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담벼락을 넘는 일요일

/ⓒ에디터 윤작가
나는 '월담'이라는 이름을 그저 예쁜 은유쯤으로 생각했다. 담을 넘는다, 라니. 시적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그 이름의 내력을 알고 나면 은유는 사라지고 구체적인 얼굴이 남는다.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은 2013년,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권리찾기 모임'이라는 긴 이름으로 시작했다. 모임이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얻은 건 2021년 10월이다. 8년이 걸렸다. 그 사이 이름은 짧아졌지만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담을 넘는다는 건, 공장과 공단 사이에 놓인 담벼락 하나를 넘는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개별 사업장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지역의 노동자들이 함께 서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반월·시화공단은 자동차 부품과 휴대전화 부품을 만드는 작은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다. 전국에서 불법 파견과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곳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많은데 목소리는 작다. 사업장이 작을수록 노조를 만들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월담은 그 작음을 이유로 아무도 지켜주지 않던 자리에 들어가, 5인 미만 사업장 차별 철폐를 외치고, 원·하청의 사슬을 공론화하고, 안산과 시흥에 사는 노동자라면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노동권 공부 모임을 꾸려왔다. 임금 협상만 하는 조직이 아니라, 인권이 지켜지는 동네를 만들겠다는 조직이라는 말은 그래서 과장이 아니다.

/ⓒ에디터 윤작가
-. 일요일에만 열리는 문
안산역 동측 공영주차장, 월담노조 사무실 안이었다. 그 안에 새로운 문 하나가 생겼다. 안산시흥이주노동자상담소, 2026년 5월 17일에 문을 연 곳이다.
안산과 시흥에는 16만 명이 넘는 이주민이 산다. 반월·시화공단은 이들의 노동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구조다. 그런데도 많은 이주노동자는 언어 장벽과 불안정한 비자, 정보 부족 속에서 인권을 침해당한다. 실제로 공단 노동자의 55.74%가 인권 침해를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상담소는 이 숫자를 뒤에 두고 만들어진 공간이다.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월담노조, 이주노조, 경기이주평등연대가 뜻을 모았다.
이 상담소가 다정한 이유는 문을 여는 시간에 있다. 평일 오후에는 아무도 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만 문을 연다. 그 세 시간 안에 노무사가 임금 체불과 산업재해와 부당해고를 상담하고, 변호사가 민형사상의 어려움을 듣고, 행정사가 체류 자격과 비자 문제를 함께 들여다본다. 홍보물은 14개 언어로 만들어졌다. 서울예대 노학연대모임 '불나비'의 학생들과 지역 시민들이 자원 활동가로 앉아 상담 기록을 돕는다. 거창한 말이 필요 없는 구조다. 그저 문을 열어놓고, 올 수 있는 시간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기다리는 것. 다정함도 이렇게 시스템으로 설계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 문 앞에서 새삼 생각했다.

/ⓒ에디터 윤작가
-. 광장의 손팻말들
2026년 5월 17일, 상담소 개소식보다 먼저, 광장에서는 집회가 있었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주최한 migrant workers' rally였다.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라, 강제노동을 철폐하라,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마이크를 타고 광장에 퍼졌다.
각국의 노동자들이 돌아가며 연대사를 했다. 발음은 저마다 달랐지만 문장의 결은 비슷했다. 어떤 이의 손에는 사진이 들려 있었다. 오물이 넘치는 이동식 화장실, 안전 장비없이 일하는 작업환경, 창문도 없는 비닐하우스 기숙사 방 사진이었다. 이동식 화장싱의 오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람도 있었다. 손팻말의 문장은 짧았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 짧아서 오히려 무거운 문장들이었다.

/ⓒ에디터 윤작가
이 요구가 왜 이렇게 절박한지는, 상담소가 다뤘던 사례 하나를 알면 이해가 빨라진다. 개소식 후 바로 이루어진 첫 상담은 한 캄보디아 노동자가 회사 기숙사로 배달된 법원 서류를 제때 전달받지 못했다. 서류는 한국어로만 쓰여 있었다.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정식 재판을 청구할 기회조차 놓쳤고, 하마터면 강제 출국 위기까지 갈 뻔했다. 상담소는 정식재판 청구권을 되살리는 절차를 도왔다. 월담노조와 상담소는 이 문제를 개인의 불운으로 남겨두지 않고, 대법원 앞 기자회견을 통해 '약식명령서 모국어 번역 의무화'를 요구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광장의 손팻말과 상담소의 서류 한 장은, 알고 보면 같은 싸움의 다른 얼굴이었다.


/ⓒ에디터 윤작가
-. 담을 넘은 후에
리본을 당기는 순간의 박수는 크지 않았다. 대단한 세리머니도 없었다. 그러나 그 작은 문 너머에 노무사와 변호사와 행정사가 앉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에디터 윤작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팻말의 문장들과 숫자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55.74퍼센트, 16만 명, 14개 언어, 일요일 오후 세 시간. 숫자는 차갑지만, 그 뒤에 놓인 얼굴들은 뜨거웠다. 월담(越牆)이라는 이름의 노조는 이제 공장 담벼락뿐 아니라 언어의 담, 제도의 담, 무관심의 담까지 넘으려 하고 있다.
거리는 다시 평소의 얼굴로 돌아갔다. 베트남 식당에서는 여전히 고수 냄새가 났고, 사람들은 각자의 걸음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안산역 동측 공영주차장 한켠, 상담소의 불은 다음 일요일에도 켜질 것이다. 조합원으로, 후원인으로, 통역 서포터즈로 이 담을 함께 넘을 사람이 있다면 그 불은 더 오래 켜져 있을 것이다. 담을 넘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니까.

/ⓒ에디터 윤작가
월담노조와 이주노동자상담소는 차별의 벽 때문에 움츠러들었던 노동자들이 다시 어깨를 펴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작은 씨앗입니다. 일요일 오후, 안산역을 지나다 마주치는 이 따뜻한 공간에 여러분의 응원 한 자락을 더해 주시길 바랍니다.
안산시흥 이주노동자 상담소는
1. 문턱을 낮춘 ‘일요일’ 상담소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운영됩니다. 안산역 동측 공영주차장 내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매우 높습니다.
2. 전문가들의 무료 전문 상담소
단순한 조언을 넘어 실질적인 권리 구제를 위해 전문가들이 직접 나섭니다.
* 노동 상담: 임금 체불, 산업 재해, 부당 해고 등 (노무사)
* 생활 법률 상담: 민·형사상 법률적 어려움 (변호사)
* 비자(체류) 상담: 체류 자격 및 비자 문제 (행정사)
3. 다국어 지원 및 자원 활동처
14개국어로 된 홍보물을 제작하여 이주 커뮤니티에 상담소의 존재를 알리고 있으며, 서울예대 노학연대모임 ‘불나비’ 학생들과 지역 시민들이 자원 활동가로 참여하여 상담 기록과 운영을 돕고 있습니다.
상담소는 이주노동자가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우리 곁의 ‘사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합니다.

/ⓒ에디터 윤작가
함께하는 방법
1. 조합원 가입: 공단의 변화를 위해 월담노조의 운영과 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습니다.
2. 후원인 참여: 월담노조와 상담소가 지속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세요.
3. 자원 활동: 언어별 ‘통역 서포터즈’나 상담 내역을 관리할 자원 활동가들의 손길이 절실합니다.
상담소 위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중앙대로 462 (안산역 동측 공영주차장 내 월담노조)
* 상담시간: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 5시
* 문의전화: 031-491-2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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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함께 걷는 우리, 더 나은 세상을 그리다"
지난 7월 2일 목요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한양대학교 에리카 컨벤션 3층에서 「2026 경기도공익활동가대회」가 열렸습니다. 오후 1시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이어진 이번 행사는 도내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익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활동을 소개하고, 그동안의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행사는 사전부스 체험, 특강, 공연, 평등문화약속문 낭독, 그리고 대화테이블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저는 6기 에디터로서 이 모든 과정을 직접 참여하고 기록했습니다.

[한양대학교 에리카 컨벤션센터 3층에 마련된 2026년 경기도 공익활동가대회 안내 스크린 ⓒ에디터_안산사라]
1. 다양한 체험이 가득했던 사전부스
행사장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여러 단체가 마련한 사전부스였습니다. 각 단체별로 부스를 운영하며 자신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참가자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두고 있었습니다. 행사 시작 전부터 많은 활동가들이 부스를 돌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전부스에서 진행된 공예 체험 현장 ⓒ에디터_안산사라]
각 단체의 활동을 짧은 시간 안에 접할 수 있었던 사전부스는,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활동가들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의 장이 되어주었습니다.

[참가자들이 직접 재료를 다루며 만들기 체험에 참여 ⓒ에디터_안산사라]

[대나무 솟대 만들기 부스 현장 모습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만들기 체험을 통해 만들어진 세월호 매듭팔찌의 모습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홍보부스를 운영하는 단체의 모습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포토부스에 참여하는 참여자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2. 한양대 에리카 학생 발표 - "공익잇다"
한양대학교 에리카 학생들이 인공지능기초 수업의 IC-PBL 프로젝트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홍보 업무에 AI를 접목한 결과물을 발표했습니다. 대표 서비스 '공익잇다'는 관심 분야나 지역을 입력하면 맞춤형 공익활동을 추천해주는 AI 챗봇입니다. 이 외에도 조별로 콘텐츠 자동생성, 다국어 확산, 숏폼 제작 자동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포스터로 소개했습니다.

[무대에서 질의응답을 이어가는 한양대에리카학생 모습 ⓒ에디터_안산사라]
본격적인 식은 사회자의 평등문화약속문 소개로 시작되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 속에서 활동해나가겠다는 다짐을 나누는 순서였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오늘 하루 행사가 단순한 프로그램의 나열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대에서 질의응답을 이어가는 한양대에리카학생 모습 ⓒ에디터_안산사라]
본격적인 식은 사회자의 평등문화약속문 소개로 시작되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 속에서 활동해나가겠다는 다짐을 나누는 순서였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오늘 하루 행사가 단순한 프로그램의 나열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의하는 정보라 작가의 모습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4. 지구인수어합창단의 감동적인 무대
강연에 이어 지구인수어합창단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이주민과 농인 가족이 함께 어우러진 이 합창단은 무대 위에서 수어와 노래를 함께 담아내며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습니다. 여러 수어 경연대회에서 수상 경력을 쌓아온 만큼, 무대 구성과 완성도 모두 남달랐고,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하나의 무대에서 마음을 모으는 모습은 이번 행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지구인수어합창단 공연후 소개하는 모습 ⓒ에디터_안산사라]
5. 존중과 연결이 있는 대화테이블
이어서 대화테이블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원형으로 둘러앉아 서클(둘러앉기)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진행요원(가디언)의 안내에 따라 짧은 발언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공유했습니다. 각 테이블에는 대화를 이끄는 질문지가 마련되어 있었고, 참가자들은 경청을 바탕으로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습니다.

[테이블마다 마련된 질문지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대화테이블 진행 모습(1) ⓒ에디터_안산사라]

[테이블마다 마련된 질문지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대화테이블 진행 모습(2)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테이블마다 마련된 질문지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대화테이블 진행 모습(3)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6. 나의 테이블 이야기 - "활동가 번아웃과 소진"
저는 이날 여러 대화테이블 중 '활동가 번아웃과 소진'이라는 주제의 테이블에 참여했습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활동가분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겪은 번아웃 경험을 솔직하게 나누어주셨습니다. 기력 저하, 갑작스러운 의욕 상승 후 찾아오는 급격한 침체, 과도한 피로감, 수면 과다 등 다양한 형태의 소진 증상이 공유되었고, 그 원인으로는 과중한 업무량과 행정·회계·공모사업 등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아야 하는 구조,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정성 등이 공통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경기도 공익활동가의 '번아웃과 소진'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요~" 테이블에서 참가자들이 포스트잇에 남긴 다양한 의견들 ⓒ에디터_안산사라]
각자의 대응 방법도 다양했습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거나, 사진 촬영과 같은 취미 활동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거나, 일부러 외부 활동을 만들어 숨 돌릴 틈을 마련하거나, 퇴근 후에는 집에서 일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소진은 스스로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동료들의 세심한 관심과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는 공감대였습니다.
대화 말미에는 조직 차원의 개선 방안도 함께 논의되었습니다. 인원 확충을 통한 업무 부담 완화,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연월차 문화 조성, 개인 상담 비용 지원 확대, 주 4일제 도입(인원 보충 및 급여 유지·인상 포함) 등 실질적인 제안들이 나왔습니다. 특히 한 참가자는 자신이 속한 기관에서 활동가 재충전 사업의 명칭을 바꾸고 개인 상담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례를 소개하며, 이러한 지원이 실제로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저 혼자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 많은 활동가들이 비슷한 고민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 자체가 소진을 예방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송성영 공동대표와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유명화 센터장의 폐회사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다양한 체험이 있는 사전부스부터 시작해 강연, 공연, 그리고 가장 의미 있었던 대화테이블까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알찬 시간이었기에 참여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공익활동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씩 더 따뜻하고, 더 살기 좋게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 역시 이번 대회를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보탬이 되는 활동가로 거듭나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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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0

제헌국회 개원식 후 일동 기념사진(출처_위키백과)
다시 쉬는 날이 된 7월 17일
7월 17일 제헌절은 헌법이 제정된 1948년 이듬해부터 국경일․공휴일이었다. 국경일(國慶日)은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는 날이니 헌법을 제정한 날이 빠질 수 없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은 1949년 10월 1일 제정되었다.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을 국경일로 삼았다. 2005년에 한글날이 추가되었다. 주 5일제 도입으로 2008년부터 제헌절과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올해부터 둘 다 다시 공휴일이다.
공휴일(公休日)은 국가에서 정하여 쉬는 날이다. 특별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니 각자가 원하는 대로 쉬면 된다. 설날이나 추석은 전통적으로 하는 의례가 있지만, 제헌절은 그렇지 않다. 어린이날엔 어린이를 위해 뭔가를 하면 좋지만, 그렇다고 그날만 어린이를 존중하고 아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버이날이 공휴일이 아니라고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공휴일로 정하는 일은 꼭 그날만이 아니라 늘 함께 그날의 의미를 새기자는 뜻이다. 제헌절에 ‘함께 쉼’(共休) 역시 평소에도 헌법의 의미를 생각하고 실천하자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이 되기까지 — 헌법의 눈으로 보면
먼저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이 되는 과정부터 헌법 관점에서 살피자. ‘공휴일에 관한 법률’은 국경일법과 달리 2021년 7월 7일에서야 제정되었다. 그 이전에 공휴일의 법적 근거는 법률이 아니라 1949년 6월 4일 제정된 이래 개정되었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으로서 대통령령이다. 엄밀하게는 모든 시민이 함께 쉬는 게 아니라 관공서가 쉬는 것이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하고(헌법 제40조),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을 정할 수 있다(헌법 제75조). 헌법 제정 이후 한참 동안 공휴일제도는 헌법에 부합하지 않았다. 공휴일인 제헌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헌법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까닭이다.
헌법은 시민의 법이다
대개의 법령은 시민의 생활을 규율 대상으로 한다. 즉, 시민은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 헌법은 다르다. 거의 모든 헌법 규정은 시민에게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에 의무를 지우는 내용이다. 국민의 기본 의무인 납세의 의무나 국방의 의무조차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는 헌법적 제한에 따라, 시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 부과가 전근대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법치주의에 따라 통제한다. 헌법은 제정 주체도 법률과는 다르다.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한다(헌법 제53조 참조). 헌법은 ‘대한 국민’이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헌법전문, 헌법 제130조 제2항). 헌법은 명실공히 국민의 법이고 시민의 법이다.
국민은 주권자로서(헌법 제1조 제2항) 하나의 의사를 가진 통일체이다. 시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을 의미한다. 기본권의 주체인 ‘모든 국민’은 시민을 말한다. 어찌 보면 모순이다. 시민의 생각은 다 다른데, 그 의사를 하나로 모아 하나의 국가 의사로 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순적인 시민과 국민을 이어주는 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직업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활동이고, 직업 정치인의 정치는 시민의 정치 활동을 전제로 한다. 시민의 참정권을 비롯하여 탄핵 제도는 다양한 헌법 제도는 시민의 대표를 시민이 통제하는 장치다. 국민은 개헌을 통해 민주주의 제도를 얼마든지 새로이 창설할 수 있다.
시민은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누리면서 공적인 이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존재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시민이라는 말은 시민의 공공적 성격을 강조하려고 ‘민주’를 덧붙인 것이다.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겼더니 모든 시민의 권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서 직접 민주제 또는 ‘협치’(거버넌스)를 통해 시민의 직접 결정 또는 참여가 필요하게 되었다.
함께 쉬어야 함께 결정할 수 있다
서구의 근대 입헌주의에서 피선거권은 물론 선거권도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먹고 사는 문제로 골몰하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만 돌볼 뿐 함께 살아가는 공적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오늘날 레저(leisure)는 취미 생활에 한정되는 느낌의 용어지만, 넓은 의미의 ‘쉼’은 생계 외에 사적 활동과 함께 공적 활동을 보장하는 전제 조건이다. 혼자 쉬지 않고 함께 쉬어야 함께 결정해야 할 일을 상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 1호 유진오-제헌헌법 초고 (출처_국가기록원)
제헌헌법이 품은 공익의 정신
제헌헌법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라는 제5조가 눈에 띈다. 공공복리(公共福利)는 지금 헌법 제37조 제2항에도 등장한다. 공휴일(公休日)에 함께 쉰다는 공휴(共休) 의미가 담긴 것처럼 ‘공공’(公共)은 국민의 삶과 시민의 삶이 결합한 개념이다. 공공복리는 사회 전체로서 공익(公益)과 공동의 이익으로서 공익(共益)을 함께 말한다.
제헌헌법은 위의 제5조 외에도 전문(前文)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문구는 현재 헌법의 전문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제헌헌법 이래 대한민국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는 자유주의적 또는 정치적 민주주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그리고 문화적 민주주의까지 포괄한다. 제헌헌법의 기초자인 유진오는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가 제헌헌법의 기본이념이라고 말한다. 과거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 즉 각인의 자유를 정치적으로 확보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도 각인의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인의 자유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다.
자유방임주의 체제에서는 우승열패(優勝劣敗)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약자는 도리어 자유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상례(常例)라는 것이다.
- 유진오, 제헌헌법의 기초자
제헌헌법 제5조는 제84조로 이어진다. 즉, 대한민국의 경제질서가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시민들이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해야 함께 쉼이 가능해지고 거기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활성화한다. 시민들이 연대하여 공공의 복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그것을 위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소수자 또는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선다.
경기도 조례와 공익활동 — 헌법 정신의 구체화

경기도에는 ‘경기도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 활동 증진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그 목적은 경기도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공익 활동을 증진함으로써 경기도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조례 제1조).
시민사회는 시민, 법인 또는 단체 등 공익 활동을 하는 주체와 공익 활동의 영역이다(조례 제2조 제2호). 공익 활동은 시민, 법인 또는 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공익성이 있는 활동으로 영리 또는 친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활동이다(조례 제2조 제4호). 이때 시민은 지방자치단체의 구역 안에 주소를 가진 사람이어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등록한 외국인도 포함한다(조례 제2조 제1호).
위 조례의 기본 원칙은 각 주체가 상호 간의 다양성, 자발성 및 창조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조례 제3조 제1항).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 정신의 구체화다.
공화국은 군주가 통치하지 않는 국가의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들이 함께 결정하는 정치 체제다. 모든 시민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영역에서 동등해야 하므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 또는 계층이 우위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는 체제다.
국민 또는 시민은 주권과 기본적 인권의 주체로서 국가의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신민(臣民)이 절대 아니다. 헌법은 인권의 주체 자격에서 국적을 따지지 않고 외국인에게도 인권을 보장한다.
헌법의 민주공화국은 지금의 현실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 개념이다. 조례가 제시한 다양성, 자발성, 창조성은 시민으로서의 실천 목표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의 관계는 일차적으로는 시민과 국가의 관계다. 모든 국민, 즉 시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제1문).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제1문).
헌법에서 시민과 시민의 관계는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의 자발성과 창조성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화주의에서는 국가의 공적(公的) 영역에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共同) 결정을 강화한다. 위의 조례에서 시민사회활성화위원회(조례 제7조)와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조례 제15조)를 설치한 맥락이다. 위원회와 센터는 시민의 의사와 참여 그리고 활동을 매개한다. 이들 조직은 기존의 선출직 공직자 또는 일반공무원과 나란히 시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중간 조직으로서 공공적 민주 정치를 확장한다.
민주공화국은 시민들을 나누지 않는다
사실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때로는 상충한다. 그렇지만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은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제로섬 게임 상태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반면, 권위주의 통치 체제는 오히려 시민들을 분리하여 통치(divide & rule)한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내국인과 외국인 등을 구별한다.
민주공화국은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 반목이 생기지 않도록 제3의 길을 찾거나 조정과 타협을 끌어내려 한다. 시민들 사이 이해 충돌이 생길 때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일은 민주공화국의 공직자, 정치인, 시민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헌법은 시민이 직점 써 나가는 혁신의 법이다.
이미지 제안] 시민들이 함께 토론하거나 집회하는 현장 사진
헌법은 종이 위에 글자로 쓰인 법전이 아니다. 헌법은 시민이 매일매일 직접 써나가는 혁신의 법이다. 헌법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활짝 열려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고민은 누가 집권하도록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민주시민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 삶만 돌보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스러운 삶에 무관심 하다거나 사회의 부정의에 침묵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 가면서도 동료 시민과 함께 끊임없이 말하며 곁에 설 수 있는 사람이다.
개헌은 조문 수정이 아니라 시민의 실천이다
우리는 제헌 78주년을 지나면서 제헌헌법을 계승하면서도 핵의 위험과 기후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헌법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제헌헌법은 최초의 헌법인 점에서 헌법을 제정한 후에 그것을 구체화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순서를 밟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개헌은 단순히 헌법 조문을 수정하는 일이 아니다. 시민들의 실천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국회의 법률로써 해결하려 노력하고, 그것만으로 해소할 수 없는 문제를 찾아 국민적 합의를 거쳐 헌법에 담아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헌 문제는 시민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바꾸지 않는 추상적인 수사(修辭)에 머물거나 시민의 삶과 동떨어진 국가 조직의 변경 사안에만 골몰하게 된다.
시민의 민주주의적 결정은 의회를 통한 방법 외에도 때로는 유권자 범주를 넘어서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또는 지역에 터 잡은 주민들의 직・간접적 의사결정을 통해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의 재배치야말로 헌법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다.
정치인이 개헌을 말할 때, 시민이 물어야 할 것들
제헌의 주체가 국민 또는 시민이므로 개헌의 주체 또는 국민 또는 시민이다. 제헌절이 공휴일인 의미는 7월 17일 하루의 휴일에 머물지 않는다. 공휴일이 된 제헌절은 민주시민이 함께 인간다운 삶과 쉼을 누리고 민주 공화주의의 정치를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늘 고민해야 하는 출발점이 되는 날이다.
누군가 87년 헌법이 문제라고 말한다면, 그 헌법 탓에 국회에서 입법하지 못한 법률이 무엇이 있냐고 되물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이 헌법을 고치자고 말한다면, 다음을 따져 물어야 한다.
·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 일인지,
· 그걸 위해 어떤 입법 활동을 했는지,
· 개헌 이후에는 어떤 과정을 거쳐 목표하는 바를 성취할 것인지
다양한 시민들의 의사를 결집한 국민의 의사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가 대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곁의 사람들과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묻고 살피며 돌보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온다.
내가 곧 헌법이 된다
인간다운 존엄한 삶을 살 권리의 주체는 각자 시민으로서 다 다르지만,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다를 수 있지만,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어야 나의 인간다운 삶이 전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민주시민으로서 공익을 생각한다고 함은 내가 가장 마지막에 권리를 주장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자리에 서는 일이다. 내가 존엄한 존재임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완전무결한 사회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는 아니다. 우리는 늘 국가 또는 사회의 부정의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때 내가 부정의에 대해 항의하고 소수자 또는 약자 편에 설 때, 내가 그리고 우리가 곧 헌법이 된다.
제헌절, 우리 시대의 '제헌'을 시작하는 날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78년이 지나는 시점임에도 우리는 1945년 해방 이전과 해방 직후 또한 한국전쟁과 권위주의 시대에 있었던 부정의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더욱이 기후 위기와 같은 지구 차원의 문제 역시 풀어야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헌법의 밑바탕에 인권, 민주주의, 시민, 공익, 지방자치 등의 기초를 다지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래야 공휴일(公休日)이 된 제헌절이 공존과 공생을 위한 시작일이 되어 우리는 우리 시대 ‘제헌’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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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9※「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해 지역의 자원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꾸마 청개구리>
안녕하세요. 2026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Hana입니다. 2026년을 돌아보면, 그 어느 때보다 청소년이라는 이슈를 돌아볼 때, 빼놓을 수 없는 몇몇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스트레스 인지율, 우울감 경험률, 학습-교육입니다. 실제로 성평등가족부가 발간한 <2025 청소년 통계>를 살펴보면, <건강>에서는 스트레스 인지율, 우울감 경험률, 경제활동, 학습-교육 등 총 8가지 지표를 다루고 있으며 스트레스 인지율이 전체 청소년의 42.3%, 우울감 경험율은 27.7%, 여가는(인터넷 이용 시간) 20%로 나타났습니다. 학교에 가는 상황이 즐거운가에 관해서는 초등학생 79.4%, 중학교 71.2%, 고등학교 66.2% 결과가 나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뉴스에서도 청소년의 우울감이 증가했다, 정부 및 학교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지역-국가 차원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니즈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서 나오는 결과이며, 저 역시 청소년 시기를 보내며 정책과 사업이 제 니즈에 맞게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직접 체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청소년 시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시설은 청소년의 니즈를 고려한 다양한 사업을 통해 지역에서 청소년들의 활동하고,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여러 청소년 시설들의 사업 중 지역 차원에서 청소년의 니즈를 찾고, 지역과 교류하는 고리울청소년센터(약칭 꾸마)의 활동 사례인 <청개구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청소년들이 언제든지 방문해도 좋은, 무엇이든 배워갈 수 있는 꾸마 청개구리>

꾸마 청개구리는 매년 3~12월까지 진행하는 꾸마만의 청소년 사업으로 지역 내에서 학교에 다니고, 생활하는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청소년활동입니다. (*청소년기본법 제3조 정의 제1항을 기준으로 25세까지를 기준으로 정함.)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도 하고, 세상을 배워갈 수 있는 다양한 부스 및 체험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 실제로 참여한 청소년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큽니다.
원래는 한 건물을 대여해 해당 공간과 인근 공간(공원 등)에서 식사 및 체험활동을 진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되었으나 공간의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부천시 오정구 고강본동에서 청소년들이 가깝게 방문할 수 있는 초등학교와 지역 공원에서 청개구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식사의 경우, (1) 참여 청소년이 카운터에다 1,000원을 지불하면, (2) 식사 및 뒷정리를 마친 후, (3) 카운터에 정리를 완료했음을 확인한 후에 500원을 돌려받는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여기서 뒷정리는 책상 정리, 설거지를 의미합니다. 공간에서 활동하는 경우에는 설거지를 진행하고, 초등학교 및 공원에서 진행하는 경우에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분리수거를 하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책임지고 정리하는 방법과 환경을 생각하는 분리수거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식사 전/후로 부스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매주 부스의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다음과 같은 부스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육체적-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나고, 새로운 정보들을 배워갈 수 있어 청소년들의 호응이 좋습니다.
(1) 신체 활동으로는 엉터리청소년센터 부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서 배드민턴, 프로펠러 장난감 등을 대여해 청개구리를 진행하는 동안에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습니다. 이때, 같이 노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청소년 지도사, 청소년/청년 자원봉사자, 청년 상근 활동가들과 함께 놀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기획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운동장을 활용한 놀이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경찰과 도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2) 만들기 활동으로는 요리/체험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요리의 경우에는 청소년들의 입맛을 고려해 부스를 운영하는데요, 일반적으로 청소년/청년 자원봉사자들이 쉽게 만들 수 있는 활동으로는 청소년 다방(아이스티, 레몬에이드 등 간단한 음료 제조)이 있으며 요리사인 청년 자원봉사자가 주도하는 샌드 만들기 부스를 운영합니다. (경우에 따라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달고나처럼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활동도 진행합니다.
대표적인 체험활동으로는 물품 만들기(와펜, 키링 등), 미니게임(신발 던지기, 공 굴리기 등) 부스가 있으며 그 외에도 타로, 벚꽃사진관, 가족사랑 이벤트(사랑의 문구 작성 등)처럼 청소년/청년 자원봉사자와 청년 상근 활동가들에게 의견을 받아 체험활동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 오정보건소(금연클리닉: 금연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부스), 대학교 동아리(체험활동)처럼 다른 단체나 기관에서 부스를 운영해 정책-사업을 홍보하고, 동시에 부천시 오정구 고강본동에서 거주하는 청소년들과 소통-교류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과 협력으로 만들어지고, 이어가는 꾸마 청개구리>

청개구리 활동은 지역 청소년들이 배우고, 놀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고,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도움을 주었기에 지금까지 청개구리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당장 장소만 하더라도 기존의 공간이 사라졌을 때는 새롭게 활동할 공간을 찾는 것 자체가 과제였는데요, 청소년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게 쉽지 않았기에 당시에 여러 공원들을 후보로 정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행히 초등학교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청개구리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 학교 차원에서 청소년들에게 공간을 대여한 덕분에 지역에서 거주하는 청소년들도 학교 공간(운동장, 산책로 등)을 폭넓게 이용할 수 있었으며 청개구리 활동을 통해 학교라는 공간에서 안정감을 찾고, 안전이 보장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지역 주민 및 단체와도 자연스럽게 교류-소통할 수 있으니, 한 번 청개구리를 이용한 청소년들은 계속 청개구리를 찾아오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청소년들과 만나기 위해 청개구리 트럭을 사용해 물건을 옮기고, 청개구리 활동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약 2년 동안 청개구리 활동을 유지해왔습니다. 매번 공간을 다시 조성해야 하는 만큼 번거로울 수 있지만, 꾸마에서 근무하는 청소년 지도사와 청소년/청년 자원봉사자, 청년 상근 활동가들이 매번 힘써주는 덕분에 학교에 다니는 3~12월, 매주 수요일에 청개구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지도사, 청소년/청년 자원봉사자, 청년 상근활동가들이 청개구리 공간에서 부스 운영, 안전 관리의 역할도 맡으며 부스 운영만을 도와주는 지역 주민 단체들의 역할도 더해져 안정적인 청개구리 운영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청개구리에서는 총 6곳 이상의 지역 단체, 유관기관(청개구리맘, 고강본동새마을협의회/부녀회, 루모스봉사단, 고강본동주민자치회, 고강마을탐사단, 오정보건소)이 자원봉사 형태로 꾸마에 참여하고 있으며 단체들은 청소년들의 행복 증진과 교류-소통을 위해 매주 수요일에 모여서 즐겁게 활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로 체험활동 부스/식당 운영을 지원하며 특히 3주에는 수주체크인(미니게임, 타로상담)을 정기적으로 운영해 청개구리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몇몇 인원들이 카운터와 식당 운영을 지원하여 원활한 청개구리 활동 운영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번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날 때에 청개구리 활동을 도와주고, 참여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리 부스를 선보이는 자원봉사자, 대학생 자원봉사자 등) 이처럼 청개구리 기획부터 운영(부스, 질서 유지, 청소년과의 소통-교류 등), 피드백까지 모두 지역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청개구리의 역사는 지역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개구리는 청소년들이 배우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꾸마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지역에서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청개구리를 찾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청개구리와 꾸마 청소년운영위원회(약칭 청운위)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청소년 자격으로 운영하는 자치기구인 청운위를 스스로 홍보하는 모습, 꾸마 소속 동아리가 직접 청소년 버스킹 무대를 선보이는 모습 등 기존에 꾸마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이 청개구리에서 활동을 더 넓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청개구리는 부천시 오정구 고강본동 청소년들과 지역이 교류하는 만남의 장!>

청개구리가 왜 만남의 장이 되는지는 지역자문회의, 성과보고회에서 나온 자료를 통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개구리에서는 향후 활동 방향을 정할 때. 참고할 자료로 참여 청소년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합니다. 제가 활동하는 2024~2025년에는 제가 그 역할을 맡았는데요, 직접 2024~2025년에 청개구리를 방문하는 이유를 물어본 결과, 재미/활동(37.0%), 식사(39.1%), 사람/관계(13%), 기타(10.9%)라는 결과가 나왔으며 좋았던 점에 관한 서술형 답변에서도 <어른들이 착하고 활기가 넘친다.>, <밥이 맛있다. / 밥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행사가 많아졌다. 노래방이 재밌었다.>라는 답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즉, 경제적, 지리적, 심리적 상황을 고려해 청소년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결과, 청소년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동시에 지역 주민들은 청소년들의 니즈와 관심 분야 등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어 향후 청소년 대상 공익 정책과 사업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지역 주민(청소년 지도사 등)들과 친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큰 고민도 조금씩 털어놓을 수 있게 되며 이는 앞에서 언급한 건강-심리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을 빠르게 확보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청개구리 활동 중에 발생한 사고나 다툼이 있으면, 지역 주민들이 직접 중재하고, 해결하는 만큼 청소년들은 청개구리에서 활동하는 지역 주민들을 믿을 수 있다는 점도 청개구리의 특징입니다.
<청개구리를 통해 공익을 위한 청소년 사업이 지향해야 할 길을 짚어봅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사업은 해당 지역의 자원(사람, 자연, 공간 등)을 고려하고, 니즈를 파악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기관, 단체에서는 청소년의 니즈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방법만으로는 청소년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자료로서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의견을 수렴하여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의견을 적극 보내는 것으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의 참여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청소년들이 변화를 위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 향상으로도 이어져 초반에 언급했던 청소년들의 심리적-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청개구리는 제가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며 초중고등학교에 다녔을때도 이미 운영하고 있었을 정도로 16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거쳐온 청소년 사업입니다. 비록 저의 경우에는 성인이 되고, 청년 상근활동가에 지원하면서 그때서야 청개구리 사업을 알게 되었지만, 만약 제가 청소년이었을 때에 청개구리에 참여했다면, 지금의 저는 어떤 모습일지, 어떤 의견을 제시했을지 궁금증이 생기고, 한편으로는 어렸을 적부터 참여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세대 간에 쌓인 격차를 풀어내고, 니즈를 반영하는 것은 청소년 사업에서 제일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러한 사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가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도 정책-사업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 애로사항을 줄여가는 방향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역 사회가 청소년을 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참고>
https://www.law.go.kr/%EB%B2%95%EB%A0%B9/%EC%B2%AD%EC%86%8C%EB%85%84%EA%B8%B0%EB%B3%B8%EB%B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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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9
“장(場)이 사라진 시대, 시민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
경기사회포럼, 민선 9기 앞두고 시민사회 역할과 공론장 회복 논의
6.3 지방선거 이후 출범할 민선 9기를 앞두고, 시민사회가 처한 현실과 지방정치의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경기시민연구소 울림’ 주최로 지난 5월 18일(월) 오후 7시 경기도여성비전센터에서 열린 경기사회포럼에서는 단순한 지방자치 논의를 넘어 오늘날 시민사회가 처한 구조적 위기를 성공회대학교 김찬호교수를 초빙하여 깊이 있게 성찰하는 자리를 가졌다.

<사진1, 2 : 제10회 경기사회포럼 ‘시민사회의 지방권력 활용법’>
“고립의 시대”… 시민사회도 예외 아니다.
‘시민사회의 지방 권력 활용법’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 김찬호교수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복합 재난 시대’라고 진단했다. 저성장과 인구 감소, 불평등과 고립, 미디어 환경 변화와 공동체 해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과거 시민운동의 방식만으로는 현실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사진2 : 강연에 나선 김찬호 교수>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고립’에 대한 분석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더욱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하고, 청년 세대일수록 대면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심화되었다는 설명이다. 대학 강의실은 스마트폰을 보느라 조용해졌고, 동네 이웃과는 인사조차 어색해졌다.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라는 응답 비율은 한국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는 통계도 언급됐다.
김찬호 교수는 이를 단순한 개인 성향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봤다. 빈곤, 학업 중단, 열악한 주거, 사업 실패, 일자리 불안, 가족 해체, 정신건강 악화 등이 서로 얽히며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사회를 분석한 『손절사회』와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을 인용하며, 사람들은 점점 더 안전하고 불쾌하지 않은 관계만 추구하지만, 그 결과 타인과의 마찰을 견디는 힘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場)의 상실”… 시민운동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이번 강연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장(場)의 상실’이었다.
김찬호 교수는 “예전에는 마을과 학교, 시민단체 같은 공동체 안에서 관계가 형성되고 갈등도 완충됐지만, 지금은 관계의 장(場)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번 관계가 틀어지면 회복할 중간 지대가 없고, 결국 손절로 이어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더불어 이 변화가 시민사회에도 치명적 영향을 주고 있다.
한때 사회 변화를 이끄는 주체였던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대학, 언론 등 기존 공적 영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반면, 개인화된 소비자와 네티즌 중심 사회가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시민사회 역시 기존의 조직 중심 활동만으로는 주민들을 연결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사진3 : 포럼 참석자들이 강연 내용에 집중하고 있다.>
“시민운동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포럼에서는 주민 삶의 변화에 비해 행정 시스템은 여전히 표준화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민들의 삶은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지만, 행정은 여전히 동일한 기준과 절차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현장과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김찬호 교수는 “앞으로 시민사회가 주민들의 삶 속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이야기와 경험의 형태로 공유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정책 제안을 넘어 문화와 예술,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대표 사례로 소개된 것은 서울 마포구 발달장애 청년 허브 ‘사부작’이었다. 주민들은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마을 살이를 이어가며 실제 삶의 모델을 만들었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조례를 제안할 때도 춤과 문화예술 퍼포먼스로 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딱딱하고 어려운 정책 제안이 아니라 ‘재미있고 감동적인 경험’으로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낸 사례다.
또 다른 사례로는 부산 사하구의 워킹맘들이 출근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아이가 아팠을 때 필요한 ‘출근 전 어린이병원’,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함께 놀 수 있는 ‘노원구의 통합놀이터 조성’, 빈집을 매입해 생활 SOC로 활용하는 부산 사례 등이 소개됐다. 모두 주민들의 실제 생활 문제에서 출발해 조례와 정책으로 이어진 사례들이다.
지역 언론과 공론장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충북 옥천의 옥천신문 사례를 언급하며, “지역 의회와 행정을 꾸준히 감시하고 기록하는 언론의 역할이 지방자치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특히 “다음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청소년과 미래세대의 삶, 노후 인프라 문제, 장기적인 공동체 회복 같은 의제가 단기 성과 중심 정치 속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희망은 방향이다.”
강연 말미에는 ‘희망’에 대한 메시지도 전했다.
김찬호 교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바츨라프 하벨의 말을 인용하며, 희망은 결과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영혼의 방향성’이라고 강조했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고 선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어 고(故) 김근태 의원의 “희망을 의심할 줄 아는 진지함”이라는 말을 소개하며, 시민사회가 냉소를 넘어 다시 공론장과 공동체를 복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냉소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바로 그 냉소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사진4 : 2025년 11월 20일 출범한 경기사회포럼은 경기지역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대안과 담론을 모색하는 자리를 격월로 진행하고 있다.>

이번 포럼은 시민사회가 단지 행정을 견제하거나 정책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해체되는 관계와 공론장을 어떻게 다시 복원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답은 어쩌면 거창한 구호보다, 작은 연결과 경험, 지역 안에서 다시 사람을 만나게 하는 ‘장(場)’을 복원하는 일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포럼 참가자들은 “장(場)이 사라지는 시대에 이런 공론장 자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라며, 지역 안에서 사람들을 다시 연결하는 다양한 시도와 학습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으며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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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4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2030 여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있는 집 딸’이라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해서 국가장학금으로 공부해 변호사 시험 합격증을 받은 사람이 있다.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 “대포통장 사기 사건”이었고, 그 ‘진흙탕 바닥’이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단다. 안산의 새내기 법조인, 정민지 변호사의 꿈과 포부를 들어보자.
Q 시간 내 줘서 고맙다.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나는 대한민국 30대 여성이고 한 달 전에 제15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까, 즐거운 상상 속에 지내고 있다. 목회자 부모의 세 자녀 중,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낀 외딸이다. 부모가 나를 고명딸이라며 떠받들어 키우지도 않았고, 오빠랑 연년생이라 쌍둥이처럼 자랐다. 그래서인지 태어난 순서로는 장녀가 아닌데, 현실에서는 ‘K-장녀’로 자랐다. 진짜 장녀들이랑 만나면 말이 되게 잘 통하더라. 나 또한 나를 항상 큰딸로 정체화한다.
Q 살면서 지금처럼 신나고 여유 있는 시기가 없었을 거 같다. 축하합니다.
맞다. 대한변협이 하는 합격자 연수를 들으면서, ‘의식적으로’ 천천히, 내가 가고 싶은 일자리를 찾아보려 한다. 안산시 공무원 3년 하고 2021년 로스쿨에 진학했으니, 지금 5년 만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공무원은 대학 졸업하고 당장 돈을 벌어야 해서 시작했었지만, 이제는 돌고 돌아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일, 살고 싶은 삶을 찾았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대충 시작하기 싫어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찾고 있다. 굉장히 설레고 기대된다.
Q 안산시 9급 일반 행정직으로 3년 일하고 그만두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정형편 상 취준생으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어서, 졸업 전에 합격해 놓고 졸업과 함께 일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내 길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민원 업무든 행정사무든 일은 잘 해냈지만 조직 문화가 힘들었다. “이제 공무원 됐으니, 시집만 잘 가면 된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어린 여성이라고 친절, 애교, 미소 같은 태도 요구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남자 상사랑 있을 땐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위안을 줘야 할 거 같은, 내가 너무 ‘대상화’되는 위치에 놓이더라. 그때마다 뻔뻔하게 받아칠 짬밥이랄까 요령이랄까, 그게 없어서 미치겠더라.
내 능력에 비해 너무 소박한 보상과 인정만 주어지는 현실에 회의감이 컸다. 누군가의 권력과 위계에 따르기보다 내 목소리를 내며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2019년 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다큐 영화 <RBG>를 보고 강하게 깨달았다. ‘저런 법조인이 되자. 그러면 내 능력을 발휘하고 합당한 보상을 받으며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 그날 탈출을 결심했다.
Q 청소년기부터 변호사를 꿈꾼 건 아니었나 보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통지표에 ‘용모 단정하고 질서를 잘 지키나 의사 표현이 부족함’이라고 적힌 소심한 모범생이었는데, 신기하게 운동할 땐 날아다녔다. 아빠가 형제들이랑 차별 없이 축구, 야구, 배구, 농구에 자전거까지 다 가르쳐줬다. 우리집에서 유일한 사교육으로 수영, 태권도도 배웠다. 덕분에, 나는 운동선수가 될까 한 적도 있다. 몸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는 독보적인 아이였다. 그러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운동선수가 될 사람은 이미 여기 없어야 한다고 툭 던지는 말에 ‘나는 늦었구나’ 싶어 마음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교 비평준화 시절 안산 동산고에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바닥을 치는 성적에 충격을 받았다. 가장 어려웠던 건 수학이었는데, 1년 내내 슬럼프였다. 1학년을 마친 후 어떻게든 수학을 정복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부모의 교육철학과 경제적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학원이나 과외 없이 공부했던 나에게 선택지는,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하기’ 그것뿐이었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겨울방학 내내 수학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고2 첫 모의고사에서 수학을 반타작했다. 좌절감에 울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공부를 똑바로 안 한 거다”라며 비수를 꽂았다. 그 말에 오기가 생겼는지 나는 계속 밀고 나갔다. 지난한 자기 싸움 끝에 수학을 가장 잘하는 과목으로 만들며 정시로 서울의 한 사범대에 합격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는 공부 맛을 청소년기에 익힌 셈이다.
Q 대학 생활과 청소년기 공부는 달랐을 거 같다. 자기 길 찾기는 어땠나?
모범생으로만 살아서인지, 대학에서 스스로 길을 뚫는 게 무서웠다. 등록금은 국가 장학금으로 해결됐지만 용돈은 벌어 써야 했다. 안산에서 2시간 통학하며 공부하고 알바하느라 늘 시간이 부족했다. 4학년 앞두고, 진로도 안 잡히고, 학점도 별로고, 휴학하고 돈을 좀 벌며 길을 찾고자 했다. 마침, 월급 200만 원에 물류창고 알바 공고가 뜨더라.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엄마가 간암 수술 후 퇴사해 요양 중이었고, 아빠는 투잡을 뛰며 목회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완벽한 결과를 내놓고 싶다는 강박에 쫓기고 있었다.
돈에 혹하고, 출입증 등록용이라는 말에 속아, 체크카드와 통장과 비밀번호를 넘겨주고 말았다. 이상하다 싶었을 땐 이미 내 통장이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으로 쓰인 후더라. 나도 모르는 사람들 이름으로 수백만 원씩 돈이 들어왔다 빠진 기록을 다음 날 확인했다. 가해자 신분이 되어 버렸다. 빨간 줄이 그어질 대형 사고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 바닥을 경험했다. 이 사건으로 전혀 계획에 없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면서 내 인생의 방향이 급선회했다.
Q 대포통장 사건이, 정민지라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
그전까지는 보이스피싱 뉴스를 보면, 사람들이 조심성이 없어서 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궁지에 몰려 휘말리고 보니, 내 뜻대로 안 되는 삶의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요양 중이던 엄마가 내 소식을 듣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소통이 부재해서 일어난 문제”라고 하더라. 혼자 완벽하게 잘하고 결과만 “짜잔!~” 보여주려 하지 말고 못난 모습도 나눠야 함을 깨달았다. 통장이 정지되고, 경찰조사를 받고, 검찰에서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받기까지 반년을 보내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인생 바닥에 던져질 때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그 바닥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Q 공무원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나도 “로스쿨은 돈스쿨이지 내가 어떻게 가”라고 생각했었다. 3년 학비와 생활비 하면 억 단위가 든다. 나는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했다. 소득 분위 장학금을 신청할 때 부모 재산이 들어가는데, 우리 부모는 수입과 재산이 바닥이었다. 엄마는 간암 수술 후 퇴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공부하느라 고정 수입이 없었고, 아빠도 미자립 교회의 투잡 목사였다. 그런데 이 사정들이 역설적으로 완벽히 증명되면서 나는 3년 내내 전액 국가 장학금으로 공부했다. “엄마 아빠 가난한 김에 제대로 가난해서 고맙다.”라고 농담을 즐길 정도였다.
Q 로스쿨 학생들도 사교육(학원 인터넷 강의) 한다고 들었다. 변호사 시험 시장의 현실 이야기와 자기 주도적 공부 과정도 들려달라.
로스쿨은 변호사 시험(변시) 통과를 위한 ‘입시 학원’으로 전락했다고들 한다. 대부분 사법시험 출신이거나 학계에만 있던 교수들 강의에 대한 만족도가 학원보다는 낮았다. 대다수 학생이 수업 시간에 뒤에 앉아 대형 학원 인터넷 강의(인강)를 듣거나 학원 교재를 보는 게 현실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고집스럽게 교수님 강의와 책을 붙잡고 독학을 밀고 나갔다. 인강에 쓸 돈도 없거니와, 처음부터 하나하나 스스로 해나가는 공부가 나에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령이란 걸 모르니 법의 1부터 100까지가 다 중요해 보여서 공부 분량이 살인적일 수밖에 없다. 삼수 때까지도 “이 방법이 맞나?” 수없이 의심하며 두려움을 늘 끼고 공부했다. 독학 합격은 보편적인 레퍼런스가 없으니, 스스로 실험하고 시도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해야 했다.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도 완전히 자신할 수 없었는데,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Q 그 억눌린 멘탈을 어떻게 붙잡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시험 점수가 안 나오면 흔들리다가도 “결국 내가 해야 끝나는 싸움”이라며 크게 울고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다. 특히 부모님과 교회 공동체와 토론 모임에서 내 취약함과 어려움을 나눴다. 가족이 무조건적인 안전 기지였다. 그리고 삼수 중에도 매월 3개의 ‘페미니즘 토론 모임’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법조계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라, 공부하다 보면 ‘엥? 이게 말이 돼?’ 싶은 판례가 많더라. 그런 판례로 쌓인 스트레스를 토론 모임에서 “거지 같은 법리들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날카로운 성평등의 칼을 벼렸다. 멀리 보는 자기주도적 공부였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무래도 나의 엄마다. 내가 속한 여성단체 회원이고 내가 참여하는 토론 모임들의 모임장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한 영화 <RBG>를 모녀가 같이 보고 토론했다. 엄마는 “너도 저런 길을 갈 수 있다”라며, 영화를 내 현실로 끌어와 주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책 읽고 질문하고 글 쓰는 사람이다., 작가요 활동가로 사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자원이다.
Q 수험생들에게, 꿈을 찾아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하우가 있다면. 2030 여성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도 추천해 달라.
수험생들에겐 “내가 왜 이 힘든 길을 가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절대 놓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답 찾기 공부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배짱을 가지길 바란다. 비혼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를 보면 숨이 막힐 때가 많다. 여전히 ‘이성애적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사회다. 2030 여성들이 쉽게 비혼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그 깊은 고뇌를 사회가 모르는 거 같다. 소수자가 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엄청난 용기를 내는 거다. 가부장제 구조는 여성을 주체가 아니라 인구수를 채울 ‘애 낳는 도구’로 취급하는 거 같다, 젊은 여성들이 출산과 자아실현 중 하나를 강제 포기해야 하니 ‘여성 우울’을 겪는다. 국가는 다양한 생활동반자를 법적 가족으로 확장해야 한다. 비혼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재생산권을 보장해야 한다. 법조인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내 과제이자 살고 싶은 세상이다.
이 맥락에서 역사 속 금기를 깨고 주체적으로 길을 개척한 여성 서사를 생생하게 복원해 낸 역사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 《붉은 궁》,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추천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정민지 변호사의 미래 설계와 포부를 이야기해 달라.
실제 법조 생태계에서 기득권의 목소리를 더 키우는 데 법률 기술이 쓰이는 게 보이더라. 나는 침묵 당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이크로 일조하고 싶다. 좋은 동료들과 연대해서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안전한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께 말하는 포부가 있다. 두 분은 젊은 날부터 사람들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약한 데로 가서 힘을 나누며 사느라 평생 가난하다. 내가 돈을 벌면 건물을 지어서, 한쪽에는 엄마가 집필하고 책을 공유하는 사랑방이자 ‘작가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다. 다른 한쪽에는 아빠가 돈 걱정 없이 소신을 펼치는 목회 공간을, 그 위에 내 ‘변호사 사무실’을 갖고 싶다. 지역에서 여성단체와 연대하는 변호사로 살 것이다.
나아가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갈 주체적인 실험으로서, 나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다정한 파트너를 만나 내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확장의 경험도 기꺼이 해보고 싶다. 5년 후, 10년 후 내가 이 포부대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이 꼭 검증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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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평화를 기억하기 위한 시민의 공간
— 동두천에 우리의 기억과 평화의 집을 짓겠습니다

■ 먼저,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주세요
윤금이.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에서 주한미군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여성입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 기지 주변에 형성된 '기지촌'에서 살았습니다. 기지촌이란 미군 기지 주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역으로, 극심한 가난 속에서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많은 여성들이 미군을 상대로 일하며 살아가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 구조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조직적으로 만들고 관리한 체계였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여성들에게 "달러를 버는 민간 외교관"이라며 애국심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안전은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살해당한 기지촌 여성은 윤금이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동두천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습니다. 캠프케이시 정문 앞에 시민 2천 명이 모였고, 동두천 상인들은 미군 출입을 거부했으며, 택시 기사들은 미군 승차를 거부하는 저항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동두천에서 시작된 이 목소리는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 시민의 힘이 역사를 바꿨습니다
윤금이 사건은 '주한미군의 윤금이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이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미군의 범죄는 대한민국 법정에서 다룰 수 없었습니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즉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라는 협정 때문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미군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한국 법원이 아닌 미국 군법에 따라 처리되는 구조였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한국 법정에 서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살인을 저지른 미군 케네스 마클을 대한민국 법정에 세웠고, 그는 최종 15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또한 불평등한 SOFA를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두 차례(1991년 1차 개정의 실질적 이행 및 2001년 2차 개정)의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윤금이씨의 죽음은 단순한 개별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한미 관계가 수직적 관계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온 국민에게 각인시킨, 가슴 아프지만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이었습니다.
■ 지금도 계속되는 기억
동두천에서는 매년 10월 사건 당일을 추모일로 정해 '기억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주관으로 열리는 이 행사에는 매년 30여 명의 시민이 모여 그날을 기억하며 평화를 향한 다짐을 이어갑니다. 올해 2026년이면 34주기가 됩니다.
기억은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계속 붙잡고 있기 때문에 남아 있습니다.
■ 이제,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2026년, 윤금이씨 사건이 있었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작은 건물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건물주가 시민들에게 매입 의사를 타진해 온 것입니다.
이 건물을 시민의 힘으로 매입해, 기억과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는 미래입니다. 복수나 응징이 아닌, 기억과 평화, 화해와 연대의 공간. 그곳에서 윤금이씨를 기억하고,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누는 것. 그것이 이 공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도 함께 지켜주세요
이와 함께, 지금 동두천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요산 초입에 서 있는 낡은 2층 건물, 1973년에 세워진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입니다.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성병 검사를 받고, 격리 수용되었던 곳입니다. 전국에서 당시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동두천시는 이 건물을 철거하고 관광시설을 지으려 합니다. 시민들은 600일이 넘도록 이를 막아왔습니다. 2024년 10월에는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포클레인 앞에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2025년에는 UN 특별보고관 세 명이 대한민국 정부에 공식 권고안을 보내왔습니다. "피해자들의 서사가 복원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을 다하고, 철거 계획을 철회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4월, 마침내 국가 주도 대화협의체가 출범했습니다.
이 건물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보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 새겨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역사가 지워지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 기억해 주세요.
윤금이라는 이름을, 동두천 성병관리소라는 공간을, 그곳에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세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이 역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둘. 알려주세요.
이 글을 주변에 공유해 주세요. 더 많은 시민이 알수록, 이 공간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커집니다.
셋. 함께해 주세요.
매년 10월 동두천에서 열리는 '윤금이 기억의 날' 행사에 참여해 주세요. 30명이 함께하던 자리에 300명이 모인다면, 그 의미는 달라집니다.
넷. 기금에 함께해 주세요.
윤금이씨 사건 현장의 건물을 시민의 힘으로 매입하는 기금 모금에 참여해 주세요. 작은 힘이 모여 공간이 되고, 공간이 기억이 되고, 기억이 평화가 됩니다.
■ 마지막으로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제야 국민이 되었다!"
2026년 3월, 국회 토론회에서 한 피해 여성이 외친 말입니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살아왔지만 늘 그늘에서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처음으로 국민으로 불린 날의 외침이었습니다.
이 외침이 오래 울리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평화가 미래입니다.
그 미래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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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하고 싶다면
문의 :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031-823-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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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금이 기억의 날 |
기억과 평화의집 참여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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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보존 활동 |
소요산 앞 천막 농성장 참여하기 (609일째 운영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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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6 
1. 도입 — 쫓겨나지 않는 공간이 공동체를 살린다
1997년 6월 12일,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에서 12마일 떨어진 작은 섬 에이그(Eigg)에서 68명의 주민이 환호성을 질렀다. 수십 년간 외부 지주에게 퇴거 위협을 받으며 살아온 그들이, 마침내 자신들이 사는 섬을 직접 사들이는 데 성공한 날이었다.
그 이후 에이그 섬에서는 이전에 불가능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새 주택이 지어졌고, 인구가 늘었으며, 세계 최초로 풍력·태양광·수력만으로 24시간 전력을 공급하는 재생에너지 전력망이 주민들의 손으로 구축됐다. 땅의 주인이 바뀌자, 섬의 미래가 바뀐 것이다.
공익활동 단체가 가장 자주 부딪히는 현실적 문제 중 하나도 공간이다. 모임을 열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 주민들이 찾아올 수 있는 거점이 없으면 아무리 뜻이 좋아도 활동을 이어가기 어렵다. 임차료가 올라 쫓겨나고, 재개발로 터전을 잃고, 지원 사업이 끝나면 공간도 사라지는 일이 반복된다. 공익활동의 지속 가능성은 단순히 재정이나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디서 뿌리를 내리느냐는 물리적 기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의 공동체 토지 매입 운동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수백 년간 소수 지주에게 집중돼온 토지를 주민들이 직접 사들여 공동체 자산으로 전환하는 이 운동은, 공간의 소유가 공동체의 자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20년 넘게 실증해왔다.
스코틀랜드의 경험은 한국의 도시재생·마을공동체 사업과 놀랍도록 닮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해법의 방향은 크게 다르다. 한국이 정부 주도의 시설 공급 방식으로 공동체 공간 문제에 접근하는 반면, 스코틀랜드는 공동체가 직접 땅과 건물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이 차이가 무엇을 만들어내는지가 이 글의 핵심이다.
2. 스코틀랜드의 토지 문제 — 유럽에서 가장 집중된 토지 소유

스코틀랜드의 토지 문제를 이해하려면 그 역사적 맥락부터 살펴야 한다. 스코틀랜드는 유럽에서 토지 소유가 가장 극단적으로 집중된 나라 중 하나다.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하이랜드 클리어런스(Highland Clearances)'는 지주들이 양 방목을 위해 소작농들을 대규모로 강제 축출한 사건으로, 수만 명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났다. 이 역사적 트라우마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토지 개혁이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닌 역사적 정의의 문제임을 각인시켰다.
2024년 기준으로도 스코틀랜드 농촌 지역의 83%는 여전히 사유지가 차지한다. 토지 개혁 전문가 앤디 와이트먼(Andy Wightman)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스코틀랜드 사유 농촌 토지의 50%를 단 433명의 지주가 소유하고 있다. 이 토지 불평등 구조가 스코틀랜드 토지 개혁 운동의 배경이 된다.
정치적 전환점은 1997년 스코틀랜드 의회 분권화였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2000년 봉건적 토지 보유제를 폐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2001년에는 국가복권 기금으로 1,000만 파운드 규모의 '스코틀랜드 토지 기금(Scottish Land Fund)'을 출범시켜 농촌 공동체가 토지를 매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결정적인 법률인 '토지개혁법(Land Reform (Scotland) Act 2003)'이 제정되었다.
이 법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공동체 우선 매입권(Community Right to Buy)'으로, 10,000명 이하 규모의 공동체가 자신들의 지역 토지에 관심을 등록하면 해당 토지가 매물로 나왔을 때 우선 매입할 권리를 갖는다. 둘째, '크로프팅 공동체 매입권(Crofting Community Right to Buy)'으로, 크로프팅(소규모 자작농) 공동체는 토지가 매물로 나오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구매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후 2015년 '공동체 권한 강화법(Community Empowerment (Scotland) Act 2015)'으로 도시 공동체도 공공기관 소유 토지와 건물을 매입 또는 임차할 수 있는 권리가 추가되었고, 2016년 토지개혁법은 스코틀랜드 장관이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한다고 판단하면 지주에게 강제 매각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했다.
3. 에이그 섬 — 공동체 매입의 첫 씨앗
공익활동 단체가 가장 자주 부딪히는 현실적 문제 중 하나는 공간이다. 모임을 열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 주민들이 찾아올 수 있는 거점이 없으면 아무리 뜻이 좋아도 활동을 이어가기 어렵다. 임차료가 올라 쫓겨나고, 재개발로 터전을 잃고, 지원 사업이 끝나면 공간도 사라지는 일이 반복된다. 공익활동의 지속 가능성은 단순히 재정이나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디서 뿌리를 내리느냐는 물리적 기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가장 정면으로 다룬 사례가 스코틀랜드의 공동체 토지 매입 운동이다. 수백 년간 소수 지주들에게 집중되어 온 토지 소유를 주민들이 직접 사들여 공동체 자산으로 전환하는 이 운동은, 공간의 소유가 공동체의 자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20년 넘게 실증해왔다.
스코틀랜드의 경험은 한국의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사업과 놀랍도록 닮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해법의 방향은 크게 다르다. 한국이 정부 주도의 시설 공급 방식으로 공동체 공간 문제를 접근하는 반면, 스코틀랜드는 공동체가 직접 땅과 건물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이 차이가 무엇을 만들어내는지가 이 글의 핵심이다.
3. 에이그 섬의 기적 — 공동체 매입의 첫 씨앗

법과 제도가 갖춰지기 전, 에이그 섬은 이미 주민들의 힘으로 그 길을 열었다.
에이그 섬은 1970년대부터 여러 사유 지주들 아래에서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주민들은 퇴거 위협에 시달렸고, 건물과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섬의 미래에 대한 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주민들, 하이랜드 카운슬, 스코틀랜드 야생생물 트러스트가 연대해 '에이그 섬 헤리티지 트러스트(Isle of Eigg Heritage Trust)'를 결성했다.
1997년 4월, 당시 독일인 예술가였던 섬 소유자가 매각에 동의하면서 매입 캠페인이 본격화됐다. 150만 파운드(약 25억 원)의 매입 자금이 필요했다.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기부에 참여했고, 누군지 밝히지 않은 한 익명의 여성 기부자가 75만 파운드를 단독 기부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이랜드 앤드 아일랜드 엔터프라이즈(HIE)도 1만 7천 파운드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1997년 6월 12일, 에이그 섬은 마침내 주민들의 손으로 넘어왔다.
그 이후의 변화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당시 68명이었던 섬 인구는 2022년 25주년 기념일 기준으로 110명으로 늘었고, 방문객 수도 두 배로 증가했으며, 새 주택이 건설됐다. 가장 인상적인 성취는 에너지 독립이다. 섬은 디젤 발전기 의존에서 벗어나 풍력, 태양광, 수력을 결합한 지역 전력망인 '에이그 일렉트릭(Eigg Electric)'을 구축해 세계 최초로 이 세 가지 재생에너지만으로 24시간 전력을 공급하는 지역이 됐다. 이 전력망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도 주민들이다.
에이그 섬의 성공은 이후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수백 건의 공동체 매입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2002년에는 기가(Gigha) 섬이 4백만 파운드에 공동체 매입을 완료했고, 그 이후 섬 인구가 92명에서 170명으로 늘었으며, 공동체가 운영하는 세 기의 풍력 발전기가 호텔, 상점, 레스토랑, 숙박 시설 등 지역 사업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4. 법과 기금이 만든 생태계 — 제도화된 공동체 매입
에이그 섬이 선구자적 사례라면, 그 이후에 만들어진 제도적 기반이 운동 전체를 확산시켰다.
스코틀랜드 토지 기금(Scottish Land Fund)은 현재 스코틀랜드 정부가 재원을 대고 내셔널 로터리 커뮤니티 기금(National Lottery Community Fund)과 하이랜드 앤드 아일랜드 엔터프라이즈(HIE)가 파트너십으로 운영한다. 5,000파운드에서 최대 100만 파운드까지의 보조금을 지역 공동체가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는 데 지원한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스코틀랜드 토지 기금은 300개 이상의 공동체 조직에 5,000만 파운드(약 850억 원) 이상을 지원했다. 지원 대상은 농촌에 그치지 않는다. 에든버러의 코르스토핀 커뮤니티 센터(Corstorphine Community Centre)는 2023년 스코틀랜드 토지 기금으로 96만 파운드를 지원받아 에든버러 시의회로부터 건물을 매입했고, 글래스고파트릭의 아넥스 커뮤니티는 24만 8천 파운드 지원으로 37년간 임차해온 건물의 소유권을 확보해 지역 건강·복지 허브를 영구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수치는 운동의 규모를 보여준다. 스코틀랜드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스코틀랜드에서 공동체 소유 자산은 853개이며, 503개 공동체 그룹이 이를 소유하고 있다. 이 자산들이 포괄하는 토지 면적은 213,803헥타르로, 스코틀랜드 전체 면적의 2.7%에 해당한다. 2000년에 비해 161,832헥타르 이상 늘어난 수치다. 지난 10년간 스코틀랜드 나머지 지역의 공동체 소유 토지 면적은 두 배 이상 늘었다.
2024년 12월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스코틀랜드 토지 기금 지원 사례들을 보면, 던운의 오크뱅크 커뮤니티 인은 14만 7천 파운드를 지원받아 지역 선술집과 레스토랑을 공동체 공간으로 재개방할 예정이고, 오크니의 스트롬니스 커뮤니티 발전 트러스트는 13만 8천 파운드를 받아 공동체 센터 소유권을 확보했다. 로컬샤의 발마카라 커뮤니티 트러스트는 16만 2천 파운드로 산림청 소유였던 야영지를 매입해 지역 커뮤니티 자연 공간으로 보존한다.
5. 소유가 만드는 차이 — 왜 토지 매입이 공동체를 바꾸는가
단순히 공간을 쓰는 것과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에이그 섬과 기가 섬, 수백 곳의 스코틀랜드 공동체 매입 사례가 보여주는 차이는 명확하다.
첫째, 임차와 달리 소유는 장기적 계획을 가능하게 한다. 임대 공간에서는 계약 갱신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10년, 20년을 내다보는 투자와 프로그램 기획이 어렵다. 에이그 섬 헤리티지 트러스트가 섬 전체를 소유하면서 비로소 장기적인 주택 건설,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인구 유입 계획이 가능해졌다.
둘째, 소유는 지역 자원의 수익을 공동체 내부에 머물게 한다. 기가 섬의 풍력 발전기 수익은 지역 사업체를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외부 지주에게 임대료를 납부하는 구조에서는 지역에서 창출된 수익이 외부로 유출되지만, 공동체 소유 구조에서는 그 수익이 지역 내 재투자로 순환된다.
셋째, 소유는 주민의 의사결정 권한을 만든다. 에이그 섬은 매입 직후 워크숍과 주민 공청회를 열어 새 주택을 어디에 지을지, 기반 시설을 어떻게 개발할지를 주민들이 직접 결정했다. 공간의 소유자가 됐을 때 비로소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대한 진정한 결정 권한을 갖게 됐다.
넷째, 소유는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력을 높인다. 사유 지주가 섬을 팔거나, 지가가 급등하거나, 재개발이 추진될 때 임차인에 불과한 공동체는 속수무책이다. 반면 공동체가 소유권을 갖고 있으면 외부의 투기적 압력으로부터 지역을 보호할 수 있다.
커뮤니티 랜드 스코틀랜드의 린세이 찰머스(Linsay Chalmers) 이사는 스코틀랜드 토지 기금이 "농촌 인구 감소와 도시 쇠퇴라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다른 접근 방식들이 실패한 경우에도 종종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6. 한국의 현황과 비교 — 공간은 있지만 소유는 없다

한국의 도시재생과 마을공동체 사업은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본격화됐다. 전국 각지에 '도시재생 거점시설', '마을공동체 공간' 이라는 이름의 시설들이 만들어졌다. 커뮤니티 공간, 주민 카페, 공동 작업장 등 형태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 공간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공간은 정부 보조금으로 조성되지만 공동체가 소유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 소유 건물을 공동체에 위탁하거나, 임차 형태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시재생 사업 기간이 끝나면 지원이 중단되고, 공간 운영을 담당할 주민 주체를 찾지 못하면 시설이 방치되는 사례도 생긴다.
뉴스타파의 도시재생 10주년 기획 보도에 따르면 사업 기간이 끝난 후 방치되는 거점시설 문제가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위탁할 주민 그룹을 찾지 못해 지자체가 직접 시설을 운영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마을공동체 활동을 연구한 학자들은 공동체가 시설의 '이용자'에 머물고 '소유자'가 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지속 가능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스코틀랜드와 한국의 차이는 여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스코틀랜드는 공동체가 직접 자산을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법률과 기금을 설계했다. 공동체가 땅이나 건물의 실제 소유자가 될 때, 비로소 장기적 관리와 지속 가능한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국의 경우 공간 제공에는 적극적이지만, 그 공간의 소유권을 공동체에 이전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물론 맥락의 차이도 있다. 스코틀랜드는 농촌 과소화와 대지주 문제가 결합된 특수한 역사적 조건 위에서 운동이 전개됐다. 한국의 도시 밀집 환경에서 토지 소유의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지가가 높고 개발 압력이 강한 도시에서 공동체가 토지를 직접 매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러나 도시재생 연구자들이 제안하는 '시민자산화' 개념, 즉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등이 도시재생 사업지 내 자산을 실제로 매입하거나 장기 임차하는 방식은 스코틀랜드 모델과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소유 여부가 지속 가능성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한국에서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7.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에 남기는 질문
스코틀랜드 사례에서 경기도 공익활동 생태계와 연결되는 시사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공간의 안정성이 활동의 지속성을 결정한다.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활동하는 공익단체들이 가장 많이 직면하는 문제 중 하나가 공간 문제다. 임차료 부담, 재개발, 지원 사업 종료 후 공간 상실이 반복된다. 스코틀랜드는 공동체가 소유하는 자산, 즉 쫓겨나지 않는 공간이 공동체 지속성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경기도 내 유휴 공공시설의 장기 임차나 자산 이전, 또는 공동체 기금을 통한 소규모 자산 매입 등을 공익활동 지원 정책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공동체 소유는 외부 충격에 대한 면역력이다. 지가 상승, 재개발, 정책 변화로 공간을 잃는 것은 단순히 장소를 잃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 축적된 관계망과 활동 역사를 잃는 것이다. 공동체가 자산 소유권을 가질 때 그 역사가 보존된다. 아카이브 에디터들이 공익활동 현장을 기록하는 것처럼, 그 현장 자체가 지속될 수 있는 물리적 기반도 공익 생태계의 일부다.
셋째, 제도적 지원이 운동의 확산을 결정한다. 에이그 섬의 선구적 매입이 운동 전체를 촉발했다면, 스코틀랜드 토지 기금과 토지개혁법이 그 운동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었다. 시민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동체가 공간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법적 권리와 재정적 지원이 결합될 때 운동은 체계적으로 성장한다. 한국에서도 공동체 자산 확보를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마무리 — 땅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
1997년 에이그 섬의 68명 주민이 1.5백만 파운드를 모아 자신들이 사는 섬을 샀다는 것은 단순한 부동산 거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되찾는 행위였다. 세계 어디에서도 한 번도 이루어진 적 없는 100% 재생에너지 전력망을 주민 스스로 구축한 것도, 그 소유권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간이 없으면 공동체의 이야기도, 활동도 사라진다. 경기도에서 공익활동을 이어가는 단체들이 기록하는 이야기들이 오래 남으려면, 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공간도 지속되어야 한다. 스코틀랜드는 그 지속성을 소유에서 찾았다. 공동체가 땅을 갖는다는 것은, 그 공동체의 미래가 자기 손 안에 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영국 법률 — Land Reform (Scotland) Act 2003 : https://www.legislation.gov.uk/asp/2003/2/contents
Isle of Eigg Heritage Trust 공식 홈페이지 — Community Buyout : http://isleofeigg.org/ieht/community-buyout/
Isle of Eigg 공식 홈페이지 :
Scottish Housing News — 에이그 섬 공동체 매입 25주년 : https://www.scottishhousingnews.com/articles/25-years-of-community-ownership-marked-on-isle-of-eigg
Press & Journal — 에이그 섬 25주년 : https://www.pressandjournal.co.uk/fp/news/highlands-islands/4401513/eigg-marking-25-years-of-community-buyout-and-inspiring-others/
The Conversation — 에이그 섬 공동체 매입에서 배울 것 : https://theconversation.com/what-other-communities-can-learn-from-this-islander-buy-out-in-scotlands-hebrides-75896
스코틀랜드 정부 공식 통계 — Community Ownership in Scotland 2024 : https://www.gov.scot/publications/community-ownership-in-scotland-2024/
스코틀랜드 정부 — 커뮤니티 소유 면적 변화 : https://www.gov.scot/publications/community-ownership-in-scotland-2024/pages/area-in-community-ownership-changes-over-time/
스코틀랜드 정부 — Scottish Land Fund : https://www.gov.scot/policies/land-reform/scottish-land-fund/
National Lottery Community Fund — Scottish Land Fund : https://www.tnlcommunityfund.org.uk/funding/programmes/scottish-land-fund
Scottish Housing News — 스코틀랜드 토지 기금 갱신 : https://www.scottishhousingnews.com/articles/renewed-land-fund-vital-for-continued-community-ownership-success
HIE — 2024년 12월 SLF 지원 : https://www.hie.co.uk/news-and-blogs/news/2024/december/06/community-groups-receive-slf-funding/
TFN — 스코틀랜드 토지 기금 지원 보도 : https://tfn.scot/news/community-groups-get-2million-from-scottish-land-fund
Land Matters — Who Owns Scotland 2024 : https://andywightman.scot/2024/03/who-owns-scotland-2024-a-preliminary-analysis/
Law Society of Scotland — 토지개혁 25년 : https://www.lawscot.org.uk/members/journal/issues/vol-66-issue-01/land-reform-25-years-in-perspective/
뉴스타파 — 도시재생 10년, 방치된 거점시설 : https://www.newstapa.org/article/hgFPz
커뮤니티 랜드 스코틀랜드 — Isle of Eigg Heritage Trust : https://www.communitylandscotland.org.uk/members/isle-of-eigg-heritage-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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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3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주의자 나혜석 동상이 있는 수원 나혜석 거리. 4월 26일 일요일, 이곳에 10년 전 강남역을 기억하는 후배 페미니스트들이 모였다.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 경기페미행동, 부천새시대여성회, 평화와자치를열어가는부천연대, 경기여성연합단체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강남역! 다시! 추모를 딛고 행동하라! 여성폭력 다이인(die-in)’이다.
특히, 경기페미행동과 부천새시대여성회, 평화와자치를열어가는 부천연대는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 경기권역’의 이름으로 캠페인과 경기 여성폭력 다이인을 주최하고 있다. 1차 경기 여성폭력 다이인은 부천에서 열었으며, 2차 경기 여성폭력 다이인(die-in)은 지금 이곳, 수원에서 열리고 있다.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는 제주, 대구, 서울, 강원 등 전국을 순회하며 여성폭력 다이인(die-in)을 진행하고 있으며, 수원이 13차이다. 이들은 강남역을 이야기한다. 벌써, 10년도 지난 강남역 그 사건이다.
범인은 강남역 근처 화장실에 숨어 6명의 남성을 보낸 뒤에 일곱 번째로 들어온 여성을 살해했다. 범행동기는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였고, 범인은 “여자라서 죽였다”라고 자백했지만, 수사기관은 ‘여성혐오 범죄’로 명명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혐오범죄란, 편견을 동기로 한 범죄행위를 뜻한다. 혐오표현이나 차별과 달리 혐오범죄는 살인, 폭력, 방화 등 기존의 범죄를 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혐오범죄를 규제하는 방법은 ‘가중’ 처벌하는 것이다. 소위 ‘묻지마 살인’이었으면 일반 살인죄이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을 이유로 살인했다면 ‘혐오살인죄’에 해당하여 중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는 혐오범죄법이 없어서 판사 개개인의 재량에 따라 양형에서 가중 사유로 고려하는 수준이다.
한가지 더 살펴볼 것은, UN의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선언’에 등장하는 ‘젠더기반폭력’(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단어이다. 이 선언에서 ‘젠더기반폭력’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역사적으로 불평등한 권력 관계의 표명이며, 여성에 대한 폭력이 남성과 비교하여 여성을 종속적인 지위에 놓이도록 강제하는 중요한 사회적 메커니즘의 하나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직후, 사람들은 강남역으로 모여서 포스트잇을 붙였다. 포스트잇이 벽을 가득채웠다. 서울세이프ON: 성평등아카이브는 강남역살인사건의 추모 포스트잇을 분석했다. 세 단어로 이어진 문구 중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가 가장 많은 유형이었고, 그다음으로 ‘살女 주세요’ 유형으로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라는 메시지다.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살해되었고,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의미이다.

출처 : 여기모아 홈페이지 (강남역 살인사건, 등록번호 F0001)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마주한 시민들이 매년 거리로 나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국가를 향해 여성혐오범죄를 인정하고, 여성혐오범죄에 관한 통계를 만들고, 여성혐오범죄 근절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출처: 서울여성회
2차 경기 여성폭력 다이인은 시민에게 말 걸기로 행사를 시작했다. 2~3명이 한 조가 되어 피켓과 서명부를 들고 흩어졌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여성폭력 해결을 위한 선언에 함께 해주세요”라며 말을 걸었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국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고 있는 사회를 설명하며 선언 참여를 독려했다.

출처: 경기페미행동
이후, 나혜석 동상 앞 ‘여성폭력 STOP’ 피켓을 든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첫 발언자로 나선 심지선 경기페미행동 대표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그녀는 또 다른 나입니다.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이어 그는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피해 경험 말하기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사회구조적 성차별의 문제임을, 내 탓이 아님을 각성한 전국의 3,500여 명이 넘는 선언자들과 함께 외치는 집단의 목소리”라고 힘주어 말했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동희 경기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성 살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폭력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여성 일상을 파괴하는 사이 국가와 사회는 여전히 뒤늦게 움직이게 된다는 것조차 알고 있습니다”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지 않는 사회, 살아남았다는 말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 말하고, 계속 모일 것”이라며 연대를 약속했다.
정새봄 경기페미행동 활동가는 젠더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을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 문화에서 찾았다. 정 활동가는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성’이라는 특정한 삶을 강요받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세상을 향해 싸우는 법이나 단호하게 ‘안 돼’라고 말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이 폭력의 진짜 이름은 여성에 대한 길들이기”라고 규정하며,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순결, 거절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 그리고 죽음 직전까지도 친절해야 한다는 그 지독한 강요가 지금의 젠더 폭력을 이 사회에 뿌리 깊게 박아 넣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 사회와 기술 발전 이면에 숨겨진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종민 한신대학교 민중가요 중앙노래패 보라성 노래전수팀장은 “대학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회는 이를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심지어 학생들마저 ‘자꾸 알려지면 대학 입학률이 떨어질 것’이라며 덮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라며 씁쓸한 현실을 지적했다. 더불어 그는, “기술자는 사용자에게, 사용자는 기술에 책임을 미루는 식으로 책임을 외주화하고 있”다며 비판하며, “이런 여성혐오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10년 전의 강남역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출처: 경기페미행동
이후 참여자들은 저항의 의미로 다이인(Die-in)을 진행했다. 다이인(Die-in)에 참여한 한 시민은 “차가운 바닥에 누워 여성폭력으로 희생된 이름을 떠올렸다.’”고 소감을 전했다. 땅에 쓰러져 침묵하는 이들의 행동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외침보다 크고 날카롭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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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7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 경기시민사회단채연대회의 운영위원장
함께 책임을 지는 일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이하, 경기연대회의)는 경기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모인 연대체입니다. ‘연대’, 익숙하기도 하지만 또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 단어는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습니다.
경기연대회의는 그 사전적 의미처럼 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모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변화를 도모합니다.
경기연대회의의 활동은 굉장히 폭이 넓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큰 31개 시군구가 있는 경기도의 다양한 사안에 대해 시민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정책을 감시하는 활동부터 도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문제에 대해 대응합니다. 지역을 넘어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사건에 대해서도 개입합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던 내란 사건에서도, 미국의 전쟁 범죄에 대해서도, 남북한의 평화통일 문제에서도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전하고,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렇게 폭넓은 활동을 해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죠.
그 모든 일을 어느 단체, 또는 특정 개인이 해나갈 수 없기에 함께 하는 단체들이 나누어 책임을 집니다. 말 그대로 ‘연대’가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촘촘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면서 조금씩 경기연대회의는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운영위원장은 경기연대회의의 ‘연대’가 조금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매년 연대회의를 구성하는 단체가 돌아가며 책임을 나눠왔는데 2026년에는 다산인권센터에서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지역사회에는 인권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다산인권센터는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인권 현장에서 활동해 온 단체입니다. 국가폭력의 피해자, 직업병 산업재해 노동자,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 재난피해자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약자의 곁을 지켜왔습니다.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에도 함께였습니다.
‘인권’이 있는 곳이 다산인권센터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현장은 전국 곳곳이기도 했고, 지역사회 어딘가이기도 했습니다. 경기연대회의와 다산이 연결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지역민의 일상,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경기연대회의의 활동과 방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연대를 이어가는 책임으로 운영위원장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대’의 마음을 나누고 다산이 만들어왔던 활동이 연대회의에 긍정적 영향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고민으로 운영위원장 단체를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살아가기 팍팍한 요즘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전쟁의 폭음에 평화로운 일상과 생명이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흔드는 전쟁의 광기는 우리 일상까지 스미고 있습니다. 전쟁 위기와 파병 문제는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당면한 전쟁 문제 외에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문제는 수두룩 합니다. 더 깊어지는 사회적 불평등, 차별과 혐오의 문제 등 그 어느 때보다 인권과 변화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지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지역사회는 지역민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더욱 인권에 기반한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경기연대회의가 만들어가야 할 활동에, 다산인권센터의 인권에 대한 고민이 더해져 조금 더 힘 있게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해봅니다.

2026년 여럿이 천천히, 힘을 북돋우며 나아가기
올해 경기연대회의는 여러 가지 사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응입니다. 지방선거는 지역사회의 주요한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가는 정치인을 뽑는 중요한 시공간입니다. 정당, 인물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정책과 공약이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경기연대회의는 지난해부터 경기지역에 필요한 정책을 정리하여 각 정당과 후보에게 제안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도민들의 의견과 참여로 만든 정책이야말로 모든 이들에게 실효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행정감사 모니터링입니다. 우리가 제안한 정책들이 잘 반영되고 있는지, 또 도의회의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그 결과를 사회적으로 알릴 예정입니다. 선거 때만 도민들의 편에서 표를 달라 읍소하지만 당선된 이후에는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지난해 발생한 도의원 성희롱 사건, 뇌물수수 사건 등만 보더라도 경기도의회에 비리와 부정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고 도의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시민들의 감시와 행동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활동가들의 지속가능성과 성장을 위한 활동입니다. 더 많은 활동가가 시민사회운동에 함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현재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지치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활동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늘 시민사회단체에 던져진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 질문을 답을 찾기 위해 방향을 모색해보려 합니다. 저연차 활동가들이 시민사회 활동을 좀 더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와 쉼을 위한 활동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담론도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현해 나갈 사람입니다.
시민사회운동의 저변을 확장할 수 있도록 방향을 만들어 갈 예정입니다. 이 모든 계획이 지역사회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계획대로 천천히 밀고 나가다 보면 무엇이라도 하나 단단한 토대가 만들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그 길을 경기연대회의의 동료 활동가들과 힘을 북돋우며 나아가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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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경기시민사회연대회의 목표
① 지방선거 대응 정당·인물이 아닌 정책 중심의 선거 문화를 만들기 위해, 도민 의견을 모아 각 정당과 후보에게 경기 지역에 필요한 정책을 제안합니다. ② 행정감사 모니터링 제안한 정책이 제대로 반영되는지, 도의회가 역할을 다하는지 시민의 눈으로 감시하고 그 결과를 공개합니다. ③ 활동가 지속가능성 지원 시민사회운동을 이어갈 사람을 키우기 위해, 저연차 활동가 교육과 활동가 간 네트워크·휴식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

궁상맞지 않게 풍요의 마음으로
최근 읽은 책 「커먼즈의 재생」에서 읽은 인상 깊은 구절이 있습니다. ‘가난한 것과 궁상맞은 것은 다르다’ 가난한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정신 상태를 표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불과 몇 십년 전 우리 사회는 가난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주변의 이웃과 지역사회 공동체에서 서로 연결하며 그래도 마음만은 풍요로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급격한 경제성장, 편리와 편의가 최우선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질적 풍요의 격차는 극심해지고 편리와 편의를 유지하기 위해 환경이 파괴되고 누군가는 밤새도록 일을 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미워하고 경쟁하고 밀어냅니다.
마음이 참으로 궁상맞아졌습니다. ‘궁상맞다’는 것은 경제적인 상황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너무도 궁상맞아지고 있습니다.
이 궁상맞은 마음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마음의 빈곤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의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 앞으로 시민사회 운동이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지역사회 공공의 영역을 확장하고, 시민들의 단단한 연대를 만들어가는 것. 그래서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이 폭넓어지는 것. 우리 지역사회가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시민들을 연결하고 변화를 모색하겠습니다. 경기연대회의가 내는 길에 함께 발맞춰 동행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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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