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메뉴열기

공익웹진

  •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2030 여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있는 집 딸이라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해서 국가장학금으로 공부해 변호사 시험 합격증을 받은 사람이 있다.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 대포통장 사기 사건이었고, 진흙탕 바닥이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단다.
    안산의 새내기 법조인, 정민지 변호사의 꿈과 포부를 들어보자.

     


     

    Q 시간 내 줘서 고맙다.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나는 대한민국 30대 여성이고 한 달 전에 제15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까, 즐거운 상상 속에 지내고 있다. 목회자 부모의 세 자녀 중,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낀 외딸이다. 부모가 나를 고명딸이라며 떠받들어 키우지도 않았고, 오빠랑 연년생이라 쌍둥이처럼 자랐다. 그래서인지 태어난 순서로는 장녀가 아닌데, 현실에서는 ‘K-장녀로 자랐다. 진짜 장녀들이랑 만나면 말이 되게 잘 통하더라. 나 또한 나를 항상 큰딸로 정체화한다.

     

    Q 살면서 지금처럼 신나고 여유 있는 시기가 없었을 거 같다. 축하합니다.

    맞다. 대한변협이 하는 합격자 연수를 들으면서, ‘의식적으로천천히, 내가 가고 싶은 일자리를 찾아보려 한다. 안산시 공무원 3년 하고 2021년 로스쿨에 진학했으니, 지금 5년 만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공무원은 대학 졸업하고 당장 돈을 벌어야 해서 시작했었지만, 이제는 돌고 돌아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일, 살고 싶은 삶을 찾았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대충 시작하기 싫어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찾고 있다. 굉장히 설레고 기대된다.

     

    Q 안산시 9급 일반 행정직으로 3년 일하고 그만두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정형편 상 취준생으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어서, 졸업 전에 합격해 놓고 졸업과 함께 일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내 길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민원 업무든 행정사무든 일은 잘 해냈지만 조직 문화가 힘들었다. “이제 공무원 됐으니, 시집만 잘 가면 된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어린 여성이라고 친절, 애교, 미소 같은 태도 요구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남자 상사랑 있을 땐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위안을 줘야 할 거 같은, 내가 너무 대상화되는 위치에 놓이더라. 그때마다 뻔뻔하게 받아칠 짬밥이랄까 요령이랄까, 그게 없어서 미치겠더라.

    내 능력에 비해 너무 소박한 보상과 인정만 주어지는 현실에 회의감이 컸다. 누군가의 권력과 위계에 따르기보다 내 목소리를 내며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2019년 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다큐 영화 를 보고 강하게 깨달았다. ‘저런 법조인이 되자. 그러면 내 능력을 발휘하고 합당한 보상을 받으며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 그날 탈출을 결심했다.

     

    Q 청소년기부터 변호사를 꿈꾼 건 아니었나 보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통지표에 용모 단정하고 질서를 잘 지키나 의사 표현이 부족함이라고 적힌 소심한 모범생이었는데, 신기하게 운동할 땐 날아다녔다. 아빠가 형제들이랑 차별 없이 축구, 야구, 배구, 농구에 자전거까지 다 가르쳐줬다. 우리집에서 유일한 사교육으로 수영, 태권도도 배웠다. 덕분에, 나는 운동선수가 될까 한 적도 있다. 몸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는 독보적인 아이였다. 그러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운동선수가 될 사람은 이미 여기 없어야 한다고 툭 던지는 말에 나는 늦었구나싶어 마음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교 비평준화 시절 안산 동산고에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바닥을 치는 성적에 충격을 받았다. 가장 어려웠던 건 수학이었는데, 1년 내내 슬럼프였다. 1학년을 마친 후 어떻게든 수학을 정복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부모의 교육철학과 경제적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학원이나 과외 없이 공부했던 나에게 선택지는,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하기그것뿐이었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겨울방학 내내 수학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고2 첫 모의고사에서 수학을 반타작했다. 좌절감에 울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공부를 똑바로 안 한 거다라며 비수를 꽂았다. 그 말에 오기가 생겼는지 나는 계속 밀고 나갔다. 지난한 자기 싸움 끝에 수학을 가장 잘하는 과목으로 만들며 정시로 서울의 한 사범대에 합격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는 공부 맛을 청소년기에 익힌 셈이다.

     

    Q 대학 생활과 청소년기 공부는 달랐을 거 같다. 자기 길 찾기는 어땠나?

    모범생으로만 살아서인지, 대학에서 스스로 길을 뚫는 게 무서웠다. 등록금은 국가 장학금으로 해결됐지만 용돈은 벌어 써야 했다. 안산에서 2시간 통학하며 공부하고 알바하느라 늘 시간이 부족했다. 4학년 앞두고, 진로도 안 잡히고, 학점도 별로고, 휴학하고 돈을 좀 벌며 길을 찾고자 했다. 마침, 월급 200만 원에 물류창고 알바 공고가 뜨더라.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엄마가 간암 수술 후 퇴사해 요양 중이었고, 아빠는 투잡을 뛰며 목회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완벽한 결과를 내놓고 싶다는 강박에 쫓기고 있었다.

    돈에 혹하고, 출입증 등록용이라는 말에 속아, 체크카드와 통장과 비밀번호를 넘겨주고 말았다. 이상하다 싶었을 땐 이미 내 통장이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으로 쓰인 후더라. 나도 모르는 사람들 이름으로 수백만 원씩 돈이 들어왔다 빠진 기록을 다음 날 확인했다. 가해자 신분이 되어 버렸다. 빨간 줄이 그어질 대형 사고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 바닥을 경험했다. 이 사건으로 전혀 계획에 없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면서 내 인생의 방향이 급선회했다.

     

    Q 대포통장 사건이, 정민지라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

    그전까지는 보이스피싱 뉴스를 보면, 사람들이 조심성이 없어서 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궁지에 몰려 휘말리고 보니, 내 뜻대로 안 되는 삶의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요양 중이던 엄마가 내 소식을 듣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소통이 부재해서 일어난 문제라고 하더라. 혼자 완벽하게 잘하고 결과만 짜잔!~” 보여주려 하지 말고 못난 모습도 나눠야 함을 깨달았다. 통장이 정지되고, 경찰조사를 받고, 검찰에서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받기까지 반년을 보내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인생 바닥에 던져질 때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그 바닥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Q 공무원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나도 로스쿨은 돈스쿨이지 내가 어떻게 가라고 생각했었다. 3년 학비와 생활비 하면 억 단위가 든다. 나는 로스쿨생 중 압도적으로 가난했다. 소득 분위 장학금을 신청할 때 부모 재산이 들어가는데, 우리 부모는 수입과 재산이 바닥이었다. 엄마는 간암 수술 후 퇴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공부하느라 고정 수입이 없었고, 아빠도 미자립 교회의 투잡 목사였다. 그런데 이 사정들이 역설적으로 완벽히 증명되면서 나는 3년 내내 전액 국가 장학금으로 공부했다. “엄마 아빠 가난한 김에 제대로 가난해서 고맙다.”라고 농담을 즐길 정도였다.

     

    Q 로스쿨 학생들도 사교육(학원 인터넷 강의) 한다고 들었다. 변호사 시험 시장의 현실 이야기와 자기 주도적 공부 과정도 들려달라.

    로스쿨은 변호사 시험(변시) 통과를 위한 입시 학원으로 전락했다고들 한다. 대부분 사법시험 출신이거나 학계에만 있던 교수들 강의에 대한 만족도가 학원보다는 낮았다. 대다수 학생이 수업 시간에 뒤에 앉아 대형 학원 인터넷 강의(인강)를 듣거나 학원 교재를 보는 게 현실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고집스럽게 교수님 강의와 책을 붙잡고 독학을 밀고 나갔다. 인강에 쓸 돈도 없거니와, 처음부터 하나하나 스스로 해나가는 공부가 나에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령이란 걸 모르니 법의 1부터 100까지가 다 중요해 보여서 공부 분량이 살인적일 수밖에 없다. 삼수 때까지도 이 방법이 맞나?” 수없이 의심하며 두려움을 늘 끼고 공부했다. 독학 합격은 보편적인 레퍼런스가 없으니, 스스로 실험하고 시도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해야 했다.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도 완전히 자신할 수 없었는데,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Q 그 억눌린 멘탈을 어떻게 붙잡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시험 점수가 안 나오면 흔들리다가도 결국 내가 해야 끝나는 싸움이라며 크게 울고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다. 특히 부모님과 교회 공동체와 토론 모임에서 내 취약함과 어려움을 나눴다. 가족이 무조건적인 안전 기지였다. 그리고 삼수 중에도 매월 3개의 페미니즘 토론 모임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법조계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라, 공부하다 보면 ? 이게 말이 돼?’ 싶은 판례가 많더라. 그런 판례로 쌓인 스트레스를 토론 모임에서 거지 같은 법리들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날카로운 성평등의 칼을 벼렸다. 멀리 보는 자기주도적 공부였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무래도 나의 엄마다. 내가 속한 여성단체 회원이고 내가 참여하는 토론 모임들의 모임장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한 영화 를 모녀가 같이 보고 토론했다. 엄마는 너도 저런 길을 갈 수 있다라며, 영화를 내 현실로 끌어와 주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책 읽고 질문하고 글 쓰는 사람이다., 작가요 활동가로 사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자원이다.

     

    Q 수험생들에게, 꿈을 찾아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하우가 있다면. 2030 여성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도 추천해 달라.

    수험생들에겐 내가 왜 이 힘든 길을 가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절대 놓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답 찾기 공부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배짱을 가지길 바란다. 비혼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를 보면 숨이 막힐 때가 많다. 여전히 이성애적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사회다. 2030 여성들이 쉽게 비혼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그 깊은 고뇌를 사회가 모르는 거 같다. 소수자가 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엄청난 용기를 내는 거다. 가부장제 구조는 여성을 주체가 아니라 인구수를 채울 애 낳는 도구로 취급하는 거 같다, 젊은 여성들이 출산과 자아실현 중 하나를 강제 포기해야 하니 여성 우울을 겪는다. 국가는 다양한 생활동반자를 법적 가족으로 확장해야 한다. 비혼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재생산권을 보장해야 한다. 법조인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내 과제이자 살고 싶은 세상이다.

    이 맥락에서 역사 속 금기를 깨고 주체적으로 길을 개척한 여성 서사를 생생하게 복원해 낸 역사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 붉은 궁,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추천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정민지 변호사의 미래 설계와 포부를 이야기해 달라.

    실제 법조 생태계에서 기득권의 목소리를 더 키우는 데 법률 기술이 쓰이는 게 보이더라. 나는 침묵 당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이크로 일조하고 싶다. 좋은 동료들과 연대해서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안전한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께 말하는 포부가 있다. 두 분은 젊은 날부터 사람들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약한 데로 가서 힘을 나누며 사느라 평생 가난하다. 내가 돈을 벌면 건물을 지어서, 한쪽에는 엄마가 집필하고 책을 공유하는 사랑방이자 작가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다. 다른 한쪽에는 아빠가 돈 걱정 없이 소신을 펼치는 목회 공간을, 그 위에 내 변호사 사무실을 갖고 싶다. 지역에서 여성단체와 연대하는 변호사로 살 것이다.

    나아가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갈 주체적인 실험으로서, 나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다정한 파트너를 만나 내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확장의 경험도 기꺼이 해보고 싶다. 5년 후, 10년 후 내가 이 포부대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이 꼭 검증해 주길 바란다.

     
     
    진흙탕 바닥이 가르쳐준 것들: 안산의 새내기 법조인, 정민지변호사 인터뷰
    꿀벌

    조회수 306

    2026-05-20
  • 들어가며 - “접근성은 모두의 권리입니다”
    여러분은 ‘접근성’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나요?
    즐겁고 유용한 정보를 전하는 이미지, 카드뉴스, 영상 콘텐츠들이 오늘날 우리의
    정보 소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콘텐츠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닿고 있
    을까요? 예를 들어, 이미지에 ‘대체 텍스트(alt-text)’가 없다면 스크린 리더를 사
    용하는 시각장애인에게 그 정보는 벽이 됩니다. ‘정보의 벽’은 소리 없이 누군가를
    배제합니다.

    사진 1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사진설명 : 접근성 제한을 상징하는 자물쇠, 이미지 차단, 문서 접근 차단 등의 아이콘이 분할된 배경에

    배치되어 ‘Accessibility’라는 문구를 중심으로 표현된 일러스트

    매년 5월 셋째 주 목요일은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 GAAD)’ 입니다. 이날은 디지털 환경과 물리적 공간에서의 접근
    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인식을 높이고, 모두가 동등하게 정보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강조하는 날입니다. 접근성은 단지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노인, 임산부, 일시적인 부상자 등
    우리 모두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접근성은 결국 ‘나의 일’입니다. 접근성, 왜 중요한가요?
    1) 디지털 접근성
    디지털 접근성은 웹사이트, 모바일 앱, 전자문서 등이 시각, 청각, 지체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이미지에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거나, 영상에 자막을 추가하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
    다. 현재 한국에서는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 2.1(KICS)”을 통해 정부 및 민간 홈페이
    지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지에는 ‘대체 텍
    스트’를 넣고, 영상에는 자막을 달고, 색상 조합은 색약자도 구분 가능해야 하며, 마우스 없이도 조작이 가능해야 하죠.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 영상 콘텐츠 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웹접근성 정책은 인식의 용이성(텍스트가 아닌 콘텐츠의 인식 등), 운용의 용이성
    (프레임의 사용 제한 등), 이해의 용이성(데이터 테이블 구성 등), 기술적 진보성
    (신기술의 사용 등)을 고려하여 정보를 제공하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
    용은 하단 링크를 통해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 : 개인정보 포털
    https://www.privacy.go.kr/front/contents/cntntsView.do?contsNo=169

    2) 물리적 접근성
    물리적 접근성은 건물, 도로, 교통수단 등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
    되는 것을 말합니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경사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블록, 장애인 전용 주차장 등이 그 예입니다. 물리적 접근성은 그동안 공공디자인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개선된 영역이지만, 여
    전히 ‘그림의 떡’인 공간이 존재합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
    수입니다. 누구나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위해, 접근 가능한 공간은 모두를
    위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정보와 서비스에서 소외될 수 있습니
    다.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사회적 참여와 기회의 박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일상 속의 장벽들

    사진 2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사진설명 : 스크린 리더로는 읽히지 않는 이미지 기반의 행사 포스터와 복잡한 온라인 신청서 구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시각장애인과 디지털 취약계층이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시각화
    “행사 포스터를 봤는데,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어요..”
    텍스트 없는 이미지 포스터는 시각장애인에게는 ‘무의미한 그림’입니다. 스마트폰
    에 스크린 리더를 켜도 “이미지”라는 한마디만 들려올 뿐, 어떤 행사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정보의 비대칭을 초래하고, 참여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신청은 여기서 하라고요? 그런데 어디서요? 너무 어려워요.”
    복잡한 온라인 신청서, 숨겨진 필수 입력란, 마우스 기반 구조. 고령자나 디지털
    취약계층은 애초에 참여조차 못 하고 포기합니다. 공익적인 행사들조차도 참여의
    문턱이 ‘열려있지 않은’ 셈이죠. 어떤 행사에서는 온라인 신청서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 고령자나 디지털 기기
    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신청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이는 디지털 접근성의 부
    재로 인한 참여 장벽의 예시입니다.

    2025년의 변화들
    1) 삼성전자 – ‘오라캐스트’, 난청인을 위한 오디오 공유 기술

    사진 3 (출처 : 삼성 테크블로그)

    사진설명 : 넓은 야외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며 공연을 관람하고 있으며, 블루투스를 통한 오디오 신호 확산을 시각화한 곡선이 겹겹이 퍼지고 있는 이미지
    울림이 심한 성당에서도, 여러 명이 보청기나 이어폰을 통해 동시에 깨끗한 음성
    을 들을 수 있는 기술. 삼성전자의 오라캐스트 기술은 난청인의 여행 경험을 바꾸
    었습니다. 블루투스 기반 오디오 공유 기술 ‘오라캐스트’가 도입되면서, 보청기든
    무선 이어폰이든 상관없이 동일한 오디오를 동시에, 또렷하게 수신할 수 있게 되
    었습니다. 참여했던 난청인은 처음으로 투어를 끝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
    다. 기술은 이제 배려를 넘어 당연한 경험의 평등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2) LG전자 – 휠체어를 위한 ‘컴포트 키트’

    사진 4 (출처 : LG전자 뉴스룸)

    사진설명 : 세탁기, 냉장고, 스타일러, 식기세척기 등의 LG 가전에 부착형 손잡이와 조작 편의 기능이

    적용된 컴포트 키트의 위치를 붉은 점선으로 강조

    접근성은 제품 설명서나 기능 설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쓰느냐’, 그 자
    체가 벽이 될 때가 많습니다. 세탁기 문을 열기 힘들었던 그들에게 필요한 건 설명서가 아니라 ‘손잡이’였습니
    다. LG전자의 ‘컴포트 키트’는 물리적 접근성을 ‘생활 설계’에 반영한 대표 사례입
    니다. 냉장고나 세탁기의 문을 휠체어에서 쉽게 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착형
    손잡이’, 높이를 낮춘 옷걸이, 누구나 편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배치된 버튼들. 기
    술이 ‘모두를 위한 일상’을 진짜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섬세해질 수 있는지를 보
    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들은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접근성 콘퍼런스에도 가전기
    업 최초로 참여하고, 특허청과의 협약을 통해 ‘접근성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기업
    모델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접근성은 기기의 기능이 아니라, 사용자의 몸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3) KBO 구단들 – ‘현장 예매 확대’로 고령 야구팬을 다시 경기장으로

    사진 5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사진설명 : 야구장 입구에 줄지어 선 관중들 사이로, ‘어르신 전용 현장 예매 창구’ 안내 표지판이 눈에

    띄게 설치되어 있는 모습

    프로야구를 수십 년간 응원해온 70대 팬들이 경기장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매가 100%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스마트폰 활용이 익숙
    하지 않은 고령층은 표를 구할 방법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롯
    데 자이언츠와 KT 위즈는 2024년부터 ‘현장 예매 좌석’을 별도로 마련했습니다. 롯데는 경기당 220석(약 1%)을, KT는 70세 이상 및 장애인 대상 100매를 1,000
    원에 제공하며, 고령자들이 손쉽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두산
    베어스, SSG 랜더스 등도 현장 판매 확대를 검토하거나 어르신 대상 예매데이를
    운영 중입니다. 이 변화는 ‘디지털 접근성’이 단순히 기기 사용법에 그치지 않고, 모두가 문 앞에
    서 멈추지 않도록 설계하는 노력이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지
    만, 사람은 각자 다른 속도로 살아갑니다. 그 속도를 존중할 수 있을 때, 진짜 모
    두를 위한 ‘관람’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
    - 이미지를 업로드할 땐 대체 텍스트를 써주세요!

    - 영상엔 자막을, 행사엔 이동 경로 안내를 함께!
    - 신청서, 설문지, 홍보문 안에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을 써주세요!
    - 색상은 충분한 대비를 고려하고, 마우스 없이도 조작 가능하도록!
    - 행사나 모임 장소에 대한 상세한 이동 경로를 제공하여,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사진 6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사진설명 :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황금빛 아치형 공간을 지나며, 모두에게 열린 세상 속 연결과

    포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일러스트

    마치며 - “접근성은 모두를 위한 시작입니다”
    접근성이란 단어가 아직은 생소하신가요? 현실 속 접근성은 ‘오늘의 나’와도 관련
    된 이야기입니다. 나도 언제든, ‘접근이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으니까요. 접근
    성은 특정인의 편의를 위한 옵션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기본값이어야 합니다. 그
    리고 이 기본값은 누군가의 사명감이 아니라 모든 기업, 기관, 단체의 책임입니다. 웹사이트 하나, 행사 하나, 포스터 한 장, 설문조사 하나. 그 안에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매번 물어야 합니다. 모두가 잘 몰랐지만 2025년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을 지나며, 다시 한번 묻고 싶
    습니다.

    “그 문, 정말 모두에게 열려 있었나요?”

    모두를 위한 문, 열려있나요?
    또봉

    조회수 50

    2025-06-10
  • 나의 첫 공익위키 체험기

    퇴직을 한 이후 나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야만 했다. 가만히 있으면 퇴직이라는 나
    의 선택이 변화가 아닌 불안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나는 회사에 다닐 때보다 지금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공익위키 또한 그런 마음에 신청을 했던 것 같
    다.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위스퍼, 공익위키’라는 단어가 많이 낯설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모집 공고를 찬찬히 살펴봤다. 아마‘작은 속삭임으로 만드는 더 큰 목
    소리’라는 문구에 끌렸을 것 같다.

    작지만 의미 있는 지식과 경험들을 ‘함께’ 모아보고 싶다?
    내가 사는 지역 안에서 공익 활동을 시작할 계기가 필요하다?
    일상의 작은 변화와 새로운 활력을 원한다?
    공익 활동 영역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가 간절하다?
    이미 위스퍼가 될 준비가 끝났어요!

    그리고 경험, 공익 활동, 작은 변화와 새로운 활력, 마지막으로 대화라는 단어에
    혹했을 것 같다. 아마 결정적인 문구는 ‘이미 위스퍼가 될 준비가 끝났어요!’라는문장이었다.

    나는 공익 위키 운영단 위스퍼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 2 -

    모임 장소인 ‘성남 공간 채움’에 가는 버스 안에서 위스퍼(whisper)라는 단어를
    처음 검색했다. 위스퍼는 ‘속삭이다’라는 뜻이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누구와 속
    삭인다는 걸까? 속삭이는 행위를 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다. 게다가 '공
    익 위키 운영단'이라는 이름은 왠지 무거운 서사시의 주인공이 될 것만 같았다. 말이 어렵다. 뭔가 대단한 것 같은데, 감이 안 잡혔다. 나에게 '위키'라고 하면 나
    무위키 정도나 아는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누가 이렇게 열심히 정리해 놓은 거
    지?' 하며 감탄만 하던 나였다. 그렇게 아무 정보 없이 교육장에 들어섰다. 사진

    (성남에 있는 공간 채움에서 교육은 진행되었다.)

    첫 수업, 첫 시간. 익숙한 것이라고는 내 숨소리뿐이었다. '공익 위키, 위스퍼, 빠
    띠'라는 낯선 단어들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그저 가만히 앉아 흘러가는 것들을 바
    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윤곽이 잡혔다. 공익 위키, 위스퍼라는 것은 공익적인 지식과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그걸 기록하는 활동이
    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들이 위키라는 형식으로 남겨지는 거였다. 마치
    세대와 세대 사이의 다리를 놓는 작업 같았다. 사진

    - 3 -

    두 번째 시간은 자기소개와 관심 키워드 나누기였다. 방 안엔 생기 넘치는 20~30
    대들이 가득했다. 시민단체, 청년 활동, 지역사회 운동.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물살 같았다. 각자의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강을 이루는 듯한 모습이
    었다. 그리고 그 한쪽 구석에, 나는 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 사실이 유난
    히 크게 느껴졌다. 조용히 눈을 피했다. 그게 내 방식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몇몇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줬다. 야구를 좋아한다는
    친구. 그리고 "요즘은 우리 아버지 세대만 경실련을 알더라고요"라며 웃던 경실련
    소속의 젊은 활동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나 그 세대 맞다. 경실련이 전
    성기였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 그 순간 세대 사이의 틈이 마음 한편에 깊은 골
    을 내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자격지심이었다. 사진

    - 4 -

    세 번째 시간은 본격적인 '위키 만들기' 시간이었다. 주제는 두 가지. 하나는 DEI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다른 하나는 Young Carer(영케어러).

    나는 망설임 없이 '영케어'를 선택했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리 사회에
    서 아직도 얼마나 낮은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살아오며 본 많은
    사례가, 이름도 제대로 붙지 않은 채 흘러갔던 기억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그들은 '영케어'라는 개념은
    알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를 체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내가 아는 사례를 꺼냈다. 소년소녀가장, 코다(CODA), 이주민 자녀, 형제자매 돌봄. 아직 어린 나이에 감당
    해야 하는 책임들. 다들 놀란 눈으로 내 이야기를 들었다. '아, 이 친구들은 아직
    경험은 적지만, 그만큼 더 듣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구나.' 그 생각이 들었다. 그
    눈빛이 좋았다. 열린 눈. 열린 귀. 그들의 눈빛에서 이 세상이 조금씩 변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다. 사진1

    우리는 역할을 나눴다. 내가 맡은 역할은 Young Carer(영케어러) 개념과 정의였
    다. 유형별 사례는 소랑님, 나기님이 맡았다. 정책 정리는 다영님, 해외 정책과 참
    고 사례는 동훈님이 맡았다.

    - 5 -

    팀플레이는 언제나 그렇듯 조별 과제의 향기를 풍기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누구도 리더가 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조금씩 이끌었다. 낯선 사람과 낯선 개념을
    함께 다듬어가는 일. 손가락 끝으로 흙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한 목적
    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이번 수업의 묘미였다. 마지막으로 팀별로 만든 공익 위
    키를 발표하며 질문을 받았다. 사진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버스를 기다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익 위키와 나무위키는 뭐가 다를까?

    나무위키는 디테일이 살아 있다. 하나 검색하면 열 가지를 알게 되는 마성의 백
    과사전. 그에 비해 아직 공익위키는 '앱 초안 수준'이랄까. 조심스럽게 태어난 아
    기 같았다. 공익 위키. 시민들에게 공익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이 질문이 밤하
    늘의 별처럼 내 머릿속에 빛났다. 혼란스러운 하루였다. 하지만 그런 혼란이 나쁘지는 않았다. 낯선 세계에 발을 디
    뎠다는 건, 다시 배울 기회이기도 하니까. 마치 바다에 첫발을 담그는 것처럼, 두
    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나이 들었다고 멈출 이유는 없다. 젊다고, 모른다고 탓할 이유도 없다. 그저 함께
    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나이, 다른 경험, 다른 시선이 모여 하
    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것이 위키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6

    - 6 -

    공익 위키는 아직 작고 미약한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삭임들이 모여
    언젠가 큰 목소리가 된다면, 그 시작점에 내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자랑
    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마치 작은 씨앗이 나무가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본 정원사
    처럼.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이,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무언가를 깨우는 작은 속
    삭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의 첫 공익위키 체험
    윤작가

    조회수 48

    2025-05-18
  • 2024년, 프로야구 누적관중이 천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프
    로야구를 향한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커다란 홈런포를 날리는 야구 스
    타들을 본 남자 아이들은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는 합니다. 그렇다면 여
    자아이들은 어떨까요?

    사진 1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미디어 속 여성들>
    ‘스컬리 효과’ 라는 말이 있습니다. 1990년대에 미국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엑스
    파일’에 등장하는 FBI 요원 ‘스컬리’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 등장인물을 보고 자
    란 여자 아이들이 과학, 기술, 수학과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생겨난
    말입니다. TV 속 여성 캐릭터가 여성들에게 특정 직업이나 분야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듯,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TV 프로그램인 ‘골때리는 그녀들’ 이 큰 인기를 끌면서 여성 풋살 및 축구 동호인이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야구장에
    서 여성은 선수보다는 관중, 치어리더, 배트걸로 더 자주 등장합니다. 여자 아이들
    이 그들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꾸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진 2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나이를 막론하고 여성들은 미디어에 비춰지는 다른 여성들의 모습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TV, 영화, 광고 등에서 접하는 여성들의 역할과 이미지가 여성
    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정의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디어
    속에서 여성들이 특정 스포츠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자주 보지 못한다면, 이는 자
    연스럽게 ‘여성은 그 종목에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무의식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반면,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 선수들
    이 꾸준히 조명된다면, 여성들은 자신도 해당 종목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역할 모델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
    적으로 여성들의 도전과 참여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다양한 스포츠에서 활약하는 여성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그들의 업적과
    노력을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성의 스포츠 참여>
    1967년, 캐서린 스위처는 남성만이 참가할 수 있던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유일한 여성 참가자였습니다. 그녀는 출발선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최측으
    로부터 ‘경기에서 나가라’는 위협을 받으며 끝까지 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실격처
    리 되었습니다. 그녀가 대회에 참가했을 당시의 사진이 현재까지도 스포츠계의 성
    차별적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진으로 회고되고 있습니다.

    사진 3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스포츠는 오랜 시간 동안 남성 중심의 활동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여성은 약한
    존재라는 생각과 남성 위주의 사회적 분위기가 주된 원인이였습니다. 기원전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스포츠라고 불릴 만한 체육활동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였습니다. 여
    성이 공식적인 스포츠 대회에 처음으로 참여한 것은 1900년 파리 올림픽이였습니
    다. 그것도 전체 선수들 중 단 2%만이 여성 선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종목인 축구를 보자면 남자 축구는 1863년 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반면에 여자 축구는 1968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정규 대회로 채
    택되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약 100년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현대에 이르러서 여성의 스포츠 참여율은 과거보다 많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우리
    나라의 전체 선수 중 여자 선수 비율은 20%대이며, 여성 지도자 비율은 전체의
    20%도 되지 않습니다. 여성 지도자가 존재하지도 않는 종목들도 다수인 실정입니
    다.

    사진 4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족, 학교, 미디어 등을 통해 알게 모르게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이 심겨집니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을 돌이켜 보면 남학생들은 축구를 하
    고 여학생들은 피구를 했습니다. 팀을 짜고 협력하여 점수를 내는 축구와 달리, 피구는 상대에게 공을 던지고 맞춰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와 같이 어릴 때부터 여학생들은 축구나 야구보다 피구 같은 종목을 주로 경험
    하며 공을 ‘피하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이는 여성들이 성장한 후에도 구기 종목에
    대한 거리감을 느끼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성 스포츠의 현실>
    구기 4대 종목이라 불리는 축구, 농구, 야구, 배구 중 야구만이 여성 프로리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야구가 어느덧 국민 스포츠가 되었지만 정말 전 국민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맞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여성 프로야구가 존재
    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시장 논리 때문이 아닙니다. 리그 창설을 위한 초기 투
    자와 미디어 노출 기회 부족, 사회적 인식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
    니다.

    남성 프로야구 경기 장면(왼)과 여성 야구 동호회 경기 현장(오)


    사진 5, 6 (출처 : 왼-Unsplash / 오-에디터 직접 촬영)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야구를 그저 관객의 입장에서만 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너무 좋아한 여성들은 동호회팀을 만들고 직접 야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규모는 점점 커져 이제는 매년 여자 야구 국가대표 선발전
    이 치뤄지고 있으며 국제 대회에 나가 이름을 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성 야구
    선수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매니저가 아니라 선수를 하는거야?’, ‘여자도 포수까지
    공이 던질 수 있어?’ 같은 무관심한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사진 7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여성 프로리그가 존재하는 다른 종목들의 사정도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배구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김연경 선수도 남성 배구 선수보다 적은 연봉
    을 받고 있습니다. 해외 유명 클럽에서 러브콜을 보내오고 국제대회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한 선수임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의아한 부분입니다. 일부에서는 남녀 리그의 시장 선호도가 다르므로 임금 차이가 당연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남녀 리그의 선호도가 다른 것인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남성 스포츠 리그는 오랜 역사와 함께 꾸준한 투자와 미디어 노출을 통해 현재의
    높은 인기를 구축해왔습니다. 반면, 여성 스포츠 리그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와
    낮은 투자, 미디어 노출 부족으로 인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
    다. 이것은 단순한 시장 논리가 아니라, 스포츠 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바라
    봐야 합니다.

    먼저, 미디어 노출의 차이가 큽니다. 남성 스포츠 경기는 주요 시간대에 방송되고, 하이라이트가 지속적으로 보도되며, 대형 광고 계약과 후원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여성 스포츠 경기는 방송 기회가 제한적이며, 주요 경기조차 생중계되지 않는 경
    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이 줄어들고, 이는 곧 리그의
    수익 감소로 이어집니다. 또한, 여성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
    스포츠가 남성 스포츠보다 박진감이 떨어진다고 인식하는데, 이는 여성 선수들의
    기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훈련 환경, 투자 부족, 경기 방식 차이 등 다양한 요인
    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실제로 동일한 지원을 받는 일부 종목에서는 여성 선수들
    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성공적인 리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결국, 여성 스포츠의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투자와 미디어 노출을 확대하
    고,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현재 인기가 낮으므로 임
    금이 낮아야 한다'는 논리는 여성 스포츠가 성장할 기회를 차단하는 결과를 불러
    올 뿐입니다.

    2025년, 프로야구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경기를 즐
    기는 것을 넘어,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사진 8, 9 (출처 : 에디터 직접 촬영)

    여성도 홈런을 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스포츠

    에서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다
    시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여자도 홈런 칠 수 있나요?
    또봉

    조회수 67

    2025-03-18
  • 경기수원월드컵재단

    저는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아주 좋아합니다. 현재 네덜란드에 거주하면서 지역사회에 위치한 다양한 단체들이 공익을 위해 스포츠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지역에 위치한 스포츠클럽은 아주 적은 회비를 받고 스포츠교육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위치한 기업들은 이 클럽을 지원하며 광고효과를 얻고, 시 당국은 회비를 낼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바우처를 제공하는 식입니다.

     

    네덜란드의 소식을 전하기 전에 도 내에도 스포츠를 통해 공익을 증진시키는 단체들이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처음으로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단체를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경기도내 대표적인 스포츠 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삼성의 홈구장을 관리하고 있는 단체이기도 하며, 도청소재지인 수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도내에서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재단이 활용하는 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

     

     

    이 재단은 경기도와 수원시가 6:4의 비율로 투자해 만든 재단법인입니다. 이 재단의 주요 업무는 수원월드컵경기장과 수원월드컵스포츠센터를 관리 운영하는 것입니다. 이 재단의 설립 목표는 지역 및 국내 축구발전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경기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체육문화시설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지방체육 진흥과 도민화합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함이라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월드컵 축구경기가 열렸던 곳을 기반으로 삼기에 축구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하고, 체육과 문화를 통해 경기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재단의 공익적인 목적은 단체의 경영방침에 잘 나와 있습니다. 단체의 궁극적인 비전은 경기도를 대표하는 선진스포츠 공공기관이 되는 것이며, 공공성을 강화함으로 이를 이루고자 합니다. 단체의 공익프로그램의 운영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경영 방침중의 하나입니다.

     

    이제 이 단체가 어떤 공익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재단은 월드컵경기장을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현재 수원삼성이 사용하고 있는 주경기장 및 보조경기장, 인조경기장 2, 풋살구장 6면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보조경기장 및 인조경기장, 풋살구장은 일정 경비를 받고 대여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총 19,021평방미터에 이르는 월드컵 스포츠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스포츠센터는 스포츠 아일랜드(대표이사 백성욱)가 위탁운영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센터에서는 골프, 수영, 헬스&필라테스, 스쿼시, GX, 스킨스쿠버, 다목적체육관, 유아체능단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습료는 수영 주 3회 기준 월 10만원 미만으로 그리 부담스러운 가격대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월드컵 경기장 내에 위치한 축구박물관, 월드컵조각공원, 인라인스케이트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세 시설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재단의 연간예산은 2021년 경기수원월드컵재단 사업계획에 따르면, 98억원 가량입니다. 60퍼센트 가량의 수입은 임대수익으로 창출하고 있습니다.

    단체는 2021년 다양한 공익행사를 계획했습니다. 도내 유소년 축구팀을 대상으로 한 축구 토너먼트 대회 빅버드 축구페스티벌”, 나눔을 위한 플리마켓, 문화공연, 체험존 운영, 주경기장 개방 등을 하는 나눔문화행사”, 장애인, 차상위계층, 경기북부 지역아동센터, 보호관찰 청소년, 홀트아동복지회, 고운뜰 미혼모 등을 도와주는스포츠 공익프로그램, 지역축구 꿈나무들을 지원하는 사회공헌사업들을 단체의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대형 경기장과 부대시설들을 활용하여 도내 여러 사람들에게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참 좋아보입니다. 그리 혁신적이여 보이는 사업은 아닐지라도, 기존의 지어졌던 시설들을 활용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건강증진이라는 좋은 이익을 전해주는 사업을 응원해봅니다.

     

     

     

    의정부시체육회

    경기도에 속한 의정부에서도 체육관련 공익단체인 의정부시체육회가 설립되어 있습니다. 이 단체는 1963년 관선 시장이 회장을 맡아오다가, 2020년부터는 민간회장이 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올해 69일 법인으로 등록된 이 단체는 의정부시에 위치한 스포츠센터, 의정부주경기장, 의정부체육관, 실내빙상장, 의정부자전거경기장, 추동배드민턴장, 신곡실내배드민턴장, 송산배수지체육시설, 푸른마당 테니스장, 호원 테니스장, 녹양야구장, 직동축구장, 곤제축구장, 활기체육공원, 자일풋살장, 컬링경기장, 천보탁구장 등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의정부시 녹양동에 위치한 체육관에서 인터뷰하는 윤경신 핸드볼감독

     

     

    이 단체의 2021년 사업계획 및 세입세출예산안에 따르면, 단체의 연간예산은 약 41억원이며 그 중 88퍼센트 가량 시 보조를 받아 운영되고 있습니다.

    단체는 여러 공익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을 위해 테니스대회 및 체육대회, 건강걷기대회 를 개최하기도 하고, 안중근 정신을 고양하는 안중근 정신찾기 자전거 대행진과 같은 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사업은 엄홍길전시관 운영”, “2021년 의정부체력인증센터입니다. 엄홍길씨는 산악인으로써 히말라야 14좌를 포함한 8000미터급 봉우리 16개를 정복한 전설과 같은 산악인입니다. 엄홍길씨는 경상남도 고성에서 출생했지만, 의정부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런 지역의 세계적인 인물을 기념하고 도전정신을 고취하는 것은 의미가 커 보입니다.

     

    의정부 체력인증센터는 국민체력 100 체력인증센터에 속한 한 지부와 같습니다. 국민체력 100센터는 75개소가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는 국민체력인증 검사를 통한 체력측정, 체력평가, 운동처방 및 체력인증을 수행합니다. 단체가 체력측정 및 체력평가를 하면 운동처방을 하는데, 국민체력 100에 수록된 동영상을 따라하며 일반 시민들을 위한 각종 운동 관련 영상 등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관내에 있는 스포츠공익단체는 다소 관 중심의 단체가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도 및 시의 체육시설들을 활용해 사업들을 진행하고 시민들에게 공익을 제공하는 것은 칭찬할 일입니다. 향후 민간이 주도가 된 단체들도 관과 함께 협력하여 도내에 창의적인 체육사업들이 늘어가길 바래봅니다.

    스포츠공익을 위한 수원월드컵재단, 의정부시 체육회
    와우

    조회수 612

    2021-09-23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