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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회혁신가 기회소득을 제안하며

작성자: 한국사회가치평가 김기룡 / 날짜: 2023-06-26 / 조회수: 940

 

 

사회혁신가 기회소득을 제안하며

 

(한국사회가치평가) 대표이사 김기룡

 

기업사회공헌 컨설팅 활동을 17년 넘게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업사회공헌의 중요한 파트너인 비영리조직 종사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사회복지사로 활동한 경력까지 포함하여 20년 이상 지켜본 비영리조직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할 만큼 빠르고 많은 변화를 겪어왔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나의 관심은 비영리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조직 자체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 조직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최근 부쩍 가까이서 보게 된다.

 

[장면1]

90년대부터 인권운동에 헌신해 온 단체 A 대표님과의 식사자리였다. A 대표님은 활동해 오신 분야에서 누구나 인정할 만큼의 성과를 만들어 오셨지만, 본인은 너무나 지쳐있고 이젠 더 일할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하소연을 하셨다. 그런데 가장 힘든 것은 내가 그만두면 더 이상 이 일을 담당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개인의 삶을 다 후 순위로 두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소위 나를 갈아 넣었지만, 이제 후배들에게 나처럼 일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게 일하겠다는 사람도 없다.

 

[장면2]

특정 분야에 협회 성격을 지닌 비영리단체의 회의 자리였다. 20~30대 초반 실무자들의 초청으로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고, 현장에 도착하니 40대 팀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50대 후반 정도 되신 B 대표님이 등장하신 것을 신호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대표님은 본인이 말하기 시작하면 다들 말이 없으니 듣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대화는 잘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대표님은 화가 나셨다. 다들 이렇게 의견들이 없으니 내가 자꾸 지시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하시며 다그치셨다. 실무자들은 그냥 노트북을 바라보기만 했고, 그 사이에서 40대 팀장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뭔가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대표님의 지시로 회의가 끝났다.

 

위의 이야기는 특정한 비영리조직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두 사례 모두 비슷한 일을 복수로 겪었다. 지금 우리나라 비영리조직의 성장은 그 조직을 이끌어 오신 리더들의 헌신을 통해 이루어졌다. 비영리조직의 성장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발굴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정부의 정책과 법을 바꾸는 등의 성과를 이루었다는 점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비영리조직은 위기다. 앞서 언급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국가와 사회가 성장하면서 비영리조직이 참여해 온 이슈들의 많은 부분이 정책화가 되었고, 역설적으로 비영리조직의 역할은 축소되어 가는 부분도 있다. 또한 지금의 비영리조직을 일궈오신 분들과 지금 한참 조직에서 일해야 하는 실무자들 간의 일을 대하는 자세는 매우 다르다. 사회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감당해 온 사명감 중심의 사고와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사고의 차이는 그 간극을 줄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비영리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이다. 2019공익활동가의 지속 가능한 삶과 활동을 위한 지원방안 수요조사(서울시NPO지원센터)’의 내용에 따르면, 공익활동가들은 스트레스 인지율, 우울감 경험률에서 일반인구보다 2배 이상 높으며, 20~30대처럼 연령이 낮을수록 주관적 건강 수준이 낮고,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높아진다고 한다. 또한 앞선 사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20~30대 활동가는 업무 만족도, 공익활동 전망 등에 있어서 선배 세대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비영리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니 사회가 돌봐야 한다는 결론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져야 하는 관점은 열악성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지금 비영리조직이 겪는 어려움은 다른 말로, 사회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된 보상이 따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상황의 증명이다. 사회가 아무리 발전했다 하더라도 정부가 모든 사회문제를 풀 수는 없고, 요즘 기업들이 ESG 경영 등으로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는 주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사회문제의 형태가 더 복잡해지고,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사회문제가 등장하는 상황속에서 정부와 기업 말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스스로의 노력은 더욱 절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누가 이 일에 나설 것인가? 아니, 누군가의 희생이 더 따라야 하는가? 더 이상 과거의 방식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SK그룹에서 2013년에 제안하여 시행해 온 사회성과인센티브(SPC)’ 라는 지원 프로그램이다. SK는 사회적기업을 모집하여 해당 사회적기업이 전년도에 사업수행 과정에서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환산하고 해당 금액에 대하여 일정 비율만큼 매년 현금으로 보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으로 368개의 사회적 기업들이 SPC에 참여하여 527억 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해 왔다.

기업이 왜 이러한 일을 하게 된 것일까? 사회적기업 지원에 집중해 온 SK그룹은 사회적기업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더 좋은 인재들이 유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가 시장에서 재무적으로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기업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이는 인재가 유입되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여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보상한다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조직과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 가설에서 시작되었고, 10년을 추진해 오면서 그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보고 있다.

 

<그림1> 8회 사회성과인센티브 소개

출처 : 2023 사회적가치연구원

 

사회혁신가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복잡한 사회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각자의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성과는 정부가 지불했어야 할 정책 비용을 대신한 것일 수도 있고, 국민들이 결국 부담해야 할 사회문제의 해결 비용을 그들의 노력으로 줄였다고 볼 수 있다. 과거 30~40년 전에 자연보호 운동을 하며 민둥산에 나무를 심었던 사람들의 성과를 화폐가치로 산출해 본다면 아마도 묘목 한 그루의 가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혁신가들이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회소득은 사회혁신가들의 상황이 어려우니, 사회가 도와야 한다는 관점에서 제안하고 있지 않다.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고자 하는 주체들이 더 이상 개인의 삶의 질을 최대한 덜 포기하면서 이 일에 나설 수 있도록 하고, 사회는 그들의 노력에 따라 얻은 편익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세상을 꿈꾸며 제안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혁신가들의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는 세상의 시작점이다.

이 제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실행 주체들의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이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혁신가들의 활동 자체만으로도 소득을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 어떤 성과의 유무에 따라 지급해야 할 것인가? 답은 이 정책 또는 제도를 누가 시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다만 성과의 유무를 판별하고 SK그룹의 SPC 제도처럼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이 수반되면 좋겠지만 측정이라는 그 과정 자체에 또 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엄밀한 측정이라는 개념보다는 최소 수준의 판별 정도로 시작해 볼 수 있다.

만약 기업이 나선다면 특정 사회문제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 대응 사회혁신가 기회소득이라고 한다면 탄소 저감이나 환경오염 저감 등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혁신가들에게 일종의 기회소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ESG 경영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생각해 볼 만한 방식이다. 본인들의 ESG 경영 성과에 반영하고자 한다면 보다 엄밀한 측정을 통해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비영리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아이디어 단계의 혁신가들의 활동을 조직화하고, 지속 가능하게 활동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여러 재단이 시행하고 있다. 그러한 움직임을 보며 이제 사회혁신 생태계에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고 많은 주체들이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선배들이 쌓아 올린 업적을 기반삼아 이제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새로운 리더들이 등장하여 그들만의 또 새롭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풀 수 있도록 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 조금 더 지속 가능하게 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이것이 사회혁신 기회소득이 꿈꾸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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