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하는 사람이 되자.
다산인권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화성에 위치한 접착제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폭발사고 였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현장에는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고, 심하게 구겨진 건물들은 사고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많은 노동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소식은 며칠 동안 주요 뉴스로 다뤄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지역의 동료들과 함께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화성시와 노동청 등 관계 기관을 찾아다니며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사건의 내용과 활동을 정리해 진상규명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기록을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왜 사건이 발생했는지, 무엇이 잘못되어 생명을 잃었는지, 우리 사회는 어떤 책임을 함께 져야 하는지, 성찰의 마음으로 어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지. 사건을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마음 하나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쉽게 누군가의 삶이 잊혀지지 않도록, 이 세상을 살다 간 어느 누군가의 오늘이 기억되도록, 기억하는 사람이 되자.”
그것이 제가 공익활동을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아마, 공익활동을 하는 활동가에게는 저의 시간처럼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사명감으로, 누군가는 즐거움, 호기심으로, 누군가는 분노로, 누군가는 변화의 상상으로. 저마다의 이유로 공익활동가가 되고,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태는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꿀벌’이 없다면 지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렇게 공익활동에 뛰어든 사람들, 저는 가끔 공익활동가의 존재가 ‘꿀벌’ 같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곳곳을 날아다니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존재 말이죠.
살펴보면 우리 사회 곳곳을 변화시키는 모든 현장에는 공익활동가가 있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뛰어가는 것이 활동가들입니다.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찾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활동가들의 몫이었습니다. 주요한 사안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향을 잡고, 어떤 대안을 만들어갈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법, 제도의 변화는 활동가들의 고민 끝에서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작은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 기울이는 사람들도 활동가들이었습니다. 주목되지 않는 이야기, 목소리에 스피커를 대고 세상을 향해 외쳐왔습니다. 소수자와 취약계층, 약자의 권리가 우리 사회 모두의 목소리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왔습니다.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마음, 그것이 세상을 움직여 온 힘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 그것도 활동가들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리에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 현장에서, 노동의 존엄을 지키는 자리에서, 생명과 안전 사회를 만드는 현장 곳곳에서 공익활동가들은 꿀벌처럼 분주히 날아다니며 세상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꿀벌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세상이 가끔 망각하는 것처럼, 공익활동가가 얼마나 중요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이 사회가 눈여겨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공익활동이 처한 지속가능성, 실존하는 어려움 등은 사회 공동의 고민이기보다 활동가들의 몫으로만 남겨지고 있습니다.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의 어려움과 고민을 활동가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두어도 괜찮을까요?
기후 위기로 인해 꿀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의 삶도 위태로워질 것이라 과학자들은 예상합니다. 우리 사회 꿀벌인 공익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익활동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경기도의 변화에도 ‘늘’ 공익활동가가 있습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2024년부터 공익활동가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익활동’ 주간이 아닌 ‘공익활동가’ 주간인 것은 활동가들의 삶과 가치에 좀 더 주목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공익활동가 주간의 시작은 ‘공익활동’을 이어온 ‘공익활동가’들의 사회적 성과와 가치를 인정하고, 공익활동가를 지지·응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을 촉진하는 등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026년 공익활동가 주간은 활동의 고민을 풀어나가는 공론장, 쉼을 위한 캠프, 공익활동가 사진전, 응원 밥상, 교류의 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도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공익활동가 주간이 진행됩니다. 경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공동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5월 29일, 2026년 경기공익활동가 주간을 준비하는 추진위원회 발대식이 열렸습니다. 본격적으로 경기지역 공익활동가들을 연결하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경기도는 31개 시·군으로 구성되어 있고, 산업 분포와 위치 에 따라 지역 특색도 다양합니다. 그만큼 공익활동가들의 활동 분야도, 활동에 대한 고민도, 활동가들의 숫자와 역량도 다양합니다. 이 다름과 차이를 엮어, 공동의 고민을 모색하는 자리로 공익활동가 주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활동가 주간의 주요 프로그램인 공익활동가대회에서 활동하며 겪는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장과 강연, 따뜻한 밥 한 끼를 통해 연대를 나누는 활동가의 식탁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근 유행인 노래 <소문의 낙원> 가사처럼, 지친 활동가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낙원이 될 시간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손절 가득한 세상에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 ‘공익활동가’
최근 <손절사회>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깊어지는 신자유주의 속에서 인간관계가 손익의 계산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불편하거나, 상처 주는 관계를 쉽게 정리하고 끊어내는 소위 ‘손절’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신의 이익과 편리를 우선하며 불편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을 멀리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좀 더 나를 위하는 길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래서 더 외롭고, 고립되고, 상처받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공익활동은 상처 난 시대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로 다시 잇는 일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기억해달라고 외치고, 잊혀져 가는 사건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다시 꺼내 놓는 일,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랑, 책임과 연대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일. 그 위로는 공익활동가들의 손길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익활동가의 존재가 더욱 중요합니다. 세상에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 더 든든하고 안전하게 자기 일을 하며,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존중, 제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2026년 세 번째를 맞는 공익활동가 주간을 통해 이러한 고민들이 더 많이 나누어지기를, 우리 사회가 공익활동가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이기를 기대합니다.
조회수 133
2026-05-27※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장(場)이 사라진 시대, 시민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
경기사회포럼, 민선 9기 앞두고 시민사회 역할과 공론장 회복 논의
6.3 지방선거 이후 출범할 민선 9기를 앞두고, 시민사회가 처한 현실과 지방정치의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경기시민연구소 울림’ 주최로 지난 5월 18일(월) 오후 7시 경기도여성비전센터에서 열린 경기사회포럼에서는 단순한 지방자치 논의를 넘어 오늘날 시민사회가 처한 구조적 위기를 성공회대학교 김찬호교수를 초빙하여 깊이 있게 성찰하는 자리를 가졌다.

“고립의 시대”… 시민사회도 예외 아니다.
‘시민사회의 지방 권력 활용법’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 김찬호교수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복합 재난 시대’라고 진단했다. 저성장과 인구 감소, 불평등과 고립, 미디어 환경 변화와 공동체 해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과거 시민운동의 방식만으로는 현실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고립’에 대한 분석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더욱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하고, 청년 세대일수록 대면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심화되었다는 설명이다. 대학 강의실은 스마트폰을 보느라 조용해졌고, 동네 이웃과는 인사조차 어색해졌다.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라는 응답 비율은 한국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는 통계도 언급됐다.
김찬호 교수는 이를 단순한 개인 성향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봤다. 빈곤, 학업 중단, 열악한 주거, 사업 실패, 일자리 불안, 가족 해체, 정신건강 악화 등이 서로 얽히며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사회를 분석한 『손절사회』와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을 인용하며, 사람들은 점점 더 안전하고 불쾌하지 않은 관계만 추구하지만, 그 결과 타인과의 마찰을 견디는 힘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場)의 상실”… 시민운동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이번 강연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장(場)의 상실’이었다.
김찬호 교수는 “예전에는 마을과 학교, 시민단체 같은 공동체 안에서 관계가 형성되고 갈등도 완충됐지만, 지금은 관계의 장(場)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번 관계가 틀어지면 회복할 중간 지대가 없고, 결국 손절로 이어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더불어 이 변화가 시민사회에도 치명적 영향을 주고 있다.
한때 사회 변화를 이끄는 주체였던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대학, 언론 등 기존 공적 영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반면, 개인화된 소비자와 네티즌 중심 사회가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시민사회 역시 기존의 조직 중심 활동만으로는 주민들을 연결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시민운동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포럼에서는 주민 삶의 변화에 비해 행정 시스템은 여전히 표준화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민들의 삶은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지만, 행정은 여전히 동일한 기준과 절차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현장과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김찬호 교수는 “앞으로 시민사회가 주민들의 삶 속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이야기와 경험의 형태로 공유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정책 제안을 넘어 문화와 예술,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대표 사례로 소개된 것은 서울 마포구 발달장애 청년 허브 ‘사부작’이었다. 주민들은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마을 살이를 이어가며 실제 삶의 모델을 만들었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조례를 제안할 때도 춤과 문화예술 퍼포먼스로 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딱딱하고 어려운 정책 제안이 아니라 ‘재미있고 감동적인 경험’으로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낸 사례다.
또 다른 사례로는 부산 사하구의 워킹맘들이 출근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아이가 아팠을 때 필요한 ‘출근 전 어린이병원’,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함께 놀 수 있는 ‘노원구의 통합놀이터 조성’, 빈집을 매입해 생활 SOC로 활용하는 부산 사례 등이 소개됐다. 모두 주민들의 실제 생활 문제에서 출발해 조례와 정책으로 이어진 사례들이다.
지역 언론과 공론장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충북 옥천의 옥천신문 사례를 언급하며, “지역 의회와 행정을 꾸준히 감시하고 기록하는 언론의 역할이 지방자치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특히 “다음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청소년과 미래세대의 삶, 노후 인프라 문제, 장기적인 공동체 회복 같은 의제가 단기 성과 중심 정치 속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희망은 방향이다.”
강연 말미에는 ‘희망’에 대한 메시지도 전했다.
김찬호 교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바츨라프 하벨의 말을 인용하며, 희망은 결과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영혼의 방향성’이라고 강조했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고 선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어 고(故) 김근태 의원의 “희망을 의심할 줄 아는 진지함”이라는 말을 소개하며, 시민사회가 냉소를 넘어 다시 공론장과 공동체를 복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냉소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바로 그 냉소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조회수 218
2026-05-27※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성남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킹덤 작은 도서관에는 매일 책 향기만큼이나 따스한 미소로 이웃을 맞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중심에서 1년째 실무자로 자원활동을 하며 도서관의 살림을 도맡고 있는 김은경 자원활동가님을 만나,
도서관이라는 공익공간이 우리 지역에 전달하는 보람과 기쁨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성남시 분당구 미금로 170, 남현문화센터 402호에 있는 킹덤작은도서관을 소개합니다.
Q1. 도서관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들의 만남이다.
"가장 즐거운 건 역시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예요. 아이들이 도서관 문을 열고 새로 들어온 책이 있나 설레는 표정으로 들어와 책장을 훑어보는 모습이 너무 예뻐요. 삶며시 들어오는 녀석들, 우당탕 들어오는 녀석들 다양하지만 책을 읽는 모습이나 저희가 준비한 독서 프로그램에 즐겁게 참여하는 아이들을 보면 ’이 일을 잘했구나‘ 싶어 저도 모르게 힘이 납니다. 아이들이 도서관이 집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으로 여기며 찾아와 주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Q2. 이곳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경험하나요?
"도서관은 독서를 통해 생각을 넓히고 창의적이 사고력을 키우며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성장 플랫폼으로 자유 민주주의의 시민으로 성장을 돕는 평생학습관입니다. 특히 작은 도서관은 어린이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이웃 사랑방으로 안심하고 누구나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지요.
이 곳에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책이 어떻게 관리가 되는지를 어린이 청소년들과 함께 나눕니다. 도서 대출과 반납에 대한 전산 시스템 사용법도 배우고요. 수많은 책이 도서관에 들어와 이용자를 만날 준비를 마치는 전 과정을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면서, 책과 도서관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독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2025년에는 그림책으로 하는 영어 교실을 통해서 영어는 언어로 쉽게 소통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2,500권으로 시작해서 현재 약 7,000권을 갖게 되었고 지금도 희망 도서를 꾸준히 구입하며 학생과, 성인 모두가 성장하는 모습 속에서 보람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Q3. 운영하시면서 보람찼던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최근에 진행했던 ‘북큐레이션’ 전시가 기억에 남아요. 특정 주제를 정해 책을 전시했는데, 평소 눈에 띄지 않던 책들이 주제별로 묶어서 새롭게 소개되는 모습이 좋았어요. 아이들도 평소보다 더 큰 관심을 보이며 즐겁게 참여해 주었고요. 다양한 책속에서 길을 찾고 새로운 관점에 대한 발견으로 지속적인 독서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는데, 아이들이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많이 뿌듯했습니다.”


Q4. 자원활동가로서 어려운 점도 있으실 텐데, 그럼에도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사실 제가 성격상 아주 꼼꼼한 편은 아니라서, 새로 도입된 시스템을 배우거나 도서관을 세심하게 관리하는 일이 가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책과 아이들 곁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옵니다. 현재 저를 포함해 총 7명의 자원활동가가 함께 마음을 모으고 있는데, 이 일이 주는 '보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Q5. 앞으로 도서관이 나아갈 방향이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요즘 아이들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책 읽기를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서관이 조금 더 편안한 사랑방 같은 곳이 된다면 아이들이 다시 책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도 유익한 특강이나 프로그램을 더 활성화해서, 아이들에게 더 많은 독서의 기회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성남시의 지속적인 지원 덕분에 도서관이 3년째 잘 성장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의 소중한 공간으로 남길 바랍니다.“
[기자의 시선]
김은경 선생님과의 인터뷰 내내 도서관은 단순한 '책 저장소'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아이들의 꿈이 자라나는 '살아있는 공간'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이 공간을 지켜가는 사랑은 전하는 분들이 함께 하고 있어서 우리의 내일은 한 권의 좋은 책처럼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조회수 333
2026-04-2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휠체어와 함께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한다. 늦게 시작한 공부와 일, 아이를 키우며 멈춰야 했던 시간, 그리고 다시 장애인 활동가로 살기까지, 그는 휠체어로 스스로 길을 내며 살아왔다.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총괄팀장이자 동료상담가 조은상 활동가를 소개한다.
= ‘동료상담가’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소개부터 부탁해요.
- 저는 안산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IL’)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도움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을 상상하잖아요. 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의 정신은 장애인을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바라보는데요, 장애인 당사자가 또 다른 장애인 동료와 하는 상담이죠. 단순히 ‘비슷한 처지끼리 하는 대화’가 아니라, 기존의 전문가 중심 상담 모델로부터 해방된 고도의 정치·사회적 치유와 임파워먼트Empowerment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정신과 의사나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을 진단과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상담이죠. 동료상담은 그런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로부터의 해방된 평등한 관계 모델이라 할 수 있어요. 장애인 스스로가 자기 삶의 전문가라고 선언하는 거죠. 자격증의 권위가 아니라 장애를 안고 살아온 ‘생존의 역사’ 자체가 상담의 강력한 도구죠. 상담의 목표 역시 상담가가 아니라 내담자 스스로 ‘자기결정권’으로 설정하고요.
동료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대등한 관계로 진행해요. 한쪽이 가르치거나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나도 그랬다”는 공감을 서로 나누는 거죠. 이 모든 과정이 자립생활 모델과 결합해요. 내면의 힘을 길러서 결국 시설이나 집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살아가게 하는 힘. 더 나아가 개인의 변화를 넘어, 사회의 책임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동력이 되고요.
= 와~ 자립생활센터가 어떤 곳인지도 소개해 주셔야겠어요.
장애인복지관과 비교해 볼게요. 이전엔 서비스를 받거나 이용하러, 즉 이용자로서 장애인복지관을 드나들었어요. IL센터에서는 장애인이 행동의 주체가 돼요. 이용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이 직접 일하고 활동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단체죠. 환경과 사회를 장애물이 없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사회 변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을 돕는 것을 넘어서 사회를 바꾸는 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삶의 운동이자 삶의 일부예요.
IL의 가장 기본 정신이 권리옹호, 자기결정권과 자기선택권인데요. 어디서 살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와 같은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인생의 큰 항로까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해요. 거기엔 실패할 권리도 포함돼 있고요. ‘장애인을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장애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라는 당사자주의고요. 소장부터 내부의 주요 의사결정자들까지 센터 인력의 과반수가 장애 당사자인 것도 그 때문이고요.
장애가 있다고 사회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야 할까요? IL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우러져 사는 것을 지향해요. 물리적 건물만이 아니라 교육·노동·문화생활 등 모든 사회적 기회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죠. 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문제로 보는 사회적 장벽Social Barrier’이 문제라고 보는 겁니다. 이 운동의 핵심은 개인의 재활이나 극복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있는 거죠.
= 어쩌다 이렇게 엄청난 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을까요?
- 처음엔 아는 언니 따라왔죠. 사진 동아리 ‘포커스휠’에 나가면서도 별로 적극적인 회원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센터에서 동료상담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동료상담을 진행해본 게 첫 출발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센터활동도 하게 되고 그러다가 집단동료상담 리더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죠. 내가 ‘불쌍하고 불행한’ 장애인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구조적 모순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거죠. 장애인 동료상담가들이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직업을 갖기 위해 자격증도 따고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센터 활동과 동료상담을 하면서 왜 자립생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센터에서 간사부터 팀장, 센터장까지 경험했고, 지금은 상록수IL센터 총괄팀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IL센터이지만 일에 집중하다 보면 가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갈등이 생길 때도 있어요. 그래서 현장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스스로 돌아보게 돼요.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업무 회의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사무실 책상 앞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IL센터 활동 동료상담 사진제공 조은상
= 공부를 늦게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장녀로 태어나 돌 무렵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걷지 못하게 됐어요. 동생이 셋이었으니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부모님은 저만 집중해서 돌보기 어려웠을 거예요. 입학할 나이가 됐지만 학교까지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고, 동생들을 희생시킬 순 없지 않냐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럴 때마다 부모님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 말 못 하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집에서 가정교사를 통해 조금씩 공부했지만 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책을 읽었어요.
20대에 직업 훈련원에서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고 보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대 후반에 검정고시를 시작했어요. 결혼하고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느낌이 더 컸어요. 방송대 교육학과를 계속 장학금 받으며 졸업했어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어요. 서로 과제를 알려주고 시험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했던 경험이 컸어요. 그때 공부는 혼자보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느꼈어요.
= 장애 여성으로서 전에 하신 일과 사회생활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어요?
- 장애인이라고 하면 부모가 희생하거나 당사자가 희생하거나 그런 구조잖아요. 공부 기회를 놓치고 사회에 나갔기 때문에 저는 더 열심히 배우고 일했어요. 장애인기능대회가 있었는데 나가서 금메달을 땄어요. 이제 세계 대회를 나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연습했고 프라하 세계 장애인 기능대회 나갈 티켓도 땄어요. 그런데 저한테 기술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그렇게까지 할 거 있냐고 반대하시더라고요.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하든지, 장애인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구나, 상처를 많이 받았죠. 튀지 않고 착한 장애인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어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작업장이었는데, 수녀님들이 제 결혼을 걱정하고 반대했어요. 부모님도 심하게 반대해서 5년을 미루다 결혼했어요. 동료상담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비슷했어요. 장애 여성은 교육, 결혼, 출산, 일 등 여러 선택에서 뒤로 밀리고 편견의 대상이에요.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놀라고, 집이 깨끗하다고 놀라고,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놀라요. 장애인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해요. 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되는 느낌이 있어요.
= 비장애인 여성도 두려워하는 결혼인데 참 씩씩하게 사셨어요. 아이 낳고 키우며, 또 워킹맘으로 살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 30대 후반에 아이를 가졌을 때도 일을 쉬지 않았어요. 배가 불러서 운전하기 힘든데 사장님이 나와서 같이 밥이라도 먹자며 부르셨어요. 당시엔 생소했던 강아지 옷 만드는 일이었는데 일이 많아서 새벽 7시에 출근해서 야근까지 하는 날이 많았어요. 한번은 폭설이 내려 청계 터널에서 2시간을 갇혀 있었는데, 다음 날 보니 타이어가 터져 있더라고요.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 아이랑 저랑 정말 주님이 살려주셨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결혼할 때도 그랬어요. 장애인이 어떻게 살 거냐, 아이는 어떻게 키울 거냐. 저도 아이는 낳지 말자 생각했었죠.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양육에 자신도 없었죠. 어느 날 밤늦게 퇴근하면서, 일만 하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갖기로 했어요. 임신과 출산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이동도 어렵고 병원 가는 것도 힘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일을 할 수 없었어요. 맡길 곳이 없어서 제가 아이를 돌보게 되었어요.

안산의 리프트 택시 사진제공 조은상

상록수 센터에서 진행된 안산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착한 장애인’이라는 기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 가족 안에서 화목하게 살기 위해서는 많이 참아야 했어요. 장애인이기도 하고 여성이라는 점이 겹치면 어떨까요? 장애인 여성은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어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자존감은 많이 낮아져 있었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남들보다 사회생활도 그렇고 뭐든 다 늦었으니까 나는 더 빨리 잘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었어요. 이걸 ‘맏딸 콤플렉스’라고 하죠? 부모님한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고, 장애인이라 못한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딱딱 다 잘 해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10년 IL 활동을 하며 조금씩 달라졌어요.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서로 힘들게 하잖아요. 이제는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말해요. 어머니에게도 이번에는 못 간다고 말하게 되었어요. 그럴 힘이 생겼죠.
=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아이를 키우다가 어느 순간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한 언니가 등록금을 내줄 테니 공부를 꼭 하라고 말했어요.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버지도 응원해 주셨어요. 마흔 넘어 다시 공부할 때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엄마가 보내준 김치 통 사이에 아버지가 학비에 보태라고 몰래 30만 원이 든 봉투를 넣어두셨는데, 김칫국물에 젖은 그 봉투를 보고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나 삶의 전환점이 있었나요?
- 2014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를 많이 도와주던 언니도 돌아가시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어요. 그 시기에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요. 솔직히 우울함도 있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 사건이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그냥 뉴스에 나오는 사건이 아니라 내 아이의 일처럼 느껴졌죠.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이래도 되는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힘든 시기를 통과하며 지역에서 하는 집회나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됐어요. 큰 역할은 아니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연대하고 같이 있는 사람,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4.16시민대학 사진제공 조은상

세월호참사 10주기 4160인 합창에 참여하고 사진제공 조은상

안산시민연대 촛불문화제에서 사진제공 조은상
= 장애인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라고 보십니까?
- 일은 삶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센터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분이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사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라던 말을 잊을 수 없어요. 큰 변화라고 느꼈어요. 일하고 돈을 벌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게 장애인의 삶의 위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살게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중증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수입 이상의 의미를 가져요. 사회의 구성원으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더 커요.
그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 불러요. 시혜적 성격을 거부하고, 이동권, 탈시설, 교육 등 장애인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날이죠. 올해도 3월 26일에 청와대 앞에서 <22회 3.26 전국장애인대회 및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식>을 열었어요. 최옥란 열사 기일에 열린 22회 3.26 대회였죠. 효자동 복지센터 인근에서 출발해서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하고 집회와 열사들을 기리는 추모제도 진행했어요. 많은 활동가들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전국에서 모여요.

3.26 전국장애인대회 사진제공 비마이너

장애인 권리 보장 다이인(die-in) 행동 사진제공 조은상

장애인 접근권 보장 기자회견 참여 중 발언 사진제공 조은상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삭발 투쟁 사진제공 조은상
=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 지금까지 활동하고 또 아이를 기르면서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앞으론 어떻게 살지?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소소하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서로를 지지하고 나누면서 사는 삶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IL센터의 활동가로, 동료상담가로 목소리를 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면서 살아야죠.
돌아보면 누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온 게 아니라 그때그때 부딪히며 길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큰 계획보다는 지금처럼 살 것 같아요. 필요한 자리에 가 있고 연대하며 살고 싶어요.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았다 싶어요. 앞으로도 휠체어와 함께 제가 길을 만들며 살아갈 것 같아요.
조회수 573
2026-04-16※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모르는 이웃과 인사하면서, 마을이 다시 시작됐어요”라는 말로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의 엄혜경 활동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조용히 지나치던 이웃이 어느 날 인사를 건네고 낯설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웃고, 아이와 어른이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나누게 되었는데 이 작은 변화의 중심에는 한 마을 활동가의 꾸준한 움직임이 있었다.
낯섦에서 시작된 관계
“원래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활동했어요.”
엄혜경 활동가는 처음 마을 공동체는 익숙한 관계에서 출발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새롭게 깨달았다고 했다. 진짜 공동체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이웃’과 함께할 때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도 처음엔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먼저 인사를 건네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같이 하실래요?”라고 말하자 마을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음의 문을 열었고 관계를 이어가는 공동체가 된 것이다.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 활동 모습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 활동 모습
보람, 사람의 변화에서 오다
엄 활동가는 ‘사람이 달라지는 순간’을 활동의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다. 인사를 나누지 않던 이웃들이 서로 얼굴을 알게 되고 함께 활동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익숙함을 넘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경험 말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서 더 재미있어졌어요. 기존에는 아이디어가 한정적이었는데, 훨씬 다양해졌거든요.”
엄 활동가는 신나 하며 말했다. 공동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결국 ‘사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려움, 멈춰버린 참여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활동을 하며 가장 힘든 순간은 역시 사람들이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때다.
“행사를 공지해도 사람들이 잘 참여하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어요.”
그의 말 속에서 깊은 시름이 느껴졌다. 그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 때마다 코로나 시절을 연상하게 된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마을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축제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지만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은 점점 모임을 꺼리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며 아쉬워했다.
“2022년 이후로는 사람들이 모이는 걸 좀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활동가는 그 변화 속에서 다시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스스로를 위한 변화의 시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변화, 다시 이어지는 연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고자 하는 노력 덕분에 마을은 다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공동체 인원들과 작년부터 계속 소문을 내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매주 1~2회 꾸준한 만남을 갖게 되었다.
행사를 하고 남은 재료들은 활용한 소규모 활동을 했고 온라인을 통한 지속적인 연결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작은 시도들이 이어지며 사람들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이면 사람들이 모여요.”
생기가 넘치는 엄 활동가의 목소리에는 '살리는' 모습에서 비롯된 희망과 소망이 담겨 있었다.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 활동 모습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활동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에피소드를 묻자 엄 활동가는 마을 축제에서의 세대 간 협력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같은 옷을 입고 함께 악기를 연주했어요.”
같은 조끼를 입고, 같은 리듬을 맞추며 세대가 하나 되는 순간. 그 장면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마을이 하나 되는 경험’이었다. 이 말을 하는 말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공동체의 힘, 갈등보다 신뢰
의외로 이 공동체에는 큰 갈등이 없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서로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어요. 사람들이 대체로 온화하고, 신뢰가 있어요.”
빠르게 밀어붙이는 리더십보다는 천천히 함께 가는 방식. 그래서 더 오래 지속되는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기록이 한 활동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기를 바란다.
한 줄 기록
“마을은 사람이 만들고, 관계가 이어갈 때 살아난다.”
조회수 472
2026-04-02※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요즘처럼 마음까지 차가워지는 날에는, 이상하게도 오래 머무는 이야기 하나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일명 ‘왕사남’으로 불리는 이 작품이 저에겐 그런 영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역사 속 왕의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는데, 보고 나니 마음에 오래 남는 건 왕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권력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이야기가 재미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매년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에 ‘공익이란 무엇일까’, ‘공공성이란 어디에서 시작될까.’ 묻게 됩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결국 이런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영화 속에서 공익은 거창한 말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장면들 속에 숨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 마음, 규정만 들이밀지 않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 이런 것들이 쌓여서 공공성이 되고, 그 공공성이 공동체를 지탱한다는 걸 영화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공익이란, 약한 사람 곁에 머무는 일
정태식 경북대 인문학술원 교수의 말처럼, 타인의 존엄을 지키는 책임이야말로 공익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공익’이라는 말은 보통 법이나 제도, 행정 같은 단어와 함께 떠오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 공익은 그보다 더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약한 이의 말을 귀찮아하지 않고 끝까지 듣는 자세, 이해하지 못해도 다시 설명해 주는 마음. 이런 것들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금세 차가워집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특히 마음에 남는 건, 힘을 잃은 존재를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왕이라는 이름을 가졌어도 실제로는 가장 약한 자리에 놓인 사람. 그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외면할 수도 있고, 그저 예를 갖춘 채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함께 밥을 먹고, 말을 건네고, 곁을 지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힘이라는 걸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공익도 결국 그런 것 같습니다. 법과 직책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책임을 나누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현장에서 민원을 응대하는 사람, 아이를 돌보는 교사, 환자를 살피는 의료진, 어르신의 손을 잡아 주는 복지 현장 종사자들. 이분들이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 갈 때 공공성은 비로소 숨을 쉽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는 늘 현실적인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인력이 부족하면 누군가의 사정을 끝까지 듣기 어렵고,
예산이 부족하면 필요한 도움을 지속하기 어렵고,
연대가 약하면 결국 모두가 지쳐버립니다.
그래서 공익은 이상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고,
서로를 지켜 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셋이 함께할 때만 공동체는 약한 사람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공익은 멀리 있는 거대한 개념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드는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작은 행동은 대부분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는 것 말입니다.
“괜찮으세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다시 설명해드릴게요.”
“혼자 두지 않을게요.”
이런 말들이야말로 사람을 살립니다. 때로는 히터보다 더 따뜻하고, 난방보다 더 깊게 마음을 녹입니다. 몸은 금세 추위를 느끼지만, 마음은 말 한마디에 오랫동안 온기를 기억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서 공익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공익이라는 말을 들으면 제도, 정책, 행정, 복지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먼저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떤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지,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 주는지, 어떤 태도로 약한 사람을 대하는지. 공공성은 결국 그런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말 한마디가 히터보다 따뜻하다
특히 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었다는 사실은 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한국 영화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왕과 사는 남자」는 다시 한번 사람들의 마음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단순히 숫자의 성공이 아니라, 한국 영화가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준 작품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재미만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고, 스쳐 지나가는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그런 영화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는 건 참 고마운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강한 사람’의 이야기만 보아 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는 약한 사람 곁에 머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공익은 결국 강한 사람이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 덜 외로워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걸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단지 좋은 사극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추운 시대에 사람의 온기를 다시 떠올리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말들을 듣고, 또 너무 많은 말을 하며 지냅니다. 그중에서 정말 오래 남는 말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습니다. 내 편이 되어 주는 말, 내 처지를 알아주는 말,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말.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선명하게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말 한마디가 히터보다 따뜻하다” - 유튜브 <내 이름은 춘복이> 쇼츠에서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공익과 공공성의 본질을 아주 잘 담고 있는 말 같습니다. 공동체는 결국 말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상처받고,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니 공공성은 제도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따뜻한 말과 행동 속에서 완성된다고 믿게 됩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그걸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 준 작품이었습니다. 역사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끝내 사람의 온도를 잃지 않았고, 권력의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존엄의 이야기였으며, 멀리 있는 공익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옆 사람의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아마 그래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한 번 더 조심하게 되는 영화. 그런 영화가 천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은 참 반갑고, 또 희망적입니다.
한국 영화가 힘든 시기를 지나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준 작품, 그리고 우리에게 “사람을 살리는 건 결국 따뜻한 말과 마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알려 준 작품. 저에게 <왕과 사는 남자>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조회수 532
2026-03-31
조회수 12019
2026-01-02











조회수 804
2025-12-19










조회수 798
2025-12-05

















조회수 875
202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