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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쑤~~” 민요나 판소리를 부를 때 자주 쓰는 추임새다. 흥을 돋우고 소리꾼을 응원하며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마법의 소리다. 안산에는 한 20년 “얼쑤!”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광폭 시민 활동가 얼쑤 김미숙의 일문일답 추임새를 들어 보자. “각자도생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로, 얼쑤!”
     
     
    후원하고 활동하는 단체 목록을 세어보니 26개더라. 조금만 소개해 달라.
     
    안산YWCA의 평생회원이자 현재 회장이다. 활동비를 받는 자리가 아닌 비상근 활동가다. 4.16안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안산평화연대 공동대표, 안산 기후위기 비상행동 공동대표기도 하다. 오라는 데 많고, 가야 할 데도 많다. 사랑하는 4.16합창단 소프라노 단원, 시화호생명지킴이와 안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이자 강사이며 (사)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에서 환경 방송 ‘얼쑤의 얼쓰Earth’를 진행하고 있다.
     
    안산·시흥 지역 노동자들의 생활안정과 권익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사)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의 생활안정팀에서 오래 활동하고 있다. 올해는 캄보디아 노동자들과 만나 잔치 음식도 해 먹고 지지하는 만남을 6번 진행하는데, 8월에는 여행도 간다. 양계장에서 일하는 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는 한 달에 휴일이 두 번뿐이다. 이동의 자유도 이웃과의 소통도 없다. 외부에서 병원균이 옮겨 와 닭이 조류독감에 감염될 수 있다는 이유다. 모임에서 뭐가 좋았냐 물으니, 올 때 전철도 타고 나무도 보고 자동차도 보고, 사람들과 얘기한 거라고 하더라.
     
     
     
    안산환경운동연합 활동사진(왼), 안산YWCA 활동사진(오) / 사진출처: 얼쑤
     
     
    단원FM 활동사진(왼), 4.16합창단 활동사진(오) / 사진출처: 단원FM, 4.16합창단
     
     
    단체 상관없이 제일 신경 쓰는 건 탈핵이다. YWCA가 2년마다 집중 과제를 선정하는데 10년 넘게 ‘탈핵’이 있다. 우리 아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환경운동연합, 안산YWCA 등이 버스 한 대로 월성 원전 이별 퍼포먼스에 갔다.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는 정말 무서웠다. 핵에너지가 안전하고 경제적이라 하지만 잘못된 정보다. 고장도 잦고 터지면 끝이다. 탈핵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운동이 중요하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에서는 작년에 발전 수익으로  사회 기여를 1억 원 했다. 발전 수익을 낼 수 있고,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 귀한 사례다. 그래서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홍보위원으로 활동하며 햇빛발전에 대해 홍보하고 조합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열심히 권유하고 있다.
     
     
    월성 원전 이별여행 / 사진출처: 얼쑤
     
     
    여성 단체 YWCA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이를 낳고 나니 환경이 망가진 게 보이더라. 내가 배워서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었다. 당시에 돌도 안 된 아기의 사교육을 위해 선생님을 집으로 부르는 주변 사람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와 직접 재미있게 놀고 싶어 아이를 안고 도서관, 서점, 미술관을 다녔다. 아이 교육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싶어 찾아간 게 YWCA였다.
     
    처음 권유받은 게 NIE(Newspaper In Education) 지도사였다. 당시 N.I.E.가 붐이었다. 신문을 활용한 교육 자료로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는 활동이다. 심화 과정 수료 요건이 60시간인가 80인가 봉사 후 보고서 제출이었다. 5살 딸아이를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N.I.E. 교육 봉사를 했다. 2년, 3년 계속하니 ‘검증된 강사’ 소리 들으며 강의 요청을 받았다. 새로 문을 연 지역아동센터나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작은 도서관에서 봉사 수업을 하다 보니 입소문이 나고 점점 강사 경험이 쌓였다. ‘시화호생명지킴이’라는 단체도 찾아가 교육을 받고 지역에 봉사하게 되었다. 지금 내 주업이 강사다. 독서 강사, N.I.E. 강사, 환경 강사 등으로 영역이 넓어졌다.
     
     
    아이 잘 키우려던 엄마가 광폭 시민 활동가가 된 어떤 전환점이 있었나?
     
    4.16세월호 참사였다. 단체라고는 YWCA, YMCA, 시화호생명 지킴이, 환경운동연합 정도만 알다가 4.16 참사를 계기로 수많은 시민과 연결되었다. 안산에 연대하는 작은 시민단체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이상하게 여겼던 이 사회가 그래도 여기까지 굴러온 건 이분들 덕분이겠구나, 알겠더라. 시간이 되면 달려가 힘을 보태고, 행동하고 후원하게 됐다. 내 삶이 '각자도생'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로 전환했다.
     
    우리 집이 단원고등학교 근처 빌라 101호다. 302호가 단원고 2학년 4반 고 박수현 군의 집이었다. 2002년 3월에 이사 와서 제일 처음 사귄 이웃이 수현이 엄마 영옥 언니였다. 언니는 “배추전 먹으러 와.” “떡볶이 했으니 올라와.” 하고많은 날 우리를 불러주거나 음식을 갖다주었다. “밥이 똑떨어졌어, 밥 한 공기 줄 수 있어?” “언니 달걀 좀 주세요.” 이게 우리 일상이었다. 수현이가 고2 때 우리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외동인 딸에게 수현이는 가장 가까운 오빠요, 놀이 상대이었다. 수현이는 연년생인 누나의 가방을 들어주고, 밤이 늦으면 누나 마중을 나가는 동생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14년 4월 16일, 집에서 컴퓨터로 N.I.E. 수업 자료를 만들다 인터넷 속보를 본 거다. 세월호와 단원고, 이걸 보는 순간 수학여행 간 수현이 생각이 나 바로 영옥 언니한테 전화했다. “걱정하지 마, 다 구했대. 그래도 다 젖었을 테니 깨끗한 옷 챙겨서 지금 형부랑 내려가는 중이야.” 그랬다. “너무 다행”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놀란 가슴에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게 없어 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먹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애들을 못 구했다는 거다.
     
     
    세월호가 내 이웃의 일이자 내 일로 연루되었군요.
     
    그날 아이가 학교에서 오길래 “수현이 오빠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대. 우리 같이 학교로 가볼까? 사람들이 모여 소식을 듣는 것 같아.” 말하며 단원고에 갔다. 4월 16일,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랐던 첫 번째 촛불 기도회로 4.16활동이 시작됐다. 멈출 수가 없었다. 영옥 언니가 진상 규명이라든가 서명 활동을 계속하니 나는 뭐라도 언니를 도와야 했고 돕고 싶었다. 참사 4일째, 남편과 아이랑 셋이 진도 체육관에 갔다. 영옥 언니와 은희 언니와 유가족이 된 지인들을 보았다. 두 언니는 당시 내 인생의 롤 모델이었다. 울고 소리 지르고 쓰러지고, 민간 잠수사가 어떻고, 왜 찍어, 카메라 뺏고, 막 드잡이하고, 그걸 다 보았다. 사복 경찰이 진짜 많았다.
     
     
    얼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 사진출처: 얼쑤
     
     
    감히 그분들만큼 큰 아픔, 슬픔에 빠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그 슬픔을 같이 겪었다. 너무 끔찍한 세월이었다. 영옥 언니가 진도에 계시면서, “뉴스에서 나오는 거 저거 다 거짓말이야”라며 진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뜨거운 폰을 얼마나 눌러댔던지 오른쪽 집게손가락이 아파서 아직도 잘 못 쓴다.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지낸 지인하고 의절하는 일도 있었다. 참사 후 며칠 안 돼서 노란 리본 이미지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쓰는데, 저작권에 걸린다고 1인당 몇백만 원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딸 학교 보내기 전에 노란 리본으로 머리를 묶어주고 뒤통수를 찍어서 그걸 지금까지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다. 못 바꾸겠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세월호 참사는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군요?
     
    그렇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언니와 함께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다. 대학을 왜 가는지 몰랐다. 그런데 내가 대학에 갔더라면 더 일찍 진보적인 사상을 접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을 텐데, 모르고 살아 너무 안타깝더라. 나는 부당한 일을 보면 조용히 떠나는 식으로 살았다. 일만 하다 결혼했고, 아이 낳고서야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는 거리를 둘 수 없는 내 일이었다. 우리 애는 수현이네 집에서 먹고 놀기 좋아했다. 오빠 놀아 줘, 하면 수현이는 뭐 하고 놀까, 물어보며 다리에 미끄럼을 태워주는 오빠였다. 수현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유치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커서 오빠랑 결혼한다고 했다. 수현이가 부모님에게 무언가 사 달라고 하면 “넌 1층 장모님한테 가서 얘기해라” 놀림받을 정도였다. 그런 수현이가 우리 곁을 떠나 너무 안타까웠다.
     
     
    참사가 아이한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거 같은데 괜찮은지?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장을 찾은 얼쑤 가족 / 사진출처: 얼쑤
     
     
    아이가 한동안 수현이를 입 밖에 못 내더라. 딸은 모태신앙이었는데 참사 후 하나님은 없다 했다. 수현이 오빠가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거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수업 중에 자꾸 다른 책을 읽었다. 왜 그러느냐니까 “내일 죽을지도 모르잖아. 지금 안 읽으면 모르고 죽잖아.” 그랬다. 수현이 오빠를 며칠 만에 찾았냐 하길래 일주일쯤이라 했더니, 배 안에서 하루만 살고 죽었으면 좋겠다더라.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럽고 무섭고 춥고 보고 싶고 그랬겠냐고. 딸아이는 여주로 고등학교를 갔는데, 어느 날 택시 기사가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안산이라 했더니 ‘세월호!’ 라며, “말 잘 듣는 애들은 가만히 있어서 다 죽고, 말 안 듣는 애들만 살았다”라고 하더란다. 아이가 “그 기사를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라면서, 그 자리에서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세월호의 기억은 여전히 아이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있었다.
     
     
    시민 활동가로서 바쁜 중에 4.16 합창단 활동도 한다.
     
     
    4.16합창단 공연장에서 얼쑤 가족(왼쪽부터 친언니 만주벌판, 얼쑤님 어머니, 얼쑤)과 단원고 2학년 5반 이창현 군 엄마 최순화님 / 사진출처: 얼쑤
     
     
    4.16합창단이 생길 때부터 마음이 갔는데 몇 년 전에야 결합했다. 친언니 ‘만주벌판(별명)’도 단원이다. 좋은 목소리와 건강한 정신을 주신 엄마도 합창단 행사로 자주 본다. 아픔이 있는 곳에서 노래로 폭넓게 연대하니 참 좋다. 최근엔 전태일 의료 센터 건립을 위한 공연도 했다.
     
     
    현재 가장 마음 쓰는 활동이나 고민도 좀 나누자.
     
     
    2025 안산YWCA 김미숙 회장(얼쑤) 취임식이 진행되었다. / 사진출처: 얼쑤   
     
     
    아무래도 YWCA 회장이라는 중책이 마음 쓰인다. 지금 회원 증모 기간인데, 이걸 내가 잘 못한다. 대신 남편이 평생회원에 가입하게 했고, 내년에 우리 딸 돈 벌면 평생회원 가입시키려 한다. YWCA는 기독청년여성회(Young Women Christian Association)이다. 나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 신앙이 왜 필요한가, 계속 질문한다. 내가 나가는 교회와 한국 기독 교회들이 정말 예수를 따르는지, 세상의 빛과 소금인지,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을 때 함께 좋아해 주는가, 의심스러웠다.
     
    남편은 교회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내가 “왜 교회를 비판하지 않아?”라고 하면 그는 "나는 좋은 것만 들으려고해, 부분적으로 동의되지 않는다 해서 굳이 기분나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라는 식이다. 답답함을 느끼지만, 그 말이 또 틀린 건 아니다. 나는 일부 교회가 없어져도 된다고 본다. 교회 안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게 아니니까. 헌금도 교회 말고 사회로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인데, 남편은 다르다. 그가 우리 가정의 주 수입을 담당하니 내 뜻대로 할 수 없다. 내 수입은 사회로 12조 13조도 낸다. YWCA가 있어서 사회 정의나 연대의 갈증이 해소되고 내 신앙을 이어가는 거 같다.
     
     
    YWCA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좋아하는군요?
     
    그렇다. 7월 초 YWCA 신입 직원 교육이 있었다. 작년에 못 해서 올해 교육 대상이 꽤 많았다. 사람들은 삼성이나 SK에 입사 지원할 때 그 회사에 대해 공부한다. 그런데 모 법인에 대해서는 모르고 오는 사람이 태반이다. 회장으로서 YWCA의 100년 역사와 안산YWCA의 40년 역사를 강의하며, “YWCA를 알고 나면 내가 참 좋은 기관에서 일하고 있구나, 자부심을 느낄 거예요.”라고 말해 줬다. YWCA가 교회는 아니지만, 이젠 교회보다 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목소리와 행동을 계속해야 한다.
     
     
    안산YWCA 소속으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 얼쑤님 모습 / 사진출처: 안산시민사회연대, 4.16안산시민연대
     
     
    YWCA 회장으로서 자부심 뿜뿜인데, 어려움은 없는지?
     
    역사 인물 최용신 선생은 안산의 자랑이자 YWCA의 자랑이다. YWCA에서 공부하고 농촌 계몽 운동(을) 하셨는데, YMCA로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 최근에는 내가 어느 단체에 가니 안산 YMCA에서 오신 얼쑤라고 소개를 해서 ‘YWCA’라고 바로잡곤 한다. 최용신 기념관 관련 기사에도 몇 년에 한 번씩 YMCA라고 나온다. 재작년에도 메일로 항의했다. 시에서 발행한 책자도 스티커로 다 수정하게 한 적 있다. 남성이 디폴트인 사회라 여성 단체를 더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얼쑤 / 사진출처: 얼쑤
     
     
    ‘회장님’, ‘이사님’ 호칭 보다 ‘얼쑤’가 좋다. 사람들은 ‘얼쑤’ 말고 ‘회장 김미숙’을 쓰라 한다. 공적인 자리에서야 어쩔 수 없지만, 활동가로서는 ‘얼쑤’가 편하다. 지금까지의 내 활동을 보고 “대단하다, 기왕이면 학위를 좀 업그레이드해서 더 많이 강의하고 돈도 더 받아봐”라고 말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러면 지역에서 적은 돈만 줄 수 있는 데서 누가 활동하나.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더러는, “왜 그렇게 활동이 많냐", “정치할 거냐” 한다. 정치하란 말은 10년 전부터 들었지만, 내 대답은 같다. 너무 열심히 하다 병나서 죽을 거라고. YWCA 회장만으로도 ‘거룩한 부담감’이 큰데 더는 아니다.
     
    효순이 미선이 저금통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우리 딸이 재작년엔가 “엄마 생일 선물 뭐해줄까?” 하다가 “엄마는 물건은 안 좋아하니까 엄마 이름으로 기부해 줄게.” 그러더니 효순이 미선이 평화공원 짓는 데 딸이 5만 원을 기부해 준 적 있다.
     
    그때그때 마음 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위해, 내 할 만큼만 한다.

    

     
     
     
    “회장님”보다 활동가 “얼쑤”가 좋아요!
    꿀벌

    조회수 211

    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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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 흘리는 도시, 안산
     
    안산은 땀 흘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공장들, 쉼 없이 돌아가는 일터들이 밀집해 있고,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 속에서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삶의 안전망이 필요하고, 서로를 보듬는 손길이 절실한 곳이기도 하지요. 누군가는 오늘도 혼자서 무너져가는 집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누군가는 아이 손을 잡고 차가운 방에서 내일을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2015년 3월 22일, 한 알의 씨앗
     
    바로 그런 고민에서 시작된 단체가 있습니다. 이름도 마음도 따뜻한 곳, '사단법인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 공제회 좋은 이웃'입니다. 어느 날 좋은 이웃 회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언제까지 단순히 '요구하는 존재'로만 머물러야 할까요? 우리도 스스로 나누고 실천하는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시 창립을 함께한 김태환 님의 이 말이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동자 봉사 단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준비모임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특별한 것 없었습니다. 미용사, 전기 기술자, 페인트공, 배관공… 화려한 재능이라기보다는 삶에서 익힌 '직업'의 손 기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에서 익힌 이 기술들이 누군가에겐 삶을 다시 세우는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2016년 4월, 첫 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단체가 바로 '따숲네'입니다. 이름처럼, 따뜻한 숲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따숲네 봉사모임 단체사진 / 사진출처: 따숲네
    따숲네 신미향 회장 / 사진출처: 따숲네
     
     
    저는 참여할 생각이 없었어요.
     
    지금은 따숲네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미향 님도 처음엔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봉사는 시간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로 생각했죠. 저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마음도 몸도 바쁘게 살고 있었거든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일상. 남을 도울 여유 같은 건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그녀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어르신 염색 좀 도와줄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어요. 오래된 미용사 자격증이 있었거든요. 한 번쯤은 괜찮겠지, 하고 갔죠. 그날, 그녀는 오랫동안 방치된 머리카락으로 인해 움츠러들어 있던 할머니의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정리해 드린 후 거울을 보며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얼굴 또한 봤습니다. 그 모습에 오히려 제가 행복해졌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어느새 계속 함께하고 있더라고요." 봉사는 여유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녀는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봉사의 숨은 뿌리들.
     
    현재 따숲네는 약 50여 명의 회원이 있으며, 그들 대부분이 여유롭지 않은 생활을 하지만 이 작은 마음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운영비는 회비와 다양한 지원 사업, 노동조합과 지역단체의 기부금으로 마련됩니다. 고대 병원, 삼화페인트, 서안산 로터리클럽 등에서 정기적으로 후원과 봉사를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예전엔 당근 마켓을 뒤져가며 물품을 구했어요. 싼 가전, 헌 가구를 수리해서 썼죠. 요즘은 좀 여유가 생겨 가구당 100~150만 원 정도는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해 드립니다."
     
    1년에 8번, 여름(7, 8월) 과 겨울(12, 1월) 을 제외한 시기에 봉사가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누적 80여 회. 정기적으로 모이는 봉사자 수는 평균 15명 정도. 따숲네 회원들 외에도 4.16 가족, 청년 조직 마니또, 삼화페인트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도배, 장판은 뜻을 함께하는 사장님이 비용을 최소화해 도와주고, 전기, 청소, 정리, 정돈은 회원들이 직접 나섭니다. 상황에 따라 가전과 가구를 새로 들여놓기도 합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돈으로 주세요"라는 말.
     
    "우리의 진심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사진만 찍고 가는 거 아니냐?', '형식적으로 왔다가 대충 하고 가는 거 아니냐?'라며 차라리 돈으로 달라는 경우도 많았죠.“
     
    세상에 차가운 바람이 많이 불어서, 따뜻한 손길마저 의심하게 된 사람들이 있죠. 그것이 봉사자들에게는 가장 큰 상처였습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의 집을 찾았다가, 독립한 자녀의 반대로 하루 전날 취소된 적도 많습니다. 경계의 눈빛. 의심의 말투. 하지만 봉사자들은 그 모든 것을 견디고, 결국은 바꿔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다해, 손을 보태면… 그들의 표정이 달라져요. 고마움, 안도, 환함. 그걸 보면 우리도 변해요. 그게 봉사의 기쁨이에요."
     
    의심이 신뢰로, 경계가 감사로,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바뀌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따숲네 사람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건, 아이들의 웃음이에요"
     
    대상자는 드림스타트, 장애인 단체, 동사무소 등에서 소개받습니다. 요즘은 다양한 가족형태가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고, 청소와 정리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아이들이에요.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시기에 방치되어 있죠. 건강도, 정서도 위험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따숲네는 단순히 집을 고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젊은 봉사자들이 아이들과 놀아주고, 멘토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달라집니다.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그 웃음소리가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거예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면, 보호자들의 얼굴도 조금씩 밝아집니다. 그렇게 한 가정이 조금씩 회복되어 갑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기억에 남는 집.
     
    "시각 장애인의 집이었어요. 집 전체에 곰팡이가 가득했죠. 보이지 않으니, 본인도 몰랐던 거예요." 그 집에 들어선 순간, 봉사자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시각 장애인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했습니다.
     
    "도배, 장판을 새로 하고 화장실을 청소하는데 냄새가…, 말 그대로 전쟁이었죠. 바퀴벌레가 떼로 몰려다니는 집도 있었어요. 소리 지르고 도망치며 청소했어요. 그 집들은 이제 깨끗하게 변했답니다.“
     
    나는 그,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이 담겨있는지, 신미향 회장의 상기된 표정을 보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따숲네가 바라는 것.
     
    "기부와 봉사, 저도 처음엔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군요.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신미향 회장 역시 한 부모로 아이를 키웠고, 한때 전구 하나 못 갈아 어둠 속에서 살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땐 누가 전구 하나만 갈아줬으면 좋겠다, 그랬거든요. 지금은 따숲네가 전구를 갈아드려요. 봉사가 끝난 뒤에도 연락해 주시면 언제든지 달려갑니다."
     
    자신이 받고 싶었던 작은 도움을, 이제는 누군가에게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따숲네의 가장 큰 바람은 젊은 사람들의 참여입니다.
     
    "살기 어려워서겠지요. 그래도 한 번만 용기 내어 오셨으면 좋겠어요. 매달 아니어도 괜찮아요. 시간 날 때, 마음 동할 때 오시면 됩니다. 부담 없이 오셔서, 따뜻한 숨결을 함께 나눠주세요."
     
     
      
    사진출처: 따숲네
     
     
    따뜻한 숲이 되다.
     
    이름 없는 손길들이 모여 만든 숲. 그곳에선 오늘도,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너져가는 집이 따뜻한 보금자리로 바뀌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희망을 품게 되고, 혼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변화의 이름은 바로 '따숲네'입니다.
    따뜻한 숲처럼, 지친 사람들에게 쉼을 주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절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
     
    그곳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전구를 갈아주고, 누군가는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누군가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봉사는 여유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따숲네 회원들은 삶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뜻한 숲, 따숲네. 그곳에서 오늘도 사랑이 자라고 있습니다.
    
     

     
     
     
     
    따숲네, 따뜻한 숨결을 나누는 사람들
    윤작가

    조회수 645

    202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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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이 선출됐습니다. 4월 4일 탄핵이 선고된 이후 약 2개월의 짧고도 긴 국정 공백기의 마침표가 찍혔는데요. 무엇보다 45년 만의 비상계엄이라는 정치적 긴장과 혼란 속 이루어진 선거라는 점에서 국민과 정치권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동시에 법사위 청문회,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대선 후보별 유세 발언 등의 중대 국면에 이례적인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기도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최종 투표율 79.4%를 기록하며 15대 대선 이후 28년 만에 최고 투표율을 기록하였습니다.1) 이에 대한민국 정치사의 중요한 분기점에서 뜨겁고도 무거웠던 민심이 표현된 선거 현장을 돌아보며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습니다.
     
     
     
    (왼) 사전 투표소, (오) 본 투표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경기도 양주시 옥정 2동의 5월 30일 사전 투표소와 6월 3일 본 투표소를 방문하였습니다. 에디터도 먼저 투표에 참여한 후 13명의 시민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민주주의를 학습한 세대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해 온 세대를 포함하는 20~70대 시민을 아우르며 폭넓고 균형 잡힌 정치 참여에 대한 시각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이후 세대 흐름을 고려해 2·30, 4·50, 6·70대로 연령층을 묶은 후 각 세대별 인식을 비춰 볼 수 있는 세 분을 중심으로 정치에 대한 인식, 민주주의의 의미, 선거의 상징성 등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을 기록하였습니다. 
     
     
    ※ 다음의 인터뷰는 녹음을 기반으로 가명을 사용해 정리하였고, 발언의 취지는 유지한 채 표현 방식만 다듬거나 편집자 판단에 따라 주요 발언을 인용해 재구성했습니다.
     
     
    1. 이전 선거와 달리 이번 선거를 치르고 느낀 소감은 어떠셨나요?
    (이공익.25세) - 유권자들이 후보 공약의 중요성을 덜 느낀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로 제 또래들이 생각보다 후보 공약에 집중하지 않고 인터넷 여론에 치중을 많이 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또한 혐오를 드러내는 행동들이 보일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최미연.42세) -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기에, 무언가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민수.60세) - 지금의 정치적 혼란을 투표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 매번 선거에 임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시나요?
    (이공익.25세) - 내 소중한 한 표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기에 반드시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 지 얼마 안 됐기에 여성분들이 투표에 활발히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최미연.42세) - 자식들과 미래를 위한 마음으로 늘 투표에 임했습니다.
    (강민수.60세) - 이전에는 잘하는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고, 혹여 아니더라도 맞춰가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유권자의 판단이 더욱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3. 사전투표 첫날의 투표율이 19.5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만큼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세상을 꿈꾸며 투표에 참여하셨나요?
    (이공익.25세) -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의사 표현하며 특히 여자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이들이 안전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투표하였습니다.
    (최미연.42세) - 우리 사회가 가짜 뉴스도 많고 색깔론으로 너무 나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사라지고 정치적 갈등이 해소됐으면 좋겠습니다.
    (강민수.60세) - 부모 세대보다는 우리 후 세대들이 살만한 세상을 꿈꾸며 투표하였습니다. 저는 87항쟁의 주역이었습니다. 과거의 민주화운동을 통해 사회가 진보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12월 3일 이후 우리 사회가 마주한 현실을 깊이 성찰하며 투표에 참여하였습니다.
     
    4.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광장에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이를 보면서 느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평가해 주실 수 있나요?
    (이공익.25세) -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습니다. 광장에 모인 각각의 시민들에게 어려운 결정일 수도 있는데 국민으로서 당연하게 나서야 한다는 태도가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이 없으면 나라도 없는 거니까요!
    (최미연.42세) - 놀랄 정도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자긍심이 솟기도 하였습니다.
    (강민수.60세) - 100점 이상입니다. 뒤에 서서 지켜보는 것이 아닌 누구나 나서서 민의를 전달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직접 하고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또한 이를 표현하는 것이 비폭력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며 선진화된 민주주의 의식의 가치가 실현되는 현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5. 20/40/60대 시민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와 투표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공익.25세) - 20대는 투표를 처음 하거나 몇 번 경험한 세대입니다.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더욱 가지거나 혐오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미연.42세) - 투표는 국민이 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고 전반적으로 언행일치가 되는 후보들이 당선되는 것에서 제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민수.60세) - 사실 민주주의를 완전히 구현하는 표현 방식은 한계도 존재할 수 있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투표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이런 수단이 작동이 잘 안될 때 광장에 나가서 목소리를 낼 수도 있죠.
     
    6.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태도나 행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공익.25세) -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혐오를 접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미연.42세) - 지역감정을 버리고 젊은 세대들을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민수.60세) - 뜻이 다른 상대의 의견도 들어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약속입니다. 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정치적 혼란을 만듭니다. 시민과 정치세력 등 모든 사회 구성원이 나라의 시스템을 움직이는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7.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나 공공기관들도 어떤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공익.25세) - 용기 내서 말하지 못하는 민의를 모아서 전달하는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관련 시민 운동을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특히 시민단체가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인터넷으로 홍보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최미연.42세) - 국민을 대변하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관련 설문조사도 자주 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매체가 되길 바랍니다.
    (강민수.60세) - 우선 만들어진 목적에 충실해 적극 활동해야 합니다. 사회가 이를 원할 시 자연스레 융성시키고 원하지 않으면 저절로 쇠퇴하게 할 것입니다.
     
    8. 우리 사회가 국민의 목소리를 잘 반영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이공익.25세) - 서로 달라도 경청하고 수용하려는 태도와 정부, 지자체, 시민사회가 국민의 정치 참여도를 올릴 수 있게 가깝게 다가오길 바랍니다. 예로 학교에서 청소년이나 대학생에게 정부와 지역사회의 좋은 활동을 소개하거나 체험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지역센터에서는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노력을 하길 바랍니다.
    (최미연.42세) - ‘소통’이 중요합니다. 특히 매일매일 소통한다는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민수.60세) - 과거 공직사회가 국민들의 1-10까지의 기본적인 요구를 해결했다면 현시대는 매우 복잡해 1.5, 3.75 등의 다양하고 세부적인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각지대를 소외하지 않고 폭넓게 대변하는 조직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표하는 시민의 모습 / 출처 : Pixabay © geralt
     
     
    이번 선거는 단순히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절차를 넘어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체감하고 참여하는지 여실히 보여준 시간이었습니다. 투표에 숨겨진 현장의 목소리는 정치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일상의 선택과 행동에서 비롯됨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선거를 준비하며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스스로 다양한 사회적 의제와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 참여하며 온 오프라인에서 활발히 토의하고 연대하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를 집단적인 퍼포먼스와 상징으로 만들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승화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약 7개월간 펼쳐진 빛의 물결로 불린 ‘응원봉 집회’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등장한 독창적이고 자발적인 집회 형태는 단순히 즐기는 K-POP 문화가 아닌 비폭력·비 대립, 세대 통합, 시민 주체성 등의 가치를 전달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정치적 위기 상황을 꺼지지 않는 LED와 풍자하는 피켓으로 극복하며 지속적인 주권 의지와 해학적인 면모를 선보였기에 큰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 여의도 국회 응원봉 집회를 담아낸 일러스트 / 출처: AI 기반 도구를 활용해 제작
     
     
    기존 시민 주도 활동도 능동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전형적인 소셜 미디어 캠페인, 거리의 발언, 지역 커뮤니티의 활동 등이 이어졌고 우리 사회는 노동, 환경, 예술 등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들이 교류되고 발전하는 공론의 장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점차 이를 뛰어넘어 국민 청원과 고발장 제출,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의 국민 참여,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토론회 등 실제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신·구의 융복합적인 정치·문화적 현상은 일종의 ‘생활 민주주의’의 형태로 오늘날 민주주의를 탄생시켰습니다.
     
    투표함은 닫혔지만 민주주의는 계속됩니다. 제도적 혼란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스스로 민주 질서를 판단하고 느끼며 한 표를 행사하는 시민들을 목도하였습니다. 특히 개개인의 적극적 참여와 집단적 표현 문화는 향후 일종의 ‘감각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소 실천하며 체득했던 민주적 경험은 선거 결과를 넘어 온몸의 감각으로 남아 후대에 전해지고 민주주의를 진화시키는 불씨가 돼 다가오는 시대에 깊은 여운을 남길 것입니다.
     
    “민심은 물과 같아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방향을 잃은 배를 가라앉히기도 한다.” 다양한 시민들과 소통했던 2일간의 기록은 직접 대의민주주의를 체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무엇보다 극단적인 정치 갈등 속 허무주의를 느끼기보다 작아 보이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투표용지에 주권을 행사하는 시민들을 보며 민심의 무서움과 민주주의가 생생히 살아있어 작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52년부터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선출해 온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하지만 그 이후 민주주의의 정착 과정은 멀고도 험난했습니다. 2024년 12월 3일의 밤과 대통령 선거, 그리고 헌정질서의 의미와 민주주의의 방향에 대해 우리 역사는 어떤 평가를 할까요?
     
     
     
    ▶에디터의 투표 인증샷 /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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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초스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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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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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 다문화도서관, 박서연 관장 인터뷰
     
    안산역 지하보도 2번 출구에서 다문화 거리로 향하는 길. 이곳은 분명 한국임에도 한국어보다 외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골목이었다. 그 길 끝에 마주하는 '모두 어린이도서관'. 몇 번 방문한 경험이 있는 도서관이었다. 이제는 간판만 남은 텅 빈 건물이 되었다. 왼쪽으로 접어들면 새로 지은 공영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 옆 작은 공원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사시사철 외국인들이 모여 카드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일상이 펼쳐진다. 외국인 상담 지원센터 옆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1층에 안산 다문화 도서관이 조용히 문을 열고 있다.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더위 탓인가 도서관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24개국의 책들이 빼곡히 꽂힌 서가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처럼, 이곳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모여들었다. 문 바로 앞 작은 원형 테이블에 아이를 안은 엄마부터 다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 2008년부터 시작된 따뜻한 여정
     
    박서연 관장과의 인터뷰는 도서관 한편에 마련된 작은 책상에서 이루어졌다. "2008년 문을 열고 2015년부터 한양대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첫 마디에서 다문화 작은 도서관의 17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박서연 관장은 이곳에서 3년째 관장을 하고 있었다.
     
    “24개국 책들이 있어요. 중국, 러시아 책들이 제일 많고, 또한 그 두 나라 분이 제일 많이 찾아온답니다.” 책은 일 년에 두 번씩 들어오고, 기증받은 책들도 있다. 희망 도서를 추천하면 구매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기 계발서가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어린이책과 문학 관련 책이 인기다.
     
    "근처에 있던 모두 어린이도서관이 문을 닫으면서 어린이책 비중이 늘어났죠." 그 이야기 속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표면적인 이유는 건물 리모델링이었지만, 도서관이 문을 닫은 지 3년이 넘도록 공사는 시작되지 않았다. "도서관 관장으로서 3년이라는 시간이 조금 아쉬운 대목이죠."
     
    인터뷰 도중 곁에서 지켜보던 중국인 어머니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아이와 저는 모두 어린이도서관에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아침 문 열 때 가서 사서 분들과 같이 퇴근했죠." 외국에서 온 엄마들은 아이와 함께 동화책을 읽으면서 한국어를 익혔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원곡 도서관 안에 있는 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만 출입 가능'이라는 규정 때문에 엄마들이 들어갈 수 없어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 모국어로 찾은 자존감과 안정감
     
    다문화 도서관 이용자들은 여성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에는 중장년 남성 이용자들도 제법 눈에 띈다. 그들은 고단한 노동의 삶 속에서 작은 틈을 내어 책을 읽는다. “밤늦게까지 운영된다면 더 많은 분이 오시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낮에만 운영되고 있어서 노동 현장에 계신 분들이 자주 오시진 못해요.”
     
    나는 궁금했다. 힘든 노동에 지친 그들이 잠을 쪼개가며, 왜 책을 읽는 걸까? 박 관장은 되묻듯 말한다. “만약에 우리가 외국에서 지낸다면 삶이 어떨까요? 뜻 모를 언어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 어딘가에서 한국어를 보거나 들으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그분들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삶 속에서 익숙한 글자, 모국어로 된 책을 보면서 때로는 위안을 얻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다시 찾는 거죠. 다시 말하면 그분들은 모국어로 된 책을 읽으면서 안정감을 느끼고, 무너진 자존감을 채우는 것 같아요." 그들은 타국 생활에서 겪은 수많은 좌절감을 모국어로 된 책을 읽으면서 달래는 것이다. "글이 때로는 힘이 되는 법이니까요." 박서연 관장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 책 이상의 것을 품은 사랑방
     
    ‘도서관 자랑 좀 해주세요’라는 말에 박서연 관장은 잠시 눈을 깜박이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 도서관은 사랑방이에요."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 생활에서 어려운 점이 생기면 그들은 이곳으로 온다. 특히 관공서에 갈 일이 생기면 먼저 도서관에서 직원이나 먼저 입국한 동포들을 만나 정보를 얻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관공서에 가는 일은 저희도 쉽지 않잖아요. 더구나 말도 잘 못한다면 더욱 힘들겠죠."
     
    매일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이곳의 자랑이지만, 공간의 한계는 아쉬운 부분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 많은 프로그램을 하고 싶은데 한계가 있어요. 이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프로그램을 진행하니 많이 앉아도 5명이면 꽉 차요."
     
    나는 개인적으로 10년 전부터 다문화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때로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제가 다녔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간은 한 뼘도 늘지 않았어요. 대신 책은 많이 늘어 보입니다.” 박서연 관장은 책장에 빼곡히 채워진 책들과 늘어난 책장들이 오히려 공간을 더 좁게 만들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 지원 부족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
     
    도서관 이용자는 계속 늘고 있지만 확장은 요원했다. "지원 부족이죠. 요 몇 년 예산이 늘기는커녕 삭감만 되고 있어요." 친구가 근무하는 외국인 복지센터에서도 예산 삭감으로 상담사들을 줄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나의 말에 박 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문화, 다문화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다문화 특성이나 외국인들에 관하여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실이죠. 현재 등록된 외국인 수만 봐도 매년 늘면 늘었지, 줄지 않고 있어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최근 공개한 '2023년 12월 통계 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체류 외국인은 250만 7천584명으로, 전년보다는 11.7% 늘어났다. 이 수치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4.89%에 해당한다. 역대 최다 외국인 수를 기록한 2019년(252만 4천656명) 보다 1만 7천72명 적지만, 비율로는 2019년(4.86%)을 넘어선다.
     
    통상 한 나라의 외국인 비율이 5%를 넘는 경우 다문화사회로 본다는 것을 참고하면 저출생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 절벽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한국이 이제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을 앞둔 셈이다. 2021년 기준 총인구 대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비율을 보면 충북 음성군(15.9%), 경기 안산시(14.2%), 전남 영암군(14.2%) 등 일부 지역에서는 10%를 넘어서기도 했다.
     
    국내 외국인 251만 명…전체 인구 4.9%로 '다문화사회' 목전(종합)
    체류 외국인 수는 2016년 200만 명, 2019년 252만 명을 각각 돌파하다가 코로나19로 주춤했다.
    (출처 한국경제신문. www.hankyung.com/article/202401167927Y)
     
     
     
    - 더 많은 것을 품고 싶은 마음
     
    다문화 도서관이 앞으로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까요? 나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박 관장의 답변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안산보다 더 큰 건물에 장서도 많은 다문화 도서관이 있지만, 운영하는 주체들이 다문화에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일반적인 작은 도서관처럼 생각하고 운영한다는 것이다.
     
    "다문화 도서관은 도서관 이전에 많은 것을 품어야 하고 품고 있어요. 사라진 모두 어린이도서관 이야기할 때 중국인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동화책으로 한글을 배웠다고 했잖아요. 이 모습이 대표적인 다문화 도서관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덧붙였다. "직장에 다니는 외국인들을 위해 저녁에도 운영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중간중간 도서관에 들어오는 이용자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박 관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도서관 입구 한쪽에 마련된 두 개의 책상이 관장과 사서의 자리였다. 책상 둘 곳도 변변치 않은 작은 공간에서, 그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웃고 있었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하는 따뜻한 마음이 그 미소에서 느껴졌다.
     
    좁지만 따뜻한 이 도서관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모국어로 된 책 한 권을 통해 하루의 위로를 얻고 있다. 모국어로 된 책 한 권이 건네는 위로, 작은 원형 테이블에서 나누는 배움의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관심으로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안산 다문화 도서관은 그저 책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선사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오른쪽 박서연 관장. 왼쪽 사서 최유경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안산 다문화도서관, 모국어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
    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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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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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공익활동가들의 만남, 양평에서 열리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공익해봄? 함께해봄! <2025년 공익해봄 프로젝트 캠프>가 6월 6일부터 7일까지 양평 블룸비스타 호텔 &컨퍼런스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캠프는 초여름 남한강의 자연 속에서 청년 공익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익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실천적 활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올해 현충일은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49.42%의 득표율로 당선된 이후 처음 맞이한 연휴였기 때문이다. 많은 인파가 몰린 나들이 차량으로 인해 양평행 도로는 종일 정체가 이어졌고, 참가자들은 예정보다 늦은 정오쯤 행사장에 도착했다.
     
    당초 오전 중에 예정되어 있던 오리엔테이션과 '토닥 첫 만남 및 오프닝'은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로 순연되었다.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오히려 여유와 기대감이 가득했다. 도시를 떠나 낯선 공간에서 처음 만난 청춘들은 서로의 눈빛 속에서 ‘공익’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교감을 형성해 나갔다. 본 캠프는 1박 2일간의 일정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 공익활동의 현장성과 가능성을 모색할 예정이다. 공익활동 시민 기록자로 공익 웹진에 '공익인간'으로 3년째 참여하고 있는 에디터로서, 이번 캠프가 청년 공익활동의 생생한 목소리와 실천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여줄지 더욱 기대가 되며, 이제부터 1박 2일간의 여정을 함께하며 기록한 현장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장의 여는 인사말
     
    캠프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에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유명화 센터장은 참가자들에게 따뜻한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마치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을 기다렸다"라며, 캠프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친해지고 머무는 이 시간들이 특별한 의미로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공익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해봄'이라는 가벼운 실천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며, 참가자들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공익의 개념을 확장해 줄 것을 당부했다.
     
    유 센터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다. 이 캠프를 통해 좋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서로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며, 캠프가 단순한 프로그램을 넘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긴 여정이 될 수 있지만 지치지 않고, 어려운 순간엔 서로 도우며 끝까지 함께 완주하자"라고 전하며 1박 2일간의 의미 있는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경기도 청년, 공익해봄? 함께해봄!으로 모이다
     
    이번 캠프에는 경기도 곳곳에서 활동 중인 청년 단체 및 프로젝트팀 총 7개 팀, 30여 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가나다’, ‘디지털ON기’, ‘몽당&GO’, ‘다시쓸우산’, ‘손으로그리는세상’, ‘인사이트’, ‘한올한올’ 은 사회적 가치를 기반으로 다문화, 지역소멸, 장애, 인권, 디지털 소외, 환경 등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청년 주체들이다.
     
    또한 현장에는 청년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멘토단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센터장, 실무진, 공익활동 아카이브를 담당하는 시민기록자, 미디어팀도 함께했다. 공익활동 시민 기록자로 ‘공익인간’ 필명으로 활동 중인 에디터 역시 동행 취재를 통해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이번 캠프에는 공익 활동에 첫 발을 내딛는 참가자부터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는 청년 활동가까지 다양한 배경의 참여자들이 함께했다. 각자의 사회문제의식을 안고 모인 이들은 낯선 공간에서도 서로에게 열린 마음을 보였으며, 그 설렘은 점차 따뜻한 공감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1박 2일의 여정은 기대와 희망 속에 힘차게 시작되었다.
     
    한 참가자는 "단톡방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며 온라인으로만 알고 지냈던 다양한 참가자들을 드디어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어 기대가 컸다"라며, "막히는 길 위에서도 그런 설렘이 더해졌고, 실제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금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라고 전했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소통하며 연결되다: '평화로운 소통과 임파워링'
     
    첫 번째 시간에는 공익 활동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형성하는 소통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피스 모모’의 활동가 ‘가을’, ‘가지’ 팀이 진행한 '평화로운 소통과 임파워링' 세션은 참가자들이 낯섦과 어색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탐색하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임파워링'은 단순한 자기표현을 넘어, 각자의 감정과 생각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게 하는 과정을 뜻한다. 참가자들은 이 과정을 통해 공익 활동에 필요한 자신감과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관계로 나아갔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참가자들은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카드로 표현하고, 파트너와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또한 '잘 들어주기', '딴짓 연기' 등의 활동을 통해 소통의 질과 방식에 따라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직접 체험하며 경청과 공감의 중요성을 새롭게 느꼈다. "서로 다르다는 것, 어색하다는 것이 오히려 시작점이 될 수 있다"라며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나누는 용기가 중요하다"
     
    이날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며 활동가들은 '공익활동에서의 소통'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연결되는 과정이 진정한 소통임을 강조하며, 이는 곧 공익활동의 근간이자 지속 가능성의 열쇠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참가자들은 빈자리를 함께 돌아보며 '초대의 제스처'를 실습했고, 타인의 존재를 환대하고 기억하는 일이 공익활동가로서 얼마나 중요한 감수성인지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한 활동가는 "소통은 단지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일상의 자세이며, 공익활동은 그 연결의 경험을 실천하는 여정"이라고 정리했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짧은 휴식 시간 동안 참가자들은 준비된 커피와 시원한 음료, 다과를 즐기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담소를 나누었다.
     
    이어서 진행된 두 번째 교육은 ‘내가 생각하는 공익이란?’을 주제로 마을로협동조합 ‘따노’ 대표가 강의를 맡아 공익의 본질과 지역 기반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 전했다.
     
    따노 대표는 공익을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으로 정의하며, 공익은 특정한 제도나 전문성에 의해서만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질문과 실천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공익은 함께 살아가는 삶을 회복하는 과정이며, 정해진 답을 찾기보다 질문을 나누는 과정 자체가 공익”이라고 덧붙였다.
     
    참가자들은 강연을 통해 공익의 개념이 보다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장면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실감하며, 각자의 활동과 연결 지으며 깊이 있는 공감을 나누었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저녁 시간, 멘토 소개와 조별 매칭과 프로젝트 기획으로 이어지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블룸비스타 호텔은 A동부터 D동까지 건물로 나뉘어 있으며, 이번 캠프의 강의실은 A동에, 식사는 D동에서, 참가자들의 숙소는 C동에 마련되어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뚝배기 스파게티와 감자튀김이 제공되어 참가자들의 하루 피로를 잠시 달래주었다. 식사 후 참가자들은 객실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강의실에 모여 저녁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이 시간에는 프로젝트를 함께 이끌어갈 멘토 6명이 차례로 자신을 소개하고, 활동 경험과 각 팀과의 매칭 이유를 공유했다. 멘토들은 사회복지, 환경, 문화기획, 청년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전문가들로, 앞으로 3개월간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실행에 실질적인 조언과 지원을 제공했다.
     
    참가자들은 멘토들의 경험과 조언에 깊이 귀 기울였고, 조별 매칭을 통해 향후 활동을 함께할 동료들과 첫 만남을 가지며 서로의 관심사와 방향성을 공유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가나다팀, 공익의 메시지를 기록과 창업으로 확산하는 꿈
     
    가나다팀은 중장년층을 위한 정신적 웰니스 치유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초기에는 글쓰기 활동을 통해 삶의 경험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접근했지만, 현재는 ‘추억 지도’, ‘라이프 라인 완성’ 등의 맞춤형 기록 서비스로 확장하며 더욱 실질적인 솔루션을 준비 중이다.
     
    이들은 가천대학교 창업학과 재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교 기반의 네트워크를 통해 기획과 실행을 병행하고 있다. 한 팀원은 “공부하면서 쌓은 이론을 실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실천하고 싶었다"라며, “세상에 이로운 일을 널리 퍼뜨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익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팀원은 “공익은 추상적인 개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캠프에서 실무자들의 경험과 다양한 접근 방식을 들으며 공익활동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라며, “명확한 아웃풋과 임팩트를 남길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가나다팀은 이번 캠프를 통해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며, 공익 창업이라는 실천을 통해 지속 가능하고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인라이트 인권을 향한 관심, ‘장애인 인권’으로 구체화되다
     
    인라이트 팀의 정재원 팀장은 대학 재학 중 인권 동아리 활동을 통해 인권의 현실과 한계를 체감하며 더 넓은 사회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인권에 대해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활동을 하다 보니 내가 얼마나 몰랐는지를 깨달았다"라며, “그래서 이 주제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공익해봄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정 팀장이 이끄는 인라이트 팀은 ‘장애인 인권’, 그중에서도 특히 ‘배리어 프리(barrier-free)’에 대한 인식 확산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그는 “지체장애인은 직접 불편함을 말할 수 있지만, 지적장애인의 경우 표현이 어려워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라며, “우선 배리어 프리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적 제안까지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사람들이 ‘배리어 프리’라는 개념 자체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그 배경과 해결 방안을 탐색하며 프로젝트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번 캠프를 통해 정재원 팀장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공익활동가들과의 만남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고 밝혔다. “생각의 깊이나 활동의 수준이 높은 분들을 만나면서 계속 질문하고 대화를 나눴다"라며, “그들의 신념을 들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공익의 영역도 확장되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익활동은 직접적인 이익이 보이지 않아 열정을 잃기 쉬운 일”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확실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향후에는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며 개발도상국이나 빈곤 계층 등 글로벌 이슈에도 적극 참여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디지털 온기, 광명에서 공익의 첫걸음을
     
    디지털 온기팀은 디지털 취약계층인 어르신들을 위한 키오스크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팀명에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따뜻함(온기)을 전하겠다는 다짐과, 디지털을 ‘켜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 ‘ON’을 결합한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광명을 기반으로 활동을 시작할 예정인 이들은 지역 내 복지관 또는 경로당을 이용하시는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7월부터 프로그램을 실현할 계획이다. 팀원 3명은 모두 대학생이지만, 각기 다른 전공과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복지와는 직접 관련 없는 학문을 전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전적으로 공익활동에 나서고 있다.
     
    한 팀원은 “사실 우리 팀은 공익 활동 경험이 풍부하지 않지만, 그만큼 더 많이 배우고 적용해 보려는 열정을 갖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에게도 도전이자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다. 캠프를 통해 공익의 개념을 직접 체감하고 있다고 덧붙이며, “공익이라는 단어가 막연하게 느껴졌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더 가까운 실천으로 다가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캠프에서 “공익의 첫걸음을 함께 내딛는다는 의미가 크다"라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책임감과 기대감을 함께 표현했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밤 9시가 넘어서도 강의실에는 열기가 이어졌다. 멘토와 멘티들은 조별로 모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토론을 이어갔고, 모두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에디터는 쏟아지는 눈꺼풀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자리를 떴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열띤 대화를 나누는 참가자들의 모습에서 이 캠프가 지닌 진정한 에너지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캠프의 하이라이트, 프로젝트 기획 발표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다음 날 아침, 밤늦도록 토론과 회의를 이어간 참가자들을 위해 센터에서는 과일 컵과 샌드위치,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센터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참가자들은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캠프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일정인 프로젝트 기획 발표가 이어졌다. 각 팀은 멘토와 함께 준비한 기획안을 발표하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다른 팀과의 차별점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표 시간은 단순한 공유를 넘어, 청년 활동가들이 실질적인 공익 실천을 위한 방향을 모색하고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의미 있는 자리로 구성되었다.
     
    참가자들은 서로의 발표에 대해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적어 전달했고,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팀에는 스티커를 부착해 '공감팀'을 선정하는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되었다. 스티커를 가장 많이 받은 팀은 현직 교사들로 구성된 ‘몽당&GO’ 팀으로, 다문화 가정 아동을 위한 교육 콘텐츠 제작과 문화 체험 기획을 통해 지역사회 내 포용과 연대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아이디어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센터에서는 준비한 소정의 선물과 함께 축하의 박수를 전하며 특별한 시상식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박수를 보내며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따뜻한 분위기를 함께 나눴으며, 실현 가능성과 확장성, 공익적 가치 등을 중심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발표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질문을 주고받으며, 협력과 연대의 가능성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몽당&GO 팀, 다문화 아동을 위한 따뜻한 공익 실천
     
    현직 교사들로 구성된 ‘몽당&GO’ 팀은 다문화 가정 아동을 위한 교육 콘텐츠와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공익 실천을 펼치고자 한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근무 중인 이들은 “학교 현장에서 다문화 아동들이 방과 후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교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아이들과의 추억 쌓기를 위한 문화 체험 기획, 교육 콘텐츠 제작 외에도 봉사자(교사) 스스로도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활동 매뉴얼 키트나 놀이 프로그램 등을 함께 개발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또한 이번 캠프를 통해 “기존에 여덟 명으로 시작된 소규모 팀이었지만, 이 취지를 함께하는 교사 네트워크 170명의 회원들과 공유해 더 큰 연대로 확장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이번 프로젝트가 잘 정착해 후속 활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이어지는 여정: 공익 프로젝트 추진 일정
     
    이번 캠프는 단발성 행사가 아닌, 이후에도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참여자는 모집을 통해 선발되었으며, 4월 말까지의 면접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되었다. 5월 10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정이 열렸다. 1박 2일간의 캠프(6월 6~7일)를 기점으로, 이후 6월 28일과 7월 중순에는 두 차례의 역량 강화 교육이 예정되어 있으며, 본격적인 프로젝트 수행 기간은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이다. 성과 공유회는 10월 중 열릴 예정이며, 이 모든 과정은 6월부터 9월까지 멘토링이 병행되어 청년들이 실제 현장에서 공익활동을 설계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처럼 2025년 공익해봄 프로젝트는 단순한 캠프를 넘어, 약 6개월에 걸친 실전형 청년 공익 프로젝트 육성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캠프의 마무리, 참여자들의 따뜻한 소감으로 마침표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캠프의 마지막 시간, 참가자들은 돌아가며 이번 경험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다.
     
    “불필요한 일정이 하나도 없고 모든 프로그램이 알찼다”
    “다양한 사람들과 공익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야가 넓어졌다”
    “이타적인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등의 진심 어린 반응이 이어졌다.
    특히 여러 참가자들은 “단순한 네트워킹을 넘어 진심을 나누는 연결의 장이었다"라며, “이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라고 입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센터장은 “이번 캠프가 단순한 체험이 아닌 인생의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라며, 향후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에 큰 기대를 보였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공익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위한 작고 지속적인 실천에서 출발합니다. 공익해봄 프로젝트 캠프가 열린 양평에서의 1박 2일은 그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여정이었습니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이 곧 공감이 되었고, 공감은 연대로 이어졌습니다. 그 여정의 기록을 함께 할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이 캠프에서 피어난 연결의 씨앗이 더 넓은 사회 속에서 자라나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공익인간’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현장스케치] 공익해봄? 함께해봄! 2025년 공익해봄 프로젝트 캠프
    공익인간

    조회수 396

    202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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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한 말이다. 5.18민주화운동 이야기인 《소년이 온다》를 쓸 때 그와 함께 한 질문이라 했다. 그 책을 쓰는 동안만의 질문이었을까. 지난 5월 17일(토) 광주의 5.18전야제를 다녀오는 동안 내게도 살아 있는 질문이었다.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45년 전의 광주가 오늘 대한민국을 구하고 있었다. 총칼이 아니라 노래와 시로, 춤과 연극으로 연대하는 민주주의 대축제였다.
     
    부끄러운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1980년 5월에 나는 대구에 사는 여고 2학년이었다. 당시 TV 화면에 나오는 광주는 ‘폭도’와 ‘빨갱이’의 도시였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광주는 두려운 ‘벽’이었다. 독재와 냉전 시대 교육에 길든 아이가 광주의 진실을 마주하기까지는 20년이 더 걸려야 했다.
     
    제45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로 올해도 광주를 다녀오는 복을 누렸다.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4.16합창단으로서 ‘민주주의 대합창’ 공연에 서는 덕분이었다. 구묘역 신묘역을 방문하고 5.18민중항쟁기념행사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전야제도 즐길 수 있었다. 올해는 18일 밤까지 1박 2일로 확대 진행된 전야제를 하루만 보고 돌아온 게 아쉽다. 5.18 민주 광장, 동구 금남로 1~3가 차 없는 거리, 동구 중앙로 일대는 시민 참여 부스 물결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질 때마다 누구라도 목청껏 함께 부르는 축제였다.
     
     
    행사장 일대 사진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
    17일(토) 오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추모식부터 소개하고 싶다. 안산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해 구묘역을 들르고 신묘역에 도착했을 땐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주최 주관하는 추모식은 끝나고 있었다. 식전 공연으로 놀이패와 장애인 예술단의 공연이 있었고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전통 제례 의식을 마친 전통 한복을 입은 분들을 볼 수 있었다. 2부 순서인 국민의례로 시작하는 추모식(10시 30분)은 내빈 소개, 추모사, 유가족 대표의 인사가 있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헌화와 분향이 있었다.
     
    추모식에서 가장 소개하고 싶은 순서는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5·18민주화운동 추모 시 낭송 퍼포먼스’였다. 광주시낭송협회 사람들이 5·18 광주 추모 시를 모아서 한 편 한 편 낭송하는 공연이었다. 오월 광주를 추모하되 시와 음악으로, 피로 쓴 민중항쟁의 역사가 노래와 시로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이창병의 ‘망월동에서’ 첫 자락을 보자. “광주 금남로에서/ 이 나라 최후의 거리마다 쓰러진 넋들의 통곡은/ 우리들의 침묵 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고정희는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라고 읊었다. 김준태의 ‘오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는 광주일보(구 전남일보) 1980년 6월 2일 자 조간 1면에 실렸던 시다. 계엄 당국의 검열에 기자들이 사표로 저항한 그 시였다.
     
     

     
     
    “우리는 사람이 개처럼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신문에는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45년 전 전남일보 기자들의 그 절규가 시로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끝나지 않는 오월 다시 찾은 민주주의 당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80년 오월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와 노래로 하는 기억의 다짐이었다.
     
     
    민주주의 대축제 대합창
    3부로 구성된 민주주의 대축제 5·18전야제는 지정남 배우가 진행했다. 1부 ‘오월광주 환영대회’는 오월길맞이굿을 시작으로 금남로에 집결하는 수만 명의 민주 평화 대행진 대열을 노래와 춤으로 환영하는 행사였다. 2부는 ‘민주주의 축제’로 뮤지컬과 노래로 꾸며지고 3부는 ‘빛의 콘서트’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비롯한 노래 밴드들의 무대였다. 전야제 중앙무대는 금남로 4가역 교차로에 설치되고 양방향으로 여러 개의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내가 416합창단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 대합창’ 공연은 17일(토) 오후 3시 반에 시작했다.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였다. 서울 부산 안산 광주 등에서 온 7개 시민합창단이 개별 공연으로 두 곡씩 부른 후 대합창단으로 함께 두 곡을 불렀다. 광주는 광주였다. 7개 합창단 중 푸른솔합창단, 1987합창단, 광주흥사단합창단 3개가 광주 소재 합창단이었다.
     
     
    박종철 합창단(부산) /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1987합창단(광주) /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7개 민주주의 합창단이 함께 대합창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전가'를 불렀다. / 사진출처: 4.16합창단
     
     
    푸른솔합창단(광주): 2015년 6월 ‘합창’을 통해 민주 인권 평화로 상징되는 ‘광주정신’을 전달하고, ‘광주공동체’의 희망을 노래하고자 창단했다. 2017년, 2018년 창작 뮤지컬 ‘빛의 결혼식-임을 위한 행진곡’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615시민합창단(서울): 2009년 8.15행사 공연을 시작으로, 민족의 역사와 겨레의 삶에 수많은 아픔을 안긴 분단 장벽을 허물고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창단했다.
    1987합창단(광주): 광주 전남의 1980년 5.18민중항쟁의 불꽃을 1987년 6월 항쟁의 횃불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헌법을 쟁취한 그 뜻을 노래와 합창으로 계승하고자 2018년 창단했다.
    광주흥사단합창단(광주):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민족운동 단체 흥사단. 독립운동, 대한민국의 민주화, 청소년 계몽, 육성 운동으로 2017년 3월 창단, 형화와 자유를 노래한다.
    박종철합창단(부산):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와 6월 항쟁의 정신을 기리고, 시민문화운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2016년 8월 16일 창단했다.
    416합창단(경기 안산):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일반 시민으로 2014년 창단됐다. 소외와 불의, 불평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에 함께 한다.
    이소선합창단(서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의 영결식을 계기로 2011년 결성된 노동자 합창단이다. 서울시로부터 2020년 전문예술 단체로 지정받았다.
     
     
     
    민주주의 대합창에서 불린 노래 제목을 소개해 본다. 아, 민주정부/ 무궁화/ 다시 만난 세계/ 타는 목마름으로/ 죽창가/ 깍지손 평화/ 그날이 오면/ 죽순밭에서/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개벽/ 껍데기는 가라/ 인간의 노래/ 돌덩이/ 오월의 노래2/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체 합창단이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전가’를 불렀다.
     
     
    <봄의 겨울, 겨울의 봄> 뮤지컬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출처: 뉴시스
     
     
     
    전야제 2부 순서를 연 뮤지컬 <봄의 겨울, 겨울의 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80년 봄과 2025년의 겨울이 중첩되는 판타지 스토리의 뮤지컬. 공연은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선포됐다.”를 반복해 부르면서 시작했다. 이어서 “2024년 12월 3일 도시를 통제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겠다고 계엄령이 선포됐다.”라는 가사는 45년 광주와 현재의 서울을 관통하는 ‘계엄’을 보여 주었다.
     
    “응 엄마, 나? 여의도 가는 길.”
    “응 여보. 걱정 말게. 서울 다 와 부렀어. 아 어치게 가만히 있나. 국회 앞에 탱크가 처들어와부렀다는디!”
     
    이어서 노래한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거리에는 탱크부대가. 상상해 본 적 없어. 이런 세상이 다시 올 거란 걸.”
     
    그랬다. 45년 전의 그 계엄령 세상이 21세기에 다시 올 줄은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추운 겨울이 더욱 추워질지도 모른다”라고 노래하면 “안 돼! 우리가 만든 나라야”라고 화답했다. “어떻게 가만히 있어. 학교에서 배웠는데. 나도 다 알아. 이거 5·18 때랑 똑같은 거잖아. 우리도 광주 사람들처럼 나서야 되는 거잖아.”라고 젊은 여성이 외치면 “어쩌면 다시 봄이 오지 않을지 모른다”라고 노래했다. 현재와 과거를 노래와 춤으로 연결해 주었다. 1980년 오월은 2024년 12월이 되었고, 광주의 영령이 오늘의 우리를 구했음을 알렸다.
     
    가수 이은미가 작곡가 김형석이 해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광주에서 사람들과 같이 부르고 싶었단다. ‘서른 즈음에’, ‘가슴이 뛴다’ 그리고 ‘애인 있어요’를 열창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서 일까, 시종 가슴 뭉클하고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작곡가 김종률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찬사 그리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담아” 작곡했다고 했다. 5·18전야제 브로슈어의 글을 옮겨 본다.
     
     
    민주항쟁의 연원 오월광주로 연어처럼 몰려오는 민주시민들.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하는 오월 광주 공동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금남로에서 새로운 세계를 전망하다.
    항쟁의 연원 5·18: 계엄의 밤, 장갑차 앞을 맨몸으로 가로막은 시민들의 용기는 광주 시민군의 헌신이었습니다. 남태령의 새벽, 고립된 농민들을 끝내 지켜낸 연대의 마음은 오월 어머니들의 사랑이었습니다. 한남동의 눈보라를 맞으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낭만은 민주대성회의 횃불이었습니다.
    승리의 약속 5·18: 오월의 기억으로 내란과 맞서 싸우고 있는 국민들이 민주주의 승리의 염원을 안고 광주로 달려올 것이며, 광주 공동체가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내란 청산과 민주 승리를 약속하는 축제를 펼칩니다.
    미래의 표상 5·18: 5·18은 미래의 표상으로 승화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민주국가, 국가 주권이 실현되는 자주 국가는 오월 광주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입니다. 계급과 계층, 성별과 세대를 넘어 누구나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대동세상을 오월 광주가 먼저 체험했던 미래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5.18헌법’
    5·18전야제 시민참여 부스의 인상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올해도 45년 전 오월의 ‘주먹밥’이 있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사랑의 밥을 3개나 받아먹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모델인 독일 기자 한스 패터를 기리는 초록 택시와 운전자가 있었다. 그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광주의 소주 ‘잎새주’ 샘플 한 병 받을 수 있었다. 소주 병 라벨에는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라는 문구와 초록 택시가 새겨져 있었다.
     
     
    주먹밥 나눔, 택시운전사x잎새주 인증사진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 불리는 광주인권상을 아는가? 5·18기념재단이 2000년부터 인권과 평화를 위해 기여한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 수상자는 동남아시아에서 군사 폭력과 인권침해에 맞서 생존자 보호, 진실 규명, 평화 구축 활동을 펼쳐온 인권 단체 ‘아시아 정의와 권리(Asia Justice and Rights, AJAR)’다. 특별상은 필리핀 코르딜레라 지역에서 34년간 예술을 통해 인권과 공동체 권리를 옹호해 온 ‘DKK문화동맹’이 받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고 문재학 열사를 비롯한 민주유공자들의 묘비를 찾아보자. 구묘역에도 신묘역에도 너무나 어리고 젊은 얼굴들을 보라. “5·18정신 계승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유족과 가족들을 위한 교육 지원, 취업 지원, 의료 지원, 대부와 양로 지원, 양육 지원 등 다양한 지원뿐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가 각종 기념·추모 사업을 실시하고 민주화 운동 관련 시설과 교양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5·18정신 계승 민주유공자법 제정 손피켓(왼쪽),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부채(오른쪽)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라 적힌 부채를 보았다. 홍보 부스에서는 “청원 참여”를 유도하는 유인물이 배포되고 있었다. 5·18정신을 국가가 책임지고 헌법에 새겨야 한다는 요지였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광주의 희생과 단호한 투쟁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지켜졌다. 12·3 불법 계엄의 국민 승리가 바로 오월광주의 승리”라며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통해 대한민국을 지켜온 힘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새기겠다"라고 말했다.
     
     
     
     '아 오월, 다시 만난 오월'를 주제로 5·18민주화운동 45주기 기념행사 진행 / 사진출처: 아시아경제
     
     
     

     
     

     

    민주주의 대축제 5.18 전야제를 다녀와서
    꿀벌

    조회수 997

    202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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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을 한 이후 나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야만 했다. 가만히 있으면 퇴직이라는 나의 선택이 변화가 아닌 불안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나는 회사에 다닐 때보다 지금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공익위키 또한 그런 마음에 신청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위스퍼, 공익위키’라는 단어가 많이 낯설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모집 공고를 찬찬히 살펴봤다. 아마‘작은 속삭임으로 만드는 더 큰 목소리’라는 문구에 끌렸을 것 같다.
     
     
    ○ 작지만 의미 있는 지식과 경험들을 ‘함께’ 모아보고 싶다?
    ○ 내가 사는 지역 안에서 공익 활동을 시작할 계기가 필요하다?
    ○ 일상의 작은 변화와 새로운 활력을 원한다?
    ○ 공익 활동 영역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가 간절하다?
    이미 위스퍼가 될 준비가 끝났어요!
     
     
    그리고 경험, 공익 활동, 작은 변화와 새로운 활력, 마지막으로 대화라는 단어에 혹했을 것 같다. 아마 결정적인 문구는 ‘이미 위스퍼가 될 준비가 끝났어요!’라는 문장이었다. 나는 공익 위키 운영단 위스퍼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모임 장소인 ‘성남 공간 채움’에 가는 버스 안에서 위스퍼(whisper)라는 단어를 처음 검색했다. 위스퍼는 ‘속삭이다’라는 뜻이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누구와 속삭인다는 걸까? 속삭이는 행위를 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다. 게다가 '공익 위키 운영단'이라는 이름은 왠지 무거운 서사시의 주인공이 될 것만 같았다. 말이 어렵다. 뭔가 대단한 것 같은데, 감이 안 잡혔다. 나에게 '위키'라고 하면 나무위키 정도나 아는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누가 이렇게 열심히 정리해 놓은 거지?' 하며 감탄만 하던 나였다. 그렇게 아무 정보 없이 교육장에 들어섰다.
     
     
    성남에 있는 공간 채움에서 교육은 진행되었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첫 수업, 첫 시간. 익숙한 것이라고는 내 숨소리뿐이었다. '공익 위키, 위스퍼, 빠띠'라는 낯선 단어들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그저 가만히 앉아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윤곽이 잡혔다. 공익 위키, 위스퍼라는 것은 공익적인 지식과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그걸 기록하는 활동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들이 위키라는 형식으로 남겨지는 거였다. 마치 세대와 세대 사이의 다리를 놓는 작업 같았다.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두 번째 시간은 자기소개와 관심 키워드 나누기였다. 방 안엔 생기 넘치는 20~30대들이 가득했다. 시민단체, 청년 활동, 지역사회 운동.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물살 같았다. 각자의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강을 이루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한쪽 구석에, 나는 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 사실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조용히 눈을 피했다. 그게 내 방식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몇몇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줬다. 야구를 좋아한다는 친구. 그리고 "요즘은 우리 아버지 세대만 경실련을 알더라고요"라며 웃던 경실련 소속의 젊은 활동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나 그 세대 맞다. 경실련이 전성기였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 그 순간 세대 사이의 틈이 마음 한편에 깊은 골을 내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자격지심이었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세 번째 시간은 본격적인 '위키 만들기' 시간이었다. 주제는 두 가지. 하나는 DEI(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다른 하나는 Young Carer(영케어러). 나는 망설임 없이 '영케어'를 선택했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얼마나 낮은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살아오며 본 많은 사례가, 이름도 제대로 붙지 않은 채 흘러갔던 기억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그들은 '영케어'라는 개념은 알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를 체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내가 아는 사례를 꺼냈다. 소년소녀가장, 코다(CODA), 이주민 자녀, 형제자매 돌봄. 아직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하는 책임들. 다들 놀란 눈으로 내 이야기를 들었다. '아, 이 친구들은 아직 경험은 적지만 그만큼 더 듣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눈빛이 좋았다. 열린 눈. 열린 귀. 그들의 눈빛에서 이 세상이 조금씩 변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다.
     
     
    ※ 공익위키 구경가기
     - DEI(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 Young Carer(영케어러)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우리는 역할을 나눴다. 내가 맡은 역할은 Young Carer(영케어러) 개념과 정의였다. 유형별 사례는 소랑님, 나기님이 맡았다. 정책 정리는 다영님, 해외 정책과 참고 사례는 동훈님이 맡았다. 팀플레이는 언제나 그렇듯 조별 과제의 향기를 풍기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누구도 리더가 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조금씩 이끌었다. 낯선 사람과 낯선 개념을 함께 다듬어가는 일. 손가락 끝으로 흙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이번 수업의 묘미였다. 마지막으로 팀별로 만든 공익 위키를 발표하며 질문을 받았다.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버스를 기다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익 위키와 나무위키는 뭐가 다를까? 나무위키는 디테일이 살아 있다. 하나 검색하면 열 가지를 알게 되는 마성의 백과사전. 그에 비해 아직 공익위키는 '앱 초안 수준'이랄까. 조심스럽게 태어난 아기 같았다. 공익 위키. 시민들에게 공익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이 질문이 밤하늘의 별처럼 내 머릿속에 빛났다.
     
    혼란스러운 하루였다. 하지만 그런 혼란이 나쁘지는 않았다. 낯선 세계에 발을 디뎠다는 건, 다시 배울 기회이기도 하니까. 마치 바다에 첫발을 담그는 것처럼,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나이 들었다고 멈출 이유는 없다. 젊다고, 모른다고 탓할 이유도 없다. 그저 함께 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나이, 다른 경험, 다른 시선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것이 위키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공익 위키는 아직 작고 미약한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삭임들이 모여 언젠가 큰 목소리가 된다면, 그 시작점에 내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자랑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마치 작은 씨앗이 나무가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본 정원사처럼.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이,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무언가를 깨우는 작은 속삭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공익웹진] 경기도 공익활동 단체가 기대하는 2025년의 모습은? /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현장스케치] 나의 첫 공익위키 체험기
    윤작가

    조회수 488

    20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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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1일 안산에는 아주 특별한 생일잔치가 있었다. 풀뿌리 여성 단체이자 전국에 하나뿐인 ‘함께크는여성울림’의 창립 10주년을 축하하는 좌담회였다. 안산 고잔동의 울림 교육장이 “세상을 향한 큰 울림 함께 걸어온 10년 이야기” 꽃으로 가득했다. 김혜정(우공) 전 대표와 조창아(짱아) 신임 대표의 육성으로 여성 단체 ‘울림’을 들어보자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김혜정(우공, 왼쪽), 조창아(짱아, 오른쪽) / 사진출처: 함께크는여성울림
     
     
    우공: 10년간 울림 활동가이자 2년의 전임 대표 자리를 벗어나서 회원으로 살기 시작한 지 3개월째인 우공이라고 한다. 아직 정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완전히 활동가의 탈을 벗지 못했지만 어쨌든 마음은 자유로운 개인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짱아: 나는 지난 2년간 울림의 이사였다가 올해 대표이사까지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대표를 맡기 전후로 내란 불법 계엄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에 덕분에 활동가로 갑자기 성장한 대표라고 소개하겠다.
     
     
    울림이 뭐지? ‘함께크는여성울림’을 소개해 달라.
     
    함께크는여성'울림' 깃발을 들고 광장에 참여한 회원들 / 사진출처: 함께크는여성울림
     
     
    우공: 사무실은 안산에 있지만 회원이 다른 지역과 해외에도 있는 전국구 여성 단체다. 일상의 차별과 성 역할에 갇혀 살던 여성들이 모여 떠들고 설치고 자유롭게 말하는 안전한 공간이자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지역의 작은 배움터다. 이름 그대로 나만 잘나가는 게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곳이고 더 큰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다.
     
    짱아: 온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13개의 회원 소모임이 활발하다. 성 평등 가치를 담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 지역사회의 인권 관련 현안, 세월호 참사 등 안산의 민주시민 단체와 연대 활동도 한다. 12.3 계엄의 밤 이후 123일 동안 ‘비상행동’과 함께 윤석열 파면을 끌어냈다. 올해 4월 울림 10주년 기념 자료집을 펴내고 좌담회를 비롯한 기념사업을 진행했다.
     
     
    10년 전 ‘함께크는여성울림’의 창립 과정이 궁금하다.
    우공: 여성 단체 활동 경험이 있는 세 사람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2014년부터 사회적 기업 등 여성 공동체 설립을 위한 공부를 했다. 지인들과 발기인을 모으고 돈을 모아 2015년 2월에 안산에서 74명으로 창립총회를 하고 4월에 법인설립을 완료했다. 돈이 없어서 페인트칠, 벽지 등 실내장식을 회원들이 손으로 다 했다. 목재로 된 글자 하나까지 발로 뛰어 찾아서 ‘함께크는여성울림’ 현판을 달았다.
     
     
    당시 안산에 여성노동자회와 YWCA 두 여성 단체가 있었다. 차별점이 뭔가?
    우공: 여성노동자회는 일하는 여성들이 중심에 있고 YWCA는 기독교적 이념에 기초해 평화운동, 청년운동을 함께하는 좀 더 포괄적인 여성공익 운동 단체다. 각각 엄청난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생활 중심형 여성 단체”를 만들고자 했다. 여성 취업률이 꾸준히 늘어나고는 있지만 단시간 시간제 노동과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전업주부도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지역을 기반으로 사적 공간에 있는 여성들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공적 활동과 연결되는 통로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울림은 일상에 밀착된 여성운동 단체다.
     
     
    지금은 회원이 얼마나 되나? 많이 가입하고 또 탈퇴했을 것 같은데.
    우공: 현재 200명쯤 된다. 한 해 보통 30명씩은 들어왔지만 나가는 사람도 많아 생각보다 증가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초창기에 “도와주세요”, 읍소해서 100명 채워준 이들이 시간이 가면서 떠나갔다. 사돈의 팔촌 회원들 빼면 한 50명으로 시작해 10주년에 200명까지 왔다. 상당수 회원들이 기존 회원의 소개로 오니, 울림은 회원들이 함께 키운 단체가 맞다.
     
     
    두 분 삶에 울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는 울림의 장점을 자랑해 달라.
     
    울림은 다양한 소모임과 여성연대의 장이다. / 사진출처: 함께크는여성울림
     
     
    짱아: 가장 든든하고 신뢰하는 여성들의 집합체다. 울림을 빼면 나를 설명할 수 없을 거 같다. 울림 활동 7년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 ‘성 평등한 민주 사회 실현을 위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생활 중심형 여성운동’이라는 모토 그대로였다. “울림이 뭐 하는 곳인 줄도 모르고 좋은 사람 따라왔다가 배우게 되고 실천으로 연결됐다.” 이런 고백 많이 들었다. 나도 그랬다.
     
    13개 회원 소모임을 자랑하고 싶다. 페미니즘 모임, 4.16세월호 참사 기억 모임, 걷기 인증 모임, 산행모임, 글쓰기 및 합평 모임, 영어 모임, 그림 모임, 우쿨렐레 모임, 환경모임 등 여성의 관심사만큼이나 다양하다. 홈페이지 제작 모임, 코딩 모임 등 IT 관련 교육도 늘고 있다. 정치 성향 상관없이 관심 분야로 모여 놀며 배우며 활동한다. 소모임에서 어울려 회의나 여성대회 등 큰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연대 집회로도 연결된다. 나도 처음 울림에 발을 들인 건 활동가들의 인성이 좋아 보여서였다.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별을 품은 사람들’에서 세월호 기억 활동을 하며 내적 외적으로 성장을 경험했다.
     
    우공: 개성 넘치고 재능 있고 멋진 여성들이 울림의 자랑이다. 울림은 여성들이 서로 연결되는 만남의 장이자 사랑방이다. 사람이 연결되면 거기에 재미난 이야기와 다양한 정보가 오가고 활동을 만들어내고 참여와 연대도 이루어진다. 아쉬움은 내가 이슈 파이팅 활동에 많이 참여하지 못한 점이다. 연대체들과 좀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울림도 나도 더 확장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이제 새 대표가 잘해줄 거라 믿는다.
     
     
    각자 여성운동에 몸을 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우공: 나는 좀 늦게 발을 들인 편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세 딸 중 둘째로 남자가 없는 집에서 자라 그런지 여자라고 차별받은 경험은 많지 않았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에 몸담았지만, 당시 여성운동에는 별 매력을 못 느껴 안타깝게도 페미니즘 세계를 모르고 20대를 지나쳤다. 그런데 결혼한 지 일주일도 안 돼 가부장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걸 바로 느끼게 되면서 성차별에 대한 감각이 살아났다. 아이 낳고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재미가 없고 무의미해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더라.
     
    직업상담사 자격을 따고 1년간 봉사했다. 경력 중단 여성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 현실의 괴리가 컸고, 여성들과 상담하다 보니 직장 내 성희롱과 가정폭력 얘기를 많이 듣게 되더라. 야, 여성에게는 취업보다 폭력 문제가 더 심각하구나, 깨닫고 관련 공부를 하게 됐다. 30대 후반 본격적으로 여성운동 판에 들어간 게 안양여성의전화였다. 젠더 폭력에 대응하는 상담도 중요하지만, 성차별 세상을 바꾸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싶어 사무국 일을 주로 했다. 그때 처음으로 안산에도 이런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결국 뜻 맞는 활동가들과 울림을 만들 수 있었다.
     
    짱아: 2018년에 김혜정 사무국장을 만나게 되면서 울림에 가입했지만 별 활동은 없었다. 순천에서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안산으로 돌아오면서 글쓰기 소모임을 만들어서 울림 활동가들과 더 가까워졌다. 울림 3년 차에 이혼했다. 이혼 후, 울림 회원들이 자주 찾아와, 걷고 차 마시고 밥 먹고 가끔 술도 마시며 '함께'라는 걸 실감했다. 그러다 소모임 ‘별을 품은 사람들’에 들어가면서 이전에 피하던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마주하게 됐다. 그때까진 내 슬픔이 가장 컸는데 생각의 전환이 오더라. 외로워서 슬프고 남편이 떠나서 슬프고, 그런 슬픔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지더라. 그러니까 내 슬픔에 매몰됐을 땐 해결되지 않더니 다른 아픔에 동참하니까 내 슬픔이 작아지고 연대가 주는 위로가 아주 크게 다가왔다. 도망치지 않고 슬픔의 한가운데에 서는 법을 배운 거 같다. 그러다 울림 이사 제안도 수락했고 대표이사 제의도 수락하지 않았나,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계엄 사태 한 달쯤 지났을 때 대표이사 투표가 있었다. 시국이 내가 빨리 대답하게 했다. 우리 사회 어떡하지, 울림 어떡하지, 모두 내 문제로 다가왔다. 새로 시작한 생업을 하며 대표이사를 맡고 매주 광화문 집회에도 나갔다. 그때 절박하게 느꼈다. 정치와 내 삶이 따로 있지 않구나. 내 삶을 뒤흔드는 게 정치구나, 내란 시기에 날마다 그런 각성을 했다. 내가 실천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우리나라 전체 이 선박이 좌초되는 건데, 내가 지금까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내가 할게 없다 생각하고 내버려뒀구나, 부끄러웠다. 개인적인 상황 국가적인 상황 울림의 상황이 다 하나로 연결됐다.
     
     
    울림의 신임 대표로서 취임 3개월의 소회가 궁금하다.
     
    조창아(짱아) 신임 대표 / 사진출처: 함께크는여성울림
     
     
    짱아: 2월 6일에 취임했지만, 작년 12월에 이미 대표이사 투표가 있었고 내 마음의 결정은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1월 중순에 했던 걸로 기억한다. 돌봄으로부터 자유로워서 가능했다. 그때 활동가들이 10주년 기념 자료집을 준비하고 쓰고 있었다. 그 작업을 도우면서 이 힘든 일을 왜 하느냐고 조심스레 문제를 제기했다. 울림 10년 역사를 네 명의 활동가가 책으로 엮기엔 역부족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부담이 컸다. 그러나 자료집 초고를 읽다 보니 지난 10년의 사람들과 역사를 다시 보게 됐다. 그 수고 덕에 내가 안정적으로 5대 대표로 이어받을 수 있었다.
     
    책임을 맡고 보니 전에 안 보이던 게 많이 보여서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연대 활동에 대표가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활동가 풀이 크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나갈 사람이 적은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항상 시의적절하게 매듭 할 거 매듭짓고 자료 정리 잘해준 활동가들이 새삼 고맙더라. 며칠 전 꿈을 꿀 정도였다. 내가 앞으로 2년간 일을 하고도 흩어놓고 쓸려가게 만들지 않을지 걱정돼서였다. 생업과 울림 활동을 병행하며 일상을 살아내려니 마음 관리도 잘하려 하고 있다.
     
    2015~2025 함께크는여성울림 발간 자료 모음(왼쪽)과 10주년 기념 자료집(오른쪽) / 사진출처: 함께크는여성울림
     
     
    파면 전전주에 한 회원이 처음으로 집회 참여를 한 후 들려준 소감이 생각난다. 원래 “저는 광장 그런 데는 안 나가요.”라던 분인데 내가 지나는 말로 같이 가자 그랬다. 울림은 누구도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분이 탄핵 광장에 다녀온 후엔 “민주주의를 바라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 함께한 시민들의 모습에 감동했다. 역사의 현장에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라고 고백했다. 이게 함께하는 재미다.
     
     
    창립 멤버로서 전임 대표직을 마치는 소감은 어떤가?
     
    광장에서 울림 회원과 김혜정(우공, 왼쪽) 전 대표와 조창아(짱아, 가운데) 신임 대표 / 사진출처: 함께크는여성울림 
     
     
    우공: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성 평등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다. 울림도 마찬가지다.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다. 그래서 책임을 내려놓는 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나는 믿음이 있었다. 내가 물러나도 계속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있고 임원을 비롯해 적극적인 회원들이 있다. 또 새 대표가 엄청 적극적으로 해 나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언젠가 넘어야 하고 이제는 넘어가는 걸 시도해 봐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적기였다. 내 선택이 옳았고 울림도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창립 위원들이 돌아가며 대표를 해 왔는데 이제 다음 세대로 대표 이전이 되고 임원진들이 바뀌고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10년을 탈 없이 잘 왔다. “울림이 있어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보면 보람을 느낀다. 10주년 앞두고 몇 차례 비전 워크숍을 하며 우리 단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임원들이 많아진 걸 보았다. 이사진 중심으로 역할 배분도 되고 공동 운영 마인드도 생겼다. 조창아 대표가 사람을 포용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마음을 모아주고 있는 게 느껴진다. 성공적으로 잘 가고 있는 것 같다.
     
    향후 10년 울림의 비전과 과제가 있다면?
     
    함께크는여성울림 10주년 좌담회 / 사진출처: 함께크는여성울림
     
     
    짱아: 탄핵 광장에 나온 2030 여성들에게서 감동과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그분들과 연대하는 페미니스트 단체 울림으로 계속 성장하고 싶다. 근데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한다고 가다 보면 사람들을 놓칠 수 있더라. 오히려 사람들과 하루하루 함께 걷다 보면 길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지금까지 그랬듯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공부하고 글 쓰고 하는 그 자체가 울림의 존재 이유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의 도전과 과제는 교육과 홍보, 재정 확충, 세대 간 연대 등이 있다. 운영진과 회원들의 페미니스트 역량 강화도 과제겠다. 현재로선 울림 자체가 내 꿈이다. 울림이 있다는 자체가 내 기쁨이다.
    
     

     
     
     
    생활 밀착형 여성 단체 ‘함께크는여성울림’ 이야기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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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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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출처: 챗gpt활용 ai제작
     
     
    
    ● 슬립맥싱(Sleepmaxxing)이란 무엇인가
     
    슬립맥싱(Sleepmaxxing)은 '수면(sleep)'과 '극대화(maximizing)'의 합성어로, 단순히 오래 자는 것을 넘어서 '질 높은 수면'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수면을 소비하거나 낭비되는 시간이 아닌, 자기 관리와 웰빙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한 흐름입니다. 피트니스에서 몸을 가꾸는 것처럼, 슬립맥싱은 뇌와 정신을 회복시키기 위한 수면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예전에는 '성공하려면 잠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 미덕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수면 부족이 오히려 생산성과 창의력을 저해하고 정신 건강을 해치는 요소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자기 효능감, 정신적 안정, 장기적 건강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일종의 '자기 계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슬립맥싱은 단순히 ‘많이 자는 것’이 아니라, 수면 시간뿐 아니라 수면 환경, 수면 전 루틴, 수면 이후의 컨디션까지 포함한 ‘총체적 수면 관리’입니다. 이에 따라 스마트워치, 수면 추적기, 고기능 매트리스 등 수면을 돕는 다양한 테크 제품도 함께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슬립맥싱은 오늘날의 피로 사회 속에서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으며,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트렌드라 할 수 있습니다.
     
     
    ● 수면의 생리학적 기능
     
    수면은 단순히 피로를 푸는 생리적 반응을 넘어서,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복합적이고 정교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우리 몸은 수면 중에도 끊임없이 작동하며, 낮 동안 쌓인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우선, 수면은 뇌를 청소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뇌에는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 불리는 림프계 유사 체계가 존재하며, 이는 우리가 자는 동안 뇌척수액을 통해 독성 노폐물, 특히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낮에는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수면을 통해서만 뇌 건강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면은 기억을 정리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면은 크게 렘(REM) 수면과 비렘(NREM) 수면으로 구분되며, 각 단계마다 뇌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비렘 수면 동안에는 하루 동안 입력된 사실을 기반한 정보가 정리되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고, 렘 수면에서는 감정적 경험이나 창의적인 연결 고리들이 강화됩니다. 이는 학습 능력과 감정 조절 능력을 증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면역 체계 강화 또한 수면의 핵심적인 기능 중 하나입니다. 숙면을 취하면 면역세포의 분화와 재생이 활발히 이뤄지며, 염증을 억제하는 면역 반응도 활성화됩니다. 반대로 수면이 부족하면 감기나 독감 같은 바이러스 감염에 쉽게 노출되고, 백신 효과도 저하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수면은 신체 조직을 복원하고 회복시키는 시간입니다. 성장 호르몬은 대부분 깊은 수면 단계에서 분비되며, 이는 근육 회복, 세포 재생, 심지어 상처 치유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격렬한 육체활동 후에는 양질의 수면이 운동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상을 예방하는 데에도 기여합니다.
    이처럼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뇌와 몸이 자신을 재정비하고 회복하며 미래의 건강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생물학적 리셋'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면이 부족하거나 질이 나쁘면 이러한 기능들이 왜곡되며, 장기적으로는 전신 건강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슬립맥싱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필연적인 흐름이라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 수면 부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수면 부족은 단순히 피곤함을 느끼는 수준을 넘어, 신체와 정신 전반에 걸쳐 다양한 부정적인 영향을 유발하는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증상은 집중력과 사고력의 저하입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전두엽 기능이 저하되어 주의력이 분산되고 반응 속도가 느려지며, 논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는 일상 업무의 효율을 낮추고, 운전이나 기계 조작과 같은 고위험 상황에서는 사고 발생률을 현저히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정서적 측면에서도 큰 타격을 입습니다. 수면 부족은 뇌의 편도체와 전전두엽 간 연결을 약화시키며, 이는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야기합니다. 실제로 수면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사소한 자극에도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쉽게 분노하며, 우울증과 불안장애 같은 정신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속적인 수면 결핍은 감정적 안정성을 해치고 대인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신체 건강 측면에서도 수면 부족은 만성 질환의 위험을 가중시킵니다. 충분한 수면은 인슐린 민감도를 조절하고 호르몬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지만, 수면이 부족하면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고 렙틴과 그렐린 등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에도 이상이 생겨 비만, 제2형 당뇨병, 고혈압 등의 질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이 외에도 수면 부족은 심혈관 질환, 뇌졸중, 대사 증후군 등 다양한 만성 질환과 직결됩니다.
    면역력 저하도 수면 부족이 가져오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숙면은 면역세포의 활성화와 재생에 필수적인데, 수면이 부족하면 감기나 독감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쉽게 노출되고, 병에 걸렸을 때 회복 속도도 지연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6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들은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때 감염될 확률이 4배 이상 높다는 결과도 존재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수면 부족은 뇌 신경세포의 손상과 퇴화를 야기하여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심각한 만성 수면 부족 상태는 생존율 자체를 낮출 수 있으며, 삶의 질 전반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수면 부족은 단순한 생활 습관 문제가 아니라, 인체 전반의 기능을 파괴하고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회적·의학적 문제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 슬립맥싱 실천 방법
     
    슬립맥싱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찍 자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수면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선 일상 속에서 전략적으로 수면 습관을 설계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실천 방법은 일정한 수면 루틴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기상하는 패턴을 만들면 생체 리듬이 안정화되며, 뇌가 자연스럽게 ‘수면 모드’로 전환되는 시간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수면의 깊이도 향상됩니다. 전자기기 사용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스마트폰, TV, 태블릿 등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는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수면을 방해하므로, 최소한 수면 1시간 전에는 모든 전자기기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대신 독서나 스트레칭, 명상과 같은 이완 활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수면 유도에 도움이 됩니다. 음식과 음료 조절도 슬립맥싱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카페인은 각성 효과가 강해 최소 4~6시간 전에는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알코올 역시 일시적으로 졸음을 유도할 수는 있지만 수면의 깊이를 얕게 만들어 오히려 피로가 누적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수면 환경 역시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합니다. 조명이 어둡고 소음이 없는 공간, 약 18도 내외의 시원한 온도, 몸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매트리스와 침구는 수면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입니다. 실내 공기의 질도 수면에 영향을 미치므로 가습기나 공기청정기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수면의 질을 가시적으로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 수면 추적 앱을 사용하는 것이 추천됩니다. 이러한 앱은 수면 시간, 깊이, 뒤척임 등을 기록하고 분석해 사용자 맞춤형 수면 개선 방안을 제시해 줍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수면 습관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나에게 맞는 최적의 수면 조건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슬립맥싱은 결국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고 관리하는 과정이며, 그 핵심은 '습관의 일관성'과 '환경의 조율'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슬립맥싱이 주는 사회적 함의
     
    슬립맥싱은 단순히 개인의 건강 관리 방법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사회 전반에 걸쳐 의미 있는 변화를 촉진하는 문화적·산업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선, 슬립맥싱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성과 중심의 근로 문화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더 오래,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생산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회복하고 집중하느냐'가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시키는 능동적인 자원으로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기업 문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선진적인 글로벌 기업들은 직원들의 정신적·신체적 회복을 위한 복지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사내에 '수면실'을 설치하거나, '파워낮잠'을 공식 근무시간에 포함시키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기적으로 직원들의 피로를 해소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조직 전체의 창의력, 만족도, 이직률 감소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고 있습니다.
    슬립맥싱 트렌드는 새로운 산업적 기회도 창출하고 있습니다. 고급 매트리스, 기능성 침구, 스마트 수면 디바이스, 멜라토닌 보충제, ASMR 콘텐츠 등 수면 관련 상품의 시장 규모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으며, ‘수면 테크(Sleep Tech)’는 헬스테크 산업의 핵심 분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수면 전문 컨설턴트나 수면 코치라는 새로운 직업군도 생겨나고 있어, 수면이 단순한 생리적 현상을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슬립맥싱은 단지 잠을 잘 자는 법을 넘어서, 일과 삶의 균형, 조직 운영의 패러다임, 소비자의 건강 인식, 그리고 전 세계 산업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다층적인 트렌드입니다. 수면이 단순한 생존의 조건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는 시대. 슬립맥싱은 건강한 삶을 넘어, 건강한 사회를 위한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 조언
     
    수면의 양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질’입니다. 하루 8시간을 잔다고 하더라도 수면의 질이 낮다면 피로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다음 날 더 무기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고 수면의 질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이 중요합니다. 우선 낮잠은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20분 이내의 짧은 낮잠은 피로를 회복시키는 데 효과적이지만, 그 이상 자면 생체리듬이 교란되어 밤잠의 질을 해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낮잠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지, 본 수면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운동도 수면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아침이나 이른 저녁에 가볍게 땀을 흘리는 유산소 운동은 체온과 호르몬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수면 유도를 돕습니다. 다만, 너무 늦은 시간에 격렬한 운동을 하면 오히려 각성 상태가 유지되어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아로마테라피는 심신을 이완시키는 데 효과적입니다. 라벤더, 캐모마일, 일랑일랑 같은 향은 뇌파를 안정시키고 불안을 감소시켜 수면 유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디퓨저나 아로마 오일을 이용해 수면 전에 방 안을 향으로 채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자기 전 명상이나 일기 쓰기도 매우 유익한 습관입니다. 하루 동안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리하고, 감사한 일들을 기록하는 ‘감사 일기’는 뇌를 긍정적이고 안정된 상태로 전환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과정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긴장을 완화시켜 수면에 보다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게 합니다.
    음식 조절도 중요합니다. 취침 2시간 전에는 식사를 마무리해야 하며, 너무 기름지거나 매운 음식은 위장에 부담을 주어 숙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대신 바나나, 체리, 호두처럼 수면 유도에 도움을 주는 아미노산(트립토판 등)이나 멜라토닌이 풍부한 식품을 간단히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처럼 수면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습관들에서 출발합니다. 꾸준한 실천이 쌓일수록 몸은 점점 더 깊고 안정된 수면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 맺음말
     
    슬립맥싱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수면을 통해 삶을 재설계하는’ 깊이 있는 흐름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잠을 줄이면 성공한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수면이야말로 창의력, 감정 안정, 생산성,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슬립맥싱은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돌보는 방식이며, 스스로의 삶을 보다 의식적으로 설계하는 실천이기도 합니다. 오늘 밤, 내 침실의 조명은 적절한가, 잠들기 전 습관은 괜찮은가, 내가 정말 잘 자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주 작은 변화 하나가 당신의 하루, 그리고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건강한 수면이 곧 건강한 삶의 출발점입니다. ‘잘 자는 사람’이 결국 ‘잘 사는 사람’입니다.
    
     

     

     

    잠꾸러기들이 인생을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
    주야

    조회수 631

    2025-05-08
  • 산불이 삼킨 사과

     

    이효희 소장(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3월에도 간혹 눈이 내리기는 했지만, 올해는 4월 중순에 우박과 눈이 왔다. 서울에서는 118년 만에 벚꽃이 피는 계절에 눈꽃이 흩날렸다고 한다. 나처럼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에게는 요란한 눈비와 때늦은 겨울바람이 단지 당황스러운 하루일 뿐이지만, 변덕스러운 날씨는 농민에게 근심거리다.

     

    밤새도록 내린 폭설로 혼잡해진 출근길을 뚫고 내가 충남 보령에서 열린 연수회에 무사히 참석했던 그 날 역시, 기상 관측 117년 역사상 최악의 11월 폭설이 쏟아졌다. 안성, 평택, 화성, 용인, 이천, 여주 지역의 농민들은 오이, 호박을 키우는 비닐하우스와 축사, 인삼밭, 과수원, 미곡처리장 등이 무너져 내리는 큰 피해를 입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눈덩어리는 비닐하우스를 두 개 이상 연결해서 지은 하우스를 무겁게 짓눌렀고, 습설을 견디지 못한 철골 구조물이 주저앉았다. 그러나 도시의 아파트에서 폭설은 일상생활의 불편 정도로 지나간다.

     

    기후재난 시대, 농민들은 일터이자 삶터에서 반복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봄철 건조한 날씨 탓에 진화가 어려웠던 영남 산불도 같은 맥락이다. 화재로 인해 산청, 울주, 의성, 하동, 안동, 청송, 영양, 영덕 지역의 산림과 농경지가 초토화되었다. 산림청은 사망자만 30명에 이르는 영남지역 산불의 피해면적이 104ha라고 발표했다. 역대 최악의 산불이다. 흔적도 없이 불타버린 주택만 해도 3천 곳이 넘고, 사찰과 문화재도 화마를 피하지 못하였다.

     

    산불로 망가진 마늘밭과 양파밭은 퇴비를 뿌리고 정비하면 다시 작물을 재배할 수 있지만, 사과 과수원의 사정은 다르다. 운 좋게 산불을 피한 나무에서 설령 연분홍 사과꽃이 피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연기 피해로 뿌리까지 망가져서 제대로 열매를 맺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과수원에 3년쯤 자란 묘목을 심더라도 정상적인 수확까지는 최소 5년이 걸린다. 게다가 사과 나무를 심으려고 해도 물을 주기 위해서 필요한 전기 설비와 관수 시설까지 모두 소실되어 생산기반 자체가 무너진 상황이다.

     

    영남지역은 전국 사과 재배면적의 25%를 차지하며, 맛좋은 사과로 유명하다. 이미 2년 전에도 금사과현상으로 사과 재배의 어려움이 알려졌다. 봄철 저온 피해, 5월 우박, 여름철 잦은 비로 인한 낙화와 낙과, 기형과, 탄저병 등으로 인해 수확량이 크게 감소했고, 최근 10년 중 최저 생산량을 기록한 바 있다.

     

    기후위기는 먹거리 위기다. 이번 산불로 올해도 금사과현상이 반복 될 거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과수원 붕괴로 인해 단단하고 달콤한 부사(후지), 새콤한 홍옥과 아리수, 향기 좋은 시나노 골드를 맛볼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과를 소비자 물가만을 자극하는 공공의 적으로 보는 인식은 수급 불안정에만 집중하는 단견이다. 반복되는 기후재난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폐허가 된 농촌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식량 생산지가 망가진 상황에서는 신속한 피해 복구가 우선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는 온난화를 넘어서 열대화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작년에 이어 올여름에도 열대아 일수가 역대 최고치가 될 예정이다. 펄펄 끓는 지구에서 지속가능한 소비를 실현하려면 생산 역시 지속가능한 방식이어야 한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세계 국가는 농생태학과 유기농 확대를 통해 2050 넷제로 달성을 추진 중이다. 63일 대통령 선거 이후 출범하는 새로운 정부 또한 기후농정으로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기를 기대한다. 도시에 사는 소비자들도 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내가 만나는 사과 한 알이 기후재난 시대에 탄소배출 저감과 토양 탄소저장에 기여하는 귀중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기획]산불이 삼킨 사과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장 이효희

    조회수 546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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