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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작은 숨, 큰 책임 – 길고양이와 사람 이야기

작성자: / 날짜: 2025-08-26 / 조회수: 7

작은 숨, 큰 책임 – 길고양이와 사람 이야기

 

송지연(      )

 

 

소라씨, 치즈가 죽었어요. 이를 어떡해.”

 

함께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모님의 전화를 받고 나는 20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럴 리 없어.”라고 중얼대며 타인의 시선 따위 아랑곳없이 눈물 콧물 범벅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마당으로 내려갔다.

 

치즈’, 내가 참 아끼고 돌봤던 길고양이다. 매일 밥을 주고 돌본 지 3년쯤 된 거 같다. 치즈가 죽은 그날은 절기상 대한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길고양이의 겨울집에 핫팩을 넣어주면서 혹여 동사하지 않을까 참 노심초사했었다.

 

 

 

꾹꾹이를 해주는 치즈의 공손한 두 발

 

 

치즈의 겨울집 앞에 누런색 나무토막 같은 게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치즈 얼굴에 피와 침으로 털이 엉겨 붙어 있었고 몸은 이미 사후경직이 진행되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갑자기 죽을만한 건강 상태가 아니었고, 더욱 충격적인 건 평소에 치즈와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았던 길고양이 와웅이도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죽어있었다.

 

비록 둘이 사이가 나빴어도 서로를 물어뜯어 죽일 정도는 아니었고, 한파나 질병으로 인한 단순한 죽음은 아닐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들었다. 치즈와 와웅이 얼굴 털이 침으로 가닥가닥 뭉쳐져 있었던 게 의심스러웠고, 다른 외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해 혹시나 고양이를 학대하는 자의 약물로 인한 사망은 아닐지 부검을 의뢰했다. 당시 설 연휴가 끼어있어서 치즈와 와웅이는 며칠 동안 증거 보관 냉동고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치즈2.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50pixel, 세로 1000pixel

치즈의 장례식

 

 

두 마리의 황망한 죽음을 미처 받아들이기도 전에, 이틀 후쯤 단지 내 외진 수풀 근처에서 또 한 마리의 죽은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고양이 두 마리가 더 죽어 우리 단지에서 총 5마리의 고양이가 생명을 잃었다. 다들 살아있을 당시 건강했고 나이도 어린 고양이었다.

 

길고양이는 무주물이다. 나에게 치즈의 소유권이 없으니, 그의 죽음의 원인을 명명백백 찾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실에 가서 CCTV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관리실 책임자는 주민들의 개인정보유출 때문에 CCTV 열람이 어렵다고 했다. 경찰이 개입한 후 CCTV 열람이 가능해졌으나 치즈집 근처에는 CCTV마저도 없었다. 경찰은 이상한 외부의 침입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무주물인 길고양이의 죽음을 계속 파헤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조사가 끝난 후 마지막에 죽은 고양이 집터에 다행히 CCTV가 있어 고양이 떼죽음의 증거를 찾아낼 수 있었다. CCTV 열람도 캣맘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가능했다. 고양이들은 새벽녘 집을 침범한 들개 세 마리에게 물려 죽은 것이었다. 치즈와 와웅이도 들개에게 물려 죽었다. 세 번째로 죽은 길고양이 부검에서 폐부 깊숙이 새겨진 날카로운 개의 이빨 자국을 발견했다. 치즈와 와웅이는 장례를 치르느라 부검을 취소해서 들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뒷산을 끼고 있는데 그곳에서 들개 무리를 봤다는 제보가 있었다. 무작정 치즈를 죽인 들개떼를 찾겠다며 혼자 산에 올라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의 원통함과는 무관하게 치즈의 죽음을 전적으로 들개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들개가 왜 생겨나는가? 사람들이 키우다 버린 유기견이 야생화되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들개가 된다. 사람에게 버려진 유기견이 사람이나 가축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 들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반려동물의 입양을 쉽고 빠르게 결정한다. 빨리 입양을 결정한 만큼 여러 가지 이유로 파양도 빈번히 일어난다. 반려동물은 인형이 아닌 생명이다. 이쁜 짓도 하지만, 미운 짓도 하고 병도 걸리고 죽음도 맞이한다. 단지 사람과 다른 것은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반려동물이 말을 한다면 입양과 파양이 지금보다는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많은 캣맘이 그렇듯이 길고양이에게 집과 먹이를 제공한다는 것은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들끓는 개미와 모기와 싸우고, 겨울에는 물그릇 물이 얼어서 매번 녹여줘야 하고, 고양이 집에 핫팩 넣느라 허리를 깊게 숙이고 추위에 몸서리쳐야 한다. 그렇게 수고스럽게 그들을 돌본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매일 눈 맞추고 털을 빗겨준다.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골골송을 내던 치즈와의 이별의 큰 아픔을, 그것도 의문의 죽음을, 일면식 없는 경찰에게 설명하는 것은 넘을 수 없는 큰 장벽을 맞닥뜨리는 느낌이었다.

 

길고양이를 돌보다 보면 나와 더 잘 맞는, 더 마음이 가는 아이가 있다. 길고양이 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도 유난히 따르는 캣맘이 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를 선택했을 때 우리는 기꺼이 그들을 돌보는 집사가 된다. 치즈는 나를 유독 따랐고, 나도 치즈가 제일 예뻤다. 동네 분들은 나에게 치즈를 입양하라고 했으나, 남편이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심해서 집에 들일 수는 없었다.

 

 

 

 

급식소의 치즈

 

반려동물은 통상적으로는 가정집이라는 안전한 장소에서 먹이를 제공받지만, 길고양이는 태풍으로 인한 심한 비바람이 칠 때나 폭설이 내릴 때 집에 있지 않고 생존본능에 따라 안전한 곳을 찾아 나갈 때가 많다. 그래서 날씨가 험상궂은 야심한 시간에 노파심으로 길고양이를 돌보러 나가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올 때가 종종 있었다. 길 위에서의 그들의 삶은 이렇듯 녹록지 않다. 그나마 캣맘의 관리를 받는 고양이는 한결 나은 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무방비로 죽어 나가도 그 원인을 찾는 게 어려운 것이 바로 길고양이의 짠한 삶이다.

 

중세 마녀사냥처럼 길고양이의 이미지는 주로 도둑고양이로, 섬뜩한 눈빛을 지닌 채 기분 나쁘게 우는 요사스러운 동물로 묘사됐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고 쥐를 잡아먹는 비호감의 대명사로 말이다. 반면, 개는 집을 지켜주고, 장애인 보조견 등 다양한 활동도 하니 반려동물로 개를 키우는 집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수입 애완동물 숍이 생겨나면서 조금씩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다. 현재는 SNS 인기 반려묘 계정, 고양이 카페 등장으로 고양이의 매력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한 동물보호단체의 활동으로 품종묘 분양 대신 우리나라에서 자생하여 쭉 살아온 토종묘(이하 코숏)를 입양하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최근 길고양이 혐오와 실제 길고양이를 유인해 폭행하고 살해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동물 학대에 그치지 않고, 노약자나 여성 등을 상대로 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코 방관해서는 안된다.

 

물론 고양이나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고양이는 공격적인 동물이 아니고, 오히려 사람이 다가오면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힘없는 작은 동물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생명체다.

 

일부 지자체에서 공식 급식소 설치와 중성화수술을 지원해 주고 있지만,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공식 급식소는 주민 동의가 필요한 일이라 길고양이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공식 급식소 설치는 길고양이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급식소에 오는 길고양이를 중성화시켜서 개체수를 감소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한 급식소라는 지정된 장소에서 먹이를 위생적으로 제공함으로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을 배회하는 고양이를 불시에 만나는 일도 줄어들 수 있다.

 

캣맘은 작은 생명체를 돌보는 봉사자임을 존중해 혐오의 눈빛이나 발언을 삼가 주시길 부탁드린다. 또한 입양은 덥석 한순간의 감정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본인이 끝까지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 하고 구체적인 절차를 통해 반려동물을 들여야 한다. 자신이 적임자임을 알아보기 위해 동물보호센터나 쉼터 등에서 정기적인 봉사를 해보는 것도 추천하는 바이다. 꼼꼼한 입양 심사와 사후 관리는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길고양이의 작은 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의 큰 책임이 뒤따른다. 생명 존중은 대단한 의식과 결연한 행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의 존재를 단순히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길고양이도 길가에 핀 예쁜 꽃처럼 자신의 공간에 있을 뿐이고, 그 공간을 우리 인간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앞으로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개선과 제도적 뒷받침으로 한층 성숙할 우리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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