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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교실로 향하는 중장년들, 그러나 질문은 남아 있다
최근 지역 곳곳에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평생학습관, 도서관, 대학, 복지관, 주민자치센터는 물론이고 경기도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중장년 지원사업도 확대되고 있다.


스마트폰 교육, 인문학 강좌, 취미활동, 재취업 교육, 자격증 과정, 창업 교육, 디지털 교육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사진 속 ‘경기 중장년 행복캠퍼스’ 교육과정 역시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40세 이상 65세 미만의 중장년을 대상으로 새로운 배움과 커뮤니티 활동, 사회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강좌에는 AI, 스마트폰, 글쓰기, 영상, 인문학, 관계 형성, 사회활동 등 중장년의 관심사가 폭넓게 담겨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한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교육을 받은 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많은 중장년에게 교육은 더 이상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니다.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사회와 연결되기 위한 생존 전략에 가깝다. 특히 50대와 60대에게 교육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연결된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배움과 일자리 사이에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교육은 많아졌지만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제한적이다.
교육 수료증은 남지만 실제 사회참여나 경제활동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약하다. 스마트폰을 배우고, AI를 배우고, 영상 제작을 배우지만 이를 통해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는 부족하다.
중장년 교육이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이제는 단순히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넘어 “배운 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누구와 연결할 것인가”, “어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새로운 일과 소득으로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중장년 교육의 목적은 더 많은 강좌를 개설하는 데 있지 않다. 진짜 과제는 배움이 개인의 역량을 넘어 지역사회와 연결되고, 다시 사회적 역할과 경제적 활동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중장년 교육의 현실, ‘배움은 많고 출구는 적다’
현재 중장년을 위한 교육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평생학습관에서는 외국어와 인문학,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배울 수 있다.
도서관에서는 글쓰기와 독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대학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중장년 캠퍼스와 생애전환 교육을 제공한다. 복지기관에서는 사회공헌과 재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의 양만 놓고 보면 중장년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많은 배움의 기회를 갖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교육의 ‘이후’다.
예를 들어 한 중장년이 스마트폰 교육을 수료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카카오톡 사용법, 사진 촬영, 모바일 결제, 지도 검색 등을 배운다. 최근에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며 영상을 제작하는 교육도 받고 있다. 하지만 교육이 끝난 뒤에는 다시 개인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배운 기술을 활용할 공간도 부족하고, 함께 활동할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강사나 교육기관과의 연결도 대부분 수료와 동시에 끊어진다. 결국 교육은 ‘좋은 경험’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교육과 활동의 단절, 그리고 교육과 일자리의 단절이다.
중장년 교육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는 ‘수료 이후의 공백’이다. 교육기관은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참여자 역시 만족도가 높다. 사진도 찍고 수료식도 한다. 하지만 3개월, 6개월이 지나면 참여자들의 상당수는 더 이상 관련 활동을 하지 않는다.
배운 것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현장’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은 교실에서 이루어지지만 사회참여는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교육이 지역의 실제 문제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배움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중장년에게 교육은 ‘두 번째 인생의 준비’다. 청년에게 교육이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면, 중장년에게 교육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중장년은 이미 오랜 직업 경험과 사회 경험을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 일했고, 사업을 했고, 자녀를 키웠으며,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했다. 어떤 사람은 기술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영업과 경영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요리, 돌봄, 교육, 안전, 행정, 상담 등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경험이 은퇴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회는 종종 중장년을 ‘은퇴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중장년은 능력을 잃은 세대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한 세대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경험과 새로운 기술을 연결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중장년을 ‘새로운 것을 배우기만 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지역공동체는 중장년의 두 번째 직장이 될 수 있다
중장년 교육과 지역공동체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학교와 교육기관은 지식을 제공하지만 지역사회는 그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지역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 1인 가구 증가, 독거 어르신의 안전 문제, 지역 환경 문제, 마을 기록의 부재, 소상공인의 홍보 부족, 지역축제 운영 인력 부족, 어린이와 청소년의 돌봄 문제 등 다양한 과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거대한 기업이나 전문기관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봉사’와 ‘일자리’ 사이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사회 활동에서 중장년이 가장 많이 겪는 문제 중 하나는 무급 활동의 한계다. 처음에는 봉사활동으로 시작한다. 사람을 만나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보람도 있다. 하지만 활동이 길어질수록 현실적인 문제가 나타난다.
교통비가 든다. 식비가 든다. 시간이 필요하다.
전문적인 기술을 요구하는 활동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활동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중장년에게 사회참여는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활동을 무급 노동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특히 은퇴 이후 새로운 소득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은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중장년 정책은 봉사와 취업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 제시해서는 안 된다.
그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일자리가 필요하다.
AI가 중장년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이유
AI는 일부 일자리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일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크다. 특히 중장년에게 중요한 것은 AI 개발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AI를 활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역의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은 SNS 홍보가 필요하지만 직접 글을 쓰고 사진을 편집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이때 AI와 콘텐츠 제작 기술을 배운 중장년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역의 비영리단체 역시 행사 홍보문, 카드뉴스, 보도자료, SNS 콘텐츠가 필요하다. 하지만 전문 인력을 고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중장년 콘텐츠 활동가는 이러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또한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AI 교육 수요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60대가 70대와 80대에게 스마트폰과 AI를 가르치는 구조도 가능하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다.
AI는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한 번의 교육으로 끝낼 수 없다. 결국 AI 교육은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배우는 습관을 만드는 교육이어야 한다.
AI 교육, 이제는 ‘기술 교육’에서 ‘생활과 일의 도구’로
최근 중장년 교육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AI다.
하지만 많은 중장년은 AI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어려움을 느낀다.
“나는 컴퓨터도 잘 못하는데 AI를 배울 수 있을까?”
“젊은 사람들만 사용하는 것 아닌가?”
“영어를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AI가 너무 빨리 변해서 따라갈 수 없다.”
이러한 반응은 매우 자연스럽다. 문제는 AI 교육이 지나치게 기술 중심으로 진행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원리’, ‘생성형 AI의 구조’,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같은 전문 용어부터 시작하면 많은 학습자가 첫 단계에서 포기한다.
중장년 AI 교육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AI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보다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AI에 가장 필요한 것을 중장년은 가지고 있다.
AI 교육에서 자주 강조되는 것이 프롬프트다.
하지만 중장년에게 ‘프롬프트를 잘 써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부터 부담이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능력이다. 좋은 AI 활용은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AI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고 있다. 정보를 직접 찾는 시간은 줄어들 수 있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중장년의 인생 경험은 바로 이 판단력과 연결될 수 있다.
지역공동체와 AI가 만나면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앞으로 지역공동체는 AI 시대에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결국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AI는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 대학, 평생교육기관, 기업이 함께 참여하면 더 큰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구조가 만들어질 때 교육은 단순한 복지서비스를 넘어 지역 발전의 중요한 자원이 된다.
중장년은 지역사회의 ‘남는 인력’이 아니라 새로운 자원이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그러나 고령사회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중장년과 시니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그들을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면 사회적 비용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경험과 능력을 지역사회와 연결한다면 새로운 사회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중장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배우세요”라는 말이 아니다. “당신이 배운 것을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교육은 출발점이다.
그러나 배움이 활동으로 이어지고, 활동이 사회적 역할로 이어지며, 다시 작은 일자리와 경제활동으로 연결될 때 교육의 진정한 가치가 만들어진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AI는 중장년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다른 세대와 소통하며,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앞으로의 중장년 교육은 강의실 안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교실에서 배운 AI가 마을회관으로 가고, 도서관으로 가고, 시장으로 가고, 소상공인의 가게로 가고, 독거 어르신의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글쓰기 교육을 받은 사람이 지역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스마트폰 교육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어르신의 디지털 길잡이가 되며, AI를 배운 사람이 지역공동체의 홍보와 콘텐츠 제작을 돕는 구조.
바로 그 지점에서 중장년 교육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배움은 개인의 만족에서 끝나지 않는다.
배움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경기 중장년 행복캠퍼스와 같은 교육사업이 앞으로 ‘강좌를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중장년의 경험을 지역의 문제 해결과 새로운 일자리로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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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5※「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갑작스러운 집중호우와 산불 소식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다. 기후 위기는 이제 뉴스 속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와 일상에서 직접 마주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하남도 예외는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를 체감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지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함께 만든 ‘기후위기하남비상행동’은 기후 위기를 특정 단체나 몇몇 활동가만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 주민 한 사람의 작은 실천에서 출발해 시민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지역의 정책과 예산까지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남지역 100여 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으며 상임대표와 공동대표, 집행위원 등이 매월 지역의 기후 위기 과제를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현재 약 420명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25년에는 18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모두 271회의 활동을 펼쳤고, 약 5,200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올해도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거창한 행동보다 오늘 할 수 있는 것부터
기후 위기라고 하면 거대한 산업 구조나 탄소배출량 같은 어려운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기후위기하남비상행동’이 강조하는 것은 의외로 소박하다.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을 실천하고, 사용하지 않는 전등을 끄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고,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 올바른 분리배출을 실천하고 버려지는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업사이클링에 참여하는 것도 기후 행동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작은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은 행동이 반복되고 여러 사람의 행동이 모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후위기하남비상행동’은 기후예산학교와 에너지 정책 교육, 에너지 프로슈머 교육 등을 통해 시민들이 기후와 에너지 문제를 배우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프로슈머 교육은 시민을 단순히 에너지를 사용하는 소비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에너지를 생산하고 지역의 에너지 문제에 참여하는 주체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시민들의 관심은 2021년 에너지협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배움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다시 지역의 변화로 이어진 셈이다.

아이들의 플로깅에서 발견한 기후행동의 의미
기후 행동이 꼭 거창한 캠페인일 필요는 없다.
미사 호수 공원에서 한 초등학생이 친구들과 함께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일이 그 좋은 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놀이처럼 시작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쓰레기를 줍다 보니 주변의 쓰레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쓰레기가 많이 버려지는지, 왜 제대로 분리 배출되지 않는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활동은 매주 토요일로 이어졌고 함께하는 친구들도 조금씩 늘어났다. 어른들이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직접 쓰레기를 하나 줍는 행동이 더 큰 울림을 줄 때도 있다. 이처럼 기후 행동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쓰레기 하나를 줍는 것, 일회용품 하나를 줄이는 것,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기후위기하남비상행동’이 매년 진행하는 나무 심기 역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탄소를 줄이고 미래세대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의 실천을 넘어 시민의 연대로
물론 개인의 실천만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내가 텀블러를 사용하고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실천이 수천 명, 수만 명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책과 제도를 움직일 때 더 큰 변화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기후위기하남비상행동’은 생활 속 실천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역 개발사업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토론회와 간담회 등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며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어느 한 주체의 노력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시민은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문제를 발견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시민사회는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정책으로 제안해야 한다. 지방정부와 정치인은 이를 정책과 예산, 제도로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 기업 역시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탄소와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전문 활동가가 아니어도 작은 활동가가 될 수 있습니다”
기후·환경 활동이 확대되면서 또 하나의 고민도 생긴다. 일부 전문 활동가에게 너무 많은 역할이 집중되면 활동가들이 지치고 결국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하남비상행동’ H대표는 “모두가 전문적인 활동가가 될 필요는 없다”며 “각자의 여력에 맞게 작은 활동가가 되어 참여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기후 위기 앞에서 느끼는 우리의 무력감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어 보인다. 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군가는 나무를 심고, 누군가는 플로깅을 하고, 누군가는 정책을 공부하고, 또 누군가는 주변 사람에게 기후 위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각자의 작은 행동이 모이면 하나의 커다란 시민의 힘이 된다.
‘나 하나쯤이야’에서 ‘나부터’, 그리고 ‘우리 함께’로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거대한 결심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변화는 언제나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나부터 해보자’고 마음먹는 것.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함께 해보자’고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것.
그렇게 한 사람의 실천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의 행동이 마을의 움직임이 되고, 마을의 목소리가 정책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길에 정답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걸어가는 길에서 쓰레기 하나를 줍는 것부터, 사용하지 않는 전등 하나를 끄는 것부터, 이웃과 기후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작은 실천이 시민의 연대가 되고, 시민의 연대가 정책의 변화가 될 때 하남의 내일도 달라질 수 있다. ‘기후위기하남비상행동’의 활동이 단순한 환경 캠페인을 넘어 시민이 주인이 되어 지역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움직임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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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5※「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동체 안전강사, 그들이 지키는 우리 동네
큰 사고는 늘 제도의 허점을 드러냅니다. 세월호 참사도 그랬습니다. 국가 재난 대응 체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위기의 순간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사회 전반에 던져졌습니다.

그 움직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공동체 안전강사'입니다. 이들은 관공서가 주도하는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주민들이 늘 오가는 도서관, 협동조합 강의실, 경로당 같은 생활 공간을 직접 찾아가 교육합니다. 크고 화려한 행사가 아니라, 작지만 꾸준한 만남을 통해 마을의 안전 감수성을 조금씩 높여가는 방식입니다.
올해로 이 활동은 4년째를 맞이했습니다. 한 번의 교육으로 끝나지 않고 해마다 이어지는 이 활동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마을에 어떤 변화를 남기고 있는지를 이번 호에서 짚어보고자 합니다.

1. 공동체 안전강사,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공동체 안전강사는 특별한 국가자격을 가진 외부 전문가가 아닙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온 주민이 직접 자격과정을 이수하고, 스스로 마을의 강사가 되는 구조입니다. 이 과정을 운영하는 곳은 청소년이꿈꾸는사월 공동체이며, (재)4·16재단과 사랑의열매(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후원을 바탕으로 진행됩니다.

4·16재단은 세월호 가족과 국민이 함께 세운 비영리 민간 재단으로, "아이들이 마음껏 꿈꾸는, 일상이 안전한 사회"라는 비전 아래 생명과 안전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4·16생명안전공원 조성이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입니다. 사랑의열매(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99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에 따라 설립된, 국내에서 유일하게 법으로 정해진 모금·배분기관입니다. 아동과 청소년, 장애인, 노인, 여성, 지역사회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 국민의 성금을 공정하게 나누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이처럼 신뢰할 수 있는 두 기관의 후원을 받는다는 사실은, 공동체 안전강사 활동이 특정 개인의 의욕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검증된 체계 위에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격과정을 마쳤다고 곧바로 혼자 강의에 나서는 것도 아닙니다. 먼저 경험 많은 선배 강사의 수업에 동행하며 실제 현장을 참관하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뒤에야 독립적으로 교육을 맡게 됩니다. 이런 단계적인 양성 방식은 강사에 따라 교육 품질이 들쭉날쭉해지는 것을 막고, 어느 마을에서든 일정한 수준의 교육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공동체 안전강사가 다루는 내용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넓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화재 발생 시 대처 요령, 비상구를 찾는 법 같은 기본적인 생활 안전 지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여기에 지진이 났을 때의 행동 수칙, 화재 발생 인명피해 자료 같은 근거 자료를 곁들여,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안전 수칙의 필요성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 범위는 민주시민교육까지 확장됐습니다. 재난 상황에서의 행동 요령만이 아니라, 평소 이웃을 살피고 서로를 돌보는 태도 역시 넓은 의미의 안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화재 대피 상황에서 거동이 불편한 이웃을 먼저 챙기는 태도, 낯선 이웃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작은 습관까지도 이제는 이들의 교육 안에 포함됩니다.
2026년부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강의실에서의 이론 수업을 넘어 실외에서 진행하는 대피훈련도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머리를 감싸고 몸을 낮추는 동작을 실제로 반복해서 몸에 익히는 방식입니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과, 몸이 먼저 반응할 정도로 익힌 것 사이에는 실제 위기 상황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 그동안 현장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교육을 듣는 대상 역시 폭이 넓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부터 성인, 시니어, 장애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참여자가 있으면 대피 동선을 미리 점검하고, 참여자 구성에 따라 설명 속도나 용어, 실습 강도를 매번 다르게 조정합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나란히 앉아 같은 내용을 배우는 풍경은, 이 활동이 지향하는 '안전은 예외 없이 모두의 몫'이라는 가치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3. 매년 반복되는 배움, 강사들의 보수교육
공동체 안전강사에게는 한 번의 자격취득으로 끝나지 않는 배움의 과정이 있습니다. 해마다 진행되는 전문 보수교육이 그것입니다. 새롭게 알려진 재난 대응 지침이나 실제 사고 사례를 분석해 교안에 반영하고, 강사들끼리 서로의 수업 방식을 참관하며 의견을 나누는 시간도 마련됩니다. 한 강사가 현장에서 얻은 노하우가 다른 강사들에게 공유되면서, 전체적인 교육의 질이 함께 높아지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수교육 체계 덕분에 공동체 안전강사는 한때의 캠페인성 활동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전망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강사가 해마다 같은 마을을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 보니, 교육이 거듭될수록 강사와 주민 사이의 신뢰도 함께 두터워지고 있습니다. 4년이라는 기간은 한 사람의 강사가 초보에서 숙련자로 성장하기에도, 마을 주민들에게 익숙한 얼굴로 받아들여지기에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4. 안전누리교육원 진임순 대표에게 듣다
이 활동을 현장에서 이끌어 온 안전누리교육원 진임순 대표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Q. 처음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마을 단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처음에는 화재나 지진 같은 기본적인 생활 안전교육에서 출발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안전이라는 게 단순히 대처 요령을 아는 것 이상이라는 걸 느꼈어요."
Q. 교육 내용이 민주시민교육까지 넓어진 배경이 궁금합니다.
"평소에 서로를 돌아보는 태도가 쌓여야 정작 위급한 순간에도 서로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난 대응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웃을 돌보는 마음까지도 안전교육의 범위로 넣게 됐습니다."
Q.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싶으신가요?
"마을에서 시작한 작은 교육이 지역 전체의 안전망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계속 기록하고 싶습니다. 대피훈련처럼 몸으로 익히는 교육도 앞으로 더 늘려나갈 생각입니다."

공동체 안전강사 활동이 마을에 남기는 의미는 교육 그 자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과정은 경력단절여성이 다시 전문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육아나 가사로 오랫동안 일을 쉬었던 여성들이 자격과정을 거쳐,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안전교육 전문가로 다시 서게 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력단절여성에게 재취업의 문턱은 여전히 높습니다. 오랜 공백 기간과 낯선 업무 환경에 대한 부담, 자녀 돌봄과 병행해야 하는 현실적인 제약까지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전강사 과정은 학력이나 이전 경력보다 마을에 대한 이해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교육 일정도 마을 단위로 비교적 유동적으로 편성되는 경우가 많아, 가사나 돌봄과 병행하며 활동을 이어가기에도 수월한 편입니다.

이는 한 개인의 재취업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습니다. 마을 공동체가 스스로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고, 그렇게 길러진 인재가 다시 마을을 돌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과정을 거쳐 또 다른 진임순 대표가 마을 곳곳에서 나올 수 있다는 기대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세월호 참사가 남긴 물음은 여전히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물음을 잊지 않고 마을에서부터 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희망입니다. 생활 속 재난 대응 교육에서 출발해 시민의 태도를 가르치는 일로, 그리고 경력단절여성의 새로운 진로로까지 뻗어가는 공동체 안전강사의 걸음은 이제 4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거창한 구호보다 반복되는 실습이, 일방적인 강의보다 눈높이를 맞춘 대화가 마을을 더 안전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들은 지난 4년간 몸으로 보여줬습니다. 이들이 남긴 것은 단지 화재 대피 요령이나 지진 발생 시 행동 수칙 같은 지식만이 아닙니다. 위기 앞에서 이웃을 먼저 살피는 마음, 낯선 이에게도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는 꾸준함이야말로 이들이 마을에 남긴 진짜 자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시니어까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배우는 이 교실이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그리고 그 배움이 실제 위기의 순간 얼마나 많은 이웃을 지켜낼지는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이 걸음이 5년, 10년으로 이어지며 더 많은 마을에 안전의 씨앗을 심어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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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5※「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더위가 절정으로 다다르는 여름방학, 아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말은 다름 아닌 "심심해"일지도 모릅니다. 학교라는 일상의 리듬이 잠시 멈추고 나면 하루하루가 늘어지기 쉽고, 부모님들의 걱정도 함께 깊어지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올여름 우리 마을은 조금 달랐습니다.
이 특별한 프로그램은 초지종합사회복지관에서 모집한 '여름방학계획단'을 통해 첫걸음을 뗐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여름방학을 선물해줄지 고민하던 마을주민과 마을활동가들이 계획단으로 모이면서, 프로그램의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죠. 참여한 봉사자들의 면면도 다양했습니다. 복지관과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들은 물론, 거리가 제법 있는데도 오직 아이들을 위한 봉사라는 이유 하나로 기꺼이 시간을 내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마음을 모은 덕분에, 마을주민들과 마을활동가들이 오래전부터 머리를 맞대고 준비해 온 특별한 프로그램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닷새 동안 빼곡히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취재를 위해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현장을 오가며 느낀 것은,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안전, 정서, 공동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촘촘히 엮어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한 주의 문을 연 것은 보행안전 교육이었습니다.
강의실 스크린에는 "우리가 만들 키링의 이름은?"이라는 질문과 함께 "길을 건널 땐 좌우로 두리번, 두리번! 서다, 보다, 걷다! 약속해요"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떠 있었습니다. 강사님 두 분이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이어갔고, 아이들은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마다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키링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 키링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횡단보도를 건널 때 주변을 살피는 습관을 되새기게 해주는 작은 도구였습니다. 등하굣길에서 매일 마주치는 위험을 아이들 스스로 인식하게 만드는 이 활동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실제 생활과 가장 맞닿아 있는 교육이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습니다. 삐뚤빼뚤 보석십자수를 배치하는데 여념이 없는 아이들의 표정 속에는 진지함과 즐거움이 동시에 묻어났습니다.

두 번째 시간은 보드게임 챌린지였습니다.
전문 보드게임 회사와 함께 마련한 이 시간에는 닭 캐릭터가 그려진 카드게임부터 여러 상자가 준비된 협동형 보드게임까지 다양한 게임이 등장했습니다. 아이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카드를 뒤집고 순서를 기다리며 눈치싸움을 벌였고, 승부욕과 웃음이 뒤섞인 함성이 교실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이 활동을 이끈 것은 평소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보드게임 활동을 이어오던 동아리 회원들이었습니다. 교육이나 보드게임 관련 전문 자격을 갖춘 이들이 재능을 나누어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었고, 그 진심은 마지막 순서에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보드게임 상자를 손에 쥐여주는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브이 자를 그리며 활짝 웃는 아이들의 얼굴, 그리고 그 옆을 지키며 함께 웃던 어른들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진 단체사진을 찍는 시간은 가장 따뜻한 순간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루는 '반려돌'이라는 다소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소재가 등장했습니다.
유리로 된 둥근 볼 안에 하얗고 분홍빛이 도는 이끼를 색깔별로 정성스레 채워 넣고, 그 사이에 작은 다육식물과 돌 하나를 함께 넣어 나만의 작은 정원을 완성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돌멩이에 눈알 스티커를 붙이고 표정을 그려 넣으며 저마다의 개성을 담았고, 완성된 작품 옆에는 '반려돌 등록증'이라는 카드를 놓아 이름과 성별, 분양일, 보호자의 이름까지 적어 넣었습니다. 마치 진짜 반려동물을 입양하듯 정성껏 이름을 짓고 등록증을 채워가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작은 생명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돌보고 아끼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활동지를 펼쳐 놓고 다양한 감정 단어와 표정 그림을 살펴보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팔짱을 낀 채 골똘히 고민하는 아이, 옆 친구와 슬쩍 눈을 맞추며 웃는 아이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활동지를 채워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강사님은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아이들이 어떤 단어를 골랐는지, 왜 그 감정을 선택했는지 조곤조곤 물어봐 주었습니다. 이런 시간은 아이들에게 "네 감정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과정이었고, 생명과 존중이라는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낸 점이 특히 돋보였습니다.

한 주의 마지막은 몸으로 부대끼며 노는 시간으로 장식했습니다.
복도 한쪽에서는 계란판 위에 놓인 탁구공을 숟가락에 얹고 넘어뜨리지 않은 채 반환점을 돌아오는 이어달리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공이 떨어질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다가도 순서가 다가오면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붉은색 밴드를 팽팽하게 당겨 만든 도구를 두 사람씩 맞잡고 다 함께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협동 놀이가 펼쳐졌습니다. 리듬을 맞추지 못해 웃음이 터지는 순간도, 마침내 호흡이 맞아 다 같이 성공했을 때의 환호도 모두 이 프로그램이 남긴 소중한 장면이었습니다. 승패보다 함께 맞추어가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었던 이 시간은, 아이들에게 협동이란 결국 서로를 살피는 일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닷새간의 현장을 돌아보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이 모든 시간이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안전을 가르치는 손길, 정서를 어루만지는 손길, 몸으로 함께 뛰는 손길, 게임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고민했을 손길까지,
그 뒤에는 이름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마을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즐겁게 뛰어놀았을 뿐이지만, 그 즐거움 하나하나에는 안전하게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과 서로를 아끼는 법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스며 있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또 멀리서 시간을 내어 여름방학계획단으로 모인 마을주민과 마을활동가, 봉사자분들이 아이들만을 생각하며 프로그램을 준비했던 그 마음도 못지않게 따뜻했을 것입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던 여름방학의 일주일이 이렇게 채워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오래된 믿음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년 여름에도, 또 그다음 여름에도 이런 시간과 이런 마음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취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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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4※「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도입 —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배고픔

학교 급식이 끝나면 어디로 가는가. 방과 후 혼자 집에 돌아가는 아이, 냉장고를 열어도 먹을 것이 없는 아이,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로 저녁을 때우는 아이. 빈곤은 반드시 남루한 외모로 나타나지 않는다. 교복을 입고, 스마트폰을 들고, 학교에 나타나지만,
급식 외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빈곤' 속에 있다.
2010년대 초 일본 도쿄 오타구(大田区)의 작은 야채 가게 주인 곤도 히로코(近藤博子)는 인근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홀어머니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 식사를 챙겨줄 수 없는 아이가 있는데, 학교 급식 외에는 바나나 한 개로 하루를 버틴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이면 교감이 직접 집으로 마중을 나가 학교에서 주먹밥을 먹인 다음 점심 급식으로 연결한다고 했다.

곤도 씨는 충격을 받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졌다. 2012년 8월, 그녀는 자신의 야채 가게 한 켠에 '아이가 혼자 들어와도 괜찮은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아 '어린이 식당(こども食堂)'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열었다. 밥 한 끼를 같이 먹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25년, 일본 전역의 어린이 식당 수는 12,602개소에 달한다. 전국 공립 소학교 수의 약 70%에 해당하는 숫자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가 어떻게 일본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한국의 아동 돌봄 공백 문제에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지를 이 글에서 살펴본다.
2. 탄생과 확산 — 한 야채 가게에서 전국으로
곤도 히로코가 운영한 '기분내키는 대로 야채가게 단단(気まぐれ八百屋だんだん)'은 처음부터 특별한 공간이었다. 무농약 야채를 판매하는 이 가게는 점점 지역 주민들의 교류 공간이 됐고, 아이들의 학습 지원 공간이 됐으며, 어른들의 재학습 공간으로 발전해갔다. 그 연장선에서 2012년 8월 '단단 어린이 식당(だんだんこども食堂)'이 탄생했다.

'어린이 식당'이라는 이름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도쿄 도시마구(豊島区)에서 아동 지원 활동을 하던 NPO법인 '도시마 어린이 WAKUWAKU 네트워크'의 구리바야시 지에코(栗林知絵子)가 이 개념을 받아들여 자신의 지역에 어린이 식당을 열었고,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2015년에는 도시마구와 인정 NPO법인 도시마 어린이 WAKUWAKU 네트워크가 중심이 되어 '제1회 어린이 식당 서밋'이 열렸고, 전국에서 약 200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확산 속도는 놀라웠다. 2016년에는 전국 300여 개, 2018년에는 2,286개, 2019년에는 3,718개, 2020년에는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4,960개로 증가했다. 그리고 2024년에는 마침내 10,000개를 돌파해 10,867개에 달했고, 2025년 확정값으로는 12,602개소로 집계됐다. 운영 주체는 NPO법인, 지역 주민 그룹, 종교 단체, 기업, 개인 자원봉사자 등 다양하다. 개설 비용은 보통 수십만 엔 정도이며, 월 운영 비용도 수만 엔 수준으로 시작할 수 있다. 진입장벽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급속한 확산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무엇이 이 운동을 이렇게 빠르게 퍼뜨렸을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일본 사회에서 아동 빈곤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일본의 아동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높은 수준으로, 사회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둘째, 참여의 문턱이 매우 낮았다. 특별한 자격이나 자본 없이도 이웃의 마음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었다. 셋째, SNS를 통해 정보가 빠르게 공유됐다. '어린이 식당 만들기 강좌' 같은 실용적 정보가 퍼지며 따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3. 어린이 식당은 무엇인가 — 두 개의 축
어린이 식당을 단순한 급식 지원 시설로 보면 그 본질을 놓친다. 인정 NPO법인 전국 어린이 식당 지원센터 무스비에(むすびえ)의 정의에 따르면, 어린이 식당에는 두 개의 큰 축이 있다. 하나는 '아동 빈곤 대책'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 교류 거점'이다.
이 두 축의 공존이 중요하다. 만약 어린이 식당이 순수하게 빈곤 아동을 위한 시설로만 규정된다면, 이용 아동에게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어린이 식당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곳'이라는 포용성이다. 어려운 가정의 아이도,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지역 주민 누구나 와서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 특정 자격 요건 없이 열려 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도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올 수 있다.
실제로 2024년 무스비에의 조사에서 전체 어린이 식당의 71.7%가 '연령이나 속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이라고 답했다. 어린이 식당은 어린이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 전체가 함께하는 공동체의 식탁인 것이다.
메뉴는 대체로 단순하고 따뜻하다. 카레, 된장국, 야채 볶음, 주먹밥 같은 가정식이 중심이다. 요리를 하는 것은 동네 아주머니, 퇴직한 요리사, 가정주부, 학생 자원봉사자들이다. 음식값은 무료 또는 100~300엔(우리 돈으로 약 800~2,500원) 수준이다. 같은 식탁에 앉아 함께 먹고, 이야기 나누고, 숙제를 함께 하는 것이 핵심이다.
4. 전국 지원 네트워크 — 무스비에가 만드는 생태계
어린이 식당이 단순한 개별 활동의 집합을 넘어 사회적 운동으로 성장한 데는 전국 지원 네트워크 '무스비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2018년 설립된 무스비에는 '어린이 식당이 전국 어디에나 있고 모두가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장소가 되도록 환경을 정비한다'는 미션을 가진 인정 NPO법인이다. 이사장은 오랫동안 빈곤 문제에 관여해온 사회운동가 유아사 마코토(湯浅誠)다. 무스비에는 매년 전국 어린이 식당 수를 조사·발표하고, 운영 노하우를 공유하며, 지역 네트워크 단체들이 연결되도록 돕는다.

무스비에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지역 네트워크'의 중요성이다. 개별 어린이 식당들이 혼자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 내 식당들이 연결되어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지원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지속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치바현의 사례에서는 지역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업과의 협력도 활발하다. 편의점 체인, 식품 기업, 지역 슈퍼마켓들이 식재료를 기부하고, 기업 직원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방식의 협력이 자리 잡았다. 정부도 움직였다. 일본 내각부는 어린이 식당을 아동 빈곤 대책의 일환으로 인정하고, 지방 정부를 통한 재정 지원을 확대해왔다. 시작은 민간이었지만, 정부와 기업이 뒤에서 받쳐주는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5. 한국의 현실 — 급식카드와 지역아동센터의 한계
한국에도 결식 아동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있다. 크게 두 가지 축이다. 하나는 아동급식카드(급식 지원 카드)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아동센터다.
아동급식카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한부모 가정 등 18세 미만 취약계층 아동들의 결식 예방과 영양 개선을 위해 음식점 등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가 발급하는 카드다. 제도 자체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2026년 6월 국무조정실과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발표한 운영 실태 조사 결과는 제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2024년 기준 충전됐지만 사용되지 못하고 소멸된 금액이 약 171억 원으로 전체 충전금의 7.8%에 달했다. 충전금의 10%도 사용하지 않은 아동이 4,800여 명에 달했다. 카드 사용 시 아이가 느끼는 낙인감, 사용 방법 미숙지, 일부 부모의 부적정 사용 등이 원인으로 확인됐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카드가 '밥 한 끼'만 해결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혼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계산하는 경험, 식당에서 혼자 앉아 밥을 먹는 경험은,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따뜻함과 연결을 주지는 못한다.
지역아동센터는 돌봄 공백을 메우는 또 하나의 축이다. 2023년 기준 전국에 4,200여 개소가 운영되며 약 10만 명의 아동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아동센터는 자격 요건을 갖춘 아동을 대상으로 하고, 운영 시간이 제한적이며, 공간과 인력 부족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일반 아이들도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일본 어린이 식당의 '누구든 올 수 있다'는 포용성이 한국 지역아동센터에는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지 않다.
6. 무엇이 다른가 — 제도 대 문화
일본 어린이 식당과 한국의 아동 급식 지원 체계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제도 대 문화'의 차이다.
한국의 접근 방식은 본질적으로 제도적이다. 누가 지원 대상인지, 얼마를 지원할지, 어떤 방식으로 지급할지를 정부가 정하고 시민은 수혜자로서 그 제도에 접근한다. 제도는 효율적이고 확장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낙인의 문제, 사각지대의 문제, 따뜻한 관계의 부재 문제를 제도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일본 어린이 식당의 접근 방식은 본질적으로 문화적이다. 이웃이 이웃을 챙기는 것, 동네 어른이 아이의 밥을 함께 먹어주는 것이 기반이다. 제도가 없어도, 보조금이 없어도, 마음이 있으면 내일 당장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모이면서 문화가 만들어진다.

두 가지 접근이 상호 보완적일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일본도 처음에는 민간 문화 운동으로 시작됐지만, 이후 정부의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면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도 아동급식카드 같은 제도적 지원을 유지하면서, 그 위에 이웃이 함께 밥을 먹는 문화를 더하는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낙인 문제 해결의 측면에서도 어린이 식당 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취약계층 아동'이 아니라 '누구나 올 수 있는 동네 밥상'으로 프레이밍을 바꾸면,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손을 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7.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일본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비슷한 움직임이 이미 우리 곁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 자라난 '어릔이식당 작은숲’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는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에너지가 모여 '어릔이식당 작은숲'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식탁이 열리고 있다. 2024년 11월부터 매달 한 번씩 문을 여는 이 식당은, 어느 한 기관이 운영하는 곳이 아니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를 중심으로 15년간 다져온 '꿈마을공동체' — 지역 교회와 성당, 주민자치회, 작은 도서관, 학교, 복지관, 마을협동조합 등 20여 개 단체가 느슨하게 연결된 지역 네트워크 — 가 돌아가면서 식당을 열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각 단체가 1년에 한두 번만 담당하면 된다.
이 식당의 이름이 '어릔이식당'으로 표기되는 것은 오타가 아니다. '어린이'와 '어른'의 만남을 중의적으로 담은 것이다. 마을 기업 '나눔과이음'이 알록달록한 비빔밥을 준비하면, '한살림 북서울노원지구'는 주먹밥을 만들고, 수공예 작가 모임 '마디상회'는 라탄 바구니와 꽃병으로 식탁을 꾸민다. 중고생 청소년들은 손님으로도 오지만, 테이블 메니저로서 동생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말을 건네는 역할도 맡는다. 소박한 한 끼지만,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 운동의 핵심 키워드는 일본에서 온 개념인 '이바쇼(居場所)'다. 직역하면 '있을 곳'이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있어도 되는 곳, 평가받지 않는 곳,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말로는 '안식처', '비빌 언덕'에 가깝다. 어린이 식당은 밥을 주는 곳이 아니라, 이바쇼를 경험하는 곳이다.
'어릔이식당 작은숲'의 에너지는 공릉동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 2025년 10월 16일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서 열린 '어린이 식당 활동가 대회'에는 서울, 경기뿐 아니라 제주, 부산, 대구, 광주, 충북 등 전국에서 85명이 모였다. 복지관 사회복지사, 청소년센터 직원, 협동조합 구성원, 학부모 등 다양한 이들이 '어린이 식당'이라는 화두 하나로 연결됐다. 노원구에서는 상계동 청소년센터, 경춘선숲길 작은 도서관, 중계동 어린이도서관 근처 공간으로 점점 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세 가지 시사점
이 흐름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수 있는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낮은 진입장벽이 운동을 만든다. 어린이 식당이 12년 만에 12,000개소를 넘어선 비결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릉동 사례도 마찬가지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작은 싱크대 하나로 식당을 운영하고, 한 달에 한 번만 2층 로비를 어린이 식당으로 변신시킨다. 경기도 31개 시·군의 주민센터, 도서관, 복지관, 교회,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등 이미 존재하는 공간 어디든 충분한 조건이 된다.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것이 이 운동의 출발점이다.
둘째, 포용적 설계가 낙인을 없앤다. 아동급식카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낙인감이다. 카드를 꺼내는 순간 '지원 대상'임이 드러나는 구조가 사용을 꺼리게 만든다. 반면 어린이 식당은 누구나 오는 곳이기 때문에 낙인이 없다. 공릉동 어린이식당도 이 원칙을 그대로 따른다. 저소득을 증명할 필요가 없고, 자원봉사로 참여할 기회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무스비에는 이를 어린이 식당 운영의 5대 원칙 중 하나인 '포용성'으로 명시한다. 경기도의 먹거리 지원 정책을 설계할 때, '지원 대상'을 별도로 분리하기보다 지역 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포용적 공간을 만드는 방향이 낙인 문제 해결에 효과적일 수 있다.
셋째, 기록과 네트워크가 운동을 키운다. 무스비에가 매년 전국 어린이 식당 수를 조사·발표하고, 지역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온 것이 운동의 지속적 성장에 결정적이었다. 2025년 전국 활동가 대회가 보여주듯, 지금 한국에서도 어린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거나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경기도는 이 흐름을 받아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경기도 내 먹거리 돌봄 공익활동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유사한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면, 작은 시도들이 더 큰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곤도 히로코는 어린이 식당을 시작하며 거창한 사회 변혁을 꿈꾸지 않았다. "동네 아이가 바나나 한 개로 하루를 버틴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아주머니들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가게 한 켠에 밥상을 펼쳤다.
그 밥상이 12년이 지나 12,000개가 됐다. 전국 소학교 수의 70%에 달하는 숫자다. 매주 혹은 매달 문을 여는 그 밥상 앞에 앉아, 아이들은 밥 한 끼를 먹고,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에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경기도 어느 동네에서도 그런 밥상이 열릴 수 있다.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있고, 공간이 있고, 함께 할 이웃이 있으면 된다. 가장 오래된 공동체의 방식, 함께 밥 먹기가 가장 새로운 공익활동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공익은 언제나 밥 한 끼처럼 따뜻하고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된다.
마무리 — 밥 한 끼의 힘
곤도 히로코는 어린이 식당을 시작하며 거창한 사회 변혁을 꿈꾸지 않았다. "동네 아이가 바나나 한 개로 하루를 버틴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아주머니들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가게 한 켠에 밥상을 펼쳤다.
그 밥상이 12년이 지나 12,000개가 됐다. 전국 소학교 수의 70%에 달하는 숫자다. 매주 혹은 매달 문을 여는 그 밥상 앞에 앉아, 아이들은 밥 한 끼를 먹고,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에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서울 공릉동의 어릔이식당 작은숲이 보여주듯, 그 밥상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차려지기 시작했다. 경기도 어느 동네에서도 그런 밥상이 열릴 수 있다.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있고, 공간이 있고, 함께 할 이웃이 있으면 된다.
참고 자료
[출처 1] 무스비에 — 2025년도 전국 어린이 식당 수 조사(확정값, 12,602개소) : https://musubie.org/news/press/30036
[출처 2] 무스비에 — 2024년도 전국 어린이 식당 수 조사(확정값, 10,867개소) : https://musubie.org/news/press/11208
[출처 3] 무스비에 — 2024년 어린이 식당 10,000개소 돌파 보도자료 : https://musubie.org/news/press/10825
[출처 4] 무스비에 — 2023년도 전국 어린이 식당 수 조사(확정값, 9,132개소) : https://musubie.org/news/8560/
[출처 5] 무스비에 — 조사·연구 사업 페이지 : https://musubie.org/project/research/
[출처 7] 인정 NPO법인 카타리바 — 어린이 식당의 현황과 과제 : https://www.katariba.or.jp/news/2017/11/02/9882/
[출처 8] 오리카네 라보 — 어린이 식당이란? 역할과 취지 소개 : https://www.orikane.co.jp/orikanelab/18584/
[출처 9] 고단샤 코크리코 — 이름 붙인 사람 곤도 히로코 씨 인터뷰 : https://cocreco.kodansha.co.jp/cocreco/general/life/pHNqE
[출처 10] 닛케이 우먼 — 어린이 식당 1호 탄생 이야기 : https://woman.nikkei.com/atcl/column/23/013000056/112000032/
[출처 11] 이노베이션홀딩스 CSR — 곤도 히로코 씨 인터뷰 : https://www.ihd.co.jp/wp/csr/news/202502032573
[출처 12] 무스비에 10주년 사이트 — 지역에 뿌리 내리는 어린이 식당 : https://ks10th.musubie.org/interview/16
[출처 14] 정책브리핑 — 결식아동 급식카드 운영실태 조사결과 :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56767842
[출처 15] 대한급식신문 — 관리 사각 드러난 결식아동 급식카드 : https://www.f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367
[출처 16] 국가정보포털 — 아동급식지원 현황 통계 :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707
[출처 17] 공공데이터포털 — 보건복지부 지역아동센터 현황 2023년 : https://www.data.go.kr/data/15004404/fileDat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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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노조’ 하면 왜 남성 노동자를 떠올렸지?
인터뷰가 계속될수록 내 안에 올라오는 질문이었다. 8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 여공으로 일하다 TC전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조위원장이 된 사람.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안산과 서울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 서울지부장을 역임한 사람.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연장근로 수당 2.5배 쟁취하고, 서울 초등돌봄전담사 4시간 시간제 노동자들의 차별 시정 소송을 대법원 승소로 이끈 사람. 김정임 님은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여성 노동운동의 ‘역사’였다.

Q 역대급 폭염에 건강하게 활동하며 일하는 일상이 궁금하다.
현재 요양보호사로 주 5일 일하고 있다. 요즘 퇴근길에 더워서 서점에 들른다. 책 보며 마음을 식히다가 선선할 때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공원 산책하며 운동한다. 한 달에 한 번 수지 에니어그램 강사 모임에 참여하고, 줌(Zoom)을 통해 화상으로 스님과 책을 읽는다. 인사동에서 써클댄스도 추고 친구와 만나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도 부른다. 8월에는 딸과 사위들 생일에 부모님 제사까지 집안 행사로 바쁘지만 아주 즐겁게 보내고 있다.
Q 요양보호사로 좀 멀리 출퇴근한다고 들었다.
영등포에서 마곡으로 출근한다. 돌보는 어르신은 69세 파킨슨병으로 요양 등급 2급이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식탁과 의자를 깨끗이 닦는다. 파킨슨병 환자는 거동이 불편해 음식을 자꾸 흘리기 때문이다. 나는 식사 수발하고, 목욕시키고, 빨래 청소 음식 조리까지 한다. 가끔 휠체어로 공원산책도 하고 같이 장도 보고, 수명산 도서관에서 큰 글자 유아용 책을 빌려와 읽어드리거나 색칠 공부, 누워서 하는 요가 동작도 함께 한다.
왕복 출퇴근 시간만 2시간 넘지만, 서로가 잘 맞아 정성으로 마주하고 있다. 예전에 안산에서 서울로 경기도 전역으로 하루 4시간 출퇴근하며 활동하던 경험이 쌓여서 힘든 줄 모르고 한다. 한 달에 120만~150만원 4대 보험 빼면 빠듯한데, 큰 빚 없이 자립해서 감사하다.
Q 강사로 활동한다는 수지에니어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소개한다면?
'수지에니어그램'은 180장의 카드를 가슴과 양팔에 붙였다가 떼어가며 내가 누구인지, 나답게 사는 게 뭔지 ‘참 나를 찾는’ 프로그램이다. 수산나(수지) 선생님이 대안학교 청소녀들을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시작했는데 전국에 10개 센터와 해외에 2개센터를 두고 있다. 나는 9번 유형인데,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넓은 품과 조용한 힘이 있는 유형’이다. 나를 제대로 알면 나다운 삶을 살게 된다. 2018년부터 지인들에게 성당, 학교, 상담실과 집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하였고 일하는여성아카데미 교육위원으로 강의해 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부담 없이 수지에니어그램을 하는 게 꿈이다.


Q 청년 시절 마산수출자유지역 노동자로 들어갔고, 그 지역에서 노동 운동한 걸로 안다.
나는 거제도 출신이고 1남 5녀 중 셋째 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당연히 대학에 갈 줄 알고 모범생으로 공부했는데, 어머니가 강하게 반대했다. 남동생을 대학 보내야 한다는 이유였다. 울며 싸우다 결국 대학을 포기했다. 인문계 졸업하고 대학 안 가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동네 친구를 따라 공장에 취업하러 마산으로 갔다.
“고등학교까지 시켜놨더니 왜 공장에 가냐.”
내가 공장 간다니까 어머니는 울고불고 말리다가 쌀 한 되박을 싸서 보내주셨다.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있는 일본계 전자 회사에 들어가 도장 날인 작업을 했다. 나중에는 임금과 환경이 훨씬 좋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 ‘TC 전자’로 이직해 본격적인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Q 공장 생활 중 삶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고 했다. ‘아욱실리움 기숙사’와 ‘가톨릭여성회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가톨릭고등학교에 다닌 인연으로 살레시오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들어가 공장에 다녔다. 거긴 수녀님들과 함께 매일 새벽미사를 하였고, 1980년 광주 항쟁 비디오도 거기서 처음 볼 수 있었다. 가톨릭 여성회관에서 이경숙 선생님이 진행하는 ‘여성교실’ 강좌를 들었는데, 내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온 성차별,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공순이'라 불리며 받아온 차별이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알게 된 계기였다.
Q 그러다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7~9월 전국적으로 분출한 노동자들의 노동쟁의와 민주화운동) 당시 하루가 다르게 옆 공장들은 노조를 만드는데 우리 회사만 노조가 없었다. 어느 날 과장이 나를 불렀고, 현장분위기가 시끌시끌하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자 조회대 앞에 모아 놓고, 조용히 시키라며 나한테 마이크를 주었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여러분 어떻게 할까요? 일할까요? 나갈까요?” 뜻밖에도 모두 “나가자!”“나가자!”소리쳤다. 순식간에 1,500명이 넘는 여공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임금 인상하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회사는 목요일부터 4일간 휴업을 선포했고 우리들은 분임장 60명이 모여 아욱실리움 기숙사에 모여 밤새워 노조를 결성하였다, 월요일 노조 결성보고를 홍보하러 갔다가 회사 간부들에게 잡혀가 빨갱이라는 욕을 먹고 노조 간부였던 친구 2명과 함께 대구새마을연수 보내졌다. 2주후 회사로 복귀하니 60여명을 모아 놓고 노조강제 해산을 하게 했다. 그리고 기술과와 설비과로 부서이동을 당하였다. 온갖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1988년 5월 비밀리에 여성 동지들과 노조를 재창립했다.

Q 노조를 와해하려는 구사대의 폭력이 대단했을 텐데 어떻게 계속 싸울 수 있었나.
노조를 재창립하자 회사는 남자 구사대(救社隊, 노동운동 파괴를 목적으로 회사측이 만든 노동자 조직) 300명을 동원해 무자비한 폭행을 저질렀다. 온몸이 멍들고 집단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소식이 창원 지역 남성 노동자들에게 전해지면서 지역 전체의 투쟁으로 번졌고, 결국 회사로부터 노조 인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위장 폐업을 시도했고, 우리는 기계 출고를 막으며 1년 가까이 공장 점거 투쟁을 해야 했다. 198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전원 연행되었고, 나는 ‘업무방해 및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마산교도소와 원주교도소 독방에서 꼬박 실형을 살고 1991년 5월에 출소했다.
Q 감옥 생활은 어땠나? 감옥에 가기 전과 후를 비교해 달라.
내가 감옥에 가기 전 농성장에서 동지들과 농성장 사수팀과 재정팀으로 다양한 재정사업을 했다. 볼펜 판매 양말 판매 대학축제 때 김치전 판매도 하고, 서울 본사 대사관 부산 영사관등을 다녔다. 교도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독서와 편지쓰기였다. 원주교도소 독방에 홀로 수감되어 너무 외롭고 힘들 때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답장으로 마음을 나누었고, 출소하는 날 원주교도소 정문으로 그와 TC동지들이 대형 버스로 꽃다발과 두부를 들고 찾아왔다. 그도 나처럼 구속된 경험이 있어 노동자의 삶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것 같다. 그 후 1992년에 우리는 결혼했고 두 딸을 낳았다.
Q 경남의 여성 노동 활동가가 어떻게 안산시민이 되었나?
2003년 남편이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서 나를 올라오라 했다. 나는 마산창원 여성노동자회에서 일하며 지역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안산여노 회장과 남편이 먼저 만나 아파트 전세를 얻으니 나도 아이들과 함께 이사와서 다음 날부터 안산여성노동자회로 출근했다. 여성 노동자복지센터와 고용평등상담실을 맡았다. 한부모자녀들과 체험학습 등, 실업계고등학교 노동법·최저임금 내 권리찾기 등 강의활동과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 강사 활동을 하였다.
특히 직장 내 갑질과 최저임금 위반으로 힘들어하던 청소 노동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를 노동부 진정으로 처벌받게 하고, 출산·육아휴직 상담, 홈플러스 매대 노동자 상담으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를 노조 조합원으로 연결했다. 한양대 안산캠퍼스 청소미화원 조합원들과는 풍물과 민요를 함께 배우고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Q 그러다 안산을 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과 서울지부장이 된 건가.
안산시흥지부, 부천지부. 영양사지회. 사서지회가 주춧돌이 되어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를 창립하였고 나는 안산여노 고용평등상담실 일과 안산시흥지부장를 겸하다 경기지부 조직국장이 되었다. 이후 경기지부장이 되었다. 안산 한양대 청소미화원 조직과 안산 지역 고등학교 급식조리원들의 처우개선 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중식·석식으로 하루 4시간 넘게 연장근로를 하는데 학교는 2시간만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연장근로’ 근로기준법이 바뀌는 시점이었다. 조리원들은 억울해하며 어떻게 하면 일한 만큼 댓가를 받을 수 있는지 상담해 왔다. 공동교섭을 요구했으나 경기도 교육청은 사업주가 아니라며 교섭에 임할 수 없다고 했다.
1년 가까이 고등학교를 돌며 교섭을 벌인 결과 연장근로 수당을 1.5배가 아닌 2.5배로 받는 단체협약을 타결해 냈다. 또한 서울지부장 시절에는 시간제 돌봄전담사들을 조직하여 4시간 시간제 초등돌봄전담사들의 차별 시정 투쟁을 시작하여 지노위 중노위 지법 고법 대법원까지 가서 차별 시정 판정을 받았고 그동안 차별 받았던 것을 보상받았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억울하면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급식 조리원들도 초등돌봄전담사들도 똘똘 뭉쳐 싸운 결과다. 유능한 김재진 노무사님과 공감 변호사님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연대해 준 덕분이다.

Q 안산여성노동자회에서의 활동과 연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안산여노에서 근무할 때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이 주 업무였다. 직장 내에서 여성노동자가 받는 성차별과 불합리한 차별에 대한 상담전화를 받고 무료 변호사를 선임하여 행위자인 상사가 처벌받고 억울한 노동자가 제 자리로 돌아갈 때 행복했다.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이 삭감되니 퇴사했다. 그래도 한 달 한 번 ‘뚜뚜(뚜벅뚜벅 걷기)’ 소모임 회원들과 함께 걷고 여행한다. 늘 일에 쫓기고 바빴지만, 페미니즘 토론토임 ‘이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줌이라 퇴근 후 할 수 있어 좋다. 무디어지기 쉬운 여성 노동과 성평등 이슈를 다양한 연령의 남녀가 함께 책과 영화로 토론한다.

Q 평생 여성 노동운동을 해왔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싸워왔는데, 중년에 가장 저임금 돌봄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이런 여성의 노동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20대 때는 공장에서 ‘산업역군’이라며 착취당하고, 30~40대에는 IMF를 거치며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는데, 60이 된 지금도 최저임금 수준의 돌봄 노동자다. 그동안 대학원도 나오고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등 자격증을 땄지만 중년 여성노동은 여전히 단시간·저임금 비정규직이다. 급식, 청소, 돌봄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노동임에도 적정임금도 정당한 대우도 거리가 멀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며 그렇게 싸웠는데 딸 세대마저 2년 계약직을 전전하는 걸 볼 땐 마음이 아팠다. 싸우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걸 경험했는데, 세상은 여전히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요즘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평정심을 찾으려 한다.
Q 현재 삶에 어려움, 또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말해 달라.
남편과의 관계가 숙제로 남아 있다. 동지적으로 잘 살 줄 알았는데 그는 지금 나 말고 다른 곳이 좋다고 멀리 떠나 산다. 내가 오래 가슴에 품어온 버킷리스트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10월에 16박 17일로 친구들과 함께 다녀오게 됐다. 그리고 곧 태어날 첫 손주 만날 날을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할 때 가장 당당하고 에너지 넘쳤던 것처럼, ‘수지 에니어그램’이라는 좋은 도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활동을 마음껏 펼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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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3
1. 에너지의 날, 불을 끄는 행위를 넘어 삶의 양식을 묻다
매년 8월 22일은 ‘에너지의 날’입니다. 밤 9시가 되면 전국 곳곳의 공공기관과 아파트 단지, 상가 건물에서 10분간 불을 끄는 일괄 소등 행사가 진행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절전 캠페인이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어둠 속에서 잠시 꺼진 전등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 에너지의 날은 단순한 절전 캠페인을 넘어서야 합니다.
예측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빈번한 이상기후는 이미 우리 삶의 안전과 생존 기반을 흔들고 있습니다.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은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과연 어떤 에너지 시스템과 지역사회의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이 엄중한 질문들 앞에 시민과 지역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깊이 성찰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탄소 중립 실천과 재생에너지로의 과감한 전환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에너지 전환을 이라는 국가적·문명사적 과제에 대해 지극히 단편적인 ‘기술’이나 ‘산업 발전’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갇혀 있습니다. 저는 경기 북부의 중심도시 의정부에서 주민들의 뜻을 모아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를 향해 다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정교한 기술과 막대한 자본만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요?”
저는 지역사회 현장에서 이웃들과 눈을 맞추는 과정에서 한 가지 단단한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에너지 전환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지역, 그리고 사람과 자원 사이의 ‘관계의 변화’라는 사실입니다. 누가 에너지를 생산하는 주체인가, 중요한 의사결정 구조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있는가, 에너지를 통해 창출되는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는가, 그리고 그 추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지역 내 갈등을 우리는 어떤 민주적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답을 하는가에 따라 참된 의미의 에너지 전환이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토건 사업의 변종으로 전락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핵심 열쇠입니다.

도시발전개념도 /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18
2. 수동적 ‘소비자’에서 주도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책임지는 '에너지 시민'으로
우리가 경험해 온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은 대단히 중앙집중적이고 일방적이었습니다. 거대한 석탄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가 바닷가나 외곽 지역에 들어서고, 거기서 만들어진 전기는 거대한 송전탑을 거쳐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대도시로 전달되었습니다. 도시의 시민들은 그저 전력 공기업이 정해놓은 요금을 다달이 내며 전기를 관성적으로 소비하는 ‘소비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기존 중앙집중형 에너지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듭니다. 햇빛과 바람, 지열은 특정 대기업이나 전력 독점 기업만의 소유물이 아닌 ‘인류 공통의 자산(Commons)’입니다. 이제 발전소는 바닷가의 거대한 부지에만 들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날마다 걸어 다니는 동네의 지역 구석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수많은 유휴공간이 깨끗하고 안전한 친환경 발전소로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역으로 권한과 역할이 분산되는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속에서, 주민은 더 전기를 사서 쓰기만 하는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출자금을 모아 협동조합의 주주로 참여합니다. 발전소 용지를 함께 발굴하고, 조합원 총회를 통해 민주적으로 운영 방침을 결정하며, 생산된 전력에서 발생하는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지역사회 및 이웃과 정당하게 나누는 ‘에너지 시민’으로 당당히 거듭나게 됩니다.
제가 있는 의정부 자연에너지협동조합 역시 이러한 시민주도형 에너지 민주주의 철학에서 출발했습니다. ‘시민 햇빛발전소’는 단순히 전기를 만들어 팔아 수익을 올리는 상업 시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지역의 에너지 생산 주체가 되고, 공공의 의사결정과 정책 수립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의 미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해 나가는 ‘생활 속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이자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실천공간’입니다.
협동조합의 가장 소중하고 커다란 자산은 설비의 ‘발전용량(kW)’이나 계좌의 잔액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기후위기 앞에서 능동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시민으로 성장해 나가는 그 모든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지역에서 이뤄낸 가장 값진 에너지 전환의 결실입니다.
3. 갈등은 사업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숙성되는 과정이다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이나 태양광 발전소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주민 갈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합니다. 일부 언론이나 개발업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보며 주민들의 이기주의나 재생에너지 자체의 한계 때문이라고 쉽게 치부합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재생에너지나 친환경 발전소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자신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된다는 사실입니다.
사업 계획은 이미 외지 개발업자와 자본에 의해 비밀리에 수립되고, 법적 요건을 채우기 위해 개최되는 주민설명회는 형식적인 통과의례에 불과하며, 막상 발전소가 들어서서 발생하는 경제적 수익은 모조리 외부 자본가들이 독식하고 지역에는 어떠한 혜택도 돌아오지 않는 구조라면, 그 어떤 지역의 주민이라도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재생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 추진 방식이 가진 불통과 독점의 문제입니다.
반대로 사업의 첫 기획 단계부터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투명한 정보가 공유되며, 생산된 전력 수익이 지역의 사회복지 기금이나 마을 공동체 발전 기금으로 환원되는 구조를 만든다면 현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물론 주민이 주도하는 협동조합 방식은 수월하지 않습니다. 조합원 모임과 주민 간담회를 수없이 개최해야 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다양한 의견을 조정하기 위해 밤늦도록 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효율성을 따지면 느리고 답답한 과정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랜 대화와 진통, 타협을 거쳐 도출된 사회적 합의는 그 어떠한 오해나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뿌리를 갖게 됩니다. 협동조합은 바로 이러한 ‘선한 비효율성’의 가치를 존중하며, 속도보다 민주적 절차를 최우선으로 삼는 조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너지 전환은 기후위기 극복을 넘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귀중한 공동체 학습의 과정입니다.
4. 경기 북부에서 협동조합과 공익활동이 지니는 특별한 역사적 의미
경기 북부 지역은 오랫동안 ‘수도권’이라는 틀 안에 묶여 있으면서도 정작 수도권이 누리는 개발과 성장의 혜택에서는 소외됐습니다. 각종 중첩 규제는 산업 기반을 약화하고 지역경제의 오랜 정체로 이어졌습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 경기 북부 주민들이 오랜 세월 희생을 감내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기 북부의 구조적 조건과 한계가, 기후위기 시대에는 오히려 ‘가장 혁신적인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개발이 제한된 경기 북부의 자연환경과 공공 유휴부지들을 가치 있는 ‘공공 자산’으로 재평가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경기에너지협동조합을 포함한 각 시군의 에너지협동조합에서는 관 내외의 공공시설 옥상, 공공기관 주차장과 지붕, 도로변 유휴부지 등을 발굴하여 ‘시민 햇빛발전소’를 지속해서 건립해 왔으며 새로운 햇빛 부지를 발굴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경기 북부에서의 에너지 전환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기준은 바로 ‘발전 시설의 소유권과 이익이 어디로 흘러가는가’입니다. 지역 주민과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직접 출자하고 함께 소유하며, 발전소 운영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이 다시 지역사회 내부로 흘러 들어가는 ‘지역순환경제(Local Circular Economy) 모델’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제가 몸담은 의정부 자연에너지협동조합도 시민 햇빛발전소를 통해 얻은 이익의 일정 부분을 지역의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한 에너지 복지 사업에 먼저 재투입하고 있으며 찾아가는 환경 교육과 탄소 중립 생활 실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5. 에너지가 사람을 잇고, 사람이 마침내 공동체를 회복하다.
전기는 오직 기술적인 발전기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따뜻한 공익적 연대 속에서 비로소 ‘지속할 수 있는 생명의 에너지’로 완성됩니다.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저에게 가장 깊은 감동을 주었던 순간은, ‘이웃들과 조합원들의 삶이 눈에 띄게 변화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우리 집 전기요금을 조금이나마 절감해 볼까?" 하는 지극히 소박한 관심이나, 이웃의 권유로 소액 출자금만 내고 이름을 올렸던 평범한 조합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 교육을 듣고, 햇빛발전소 현장 탐방에 참여하면서 이분들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여러 체험과 활동을 통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깨달은 조합원이 공부를 거쳐 직접 단상에 서는 기후위기 전문 시민 강사로 변신하고 열정적인 지역 공익활동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지역의 햇빛과 바람으로 지역에서 깨끗한 전기를 직접 만들고, 그 전기를 지역의 가정과 기업이 소비하며,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이 다시 우리 동네 이웃들의 복지와 아이들의 교육 환경 개선으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 이러한 선순환은 단순한 경제적 이득을 넘어, 이웃 간의 무관심을 깨뜨리고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회복시켜 줍니다. 에너지 자립은 결국 우리 지역의 자립이자,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시민 자립의 완성입니다.
7월 9일 조합원 만남의 날 / ⓒ 의정부자연에너지 협동조합
6.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며, 관계가 미래를 만든다.
지금 전 세계는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 중립이라는 명제 아래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른 속도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 성공적인 전환을 이루어 낸 지역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첨단 기술이나 설비보다 먼저 ‘주민’이 존재했고, 거대한 발전소나 인프라보다 먼저 사람 간의 ‘신뢰’가 쌓여 있었으며, 차가운 자본보다 먼저 이웃을 살피는 ‘따뜻한 공동체’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태양광 패널의 숫자를 몇 개 더 늘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후위기 문제를 나와 내 아이들의 절박한 삶의 문제로 깊이 인지하는 더 많은 에너지 시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이루어 내는 더 깊은 협동의 경험, 그리고 내가 사는 지역을 스스로 바꾸어 나가는 주체적인 공익적 활동입니다.
에너지 전환은 생존을 위한 전략이자, 우리 지역사회의 민주주의를 풀뿌리에서부터 확장하고 숙성시켜 나가는 거대한 과정입니다. 협동조합은 그 민주주의와 공익적 가치를 우리의 삶터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따뜻하고 단단한 그릇입니다. 한 사람의 시민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동참하고, 한 장의 태양광 모듈이 지역의 소중한 공공 자산이 되며, 그 작은 협동의 경험들이 촘촘히 모일 때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당당한 거대한 동력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에너지 전환의 진정한 출발점은 차가운 기술이 아닌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성숙하게 이어주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지역의 미래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고 단단하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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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5※「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로 그리는 환경교육, 시흥YMCA에게 길을 묻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다.
뉴스에서도, 학교에서도, 동네 게시판에서도 흔하게 마주친다. 그러나 위기를 이야기만 하는 것과, 그 위기에 대응할 교육 체계를 갖추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다. 한 사람의 목소리로는 만들 수 없고, 결국은 여러 단체가 손을 맞잡아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에서 이 물음에 가장 구체적으로 답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가 시흥시다. 시흥시는 환경부 지정 환경교육도시이며, 관내 여러 환경단체와 중간지원조직들이 힘을 모아 시흥 환경교육플랫폼이라는 협력체계를 함께 꾸려가고 있다.
시흥시는 2023년 환경부로부터 법정 환경교육도시로 지정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하나다. 환경교육도시는 환경교육 추진 기반과 성과, 앞으로의 계획이 우수한 지자체를 환경부가 선정해 지원하는 제도로, 지정 이후 시흥시는 환경교육 전담 조직을 꾸리고 지역 환경교육 종합계획을 세우는 등 기반을 차근차근 다져왔다. 시흥환경교육플랫폼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결과물 중 하나다.


1. 시작 : 사라진 네트워크의 빈자리에서 시작된 논의
시흥시에는 원래도 환경교육과 관련한 네트워크가 존재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엔가 그 네트워크는 활동을 멈추었고, 시흥의 환경교육은 한동안 구심점 없이 각 단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흩어져 이어가는 모양새였다. 상황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 시흥시가 환경부 지정 환경교육도시로 선정되면서부터다. 관내에 있는 여러 환경단체와 중간조직들 사이에서 "이제는 통일된 환경교육을 함께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기 시작했고, 그 논의는 지난해 실제 발족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지금의 환경교육플랫폼이다.

2. 다시 나아가기 위해 연대하다.
환경교육은 흔히 한 기관, 한 프로그램의 몫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역 안의 여러 주체가 자원과 정보를 나누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한 단체가 아무리 열심히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그 단체가 힘이 빠지는 순간 지역의 환경교육 전체가 함께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흥이 겪었던 '네트워크의 공백'은 바로 이런 취약함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단체가 필요했다. 공동으로 대처할 곳이 필요했다." 서종호 사무총장이 이 지점을 짚으며 꺼낸 말이다. 개별 단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환경교육을 이어가는 것과, 여러 단체가 하나의 창구를 통해 목소리를 모으는 것은 확연히 다른 무게를 가진다. 흩어져 있던 목소리들이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이면, 행정을 상대할 때도, 사업을 기획할 때도 훨씬 단단한 근거를 갖게 된다. 사무총장 말에 따르면 경기도 안에서도 이런 형태의 환경 교육 협력체는 흔치 않다고 한다. 그만큼 시흥의 시도는 의미 있는 실험이기도 하다.

3. 시흥YMCA의 동행
여기서 한 가지,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환경교육플랫폼은 시흥YMCA가 만든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플랫폼의 중심에는 시흥에코센터가 있고, 시흥환경교육네트워크가 간사단체로서 실무를 지원하는 구조다. 시흥YMCA는 이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여러 단체 가운데 하나이며, 주도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다.

사무총장은 인터뷰 내내 이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짚었다.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서, 이건 꼭 참고해달라"는 당부가 유독 또렷하게 남았다. 여러 단체의 몫으로 돌려놓으려는 태도였다. 환경교육 플랫폼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여러 단체가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맡으며 함께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시흥YMCA는 그 여정에서 성실한 동행자의 자리를 택하고 있었다.

4. 거버넌스 구축: 협력 구조로 단단해지는 환경교육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단체는 생각보다 많다. 규모가 크지 않은 단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활동하다 보니, 서로의 활동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과제였다. 최근에는 시흥시 차원의 기후 관련 행사를 여러 단체가 함께 시도했고, 올해부터는 이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환경기금의 지원을 받아 홍보를 진행한 환경교육주간에는, 6월 초를 기점으로 열 개 단체가 각자의 장소에서 체험 활동을 열었다. 한 곳에 모여 큰 규모의 통합 행사를 만드는 단계라기보다, 각 단체가 자기 자리에서 준비한 활동을 열고 서로의 소식을 공유하는 정도라고 사무총장은 담담히 말했다.

의미 있는 지점은 또 있다.
시흥에코센터는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환경교육사 2급 양성기관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 인터뷰가 이뤄질 당시만 해도 전국에서 이런 인증을 받은 곳은 천안과 시흥, 단 두 곳뿐이었다. 이후 2026년부터는 경남환경재단이 새롭게 지정되며 세 곳으로 늘었지만, 수도권 안에서는 여전히 시흥이 유일하다. 시흥에코센터를 중심으로 이 네트워크가 발족한 배경에는 이런 전문성의 축적도 자리하고 있다. 단순히 여러 단체가 모였다는 것을 넘어, 실제로 환경교육 인력을 길러내는 인증 체계까지 지역 안에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각 단체가 개별적으로 따내던 공모사업들도, 이제는 네트워크 차원에서 모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사업 하나하나를 개별 단체가 따로 준비하고 보고하던 방식에서, 네트워크가 창구가 되어 자원을 나누는 방식으로 옮겨가는 것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변화가 아니다. 단체 간의 신뢰가 쌓여야 가능한 일이고, 동시에 그 신뢰를 다시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올해부터는 현장에서 거버넌스 형태를 갖추기 위한 준비를 여러 단체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방향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5. 동마다 마을학교가 있는 도시
네트워크 활동이 실제 시민의 삶에는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을까. 사무총장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단체 규모가 크면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겠지만" 하고 운을 뗀 뒤, 시흥의 사례로 와글학교와 댓골마을학교를 꺼냈다. 댓골마을학교에서는 우유팩이나 폐건전지를 모아오면 화장지나 식용유로 바꿔주는 활동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거창한 캠페인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으로 이어지는 방식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시흥시에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동마다 마을학교가 다 있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촘촘한 구조다. 다만 모든 마을학교가 환경 관련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중에서도 시흥시 차원에서 환경 관련 활동을 이어가는 마을학교들이 있는 것이다. 시가 직접 관여하는 사업이기에 가능한 특이점이라고 사무총장은 짚었다. 동 단위까지 촘촘하게 퍼져 있는 마을학교의 존재는, 환경교육이 생활권 안으로 스며들 수 있는 잠재적인 통로이기도 하다. 동네 마을학교에서 반복되는 작은 실천들이 결국 더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인터뷰 내내 떠나지 않았다. 댓골마을학교의 사례는, 아직 시흥 전역으로 넓게 퍼지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다른 동의 마을학교들이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6. 민(民)과 관(官) 사이, 예산이라는 현실
네트워크가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방향은 무엇일까. 사무총장의 답은 환경 정책이라는 것이 민간이나 행정 어느 한쪽만의 힘으로 주도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함께 참여하겠다는 의제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예산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늘 따라붙는다. 좋은 취지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렵고, 결국 누가 어떤 자원을 대고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시흥에는 이미 몇십 년째 활동을 이어온 환경교육 연합이 있다. 그 안에서도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 캠페인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 등 성격이 저마다 다른 여러 단체가 얽혀 있다. 성격이 다른 단체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모이다 보니, 지향점을 맞추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다. 여러 단체가 모여 만든 네트워크이다 보니 한계도 뚜렷하다는 것이 솔직한 진단이다. 예산이 없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쉽게 나서기 어렵고, 상급 기관과의 협의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환경교육네트워크가 아직 고유번호증을 발급받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정식 등록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다 보니 직접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그래서 지금은 시흥YMCA라는 단체명을 빌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환경교육주간 행사 역시 시흥YMCA가 사업을 수주하고 공모를 통해 각 단체에 나누어주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름을 갖추지 못한 네트워크가 이름을 가진 단체의 어깨를 빌려 걸음을 떼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 드러난 활동의 화려함 뒤에는, 이렇듯 아직 제도의 틀 안에 자리 잡지 못한 현실이 함께 있었다. 여러 단체가 뜻을 모아 만든 협의체라 하더라도, 법인격이나 고유번호증 같은 최소한의 행정적 장치가 없으면 지원 사업 하나에 지원서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결국 그 빈틈을 메우는 몫은 시흥YMCA처럼 이미 법인격을 갖춘 단체의 몫으로 돌아가고, 그 단체 역시 넉넉한 여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지역을 위해 기꺼이 짐을 나누어 지고 있는 셈이었다.
"지역의 색을 담은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환경교육을 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교육이 실제 환경 보호라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 이 지점에서 사무총장은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전제를 달고 앞으로의 과제를 짚었다. 표준화된 교보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지만, 지역마다 처한 환경 의제가 다른 만큼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교육 프로그램과 교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은 갯벌이 의제이고, 어느 지역은 대기질이 의제일 수 있다. 하나의 틀로 모든 지역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 단체가 필요에 따라 이를 각색해서 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이런 작업을 해낸다면, 개별 단체 차원이 아니라 네트워크 차원에서 함께 추진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사무총장은 덧붙였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구상이지만, 네트워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언젠가 여러 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역 맞춤형 콘텐츠를 만드는 날이 온다면, 그 출발점은 오늘의 이 인터뷰에서 나온 소박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시흥 YMCA의 뿌리
시흥의 환경 활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체가 하나 더 있다. 시흥에서 가장 오래 활동해온 시흥 환경운동연합이다. 전국 단위의 플로깅 활동은 물론, 철새를 비롯한 생태 모니터링까지 폭넓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이런 활동들이, 지금의 환경교육 플랫폼이 설 수 있는 토양이 되어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시흥YMCA가 있다. 시흥YMCA가 가장 공을 들여온 활동은 생태환경 보전이다. 터널 건설을 반대하며 생태 보존을 지켜낸 운동은 지금까지도 시흥YMCA를 대표하는 활동으로 꼽히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30년 가까이 청소년활동을 중심에 두었던 단체가, 어느새 생태를 지키는 일에도 오랜 시간 발을 담가온 것이다. 처음부터 환경단체로 출발한 곳이 아니기에, 시흥YMCA가 걸어온 궤적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청소년의 삶을 고민하던 자리에서 출발해, 그 삶을 둘러싼 자연과 지역 사회, 그리고 인권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넓어져 온 셈이다. 청소년활동과 환경활동, 인권활동이 서로 멀지 않다는 것을 시흥YMCA의 걸음이 보여주고 있다. 이번 환경교육플랫폼 참여 역시, 그런 오랜 확장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 밖의 활동 연혁은 시흥YMCA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함께 걷는다는 것
환경교육플랫폼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시흥의 단체들은 저마다 다른 역사와 방식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몇십 년째 생태를 지켜왔고, 누군가는 마을 단위에서 우유팩과 폐건전지를 모으며, 누군가는 아직 정식 등록조차 마치지 못한 채로 활동을 이어간다. 그 사이에서 시흥YMCA는 동행자의 자리를 지키며, 네트워크의 한 축을 묵묵히 받치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국을 나서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완성된 체계를 자랑하는 것보다, 지금 가진 한계를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더 단단한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 네트워크가 다른 단체의 이름을 빌려 사업을 이어가고, 큰 통합 행사 대신 몇 단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체험을 여는 지금의 모습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음이다. 예산도, 제도적 근거도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여러 단체가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가며 걷고 있다는 것. 그것이 지금 시흥의 환경교육이 서 있는 정직한 자리다. 그리고 그 걸음의 한편에는, 30년 가까이 지역과 함께 걸어온 시흥YMCA가 여전히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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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9※「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사이자 공익활동가의 시선으로 본 평생학습 현장 르포
"AI라는 말을 들으면 왜 중장년·시니어들은 어렵게 느낄까?"
"AI(인공지능)입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중장년과 시니어들은 "그건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 "너무 어려운 기술", "컴퓨터 전문가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AI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AI를 설명하는 방식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현재 AI를 소개하는 대부분의 자료에는 프롬프트, 생성형 AI, 머신러닝, 딥러닝, 알고리즘, 챗봇과 같은 낯선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전문 용어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에게 심리적인 장벽을 만든다. "처음부터 너무 어렵다"는 인식이 생기면 배우려는 의욕도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스마트폰을 잘못 눌러 중요한 정보가 사라질까 걱정하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되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든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은 "배워도 금방 바뀐다"는 부담감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중장년과 시니어들은 AI를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폰 음성검색, 사진 자동 보정, 길찾기, 번역, 유튜브 추천 영상, 은행의 금융사기 탐지 서비스 등은 모두 AI 기술을 활용한 기능이다. 다만 그것이 AI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중장년·시니어 대상 AI 교육은 기술을 설명하는 데서 출발하기보다 생활 속 사례를 통해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AI는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일상을 도와주는 똑똑한 비서"라는 인식을 심어줄 때 학습에 대한 부담은 줄어든다. 교육도 전문 용어보다 "사진 속 글자를 읽어주는 기능", "문장을 대신 써주는 도우미", "여행 일정을 함께 짜주는 친구"처럼 실제 생활과 연결된 예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 이해도와 활용도가 크게 높아진다.
결국 중장년과 시니어가 AI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기술 자체보다 낯선 용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나와는 거리가 먼 기술'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것이 AI 교육의 첫걸음이며, AI는 누구나 배워 활용할 수 있는 생활 속 도구라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I는 글을 대신 쓰지 않았다
"선생님, AI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

수원 신한 학이재 배움터의 오후 강의실, 삼삼오오 모인 수강생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7월의 과정은 주제는 '스마트폰 AI를 활용한 글쓰기'였다.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정작 수강생들의 첫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다.
"선생님, AI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
교실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AI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 순간 필자는 이 교육의 진짜 목적이 AI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배움터에서 만난 새로운 도전
신한 학이재 배움터에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50~60대, 손주와 소통하고 싶은 70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싶은 시민들이 모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AI를 배우고 싶다."
그러나 수업이 시작되면 AI보다 먼저 넘어야 할 벽이 나타난다.
스마트폰 글자를 크게 만드는 방법.
음성 입력 버튼을 찾는 방법.
복사와 붙여넣기를 하는 방법.
앱을 설치하고 로그인하는 과정.
젊은 세대에게는 익숙한 기능이지만, 중장년과 시니어에게는 AI보다 먼저 익혀야 할 또 하나의 언어였다.
한 수강생은 웃으며 말했다.
"AI는 어렵지 않은데 스마트폰이 저를 시험하네요."
교실에는 웃음이 번졌지만, 그 말 속에는 디지털 전환 시대를 살아가는 중장년 세대의 현실이 담겨 있었다.
프롬프트보다 어려운 것은 '내 이야기를 꺼내는 일'
AI는 질문한 만큼 답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강생은 처음에 이렇게 입력한다.
"글 써줘."
AI는 짧고 평범한 글을 보여준다. 그러자 실망한 표정이 이어진다. 나는 다시 질문을 바꿔 보자고 제안한다.
"40년 전 첫 직장에서 퇴근하던 겨울 저녁을 떠올리며 따뜻한 에세이를 써 주세요."
"대만 여행에서 만난 친구와의 추억을 감성적으로 정리해 주세요."
"손주에게 들려주고 싶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써 주세요."
같은 AI인데도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수강생들은 놀란다.
"질문이 이렇게 중요했네요."
그 순간 필자는 프롬프트 교육이 단순히 AI를 잘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AI는 기억을 만들지 않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간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쓰는 시간이었다. AI가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한 수강생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선생님, 이 글은 잘 썼는데 제 마음은 안 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AI에게 글을 맡기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자고 말했다.
조금씩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싸 주시던 도시락.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사 드린 내복.
군 복무 시절 전우들과의 추억.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던 날.
AI는 그 기억을 문장으로 다듬어 주었지만, 기억을 꺼내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그날 필자는 AI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정리해 주는 도구라는 사실을 수강생들과 함께 배웠다. 교육은 끝났지만 배움은 멈춘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질문은 계속된다.
"집에 가니까 다시 모르겠어요."
"지난번 대화가 없어졌어요."
"업데이트가 되면서 화면이 바뀌었어요."
AI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교육은 대부분 한두 번의 특강으로 끝난다. 평생학습 현장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도 바로 여기였다. 배운 내용을 생활 속에서 반복해 볼 수 있는 환경이 부족했다. 수료증은 받았지만 혼자 연습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AI 활용 능력은 한 번의 교육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복해서 사용하고, 질문하고, 서로 알려 주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역량이 된다.
배움에서 공익활동으로 이어지는 길
수업이 끝난 뒤 한 수강생이 다가와 말했다.
"저도 나중에 다른 어르신들에게 스마트폰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 말을 들으며 일본의 공민관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서포터' 제도가 떠올랐다. 교육을 받은 주민이 다시 지역의 강사가 되고, 새로운 학습자를 돕는 구조다.
평생학습관에서 AI를 배운 시민이 도서관에서 디지털 멘토가 되고, 경로당에서 스마트폰 봉사를 하고, 마을배움터에서 글쓰기 모임을 이끌 수 있다. 배움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공동체의 자산이 될 때 더 큰 가치를 만든다.
공익활동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내가 배운 것을 이웃과 나누는 순간부터 공익은 시작된다. 강사가 아니라 함께 배우는 사람으로 필자는 강단에 서 있지만, 매 수업마다 배우는 사람은 오히려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AI는 새로운 기술이지만,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수강생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AI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삶의 기록이다. 나는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는 일이다. 평생학습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장 취재 기자의 시선
신한 학이재 배움터에서의 AI 글쓰기 교육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중장년과 시니어에게 AI는 디지털 기기가 아니라 잊고 지냈던 자신의 삶을 다시 기록하게 만드는 계기였다. 하지만 현장은 정책보다 한 걸음 앞서 있었다. 교육 횟수를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학습자가 혼자서도 계속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평생학습관, 도서관, 마을배움터, 공익활동지원센터가 연결되어 교육 이후에도 학습동아리와 디지털 멘토링이 이어진다면 AI 교육은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공익 활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AI 시대에도 결국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배움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다.

신한 학이재에서 만난 수강생들의 눈빛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도 누군가는 스마트폰 화면 앞에서 첫 질문을 입력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히 AI를 향한 질문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첫걸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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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7※「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년 경기도 평생학습 정책연구과제 수요조사」 참여로 더 나은 평생학습 정책을 제안하다
급변하는 인공지능(AI) 시대와 초고령사회,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는 평생학습의 의미를 새롭게 바꾸고 있다.
이제 평생학습은 단순한 취미 활동이나 자기계발을 넘어 일자리, 디지털 역량, 사회참여,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필수적인 사회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은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정책 연구에 반영하기 위해 '2026년 경기도 평생학습 정책연구과제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번 수요조사는 경기도 평생학습 정책이 행정 중심이 아닌 현장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앞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 연구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현장의 의견을 담는 '2026년 경기도 평생학습 정책연구과제 수요조사', 이번 조사는 2026년 7월 13일부터 7월 24일 오후 6시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경기도 내 평생학습 관련 기관과 단체, 평생교육시설 종사자, 강사, 활동가, 연구자 등 평생학습 분야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은 매년 정책연구를 통해 경기도 평생학습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올해 역시 실제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주제를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
특히 이번 조사는 단순한 설문조사에 그치지 않는다. 평생학습 정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지, 어떤 분야를 우선적으로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장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수렴하여 향후 정책 개발의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평생학습은 지역마다 환경이 다르고 학습자의 특성도 다양하기 때문에 현장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수요조사는 실제 현장에서 활동하는 관계자들의 경험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의미 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내용을 제안할 수 있을까
이번 수요조사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을 중심으로 의견을 받고 있다.
첫 번째는 평생학습 정책 현안 및 연구가 필요한 주제이다. 예를 들어 AI 시대 디지털 문해력 교육, 중장년 재취업 교육, 노년층 스마트폰 활용교육,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평생학습, 장애인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평생교육 확대 등 현재 현장에서 필요성을 느끼는 다양한 정책을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연구 분야이다. 최근 평생학습은 단순한 강좌 운영을 넘어 지역사회 문제 해결과 연계되고 있다. AI 활용 교육, 디지털 격차 해소, 1인 가구 평생학습, 베이비부머 재도약 지원, 탄소중립과 환경교육, 시민참여형 학습공동체 마을교육 활성화, 평생학습도시 발전 모델 등 앞으로 경기도가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할 분야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기타 정책 제안 및 자유 의견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사항이나 제도 개선사항, 행정지원, 강사 역량 강화, 예산 지원, 프로그램 운영 방식 등 평소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내용을 자유롭게 작성하면 된다. 특히 구체적인 정책 아이디어가 있는 경우에는 별도의 제안서를 제출하여 보다 심층적인 연구과제로 제안할 수도 있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조사
참여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포스터에 안내된 QR코드 또는 온라인 설문 주소에 접속하면 5~10분 정도의 시간만으로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연구과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경우에는 별도의 제안서를 작성하여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온라인 설문은 짧은 시간이면 참여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내년 경기도 평생교육 정책 연구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즉, 현장에서 활동하는 강사 한 사람의 경험, 작은 학습공동체의 의견 하나가 새로운 정책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평생학습 정책은 현장에서 시작된다.
평생학습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생애 전 과정에 걸쳐 지속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는 교육이다. 최근에는 AI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 고령화, 기후위기 등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중장년층의 재취업,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 문제는 평생학습이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또한 지역 공동체 활성화와 시민참여 확대, 문화예술 활동, 환경교육, 건강한 노후 준비까지 평생학습이 담당하는 역할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행정기관만의 고민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강사와 기관 종사자, 학습자들의 생생한 경험이 함께 반영될 때 비로소 현실적인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수요조사는 단순한 의견조사가 아니라 경기도 평생학습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중요한 정책 참여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장의 작은 의견이 미래 정책을 만든다
평생학습 현장에는 수많은 경험과 아이디어가 존재한다. 강사는 교육과정 운영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알고 있으며, 학습자는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다. 기관 종사자는 지역의 특성과 행정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경험들이 정책 연구로 이어질 때보다 실효성 있는 평생학습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특히 AI 활용 교육, 디지털 문해력, 고령사회 대응, 지역공동체 활성화, 1인 가구 지원, 평생학습 강사 전문성 강화 등은 앞으로 경기도가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할 분야이다.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이 실시하는 이번 정책연구과제 수요조사는 이러한 현장의 경험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소중한 통로가 될 것이다.
5분 남짓한 설문 참여가 내년 경기도 평생학습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평생학습의 미래는 행정기관만이 아닌,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든 관계자와 도민이 함께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이번 수요조사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평생학습 정책과 현장의 간극, 숫자로는 보이지 않는 현실


평생학습 정책은 매년 발전하고 있다.
전국의 평생학습도시는 늘어나고 있고, 디지털 문해교육과 AI 활용교육, 마을공동체 사업도 확대되고 있다. 정책 보고서에는 참여 인원과 운영 횟수, 만족도 등의 성과가 기록된다. 그러나 현장을 취재하면서 만난 시민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었다. 정책은 분명 좋은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지만, 현장에서는 작은 불편과 제도의 한계가 시민들의 참여를 가로막고 있었다.
사례 1. "교육은 좋은데, 갈 방법이 없습니다."
경기도의 한 학습마을에서 스마트폰 교육을 수료한
78세 김모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평생학습관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해요.
교육은 정말 좋은데 왕복 두 시간이 걸립니다."
정책은 '누구나 평생학습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교통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도심에서는 다양한 강좌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외곽 지역이나 농촌에서는 이동 자체가 어려워
교육 참여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 평생학습 담당자는 "예산은 프로그램 운영에 집중돼 있지만,
이동지원 예산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교육의 기회는 마련했지만,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까지는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것이다.
사례 2. 디지털 교육은 끝났지만, 집에 가면 다시 막막하다
최근 많은 지자체가 스마트폰 활용교육과 AI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을 마친 어르신들은 키오스크 사용법과 모바일 뱅킹을 배웠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의왕시의 한 교육장에서 만난 수강생은 말했다.
"수업 시간에는 잘 따라갔는데 집에 오니까 순서를 다 잊어버렸어요.
옆에서 한 번만 더 알려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평생학습은 대부분 2시간짜리 강의로 끝난다.
그러나 디지털 역량은 반복 연습과 사후 지원이 있어야
비로소 생활 속에서 정착된다.
강사는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 이후"라고 말했다.
정책은 교육 횟수를 성과로 평가하지만,
시민들은 지속적인 디지털 멘토링을 더 필요로 하고 있었다.
사례 3. 배운 사람이 봉사하고 싶어도 연결되지 않는다
평생학습을 통해 스마트폰 활용법을 익힌 한 수강생은 교육을 마친 뒤
강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이제 저도 다른 어르신들을 도와드리고 싶은데 어디에 신청하면 되나요?"
안타깝게도 이를 연결해 줄 체계는 없었다.
평생학습관, 자원봉사센터, 공익활동지원센터는 각각 운영되고 있었지만
정보가 연계되지 않아 시민들이 참여할 창구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많은 시민들은 배우는 데서 멈추고 있었다.
배움이 공익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결망이 부족한 것이다.
사례 4. 강좌는 많지만 주민이 원하는 내용은 부족하다
한 평생학습관의 강의실 게시판에는 수십 개의 프로그램이 안내되어 있었다.
캘리그래피, 꽃꽂이, 요가, 라인댄스 등 다양한 강좌가 운영되고 있었지만, 주민들이 실제로 원하는 교육은 조금 달랐다.
인터뷰에 참여한 주민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AI를 배우고 싶어요."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이 필요합니다."
"유튜브 영상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전자책 출판을 해보고 싶습니다."
프로그램은 여전히 문화·취미 중심이었고,
시민들이 체감하는 디지털 전환 속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책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프로그램 개편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의견도 나왔다.
일본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일본의 공민관과 마을공동체에서는 교육이 끝나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동아리와 자원봉사 활동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강좌를 수료한 주민은 '디지털 서포터'가 되어 다른 고령층을 돕고, 환경교육을 받은 주민은 하천 정화 활동과 생태 모니터링에 참여한다. 행정은 교육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배움과 실천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즉, 평생학습이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정책은 '몇 명이 배웠는가'보다 '얼마나 삶이 달라졌는가'를 물어야 한다. 평생학습 정책의 성과는 흔히 참여 인원, 강좌 수, 운영 횟수로 평가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변화를 이야기했다. 한 어르신은 스마트폰 교육을 받은 뒤 처음으로 손주와 영상통화를 했고, 또 다른 시민은 AI 글쓰기 교육을 통해 자신의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디지털 금융사기를 피할 수 있었고, 누군가는 평생학습을 계기로 마을기록 활동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통계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지역사회를 바꾸는 가장 중요한 성과다.
현장 취재를 통해 확인한 정책과 현장의 간극은 예산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연결'의 부족이 더 큰 문제였다. 평생학습 정책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교육 운영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 학습자의 필요와 경험을 중심에 두는 전환이 중요하다. 주민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교육 수요를 꾸준히 살피고, AI·디지털 문해력·금융안전·1인 미디어와 같은 생활밀착형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한다. 또한 교육은 수업이 끝나는 순간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실천과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를 위해 디지털 멘토단이나 학습동아리와 같은 지속적 학습 기반을 함께 지원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평생학습관, 자원봉사센터, 공익활동지원센터 간의 연계를 강화해, 교육을 마친 시민이 자연스럽게 공익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배움이 개인의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로 확장될 수 있도록 돕는 연결 체계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참여 인원이나 강좌 수를 넘어, 학습 이후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지역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함께 반영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배움은 교실에서 시작되지만, 그 가치가 완성되는 곳은 마을이다. 정책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평생학습은 단순한 교육사업을 넘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공공정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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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