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메뉴열기

우리에게 수어가 필요한 이유 - 언어의 다양성과 시민의 책임

작성자: 지구인 수어 공연단 윤희웅 대표 / 날짜: 2026-08-24 / 조회수: 22

 

몇 년 전 딸과 함께하는 스페인 여행이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기도 전에 딸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스페인어 인사말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올라(Hola), 그라시아스(Gracias), 로 시엔토(Lo siento). 나는 종이를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냥 우리말로 아니면 영어로 하면 되잖아. 헬로우, 땡큐, 쏘리. 전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말인데."

 

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말로 인사하는 게 예의라고, 딱 세 마디면 된다고 했다. 나는 오십이 넘게 살아온 사람 특유의 게으름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원래 새로운 것 앞에서 한 박자 늦게 반응하는 법이다.

 

그런데 마드리드의 작은 카페에서, 나는 내 게으름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땡큐"라고 말했을 때 점원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거스름돈을 내밀었다. 다음 날 같은 카페에서 딸이 시킨 대로 "그라시아스"라고 말했을 때, 점원은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그리고 웃었다. 아주 잠깐, 정말 잠깐이었지만 그 웃음은 분명했다. "헬로우"에는 반응하지 않던 사람이 "올라"라고 하자 같이 "올라"를 외쳐 주었다.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 순간 나는 언어가 상대를 향해 내미는 손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확히는, 내가 그들의 땅에서, 그들의 말로, 그를 부르는 순간, 그가 비로소 나를 손님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나는 농인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청인들이 수어를 신기한 듯 쳐다볼 때 어떤 기분이냐고.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불편하죠. 마치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 들죠. 그런데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사람이 어색하게라도 수어로 '안녕하세요' 하면, 그건 완전히 다른 기분이에요. 쳐다보는 게 아니라, 인사하는 거니까요."

 

쳐다보는 것과 인사하는 것. 그 사이의 거리는 수어 하나뿐이다. 마드리드의 점원이 "땡큐"에는 무심했지만, "그라시아스"에는 웃어 주었던 것처럼, 농인들에게도 그 짧은 수어 하나가 자신을 구경거리에서 이웃으로 바꾸어 놓는다.

 
 

경기도 농아인 어울림 한마당 / ⓒ 안산농아인협회 갤러리

 

923, 세계 수어의 날

매년 923일은 '세계 수어의 날(International Day of Sign Languages)'이다. 1951년 세계농인연맹(WFD)이 창립된 날을 기려 유엔이 2018년 공식 지정했다. 낯선 날짜일 것이다. 나조차도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던 날이다. 그런데 이 날의 의미를 알고 나면, 왜 하필 923일이어야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계농인연맹이 지향한 것은 단 하나, 수어가 '결핍의 언어'가 아니라 '고유한 언어'로 존중받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수어는 "말 못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쓰는 손짓"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이 수어의 문법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수어가 음성언어와 마찬가지로 독립된 문법 체계와 어휘 체계를 가진 완전한 자연 언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도 2016'한국수화언어법'을 제정해 한국수어를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로 법적으로 인정했다. 조문 어딘가에 박제된 문장이 아니라, 지구인수어공연단 단원들이 무대 위에서 증명하는 사실이다. ()를 수어로 옮기면 시의 운율이 손의 속도와 크기로 바뀌고, 노래를 수어로 옮기면 가사의 은유가 표정과 몸의 방향으로 바뀐다. 나는 그 무대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것은 번역이 아니라, 또 하나의 창작이라고.

 

그런데도 우리 대부분은 이 법의 존재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한국수어가 한국어와 대등한 언어라는 사실을 처음 듣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세계 수어의 날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몰라서 지나친 것과,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 대부분은 전자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알아야 할 차례다.

 

수어반 학생들과 농인이 함께하는 수어캠프 / ⓒ 안산농아인협회 갤러리

 

우리가 수어를 몰랐던 이유

수어는 한국어와 대등한, 완전한 자연 언어다. 문법이 있고, 어휘가 있고, 지역에 따른 방언도 있고, 시적인 은유도 있다. 이것은 통역사로서 확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수어를 "손짓의 모음" 정도로 여긴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수어를 접할 기회 자체가 없었다. ··12년 교육과정 동안 외국어는 배우지만, 수어를 정규 과목으로 만나는 학생은 거의 없다. 텔레비전 뉴스 한 귀퉁이의 수어 통역사는 있지만, 그 손짓의 의미를 읽어 내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농인은 이 사회에서 오랫동안 "안 보이는 존재"였다. 정확히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무관심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의 문제다. 스페인어를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이 없듯이, 수어를 몰라도 대부분의 청인은 평생 아무 불편 없이 살 수 있다. 그래서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딸이 나에게 세 마디의 스페인어를 강요했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것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예의였다. 그 땅에 사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농인은 우리와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같은 동네, 같은 버스, 같은 회사에 있다. 다만 우리가 그들의 언어로 인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주요 뉴스 해석 하기 (뉴스가 어렵기 때문) / ⓒ 안산농아인협회 갤러리

 

세 가지 오해

수어통역사로 일하며 가장 자주 마주하는 것은, 선의로 가득하지만 틀린 질문들이다. 여기, 우리가 흔히 갖는 세 가지 오해를 적어 본다.

 

첫 번째, 농인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다.

청인은 농인을 '듣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작 농인 스스로는 자신을 '수어라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를 '농문화(Deaf Culture)'라 부른다. 청각이라는 신체 기능의 결핍이 아니라, 시각을 중심으로 세계를 감각하고 손과 표정으로 사유하는 하나의 문화로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의 전환은 사소해 보이지만 결정적이다. 결핍을 보는 시선과 다름으로 보는 시선은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전체를 바꾸어 놓는다.

 

두 번째, 농인에게 수어는 모국어이며 한글은 제2언어다.

우리는 흔히 모든 농인이 한글을 자유롭게 읽고 쓸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농인에게 제1언어는 수어이고, 한글은 외국어를 배우듯 후천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제2언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젊은 농인들은 한글에 훨씬 익숙해졌다. 그러나 나이 든 농인들 중에는 여전히 긴 문장을 읽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다. 이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그들의 모국어가 한국어가 아니라 한국수어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괜찮아'라는 수어는 청인의 어법과 정반대로 쓰인다.

이 이야기는 조금 더 나에게 각별하다. "커피 마실래?"라고 물었을 때, 청인이 "괜찮아요"라고 답하면 그것은 사양의 뜻이다. 그런데 농인에게 "커피 마실래?"라고 물었을 때, 수어로 "괜찮아"라고 답을 들으면, 그것은 긍정이고, 마시겠다는 뜻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단순한 언어적 차이려니 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은 예의를 지키려는 겸양의 언어가 아니었을까. 매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의 시선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괜찮아"라는, 조금은 에두른 말로 자존심을 지켜 온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괜찮아"라는 이 손짓 하나에서, 한 공동체가 오랜 시간 스스로를 지켜 온 방식을 본다. 언어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태도를 담는다. '괜찮아'라는 짧은 손짓 안에, 나는 자존심과 겸양과 서러움이 동시에 접혀 있다.

 

119 응급처치 경연대회 경기도 대회 우수상 수상 / ⓒ 안산농아인협회 갤러리

 
 

세 마디면 충분하다, 그러나 한 학기면 더 좋다

전 국민이 수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비현실적인 기대이고, 오히려 부담만 키운다. 내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해도 세 마디로 마드리드의 점원을 웃게 만들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창함이 아니라 시도다.

 
AI 생성 일러스트
 
 

이 세 가지 손짓을 아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손짓을 익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사회가 "당신의 언어도 우리의 언어만큼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세 마디의 인사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면, 학교 교육은 그 문을 아예 열어 놓는 일이다. 나는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일하며 수많은 교실에 들어갔다. 그때마다 느낀 것은, 아이들에게 장애를 '이해시키려는' 한 시간짜리 특강보다, 수어라는 '다른 언어'를 몸으로 배우는 한 학기가 훨씬 강력하다. 한 학기 동안 수어를 배운 아이는 농인을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쓰는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장애인식 교육과 언어 다양성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 교육이 시도해야 할 가장 효율적인 통합교육이라고 믿는다.

 

안산 농아인협회는 주 2, 20, 3개월 과정으로 기초반·중급반·고급반의 수어 교육을 운영한다. (전국에 있는 농아인 협회 대다수가 수어반을 운영하고 있다) 기초반만 수료해도 일상의 간단한 인사와 안부를 나눌 수 있고, 세 과정을 모두 마치면 어느 정도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나는 이 사실을 알릴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본다. 막연히 멀게만 느꼈던 언어가, 3개월이라는 구체적인 시간과 20회라는 구체적인 횟수로 환산되는 순간, 갑자기 손에 잡히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공익적 실천

- 농아인협회나 주민센터의 기초 수어 강좌등록하기

- 다니는 학교에 수어 관련 체험활동이나 방과후 프로그램이 있는지 확인하고,
 
없다면 한 학기 수어 수업 개설을 학교나 교육청에 제안하기.

- 공연에서 수어 통역이 제공될 때, 화면을 지우거나 넘기지 않고 잠시 바라보기

- 마주쳤을 때, 어색해도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 보기.

-"저 사람은 손으로 말하는 다른 언어를 쓰는 거야"라고,
  장애가 아니라 언어로 설명해 주기.

- 만났을 때 그 사람의 표정과 몸짓을 먼저 읽어 보는 태도를 가져보기.

 

이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 농인이 매일 마주하는 "신기한 눈빛"의 총량이 조금씩 줄어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인사하는 눈빛"이 채워진다.

 

 

장애인, 노인 인권 강의 / ⓒ 안산농아인협회 갤러리

 
 

923일은 세계 수어의 날이다. 이날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농인만을 위한 날이어서가 아니다. 이날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준비되어 있는가. 유창하지 않아도 좋다. 세 마디의 인사면 충분하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한 학기의 시간을, 혹은 3개월의 저녁을 내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손이 내밀어질 때, 세상은 아주 조금 넓어진다는 것을.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