님의 가르침을 현장에서 체득해 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수원 행궁 주변을 다니면서 사진으로 기록하기 실습을 진행하는 모습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촬영,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작가님이 멋진 사진을 찍었던 장소라 소개한 곳에 갔는데, 막상 가보니 거창한 곳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가던 장소라서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경험을 해보니 우리가 무심코 지나갔던 곳이지만 관점을 달리하거나 앵글의 변화를 주니 사진에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리얼하고 이야기가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요.
     
     
    사진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 함께 사진 촬영 실습을 진행하고 있는 최중명 사진작가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촬영,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들도 각자의 궁금한 것을 찍으면서 물어보기도 하고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수정 받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사실 찍는 사람의 그림자나 어두운 곳은 자연스레 피하게 되기 마련인데, 작가님은 오히려 사진에 그림자를 꼭 넣으려 노력하신다고 합니다.
     
     
    최중명 작가님의 조언에 따라 그림자를 살려서 찍어본 사진 작품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촬영
     
    그림자는 생명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데요. 저도 처음으로 그림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애쓰면서 찍어보았습니다. 여기서 찍은 사진들을 이후 단체 메시지 방에 각자 올려서 작가님과 함께 피드백 받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배운 내용을 제대로 활용했는지 점검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이라는 점에서 매우 보람찬 교육이었습니다.
     
     
    최중명 작가님의 시선으로 담은 5기 아카이브 에디터들의 모습 / 사진출처: 최중명 작가
     
     
    단체 사진도 작가님이 직접 찍어주셨는데요. 매번 찍었던 방식(형식적으로 모여서 찍던)이 아닌 거울 소재를 이용하여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을 찍기도 하고, 한 줄로 나란히 찍어보는 방식들은 우리들의 기존 생각의 틀을 깰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다른 에디터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자신의 2025 상반기 작업물을 검토하는 에디터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실습 후 점심을 먹은 다음 바로 3차 정기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3차 정기 회의에서는 에디터별 상반기 활동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그간 했던 활동을 되돌아보면서 더 발전할 가능성을 찾아나가는 시간이었는데요. 이날의 회의에는 또봉, 주야 에디터가 본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례 나눔으로 5기 에디터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두 에디터의 공익 웹진의 특징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요. 기록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팁을 함께 공유하면 더 큰 의미가 있겠지요. 두 에디터는 많은 사람이 우리의 기록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실전 꿀팁을 전수했습니다.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게 하는 제목을 활용하고 태그를 쓸 때 넓은 키워드와 좁은 키워드를 정해 활용하면 조회수 상승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비법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지었던 제목을 다시 고쳐보는 활동에 참여하는 에디터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제가 썼던 글에 접목하여 기존 네이밍을 바꿔보는 작업을 하면서, 배운 것을 적용해 보니 제 글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명료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냥 잘할 수 있는 원리나 방법을 듣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제대로 시간을 내어서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수정해야 할 방향성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두 에디터의 비결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읽는 사람에게 강한 호기심이 생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는 편견이나 오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제목을 제시하거나 문장 부호를 적극적으로 활용, 다양한 문체 활용, 시의성 있는 주제 탐색 등의 방법을 활용한 예시를 들으면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특히 검색했을 때 우리의 아카이빙 자료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사실은 글을 쓰면서 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필요성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알게 되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3차 회의는 시민 기록 컨퍼런스의 내용 구성과 기획단 운영에 에디터들도 참여하기 위해 의견을 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들의 축제’라는 주제를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4년에 시민 기록 컨퍼런스는 장소는 너무 좋았지만, 접근성이 떨어져 더 많은 사람이 즐기지 못했다는 의견부터 강의 내용이 좋았지만, 명사들의 강의보다는 실제 기록자들의 경험이나 인터뷰어의 만남 즉,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경험과 교류를 통한 만남으로 꾸며보는 건 어떨까 하는 의견까지 컨퍼런스의 장소와 내용에 대한 세심한 피드백이 이루어졌습니다. 의견은 달라도 작년보다 나은 2025년 시민 기록 컨퍼런스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회의를 진행하다 보니 2025년 11월이 벌써 기대되었답니다.
     
    정기 회의와 시민 기록자 교육을 받을 때마다 늘 마음 깊이 느끼는 것은 우리의 기록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땀방울을 보면서 저도 제 기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해보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내용과 주제는 달라도 공익활동과 글을 읽는 독자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도 더 발전할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노력을 지켜봐 주세요!
     
     
    5기 아카이브 에디터 3차 정기회의 단체사진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사진이라는 언어로 공익활동을 기록하는 법
    옐로 구피

    조회수 54

    202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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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이 반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너무나 흔히들 하는 말인데 대부분은 그냥 의미 없는 새해 인사로 넘기거나 지루한 위로 정도로 여기곤 하죠. 하지만 우리가 아카이브 에디터로서 발을 내디뎠던 순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그 말의 의미를 문득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시작’이라는 출발점을 찍지 않는다면, 결코 끝을 맺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포기조차도 할 수 없죠. 시작점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그저 무의미하게 표류하며 흘러가는 배와 같아질지도 모르겠네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스레 중요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석 달 전, 봄바람과 함께 출발한 우리의 모습을 여러분께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1) 그 사이 우리 에디터들은 공익 웹진을 통해 여러분을 만나며 공익활동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노력해 왔습니다. 불도저처럼 돌진하는, 여름과도 같은 열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때론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고 나아갈 힘을 보충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의 정기 회의는 서로 공익활동의 확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달려 나가던 에디터들이 잠시 한 공간에 모여 서로를 보듬기도 하고, 때로는 조언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시간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역량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배움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우리와 공익활동의 여러 면모를 함께 지켜보셨던 여러분도 우리의 모임에 글로나마 초청하고자 합니다. 에디터들이 남은 하반기를 위해 배우고 고민하면서도 연대하는 현장으로 함께 가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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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기 아카이브 에디터 2차 정기 회의
     
     
    아카이브 에디터 2차 정기 회의 및 교육 장소는 안양시공익활동지원센터! / 사진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날씨가 서서히 무더워지는 6월, 안양시공익활동지원센터가 새롭게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임시 개관이고 7월에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된다고 합니다. 안양시공익활동지원센터는 안양역 지하상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성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안양시민뿐만 아니라 5기 아카이브 에디터들 사이에서도 기대가 큰 만큼 관심 또한 많았습니다. 안양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6월 2차 정기 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에 에디터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오후 공기에 연신 굵은 땀방울을 흘렸지만 모두들 기대되는 표정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 에디터들의 2차 정기 회의가 곧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그간 발행되었던 공익 웹진을 비롯한 콘텐츠 제작 현황을 공유했습니다.
     
     
    5기 아카이브 에디터 2차 정기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고무적이었던 것은 콘텐츠별 평균 조회 수가 크게 상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콘텐츠 조회수는 작년 대비 15,300회 이상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콘텐츠별 평균 조회 수가 약 470회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요. 공익 웹진의 운영을 꾸준히 이어오면서 에디터들의 관심사도 점차 다양해지고 웹진을 작성하는 방식도 다채로워지다 보니 얻은 수확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의 덕이 가장 크겠지요?
     
     
    한 걸음 카드와 회의자료 / 사진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한 걸음 카드를 작성하며 지난 1분기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간단한 성과 보고를 마치고 에디터들은 ‘한 걸음 카드’ 피드백을 진행하면서 1분기 활동을 점검하고 2분기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난 1차 회의 때 자신이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이루고자 생각했던 목표를 적고 지금까지 목표를 향해 한 자신의 노력과 변화한 점을 작성하면서 지난 활동을 돌아보았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작성한 내용을 다른 에디터들과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정말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한 걸음 카드를 작성한 뒤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아카이브 에디터들 / 사진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한 걸음 카드를 작성한 뒤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아카이브 에디터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바쁜 현실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에디터로 임명이 되고 나니 공익활동 행사나 활동가분들을 만날 때 훨씬 집중하게 되는 것을 느꼈어요. 책임감도 생겼고요. 다른 에디터들이 작성한 글을 보면서 공익활동 현장에서 치열하게 논의되고 있는 현안과 관련한 내용이나 공익활동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는 내용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저도 이 부분을 제 글에 적용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현장 스케치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천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첫 원고는 작성해 보았으니 이제 원래 제가 세웠던 목표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관심 있었던 분야에 대한 글을 작성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실천했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확장된 시각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공익활동 현실, 정책을 다루고 사례 발굴까지 시도해 보고 싶어요.”
     
    이 밖에도 자신이 글을 쓰는 형식이 지나치게 단조로운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의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기 위해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는 노력, 다른 공익활동가들의 행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 자신이 작성한 공익 웹진을 본 공익활동가들의 반응 등을 함께 공유했습니다. 공익활동에 참여한 경험을 진솔하게 공유하니 공감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경험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민기록자 양성교육 3강 - 나의 기록이 사회적 기록으로, 기록이 바꾼 세상 (은유 작가)
     
     
    <나의 기록이 사회적 기록으로-기록이 바꾼 세상> 강연 현장 / 사진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2부에서는 경기도 공익활동 시민기록자 양성교육 심화 과정 세 번째 순서로 은유 작가님이 <나의 기록이 사회적 기록으로-기록이 바꾼 세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은유 작가님이 자신이 글을 쓰게 된 과정부터 시작해서 글을 쓰면서 했던 고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면서 강연을 진행해 주신 덕분에 아주 많은 부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며 저는 작가님이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고 공익활동을 기록하고 있는 주체 역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곧잘 잊곤 하죠.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간과하면 진솔한 글쓰기도 어렵고 글쓰기의 원동력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은유 작가님의 자기소개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은유 작가님은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사회의 모순과 폭력을 조명하신 분이지만 처음부터 사회적 기록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글을 쓰는 것과 관련한 전공을 하거나 따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많은 독서를 통해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늘 글을 쓰고 글쓰기를 배우면서도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내심 불안했던 적도 있었던 저 역시 은유 작가님의 경험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은유 작가님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 / 사진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이후 은유 작가님이 책을 쓰신 경험을 공유해 주셨는데 그 과정을 너무 흥미롭게 풀어주셔서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폭력과 존엄 사이』라는 책을 쓰는 과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국가폭력 피해자 어르신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데요. 작가님은 처음에 국가폭력 피해자 어르신들의 증언 녹취를 윤문하는 정도의 작업으로 알고 시작했지만, 녹취록에 의존하지 않고 다시 국가폭력 피해자 어르신들을 하나하나 찾아 인터뷰하러 전국을 누비면서 사람이 지닌 사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가폭력 피해 어르신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빈곤, 노동, 젠더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경험을 진솔하게 전달해 주셨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폭력, 권력의 불균형 상황을 포착해 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개인과 사회는 분리될 수 없으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나 저도 은연중에 이런 사회의 폭력에 노출이 되어 있는 것이겠죠. 작가님은 바로 우리가 아직 모르는 상처, 폭력 혹은 사회가 내게 강요하는 모습을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글쓰기가 시작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궁금해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능력에 대한 객관화가 되지 않으면 겉도는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게 되니까요. 무엇보다 사회가 강요하고 있는 모습이나 관습적 역할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더욱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겠죠. 작가님은 “자신이 외면하는 곳에 글을 쓸 주제가 있다.”라는 말을 전해주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늘 글쓰기 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그동안 아카이빙의 기본기를 제대로 다지면서 글을 쓰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제가 공익활동 아카이빙을 하면서 늘 마음 깊숙이 품고 있던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는 기회가 되기도 했는데요. 공익활동 아카이빙이 즉각적인 효과나 영향력을 지니지는 않는 활동이다 보니 “늘 무엇인가 적극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활동이 아닌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일까?”, “내가 맞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늘 자신에게 하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은 이렇게 사회의 고통을,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 고통을 통해 우리가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작가님의 책을 인용하자면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 바로 이런 공익활동 아카이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나니 제가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활동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사실 공익활동 현장에서는 정말 행복하고 보람찬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하지만 씁쓸하고 우울한 장면을 마주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한 번에 해결되는 게 아니다 보니 같은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강연을 듣다 보니 작가님은 더욱 어두운 사회의 단면들을 마주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지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이, 간첩으로 몰렸지만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아 딸마저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 주부 등 수많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발견했던 작가님의 여정을 함께 돌아보면서 이 모든 이야기의 끝에서 ‘글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강연 내용에 대해 질의하면서 열정적으로 수강 중인 아카이브 에디터 / 사진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강의가 끝나고 에디터와 시민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한 질문자는 글쓰기를 하면서 생기는 힘든 일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이겨내는지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글쓰기도 결국은 노동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혹시 글쓰기를 하면서 불행했던 경험이나 글쓰기 때문에 너무 괴로울 때가 생기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다고 했던 것처럼 규칙적으로 글을 쓰시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쨌든 부자가 아닐까요? 그리고 배우자도 있고 아이가 없고 별장도 있고 그런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루틴을 지키는 삶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저처럼 양육자인 경우에는 아이들의 시간에 맞춰서 제 시간표가 결정되는 경우가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저처럼 활동가형 혹은 생계형 작가인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마감일이 언제다 하면 그 일주일 전까지는 글쓰기를 미리 마감하자는 식으로 시간표를 짰습니다. 글을 쓰면 육체가 많이 소진돼요. 하지만 그만큼 고통스러워도 좋은 것도 그만큼이니까 계속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에디터는 평소 인터뷰를 하면서 갖고 있었던 애로사항에 관해 묻기도 했습니다.
     
    “작가님은 인터뷰 글도 쓰셨잖아요. 저희가 인터뷰를 많이 하는데 인터뷰는 그냥 적어 놓으면 너무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혹시 인터뷰 원고를 작성하는 팁이 있을까요?”
     
    작가님은 평소 인터뷰 원고를 쓰는 자신만의 철학을 공유하면서 에디터들의 고민에 조언해 주기 위해 애써주셨습니다.
     
    “저는 모든 예술은 뺄셈이라고 생각해요. 잘 덜어내는 게 너무 중요합니다. 인터뷰를 녹취한 게 곧 글은 아니거든요. 작가는 마치 영화감독처럼 편집을 해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쏟아낸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심는 게 아니라 읽을만한 글로 주제를 담아서 그 주제를 향해 가는 거죠. 나중에 인터뷰를 다 읽고 나면 그 사람의 매력이 보여야 좋은 인터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글쓰기 강사인 저를 인터뷰하면서 글쓰기 노하우만 잔뜩 적어놓는다면 굳이 인터뷰여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래서 이때는 글쓰기 노하우보다는 은유라는 사람 자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은유 작가님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나누며, 에디터들의 고민에도 깊이 공감하고 함께 고민해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님이 글쓰기의 힘에 관해 이야기 한 부분도 매우 기억에 남았습니다.
     
    “제가 항상 주장하는 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뀐다는 거예요. 글 쓰는 사람은 적어도 바뀌어요. 나도 세상의 일부니까, 내가 바뀐 만큼은 세상이 바뀝니다.”
    누구나 하게 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감을 이토록 명료하게 극복해 나가는 모습에 많은 에디터들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열심히 강연을 듣고 질문하는 시민 기록자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자신의 독서 경험 혹은 글쓰기 경험을 바탕으로 평소에 갖고 있던 고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은유 작가님의 팬이라며 감명 깊이 읽은 책을 들고 온 시민,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라며 수원에서 오느라 조금 늦었다며 조용히 맨 뒤에서 듣던 시민까지 한자리에 모여 강의실이 가득 찼습니다. 강연은 에디터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참여로 인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의 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익활동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늘 애쓰고 있는 아카이브 에디터들은 함께 모여서 서로의 활동에 영감을 받고, 다음 활동을 구상하기도 하면서 남은 날 동안 더 활기찬 활동을 다짐했습니다.
     
    공익활동은 한 집단 혹은 한 사람만의 영향력만으로는 절대 이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품은 열정의 씨앗은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만나야 비로소 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남은 기간 동안 이어질 우리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기대해 주세요!
     
     
    단체사진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현장스케치] 아카이브 에디터들의 열정이 여름의 태양처럼 공익활동을 무르익게 한 날
    옐로 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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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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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로 지역을 읽다
     
    2024년 초여름, 부천시민미디어센터의 한 강의실에선 작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보이는 라디오, 팟캐스트, 영상 촬영과 편집 등 미디어의 다양한 세계를 배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았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에 귀 기울이면서 하나의 공동체로 발전해 나갔다. 지금은 미디어라는 이름 아래, 지역을 비추고, 책을 매개로 사람을 연결하며, 소상공인의 삶을 기록하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자신의 일상을 브이로그로 공유하는 분도 있고, 수년간 출판 편집 일을 하며 책과 삶을 이어온 분, 그리고 전문 라디오 작가로 방송 현장을 오랫동안 경험한 분까지. 다양한 경험과 시선이 모인 덕분에 이들의 콘텐츠는 결코 단조롭지 않다.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 일상에 스며든 기록,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을 향한 따뜻한 관심이 이들의 미디어 작업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올해 2025, 경기마을미디어 성과 공유회에서 이들이 택한 주제는 '독서''소상공인', 그리고 '지역 활동가'. 단어만 놓고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책을 읽고, 지역을 걷고, 사람을 만나며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미디어로 풀어내는 이들에게 이 세 가지는 모두 같은 선 위에 있는 가치다.
     
    성과 공유회에 앞서, 모임의 대표인 이상하 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컴퓨터 강사와 마을 동호회 회장으로 일해온 그는 지금은 지역 활동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사진출처: 함께하는 미디어 모임 이상하대표 제공
     
     
    Q. 처음 미디어 교육을 받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영상이나 라디오는 저와 거리가 먼 세계라고 생각했어요. 컴퓨터 강의와 책을 다루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기록은 글로 남기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죠. 그런데 우연히 부천시민미디어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한 번쯤 배워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인 방식이더라고요. 무엇보다 음성과 화면이라는 매체가 사람의 감정을 훨씬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걸 체감했어요.“
     
     
    Q. ‘함미모는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요?
     

    2024, 원미도서관과 상동도서관에서 진행된 부천시민미디어센터 주관 교육 프로그램이 계기였어요. 보이는 라디오, 팟캐스트, 영상 기본 촬영 등 다양한 미디어 교육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관심사를 가진 분들이 모이게 되었죠. 처음엔 동아리 명도 없이 활동하다가, 교육 프로그램 명인 함미모(함께하는 미디어 모임)’를 그대로 이어받아 ‘함미모’'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Q. 교육을 통해 어떤 점이 가장 크게 달라졌나요?
     
    "무엇보다 기록의 방식이 다양해졌다는 점이에요. 전엔 글로만 표현했다면 지금은 음성으로, 영상으로, 때로는 팟캐스트 대화로 풀어낼 수 있게 됐죠. 또 교육을 함께 받은 분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면서 나 혼자에서 우리 함께만드는 작업으로 바뀌었어요. 이게 가장 큰 변화이자 의미 있는 전환이었죠."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Q. 이번 성과 공유회에서는 어떤 내용을 발표하게 되나요?
     
    "저희는 책을 읽는 사람, 책을 나누는 사람, 책을 통해 지역과 연결된 사람들에 주목하고 있어요. 단순히 독서를 주제로 한 게 아니라,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지역 소상공인이나 활동가들이 어떻게 삶을 나누고 있는지를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냈어요. 책방을 운영하는 분, 마을에서 독서모임을 꾸려가는 분, 작은 상점을 열고 책 코너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분들이죠."
     
    "또한, 이번 프로젝트는 3개월간 매달 2개의 보이는 라디오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튜브와 팟캐스트에 업로드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동시에 공모전 참여, 개인 SNS 콘텐츠 강화, 기술적 역량 향상도 함께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동아리 내부에 역할을 명확히 나눠서 각자의 장점을 살리고 협업을 잘할 수 있도록 준비했어요.“
     
     
    사진출처: 함께하는 미디어 모임 이상하대표 제공
     
     
    Q. 실제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요?
     
    "한 소상공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책은 손님을 머무르게 하는 공간이에요라고요. 가게 한쪽에 책 몇 권을 놓아두었을 뿐인데, 그걸 계기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손님도 생겼다고 해요. 그 말을 들으면서 책이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묶는 매개체가 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Q. 활동을 지속하면서 느낀 지역 미디어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거창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주변의 이야기, 평범한 일상, 소박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껴요. 미디어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돕는 도구잖아요. 그게 영상이든, 소리든, 글이든. 저희가 만든 콘텐츠를 통해 누군가 , 저런 분도 있구나’,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네하고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단순히 콘텐츠를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함께 배우고 나누는 활동도 계속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매월 원미도서관에서 자체 블로그 강의를 열고 있어요. 짐벌을 이용한 촬영 실습도 병행하면서 실전 감각도 익히고 있고요. 그리고 오는 616일에는 복사골문화센터에서 직접 기획한 독립영화 상영회도 열릴 예정이에요. 우리와 같은 지역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 또는 잊혀진 작은 목소리를 소개하려는 자리죠."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요?
     
    "올해 말 성과 공유회도 있지만, 오는 616, 부천 복사골문화센터에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독립영화 *‘’*이 상영합니다. 이 영화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작고 섬세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지역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삶의 결, 평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우리 곁의 현실을 차분히 들여다보게 합니다."
     
    "이번 상영은 단순한 영화 관람을 넘어, 지역 안에서의 미디어 활동을 보다 확장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번 독립영화 상영도 그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영화제 출품작이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역 안에서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고, 느낄 수 있는 을 만든다는 데 큰 의미가 있고, 상영 후에는 짧은 대화 시간도 마련되어 있어 단순히 관람에 그치지 않고, 영화를 통해 마주한 감정과 생각을 지역 주민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우리는 전문가도, 거대한 기획자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사는 지역을 좋아하고, 그 안의 사람과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입니다. 이번 상영은 그 마음을 담은 첫 번째 실험이자 제안이 될 것입니다. "
     
    "끝으로, 지금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지역을 담아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어요. 저희 구성원들도 다들 바쁜 일상 속에서 틈틈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열정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개 녹음이나 영상 상영회 같은 오프라인 소통 자리도 자주 만들어보고 싶어요.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장을 여는 거죠."
     
     
    영화 포스터 / 출처: 함께하는 미디어 모임
     
     
    부천시민미디어센터에서 시작된 작은 모임은 이제 지역의 이야기를 품은 미디어 그룹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지역의 이야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라고. 마을과 사람, 그리고 책 사이를 잇는 그들의 기록은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앞으로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지역의 서점을 인터뷰하거나, 동네 소상공인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내고, 독서와 생활이 만나는 공간들을 소개하는 등, 미디어를 통해 지역을 잇고 기록하는 일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
     
    미디어는 어렵지 않다. 중요한 건 기술보다도 진심이다. 그리고 그 진심은 영상을 통해, 목소리를 통해, 글과 이미지로 얼마든지 전해질 수 있다. 지역을 읽고, 기록하고, 연결하는 새로운 시도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미디어로 지역을 읽다-함미모 이상하 대표 인터뷰
    럭비공

    조회수 308

    202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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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챗gpt 활용 ai제작
     
    
    최근 인공지능(AI)은 과제물 작성, 디자인, 음악, 글쓰기 등 다양한 창작 활동 영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생들의 리포트 작성이나 기업의 마케팅 콘텐츠 제작, 예술 창작 분야까지 그 영향력이 확장되면서, AI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이 아닌 창작 주체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저작권 체계가 전제로 했던 ‘인간 중심 창작’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법적·윤리적 논쟁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창작이라는 행위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간주되었으나, 이제는 AI가 수백만 개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자동 생성함으로써 인간의 창작을 보조하거나 심지어 대체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단지 기술적 진보에 그치지 않고, 저작물의 정의, 창작자의 범위, 저작권의 귀속과 같은 근본적인 법적 개념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법적 보호 여부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창작자와 플랫폼, 이용자 간의 권리 충돌과 법적 분쟁이 계속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AI 창작물과 저작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논의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 AI란?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모방하거나 이를 능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기반 기술입니다. 이 중에서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한 후, 인간의 개입 없이도 새로운 이미지, 텍스트, 음악, 영상 등을 자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텍스트 생성 기능을 제공하는 OpenAI의 ChatGPT, 이미지 생성 도구인 Midjourney, 그리고 음악 제작 플랫폼 Suno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성형 AI는 기존의 단순 자동화 기술을 넘어서 창작의 영역까지 진입함으로써, 기존의 창작 개념과 저작권 체계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 AI 창작물의 저작권 인정 여부
    AI 창작물이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오늘날 AI 시대의 저작권법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입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따른 법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의 본질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저작권법은 ‘인간의 창작행위’를 보호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AI가 스스로 생성한 이미지, 텍스트, 음악 등 결과물이 아무리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창작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현행 법체계 하에서는 이를 ‘저작물’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제 창작 과정에서는 대부분 인간이 AI에게 특정한 지시를 내리거나, 생성된 결과물 중 일부를 선택하고 편집·수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처럼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저작권 보호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단순히 “고양이 사진을 그려줘”라는 명령을 AI에게 내린 경우, 창작에 기여한 부분이 거의 없으므로 인간의 창작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용자가 수십 개의 프롬프트를 실험하고, 그중에서 창의성이 드러나는 결과물을 선별해 세부적으로 편집하거나 다른 이미지와 조합하여 최종 작품을 완성했다면, 이러한 행위는 창작성 있는 창작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사용자가 AI 도구를 마치 디자인 소프트웨어처럼 활용해 이미지의 구조, 색상, 구도, 스타일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며, 이는 저작권 인정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됩니다.
     
    또한 AI가 생성한 창작물의 저작권 귀속 주체에 대한 문제도 중요한 논점입니다. AI 자체는 법적 인격체가 아니므로, 창작물의 권리를 AI에게 귀속시킬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 권리를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크게 세 가지 입장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AI를 활용한 이용자에게 저작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인간이 AI를 도구로 활용해 창작에 실질적으로 기여했음을 강조하는 시각입니다. 둘째는 AI 개발자나 플랫폼 운영자에게 귀속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생성된 결과물이 AI의 설계 구조와 알고리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 자에게 일정한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셋째는 AI가 완전 자율적으로 생성한 결과물은 무저작물로 간주하고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창작물 이용의 자유와 기술의 개방성을 중시하는 주장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저작권청(US Copyright Office)은 2023년 기준,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생성한 작품에 대해 저작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생성 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했음을 입증할 수 있다면, 예외적으로 해당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입장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창작 기여도에 따라 AI 결과물에 대한 권리 귀속을 유연하게 판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이와 관련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나 판례가 없는 상황이며, 이에 따라 법 해석의 통일성과 입법적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AI 기술 발전 속도에 발맞추어 인간의 창작 개입 범위를 어떻게 정의할지, 그 경계를 법적으로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생성형 AI 플랫폼의 법적 책임
    생성형 AI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매우 강력한 창작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간단한 명령어 몇 줄만으로 문학 작품, 이미지, 음악, 영상 등을 손쉽게 생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능은 콘텐츠 제작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생성형 AI 플랫폼은 저작권 침해, 명예훼손, 허위정보 생성 등의 잠재적인 법적 위험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플랫폼의 책임 범위와 한계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플랫폼 사업자는 자신이 직접 창작에 관여하지 않으며, 단지 기술적 도구를 제공하는 중립적인 입장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이용자가 입력한 프롬프트와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플랫폼이 직접적인 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과거 인터넷 포털이나 동영상 공유 사이트처럼 플랫폼의 기술적 중립성을 인정받는 논리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반대 입장에서는 플랫폼이 생성형 AI의 작동 방식을 설계하고, 학습 데이터를 선택하며, 결과물의 특성과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저작권 침해나 명예훼손과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경우, 플랫폼이 이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나 정책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방조’ 혹은 ‘과실’에 따른 법적 책임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2023년 게티이미지(Getty Images)가 생성형 AI 기업 스태빌리티 AI(Stability AI)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는 자사의 저작권 이미지 수천만 장이 Stability AI의 학습 데이터로 무단 사용되었다며, 이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AI가 생성한 이미지에 게티이미지의 워터마크가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도 포착되면서, AI가 원본 저작물을 단순히 학습하는 수준을 넘어 ‘재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AI 플랫폼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생성물이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할 경우, 플랫폼에도 일정한 법적 책임이 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판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미국에서 코미디 작가 사라 실버먼(Sarah Silverman)을 포함한 작가들이 메타(Meta)와 오픈AI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책과 텍스트가 사전 동의 없이 AI 학습에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며, AI 플랫폼이 타인의 저작물을 학습한 결과를 이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간접적인 침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한 ‘도구 제공자’로서의 책임을 넘어서, AI 플랫폼이 결과물의 법적 문제에 대해 일정 수준의 감시 및 통제 의무를 지닌다는 주장으로 해석됩니다.
     
    이처럼 생성형 AI 플랫폼의 법적 책임을 둘러싼 논의는 단순히 기술적 기능의 제공을 넘어, AI의 작동 방식과 결과물에 대한 사회적 책임, 나아가 윤리적 기준 수립과도 연결됩니다. 앞으로 플랫폼 사업자는 저작권 침해나 권리 침해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강화해야 하며, 이용자가 생성한 콘텐츠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공, 신고 시스템 운영, 침해 시 신속한 삭제 조치 등을 통해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입법기관은 플랫폼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기술 발전과 권리 보호의 균형을 도모해야 합니다.
     
     
    ● 향후 과제와 정책적 제언
    AI의 발전과 함께 창작 환경은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창작 활동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는 저작권 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향후 저작권법은 기술의 발전을 수용하면서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균형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째, AI 창작물에 대한 창작성 기준을 법적으로 명확히 정립해야 합니다. 현재는 인간의 개입 정도에 따라 저작권 인정 여부를 판단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실무에서 혼란이 큽니다. 프롬프트 제공, 결과물 선택, 편집 및 조합 등의 창작 행위 중 어떤 수준 이상이 되어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AI 학습 데이터의 수집과 이용에 대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AI가 무단으로 타인의 저작물을 학습해 생성한 콘텐츠가 원 저작물과 유사하거나 이를 침해할 경우, 이는 심각한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 개발자는 학습 데이터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저작자의 동의를 받거나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이용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원 저작자에게 일정한 보상이나 수익 배분이 가능한 시스템 도입도 고려해야 합니다.
     
    셋째, AI 플랫폼에 대한 책임 기준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성형 AI 플랫폼이 생성한 결과물이 법적 문제를 일으킬 경우, 단순한 도구 제공자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일정 수준의 주의 의무를 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신고 시스템 강화, 사전 필터링 기술 도입, 침해 콘텐츠에 대한 신속한 삭제 조치 등의 기술적·정책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넷째, 저작권 보호와 기술 혁신 사이의 균형을 고려한 입법이 필요합니다. 무분별한 규제는 AI 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으며, 반대로 무제한적 자유는 창작자의 권리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정 범위 내에서의 공정 이용을 인정하면서도, 창작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 설계가 요구됩니다.
     
    마지막으로, 국제적 기준 마련과 협력이 중요합니다. AI는 국경을 초월하여 작동하기 때문에, 개별 국가의 법제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습니다. 국제 저작권 협약과 AI 기술 규범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수적입니다. 한국 역시 이에 적극 참여하여, 국제적 기준 형성과 국내 입법 간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처럼 AI 시대의 저작권 문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창작과 소유, 공정성과 책임, 법과 윤리의 복합적인 요소가 얽혀 있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제도의 정비와 함께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공론화, 교육, 그리고 국제적 연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AI와 저작권법: 현실과 쟁점 
    주야

    조회수 1935

    202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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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한 말이다. 5.18민주화운동 이야기인 《소년이 온다》를 쓸 때 그와 함께 한 질문이라 했다. 그 책을 쓰는 동안만의 질문이었을까. 지난 5월 17일(토) 광주의 5.18전야제를 다녀오는 동안 내게도 살아 있는 질문이었다.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45년 전의 광주가 오늘 대한민국을 구하고 있었다. 총칼이 아니라 노래와 시로, 춤과 연극으로 연대하는 민주주의 대축제였다.
     
    부끄러운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1980년 5월에 나는 대구에 사는 여고 2학년이었다. 당시 TV 화면에 나오는 광주는 ‘폭도’와 ‘빨갱이’의 도시였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광주는 두려운 ‘벽’이었다. 독재와 냉전 시대 교육에 길든 아이가 광주의 진실을 마주하기까지는 20년이 더 걸려야 했다.
     
    제45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로 올해도 광주를 다녀오는 복을 누렸다.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4.16합창단으로서 ‘민주주의 대합창’ 공연에 서는 덕분이었다. 구묘역 신묘역을 방문하고 5.18민중항쟁기념행사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전야제도 즐길 수 있었다. 올해는 18일 밤까지 1박 2일로 확대 진행된 전야제를 하루만 보고 돌아온 게 아쉽다. 5.18 민주 광장, 동구 금남로 1~3가 차 없는 거리, 동구 중앙로 일대는 시민 참여 부스 물결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질 때마다 누구라도 목청껏 함께 부르는 축제였다.
     
     
    행사장 일대 사진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
    17일(토) 오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추모식부터 소개하고 싶다. 안산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해 구묘역을 들르고 신묘역에 도착했을 땐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주최 주관하는 추모식은 끝나고 있었다. 식전 공연으로 놀이패와 장애인 예술단의 공연이 있었고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전통 제례 의식을 마친 전통 한복을 입은 분들을 볼 수 있었다. 2부 순서인 국민의례로 시작하는 추모식(10시 30분)은 내빈 소개, 추모사, 유가족 대표의 인사가 있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헌화와 분향이 있었다.
     
    추모식에서 가장 소개하고 싶은 순서는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5·18민주화운동 추모 시 낭송 퍼포먼스’였다. 광주시낭송협회 사람들이 5·18 광주 추모 시를 모아서 한 편 한 편 낭송하는 공연이었다. 오월 광주를 추모하되 시와 음악으로, 피로 쓴 민중항쟁의 역사가 노래와 시로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이창병의 ‘망월동에서’ 첫 자락을 보자. “광주 금남로에서/ 이 나라 최후의 거리마다 쓰러진 넋들의 통곡은/ 우리들의 침묵 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고정희는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라고 읊었다. 김준태의 ‘오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는 광주일보(구 전남일보) 1980년 6월 2일 자 조간 1면에 실렸던 시다. 계엄 당국의 검열에 기자들이 사표로 저항한 그 시였다.
     
     

     
     
    “우리는 사람이 개처럼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신문에는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45년 전 전남일보 기자들의 그 절규가 시로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끝나지 않는 오월 다시 찾은 민주주의 당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80년 오월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와 노래로 하는 기억의 다짐이었다.
     
     
    민주주의 대축제 대합창
    3부로 구성된 민주주의 대축제 5·18전야제는 지정남 배우가 진행했다. 1부 ‘오월광주 환영대회’는 오월길맞이굿을 시작으로 금남로에 집결하는 수만 명의 민주 평화 대행진 대열을 노래와 춤으로 환영하는 행사였다. 2부는 ‘민주주의 축제’로 뮤지컬과 노래로 꾸며지고 3부는 ‘빛의 콘서트’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비롯한 노래 밴드들의 무대였다. 전야제 중앙무대는 금남로 4가역 교차로에 설치되고 양방향으로 여러 개의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내가 416합창단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 대합창’ 공연은 17일(토) 오후 3시 반에 시작했다.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였다. 서울 부산 안산 광주 등에서 온 7개 시민합창단이 개별 공연으로 두 곡씩 부른 후 대합창단으로 함께 두 곡을 불렀다. 광주는 광주였다. 7개 합창단 중 푸른솔합창단, 1987합창단, 광주흥사단합창단 3개가 광주 소재 합창단이었다.
     
     
    박종철 합창단(부산) /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1987합창단(광주) /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7개 민주주의 합창단이 함께 대합창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전가'를 불렀다. / 사진출처: 4.16합창단
     
     
    푸른솔합창단(광주): 2015년 6월 ‘합창’을 통해 민주 인권 평화로 상징되는 ‘광주정신’을 전달하고, ‘광주공동체’의 희망을 노래하고자 창단했다. 2017년, 2018년 창작 뮤지컬 ‘빛의 결혼식-임을 위한 행진곡’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615시민합창단(서울): 2009년 8.15행사 공연을 시작으로, 민족의 역사와 겨레의 삶에 수많은 아픔을 안긴 분단 장벽을 허물고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창단했다.
    1987합창단(광주): 광주 전남의 1980년 5.18민중항쟁의 불꽃을 1987년 6월 항쟁의 횃불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헌법을 쟁취한 그 뜻을 노래와 합창으로 계승하고자 2018년 창단했다.
    광주흥사단합창단(광주):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민족운동 단체 흥사단. 독립운동, 대한민국의 민주화, 청소년 계몽, 육성 운동으로 2017년 3월 창단, 형화와 자유를 노래한다.
    박종철합창단(부산):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와 6월 항쟁의 정신을 기리고, 시민문화운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2016년 8월 16일 창단했다.
    416합창단(경기 안산):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일반 시민으로 2014년 창단됐다. 소외와 불의, 불평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에 함께 한다.
    이소선합창단(서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의 영결식을 계기로 2011년 결성된 노동자 합창단이다. 서울시로부터 2020년 전문예술 단체로 지정받았다.
     
     
     
    민주주의 대합창에서 불린 노래 제목을 소개해 본다. 아, 민주정부/ 무궁화/ 다시 만난 세계/ 타는 목마름으로/ 죽창가/ 깍지손 평화/ 그날이 오면/ 죽순밭에서/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개벽/ 껍데기는 가라/ 인간의 노래/ 돌덩이/ 오월의 노래2/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체 합창단이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전가’를 불렀다.
     
     
    <봄의 겨울, 겨울의 봄> 뮤지컬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출처: 뉴시스
     
     
     
    전야제 2부 순서를 연 뮤지컬 <봄의 겨울, 겨울의 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80년 봄과 2025년의 겨울이 중첩되는 판타지 스토리의 뮤지컬. 공연은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선포됐다.”를 반복해 부르면서 시작했다. 이어서 “2024년 12월 3일 도시를 통제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겠다고 계엄령이 선포됐다.”라는 가사는 45년 광주와 현재의 서울을 관통하는 ‘계엄’을 보여 주었다.
     
    “응 엄마, 나? 여의도 가는 길.”
    “응 여보. 걱정 말게. 서울 다 와 부렀어. 아 어치게 가만히 있나. 국회 앞에 탱크가 처들어와부렀다는디!”
     
    이어서 노래한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거리에는 탱크부대가. 상상해 본 적 없어. 이런 세상이 다시 올 거란 걸.”
     
    그랬다. 45년 전의 그 계엄령 세상이 21세기에 다시 올 줄은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추운 겨울이 더욱 추워질지도 모른다”라고 노래하면 “안 돼! 우리가 만든 나라야”라고 화답했다. “어떻게 가만히 있어. 학교에서 배웠는데. 나도 다 알아. 이거 5·18 때랑 똑같은 거잖아. 우리도 광주 사람들처럼 나서야 되는 거잖아.”라고 젊은 여성이 외치면 “어쩌면 다시 봄이 오지 않을지 모른다”라고 노래했다. 현재와 과거를 노래와 춤으로 연결해 주었다. 1980년 오월은 2024년 12월이 되었고, 광주의 영령이 오늘의 우리를 구했음을 알렸다.
     
    가수 이은미가 작곡가 김형석이 해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광주에서 사람들과 같이 부르고 싶었단다. ‘서른 즈음에’, ‘가슴이 뛴다’ 그리고 ‘애인 있어요’를 열창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서 일까, 시종 가슴 뭉클하고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작곡가 김종률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찬사 그리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담아” 작곡했다고 했다. 5·18전야제 브로슈어의 글을 옮겨 본다.
     
     
    민주항쟁의 연원 오월광주로 연어처럼 몰려오는 민주시민들.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하는 오월 광주 공동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금남로에서 새로운 세계를 전망하다.
    항쟁의 연원 5·18: 계엄의 밤, 장갑차 앞을 맨몸으로 가로막은 시민들의 용기는 광주 시민군의 헌신이었습니다. 남태령의 새벽, 고립된 농민들을 끝내 지켜낸 연대의 마음은 오월 어머니들의 사랑이었습니다. 한남동의 눈보라를 맞으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낭만은 민주대성회의 횃불이었습니다.
    승리의 약속 5·18: 오월의 기억으로 내란과 맞서 싸우고 있는 국민들이 민주주의 승리의 염원을 안고 광주로 달려올 것이며, 광주 공동체가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내란 청산과 민주 승리를 약속하는 축제를 펼칩니다.
    미래의 표상 5·18: 5·18은 미래의 표상으로 승화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민주국가, 국가 주권이 실현되는 자주 국가는 오월 광주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입니다. 계급과 계층, 성별과 세대를 넘어 누구나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대동세상을 오월 광주가 먼저 체험했던 미래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5.18헌법’
    5·18전야제 시민참여 부스의 인상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올해도 45년 전 오월의 ‘주먹밥’이 있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사랑의 밥을 3개나 받아먹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모델인 독일 기자 한스 패터를 기리는 초록 택시와 운전자가 있었다. 그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광주의 소주 ‘잎새주’ 샘플 한 병 받을 수 있었다. 소주 병 라벨에는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라는 문구와 초록 택시가 새겨져 있었다.
     
     
    주먹밥 나눔, 택시운전사x잎새주 인증사진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 불리는 광주인권상을 아는가? 5·18기념재단이 2000년부터 인권과 평화를 위해 기여한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 수상자는 동남아시아에서 군사 폭력과 인권침해에 맞서 생존자 보호, 진실 규명, 평화 구축 활동을 펼쳐온 인권 단체 ‘아시아 정의와 권리(Asia Justice and Rights, AJAR)’다. 특별상은 필리핀 코르딜레라 지역에서 34년간 예술을 통해 인권과 공동체 권리를 옹호해 온 ‘DKK문화동맹’이 받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고 문재학 열사를 비롯한 민주유공자들의 묘비를 찾아보자. 구묘역에도 신묘역에도 너무나 어리고 젊은 얼굴들을 보라. “5·18정신 계승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유족과 가족들을 위한 교육 지원, 취업 지원, 의료 지원, 대부와 양로 지원, 양육 지원 등 다양한 지원뿐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가 각종 기념·추모 사업을 실시하고 민주화 운동 관련 시설과 교양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5·18정신 계승 민주유공자법 제정 손피켓(왼쪽),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부채(오른쪽)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라 적힌 부채를 보았다. 홍보 부스에서는 “청원 참여”를 유도하는 유인물이 배포되고 있었다. 5·18정신을 국가가 책임지고 헌법에 새겨야 한다는 요지였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광주의 희생과 단호한 투쟁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지켜졌다. 12·3 불법 계엄의 국민 승리가 바로 오월광주의 승리”라며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통해 대한민국을 지켜온 힘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새기겠다"라고 말했다.
     
     
     
     '아 오월, 다시 만난 오월'를 주제로 5·18민주화운동 45주기 기념행사 진행 / 사진출처: 아시아경제
     
     
     

     
     

     

    민주주의 대축제 5.18 전야제를 다녀와서
    꿀벌

    조회수 849

    202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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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출처 : 챗gpt 활용한 ai제작
     
     
    
    여러분, “도서관의 날”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도서관의 날은 책을 통해 누구나 지식과 문화를 자유롭게 접하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정신을 키우자는 뜻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날입니다. 이날은 도서관의 소중한 가치를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이용하여 다양한 사회·문화적 가치를 확산시키도록 응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도서관법 개정(2022년 12월 8일 시행)에 따라 매월 4월 12일로 지정되었으며, 2023년 첫 법정기념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도서관법 시행령에 따르면, 도서관의 날부터 1주간을 도서관 주간으로 정하여 도서관들은 해당 기간에 취지에 적합한 도서관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 이용 활성화를 위해 이번 해인 2025년에도 전국 도서관에서 강연, 체험행사, 기념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안양시의 도서관들에서 어떻게 도서관의 날을 기념하였는지 살펴볼까요?
     
     
    안양시 곳곳에서 펼쳐진 문화축제, 다양한 ‘도서관의 날’ 행사
     
    출처: 안양시
     
     
    지난 4월, 경기도 안양시의 관내 10개 공공도서관은 도서관의 날 및 도서관의 주간을 맞이하여 ‘꿈을 키우는 씨앗, 도서관에 묻다.’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독서문화 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책과 사람, 상상력과 현실이 만나는 특별한 한 주. 시민들은 도서관이라는 지식과 문화의 공간에서 작지만 큰 힘을 지닌 여러 가지 꿈들을 키우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관양, 비산, 호계, 안양어린이, 벌말 도서관 등에서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전 연령층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렸습니다.
     
     
    관양도서관
    관양도서관에서는 4월 14일, ‘업사이클링 팝업북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4월 19일에는 ‘윤정선 작가와의 만남 <퇴근 후, 그림책 한 권>’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같은 날 안양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과년도 잡지를 선착순으로 무료 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출처: 관양도서관 홈페이지
     
     
    호계도서관
    호계도서관에서는 4월 4일부터 5월 9일까지 성인을 대상으로 ‘도서관 속 비주얼 씽킹’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같은 기간에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처음 접하는 비주얼 씽킹’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4월 26일에는 ‘최정은 작가와의 만남 <비주얼씽킹, 스토리로 말하라>’ 강연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양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책 속 그림 전시 <꽁꽁꽁 피자>’를 열었습니다.
     
     
    안양어린이도서관
    안양어린이도서관은 그 이름에 걸맞게 어린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4월 12일, ‘반짝반짝 빛나는 자개 책갈피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4월 19일, ‘장희정 작가와의 만남 <놀이터의 비밀>’ 강연을 열었습니다. 4월 15일과 17일에는 ‘이야기와 함께하는 영어 그림책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아이들에게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벌말도서관
    벌말도서관에서는 안양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4월 12일부터 30일까지 과년도 잡지를 선착순으로 배부하였으며, 4월 12일에는 ‘이윤정 작가와의 만남 <문해력 뛰어난 아이는 이렇게 읽습니다>’ 강연을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3~4학년을 위한 ‘보드게임으로 즐기는 세계사’ 프로그램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양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4월 19일과 30일 각각의 날에 ‘향기로 떠나는 마음 여행’, ‘특별 영화 상영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출처: 벌말도서관 홈페이지
     
     
    비산도서관
    비산도서관에서는 4월 19일, 안양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과년도 잡지를 배부하였으며, 4월 한 달간 ‘시민 창작 그림책 원화 전시 <말풍선 키우기>’를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4월 11일~5월 2일까지 ‘천미진 작가의 <그림책 글쓰기 워크숍>’ 프로그램을 주최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초등학생들을 위한 ‘복슬복슬 모루인형 만들기’ 체험을 4월 19일에 진행하였습니다.
     
    출처: 비산도서관 홈페이지
     
     
    특히, 4월 한 달 동안 비산도서관 2층 로비에서 진행되었던 ‘시민 창작 그림책 원화 전시 <말풍선 키우기>’는 도서관을 찾은 시민들에게 따뜻한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2024년 비산도서관 시민 그림책 작가 특성화 프로그램 『내 꿈을 칠하다: 청년 그림책 작가』우수작 5종 원화를 전시하는 행사로, 새파란(김예인) 작가의 <말풍선 키우기> 원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도서관에서 피어난 작은 꿈들
     
    ‘도서관의 날’은 단순히 하루를 기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책 한 권, 한 번의 강연, 한 번의 체험 활동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작은 씨앗처럼 심어지고, 그 씨앗이 성장 과정을 거쳐 희망찬 꿈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이번 안양시의 다양한 도서관 행사들은 사람들에게 문화의 빛을 비춰주고, 꿈의 씨앗을 심어준 뜻깊은 것들이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강연과 체험, 다양한 전시를 통해 책과 사람이 연결되고,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도서관은 단순한 지식 저장소의 역할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중요한 문화 공간으로 기능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양한 지역의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다채로운 ‘도서관의 날’ 행사에 참여하여 책과 함께,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따뜻한 이야기와 함께 성장하는 소중한 경험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책과 이야기,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이 주는 감동은 여러분의 마음속 깊이, 오랜 시간 동안 자리할 것입니다.
     
    또한, 반드시 도서관의 날 행사가 아니더라도 안양시를 비롯하여 다양한 시의 도서관에서 매달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계신 지역의 도서관의 홈페이지에 방문하여 여러 가지 색다른 프로그램들과 강연들, 전시회들을 직접 체험해 보시는 것은 어떤가요? 이제 도서관은 점점 더 진정한 문화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이 문화의 공간을 통해 세상을 넓히고 더 많은 꿈을 키워가기를 소망합니다.
     
    '도서관의 날'은 책을 넘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간의 가치를 다시 새기는 날입니다. 도서관들은 지식과 문화, 꿈이 자라는 터전이 되어주었습니다. 오늘 심은 작은 꿈은 책과 함께 자라며, 우리의 미래를 더욱 밝히게 될 것입니다.
     
    

     

     

    “꿈을 키우는 작은 시작”, 2025 안양시 도서관의 날 행사
    코코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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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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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4월 16일(수)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1년이 되는 날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동안 우리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무엇이 변했을까? 세월호는 사람들의 기억에 희미해졌을까? 4월 12일(토), 광화문의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약속 시민대회’ 현장에 가서 확인해 보자.
     
     
    
    출처: 4.16연대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2025년 4월 12일, 기억·약속 시민대회장은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기억은 무엇이며 우리는 누구일까? 세상을 바꾸는 주체가 “기억하는 우리”라고? 과연 서십자각에서부터 광화문 앞까지 행사장엔 ‘기억하는 우리들’이 가득했다. 비가 오고 점점 바람이 세찬 날씨 속에도 기억하는 사람들 5천여 명이 다녀갔다(집회 측 추산).
     
    10년이 더 흘렀다고 세월호 참사를 잊는 게 아니라고 사람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윤석열 한 사람 파면으로 사회 대개혁이 보장되는 게 아님을 똑똑히 아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생명 안전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까? 어떻게 사회 대개혁을 이룰까? 탄핵 집회장에 나갔던 그 깃발들이 펄럭였다.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슬로건은 ‘애도’와 ‘기억’과 ‘연대’의 힘이었다.
     
     
    출처: 4.16연대
     
     
    ‘기억하는 우리’ 중에 ‘세월호와 이태원 세대’가 돋보였다. 시민참여 마당 활동 속에도 자유 발언대 마이크에도, 우산 속에 듣고 박수 치는 청중에도 젊은이들이 많았다. 노래하고 춤추고 행사 진행하고 자원봉사하고, 모두 세월호와 이태원 세대 청년들이 했다. 아니, 세월호 참사는 나이와 세대를 통합해 이루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시민운동임을 볼 수 있었다.
     
     
    시민참여 마당, 놀며 체험하며 기억하며
     
    출처: 4.16연대
     
    시민들은 오후 2시부터 25개의 노란 ‘시민참여 마당’ 천막을 자유롭게 방문하며 즐길 수 있었다. 구경하고 체험하고 질문하고 대화하고 만들며 노는 공간이었다. 노란 리본을 만드는 사람, ‘기억 엽서’를 쓰고 ‘리본 리폼’을 하고 ‘기억의 벽’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사람. 노란 옷을 입은 4.16 가족협의회 부모님들의 공방과 기억 상점에서 기억 물품을 만들며 함께할 수 있었다.
     
    눈에 띄는 건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비롯한,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라는 이름의 연대체였다. 사회적 참사는 결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다. 기간제교사노동조합원들은 “김초원 선생님~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배지를 나눠주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천막에서는 아이들이 세월호 책을 보고 있었다. ‘비건 감자튀김’ 푸드트럭은 이 광장의 다양성과 포용성의 상징처럼 보였다.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대한민국 재난 참사 연대기,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
    2023년 12월 16일 발족한 재난 참사 피해자 단체들의 연대체다. “누구도 우리처럼 오래, 우리만큼 깊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마음으로 활동한다.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 소속 9개 단체는 다음과 같다.
    1) 2.18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2003. 2. 18): 대구 중앙로역 방화 화재로 최소 192명이 희생된 사건. 전동차 내장재, 1인 승무원제,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의 미흡한 초기 대처가 피해와 고통을 키웠다. 추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2) 4.16 세월호 참사(2014. 4. 16): 인천발 제주행 여객선이 진도 해상에서 침몰, 국가의 구조 방임으로 단원고 학생 250명을 비롯한 승객 등 304명이 희생된 재난 참사이자 국가 폭력 사건.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생명 안전 공원 건립 등의 문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3) 7.18 공주 사대부고 병영 체험학습 참사(구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2013. 7. 18): 학교 체험학습으로 참가한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공주 사대부고 2학년 5명이 희생된 참사. 학교의 관리 감독 미흡, 무자격 교관 운영, 태안군의 관리 감독 소홀, 복종의 문화 역시 참사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4) 가습기 살균제 참사: 1994년부터 17년 동안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시민이 심각한 건강 손해를 입은 한국 최초의 생화학 제품 재난. 2023년 12월 31일 현재 공식 사망자 1,843명, 피해 인정자 6,048명으로 현재도 매일 피해가 드러나는 중이며, 피해 인정 싸움이 진행 중이다.
    5) 광주 학동 참사(2021. 06. 09.): 학동 4구역 재개발을 위해 HDC현대산업개발의 하도급 업체가 철거를 진행 중 빌딩이 붕괴하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한 사건. 안전조치 미흡 무리한 철거 등이 주요 원인. 현재까지도 피해 보상과 추모 문제가 남아 있다.
    6)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1999. 06. 29.): 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한 사건. 단일 재난으로 최대 피해자 발생. 사주의 탐욕적 이윤 추구와 관계 공무원들의 결탁이 원인으로 지적되었으나 처벌은 미흡. 현재까지도 추모의 문제가 남아 있다.
    7)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2017. 03. 31.): 남대서양을 항해하던 철광석 운반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선사 폴라리스의 과실로 침몰해 22명이 희생된 사건. 원인 규명과 미수습자 수습이 해결되지 않았다.
    8)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1999. 06. 30.): 유치원생 등 23명이 사망한 화재 사건. 모기향에 의한 발화로 결론지었지만, 유가족들은 누전과 관리 소홀, 비리 결탁 주장.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요구가 있다.
    9)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인천 학생 화재 참사, 1999. 10. 30.): 상가 화재로 청소년 등 5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친 사건. 불법영업과 공무원 간의 유착 비리가 원인을 제공했으나 피해자들(평균연령은 17세)의 호프집 출입에 대한 비난으로 2차 가해가 심각했다. 일부 피해자의 피해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출처: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영상]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 출처: 4.16연대
     
     
    [영상] 누가 이태원 참사 159번째 희생자를 만들었나 / 출처: 뉴스타파
     
    
    통합과 연대의 민주시민 발언대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2시 반부터 65분간 시민 10명이 자유발언대에 올랐다. 4.16 약속 지킴이 도봉 모임의 이경숙, 4.16 해외 연대의 유준조,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선물, 개인 시민 로라, 민주노총 노동안전 보건실장 최명선, A 학교 사안 공대위 교사 지혜복, 녹색연합 활동가 이다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동물해방물결 소장 김도희, 전국 불안정노동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김혜진. 가려졌던 목소리가 드러나는 자리이자 통합과 연대의 발언대였다.
     
    첫 발언자인 이경숙 님은 12.3 이후 첫 탄핵소추안이 부결되던 날 실망하고 집에 왔는데, 응원봉을 든 청년들은 그 추운 날 저녁에도 여의도를 지켰다는 걸 알게 돼서 부끄러웠다며 고백했다. “그때부터 각성한, 아니 계몽된 도봉 엄마들 카톡 방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듯한 차랑 주먹밥 만들어 학생들한테 주고 싶다. 그래, 좋아요, 주먹밥 만들까? 카톡 방에 있던 네 명 모두의 뜨거운 찬성으로 주먹밥 연대를 결의하였습니다.”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선물은 “모든 죽어간 이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내며” 세월호 세대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2014년 4월 16일, 고등학생 2학년이었던 저는 희생자의 대다수인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입니다. 같은 경험을 했는데 저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죄스러웠습니다. 그때 사회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 서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세월호 참사 유가족 간담회에 참가했습니다.”
     
    동물해방물결의 김도희 활동가는 며칠 전 충북에서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되는 닭들 “17만 9천 명(命)”을 소환했다. 더 이상 죽여서 지키는 사회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고. “지워진 생명을 다시 불러내는 일, 안전의 기준을 새롭게 다시 쓰는 일, 그리고 그 기준에 인간과 비인간, 모든 생명이 함께하는 일, 그 일을 하겠다”라고 다짐하며 호소했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되새기는 일이 아닙니다. 기억은 외침이 되어야 하고, 외침은 전환이 되어야 합니다.”
     
     
    세월호와 이태원 세대의 목소리
    본 행사는 비상 행동 활동가이자 군 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단원고 2학년 9반 고 진윤희 양의 어머니 가족협의회 김순길 사무처장은 “10년하고 1년, 기억·약속 시민대회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로 시작해 “가만히 있지 않겠다, 다짐하며 서로의 버팀목이 돼 온 시민들”에 대해 일일이 감사했다. “우리의 발걸음이 우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로 지난해 12월 3일부터 이 광장에 응원봉을 들고나온 2030 세월호 이태원 세대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청년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라고.
     
     
    출처: 4.16연대
     
     
    발언대에는 박세희 4.16연대 공동대표, 송해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호림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 공동의장, 남아름 영화 <애국 소녀> 감독이 차례로 올랐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재현 군의 어머니 송해진 님의 목소리는 봄비에 젖어 있었다. “소중한 자녀를 잃은 아픔을 안고, 세월호 부모님들이 지난 11년간 감내해 오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박근혜와 윤석열, 이 두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일어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닌, 국민의 생명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한 결과라 지적했다. “두 정권 모두 참사 이후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비난과 혐오를 제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진상 규명과 책임 소재 파악을 방해했다"라는 사실을 말할 때 “비통한 마음”을 고백했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의 진실도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되어 공개되지 않고 봉인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2년 반이 되었음에도, 이태원 참사 특조위는 아직 진상조사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유가족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참사의 모든 진실을 밝히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순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부디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이 긴 여정에 저희와 함께해 주십시오. 이 땅의 아이들이 안전한 일상을 누리며 각자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든 재난 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 고 이재현 군 어머니 송해진 님 발언문 중
     
    16살 고등학생 고 이재현 군(2006. 4. 17.~ 2023. 12. 12.)은 이태원 참사의 159번째 희생자로 세상을 떠났다. 참사로 가장 가까운 친구 2명을 잃고 극심한 죄책감과 2차 가해로 고통받았다. “이태원에 놀러 간 게 잘못”이라는 말을 비롯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나 허위 정보 유포, '순수한 유가족다움' 강요, 노골적인 조롱·혐오 표현, 성희롱 및 욕설 등이었다. 정부는 2차 가해에 적절한 대처 대신 ‘상처를 딛고 일어나려는 본인의 노력과 의지가 문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심한 참사 생존자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계속 지적하고 있지만 달라진 게 없다.
     
     
    남아름 님은 세월호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애국 소녀>를 만든 감독이다. 자신을 4.16 청년 세대라고 소개하면서도, 세월호에 대한 부채감과 복잡한 감정에 도망치기 바빴던 20대를 다룬 고백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그러나 세월호가 가르쳐 준 가장 큰 것은 ‘연대’하는 데에 어떤 ‘자격’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고, ‘참사’란 그저 지나칠 남의 일이 아니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배웠기에 용기를 냈단다.
     
     
    20살의 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또래가 세월호를 계기로 처음 광장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때 어른들은 저희 세대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세월호 세대’, 4.16 세대라 명명된 저희 또래는 “그러면 나는 어떤 어른이자 시민이 되어야 할까?”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풀리지 않은 질문을 20대 내내 품고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세월호가 청년 세대에게 던졌던 그 질문들이 우리를 2024년 계엄의 광장으로 불러들였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무장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우리를 위협하더라도,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우리를 엮어주는 연대의 끈이자 신뢰의 안전망이 되었고, 세월호는 우리가 다양한 색깔의 깃발과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서 춤출 수 있게 해 준 프리즘이었습니다. 20살의 세월호가, 30살의 계엄령을 막아주었습니다. 윤석열 탄핵 결정문에는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습니다. 세월호 이후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
    - 남아름 님 발언문 중
     
     
    
    출처: 4.16연대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기억하는 사람들은 행사 영상에도 있었다. 현장에도 참가한 《저주 토끼》의 정보라 작가는 영상에서 세월호가 “시민운동의 문화를 바꾸었다”라고 정리했다. 11년 전 고3이던 세월호 세대 가수 ‘버둥’에 이어 나온 3인조 가수 ‘브로콜리 너마저’는 노래 ‘졸업’을 부르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이 노래를 만들면서 이 시기 지나면 이 노래 부를 기회 많이 없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그런데 세상이 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일들이 많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넌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청계 광장에서 집회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엄마의노란손수건분들이 거기서 서명 받으니까 저도 그냥 껴서 서명 받고. 그러다 장마잖아요, 7월이면. 서명지가 젖어요. 그러면 몸으로 가리고 이렇게 밑에 집어넣고 그랬었는데 지나가던 분이 편의점 앞에 파라솔 있잖아요. 그걸 사 오셨더라고요. 10만 원 줬대요. 그런 돌봄의 형태로 표현하는 분이 되게 많았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나도 애 키우는 엄마라서, 나도 아빠라서, 나도 선생님이라서, 그냥 지나가던 사람 아무나 가서 연대하고. 모두가 환영받고 모두가 평등하게 고생하고. 시민운동의 문화를 바꾼 굉장히 결정적인 계기가 세월호 부모님들의 활동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현재의 광장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평등인 거 같아요, 평등. 안전.”
    - 정보라 작가
     
     
    출처: 416합창단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기억·약속 시민대회는 4.16 합창단의 노래와 함께 마무리됐다. 비가 잦아든 덕분에 합창단 순서 직전에 무대의 천막이 치워졌다. 노란 단복을 입은 30명의 목소리로 ‘돌덩이’와 ‘봄날’이 울려 퍼졌다. 마지막 노래 '화인'과 함께 “반드시 진상 규명” “끝까지 책임자 처벌” 등이 적힌 작은 현수막이 단원들 손에 손에 펼쳐졌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약속 시민대회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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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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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도종환 시인은 시 화인에서 4월을 이렇게 말한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도 지난 날의 바다가 아니란다. 2014416일 그날 때문이다. 그게 어디 시인 한 사람만의 고백일까. 11년 전 4월 그날 이후 삶이 바뀌었노라, 고백하는 한 사람을 소개한다. 4.16 합창단원이자 활동가 파주 시민 김서원(도로시) 님과의 일문일답이다.
     
     
    사진출처: 416합창단
     
     
    자기소개와 근황 인사 부탁한다
    파주에 있는 여성 위기 청소년 쉼터에서 밥하는 일을 한다. 24시간 생활시설인데 활동가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도록 맛있는 밥을 해 주는 게 내 일이다. 청소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게 내 즐거움이다. 예산에 맞게 좋은 재료 공급 시스템을 만들었다. 매주 월요일 퇴근 후 안산으로 4.16 합창단 연습하러 가고, 다양한 공연 활동도 한다.
     
    윤석열 파면 결정 나오는 순간 제일 먼저 4.16가족들이 떠올랐다. 4.16 합창단에서 노래한 건 3년이지만 세월호 가족들 곁에 있는 건 11년째다. 세월호 참사로 나는 정치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다. 정치에 무관심한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투표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유언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다.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자기 인생을 나누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내 삶도 그렇다. 그날이 나를 깨웠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다른 삶을 살게 해줬다. 남태령에 트랙터 몰고 온 농민들 얘기 중에 그곳에 세월호 아이들이 와 있는 거란 말이 있었다. 맞다. 나도 합창단에서 노래할 때 항상 아이들이 함께 있음을 느낀다.
     
     
    20140416 참사 당일의 기억은?
    애들 키우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아파트 평수랑 좋은 대학 보낼 생각하고 살았다. ‘애들은 왜 나를 따라주지 않나, 남편은 왜 이렇게 무식할까, 나는 왜 이렇게 고생할까라며 늘 화가 차 있었다. 노는 날도 놀 줄 모르고 신나는 생각은 죽어도 못 하는 일 중독자였다. 그런데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갑자기 내 삶이 다 부질없어 보였다.
     
    당일 제일 먼저 찾은 게 우리 애들이었다. 애들이 어디 있지? 아들하고 연락이 돼서, 배고프지, 라며 짜장면을 사줬다. 짜장면을 먹이는데 더 할 말이 없었다. 우리 애들은 교복 입고 이러고 다니는데 그 애들은 못 돌아왔잖아. 더 얘기할 수가 없고 마음이 안 잡혔다.
     
     
    생일 가족 포스터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4.16 활동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있었나?
    갈피를 못 잡다가 지역에서 진실 규명을 위해 서명받는 사람들이 있길래 참여하고 그 곁에 있게 됐다. 2015년 들어서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을 한다는 말이 들렸다. ‘, 그럼 내가 음식을 할 수 있겠다싶어 김경환 목사님과 네댓이 안산으로 갔다.
     
    가 보니 안산의 치유 공간 이웃이었다. 우리는 각각 작은 개다리소반에 밥상을 받았다. 정말 정성스럽게 차려진, 울컥 뜨거운 눈물이 나는 밥상이었다. 가족들에게 차려지는 밥상이라는 생각에 나는 계속 울면서 밥을 먹었다. 이영하 선생님이 그러더라. “이곳은 야전병원이라고. 투쟁하고 다치고 지치면 잠깐 쉬어 가는 곳이라고. 그게 4.16 활동과의 연결이었다.
     
    봉사자 엄마들이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창비, 2015)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길래 함께 했다. 혼자서는 엄두를 못 내던 책을 같이 낭독하며 실컷 울었다. 점차 노란 리본을 만든다든가 동네에서 세월호 특별법 서명대에도 섰다.
     
     
    치유공간 이웃(이웃): 20149~20212월까지 안산에 있었던 치유 공간. 정신과 의사 정혜신·심리기획자 이명수 부부가 제안하고 시민단체 활동가 이영하 전 대표(50)가 실무를 맡았다. 수많은 활동가와 봉사자들이 4.16 가족들이 안심하고 울고, 편하게 밥 먹고 쉴 수 있게 함께 했다.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밥은 먹었어요?(이영하, 걷는사람, 2022)와 영화 <생일>(2019, 이종언 감독)에 이웃 이야기가 더 있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과 밥 이야기
    첫 생일 상차림을 위해 연 계좌에 80만 원이 모였다. 양을 대중 못해 장 보고 나니 딱 만원 남더라. 이 정도로 돈이 든다면 내 카드 긁을 각오까지 했다. 그렇게 준비된 영만이 생일 모임에 단원고 아이들과 사람들이 엄청 왔다. 50인분이란 음식이 100명 먹고도 남아, 화수분이라며 싸 주었다.
     
    다음 모임은 다음팀이 단톡방을 열어 준비했다. 별이 된 아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좋아하는 메뉴로 준비했다. 나는 그런 팀을 조직하고 식재료를 연결하고 음식도 만들었다. 수많은 봉사자들이 함께하는 이웃밴드에 모여들었다. 저명한 여성들인 십자매회를 비롯해 신부님, 선교사님 그리고 시민들의 후원과 봉사로, 매달 40만 원 정도로 생일 모임을 할 수 있었다.
     
    2015년 겨울에는 가족들을 위해 김장을 했다. 고양파주 생협과 유기농 식당 네트워크에서 재료를 댔다. 괴산 농부님들이 연결됐다. 몇백 포기 배추가 트럭으로 오고, 성당에서 기도하던 할머니들이 나와서 배추를 절이고 소금, 고춧가루, 깨 등을 아낌없이 가져오고, 뒷정리를 도왔다. 가족들께 보내고 쌍용차나 투쟁하는 분들에게도 보내고, 이웃에서 먹을 수 있었다.
     
     
    단원고 2학년 6반 고() 이영만(1998.2.19.~2014.4,16.) 은 형제 중 막내로 약하게 태어났지만 건강하게 자라 축구를 좋아하고 5km 마라톤에서 상을 받았다. ‘미소천사로 밝고 순한 성격에 엄마와 학교와 친구들을 좋아하고 공부도 잘해 우주공학자를 꿈꾸었다. 2023이영만 연극상이 제정됐다.
     
     
    4.16 활동 이전에도 음식하기 좋아했나?
    나는 41남 중 막내딸인데, 아버지가 내 밑에 남동생이 난 후로 서원이가 제일 예쁘다라는 얘기를 자주 하셔서 그렇게 알고 컸다. 어깨동무 잡지에서 나는 요리 칼럼을 제일 먼저 읽는 아이였다. 신문도 잡지도 요리 쪽을 1번으로 봤다. 중학교 때 레시피를 보고 낯선 피자를 직접 만들어 봤다. 할라피뇨, 피망 등 없는 건 집에 있는 재료로 대체했다.
     
    엄마가 정육점에서 살이 치렁치렁하게 큰 돼지고기 덩이를 사 온 적이 있는데 내가 신문에 나온 레시피를 보고 돈까스를 만들었다. 소금 후추만 쓰란 법 있냐, 간마늘로도 재고, 양파로, 우리 아버지 좋아하시는 청양고추 양념으로도 재어 튀겼다. 온 식구가 얼마나 맛있게 먹겠어. 입 짧은 남동생과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니, 우리 엄마는 늘 내게 고마워했다.
     
    언니들은 나를 요리 천재라고 불렀다. 장사하고 늦게 돌아오는 엄마에게 내가 만든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 드리면 서원이 때문에 내가 한숨 돌린다라며 좋아하셨다. 엄마가 아침에 도시락을 10개 싸던 시절, 내가 만든 반찬 덕에 엄마 수고가 줄어드는 게 좋았다.
     
     
    참사 이후의 달라진 삶 이야기
    돈도 안 벌고 안산과 파주를 오가며 생일상 차리는 일을 한 2년 했다. 아이디어로 생각하던 음식을 다 만들어 봤다. 그러나 절대 나 혼자 한 게 아니란 걸 말하고 싶다. 연대의 힘을 배웠다. 같이 메뉴 짜며 마음을 나눈 유가족들과 십시일반 힘 보태 함께 한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런 중에 나는 이혼했다. 2015년 봄, 불교팀 주방에서는 고기 요리를 할 수 없어서 우리 집으로 장을 봐서 모였다. 남편이 폭발해 소리쳤다. “세월호 참사 안 났으면 어찌 살았겠냐, 죽은 아이들 생일상 차리느라 가족들 밥은 안 차려주냐?” 그는 상을 뒤엎고, 빌려온 큰 팬을 내 쪽으로 던졌다. 남편이 일베처럼 보였다. 그날 나는 온 가족을 모아 놓고 이혼을 선언했다.
     
    살아온 날들을 부정해야 했고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던 때였다. 내 마음은 그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혼이 정리되는 몇 달간 남편이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 내 몸이 아프고 소화가 안 됐다. 딸이 나서서 이혼 서류를 갖다 줄 정도였다. 그는 안 하겠다고 버텼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18년의 결혼 생활, 연애까지 25년의 관계가 그해 말 허무하게 끝났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이혼 후에도 계속 활동가로
    내가 저질렀으니 더 절실하게 활동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시국에 민중총궐기 촛불집회가 매주 있었다. 생일 모임 후에 벙커 원 교회 친구들과 토요일에 청계천으로 갔다. 매주 집회 광장에서 뭘 해볼까 궁리하다 주먹밥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잘 안 팔리더라. 그래서 그냥 나눠줬더니 사람들이 돈을 던지고 가더라. 그 후 뭐든 나눔으로 했다.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 청와대 앞 법외 노조, 비정규직 집회, 블랙리스트 예술인들. 노숙 농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토요일 새벽에 밥을 해서 싸우는 분들에게 가서 나누었다.
     
    가진 것 까먹으며 살았다. 고기 안 사 먹고 애들 학원 안 보내고 보험 깨고 적금 해지하고 연금 없어지고 전세가 월세로 줄었다. 불만 많던 아들이 생일 모임에 참여해 보고 반항을 끝내더라. 세월호 당시 중2였던 딸도 생일 모임에 다녀간 후 엄마를 이해하더라.
     
    박근혜 탄핵 후 지역에서 소수당 진보당에 입당했다. 4.16 활동할 때 제일 묵묵히 함께한 그분들과 파주에서 4.16과 함께 노래하는 일을 시작했다. 음식 만들던 사람들과 함께 공모사업으로 파주 4.16 합창단을 3년 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안산 4.16 합창단까지 하게 됐다. 4년 정도 한 동네 부엌 천천히에서 청소년 시설로 올해 직장을 옮겼다.
     
     
    그동안 소진되는 느낌은 없었나?
    성과 위주의 인간이었는데 왜 없겠나. 파주 시민 합창단 3년 차 공연을 지역에 있는 5개 팀 연합으로 잘 올린 후였다. 장애인 가족팀이 40여 명이 참여해서 한 100명이 했다. 행복하게 끝나고 손뼉 치고 각계 인사들이 인사하고 있는데, 김서원 때문에 불편한 일이 많다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이 올라왔다. 한 번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내 욕심대로 활동한 적 없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맡은 일을 많이 정리하고 직장 일과 4.16 합창단만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삐끗대는 몸도 돌보며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4.16 참사 11주기를 맞는 소회는?
    11년간 할 만큼 활동하고 나니 속에 화가 많이 풀리고 너그러워졌다. 대규모 음식을 몇 년 하다 보니 나는 음식 전문가가 돼 있었다. 이제 나는 몸도 마음도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성과 위주의 인간이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다. 밥하는 일과 파주랑 안산 4.16 합창단 활동이 날로 재미있다.
     
    그런 중에 작년에 엑스 남편하고 재결합하고 혼인신고도 했다. “당신은 활동 자유롭게 하고 내가 이제 당신한테 은혜 갚게 해 줘라는 그의 말에 내 마음이 열린 거다. 밥이나 사나 했더니 그는 점점 밥을 해 주고 싶다더라. 그는 원하던 삶을 되찾은 셈이다. 가족밖에 모르는 성실한 남자였으니까. 바꿔 말하면 나에게도 완벽주의를 요구하고 자식과 남편만 바라보길 원했더랬다. 그 집착과 강요와 구속이 내겐 화로 쌓였던 거다.
     
    4.16 참사와 함께 깨졌던 관계가 4.16 활동 덕분에 다시 이어진 거다. 남편은 노년에 내 수발을 잘 들려고 자기 몸 관리 열심히 했다는 사람이다. 우리 관계도 이전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나이 든 연인이 되었다. 내가 4.16 합창단 공연하고 늦게 오는 날 그는 세탁기 돌리고, 냉장고 채우고, 맥주 두 캔 먹을 안주 준비해 놓고, 나 데리러 나온다. 돌아보면 이혼은 신의 한 수였다. 아니면 우리가 서로의 가치를 몰랐을 거다.
     
     
     
    사진출처: 인터뷰이(김서원)
     
     
    이후의 계획이나 꿈은?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이젠 장사하는 곳에서 밥을 상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소질이 없다. 내 엄마, 아버지에게 밥해줬던 재미, 우리 엄마가 늦게 들어왔을 때 내가 밥 퍼서 김치하고 줘도 세상에, 서원이 덕분에 엄마가 이렇게 밥을 맛있게 먹는구나.”라며 내 자존감을 키워준 밥이다. 밥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해 주는 일이 나는 즐겁다. 매일 출근할 때 일하러 가는 마음보다는 아이들을 키우러 가는 마음이다. 먹이고, 입히고, 안전하게 재우고, 내 밥을 먹고 애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4.16 가족 곁에서 4.16 합창단을 오래 하는 게 꿈이다.
     
     

     
     
     
    이제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꿀벌

    조회수 913

    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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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Z세대. 각종 이슈의 중심에 서 있어 다양한 수식어가 붙은 세대다 보니 때론 청년들조차도 젊은이에 대하여 다소 모르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따라서 스스로에 대하여 알아가는 시간, 특히 우리를 위한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는 청플이라는 청년 활동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청년들의 목소리를 퍼뜨리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웃 청춘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청플 2차 회의를 다녀왔습니다!
     
    참고) 청플 2기 발대식/1차 회의 by 에디터 다름
     
     
    왼 : 청플2기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는 회의모습, 오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정선미 운영총괄실장님의 인사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이번 회의는 14명의 위원이 참여하였는데요. 두 번째 모임인 만큼 본격적으로 청플 활동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한 자리를 가졌습니다. 또한 최대한 많은 위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형태로 진행하였습니다. 안건으로는 총 4가지의 내용이 올라왔는데요. 1. 위원별 현황 공유 2. 청년 활동가 간담회 논의 3. 12일 네트워크 캠프 논의 4. 차기 회의 및 정례회의 일정 조율
     
    주요 안건만 추려 요약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위원별 현황
    청플2기 정구현 위원의 발언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 지역·주제별 정보 및 현안 공유  
    각 위원의 활동 지역·주제별로 정보와 주요 현안들을 공유하였는데요. 정구현 위원은 의정부의 임금 체불 현황과 미흡한 기관의 대처에 대한 아쉬움을 설명하였습니다.  김정현 위원장은 현금 사용 선택권과 과도한 디지털 전환 행정에 대한 문제점, 통과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해 영장 없는 구금이 가능한 외국인 보호소 운영에 대한 의제를 공유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파주 용주골 성 노동자 강제 철거와 성 노동자의 인권에 관하여 발언하였습니다.
     
    ► 위원별 네트워크 공유
    위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소개하고 싶은 자료를 공유하였습니다. 이종경 위원은 이천청년정책발전소와 지역 청년들의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노력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김정현 위원장은 경기도미래세대재단의 '2025 경기 청년 연구 랩업' 사업과 경기도와 이클레이의 '세계 지방정부 기후총회' 사례를 언급하며 지역사회와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김보라 위원은 센터의 '공익해봄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공익활동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시도에 참여를 독려하였습니다.
     
     
    2. 청년 활동가 간담회
    청플2기 김정현 위원장 발언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청플 위원별 네트워크를 심층 분석하기 위한 목적의 간담회 방식에 대해 토의하였는데요. 이와 관련해 여러 위원이 의견을 냈습니다. 예로 최승환 위원은 공익 활동의 실태에 대해 기존 활동가들과 얘기하고 기업과의 협업 방식 등 새로운 활동 방식을 탐구해 보는 시간을 제안하였습니다. 서한솔 위원은 다양한 영역(홈리스트라우마기후 등)의 활동가를 만나고 동부/서부권의 참여도 장려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최재엽 위원은 공익 활동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작가/교수진과 소통하고 난 후 네트워크 캠프를 통해 더욱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고 제안하였습니다.
     
    토론 끝에 최종적으로 간담회는 523일 진행하며 위원별 3분 자기소개와 여러 청플을 위한 제안을 다루고 모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3. 12일 네트워크 캠프
     
    12일 네트워크 캠프는 의견을 더 추려 529일 정례회의 때 더 많은 논의를 이어가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4. 담당자 인터뷰
     
    청플을 담당하는 정책협력팀 강민진 대리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요. 2년차 청플 담당자로서 사업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았습니다.
     
    Q. 2차 회의를 마치고 느낀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은 무엇일까요?
    2차 회의는 첫 공식 과정인 1차 간담회를 구상하는 자리였기에 위원들의 고민과 아이디어가 살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좋았던 점은 위원들 사이의 함께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주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의미 있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논의 시간이 길어져 향후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의사결정 구조도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Q. 청플 2기 과정에서 제일 신경 쓴 점과 바라는 성과는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공익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서로 그물처럼 엮이고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단기 성과보다는 서로 지지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관계 형성과 지속성을 중요시하였습니다. 바라는 성과는 위원들이 서로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공익 활동의 의미를 재발견하거나 확장해 나가는 경험을 얻는 것입니다.
     
    Q. 올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청년층의 관심을 이끄는 데 주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기 위해서 청플 과정 중 비활동인 청년을 모집하기 위한 현장 활동도 계획돼 있을까요?
    청년 공익해봄은 일반 청년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익 활동을 처음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입문형 사업입니다. ‘청플은 다음 단계에서 공익을 업으로 삼고 있는 실제 청년 활동가들의 연결과 공동 의제 발굴에 중점을 둔 구조입니다.
    공익활동 페스타는 일반 시민이 공익 활동을 생활 속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구성된 시민 참여형 확산 프로그램입니다. 이러한 단계적 흐름과 함께 청플 내부 논의를 통해 공동 의제를 기반으로 현장 활동을 구상할 예정입니다.
     
    Q. 청년과 공익은 서로 어떤 의미일까요? 둘을 연결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 중 기억에 남는 것과 느낀 보람 및 아쉬움도 말씀해 주세요.
    청년은 변화의 주체이고 공익은 그 변화가 향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단어는 서로에게 동력이자 명분이 되는 관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청년과 현장, 센터가 삼각형 구조로 협력할 수 있도록 중간 다리 역할을 많이 해 온 것 같습니다. 보람은 청년들이 자신도 몰랐던 공익 활동의 언어를 발견할 때였고 아쉬움은 이 활동들이 일회성이 되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구조화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Q. 청년의 공익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지역사회의 인식과 지원에 있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필요한 건 청년을 도움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공익의 주체로 인식하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가 청년의 공익 활동을 단지 행사성 소모가 아닌 지역 문제 해결의 하나로 바라보고 신뢰를 보내는 인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또한 센터에서도 대관사업, 에디터 사업 등 다양한 기반 형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청플 2기에서 나온 의제를 정책화하기 위한 노력이 계획돼 있을까요?
    아직은 위원들이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협의하여 무엇이든 만들어 갈 수 있는 열린 구조입니다. 향후 의제와 프로젝트가 만들어진다면 정책화나 제도 연계도 자연스럽게 검토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5. 위원장 인터뷰
     
    다음은 김정현 위원장 인터뷰인데요. 주로 도시권과 노동권 증진을 위한 활동에 힘써왔습니다. 현재 성남시 청년정책협의체 소통분과 부분 과장과 경기도 청년참여기구 주거분과(3), 참여 권리분과(4) 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두 번째 회의를 마치고 나서 느낀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이 있을까요?
    위원들의 생각이 다양하고 여러 가지 합의점을 만들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만 여러 좋은 생각을 전부 다 추진할 수 없는 게 아쉬웠습니다. 이를 최대한 실행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Q. 계획된 청플 과정에서 제일 기대되는 점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활동가의 생애와 목표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게 제일 기대됩니다. 이를 통해 지역 활동가의 역량을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공익성이 확대되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의 청플 과정에서 신설됐으면 하는 내용이 있을까요?
    기존 시민 단체에 없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국내·외의 사안과 시대 흐름을 꾸준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점을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익히면 장기적인 활동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Q. 위원장의 행보를 보니 노동권과 도시권을 위해 주로 노력해 왔는데요. 향후 구체적으로 어떠한 공익 활동을 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청플과 어떻게 협력할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사회 의제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특히 노동권 및 도시권 활동과 연계해서 사회 공공성 및 민주적 통제를 확장하고, 다양성을 보장하는 활동을 지속할 계획입니다. 거주민, 노동자, 장애인 등 다양한 주민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진정으로 도래하는 데 함께할 생각입니다. 청년층이기에 청년 대중 및 활동가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청플이 원하는 방향이 공익성에 부합할 수 있게 지원할 생각입니다.
     
    Q. 현실적으로 청년의 입지나 청년을 위한 공론장이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이와 관련해서 센터와 지역사회, 넓게는 정부에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을까요?
    절대적인 공론장도 부족하긴 하지만, 있다 하더라도 단기성 활동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지역 현황에 대한 목소리가 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도록 노력하고 센터는 그들의 대리자로서 적극적으로 행정에 알리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중앙정부도 이러한 권력을 나누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나눠주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Q. 현재 혹은 예비 공익 활동가 청년들에게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알린다면 어떠한 내용을 얘기하고 싶은가요? 또한 같은 청년 활동가로서 격려의 한 마디 부탁합니다.
    센터는 든든한 뒷배이기에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곳입니다. 혼자 고민하면 좋은 타개책을 마련하기 힘들기에 함께 논의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지역의 청년 활동가께서 힘들게 마음고생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센터에 손을 내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Q. 청년 활동가로서 기쁨과 슬픔이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나 청플 과정에서 도움받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쁨은 무언가 의미 있는 사회 변화를 끌어낸다는 점이 항상 뿌듯하고 삶의 만족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편입니다. 반면 아무래도 기존의 관성을 벗어나다 보니 저의 주장이 기본적으로 맞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되거나 지나친 것으로 규정되는 순간에는 슬플 때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익 활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센터와 청플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심적이나 활동 방향에 있어 도움이 많이 됩니다.
     
     
    6. 부위원장 인터뷰
     
    다음은 조한나 부위원장 인터뷰입니다. 평소 지역 발전과 청년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요. 현재 청년망고 협동조합 이사와 주식회사 무어든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두 번째 회의를 마치고 나서 느낀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이 있을까요?
    위원분들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고 다양한 의견이 오간 점은 정말 좋았습니다. 다만 회의에 참석한 인원이 많다 보니 회의 시간이 다소 짧게 느껴져 아쉬웠습니다.
     
    Q. 계획된 청플 과정에서 제일 기대되는 점은 무엇일까요?
    각자의 위치에서 공익 활동 중인 위원들과의 네트워킹이 가장 기대됩니다. 서로의 고민과 경험을 나누며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청플 과정에서 신설됐으면 하는 내용이 있을까요?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해 동안 간담회와 12일 캠프 같은 활동들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부위원장의 행보를 보니 북부 지역 발전과 청년, 나아가 디자인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요. 향후 구체적으로 어떠한 공익 활동을 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청플과 어떻게 협력할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청년들의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문화 활동이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청플을 통해 지역에서 함께 활동할 20대 청년 활동가들을 만나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현실적으로 청년의 입지나 청년을 위한 공론장이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센터와 지역사회, 넓게는 정부에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청년이 지역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단순한 행사 참여를 넘어 청년의 정책 제안이 실제로 반영되는 구조가 있었으면 합니다. 지역사회는 청년을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보지 않고 함께하는 주체로 인정해 주길 바랍니다.
     
    Q. 현재 혹은 예비 공익 활동가 청년들에게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알린다면 어떠한 내용을 얘기하고 싶은가요? 또한 같은 청년 활동가로서 격려의 한 마디 부탁합니다.
    공익 활동을 고민하는 청년이라면 꼭 한 번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찾아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센터에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함께하고 있어서 막막한 시작에 함께해 주거나 지속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제공해 줄 거예요.
    혼자 버티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지만 사실 우리는 함께할 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든 청년 활동가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Q. 청년 활동가로서 기쁨과 슬픔이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나 청플 과정에서 도움받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청년 활동가로서 가장 큰 기쁨은 내가 하는 작은 활동으로 변화가 조금씩 보일 때입니다. 반면 그 과정에서 스스로 미래가 불확실하게 느껴질 때는 막막하기도 해서 슬퍼요. 그럴 때 센터나 청플 같은 존재는 정말 소중합니다. “나만 이렇게 고민하는 게 아니구나.” “함께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큰 위로가 됩니다.
     
     
    강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정호승 시인의 시처럼, 청플이 만들어 낸 청년들의 목소리는 여러 갈래의 조그만 물이 되어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바다로 밀려들어 갈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물은 흐르고 있으니 언젠가 닿을 테니까요. 앞으로의 청플이 만들어 갈 꿈들이 힘차게 굽이쳐 부조리한 세상을 깎는 침식 작용을 하길 바라며 웹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장스케치] 나는 청년 2기, MZ의 본때를 보여준다!
    초스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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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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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느림보 사회적협동조합은 발달 장애인의 특성을 인정하고 지원하며, 장애를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로 바라본다. 장애 당사자와 가족, 지역 공동체가 함께하는 이 협동조합은 발달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꿈꾸는 느림보는 단원 FM을 찾아왔다. 단원 FM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다. 라디오 부스에서 함께한 이 작은 경험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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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리다는 것은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천천히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꿈꾸는 느림보다. 나는 이들과 함께한 첫 라디오 수업을 잊을 수 없다. 발달 장애인과 만난 경험이 없던 나에게 이 도전은 흥미롭고도 긴장되는 일이었다.
     
    발달 장애인이란? 
    발달 장애인은 지적 장애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을 포함하며, 학습과 의사소통, 사회적 상호작용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학습 방식과 속도의 차이일 뿐, 그들만의 개성과 감정을 가진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장애인을 특별한 존재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동료이며, 함께 어울리며 지낼 때 비로소 사회는 더 따뜻해질 수 있다.
     
     
    출처: 에디터 윤작가
     
     
    라디오 부스를 가득 채운 에너지
     
    수업이 시작되자, 8명의 아이들과 5명의 활동보조 선생님들이 라디오 부스로 몰려들었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부스에 들어오자 나는 순간 당황했다. 활동보조 선생님들까지 따라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만큼 내가 발달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마이크 앞에 앉아 헤드폰을 끼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어떤 친구는 박수를 치고, 어떤 친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색함도 잠시, 나는 그들과 같이 춤을 추며 말했다.
     
    "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죠?”
    "네에에!”
    아이들의 반응은 조금은 느리지만 즉각적이고 뜨거웠다. 활동보조 선생님들이 다급히 진정시키려 했지만, 나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오늘의 주인공이잖아요!"
     
     
    출처: 에디터 윤작가
     
     
    나도 DJ.
     
    나는 아이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해 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아주 천천히 유튜브에서 직접 음악을 찾았고, 한 명씩 마이크 앞에서 곡을 소개했다.
    "이 노래는요, 기분이 안 좋을 때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엄마랑 차 타고 갈 때 자주 들었어요!"
    "저는 전국노래자랑이 제일 좋아요!"
    그들의 말이 끝날 때마다 나는 흥을 돋우며 추임새를 넣었다.
    ", 대단한데!"
    "목소리가 정말 멋있어!"
    "너무 잘했어!"
     
    그 작은 칭찬 한마디에도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주먹 인사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콘솔의 볼륨 버튼을 직접 올려보는 작은 경험조차 그들에게는 큰 설렘이었다.
     
    장애인 감수성이란?
    장애인 감수성이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나는 이론적으로 장애인 감수성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그저 자연스럽게 이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아이들은 단순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주체였다.
     
     
    출처: 에디터 윤작가
     
     
    우리가 만든 특별한 순간
     
    1시간의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아쉬운 얼굴로 외투를 챙겼다. 하지만 흥이 식지 않은 몇몇 아이들은 문 앞에서 머뭇거리며 말했다.
    "윤작가님! 다음 주에도 와요?"
    "그럼! 우리 다음 주에도 신나게 놀아야지!"
    활동보조 선생님들과 함께 발걸음을 맞추며 떠나던 아이들은 문 앞에서 다시 돌아서서 손을 흔들며 외쳤다.
    "윤작가님, 다음 주에 또 만나요!"
    그들의 목소리가 부스에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업이 끝난 후, 활동 보조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오늘 정말 수고하셨어요. 보통 마지막 수업이 되면 아이들이 지쳐서 텐션이 떨어지는데, 오늘은 오히려 에너지가 더 넘쳤어요! 아이들이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곁에서 듣고 있던 단원 FM 본부장도 거들었다.
    "윤작가님이 우리 라디오에서 장애인 감수성이 제일 높은 선생님이세요."
    "어쩐지,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했어요."
    나는 장난스럽게 답했다.
    "제가 감수성 하면 누구에게도 안 져요. 하품만 해도 눈에 눈물이 고이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답니다.”
     
    출처: 에디터 윤작가
     
     
    사실 나는 장애인 감수성이 특별히 높은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가족처럼, 친구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발달 장애인 라디오 수업은 예상보다 훨씬 더 유쾌하게 마무리되었다. 장애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며, 우리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이 곁에 오면 두렵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말이 그들을 불편하게 할지 잘 모른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피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물어보자.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가 함께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지낼 때, 장애인 감수성은 저절로 자라난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살아갈 때,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해질 것이다.
     
     
     

     
     
     
    장애인 감수성이란?
    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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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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