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무대 조명이 켜지면 첫 장면은 공원이다. 아버지를 찾는 아이와 그 아이를 놀래주는 아버지의 장난. 배우의 어린 시절 기억이었다. 아버지와 그네를 탄다. 손을 놓으면 넘어질까 봐 아버지는 아이 허리를 꽉 쥔다. 또 다른 배우의 기억이었다. 우리 배우들은 이 장면에서 손가락 하나하나를 다르게 쓴다. 베트남에서 온 농인 배우는 자기 아버지 손은 이보다 더 컸다고 손짓으로 크기를 보여줬다.
다음 장면은 열일곱 살. 아이는 이제 십대다. 진학 문제로 아버지와 다툰다. 수어의 손이 커지고 손짓이 날카로워진다. 화가 난 손은 원래보다 반경이 넓어진다. 우리는 이 장면을 연습할 때마다 웃었다. 다들 우리 아버지 모습과 같다며 눈물 지웠다.
세 번째 장면, 공항이다. 아버지의 만류를 뒤로하고 사랑을 찾아 출국하는 딸. 손은 이제 등을 돌린 채로 움직인다. 등을 돌리고 수어를 한다는 건 원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농인끼리는 서로의 손을 보지 않으면 대화가 끊긴다. 그런데 이 장면만큼은 일부러 등을 돌렸다. 보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걸, 우리는 그렇게 표현하기로 했다.
마지막 장면. 아버지의 유언이다. 죽으면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고, 딸이 있는 곳 가까이 흘러가고 싶다고, 마지막까지 딸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 이 장면에서 우리는 수어 없이 가슴을 뜯는 장면으로 했다. 수어도 필요 없는, 모두가 겪었던 슬픔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단순한 몸짓을 관객석에서 우는 사람 없이 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인순이의 노래 <아버지>를 이렇게 수어로 옮겼다. 노래 하나를 오 분짜리 무언극으로 만드는데, 우리는 반년을 썼다.

아버지라는 곡이 만들어지기까지
새로운 공연을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배우들에게 물었다. 이번엔 뭘 하고 싶으냐고. 대중없이 서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며칠을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겪은 일들을. 눈물이 먼저 나오고 말이 뒤따라오는 이야기들이었다. 차별받은 이야기, 무시당한 이야기,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억울했던 이야기. 다 다른 사연인데 끝은 같은 곳으로 갔다. 가족이었다. 그리움이었다. 이야기를 아무리 늘어놓아도 결국 마지막 문장은 두고 온 부모 이야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를 만들었다.
농인 배우들의 사정을 들어보니 결이 비슷했다. 학령기가 되면 농학교에 갔다. 농학교는 전국 단위로 몇 곳뿐이라 대부분 기숙사 생활이었다. 여덟 살짜리가 집을 떠나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방학에만 집에 왔다. 부모는 언제나 그리운 존재였다. 매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방학에만 만나는 사람. 이주민 배우들이 국경 너머 부모를 그리워했다면, 농인 배우들은 기숙사 담장 너머 부모를 그리워했다. 거리는 달랐지만 그리움의 모양은 똑같았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가 만들려던 건 이주민의 노래도, 농인의 노래도 아니었다. 두고 온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의 노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누구 한 사람의 사연이 아니라, 무대에 선 모두의 사연이 됐다.

지구인 수어 공연단, 우리 소개를 이렇게 쓴다.
농아인, 이주민, 선주민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연대를 실천하고, 수어 예술을 통해 장애 감수성 및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실천합니다.
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문화 차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단원들은 주로 수어로 소통한다. 청인이 음성언어를 쓰면 농인 배우가 눈을 흘기며 수어로 하라고 한다. 급해서 그랬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한 번 더 그러면 탈퇴하겠다는 엄포가 돌아온다. 나는 처음엔 이걸 농인에 대한 무례라고 여겼다. 나중에야 알았다. 이건 자기 언어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었으며, 단원으로서 서로 공감대를 갖고자 하는 연대의 손짓이었다.
다툼이 나면 농인 배우들은 눈을 피하지 않는다. 눈을 피하면 손이 안 보이니까. 그것도 모르고 나는 다투는 둘을 떼어놓으려 했다. 떼어놓을수록 싸움은 커졌다. 말리다 보면 수어가 서툰 단원의 통역까지 내 몫이었다. 내가 싸움을 말리는 건지 싸움 안에 있는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수어는 아무리 다툼이 있어도 시선만큼은 피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줄을 삐뚤게 서는 농인 배우에게 싫은 소리를 한 적도 있다. 참다못한 그 배우가 나를 자기 자리에 세우고, 음악 없이 공연을 시작했다. 중간쯤 가자, 나는 흐름을 완전히 놓쳤다. 음악을 듣고 수어를 맞추던 나는, 음악이 없으니 언제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제야 알았다. 줄이 삐뚤었던 게 아니라, 앞사람의 수어만이 그에게는 유일한 박자였다는 것을. 나는 그날 바로 사과했다. 그의 자리를 뒤로 옮겼다. 지금은 줄이 삐뚤어도 아무 말 안 한다.
다툼을 말리다 나도 모르게 농인 배우의 손을 잡은 적도 있다. 수어 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는 건, 말하는 사람의 입을 손으로 막는 것과 같다는 걸. 무심코 한 행동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단체에서 매번 새로 배운다.
40년 넘게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 무대에 서는 일이다. 쉬울 리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게 맞춰간다. 눈을 피하지 않는 법을, 손을 함부로 잡지 않는 법을, 줄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법을. 문화가 다르다는 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배울 게 남았다는 뜻이라고, 나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공연 커튼콜
공연이 끝나면 커튼콜 전에 배우 소개 시간을 갖는다. 베트남 농인 배우가 오늘따라 하기 싫다고 했다. 한국 수어가 아직 서툴다는 이유였다. 다른 단원 하나가 그럼 그냥 단체 인사로 마무리하자고 했다. 다들 그러자는 분위기였다.
내가 나섰다. 우리는 잘하는 수어를 보여 주려고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고 했다. 자존감을 갖고,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서툴러도 괜찮다고, 서툰 것도 우리 모습이라고.
그때 베트남 농인 배우가 말했다. 그러면 나는 베트남 수어로 인사하겠다고. 그 순간이었다. 내가 이 단체를 만들면서 꿈꾸던 모습이 정확히 그 장면이었다. 한국 수어가 서툴러서 숨는 게 아니라, 자기 언어로 당당히 서는 것. 지구인 수어 공연단이라는 이름값을 그 배우 혼자 그 몇 초 안에 다 해냈다. 나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건 완벽한 무대가 아니다. 자기 언어로, 자기 방식으로 당당히 서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다.

공연 후 단톡방에서
공연이 끝난 밤, 단톡방이 시끄러웠다. 농인 배우 박수진이 먼저 글을 올렸다.
하나의 무대, 하나의 마음 ✨
서로 다른 빛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별이 되고,
서로 다른 손짓이 모여
하나의 감동이 됩니다.
무대 위에서는 모두가 주인공,
열정은 노래가 되고
우정은 춤이 되어
세상에 희망을 전합니다.
지구인공연단
"함께라서 더 빛나고,
꿈꾸기에 더욱 아름답다."
오늘도 여러분의 무대가 세상을 환하게 비춥니다.
이어서 이주민 배우 전연의 글이 올라왔다.
우리의 공연을 본 누군가는 처음으로 수어를 만나고, 농아인의 문화를 이해하며,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작은 관심은 이해가 되고, 이해는 소통이 되며, 소통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듭니다.
무대 위에 함께 선 농아인과 청인, 한국인과 외국인의 모습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공연을 보여 주기 위해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무대에 섭니다.
~우리가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입니다.
단톡방에 내가 적었다. "작가보다 잘 쓰네."
전연이 답했다. AI 도움을 좀 받았다고. 다들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으면서 생각했다. 문장의 마지막 손질을 사람이 했든 기계가 했든, 그 밤,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박수 소리로 손을 흔들던 건 분명 관객들이었다. 감동은 대필 되지 않는다. 그건 몸으로만 쓸 수 있는 문장이니까.
우리는 계속 갈 것이다. 줄은 여전히 삐뚤어질 것이고, 손은 또 누군가를 오해하며 잡힐 것이다.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던 어느 아버지의 유언이, 국경을 넘어온 딸들의 손끝에서 매번 다시 태어난다. 그 손짓 하나를 완성하는 데 9년이 걸렸고, 앞으로도 계속 걸릴 것이다. 무대가 끝나면 조명이 꺼진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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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도입 — 기부와 거래 사이, 제3의 길
기부와 소비, 둘 중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누군가에게 돈을 보내지만 그 대가로 무언가를 받는다. 마음은 기부자의 것이지만, 손에 쥐는 것은 소비자의 것과 닮았다. 이 어중간한 자리에 보상형 크라우드펀딩이 있다.
한국의 공익 모금 생태계를 둘러보면 익숙한 두 갈래 길이 보인다. 하나는 카카오같이가치나 네이버 해피빈처럼 순수하게 기부금을 모으는 길이다. 후원자는 돈을 보내고, 그 대가로 받는 것은 영수증과 마음의 평안뿐이다. 다른 하나는 텀블벅이다. 이곳에서는 후원이 곧 거래처럼 보인다. 돈을 보내면 에코백이 오고, 책이 오고, 한정판 굿즈가 온다.
그런데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겉보기에 가장 상업적으로 보이는 텀블벅이, 때로는 가장 순수한 기부 플랫폼보다 더 강력하게 공익 프로젝트를 키워내곤 한다.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디자인 프로젝트가 전국적 화제를 모으고, 부상 소방관을 돕기 위해 만든 가방이 입소문을 타고, 작은 사회적기업이 텀블벅 펀딩 하나로 브랜드의 첫발을 뗀다. 보상이라는 거래의 외피를 두른 플랫폼이 어떻게 공익의 동력이 되는지, 그 구조를 들여다본다.
2. 텀블벅이라는 플랫폼 — 창작의 놀이터에서 시작된 길

텀블벅은 2011년, 국내에 마땅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가 없다는 이유로 직접 만들어진 플랫폼이다. 출발은 예술과 문화였다. 영화, 음악, 출판, 디자인, 게임처럼 창작자가 무언가를 만들고 싶지만 자금이 없을 때, 그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미리 돈을 보내고 완성된 결과물을 받는 구조였다.
텀블벅의 성장 곡선은 가파르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누적 후원금 100억 원을 돌파했고, 2015년 8월부터 1년 사이에만 50억 원이 더 쌓이며 빠르게 가속이 붙었다. 이후 성장세는 더 거세졌다. 2023년 9월 기준으로는 5만여 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펀딩에 성공했고, 누적 후원 금액은 3,000억 원을 넘어섰다.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 업체로는 국내 최초로 누적 후원금 500억 원을 달성한 곳이기도 하다.
이 성장의 비결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의 밀집도다. 텀블벅은 초기부터 외형적인 마케팅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30만에서 40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단단한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성과를 쌓아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 초기 다른 플랫폼들이 마케팅이나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 매달리는 동안, 텀블벅은 결제 시스템의 편의성과 예약 결제 방식의 개발에 주력했다. 오직 보상형 펀딩만으로 이런 성과를 냈다는 점이 특히 주목받는 지점이다.
텀블벅의 수수료 구조도 이 플랫폼의 성격을 보여준다. 창작자는 모금이 확정된 날로부터 7영업일 안에 서비스 수수료 5%와 결제 대행 수수료 3%를 제외한 금액을 정산받는다. 다른 보상형 플랫폼인 와디즈가 7~14% 수준의 수수료를 부과해온 것과 비교하면, 텀블벅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창작자에게 유리한 편이다.
3. 보상형이라는 설계 — 왜 '교환'이 공익을 끌어당기는가

텀블벅의 펀딩 방식이 다른 공익 플랫폼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모금의 목적 그 자체에 있다. 텀블벅 헬프센터는 이 차이를 명확히 규정한다. 텀블벅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 전달할 순수 후원금을 모으는 목적의 프로젝트는 진행할 수 없다. 텀블벅의 미션은 어디까지나 창조적인 시도를 위한 자금을 모으는 것이고, 기부금 모금처럼 성격이 다른 프로젝트는 애초에 플랫폼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제약은 역설적으로 텀블벅 공익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만들어낸다. 텀블벅에서 성공하는 공익 프로젝트는 반드시 '무엇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단순히 어려운 이웃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담은 구체적인 창작물, 즉 티셔츠, 가방, 책, 영상 같은 결과물을 함께 제시해야 펀딩이 가능하다.
이것이 보상형 펀딩의 진짜 힘이다. 후원자는 두 가지 동기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사회적 가치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과,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싶은 마음이다. 다만 이 관찰은 '연구 동향 분석' 논문 자체의 결론이라기보다, 참여 동기를 다룬 개별 실증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경향에 가깝다. 실제로 이선희·이상윤(2023)의 국내 크라우드펀딩 연구 동향 분석은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33개 학술지에 실린 204편의 논문을 종류·성과·해외·분야별·기타의 다섯 갈래로 정리한 문헌 고찰로, 국내 크라우드펀딩 연구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축적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매력적인 리워드는 그 이타적 동기를 행동으로 옮기게 만드는 마지막 한 걸음의 역할을 한다.
이런 구조적 특징 때문에 텀블벅에서는 '공익 목적과 창작이 결합된 프로젝트'라는 독특한 장르가 형성됐다. 위안부 피해자를 후원하기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 '기억+소녀 나비 티셔츠'가 대표적이다. 단순한 모금이 아니라 티셔츠라는 창작물을 매개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금이 모이는 구조였다.
4. 실제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 — 메시지가 상품이 될 때

텀블벅이 직접 개최한 '소셜 임팩트를 위한 텀블벅 크라우드펀딩' 설명회는 이런 공익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2019년 1월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약 60명의 참석자가 모여 공익적 성격의 크라우드펀딩 노하우를 공유받았다.
이 자리에서 소개된 대표적 사례가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다. 평화의 소녀상을 모티프로 한 이 프로젝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슈에 대한 관심을 전국적으로 환기시킨 성공 사례로 꼽혔다. 또 다른 사례는 '러닝타임30'이다. 부상당한 소방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낡은 소방복 원단을 재활용해 가방과 지갑을 만든 이 프로젝트는, 버려질 운명이었던 소방복에 새로운 쓸모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소방관 처우 문제에 대한 공감을 끌어냈다.
비영리 영역에서도 비슷한 구조를 가진 사례가 있다. 사회적기업 마리몬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그림을 활용한 에코백, 뱃지, 휴대전화 액세서리 등을 리워드로 제공하며 펀딩과 사업을 연계해온 모범 사례로 꼽힌다. 더나은미래의 비영리 모금 콘텐츠 기획 시리즈에서도,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리워드를 갖춘 것이 마리몬드 펀딩의 핵심 성공 요인으로 분석됐다. 순수하게 선의만으로 후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리워드를 받을 수 있는지에 따라 참여 여부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텀블벅에서 성공한 공익 프로젝트들이 사회적 메시지와 매력적인 결과물을 동시에 설계했다는 점이다. 메시지만 있고 갖고 싶은 결과물이 없으면 펀딩으로 이어지기 어렵고, 결과물만 매력적이고 메시지가 빈약하면 화제성을 만들기 어렵다. 이 둘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 텀블벅형 공익 펀딩의 핵심 역량이다.
5. 카카오같이가치·해피빈과의 비교 — 구조가 다른 세 갈래 길

한국의 온라인 공익 모금 생태계를 구성하는 세 플랫폼, 텀블벅과 카카오같이가치, 네이버 해피빈을 나란히 놓으면 각자의 설계 철학이 뚜렷이 드러난다.
카카오같이가치는 2007년부터 운영되어온 카카오의 사회공헌 플랫폼이다. 누구나 공익 프로젝트를 위한 모금함을 직접 개설해 모금받을 수 있는 구조이며, 최근에는 일회성 기부를 넘어 매달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매달기부'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같이가치의 독특한 지점은 이용자의 참여 자체가 기부로 이어지는 구조다. 사이버 머니 없이도 댓글, 공감, 공유 같은 참여 행동을 하면 카카오가 대신 건당 100원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후원자가 직접 돈을 내지 않고도 기부에 동참하는 진입장벽 낮은 모델을 운영한다. 모금 수수료는 최종 모금액의 7% 수준이다.
네이버 해피빈은 2005년 국내 최초의 온라인 기부 포털로 시작했다. '콩'이라는 사이버 화폐를 통해 후원자가 직접 기부에 참여하거나, 기업이 콩을 후원해 네티즌들이 대신 기부할 수 있게 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었다. 해피빈 안에는 '공감펀딩'이라는 별도의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도 있는데, 사회문제 해결 활동이나 공익적 창작 활동, 소셜벤처 등 공익적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단체와 개인 모두 펀딩을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일반 모금함 개설은 1년 이상의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증이나 사업자 등록증을 갖춘 단체로 자격이 제한된다.
세 플랫폼의 구조적 차이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자금의 성격이다. 같이가치와 해피빈의 기본 모금함은 순수한 기부금을 모은다. 후원자는 대가 없이 돈을 보낸다. 반면 텀블벅은 구조적으로 '제작비'를 모은다. 후원자가 보내는 돈은 어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자금이고, 그 결과물이 후원자에게 돌아간다.
둘째, 참여자의 자격이다. 해피빈의 일반 모금함은 등록된 비영리단체만 개설할 수 있다는 진입장벽이 있다. 텀블벅은 이런 법인격 제한이 상대적으로 느슨해, 개인 창작자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프로젝트를 직접 시작할 수 있다. 같이가치 역시 누구나 모금함을 개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낮다.
셋째, 참여의 동기 구조다. 같이가치는 참여 행동 자체에 보상을 거는 방식으로 부담 없는 일상적 참여를 유도한다. 해피빈은 신뢰할 수 있는 단체를 통한 전통적 기부 모델에 가깝다. 텀블벅은 결과물에 대한 욕구와 사회적 공감을 동시에 자극하는 구조로, 세 플랫폼 중 가장 적극적인 의사결정과 더 큰 단위의 후원 금액을 끌어내는 경향이 있다.
6. 팬덤과 커뮤니티 — 강력한 연결이 자금이 되는 메커니즘
텀블벅이 공익 프로젝트의 스케일업에 유리한 이유 중 하나는 이 플랫폼이 가진 커뮤니티의 성격이다. 텀블벅은 30만에서 4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외부 마케팅이 아니라 플랫폼 자체에 대한 신뢰와 애착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올라오면 이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반응하고, 그 반응이 다시 입소문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이런 커뮤니티 구조는 공익 프로젝트에 특히 유리하게 작동한다. 일반적인 상업 광고는 낯선 소비자를 설득해야 하지만, 텀블벅의 공익 프로젝트는 이미 사회적 가치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 앞에 놓인다. 창작과 공익이 결합된 메시지는 이 커뮤니티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더해 보상형 펀딩 특유의 구전 효과가 있다. 후원자가 받은 리워드는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그 프로젝트에 동참했다는 증거물이 된다. 마리몬드의 에코백을 든 사람,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의 굿즈를 가진 사람은 일상 속에서 그 메시지를 계속 노출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기부금 영수증은 서랍 속에 남지만, 리워드는 가방에 매달리고 책장에 꽂힌다. 이 가시성의 차이가 공익 메시지의 생애주기를 늘린다.
물론 이런 커뮤니티 기반 모델에는 그늘도 있다. 텀블벅은 2022년 3월 이전까지 결제 실패분에 대한 수수료까지 창작자가 부담해야 하는 불합리한 정책을 운영해 비판을 받은 바 있고, 프로젝트 심사가 상대적으로 느슨해 부실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프로젝트가 섞여 올라온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공익을 표방한 프로젝트라 해도 텀블벅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모든 프로젝트의 진정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후원자와 창작자 모두가 인지해야 할 부분이다.
7. 초기 자금 확보를 넘어 — 스케일업의 다음 단계
보상형 크라우드펀딩이 공익 프로젝트나 소셜벤처에 줄 수 있는 가치는 단순히 초기 자금을 마련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국내 창업 분야 크라우드펀딩 연구는 창업 분야의 펀딩이 문화예술 프로젝트와 달리 일회성 콘텐츠 제작이 아니라 사업의 개시 자체에 필요한 기반 자금을 모은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 번의 후원금 모집으로 상품이나 서비스 생산의 기반을 다지고 나면, 이후에는 그 사업 수익을 통해 자생적으로 운영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후원금은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파급 효과를 가진 종잣돈이 될 수 있다.
또한 크라우드펀딩 과정 자체가 시장 검증의 역할을 한다. 이는 연구 차원에서도 뒷받침되는데, 크라우드펀딩이 단순한 자금 조달 수단을 넘어 홍보·마케팅, 테스트 베드, 사회적가치 캠페인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은 국내 크라우드펀딩 연구 동향 분석에서도 확인된 특징이다. 실제로 한 브랜드 사례에서는 크라우드펀딩을 단순히 자금 조달 수단으로만 쓰지 않고, 시제품 단계에서부터 수십 명의 후원자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받는 소통 창구로 활용해 제품력을 검증받은 사례도 확인된다. 공익 프로젝트와 소셜벤처도 마찬가지다. 펀딩 과정에서 어떤 메시지에 사람들이 반응하는지, 어떤 결과물에 후원이 몰리는지를 통해 이후 사업 방향을 가다듬을 수 있는 살아있는 데이터를 얻게 된다.
다만 모든 텀블벅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목표 금액을 최소 수준으로 설정하고도 후원자를 모으지 못해 실패하는 프로젝트가 적지 않으며,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타겟 후원자층에 대한 이해 부족이 꼽힌다. 공익 프로젝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좋은 취지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취지에 공감할 구체적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리워드에 반응할지를 명확히 설계해야 펀딩으로 이어진다.
8.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텀블벅의 보상형 크라우드펀딩 모델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수 있는 지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공익 메시지에 '갖고 싶은 형태'를 부여하는 기획력이 필요하다. 작은 소녀상이나 러닝타임30, 마리몬드의 사례가 보여주듯, 좋은 취지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취지를 담을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결과물을 함께 설계하는 역량이 펀딩의 성패를 가른다. 경기도 내 공익단체와 소셜벤처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단순한 호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갖고 싶어 할 결과물로 번역하는 기획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둘째, 플랫폼별 특성에 맞는 모금 전략의 분리가 필요하다. 순수한 운영 자금이나 위기 대응 자금이 필요하다면 해피빈이나 같이가치 같은 기부형 플랫폼이, 창작물이나 상품을 매개로 한 사업화 초기 자금이 필요하다면 텀블벅 같은 보상형 플랫폼이 더 적합하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단체들에게 모금 전략을 컨설팅할 때, 이 구조적 차이를 명확히 안내하는 것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으로 이어진다.
셋째, 커뮤니티는 모금이 끝난 뒤에도 자산이 된다. 텀블벅의 후원자는 한 번의 거래로 끝나지 않고, 리워드를 통해 프로젝트의 메시지를 일상에서 계속 노출시키는 사람이 된다. 경기도의 공익 프로젝트들도 펀딩 종료를 캠페인의 끝이 아니라 후원자 커뮤니티 형성의 시작으로 바라본다면, 한 번의 펀딩이 장기적인 지지 기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무리 — 거래의 외피, 연결의 본질
겉으로 보면 텀블벅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거래다. 돈을 보내고 물건을 받는다. 그러나 그 거래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다친 소방관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작은 사회적기업의 첫걸음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보상형 펀딩이 증명하는 것은, 공익과 거래가 반드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잘 설계된 보상은 막연한 선의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다리가 된다. 에코백을 메고, 가방을 들고,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 그것이 모금함에 적힌 숫자보다 더 오래, 더 멀리 메시지를 실어 나른다.
경기도의 31개 시·군에서 활동하는 공익단체와 소셜벤처들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 우리의 메시지를, 사람들이 매일 손에 들고 다니고 싶어 할 무언가로 만들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다음 세대의 공익 펀딩 사례를 만들어낼 것이다.

참고 자료
https://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4407
https://platum.kr/archives/64596
https://brunch.co.kr/@allaboutfunding/4
https://brunch.co.kr/@tumblbug/53
https://duckduck.palms.blog/tumblbug-learning
https://www.kakaocorp.com/page/detail/10957
https://www.futurechosun.com/archives/28284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953856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190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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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3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문화도시, 유네스코도시가 되기 위해 문화 활성화에 이바지해온 경기도 부천시>

안녕하세요. 2026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Hana입니다. 학창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거주하는 동안 부천에 거주하면서 가장 많이 봤던 문구는 바로 <문화도시>였습니다. 이에 맞게 부천시에서는 전국의 영화-만화 산업의 진흥을 위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만화축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까지 3대 축제를 중심으로 문화 산업을 활성화했으며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진행해왔습니다. (시민들이 주역이 되는 축제 다락, 미디어를 활용해 문화-예술 범위를 확장하는 시민미디어교육 및 축제 등) 이처럼 부천시 내에서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덕분에 부천시는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유네스코 창의도시는 문학, 공예 및 민속예술, 미디어아트, 영화, 디자인, 음식, 음악, 건축까지 총 8개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주요 전략으로 창의성을 반영하는 도시를 지정하는 유네스코의 사업을 의미합니다. 그중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는 이러한 도시의 영향을 통해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성공하는 것이 목표이며 전 세계 중 6개 대륙, 44개 국가, 63개 도시가 지정되어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고, 광범위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부천시의 경우,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가입했다는 점, 세계에서는 21번째로 지정되었다는 점, 그리고 평화와 인권 존중에 초점을 두어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추구한다는 걸 인정받았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부천시와 부천문화재단에서 관련 산업만 잘 진행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적극적-열정적으로 참여하기에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문화도시, 유네스코도시로 알려진 부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부천악기은행>
그리고 여러 사업들 중 부천문화재단에서는 2026년에 새로운 문화-예술 사업으로 <부천악기은행>을 시작했습니다. 부천악기은행은 경기도 부천시 시민(경기도 부천에 주소를 두고 있거나 소재 학교 및 직장에서 근무하는 경우)이라면 누구나 악기를 통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공공 대여 서비스입니다. 이에 따라 악기를 처음 시작하고 배우고 싶은 입문자나 초보자 중심의 시민들이 부담 없이 저렴하게 악기를 대여하여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악기는 꾸준히, 조심히 관리해야 하기에 일반 시민들이 관리하기 쉽지 않으며 가격도 비싸기에 일반 국민들이 악기를 이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악기를 활용한 예술 분야가 확대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를 고려해 악기 구입이 부담스러운 시민 및 청소년들을 위해 공공에서 악기를 확보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끔 하여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경기도 부천시의 음악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부천문화재단 차원에서 부천악기은행 서비스를 준비했습니다.
<부천악기은행 악기 대여, 적절한 규칙을 통해 원활한 이용을 돕는다.>

부천악기은행은 저렴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으로 다양한 악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2026년을 기준으로 타악기/건반악기/현악기/타악기/국악기를 대여하고 있는데, 부천악기은행은 음악을 처음 시작하려는 초보자들과 입문자들이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는 대중적인 악기들 중심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현악기, 타악기, 국악기 등 다채로운 종류가 마련되어 있어, 처음 악기를 접하는 시민들도 본인의 취향에 맞는 악기를 폭넓게 선택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피아노처럼 이동이 어려운 무거운 악기는 대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대여한 악기는 1개월(30일) 이용 기간을 중심으로 대여 가격을 매기며 기존 가격 외에 대여한 악기는 1개월(30일) 이용 기간을 기준으로 저렴한 대여료가 책정됩니다. 그래도 취약계층을 고려해 부천악기은행에서도 이용요금 감면 혜택과 정확한 환불기준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증빙서류를 제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장애인, 노인 등에게 대여료의 50%를 감면하는 혜택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만료일까지 반납하지 않을 경우에는 연체료를 부과하며 악기 파손 및 관리에 대여자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

1인당 1개의 악기를 대여할 수 있으며, 기본 대여 기간 1개월에서 시작해 연장을 통해 최대 6개월까지 대여가 가능합니다. 다만, 해당 악기에 대기자가 있을 경우에는 연장이 불가하므로 장기 대여를 계획 중이시라면 대기 현황과 대여 규칙을 미리 확인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악기 재고가 없을 경우에는 대여 기간 연장이 불가하다는 점도 참고해주세요.) 또한, 부천악기은행 신청 홈페이지에서 사용 희망일을 기준으로 최소 2일 전, 최대 14일 전까지 온라인으로 예약신청이 가능합니다. (부천시 통합회원으로 가입한 이후에 부천악기은행 온라인 서비스 이용 가능)
- 부천악기은행 이용 정보: 주소(복사골문화센터(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장말로 107, 4층(상동))), 운영시간(화요일~토요일(일요일 및 월요일과 법정 공휴일에는 휴무), 오전 10시~오후 5시(단, 통상적인 점심시간 오전 12시~오후 1시에는 업무가 중단되며 점심시간 이후부터 다시 대여-반납 등 업무를 진행합니다.))
<부천악기은행은 방치되고, 버려지는 악기의 새 삶을 부여하는 데에 이바지한다.>

부천악기은행이 있는 복사골문화센터 4층에는 <당신의 나눔이 누군가의 첫 연주가 됩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처럼 부천악기은행을 운영하는 주체는 바로 시민 개인, 단체가 된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악기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기타를 배우기 위해 구매하였으나, 바빠지고, 관심이 떨어지면서 어느 순간에는 기타를 쓰지 않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중고로 판매할까 생각해봤지만, 시중에 좋은 제품들이 많고, 다른 중고 물품들과 비교해도 크게 메리트가 없을 것으로 보여 결국에는 버렸습니다.
이를 고려해 부천악기은행에서는 가정, 학교, 단체 등에서 사용하지 않는 악기를 기증받아 공공 자원으로 순환합니다. 기증자의 관점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아 많은 공간을 뺏기는 단점, 관리하지 않을 경우에는 나중에 악기를 사용할 때,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단점보다 지속적인 관리를 확실하게 보장받고, 저렴한 가격에 대여하는 부천악기은행으로 기증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부천악기은행에서는 공공이 관리한다는 관점에서 악기 자체는 개인 및 단체에게서 기증받고, 부천악기은행에 기증한 악기들을 관리-대여하고 있습니다. 단, 연주가 불가능할 정도의 악기는 기증받지 않고 있으므로 기증 이후에 악기가 원활하게 활용될 수 있는 상태인지 미리 확인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악기 기증자에게는 기증 증서를 발급하고, 복사골문화센터 4층 벽면에 있는 부천악기은행 명예의 전당에 기증 악기 목록 및 이름 기재 혜택을 제공합니다. 이 기재를 통해 악기 공공 기여를 인증할 수 있습니다. (기부자 명단은 부천악기은행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단, 공공자산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기증한 악기를 반환할 수 없으니, 신중하게 생각하고 기증해주세요.)
<부천악기은행에서 예술 및 기술을 나누는 활동도 같이 진행합니다.>

부천악기은행은 단순히 악기를 대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을 나누는 교육 활동도 진행합니다. 그 시작은 이달의 악기 워크숍으로 무료로 진행하여 교육생의 부담을 덜어주고, 새로운 악기를 연주해본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에 관한 인식을 확대하는 장점이 있으며 경기도 부천시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역시 문화를 나누는 주체가 되므로 서로의 니즈를 충족하는 win-win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부천악기은행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맺은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

지난 3월 30일, 부천악기은행 개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시민의 음악 시작을 위해 경기도 부천시에서 활동하는 여러 기관이 모여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를 결성했습니다. (여기서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는 (1) 악기 관리, 교육, 공연 등 실제 사업 운영에 함께하는 실행 파트너 실무협력단 (2) 악기 기증 및 후원을 통해 사업 기반을 지원하는 후원 파트너 기부후원단 (3) 음악교육, 문화 활동에 참여해 문화복지 확산을 함께 만드는 참여 파트너 문화나눔단으로 구성됩니다.)
부천악기은행 개소식을 진행할 때,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의 역할을 체감할 수 있었는데, 악기대여자들은 현장에서 기타, 바이올린, 가야금을 대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실무자들은 부천악기은행이 가져올 장점을 현장에서 알기 쉽게 소개했습니다. 이후에 부천악기은행에 마련된 데스크, 악기보관실, 악기교육실 공간을 둘러보면서 피드백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특히 악기보관실에 직접 다녀갔을 때는 악기 보관을 위해 항온항습기를 상시로 가동하는 모습을 통해 악기 관리에 필수불가결인 존재, 공기 질을 크게 신경 쓰는 점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부천악기은행 파트너스>를 통해 부천시립예술단 아드리앙 페뤼숑 상임지휘자가 홍보대사를 맡아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부천시 내 협력 지정악기사, 관내 대학교수, 협회 관계자 등이 지닌 풍부한 실무 경험과 전문 자문을 바탕으로 한층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운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사골문화센터의 경우, 공간 자체가 배리어프리가 보장되어 있기에 누구나 악기를 대여할 수 있다는 장점도 돋보입니다. 복사골문화센터는 복사골스포츠센터, 부천문화재단, 부천시청소년센터 및 부천여성청소년재단 등 여러 기관이 입주하며 경기도 부천시 시민들의 이용률이 높은 생활 공간인데, 부천문화재단이 있는 4층의 유휴 공간을 활용했다는 점, 해당 공간이 엘리베이터 및 경사로가 잘 갖춰졌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공간에 부천악기은행을 마련한 덕분에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부천악기은행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악기은행의 활성화는 문화-예술 활성화라는 공익적 목적을 입증하였다.>

한편, 부천문화재단 부천악기은행이 개설되기 이전에 경기도 화성시에서는 이미 2022년에 화성시 악기은행을 오픈했고, 경기도 오산시에서는 2019년에 전국 최초 악기 전문 도서관이자, 대여가 가능한 시설로 소리울도서관을 시작했으며 경기도 성남시에서는 2016년부터 악기도서관 악기랑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각각 시작한 시기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시민 및 생활권자(학교, 직업 등)들에게 악기를 저렴한 가격에 대여한다는 점을 통해 지역에서 문화를 활성화하려고 합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악기은행이라는 공공 차원에서 대여하는 공익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서는 제주월드컵경기장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서귀포시 악기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시에서는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 및 송파구(사업명: 뮤직스튜디오)에서 악기공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육 목적으로 제한되긴 하지만, 경상남도교육청 예술교육원 해봄/경상북도교육청문화원 악기뱅크 카테고리/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악기지원센터 및 잠자는 악기 깨우기(학교별 안 쓰는 악기를 이관하는 사업), 서울특별시교육청 체육건강예술교육과 예술교육팀 악기공유마당 사업에서도 대여를 진행합니다.
즉, 부천문화재단에서 해당 사업을 새롭게 실시했다는 점은 방치되는 악기를 나누는 환경적인 측면, 그리고 이를 활용해 문화를 나눈다는 공익적인 역할 및 영향력이 이미 입증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직 해당 문화가 활성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파주시, 수원시 등 문화재단 내에서 공간과 함께 악기를 이용할 수는 있겠으나, 외부에서 활용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기에 지자체마다 상황이 조금씩 다른 점이 원인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지역 내에 문화예술을 활성화하기 위해 악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연주하며 문화의 주체가 되려는 방향, 이를 지원하는 것을 통해 문화의 주체가 되고, 다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양질의 문화 확산으로 이어가기를 희망합니다.
<출처>
https://schoolart.sen.go.kr/musicshare/fus/html/cont0030v.do
https://www.songpa.go.kr/learn/youth/campus/instrum_lib_rental_list.do
https://www.nakwon-communityart.or.kr/bbs/music02
https://chsl.cne.go.kr/msi/cntntsService.do?menuId=MNU_0000000000002024
https://yeyak.jne.kr/yeyak/main.do?sysId=yey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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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tcenter.gne.go.kr/ins/in/ins/requestList.do?mi=1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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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seogwipo-si/223390621039
https://gnews.gg.go.kr/news/news_detail.do?number=202204111500478574C049&s_code=C049
https://www.gggongik.or.kr/page/archive/archiveinfo_detail.php?board_idx=2348
http://bucheoncityofliterature.or.kr/site/homepage/menu/viewMenu?menuid=023003001
https://www.bcf.or.kr/base/contents/view?contentsNo=186&menuLevel=3&menuNo=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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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9※「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 양 엄마 임선미 님
날씨가 더워지니 올해 첫 수박을 샀다. 큰 쟁반에 놓고 쩍! 소리내며 가른다. 붉은 과육에 까만 씨에, 단물이 쟁반에 흐른다. 이래서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생의 마지막에 그린 수박 정물화에 ‘인생 만세(Viva la Vida)’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박을 한입 베어 먹으며, 나도 모르게 “비바 라 비다”를 외치니 말이다. 스페인어는 전혀 모르면서도 수박이 주는 달콤한 청량감에 삶의 기쁨을 노래한다.
수박만이랴. 꽃과 나무와 하늘과 햇빛이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는 계절이다. 안산 상록구청 1층 갤러리 ‘혜안’에 가면 생명 가득한 그림을 볼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의 유화전(6월 12일~7월 3일)이다. 삶의 고통을 생명의 빛으로 그린 “빛의 정원, 또바기 유화전’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치유되고, 삶은 아름다웠다.”라 고백하는 사람. 세월호의 별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 양 엄마 임선미 님을 만나 보았다.

또바기 유화전 갤러리 지킴이
Q 또바기 유화전 축하합니다. 자기소개와 근황을 들려주세요.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 엄마 임선미입니다. 이번 전시회에 유화 여섯 작품을 냈어요. 한 10년 또바기 모임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어요. ‘또바기’는 아름다운 순우리말인데요.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겠다”는 모임이죠. 저는 원래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세월호 참사 전에는 어린이집 교사도 하고 아이돌보미도 했어요. 참사 이후에 도저히 아이들 보는 게 어려워서 못 하다가 올해 3월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어린이집 등원 도우미로 오전 두 시간 돌보는데, 세 살 네 살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아이들이 안기고 웃어주면 저도 모르게 웃게 돼요. 오늘도 아이들과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왔어요. 아이들이 주는 에너지가 참 커요. 집에 돌아올 때 기분이 좋아지고 삶에 의욕이 생겨요.

연년생 두딸과 젊은 부부, 평범한 행복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Q 결혼 후에 계속 일하셨나요?
결혼 전에는 광명시청에서 비정규직 공무원으로 근무했어요.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애들 키웠죠. 그때는 당연하게 그랬어요. 아이들도 직접 키우고 싶었고요. 두 딸을 연년생으로 낳아 키우며 전업주부로 오래 지냈죠. 둘째인 혜선이가 IMF 때 태어났는데, 남편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아끼고 살아도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죠. 그래도 아이들 키우는 재미로 버텼어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 봐도 행복했거든요. 애들이 중학교 가면서 어린이집 보조교사 일을 시작했고, 아이돌봄 서비스도 했어요. 저는 원래 아이들하고 있는 걸 좋아했어요. 아이들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노는 게 즐거웠어요.

빛의 정원 또바기 유화전 리플릿 양면

안산상록구청 1층 갤러리 혜안은 입구쪽 전시공간과 안쪽 공간이 벽 하나로 나뉘어진 열린 전시공간이다(좌)
또바기 유화전은 갤러리 '혜안'의 안쪽 전시 공간. '빛의 정원' 포스터가 보인다(우)
Q 지금 하고 있는 ‘빛의 정원-또바기 유화전’에는 언제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세월호 참사 이후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생명센터’를 운영했어요. 그 안에 여러 치유 프로그램이 있었죠. 도예도 하고 천아트도 하고 미술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끝난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그림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그림 선생님 강사료, 작업실에 그림 도구며 밥값까지 다 지원되니 계속할 수 있었어요. 와동성당 홍 신부님이 정말 큰 힘이 돼주셨어요. 신부님은 늘 우리를 가족처럼 대해주셨어요. 기도도 함께하고, 엄마들이 조금이라도 숨 쉴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셨죠. 그 덕분에 그림을 배우고 이렇게 전시회도 할 수 있게 됐어요.

혜선이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길, 임선미 님 작품 '아득히 먼 곳'
Q 그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그림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도 미술 시간이 제일 싫었어요. 소질도 없고 자신도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1년 늦게 들어왔어요. 다른 엄마들이 너무 잘 그리는 거예요. 저는 창피해서 제 그림을 다른 사람이 못 보게 돌려놓고 다녔어요. ‘나는 왜 이것밖에 못 그리지?’ 그랬는데 하다 보니까 조금씩 달라졌어요. 색을 쓰는 법도 배우고 빛을 표현하는 방법도 배우고요. 생각하며 그리다 보니 ‘똥손’이 ‘은손’ 정도는 된 거 같아요. 지금도 어렵지만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졌죠. 그림 그리는 시간을 좋아하고요.
Q 그림 그린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던가요?
가장 큰 건 마음이 치유되는 거죠.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 시간만큼은 그림에 집중하게 돼요. 저는 원래 음악 들으면서 뭘 못 하는 사람이에요.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림만 봐야 해요. 색을 맞추고 명암을 넣고 붓질하다 보면 집중하게 되고 마음이 정리되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힘들어서 한동안 쉰 적도 있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하고 싶더라고요. 왔더니 엄마들이 예전과 똑같이 맞아줬어요.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요. 그게 참 고마웠어요. 우리 세월호 엄마들은 서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거든요. 왜 힘든지, 왜 말이 없는지, 왜 갑자기 울게 되는지, 왜 쉬고 싶은지, 다 아니까요.

꽃의 생명력이 뿜뿜하는 또바기 작품들
Q 지금 함께 그림을 그리는 엄마들 이야기도 좀 해 주실까요?
지금은 여덟 명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어요. 8반 엄마들이 많아요. 강지은(지상준 엄마), 고이경(임건우 엄마) 송미점(박선균 엄마), 이미숙(임현진 엄마) 이지연(김제훈 엄마), 그리고 1반 안명미(문지성 엄마), 10반 김경애(구보현 엄마), 그리고 저. 예전에 더 많을 때도 있었지만 힘들어서 떠난 분들도 있고 건강 문제로 못 나오는 분들도 있어요. 우리는 매주 화요일에 본오성당에 모여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림을 그려요. 그림 한 점 완성하기까지 몇 달 걸리기도 해요. 부지런한 어떤 엄마는 집에서도 계속 작업하지만 저는 화요일만 해요. 전시회를 열 때면 서로 작품을 봐주고 응원해요. 서로 비교하기보단 자기 작품을 끝까지 해낸다는 게 더 중요해요. 서로 응원하며 하죠. 건우 엄마가 디테일 표현이 탁월해요.

혜선이는 아빠를 무척 좋아했다
Q 혜선이 이야기해 주세요. 어떤 아이였나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어요. 제가 혜선이를 너무 이뻐해서 ‘우래기(우리애기)라 불렀어요. 연년생이었지만 혜원이도 동생을 ‘우래기’라고 했죠. 언니와 엄마를 무수리처럼 부리는데도 우리는 혜선이 말이라면 무조건 오케이였어요. 참 신기했어요. 삼겹살 비계도 발라 주고 바지락도 까줘야 하는 상전이었죠. 여섯 살 때부터 안경을 썼어요. 아기가 거꾸로 있어서 수술로 낳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태변을 먹어서 눈이 나빠진 게 아닌가 싶었어요. 선천적이라 라식도 라섹도 할 수 없는 상태라니 늘 마음이 쓰였죠. 집에서는 조용한 애가 학교 행사에선 노래하고 춤추는 걸 너무 잘했어요. 무대만 올라가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안산시 청소년 종합예술제에 나가서 2등을 한 적도 있어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혜선이가 집에 와서 울더라고요. 자기 팀이 더 잘했는데 친구가 1등을 한 게 억울했대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아, 우리 딸이 승부욕이 있구나. 노래를 정말 잘하는구나!’ 깜짝 놀랐어요. 평소에는 잘 몰랐던 모습이었죠.
Q 혜선이의 꿈은 방송작가 국어 선생님이었잖아요?
글 쓰는 걸 참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다고 했고, 나중에는 동국대 국문학과에 진학해서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나 꿈을 정했어. 수학여행 갔다와서 공부 열심히 할 거야.”라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돌아요. 2018년 11월 사단법인 한국방송작가협회가 혜선이를 ‘명예 방송작가’로 위촉해 줬어요. 명예회원증으로 혜선이의 꿈을 기억해 주니 감사히 받았어요. 저는 글쓰는 건 혜원이가 잘하고 음악 쪽 재능은 혜선이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일기도 열심히 썼고 글 쓰기 좋아했지만, 피아노도 잘 쳤고 노래도 정말 잘했어요. 절대음감이 있었어요. 혜원이가 먼저 음악 쪽으로 방향을 정하니 혜선이는 공부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어떤 길을 가도 자기 몫은 충분히 해냈을 아이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혜선(세실리아)
Q 엄마로서 가장 미안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사춘기 때 일이에요. 친구 관계 때문에 왕따 비슷한 경험으로 힘들어했는데 제가 “혹시 너한테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한 적이 있어요. 부모로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 건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큰딸 혜원이도 이야기했어요.
“엄마는 그때 무조건 혜선이 편을 들어줬어야 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혜선이는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었을 텐데 저는 오히려 상처를 준 거죠. 지금도 미안해요. 그리고 더위를 타고 땀을 많이 흘리는 혜선이는 에어컨 집에 살아본 적 없다는 게 마음 아파요. 에어컨 켜는 게 미안해요. 이모네 갔다오면 “엄마, 우리는 언제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으로 이사가?”라고 말하던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지금 우리는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에 사는데 혜선이는 없네요.

사랑스런 혜선이
Q 참사 이후 새롭게 알게 된 혜선이의 모습이 있나요?
친구들을 만나면서 많이 알게 됐어요.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러더라고요.
“혜선이는 늘 남을 먼저 챙겼어요.”
“배려심이 많았어요.”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요. 남을 배려하느라 자기 속마음은 얼마나 숨겼을까 싶은 거죠. 그리고 엄마는 몰랐던 첫사랑 이야기도 있었어요. 학원 같이 다니던 친구였는데, 일기장에 그 아이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아, 우리 혜선이도 그런 감정을 느낄 만큼 컸구나’ 싶었어요.

고2 수학여행 앞둔 봄날의 혜선
Q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 기억은 무엇인가요?
아직도 생생해요. 수학여행 가기 전에 캐리어를 사달라고 해서 분홍색 캐리어를 사줬어요.
집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러더라고요.
“엄마, 나 이거 끌고 가기 창피해.”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가방 메고 가는 애들이 더 창피하지. 너 인기 짱일 거야.”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도 분홍색 캐리어만 보면 그날 모습이 떠올라요. 계단을 내려가던 뒷모습, 목소리, 표정까지 다 기억나요. 내가 해 준 마지막 음식은 유부초밥이었어요. 평소에 별로 안 좋아하던 아이가 그날은 다섯 개나 먹고 갔어요. 제가 지금도 유부초밥을 잘 못 먹고 있어요.
Q 지난 12년간 가족들은 어떻게 버텨왔나요?
참사 후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활동을 같이 하면서도 남편은 힘들어하며 술로 버티는 시간이 길었어요. 일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았고요. 큰딸 혜원이도 마찬가지였어요. 원래 음악하던 아이였는데 결국 그 길을 포기해야 했어요. 참사 났을 때 같은 단원고 3학년이었으니 어땠겠어요. 혜원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곤 했어요. 세 식구 중에 제일 힘든 사람이 혜원이었으니까요. 글쓰기 응모에서 당첨돼서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을 통해 자기 미래를 다시 설계하고 돌아왔어요.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재수해서 대학에 갔어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 잘하다가 최근 더 높은 연봉으로 스카우트 돼서 이직한 게 너무 기특해요. 가족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온 것 같아요.

혜선이를 생각하며 그렸어요. 작품 앞에서 전시회장 임선미 님(좌)/ 그림 앞에 선 혜선 아빠 박진오 님(우)
Q 세월호 이후 임선미 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독해졌어요. 예전에도 할 말은 하는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더 그래요. 남 눈치를 덜 보고 남한테만 좋게 하려 하지 않게 됐어요. 가족들 챙기고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믿었건만, 세월호를 겪고 나니까 세상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는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어요. 하느님께 삿대질하며 원망하기도 했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그 과정을 버텨내면서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Q 지금 혜선이를 다시 만난다면 무엇을 보여주고 싶나요?
많은 말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엄마가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 마음을 치유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게 됐다는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다시 어린이집 아이들과 잘 놀고 있다는 것도요. 혜선이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아이예요. 그래서 저는 그림을 그릴 때도, 어린이집 아이들과 놀 때도, 혜선이만 생각하면 미소가 넘쳐요. 제가 새로운 꿈을 꾸고 있어요. 혜선이가 음악을 좋아했듯, 저도 피아노를 배워서 성당에서 봉사하고 싶어요. 혜선이가 이런 엄마를 보면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지 않을까요. “엄마, 잘하고 있어.” 이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아요.
Q ‘빛의 정원, 또바기 유화전’의 그림은 꽃과 자연이 많다. 특히 노란 해바라기가 생명력이 넘치게 피어 있다. 소재를 자연으로 택한 의미가 있을 거 같다.
그렇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그렇지만 꽃과 자연이 우리 마음을 많이 위로하고 치유해 줬다.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노란색 꽃을 좋아하는 엄마들에게 노란 해바라기는 아이들 같다. 아이들의 웃음, 아이들의 생명력, 아이들과의 추억, 그리고 꿈, 모든 걸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꽃으로 피는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내 그림도 그렇다. 혜선이에게로 가는 ‘아득히 먼 곳’은 혜선이를 생각하며 그렸다. 빨간 동백꽃은 혜선이에게 못다 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림 그리기는 사랑스러운 우래기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노란꽃만그린건아니다. 현진 엄마 이미숙 님은 장미를 그리고 또 그렸다
호박꽃도 노란색, 보현 엄마 김경애님 작품
지성이 엄마 안명미 님은 자연과 함께 지성이 아빠 얼굴도 그렸다
나무와 숲이 주는 치유. 선균 엄마 송미정님 작품 '힐링'

파란 하늘과 하얀 목련이 혜선이로 보인다. 임선미 님 작품 '너와의 추억'
아이를 생각하며 다녀온 '졸업여행'사진으로 그린 건우 엄마 고이경님 작품

처연한 동백꽃 꽃술이 노랗다. 임선미 님의 작품 '못다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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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9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 온마을 네트워크 자원봉사단 이야기
1. '온마을'이라는 이름에 담긴 뜻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자리한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 주민의 삶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복지기관입니다. 어르신 돌봄, 아동·청소년 교육, 가족 상담 등 다양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지역사회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데 꾸준히 힘을 쏟아온 곳이기도 합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초지복지관은 2026년 봄, 지역 주민 스스로가 기획자이자 실행자가 되어 시니어를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자원봉사 모델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바로 '온마을 네트워크'입니다.
'온마을'이라는 이름 안에는 두 가지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온 마을 사람이 함께한다는 뜻, 그리고 온기로 가득 찬 마을을 만들겠다는 뜻. 이 두 가지가 겹쳐진 이름처럼, 온마을 네트워크는 마을 안의 사람들이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공동체의 모습을 꿈꾸며 출발했습니다.
이 글은 그 온마을 네트워크의 주민기획단 다섯 명이 어떻게 모였고, 어떤 마음으로 어르신 곁에 서 있는지를 기록한 현장 이야기입니다.

2. 2026년 3월,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초지복지관은 2026년 2월~3월, 시니어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분을 찾는 주민기획단모집을 시작했습니다. 나이도, 직업도, 살아온 방식도 서로 다른 다섯 명의 사람이 이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이들은 대학생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성인 봉사자까지 연령대가 폭넓습니다. 복지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지역사회 활동 경험이 풍부한 중장년 봉사자, 아이를 키우는 주부, 재능을 나누고 싶은 직장인까지. 서로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이들은 단순한 봉사자 모임이 아닌, 하나의 팀으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초지복지관과 함께 준비 기간을 거치면서, 각자의 강점을 나누고 역할을 분담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기획을 담당하는 사람, 홍보를 맡는 사람, 현장 진행을 이끄는 사람, 물품 준비와 기록을 책임지는 사람.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로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온마을 네트워크가 단순한 봉사 모임을 넘어 체계적인 팀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역할을 찾고 채워나가는 방식. 그 안에서 봉사자들은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빠르게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3. 어르신을 위한 세 가지 선물 — 음악, 두뇌, 손끝
온마을 네트워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됩니다.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활동이 아니라, 어르신의 몸과 마음과 손끝을 모두 살피는 통합적인 돌봄 프로그램입니다.
첫 번째는 음악을 활용한 신체활동 시간입니다.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리듬에 맞게 박수를 치거나 간단한 동작을 따라 하는 이 시간은, 어르신들이 가장 즐겁게 참여하는 순서이기도 합니다. 음악은 기억을 깨우고, 감정을 움직이며, 몸을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킵니다. 치매 예방과 우울감 해소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동작의 난이도를 조율하고, 친숙한 옛 노래와 트로트 곡을 함께 선정하는 등 매번 세심하게 준비합니다.
어르신들은 음악이 흐르는 순간부터 표정이 달라집니다. 쑥스럽게 앉아 계시던 분도 노래가 시작되면 어느새 몸을 흔들고 손을 두드리십니다. 이 짧은 순간이 쌓여 활동의 즐거움이 되고, 다음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 됩니다.

두 번째는 두뇌를 자극하는 퀴즈 타임입니다.
상식 퀴즈, 단어 맞추기, 그림 연상 퀴즈, 간단한 계산 문제 등 다양한 형식의 문제들을 통해 어르신들이 두뇌를 활발히 사용하도록 돕는 시간입니다. 뇌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경험이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의학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봉사자들은 너무 어렵지도, 너무 단순하지도 않은 적절한 난이도의 퀴즈를 매 회 새롭게 준비하며 어르신들의 집중력과 성취감을 동시에 높이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소근육을 활용하는 만들기 시간입니다.
손을 사용해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활동은 소근육 발달과 집중력 향상에 효과적이며, 완성된 작품을 보는 성취감은 어르신들의 정서적 안정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봉사자들은 재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꼼꼼하게 챙기며, 어르신이 손을 움직이기 어려운 부분에서는 나란히 앉아 함께 작업합니다. 이 시간이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어르신과 봉사자가 나란히 앉아 손을 맞대는 교감의 시간이 되도록 늘 신경 씁니다.

이 세 가지 프로그램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을 깨우고, 두뇌를 자극하고, 손끝으로 표현하는 흐름이 하나의 활동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어르신들은 한 시간 남짓의 프로그램 안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활기를 찾게 됩니다.
4. 스승의 날, 양말목 카네이션으로 전한 마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진행된 양말목 카네이션 만들기 시간이었습니다.
양말목 공예는 버려지는 양말 자투리 천, 즉 '양말목'을 활용하여 꽃이나 소품 등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공예입니다. 버리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친환경 활동으로, 만들기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결과물이 아름다워 어르신들에게도 인기가 높습니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을 생각하며 함께 양말목으로 카네이션을 직접 만들고, 그것을 인생의 선배님이자 인생의 스승님인 어르신들께 선물로 드리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꽃 한 송이를 두 손으로 받아 드신 어르신 몇 분은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이 카네이션 하나가 단순한 공예 작품이 아니라, 곁에 있어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나한테 주는 거예요? 참 예쁘다... 고마워요."
꽃을 받아 드신 어르신의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어르신들은 그저 받기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손으로 행운을 뜻하는 네잎클로바를 만들며세대와 세대가 마음을 나누는 진짜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양말목 클로바만들기는 만들기 프로그램이기도 했지만, 환경 상식을 전하는 에코 활동이기도 했습니다. 버려지는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업사이클링의 의미를 어르신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환경에 대한 인식을 일상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5. 활동을 넘어 — 환경 상식과 따뜻한 안부 인사
온마을 네트워크 활동이 다른 봉사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지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매 회 활동 안에 환경 관련 상식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분리배출 방법, 일상 속 에너지 절약 습관, 친환경 소재 이야기 등 생활 밀착형 환경 정보를 짧은 코너로 구성해 어르신들과 함께 나눕니다. 어렵고 딱딱한 환경 교육이 아니라, 우리 동네 이야기처럼 친근하게 전달하는 방식이어서 어르신들의 반응도 좋습니다. 환경이라는 주제가 봉사 활동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식, 온마을 네트워크만의 특색 있는 접근입니다.
또한 봉사자들은 활동 시간 안에서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와 일상을 자연스럽게 살핍니다. "요즘 잘 주무세요?",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세요?", "지난주엔 외출도 하셨어요?" 이런 일상적인 말 한마디가 어르신들에게는 진심 어린 돌봄으로 느껴집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될 위험이 높은 노인 1인 가구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봉사자의 존재 자체가 안심의 이유가 됩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프로그램 운영을 넘어, 지역사회 내 시니어 돌봄의 촘촘한 연결망 역할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6. 2회 만에 느낀 감동 — 만족도와 보람
온마을 네트워크는 한 달에 걸친 준비 기간을 거쳐 202년 봄, 첫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총 2회의 정규 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임에도 활동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기다려지는 날이 생겼다"고 하십니다. 봉사자들은 "이런 보람은 처음"이라고 말합니다. 준비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고, 다음 회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봉사자들 사이의 팀워크도 눈에 띄게 탄탄해졌습니다.
참여 어르신들의 반응도 대단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앉아 계시던 분이 시간이 지날수록 먼저 손을 들어 답을 외치시고, 옆 어르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만들기 작업에 열중하시는 모습. 그 변화가 봉사자들에게 가장 큰 보람이 됩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202년 11월까지 월 2회 정기 활동을 이어갑니다. 앞으로 더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마을의 온기를 더해나갈 예정입니다.
봉사자들은 한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이 활동이 어르신들에게만 선물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삶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고. 봉사란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받는 것임을 온마을 네트워크는 매 회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7. 다섯 명의 이야기 —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사람들
온마을 네트워크를 이끄는 다섯 명의 봉사자는 저마다의 이유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 명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모두가 받는 봉사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지혜를 배우고, 팀원들과 기획하며 협력하는 법을 익히고, 낯선 어르신께 먼저 말을 건네며 용기를 키웁니다.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가 이 젊은 봉사자들에게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됩니다.

8. 공익의 관점에서 — 온마을 네트워크가 중요한 이유
초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지역사회 기반의 시니어 돌봄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국가와 지방정부의 공식 복지 서비스만으로는 모든 어르신의 일상적 필요를 채우기 어렵습니다. 이웃이 이웃을 살피고, 마을이 마을의 구성원을 돌보는 공동체 돌봄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바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실천입니다. 시설이나 제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연결로 만들어지는 돌봄. 전문 복지사가 아닌 마을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프로그램. 이것이 가진 힘은 친숙함과 지속성에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낯선 전문가보다 익숙한 이웃에게 더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봉사자 자신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성장합니다. 온마을 네트워크는 어르신과 봉사자 모두에게 "내가 이 마을의 주인이자 구성원"임을 실감하게 해주는 공익적 실천입니다.
화려한 인프라나 큰 예산 없이도, 사람의 마음과 시간이 모이면 지역사회가 달라진다는 것을 온마을 네트워크는 매 회 직접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모여 따뜻한 마을이 됩니다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 온마을 네트워크의 이야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2026년 11월, 마지막 회 활동이 끝나는 날까지 다섯 명의 봉사자들은 매달 두 번씩 어르신들의 곁에 설 것입니다. 음악과 함께 몸을 움직이고, 퀴즈로 두뇌를 깨우고, 손끝으로 무언가를 함께 만들며, 그 안에서 삶의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어르신들의 웃음 속에, 눈가의 눈물 속에, 그리고 "다음에 또 오지요?" 라는 한 마디 속에 이 활동의 모든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의 마음이 모여 더 따뜻한 마을이 되길 바랍니다.“

마을은 결국 사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곳에 공동체가 생깁니다. 안산초지종합복지관에서 시작된 온마을 네트워크의 이야기가, 경기도 곳곳의 더 많은 마을로 퍼져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글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웹진 6기 에디터 안산사라
취재 |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 온마을 네트워크 현장
#안산초지종합사회복지관 #온마을네트워크 #경기공익활동 #마을공동체돌봄 #주민기획단
조회수 135
2026-05-18
#화성중장년행복캠퍼스 #중장년프로그램 #인생2막 #화성시평생교육
#경기공익활동지원센터 #중장년
인생의 절반을 살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지금까지는 가족을 위해, 직장을 위해 달려왔는데, 이제 남은 시간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새로운 일상을 맞이한 중장년층에게 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런 분들을 만나러 화성으로 향했습니다.
4월 한 달 동안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를 두 차례 직접 방문해 수업 현장을 취재했는데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보려 합니다. 캠퍼스가 어떤 곳인지, 어떤 프로그램들이 운영되는지, 그리고 제가 직접 들어가 본 향기로운 인생 향수 수업이 수강생들에게 어떤 의미인지까지 함께 나눠볼게요.

[화성시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강의장소 입구 베너]
1.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 어떤 곳인가요?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는 말 그대로 중장년층을 위한 전용 배움터입니다. 단순한 문화센터나 취미 교실과는 결이 다릅니다. 이곳은 은퇴 전후의 중장년이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성공적인 노후 생활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공간이에요.
캠퍼스가 내세우는 비전은 이렇습니다.
“중장년과 함께 건강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 위기를 행복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
이 한 문장에 이곳의 철학이 담겨 있어요. 중장년기를 위기나 쇠퇴의 시간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출발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실제로 캠퍼스는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세 가지 전략적 추진 과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 2막의 새 출발, 둘째는 평생 배움, 셋째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 인프라 구축입니다.

[화성시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강의장 곳곳에 붙여있는 홍보지]
구체적인 사업 구조를 보면 더 명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캠퍼스는 크게 네 가지 축으로 운영되는데요, 교육과정 → 동아리 활동 → 사회공헌팀 → 일자리 연계 및 인큐베이팅 순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교육으로 시작하지만, 배움이 끝나도 관계와 활동은 계속 이어지는 구조예요. 이 흐름 속에서 개인의 성장이 지역사회 기여로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공간도 중장년 전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동아리실과 휴게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서, 수업이 끝난 후에도 수강생들이 자유롭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어요. 재취업 및 창업 지원, 공유 사무실 운영, 코칭·심리 검사·집단 상담 등의 종합 상담 서비스도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화성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홈페이지 포토갤리러]
2025년 한 해 동안의 운영 성과를 보면 이 캠퍼스가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정규 교육과정 31개를 운영했고, 인문·교육 특강과 야간 과정도 운영했습니다. 커뮤니티 동아리 활동은 19개 팀에서 94회, 사회공헌팀은 18개 팀에서 193회의 활동을 수행했어요. 이 숫자들은 단순한 실적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각자의 이유로 이곳 문을 두드린 수백 명의 중장년이 있습니다.
2. 2026년 상반기 17개 프로그램과 사회공헌 활동
2026년에는 경기도와 화성 특례시의 지원이 더욱 확대되면서 상반기에만 17개 교육과정이 개설되었습니다. 정원 262명으로 계획했지만 신청자가 넘쳐 317명으로 확정되었을 만큼 관심이 뜨거웠어요. 이 중 처음 참여하는 신규 수강생이 179명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습니다. 그만큼 새롭게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분들 한 명 한 명이 새로운 출발을 결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화성시 배이비부머 행복캠퍼스 개강식 당일 프로그램소개 시간]
17개 과정의 이름을 보면 그 다양함에 먼저 놀라게 됩니다. 행복 육아 영상, 웰라이프 플래너, 예비 부모를 위한 행복 지수, 행복한 옷·가구 만들기, AI로 말하는 직장인의 비밀, 아는 만큼 보이는 현대미술, 부스트 자격 과정, AI로 여는 디지털 추억 앨범, 코치 인증 자격 과정, 사주 명리, 시니어 브레인 음악 놀이 지도사(2급), 어반 스케치, 꽃차 소믈리에 양성 과정, 향기로운 인생 향수, 화성형 혁신 통합 돌봄 리더 양성 과정, 목조각 예술, 그리고 시민 전문가 소양 과정까지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예술과 기술, 자격증과 취미가 고루 섞여 있어요.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든, 어떤 삶을 꿈꾸든 자신에게 맞는 문을 찾을 수 있는 구성입니다.
교육과정이 끝난 후에는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집니다. 같은 과정을 함께 들은 수강생들이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고, 캠퍼스에서는 활동비와 전용 공간을 지원해줍니다. 그리고 이 동아리 활동이 사회공헌팀으로 발전하는 구조예요. 취미에서 시작해 이웃을 돕는 활동가로 성장하는 과정, 그것이 이 캠퍼스가 설계한 흐름입니다.

[[화성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홈페이지 사회공헌 소개 영상자료 ]
2025년 기준으로 운영된 18개 사회공헌팀의 활동 분야는 정말 폭넓습니다. 돌봄 및 복지 분야에서는 화성형 혁신 통합 돌봄 리더 양성 과정 수료자들이 지역사회 돌봄 체계 강화를 위해 활동합니다. 생명 존중 분야에서는 생명지킴이(게이트키퍼) 교육을 수료한 분들이 화성시 자살예방센터와 협력해 이웃의 위험 신호를 파악하고 전문 서비스와 연결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시니어 교육 지도 분야에서는 시니어 브레인 음악 놀이 지도사, 꽃차 소믈리에, 웰라이프 플래너 등 전문 자격을 취득한 분들이 지역사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화성시 배이비부머 강의장 내부에 걸린 사회공헌소개액자]
디지털 및 AI 활용 분야에서는 AI로 여는 디지털 추억 앨범 수료자들이 디지털 역량을 활용한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고, 문화 예술 및 공예 분야에서는 어반 스케치, 목조각 예술, 향기로운 인생 향수 수료자들이 재능을 지역사회와 나눕니다. 특히 반려견 관련 공모사업인 '가치로운 비'처럼 독특한 사회공헌 모델이 발굴되어 운영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움이 멈추는 게 아니라, 배운 것이 이웃에게 흘러가는 구조.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가 추구하는 진짜 목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3. "향기로운 인생 향수" 수업 현장 속으로
제가 직접 참여해 취재한 과정은 17개 중 향기로운 인생 향수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향수를 만드는 수업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천연 성분을 활용한 비누와 입욕제를 만들며 내 몸을 직접 돌보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기술이 나중에 사회공헌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취미 수업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었어요.

[화성시 배이비부머 ”향기로운인생수업 강의장 내부 입욕제실습]
첫 번째 방문 – 입욕제 만들기
강의실 문을 여니 책상 위에 파란 그릇, 유리 비커, 작은 저울, 투명한 비닐봉지 가득 담긴 흰 가루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수강생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강사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이날의 주제는 천연 입욕제, 흔히 배쓰봄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은 만들기 전에 입욕의 효능부터 짚어주는 것으로 시작됐어요. 반신욕은 15분, 족욕은 42도 이하의 물에 발을 담그며 15분이 적당합니다. 핵심은 뜨거운 온도 자체가 아니라 온도 차를 이용해 몸의 순환을 돕는 원리예요. 하부와 말단 부위를 따뜻하게 하면 따뜻한 기운이 위로 올라가 순환이 일어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꾸준히 반복하면 3주쯤 지나면서 등 쪽으로 온기가 퍼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운동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특히 권장하는 방법이고, 일주일에 두세 번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재료는 베이킹 소다, 구연산, 옥수수 전분을 기본으로, 호호바 오일, 글리세린·비타민E·히알루론산 혼합 보습제, 정수기 물이 들어갑니다. 여기에 한방 약재를 선택해 더할 수 있어요. 황금(黃芩)은 항균·미백 효능이, 정향(丁香)은 강력한 항균·살균력이, 감초(甘草)는 피부를 진정시키는 효능이 있습니다. 수강생들은 본인의 피부 상태와 목적에 맞는 약재를 직접 골랐어요. 자신을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고르는 그 선택 하나하나가 이미 배움의 과정이었습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강의실 안에는 은은한 아로마 향이 퍼졌습니다. 페퍼민트, 라벤더, 레몬, 유칼립투스 등 각기 다른 향을 직접 맡아보고, 오늘 만들 입욕제에 넣을 향을 고르는 시간도 있었어요. 같은 재료라도 어떤 향을 고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의 제품이 완성된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취향이자 내 몸의 필요를 반영한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화성시 배이비부머 ”향기로운인생수업 강의장 내부 천연비누실습]
두 번째 방문 – MP 비누 만들기
두 번째 방문에서는 MP(Melt & Pour) 비누 만들기가 진행됐습니다. 비누 베이스를 녹여 색과 향, 기능성 성분을 더해 굳히는 방식으로, 비누 제조법 중 가장 접근성이 높은 방법입니다. 유치원생도 도전할 수 있다는 강사님의 말에 수강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이날 배운 재료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노란색의 핵심 성분인 토코트리에놀은 파의 씨눈에서 추출한 천연 항산화제로, 피부 재생과 여드름 케어에 효과적입니다. 화이트 비누 베이스에는 동백기름과 시어버터가 혼합되어 보습 효과가 뛰어나고, 파란색 계열에는 쪽(藍草)에서 추출한 인디고 색소가, 빨간색 계열에는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충(Cochineal)의 천연 색소가 활용됩니다. 자연에서 이렇게 다양한 색과 효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화성시 배이비부머 ”향기로운인생수업 강의장 내부 강사님 강의중]
수업 중간에 강사님이 꺼낸 이야기가 강의실을 잠시 조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조개는 몸속에 들어온 이물질로 진주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였어요. "우리도 삶에서 받은 상처를 어떤 보석으로 만들어갈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비누를 만들면서 나온 말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누구에게나 다르게 가닿았을 것 같은 문장이었습니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더 특별하게 울렸겠죠.
4.수업 이후, 이들이 꿈꾸는 활동들
수강생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등록 이유가 저마다 달랐습니다. 오래전부터 천연 제품에 관심이 있었던 분, 건강이 안 좋아진 뒤 내 몸을 직접 챙겨보고 싶어진 분, 은퇴 후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던 분, 자녀에게 직접 만든 것을 주고 싶었던 분까지요. 시작은 각자 달랐지만, 몇 주를 함께 배우다 보니 공통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건강을 위해 시작했는데, 이제는 요양원 어르신들께 직접 만든 비누를 드리고 싶어졌어요. 그게 진짜 사회공헌인 것 같아요."
"내가 이걸 배워서 가족한테 더 나아가 지역에 도움이 되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앞으로 동아리를 결성해 정기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논의 중이라고 했어요. 개인의 관심으로 시작한 배움이 지역사회를 향한 나눔으로 확장되는 과정, 그것이 이 캠퍼스가 처음부터 그려온 그림이기도 합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강의실 게시판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 문구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함께 따뜻한 나눔으로 발전해 나가자!"

[화성시 베이비부머 행복캠퍼스 강의장 외부 벽면에 액자]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는 그 문장을 매일 조금씩 실현해가는 공간이었어요. 배움이 동아리로, 동아리가 사회공헌으로, 사회공헌이 일자리로 이어지는 이 선순환 구조가 중장년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고 있었습니다. 은퇴 이후가 막막하게 느껴지신다면, 혹은 뭔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화성 중장년 행복캠퍼스의 17개 문 중 하나를 두드려보세요. 향기는 이미 그 안에서 시작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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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마이크 앞에 선 사람들
수요일 오후, 수원공동체라디오 스튜디오 안에 시민 한 명이 앉아 있다. 방송 경력도 없고, 유명인도 아니다. 그냥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다. 마이크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더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래된 수원 통닭거리 이야기, 어릴 적 팔달문 근처를 뛰어다니던 기억, 요즘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골목 가게 사장님의 말. 그 목소리가 96.3MHz를 타고 수원 전역으로 흘러나간다.
스마트폰과 유튜브, 짧은 영상 콘텐츠가 일상이 된 시대다. 정보는 빠르게 소비되고 사람들의 관심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 속에서 라디오는 오래된 매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마음을 전할 수 있고, 화려한 영상이 없어도 사람의 일상과 감정을 연결할 수 있다. 특히 지역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전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공동체라디오다.
경기도 수원시에 시민이 직접 참여해 지역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송국이 있다.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 어린이와 청소년, 시니어, 마을활동가, 자영업자,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시민이 방송 제작에 참여한다. 누군가는 직접 원고를 쓰고, 누군가는 인터뷰를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음악을 선곡하고 오디오 편집을 배운다. 시민의 삶이 그대로 방송 콘텐츠가 되는 곳이다.
이번 취재에서는 수원공동체라디오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수원의 첫 공동체라디오, SoneFM의 시작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은 수원의 첫 공동체라디오 방송이다. 2021년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FM 96.3MHz 주파수 허가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같은 해 ‘수원마을공동체미디어사회적협동조합’이 설립되었고, 시민이 참여하는 지역 미디어 플랫폼 구축이 추진됐다.
공동체라디오는 상업성과 청취율 중심의 일반 방송과는 방향이 다르다. 지역 주민이 직접 방송을 제작하고 지역 현안을 이야기하며, 마을의 문화와 삶을 기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즉, 시민이 단순한 청취자가 아니라 콘텐츠 생산자로 참여하는 방송이다.
수원공동체라디오 역시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출발했다. 초기에는 방송 장비 구축과 스튜디오 마련, 방송 제작 교육 등 기반을 만드는 과정과 함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방송 교육 프로그램과 미디어 교육도 함께 진행되며 공동체 미디어의 토대를 다져나갔다.
2022년에는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FM 개국 이전 단계였지만 시민들은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방송에 참여할 수 있었다. 마을 소식, 지역 인터뷰, 음악 프로그램, 생활 정보 등이 하나둘 만들어지면서 지역 주민과의 연결도 점차 확대됐다.
그리고 2023년 7월 14일, 수원공동체라디오는 FM 96.3MHz 정식 개국을 알렸다. 시민들이 직접 만든 목소리가 실제 전파를 통해 수원 전역에 송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방송 개국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역 주민 스스로 지역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공미디어가 등장한 순간이기도 했다.
현재 수원공동체라디오는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방송 내용은 지역 정보와 생활문화, 음악, 상권 홍보, 재난방송, 마을 소식 등 시민 생활과 밀접한 주제로 구성된다.
사진/0,1,2
마이크 앞에 서는 법을 가르친다 — 방송활동가 양성 교육
수원공동체라디오는 단순히 방송만 송출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 미디어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사진 속 ‘방송활동가 10기 모집’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기적으로 시민 대상 방송 제작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방송활동가 과정은 5월6일부터 6월17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2시부터 4시까지 운영되며, 방송 기획부터 대본 작성, 라이브 방송 실습, 오디오 편집까지 실제 방송 제작 과정을 체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교육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차시 방송 기획, 2차시 방송 대본 작성, 3·4차시 라이브 방송 실습, 5차시 오디오 편집, 6차시 콘텐츠 제작과 수료식. 6주 동안 아무것도 모르던 시민이 실제 방송을 만들어 내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교육은 단순한 기술 전달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방송 제작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과 경험을 콘텐츠로 바라보게 된다. 평범한 골목길 이야기, 오래된 시장의 풍경, 지역의 작은 가게, 주민들의 삶과 추억이 방송 소재가 된다. 거창한 뉴스보다 더 깊은 공감과 지역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공동체라디오의 교육은 단순한 기술 전달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방송 제작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과 경험을 콘텐츠로 바라보게 된다.
실제로 방송활동가 교육에 참여한 시민들 가운데는 이후 시민PD로 활동하거나 지역 행사와 마을 기록 활동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마이크 앞에 처음 앉던 날의 긴장이, 어느새 지역을 기록하는 힘이 된다.
목소리- 지역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방식
수원공동체라디오는 단순한 오디오 방송이 아니다. 지역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아카이브 역할을 하고 있다.
대도시에서는 빠른 개발과 변화 속에서 오래된 마을의 기억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쉽게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공동체라디오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긴다.
누군가는 동네 오래된 시장 이야기를 전하고, 누군가는 어린 시절 수원의 모습을 기억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현재의 마을 문제와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시간이 지나면 지역의 역사 자료이자 공동체 기록으로 남는다.
특히 수원은 화성과 전통시장, 오래된 주거지와 신도시가 공존하는 도시다. 전통과 현대가 함께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세대와 문화가 섞여 있다. 공동체라디오는 이러한 수원의 복합적인 모습을 시민의 목소리로 담아낸다.
지역 예술인과 소상공인들에게도 방송은 중요한 홍보 창구가 된다. 공연 정보와 지역 문화행사, 작은 가게 이야기 등이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지역경제와 문화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는 상업 방송에서 쉽게 다루지 않는 지역 밀착형 콘텐츠라는 점에서 공동체라디오만의 가치다.
사람 냄새 나는 방송이 필요하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은 거대 플랫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사람들은 전국 단위, 글로벌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소비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이야기와 이웃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공동체라디오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역성과 공공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볼수 있다.
수원공동체라디오 역시 시민이 직접 지역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단순한 취미 방송이 아니라 주민 참여 민주주의와 공동체 문화 형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세대별 의미도 다르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소외되기 쉬운 시니어 세대에게 공동체라디오는 새로운 소통 공간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활용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도 라디오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도 공동체라디오는 중요한 경험이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콘텐츠로 만들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은 표현력과 소통 능력을 키워준다.
무엇보다 공동체라디오는 사람을 중심에 둔 방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보다 사람의 일상과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방송이기 때문이다.
사진/3,4,5,67
96.3MHz ‘누구나 함께하는 라디오’를 향하여
사진 속 문구처럼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은 ‘96.3MHz, 누구나 함께하는 라디오’를 지향하고 있다.
이 문장에는 공동체라디오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방송은 특정 전문가나 유명인만의 영역이 아니라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수원공동체라디오는 지역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고 있다. 시민들은 방송 교육을 받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지역사회에 전하고 있다.
또한 공동체라디오는 지역 네트워크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활동가와 시민단체, 문화예술인, 소상공인 등이 방송을 통해 연결되며 새로운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공동체라디오는 단순한 FM 방송을 넘어 팟캐스트와 유튜브, 온라인 스트리밍 등 다양한 플랫폼과 연계될 가능성도 크다. 지역 기반 콘텐츠가 디지털 플랫폼과 결합하면 더 많은 시민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을공동체 활동가와 시민단체, 문화예술인, 소상공인 등이 방송을 통해 연결되며 새로운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라디오가 단순한 기술이나 플랫폼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직접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공감하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라디오의 가장 큰 가치라는 것이다.
모두의 목소리를 담아, 연결하는 소리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은 단순한 지역 방송국이 아니다. 시민의 일상과 지역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공동체 플랫폼이다.
특히 시민이 직접 방송 제작에 참여하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공동체라디오는 지역사회 소통의 중요한 모델이 되고 있다.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의 96.3MHz 전파에는 단순한 방송 신호만이 아니라 수원 시민들의 삶과 기억,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사람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한 힘을 가진다. 그 목소리가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전파가 닿는곳 마다 공동체는 조금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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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7
“이웃의 손을 놓지 않는 든든하고 다정한 배경”, 내 이름은 춤추는 나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사람으로 살다가 안산에 정주한 사람이 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서 찐 안산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잇는 ‘기억과 약속의 길’ 시민 안내자이며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의 직무 지도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슴에 ‘별을 품고 사는 사람’으로 ‘춤추는 나무’. 4월이라 더 바쁜 고명선 활동가를 소개한다.

Q 자신을 ‘춤추는 나무’라고 소개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20대 때부터 상담소에서 닉네임으로 ‘나무’를 썼다. 내 주변엔 뿌리 깊은 나무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이미 너무 많더라.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이웃들과 바람이 가는 대로 춤추며 살고 싶었다. 거창한 존재보다 주변과 어우러지는 사람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Q 춤추는 나무로 매일 출근하는 일부터 소개해 달라.
안산의 한 카페에서 성인 발달장애인 바리스타 6명 곁에서 ‘직무지도원’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바리스타들이 샷 추출이나 음료 제조 실력은 정말 뛰어나다. 다만 숫자 계산, 재고 파악, 그리고 동료 간의 의사소통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속도에 맞춰 호흡하며 일상을 나누고 지역사회 안에서 당당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도록 곁을 지키는 ‘다정한 이웃’이 되는 일이다.


Q 장애인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와 이전의 이력이 궁금하다.
대학 시절,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재가장애인들에게 책을 배달하며 장애인 인권에 눈을 떴다. 이후 ‘장애여성공감’ 상담원으로 일했고, ‘성공회 나눔의집’에서 어린이와 어르신을 돌보고 성인장애인들과 함께 일했다.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활동의 뿌리가 됐다.




Q 서울 사람이 어떻게 안산의 시민 활동가가 되었나?
결혼하면서 안산에 왔다. 세 아이 엄마로서, 2014년 4월 16일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다가 세월호 소식을 접했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믿고 큰 걱정 안 했다가, 저녁에야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화면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에 발만 동동 굴렀다. 다음 날,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아이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무작정 단원고로 달려갔다.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비는 밤이었다. 운동장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다. 여러 번 촛불을 들었지만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그 촛불이 제일 간절했다. 그 이후 화랑유원지, 안산문화광장, 광화문광장에서 나는 계속 촛불을 들었다.


Q 시민안내자로서 걷는 ‘기억과 약속의 길’은 무엇인가?
참사 직후부터 정부합동분향소와 단원고 교실을 찾아가는 ‘기억과 약속의 길’이 있었다. 나는 2017년 4.16기억저장소 ‘4.16 민주시민교육’에서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고잔동에서 별이 된 아이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수료생들과 함께 “누가 오든 안 오든, 우리끼리라도 한 달 한 번은 꼭 이 길을 걷자”고 다짐했다. 4.16기억교실에 모여서 단원고 추모조형물, 4.16기억전시관, 고잔동 마을의 골목골목을 지나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까지, 2~3시간을 시민들과 걷고 있다.
지난 7년여 동안 이 길을 지키며 느낀 건 ‘기억의 힘’이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떤 날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때론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모두 노란 우산을 쓰고 끝까지 걸었다. 걷는다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기억공간에서 서로의 기억을 꺼내고, 어떻게 기억하고 약속할까 이야기했다. 태풍 때 한 번 취소된 거 말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이 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이라고 본다.



Q ‘기억과 약속의 길’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의례가 있다고 들었다.
매번 출발을 4.16기억교실에서 한다. 3월엔 3반, 4월엔 4반 이런 식이다. 교실에 모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출석’ 시간이 있다. 시민 안내자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그 아이 자리에 앉은 시민이 “네!”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아이들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그들의 삶과 꿈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기억과 약속의 길은 함께 기억하고 약속하는 연대를 길이다.
Q 춤추는 나무는 별을 품은 사람들(이하 ‘별품사’)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2018년경 4.16 안산시민연대에서 ‘별을 품은 이웃’이라는 마을별 세월호 모임을 제안했다. 그때 나는 '함께크는여성울림'에서 상근 활동가로 피켓팅과 서명전 등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활동가들과 고민하다가 “울림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 활동하고 마음을 나누자”라며 회원들을 모아 소모임 ‘별품사’로 의기투합했다.


대단한 목표보다 그저 참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별이 된 아이들을 우리 가슴에 품고 살아가자는 뜻이었다. 별품사 첫 활동이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의 약전 읽기였다.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은 1반 1권으로 시작해 10반 10권까지, 그리고 선생님들과 일반인들 이야기 2권으로 책이 12권이다. 책을 펼쳐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이야기하는 게 처음엔 우느라 너무 어려웠다. 아이들의 꿈, 좋아했던 음식을 이야기했고 아이가 좋아한 음악을 모임에서 함께 들었다. 아이와 부모님들의 일상을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우리는 많이 울고 또 웃었다. 약전 전권을 2년에 걸쳐 완독 토론한 후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썼다. 그 결과물로 250편의 편지 모음집 《잊지 않을게 행동할게》를 펴내 기억교실 각 반에 갖다 두었다.

별품사는 세월호의 진실과 별이 된 아이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공부방’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세월호 관련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고 기억식 등 관련 행사에 참여해 왔다. 세월호 공방 어머니들을 모셔 와 꽃누르미와 퀼트로 소품을 만들며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다. 416 희망 목공소에 가서 아버지들과 목공 실습도 했다. 올해는 별품사 새 회원들과 함께 약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3월에는 약전에 빠진 아이 중 1반 문지성 이야기를 어머니 안명미 님을 모셔서 생생히 듣는 시간도 가졌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유가족들 곁에서 안산의 한 귀퉁이를 지키는 온기가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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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 외에도 매달 피케팅과 생명 안전 공원 예배에 참여하지 않나.
피켓을 드는 것은 시민들에게 참사의 진실을 알리며 잊지 말자고 호소하는 직접적인 소통 창구다. 매월 둘째 수요일 5시 30분 광화문광장에서 ‘기억공간 지키기 집중 피케팅’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차가운 시선이나 “인제 그만 좀 해라”, “지겹지도 않냐?”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피켓을 놓지 않은 건, 다시는 어떤 참사도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고, 밝혀지지 않은 진상규명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매달 첫 일요일 오후 5시, 공사가 진행 중인 거친 흙바닥 위에서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노래한다. 예배에서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시간이 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이 모두 안산으로 돌아올 걸 믿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엄마아빠 마음이다. 4.16 생명 안전 공원은 별이 된 아이들의 봉안당을 포함해서 모든 시민이 찾아와 머무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Q 생명 안전 공원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공원 부지 앞에서 반대하는 분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 “너희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라며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이 느끼는 불안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의 불안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깃을 눈앞의 노란 리본으로 정해버린 거다. 생명 안전 공원은 특정 누군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사를 성찰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다짐하는 공간이다. 그분들과도 결국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Q. 세월호 참사 이후 내 삶에 일어난 변화가 있다면?
배우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마누라가 바빠져서 얼굴 보기 힘들다”라더라. 그래서 “참사 이전에도 세 아이 엄마로 늘 바빴거든?” 농담해 줬다. 첫째 변화는, 내가 안산이라는 도시에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학교도 다녔기에 결혼하고 살게 된 안산이 늘 낯설었다. 그런데 참사가 터졌다. 어느 순간 차마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없더라. 그렇게 비로소 안산에 정주하는 진짜 ‘안산 사람’이 됐다.
둘째는, 참사 이후 그분들이 겪는 사회적 고립과 혐오를 보면서, “이분들 또한 우리 이웃으로서 존중받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함께 숨 쉬어야 하듯, 세월호 가족들도 우리 공동체 안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분들이 외롭지 않게 안산이라는 공동체의 품을 넓히는 것이 내 활동의 동력이자 철학이다.



Q 세월호 가족들 곁에서 특별히 배운 점이 있다면?
10주기 때 ‘유류품 기록’ 작업을 함께했다. 아이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기록하며 부모님들이 들려주시는 목소리를 듣고, 다시는 어떤 참사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감히 “그 마음 다 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함부로 ‘공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됐다. 나는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이웃’이 되기로 했다.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고!
Q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는 소회는 어떤가?
생명 안전 공원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건립되어 흩어져 있는 우리 아이들이 비로소 안산이라는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공사 부지를 지날 때마다 지난 10년여의 갈등과 눈물,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곳은 단순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무거운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산책하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일상을 나누고, 생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희망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그날, 안산이 비로소 참사의 아픔을 딛고 생명과 안전을 상징하는 새로운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Q 춤추는 나무의 남은 꿈도 나눠달라.
내 곁에서 함께 일하는 발달장애인 동료들의 속도,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서로 연결된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살린다.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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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9▶자원봉사의 정의
‘자원봉사란 사회문제를 예방 및 해결되는 국가의 공익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공/사조직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영리적인 반대급부를 받지 않고서도 인간 존중의 정신과 민주주의 원칙에 근거하여 낯선 타인을 상대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의 공공선을 고양함과 동시에 이타심의 구현을 통해 자아실현을 성취하고자 하는 활동’(1997, 김영재 외, 2002 : 15-16, 재인용)으로 정의하고 있다.
자원봉사활동 기본법 제3조에서도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로 말하고 있다.
▶자원봉사의 특성
자원봉사는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남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원봉사는 크게 4가지 특성을 가진다. 첫 번째 특성은 자발성이다. 자원봉사활동은 누군가 지시해서 하는 일이 아니며 강제성이 없다. 오직 개인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둘째, 무보수성이다. 자원봉사활동은 정신적인 가치와 만족 이외에 어떠한 물질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무보수 활동이다. 최근에는 자원봉사들에게 실비(교통비, 식비)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대가로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이타성이다. 자원봉사활동은 공동체의 소중함에 대해 깨닫고 이를 지켜가기 위한 활동이다. 넷째, 지속성이다. 자원봉사활동은 개인의 의지로 결정된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이 일회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계속되어야 하며 계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일시적인 감정이나 기분 전환을 위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지역사회를 위해 지속해서 행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자아 실현성, 학습성, 헌신성, 공공성, 협동성, 전문성 등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1365 자원봉사 포털 http://www.1365.go.kr).
▶자원봉사의 필요성
첫째, 자발적으로 돕는 사회풍토를 조성한다. 즉, 지역사회의 문제를 정부나 공공기관에 의지하여 해결하려는 태도를 극복하며, 자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고 지역사회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등 자발적인 참여의 풍토가 조성된다.
둘째, 지역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시민정신을 길러 준다. 지역사회를 포함한 어떠한 조직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소속 의식과 참여 정신이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참여의 보람과 시민으로서의 책임 의식을 갖게 되고, 결국 건전한 사회풍토를 만들어 내는 바탕이 된다.
셋째, 유능한 사회지도자 양성에 도움이 된다. 유능한 사회지도자란 봉사 정신과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진정한 봉사의 가치를 깨닫고 그에 따른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 이러한 정서와 감수성의 발달은 결국 유능한 지도자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며, 이러한 지도자들이 양성됨으로써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바탕이 마련될 것이다.
넷째,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신뢰받는 사회를 만든다. 자원봉사 대상의 대부분은 소외당하는 사람들, 스스로 생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그러한 사람들에게 함께 사랑을 나누고 힘든 일을 나누는 일은 그들에게 생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심어 주게 된다.
다섯째, 각종 범죄와 사고를 예방해 준다. 자원봉사활동은 결국 남을 배려하는 마을을 길러 준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어떠한 어려움도 스스로 이겨내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양보와 포용감을 심어 주게 되어 결국 사람이 오가는 사회로 발전하게 만든다. (김범수 외, 2001).
▶현대 사회에서의 자원봉사
단체의 이름으로 봉사가 진행되면 봉사활동 후 봉사 시간을 받을 수 있고 단체의 시너지로 큰 책임으로 연결될 수 있으면 계획과 실행 그리고 결과 보고까지 나타날 수 있는 표본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자원봉사는 자발적인 행위로서 활동을 하다 보니 활동이 자원봉사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정의에 따라보니 알게 되는 때도 있다. 개인이 시간을 내서 물질적이든 시간과 행위적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도 자원봉사활동 기본법 제3조에 의해 자원봉사라고 말할 수 있다.
단체봉사에 시간과 거리가 맞지 않는 경우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봉사자의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 자원봉사자의 긍지와 의지를 돋우기 위해 봉사자 시리즈를 연재하고자 한다.
봉사자 연재 1탄 우경주 선생님을 만났다.
1. 선생님 소개를 해 주세요.
미술대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퇴직 후에는 도서관 등에서 미술사 강의를 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수원 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등에서 도슨트 활동을 했습니다.
2018년 수원 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에서는 도슨트교육을 담당했습니다. 2019년에서 지동창룡마을창작센터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했습니다. 틈틈이 쓴 글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수원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시집도 냈습니다.
현재는 대학원에서 회화과 과정을 밟으며, 미술작업 활동으로 전시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2. 선생님이 현재 하시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미술 인문학과 도슨트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서울 오늘 신문에 미술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봉사로는 2012년부터 수원특례시 여성 친화모니터단 임원으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2021년부터 경기여성거번넌스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아트인’이라는 모임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3. 선생님이 봉사하게 된 동기를 듣고 싶습니다.
중학교 교사를 하는 동안 학생들에게 살아가면서 동반되어야 할 활동이라고 교내⋅외 봉사활동을 소개했습니다.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이 보여준 신문을 통해 아버지의 봉사활동을 보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한의사이신 아버지께서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오랫동안 무료로 치료해주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오신 아버지의 마음을 읽으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사회를 위한 봉사를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그래서 선생님은 어떤 봉사를 했었고, 현재도 유지하고 계신 봉사가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저희 아이들과 함께 장애인 시설에 가서 봉사하며 직접 장애인들의 몸과 동력의 역할자로 활동을 했습니다. 동일 공간에서도 불편해하는 사람과 아무렇지 않게 활동하며 공존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타인의 불편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경기평생교육학습관에서는 어머니 독서 회장을 하면서 어린이들에게 미술 작품감상을 통해 힐링하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어린이들이 미술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며 설명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수원특례시 여성친화도시에 관한 관심을 두고 여성 시민 모니터 활동을 10년 가까이 해오고 있습니다. 수원특례시의 여성친화도시는 지역정책과 발전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혜택도 골고루 받으며 낮아 있는 여성의 성장과 안전이 구현되는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모니터하는 역할입니다. 나도 여성이고 제 자녀도 여성인데 사회적존재로서 평등함을 추구함은 당연하다는 생각과 여성들이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틈틈이 지인들과 ‘아트인’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감상과 음악, 시 낭송 활동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악기를 다루는 저는 문학회나 미술관 오프닝 행사에 참여하면서 관객들의 분위기를 예술표현으로 집중시키며 참여자들과 예술로 대화하는 기분을 가졌습니다. 수원특례시에서 주관하는 행사에도 참여해서 연주도 진행했습니다.

5. 봉사하셨을 때 기억에 남는 봉사-수혜자와의 기억에 남아있는 관계를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봉사가 힘드셨거나 보람되셨던 점도 있으시면 들려주세요.
봉사할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갔고 돌아오는 길은 늘 즐거웠습니다. 미술관에서 작품해석을 하며 관람객들에게 예술에 관한 관심과 새로운 시각을 도와주는 도슨트 활동은 제게 너무나 유익한 경험입니다. 해설을 듣고 작품 이해가 쉬웠다고 말씀하시는 관람객들이 고맙다고 하시니 봉사를 하면서 제가 힐링이 됩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봉사는 경기평생교육학습관에서 어린이 미술 감상 수업을 1년 정도 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감상 수업을 게임처럼 재미있게 진행했었고 어린이들도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참여했던 어린이들이 집에 가서 수업에서 배웠던 화가들의 책을 다시 찾아보고 화가와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들려주었다는 어머님들의 말씀을 듣고 재미만을 따라오지 않았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 경기 중앙교육도서관에서도 성인 명화 감상을 진행했는데, 수업 시간이 유일하게 힐링 타임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열심히 들으시던 분들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지동창룡마을창작센터에서 근무할 때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했습니다. 근무 중 오전 바쁘지 않은 시간을 이용해서 한글을 모르는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한글과 함께 미술 감상과 음악감상을 진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워하셨지만, 문화생활을 경험하면서 기쁜 마음이 얼굴에 나타났고, 글을 익혀 시화전을 열어 드렸을 때 기뻐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봉사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람의 의미를 생각하면 힘들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6. 처음 봉사하셨던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봉사를 할 거라 생각되시나요?
아마도 저는 봉사를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봉사 기회도 자주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7. 봉사를 어려워하시는 분에게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면서 할 수 있는지 팁을 알려주신다면요.
이웃과 공적인 책임에 마음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쁘더라도 틈틈이 시간을 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오늘부터 봉사하기로 결심했어! 라는 생각으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가능하다면 자신이 잘하는 분야로 봉사를 시작한다면 큰 보람과 행복으로 자신에게도 활기찬 생활이 될 것입니다.
8. 앞으로 계획하는 봉사활동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장애인에게 문화예술이 일상이 될 수 있도록 미술 감상과 음악연주, 시 낭송을 들려주는 일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봉사에 마음을 더 쓰고 싶습니다.
▶인터뷰하고 나서
선생님은 차분하시고 조용한 성품이지만 예술적인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할 때는 힘이 있으셨다. 봉사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부터 봉사를 몸소 실천하셨던 모습을 보이셨는데 앞으로 삶에서 봉사는 본인의 생활이라고 말씀하셨다.
▶봉사 관련 사이트
1365 자원봉사 포털
-https://www.ggvc.or.kr/ 경기도자원봉사센터
-https://www.suwonvol.com/fe2/main/NR_index.do 착한 공터 수원시자원봉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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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4

안녕하세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HHDM Hyun입니다. 저는 지난 4월 1~2일에 있었던 역량 강화 교육을 시작으로, 11월 30일까지 청년 공익활동 일자리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활동하였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진행된 활동이었고, 제게는 처음으로 들어간 직장이었습니다.
제가 어떠한 경험을 했었는지 한번 살펴보아요!
[내가 일했던 곳, 사회적협동조합 두들은?]

(앞의 2장: 두들 초창기/뒤의 1장: 현재의 두들)
사회적협동조합 두들은 발달장애 청소년이 자립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대안학교 특수교사와 사회복지사의 모임으로 시작되었으며 “학교에서의 배움이 졸업 이후의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가족의 보호 아래, 복지관과 센터의 프로그램 중심으로 살아가는 현실”에 한계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애청년들이 지역사회, 일상 속에서 의미 있는 통합이 이뤄지기를 바라며 ‘자립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과 연습’을 통해 배움과 삶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행복하고 즐거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요리’, ‘대화 등 의사소통’을 포함한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다!]

내가 만드는 자립요리
우리는 학교에서 여러 가지를 배웁니다. 가령,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체육, 미술, 음악 등 과목을 배울 수도 있고, 동아리 활동을 통해 댄스, 노래, 악기, 토론 능력, 의사소통 능력 등을 키울 수도 있겠지요. 두들에서 추구하는 바는 이중 후자에 가깝습니다.
이를 위해 요리 프로그램/수업을 준비했습니다. 크게 요리와 놀이가 어우러진 ‘청소년 발달장애 방과후’, ‘자립훈련홈 나들집’/ 요리에 집중하는 ‘낭만자립식탁’, ‘밥이보약’이 있습니다.
요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갑니다. 날카로운 칼, 가위, 음식을 만들 때, 반드시 조절해야만 하는 불 등을 직접 다뤄보게 합니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힘들 것으로 생각하고, ‘재료를 칼로 써는 방법을 몰라서’, ‘손에 힘을 주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등 여러 이유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씩 직접 해보면서, 학생은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가위로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하고, 숙련되면 작은 칼로 재료를 썰어봅니다. 작은 칼로 재료를 능숙하게 썰 즈음이면 큰 칼도 사용해봅니다.
또 레시피에 따라 설탕, 고춧가루, 소금, 간장 등 조미료를 넣어 양념을 만드는 과정도 처음에 활동가와 같이 숟가락을 사용하여 계량했었다면, 익숙해질수록 감으로 조미료 양을 조절하고 여러번 양념을 만들어봅니다.
활동가가 재료와 조미료를 넣어주면 처음에는 나무주걱으로 직접 젓고, 활동가 불 조절 방법을 알려주면 부르스타 사용법과 불 조절도 직접 시도합니다.
요리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뒷정리 및 설거지까지 직접 하는데, 이러한 경험을 쌓은 발달장애 청소년은 추후에 집에서도 요리를 도와주거나 뒷정리를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가끔은 두들에서 자신이 만든 요리를 부모님에게 전해드리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학생은 자신감 향상, 요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새로운 음식을 직접 하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는 등 변화가 생겼다는 후기가 많았고, 부모님은 요리했다는 경험이 새로운 대화 주제가 되어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고 합니다. 작아 보이지만, 직접 요리를 시도하며 생긴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느려도 괜찮아, 하나씩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는 의사소통
‘청소년 발달장애 방과후’, ‘자립훈련홈 나들집’은 발달장애인들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놀고, 먹고, 생활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가정집과 같은 분위기의 공간(나들집)에서 운영됩니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 나가서 놀고, 보드게임도 하고, 같이 먹을 메뉴를 정한 후에 요리하여 같이 먹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었고, 사람과 만나는 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게 처음이라도 괜찮습니다. 하나씩 배워가면 되는 거고, 배움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까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됩니다.
보드게임, 공 던지기 게임, 양말 만들기, 추석 맞이 인사말 만들기, 땅따먹기 게임 만들기 등 여러 활동을 합니다. 여기서는 활동가, 친구들이 하고 싶은 활동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같이 해볼 수 있는 것이면 더욱 좋고, 실천이 가능한지를 고민하며 두들에서 하나씩 실천해봅니다.
일주일에 세 번 오는 초등학교 3학년 한 친구는 그네를 너무 좋아해 계속 혼자 타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여기서 타이머로 시간을 재보며 기다리는 자세를 배웠고, 시간이 다 되면 친구에게 양보합니다. 시간이 다 되면 친구에게 양보합니다.
청소년 발달장애학생 방과후나 자립훈련홈 나들집에서는 다 같이 모여 오늘의 요리를 정하고, 직접 재료를 구매하러 마트에 가고, 요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관람하고 싶은 뮤지컬, 공연 등의 문화생활도 종종 경험하면서 지역사회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함께 잠을 자거나 멀리 여행을 가는 건 어렵지만, 동네에서 소소하게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두들은 발달장애 청소년-청년들이 서로 친해지고, 자립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노하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두들은 발달장애 청소년-청년이 두들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편하게 활동하고, 그들이 자립을 배울 수 있게 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두들에서 근무하면서, 몇 가지 특징이 있어 이곳에 방문하는 발달장애 청소년-청년이 자립을 배우고, 편안하게, 즐겁게 있다가 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 두들에서는 활동가들이 별칭을 사용합니다. 제가 두들에 처음 면접을 보았을 때, 그때가 전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면접관으로 참여한 물방울과 차차가 본명이 아닌 별칭으로 자신을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학생과 선생님 간의 위계가 없었으면 하고, 대신에 서로를 향한 존중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별명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반말이든, 존댓말이든 별칭을 부르고 소통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많이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스’라는 별칭을 정했고, ‘에리카’, ‘곰돌이’, ‘연둣빛’, ‘다리’, ‘산마루’ 등 여러 활동가를 만나 편하게 대화하고 일할 수 있었습니다.
2) 두들에서도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하면서 ‘발달장애 청소년-청년과의 소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계속 있었습니다.
2017년 2월,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주관하는 발달장애기획공모에서 ‘쉐어블 프로젝트’ 사업 선정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었습니다. 지역 축제(쉐어블축제)에서는 노래방 부스 운영을 기획-진행했었고, 발달장애인 학생이 지역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자립훈련홈 나들집도 운영했습니다. 너무 가정과 떨어지지 않도록 1박 2일, 1~2주 정도로 날짜를 잡아 운영했으며 이를 통해 발달장애 청소년-청년이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게 하는 ‘자립’을 참여하는 발달장애 청소년-청년이 배울 수 있게끔 하였습니다.
두들의 주 활동 공간인 나들집은 가정집 모습을 하고 있어, 자립 프로그램이 더 실제적으로 느끼도록 합니다. 주방과 거실, 방, 화장실은 여느 가정집과 같은 모습이며 처음 온 사람들도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낍니다.
두들은 경기도 꿈의 학교 사업에도 도전해 ‘연극워크숍 액션가면’을 준비하기도 하고, 의왕시청으로부터 ‘청소년 발달장애 방과후 사업’에도 선정되어 지금은 학생들을 받아 놀이, 요리, 지역사회 경험에 학생들이 직접 시도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3) 두들의 모든 프로그램의 목적은 “일상에서의 자립”입니다. ‘지역 축제 참여’, ‘요리’, ‘대화’, ‘장보기’, ‘영화 보기’, ‘카페, 음식점 가기’ 등 다양한 방식을 존중했습니다.
그동안 발달장애인은 센터, 프로그램 등을 소화하느라 바쁜 날들이 많았고, 나중에 직장에 취직하더라도 일상의 패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말 그대로 집-센터-복지관-집 / 집-직장-복지관-집 등의 경로가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가득 채우는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빈 시간들을 채우는 경험은 많지 않습니다.

두들에서는 시간의 공백도 일상이라는 걸 알려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가만히 쉬어도 되고, 일상(추석 연휴, 학교생활 등), 직장에서의 고충, 연애 등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게임, 노래도 하나의 일상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올해부터는 닌텐도 게임기, AI 스피커(아리야)를 설치하였습니다. 가끔은 마리오 카트, 스포츠 게임을 즐겨도 보고, 트로트 노래(‘테스형!’ 등), 아이돌 및 최신 노래(‘상상더하기’, ‘Next Level’ 등), 동요 및 유아-어린이 전용 노래(‘독도는 우리땅’, ‘뽀로로 노래’, ‘아기 상어’)까지 여러 노래를 들으면서 학생들은 각자의 취향을 공유합니다.
최근에 진행하는 ‘청소년 발달장애 방과후’에서는 직접 식사 준비(수저 놓기, 칸막이 설치하기 등)와 뒷정리(설거지, 행주로 식탁 닦기 등)까지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고, 필요하면 직접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식사 시간이 될 즈음에 칸막이를 설치하려는 학생, 처음에는 세제를 막 쓰고도 제대로 닦지 못했으나 이제는 적절하게 닦는 학생 등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립이라는 게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는 것이다. 그것을 일상에서 계속해보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게 해주자.”라는 취지가 빛을 발한 것입니다.
부모는 발달장애 자녀가 홀로 남게 죄는 걸 걱정하며 “내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게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자립기술을 익히며 성장하고, 믿을만한 안전한 공간들이 동네에 많다면 이런 발달장애 가족들의 걱정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현재 두들은 올해 처음 시작하는 ‘청소년 발달장애 방과후’를 운영하며 많은 참여자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어떤 활동을 할지 기대가 됩니다.
두들의 롱런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권익이 증진되고, 나아가 자신이 머무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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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