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스런 역사, 그러나 기억해야 할 역사
-제14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이하며-

일본은 중일전쟁을 시작하던 1930년대 초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던 1945년 8월 15일까지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 점령지였던 중 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동티모르 등 여성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로 삼았다. 그러나 그 당시 일본군 문서에는 그 여성들을 ‘위안부’라고 표시했다. 피해여성의 수는 20여만 명을 비롯해 여러 추정치가 있으나 관련 자료가 전면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수치를 알기 어렵다. 한국인 생존 여성들의 경우 동원 당시 나이가 11세의 어린 나이에서 27세까지로 보고되어 있으며, 14세~19세 때 동원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위안부’여성은 일본 육군성의 직접적인 지시와 정부 기관, 조선총독부, 대만총독부 등이 협력을 통해 강제 동원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UN 특별보고관은 이 문제를 명확하게 ‘전시 중 군대 성노예제(Military sexual slavery in wartime)로 규정하였다.
‘위안부‘여성들은 엄격한 감시와 통제 아래 하루에 많게는 몇십 명에 이르는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고, 병사들로부터 폭력, 고문, 자살 강요 등의 학대를 받았다. 성병이나 임신, 질병 등이 확인되면 강제적인 시술이나 낙태를 받아야 했고 군인들을 통해 마약을 주사 받거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마약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위안소에 있던 여성들은 종전이 되자 자살을 강요당하거나 집단 죽임을 당하였고, 머나먼 타지에서 고국으로 생환하기 위해 갖은 어려움을 겪거나 귀환을 포기하기도 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위안소’에서 얻은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대다수가 성병, 자궁 이상, 불임, 가혹행위로 인한 외상 등이 확인됐고, 대인공포증, 불안, 수치심, 자기 비하 등의 심리적 후유증도 심각했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죄인으로 여기며 숨죽여 살아야 했고 그리하여 대부분 빈곤과 궁핍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본군‘위안부’피해 역사는 해방 후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대에 이르러 윤정옥 이화여자대학교 교수(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초대 공동대표 1925 ~ )가 해방 후 돌아오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의문과 책임감으로 집념 어린 조사를 시작했고. 한국교회여성연합회와 한국여성운동 단체들이 힘을 모아 1988년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아직 세상으로 드러난 피해자가 없던 당시,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임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김학순(1924~1997)의 기자회견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개설된 ‘정신대 신고 전화’를 통해 피해 사실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과 피해자 접수가 시작되었지만, 일본은 정부의 관여를 계속 부인했고, 이에 정대협과 여성계는 1992년 1월 8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곱 가지 요구사항-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수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을 촉구하며 첫 번째 수요시위를 시작했다. 이후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정대협 주최로 이어져 2011년 12월 14일에 1000회를 맞이하여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군‘위안부’역사에 대한 일본과 세계인의 반응
이러한 일본군‘위안부’ 역사는 세계인의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전쟁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규탄하고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물꼬를 튼 것이 미국 연방의회 일본군 위안부 사죄(HR121) 결의안이다. 2007년 7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일본계 미국인인 마이클 혼다(Michael Honda)의원이 제기한 일본군위안부 관련 결의안이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 결의안은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명백하게 인정하고 사죄할 것과 끔찍한 범죄 행위에 대하여 현재와 미래 세대들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를 계기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새로운 국면를 맞이했다. 2008년 10월 30일, 유엔인권이사회(UNHRC)와 유럽의회 등 각국의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피해 여성들의 적극적인 증언과 국내외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단체의 헌신적인 활동, 재미 한인 사회의 노력이 함께 이룬 결과였다.
2014년 UN 인권위원회의 최종 권고문은 이러한 세계의 목소리를 집약하고 있다. 이 권고문은 일본의 제6차 국가보고서를 심의한 뒤 채택한 최종 견해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 권고한 최종 내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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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 대하여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입법 및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 1. 전시 중에 일본군이“위안부”에 대해 저지른 모든 성노예 또는 기타 인권 침해 혐의가 효과적이고 독립적이며 공정하게 조사되고 가해자는 기소되고 유죄 판결 시 처벌을 받도록 한다. 2.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정의로운 접근과 완전한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3. 가능한 모든 증거들을 공개해야 한다. 4. 적절한 참고 자료를 포함시킨 교과서로 성노예제 문제에 대하여 학생과 일반 대중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5. 당사국의 책임에 대하여 공식 인정하고 공개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 6. 위안부 역사를 부정하거나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비난받아야 한다. |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응
유엔과 양심적인 세계인의 반응과 달리 일본 정부가 내민 것은 1965년에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이었다. 일본은 이 협정을 근거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인 배상 문제는 이미 종결된 사안’이라며 '도의적인 수준의 책임'으로 대응해왔다. 일본의 최고 재판소는 1990년대 제기된 위안부 피해자, 징용자 소송에서 "한국이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여 최종적으로 청구권을 소멸시켰으므로 더 이상 청구권은 없다"며 패소 결정을 내렸다.
이후 한국과 세계의 여론에 밀려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의 과오 인정과 사과 발언이 있었고, 이어 1993년에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총리 담화를 통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공식 발언이 나왔다.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밝혀 위안부 문제의 책임이 군에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1995년 7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했다. 기금은 한국 피해자에게 '쓰고 나이킨(償い金, 속죄금, 당시 언론은 위로금으로 해석)' 명목으로 지원했고, 국민 모금 방식으로 기금을 조성함으로 피해 여성들이 요구했던 정부의 사죄와 법적 배상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게 바로 ‘2015 한일 위안부 협상’(이하 2015 한일 합의)이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하고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으나, '굴욕 협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TF’의 보고서는 이 합의의 문제점을 공식 확인했다. 국가 간 협약이기에 파기는 못하지만, 문제가 많은 굴욕적인 외교 협상이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한.미.일 간의 안보 협력 강화를 위해 한일 간의 걸림돌이 되었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한 외교 참사였다는 것이다. UN 인권위원회의 지적대로 무엇보다 협상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이 배제된 채 이뤄졌다는 점,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 처리에 대한 이면합의가 존재한다는 점은 인권문제를 다루는 기본자세가 결여된 외교참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했다.
이처럼 일본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사실상 진정성 있는 사죄나 배상을 한 적이 없다. 겉으로는 외교적인 수사로 일관하며 뒤로는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는 것을 방해하고, 학생들에게는 위안부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으며 국내외 극우 세력을 통해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를 능욕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국회에서는 2026년 2월 12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서 위안부 피해 여성을 모욕하는 경우 처벌할 근거를 마련하였다.
계속해서 기억하고 언급해야 할 이 역사
명백한 증인과 증언, 증거가 존재하는 일본군‘위안부’역사를 대하는 일본 정부와 대비되는 국가가 있다. 바로 일본과 같은 2차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행해진 유대인 학살은 인류의 근현대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역사 중 하나다. 그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모아 그 유대인 학살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폴란드 바르샤바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재단(Auschwitz-Birkenau Foundation)을 2009년에 설립하였다. 이 재단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유적의 보존과 관리 기금 조성을 맡고 있으며 수많은 유물·문서의 보존, 복원, 목록화하여, 고통스러운 기억을 미래 세대에 전하는 그것을 핵심 사명으로 삼고 있다. 2019년 12월 6일, 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안젤라 메르켈 총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역사는 (계속)언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와 미래에 모든 개인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으며, 그것이 그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명예롭게 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총리는 아우슈비츠를 방문할 때마다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독일의 수도 베를린 한복판(브란덴부르크 문 남쪽)에 크기가 다른 2,711개의 격자형 콘크리트를 세운 ‘유대인 학살 추모 공원’이 약 1만 9,073㎡(약5,750평)의 광대한 면적에 조성되어, 전 세계인들이 방문하는 추모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나치 정권의 전쟁과 유대인학살에 대한 역사교육은 독일에서 의무화되어 있다. 다시는 그런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전 세계인에게 밝힌 셈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일 년 내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추모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곳에는 수용되었던 이들의 신발과 가방, 그리고 머리카락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당시의 참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반지하실로 조성된 가스실과 화장장 화로를 보고 있으면 모두가 숙연해진다. 전쟁이 인간의 양심과 지성을 어디까지 파괴하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역사적인 현장이다.
그 수용소 현장 벽면에 걸려있던 스페인 태생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1863~1952)의 글귀가 많은 방문객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들은 그것을 다시 겪게 될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역사가 고통스러운 역사지만 잊지 말고 계속해서 말하고 기억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 기억의 시도는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일본대사관 앞 정기 수요집회로 시작되었다. 수요집회 1000번째 맞이하는 시점인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여성을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조형물의 제작과 건립의 모든 과정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이후 평화의 소녀상(평화비)는 다양한 형태와 이름으로 국내외에 확산되어, 2026년 7월 현재, 국내 155곳, 일본과 미국, 중국, 호주, 독일 등 10개국 35곳에 세워져 있다. 이제 평화의 소녀상은 전쟁 중에 당한 성노예제 피해 여성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정의로운 해결과 전쟁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기억 문화는 기록문화와 함께 인류의 양심을 일깨우고 보편적인 가치와 원리를 추구함으로 인간 내면에 자리한 야만성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는 인류 문화의 두 축이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저장하고 되살리는 행위다.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맥락에 의해서 과거는 기억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됨으로 역사의 진보를 이루는데 기여한다. 기억 문화로서 평화의 소녀상은 과거 고통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 없는 평화 세상을 염원하는 인류의 소망을 담아내면서 세계적인 평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제14차 세계 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매년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지킨다. 이날은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날을 기려 정해졌다. 이후 2012년 타이완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매년 8월 14일을 세계 기림일로 정했고, 한국에서는 2017년 법 개정을 거쳐 2018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정해졌다.
이날은 단순한 추모일이 아니다. 피해자의 용기와 증언을 기억하고 일본군 성노예제의 진실 규명, 사죄, 배상, 역사 교육을 촉구하는 날이다. 전시 성폭력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가 책임 있게 배우고 행동하자는 의미에서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야 할 기념일이다.
제14차 세계 일본군‘위안부’기림일 총주제는 “그들의 굳센 바람, 우리의 힘찬 바람이 만나”로 정해졌다. 기억은 말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기억은 책임으로 이어져야 하고, 책임은 교육과 연대로 이어져야 한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현실에서, 기림의 날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 서서 정의와 화해의 길을 묻는 날이 되어야 한다. 특히 다음 세대에게 이 역사를 정확히 전하는 일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시민의 책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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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5※「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사이자 공익활동가의 시선으로 본 평생학습 현장 르포
"AI라는 말을 들으면 왜 중장년·시니어들은 어렵게 느낄까?"
"AI(인공지능)입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중장년과 시니어들은 "그건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 "너무 어려운 기술", "컴퓨터 전문가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AI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AI를 설명하는 방식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현재 AI를 소개하는 대부분의 자료에는 프롬프트, 생성형 AI, 머신러닝, 딥러닝, 알고리즘, 챗봇과 같은 낯선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전문 용어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에게 심리적인 장벽을 만든다. "처음부터 너무 어렵다"는 인식이 생기면 배우려는 의욕도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스마트폰을 잘못 눌러 중요한 정보가 사라질까 걱정하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되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든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은 "배워도 금방 바뀐다"는 부담감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중장년과 시니어들은 AI를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폰 음성검색, 사진 자동 보정, 길찾기, 번역, 유튜브 추천 영상, 은행의 금융사기 탐지 서비스 등은 모두 AI 기술을 활용한 기능이다. 다만 그것이 AI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중장년·시니어 대상 AI 교육은 기술을 설명하는 데서 출발하기보다 생활 속 사례를 통해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AI는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일상을 도와주는 똑똑한 비서"라는 인식을 심어줄 때 학습에 대한 부담은 줄어든다. 교육도 전문 용어보다 "사진 속 글자를 읽어주는 기능", "문장을 대신 써주는 도우미", "여행 일정을 함께 짜주는 친구"처럼 실제 생활과 연결된 예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 이해도와 활용도가 크게 높아진다.
결국 중장년과 시니어가 AI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기술 자체보다 낯선 용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나와는 거리가 먼 기술'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것이 AI 교육의 첫걸음이며, AI는 누구나 배워 활용할 수 있는 생활 속 도구라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I는 글을 대신 쓰지 않았다
"선생님, AI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

/ ⓒ에디터 럭비공
수원 신한 학이재 배움터의 오후 강의실, 삼삼오오 모인 수강생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7월의 과정은 주제는 '스마트폰 AI를 활용한 글쓰기'였다.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정작 수강생들의 첫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다.
"선생님, AI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
교실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AI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 순간 필자는 이 교육의 진짜 목적이 AI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 ⓒ에디터 럭비공
배움터에서 만난 새로운 도전
신한 학이재 배움터에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50~60대, 손주와 소통하고 싶은 70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싶은 시민들이 모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AI를 배우고 싶다."
그러나 수업이 시작되면 AI보다 먼저 넘어야 할 벽이 나타난다.
스마트폰 글자를 크게 만드는 방법.
음성 입력 버튼을 찾는 방법.
복사와 붙여넣기를 하는 방법.
앱을 설치하고 로그인하는 과정.
젊은 세대에게는 익숙한 기능이지만, 중장년과 시니어에게는 AI보다 먼저 익혀야 할 또 하나의 언어였다. 한 수강생은 웃으며 말했다. "AI는 어렵지 않은데 스마트폰이 저를 시험하네요." 교실에는 웃음이 번졌지만, 그 말 속에는 디지털 전환 시대를 살아가는 중장년 세대의 현실이 담겨 있었다.
프롬프트보다 어려운 것은 '내 이야기를 꺼내는 일'
AI는 질문한 만큼 답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강생은 처음에 이렇게 입력한다.
"글 써줘."
AI는 짧고 평범한 글을 보여준다. 그러자 실망한 표정이 이어진다. 나는 다시 질문을 바꿔 보자고 제안한다.
"40년 전 첫 직장에서 퇴근하던 겨울 저녁을 떠올리며 따뜻한 에세이를 써 주세요."
"대만 여행에서 만난 친구와의 추억을 감성적으로 정리해 주세요."
"손주에게 들려주고 싶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써 주세요."
같은 AI인데도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수강생들은 놀란다.
"질문이 이렇게 중요했네요."
그 순간 필자는 프롬프트 교육이 단순히 AI를 잘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AI는 기억을 만들지 않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간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쓰는 시간이었다. AI가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한 수강생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선생님, 이 글은 잘 썼는데 제 마음은 안 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AI에게 글을 맡기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자고 말했다.
조금씩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싸 주시던 도시락.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사 드린 내복.
군 복무 시절 전우들과의 추억.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던 날.
AI는 그 기억을 문장으로 다듬어 주었지만, 기억을 꺼내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그날 필자는 AI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정리해 주는 도구라는 사실을 수강생들과 함께 배웠다. 교육은 끝났지만 배움은 멈춘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질문은 계속된다.
"집에 가니까 다시 모르겠어요."
"지난번 대화가 없어졌어요."
"업데이트가 되면서 화면이 바뀌었어요."
AI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교육은 대부분 한두 번의 특강으로 끝난다. 평생학습 현장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도 바로 여기였다. 배운 내용을 생활 속에서 반복해 볼 수 있는 환경이 부족했다. 수료증은 받았지만 혼자 연습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AI 활용 능력은 한 번의 교육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복해서 사용하고, 질문하고, 서로 알려 주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역량이 된다.
배움에서 공익활동으로 이어지는 길
수업이 끝난 뒤 한 수강생이 다가와 말했다.
"저도 나중에 다른 어르신들에게 스마트폰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 말을 들으며 일본의 공민관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서포터' 제도가 떠올랐다. 교육을 받은 주민이 다시 지역의 강사가 되고, 새로운 학습자를 돕는 구조다.
평생학습관에서 AI를 배운 시민이 도서관에서 디지털 멘토가 되고, 경로당에서 스마트폰 봉사를 하고, 마을배움터에서 글쓰기 모임을 이끌 수 있다. 배움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공동체의 자산이 될 때 더 큰 가치를 만든다.
공익활동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내가 배운 것을 이웃과 나누는 순간부터 공익은 시작된다. 강사가 아니라 함께 배우는 사람으로 필자는 강단에 서 있지만, 매 수업마다 배우는 사람은 오히려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AI는 새로운 기술이지만,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수강생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AI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삶의 기록이다. 나는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는 일이다. 평생학습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장 취재 기자의 시선
신한 학이재 배움터에서의 AI 글쓰기 교육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중장년과 시니어에게 AI는 디지털 기기가 아니라 잊고 지냈던 자신의 삶을 다시 기록하게 만드는 계기였다. 하지만 현장은 정책보다 한 걸음 앞서 있었다. 교육 횟수를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학습자가 혼자서도 계속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평생학습관, 도서관, 마을배움터, 공익활동지원센터가 연결되어 교육 이후에도 학습동아리와 디지털 멘토링이 이어진다면 AI 교육은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공익 활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AI 시대에도 결국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배움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다.

/ ⓒ에디터 럭비공
신한 학이재에서 만난 수강생들의 눈빛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도 누군가는 스마트폰 화면 앞에서 첫 질문을 입력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히 AI를 향한 질문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첫걸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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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7※「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저녁, 수원에 모인 사람들

/ ⓒ경기시민연구소 울림
2026년 7월 14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화센터 예당마루에서 "시대와 세대를 잇다 — 리영희가 던진 질문을 오늘에 다시 새기다"를 주제로 제11차 경기사회포럼이 열렸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시민과 활동가들이 참여한 이번 포럼은 언론인이자 사상가 리영희(1929~2010)를 청년 세대와 함께 조명하고 그의 질문을 오늘날에 재해석하고자 마련됐다.
경기사회포럼은 2025년 하반기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경기시민연구소 울림, 경기평화교육센터가 출범시킨 경기 지역의 격월제 시민 담론 플랫폼이다. 이날 행사는 개회 인사와 영상 상영에 이어 김효순 리영희재단 이사장의 기조 발제, 김학민 경기사회포럼 자문위원, 모정하 전교조 경기지부 부지부장, 정용준 청년 활동가의 좌담으로 진행됐다.
진행자는 리영희가 평생 던진 질문들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도 유효하다고 밝히며, 시대를 넘어 그의 질문으로 현재의 현실을 돌아보는 것이 이번 포럼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리영희는 누구인가 ㅡ 국경을 넘나든 생애

/ ⓒ에디터 엄프로
리영희는 1929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국립해양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전쟁 당시 통역장교로 복무한 뒤 1957년 예편했고, 합동통신과 조선일보 외신부장을 거치며 외신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1960년에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기자로서 그는 두 가지 보도로 큰 이정표를 남겼다. 1964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검토 안건을 보도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쟁 취재를 통해 미국의 개입 성격을 비판 시각으로 전하다 1969년 해직되었다.
1972년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학계에서 저술 활동을 본격화했다. 1974년 첫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를 펴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977년 『8억인과의 대화』와 『우상과 이성』을 잇달아 출간했다. 이 세 권은 1980년대 당국이 집계한 '불온서적' 목록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당대 젊은 지식인들의 의식 형성을 이끌었다.
이에 따라 권력의 탄압이 이어졌다. 1976년 한양대에서 해직되었고, 1977년 『우상과 이성』 출간 직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1980년까지 옥고를 치렀다. 1980년 복직 후에도 시국선언 참여로 재해직되었다가 1984년에야 복직했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해 논설고문을 맡았으나, 이듬해 방북 취재 기획 혐의로 다섯 번째 구속을 겪었다. 평생 9차례 연행, 5차례 구속, 4차례 해직을 당하며 총 1,012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95년 정년퇴임 후에도 냉전 해체와 한반도 정세 등 첨예한 의제를 지속 연구했고, 1998년 햇볕정책 시기 고향을 방문해 친지와 상봉했다. 2005년 대담집 『대화』를 펴낸 뒤 2010년 12월 5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왜 '사상의 은사'였는가 — 저작이 가진 무게

/ ⓒ에디터 엄프로
리영희를 다루는 연구와 평문들은 그를 '사상의 은사' 혹은 '의식화의 원흉'이라는 상반된 별칭으로 부른다. 이 극단적인 평가 자체가 그가 한국 사회에 남긴 충격의 크기를 보여준다.
그의 문제의식 핵심은 '사실'과 '진실'을 향한 집요한 추구였다. 냉전 반공주의가 지배하던 시절, 베트남전쟁, 중국 혁명, 북한, 주한미군 등의 주제는 정해진 답 외의 사고가 허락되지 않았다. 리영희는 이 영역에 정면으로 뛰어들어 베트남 개입의 정당화 과정, 주한미군 기지의 함의,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실상을 실증적 자료로 파헤쳤다. 『전환시대의 논리』 서문에서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일화를 인용하며, 자신의 글이 경직된 한국 사회에 조심스러운 '가설'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다.
1994년 펴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의 제목은 그의 문제의식을 압축한 표현으로, 한국 정치 담론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경구가 되었다. 그는 광복 후 한국 사회가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고 지적하며, 새가 양날개의 균형으로 날듯 사회의 건강한 사고도 한쪽 극단만으로는 지탱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 표현은 냉전 반공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쓰였으나, 훗날 보수 진영에서 양측의 '균형'을 강조하는 수사로 인용되며 원래 맥락과 다르게 소비되기도 했다. 이는 리영희라는 텍스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전유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감옥 속의 인연들 — 김학민이 전한 뒷이야기

/ ⓒ에디터 엄프로
이날 좌담에서 청중의 몰입을 끌어낸 대목은 리영희와 사적 인연을 맺어온 김학민 자문위원의 회고였다. 연세대 졸업 후 한길사 편집장, 학민사 대표를 지낸 그는 1970년대 학생운동 시절 감옥에서 리영희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다고 전했다. 당시엔 동명이인의 다른 언론인과 혼동할 정도로 정보가 단절된 시절이었으나, 감옥 안에서 『전환시대의 논리』 출간 소식을 들은 뒤 출소 후 그의 책을 직접 편집·출간하는 인연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김학민은 리영희가 감옥 안에서도 결코 수동적이지 않았던 일화를 전했다. 1977년 광주교도소 복역 당시 재판 대응을 위해 밖에서 통계 자료 등을 몰래 들여보내 주었는데, 이를 도운 인물 중에는 말단 교도관 전병용이 있었다. 그는 해직과 구속 위험을 무릅쓰고 양심수들을 도왔으며, 훗날 교정 당국이 그를 표창하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는 송건호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이 증인으로 나서 유리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1977년 나온 『우상과 이성』 초판은 압수되어 남아 있지 않은 반면, 1980년 판본은 도서관에서 확인되는 뒷이야기도 소개됐다. 계엄령 하 서울시청 지하 검열실에서 방대한 분량을 읽어야 했던 검열관들의 고충과 이전 판본과 동일함을 내세워 통과를 받아낸 과정이 전해져 웃음을 자아냈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표현의 자유가 봉쇄된 시절 지식인의 글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이의 위험한 조력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청년 패널들이 처음 만난 리영희

/ ⓒ에디터 엄프로
이번 포럼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리영희를 만나본 적 없는 청년 세대 패널들이 그의 방대한 저작을 읽고 소회를 전한 데 있었다.
경기평화교육센터 청년 활동가 패널은 정치외교학 전공자임에도 리영희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다고 솔직히 밝혔다. 대학 도서관에서 『우상과 이성』이 최근 10년간 단 두 차례 대출되었고 그중 하나가 자신이라는 사례를 통해 오늘날 청년 세대와 리영희 간의 단절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대담집 『대화』를 읽으며 청년 세대가 잃어가는 것은 인물 자체가 아닌 '질문하는 태도'라고 진단했다. 정답 맞히기엔 익숙하지만 질문엔 주저하는 오늘날, 리영희의 시대가 '국가와 이념'의 우상에 맞섰다면 지금은 '나의 확신'을 성찰할 때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또 다른 청년 패널은 『대화』 속 "사상의 자폐증은 자살이다"라는 문장이 깊이 남았다고 전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며 사고를 멈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700쪽이 넘는 『대화』를 하루 만에 완독했다는 그는 역사를 교과서 속 서술이 아닌 개개인의 고통스러운 삶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며,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소회를 전했다.
전교조 경기지부 패널은 2020년 군포 산본으로 이사하며 지역사회를 통해 리영희를 접한 사연을 전했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아버지가 구독하던 지면에서 처음 이름을 접했던 기억과 함께, 리영희기념사업회의 '발자취 기행'을 통해 윤영자 여사가 지키는 산본 자택 서재를 방문한 경험을 나눴다. 앉은뱅이책상 위 읽다 만 책과 책장 사이 감춰진 술병 등은 '전설적 지식인'이 아닌 인간적인 리영희를 느끼게 했다.
오늘날 왜 다시 리영희인가
이날 포럼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 질문은 '왜 지금, 다시 리영희인가'였다. 패널들은 오늘날 정보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를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정보가 일방적으로 하달되어 부족했던 반면, 오늘날은 정보가 넘쳐나 선호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접하면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새로운 사회적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AI 기술의 확산으로 스스로 사고하는 훈련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리영희가 평생 강조했던 것은 특정한 이념적 결론이 아니라, 권위나 통념에 안주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해 스스로 사고하는 태도, 그리고 그 결과를 감수할 용기였다. 교육 현장의 패널은 이러한 '질문하는 자세'와 '사고하는 힘'이야말로 오늘날 교육이 다시 화두로 삼아야 할 가치라고 강조했다. 리영희가 다룬 개별 사건들은 시대와 함께 지나갔지만, 사건을 대하던 그의 지적 태도와 진실을 향한 집요함은 세대를 넘어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포럼의 잠정적 결론이었다.
맺으며
한 시간 반 남짓 진행된 이날 포럼은 화려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패널들은 리영희의 방대한 사상 세계를 다 이해하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앞으로 더 깊이 읽고 배우겠다는 다짐으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완결된 정답이 아닌 계속되는 질문으로 자리를 마쳤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리영희가 평생 지향했던 지적 태도와 가장 닮아 있는 결말이었다.
경기사회포럼 측은 이날 행사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밝히며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후원을 당부하고 마무리했다. 리영희가 감옥과 해직을 오가며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 한 사회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자유였다면, 그 자유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이어줄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 조촐한 지역 포럼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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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7※「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AN전도시에 SAN다' 시민추진위원회 전체회의 안내 포스터. ⓒ4.16안산시민연대
2026년 7월 13일 월요일 오후,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교육장에는 시민추진위원회 위원들이 모여 앉았다. 'AN전도시에 SAN다' 시민추진위원회 전체회의였다. 이날 가장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은 순서는 특별강연이었다. 강연 제목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강사로는 국회생명안전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용혜인 국회의원이 나섰다.
올해 5월 7일,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으로부터 꼭 12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이 글은 그날 강연에서 짚어준 법의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에디터가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함께 담아 정리한 기록이다.
솔직히 말하면, 강연을 들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안도감보다는 무게감이었다. 법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반가웠지만, "이제 다 됐다"는 홀가분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채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재난안전기본법에는 '피해자'가 없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만들어지기 전, 우리나라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 가장 먼저 작동하던 법은 재난안전기본법이었다. 그런데 이 법에는 애초에 '피해자'라는 규정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국가가 재난을 어떻게 대응하고 관리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짜인 법이다 보니, 국가와 각 부처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만 규정하고 있을 뿐 피해자의 관점은 반영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국가는 자체적인 조사와 수습만 진행했을 뿐, 피해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대형 참사의 피해자들은 회복과 치유의 과정을 거치기는커녕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거리에서 한겨울 혹한에 잠을 자야 했다. 심지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이 '반정부 세력'으로 매도되는 일까지 있었다.
이 대목에서 에디터로서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뉴스로 스치듯 봤던 유가족들의 모습, 삭발식, 단식 농성. 그때는 그저 안타까운 뉴스 한 줄이었는데, 그것이 '법에 피해자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구조적인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걸 이번 강연을 통해 처음으로 또렷하게 이해하게 됐다.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제도의 공백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생명안전기본법이 갖는 네 가지 의미

/'생명안전기본법, 네 가지 의미' 슬라이드를 배경으로 강연이 진행되는 모습. ⓒ에디터 안산사라
이날 강연에서는 생명안전기본법이 갖는 의미를 크게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국민의 안전권을 법률로 명시함으로써 헌법적 기본권을 확장했다는 점.
둘째, 그동안 흩어져 있던 재난안전 관련 법체계의 상위에 서는 기본법이 만들어졌다는 점.
셋째, 참사 때마다 반복해서 제기됐던 예방 미흡·부실 조사·피해자 방치라는 문제를 해소할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
넷째,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조사를 실질화하고 상설화했다는 점. 강연에서는 이 네 번째 대목을 "법의 심장 같은 부분"이라고 표현했다.
네 가지를 순서대로 듣다 보니, 결국 이 법의 뼈대는 '권리'와 '체계'와 '반복 방지'와 '독립성', 이 네 단어로 요약되는 것 같았다. 법 조문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 네 가지로 정리해 들으니 왜 이 법이 필요했는지가 한결 선명해졌다.
1. 헌법적 기본법의 확장 - 안전을 '권리'로
생명안전기본법 4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등에 관계없이, 일상생활과 노동현장 등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 안전이 권리로써 명문화된 것이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는 이 조항의 주어를 두고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국민'이 아니라 '사람'으로 규정해야 실질적이라는 반대 의견이 있었고, 결국 이번 법에서는 '국민'으로 정리됐다. 대신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 별도로 담겼다.
이 부분을 들으며 에디터로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태원 참사와 화성 아리셀 참사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겪었던 차별적 대응을 이미 우리는 목격한 바 있다. '모든 국민'에서 '모든 사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은, 이 법이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 자라야 할 법이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이 권리는 피해자에게는 더욱 구체적으로 확장된다. 신속하게 구조받을 권리, 예방부터 복구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고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고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시신을 인도적으로 인계받을 권리, 생활·의료·심리 지원을 받을 권리, 조사에 참여할 권리, 그리고 기억하고 추모할 권리. 그동안 피해자들이 스스로 짊어져야 했던 부담감을 이제는 국가가 보장해야 할 권리로 바꿔놓은 것이다.
2. 상위 기본법 제정 - 흩어진 법체계의 뼈대를 세우다
두 번째 의미인 '법체계의 상위 기본법'은, 그동안 재난안전 관련 법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이를 하나로 꿸 설계도가 없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생명안전기본법은 바로 그 설계도 역할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이다.
이 뼈대를 실제로 움직이는 장치로는 대통령 소속의 국민생명안전위원회, 그리고 5년마다 국가가 수립해야 하는 생명안전종합계획이 소개됐다. 안전 정책 전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두는 동시에, 흩어져 있던 정책과 예산, 교육을 하나로 모아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3. 반복된 문제를 풀 근거 — 안전영향평가와 알 권리

/강연을 경청하는 시민추진위원회 위원들의 모습. 두 대의 스크린에 각각 강연 슬라이드가 띄워져 있다. ⓒ에디터 안산사라
세 번째 의미인 '반복되는 문제 해소'는 크게 두 가지 제도로 구체화된다.
하나는 안전영향평가다. 정부와 지자체가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사업을 추진할 때, 그것이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분석·평가하도록 하는 제도다. 새로운 규제를 풀거나 사업을 벌일 때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지 않도록 하는 예방장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의 알 권리 보장이다. 앞으로 피해자들은 조사 결과와 판결문, 사고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 유해 물질 정보까지 요청할 수 있고, 요청받은 국가나 기업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응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성분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감춰졌던 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둘러싼 문서 목록 하나 공개되기까지 12년이 걸렸던 일이 그 배경으로 언급됐다.
이 대목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보를 '요청해서 받아내는 것'과 '당연히 받는 것' 사이에는 결과만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피해자가 감당해야 했던 시간과 싸움의 무게가 있다. 이 법이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국가 쪽으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변화라고 느꼈다.
4. 독립조사기구, 법의 '심장'
네 번째 의미인 독립조사의 실질화·상설화는 국무총리 산하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 설치로 구체화됐다. 사고 조사, 정책 개선 권고, 그리고 권고 이행 여부 점검까지 이 위원회가 맡는다.
조사기구를 상설화하고 민간 출신 상임위원을 확보하는 것이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가장 첨예했던 쟁점이었다고 한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그때그때 조사위원회를 새로 꾸리면, 매번 처음부터 사람을 모으고 자료를 다시 모으느라 조사가 지연되고, 결국 조사위원의 전문성과 연속성이 이어지지 않아 '셀프 조사' 비판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동안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겪었던 한계였다.
여기에 더해 조사가 끝난 뒤 권고사항이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조항도 새로 담겼다. 어렵게 조사하고 권고안을 만들어도 이행 여부를 아무도 확인하지 않으면 그 노력과 시간이 무의미해진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또 하나 눈에 띈 조항은 지역과 추모, 공동체 회복에 관한 내용이다. 추모시설 조성이나 기록 사업 등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도록 명시한 것인데, 그동안 정부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회복'이라는 영역이 국가의 의무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느꼈다.
12년, 발의와 폐기를 거듭한 시간
법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공동발의로 힘을 모았지만, 이번에도 국회 안에서 순탄하게 논의가 진전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결국 국회 안에서 스스로 길을 연 것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앞두고 유가족과 시민들이 다시 목소리를 낸 것이 계기가 되어 4월 29일 법안소위를 통과하고 5월 7일 본회의에서 최종 가결됐다.
12년이라는 시간은 강연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교 5, 6학년이 될 만큼의 시간"이라고 표현됐다. 이 표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법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아이가 그만큼 자랄 시간이 걸렸다는 것,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이번 법 통과로 유가족분들이 조금은 위안을 받으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 위안이 12년의 기다림에 비하면 너무 늦게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법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시행령을 채우고, 법을 키워가는 일'이라는 제목의 슬라이드. 시행령 제정, 안전약자 확대, 통합 컨트롤타워라는 세 가지 남은 과제가 정리되어 있다. ⓒ에디터 안산사라
법이 통과된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 강연 내내 반복됐다. 실제로 남은 과제는 적지 않다.
첫째는 시행령 제정이다. 피해자의 범위, 조사위원회 구성, 안전사고의 정의처럼 법의 실제 알맹이를 결정할 핵심 내용들이 대통령령에 위임돼 있다. 방향에 대한 의견은 주고받았지만, 실제 시행령이 어떻게 나올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둘째는 안전약자의 범위 확대다. 청소년이나 미등록 외국인처럼 더 취약한 사람들까지 폭넓게 포괄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이 다듬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셋째는 통합 컨트롤타워 문제다. 분산된 재난 조사를 한데 모아 결과와 사후 대책까지 통으로 점검하는 역할을 이번 법에 담고 싶었지만, 다른 부처들의 반발로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고 앞으로의 개정 과제로 남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들으며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법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연자 스스로 숨기지 않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12년 만에 어렵게 만든 법이니만큼 앞으로 더 탄탄하게 다듬어가야 한다는 과제가, 오히려 이 법이 살아있는 법이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무대는 이제 지역, 안산이 먼저다
법은 국가 전체를 규율하는 법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작동하려면 지역의 조례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리고 그 무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으로 안산이 꼽혔다.
사업을 추진할 때 피해자와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담겼다. 곧 조성될 4·16생명안전공원, 그리고 안전도시 시민추진위원회가 앞으로 만들어갈 추모·회복 사업들이 이 법의 지원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안산시 실정에 맞는 조례를 연구해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법과 조례가 있어도 이를 운영할 주체가 없으면 그저 종이에 적힌 글씨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왔다. 지역에서 안전 거버넌스를 세우고 시민들의 안전 역량을 키우는 일이 중요한 과제이며, 안산에서는 이미 시민추진위원회가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 대목에서 에디터로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법과 시행령은 국회와 정부의 몫이지만, 그 법을 지역에서 실제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 몫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져 이 법이 세상에 나온 만큼, 안산에서 먼저 이 법이 잘 시행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질의응답 — 시행령 일정과 예산, 그리고 남은 쟁점

/강연을 마친 강연자가 질의응답 시간, 스크린에 띄운 세월호 유가족들의 사진을 짚어가며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디터 안산사라
시행령은 언제쯤 완성되나. 시행령 제정 기한을 정한 조항이 있는지, 언제쯤 완성된 법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법이 지난 5월 공포되었고 심사 과정에서 시행령의 방향까지 함께 논의했지만 강연 시점까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나온 시행령안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사위원회 구성에 시민사회 몫이 있나. 특정 참사를 다루는 한시적 조사기구라면 피해자 대표 추천 몫을 두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조사기구는 상설로 운영되는 성격이라 추천 대상을 특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재난안전 분야에서 활동해온 시민사회와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인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예산은 충분히 확보될 수 있나. 상설 조사기구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일반회계에서 편성되는 것이라 확보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는 답이 나왔다.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세월호 참사 12주기 이전 제정을 요청했던 이유 중 하나도 각 부처의 예산 편성 시점과 맞물려 있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중대재해처벌법과의 관계는.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이미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생명안전기본법이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사례를 짚어가며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질문들을 듣고 있자니,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단순히 강연을 '듣는' 입장이 아니라 이미 이 법을 '어떻게 써먹을지'를 고민하는 입장이라는 게 느껴졌다. 시행령, 예산, 안전약자 범위처럼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질문들이 이어졌다는 것 자체가, 안산이 이 법을 그저 뉴스로 흘려보내지 않고 있다는 증거로 보였다.
나오며 — 에디터의 생각
강연을 들으며 내내 든 생각은, 12년 만에 만들어진 법인 만큼 앞으로 잘 만들어지고 잘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법 제정으로 유가족분들은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으셨을 테지만, 정작 시행령을 채우고 지역 조례로 구체화하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가 더 크게 남아 있다는 느낌이 강연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 결실을 맺은 법인 만큼, 앞으로는 더 탄탄한 법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이 법이 통과되기까지 유가족과 시민사회, 그리고 국회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졌다는 것을 이번 강연을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안산에서 먼저 이 법이 잘 시행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법은 국회가 만들었지만, 그 법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은 결국 지역에서, 우리 손으로 해나가야 할 몫이다. 이번 시민추진위원회 전체회의가 그 시작점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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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1※「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도시가 식탁을 바꿀 수 있을까?

한 도시가 시민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를 먹지 말자"고 제안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무엇을 먹을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고, 특히 고기를 사랑하는 문화권이라면 그런 제안은 반발만 부를 것 같다. 벨기에는 홍합과 감자튀김, 소고기 맥주 스튜로 유명한, 그야말로 육식의 나라다. 그런데 바로 그 벨기에의 한 도시가 세계 최초로 도시 차원의 '채식의 날'을 선언했고, 그것을 성공시켰다.
인구 약 26만 명의 항구도시 겐트(Ghent).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에 위치한 이 도시는 2009년 5월 13일, 매주 목요일을 '채식의 날(Donderdag Veggiedag, 목요일 베지데이)'로 공식 선언했다. 시민들에게 목요일 하루만이라도 고기와 생선을 내려놓고 채식을 해보자는 캠페인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도시 전체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관공서 구내식당, 시립 학교와 어린이집이 목요일마다 채식 식단을 기본으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도시의 식당들이 채식 메뉴를 개발했으며, 시민들의 식습관 자체가 바뀌었다.
겐트의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환경·건강·동물복지라는 공익적 가치가 어떻게 개인의 선택을 넘어 도시의 제도와 문화로 정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행정이 어떻게 협력했는지, 강제가 아닌 방식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기후위기 시대에 먹거리 정책을 고민하는 한국의 여러 도시, 그리고 경기도에도 실질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2. 시작 — 시민단체에서 출발한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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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트의 채식의 날은 정부가 위에서 만들어낸 정책이 아니었다. 그 출발점은 EVA(Ethisch Vegetarisch Alternatief, 윤리적 채식 대안)라는 벨기에의 채식 시민단체였다. 벨기에 최대의 채식 관련 비영리단체인 EVA는 플랑드르 지역 전역에 채식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EVA의 접근 방식은 영리했다. 처음부터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도시의 채식 친화적인 장소들, 즉 채식 메뉴를 파는 모든 식당, 호텔, 슈퍼마켓, 감자튀김 가게를 일일이 조사해 '채식 지도(Veggie Map)'를 만들었다. 이 지도를 본 식당들이 스스로 채식 메뉴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없던 수요가 지도를 통해 가시화되자, 공급이 따라온 것이다.
2005년 플랑드르 정부가 재정 지원에 나섰고, EVA는 2007년 겐트시와 협력해 첫 번째 '목요일 베지데이'를 시작했다. 이 캠페인의 목적은 명확했다. 육류 소비를 줄이고, 환경을 지원하고, 윤리적 식생활을 받아들이며, 사람들에게 채식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9년 5월 13일, 겐트시의 환경·사회 담당 부시장 톰 발타자르(Tom Balthazar)가 매주 목요일을 공식 '채식의 날'로 선언하면서, 이 캠페인은 유럽 정치사에 기록되는 사건이 됐다. 시민단체가 씨앗을 뿌리고, 도시 정부가 그것을 제도로 공식화한 협력 모델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흥미롭게도 왜 하필 목요일이었는지에 대한 답은 의외로 소박하다. EVA 관계자에 따르면 목요일을 고른 것은 전략적 결정이라기보다 미적 선택에 가까웠다. 네덜란드어로 '돈더르닥 베지데이(Donderdag Veggiedag)'가 운율이 좋게 들렸기 때문이다. 거창한 명분보다 시민들이 기억하기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름을 택한 것이다.
3. 왜 채식인가 — 환경·건강·동물복지의 교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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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트가 채식의 날을 도입한 배경에는 명확한 근거들이 있었다. 채식이라는 하나의 실천이 환경, 건강, 동물복지라는 세 가지 공익적 가치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환경 측면의 근거가 가장 강력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당 부분이 축산업에서 발생한다고 평가해왔다. 가축, 특히 소가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효과를 가진다. 게다가 육류 생산은 막대한 양의 물과 토지를 소비한다. 겐트시는 이 논리를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수치로 번역했다. 겐트시의 계산에 따르면, 만약 24만 3천 명의 겐트 시민 전체가 목요일 채식의 날에 참여한다면, 그 효과는 도로에서 자동차 1만 9천 대를 없애는 것과 맞먹는다.
건강 측면의 근거도 분명했다. 육류 섭취가 많은 식단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고, 이는 심혈관 질환, 일부 암, 당뇨병의 위험을 높인다. 세계보건기구와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심장질환, 암, 당뇨, 비만 예방을 위해 하루 최소 400그램 이상의 채소와 과일 섭취를 권고한다. 채식의 날은 시민들이 이 권고에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동물복지 측면의 가치도 빼놓을 수 없다. 육류 소비를 줄인다는 것은 곧 공장식 축산에서 고통받는 동물의 수를 줄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VA라는 단체의 이름 자체가 '윤리적 채식 대안'인 만큼, 동물에 대한 윤리적 고려는 이 캠페인의 근본 정신 중 하나였다.
이 세 가지 가치가 하나의 실천으로 수렴된다는 점이 채식의 날의 강점이었다.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도,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도, 동물을 생각하는 사람도 모두 같은 행동에 동참할 수 있었다.
4. 어떻게 정착시켰나 — 강제가 아닌 설계
겐트의 채식의 날이 성공한 진짜 비결은 '어떻게'에 있다. 도시는 시민들에게 채식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채식이 자연스럽고 쉬운 선택이 되도록 환경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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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 부문이 먼저 움직였다는 점이다. 2009년부터 겐트의 시립 학교와 어린이집은 목요일에 따뜻한 채식 점심을 기본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싸 오는 아이들에게도 목요일엔 채식으로 준비하도록 권장했다. 관공서 구내식당과 공공 서비스도 목요일엔 채식을 기본 메뉴로 삼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기본값(default)'이었다는 점이다. 고기를 원하는 학부모는 별도로 신청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채식이 제공됐다. 선택의 자유는 보장하되, 기본 방향을 채식으로 설정한 넛지(nudge) 전략이었다.
식당과 요식업계를 끌어들인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겐트시와 EVA는 '베지케이션(Veguca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요리사들에게 채식 요리법을 교육했다. 도시는 채식 요리사 양성에 수만 유로를 투자했고,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채식 요리의 비법을 가르치는 강좌도 열었다. 채식이 '맛없는 희생'이 아니라 '맛있는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요리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자원을 집중한 것이다.
소통 전략도 치밀했다. 겐트시는 25만 명의 시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매년 대규모 행사를 열고, 시민들이 참여를 약속하는 서명 명단을 만들고, 전용 웹사이트와 월간 매거진을 운영했다. 요리 강좌와 요리책을 통해 가정에서도 채식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눈에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런 다층적 설계의 결과, 채식의 날은 겐트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채식의 날은 2009년 미래세대를 위한 대상(Big Prize for Future Generations)을, 그 전해인 2008년에는 최고의 프로젝트로 식품건강상(Food and Health Award)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5. 성과 — 도시의 식탁이 바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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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트의 채식의 날은 실제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을까. 수치들이 그 답을 보여준다.
우선 시민 인지도와 참여율이 높았다. EVA에 따르면 겐트 시민의 다섯 명 중 네 명이 이 캠페인을 알고 있었고, 세 명 중 한 명이 참여했다. 캠페인이 특정 소수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문화로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식습관의 실질적 변화도 확인됐다. 연구에 따르면 벨기에인의 43%가 목요일 베지데이 덕분에 이전보다 고기를 덜 먹게 됐고, 약 40%는 목요일이 아닌 다른 날에도 채식을 하게 됐다. 하루의 캠페인이 일주일 전체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의 인구 구성 자체가 바뀌었다. 겐트의 채식 인구 비율은 약 7%에 이르러, 벨기에 전국 평균인 2.3%를 크게 웃돌게 됐다. 채식의 날이라는 정책이 실제로 더 많은 시민을 채식으로 이끌었다는 증거다.
식당 생태계도 변했다. 캠페인 이전 겐트에서 채식 메뉴는 제한적이거나 아예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지금 겐트의 채식 지도에는 100곳이 훌쩍 넘는 음식점이 등록되어 있고, 완전 채식 식당만 15곳 안팎에 이른다. 겐트는 인구 대비 채식 식당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며 '유럽의 채식 수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국제적 파급력도 상당했다. 겐트의 사례는 캐나다에서 일본, 호주에서 스웨덴까지 국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브라질 상파울루, 독일 브레멘, 미국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등 세계 여러 도시가 유사한 캠페인을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벨기에 국내에서도 브뤼셀, 하셀트, 메헬렌 등이 목요일 채식의 날을 따랐다.
6. 캠페인을 넘어 정책으로 — '겐트 엔 가르드'
겐트의 진정한 성취는 채식의 날을 일회성 캠페인으로 끝내지 않고, 도시의 종합적 먹거리 정책으로 발전시켰다는 데 있다.
2013년 겐트시는 '겐트 엔 가르드(Gent en Garde)'라는 이름의 도시 먹거리 전략을 출범시켰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독자적인 도시 먹거리 정책을 수립한 사례 중 하나다. 이 전략은 짧고 지속 가능한 먹거리 공급망 구축,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 먹거리를 통한 사회적 부가가치 창출, 음식물 쓰레기 감축, 음식물 폐기물의 재활용이라는 다섯 가지 전략 목표를 중심으로 한다.
겐트시는 이 전략을 이끌기 위해 농업, 유통, 요식업, 시민사회, 지식기관 등 먹거리 시스템의 다양한 부문에서 온 약 30명으로 구성된 '먹거리 위원회(Food Council)'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2018년부터 자체 예산을 갖고 혁신적인 먹거리 프로젝트를 지원해왔다. 연간 약 6만 유로의 예산으로 지금까지 27개 프로젝트가 지원을 받았다.
성과는 구체적이다. '푸드세이버스(Foodsavers)' 프로젝트는 2년 만에 1,000톤이 넘는 잉여 식품을 5만 7천 명 이상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했다. 채식의 날 캠페인은 이 종합 전략 안에서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으며 지속됐다.
겐트의 먹거리 정책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2019년 유엔 글로벌 기후행동상을 받았고, 2021년에는 유로시티즈 어워드의 '농장에서 식탁까지' 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2021년 11월, 겐트는 벨기에 최초로 지역 단백질 전환 실행 계획을 발표하며, 2050년까지 기후중립적인 먹거리 공급망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캠페인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도시의 장기 비전으로 확장된 것이다. 개인의 실천에서 시작된 것이 제도와 문화로 정착하는 완결된 경로를 겐트는 보여준다.
7. 한국·경기도와의 비교 —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한국에서도 채식 급식과 저탄소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겐트의 경험과 비교하면 접근 방식에서 배울 점이 뚜렷하다.
한국의 여러 교육청과 지자체가 '채식의 날'이나 '그린 급식의 날'을 도입해왔다. 서울시교육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그린 급식 활성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한 달에 두 번 채식의 날을 운영하는 방침을 세웠고, 인천·울산·부산·전북·광주 등에서도 초중고 채식 급식을 도입했다. 경기도 역시 공공기관과 기업체 급식소 등에 '채식의 날' 운영을 권장하고 경기도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도록 채식 생활 실천을 지원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했다. 2025년 9월에는 경기도의회·경기도교육청의 후원으로 '2025 기후급식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채식 급식 도입 과정에서는 갈등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채식의 날 방침을 내놓자 축산관련단체협의회가 "일방적 채식주의 확산 정책이 육식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조장한다"며 반발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채식급식이 나오는 날이면 동네 치킨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말이 나오거나, 성장기 학생들의 영양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조리 인력 부족 등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하는 교육 당국 관계자들도 있었다.
겐트의 경험은 이런 갈등에 대한 힌트를 준다. 첫째, 겐트는 강제하지 않고 '기본값'으로 설정하되 선택권을 남겼다. 고기를 원하는 사람은 신청할 수 있게 함으로써 반발을 줄였다. 둘째, 겐트는 '맛'에 투자했다. 채식이 희생이 아니라 매력적인 선택이 되도록 요리사 교육과 메뉴 개발에 자원을 집중했다. 채식급식이 '먹을 게 없는 날'이 되면 실패하지만, '맛있는 새로운 경험'이 되면 성공한다. 셋째, 겐트는 시민단체와 행정이 협력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아니라, EVA라는 시민단체가 먼저 문화를 만들고 행정이 뒷받침하는 구조였기에 저항이 적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이런 접근이 효과를 보인 사례가 있다. 한 채식 급식 연구학교에서는 채식이 지구환경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는 학생 비율이 사전 59.2%에서 사후 90.9%로 크게 증가했다. 무작정 도입하기보다 구성원의 공감과 동참을 끌어내며 시행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결론이었다. 겐트의 교훈과 정확히 일치한다.
8.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겐트의 사례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만한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공익적 가치는 '쉬운 실천'으로 번역될 때 확산된다. 겐트는 "기후를 위해 채식하라"는 거대한 구호 대신 "목요일 하루만 고기를 내려놓자"는 작고 구체적인 행동을 제안했다. 경기도의 환경·먹거리 공익활동도 시민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의 형태로 설계될 때 더 널리 퍼질 수 있다.
둘째, 시민단체와 행정의 협력이 지속 가능성을 만든다. 겐트의 채식의 날은 EVA라는 시민단체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행정의 제도적 뒷받침으로 완성됐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와 같은 중간지원조직이 시민단체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행정의 자원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때, 공익활동이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지속적인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다.
셋째, 기록과 확산이 변화를 굳힌다. 겐트가 채식 지도를 만들고, 성과를 수치로 측정하고,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경험을 공유한 것이 캠페인을 세계적 모델로 키웠다. 경기도의 공익활동도 그 과정과 성과가 꼼꼼히 기록되고 공유될 때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실제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아카이브에도 '기후 위기의 대안, 채식 밥상' 같은 콘텐츠가 기록되어 시민들에게 채식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지역의 먹거리·환경 공익활동을 기록하는 일은, 겐트가 그랬듯 작은 실천이 문화로 자리 잡는 과정을 뒷받침하는 일이다.
마무리 — 하루의 변화가 도시를 바꾼다
2009년 겐트가 목요일을 채식의 날로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육식의 나라에서 그런 시도가 성공할 리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 겐트는 유럽의 채식 수도가 됐고, 시민의 3분의 1이 채식의 날에 동참하며, 전국 평균의 세 배에 달하는 채식 인구를 가진 도시가 됐다.
이 변화의 비결은 강제가 아니라 설계였다. 시민단체가 씨앗을 뿌리고, 도시가 그것을 제도로 키우고, 요리사와 학교와 식당이 함께 참여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하루, 그것도 일주일에 단 하루의 작은 변화가 도시 전체의 식탁을, 나아가 도시의 정체성을 바꿔놓았다.
먹는 것만큼 개인적인 일도 없다. 그러나 겐트는 그 개인적인 선택이 모이면 도시를 바꾸고, 환경을 지키고, 문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경기도의 식탁 위에서도, 작은 실천 하나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상상해볼 만하다. 공익은 거창한 곳이 아니라, 목요일 점심 한 끼에서 시작될 수 있다.
<참고 자료>
- Stad Gent(겐트시) 공식 홈페이지 — Sustainable food / Gent en Garde : https://stad.gent/en/city-governance-organisation/city-policy/making-ghent-climate-neutral-2050/gent-en-garde-towards-more-sustainable-food-system
- Visit Gent(겐트 관광청) — Green travel and mindful food consumption : https://visit.gent.be/en/good-know/practical-information/why-ghent/green-travel-and-mindful-food-consumption
- SBS Food — How Ghent in Belgium became the vegetarian capital of Europe : https://www.sbs.com.au/food/article/how-this-meat-loving-city-became-the-vegetarian-capital-of-europe/4blk3o39i
- Mic — How the meat-loving city of Ghent became the veggie capital of Europe : https://www.mic.com/articles/185650/how-the-meat-loving-city-of-ghent-became-the-veggie-capital-of-europe
- NYC Food Policy Center — Veggie Thursday, Ghent: Urban Food Policy Snapshot : https://www.nycfoodpolicy.org/veggie-thursday-ghent-urban-food-policy-snapshot/
-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 — Ghent en Garde: Creating Structural Change through Local Food Policy : https://unfccc.int/climate-action/momentum-for-change/planetary-health/ghent-en-garde
- Eurocities — Ghent's food revolution : https://eurocities.eu/stories/ghents-food-revolution/
- Metropolis — Ghent en Garde : https://use.metropolis.org/case-studies/ghent-en-garde
- Interreg Europe — Local food strategy Gent en Garde : https://www.interregeurope.eu/good-practices/local-food-strategy-gent-en-garde
- Interreg Europe — Gent en Garde Sustainable Food Strategy of Ghent : https://www.interregeurope.eu/good-practices/gent-en-garde-sustainable-food-strategy-of-ghent
- Vegsphere — Donderdag Veggiedag: Nearly 50% of Ghent population goes veggie every Thursday : https://vegsphere.com/blog/donderdag-veggiedag-nearly-50-ghent-population-goes-veggie-every-thur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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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도입 — 은퇴 이후, 남자들은 어디로 가는가
한 남자가 있다. 평생 일했고, 가정을 부양했고, 직장에서 인정받았다. 그런데 은퇴하는 순간, 그를 규정하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 매일 나가던 일터가 없어지고, 동료들과의 관계가 끊기고, 사회적 역할이 증발한다. 아내는 이미 자기만의 관계망을 갖고 있지만, 그에게는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가 별로 없다. 감정을 털어놓는 데 익숙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다. 그렇게 그는 집 안에서, 혹은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서서히 고립된다.
이것은 특정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중년과 노년의 남성들이 공통으로 겪는 현실이다.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건강과 안녕에 관심을 덜 두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많은 남성이 여성보다 건강하지 못하고, 술을 더 많이 마시고, 고립과 외로움, 우울에 더 취약하다.
호주에서 시작된 '멘즈 셰드(Men's Shed)'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놀랍도록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해법이었다. 남자들에게 갈 곳(somewhere to go), 할 일(something to do), 이야기 나눌 사람(someone to talk to)을 제공한다는 철학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목공과 수리 같은 활동을 함께 하는 작업 공간을 통해 고립된 남성들을 다시 관계망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 모델은 호주를 넘어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뉴질랜드 등 전 세계로 퍼졌다.
'남자들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한다(Men don't talk face to face, they talk shoulder to shoulder)'. 멘즈 셰드의 이 슬로건은, 이 운동이 남성의 심리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주 앉아 "네 문제가 뭐냐"고 묻는 대신, 나란히 서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며 자연스럽게 마음을 여는 방식이다. 한국이 지금 직면한 중장년 남성 고립 문제에, 이 오래된 창고의 지혜는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2. 탄생 — 한 아버지의 우울에서 시작된 아이디어
멘즈 셰드의 개념은 호주의 전통적인 '뒷마당 창고(backyard shed)' 문화에서 왔다. 많은 호주 남성들이 집 뒤편 창고에서 혼자 목공을 하거나 물건을 고치며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있었는데, 이 개인적인 공간을 공동체의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 멘즈 셰드였다.
멘즈 셰드 운동의 뿌리를 찾아가면, 한 여성과 그녀의 아버지에게 닿는다. 흔히 세계 최초의 멘즈 셰드로 인정받는 것은 1993년 호주 남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굴와(Goolwa)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노인들을 위한 활동 센터 '헤리티지 클럽(Heritage Club)'의 코디네이터였던 맥신 체이슬링(Maxine Chaseling)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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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이슬링이 멘즈 셰드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는 개인적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를 겪은 후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우울증에 빠지고 집 안에 갇힌 듯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노인 복지 분야에서 오래 일해온 그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노년학, 남성 건강, 그리고 남성을 위한 서비스의 부재에 관해 여러 학회에서 발표해왔다. 남성들이 은퇴 이후 갈 곳도, 할 일도, 이야기 나눌 사람도 잃어버린다는 문제의식이 그 바탕에 있었다.
이후 '멘즈 셰드'라는 이름을 단 첫 공간은 1998년 7월 26일 호주 빅토리아주 통갈라(Tongala)에서 문을 열었다. 설립자 딕 맥고완(Dick McGowan)의 이름을 따 '딕 맥고완 멘즈 셰드'로 불렸다. 어느 것이 '진짜 최초'인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지만, 중요한 것은 1990년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와 빅토리아의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남자들의 작업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혼자 하던 일을 여럿이 함께 하게 되면서, 창고는 고립의 장소에서 연결의 장소로 바뀌었다.
3. 확산 — 호주에서 전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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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즈 셰드는 호주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다. 특히 농촌과 원주민 공동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2007년에는 호주멘즈셰드협회(Australian Men's Shed Association, AMSA)가 설립되어 새로운 셰드의 설립을 돕고 기존 셰드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호주 정부도 멘즈 셰드가 남성 건강과 안녕에 기여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재정 지원에 나섰다. 오늘날 AMSA는 호주 전역 1,300개가 넘는 셰드를 지원하는 전국 조직으로 성장했다.
호주에서의 성공은 전 세계로 영감을 주었다. 아일랜드멘즈셰드협회(IMSA)가 2011년 설립됐고, 영국멘즈셰드협회(UKMSA)와 뉴질랜드의 멘즈셰드협회가 2013년, 스코틀랜드멘즈셰드협회(SMSA)가 2015년, 미국멘즈셰드협회가 2017년, 남아프리카공화국멘즈셰드협회가 2022년에 차례로 설립됐다.
멘즈 셰드 운동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배리 골딩(Barry Golding) 교수의 집계에 따르면, 2015년 5월 기준 전 세계에 1,416개의 멘즈 셰드가 있었다. 이 가운데 호주에 933개, 아일랜드섬 전역에 273개, 영국(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에 148개, 뉴질랜드에 57개가 분포했다. 이후로도 덴마크, 스웨덴, 캐나다 등으로 계속 확산되어, 이 운동은 명실상부한 국제적 흐름이 됐다.
특히 아일랜드는 이 운동을 국가 차원의 정책으로 받아들인 대표적인 사례다. 아일랜드는 2008~2013년 국가 남성 건강 정책(National Men's Health Policy)에서 멘즈 셰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장려했다. 시민운동으로 시작된 것이 국가 보건 정책의 일부로 격상된 것이다.
4. 영국의 사례 — 고립 대응의 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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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즈 셰드가 가장 활발하게 뿌리내린 나라 중 하나가 영국이다. 영국멘즈셰드협회(UKMSA)는 2013년 설립 당시 영국 내 셰드가 30개에 불과했지만, 2024년 3월 기준으로 그 수가 1,100개를 넘어섰다. 매주 3만 3천 명 이상의 남성과 여성이 멘즈 셰드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UKMSA는 앞으로 8년 안에 셰드 수를 2,400개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영국에서 멘즈 셰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 효과가 구체적인 데이터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셰더(Shedder, 멘즈 셰드 이용자를 부르는 말)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셰드에 오기 전 자신을 외롭다고 묘사한 사람이 44%였는데, 셰드에 가입한 후에는 이 수치가 단 3%로 크게 떨어졌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였다. 아일랜드와 영국 협회의 조사에서는 셰더의 96% 이상이 셰드에 가입한 후 덜 외롭다고 느끼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답했다.
더 극적인 것은 생명과 관련된 수치다. UKMSA의 2023년 건강·안녕 조사에 따르면, 셰드 리더의 39%가 자신의 셰드가 최소 한 명 이상의 회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막았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남성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인 영국에서, 멘즈 셰드가 실질적인 자살 예방 기능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멘즈 셰드는 다양한 특화된 형태로도 발전했다. 호스피스 안의 멘즈 셰드, 치매나 기억 장애가 있는 남성을 위한 '메모리 셰드(Memory Shed)', 뇌졸중 회복을 돕는 셰드 등이 그것이다. 또한 영국에서는 멘즈 셰드가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의 한 형태로 활용된다. 의사가 외롭거나 우울한 환자에게 약 대신 지역 멘즈 셰드 참여를 '처방'하는 방식이다. 국립보건연구원(NIHR)의 보고서는 멘즈 셰드를 사회적 처방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지역사회 조직으로 꼽았다.
5. 왜 효과가 있는가 — '나란히'의 심리학
멘즈 셰드가 다른 복지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지점은 접근 방식의 철학에 있다. 핵심은 '건강'이나 '치료'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남성들은 "당신은 외롭습니다", "정신 건강 상담을 받으세요"라는 직접적인 접근에 거부감을 느낀다. 특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약함으로 여기도록 사회화된 세대일수록 그렇다. 멘즈 셰드는 이 벽을 우회한다. 이곳은 '외로운 남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작업장'이다. 참여자는 우울증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의자를 고치거나 새집을 만들거나 자전거를 수리하러 온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의 삶을 나누게 된다.
이것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라는 슬로건의 진짜 의미다. 남성들은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같은 작업대 앞에 나란히 서서 손을 움직이며 이야기하는 것은 편안해한다. 작업이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기에 대화의 부담이 줄고, 침묵도 어색하지 않다. 무언가를 함께 만든다는 성취감은 상실했던 효능감과 자존감을 회복시킨다.
배리 골딩 교수는 2014년 이런 남성 특유의 학습·소통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셰다고지(shedagogy)'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일부 남성들이 선호하는, 함께 무언가를 하면서 배우고 소통하는 독특한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이 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멘즈 셰드의 건강 효과에 관한 근거가 대체로 소규모 표본의 자기 보고에 의존하고 있어, 검증된 건강 지표를 활용한 정량적 연구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운동이 전통적 남성성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즈 셰드가 고립된 남성들에게 사회적 연결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6. 한국의 현실 — 5060 남성이라는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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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2025년 11월 발표한 '2024년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고독사 사망자는 3,924명으로 공식 통계가 있는 201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63명(7.2%) 증가한 수치다. 이 통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바로 중장년 남성의 취약성이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3,205명(81.7%)으로 여성(605명, 15.4%)의 5배 이상이었다. 연령대별로는 60대가 1,271명(32.4%), 50대가 1,197명(30.5%)으로 5060 중장년층이 가장 많았다. 70대(497명, 12.7%)보다 오히려 50대와 60대의 고독사가 더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성별과 연령을 종합하면 60대 남성(1,089명, 27.8%)과 50대 남성(1,028명, 26.2%)이 고독사에 가장 취약한 집단으로 나타났다. 50~69세 남성이 전체 고독사의 절반이 넘는 54%를 차지했다.
이 수치들이 그리는 그림은 명확하다. 실업이나 은퇴, 이혼이나 사별로 인한 관계 단절을 겪은 중장년 남성이 사회적 고립의 가장 큰 위험군이라는 것이다. 고독사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가족(26.6%)이 아니라 임대인이나 경비원(43.1%)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는 사실은, 이들이 얼마나 깊이 고립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부터 고독사 예방 사업 대상을 사회적 고립 위험군으로 확대하고, 특히 실업·사회적 관계 단절 문제를 겪는 50~60대 중장년을 대상으로 일자리 정보 제공을 통한 취업 지원과 함께 '중장년 자조모임' 등 사회관계망 형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국의 멘즈 셰드 경험이 중요한 참고가 된다.
7. 무엇을 배울 것인가 — 한국형 멘즈 셰드의 조건
멘즈 셰드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할 수는 없다. 문화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핵심 원리에서 배울 점은 분명하다.
첫째, '활동'을 앞세우고 '치료'를 숨겨야 한다.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에게 "고립 위험군이니 자조모임에 나오세요"라는 접근은 낙인처럼 느껴질 수 있다. 멘즈 셰드처럼 목공, 자전거 수리, 텃밭 가꾸기, 전자기기 수리 같은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활동을 전면에 내세우고, 사회적 연결은 그 부산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하는 설계가 효과적이다.
둘째, '나란히'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상담실이 아니라, 함께 손을 움직이며 곁눈질로 대화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 역시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과정이 대화의 매개가 될 수 있다.
셋째, 지역 공간과 연결해야 한다. 멘즈 셰드는 거창한 시설이 아니라 동네의 작은 창고나 공터에서 시작됐다. 한국에도 활용도가 낮은 주민센터, 경로당, 유휴 공공시설이 많다. 이런 공간을 중장년 남성들의 '작업장'으로 전환하는 것은 큰 예산 없이도 시도할 수 있다.
넷째, 남성의 강점을 자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은퇴한 중장년 남성들은 평생 쌓아온 기술과 경험을 갖고 있다. 목수, 전기 기술자, 엔지니어, 회계사 등 다양한 전문성이 있다. 멘즈 셰드는 이들의 기술을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으로 전환한다. 고장 난 물건을 고쳐주거나, 지역 행사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거나, 젊은 세대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도움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기여하는 주체가 될 때, 잃어버렸던 효능감이 회복된다.
8.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멘즈 셰드 사례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만한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고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설계로 풀어야 할 과제다. 멘즈 셰드는 "외로우면 나와서 어울리라"고 개인에게 요구하는 대신, 어울릴 수밖에 없는 구조와 공간을 만들었다. 경기도의 중장년 고립 문제도 개인의 의지에 맡기기보다, 참여의 장벽을 낮춘 구체적인 공간과 활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31개 시·군의 유휴 공간을 활용한 '작업장형 커뮤니티'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모델이다.
둘째, 시민단체와 행정의 협력이 지속 가능성을 만든다. 멘즈 셰드는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시작됐지만, 호주·아일랜드·영국 정부의 정책적 인정과 재정 지원을 통해 전국적 규모로 성장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같은 중간지원조직이 지역의 자발적 모임과 행정 자원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때, 작은 시도가 지속 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셋째, 남성 고립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익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 아동, 청소년, 여성, 노인에 대한 공익활동에 비해 중장년 남성의 고립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해온 사각지대다. 그러나 고독사 통계가 보여주듯 이는 시급한 사회 문제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이런 사각지대의 공익 이슈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 자체가, 사회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에 빛을 비추는 공익활동이다.
마무리 — 창고 문을 열며
맥신 체이슬링이 우울증에 빠진 아버지를 보며 떠올린 작은 아이디어는, 30년이 지나 전 세계 수천 개의 창고로 퍼졌다. 그 창고들 안에서, 갈 곳을 잃었던 남자들이 다시 갈 곳을 찾았고, 할 일을 잃었던 이들이 다시 할 일을 찾았으며,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던 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할 친구를 찾았다.
멘즈 셰드의 성공은 거창한 이론이나 막대한 예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남성들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들이 편안해하는 방식으로 다가간 데서 나왔다. 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감정을 캐묻지 않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면서 말이다.
한국의 5060 중장년 남성들이 매년 수천 명씩 홀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창한 복지 제도가 아니라, 목요일 오후에 나가서 함께 톱질하고 커피 한잔 나눌 수 있는 작은 창고 하나일지도 모른다. 경기도의 어느 동네에서, 그런 창고의 문이 열리는 상상을 해본다. 공익은 때로 가장 소박한 공간에서 시작된다.
<참고 자료>
- UK Men's Sheds Association(UKMSA) 공식 홈페이지 : https://menssheds.org.uk/
- UKMSA — Press and Media information(2024년 3월 기준 통계) : https://menssheds.org.uk/media/
- UK Men's Sheds 통합 디렉토리(4개국 협회 안내) : https://ukmensheds.co.uk/
- Scottish Men's Sheds Association — 사회적 고립·외로움 대응 브리핑 보고서 : https://scottishmsa.org.uk/briefing-report-how-mens-sheds-are-addressing-male-social-isolation-and-loneliness/
- UK Parliament — UKMSA가 제출한 남성 정신건강 관련 서면 증거(IMH0034) : https://committees.parliament.uk/writtenevidence/124266/html/
- PMC(미국국립보건원) — Men's Sheds: A conceptual exploration of the causal pathways for health and well-being :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6772158/
- Ipsos — UK Men's Sheds Association 의뢰 남성 정신건강 조사 : https://www.ipsos.com/en-uk/ipsos-survey-uk-mens-sheds-association
- Australian Historical Studies — The Men's Shed Movement in Australia(Boucher & Robinson, 2021) :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1031461X.2021.1901946
- The Missing Library — The Men's Shed Movement(배리 골딩 연구 소개) : https://themissinglibrary.com.au/the-mens-shed-movement/
- 보건복지부 — 2024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 보도자료 : https://www.mohw.go.kr/board.es?mid=a10503010100&bid=0027&act=view&list_no=1488039
- 머니투데이 — 작년 고독사 3924명…수도권 5060 중장년 남성 취약 : https://www.mt.co.kr/policy/2025/11/28/2025112720032322415
- 한국헬스경제신문 — 고독사는 왜 중장년 남성에 많을까 : https://www.healtheconomy.co.kr/news/article.html?no=34216
- 뉴스웍스 — 작년 고독사 사망자 3661명…5060 남성 취약 : https://www.newswork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9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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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무대 조명이 켜지면 첫 장면은 공원이다. 아버지를 찾는 아이와 그 아이를 놀래주는 아버지의 장난. 배우의 어린 시절 기억이었다. 아버지와 그네를 탄다. 손을 놓으면 넘어질까 봐 아버지는 아이 허리를 꽉 쥔다. 또 다른 배우의 기억이었다. 우리 배우들은 이 장면에서 손가락 하나하나를 다르게 쓴다. 베트남에서 온 농인 배우는 자기 아버지 손은 이보다 더 컸다고 손짓으로 크기를 보여줬다.
다음 장면은 열일곱 살. 아이는 이제 십대다. 진학 문제로 아버지와 다툰다. 수어의 손이 커지고 손짓이 날카로워진다. 화가 난 손은 원래보다 반경이 넓어진다. 우리는 이 장면을 연습할 때마다 웃었다. 다들 우리 아버지 모습과 같다며 눈물 지웠다.
세 번째 장면, 공항이다. 아버지의 만류를 뒤로하고 사랑을 찾아 출국하는 딸. 손은 이제 등을 돌린 채로 움직인다. 등을 돌리고 수어를 한다는 건 원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농인끼리는 서로의 손을 보지 않으면 대화가 끊긴다. 그런데 이 장면만큼은 일부러 등을 돌렸다. 보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걸, 우리는 그렇게 표현하기로 했다.
마지막 장면. 아버지의 유언이다. 죽으면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고, 딸이 있는 곳 가까이 흘러가고 싶다고, 마지막까지 딸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 이 장면에서 우리는 수어 없이 가슴을 뜯는 장면으로 했다. 수어도 필요 없는, 모두가 겪었던 슬픔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단순한 몸짓을 관객석에서 우는 사람 없이 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인순이의 노래 <아버지>를 이렇게 수어로 옮겼다. 노래 하나를 오 분짜리 무언극으로 만드는데, 우리는 반년을 썼다.

아버지라는 곡이 만들어지기까지
새로운 공연을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배우들에게 물었다. 이번엔 뭘 하고 싶으냐고. 대중없이 서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며칠을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겪은 일들을. 눈물이 먼저 나오고 말이 뒤따라오는 이야기들이었다. 차별받은 이야기, 무시당한 이야기,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억울했던 이야기. 다 다른 사연인데 끝은 같은 곳으로 갔다. 가족이었다. 그리움이었다. 이야기를 아무리 늘어놓아도 결국 마지막 문장은 두고 온 부모 이야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를 만들었다.
농인 배우들의 사정을 들어보니 결이 비슷했다. 학령기가 되면 농학교에 갔다. 농학교는 전국 단위로 몇 곳뿐이라 대부분 기숙사 생활이었다. 여덟 살짜리가 집을 떠나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방학에만 집에 왔다. 부모는 언제나 그리운 존재였다. 매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방학에만 만나는 사람. 이주민 배우들이 국경 너머 부모를 그리워했다면, 농인 배우들은 기숙사 담장 너머 부모를 그리워했다. 거리는 달랐지만 그리움의 모양은 똑같았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가 만들려던 건 이주민의 노래도, 농인의 노래도 아니었다. 두고 온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의 노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누구 한 사람의 사연이 아니라, 무대에 선 모두의 사연이 됐다.

지구인 수어 공연단, 우리 소개를 이렇게 쓴다.
농아인, 이주민, 선주민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연대를 실천하고, 수어 예술을 통해 장애 감수성 및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실천합니다.
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문화 차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단원들은 주로 수어로 소통한다. 청인이 음성언어를 쓰면 농인 배우가 눈을 흘기며 수어로 하라고 한다. 급해서 그랬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한 번 더 그러면 탈퇴하겠다는 엄포가 돌아온다. 나는 처음엔 이걸 농인에 대한 무례라고 여겼다. 나중에야 알았다. 이건 자기 언어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었으며, 단원으로서 서로 공감대를 갖고자 하는 연대의 손짓이었다.
다툼이 나면 농인 배우들은 눈을 피하지 않는다. 눈을 피하면 손이 안 보이니까. 그것도 모르고 나는 다투는 둘을 떼어놓으려 했다. 떼어놓을수록 싸움은 커졌다. 말리다 보면 수어가 서툰 단원의 통역까지 내 몫이었다. 내가 싸움을 말리는 건지 싸움 안에 있는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수어는 아무리 다툼이 있어도 시선만큼은 피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줄을 삐뚤게 서는 농인 배우에게 싫은 소리를 한 적도 있다. 참다못한 그 배우가 나를 자기 자리에 세우고, 음악 없이 공연을 시작했다. 중간쯤 가자, 나는 흐름을 완전히 놓쳤다. 음악을 듣고 수어를 맞추던 나는, 음악이 없으니 언제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제야 알았다. 줄이 삐뚤었던 게 아니라, 앞사람의 수어만이 그에게는 유일한 박자였다는 것을. 나는 그날 바로 사과했다. 그의 자리를 뒤로 옮겼다. 지금은 줄이 삐뚤어도 아무 말 안 한다.
다툼을 말리다 나도 모르게 농인 배우의 손을 잡은 적도 있다. 수어 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는 건, 말하는 사람의 입을 손으로 막는 것과 같다는 걸. 무심코 한 행동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단체에서 매번 새로 배운다.
40년 넘게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 무대에 서는 일이다. 쉬울 리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게 맞춰간다. 눈을 피하지 않는 법을, 손을 함부로 잡지 않는 법을, 줄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법을. 문화가 다르다는 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배울 게 남았다는 뜻이라고, 나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공연 커튼콜
공연이 끝나면 커튼콜 전에 배우 소개 시간을 갖는다. 베트남 농인 배우가 오늘따라 하기 싫다고 했다. 한국 수어가 아직 서툴다는 이유였다. 다른 단원 하나가 그럼 그냥 단체 인사로 마무리하자고 했다. 다들 그러자는 분위기였다.
내가 나섰다. 우리는 잘하는 수어를 보여 주려고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고 했다. 자존감을 갖고,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서툴러도 괜찮다고, 서툰 것도 우리 모습이라고.
그때 베트남 농인 배우가 말했다. 그러면 나는 베트남 수어로 인사하겠다고. 그 순간이었다. 내가 이 단체를 만들면서 꿈꾸던 모습이 정확히 그 장면이었다. 한국 수어가 서툴러서 숨는 게 아니라, 자기 언어로 당당히 서는 것. 지구인 수어 공연단이라는 이름값을 그 배우 혼자 그 몇 초 안에 다 해냈다. 나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건 완벽한 무대가 아니다. 자기 언어로, 자기 방식으로 당당히 서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다.

공연 후 단톡방에서
공연이 끝난 밤, 단톡방이 시끄러웠다. 농인 배우 박수진이 먼저 글을 올렸다.
하나의 무대, 하나의 마음 ✨
서로 다른 빛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별이 되고,
서로 다른 손짓이 모여
하나의 감동이 됩니다.
무대 위에서는 모두가 주인공,
열정은 노래가 되고
우정은 춤이 되어
세상에 희망을 전합니다.
지구인공연단
"함께라서 더 빛나고,
꿈꾸기에 더욱 아름답다."
오늘도 여러분의 무대가 세상을 환하게 비춥니다.
이어서 이주민 배우 전연의 글이 올라왔다.
우리의 공연을 본 누군가는 처음으로 수어를 만나고, 농아인의 문화를 이해하며,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작은 관심은 이해가 되고, 이해는 소통이 되며, 소통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듭니다.
무대 위에 함께 선 농아인과 청인, 한국인과 외국인의 모습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공연을 보여 주기 위해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무대에 섭니다.
~우리가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입니다.
단톡방에 내가 적었다. "작가보다 잘 쓰네."
전연이 답했다. AI 도움을 좀 받았다고. 다들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으면서 생각했다. 문장의 마지막 손질을 사람이 했든 기계가 했든, 그 밤,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박수 소리로 손을 흔들던 건 분명 관객들이었다. 감동은 대필 되지 않는다. 그건 몸으로만 쓸 수 있는 문장이니까.
우리는 계속 갈 것이다. 줄은 여전히 삐뚤어질 것이고, 손은 또 누군가를 오해하며 잡힐 것이다.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던 어느 아버지의 유언이, 국경을 넘어온 딸들의 손끝에서 매번 다시 태어난다. 그 손짓 하나를 완성하는 데 9년이 걸렸고, 앞으로도 계속 걸릴 것이다. 무대가 끝나면 조명이 꺼진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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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도입 — 기부와 거래 사이, 제3의 길
기부와 소비, 둘 중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누군가에게 돈을 보내지만 그 대가로 무언가를 받는다. 마음은 기부자의 것이지만, 손에 쥐는 것은 소비자의 것과 닮았다. 이 어중간한 자리에 보상형 크라우드펀딩이 있다.
한국의 공익 모금 생태계를 둘러보면 익숙한 두 갈래 길이 보인다. 하나는 카카오같이가치나 네이버 해피빈처럼 순수하게 기부금을 모으는 길이다. 후원자는 돈을 보내고, 그 대가로 받는 것은 영수증과 마음의 평안뿐이다. 다른 하나는 텀블벅이다. 이곳에서는 후원이 곧 거래처럼 보인다. 돈을 보내면 에코백이 오고, 책이 오고, 한정판 굿즈가 온다.
그런데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겉보기에 가장 상업적으로 보이는 텀블벅이, 때로는 가장 순수한 기부 플랫폼보다 더 강력하게 공익 프로젝트를 키워내곤 한다.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디자인 프로젝트가 전국적 화제를 모으고, 부상 소방관을 돕기 위해 만든 가방이 입소문을 타고, 작은 사회적기업이 텀블벅 펀딩 하나로 브랜드의 첫발을 뗀다. 보상이라는 거래의 외피를 두른 플랫폼이 어떻게 공익의 동력이 되는지, 그 구조를 들여다본다.
2. 텀블벅이라는 플랫폼 — 창작의 놀이터에서 시작된 길

텀블벅은 2011년, 국내에 마땅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가 없다는 이유로 직접 만들어진 플랫폼이다. 출발은 예술과 문화였다. 영화, 음악, 출판, 디자인, 게임처럼 창작자가 무언가를 만들고 싶지만 자금이 없을 때, 그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미리 돈을 보내고 완성된 결과물을 받는 구조였다.
텀블벅의 성장 곡선은 가파르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누적 후원금 100억 원을 돌파했고, 2015년 8월부터 1년 사이에만 50억 원이 더 쌓이며 빠르게 가속이 붙었다. 이후 성장세는 더 거세졌다. 2023년 9월 기준으로는 5만여 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펀딩에 성공했고, 누적 후원 금액은 3,000억 원을 넘어섰다.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 업체로는 국내 최초로 누적 후원금 500억 원을 달성한 곳이기도 하다.
이 성장의 비결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의 밀집도다. 텀블벅은 초기부터 외형적인 마케팅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30만에서 40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단단한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성과를 쌓아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 초기 다른 플랫폼들이 마케팅이나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 매달리는 동안, 텀블벅은 결제 시스템의 편의성과 예약 결제 방식의 개발에 주력했다. 오직 보상형 펀딩만으로 이런 성과를 냈다는 점이 특히 주목받는 지점이다.
텀블벅의 수수료 구조도 이 플랫폼의 성격을 보여준다. 창작자는 모금이 확정된 날로부터 7영업일 안에 서비스 수수료 5%와 결제 대행 수수료 3%를 제외한 금액을 정산받는다. 다른 보상형 플랫폼인 와디즈가 7~14% 수준의 수수료를 부과해온 것과 비교하면, 텀블벅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창작자에게 유리한 편이다.
3. 보상형이라는 설계 — 왜 '교환'이 공익을 끌어당기는가

텀블벅의 펀딩 방식이 다른 공익 플랫폼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모금의 목적 그 자체에 있다. 텀블벅 헬프센터는 이 차이를 명확히 규정한다. 텀블벅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 전달할 순수 후원금을 모으는 목적의 프로젝트는 진행할 수 없다. 텀블벅의 미션은 어디까지나 창조적인 시도를 위한 자금을 모으는 것이고, 기부금 모금처럼 성격이 다른 프로젝트는 애초에 플랫폼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제약은 역설적으로 텀블벅 공익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만들어낸다. 텀블벅에서 성공하는 공익 프로젝트는 반드시 '무엇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단순히 어려운 이웃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담은 구체적인 창작물, 즉 티셔츠, 가방, 책, 영상 같은 결과물을 함께 제시해야 펀딩이 가능하다.
이것이 보상형 펀딩의 진짜 힘이다. 후원자는 두 가지 동기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사회적 가치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과,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싶은 마음이다. 다만 이 관찰은 '연구 동향 분석' 논문 자체의 결론이라기보다, 참여 동기를 다룬 개별 실증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경향에 가깝다. 실제로 이선희·이상윤(2023)의 국내 크라우드펀딩 연구 동향 분석은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33개 학술지에 실린 204편의 논문을 종류·성과·해외·분야별·기타의 다섯 갈래로 정리한 문헌 고찰로, 국내 크라우드펀딩 연구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축적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매력적인 리워드는 그 이타적 동기를 행동으로 옮기게 만드는 마지막 한 걸음의 역할을 한다.
이런 구조적 특징 때문에 텀블벅에서는 '공익 목적과 창작이 결합된 프로젝트'라는 독특한 장르가 형성됐다. 위안부 피해자를 후원하기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 '기억+소녀 나비 티셔츠'가 대표적이다. 단순한 모금이 아니라 티셔츠라는 창작물을 매개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금이 모이는 구조였다.
4. 실제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 — 메시지가 상품이 될 때

텀블벅이 직접 개최한 '소셜 임팩트를 위한 텀블벅 크라우드펀딩' 설명회는 이런 공익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2019년 1월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약 60명의 참석자가 모여 공익적 성격의 크라우드펀딩 노하우를 공유받았다.
이 자리에서 소개된 대표적 사례가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다. 평화의 소녀상을 모티프로 한 이 프로젝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슈에 대한 관심을 전국적으로 환기시킨 성공 사례로 꼽혔다. 또 다른 사례는 '러닝타임30'이다. 부상당한 소방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낡은 소방복 원단을 재활용해 가방과 지갑을 만든 이 프로젝트는, 버려질 운명이었던 소방복에 새로운 쓸모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소방관 처우 문제에 대한 공감을 끌어냈다.
비영리 영역에서도 비슷한 구조를 가진 사례가 있다. 사회적기업 마리몬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그림을 활용한 에코백, 뱃지, 휴대전화 액세서리 등을 리워드로 제공하며 펀딩과 사업을 연계해온 모범 사례로 꼽힌다. 더나은미래의 비영리 모금 콘텐츠 기획 시리즈에서도,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리워드를 갖춘 것이 마리몬드 펀딩의 핵심 성공 요인으로 분석됐다. 순수하게 선의만으로 후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리워드를 받을 수 있는지에 따라 참여 여부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텀블벅에서 성공한 공익 프로젝트들이 사회적 메시지와 매력적인 결과물을 동시에 설계했다는 점이다. 메시지만 있고 갖고 싶은 결과물이 없으면 펀딩으로 이어지기 어렵고, 결과물만 매력적이고 메시지가 빈약하면 화제성을 만들기 어렵다. 이 둘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 텀블벅형 공익 펀딩의 핵심 역량이다.
5. 카카오같이가치·해피빈과의 비교 — 구조가 다른 세 갈래 길

한국의 온라인 공익 모금 생태계를 구성하는 세 플랫폼, 텀블벅과 카카오같이가치, 네이버 해피빈을 나란히 놓으면 각자의 설계 철학이 뚜렷이 드러난다.
카카오같이가치는 2007년부터 운영되어온 카카오의 사회공헌 플랫폼이다. 누구나 공익 프로젝트를 위한 모금함을 직접 개설해 모금받을 수 있는 구조이며, 최근에는 일회성 기부를 넘어 매달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매달기부'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같이가치의 독특한 지점은 이용자의 참여 자체가 기부로 이어지는 구조다. 사이버 머니 없이도 댓글, 공감, 공유 같은 참여 행동을 하면 카카오가 대신 건당 100원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후원자가 직접 돈을 내지 않고도 기부에 동참하는 진입장벽 낮은 모델을 운영한다. 모금 수수료는 최종 모금액의 7% 수준이다.
네이버 해피빈은 2005년 국내 최초의 온라인 기부 포털로 시작했다. '콩'이라는 사이버 화폐를 통해 후원자가 직접 기부에 참여하거나, 기업이 콩을 후원해 네티즌들이 대신 기부할 수 있게 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었다. 해피빈 안에는 '공감펀딩'이라는 별도의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도 있는데, 사회문제 해결 활동이나 공익적 창작 활동, 소셜벤처 등 공익적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단체와 개인 모두 펀딩을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일반 모금함 개설은 1년 이상의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증이나 사업자 등록증을 갖춘 단체로 자격이 제한된다.
세 플랫폼의 구조적 차이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자금의 성격이다. 같이가치와 해피빈의 기본 모금함은 순수한 기부금을 모은다. 후원자는 대가 없이 돈을 보낸다. 반면 텀블벅은 구조적으로 '제작비'를 모은다. 후원자가 보내는 돈은 어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자금이고, 그 결과물이 후원자에게 돌아간다.
둘째, 참여자의 자격이다. 해피빈의 일반 모금함은 등록된 비영리단체만 개설할 수 있다는 진입장벽이 있다. 텀블벅은 이런 법인격 제한이 상대적으로 느슨해, 개인 창작자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프로젝트를 직접 시작할 수 있다. 같이가치 역시 누구나 모금함을 개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낮다.
셋째, 참여의 동기 구조다. 같이가치는 참여 행동 자체에 보상을 거는 방식으로 부담 없는 일상적 참여를 유도한다. 해피빈은 신뢰할 수 있는 단체를 통한 전통적 기부 모델에 가깝다. 텀블벅은 결과물에 대한 욕구와 사회적 공감을 동시에 자극하는 구조로, 세 플랫폼 중 가장 적극적인 의사결정과 더 큰 단위의 후원 금액을 끌어내는 경향이 있다.
6. 팬덤과 커뮤니티 — 강력한 연결이 자금이 되는 메커니즘
텀블벅이 공익 프로젝트의 스케일업에 유리한 이유 중 하나는 이 플랫폼이 가진 커뮤니티의 성격이다. 텀블벅은 30만에서 4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외부 마케팅이 아니라 플랫폼 자체에 대한 신뢰와 애착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올라오면 이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반응하고, 그 반응이 다시 입소문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이런 커뮤니티 구조는 공익 프로젝트에 특히 유리하게 작동한다. 일반적인 상업 광고는 낯선 소비자를 설득해야 하지만, 텀블벅의 공익 프로젝트는 이미 사회적 가치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 앞에 놓인다. 창작과 공익이 결합된 메시지는 이 커뮤니티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더해 보상형 펀딩 특유의 구전 효과가 있다. 후원자가 받은 리워드는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그 프로젝트에 동참했다는 증거물이 된다. 마리몬드의 에코백을 든 사람,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의 굿즈를 가진 사람은 일상 속에서 그 메시지를 계속 노출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기부금 영수증은 서랍 속에 남지만, 리워드는 가방에 매달리고 책장에 꽂힌다. 이 가시성의 차이가 공익 메시지의 생애주기를 늘린다.
물론 이런 커뮤니티 기반 모델에는 그늘도 있다. 텀블벅은 2022년 3월 이전까지 결제 실패분에 대한 수수료까지 창작자가 부담해야 하는 불합리한 정책을 운영해 비판을 받은 바 있고, 프로젝트 심사가 상대적으로 느슨해 부실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프로젝트가 섞여 올라온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공익을 표방한 프로젝트라 해도 텀블벅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모든 프로젝트의 진정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후원자와 창작자 모두가 인지해야 할 부분이다.
7. 초기 자금 확보를 넘어 — 스케일업의 다음 단계
보상형 크라우드펀딩이 공익 프로젝트나 소셜벤처에 줄 수 있는 가치는 단순히 초기 자금을 마련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국내 창업 분야 크라우드펀딩 연구는 창업 분야의 펀딩이 문화예술 프로젝트와 달리 일회성 콘텐츠 제작이 아니라 사업의 개시 자체에 필요한 기반 자금을 모은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 번의 후원금 모집으로 상품이나 서비스 생산의 기반을 다지고 나면, 이후에는 그 사업 수익을 통해 자생적으로 운영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후원금은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파급 효과를 가진 종잣돈이 될 수 있다.
또한 크라우드펀딩 과정 자체가 시장 검증의 역할을 한다. 이는 연구 차원에서도 뒷받침되는데, 크라우드펀딩이 단순한 자금 조달 수단을 넘어 홍보·마케팅, 테스트 베드, 사회적가치 캠페인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은 국내 크라우드펀딩 연구 동향 분석에서도 확인된 특징이다. 실제로 한 브랜드 사례에서는 크라우드펀딩을 단순히 자금 조달 수단으로만 쓰지 않고, 시제품 단계에서부터 수십 명의 후원자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받는 소통 창구로 활용해 제품력을 검증받은 사례도 확인된다. 공익 프로젝트와 소셜벤처도 마찬가지다. 펀딩 과정에서 어떤 메시지에 사람들이 반응하는지, 어떤 결과물에 후원이 몰리는지를 통해 이후 사업 방향을 가다듬을 수 있는 살아있는 데이터를 얻게 된다.
다만 모든 텀블벅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목표 금액을 최소 수준으로 설정하고도 후원자를 모으지 못해 실패하는 프로젝트가 적지 않으며,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타겟 후원자층에 대한 이해 부족이 꼽힌다. 공익 프로젝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좋은 취지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취지에 공감할 구체적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리워드에 반응할지를 명확히 설계해야 펀딩으로 이어진다.
8.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
텀블벅의 보상형 크라우드펀딩 모델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가 참고할 수 있는 지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공익 메시지에 '갖고 싶은 형태'를 부여하는 기획력이 필요하다. 작은 소녀상이나 러닝타임30, 마리몬드의 사례가 보여주듯, 좋은 취지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취지를 담을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결과물을 함께 설계하는 역량이 펀딩의 성패를 가른다. 경기도 내 공익단체와 소셜벤처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단순한 호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갖고 싶어 할 결과물로 번역하는 기획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둘째, 플랫폼별 특성에 맞는 모금 전략의 분리가 필요하다. 순수한 운영 자금이나 위기 대응 자금이 필요하다면 해피빈이나 같이가치 같은 기부형 플랫폼이, 창작물이나 상품을 매개로 한 사업화 초기 자금이 필요하다면 텀블벅 같은 보상형 플랫폼이 더 적합하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단체들에게 모금 전략을 컨설팅할 때, 이 구조적 차이를 명확히 안내하는 것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으로 이어진다.
셋째, 커뮤니티는 모금이 끝난 뒤에도 자산이 된다. 텀블벅의 후원자는 한 번의 거래로 끝나지 않고, 리워드를 통해 프로젝트의 메시지를 일상에서 계속 노출시키는 사람이 된다. 경기도의 공익 프로젝트들도 펀딩 종료를 캠페인의 끝이 아니라 후원자 커뮤니티 형성의 시작으로 바라본다면, 한 번의 펀딩이 장기적인 지지 기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무리 — 거래의 외피, 연결의 본질
겉으로 보면 텀블벅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거래다. 돈을 보내고 물건을 받는다. 그러나 그 거래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다친 소방관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작은 사회적기업의 첫걸음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보상형 펀딩이 증명하는 것은, 공익과 거래가 반드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잘 설계된 보상은 막연한 선의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다리가 된다. 에코백을 메고, 가방을 들고,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 그것이 모금함에 적힌 숫자보다 더 오래, 더 멀리 메시지를 실어 나른다.
경기도의 31개 시·군에서 활동하는 공익단체와 소셜벤처들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 우리의 메시지를, 사람들이 매일 손에 들고 다니고 싶어 할 무언가로 만들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다음 세대의 공익 펀딩 사례를 만들어낼 것이다.

참고 자료
https://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4407
https://platum.kr/archives/64596
https://brunch.co.kr/@allaboutfunding/4
https://brunch.co.kr/@tumblbug/53
https://duckduck.palms.blog/tumblbug-learning
https://www.kakaocorp.com/page/detail/10957
https://www.futurechosun.com/archives/28284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953856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190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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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3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전과 돌봄으로 마을을 잇는 소안지 이야기’
"우리 동네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한번 해볼 수 있을까요?“

[봉사활동 후 독서토론 책들고 인증사진]
처음 그 말을 꺼냈을 때, 솔직히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 그것도 국적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팀이 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모임 구성원들은 안산에서 오랫동안 문화예술 교육을 해온 사람들입니다. 여러 봉사모임과 시민활동에 참여해왔지만, 이번 모임은 조금 달랐어요. 그 모임의 이름은 '소안지'— 소소한 일상 속 안전지킴이의 줄임말입니다.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거창한 구호도 아니고, 화려한 슬로건도 아닌데, 이 짧은 이름 안에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았거든요. 소소하게, 그러나 꾸준하게. 일상 속에서, 그러나 진심으로. 안전을 지키는 사람들.
소안지란 무엇인가요?
소안지는 '소소한 일상 속 안전지킴이'라는 뜻을 담은 지역사회봉사단입니다. 안전교육을 핵심 주제로 삼아 202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올해로 벌써 3년째 안산 지역에서 꾸준히 이어오고 있어요.
안전교육이라는 말을 들으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소안지의 안전교육은 다릅니다. 어렵고 전문적인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 상황들을 함께 배우고, 서로 알려주는 방식이에요. 이웃과 이웃이 서로를 지켜주는 안전망, 그것이 소안지가 꿈꾸는 마을의 모습입니다.
소안지는 안전교육 외에도 환경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마을의 공기와 골목길이 더 안전하고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역 행사에 참여하고 캠페인 부스를 운영하며 이웃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왔어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단단해졌습니다
소안지 팀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각자 다른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연결되어 있던 분들이 '의미 있는 봉사를 함께 해보자'는 뜻으로 모였어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들, 결혼이나 일을 이유로 한국에 정착한 이주 배경 분들, 안산에 오래 살아온 분들, 비교적 최근에 이 지역에 자리 잡은 분들까지. 40대도 있고 50대도 있어요. 언어도, 국적도, 살아온 배경도 다 달랐습니다.
처음 몇 번의 만남은 솔직히 조심스러웠습니다. 문화가 다르니 대화가 막히는 순간이 있었고, 비슷한 주제를 이야기해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서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리가 사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아이들 교육 걱정. 부모님 건강 걱정. 그리고 '나도 뭔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 선주민이든 이주민이든, 40대든 50대든, 이 세 가지 고민은 정말 똑같았습니다. 표현하는 언어는 달라도, 그 마음의 무게는 같았어요. 그 공통점이 우리를 이어주는 첫 번째 다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어준 두 번째 다리는, 바로 각자가 가진 재능이었습니다.
손뜨개질을 잘하는 분은 그 솜씨를 팀에 나눠주고, 요리를 잘하는 분은 프로그램에 활용하고, 그림을 그리는 분은 교육 자료를 만들고, 여러 언어를 하는 분은 통역을 맡았습니다. 각자의 재능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 되는 순간, 팀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안전, 함께 배웁니다
소안지의 핵심 활동은 안전교육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안전교육은 단순히 소화기 사용법이나 대피 요령을 알려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아요.
팀원들이 처음 안전교육을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고민했던 건 이거였어요. '선주민 아이에게도, 이주민 아이에게도 모두 도움이 되는 교육을 우리가 직접 만들어볼 수 없을까?' 그 질문에서 소안지 교육 프로그램의 방향이 잡혔습니다.
언어가 달라도, 나이가 달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교육 내용. 함께 웃으면서 참여할 수 있는 활동. 배운 내용을 일상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내용. 이 세 가지 원칙이 소안지 안전교육의 뼈대가 되었습니다.지역 행사에서 부스를 운영하며 주민들과 직접 만나기도 하고, 환경 캠페인에서는 우리가 직접 만든 자료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이 환경 문제를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안산은 이런 활동이 자라기에 참 특별한 땅입니다. 안산 원곡동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이주민 밀집 거주 지역 중 하나예요. 2002년, 원곡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국경없는 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지역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이주민과의 공존을 만들어왔습니다. 그 오랜 역사가 오늘날 안산을 '한국의 다문화 으뜸 도시'로 불리게 했어요. 하지만 제도와 정책만으로는 진짜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진짜 이웃은 서류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같이 밥 먹고, 같이 일하고, 서로의 걱정을 들어주는 일상에서 만들어지니까요. 소안지는 바로 그 일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팀입니다.
어르신 곁에 앉아, 마음을 잇다 — 시니어 인지케어 봉사

[와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자역사회봉사단 활동전 인사]
소안지의 활동에 새로운 챕터가 열린 건 작년 일이었어요.
팀원들 중 몇 분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어요. "저희 부모님이 요즘 많이 힘드시더라고요. 예전 같지 않으신 것 같고... 뭔가 도움이 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 나이가 되면 피할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 있습니다. 내 부모님이 나이가 드신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도 그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 그 마음이 소안지를 시니어 인지케어 봉사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시니어 인지케어 봉사는 단순히 어르신들을 '돌봐주는' 활동이 아니에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르신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하고 웃을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하는 활동입니다. 소안지의 시니어 봉사 프로그램은 총 3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한 회기 1시간 동안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요.

[지역사회 봉사단 – 신체활동중]
첫 번째는 신체 활동입니다.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간단한 스트레칭과 체조예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이 동작이 이렇게 시원한지 몰랐어요" 하며 활짝 웃으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팀원들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진답니다.
두 번째는 인지 케어입니다. 두뇌를 자극하는 퀴즈, 속담 게임, 낱말 맞추기 등 다양한 인지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정답을 맞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 자체가 즐거울 수 있도록 합니다. 기억 속 옛날이야기를 꺼내시는 어르신들의 눈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느끼기 어려운 감동이에요.
세 번째는 소근육 활동입니다. 손을 쓰는 만들기 활동인데요, 에코 소품 만들기, 손뜨개, 종이접기 등 다양하게 진행해왔어요. 작은 손 동작들이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걸 만들었어요!" 하며 완성품을 들어 보이시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매달 한 번 와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되는 이 봉사는 11월까지 이어질 예정이에요.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그 한 번이 어르신들에게, 그리고 우리 팀원들에게도 한 달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됩니다.

[지역사회 봉사단 – 소근육활동 만들기]
'낀 세대'가 마을의 중심이 됩니다
흔히 40~50대를 '낀 세대'라고 부릅니다. 윗세대와 아랫세대 사이에서 양쪽을 다 챙겨야 하는 세대. 자녀를 키우면서 동시에 부모님을 돌보는 세대. 아직 한창 일해야 하는데 체력은 예전 같지 않은 세대.
그런데 저는 이 '낀 세대'가 사실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르신들의 언어를 이해하면서도 아이들과도 소통할 수 있고, 지역의 변화를 오래 지켜봐온 눈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일 유연함도 있거든요.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오랜 경험과 삶의 무게를 가진 중장년층이 함께 앉으면, 이야기는 깊어지고 관계는 단단해집니다. 소안지가 3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도 바로 그 단단함에서 왔다고 저는 믿어요.
전국 곳곳에서 중장년 여성들이 중심이 된 마을 공동체들이 지역 돌봄과 교육, 문화 활동을 이끌고 있어요. 경기도 역시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하는 통합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단순한 지원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소안지의 활동은 그 정책의 바깥이 아니라, 바로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씨앗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독서토론하는 모습]
다음 한 걸음을 함께 내딛기를
소안지의 이야기가 거창하거나 특별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봉사가 끝난 후 잠깐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테이블 하나, 책 몇 권, 서로의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작은 프로그램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 소소한 것들이 모여서 소안지가 되었고, 소안지가 3년을 이어왔습니다.
선주민도 이주민도, 40대도 50대도, 각자의 언어도 각자의 재능도 다 달라도 괜찮아요.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더 풍성해지는 게 공동체니까요.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제2의 삶, 어쩌면 제3의 삶까지 준비해야 하는 시대. 그 긴 시간을 혼자 버텨내는 것보다, 함께 돌보고 함께 나누고 함께 연결되는 것이 훨씬 더 잘 살아가는 길이라는 걸 저는 이 팀을 통해 배웠습니다.
당신의 동네에도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웃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소안지는 그 첫 걸음을 이미 내딛었습니다.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어요. '그냥 한번 나와보자, 한번 해보자'— 그 작은 용기 하나였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한 걸음을 내딛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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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3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쓰레기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하루에 자신이 버리는 쓰레기의 양을 가늠해 보신 적 있나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쓰레기는 여전히 지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런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론으로만 배운 내용은 잘 와닿지 않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군포시에서는 우리가 쓰레기를 버리고 난 이후에 이루어지는 쓰레기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일상 속 쓰레기 자원화와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공익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6 군포시 쓰레기 투어 포스터
종량제봉투를 묶어 집 앞에 내놓고, 플라스틱과 종이를 분리수거함에 넣고 나면 우리는 대개 ‘처리됐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때부터 쓰레기의 진짜 여정이 시작됩니다. 수거차에 실리고, 무게가 재어지고, 선별되고, 소각되고…. 그 이후에 쓰레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쓰레기 투어’에 동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군포시청 앞 등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나이 든 노인부터 이제 막 초등학교에 발을 들여놓은 어린이까지, 쓰레기 투어에 동행할 이들은 각기 나이와 배경은 달랐지만, 쓰레기의 여정에 동행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곧바로 버스에 올라 이날의 일정을 확인했습니다.

2026 군포시 쓰레기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는 사람들
군포시 쓰레기 투어는 군포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이하 지속협)에서 준비한 행사였는데요. 지속협은 군포시 자전거 교실, 군포환경한마당 등의 행사를 기획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날 행사에 함께한 설은혜 차장님은 지속협의 역할과 쓰레기 투어의 목적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지속협은 UN이 만든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이행하기 위해 시군구 단위로 만들어진 민관 협력 기구예요. 그래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후, 환경 보호, 사회·경제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활동은 환경 보호의 영역에 있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쓰레기를 잘 버려야 한다’라고 말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쓰레기를 잘 버려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드리고자 쓰레기 투어를 기획하게 되었고 현재 3년째 진행하고 있답니다.”
이번 쓰레기 투어의 목표를 들으면서 이번 여정에서 ‘쓰레기’에 대해서 다시금 배우게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 타지만 모두 재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 군포시환경관리소

군포시환경관리소에 도착한 군포시 쓰레기 투어 참가자들
쓰레기 투어가 향한 곳은 군포시환경관리소였습니다. 이곳은 탈 수 있는 쓰레기들이 모여 소각되는 공간입니다. 참가자들은 먼저 군포시환경관리소 담당자님에게 소각장 시설 전반에 관해 설명을 들으면서 이곳에서 어떻게 쓰레기가 처리되는지 공부했습니다.

군포시환경관리소 소개 영상을 시청한 뒤, 담당자님에게 소각장 설비와 원리에 관해 설명을 듣는 모습
실내 교육장에서는 먼저 쓰레기 처리와 자원순환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군포시환경관리소는 일반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긴 쓰레기들이 모여 소각되는 곳입니다. 군포시의 일반 쓰레기 종량제 봉투 겉에는 플라스틱, 음식물, 건전지, 도자기, 캔 등을 버리지 말라고 적혀 있는데요. 이 쓰레기들은 모두 타지 않는 쓰레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건전지나 부탄가스처럼 소각할 경우 폭발을 일으켜 위험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쓰레기의 경우, 폭발하게 되면 소각 설비를 멈추게 하기 때문에 쓰레기 처리 전반에 큰 어려움을 초래하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분리배출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군포시환경관리소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각된 재와 열이 자원으로 재활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쓰레기 소각로는 1,100℃ 이상으로 타오르기 때문에 이 열을 판매하여 수익금을 군포시로 보내고 있습니다. 쓰레기가 소각되고 남은 재도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비교적 무거운 바닥재와 흩날리는 비산재가 있습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닥재도 매립했는데요. 2~3년 전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업체로 보내 벽돌로 만들어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과 재까지 놓치지 않고 자원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쓰레기에도 많은 이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교육장을 벗어나 현장을 돌아보면서 실제로 쓰레기가 소각되고 있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카메라를 살펴보고 질의응답도 하면서 쓰레기 소각 과정을 현장감 있게 느껴보았습니다.

쓰레기 소각을 진행하는 현장을 견학하고 있는 모습
현장에 들어서자, 여러 대의 모니터와 시설 계통도, 각종 설비 상태를 확인하는 장비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소에는 쓰레기봉투 하나만 생각했지만, 이곳에서는 반입량, 처리 과정, 설비 상태, 안전관리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현장을 보면서 쓰레기 처리란 단순히 ‘치우는 일’이 아니라 도시가 멈추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생활 기반시설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답니다.
두 번째 목적지, 다시 자원이 되기 위한 긴 여정 – 군포도시공사 새활용타운
다음 목적지는 군포도시공사 새활용타운이었습니다. 새활용타운은 재활용으로 분류되는 쓰레기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군포도시공사 새활용타운에 도착한 쓰레기 투어 일행
음식물부터 알루미늄 캔, 플라스틱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쓰레기가 모두 여기로 모입니다. 도착하고 나니 수많은 트럭과 지게차들이 분류한 쓰레기들을 나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에서도 담당자님께서 쓰레기 처리 과정에 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중에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쓰레기를 처리하시는 분들의 고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에 대한 현대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예산 문제 등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현대화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군포도시공사 새활용타운은 종량제 봉투에 담겨 온 재활용 쓰레기들을 사람이 하나하나 칼로 뜯어서 사람이 분류하는 상황입니다. 에어컨 설치도 미비한 상황이구요. 게다가 재활용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인분, 동물 사체,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 오물이 묻은 쓰레기 등을 무분별하게 버리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사람이 분류하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충격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부디 쓰레기를 올바르게 분리배출해 주시기를 바라요.”

수작업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는 현장
실제로 새활용타운 내부를 잠깐이나마 둘러보는 과정에서 본 현장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새활용타운에서는 폐식용유와 EM을 활용한 비누를 만드는 등 재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EM 비누는 온도와 습도에 매우 민감하고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굳는 데 최소 4주가 소요된다고 하는데요. 이런 까다로운 조건에도, 비누를 계속 만들면서 친환경 제품 활용 습관을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폐식용유를 활용한 EM 비누를 제작하는 현장
군포도시공사 새활용타운에서는 쓰레기를 버릴 때 제대로 비우고, 헹구고, 올바르게 분리배출해야 자원으로 활용되는 과정이 수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쓰레기가 나를 떠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심코 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처음부터 잘 버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재활용품’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재활용품이라고 내놓았다고 해서 모두가 실제 재활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재질이 섞여 있거나 오염이 심하면 다시 쓰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제대로 분리된 자원은 다시 원료가 되거나 새로운 제품으로 태어날 수 있죠.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거창한 기술 이전에 생활 속 작은 습관입니다. 음료병은 비우고, 라벨은 떼고, 뚜껑은 분리하고, 음식물이 묻은 용기는 헹구는 일. 귀찮아서 미루기 쉬운 행동들이지만, 현장에서는 그 차이가 아주 크게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목적지, 쓰레기는 묻혀도, 자원은 돌아오는 거야! -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점심시간을 지나 군포시 쓰레기 투어는 더 큰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입니다. 차량이 이동하는 동안 오전에 본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이어졌습니다. 쓰레기는 수거되고, 처리되고, 일부는 재활용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요? 수도권매립지는 그 질문에 답을 주는 장소였습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외부 전경
수도권매립지는 서울의 쓰레기를 매립하던 난지도를 대체하여 만들어진 곳으로, 현재는 서울시, 인천시(옹진군 제외), 경기도(연천군 제외)의 쓰레기를 매립하는 공간입니다. 제1 매립지와 제2 매립지의 매립은 종료되고 현재는 제3 매립지에 매립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매립지라고 하면 막연히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은 폐기물을 관리하고 자원화하며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한 거대한 시스템이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는 공간입니다. 수도권매립지의 규모는 약 1,600만㎡로, 축구장이 약 2,300개 들어갈 정도로 거대합니다. 이 때문에 수도권매립지 견학은 전시관에서 전체 전경 모형을 보며 설명을 들은 후, 버스를 타고 현장을 둘러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수도권 폐기물 처리 흐름을 배우는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모습

수도권매립지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전시 공간에서는 폐기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처리되는지 차근차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반입된 폐기물은 계량과 검사를 거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리되며, 매립이 필요한 경우에도 침출수와 가스, 악취, 비산먼지 등을 관리해야 합니다. 매립은 그냥 땅에 묻는 일이 아닙니다. 오염 물질이 주변 환경으로 퍼지지 않도록 시설을 갖추고, 발생하는 물과 가스를 모아 처리하며, 매립이 끝난 뒤에도 사후관리를 이어가는 복합적인 작업입니다. 특히 쓰레기를 매립하는 규모가 큰 만큼,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서는 쓰레기의 자원화에도 많은 노력을 쏟고 있었습니다. 음식물류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수는 바이오 가스화 과정을 거치고, 하수슬러지는 일정한 처리 과정을 통해 복토재나 보조연료 등으로 활용됩니다.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가스 역시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매립가스 발전소로 보내져 에너지로 활용합니다. 쓰레기의 자원화를 위해 많은 첨단 기술과 인력이 동원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 투어를 통해 본 수도권매립지 모습 – 1차 처리가 완료된 음폐수

버스 투어를 통해 본 수도권매립지 모습 – 제3 매립지 전경

혐오시설로 여겨지곤 하는 쓰레기 매립지가 지역사회와 충돌 없이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쓰레기를 매립한 부지는 쓰레기가 부패하면서 가스를 배출하고 부피가 줄어들면서 지대가 가라앉게 되는데요. 이 과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린 이후에 이 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제1 매립지는 안정화가 완료되어 골프장으로 활용하고 있고 이외에도 체육시설이나 야생화단지를 조성하여 매립지 근처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매립은 분명히 불가피한 일이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이죠.

온실을 구경하며 화분을 고르고 있는 쓰레기 투어 일행
쓰레기 투어의 막바지에는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정제하여 연료로 활용하고 있는 온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곳에서 자란 화분을 하나씩 나누어 주셔서 이날의 방문을 기념하는 특별한 선물이 되었답니다. 이곳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수도권 생활폐기물 처리 방식이 점점 ‘그대로 묻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종량제 봉투에 담긴 생활폐기물도 무조건 매립되는 것이 아니라, 소각 등 처리 과정을 거친 뒤 남은 잔재물을 최소화해 관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땅은 한정되어 있고, 매립지는 지역사회와 환경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폐기물을 줄이고,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활용하고, 마지막에 남는 것만 안전하게 처리하는 쪽으로 쓰레기 처리 방향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설을 담당해 주신 선생님의 마지막 말은 쓰레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수도권매립지에서 쓰레기가 매립되기 전처리 과정과 매립 과정, 자원화 과정에 대해 설명드렸는데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쓰레기의 자원화보다 중요한 것이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원화를 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쓰레기의 양이 줄어드는 것만 못합니다.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쓰레기는 최대한 자원화하되, 여러분들께서도 쓰레기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찾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면 그 모든 시설과 기술에도 한계가 생기기 마련이죠. 가장 좋은 쓰레기는 결국 생기지 않은 쓰레기라는 사실을, 쓰레기 투어의 마지막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군포시 쓰레기 투어 기념품으로 받은 손수건
이번 투어의 준비물에도 그 메시지가 숨어 있었습니다. 안내문에 적힌 준비물은 텀블러와 손수건이었습니다. 하루짜리 견학이지만 일회용품을 줄이는 실천을 함께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쓰레기 투어를 마치고 군포로 돌아오는 길에 지속협에서 준비한 퀴즈 상품과 기념품도 손수건, 자투리 천 카드 지갑, 자투리 천 앞치마 겸 행주 등 지속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것들이었는데요. 생각해 보면 환경을 살리기 위한 공익활동의 실천은 거창한 시설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카페에 갈 때 텀블러를 챙기는 일, 종이 타월 대신 손수건을 쓰는 일, 장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일, 필요한 만큼만 사고 남기지 않는 일, 배달 용기를 줄이는 일, 분리배출 전에 한 번 더 헹구는 일.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쓰레기의 양을 줄이고, 처리시설의 부담도 덜어줍니다.
‘쓰레기 투어’라는 이름은 조금 낯설었지만, 다녀오고 나니 참 잘 지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레기 투어라는 이름 때문에 ‘버린 뒤’를 보러 온 줄 알았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계속 ‘버리기 전’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쓰레기의 끝을 보러 갔다가, 오히려 생활의 시작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사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버릴지에 따라 쓰레기의 양도, 자원순환의 가능성도 달라집니다. 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긴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조금이라도 짧고 가볍게 만드는 일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덜 사고, 오래 쓰고, 제대로 나누어 버리는 작은 습관. 2026년 군포시 쓰레기 투어가 시민들에게 남긴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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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