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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웹진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익활동은 대개 누군가를 향해 나아갑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더 나은 마을을 바라는 주민에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마음과 시간, 노력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 공익활동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위해 오래 애써온 사람들은 어디에서 쉬어갈 수 있을까요? 공익활동하는 이들의 마음을 챙기면서 힐링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지난 7월 8일, 군포시 자원봉사센터 4층 교육장에서는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만한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2026년 군포시 공익활동단체 협력사업으로 진행된 ‘희망을 싣고 나는 새, 솟대 만들기’ 프로그램입니다.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가 재능나눔으로 준비한 이날 활동은 지속적으로 지역에서 봉사해 온 개인 및 단체 공익활동가를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날의 주인공은 오랜 시간 지역을 위해 손을 보태온 공익활동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이끈 사람은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의 유호현 작가님이었습니다.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는 약 10명의 회원이 함께하는 생활문화 공동체로, 전통문화의 의미를 지역사회에 알리는 공익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유호현 작가님은 자신이 쌓아온 목공, 인두화, 서각, 솟대 작품을 작업한 경험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에게 전통문화의 의미와 손작업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경기이룸학교, 지역 아동센터 등에서도 문화체험재능 기부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이 전통예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고 있기도 합니다.

    문화가 공익활동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드실 수도 있을텐데요. 공익활동은 물질적인 것을 제공하거나 물리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과 기회, 심리적·문화적 지원을 하는 것 역시 공익활동의 중요한 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와 유호현 작가님은 이 분야의 공익활동을 오랫동안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공익활동의 확산을 돕고 있답니다.

     

    /교육장에 전시된 인두화 작품들과 솟대를 활용한 작품들 ⓒ에디터 옐로 구피

    /수업 시작 전, 공익활동가들을 위한 솟대 만들기 체험 재료들을 점검하고 있는 유호현 작가님과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 회원들 ⓒ에디터 옐로 구피

     

    교육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멋진 인두화 작품, 솟대와 인두화를 접목한 작품들이었습니다. 공익활동가들은 본격적으로 솟대 만들기 체험을 하기에 앞서, 행복한 인두화 동호회 회원들이 만든 작품을 미리 보면서 앞으로 할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가득 채웠습니다. 물론 이날의 체험을 위한 재료도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었답니다.

     

    /솟대 만들기의 의의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유호현 작가님 ⓒ에디터 옐로 구피

     

    이날 체험은 총 2회차로 구성되었는데요. 유호현 작가님은 2회차의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활기차게 수업을 이어 나갔습니다. 유호현 작가님은 본격적인 만들기를 시작하기 전에, 고생한 공익활동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왜 ‘솟대’ 만들기를 준비했는지 그 취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솟대는 오래전부터 우리 역사의 일부였습니다. 자그마치 삼한 시대에 소도(蘇塗)라는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는 데에 솟대가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역할에서 확장되어서 마을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솟대는 말 그대로 솟아 있는 형태로, 희망과 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래 우리나라에 풍요, 다산, 성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놓아둔 마을 공동체의 상징물과 같은 것이 바로 솟대였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일부는 인테리어용으로 작게 만들어 집안에 두는 형태로 바뀌어 왔답니다.”

    유호현 작가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눈앞의 얇은 나뭇가지와 자그마한 나무 새가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마을의 평안, 가족의 행복, 나 자신의 소망이 함께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체험에 참가하는 공익활동가들의 마음도 조금 더 편안해지는 듯 보였습니다.

     

    /솟대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시범을 보이는 유호현 작가님 ⓒ에디터 옐로 구피

    /솟대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 주고 있는 유호현 작가님 ⓒ에디터 옐로 구피

     

    유호현 작가님은 재료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서 솟대 만들기 수업을 끌어 나갔습니다. 공익활동가들이 설명을 들으면서 차근차근 손끝에 집중력을 담아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솟대를 만들면서 힐링하고 있는 공익활동가들 ⓒ에디터 옐로 구피

     

    공익활동가들은 각자 나무 받침을 고르고, 작은 가지를 살피고, 새 모양의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 보았습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과정이었지만, 완성될 솟대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균형과 방향을 잘 살피는 섬세한 작업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작업물을 만들고 있었지만, 가지의 길이와 휘어진 모양에 따라 새의 느낌이 달라졌고 받침 위에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손작업은 빠르게 결과를 내는 일은 아니죠. 나무의 결을 살피고 가지의 방향을 보고, 작은 조각을 맞추며 천천히 완성해 나가는 일입니다. 이것은 유호현 작가님과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가 오랫동안 이어온 작업 태도와도 닮아있었습니다. 인두화는 나무 위에 선을 빠르게 그려 내는 작업이 아니라, 뜨거운 인두로 나무를 조금씩 태우며 그림과 글씨를 새기는 작업입니다. 서각 역시 나무를 깎고 다듬으며 마음을 새기는 일이죠. 결국 이들이 전한 것은 단순히 솟대 제작법만이 아니라, 나무를 대하는 태도, 손으로 무언가를 완성하는 시간의 가치, 그리고 그 결과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마음이었습니다.

    /각자 만든 솟대를 감상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공익활동가들 ⓒ에디터 옐로 구피

     

    솟대를 만들면서, 공익활동가들은 처음에는 ‘이게 맞나?’하는 표정으로 재료를 만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작품에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옆 사람의 작품을 바라보며 아이디어를 얻고, 누군가는 자신의 새가 어느 쪽을 바라보면 좋을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만드는 사람마다 다른 바람과 감각이 담기면서 조금씩 각자의 솟대가 완성되어 갔습니다. 작품이 완성된 다음에는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서로의 활동에 관한 담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완성된 솟대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만들어진 것은 작품만이 아니었습니다. 봉사자들이 자신을 돌보는 시간, 지역의 재능이 다른 봉사자를 응원하는 시간, 전통문화가 오늘의 공익활동과 만나는 시간이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솟대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상징이었다면, 이날의 솟대는 공익활동가들의 마음에 세워진 작은 응원의 표식처럼 보였습니다.

     


     

    이날 활동이 특별했던 이유는 솟대가 지닌 의미가 공익활동가의 삶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기 때문입니다. 공익활동가는 자신의 시간을 내어 누군가의 어려움을 덜고, 지역의 빈틈을 메우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동체를 지탱합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이웃과 나누고, 내가 가진 시간을 공동체를 위해 할애하고 누군가의 수고를 보며 응원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이죠.

    마을의 안녕을 빌던 솟대처럼, 공익활동가 역시 지역사회의 평안과 회복을 위해 묵묵히 서 있는 이들,

    이들이 바로 공익활동가들입니다.

      

    /행복한 인두화 그림동호회 활동 모습 ⓒ에디터 옐로 구피

     

    공익활동가의 마음에 휴식을 선물하다 : 2026 재능나눔 힐링 공예체험 ‘희망을 싣고 나는 솟대 만들기'
    옐로 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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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4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학교와 마을을 잇다”…경기마을교육공동체, 31개 시군 연대로 새로운 출발

     

    /경기도 31개 시군 연대 경기마을교육공동체가 7월 11일 공식 출범했다 ⓒ에디터 다참

     

    저출생, 학교 통폐합, 지역 소멸, AI시대…. 급변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학교 교육만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다시 경기도 곳곳의 마을을 연결했다.

    코로나19 이후 사실상 멈췄던 경기도 마을교육 네트워크가 31개 시군을 아우르는 ‘경기마을교육공동체’로 다시 출범했다. 학교와 마을, 행정과 시민이 함께 교육을 책임지는 새로운 교육자치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7월 11일 화성시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열린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출범식에는 교육활동가와 교사, 학생, 학부모, 정치권, 교육청 관계자들이 참석해 교육자치 플랫폼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했다.

    /31개 시군 지부는 각자의 마을교육 영역에서 홍보 피케팅을 준비해 와 알리고 있다. ⓒ에디터 다참

     


     

    멈췄던 연대, 다시 하나로…경기도 31개 시군 광역교육네트워크 출범

     

    이번 출범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었다.

    이는 구명옥 추진위원장이 소개한 경기마을교육공동체가 출범하기까지의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경기마을교육공동체협의회가 활동했지만, 이후 중단됐다”라며,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활동가들이 다시 힘을 모아 광역 네트워크를 준비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2026년 3월 경기마을교육공동체가 공식 출범한 이후 14개 분과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경기도 31개 시군으로 조직을 확대했다”라며, “오늘 창립총회는 그동안 준비해 온 결실”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마을교육공동체는 그동안 정책 협약과 교육정책 제안, 회원 조직 정비, 네트워크대회 개최 등을 추진하며 광역 조직의 기반을 다져왔다.

     

    /이영식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초대 이사장이 출범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에디터 다참

     

     

    “더 큰 조직보다 더 단단한 교육공동체를 만들겠습니다”

     

    출범식 직전 대의원총회에서 선출된 이영식 초대 이사장은 “31개 시군이 함께하는 광역 네트워크가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고, 누군가는 제 생각을 망상이라고도 했지만, 오늘 이 자리는 기적처럼 만들어졌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풀뿌리 교육운동을 넘어 교육자치 플랫폼으로 사람을 잇고, 마을을 잇고, 미래를 잇는 새로운 역사를 31개 시군이 함께 만들어 가겠다”라고 선언했다.

    경기도 31개 시군 전체를 하나의 학습공동체로 연결해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교육의 주체가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이영식 이사장은 “지역을 돌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함께할 사람이 줄어 들었다’, ‘모일 공간이 없다’, ‘혼자 버텨 왔다’라는 이야기였다”라며, “마을교육 활동가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사업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공동체와 함께 기댈 수 있는 동료”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조직이 아니라 가치의 연결”이라며, “학교와 마을, 교육청과 지방정부, 대학과 기업, 주민과 시민이 함께하는 교육자치 플랫폼으로 성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더 큰 조직이 아닌 서로 기대고 도와 줄 수 있는 더 단단한 공동체를 지향하겠다는 의미이며, 교육이 지역을 살리고 지역이 다시 교육을 살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학교와 마을의 벽을 허물겠습니다”

     

    교육청의 역할도 분명했다. 마을교육 활동가들이 지역에서 교육을 실천할 수 있도록 행정의 문턱을 낮추고, 학교와 지방정부를 연결하는 지원 체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은 마을교육공동체를 ‘벽 깨기 교육’의 연장선으로 소개했다.

    안 교육감은 “학교와 지역, 교육청과 시청의 벽을 허무는 것이 우리 교육을 살리는 방법이라고 20년 넘게 이야기해 왔다”라며 “마을교육공동체 시즌2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즌2의 핵심 과제로 ▲31개 시군 전체가 참여하는 조직 ▲읽기(R)·문화예술(A)·스포츠(S)를 중심으로 한 ‘RAS 교육’ ▲교육청과 지방정부가 함께하는 협력체계를 제시했다.

    이어 “학교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라며, “시설이 필요하면 시설을 지원하고, 예산이 필요하면 예산을 지원해 마을교육공동체가 날개를 달 수 있도록 돕겠다”라고 밝혔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이 마을교육공동체 시즌2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에디터 다참

     

     

    “마을이 우리들의 교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날 무대의 주인공은 마을교육 활동가들만이 아니었다.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는 마을교육이 정책을 넘어 일상 속 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안성 공도초등학교 4학년 박지후 학생은 “예전에는 학교 안에서만 배우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마을 곳곳이 교실이 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라며, “어린이들의 꿈이 마을 안에서 더 크게 자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달라”고 제안했다.

     

    /김아리 학생과 이슬기 학부모가 마을교육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 ⓒ에디터 다참

     

    김포 양곡고등학교 2학년 김아리 학생도 “학교와 학원만 오가던 마을이 이제는 배움과 놀이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렜다”라며 “마을 어른들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학부모 이슬기 씨는 “학부모는 단순한 교육의 소비자가 아니라 마을의 자원이 아이들에게 잘 연결되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고 싶다”라며 “학교 담장을 넘어 교육의 동반자로 함께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학교도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현장에서 마을학교를 운영해 온 김봉수 남창초등학교 교장은 학교와 마을의 협력이 가져온 변화를 소개했다.

    그는 “마을은 열심히 노력했지만 학교가 함께하지 못해 허공의 메아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학교장과 마을학교장을 함께 맡으면서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졌다”라며, “학교도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다. 앞으로 시즌2에서는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명옥 추진위원장이 경기마을교육공동체가 추진해야 할 6대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에디터 다참

     


     

    지속가능한 교육생태계 구축을 위한 6대 과제

     

    이날 출범식에서는 경기마을교육공동체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도 발표됐다.

    구명옥 추진위원장은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 제정 추진 ▲마을교육공동체 기본법 제정 추진 ▲경기도 31개 시군 거점 마을학교 운영 ▲마을교육공동체지원센터와 마을교육대학 설립 추진 및 마을교육사 양성 ▲주민 참여형 교육자치 실현 ▲돌봄과 배움이 연결되는 지역 교육공동체 구축 등 여섯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현장의 실천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과 제도를 함께 만들겠다”라며,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변화도 함께라면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출범식은 단순히 새로운 단체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학교와 마을이 따로 존재하던 교육에서 벗어나 지역 전체가 아이들의 배움을 책임지는 새로운 교육자치 모델을 함께 선언한 자리였다.

    그리고 이날 제시한 경기마을교육공동체가 풀어가야 할 숙제는 결코 녹록지 않아 보인다. 구명옥 추진위원장의 말처럼 현장의 실천을 반드시 법적·제도적으로 연결해야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 경기마을교육공동체가 31개 시군을 연결하는 광역 네트워크를 넘어 교육정책을 제안하고 현장을 잇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학교와 마을을 잇다 : 경기마을교육공동체, 31개 시군 연대로 새로운 출발
    다참

    조회수 30

    2026-07-23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도시가 식탁을 바꿀 수 있을까?

     

     

     

    한 도시가 시민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를 먹지 말자"고 제안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무엇을 먹을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고, 특히 고기를 사랑하는 문화권이라면 그런 제안은 반발만 부를 것 같다. 벨기에는 홍합과 감자튀김, 소고기 맥주 스튜로 유명한, 그야말로 육식의 나라다. 그런데 바로 그 벨기에의 한 도시가 세계 최초로 도시 차원의 '채식의 날'을 선언했고, 그것을 성공시켰다.

    인구 약 26만 명의 항구도시 겐트(Ghent).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에 위치한 이 도시는 2009513, 매주 목요일을 '채식의 날(Donderdag Veggiedag, 목요일 베지데이)'로 공식 선언했다. 시민들에게 목요일 하루만이라도 고기와 생선을 내려놓고 채식을 해보자는 캠페인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도시 전체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관공서 구내식당, 시립 학교와 어린이집이 목요일마다 채식 식단을 기본으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도시의 식당들이 채식 메뉴를 개발했으며, 시민들의 식습관 자체가 바뀌었다.

    겐트의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환경·건강·동물복지라는 공익적 가치가 어떻게 개인의 선택을 넘어 도시의 제도와 문화로 정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행정이 어떻게 협력했는지, 강제가 아닌 방식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기후위기 시대에 먹거리 정책을 고민하는 한국의 여러 도시, 그리고 경기도에도 실질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2. 시작 시민단체에서 출발한 아이디어

     

     

    /ⓒPexels

     

    겐트의 채식의 날은 정부가 위에서 만들어낸 정책이 아니었다. 그 출발점은 EVA(Ethisch Vegetarisch Alternatief, 윤리적 채식 대안)라는 벨기에의 채식 시민단체였다. 벨기에 최대의 채식 관련 비영리단체인 EVA는 플랑드르 지역 전역에 채식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EVA의 접근 방식은 영리했다. 처음부터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도시의 채식 친화적인 장소들, 즉 채식 메뉴를 파는 모든 식당, 호텔, 슈퍼마켓, 감자튀김 가게를 일일이 조사해 '채식 지도(Veggie Map)'를 만들었다. 이 지도를 본 식당들이 스스로 채식 메뉴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없던 수요가 지도를 통해 가시화되자, 공급이 따라온 것이다.

    2005년 플랑드르 정부가 재정 지원에 나섰고, EVA2007년 겐트시와 협력해 첫 번째 '목요일 베지데이'를 시작했다. 이 캠페인의 목적은 명확했다. 육류 소비를 줄이고, 환경을 지원하고, 윤리적 식생활을 받아들이며, 사람들에게 채식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9513, 겐트시의 환경·사회 담당 부시장 톰 발타자르(Tom Balthazar)가 매주 목요일을 공식 '채식의 날'로 선언하면서, 이 캠페인은 유럽 정치사에 기록되는 사건이 됐다. 시민단체가 씨앗을 뿌리고, 도시 정부가 그것을 제도로 공식화한 협력 모델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흥미롭게도 왜 하필 목요일이었는지에 대한 답은 의외로 소박하다. EVA 관계자에 따르면 목요일을 고른 것은 전략적 결정이라기보다 미적 선택에 가까웠다. 네덜란드어로 '돈더르닥 베지데이(Donderdag Veggiedag)'가 운율이 좋게 들렸기 때문이다. 거창한 명분보다 시민들이 기억하기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름을 택한 것이다.

     


     

    3. 왜 채식인가 환경·건강·동물복지의 교차점

     

     

    /ⓒPexels

     

    겐트가 채식의 날을 도입한 배경에는 명확한 근거들이 있었다. 채식이라는 하나의 실천이 환경, 건강, 동물복지라는 세 가지 공익적 가치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환경 측면의 근거가 가장 강력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당 부분이 축산업에서 발생한다고 평가해왔다. 가축, 특히 소가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효과를 가진다. 게다가 육류 생산은 막대한 양의 물과 토지를 소비한다. 겐트시는 이 논리를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수치로 번역했다. 겐트시의 계산에 따르면, 만약 243천 명의 겐트 시민 전체가 목요일 채식의 날에 참여한다면, 그 효과는 도로에서 자동차 19천 대를 없애는 것과 맞먹는다.

    건강 측면의 근거도 분명했다. 육류 섭취가 많은 식단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고, 이는 심혈관 질환, 일부 암, 당뇨병의 위험을 높인다. 세계보건기구와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심장질환, , 당뇨, 비만 예방을 위해 하루 최소 400그램 이상의 채소와 과일 섭취를 권고한다. 채식의 날은 시민들이 이 권고에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동물복지 측면의 가치도 빼놓을 수 없다. 육류 소비를 줄인다는 것은 곧 공장식 축산에서 고통받는 동물의 수를 줄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VA라는 단체의 이름 자체가 '윤리적 채식 대안'인 만큼, 동물에 대한 윤리적 고려는 이 캠페인의 근본 정신 중 하나였다.

    이 세 가지 가치가 하나의 실천으로 수렴된다는 점이 채식의 날의 강점이었다.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도,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도, 동물을 생각하는 사람도 모두 같은 행동에 동참할 수 있었다.

     


     

    4. 어떻게 정착시켰나 강제가 아닌 설계

     

    겐트의 채식의 날이 성공한 진짜 비결은 '어떻게'에 있다. 도시는 시민들에게 채식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채식이 자연스럽고 쉬운 선택이 되도록 환경을 설계했다.

    /ⓒPexels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 부문이 먼저 움직였다는 점이다. 2009년부터 겐트의 시립 학교와 어린이집은 목요일에 따뜻한 채식 점심을 기본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싸 오는 아이들에게도 목요일엔 채식으로 준비하도록 권장했다. 관공서 구내식당과 공공 서비스도 목요일엔 채식을 기본 메뉴로 삼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기본값(default)'이었다는 점이다. 고기를 원하는 학부모는 별도로 신청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채식이 제공됐다. 선택의 자유는 보장하되, 기본 방향을 채식으로 설정한 넛지(nudge) 전략이었다.

    식당과 요식업계를 끌어들인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겐트시와 EVA'베지케이션(Veguca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요리사들에게 채식 요리법을 교육했다. 도시는 채식 요리사 양성에 수만 유로를 투자했고,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채식 요리의 비법을 가르치는 강좌도 열었다. 채식이 '맛없는 희생'이 아니라 '맛있는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요리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자원을 집중한 것이다.

    소통 전략도 치밀했다. 겐트시는 25만 명의 시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매년 대규모 행사를 열고, 시민들이 참여를 약속하는 서명 명단을 만들고, 전용 웹사이트와 월간 매거진을 운영했다. 요리 강좌와 요리책을 통해 가정에서도 채식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눈에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런 다층적 설계의 결과, 채식의 날은 겐트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채식의 날은 2009년 미래세대를 위한 대상(Big Prize for Future Generations), 그 전해인 2008년에는 최고의 프로젝트로 식품건강상(Food and Health Award)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5. 성과 도시의 식탁이 바뀌다

     

     

    /ⓒPexels

     

    겐트의 채식의 날은 실제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을까. 수치들이 그 답을 보여준다.

    우선 시민 인지도와 참여율이 높았다. EVA에 따르면 겐트 시민의 다섯 명 중 네 명이 이 캠페인을 알고 있었고, 세 명 중 한 명이 참여했다. 캠페인이 특정 소수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문화로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식습관의 실질적 변화도 확인됐다. 연구에 따르면 벨기에인의 43%가 목요일 베지데이 덕분에 이전보다 고기를 덜 먹게 됐고, 40%는 목요일이 아닌 다른 날에도 채식을 하게 됐다. 하루의 캠페인이 일주일 전체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의 인구 구성 자체가 바뀌었다. 겐트의 채식 인구 비율은 약 7%에 이르러, 벨기에 전국 평균인 2.3%를 크게 웃돌게 됐다. 채식의 날이라는 정책이 실제로 더 많은 시민을 채식으로 이끌었다는 증거다.

    식당 생태계도 변했다. 캠페인 이전 겐트에서 채식 메뉴는 제한적이거나 아예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지금 겐트의 채식 지도에는 100곳이 훌쩍 넘는 음식점이 등록되어 있고, 완전 채식 식당만 15곳 안팎에 이른다. 겐트는 인구 대비 채식 식당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며 '유럽의 채식 수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국제적 파급력도 상당했다. 겐트의 사례는 캐나다에서 일본, 호주에서 스웨덴까지 국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브라질 상파울루, 독일 브레멘, 미국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등 세계 여러 도시가 유사한 캠페인을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벨기에 국내에서도 브뤼셀, 하셀트, 메헬렌 등이 목요일 채식의 날을 따랐다.

     


     

    6. 캠페인을 넘어 정책으로 '겐트 엔 가르드'

     

    겐트의 진정한 성취는 채식의 날을 일회성 캠페인으로 끝내지 않고, 도시의 종합적 먹거리 정책으로 발전시켰다는 데 있다.

    2013년 겐트시는 '겐트 엔 가르드(Gent en Garde)'라는 이름의 도시 먹거리 전략을 출범시켰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독자적인 도시 먹거리 정책을 수립한 사례 중 하나다. 이 전략은 짧고 지속 가능한 먹거리 공급망 구축,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 먹거리를 통한 사회적 부가가치 창출, 음식물 쓰레기 감축, 음식물 폐기물의 재활용이라는 다섯 가지 전략 목표를 중심으로 한다.

    겐트시는 이 전략을 이끌기 위해 농업, 유통, 요식업, 시민사회, 지식기관 등 먹거리 시스템의 다양한 부문에서 온 약 30명으로 구성된 '먹거리 위원회(Food Council)'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2018년부터 자체 예산을 갖고 혁신적인 먹거리 프로젝트를 지원해왔다. 연간 약 6만 유로의 예산으로 지금까지 27개 프로젝트가 지원을 받았다.

    성과는 구체적이다. '푸드세이버스(Foodsavers)' 프로젝트는 2년 만에 1,000톤이 넘는 잉여 식품을 57천 명 이상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했다. 채식의 날 캠페인은 이 종합 전략 안에서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으며 지속됐다.

    겐트의 먹거리 정책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2019년 유엔 글로벌 기후행동상을 받았고, 2021년에는 유로시티즈 어워드의 '농장에서 식탁까지' 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202111, 겐트는 벨기에 최초로 지역 단백질 전환 실행 계획을 발표하며, 2050년까지 기후중립적인 먹거리 공급망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캠페인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도시의 장기 비전으로 확장된 것이다. 개인의 실천에서 시작된 것이 제도와 문화로 정착하는 완결된 경로를 겐트는 보여준다.

     


     

    7. 한국·경기도와의 비교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한국에서도 채식 급식과 저탄소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겐트의 경험과 비교하면 접근 방식에서 배울 점이 뚜렷하다.

    한국의 여러 교육청과 지자체가 '채식의 날'이나 '그린 급식의 날'을 도입해왔다. 서울시교육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그린 급식 활성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한 달에 두 번 채식의 날을 운영하는 방침을 세웠고, 인천·울산·부산·전북·광주 등에서도 초중고 채식 급식을 도입했다. 경기도 역시 공공기관과 기업체 급식소 등에 '채식의 날' 운영을 권장하고 경기도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도록 채식 생활 실천을 지원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했다. 20259월에는 경기도의회·경기도교육청의 후원으로 '2025 기후급식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채식 급식 도입 과정에서는 갈등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채식의 날 방침을 내놓자 축산관련단체협의회가 "일방적 채식주의 확산 정책이 육식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조장한다"며 반발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채식급식이 나오는 날이면 동네 치킨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말이 나오거나, 성장기 학생들의 영양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조리 인력 부족 등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하는 교육 당국 관계자들도 있었다.

    겐트의 경험은 이런 갈등에 대한 힌트를 준다. 첫째, 겐트는 강제하지 않고 '기본값'으로 설정하되 선택권을 남겼다. 고기를 원하는 사람은 신청할 수 있게 함으로써 반발을 줄였다. 둘째, 겐트는 ''에 투자했다. 채식이 희생이 아니라 매력적인 선택이 되도록 요리사 교육과 메뉴 개발에 자원을 집중했다. 채식급식이 '먹을 게 없는 날'이 되면 실패하지만, '맛있는 새로운 경험'이 되면 성공한다. 셋째, 겐트는 시민단체와 행정이 협력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아니라, EVA라는 시민단체가 먼저 문화를 만들고 행정이 뒷받침하는 구조였기에 저항이 적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이런 접근이 효과를 보인 사례가 있다. 한 채식 급식 연구학교에서는 채식이 지구환경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는 학생 비율이 사전 59.2%에서 사후 90.9%로 크게 증가했다. 무작정 도입하기보다 구성원의 공감과 동참을 끌어내며 시행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결론이었다. 겐트의 교훈과 정확히 일치한다.

      


     

    8.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겐트의 사례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만한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공익적 가치는 '쉬운 실천'으로 번역될 때 확산된다. 겐트는 "기후를 위해 채식하라"는 거대한 구호 대신 "목요일 하루만 고기를 내려놓자"는 작고 구체적인 행동을 제안했다. 경기도의 환경·먹거리 공익활동도 시민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의 형태로 설계될 때 더 널리 퍼질 수 있다.

    둘째, 시민단체와 행정의 협력이 지속 가능성을 만든다. 겐트의 채식의 날은 EVA라는 시민단체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행정의 제도적 뒷받침으로 완성됐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와 같은 중간지원조직이 시민단체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행정의 자원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때, 공익활동이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지속적인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다.

    셋째, 기록과 확산이 변화를 굳힌다. 겐트가 채식 지도를 만들고, 성과를 수치로 측정하고,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경험을 공유한 것이 캠페인을 세계적 모델로 키웠다. 경기도의 공익활동도 그 과정과 성과가 꼼꼼히 기록되고 공유될 때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실제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아카이브에도 '기후 위기의 대안, 채식 밥상' 같은 콘텐츠가 기록되어 시민들에게 채식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지역의 먹거리·환경 공익활동을 기록하는 일은, 겐트가 그랬듯 작은 실천이 문화로 자리 잡는 과정을 뒷받침하는 일이다.

     


     

    마무리 하루의 변화가 도시를 바꾼다

     

    2009년 겐트가 목요일을 채식의 날로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육식의 나라에서 그런 시도가 성공할 리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 겐트는 유럽의 채식 수도가 됐고, 시민의 3분의 1이 채식의 날에 동참하며, 전국 평균의 세 배에 달하는 채식 인구를 가진 도시가 됐다.

    이 변화의 비결은 강제가 아니라 설계였다. 시민단체가 씨앗을 뿌리고, 도시가 그것을 제도로 키우고, 요리사와 학교와 식당이 함께 참여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하루, 그것도 일주일에 단 하루의 작은 변화가 도시 전체의 식탁을, 나아가 도시의 정체성을 바꿔놓았다.

    먹는 것만큼 개인적인 일도 없다. 그러나 겐트는 그 개인적인 선택이 모이면 도시를 바꾸고, 환경을 지키고, 문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경기도의 식탁 위에서도, 작은 실천 하나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상상해볼 만하다. 공익은 거창한 곳이 아니라, 목요일 점심 한 끼에서 시작될 수 있다.

     


      

    <참고 자료>

    - Stad Gent(겐트시) 공식 홈페이지 Sustainable food / Gent en Garde : https://stad.gent/en/city-governance-organisation/city-policy/making-ghent-climate-neutral-2050/gent-en-garde-towards-more-sustainable-food-system

    Visit Gent(겐트 관광청) Green travel and mindful food consumption : https://visit.gent.be/en/good-know/practical-information/why-ghent/green-travel-and-mindful-food-consumption

    SBS Food How Ghent in Belgium became the vegetarian capital of Europe : https://www.sbs.com.au/food/article/how-this-meat-loving-city-became-the-vegetarian-capital-of-europe/4blk3o39i

    - Mic How the meat-loving city of Ghent became the veggie capital of Europe : https://www.mic.com/articles/185650/how-the-meat-loving-city-of-ghent-became-the-veggie-capital-of-europe

    - NYC Food Policy Center Veggie Thursday, Ghent: Urban Food Policy Snapshot : https://www.nycfoodpolicy.org/veggie-thursday-ghent-urban-food-policy-snapshot/

    -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 Ghent en Garde: Creating Structural Change through Local Food Policy : https://unfccc.int/climate-action/momentum-for-change/planetary-health/ghent-en-garde

    - Eurocities Ghent's food revolution : https://eurocities.eu/stories/ghents-food-revolution/

    - Metropolis Ghent en Garde : https://use.metropolis.org/case-studies/ghent-en-garde

    - Interreg Europe Local food strategy Gent en Garde : https://www.interregeurope.eu/good-practices/local-food-strategy-gent-en-garde

    - Interreg Europe Gent en Garde Sustainable Food Strategy of Ghent : https://www.interregeurope.eu/good-practices/gent-en-garde-sustainable-food-strategy-of-ghent

    - Vegsphere Donderdag Veggiedag: Nearly 50% of Ghent population goes veggie every Thursday : https://vegsphere.com/blog/donderdag-veggiedag-nearly-50-ghent-population-goes-veggie-every-thursday/

     

    목요일엔 고기를 내려놓다 : 벨기에 겐트시 '채식의 날'이 보여주는 도시가 공익을 설계하는 방법

    조회수 71

    2026-07-20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작은 걸음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뉴스에서만 들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유난히 길어진 여름, 갑작스러운 폭우, 겨울인데도 포근한 날씨들이제는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들이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런 변화 앞에서 "나 혼자 뭘 할 수 있겠어"라고 손을 놓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기, 4년째 그 작은 손을 놓지 않고 꾸준히 이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안산 에코멘토 7조입니다.


    에코멘토 7조 팀원들이 시민 체험 부스에서 함께한 활동 현장

     

    에코멘토가 뭐예요? 4년의 역사부터 알고 가세요

    에코멘토는 안산환경재단이 운영하는 탄소중립 마을 실천가 프로그램입니다. 2050 탄소중립(Net Zero) 실현을 목표로 안산시민이 직접 리더가 되어 지역사회 곳곳에서 환경 실천 활동을 이끌어가는 시민 자원봉사 그룹이에요.

    안산시 안산환경재단 설립 및 운영 조례 제4(사업)에 근거해 운영되며, 현재 총 10개 조로 나뉘어 각 팀만의 슬로건과 특성에 맞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1조 새활용 손수건 사용 실천단

    - 2조 일회용 컵 수비대

    - 3조 분리배출 홍보단

    - 4조 플라스틱 수비대

    - 5조 절전 수호단

    - 6조 에코백 포인트가게 이용 캠페인

    - 7조 만보걷기 동호회

    - 8조 내 컵 가지기 실천단

    - 9조 줍킹 실천단

    - 10조 탄소중립 실천단

    그중 오늘 소개할 7조는 '만보걷기 동호회', 10명의 조원이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에코멘토는 해마다 환경 관련 새로운 역량교육을 통해 실력을 키우고,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캠페인 활동을 안산 곳곳에서 펼쳐오고 있습니다. 벌써 4년째 이어지는 이 활동은 단순히 캠페인만 하는 활동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함께 바꿔가는 실천의 기록입니다.

     

    안산혜윰 캠페인 SNS 스토리 화면 "시민과 함께 안산 생각"

     

    카프리(Car Free) 캠페인, 걷는 것이 곧 실천입니다

    2026년에도 에코멘토 7조는 힘차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주력하고 있는 캠페인 중 하나는 바로 '카프리(Car Free)'운동입니다. 카프리는 말 그대로 자동차 없이 이동하기 캠페인으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이렇습니다.

    - 가까운 곳은 걷기

    - 대중교통 이용하기

    - 자전거 타기

    - 공유차량 이용하기

     

    자동차는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교통 분야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덜 타거나, 다르게 타는 것'이에요. 에코멘토 7조는 이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실천을 직접 먼저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시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만보걷기 팀답게 걷기 자체가 탄소중립 실천이 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안산 시내 각종 행사와 캠페인 현장에서 시민들과 직접 만나고 있습니다.

    에코멘토 7조는 에너지 절약 실천 약속도 지켜가고 있습니다.

    - 비사용 공간 소등

    - 플러그 뽑기

    - 실내 적정온도 유지

    - 절수기기 이용

    이 약속들을 실천한 결과는 안산환경재단 넷제로 캠페인 플랫폼(eg21.kr)에서 인증사진을 올리면, 탄소 감축량을 직접 숫자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눈으로 보이는 변화는 활동가들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됩니다.

     

    에코멘토 부스에서 어린이 시민에게 환경 활동을 안내하는 활동가

     

    안산혜윰과 함께, 시민이 만드는 탄소중립 도시

    에코멘토 7조의 활동 현장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안산혜윰'로고가 새겨진 피켓과 배너입니다.

    안산혜윰은 '안산 생각'이라는 순우리말로, 시민과 함께 안산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브랜드입니다. 에코멘토 7조는 이 안산혜윰의 가치를 캠페인 현장에서 직접 실천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날, 환경의 날 등 시민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에코멘토 팀은 직접 부스를 운영하며 아이들과 가족 시민들에게 탄소중립 실천 방법을 알기 쉽게 소개합니다. 매듭 공예 체험, 색칠 활동, 환경 퀴즈 등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아이들도 즐겁게 환경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에코멘토 활동의 핵심은 강요가 아닌 공감, 지시가 아닌 함께하는 실천입니다. 7조 조원들은 자신이 먼저 실천하고, 그 경험을 이웃과 나누며, 그 나눔이 다시 새로운 실천을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믿고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 안산혜윰 안산생각' 원형 피켓 에코멘토 활동 현장에서

     

    오늘도, 내일도 꾸준한 발걸음이 세상을 바꿉니다

    에코멘토 7조는 대단한 장비도, 큰 예산도 없습니다. 오직 자발적으로 모인 10명의 시민이 서로를 응원하며 이어가는 활동 입니다. 그럼에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이어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걷는 이 한 걸음이, 지구를 조금 더 낫게 만든다"는 믿음.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든든함.

    작은 움직임이 모이고, 이어지고, 퍼져나가 눈에 띄는 변화를 이끌어낼 그날까지 에코멘토 7조는 오늘도 걷고, 실천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모두가 에코멘토가 될 수 있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까운 거리를 걷고, 텀블러를 챙기고,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는 것. 그 작은 약속 하나하나가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큰 목표를 향한 진짜 힘이 됩니다.

    에코멘토 활동 및 넷제로 캠페인 참여 : www.eg21.kr

     
    걷고, 타고, 줄이고! 안산 에코멘토 7조가 만들어가는 넷제로
    안산사라

    조회수 223

    2026-06-30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쓰레기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하루에 자신이 버리는 쓰레기의 양을 가늠해 보신 적 있나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쓰레기는 여전히 지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런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론으로만 배운 내용은 잘 와닿지 않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군포시에서는 우리가 쓰레기를 버리고 난 이후에 이루어지는 쓰레기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일상 속 쓰레기 자원화와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공익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6 군포시 쓰레기 투어 포스터

     

    종량제봉투를 묶어 집 앞에 내놓고, 플라스틱과 종이를 분리수거함에 넣고 나면 우리는 대개 처리됐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때부터 쓰레기의 진짜 여정이 시작됩니다. 수거차에 실리고, 무게가 재어지고, 선별되고, 소각되고. 그 이후에 쓰레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쓰레기 투어에 동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군포시청 앞 등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나이 든 노인부터 이제 막 초등학교에 발을 들여놓은 어린이까지, 쓰레기 투어에 동행할 이들은 각기 나이와 배경은 달랐지만, 쓰레기의 여정에 동행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곧바로 버스에 올라 이날의 일정을 확인했습니다.

     

    2026 군포시 쓰레기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는 사람들

     

    군포시 쓰레기 투어는 군포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이하 지속협)에서 준비한 행사였는데요. 지속협은 군포시 자전거 교실, 군포환경한마당 등의 행사를 기획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날 행사에 함께한 설은혜 차장님은 지속협의 역할과 쓰레기 투어의 목적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지속협은 UN이 만든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이행하기 위해 시군구 단위로 만들어진 민관 협력 기구예요. 그래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후, 환경 보호, 사회·경제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활동은 환경 보호의 영역에 있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쓰레기를 잘 버려야 한다라고 말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쓰레기를 잘 버려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드리고자 쓰레기 투어를 기획하게 되었고 현재 3년째 진행하고 있답니다.”

     

    이번 쓰레기 투어의 목표를 들으면서 이번 여정에서 쓰레기에 대해서 다시금 배우게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 타지만 모두 재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 군포시환경관리소


    군포시환경관리소에 도착한 군포시 쓰레기 투어 참가자들

     

    쓰레기 투어가 향한 곳은 군포시환경관리소였습니다. 이곳은 탈 수 있는 쓰레기들이 모여 소각되는 공간입니다. 참가자들은 먼저 군포시환경관리소 담당자님에게 소각장 시설 전반에 관해 설명을 들으면서 이곳에서 어떻게 쓰레기가 처리되는지 공부했습니다.


     

    군포시환경관리소 소개 영상을 시청한 뒤, 담당자님에게 소각장 설비와 원리에 관해 설명을 듣는 모습

     

    실내 교육장에서는 먼저 쓰레기 처리와 자원순환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군포시환경관리소는 일반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긴 쓰레기들이 모여 소각되는 곳입니다. 군포시의 일반 쓰레기 종량제 봉투 겉에는 플라스틱, 음식물, 건전지, 도자기, 캔 등을 버리지 말라고 적혀 있는데요. 이 쓰레기들은 모두 타지 않는 쓰레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건전지나 부탄가스처럼 소각할 경우 폭발을 일으켜 위험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쓰레기의 경우, 폭발하게 되면 소각 설비를 멈추게 하기 때문에 쓰레기 처리 전반에 큰 어려움을 초래하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분리배출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군포시환경관리소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각된 재와 열이 자원으로 재활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쓰레기 소각로는 1,100이상으로 타오르기 때문에 이 열을 판매하여 수익금을 군포시로 보내고 있습니다. 쓰레기가 소각되고 남은 재도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비교적 무거운 바닥재와 흩날리는 비산재가 있습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닥재도 매립했는데요. 2~3년 전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업체로 보내 벽돌로 만들어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과 재까지 놓치지 않고 자원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쓰레기에도 많은 이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교육장을 벗어나 현장을 돌아보면서 실제로 쓰레기가 소각되고 있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카메라를 살펴보고 질의응답도 하면서 쓰레기 소각 과정을 현장감 있게 느껴보았습니다.


     

    쓰레기 소각을 진행하는 현장을 견학하고 있는 모습

     

    현장에 들어서자, 여러 대의 모니터와 시설 계통도, 각종 설비 상태를 확인하는 장비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소에는 쓰레기봉투 하나만 생각했지만, 이곳에서는 반입량, 처리 과정, 설비 상태, 안전관리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현장을 보면서 쓰레기 처리란 단순히 치우는 일이 아니라 도시가 멈추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생활 기반시설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답니다.

     

    두 번째 목적지, 다시 자원이 되기 위한 긴 여정 군포도시공사 새활용타운

     

    다음 목적지는 군포도시공사 새활용타운이었습니다. 새활용타운은 재활용으로 분류되는 쓰레기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군포도시공사 새활용타운에 도착한 쓰레기 투어 일행

     

    음식물부터 알루미늄 캔, 플라스틱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쓰레기가 모두 여기로 모입니다. 도착하고 나니 수많은 트럭과 지게차들이 분류한 쓰레기들을 나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에서도 담당자님께서 쓰레기 처리 과정에 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중에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쓰레기를 처리하시는 분들의 고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에 대한 현대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예산 문제 등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현대화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군포도시공사 새활용타운은 종량제 봉투에 담겨 온 재활용 쓰레기들을 사람이 하나하나 칼로 뜯어서 사람이 분류하는 상황입니다. 에어컨 설치도 미비한 상황이구요. 게다가 재활용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인분, 동물 사체,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 오물이 묻은 쓰레기 등을 무분별하게 버리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사람이 분류하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충격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부디 쓰레기를 올바르게 분리배출해 주시기를 바라요.”


    수작업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는 현장

     

    실제로 새활용타운 내부를 잠깐이나마 둘러보는 과정에서 본 현장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새활용타운에서는 폐식용유와 EM을 활용한 비누를 만드는 등 재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EM 비누는 온도와 습도에 매우 민감하고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굳는 데 최소 4주가 소요된다고 하는데요. 이런 까다로운 조건에도, 비누를 계속 만들면서 친환경 제품 활용 습관을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폐식용유를 활용한 EM 비누를 제작하는 현장

     

    군포도시공사 새활용타운에서는 쓰레기를 버릴 때 제대로 비우고, 헹구고, 올바르게 분리배출해야 자원으로 활용되는 과정이 수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쓰레기가 나를 떠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심코 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처음부터 잘 버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재활용품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재활용품이라고 내놓았다고 해서 모두가 실제 재활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재질이 섞여 있거나 오염이 심하면 다시 쓰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제대로 분리된 자원은 다시 원료가 되거나 새로운 제품으로 태어날 수 있죠.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거창한 기술 이전에 생활 속 작은 습관입니다. 음료병은 비우고, 라벨은 떼고, 뚜껑은 분리하고, 음식물이 묻은 용기는 헹구는 일. 귀찮아서 미루기 쉬운 행동들이지만, 현장에서는 그 차이가 아주 크게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목적지, 쓰레기는 묻혀도, 자원은 돌아오는 거야! -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점심시간을 지나 군포시 쓰레기 투어는 더 큰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입니다. 차량이 이동하는 동안 오전에 본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이어졌습니다. 쓰레기는 수거되고, 처리되고, 일부는 재활용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요? 수도권매립지는 그 질문에 답을 주는 장소였습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외부 전경

     

    수도권매립지는 서울의 쓰레기를 매립하던 난지도를 대체하여 만들어진 곳으로, 현재는 서울시, 인천시(옹진군 제외), 경기도(연천군 제외)의 쓰레기를 매립하는 공간입니다. 1 매립지와 제2 매립지의 매립은 종료되고 현재는 제3 매립지에 매립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매립지라고 하면 막연히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은 폐기물을 관리하고 자원화하며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한 거대한 시스템이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는 공간입니다. 수도권매립지의 규모는 약 1,600, 축구장이 약 2,300개 들어갈 정도로 거대합니다. 이 때문에 수도권매립지 견학은 전시관에서 전체 전경 모형을 보며 설명을 들은 후, 버스를 타고 현장을 둘러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수도권 폐기물 처리 흐름을 배우는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모습


     

    수도권매립지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전시 공간에서는 폐기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처리되는지 차근차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반입된 폐기물은 계량과 검사를 거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리되며, 매립이 필요한 경우에도 침출수와 가스, 악취, 비산먼지 등을 관리해야 합니다. 매립은 그냥 땅에 묻는 일이 아닙니다. 오염 물질이 주변 환경으로 퍼지지 않도록 시설을 갖추고, 발생하는 물과 가스를 모아 처리하며, 매립이 끝난 뒤에도 사후관리를 이어가는 복합적인 작업입니다. 특히 쓰레기를 매립하는 규모가 큰 만큼,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서는 쓰레기의 자원화에도 많은 노력을 쏟고 있었습니다. 음식물류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수는 바이오 가스화 과정을 거치고, 하수슬러지는 일정한 처리 과정을 통해 복토재나 보조연료 등으로 활용됩니다.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가스 역시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매립가스 발전소로 보내져 에너지로 활용합니다. 쓰레기의 자원화를 위해 많은 첨단 기술과 인력이 동원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 투어를 통해 본 수도권매립지 모습 1차 처리가 완료된 음폐수


    버스 투어를 통해 본 수도권매립지 모습 3 매립지 전경


    버스 투어를 통해 본 수도권매립지 모습 쓰레기를 매립하기 전 무게를 계량하는 곳

     

    혐오시설로 여겨지곤 하는 쓰레기 매립지가 지역사회와 충돌 없이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쓰레기를 매립한 부지는 쓰레기가 부패하면서 가스를 배출하고 부피가 줄어들면서 지대가 가라앉게 되는데요. 이 과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린 이후에 이 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제1 매립지는 안정화가 완료되어 골프장으로 활용하고 있고 이외에도 체육시설이나 야생화단지를 조성하여 매립지 근처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매립은 분명히 불가피한 일이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이죠.


    온실을 구경하며 화분을 고르고 있는 쓰레기 투어 일행

     

    쓰레기 투어의 막바지에는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정제하여 연료로 활용하고 있는 온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곳에서 자란 화분을 하나씩 나누어 주셔서 이날의 방문을 기념하는 특별한 선물이 되었답니다. 이곳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수도권 생활폐기물 처리 방식이 점점 그대로 묻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종량제 봉투에 담긴 생활폐기물도 무조건 매립되는 것이 아니라, 소각 등 처리 과정을 거친 뒤 남은 잔재물을 최소화해 관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땅은 한정되어 있고, 매립지는 지역사회와 환경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폐기물을 줄이고,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활용하고, 마지막에 남는 것만 안전하게 처리하는 쪽으로 쓰레기 처리 방향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설을 담당해 주신 선생님의 마지막 말은 쓰레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수도권매립지에서 쓰레기가 매립되기 전처리 과정과 매립 과정, 자원화 과정에 대해 설명드렸는데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쓰레기의 자원화보다 중요한 것이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원화를 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쓰레기의 양이 줄어드는 것만 못합니다.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쓰레기는 최대한 자원화하되, 여러분들께서도 쓰레기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찾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면 그 모든 시설과 기술에도 한계가 생기기 마련이죠. 가장 좋은 쓰레기는 결국 생기지 않은 쓰레기라는 사실을, 쓰레기 투어의 마지막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군포시 쓰레기 투어 기념품으로 받은 손수건

     

    이번 투어의 준비물에도 그 메시지가 숨어 있었습니다. 안내문에 적힌 준비물은 텀블러와 손수건이었습니다. 하루짜리 견학이지만 일회용품을 줄이는 실천을 함께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쓰레기 투어를 마치고 군포로 돌아오는 길에 지속협에서 준비한 퀴즈 상품과 기념품도 손수건, 자투리 천 카드 지갑, 자투리 천 앞치마 겸 행주 등 지속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것들이었는데요. 생각해 보면 환경을 살리기 위한 공익활동의 실천은 거창한 시설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카페에 갈 때 텀블러를 챙기는 일, 종이 타월 대신 손수건을 쓰는 일, 장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일, 필요한 만큼만 사고 남기지 않는 일, 배달 용기를 줄이는 일, 분리배출 전에 한 번 더 헹구는 일.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쓰레기의 양을 줄이고, 처리시설의 부담도 덜어줍니다.

     

    쓰레기 투어라는 이름은 조금 낯설었지만, 다녀오고 나니 참 잘 지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레기 투어라는 이름 때문에 버린 뒤를 보러 온 줄 알았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계속 버리기 전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쓰레기의 끝을 보러 갔다가, 오히려 생활의 시작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사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버릴지에 따라 쓰레기의 양도, 자원순환의 가능성도 달라집니다. 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긴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조금이라도 짧고 가볍게 만드는 일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덜 사고, 오래 쓰고, 제대로 나누어 버리는 작은 습관. 2026년 군포시 쓰레기 투어가 시민들에게 남긴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버리면 끝? 아니, 쓰레기의 여정은 이제 시작! - 2026 군포시 쓰레기 투어
    옐로 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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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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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헌국회 개원식 일동 념사진(출처_위키백과)

     

    다시 쉬는 날이 된 717

    717일 제헌절은 헌법이 제정된 1948년 이듬해부터 국경일공휴일이었다. 국경일(國慶日)은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는 날이니 헌법을 제정한 날이 빠질 수 없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1949101일 제정되었다. 31,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을 국경일로 삼았다. 2005년에 한글날이 추가되었다. 5일제 도입으로 2008년부터 제헌절과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올해부터 둘 다 다시 공휴일이다.

    공휴일(公休日)은 국가에서 정하여 쉬는 날이다. 특별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니 각자가 원하는 대로 쉬면 된다. 설날이나 추석은 전통적으로 하는 의례가 있지만, 제헌절은 그렇지 않다. 어린이날엔 어린이를 위해 뭔가를 하면 좋지만, 그렇다고 그날만 어린이를 존중하고 아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버이날이 공휴일이 아니라고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공휴일로 정하는 일은 꼭 그날만이 아니라 늘 함께 그날의 의미를 새기자는 뜻이다. 제헌절에 함께 쉼’(共休) 역시 평소에도 헌법의 의미를 생각하고 실천하자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1948531일 오후, 중앙청 홀에서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

    오전 제1차본회의에서 초대 국회의장으로 피선된 이승만이 개원사를 낭독하고 있다(출처_위키백과)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이 되기까지 헌법의 눈으로 보면

    먼저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이 되는 과정부터 헌법 관점에서 살피자. ‘공휴일에 관한 법률은 국경일법과 달리 202177일에서야 제정되었다. 그 이전에 공휴일의 법적 근거는 법률이 아니라 194964일 제정된 이래 개정되었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으로서 대통령령이다. 엄밀하게는 모든 시민이 함께 쉬는 게 아니라 관공서가 쉬는 것이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하고(헌법 제40),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을 정할 수 있다(헌법 제75). 헌법 제정 이후 한참 동안 공휴일제도는 헌법에 부합하지 않았다. 공휴일인 제헌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헌법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까닭이다.

     

    헌법은 시민의 법이다

    대개의 법령은 시민의 생활을 규율 대상으로 한다. , 시민은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 헌법은 다르다. 거의 모든 헌법 규정은 시민에게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에 의무를 지우는 내용이다. 국민의 기본 의무인 납세의 의무나 국방의 의무조차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는 헌법적 제한에 따라, 시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 부과가 전근대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법치주의에 따라 통제한다. 헌법은 제정 주체도 법률과는 다르다.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한다(헌법 제53조 참조). 헌법은 대한 국민이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헌법전문, 헌법 제130조 제2). 헌법은 명실공히 국민의 법이고 시민의 법이다.

     

    국민은 주권자로서(헌법 제1조 제2) 하나의 의사를 가진 통일체이다. 시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을 의미한다. 기본권의 주체인 모든 국민은 시민을 말한다. 어찌 보면 모순이다. 시민의 생각은 다 다른데, 그 의사를 하나로 모아 하나의 국가 의사로 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순적인 시민과 국민을 이어주는 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직업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활동이고, 직업 정치인의 정치는 시민의 정치 활동을 전제로 한다. 시민의 참정권을 비롯하여 탄핵 제도는 다양한 헌법 제도는 시민의 대표를 시민이 통제하는 장치다. 국민은 개헌을 통해 민주주의 제도를 얼마든지 새로이 창설할 수 있다.

    시민은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누리면서 공적인 이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존재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시민이라는 말은 시민의 공공적 성격을 강조하려고 민주를 덧붙인 것이다.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겼더니 모든 시민의 권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서 직접 민주제 또는 협치’(거버넌스)를 통해 시민의 직접 결정 또는 참여가 필요하게 되었다.

     

    함께 쉬어야 함께 결정할 수 있다

    서구의 근대 입헌주의에서 피선거권은 물론 선거권도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먹고 사는 문제로 골몰하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만 돌볼 뿐 함께 살아가는 공적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오늘날 레저(leisure)는 취미 생활에 한정되는 느낌의 용어지만, 넓은 의미의 은 생계 외에 사적 활동과 함께 공적 활동을 보장하는 전제 조건이다. 혼자 쉬지 않고 함께 쉬어야 함께 결정해야 할 일을 상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호 유진오-제헌헌법 초고 (출처_국가기록원)

     

    제헌헌법이 품은 공익의 정신

    제헌헌법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라는 제5조가 눈에 띈다. 공공복리(公共福利)는 지금 헌법 제37조 제2항에도 등장한다. 공휴일(公休日)에 함께 쉰다는 공휴(共休) 의미가 담긴 것처럼 공공’(公共)은 국민의 삶과 시민의 삶이 결합한 개념이다. 공공복리는 사회 전체로서 공익(公益)과 공동의 이익으로서 공익(共益)을 함께 말한다.

    제헌헌법은 위의 제5조 외에도 전문(前文)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문구는 현재 헌법의 전문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제헌헌법 이래 대한민국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는 자유주의적 또는 정치적 민주주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그리고 문화적 민주주의까지 포괄한다. 제헌헌법의 기초자인 유진오는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가 제헌헌법의 기본이념이라고 말한다. 과거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 즉 각인의 자유를 정치적으로 확보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도 각인의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인의 자유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다.

     

    자유방임주의 체제에서는 우승열패(優勝劣敗)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약자는 도리어 자유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상례(常例)라는 것이다.

    - 유진오, 제헌헌법의 기초자

     

    제헌헌법 제5조는 제84조로 이어진다. , 대한민국의 경제질서가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시민들이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해야 함께 쉼이 가능해지고 거기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활성화한다. 시민들이 연대하여 공공의 복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그것을 위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소수자 또는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선다.

     

    경기도 조례와 공익활동 헌법 정신의 구체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로고
     

    경기도에는 경기도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 활동 증진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그 목적은 경기도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공익 활동을 증진함으로써 경기도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조례 제1).

     

    시민사회는 시민, 법인 또는 단체 등 공익 활동을 하는 주체와 공익 활동의 영역이다(조례 제2조 제2). 공익 활동은 시민, 법인 또는 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공익성이 있는 활동으로 영리 또는 친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활동이다(조례 제2조 제4). 이때 시민은 지방자치단체의 구역 안에 주소를 가진 사람이어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등록한 외국인도 포함한다(조례 제2조 제1).

     

    위 조례의 기본 원칙은 각 주체가 상호 간의 다양성, 자발성 및 창조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조례 제3조 제1).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 정신의 구체화다.

     

    공화국은 군주가 통치하지 않는 국가의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들이 함께 결정하는 정치 체제다. 모든 시민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영역에서 동등해야 하므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 또는 계층이 우위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는 체제다.

    국민 또는 시민은 주권과 기본적 인권의 주체로서 국가의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신민(臣民)이 절대 아니다. 헌법은 인권의 주체 자격에서 국적을 따지지 않고 외국인에게도 인권을 보장한다.

     

    헌법의 민주공화국은 지금의 현실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 개념이다. 조례가 제시한 다양성, 자발성, 창조성은 시민으로서의 실천 목표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의 관계는 일차적으로는 시민과 국가의 관계다. 모든 국민, 즉 시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제1).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제1).

    헌법에서 시민과 시민의 관계는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의 자발성과 창조성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화주의에서는 국가의 공적(公的) 영역에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共同) 결정을 강화한다. 위의 조례에서 시민사회활성화위원회(조례 제7)와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조례 제15)를 설치한 맥락이다. 위원회와 센터는 시민의 의사와 참여 그리고 활동을 매개한다. 이들 조직은 기존의 선출직 공직자 또는 일반공무원과 나란히 시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중간 조직으로서 공공적 민주 정치를 확장한다.

     

    민주공화국은 시민들을 나누지 않는다

    사실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때로는 상충한다. 그렇지만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은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제로섬 게임 상태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반면, 권위주의 통치 체제는 오히려 시민들을 분리하여 통치(divide & rule)한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내국인과 외국인 등을 구별한다.

    민주공화국은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 반목이 생기지 않도록 제3의 길을 찾거나 조정과 타협을 끌어내려 한다. 시민들 사이 이해 충돌이 생길 때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일은 민주공화국의 공직자, 정치인, 시민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헌법은 시민이 직점 써 나가는 혁신의 법이다.

    이미지 제안] 시민들이 함께 토론하거나 집회하는 현장 사진

    헌법은 종이 위에 글자로 쓰인 법전이 아니다. 헌법은 시민이 매일매일 직접 써나가는 혁신의 법이다. 헌법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활짝 열려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고민은 누가 집권하도록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민주시민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 삶만 돌보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스러운 삶에 무관심 하다거나 사회의 부정의에 침묵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 가면서도 동료 시민과 함께 끊임없이 말하며 곁에 설 수 있는 사람이다.

     

    개헌은 조문 수정이 아니라 시민의 실천이다

    우리는 제헌 78주년을 지나면서 제헌헌법을 계승하면서도 핵의 위험과 기후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헌법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제헌헌법은 최초의 헌법인 점에서 헌법을 제정한 후에 그것을 구체화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순서를 밟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개헌은 단순히 헌법 조문을 수정하는 일이 아니다. 시민들의 실천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국회의 법률로써 해결하려 노력하고, 그것만으로 해소할 수 없는 문제를 찾아 국민적 합의를 거쳐 헌법에 담아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헌 문제는 시민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바꾸지 않는 추상적인 수사(修辭)에 머물거나 시민의 삶과 동떨어진 국가 조직의 변경 사안에만 골몰하게 된다.

    시민의 민주주의적 결정은 의회를 통한 방법 외에도 때로는 유권자 범주를 넘어서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또는 지역에 터 잡은 주민들의 직간접적 의사결정을 통해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의 재배치야말로 헌법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다.

     

    정치인이 개헌을 말할 때, 시민이 물어야 할 것들

    제헌의 주체가 국민 또는 시민이므로 개헌의 주체 또는 국민 또는 시민이다. 제헌절이 공휴일인 의미는 717일 하루의 휴일에 머물지 않는다. 공휴일이 된 제헌절은 민주시민이 함께 인간다운 삶과 쉼을 누리고 민주 공화주의의 정치를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늘 고민해야 하는 출발점이 되는 날이다.

    누군가 87년 헌법이 문제라고 말한다면, 그 헌법 탓에 국회에서 입법하지 못한 법률이 무엇이 있냐고 되물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이 헌법을 고치자고 말한다면, 다음을 따져 물어야 한다.

    ·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 일인지,

    · 그걸 위해 어떤 입법 활동을 했는지,

    · 개헌 이후에는 어떤 과정을 거쳐 목표하는 바를 성취할 것인지

    다양한 시민들의 의사를 결집한 국민의 의사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가 대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곁의 사람들과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묻고 살피며 돌보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온다.

     

    내가 곧 헌법이 된다

    인간다운 존엄한 삶을 살 권리의 주체는 각자 시민으로서 다 다르지만,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다를 수 있지만,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어야 나의 인간다운 삶이 전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민주시민으로서 공익을 생각한다고 함은 내가 가장 마지막에 권리를 주장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자리에 서는 일이다. 내가 존엄한 존재임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완전무결한 사회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는 아니다. 우리는 늘 국가 또는 사회의 부정의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때 내가 부정의에 대해 항의하고 소수자 또는 약자 편에 설 때, 내가 그리고 우리가 곧 헌법이 된다.

     

    제헌절, 우리 시대의 '제헌'을 시작하는 날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78년이 지나는 시점임에도 우리는 1945년 해방 이전과 해방 직후 또한 한국전쟁과 권위주의 시대에 있었던 부정의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더욱이 기후 위기와 같은 지구 차원의 문제 역시 풀어야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헌법의 밑바탕에 인권, 민주주의, 시민, 공익, 지방자치 등의 기초를 다지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래야 공휴일(公休日)이 된 제헌절이 공존과 공생을 위한 시작일이 되어 우리는 우리 시대 제헌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공휴일이 된 제헌절
    아주대학교 법학과 오동석 교수

    조회수 195

    2026-06-29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안전을 지나친다.

    휴대전화가 울린다.

    고령 어르신 실종. 발견 시 신고 바랍니다.”

    호우경보 발효. 외출을 자제하시고 침수 위험지역 접근을 삼가 바랍니다.”

    잠시 후 길을 걷다 이런 표지들을 마주친다.

    미끄럼 주의”, “공사 중”, “어린이 보호구역”.

    우리는 이런 문구들을 지나치게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때로는 무심코 넘기고, 때로는 알림을 끄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짧은 문장과 작은 표지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사고를 막고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경고가 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안전은 더 이상 개인의 주의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위험을 감지하고, 알리고, 함께 행동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안전안내문자와 안전표지판은 이러한 공익적 안전망의 가장 가까운 현장에 있다.

    이번 취재에서는 우리 일상 속 안전안내문자와 안전표지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실제 생활 속 예방 효과는 무엇인지, 그리고 시민이 함께 만들어야 할 안전문화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위험은 갑자기 오지만 안전은 미리 준비된다

    사고는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특징이 있다.

    집중호우, 폭염, 강풍, 산불, 화재, 교통사고, 감염병 등은 순간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멈추게 만든다. 그러나 많은 위험은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안전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사고를 줄이는 핵심 요소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위험의 인지

    둘째, 정보 전달

    셋째, 행동 변화

    이 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이 바로 안전안내문자와 안전표지판이다.

    안전은 사고가 난 뒤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멈추게 하는 것이다.

     

    손안의 경고 시스템, 안전안내문자

    안전안내문자는 재난 발생 또는 위험 상황을 시민에게 신속하게 전달하는 공공 커뮤니케이션이다.

    예전에는 재난 소식을 뉴스나 주변 사람을 통해 뒤늦게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휴대전화 문자 한 통으로 위험을 실시간 공유한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면 야외활동 자제를 안내하고,

    한파가 오면 수도 동파 예방을 알린다.

    호우가 예상되면 하천 접근 금지를 전달한다.

    문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행동을 유도하는 공익 메시지.

    예를 들어,

    외출 자제

    창문 고정

    지하차도 통행 금지

    실내 냉방 유지

    이런 문장은 시민이 위험을 인식하고 행동을 바꾸도록 돕는다.

     

    왜 사람들은 안전문자를 귀찮아할까

    인터뷰를 해보면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너무 자주 와서 안 보게 돼요.”

    지역이 아닌데 문자 와서 불편했어요.”

    알림 소리가 놀라워요.”

    실제로 반복되는 알림은 피로감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문자의 개수가 아니라 경각심의 감소다.

    사람은 익숙해질수록 위험을 과소평가한다.

    이를 정상성 편향이라고 부른다.

    설마 별일 있겠어.”

    이번에도 괜찮겠지.”

    이 생각이 사고를 키운다.

    안전문자는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험을 현실로 인식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다.

     

    거리 위의 무언의 안내자, 안전표지판

    안전표지판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위험을 알려준다.

    학교 앞의 어린이 보호구역,

    공사장 접근금지 표시,

    엘리베이터 비상안내,

    지하철 대피 유도선.

    우리는 매일 수십 개의 안전표지를 지나친다.

    표지판의 목적은 단순하다.

    사고를 예방하는 것.’

    표지판은 정보를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색과 형태, 상징으로 즉시 이해하게 만든다.

    빨간색은 금지,

    노란색은 주의,

    파란색은 지시,

    초록색은 안전과 피난.

    눈으로 보는 즉시 행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작은 표시 하나가 만드는 큰 변화

    지역 생활 현장을 취재해 보면 안전표지는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 있다.

    아파트 계단의 미끄럼 방지 안내,

    공원의 야간 이용 주의 표시,

    시장 내 소화기 위치 안내,

    횡단보도 주변 교통안전 표시.

    이 표지들은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다.

    하지만 위급한 순간에는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

    실제로 화재 상황에서 비상구 안내 표지가 생존율을 높였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재난은 순간이지만, 안전은 평소의 준비에서 시작된다.

     

    공익은 일상, 서로의 안전을 지키는 일

    공익이라는 말을 들으면 거대한 정책이나 국가사업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공익은 멀리 있지 않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지키는 것,

    재난문자를 확인하는 것,

    안전표지를 훼손하지 않는 것,

    위험 상황을 신고하는 것.

    이 작은 행동이 공동체 전체의 안전 수준을 높인다.

    특히 고령자, 어린이, 장애인처럼 정보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안전 정보는 더 중요하다.

    누군가에게는 문자 한 통이,

    표지 하나가,

    귀가할 수 있는 길이 된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안전문화

    최근 안전 시스템은 더 똑똑해지고 있다.

    지역 맞춤형 재난 알림,

    실시간 위험 안내,

    스마트 교통 표지,

    음성 안내 시스템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 안전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정보를 읽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안전은 전문가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여할 때 완성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 감수성

    안전 감수성이란 위험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예방 행동으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 생활 속에서 다음을 실천할 수 있다.

    안전안내문자는 반드시 확인하기

    안내 내용을 가족과 공유하기

    표지판을 무시하지 않기

    위험 요소 발견 시 신고하기

    아이와 어르신에게 안전정보 설명하기

    안전은 특별한 날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하루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생활 습관이다.

     

    안전은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다

    표지판은 인간의 실패를 전제로 만들어진다.

    멈추지 않을 수 있으니 신호를 만들고,

    넘어질 수 있으니 경고를 만든다.

    하지만 성숙한 사회는 규칙보다 문화가 앞선다.

    누가 보지 않아도 멈추고,

    알려주지 않아도 배려한다.

    공익은 통제가 아니라 관계의 기술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안전 규칙이 아니라 서로의 안전을 자연스럽게 챙기는 안전 감수성이다.

    우리는 하루를 평범하게 보내길 원한다.

    무사히 출근하고,

    안전하게 귀가하고,

    가족과 저녁을 먹는 일.

    그 평범함 뒤에는 수많은 안전장치가 있다.

    휴대전화의 짧은 문자,

    골목의 작은 표지판,

    누군가의 신고,

    보이지 않는 예방 시스템.

    안전안내문자와 안전표지판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서로에게 보내는 약속이다.

    당신의 일상이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안전안내문자와 안전표지판, 우리 일상을 바꾸는 공익의 언어
    럭비공

    조회수 246

    2026-06-29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 양 엄마 임선미 님

     

    날씨가 더워지니 올해 첫 수박을 샀다. 큰 쟁반에 놓고 쩍! 소리내며 가른다. 붉은 과육에 까만 씨에, 단물이 쟁반에 흐른다. 이래서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생의 마지막에 그린 수박 정물화에 ‘인생 만세(Viva la Vida)’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박을 한입 베어 먹으며, 나도 모르게 “비바 라 비다”를 외치니 말이다. 스페인어는 전혀 모르면서도 수박이 주는 달콤한 청량감에 삶의 기쁨을 노래한다.

    수박만이랴. 꽃과 나무와 하늘과 햇빛이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는 계절이다. 안산 상록구청 1층 갤러리 ‘혜안’에 가면 생명 가득한 그림을 볼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의 유화전(6월 12일~7월 3일)이다. 삶의 고통을 생명의 빛으로 그린 “빛의 정원, 또바기 유화전’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치유되고, 삶은 아름다웠다.”라 고백하는 사람. 세월호의 별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 양 엄마 임선미 님을 만나 보았다.

     

    또바기 유화전 갤러리 지킴이

    Q 또바기 유화전 축하합니다. 자기소개와 근황을 들려주세요.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 엄마 임선미입니다. 이번 전시회에 유화 여섯 작품을 냈어요. 한 10년 또바기 모임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어요. ‘또바기’는 아름다운 순우리말인데요.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겠다”는 모임이죠. 저는 원래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세월호 참사 전에는 어린이집 교사도 하고 아이돌보미도 했어요. 참사 이후에 도저히 아이들 보는 게 어려워서 못 하다가 올해 3월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어린이집 등원 도우미로 오전 두 시간 돌보는데, 세 살 네 살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아이들이 안기고 웃어주면 저도 모르게 웃게 돼요. 오늘도 아이들과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왔어요. 아이들이 주는 에너지가 참 커요. 집에 돌아올 때 기분이 좋아지고 삶에 의욕이 생겨요.

     

    연년생 두딸과 젊은 부부, 평범한 행복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Q 결혼 후에 계속 일하셨나요?

    결혼 전에는 광명시청에서 비정규직 공무원으로 근무했어요.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애들 키웠죠. 그때는 당연하게 그랬어요. 아이들도 직접 키우고 싶었고요. 두 딸을 연년생으로 낳아 키우며 전업주부로 오래 지냈죠. 둘째인 혜선이가 IMF 때 태어났는데, 남편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아끼고 살아도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죠. 그래도 아이들 키우는 재미로 버텼어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 봐도 행복했거든요. 애들이 중학교 가면서 어린이집 보조교사 일을 시작했고, 아이돌봄 서비스도 했어요. 저는 원래 아이들하고 있는 걸 좋아했어요. 아이들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노는 게 즐거웠어요.

    빛의 정원 또바기 유화전 리플릿 양면

     

    안산상록구청 1층 갤러리 혜안은 입구쪽 전시공간과 안쪽 공간이 벽 하나로 나뉘어진 열린 전시공간이다(좌)

    또바기 유화전은 갤러리 '혜안'의 안쪽 전시 공간. '빛의 정원' 포스터가 보인다(우)

    Q 지금 하고 있는 ‘빛의 정원-또바기 유화전’에는 언제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세월호 참사 이후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생명센터’를 운영했어요. 그 안에 여러 치유 프로그램이 있었죠. 도예도 하고 천아트도 하고 미술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끝난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그림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그림 선생님 강사료, 작업실에 그림 도구며 밥값까지 다 지원되니 계속할 수 있었어요. 와동성당 홍 신부님이 정말 큰 힘이 돼주셨어요. 신부님은 늘 우리를 가족처럼 대해주셨어요. 기도도 함께하고, 엄마들이 조금이라도 숨 쉴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셨죠. 그 덕분에 그림을 배우고 이렇게 전시회도 할 수 있게 됐어요.

    혜선이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길, 임선미 님 작품 '아득히 먼 곳'

    Q 그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그림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도 미술 시간이 제일 싫었어요. 소질도 없고 자신도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1년 늦게 들어왔어요. 다른 엄마들이 너무 잘 그리는 거예요. 저는 창피해서 제 그림을 다른 사람이 못 보게 돌려놓고 다녔어요. ‘나는 왜 이것밖에 못 그리지?’ 그랬는데 하다 보니까 조금씩 달라졌어요. 색을 쓰는 법도 배우고 빛을 표현하는 방법도 배우고요. 생각하며 그리다 보니 ‘똥손’이 ‘은손’ 정도는 된 거 같아요. 지금도 어렵지만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졌죠. 그림 그리는 시간을 좋아하고요.

     

    Q 그림 그린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던가요?

    가장 큰 건 마음이 치유되는 거죠.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 시간만큼은 그림에 집중하게 돼요. 저는 원래 음악 들으면서 뭘 못 하는 사람이에요.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림만 봐야 해요. 색을 맞추고 명암을 넣고 붓질하다 보면 집중하게 되고 마음이 정리되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힘들어서 한동안 쉰 적도 있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하고 싶더라고요. 왔더니 엄마들이 예전과 똑같이 맞아줬어요.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요. 그게 참 고마웠어요. 우리 세월호 엄마들은 서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거든요. 왜 힘든지, 왜 말이 없는지, 왜 갑자기 울게 되는지, 왜 쉬고 싶은지, 다 아니까요.

     

    꽃의 생명력이 뿜뿜하는 또바기 작품들

    Q 지금 함께 그림을 그리는 엄마들 이야기도 좀 해 주실까요?

    지금은 여덟 명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어요. 8반 엄마들이 많아요. 강지은(지상준 엄마), 고이경(임건우 엄마) 송미점(박선균 엄마), 이미숙(임현진 엄마) 이지연(김제훈 엄마), 그리고 1반 안명미(문지성 엄마), 10반 김경애(구보현 엄마), 그리고 저. 예전에 더 많을 때도 있었지만 힘들어서 떠난 분들도 있고 건강 문제로 못 나오는 분들도 있어요. 우리는 매주 화요일에 본오성당에 모여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림을 그려요. 그림 한 점 완성하기까지 몇 달 걸리기도 해요. 부지런한 어떤 엄마는 집에서도 계속 작업하지만 저는 화요일만 해요. 전시회를 열 때면 서로 작품을 봐주고 응원해요. 서로 비교하기보단 자기 작품을 끝까지 해낸다는 게 더 중요해요. 서로 응원하며 하죠. 건우 엄마가 디테일 표현이 탁월해요.

     


     

    혜선이는 아빠를 무척 좋아했다

    Q 혜선이 이야기해 주세요. 어떤 아이였나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어요. 제가 혜선이를 너무 이뻐해서 ‘우래기(우리애기)라 불렀어요. 연년생이었지만 혜원이도 동생을 ‘우래기’라고 했죠. 언니와 엄마를 무수리처럼 부리는데도 우리는 혜선이 말이라면 무조건 오케이였어요. 참 신기했어요. 삼겹살 비계도 발라 주고 바지락도 까줘야 하는 상전이었죠. 여섯 살 때부터 안경을 썼어요. 아기가 거꾸로 있어서 수술로 낳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태변을 먹어서 눈이 나빠진 게 아닌가 싶었어요. 선천적이라 라식도 라섹도 할 수 없는 상태라니 늘 마음이 쓰였죠. 집에서는 조용한 애가 학교 행사에선 노래하고 춤추는 걸 너무 잘했어요. 무대만 올라가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안산시 청소년 종합예술제에 나가서 2등을 한 적도 있어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혜선이가 집에 와서 울더라고요. 자기 팀이 더 잘했는데 친구가 1등을 한 게 억울했대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아, 우리 딸이 승부욕이 있구나. 노래를 정말 잘하는구나!’ 깜짝 놀랐어요. 평소에는 잘 몰랐던 모습이었죠.

     

    Q 혜선이의 꿈은 방송작가 국어 선생님이었잖아요?

    글 쓰는 걸 참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다고 했고, 나중에는 동국대 국문학과에 진학해서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나 꿈을 정했어. 수학여행 갔다와서 공부 열심히 할 거야.”라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돌아요. 2018년 11월 사단법인 한국방송작가협회가 혜선이를 ‘명예 방송작가’로 위촉해 줬어요. 명예회원증으로 혜선이의 꿈을 기억해 주니 감사히 받았어요. 저는 글쓰는 건 혜원이가 잘하고 음악 쪽 재능은 혜선이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일기도 열심히 썼고 글 쓰기 좋아했지만, 피아노도 잘 쳤고 노래도 정말 잘했어요. 절대음감이 있었어요. 혜원이가 먼저 음악 쪽으로 방향을 정하니 혜선이는 공부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어떤 길을 가도 자기 몫은 충분히 해냈을 아이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혜선(세실리아)

    Q 엄마로서 가장 미안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사춘기 때 일이에요. 친구 관계 때문에 왕따 비슷한 경험으로 힘들어했는데 제가 “혹시 너한테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한 적이 있어요. 부모로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 건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큰딸 혜원이도 이야기했어요.

    “엄마는 그때 무조건 혜선이 편을 들어줬어야 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혜선이는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었을 텐데 저는 오히려 상처를 준 거죠. 지금도 미안해요. 그리고 더위를 타고 땀을 많이 흘리는 혜선이는 에어컨 집에 살아본 적 없다는 게 마음 아파요. 에어컨 켜는 게 미안해요. 이모네 갔다오면 “엄마, 우리는 언제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으로 이사가?”라고 말하던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지금 우리는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에 사는데 혜선이는 없네요.

    사랑스런 혜선이

    Q 참사 이후 새롭게 알게 된 혜선이의 모습이 있나요?

    친구들을 만나면서 많이 알게 됐어요.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러더라고요.

    “혜선이는 늘 남을 먼저 챙겼어요.”

    “배려심이 많았어요.”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요. 남을 배려하느라 자기 속마음은 얼마나 숨겼을까 싶은 거죠. 그리고 엄마는 몰랐던 첫사랑 이야기도 있었어요. 학원 같이 다니던 친구였는데, 일기장에 그 아이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아, 우리 혜선이도 그런 감정을 느낄 만큼 컸구나’ 싶었어요.

    고2 수학여행 앞둔 봄날의 혜선

    Q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 기억은 무엇인가요?

    아직도 생생해요. 수학여행 가기 전에 캐리어를 사달라고 해서 분홍색 캐리어를 사줬어요.

    집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러더라고요.

    “엄마, 나 이거 끌고 가기 창피해.”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가방 메고 가는 애들이 더 창피하지. 너 인기 짱일 거야.”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도 분홍색 캐리어만 보면 그날 모습이 떠올라요. 계단을 내려가던 뒷모습, 목소리, 표정까지 다 기억나요. 내가 해 준 마지막 음식은 유부초밥이었어요. 평소에 별로 안 좋아하던 아이가 그날은 다섯 개나 먹고 갔어요. 제가 지금도 유부초밥을 잘 못 먹고 있어요.

     

    Q 지난 12년간 가족들은 어떻게 버텨왔나요?

    참사 후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활동을 같이 하면서도 남편은 힘들어하며 술로 버티는 시간이 길었어요. 일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았고요. 큰딸 혜원이도 마찬가지였어요. 원래 음악하던 아이였는데 결국 그 길을 포기해야 했어요. 참사 났을 때 같은 단원고 3학년이었으니 어땠겠어요. 혜원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곤 했어요. 세 식구 중에 제일 힘든 사람이 혜원이었으니까요. 글쓰기 응모에서 당첨돼서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을 통해 자기 미래를 다시 설계하고 돌아왔어요.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재수해서 대학에 갔어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 잘하다가 최근 더 높은 연봉으로 스카우트 돼서 이직한 게 너무 기특해요. 가족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온 것 같아요.

     

    혜선이를 생각하며 그렸어요. 작품 앞에서 전시회장 임선미 님(좌)/ 그림 앞에 선 혜선 아빠 박진오 님(우)

    Q 세월호 이후 임선미 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독해졌어요. 예전에도 할 말은 하는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더 그래요. 남 눈치를 덜 보고 남한테만 좋게 하려 하지 않게 됐어요. 가족들 챙기고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믿었건만, 세월호를 겪고 나니까 세상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는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어요. 하느님께 삿대질하며 원망하기도 했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그 과정을 버텨내면서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Q 지금 혜선이를 다시 만난다면 무엇을 보여주고 싶나요?

    많은 말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엄마가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 마음을 치유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게 됐다는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다시 어린이집 아이들과 잘 놀고 있다는 것도요. 혜선이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아이예요. 그래서 저는 그림을 그릴 때도, 어린이집 아이들과 놀 때도, 혜선이만 생각하면 미소가 넘쳐요. 제가 새로운 꿈을 꾸고 있어요. 혜선이가 음악을 좋아했듯, 저도 피아노를 배워서 성당에서 봉사하고 싶어요. 혜선이가 이런 엄마를 보면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지 않을까요. “엄마, 잘하고 있어.” 이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아요.

     

    Q ‘빛의 정원, 또바기 유화전’의 그림은 꽃과 자연이 많다. 특히 노란 해바라기가 생명력이 넘치게 피어 있다. 소재를 자연으로 택한 의미가 있을 거 같다.

    그렇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그렇지만 꽃과 자연이 우리 마음을 많이 위로하고 치유해 줬다.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노란색 꽃을 좋아하는 엄마들에게 노란 해바라기는 아이들 같다. 아이들의 웃음, 아이들의 생명력, 아이들과의 추억, 그리고 꿈, 모든 걸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꽃으로 피는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내 그림도 그렇다. 혜선이에게로 가는 ‘아득히 먼 곳’은 혜선이를 생각하며 그렸다. 빨간 동백꽃은 혜선이에게 못다 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림 그리기는 사랑스러운 우래기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노란꽃만그린건아니다. 현진 엄마 이미숙 님은 장미를 그리고 또 그렸다

    호박꽃도 노란색, 보현 엄마 김경애님 작품

     

      

    지성이 엄마 안명미 님은 자연과 함께 지성이 아빠 얼굴도 그렸다

    나무와 숲이 주는 치유. 선균 엄마 송미정님 작품 '힐링'

     

    파란 하늘과 하얀 목련이 혜선이로 보인다. 임선미 님 작품 '너와의 추억'

    아이를 생각하며 다녀온 '졸업여행'사진으로 그린 건우 엄마 고이경님 작품

     

    처연한 동백꽃 꽃술이 노랗다. 임선미 님의 작품 '못다한 사랑'

     

    "엄마 잘하고 있어! - 그림은 치유이자 딸의 목소리"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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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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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 앞에 선 사람들

     

    수요일 오후, 수원공동체라디오 스튜디오 안에 시민 한 명이 앉아 있다. 방송 경력도 없고, 유명인도 아니다. 그냥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다. 마이크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더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래된 수원 통닭거리 이야기, 어릴 적 팔달문 근처를 뛰어다니던 기억, 요즘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골목 가게 사장님의 말. 그 목소리가 96.3MHz를 타고 수원 전역으로 흘러나간다.

     

    스마트폰과 유튜브, 짧은 영상 콘텐츠가 일상이 된 시대다. 정보는 빠르게 소비되고 사람들의 관심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 속에서 라디오는 오래된 매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마음을 전할 수 있고, 화려한 영상이 없어도 사람의 일상과 감정을 연결할 수 있다. 특히 지역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전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공동체라디오다.

    경기도 수원시에 시민이 직접 참여해 지역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송국이 있다.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 어린이와 청소년, 시니어, 마을활동가, 자영업자,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시민이 방송 제작에 참여한다. 누군가는 직접 원고를 쓰고, 누군가는 인터뷰를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음악을 선곡하고 오디오 편집을 배운다. 시민의 삶이 그대로 방송 콘텐츠가 되는 곳이다.

     

    이번 취재에서는 수원공동체라디오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수원의 첫 공동체라디오, SoneFM의 시작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은 수원의 첫 공동체라디오 방송이다. 2021년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FM 96.3MHz 주파수 허가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같은 해 수원마을공동체미디어사회적협동조합이 설립되었고, 시민이 참여하는 지역 미디어 플랫폼 구축이 추진됐다.

     

    공동체라디오는 상업성과 청취율 중심의 일반 방송과는 방향이 다르다. 지역 주민이 직접 방송을 제작하고 지역 현안을 이야기하며, 마을의 문화와 삶을 기록하는 데 목적이 있다. , 시민이 단순한 청취자가 아니라 콘텐츠 생산자로 참여하는 방송이다.

     

    수원공동체라디오 역시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출발했다. 초기에는 방송 장비 구축과 스튜디오 마련, 방송 제작 교육 등 기반을 만드는 과정과 함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방송 교육 프로그램과 미디어 교육도 함께 진행되며 공동체 미디어의 토대를 다져나갔다.

     

    2022년에는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FM 개국 이전 단계였지만 시민들은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방송에 참여할 수 있었다. 마을 소식, 지역 인터뷰, 음악 프로그램, 생활 정보 등이 하나둘 만들어지면서 지역 주민과의 연결도 점차 확대됐다.

     

    그리고 2023714, 수원공동체라디오는 FM 96.3MHz 정식 개국을 알렸다. 시민들이 직접 만든 목소리가 실제 전파를 통해 수원 전역에 송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방송 개국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역 주민 스스로 지역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공미디어가 등장한 순간이기도 했다.

     

    현재 수원공동체라디오는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방송 내용은 지역 정보와 생활문화, 음악, 상권 홍보, 재난방송, 마을 소식 등 시민 생활과 밀접한 주제로 구성된다.

     

    사진/0,1,2

     

    마이크 앞에 서는 법을 가르친다 방송활동가 양성 교육

     

    수원공동체라디오는 단순히 방송만 송출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 미디어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사진 속 방송활동가 10기 모집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기적으로 시민 대상 방송 제작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방송활동가 과정은 56일부터 617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2시부터 4시까지 운영되며, 방송 기획부터 대본 작성, 라이브 방송 실습, 오디오 편집까지 실제 방송 제작 과정을 체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교육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차시 방송 기획, 2차시 방송 대본 작성, 3·4차시 라이브 방송 실습, 5차시 오디오 편집, 6차시 콘텐츠 제작과 수료식. 6주 동안 아무것도 모르던 시민이 실제 방송을 만들어 내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교육은 단순한 기술 전달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방송 제작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과 경험을 콘텐츠로 바라보게 된다. 평범한 골목길 이야기, 오래된 시장의 풍경, 지역의 작은 가게, 주민들의 삶과 추억이 방송 소재가 된다. 거창한 뉴스보다 더 깊은 공감과 지역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공동체라디오의 교육은 단순한 기술 전달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방송 제작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과 경험을 콘텐츠로 바라보게 된다.

     

    실제로 방송활동가 교육에 참여한 시민들 가운데는 이후 시민PD로 활동하거나 지역 행사와 마을 기록 활동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마이크 앞에 처음 앉던 날의 긴장이, 어느새 지역을 기록하는 힘이 된다.

     

    목소리- 지역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방식

     

    수원공동체라디오는 단순한 오디오 방송이 아니다. 지역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아카이브 역할을 하고 있다.

     

    대도시에서는 빠른 개발과 변화 속에서 오래된 마을의 기억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쉽게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공동체라디오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긴다.

    누군가는 동네 오래된 시장 이야기를 전하고, 누군가는 어린 시절 수원의 모습을 기억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현재의 마을 문제와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시간이 지나면 지역의 역사 자료이자 공동체 기록으로 남는다.

     

    특히 수원은 화성과 전통시장, 오래된 주거지와 신도시가 공존하는 도시다. 전통과 현대가 함께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세대와 문화가 섞여 있다. 공동체라디오는 이러한 수원의 복합적인 모습을 시민의 목소리로 담아낸다.

     

    지역 예술인과 소상공인들에게도 방송은 중요한 홍보 창구가 된다. 공연 정보와 지역 문화행사, 작은 가게 이야기 등이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지역경제와 문화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는 상업 방송에서 쉽게 다루지 않는 지역 밀착형 콘텐츠라는 점에서 공동체라디오만의 가치다.

     

    사람 냄새 나는 방송이 필요하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은 거대 플랫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사람들은 전국 단위, 글로벌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소비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이야기와 이웃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공동체라디오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역성과 공공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볼수 있다.

     

    수원공동체라디오 역시 시민이 직접 지역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단순한 취미 방송이 아니라 주민 참여 민주주의와 공동체 문화 형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세대별 의미도 다르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소외되기 쉬운 시니어 세대에게 공동체라디오는 새로운 소통 공간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활용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도 라디오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도 공동체라디오는 중요한 경험이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콘텐츠로 만들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은 표현력과 소통 능력을 키워준다.

     

    무엇보다 공동체라디오는 사람을 중심에 둔 방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보다 사람의 일상과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방송이기 때문이다.

     

    사진/3,4,5,67

     

    96.3MHz 누구나 함께하는 라디오를 향하여

     

    사진 속 문구처럼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96.3MHz, 누구나 함께하는 라디오를 지향하고 있다.

    이 문장에는 공동체라디오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방송은 특정 전문가나 유명인만의 영역이 아니라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수원공동체라디오는 지역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고 있다. 시민들은 방송 교육을 받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지역사회에 전하고 있다.

    또한 공동체라디오는 지역 네트워크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활동가와 시민단체, 문화예술인, 소상공인 등이 방송을 통해 연결되며 새로운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공동체라디오는 단순한 FM 방송을 넘어 팟캐스트와 유튜브, 온라인 스트리밍 등 다양한 플랫폼과 연계될 가능성도 크다. 지역 기반 콘텐츠가 디지털 플랫폼과 결합하면 더 많은 시민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을공동체 활동가와 시민단체, 문화예술인, 소상공인 등이 방송을 통해 연결되며 새로운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라디오가 단순한 기술이나 플랫폼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직접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공감하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라디오의 가장 큰 가치라는 것이다.

     

    모두의 목소리를 담아, 연결하는 소리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은 단순한 지역 방송국이 아니다. 시민의 일상과 지역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공동체 플랫폼이다.

    특히 시민이 직접 방송 제작에 참여하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공동체라디오는 지역사회 소통의 중요한 모델이 되고 있다.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96.3MHz 전파에는 단순한 방송 신호만이 아니라 수원 시민들의 삶과 기억,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사람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한 힘을 가진다. 그 목소리가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전파가 닿는곳 마다 공동체는 조금 더 가까워진다.

     

     

     
    시민이 만드는 방송, 수원공동체라디오 SoneFM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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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7
  • 소리가 비워진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수어연극 영지4기를 보고

    202653/ 모두예술극장

    (모두예술극장 입구)

    1. 걱정하는 자의 입장

    나는 수어통역사다. 동시에 수어로 노래하는 지구인수어공연단의 대표이기도 하고, 극단 유혹에서 무대에 서는 현직 배우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하면, 연극도 알고 수어도 안다. 그러니까 이 감상문은 순진한 관객의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하고, 비교하고, 납득하고, 다시 의심한 사람의 기록이다.

    수어연극 영지4기를 예약했을 때, 내 안에는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앉았다. 농인 배우들이 몸을 쓰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건 걱정이 아니었다.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대사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까? 수어를 언어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아름다운 춤으로 소비해 버리지는 않을까?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 하나. 연극이란 장르가 어디까지 수어로 가능할까?

    이 질문들을 품고 나는 53일 충정로 모두예술극장으로 향했다. 마치 면접관처럼. 아니, 정확히는 오랜 친구의 첫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처럼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90퍼센트지만 그래도 냉정하게 보겠다는 그 마음.

    (영지 포스터(출처 국립극단 홈페이지)

    2. 그래, 그들에겐 그들만의 세계가 있지 — 〈영지1기에서 4기까지

    연극 영지2019년에 처음 태어났다.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이 내놓은 청소년극 프로젝트로, '병목안'이라는 완벽해 보이는 통제된 마을에 별난 소녀 영지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상상 속 인물을 만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영지는 마을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다름이 세계를 바꾼다는 이야기. 1기는 그 씨앗이었다.

    2(2023)'접근성'이라는 단어가 붙기 시작한 시기다. 장애인 관객의 관람 장벽을 낮추려는 시도가 본격화됐다. 비장애인이 만든 연극에 장애인도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조금 열어준 방식. 배려는 배려이되, 주인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분명했다.

    3(2024)는 온라인 배리어프리 수어 버전이었다. 영상으로 수어 통역이 제공됐고, 당시 수어 해설을 지켜보던 연출이 문득 상상했다고 한다. '이 작품 전체를 수어로 올리면 어떨까?' 쉽게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4(2026). 수어가 무대 위 주언어가 되는 '완성형 수어연극'이다. 농인 배우 5, 청인 배우 1. 수어와 음성이 동시에 흐르지만 중심은 수어 쪽이다. 작가에게 '공연이 거듭될수록 하고 싶은 말이 달라졌느냐'고 누군가 물었다. 작가는 담담하게 답했다. '변함은 없어요. 단지 수어로 공연을 했을 뿐입니다.‘

    3. 입장 15분 전, 무대 위의 아이

    나를 처음 놀라게 한 것은 공연이 시작하고 나서가 아니었다. 입장이 시작된 15분 전이었다.

    무대에 배우가 나와 있었다. 혼자. 놀고 있었다.

    공연을 꽤 많이 보러 다녔지만, 주인공 배우가 입장 전부터 무대 위에서 혼자 노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신선한 충격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배우는 관객과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냥 자기 세계 안에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떤 단어를 떠올렸다. '농문화.' 청인이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농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감각과 세계. 우리는 그것을 농문화라고 부른다. 무대 위 그 아이는 농인의 세계를, 청인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그 고유한 세계를 이미 살고 있었다. 동시에 그것은 11살 영지만의 세계이기도 했다. 두 개의 세계가 겹쳐져 있었다. 농문화의 고립성과 아이의 고독함이 아직 조명도 바뀌지 않은 무대 위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연출의 의도인지 배우의 선택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 15분이 공연의 절반을 이미 설명해버렸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4. 수어는 언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증명했다

    막이 오르자 내 눈은 바빠졌다. 수어통역사의 눈은 손을 먼저 쫓는다. 그런데 이 배우들의 몸은 손에서 멈추지 않았다. 손이 말하는 동안 얼굴이 함께 말했고, 몸 전체가 문장이 되었다.

    농인 배우들은 판토마임에 가까운 신체 언어와 수어시(手語詩), 즉 수어문학의 형식을 능숙하게 활용했다. 그것은 수어가 단순한 손동작의 나열이 아니라 고유한 문법과 문학성을 가진 언어라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수어예술감독 이미선님이 인터뷰에서 말한 그대로였다. '나비가 날다'는 문장 하나도 손의 모양과 움직임으로 나비의 섬세한 날갯짓을 다채롭게 형상화할 수 있다고. 이론으로 알고 있던 것을 눈앞에서 보았다.

    주인공 영지 역의 박지영 배우는 압도적이었다. 3년 전 이 작품에서 수어 통역을 맡았던 그가, 이번에는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다. 11살 아이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그를 보면서, 나는 배우로서도 혀를 내둘렀다. 1분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 연습실에서 플랭크와 복근 운동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효정 역의 이소별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낯익은 얼굴이었지만, 무대 위에서 그는 달랐다. 순종적이던 효정이 영지를 만나며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수어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물 밖으로 나온 어린 물고기가 나에게도 투명 다리가 있었어 하고 외치는 장면'은 수어 특유의 표현력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소리가 없어도 목이 메었다.

    조명도 놀라웠다. 모두예술극장의 첨단 조명 장치들이 수어 연기와 맞물리면서 무대를 빛나고 화려하고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각 언어가 주언어인 무대에서 조명은 단순한 분위기 연출이 아니라 언어의 일부가 된다. 연출이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웃음도 있었다. 어른이 아이를 꾸짖는 장면에서, 영지는 시선을 살짝 피했다가 억울한 듯 다시 눈을 치켜떴다. 청인 아이라면 고개를 숙이겠지만, 농인은 시선을 피하면 대화가 끊긴다. 그 불가피한 눈맞춤이 반항처럼 보이는 농문화 특유의 개그 코드. 농인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나도 웃었다. 이쪽 세계를 아는 사람의 웃음으로.

     

    5. 게으른 해설사, 그리고 베리어프리는 누구의 것인가

    한 가지 내내 마음에 걸린 것이 있었다. '게으른 해설사'였다.

    수어 연극이라는 본질을 지키면서도 청인 관객을 완전히 내버려둘 수 없다는 현실적 고민이 낳은 존재, 소리꾼 신유진이 무대 한 켠에서 판소리로 간간이 해설을 얹었다.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 과하지 않았고, 판소리 특유의 질감이 수어 연기와 묘하게 어울렸다. 연출이 적절한 수위를 찾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 생각했다. 만약 해설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동안 농인들이 청인의 세계에서 느껴왔던 그 답답함을, 청인 관객들이 잠깐이라도 체감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언어를 모른 채로 그 세계에 던져지는 경험. 그래도 맥락이 읽히고, 감정이 전해지고, 어느 순간 손짓이 언어로 보이기 시작하는 그 경험. 그것이 사실 이 공연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 아닐까.

    하지만 나도 안다. 돈을 내고 온 관객에게 '장애 체험'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는, 예술가가 평생 씨름해야 할 질문이다. 이번 공연은 그 질문에 나름의 답을 찾았다. 나는 그 답에 80점쯤 주겠다. 나머지 20점은 다음 기수를 위해 남겨두겠다.

    공연 후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영지 역의 박지영 배우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지금까지의 베리어프리는 청인 중심이었다. 비장애인이 만든 세계에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달라야 한다. 배우도 스태프도 장애인이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베리어프리다.

    나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어통역사로서, 수어 공연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무대에 서는 배우로서 세 겹의 마음으로.

    영지'장애인도 볼 수 있는 연극'이 아니다. 농인이 주인공인 연극이다. 수어가 장식이 아니라 언어인 무대다. 그리고 그 무대를 보러 온 청인 관객들은, 처음으로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본다. 그 낯섦이 이 공연의 진짜 선물이다.

    나는 반짝이는 손들의 박수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소리 없이 흔들리는 두 손이 객석을 가득 채우던 그 순간, 연극이 어디까지 수어로 가능하냐는 내 질문에 무대가 조용히 답했다. 여기까지. 그리고 아직 더 남아 있다고.

     

    * 수어연극 영지4기는

    2026430일부터 510일까지 모두예술극장에서 공연됩니다.

     
    소리가 비워진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관리자

    조회수 199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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