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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 찬 옷장, 하지만 입을 옷이 없다면?

작성자: 다름 / 날짜: 2025-08-25 / 조회수: 24
 
 
 

 
냉장고는 꽉 찼어도 정작 먹을 건 별로 없듯 우리들 옷장도 비슷하지 않나요? 분명 계절마다 옷 한두 벌은 사는 것 같은데 마땅히 입을 만한 옷은 왜 늘 없는 건지? 체형에 잘 맞고 예쁜 옷은 기분을 좋게 만들지만 옷이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과정에 대해 조금만 자세히 안다면 맘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소위 패스트패션이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패스트패션이란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제작되고 유통되는 옷을 말합니다. 계절마다 신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1~2주일을 주기로 신제품을 선보입니다. 옷을 제작할 때 드는 어마어마한 물과 염색 폐수, 면화 재배를 하는 데 쓰는 해로운 살충제, 인건비가 싼 동남아시아 방직공장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 등 옷 한 벌에 수만 가지 문제가 한데 엮여 있습니다. 패스트패션 의류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대량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폐기 또한 대량으로 빠르게 진행됩니다. 이 옷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언젠가 뉴스를 통해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펼쳐진 버려진 옷들의 산을 보았습니다. 미국, 유럽, 아시아 지역에서 판매되지 않거나 중고로 넘어온 옷들, 참혹하게 폐기된 옷들의 산을 보며 소름이 돋았습니다. 더 이상 옷이 산듯하고 예뻐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은 우리 일상의 한 요소이자 개인의 취향을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패스트패션과는 거리를 두면서도 예쁨을 놓치지 않고 슬기로운 옷 살이를 하는 방법을 찾는 현장을 소개합니다.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에 있는 ‘가치 가게’에서 ‘옷, 장 해방일지’라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의 부제가 흥미를 끕니다. ‘한 옷 하는 사람들, 그때 그 안목을 판매합니다.’ 벼룩시장이나 아나바다 장터와 비슷할 수 있지만 누군가의 취향, 누군가의 안목을 살피고 또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끗 다르게 느껴졌고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누가 어떤 모양의 옷을 팔까? 나와 비슷한 취향을 만날 수도 있을까? 한 옷 한다는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수 세권로 140 B01 가치가게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가치가게에 들어서자 이미 행거에 판매할 옷들이 바지런히 걸려있습니다. 내 옷장에서는 비록 좀비처럼 잠들어 있었을지 몰라도 깨끗이 다리고 정리해 새로 숨결을 불어 넣으니 근사한 모양입니다. 가격은 대부분 오천 원 안팎, 제 지갑이 여러 번 열렸다가 닫힙니다. 판매자로 참여한 분들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20대 때 처음 남의 결혼식 갈 때 홍대 앞에서 샀던 옷인데 그때 이후로는 입은 적이 없어서 가져왔고, 제가 어깨가 좀 있는 편이라서 퍼프가 안 어울려서 퍼프가 있는 옷들은 거의 안 입게 되길래 가져왔어요”
 
 
판매자 서예람 님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예람님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2달 정도 머문 경험이 있는 데 그곳 사람들은 아이나 어른이나 새 옷을 입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벌이가 넉넉하지 않았던 20대 때 취향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 빈티지였고 여전히 빈티지를 좋아하며 최근 들어서는 속옷을 제외하고는 새 옷을 산 적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동네 가까운 곳에 이런 옷장 공유 행사가 있어 반갑게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판매자 최보라 님은 행거 옆에 전시한 도자기가 먼저 눈에 띕니다.
 
 
판매자 최보라 님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제가 아끼는 거니까 내놓을 때 많이 망설였어요. 팔지 말지는 가서 생각하자 마음을 먹고 왔는데, 가치가게 이용자라면 기꺼이 믿고 맡길 수 있겠다 싶어서 이렇게 아끼는 도자기와 옷을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물건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이야기 마당도 열렸습니다. 이번 기획을 하게 된 계기부터 과정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요, 이야기 마당을 진행한 김성연 가치가게 운영위원은 특별히 2권의 책을 함께 읽은 것이 이번 행사를 여는 씨앗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소연 님의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돌고래, 2023)와 복태와 한군 님이 함께 쓴 <죽음의 바느질 클럽>(마티, 2024) 이 바로 그 책입니다.
 
 
 
김성연 가치가게 운영위원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두 권의 책 가운데 인상적인 구절을 발췌해 보았습니다.
 
“슬플 때는 슬퍼서, 기쁠 때는 기뻐서 옷을 샀다. 하지만 쇼핑센터에서 새 옷을 사 들고 집에 돌아와도 옷장 앞에 서면 나는 늘 작아졌고 불안했고 불행했다. 거울 앞에서 새 옷을 입은 내 모습을 둘러보는 순간에도 트렌드는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다. 새 옷에 만족하는 유효기간은 턱없이 짧았다. 어쩌면 옷이 많을수록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옷이 이렇게 많은데 입을 옷은 없다니? 쇼핑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내 삶을 고립시켰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26쪽
 
“수선하는 시간을 낭비라고 여기며 한심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무엇이 더 생산적이란 말인가? 기후 위기를 앞당기는 일? 신속하게 새 물건을 구입하는 일? 그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애쓰는 일? 진짜 낭비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매 순간 낭비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은 비효율적이지 않다. 알뜰함은 귀한 가치이고 바느질은 정성이 깃든 노동임을 수선을 하며 깨달았다” <죽음의 바느질 클럽> 151쪽
 
패스트패션의 민낯을 알고 싶다면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읽으면 됩니다. 저자는 소비하면 할수록 더욱 심해지는 불안과 고립감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이런 마음을 넘어서 정성스레 수선하는 마음까지 가닿은 <죽음의 바느질 클럽>까지 읽는다면 내 취향을 지켜가며 지구를 해치지 않는 슬기로운 옷 살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옷 판매뿐만 아니라 옷을 수선하는 방법도 알려 주었는데요 <죽음의 바느질 클럽> 책에 나오는 치앙마이식 바느질도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치앙마이식 바느질로 수선한 옷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가치가게에서는 매주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이면 생활 기술자들이 다양한 수선 기술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옷부터 가방, 우산까지 고칠 수 있는 제품도 다양하니까요 한 번쯤 참여해 봐도 좋겠습니다.
 
최근 패스트패션 산업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를 가장 강하게 하고 있는 나라는 패션 강국 프랑스입니다. 패스트패션 제품에 대해 환경 부담금을 부과하고 패스트패션의 광고를 금지하고 있는데요, 더불어 2023년부터 옷을 수선하는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신발을 수선하면 7유로(약 11,300원), 의류는 최대 25유로(약 45,000원)를 수선 업체에서 환급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이런 실용적인 정책이 마련된다면, 우리도 보다 많은 시민이 수선에 기꺼이 동참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행사 현장에 다녀온 후 패스트패션에 대한 공부로 확장할 수 있었던 기사와 동영상 자료를 아래 공유합니다. 전국을 휩쓴 물난리 통에 기후 위기 불안이 커진 이즈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나의 소비와 취향이 더 이상 지구를 해치지 않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공유하고 실천할 때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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