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대받는 한 끼가 만드는 아이들의 ‘이바쇼’
‘어린이 식당’ 운동은 도쿄 외곽의 작은 동네 골목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큰 재난으로 일본 사회는 어두워졌고, 아동 빈곤율은 치솟았다. 방학에도 돌봐줄 사람이 없이 배회하는 동네 아이들의 모습은 누구나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좌절감이 사람들 사이에 스며있었다.
그때 도쿄의 한 채소가게 주인 『곤도히로시』는 달랐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2012년 여름. 동네 아이들 몇몇을 자신의 채소가게로 불러 모아서 식사를 대접하고, 어린이 식당이라고 명명했다. 이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 움직임은 2026년 일본 전역에 1만 2천 개가 넘는 거점으로 확산되었다. 어린이 식당은 빈곤 아동만을 위한 급식소가 아니다. 어린이 식당은 아이와 어른, 이웃과 이웃이 밥상 공동체를 통해 무너진 지역 사회의 관계를 회복하는 ‘마을의 거실’이다.
이 운동의 핵심 키워드는 ‘이바쇼(居場所)’다. 이바쇼는 한국어로는 단번에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라고 한다. 장소를 뜻하면서도 내 모습 그대로 있어도 되는 곳, 평가받지 않는 곳, 기댈 사람과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또한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람에게도 “당신은 나의 이바쇼입니다”라는 식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안식처’나 ‘비빌 언덕’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우리 사회의 아이들 또한 재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19가 남긴 가장 아픈 상흔은 ‘고립’과 ‘단절’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세상은 부모 외에는 믿을 사람도, 기댈 곳도 부족한 각박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학교 문을 나서면 돌봄 시설과 학원을 전전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영양분이 아니다. 자신을 온전하게 반겨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이곳에 존재해도 좋다는 안도감, 즉 ‘이바쇼(내 자리가 있는 곳)’의 경험이다.

공릉동 ‘어린이 식당 작은 숲’, 마을의 느슨한 연대가 차려낸 식탁
서울 공릉동에서도 이 따뜻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어린이 식당 작은 숲’은 2011년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개설 이후 15년간 다져온 ‘꿈마을공동체’(다양한 사람과 단체가 느슨하게 연결된 지역 네트워크이며, 마을 교육공동체)의 자발적인 에너지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곳의 식탁은 어느 한 기관의 힘으로만 차려지지 않는다. 지역의 작은 교회와 성당, 주민자치회와 작은 도서관, 학교와 복지관, 마을협동조합원 등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식당을 열고 있다.



이곳의 식당은 2024년 말부터 매달 열리고 있다. 여러 단체가 힘을 모으고 있고,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책임을 나누니, 음식을 만드는 일은 1년에 한 번만 담당하면 된다. 완벽한 급식 서비스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어린이와 이웃이 만나 이야기를 꽃피우는 관계의 식탁이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은 ‘어린이 식당’이라고 표기한다. 오타가 아니라 ‘어린이’와 ‘어른’의 만남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을 기업 ‘나눔과 이음’은 알록달록한 비빔밥을 준비하고, ‘한살림 북서울노원지구’는 생명의 가치를 담은 정성 어린 주먹밥을 만든다. 시간을 내어서 일부러 방문한 주민자치회장님은 달콤한 디저트를 선물한다. 여기에 수공예 작가 모임인 ‘마디상회’는 라탄 바구니와 꽃병으로 식탁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소박한 한 끼지만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아이들의 얼굴은 싱글벙글 즐겁다. 친구와 함께, 부모님과 같이 온 아이도 있고 가끔 혼자 온 아이도 식당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외롭게 서 있다. 즐겁게 음식을 준비하고 어른들이 다가가 환대하며, “어린이 식당에 왔구나! 어서 오렴”이라고 다정한 말을 건 낸다. 청소년들은 손님으로도 오지만 ‘테이블 매니저’로도 함께한다. 동네 형, 누나들은 아이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맵기는 어떻게 해줄까?”, “요즘 학교에서 재밌는 일은 뭐야?”라 물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내는 유능한 일꾼이 된다.

어린이 식당을 마치고,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작은숲 운영위원회
지속 가능한 어린이 식당 운동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
우리는 식당을 운영하며 일본 어린이 식당 운동본부인 ‘무스비에’가 정한 다섯 가지 원칙을 가슴에 새긴다.
첫 번째는 ‘자발성’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아이를 아끼는 마음과 베푸는 즐거움에서 스스로 시작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다양성’이다. 모든 아이의 개성이 다르듯, 식당 또한 엄격한 매뉴얼로 정형화되지 않고 운영 주체의 형편에 맞게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다.
세 번째는 ‘포용성’이다. 특정 대상만을 위한 선별적 서비스가 아니기에, 저소득을 증명할 필요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네 번째는 ‘공익성’이다. 어린이가 영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종교적 강요나 사익 추구의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마지막은 ‘지역성’이다. 아이들이 돌봄 시설을 찾아 멀리 가지 않아도 골목에서 친구와 이웃을 만날 수 있을 때, 마을은 비로소 살맛 나는 공동체가 된다.
이러한 다섯 가지 원칙은 어린이 식당이 단순히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복지나 교육 서비스를 넘어, 평범한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작은 변혁(무브먼트)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실제로 이 원칙들은 식탁에 앉은 아이들과 식탁을 여는 이웃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공동체 식탁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파트 층간소음 갈등의 대상에서 반가운 ‘이웃’으로 전환된다. 일 중독과 빈둥지증후군으로 상실감에 빠져있던 중년의 시민들에게는 ‘사회적 양육자’라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준다. 아이들의 미소로 연결된 시민들은 아동친화도시라는 행정의 선언을 살아 숨 쉬게 만들 수 있다.



어린이 식당 활동가 대회
어린이 식당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에너지는 공릉동을 넘어서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 열기를 확인한 자리가 바로 2025년 10월 16일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서 열린 ‘어린이 식당 활동가 대회’였다. 서울, 경기 뿐 아니라 제주, 부산, 대구, 광주, 충북 전국에서 어린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 어린이 식당을 해본 사람들, 어린이 식당 운동이 지역에서 펼쳐지길 희망하는 사람들 85명이 모였다. 그 사람들은 복지관 사회복지사, 청소년센터 직원, 협동조합 구성원, 일반시민과 학부모들로 다양했다. 우리는 이 운동의 확산 가능성을 실감했다.
이후 내가 일하는 노원구 지역에도 어린이 식당이 퍼져나가고 있다. 상계동에 위치한 청소년센터로, 경춘선 숲길 작은 도서관으로, 중계동 어린이도서관 근처 작은 공간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타 지역에서 어린이 식당 사례를 듣고자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린이 식당 운영진
문턱을 낮추면 마을 곳곳이 식당이 된다.
어린이 식당은 거창한 전용 건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엄청나게 많은 아이들에게 매일같이 최고의 음식을 제공할 필요도 없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역시 작은 싱크대 하나로 식당을 운영한다. 마을의 문턱을 조금만 낮추면 우리 곁의 모든 공간이 아이들의 식탁이 될 수 있다. 낮 시간에 비어있는 주민센터 회의실, 마을회관, 작은 도서관, 동네 작은 교회나 성당, 심지어 학부모들이 모이는 작은 카페 공간도 훌륭한 식당이 된다. ‘누가 밥을 주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하는가’이다.
마을 곳곳에서 식당이 펼쳐질 때, 아이들은 어른을 신뢰하게 되고 어른들은 아이 뿐 아니라 삭막한 이 도시를 함께 돌보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된다. 경기도 전역에, 그리고 우리가 사는 모든 동네에 이 ‘관계 회복의 식탁’이 차려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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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사람으로 살다가 안산에 정주한 사람이 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서 찐 안산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잇는 ‘기억과 약속의 길’ 시민 안내자이며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의 직무 지도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슴에 ‘별을 품고 사는 사람’으로 ‘춤추는 나무’. 4월이라 더 바쁜 고명선 활동가를 소개한다.
자신을 ‘춤추는 나무’라고 소개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20대 때부터 상담소에서 닉네임으로 ‘나무’를 썼다. 내 주변엔 뿌리 깊은 나무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이미 너무 많더라.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이웃들과 바람이 가는 대로 춤추며 살고 싶었다. 거창한 존재보다 주변과 어우러지는 사람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춤추는 나무로 매일 출근하는 일부터 소개해 달라.
안산의 한 카페에서 성인 발달장애인 바리스타 6명 곁에서 ‘직무지도원’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바리스타들이 샷 추출이나 음료 제조 실력은 정말 뛰어나다. 다만 숫자 계산, 재고 파악, 그리고 동료 간의 의사소통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속도에 맞춰 호흡하며 일상을 나누고 지역사회 안에서 당당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도록 곁을 지키는 ‘다정한 이웃’이 되는 일이다.

기억교실에서 '기억과 약속의 길'이 시작된다 사진 제공 4.16기억저장소

춤추는나무는 걷기를 좋아한다 사진 제공 고명선
장애인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와 이전의 이력이 궁금하다.
대학 시절,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재가장애인들에게 책을 배달하며 장애인 인권에 눈을 떴다. 이후 ‘장애여성공감’ 상담원으로 일했고, ‘성공회 나눔의집’에서 어린이와 어르신을 돌보고 성인장애인들과 함께 일했다.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활동의 뿌리가 됐다.
서울 사람이 어떻게 안산의 시민 활동가가 되었나?
결혼하면서 안산에 왔다. 세 아이 엄마로서, 2014년 4월 16일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다가 세월호 소식을 접했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믿고 큰 걱정 안 했다가, 저녁에야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화면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에 발만 동동 굴렀다. 다음 날,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아이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무작정 단원고로 달려갔다.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비는 밤이었다. 운동장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다. 여러 번 촛불을 들었지만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그 촛불이 제일 간절했다. 그 이후 화랑유원지, 안산문화광장, 광화문광장에서 나는 계속 촛불을 들었다.

기억과약속의길 시민안내자로 활동하는 '춤추는 나무' 모습 사진 제공 고명선
시민안내자로서 걷는 ‘기억과 약속의 길’은 무엇인가?
참사 직후부터 정부합동분향소와 단원고 교실을 찾아가는 ‘기억과 약속의 길’이 있었다. 나는 2017년 4.16기억저장소 ‘4.16 민주시민교육’에서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고잔동에서 별이 된 아이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수료생들과 함께 “누가 오든 안 오든, 우리끼리라도 한 달 한 번은 꼭 이 길을 걷자”고 다짐했다. 4.16기억교실에 모여서 단원고 추모조형물, 4.16기억전시관, 고잔동 마을의 골목골목을 지나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까지, 2~3시간을 시민들과 걷고 있다.
지난 7년여 동안 이 길을 지키며 느낀 건 ‘기억의 힘’이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떤 날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때론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모두 노란 우산을 쓰고 끝까지 걸었다. 걷는다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기억공간에서 서로의 기억을 꺼내고, 어떻게 기억하고 약속할까 이야기했다. 태풍 때 한 번 취소된 거 말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이 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이라고 본다.

기억교실 영상실에서 7반 허재강 어머니 양옥자 님(좌)과 1반 한고운 어머니 윤명순 님(우)과 함께 사진 제공 4.16기억저장소

가만히 있지 않겠다, 뭐라도 함께 해야 했다 사진 제공 고명선
‘기억과 약속의 길’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의례가 있다고 들었다.
매번 출발을 4.16기억교실에서 한다. 3월엔 3반, 4월엔 4반 이런 식이다. 교실에 모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출석’ 시간이 있다. 시민 안내자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그 아이 자리에 앉은 시민이 “네!”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아이들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그들의 삶과 꿈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기억과 약속의 길은 함께 기억하고 약속하는 연대의 길이다.
춤추는 나무는 별을 품은 사람들(이하 ‘별품사’)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2018년경 4.16 안산시민연대에서 ‘별을 품은 이웃’이라는 마을별 세월호 모임을 제안했다. 그때 나는 '함께크는여성울림'에서 상근 활동가로 피켓팅과 서명전 등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활동가들과 고민하다가 “울림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 활동하고 마음을 나누자”라며 회원들을 모아 소모임 ‘별품사’로 의기투합했다.

'별품사'는 단원고 약전부터 함께 읽었다 사진 제공 고명선

세월호 꽃누르미 공방의 5반 큰 건우 어머니 김미나 님 (좌) 4반 정차웅 어머니 김연실 님(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대단한 목표보다 그저 참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별이 된 아이들을 우리 가슴에 품고 살아가자는 뜻이었다. 별품사 첫 활동이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의 약전 읽기였다.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은 1반 1권으로 시작해 10반 10권까지, 그리고 선생님들과 일반인들 이야기 2권으로 책이 12권이다. 책을 펼쳐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이야기하는 게 처음엔 우느라 너무 어려웠다. 아이들의 꿈, 좋아했던 음식을 이야기했고 아이가 좋아한 음악을 모임에서 함께 들었다. 아이와 부모님들의 일상을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우리는 많이 울고 또 웃었다. 약전 전권을 2년에 걸쳐 완독 토론한 후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썼다. 그 결과물로 250편의 편지 모음집 《잊지 않을게 행동할게》를 펴내 기억교실 각 반에 갖다 두었다.
별품사는 세월호의 진실과 별이 된 아이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공부방’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세월호 관련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고 기억식 등 관련 행사에 참여해 왔다. 세월호 공방 어머니들을 모셔 와 꽃누르미와 다양한 기억 물품을 만들며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다. 416 희망 목공소에 가서 아버지들과 목공 실습도 했다. 올해는 별품사 새 회원들과 함께 약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3월에는 약전에 빠진 아이 중 1반 문지성 이야기를 어머니 안명미 님을 모셔서 생생히 듣는 시간도 가졌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유가족들 곁에서 안산의 한 귀퉁이를 지키는 온기가 되려고 한다.

약전에 빠진 1반 문지성 어머니 안명미 님(정면 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별품사가 엮은 284쪽 짜리 편지집 사진 제공 고명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소리를 내며 사진 제공 고명선
그 외에도 매달 피케팅과 생명 안전 공원 예배에 참여하지 않나.
피켓을 드는 것은 시민들에게 참사의 진실을 알리며 잊지 말자고 호소하는 직접적인 소통 창구다. 매월 둘째 수요일 5시 30분 광화문광장에서 ‘기억공간 지키기 집중 피케팅’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차가운 시선이나 “인제 그만 좀 해라”, “지겹지도 않냐?”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피켓을 놓지 않은 건, 다시는 어떤 참사도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고, 밝혀지지 않은 진상규명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매달 첫 일요일 오후 5시, 공사가 진행 중인 거친 흙바닥 위에서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노래한다. 예배에서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시간이 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이 모두 안산으로 돌아올 걸 믿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엄마아빠 마음이다. 4.16 생명 안전 공원은 별이 된 아이들의 봉안당을 포함해서 모든 시민이 찾아와 머무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생명안전공원 예배 사진 제공 고명선
생명 안전 공원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공원 부지 앞에서 반대하는 분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 “너희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라며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이 느끼는 불안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의 불안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깃을 눈앞의 노란 리본으로 정해버린 거다. 생명 안전 공원은 특정 누군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사를 성찰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다짐하는 공간이다. 그분들과도 결국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내 삶에 일어난 변화가 있다면?
배우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마누라가 바빠져서 얼굴 보기 힘들다”라더라. 그래서 “참사 이전에도 세 아이 엄마로 늘 바빴거든?” 농담해 줬다. 첫째 변화는, 내가 안산이라는 도시에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학교도 다녔기에 결혼하고 살게 된 안산이 늘 낯설었다. 그런데 참사가 터졌다. 어느 순간 차마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없더라. 그렇게 비로소 안산에 정주하는 진짜 ‘안산 사람’이 됐다.
둘째는, 참사 이후 그분들이 겪는 사회적 고립과 혐오를 보면서, “이분들 또한 우리 이웃으로서 존중받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함께 숨 쉬어야 하듯, 세월호 가족들도 우리 공동체 안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분들이 외롭지 않게 안산이라는 공동체의 품을 넓히는 것이 내 활동의 동력이자 철학이다.

별품사와 6반 신호성 어머니 정부자 님(앞줄 가운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세월호 가족들 곁에서 특별히 배운 점이 있다면?
10주기 때 ‘유류품 기록’ 작업을 함께했다. 아이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기록하며 부모님들이 들려주시는 목소리를 듣고, 다시는 어떤 참사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감히 “그 마음 다 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함부로 ‘공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됐다. 나는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이웃’이 되기로 했다.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고!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는 소회는 어떤가?
생명 안전 공원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건립되어 흩어져 있는 우리 아이들이 비로소 안산이라는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공사 부지를 지날 때마다 지난 10년여의 갈등과 눈물,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곳은 단순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무거운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산책하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일상을 나누고, 생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희망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그날, 안산이 비로소 참사의 아픔을 딛고 생명과 안전을 상징하는 새로운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춤추는 나무의 남은 꿈도 나눠달라.
내 곁에서 함께 일하는 발달장애인 동료들의 속도,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서로 연결된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살린다.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걸어가고 싶다.

생명안전공원이 완공돼도 계속 다정한 이웃으로 사진 제공 고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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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모르는 이웃과 인사하면서, 마을이 다시 시작됐어요”라는 말로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의 엄혜경 활동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조용히 지나치던 이웃이 어느 날 인사를 건네고 낯설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웃고, 아이와 어른이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나누게 되었는데 이 작은 변화의 중심에는 한 마을 활동가의 꾸준한 움직임이 있었다.
낯섦에서 시작된 관계
“원래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활동했어요.”
엄혜경 활동가는 처음 마을 공동체는 익숙한 관계에서 출발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새롭게 깨달았다고 했다. 진짜 공동체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이웃’과 함께할 때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도 처음엔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먼저 인사를 건네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같이 하실래요?”라고 말하자 마을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음의 문을 열었고 관계를 이어가는 공동체가 된 것이다.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 활동 모습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 활동 모습
보람, 사람의 변화에서 오다
엄 활동가는 ‘사람이 달라지는 순간’을 활동의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다. 인사를 나누지 않던 이웃들이 서로 얼굴을 알게 되고 함께 활동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익숙함을 넘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경험 말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서 더 재미있어졌어요. 기존에는 아이디어가 한정적이었는데, 훨씬 다양해졌거든요.”
엄 활동가는 신나 하며 말했다. 공동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결국 ‘사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려움, 멈춰버린 참여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활동을 하며 가장 힘든 순간은 역시 사람들이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때다.
“행사를 공지해도 사람들이 잘 참여하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어요.”
그의 말 속에서 깊은 시름이 느껴졌다. 그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 때마다 코로나 시절을 연상하게 된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마을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축제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지만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은 점점 모임을 꺼리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며 아쉬워했다.
“2022년 이후로는 사람들이 모이는 걸 좀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활동가는 그 변화 속에서 다시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스스로를 위한 변화의 시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변화, 다시 이어지는 연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고자 하는 노력 덕분에 마을은 다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공동체 인원들과 작년부터 계속 소문을 내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매주 1~2회 꾸준한 만남을 갖게 되었다.
행사를 하고 남은 재료들은 활용한 소규모 활동을 했고 온라인을 통한 지속적인 연결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작은 시도들이 이어지며 사람들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이면 사람들이 모여요.”
생기가 넘치는 엄 활동가의 목소리에는 '살리는' 모습에서 비롯된 희망과 소망이 담겨 있었다.

성남시 마을공동체 초록리더창작소 활동 모습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활동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에피소드를 묻자 엄 활동가는 마을 축제에서의 세대 간 협력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같은 옷을 입고 함께 악기를 연주했어요.”
같은 조끼를 입고, 같은 리듬을 맞추며 세대가 하나 되는 순간. 그 장면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마을이 하나 되는 경험’이었다. 이 말을 하는 말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공동체의 힘, 갈등보다 신뢰
의외로 이 공동체에는 큰 갈등이 없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서로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어요. 사람들이 대체로 온화하고, 신뢰가 있어요.”
빠르게 밀어붙이는 리더십보다는 천천히 함께 가는 방식. 그래서 더 오래 지속되는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기록이 한 활동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기를 바란다.
한 줄 기록
“마을은 사람이 만들고, 관계가 이어갈 때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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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2※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겨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느덧 3월이 되었죠. 따뜻해지면 보통은 다가오는 봄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겨울은 어땠나요? 차가운 얼음과 눈, 건조한 공기, 잎을 떨군 앙상한 나무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한겨울의 가운데, 나는 마침내 내 안에 꺼지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겨울은 춥고 차가운 계절이지만 누군가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면서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뜨거운 열정을 깨닫기도 합니다. 지나간 겨울을 추억하는 봄, 겨울 동안 공익활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깨닫고 한 자리에 모인 청년들이 있습니다. 열정적인 청플(청년 플로우) 3기의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청플 3기 위촉식 및 1차 정기 회의가 열린 안양시공익활동지원센터
2026년 3월 19일, 안양시공익활동지원센터 대회의실에서 청년 활동가 네트워크 ‘청플(청년 플로우)’ 3기 발대식과 1차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날 자리는 청년 활동가 15명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소개하고, 앞으로 어떤 흐름을 함께 만들어갈지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청플 3기를 환영하는 유명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장의 환영사가 있었습니다.
“청플 관련 이야기를 하면 다들 청년들이 모여서 뭘 하냐고 물어봐요. 그러면 저는 그냥 ‘네트워크’를 한다고 답합니다. 당연히 궁금하니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 거냐고 물어보겠죠? 하지만 저는 그것 외에는 자세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세히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우리의 사업이 협소해지게 될 수 있거든요. 청플 1기와 2기에서는 사람들이 만나는 자리를 만드는 기회였다면, 3기에 중점을 둔 부분은 청년 여러분들이 활동하고 있는 분야와 활동에 대한 ‘의제 연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면접을 진행하면서 느낀 부분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 모여 계시는 분들이 정말 다양한 배경을 지니고 계십니다. 공익활동, 네트워크를 처음 경험하시는 분들도 있고 이미 다양한 경험을 하신 분들도 있고, 청년 활동의 목표를 찾지 못하신 분들도 있죠. 그래서 이런 부분을 오히려 잘 살려서 지역 활동들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의제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연결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이런 고민들을 풍성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청플 3기 활동가들을 위한 환영사를 하고 있는 유명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장
이 말을 듣고 나니 청플 3기가 단순히 “모이는 모임”은 아니라는 점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연결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각자의 활동과 고민, 의제를 서로 이어보는 것. 어쩌면 청플 3기의 핵심은 바로 그 지점에 있는 듯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 다름을 어떻게 연결의 언어로 바꿔낼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청플 3기의 세가지 활동 방향과 비전
연결을 통해 더 나은 청플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여정의 출발선에 서 있는 청년들을 환영하는 말 뒤에는 청플 3기의 활동 방향을 공유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 핵심이었는데요, 사회의 변화와 공익활동의 미래를 남이 짜 놓은 틀 안에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의 청년들이 직접 질문을 던지고 길을 내보겠다는 청플의 기획 의도가 느껴졌습니다.
이어 간단하게 각자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먼저 가졌습니다. “우리가 직접 흐름을 좀 만들어 가겠다”, “흘러가는 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회의 흐름을 질문하고 청년 활동가들이 직접 새로운 물줄기도 만들어 보겠다”라는 힘 있는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그 말들을 들으며 회의실 안의 어색한 공기가 조금씩 풀려 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누구나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각자 비슷한 열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사람들 사이의 거리도 조금씩 가까워지기 마련이니까요. 기록을 위해 자리에 함께하고 있던 저 역시 그 열정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단지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보다, 어떤 새로운 시작의 현장에 함께 서 있다는 기분이 더 컸습니다.
청플 3기가 그리는 활동 방향을 뒷받침할 구체적 비전도 공유했습니다. ▲ 참여 기반의 네트워크, ▲ 지역과 의제의 확장, ▲ 청년 활동가 간 연결을 통한 교류와 협업 관계 형성 이 세 가지 비전이 청년들의 목표이자 과제가 될 예정입니다. 짧게 적으면 간단해 보이는 말들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꽤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참여 기반의 네트워크란 소수의 사람이 이끌고 나머지가 따라가는 구조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조금씩 의견을 내고 방향을 함께 만드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지역과 의제의 확장은 저마다 다른 현장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자신의 울타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서로의 관심사와 실천을 넘나드는 경험을 의미할 테고요. 마지막으로 교류와 협업 관계 형성은 서로 아는 사이가 되는 것을 넘어, 실제로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처럼 들렸습니다. 짧은 말 속에 담겨 있는 막중한 과제와 책임을, 청플 3기 활동가들은 ‘함께’라는 힘으로 이겨내겠죠?


청플 3기 위촉장 수여
이어 연간 활동 계획도 구체적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청플은 월 1회 정기 회의를 통해 서로의 활동과 지역의 활동, 생각하고 있는 의제를 나눌 예정입니다. 하지만 공익활동에 있어 논의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필요하다면 각자가 가진 네트워크를 다른 청플 위원들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 방문을 하기도 하고, 함께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을 해보면서 청플만의 다채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랍니다.
그리고 이어진 대망의 위촉장 수여 시간! 활동가들은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위촉장을 받아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기대와 설렘으로, 또 누군가는 책임감과 약간의 긴장감으로 위촉장을 받았을 테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청플 활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이 펼쳐질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하는 감각이 회의실 안에 선명하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함께 만든 슬로건 "이어진 연대, 즐기는 문화, 흔드는 공익"
이후 청플 3기의 첫 번째 정기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청플의 활동가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같은 구성원들을 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청플 활동가들은 이름과 소속만 공유하는 대신, 자신을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와 지금의 고민, 청플에서 해보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나눴습니다. 한 활동가는 자신을 “낯가림, 고민, 활동가”라고 소개하며 “내가 지금 이 활동을 해서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어떤 걸 바꿀 수 있을지, 여기에 미래가 있는지 사실 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시점”이라고 자신의 현재 고민을 공유하기도 했고, 다른 활동가는 “회의할 때는 점잖고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청플 논의의 분위기를 제안하기도 했답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청플에 참여한 청년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배경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유명화 센터장님이 환영사에서 전했던 기대처럼 다채로운 배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청년 공익활동 네트워크를 넓혀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기회의 다음 안건은 ‘청플’의 슬로건을 정하는 일이었는데요. 조별로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다시 합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별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과물은 제각각 달랐지만, 막상 모아놓고 보니 ‘존중’, ‘실천’, ‘지속되는 연결’이라는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겹쳤습니다. 옆에서 청플의 활동을 지켜보며 인상적이었던 의견은 “청년들이 모여서 기특한 활동을 한다가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서 우리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라는 이미지로 인식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의견과, “청년은 그냥 미래의 무언가로 그려지지만, 청년의 현재도 강조되었으면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견에 힘입어 청년을 ‘곧 무엇이 될 사람’으로만 보지 않고, 이미 지금 여기서 활동하고 있는 현재의 동료 활동가로 자리 잡아 나가기 위한 슬로건을 결정했는데요. 여러 쟁쟁한 슬로건 후보 중 최다 표를 받은 이번 청플 3기의 슬로건은 바로! “이어진 연대, 즐기는 문화, 흔드는 공익”이었습니다.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는 활동을 표방하지만, 누군가 시켜서 하거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활동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익활동의 변화를 이루어 나갈 청플 3기의 목표 의식이 명료하게 드러나는 슬로건이 완성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만들었으니 슬로건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이겠죠?

슬로건을 정하기 위해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는 청플 3기 활동가들
공동 프로젝트 선정을 위한 안건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정답을 찾는 회의라기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일지 고민하고 의견을 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완벽하게 하기보다는 먼저 친해지고, 서로의 입장과 배경에 대해 알아가면서 목표를 정해나가려는 이들의 진정성에 몹시 감탄하게 되었답니다. 누군가 몇 명만 이끌어 가는 구조가 아니라 다 같이 조금씩 맡아 활동을 이끄는 운영 방식도 공유됐습니다. 각자 그달의 이끔이를 자율적으로 정하고 이끔이가 역할 분담을 맡아 진행하는 방식으로 활동이 진행된답니다. 1차 회의 진행, 다음 달 회의 진행, 공동 프로젝트, 기록물 역할을 하나씩 나누는 과정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큰 직함보다 함께 책임을 나누는 청플의 모습에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기대되었습니다.
청플 3기 발대식과 1차 회의는 거창한 선언으로 가득한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대신 처음 만난 사람들이 조금씩 말을 붙이고, 고민을 꺼내고, 웃고, 맞장구를 치고, 앞으로 무엇을 함께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청년 활동가 간의 교류와 연결, 자율적인 정기회의 운영, 서로의 활동을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청플 3기의 취지가 그날만큼은 딱딱한 문장보다 실제 장면으로 더 잘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청플 3기의 시작은 위촉장을 받던 순간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동료 시민으로서”, “현재를 좀 강조해졌으면”, “자유분방한 분위기”, “어떻게 끝까지 끌고 갈 것인가” 같은 말들이 회의실 안을 오가던 바로 그 순간들, 그때부터 이미 청플 3기의 흐름은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촉장을 들고 단체사진을 찍는 청플 3기 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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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0
2026년 3월 14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북부지부 대회의실에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6기 아카이브 에디터가 새로운 출발을 알렸습니다. 출발선에 선다는 것이 때로는 설레지만,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는 걸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두려운 감정이 들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바로 함께하는 사람들과 의지하는 것이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시작의 두려움도, 어려움도 이겨내면 새로운 시작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공익활동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6기 아카이브 에디터로 활동하기 위한 에디터들의 다짐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열정적이고 새로운 우리의 이야기로 들어오세요!

아카이브 에디터 발대식 및 정기회의와 양성 교육이 이루어진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발대식 및 정기회의와 양성 교육이 이루어진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북부지부 대회의실 

6기 아카이브 에디터들을 위해 준비된 취재 물품들
북부에서의 시작, 더 열정적인 공익활동 아카이빙!
이번 발대식은 그 자체로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공익활동 아카이빙 활동은 그동안 수원에서 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기획홍보팀이 신설되었고 아카이빙 사업도 경기도 북부에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장소 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활동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기회가 활짝 열린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경기도는 31개 시군이 각기 다른 특성과 시민사회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공익 활동을 더욱 가까이에서 기록하고 소개하기 위해서는 지역 기반의 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주요 활동 거점이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기반에서 여러 아이디어와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겠죠. 이 말을 증명하듯이 올해는 북부 지역에서 지원한 에디터들이 많았습니다. 기존에 활동했던 에디터와의 색다른 기존보다 더 다양한 지역의 공익 활동이 기록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소개하고 있는 기획홍보팀 이상화 팀장
이번 6기 아카이브 에디터로 선발된 분 중에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했던 ‘시민 기록자 양성 교육 입문 과정’을 수료했던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요. 공익활동에 관해 배우고 아카이빙을 경험하는 일이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익활동으로 인한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는 뿌듯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죠. 우리의 모임이, 아카이빙을 향한 열정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인해 벌써 아카이브 에디터 활동이 벌써 6기까지 이어진 것이 아닐까요?
잘해야 한다? NO! 새롭게, YES!
발대식에서는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의 운영 방향과 다양한 사업 소개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는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중간 지원 조직으로, 2020년에 개소하여 공익활동 생태계 조성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익단체 설립 지원,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 정책 연구, 네트워크 구축 등 여러 사업을 통해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있죠. 이러한 활동 중에서도 아카이브 에디터 사업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공익활동을 직접 수행하는 활동가와 이를 기록하는 시민 기록자가 함께 공익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활동의 진정한 의미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정선미 운영총괄실장님의 환영사에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환영사로 맞이하는 정선미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운영총괄실장
“저희는 에디터분들이 반드시 훌륭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익활동이라는 게 사실은 우리 일상에서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는 일이죠. 그런데 서로 이거를 알아주고 서로 알려주고 하는 과정이 없으면 그냥 내 일상의 어떤 소소한 일로 흩어져버리게 돼요. 공익활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고리를 우리 경기 시민 한국 사회에 연결해 주는 중요한 활동을 기록 활동가들이 맡아주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익활동의 현장을 발견하고,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연결해 주는 역할은 정말 중요합니다.”
- 정선미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운영총괄실장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발대식 환영사 중에서
정선미 실장님의 말씀은 공익활동을 기록한다는 것이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는지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새로운 시작에 들떠 본질을 잃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이 없죠. 새로운 시도를 하되, 언제나 공익활동을 기록한다는 본질을 잃지 않는 공익활동 기록가로서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었답니다.
내 기록이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기록물에 대한 권리도 존중하자!
이날은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발대식인 동시에 1차 정기회의 및 양성 교육 심화과정 1강을 겸한 자리였습니다. 기록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저작권이 아닐까요? 내 기록물이 존중받고 싶다면 언제나 다른 기록물에 대한 권리도 알고 존중해야 하니까요.

저작권 강의를 맡아주신 한국저작권위원회 김재민 강사님

저작권 교육을 성실하게 수강하고 있는 6기 아카이브 에디터들
저작권은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권리를 말합니다. 글, 사진, 음악, 영상, 디자인 등 창작성이 있는 표현은 대부분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고 별도의 등록 절차 없이도 창작과 동시에 권리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라고 하더라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사용 시에는 반드시 저작권 여부를 확인해야 하죠. 가끔 공익활동 관련한 기록을 하면서 해당 단체에서 제작한 영상과 사진 혹은 안내 책자 등을 활용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이럴 때도 역시 저작권에 유의해야 하는 것이죠. 특히 다른 이들의 저작물을 활용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인용’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사님께서는 강조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카이브 에디터로서 활동할 때 원출처를 꼼꼼하게 확인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답니다.
이번 교육에서는 공익활동 기록자들에게 특히 저작권에 대한 감수성이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자신이 기록자로서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말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익활동 기록은 단순한 기사 작성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활동과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도 간혹 ‘공익’이라는 말에 가려져 권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침해되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이런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죠.
AI 활용도 강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저작권은 인간이 만든 창작물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것이 현재 원칙이기 때문에 AI를 활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의 여지는 없지만, 이 프로그램으로 만든 결과물을 어디까지 활용해도 괜찮은지 라이선스 계약을 꼼꼼하게 확인해 봐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누군가의 권리를 인식하고 이를 상호 존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많은 예외와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공정과 공익은 쉽게 오지 않는 법이죠. 사실 처음 듣는 저작권 교육은 아니지만, 이번 교육을 들으면서 저작권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답니다.
서로를 인터뷰하면서 첫 기록을 시작하다
6기 아카이브 에디터 1차 정기회의에서는 조금 특별한 활동도 진행되었습니다. 바로 에디터들이 서로를 인터뷰해 보는 것이었는데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기록 활동의 중요한 연습이기도 합니다. 에디터들은 서로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왜 6기 아카이브 에디터에 지원했는가.”, 두 번째 질문은 “내가 생각하는 공익활동을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무엇인가.”였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 참가자들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공익활동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나누었습니다.


서로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다양한 삶의 배경과 지원 사유를 들으면서 공익활동이 이토록 다양한 원동력으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익활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누군가는 “실천하는 것”이라고 표현했고, 또 다른 이는 “공동체적 삶”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표현은 달랐지만 각자 공익활동에 대한 자신만의 소신과 목표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6기 에디터들은 앞으로 함께 기록 활동을 이어갈 동료들을 조금 더 가까이 이해하게 되었답니다.
2026년 루키 아카이브 에디터 6기의 활동이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에디터들은 경기도 곳곳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공익활동 현장을 기록하게 됩니다. 어떤 기록은 지역의 작은 변화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떤 기록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시민들의 노력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기록에는 공통점이 있답니다. 바로 사람들의 삶과 공익의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것이죠. 경기도 시민사회가 만들어가는 공익의 역사이자,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중요한 이야기들에 독자 여러분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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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3
두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이자 교육의 현장을 지켜봐 온 시민으로서, 저는 문득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과연 학교는 아이들에게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처음 큰아이가 초등학교 문턱을 넘을 무렵, 저의 고민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현실적이었습니다. 내성적인 아이가 낯선 환경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혹여나 학교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상처받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했습니다. 당시의 저에게 교육이란 ‘이미 정해진 환경’이었고, 저는 그저 우리 아이가 그곳에 잘 ‘적응’하기만을 바라는 평범한 학부모에 불과했습니다.
" 좋은 학교는 학부모가 함께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참여하게 된 참교육학부모회의 강의에서 제 인생을 바꾼 한 문장을 만났습니다. “좋은 학교는 학부모가 함께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제게 신선한 충격이자 새로운 가능성이었습니다. 학교를 주어진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가꾸고 변화시킬 수 있는 유기적인 공동체로 바라보게 된 시발점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교육 정책에 관심을 두고 학부모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이런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은 “우리가 직접 그런 환경을 만들어보자”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변모했습니다.
그 실천의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와글와글 놀이터’였습니다. 큰아이가 저학년이던 시절, 매주 월요일 오후면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만났습니다. 거창한 프로그램이나 교구는 없었습니다. 그저 두 시간 동안 마음껏 뛰어노는 것,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처음엔 네 명으로 시작했던 모임이 어느덧 수십 명의 아이로 북적였습니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갈등을 해결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그 천진난만한 모습들을 지켜보며 교육의 진정한 주체는 아이들이며, 어른의 역할은 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꿈의학교’와 독서 모임으로 이어지며 저와 아이들 모두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당시 경기교육이 지향했던 ‘혁신교육’의 흐름과 마을교육공동체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습니다. 학교의 문턱이 낮아지고 학부모가 교육의 주체로 당당히 설 수 있었던 그 시절, 우리는 학교 안팎이 연결되는 소중한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물론 모든 시도가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시행착오도 있었고 형식적인 운영에 그친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학교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교육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문법이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 와글와글 놀이터의 힘 "
제가 목격한 가장 경이로운 장면은 사회적 실천의 현장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선 아이들은 이미 완성된 ‘시민’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며 교육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결국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주체적인 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어야 함을 다시 한번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경기교육의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과거 우리가 쌓아온 신뢰와 협력의 가치들이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이 다시 보수적이고 관리 중심적인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가장 안타까운 변화는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때 혁신학교를 함께 일구던 파트너였던 두 주체는, 이제 ‘민원인’과 ‘대응 주체’라는 차가운 관계로 멀어지고 있습니다.
아이의 성장은 결코 가정이나 학교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교사와 부모가 서로를 신뢰하며 아이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올바른 성장의 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계가 단절된 지금이야말로 ‘신뢰와 협력’이라는 교육의 원형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협력과 성장의 언어로 이어가는 경기교육으로 "
2026년, 우리는 다시 중요한 선택의 시점에 서 있습니다. 이번 선택은 단순히 한 명의 교육 행정가를 뽑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교육 철학을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경기교육이 경쟁의 언어가 아닌 ‘협력’의 언어로, 관리의 시스템이 아닌 ‘성장’의 시스템으로 다시 설계되기를 바랍니다. 학부모를 교육의 ‘동료’로, 교사를 존중받는 ‘파트너’로 대우하는 문화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육은 효율성이나 단기적인 성과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숭고한 영역입니다. 아이들의 삶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진심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숙의하고 토론하며 만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성적의 굴레에서 벗어나 조금 덜 경쟁하고, 조금 더 서로를 배려하며 어울릴 수 있는 학교를 꿈꿉니다. 배움이 교과서에 머물지 않고 삶과 연결되며, 아이들 개개인이 이미 한 사람의 존엄한 시민으로 존중받는 현장을 소망합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얻은 결론은 분명합니다. 교육은 바뀔 수 있고, 그 변화의 시작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2026년의 경기교육이 다시 한번 그 가능성의 힘을 믿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둔 방향, 조금 더 따뜻하고 공정하며,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교육을 향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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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5
설이 지나고 비대해진 몸뚱이를 바라보다 동네 산책에 나섰다. 피부에 와닿는 바람이 묘하게 따뜻해진 걸 보니 겨울의 끝자락인가 보다. 동네의 둥그런 잔디밭을 세 바퀴 돌면 1km. 때로는 걷고 때로는 뛰는 나의 러닝 트랙이기도 하다. ‘동네’라고 부르는 이곳은 나의 집이자 일터인 ‘위스테이 별내’ 아파트다. 어느덧 이곳에서 여섯 번째 봄을 기다리고 있다.
정기총회가 열리는 3월이 오기 전, 비교적 조용한 2월을 보내는 중에 입주민 카페에 새 글이 올라온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쥐불놀이를 하고 나물을 나눠 먹자는 돌봄소위원회의 글이다. 글을 보니 비로소 또 다른 계절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나는 절기니 풍습이니 하는 것들에 무심했다. 골목 놀이의 기억을 간직한 나름 ‘끼인 세대’였지만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내느라 공동체적 감각은 점점 흐려졌다. 그나마 아이 숙제를 핑계로 큰 명절에 한복을 입히고 귀여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SNS에 기록하는 날이 내게는 절기였다.
하지만 이곳에는 일반적인 달력 대신 계절의 흐름에 삶을 맡기는 ‘공동체력’이 흐른다. 봄이 오면 길 건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을 위한 새 학기 등교 봉사를 시작으로, 여린 잔디가 돋기 전 큰 돌과 잡초를 골라내는 ‘울력’을 위해 중앙 잔디밭에 모인다. 놀이터 옆 동네 텃밭에는 당첨된 가구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8월이 되면 개인 텃밭을 거두고 배추, 무, 갓 등을 심어 김장 거리를 준비하고, 첫서리가 내리고 나면 그 밭에서 난 식재료로 다 함께 모여 김장을 한다. 중간중간 단오에 멱을 감거나 물놀이를 즐기고, 삼복 행사를 챙기는 것도 빠지면 섭섭하다.




근본이 아파트인 만큼 여름 무렵 열리는 라인별 반상회도 빠질 수 없는 한 해 숙제다. 새로 이사 온 이가 있다면 이때 얼굴을 익히고 밥을 나눠 먹으며 식구가 되는 시간이다. 반상회에서 주거 관련 갈등 문제는 단골 소재다.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다 감정이 격해질 때는 각 동에서 활동하는 갈등조정소위원회 위원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낯섦과 긴장감을 나누고 서로 돕고 묻는 과정에서 공동체는 다시금 생명력을 얻는다.
한 해의 마지막 행사로 12월에 열리는 마을 잔치가 있다. 공동체 화폐인 ‘별’을 사용하는 행사로 다양한 체험과 먹거리, 공연이 차려진다. 큰 행사라 하더라도 조금은 어설프고 촌스러움도 묻어난다. 전문 업체의 손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 전부 주민이라 그렇다.


일하러 가보면 특히 ‘누구 엄마’들이 많은데, 다들 자녀의 이름이 아니라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며 주체적으로 활동한다. 특별히 엄마들이 많은 이유는 단순히 시간적 여유 때문만은 아니다. 공동체를 향한 돌봄의 감수성이 보다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한 시간에 머물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누군가의 성장을 기원하는 일, 공동체와 돌봄의 철학은 맞닿아있다.
조합에서 진행하는 양성평등, 돌봄 교육은 가족의 범위를 해체하고 확장하는 일을 한다. 교육에는 주로 타인의 안녕을 기민하게 살피고, 언제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으나 누군가를 위해 재능을 단련하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한다. 돌봄의 대상을 내 아이에서 이웃으로, 온 동네로 넓힌 이들은 이제 집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거실에서 나와 마을의 여러 무대에서 마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준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흐름에 따라 연결된 마을 활동을 하나하나 쌓다 보면 어느새 삶의 자리가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 누군가는 환경 운동가로, 누군가는 정원사나 요리사로, 혹은 에디터로 마을에 필요한 활동가가 되어 다시 태어난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온기를 느끼며 해낸 경험들이 강렬한 자극이 되는 것이다.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게 역량을 펼쳐본 이들이라면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그때 주식을 샀더라면…’과 같은 과거의 후회보다 현재의 온기에 집중한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이곳이 더할 나위 없는 배움의 장이다.

위스테이 별내는 입주 전 협동조합원으로 가입한 무주택자에게 입주 자격이 주어진다. 내 집이 아닌 8년 임대주택으로, ‘사는(Buy) 집’이 아니라 ‘살기(Live) 위한 집’을 찾은 사람들이 모였다. 아파트를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은 주거 문제의 대안적 해결과 지속적인 공동체 운영을 미션으로 삼고 491세대를 이끌어간다. 이웃들과 언제든 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법정 기준 대비 2.5배에 달하는 면적을 공용 커뮤니티 시설로 조성했다.


각종 동아리와 육아 모임 등 장르와 나이를 뛰어넘는 다양한 일상 모임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까닭은, 아파트 설계 단계에서 600명이 넘는 조합원이 공간 디자인에 직접 참여한 덕분이다. 당시에는 직접 살아보지 않았기에 실제 생활하며 생기는 구체적인 문제까지 다루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1년간 46번이나 의견을 조율하며 훈련한 경험은 앞으로의 갈등을 견디는 힘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사진을 뒤적이다 작년 5월 ‘꽁날(공동체의 날)’에 있었던 김밥 말이 행사 사진에 눈이 머물렀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속재료를 길게 늘어놓고 일렬로 서서 하나로 연결된 ‘김밥 기차’를 만드는 행사로, 10m로 시작해 매년 조금씩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사진 속 이웃들이 김밥 옆구리가 터질세라 소중하게 들어 올리는 모습이 벅차다. 서로를 맞잡은 그 손들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마을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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