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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식당, 관계 회복을 위한 가장 따뜻한 초대

작성자: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센터장 이승훈 / 날짜: 2026-04-16 / 조회수: 486

 

환대받는 한 끼가 만드는 아이들의 이바쇼

어린이 식당운동은 도쿄 외곽의 작은 동네 골목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큰 재난으로 일본사회는 어두워졌고, 아동 빈곤율은 치솟았다. 방학에도 돌봐줄 사람이 없이 배회하는 동네 아이들의 모습은 누구나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좌절감이 사람들 사이에 스며있었다. 그 때 도쿄의 한 채소가게 주인 『곤도히로시』는 달랐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고, 시작했다. 2012년 여름. 히로시는 동네 아이들 몇몇을 자신의 채소가게로 불러 모아서 식사를 대접하고, 어린이식당이라고 명명했다. 이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 움직임은 2026년 일본 전역에 12천개가 넘는 거점으로 확산되었다. 어린이식당은 빈곤 아동만을 위한 급식소가 아니다. 어린이식당은 아이와 어른, 이웃과 이웃이 밥상 공동체를 통해 무너진 지역 사회의 관계를 회복하는 마을의 거실이다.

 

이 운동의 핵심 키워드는 이바쇼(居場所)’. 이바쇼는 한국어로는 단번에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다. 장소를 뜻하면서도 자신 모습 그대로 있어도 되는 곳, 평가받지 않는 곳, 기댈 사람과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또한 이바쇼는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람에게도 당신은 나의 이바쇼입니다라는 식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안식처’, ‘비빌 언덕’, ‘안전한 사람과 장소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코로나19, 환경위기, 연속된 사회적 대참사 등 우리사회 또한 재난의 시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가장 아픈 상흔은 고립단절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세상은 부모 외에는 믿을 사람도, 기댈 곳도 부족한 각박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특별한 사람만을 구제하고, 치유할 수준이 아니다. 잠재되어 있지만 모두가 아프다. 일본에서는 지금의 사회를 이렇게 표현한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상처를 나무 의사가 치유하고, 비료를 줄 때가 아니고, 전체 토양과 공기를 바꿔야 할 때다.” 학교 문을 나서면 돌봄 시설과 학원을 전전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영양분과 최고의 서비스만이 아니다. 자신을 온전하게 반겨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이곳에 존재해도 좋다는 안도감, 이바쇼(내 자리가 있는 곳)’의 경험이다.

 
 

 

공릉동 어린이 식당 작은 숲’, 마을의 느슨한 연대가 차려낸 식탁

서울 공릉동에서도 이 따뜻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어릔이식당 작은숲2011년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개설 이후 15년간 다져온 꿈마을공동체’(다양한 사람과 단체가 느슨하게 연결된 지역 네트워크이며, 마을교육공동체)의 자발적인 에너지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곳의 식탁은 어느 한 기관의 힘으로만 차려지지 않는다. 지역의 작은 교회와 성당, 주민자치회와 작은 도서관, 학교와 복지관, 마을협동조합 등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식당을 열고 있다. “작은숲202411월부터 지금까지 매달 열리고 있다. 여러 단체가 힘을 모으고 있고,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책임을 나누니, 음식을 만드는 일은 각 단체가 1년에 한두번 정도만 담당하면 된다. 음식은 단순하고, 소박한 한 끼를 지향한다. 영양균형이 완벽한 급식 서비스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어린이와 이웃이 만나 이야기를 꽃피우는 관계의 식탁이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은 어릔이식당이라고 표기한다. 오타가 아니라 어린이어른의 만남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린이 식당에 온 손님들과 운영진
 

어린이식당 작은숲의 일상은 이렇다.

마을 기업 나눔과이음은 알록달록한 비빔밥을 준비하고, ‘한살림 북서울노원지구는 생명의 가치를 담은 정성 어린 주먹밥을 만든다. 시간을 내어서 일부러 방문한 주민자치회장님은 달콤한 디저트를 선물한다. 여기에 수공예 작가 모임인 마디상회는 라탄 바구니와 꽃병으로 식탁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소박한 한 끼지만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아이들의 얼굴은 싱글벙글 즐겁다. 친구와 함께, 부모님과 같이 온 아이도 있고, 가끔 혼자 온 아이도 식당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외롭게 서 있다. 어른들은 즐겁게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밝은 얼굴로 어린이식당에 왔구나! 어서 오렴, 밥 먹고 가라고 다정한 말을 건 낸다. 중고생 청소년들은 손님으로도 오지만 역할을 가지고 함께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곳에서 동네 형, 누나들은 테이블 메니저가 된다. 동생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맵기는 어떻게 해줄까?”, “요즘 학교에서 재밌는 일은 뭐야?”라 물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내는 유능한 일꾼이다.

 
 

어린이 식당을 마치고,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작은숲 운영위원회

지속 가능한 어린이 식당 운동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

우리는 식당을 운영하며 일본 어린이식당 운동본부인 무스비에가 정한 다섯 가지 원칙을 가슴에 새긴다.

첫 번째는 자발성이다. 어린이 곁에서는 일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아이를 아끼는 마음과 베푸는 즐거움에서 스스로 시작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다양성이다. 어린이식당은 운영주체에 따라서 모두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모든 아이의 개성이 다르듯, 식당 또한 엄격한 매뉴얼로 정형화되지 않고 운영 주체의 형편에 맞게 저마다의 색깔을 담고 있다.

세 번째는 포용성이다. 어린이식당은 특정 대상만을 위한 선별적 서비스가 아니다. 이용하는 어린이는 저소득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자원봉사로 참여할 기회도 마을 어른들뿐 아니라 청소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네 번째는 공익성이다. 어린이식당이 영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판촉행사와 연계하여 사익 추구의 수단이 되거나, 정치적·종교적 강요가 있어서도 안 된다.

마지막은 지역성이다. 어린이식당은 아이들의 삶과 가까운 곳에서 펼쳐져야 한다. 아이들이 돌봄 시설과 서비스를 찾아 멀리 가지 않아도 골목에서 친구와 이웃을 만날 수 있을 때, 마을은 비로소 살맛나는 공동체가 된다.

이러한 다섯 가지 원칙은 어린이식당이 단순히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복지나 교육 서비스를 넘어, 평범한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작은 변혁(무브먼트)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실제로 이 원칙들은 식탁에 앉은 아이들과 식탁을 여는 이웃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공동체 식탁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파트 층간소음 갈등의 대상에서 반가운 이웃으로 전환된다. 제 자녀의 양육에만 집중하다 빈둥지증후군으로 상실감에 빠져있는 중년의 이웃들에게는 사회적 양육자라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준다. 어린이식당에서 시민들은 연결된다. 아이들의 미소로 동네사람들이 연결될 때 아동친화도시라는 행정의 선언은 살아 숨 쉬게 된다.

 

어린이 식당 활동가 대회

어린이식당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에너지는 공릉동을 넘어서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 열기를 확인한 자리가 바로 20251016일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서 열린 어린이 식당 활동가 대회였다. 서울, 경기 뿐 아니라 제주, 부산, 대구, 광주, 충북 전국에서 어린이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 어린이식당을 해본 사람들, 어린이식당운동이 지역에서 펼쳐지길 희망하는 사람들 85명이 모였다. 그 사람들은 복지관 사회복지사, 청소년센터 직원, 협동조합 구성원, 일반시민과 학부모들로 다양했다. 우리는 이 운동의 확산 가능성을 실감했다. 이후 내가 일하는 노원구 지역에도 어린이식당이 퍼져나가고 있다. 상계동에 위치한 청소년센터로, 경춘선숲길 작은 도서관으로, 중계동 어린이도서관 근처 작은 공간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타 지역에서 어린이식당 사례를 듣고자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린이 식당 운영진

문턱을 낮추면 마을 곳곳이 식당이 된다.

어린이식당은 거창한 전용 건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엄청나게 많은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최고의 음식을 제공할 필요도 없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역시 작은 싱크대 하나로 식당을 운영한다. 한 달에 한번만 2층 로비를 장식해서 어린이식당으로 변신시킨다. 마을의 문턱을 조금만 낮추면 우리 곁의 모든 공간이 아이들의 식탁이 될 수 있다. 낮 시간에 비어있는 주민센터 회의실, 마을회관, 작은 도서관, 동네 작은 교회나 성당, 심지어 학부모들이 모이는 작은 카페 공간도 훌륭한 식당이 된다.

 

어린이식당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묻는다. “어린이식당을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준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나요?” 나는 이렇게 답한다. “어렵지 않아요.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어린이식당인 걸요. 일 년에 한번만 해도 좋고, 힘들면 중간에 포기해도 돼요. 안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렇게 쉽다고요. 에이 그래도 막상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 걸요일본에서는 어린이식당운동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의 걱정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펼쳐진다. 많은 지자체가 어린이식당운동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이 간단한 양식으로 의향서를 제출 할 수 있게 만들어두었다. 어린이식당을 하겠다는 신고 단체에게는 약간의 식재료비를 지원한다. 장소가 필요하면 공공시설 사용 가능 여부를 알아봐주고, 지역의 어린이와 가정에 어린이식당이 어디에서 언제 열리는지 홍보를 돕는다. 지자체 뿐 아니라 어린이식당과 어린이식당을 연결하고, 여러 어려움 해결을 돕는 중간지원조직(비영리 단체)도 운영되고 있다.

 

마을 곳곳에서 어린이식당이 펼쳐질 때, 아이들과 양육자는 작은 사회적 신뢰를 경험하게 된다. 또 어린이식당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재난의 시대, 삭막한 이 도시를 함께 돌보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된다. 우리가 사는 모든 동네에 이 관계 회복의 식탁이 차려지기를 소망한다.

 

 

어린이 식당 5월 홍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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