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메뉴열기

공익웹진

  •  
     
     
     
     
     
    그림 속 두 인물, 누구 같나요? 남자는 박중훈이 연상되는데 여자는 글쎄요… 바로 떠오르질 않네요. 살짝 나이 든 고아라? 사실 이 그림은 중장년 컨셉에 맞춰 AI가 그린 거래요. 옛날 잡지의 표지를 연상시키는 웹자보가 그야말로 레트로 감성 충만이군요.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곳곳에 키워드가 있습니다. 중년 특집, 인생 2막, 의미 있는 전환, 공익활동, 첫걸음, 비숙박, 무엇보다 다르게 살아볼 결심.
     
     
    중장년 워크숍 웹자보 / 출처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그렇습니다. 지난 9월 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화성 정남의 YBM연수원에서 중장년층을 위한 공익활동 입문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에는 청플 같은 청년 프로그램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이번에 새로운 시도로 중장년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답니다. 저 역시 중장년 에디터로서 워크숍 현장에 함께했습니다.
     
    이틀이나 꼬박 시간을 빼야 하는 일정이 만만치 않았는데,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가진 약 20명의 참가자들이 이 솔깃한 초대에 응했습니다. 입문 과정이라지만, 사실 이분들 중에는 첫걸음이 아니라 이미 저만치 앞서 걷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1일차 - 여는 강의 / 사진출처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첫날의 문을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공정옥 센터장이 열어주셨습니다. “지금, 왜 우리에게 공익활동이 필요한가?” 시민 공익활동에 대한 이해를 돕는 강의였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궁극적인 인생 목표가 행복인데, 우리는 이 행복을 어떨 때 인식하게 될까요? 타인의 인정이나 물질적 성공에 우선해서 가장 높은 순위에는 소명이나 가치 추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익만큼이나 공익도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는 거죠. 특히 자녀 독립과 직장 은퇴로 시간적 여유가 많은 중장년층의 봉사나 재능 기부가 활발하다네요.
     
    공익활동은 이러한 자원봉사보다 범위가 더 넓습니다. 소망탑 만들기나 환우들의 자조 모임처럼 사회 변화에 발맞춰 새로 편입된 공익활동도 있지요. 사례 중심의 여는 강의를 통해, 참가들은 공익활동과 시민사회의 개념을 배우고 이를 지원하는 여러 플랫폼도 소개받았습니다.
     
     
    1일차 – 함께 그리기 / 사진출처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맛있는 점심 식사 후 오후에는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갔어요. 바로 내 삶의 궤적 찾기입니다. 내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에 앞서 세 그룹으로 모여 함께 그리기를 했는데요. 다들 오랜만에 학창 시절 미술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을까요? 잘 그리려면 우선 잘 들여다봐야 하지요. 조원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유심히 관찰하면서 서로가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1분 30초 제한 시간 안에 간단히 자기소개와 이 과정을 신청한 계기도 나눴습니다.
     
     
     
    1일차 - 자기소개(왼), 내 삶의 가치 찾기(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과 경험은 무엇인지, 한 마디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나의 행복에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행복학 교수 탈 벤 샤하르의 말처럼 ‘행복=즐거움+의미’이기 때문이지요. 참가자들은 그 부분을 생각하면서 서로의 버킷리스트를 경청했습니다.
     
    
    2일차 – 사람책 / 사진출처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첫째 날, 나를 발견했다면 둘째 날은 그런 나와 어울리는 공익활동을 탐색하는 시간이었는데요. 먼저 오전에는 실제 공익활동가의 생생한 사례를 만났습니다. 놀이 같았던 취미를 마을활동으로 확장한 김광원 님, 세월호를 계기로 여성 단체와 작가 활동을 시작한 김화숙 님, 공무원 퇴직 후 평화운동이라는 인생 2막을 연 한경준 님까지 3권의 사람책이 자신의 공익활동 스토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으면 때로는 공감이 되고 때로는 자극이 되지요. 사람책도 그렇습니다. 사람책과 독자 모두 짧지 않은 삶의 이력이 있기에, 어느 부분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지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기존 가치관에 작은 균열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기한테 맞도록 취사선택해서 꼭꼭 소화 시킨다면, 아마도 제일 바람직한 독서법이 아닐까 싶네요.
     
     
    2일차 – 계획 세우기 / 사진출처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이틀 동안의 워크숍을 마무리하면서, 나의 강점과 공익활동을 매칭 시켜 각자의 계획서를 작성해 봤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그래서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들 열심히 빈칸을 채워 나갔습니다.
     
    신간을 들고 정보 소외계층을 찾아가는 낭독가, 노년층의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태블릿 활용능력 교육, 세대 간 연대를 도모하는 저탄소 요리 모임 등 어떤 분야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무슨 활동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역할과 일정이 나왔습니다. 찬 바람이 불기 전에 시작하겠다는 낭만적인 대답도 있었죠. 센터는 이분들의 첫발을 위해 정보와 도움을 최대한 제공하고자 합니다. 저처럼 센터의 아카이브 에디터를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죠?
     
     
    
    단체사진 / 사진출처 :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역시나 중장년 워크숍이라고 확인시켜준 몇몇 순간들이 있었네요. 필기할 때 주섬주섬 꺼내든 돋보기안경, 생일로 순서 정할 때 등장한 음력 생일, 버킷리스트에 단골로 들어간 건강 이슈, 이휘재의 인생극장 “그래, 결심했어!”의 추억. 센터가 신경 써서 준비한 간식도 어른들 입맛의 먹거리였다지요.
     
    전체 프로그램의 진행은 ‘민주주의기술학교’ 전문가 선생님들이 맡아주셨습니다. 덕택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려면 필요한 대화와 소통의 기술을 좀 더 배운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니 제 경우는 오래전부터 시사잡지 <녹색평론>을 구독했던 게 지금 제 가치관과 활동의 뿌리 같습니다. 낯선 세계를 향한 그 첫 마음은 어떻게 열리는 걸까요?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아니면 그전에 최소한 작은 씨앗이 배태돼 있어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공부에 대해서 늘 이런 식으로 말하잖아요. ‘늦었다고 생각한 그때가 가장 빠르다, 언제든지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것이 나이 든 사람을 위한 멘트라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꾸준한 습관이 돼야 한다’ 이것은 어리거나 젊은 사람을 위한 멘트입니다. 아무튼 어느 쪽이나 당장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지요.
     
    공부처럼 공익활동에도 나이가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중장년 베이비부머가 참여하기는 더욱 좋습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다르게 살아볼 결심’이라는 제목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는군요. 중장년 여러분, 어디 한번 다르게 살아보시렵니까? 부디 모두들 좋은 씨앗에 제대로 낚인 것이기를!
     
    

     
     
    [현장스케치] 중장년 입문 워크숍 : 다르게 살아볼 결심
    참비움

    조회수 440

    2025-09-19
  •  

    머리보다 발로, 책상보다 현장에서 독도를 지켜온 활동가, 안재영(DMZ평화동행 대표)

     

    특정 대상에 이름을 지어줄 때, 아무 생각없이 대충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없다.

    신생아로 태어난 아기에게 그 아기를 축복하는 이름을 지어주듯이 섬을 최초로 발견한 나라에서 섬이름을 붙일 때도, 그 섬을 상징하는 섬이름을 붙이게 된다.

     

    독도의 옛 지명은, 지난 1500년동안, ‘우산도(于山島 :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섬의 뜻)였다독도(獨島)라는 명칭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이 중앙정부에 보고할 때 최초로 공식적인 행정지명으로 사용되었다중간 중간 시대에 따른 별칭으로, 삼봉도(三峯島: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 섬), 가지도(可支島: 강치(물개의 일종)가 서식하는 섬, 석도(石島: 돌로 이우어진 섬)로 불린 적이 있었지만, 이 이름들은, 우산도의 별칭일 뿐, 독도의 옛 지명은, 변함없이 1500년 동안 우산도였다.

     

    일본은 한반도 전체를 침략하기 5년전인 1905222, 러일전쟁을 준비하면서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고자 독도를 몰래 자국 섬으로 편입했다 주장하면서, 다께시마(竹島)1)로 부르기 시작하였다일본이 독도를 가지고,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서 판결을 받아보자고 주장하는 가장 주된 이유중에 하나가 독도(獨島)보다, 죽도(竹島), 한일간의 공식 서류에 먼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명칭은,광복 후부터 불리기 시작한 명칭이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성(京城), 조선시대에는, 한양(漢陽)이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경성이 한양이고, 한양이 서울인 것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거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우산도가 독도라는 증거는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는 많은 고지도와 고문서에서 증명해주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우산도가 독도다를 가르처 주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우산도란 명칭을 잊거나, 잃어버리게 된다면,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의 독도명칭(1906)이 일본이 주장하는 다께시마(1905)보다 뒤처지는 명칭이 된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일학자들 중에는, 우산도가 독도가 아니다란 주장을 자신의 저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본이 독도를 강탈해간 100년이 되는 해인 2005년부터,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서는, 다께시마(竹島)는 일본의 고유영토다는 주장을 10개국 언어로 주장하고 있다. 그 주장에 가장 중점 사항이 ,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우산도 명칭만 지워버리게 된다면, 일본은 국제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하나 선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독도 교육현황은 어떨까? , ‘우산도가 독도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일본의 경우, 2001년까지만 해도 다께시마는 일본 영토주장을 했던 교과서는 극우세력으로 평가되는 새역모(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발간한 역사교과서 뿐이었고, 독도왜곡 교과서 채택율은 20010.039%에 불과하였지만, 2005년엔 0.4%가 되더니(4년 만에 10배 증가), 2009년에는, 1.7%로 늘어 났다가, 2021년에는, 일본에서 발행되는 거의 100%대 다수의 교과서에서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왜곡된 교육을 하고 있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독도교육 상황은, 매년 1025독도의 날즈음해서, 플래시몹 춤과, 1982년에 만들어 진 독도는 우리 땅노래 가사 외우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상대방 일본의 경우, 독도교육이 불과 20년만에 0.039%에서 100%로 엄청난 양적, 질적 변화가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1982년에 머물러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독도는 섬(Island)일까?, 바위(Rock)일까?

    199411월부터 발효되기 시작해서, 2025년 현재 168개 국가들에서 비준한, ‘유엔해양법협약’ 121조에 1항에서, (Island)에 대해 규정하기를,

    1) 섬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로서 물로 둘러싸여 있으며, 조수 만조 시에도 수면 위에 있는 것을 말한다.

    2) 섬은 자국의 영해, 접속수역, 배타적경제수역(EEZ) 및 대륙붕을 가지는 데 있어서 다른 영토와 동일하다

    3) 그러나,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자체적인 경제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rock)은 배타적경제수역이나 대륙붕을 가질 수 없다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섬(island)일 경우에는, 독도기점으로 배타적경제수역 200해리(370km)의 대한민국 바다영토가 생기지만, 독도가 섬이 아닌, 바위(rock)로 분류되게 된다면, 배타적경제수역을 갖지 못하고, 12해리 영해만 갖게 된다는 것이다.

    독도는, 유엔해양법 제3항에 섬으로서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물이 충분하고2), 나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유엔해양법 1211항과 3항을 충족하기 때문에, 2항에서 규정한 배타적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EEZ)를 가지는 기점이 된다. 독도기점 바다영토 200해리는, 한반도 면적의 약 2.2배 해당하는 매우 넓은 바다영토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독도로 유명한 한 강사는, 독도에 물이 5리터 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독도는 섬(island)이 아닌, 암석(rock)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글을 쓰는 글쓴이가 5리터의 자료를 제시해달라 요청하였으나, 무응답 상태로 대응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독도교육 시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거니와, 독도교육의 핵심을 가르칠 선생님이 없다는 것이, 제가 주장하는 독도가 위기다의 이유다.

    현재 대한민국 독도교육하면, 독도의 지리적 위치와 독도에 무슨 생물이 존재하는 등의 자연적 환경에 대해서 만 일부를 가르치고 있지만 일본이 역점을 두고 있는 국제법적 관점에서는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세월동안 독도에 대한 연구와 논문발표를 해오신, 독도에 대한 최고 전문가이신 신용하교수님3)의 주장에 따르면, “역사적으로는 한국과 일본간에 독도논쟁은 존재할 수 없다”, ‘굳이 얘기하자면 역사적으로는 한국이 ‘100’이라면, 일본은 ‘0’이다라고 하셨다.

    대한민국 정부의 독도에 대한 기본입장도, 역대 이승만정부부터 시작해서 현재 이재명정부에 이르기까지, 변함이나 수정 없이 언제나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도는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다.

     

    출처:외교부 독도 홈페이지(https://dokdo.mofa.go.kr/kor/dokdo/government_position.jsp)

     

    고유 영토란 의미는, 일본에 의해 강제로 침탈당했던, 일제강점기 기간 외에는, 독도는 단 한번도 다른 나라에 속해 본 적이 없었던 대대손손 우리 영토라는 의미이며, 역사적으로는, 세종실록』 「지리지(1454), 만기요람(1808), 태정관 지령(1877)등 여러 역사책에 독도가 우리 영토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지리적으로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육안으로 보이기 때문에, 울릉도 어민들이 독도에 가서 생활하였던 울릉도에 속한 속도(屬島)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법적으로는,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독도는 울도(울릉도)군수의 관할 구역으로 선포하였고, 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의 영토를 규정하는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관 지령에서도, 울릉도, 독도, 제주도를 일본의 통치범위에서 제외하였으며,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 영토를 규정한 것을 일본 정부가 일본의회에 설명하고 자 작성한 일본 영역도에서 조차도, 독도는 일본영역(領域)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하게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증명하고 있다.

    일본에서 발견된 역사적 자료들 또한 모두가 독도가 한국 영토인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일본 문서들은, 일본이 1868년 메이지유신 후 동아시아 침략을 준비하기 위해 외교관을 위장한 스파이들을 파견하면서 조사내용을 지시한 1870년 조선국 교제 시말 내탐서(울릉도와 독도가 언제부터 조선의 부속도서가 되었는지를 조사해 오도록 함), 1877년 태정관 문서(일본 최고 행정기관 태정관에서 울릉도외 1(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한 문서), 1951년 일본영역참고도(패전국 일본의 영토를 규정한 일본정부가 제작한 일본영역지도)등이 존재하고 있다. 일본측으로는 당연하겠지만 이들 일본 문서들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상에서는 철저하게 감추고 있다.

     

    일본은 독도를 재강탈 해가기 위해서 아래와 같이 독도왜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첫째, 독도의 1500년 역사인, 옛 이름 우산도(于山島)’를 지우는 일이다.

    둘째, 독도를 울릉도로부터 완전 분리해내는 작업을 한다- 역사적으로 옛 고문서나 고지도상에 독도(우산도)만 별도로 표기된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울릉도의 속도(屬島)로서 우산도(독도)가 존재하고 있다. 독도를 울릉도로부터 완전 분리가 가능하다면, 일본측에서는, 우산도를 전설속에 가상(假像)의 섬으로 치부하려는 전략이다.

    셋째, 독도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면서, 독도를 일본과 평화롭게 공유하자는 주장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함정이다. 완전한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국가 + 주권 + 영토 3가지 모두를 완전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 독도를 일본과 공유한다는 것은, 이미 독도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도를 온전하게 대한민국 고유영토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것이다. 201212월까지 완성하기로 되어 있었던, ‘독도종합해양과학기지가 당시 대통령의 정치적 결정으로 실종된 상태이다. 정부는 독도에 실종상태인 독도종합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해야 한다. 독도해양과학기지에 국내 과학자 뿐만 아니라, 외국의 해양,지질과학자들이 체류하며 동해바다 해양과 지질을 연구해서 발표할 때, 연구지역이, 대한민국 독도라는 것을 명시해서 다양하고 많은 유수의 과학지에 발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독도에 어민숙소를 확장하고 독도주민을 3가구 정도 정착하게해서 독도어촌계를 구성한 다음 독도주민들로 하여금, 대한민국 국가에 세금을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두가지 방안은 독도를 대한민국 정부가 실효적으로 완전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온 세계에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민법학자 예링(Rudolf Von Jhering)과 역사학자 이한기교수의 주장으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권리침해에 대해 침묵하는 민족을 스스로가 사형선고에 서명했다고 생각한다. 이웃나라에 의해 1평방마일의 땅을 저항없이 탈취당한 민족은 결국에는 자기 영토라 할만 것이 모두 없어지게 되고, 국가로서 존립하기를 포기하게 되고 나머지 영토도 모두 빼앗기게 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민족은 더 나은 것을 기대할 자격이 없다.- 예링-,

    명명백백한 자국의 영토라도 이를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한기-

     

    독도 이제는 알아야 지킬 수 있다.

     

    글쓴이 안재영은, 1987년 외대 독도연구회로 독도와 인연을 맺은 후, 1988년 울릉도-독도 뗏목 탐사대원으로 참가하였으며, 2008년에 예술마을 헤이리에 사비로 영토문화관 독도를 개관(www.usando.kr )해서, 독도지키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독도탐방을 20여 차례 다니면서, 머리로서만 아니라, 눈으로 독도를 보고 독도의 역사를 몸으로 느끼고 알아야 지킬 수 있다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2012년 동북아역사재단이 주는, ‘독도사랑상을 수상하였다. 10여년전부터는, 독도를 통해 남과 북이 하나되는 평화통일 운동에도 활동중인, 북한학 박사이다.

     


    1) 죽도(竹島)라고? 하지만, 독도에는 어떤 시기에도 단 한 그루의 대나무가 존재해 본적이 없다.

    2)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KIOST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측정 자료에 따르면 하루에 2960리터 정도다. 이것은 500음료수병 5920개 분량이다. 유입량은 강수량이 많을 때 최대 하루 7020리터, 최소 하루 1120리터를 보였다. 출처 : 경북도민일보(http://www.hidomin.com, 2024.07.16)

    3)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자,한국 독립운동사와 민족문제 연구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꼽힘(출처:ChatGPT)

     
     

     

    [기획]1500년동안 불리던 독도(獨島)의 옛 이름 우산도(于山島)를 아시나요?
    DMZ평화동행 안재영 대표

    조회수 406

    2025-09-18
  •  
     
    사진출처: 미리캔버스 @PIXABAY
     
     
    
    데이트 폭력은 스토킹에서부터 항체적 폭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최근 사례들은 그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기도 성남에서는 아파트 보안 직원이 거주 여성을 지속적으로 스토킹하다 결국 구속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초기에 체포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자 프로파일러의 분석을 통해 재범 위험성과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시했고, 이를 근거로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스토킹 행위라도 재범 가능성이 높을 경우 적극적인 사법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사건으로는 태권도 선수인 30대 남성이 연인 관계에 있던 여성을 집요하게 통제하다가 술자리 말다툼 중 뒷덜미를 잡아당기고, 신고를 막기 위해 휴대전화를 빼앗아 던진 뒤 얼굴에 발차기까지 가한 사례가 있습니다. 피해자는 안와골절로 수술까지 받아야 했고, 평소에도 위치 추적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감시와 집 비밀번호를 몰래 알아내 무단 침입을 당하는 등 지속적인 공포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은 피해자의 안전과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 중대한 범죄로 비화할 위험이 높습니다. 결국 두 사건은 데이트 폭력이 단순한 연인 간 갈등이나 일시적 다툼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범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과 더불어, 경찰과 법원이 조기 개입하여 재범을 차단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데이트 폭력이란 무엇인가?
     
    데이트 폭력은 흔히 단순한 연인 간 다툼이나 갈등으로 오해되기 쉽지만, 사실상 연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포괄하는 심각한 범죄 행위입니다. 데이트라는 이름 때문에 사소한 갈등처럼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신체적 폭행, 언어적 모욕, 정서적 괴롭힘, 경제적 착취, 성적 강요, 그리고 스토킹이나 감금과 같은 위협적 행위까지 포함됩니다.
     
    우선 신체적 폭력은 가장 눈에 띄는 형태로, 밀치기·뺨 때리기·머리채를 잡는 행위 등 직접적인 신체적 공격이 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데이트 폭력은 이보다 훨씬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언어적·정서적 폭력의 경우, 반복적인 욕설이나 고성, 모욕적인 언행을 통해 상대방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정신적으로 위축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네 잘못이야”라고 문제의 원인을 일방적으로 전가하거나, 지속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행위도 심리적 폭력의 일환입니다. 경제적 폭력 역시 연애 관계에서 빈번히 발생합니다. 상대방의 경제 활동을 제한하거나, 금전 사용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심지어 돈을 갈취하거나 경제적 의존 상태를 악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피해자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결국 가해자에게 종속되도록 하는 위험한 수단이 됩니다. 더 나아가 성적 폭력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연인 관계라는 이유로 동의 없는 스킨십이나 성관계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히 성범죄에 해당합니다. 사귀는 사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 접촉은 ‘강제추행’이나 ‘강간’으로 처벌될 수 있으며, 실제 법원 판례에서도 이를 엄격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디지털 폭력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피해자의 휴대폰을 무단으로 확인하거나 위치정보를 추적하고, 사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빌미로 협박하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해 피해자의 얼굴을 합성한 불법 영상물을 제작·유포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큰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데이트 폭력이 더욱 심각한 이유는 피해자가 이러한 폭력 상황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관계 때문에 거부 의사를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니까 참아야 한다"라는 왜곡된 정서나, “헤어지자”는 말을 꺼낼 때 발생할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피해자의 침묵을 불러옵니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데이트 폭력은 일반적인 폭력 범죄보다 은폐율이 높고, 신고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다수 존재합니다.
     
    가해자의 성별은 남녀를 가리지 않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대체로 남성이 가해자,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피해자들은 20~30대가 주를 이루며, 연애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의존하거나 신뢰를 보낸 상태에서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심리적 충격과 배신감이 일반적인 폭행 사건보다 훨씬 크고, 장기적인 정신적 후유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결국 데이트 폭력이란 연인 간 갈등의 수준을 넘어선, 관계의 친밀성과 의존성을 악용한 권력형 폭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다툼으로 축소하거나 ‘사적인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사회적으로 명백한 범죄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만 피해자가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반복적인 가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데이트 폭력이 미치는 악영향
     
    데이트 폭력은 피해자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도 심각한 파장을 미칩니다.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 피해자는 신체적 상처뿐 아니라 장기적인 정신적 후유증을 겪게 됩니다. 폭행으로 인한 골절, 상처, 흉터 등 신체적 피해는 눈에 보이는 상처이지만, 더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상처입니다. 지속적인 폭언, 협박, 감시와 같은 정서적 폭력은 피해자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며, 불안 장애,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가해자가 가까운 연인이기 때문에 신뢰와 애정의 배신감이 동반되어, 피해자는 대인관계 전반에 대한 불신과 공포를 가지게 되고 이후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인간관계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경제적 악영향도 큽니다. 일부 가해자는 피해자의 재정 활동을 통제하거나 금전을 갈취함으로써 피해자를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기도 합니다. 피해자는 치료비, 변호사 비용 등으로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떠안으며, 직장 생활에도 집중하지 못해 경력 단절이나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자립 기반을 잃고, 결국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데이트 폭력은 여러 문제를 낳습니다. 피해자가 신고를 주저하거나 고소를 취하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범죄가 은폐되고, 이는 가해자의 재범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높입니다. 실제로 많은 데이트 폭력 사건이 심각한 살인이나 강력 범죄로 비화하는 경우가 있어 사회적 안전을 위협합니다. 또한 피해자가 학업이나 직장에서 이탈하면서 사회적 생산성 저하가 발생하고, 의료·사법·복지 등 국가 자원이 추가로 소모되는 부정적 효과도 큽니다. 무엇보다도 데이트 폭력을 단순한 연인 간 갈등으로 치부하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고, 폭력이 용인되는 분위기를 조성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결국 데이트 폭력은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파괴하고, 경제적 자립을 약화시키며, 사회적 비용과 불안을 증가시키는 복합적 범죄입니다. 단순한 사적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 강화, 사회적 인식 개선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데이트 폭력의 실태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 폭력은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약 7만 건이던 신고 건수가 2023년에는 7만 7천여 건으로 늘었고, 2024년에는 8만 8천 건을 넘어 불과 2년 사이 1만 건 이상 폭증했습니다. 특히 단순한 폭행 수준을 넘어 성폭력이나 감금, 협박을 동반한 범죄의 증가세가 두드러지며, 피해의 양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주로 2030대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피해자는 2030대 여성이 많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교제 폭력이 두드러진다는 특징을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신체적 폭행에서 그치지 않고 디지털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피해자의 스마트폰 위치를 추적하거나, 사적인 사진과 영상을 빌미로 협박하는 방식이 빈번히 활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해 성적 영상물을 제작·유포하겠다고 위협하는 사례까지 나타나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피해자들은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해자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나 주변의 시선, 혹은 관계 유지에 대한 압박 때문에 폭력 피해를 숨기고 참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법제도의 미비점도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데이트 폭력은 가정폭력처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피해자는 일반 폭력 사건과 동일한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이 때문에 경찰이나 법원으로부터 신속한 보호 조치를 받기 어렵고,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는 경우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철회하면 사건이 무마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회유나 협박에 의해 끝내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결국 데이트 폭력은 단순히 연인 간의 갈등을 넘어선 구조적 범죄이며,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특수성이 존재합니다. 통계에 드러난 수치만 보더라도 그 심각성이 충분히 확인되지만, 신고되지 않은 은폐된 피해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따라서 데이트 폭력을 개인 간 사적인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대응
     
    경기도는 최근 급증하는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피해자 안전망 강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보호가 미흡하다는 사회적 비판이 잇따르자, 경기도는 지자체 차원에서 선제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안심 패키지 지원 사업’과 ‘바로희망팀 운영’은 대표적인 대응 사례로 꼽힙니다.
     
    먼저 수원시는 여성 1인 가구와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여성안심 패키지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들이 집 안에서조차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한 생활 밀착형 지원책입니다. 지원 물품에는 창문 잠금장치와 휴대용 비상벨, 안심 경보기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상황에 따라 스마트 도어벨이나 홈 카메라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스마트 도어벨은 방문자가 초인종을 누르면 실시간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영상이 전송되어 신원을 확인할 수 있고, 홈 카메라는 집 내부를 원격으로 확인할 수 있어 침입이나 위협 상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러한 장치는 단순한 방범 효과를 넘어, 여성들이 “혼자 사는 집”이라는 이유로 겪는 구조적 불안을 완화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로 지원 사업은 우선순위를 설정해 범죄 피해자, 저소득 여성 1인 가구, 한 부모 가정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제공되고 있어,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집중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편, 안성시는 ‘바로희망팀’을 신설하여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데이트 폭력 사건을 전담 처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기존에는 피해자들이 사건 발생 직후 경찰, 상담 기관, 법률 지원 센터 등 여러 기관을 일일이 찾아가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심리적 부담과 시간적 지연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로희망팀은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한 장소에서 상담, 안전 점검, 법률 상담, 복지 자원 연결, 심리 지원, 심지어 생계와 일자리 지원까지 제공하는 원스톱(one-stop)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팀 구성에도 전문성이 강화되어 있어, 경찰관이 현장 치안을 담당하고, 전문 상담사가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돕고, 변호사가 법적 절차를 안내함으로써 피해자 보호와 권리 보장을 동시에 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경기도의 대응은 단순히 범죄 발생 후 사후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범죄 예방과 피해 최소화라는 이중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여성안심 패키지는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여 범죄 발생 가능성을 낮추고, 바로희망팀은 범죄 발생 이후 신속하고 통합적인 대응으로 2차 피해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두 정책 모두 피해자들이 여러 기관을 전전하지 않고도 즉각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심리적 안정과 제도적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궁극적으로 경기도의 대응은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을 단순히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안전과 직결된 사회 범죄로 인식하고, 이를 지자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 해결하려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향후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적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사랑의 탈을 쓴 폭력, 경기도가 움직였다
    주야

    조회수 336

    2025-09-15
  •  
     
    [광복 80주년 특별전] 여성독립운동가 12인 목소리 전시회 포스터 /출처: 이회영 기념관 
     
     
    
    ● 광복 80주년의 의미
     
    2025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정확히 8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광복절은 단순한 국가 기념일을 넘어, 억압과 폭력 속에서도 자유와 독립을 갈망한 민중의 피와 눈물의 역사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찾아온 해방은 한국인들에게 단순한 정치적 독립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는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올해 80주년은 더욱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전쟁, 분단, 산업화, 민주화라는 험난한 길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역사 왜곡과 분단의 상처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렇기에 80주년은 과거를 단순히 기념하는 차원을 넘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주 간과되었던 주제가 바로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 속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종종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총을 들고 싸우거나, 첩보 활동에 나서거나, 해외에서 외교 활동을 이어가는 등 결코 작은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가정과 사회의 억압적 관습을 깨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여성들의 행보는 오늘날 성평등과 인권의 시각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다시금 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들은 역사의 공백 속에 묻힌 존재가 아니라, 독립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사적 역할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직접적 무장 투쟁에 참여한 여성들입니다. 대표적으로 남자현 지사는 만주와 중국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하며 일본 군인 암살과 폭탄 투척 계획을 주도했습니다. 그녀는 "내 몸이 썩어 없어져도 조선 독립의 밑거름이 된다면 영광"이라며 생을 바쳤습니다. 둘째, 문화·교육 활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여성들입니다. 김마리아, 박인덕 등은 여성 교육 운동을 통해 식민지 상황 속에서도 민족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를 키우려 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여성에게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혁명적 의미를 가졌습니다. 셋째, 국제 무대에서 외교적 활동을 벌인 여성들입니다.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남았다면, 그 외에도 독립운동을 국제사회에 알린 여성들이 존재했습니다. 김알렉산드라(고려인 독립운동가)는 러시아 혁명과 연계해 활동했고, 정정화 지사는 임시정부의 자금을 전달하며 항일 외교의 실질적 지원을 했습니다. 이렇듯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단순한 보조적 역할을 넘어, 독립운동 전선의 다양한 층위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들의 헌신은 총칼 앞의 용맹뿐 아니라, 문화·교육·외교 전선에서 ‘조국의 독립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 유관순 (1902~1920)
     
    유관순은 충청남도 천안 병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며 어려서부터 교육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당시 조선은 일제 식민 지배로 민족의 자존심이 짓밟히던 상황이었고, 유관순 역시 어린 나이부터 나라 잃은 설움을 체감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와 함께 기독교 신앙을 지켰으며, 이는 이후 독립운동에 나서는 데 정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1915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한 유관순은 신여성으로 성장하며 민족 문제에도 관심을 키웠습니다. 특히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이화학당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고종 황제의 서거가 전국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가운데, 유관순은 “나라를 되찾는 데 여성도 앞장서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시위에 참여한 그는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이 시위에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모였으며, 일본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수십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관순의 부모 역시 일본군의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비극 속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체포된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감옥에서도 그는 동료 수감자들을 이끌며 독립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 만세운동을 벌였고, 일본 간수들에게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결국 1920년 9월, 만 18세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죽음은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본 당국은 장례조차 통제했지만, 민중들은 그녀를 ‘대한의 딸’, ‘조선의 잔다르크’라 부르며 기렸습니다. 그녀는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3·1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며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았습니다.
     
     
    ● 남자현 (1872~1933)
     
    남자현은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났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은 외세의 침략으로 혼란스러웠으며, 그는 어려서부터 강한 애국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찍 결혼했으나 남편을 병으로 잃고 홀로 아들을 키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자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자현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을 지원하는 활동에 나섰습니다. 그는 식량과 자금을 마련해 전달하는 것은 물론, 직접 무기를 다루며 항일 무장투쟁에도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여성으로서 무기를 들고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지만, 그는 “나라 없는 여성에게는 가정도, 삶도 없다"라며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본군 고관 암살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32년에는 하얼빈에서 일본의 대사와 관리들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체포되었습니다. 체포 후 일본 경찰의 가혹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동지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단식을 이어간 끝에 1933년 옥중에서 순국했습니다. 남자현 지사의 투쟁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첫째, 여성으로서 ‘직접 무장투쟁’에 나섰다는 점입니다. 이는 독립운동이 단지 남성의 몫이 아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둘째, 그는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의 삶을 철저히 희생했으며, 심지어 자녀에게조차 “나는 조국을 위해 살다 갈 것이다”라는 신념을 남겼습니다. 남자현 지사는 비록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나, 실제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의 생애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저항 정신을 대표하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 정정화 (1900~1991)
     
    정정화는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사상을 접했고,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많은 여성들이 거리 시위에 참여했으나, 정정화는 단순한 시위 참여에 머물지 않고 임시정부와의 연결 고리를 자처했습니다. 1920년대 그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임시정부가 운영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자금난이었는데, 정정화는 국내에서 모은 독립운동자금을 중국으로 전달하는 위험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일본 경찰의 감시가 삼엄했지만, 그는 어린 딸을 데리고 위장해 국경을 넘나들며 자금을 전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심부름’이 아니라 임시정부 존립의 핵심을 떠받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정정화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가족을 돌보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녀는 독립운동가의 아내라는 위치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운동가’로서의 자각을 갖고 행동했습니다. 실제로 훗날 회고록 『장강일기』에서 “나는 독립운동가의 아내가 아니라, 나 자신이 독립운동가였다"라고 밝힌 것은 여성 독립운동의 주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광복 이후에도 정정화는 독립운동가 가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광복 후 혼란스러운 시국 속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잊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들의 공적을 알리기 위해 기록을 남겼습니다. 1991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우리의 독립운동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정신을 간직했습니다. 정정화 지사의 삶은 여성의 역할이 단순히 보조적이라는 편견을 넘어섰습니다. 그녀는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자금·외교·생활 전반을 지탱한 보이지 않는 중심축이었으며, 여성 독립운동가의 대표적 상징으로 평가됩니다.
     
     
    ● 김마리아 (1892~1944)
     
    김마리아는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습니다. 기독교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서양식 교육을 받으며 민족의식을 키웠습니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그는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교육과 계몽을 통한 독립운동을 결심했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그는 기독교계와 학생운동을 통해 민족 문제를 접했고, 점차 정치적 투쟁으로 방향을 확장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그는 도쿄 유학생 시위에 적극 가담했습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했으나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귀국한 김마리아는 국내 여성들을 규합해 대한민국 애국 부인회를 조직했습니다. 이 단체는 여성들의 조직적 항일운동을 주도하며, 독립군 자금 모금과 애국 계몽 활동을 펼쳤습니다. 여성들이 단순한 가정의 역할을 넘어 독립운동의 주체로 나선 상징적 사례였습니다. 1920년대 이후 김마리아는 상하이 임시정부와도 연계했습니다.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을 병행했으며, 미국에서도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미주 지역 교포 사회와 기독교계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제적으로 조선의 독립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끊임없는 탄압 속에서 이어졌습니다. 일본 경찰은 그를 “위험인물”로 분류했고, 체포와 감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건강이 악화되어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4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마리아는 독립운동사에서 여성 지도자로 평가됩니다. 그는 무장투쟁 대신 교육과 조직, 국제 외교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기반을 확장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사회적 역할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여성운동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됩니다.
     
     
    ● 윤희순 (1860~1935)
     
    윤희순은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겪은 여성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는 일찍이 유학자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 전통적인 여성의 삶을 살았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습니다. 특히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을미사변 이후, 그는 의병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윤희순은 단순히 의병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병가와 격문을 지어 민중의 저항 의지를 고취했습니다. 그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문학적 수단을 항일운동의 무기로 삼았으며, 이는 일종의 ‘문화적 무장투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시와 노래는 남성 의병들에게 전해지며 투쟁 의지를 불태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윤희순은 직접 의병을 모집하고, 군수품과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자들을 간호하며 후방 지원에도 헌신했습니다. 그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자리가 부엌과 가정에 한정되었던 시대를 넘어, ‘의병장과 같은 여성’으로 활동했습니다. 1907년 정미의병 이후 일제가 무력 진압을 강화하자 윤희순은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만주 지역에서도 의병 잔여 세력을 규합하며 항일 투쟁을 지속했지만, 일제의 끊임없는 탄압 속에서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1935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내가 죽어도 조선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윤희순은 여성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최초의 의병 여성 지도자로 평가되며, 후대에 ‘의병장 할머니’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 오늘날 여성 독립운동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여성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공로를 기리는 차원이 아닙니다. 이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역사 정의의 문제입니다. 첫째, 역사적 균형의 회복입니다. 그동안 독립운동 서술은 남성 중심적이었고, 여성의 활동은 부차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를 다시 조명하는 것은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작업입니다. 둘째, 성평등의 관점에서 본 재조명입니다. 여성들은 식민지 상황뿐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 구조라는 이중 억압 속에서도 싸워야 했습니다. 이들의 투쟁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여성 해방의 기초를 닦은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셋째, 청년 세대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일은 현재 세대가 누리는 권리와 자유의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는 단순히 기념식에 머무르지 말고, 기억의 확장을 해야 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불러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교육과 문화 속에서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자라서 더 잔혹하게 죽었다, 그러나 끝까지 싸웠다
    주야

    조회수 544

    2025-08-27
  •  
     
     
     
    
    독립영화 "풀"은 공익적 목적으로 부천시민을 대상으로 상영된 작품으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경기마을공동체미디어연대, 마을공동체 한미모(구 함미모) 등 다양한 기관과 단체가 협력하여 기획했다. 상영은 2025년 6월 16일 오후 2시, 부천시문화재단 6층 부천미디어센터 스튜디오실에서 진행되었으며, 이후 토론회, 감상평 나누기, 시민기자단의 현장 취재 등 시민 참여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었다.
     
     
     
    복사골 부천문화재단(왼),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안내판(오)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한미모 이상하 대표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MZ Docs)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국제영화제로, 부천을 포함한 경기도 지역에서 다양한 상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번 사업에서는 DMZ Docs가 독립영화 “풀”의 상영 권한을 제공하고, 영화제의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부천시민과의 소통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경기마을공동체 미디어연대(미디어연대)는 마을공동체와 미디어 단체의 연합체로, 마을 공동체 한미모(구 함미모)등 지역 주민 조직과 협력하여 영화 상영회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했다.
     
    마을 공동체 한미모는 주민 자율적으로 모인 모임으로, 영화 상영 현장에서 주민 참여를 촉진하고, 상영 후 토론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한미모 이상하 대표는 “이 영화를 통해 부천시민들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고, 다양한 삶의 모습과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마을 공동체와의 연계를 통해 영화의 메시지가 지역사회에 더 깊이 전달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라며, “이번 독립영화 상영 후에도 지속적인 상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하였다.
     
     
    '풀' 영화 포스터 / 출처: 한미모
     
     
    이수정 감독의 영화 “풀”은 마리화나, 헴프, 대마초, 위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삼속 식물을 다룬 19세 이상 관람가 영화이다. 비무장지대에 땅을 빌려 대마씨를 뿌리고 재배한 뒤, 삼줄기는 사용하되 잎은 모두 매립한다는 조건으로 재배 허가를 받은 사례를 중심으로, 생태·산업·건강 분야에서 대마가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전개된다.
     
    그리고 프로그램은 크게 영화 상영, 상영 후 토론회, 감상평 나누기, 시민기자단 현장 취재 등으로 구성되었다.
     
    참여 시민들은 “영화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어릴 적 살던 고향의 추억과 ’삼‘이라는 풀에 기억이 되살아 났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사회 이슈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이웃과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경험이 매우 소중했다”, “마을 공동체와 함께하는 문화행사가 지역사회에 활력을 준다”라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강경태 감독은 “이수정 감독은 특정한 문제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라 동의와 비동의를 통해 바라보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라며, “ 금지와 불법, 사실과 설득 사이의 괴리는 현실 속 다양한 사람들의 접근 방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있으며, 그 모든 목소리가 반드시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지지는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부천시민 발언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경기마을미디어연대 이득규 pd(왼), 강경태 감독(오)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프로그램 진행 현장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프로그램에는 평균 35명 이상의 시민이 참여했으며, 만족도 조사 결과 70% 이상이 “매우 만족” 또는 “만족”이라고 응답했다. 참여자들은 영화의 질, 상영 환경, 토론회 등 프로그램 구성에 대해 보통 이상의 평가를 내렸다.
     
    이번 영화 상영은 부천시민들에게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확장하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다양한 삶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마을 공동체와의 연계는 영화의 메시지를 지역사회에 보다 깊이 있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복사골 부천시문화재단,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경기마을공동체 미디어연대, 마을 공동체 한미모는 각자의 역할과 협업을 통해 독립영화 “풀” 상영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으며, 이를 통해 부천시민의 문화적 역량과 공동체 의식을 크게 강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앞으로도 마을 공동체와의 협력, 시민 참여 확대, 공공 공간의 문화적 활용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 예술 활성화와 공동체 의식 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성을 느끼는 현장이었다.
    

     
     
     
    독립영화‘풀’ PULL하다.
    럭비공

    조회수 859

    2025-07-31
  •  

    걸음으로 기억하다. 광복 80주년 화성시 만세길이 전하는 이야기

     

    한 동 민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장)

     

    최근 곳곳에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축소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똑바로 기억하고,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독립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치열한 외침과 피의 대가로 이루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번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다시금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단순히 기념하는 것에서 나아가, 구체적인 장소와 사람, 사건을 통해 독립운동의 생생한 흔적을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특히 오늘 소개하는 글은 경기도 화성 지역의 독립운동을 복원한 화성3.1운동 만세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길은 단순한 탐방로가 아니라, 191943일 화성 우정면·장안면 일대에서 수천 명의 주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던 실제 경로를 복원한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그날 그 자리에서 외쳤던 독립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일이며,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야 할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입니다.

    광복의 진정한 의미는 기억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독립운동의 현장을 복원하고 계승하려는 지역의 노력에 주목하며, 이 글을 통해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저항임을 함께 되새겨보았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화성3.1운동 만세길이란?

     

    화성3.1운동 만세길은 화성시 우정, 장안지역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당시 마을사람들이 걸으며 만세를 외쳤던 길을 역사적 고증을 통해 정비한 31km의 도보 탐방로를 말한다.

    2000명이 어깨를 걸고 함께 힘차게 걸으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소리로 천지가 진동했던 그날, 191943일 우정면 장안면의 삼괴반도 일대의 역사적 감동을 느끼며 걸어보는 길을 다시금 만든 것이 화성3.1운동 만세길이다.

    화성지역은 일제강점기 민중 중심의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지역이다. 특히 일본인 경찰 2명을 처단한 것은 전국에서 유일한 사례였다. 1919328일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에서 수원경찰서 순사부장 노구찌를 처단한 일과 43일 우정·장안면 사람들이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하고 화수리 주재소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 순사를 처단 했던 것이다.

    지역민들의 조직적이고 공세적인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이 제암리, 고주리 학살과 마을들을 불태우는 야만적 만행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이 펼쳐진 화성지역은 남다른 자부심을 지닌 곳이다.

    특히 우정면·장안면 일대는 삼한시대 상외국(桑外國)’이 있었던 곳으로 이후 상귀, 삼귀, 삼괴로 입말이 바뀌면서 삼괴반도(조암반도)로 불리게 되었다.

    이 지역의 만세시위는 어느 지역보다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사전계획을 통한 조직적이고 거국적인 연합 만세시위를 진행했다. 이는 종교와 계층을 초월한 대규모, 조직적인 무력항쟁이었다. 일제의 말단통치기구인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를 불태우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는 공세적 만세운동을 펼치며 삼괴반도(조암반도)를 승리의 기쁨으로 넘치게 만들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쌍봉산에 올라 만세 소리 목청껏 외쳤던 그날, 100년 선조들의 우렁찬 만세소리는 독립을 위한 염원과 굽힐 줄 모르는 기상이었다. 가장 치열하고 격렬했던 승리의 항쟁지였던 그곳, 그날은 해방의 날이었다.

     

    만세길을 만들다

     

    191943일 화성의 우정면, 장안면 지역 30여 명의 만세시위 주동자들을 시작으로 인근 마을 주민 2,000명 이상이 참가하여 격렬한 시위가 진행되었다. 주곡리에서 시작해 옆 마을 화수리까지 시계방향으로 삼괴반도를 한 바퀴 돌며 하루동안의 해방구를 만들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즉 주곡리석포리수촌리어은리(장안면사무소)쌍봉산조암리화산리(우정면사무소)한각리화수리(경찰관주재소)를 돌면서 2,000명의 시위군중들은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칠 수 있었다. 이들은 어깨를 걸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들을 따라 마을 친구 이름을 부르며 함께 웃으며 힘차게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였던 것이다.

    만세시위에 참가한 2,000명은 당시 우정, 장안면에서 집집마다 장정 한 명씩 나온 엄청난 숫자였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장소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는 2019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각 지역마다 3.1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시점과 일치하였다. 화성시는 3.1운동을 전국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공세적인 만세운동을 펼쳤던 곳이라는 자부심에 더해 이를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일제는 야만적 탄압으로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폭행하고 잡아갔다. 그리고 이들은 내란죄(內亂罪)’로 처벌하였다. 다른 지역 3.1운동 관계자들이 치안유지법위반이나 출판법위반으로 처벌받은 것에 비해 내란죄라는 중형으로 탄압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기억과 기록을 남겼다. 구술과 재판 기록을 통해 그날의 만세길을 복원할 수 있었다.

    3.1운동의 의의를 살리고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201711월 독립운동 유허지 정비 및 만세길 조성 연구가 시작 되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20192월에 화성3.1만세길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31km 만세길에는 무엇이 있나

     

    주요한 거점 마을을 따라 그때 그 분들의 마음으로 100년 전의 그 길을 다시 걷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직접 걷는 화성3.1운동 만세길을 통하여 화성지역의 독립운동의 의의를 널리 알리고 독립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것이다.

     

    화성3·1운동 만세길은 191943일 우정·장안 지역에서 만세를 외치며 걸었던 길과 역사적 현장을 복원한 길이다. 만세길은 총 31km로 이어져 있으며, 100여 년 전 독립운동가들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복원하고자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현재 만세길은 당시 길의 약 60% 이상을 복원하여 조성 되었다.

    1919, 만세를 외치며 걸었던 길에는 독립운동가의 집터, 생가, 관공서, 횃불시위 장소 등이 남아있어 그날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다.

     

                                               <3·1운동 만세길 지도>

    현재 만세길 안내판은 총 204개에 이른다. 종합안내판 6, 구간 이정표 4, 자원해설판 14, 쌍봉산 파노라마 6, 상징안내판 6, 보행주의 안내판 8, 방향안내판(지주형) 33, 방향안내판(부착형) 127개 등이다. 또한 곳곳에 안내 리본을 달아서 이를 따라서 방문객들이 쉽게 길을 찾아서 걷도록 도와주고 있다.

    또한, 13개 스탬프 함을 마련해 주요한 포인트 지점에서 스탬프를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만세길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드려는 노력이다.

    스탬프는 1)만세길 방문자센터, 2)차병혁생가 3)개죽산 횃불 시위터 4) 백낙열 집터 5)수촌교회 6)옛 장안면사무소터 7)쌍봉산 8)조암리 9)김연방묘소 10)옛우정면사무소터 11)각리,죽리 12)한각리광장터 13)화수리 주재소터에 위치해 있다

    한편 화수리에 방문자센터를 마련하였다. 예전의 보건소 지소를 리모델링하여 새롭게 방문자센터를 운영하여 31km 만세길을 종합적으로 안내할 수 있도록 했다.

    우정읍 화수리의 오래된 옛 보건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조성된 방문자센터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019년에 문을 열었다. 만세길의 출발점이기도 한 이 곳은 선열들의 치열했던 투쟁을 함축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첨탑 형태의 외벽에는 화성독립운동가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을 활용해 추모의 의미를 더했으며, 내부의 오래된 벽 위로 격자 형태의 구멍이 뚫린 새로운 벽을 쌓아올려 방문객들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심어주고 있다.

     

    <화수리 화성3.1운동 만세길 방문자센터>

     

    만세길 방문자센터는 건물 자체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두 차례의 세계적 어워드에 선정되면서, 전 세계에 일제의 참혹한 만행과 화성3·1운동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만세길 내 주요한 유허지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각 마을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집터를 정비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향후 과제

    걷고 싶은 만세길이 되어야 한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마을길 조성에 마을주민들과 함께 노력해야 한다. 꽃과 나무를 심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있는 걷고 싶은 만세길이 되어야 한다.

    화성시는 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조사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과거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옛길을 복원하고자 했다. 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고증하는 작업을 통해 만세길 조성을 해나갔다. 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에 완료하여 더욱 뜻깊은 행사를 갖고자 했다. 3.1운동 만세길을 복원함으로써 화성시의 독립운동 정신을 시민과 공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조성된 화성 3.1운동 만세길은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걸었던 길을 60% 이상 복원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코스가 길고 거점 사이 이동 거리 및 시간이 길어 일반 시민들이 탐방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한계가 있다.

    탐방로를 시민들이 이용하기 위해서는 구간별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기획 운영, 홍보, 시설 정비 등 다각적인 운영 및 보완 방안이 필요하다. 이에 단계적인 실행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화성 3.1운동 만세길 전 구간에 대한 현황과 실태 파악을 통해 탐방로 활성화를 위한 단기-중기-장기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우선적으로 구역별 단기 탐방코스를 개발 중이다.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이 화성3.1운동만세길을 탐방하고 체험하면서 3.1운동의 높깊은 역사적 의미를 깨닫는 지역적 명소로 거듭나도록 노력할 것이다.

     

    [기획]걸음으로 기억하다 : 광복 80주년 화성시 만세길이 전하는 이야기
    관리자

    조회수 412

    2025-07-30
  •  
     
     
    
     
     
    땀 흘리는 도시, 안산
     
    안산은 땀 흘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공장들, 쉼 없이 돌아가는 일터들이 밀집해 있고,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 속에서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삶의 안전망이 필요하고, 서로를 보듬는 손길이 절실한 곳이기도 하지요. 누군가는 오늘도 혼자서 무너져가는 집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누군가는 아이 손을 잡고 차가운 방에서 내일을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2015년 3월 22일, 한 알의 씨앗
     
    바로 그런 고민에서 시작된 단체가 있습니다. 이름도 마음도 따뜻한 곳, '사단법인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 공제회 좋은 이웃'입니다. 어느 날 좋은 이웃 회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언제까지 단순히 '요구하는 존재'로만 머물러야 할까요? 우리도 스스로 나누고 실천하는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시 창립을 함께한 김태환 님의 이 말이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동자 봉사 단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준비모임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특별한 것 없었습니다. 미용사, 전기 기술자, 페인트공, 배관공… 화려한 재능이라기보다는 삶에서 익힌 '직업'의 손 기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에서 익힌 이 기술들이 누군가에겐 삶을 다시 세우는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2016년 4월, 첫 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단체가 바로 '따숲네'입니다. 이름처럼, 따뜻한 숲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따숲네 봉사모임 단체사진 / 사진출처: 따숲네
    따숲네 신미향 회장 / 사진출처: 따숲네
     
     
    저는 참여할 생각이 없었어요.
     
    지금은 따숲네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미향 님도 처음엔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봉사는 시간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로 생각했죠. 저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마음도 몸도 바쁘게 살고 있었거든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일상. 남을 도울 여유 같은 건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그녀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어르신 염색 좀 도와줄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어요. 오래된 미용사 자격증이 있었거든요. 한 번쯤은 괜찮겠지, 하고 갔죠. 그날, 그녀는 오랫동안 방치된 머리카락으로 인해 움츠러들어 있던 할머니의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정리해 드린 후 거울을 보며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얼굴 또한 봤습니다. 그 모습에 오히려 제가 행복해졌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어느새 계속 함께하고 있더라고요." 봉사는 여유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녀는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봉사의 숨은 뿌리들.
     
    현재 따숲네는 약 50여 명의 회원이 있으며, 그들 대부분이 여유롭지 않은 생활을 하지만 이 작은 마음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운영비는 회비와 다양한 지원 사업, 노동조합과 지역단체의 기부금으로 마련됩니다. 고대 병원, 삼화페인트, 서안산 로터리클럽 등에서 정기적으로 후원과 봉사를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예전엔 당근 마켓을 뒤져가며 물품을 구했어요. 싼 가전, 헌 가구를 수리해서 썼죠. 요즘은 좀 여유가 생겨 가구당 100~150만 원 정도는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해 드립니다."
     
    1년에 8번, 여름(7, 8월) 과 겨울(12, 1월) 을 제외한 시기에 봉사가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누적 80여 회. 정기적으로 모이는 봉사자 수는 평균 15명 정도. 따숲네 회원들 외에도 4.16 가족, 청년 조직 마니또, 삼화페인트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도배, 장판은 뜻을 함께하는 사장님이 비용을 최소화해 도와주고, 전기, 청소, 정리, 정돈은 회원들이 직접 나섭니다. 상황에 따라 가전과 가구를 새로 들여놓기도 합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돈으로 주세요"라는 말.
     
    "우리의 진심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사진만 찍고 가는 거 아니냐?', '형식적으로 왔다가 대충 하고 가는 거 아니냐?'라며 차라리 돈으로 달라는 경우도 많았죠.“
     
    세상에 차가운 바람이 많이 불어서, 따뜻한 손길마저 의심하게 된 사람들이 있죠. 그것이 봉사자들에게는 가장 큰 상처였습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의 집을 찾았다가, 독립한 자녀의 반대로 하루 전날 취소된 적도 많습니다. 경계의 눈빛. 의심의 말투. 하지만 봉사자들은 그 모든 것을 견디고, 결국은 바꿔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다해, 손을 보태면… 그들의 표정이 달라져요. 고마움, 안도, 환함. 그걸 보면 우리도 변해요. 그게 봉사의 기쁨이에요."
     
    의심이 신뢰로, 경계가 감사로,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바뀌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따숲네 사람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건, 아이들의 웃음이에요"
     
    대상자는 드림스타트, 장애인 단체, 동사무소 등에서 소개받습니다. 요즘은 다양한 가족형태가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고, 청소와 정리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아이들이에요.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시기에 방치되어 있죠. 건강도, 정서도 위험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따숲네는 단순히 집을 고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젊은 봉사자들이 아이들과 놀아주고, 멘토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달라집니다.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그 웃음소리가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거예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면, 보호자들의 얼굴도 조금씩 밝아집니다. 그렇게 한 가정이 조금씩 회복되어 갑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기억에 남는 집.
     
    "시각 장애인의 집이었어요. 집 전체에 곰팡이가 가득했죠. 보이지 않으니, 본인도 몰랐던 거예요." 그 집에 들어선 순간, 봉사자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시각 장애인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했습니다.
     
    "도배, 장판을 새로 하고 화장실을 청소하는데 냄새가…, 말 그대로 전쟁이었죠. 바퀴벌레가 떼로 몰려다니는 집도 있었어요. 소리 지르고 도망치며 청소했어요. 그 집들은 이제 깨끗하게 변했답니다.“
     
    나는 그,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이 담겨있는지, 신미향 회장의 상기된 표정을 보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따숲네
     
     
    따숲네가 바라는 것.
     
    "기부와 봉사, 저도 처음엔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군요.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신미향 회장 역시 한 부모로 아이를 키웠고, 한때 전구 하나 못 갈아 어둠 속에서 살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땐 누가 전구 하나만 갈아줬으면 좋겠다, 그랬거든요. 지금은 따숲네가 전구를 갈아드려요. 봉사가 끝난 뒤에도 연락해 주시면 언제든지 달려갑니다."
     
    자신이 받고 싶었던 작은 도움을, 이제는 누군가에게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따숲네의 가장 큰 바람은 젊은 사람들의 참여입니다.
     
    "살기 어려워서겠지요. 그래도 한 번만 용기 내어 오셨으면 좋겠어요. 매달 아니어도 괜찮아요. 시간 날 때, 마음 동할 때 오시면 됩니다. 부담 없이 오셔서, 따뜻한 숨결을 함께 나눠주세요."
     
     
      
    사진출처: 따숲네
     
     
    따뜻한 숲이 되다.
     
    이름 없는 손길들이 모여 만든 숲. 그곳에선 오늘도,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너져가는 집이 따뜻한 보금자리로 바뀌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희망을 품게 되고, 혼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변화의 이름은 바로 '따숲네'입니다.
    따뜻한 숲처럼, 지친 사람들에게 쉼을 주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절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
     
    그곳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전구를 갈아주고, 누군가는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누군가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봉사는 여유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따숲네 회원들은 삶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뜻한 숲, 따숲네. 그곳에서 오늘도 사랑이 자라고 있습니다.
    
     

     
     
     
     
    따숲네, 따뜻한 숨결을 나누는 사람들
    윤작가

    조회수 1075

    2025-07-29
  •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한 「공익활동가 주간」은 전국 곳곳에서 공익활동가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시간입니다. “공익활동가의 지역, 영역, 세대를 잇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플랫폼”을 지향하며, 올해도 작년에 이어 6월 30일(월)부터 7월 4일(금)까지 다양한 연대의 장이 5일간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7월 1일 "2025년 경기도공익활동가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경기도 시민사회가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낸 이 자리는, 활동가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과 지지를 전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위기 속에서도 불안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애쓴 활동가들의 노고를 떠올리며,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대회는 경기도 동·서·남·북 4개 권역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준비했으며, 무려 경기도 31개 시·군, 98개 단체가 추진위원회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2025년 경기도공익활동가대회는 '당신의 빛으로 열어낸 새날'이라는 슬로건 아래, 어느 해보다 더 크고 넓고 단단한 연대의 장으로 펼쳐졌습니다. 경기도 시민사회 전체가 함께 만든 이 뜨거운 현장을 함께 만나보실까요?
     
     
     
    개막식
     
    사회자(박범수)가 본 행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2025년 경기도공익활동가대회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왼쪽: 송성영(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오른쪽: 박혜옥(경기중북부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들의 개회사가 진행되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사회는 안산에서 반값주거비 안산운동본부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박범수 님이 오전부터 오후 일정까지 진행해 주셨습니다. 꽤나 진행하기 어려운 사회 부탁이었는데도 활동가들의 자리라고 하니 흔쾌히 하겠다고 답해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답니다.
    사회자의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2025년 경기도공익활동가대회를 함께 이끌어준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4분 중에 2분의 개회사가 이어졌습니다. 2023년부터 함께 본 행사를 준비해왔던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송성영 공동대표님과 멀리 포천에서 수원까지 달려와주신 경기중북부환경운동연합 박혜옥 공동의장님이 행사에 참여해 준 활동가분들에게 안부를 묻는 이야기로 활기차게 시작되었는데요. 특히 “빛의 광장에서 빛의 연대로 ‘새날’을 열어냈다. ‘새날’은 늘 함께 걷는 경기지역 활동가들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라는 송성영 공동위원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이어 박혜옥 공동위원장님이 포천에서 먼 길을 갈 생각해 막막했는데 그래도 이곳에서 다양한 지역의 활동가들을 만나니 너무 반갑고, 오길 잘 했다는 말에, 모두가 이 자리를 채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겠지만 그 고민이 무색할 만큼 좋은 자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과 기대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연대 장터
     
     
    '연대 장터' 프로그램에서 단체소개를 신청한 하남YMCA, 용인반딧불이시민모임, 수원YWCA 단체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지역과 함께하는 시민단체들
    공익활동의 중심에는 지역이 있습니다. 하남YMCA, 수원YWCA, 평택YMCA, 하남YWCA, 부천YWCA, 안양YMCA, 오산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안양여성의전화 등은 지역사회 돌봄, 청소년 교육, 양성평등, 장애인 자립 등을 실현하기 위해 매일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습니다.
     
    평택안성흥사단, 여주시민주권행동, 여주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여주민예총, 포천시민사회연대, 안성평화네트워크, 수원체육문화센터, 수원여성인력개발센터, 수원YWCA 요양원, 평택시공익활동지원센터, 안성시공익활동지원센터,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복지시민연대 도 각 지역의 다양한 사회 이슈를 기반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생태와 환경을 위한 실천
    용인반딧불이시민모임은 반딧불이 서식지 보존과 생태 복원을 위해 탐사와 포럼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수원환경운동연합, 오산환경운동연합, 경기환경운동연합, 부천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위기비상행동 의정부,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경기에너지협동조합, 경기도시민발전협동조합 협의회, 녹색성장국민연합 등은 기후위기와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해 지역과 연결된 다양한 환경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인권과 평등을 향한 연대
    경기여성단체연합,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온다, 경기여성단체연합, 수원615평화연대, 일하는사람들 생활공제회 좋은이웃은 인권, 노동, 평등, 평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공유했습니다. 특히 장애인 자립,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성평등 조례 보호, 이웃노동자 권익증진 등 다양한 주제가 소개되었습니다.
     
    평화와 통일, 그리고 시민의 힘
    경기평화교육센터, 안성평화네트워크, 안산 평등평화세상 온다, 수원615평화연대, 오산평화의소녀상, 동두천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한반도 평화와 역사 보존, 시민 평화기행 등을 주제로 활발한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행복한마을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의료사각지대 없는 평등한 복지를 꿈꾸며, 방문진료제도를 실현해 나가고 있습니다.
     
     
    연구·언론·네트워크
    경실련 경기도협의회, 경기민주언론연합, 경기시민연구소 울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5기 에디터, 수원마을만들기, 안양 대안학교 단체 등은 제도 개선, 언론 감시, 시민 연구 및 아카이빙, 마을 기반의 대안 교육을 주제로 소개되었으며, 그 다양성과 깊이에서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새로운 시도와 실험
    웨어마이폴은 선거 기간의 탄소 배출량 추적을 통해 공약 전달 방식의 전환을 탐색하고 있으며, 청년 자원봉사팀 TOOL은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개선 봉사와 기술교육을 연계하는 새로운 모델을 실험 중입니다. 충북 충주 마을활동가의 사례 발표는 지역을 넘어 활동가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번아웃, 제도 변화, 지속 가능성 문제에 대해 함께 성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경기도의 연대와 지지
    경기도에서는 경기도 협치 수석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등이 중심이 되어 활동가들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단순한 행정적 지원을 넘어서,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더 지속 가능한 힘을 낼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에서 참여한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서로 자리에 일어나 자기소개 및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수원유스호스텔 대강당을 가득 채워준 경기도 공익활동가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넓은 경기도 전역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각자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소중한 시간과 마음을 내어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고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석자 한 분 한 분이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본인과 소속 단체, 그리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영역의 활동 이야기가 하나둘 쌓이며,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갈 정도로 뜻깊은 교류의 장이 되었습니다.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기에, 그만큼 이 시간이 더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참여한 모두가 한마디씩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한 이 시간을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동체 밥상
     
    수원유스호스텔 식당에서 마련된 음식을 함께 나누고 있다. 비건용도시락은 안산 카페마실에서 준비해주었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된 만큼, 긴 하루를 함께할 활동가분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를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특별한 메뉴는 아니었지만, 특별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만남 덕분에 식사 자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났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자 이곳저곳에서 웃음꽃이 피어났고, 처음 만난 이들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런데...식사할 때 가장 환한 얼굴들이었던 건… 혹시 제 기분 탓일까요?^^ㅎㅎㅎ
     
     
     
     
    점심 식사 시간이 진행되는 동안, 행사장 한편에서는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부스 활동도 함께 열렸습니다. 하남YMCA에서는 직접 재배한 목화솜으로 ‘목화새(뭉치새)’를 만들어보는 체험 부스를 운영해 많은 분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동두천의 옛 성병관리소 보존운동을 알리는 자료와 함께 그 의미를 나누었고, 평등평화세상 온다에서는 직접 제작한 배지를 참여자들에게 나눠주며 평등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또한 행사장에는 각 단체별 홍보 리플렛과 책자를 비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경기도 곳곳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의 다양한 이슈와 활동을 서로 공유하고 알아가는 소중한 교류의 장이 되었습니다.
     
     
    문화공연과 함께하는 빛의 광장 토크쇼
     
    마임이스트 류성국님의 열린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오후 프로그램 "빛의 광장 토크쇼"의 시작은 마임이스트 류성국 님의 깊이 있는 마임 공연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말없이 오직 몸짓 하나로 마음을 움직이는 마임은 때로는 수백 마디 말보다 더 강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공연의 첫 번째 주제는 ‘벽’이었습니다. 우리 삶 속에는 누구도 쉽게 넘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합니다. 공연은 그 벽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히며, 때로는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 다시금 마주하는 한 사람의 몸짓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벽은 누군가에게는 제도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회의 편견, 혹은 활동가로서의 지침과 피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류성국 님은 그 벽 앞에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벽을 두드리던 그의 몸짓은, 마침내 그 벽을 넘어서 희망이 피어나는 새로운 날로 나아갑니다.
    빈손이지만 진심을 담은 위로와 격려가 있었고, 소리 없는 외침 속에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의 벽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짧지만 깊은 공연은 오늘 모인 모든 활동가들에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벽’이 결코 끝이 아니며, 함께라면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건네주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이어진 박수는 그 믿음에 대한 뜨거운 공감이었습니다.
     
    빛의 광장 토크쇼가 진행되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연이 끝난 후 이어진 시간은 다섯 명의 활동가가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가지 물건 또는 자료’에 담아 소개하는 토크쇼였습니다. 성남, 수원, 오산, 의정부, 여주, 그리고 안산까지 경기도 곳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공익활동을 이어온 이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가 무대 위를 따뜻하게 채웠습니다.
     
    한국청년연대 김다은 대표는 매일같이 홍보물과 안내문을 만들며 공익활동의 최전선에 섰던 날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날그날의 작업이 쌓여, 그 흔적 하나하나가 화려하진 않지만 가장 밀도 있게 삶을 채운 기록이었다는 말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습니다.
     
    평등평화세상 온다 김송미 대표는 직접 만든 작은 배지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활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 다니며 그 배지를 판매했던 날들, 그리고 오늘은 그 배지를 나눔으로 가져왔다는 말에는 연대의 온기와 활동가의 따뜻한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의정부자연에너지협동조합 서효숙 활동가는 생협에서 시작해 기후위기 대응까지, 지역과 함께하며 실천해온 시간들을 나눴습니다. 특히 딸에게 용돈을 쥐여주며 응원봉을 사수했던 일화는 유쾌함 속에 가족의 지지와 활동가의 삶이 겹쳐지며 현장에 따뜻한 웃음을 전했습니다.
     
    수원오산화성촛불행동 최승재 사무국장은 오래된 USB 하나를 꺼냈습니다. 수많은 거리의 촛불, 회의록, 발언문이 담긴 이 작은 저장 장치는 활동가로서의 삶, 그리고 공동체와 함께한 역사의 일부이자, 한 사람의 소중한 아카이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주시민주권행동 최용기 상임대표는 여주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의 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청년이 귀한 여주에서, 광장에서 마주친 한 학생의 말에서 여주의 희망을 보았다"라는 그의 말은 활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거창한 프로그램이나 화려한 수치가 아니라, 함께한 순간 속에서 ‘누군가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활동의 본질이라는 울림을 남긴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토크쇼는 단지 다섯 명의 패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무대 아래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수많은 활동가들의 삶과도 다르지 않았기에, 마치 모두의 이야기가 무대 위로 오르는 듯한 시간이었습니다. 보다 안전하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차가운 거리와 어두운 길목을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조금씩 더 따뜻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 이정열 님의 마무리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토크쇼가 끝난 후, 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시간은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 이정열 님의 특별 공연이었습니다. 무대에 올라 공연을 시작하기 전, 이정열 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공익’이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 단어를 직접 써본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그런 ‘공익’을 삶으로 실천하고 계시는 분들이구나, 싶었습니다.”
    공익이라는 말이 다소 추상적이고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어려운 일을 묵묵히 해내는 활동가들에게 존경과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며, 노래로 마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활동가들 가운데 특히 50대 이상의 참가자들에게서 뜨거운 호응이 이어졌습니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익숙한 곡들이었지만, 그 가삿말이 전하는 의미는 누구보다 활동가들의 마음에 깊숙이 와닿았습니다.
    이정열 님의 담담하고도 따뜻한 목소리는 그동안 고되고 지친 활동의 시간을 다정히 안아주듯 스며들었고,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노래로 위로받고, 연대로 이어지는 하나의 마음이 되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이정열 님의 목소리와 따뜻한 말 한마디는 오랫동안 참석자들의 기억 속에 잔잔히 남았습니다. 노래가 전하는 위로가 이토록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함께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특강 - 새 정부와 다시 만날 세계를 위한 시민사회의 과제
     
    2부 강연 "새 정부와 다시 만날 세계를 위한 시민사회의 과제"라는 주제로 시민사회활성화전국네트워크 류홍번 운영위원장님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활동가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서로를 위로한 1부를 마친 뒤, 이어진 2부는 “앞으로 시민사회가 어떠한 과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위해 시민사회활성화전국네트워크 류홍번 운영위원장을 모시고 특별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의 주제는 “시민주권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시민사회를 강화하자! –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제도·정책 과제”. 류홍번 운영위원장님은 먼저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현 상황을 되짚으며, 해외 각국의 시민사회 정책 사례들을 함께 소개해 주셨습니다. 특히 한국 시민사회가 전환기의 길목에 서 있는 지금, 어떤 제도와 정책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풀어주셨고,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현장의 활동가들이 평소 품고 있었던 고민과 질문들이 진솔하게 쏟아졌습니다.
     
    질의응답
     
    강연을 마치고 다양한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Q. 보조금에 의지하는 시민사회, 괜찮은가요?
    한 활동가는 시민단체들이 정부 보조금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보조금이 정치적 영향력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자생력을 갖춘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명확했습니다.
    “보조금을 받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시민단체가 공익을 위한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정당한 권리입니다. 유럽 등 해외에서는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제도화되어 있습니다.”
    다만, 보조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한 해법으로 ‘사회적 경제와의 접점 확대’가 언급되었고, 기부문화 확산, 기업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한 실험적 접근도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Q. 제도와 정권, 시민사회는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요?
    시민사회가 법적으로 제도화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만약 정권이 바뀌면 그 제도가 악용되거나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또한 사회적 경제와 NGO의 활동 영역이 섞여 있는 현재 구조 속에서, NGO는 제도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류홍번 운영위원장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법은 정권처럼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시민사회는 오히려 협력하고 연대하는 구조를 통해 더 큰 파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시민사회의 경계를 지나치게 명확히 나누기보다는 서로 다른 조직들이 함께 공익을 향해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Q. 시민사회는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까?
    새 정부의 사회통합 정책에는 ‘시민사회’라는 단어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과연 시민사회가 사회통합과 갈등 해소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시민사회야말로 합의를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끌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조직이며. 특히 시민사회의 독립기구 설립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이어졌습니다.
     
    Q. 기업과 협력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기업과의 협업이 해법 중 하나로 제시되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시민단체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기업들과는 근본적으로 협력할 수 없고, 구조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시도조차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류홍번 운영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 직접적 후원이 어렵다면, 지역 재단이나 플랫폼을 통해 간접 협업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 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에 점점 더 관심을 가지는 만큼, 시민사회도 이에 맞는 프로젝트 제안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 지역·중앙단위에서 기업 관심사를 조사하여 매칭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
    이처럼 ‘민감한 이슈는 피하면서도 기업과 공익을 잇는 새로운 경로’를 모색하는 방향이 제안되었습니다.
     
    Q. 시민사회 정책도 결국엔 서울 중심 아닌가요?
    마지막으로, 서울 중심 정책의 문제도 언급되었습니다. 많은 시민사회 정책과 자원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실제로 지역 시민단체들은 상근자 1~2명 수준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인 정책 접근이 어렵다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이에 대해 류홍번 운영위원장은 서울 중심 구조에 대해 동의하는 한편, 경기도는 산업/기업 중심의 지역이기에 더 기업과 협업하고 자원을 연결한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다며, 더 많은 시민사회 주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말했습니다. 즉, 서울 중심 문제를 비판하는 것에서 멈추기보다는, 지역에서도 능동적인 전략과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의 질의응답 시간은 단순한 질문과 대답을 넘어, 시민사회가 지금 어디쯤 와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한 시간이었습니다. △공익활동의 재정구조부터 정체성 △제도화의 방향성과 정권과의 관계 △사회적 경제와의 연계 △사회통합에 대한 기여 가능성 △서울과 지역 사이의 불균형 문제까지. 이 모든 질문의 바탕에는, 더 나은 시민사회 생태계를 함께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시민사회는 변화하고 있다는 희망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폐회사
     
    2025년 경기도공익활동가대회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왼쪽: 유명화(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센터장), 오른쪽: 김유철(안양YMCA 사무총장))들의 폐회사가 진행되고 있다. / 사진 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뒤, 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두 분의 폐회사였습니다. 이번 대회를 위해 경기도 전역을 누비며 준비에 힘쓴 두 분,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유명화 센터장과 안양YMCA 김유철 사무총장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김유철 사무총장은, 이번 대회가 단순히 몇몇 단체의 주도로 열린 자리가 아니라, 경기도 31개 시·군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추진위원회로 참여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행사였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유명화 센터장은 “올해보다 더 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이 내년엔 함께하길 바랍니다. 명실상부한 '경기도 31개 시·군 공익활동가대회'가 될 수 있도록 계속 준비해나가겠습니다”라며 내년 대회를 향한 기대와 의지를 전했습니다.
     
     
     

     
     
    이제 막 2025년 대회를 마무리했지만, 벌써부터 2026년 경기도공익활동가대회가 기다려지는 건… 저뿐만은 아니겠죠?
    함께 준비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경기도공익활동가대회! 내년에는 더 많은 이야기와 얼굴들이 이 자리에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 행사를 함께 준비해 주신 스태프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현장스케치] 2025년 경기도공익활동가대회 "당신의 빛으로 열어낸 새날"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유보희

    조회수 558

    2025-07-03
  •  

     

     

    1. 헌법이 살아있다는 의미

    헌법이 살아있다는 의미는 헌법에 정한 규범대로 헌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의 문제다. 헌법 자체가 주인이 아니라 헌법의 주인은 따로 있다. 헌법에 규범을 정한 주체는 주권자 국민이다. 헌법은 전문(前文)에서 그 주체가 대한 국민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헌법을 잘 지켜야 하는 대상은 모든 권력이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모든 권력이 주권자 국민의 뜻을 좇아 권력을 행사하도록 정한 법이다.

    모든 나라의 헌법이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유신 헌법 체제에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다. 물론 한참 전인 1974년 유신 헌법 체제에서의 일이다. 이른바 대통령 긴급조치 제1(1974. 1. 8.)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하하는 행위와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했다. 대법원은 이 긴급조치 제1호에 따라 위와 같은 형을 확정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헌법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표현의 자유, 그리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었다. 대한 국민이 주권자임이 헌법에 또렷이 새겨져 있음은 물론이다. 헌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고 다른 내용의 헌법을 모색하는 일은 주권자인 국민이 보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서 가장 강력하게 보호되어야 할 권리 중의 권리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권리를 인정한 것은 2013830일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한, 39년이 흐른 뒤였다.

    유신 헌법에서 대통령은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 국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긴급조치는 사법부가 심사할 수 없다는 내용이 헌법에 있었다. 이렇게 보면, 헌법이 당연하게 주권자 국민의 관점에서 권력자를 통제하는 법이라는 말도 그 자체로 성립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뭔가 다른 것이 헌법을 뒷받침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헌법을 제대로 만드는 일 그리고 헌법이 지켜지도록 하는 일의 이면에는 또 다른 버팀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2. 123 비상계엄과 헌법

    한국 사회는 1987년 이후 자타가 인정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 민주주의 체제 위에 그리고 그 민주주의 체제의 최고법이 현행 헌법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헌법에 따르면 계엄은 군사상 필요가 있어 군대를 동원하거나 경찰력만으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워 군대가 필요할 때 발동하는 국가긴급권이다. 2024123일 그 누구도 계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윤석열은 국회의 탄핵소추 발의 또는 예산 삭감 등을 계엄 발령 이유로 삼았다. 뜬금없이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리고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에 국회와 정당 활동 그리고 정치활동 일절 금지, 모든 언론과 출판에 대한 계엄사 통제 등을 담았다. 국회 활동 금지의 조치로서 국회의사당에 군대를 투입했다.

    윤석열이 오로지 국회를 겨냥한 것은 틀림없다. 바로 이 점이 123 비상계엄의 본질이 내란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판단은 윤석열에 대한 형사처벌이 재판으로 확정되기 전이라고 하더라도 주권자인 국민이 결정할 몫이다. 국회는 대통령이 계엄이라는 국가긴급권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계엄 해제를 요구함을 비롯하여 대통령이 선전포고 등 군사적인 조치 전에 동의를 얻도록 할 정도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유력한 헌법기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를 할 때 헌법재판소에 탄핵을 소추하는 권한 또한 대통령을 견제하는 국회의 권한이다.

    대통령이 국회 활동을 정지시키는 일은 국회의 견제 없는 독재를 하겠다는 것의 노골적인 의사 표시다. 박정희의 유신 독재도 국회해산권의 헌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국회를 해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많은 시민이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까닭이다. 그런데도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추경호는 자당 소속 국회의원을 국회가 아닌 자당 당사로 소집했다.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가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헌법적인 책임, 특히 일부는 형사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1997417일의 대법원판결(963376)123 내란 판단에서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이 사건은 전두환노태우 등이 19791212 군사반란과 1980517 내란을 일으킨 사건에 대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에 따르지 않고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권능 행사 불가능은 사실상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 내란죄가 성립되려면 폭동이 있어야 하는데, 비상계엄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위협을 주는 것이어서 폭동이 되는 협박 행위라고 확인했다.

    대법원은 내란범을 넓게 인정한다. 내란에 관여한 가담자들이 비상계엄을 모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란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내란에 포함되는 개별 행위에 부분적으로라도 참여하거나 이바지했다면 내란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123 비상계엄이 내란인 점은 분명하므로, 이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함께 국가기구 내에서 비상계엄을 막지 못한 제도적 취약점이 무엇인지를 분석평가하여 그 개선안을 도출해야 한다. 그것이 123 내란으로 질식사할 뻔한 87년 헌법을 다시 살리는 길이다.

     


     

    3. 헌법을 살리는 방법

    123 비상계엄 전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른바 ‘7공화국 개헌을 말한다. 헌법에 공화국 표현의 등장은 517 내란 이후 80년 개정헌법에서 제5공화국이라고 규정한 것이 유일한 사례다. 누가 봐도 공화국이 아니었기에 그것을 가리기 위한 장식이었다. 그 이전 72년 헌법의 유신 체제 또한 공화국이라 할 수 없다. 516 내란 이후 62년 헌법 체제 또한 공화국이라 할 수 없다. ‘7공화국표현은 대법원이 확고하게 부정했던, 민주적 절차를 따르지 않은 내란을 정당화하는 일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편 제왕적 대통령제를 문제 삼아 정부형태를 바꾸는 개헌이 헌법을 살리는 일인지 들여다봐야 한다. 칼 뢰벤슈타인이라는 학자는 헌법이 살아있는지를 옷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어떤 헌법은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잘 지켜지지만, 어떤 헌법은 몸에 비해 너무 큰 경우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헌법에 비해 몸이 자라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몸은 그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체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헌법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의원내각제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안정된 복수정당제, 언론과 정치적 자유의 완전한 보장, 지방자치제의 확립, 정치인과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의 고도화 등을 말한다. 대통령제의 성공 조건으로는 정치인과 시민의 사회적 동질성, 권력 분산, 여론의 자유와 여론에 대한 존중 등을 꼽는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된다면,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성공할 수 있다.

    헌법이 위기에 빠졌을 때 주권자가 등장했다. 31혁명을 비롯한 항일독립운동, 제주 43항쟁, 419혁명, ()유신 항쟁, 518 광주민중항쟁, 806월항쟁과 789월의 노동자투쟁 등 많은 투쟁과 항쟁이 있었다. 문제는 다음의 일이다. 48년 제헌헌법은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도록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60년 헌법은 반민주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도록 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87년 헌법은 627280년 내란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지 않았다. 개헌한다면 진실 규명, 내란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 피해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배보상, 사회적 기억, 재발방지책 마련 등 민주화를 확장하고 심화하며 공고히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헌 이전에 국회에서 법률의 제정개정폐지를 통해 헌법을 살리는 법도 있다. 가장 쉬운 법률 폐지는 한 줄의 법률 제정으로 가능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은 이를 폐지한다.”라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법률’, “사형제도는 이를 폐지한다.”라는 사형 폐지에 관한 법률등이다. 다음으로 헌법을 고치기 전에 기본권을 강화하는 법률 개정도 할 수 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법등을 개정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 ‘생명 안전 기본법’, ‘블랙리스트 특별법’, ‘아동청소년 및 학생 인권법등을 제정하는 일이다.

    헌법을 살리기 위해 그 누구보다 앞장섰던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다수이면서 약자 또는 소수자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곧 주권자고 헌법이다. 국회가 국회답게 일을 하려면 이들 주권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소리 없는 함성을 들어야 한다. 매일 공청회와 청문회를 열어 입법 작업을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굳이 헌법을 고칠 필요도 없이 헌법은 오래오래 잘 살아갈 수 있다. 헌법은 문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다.

     
    [기획]헌법은 살아있는가, 비상계엄 전후의 대한민국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오동석 교수

    조회수 885

    2025-07-02
  •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인구구조의 거대한 전환기 한복판에 서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나라이며, 동시에 1인 가구의 비중이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과거 정상가족모델 안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족 중심의 돌봄 시스템은 이제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졌을 때, 예기치 못한 질병이나 장애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디서 누구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에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시설가족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시설은 내가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단절을 의미하고, 가족에게만 기댄 돌봄은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한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돌봄주거의 핵심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집이 단순히 잠자고 쉬는 공간을 넘어, 건강한 삶과 존엄한 노후를 지탱하는 사회적 인프라로 재조명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돌봄의 위기를 해결할 대안으로 사회주택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지역사회 안에서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시민의 보편적 욕구(AIP, Aging in Place)와 이를 뒷받침하는 지역사회통합돌봄의 중요성을 살펴보고, 사회주택이 어떻게 이들을 위한 최적의 플랫폼이 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제시하려 한다.

     


     

    1. 주거 문제에 '돌봄' 이슈가 부각된 배경

    지금까지의 주택 정책은 양적 공급과 자산 증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더 많은 집을, 더 빨리 공급하여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지상과제였다. 하지만 사회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주거의 패러다임 역시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집의 물리적 공간을 넘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질사회적 관계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기능이 중요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바로 돌봄이 있다.

     

    1) 초고령사회와 1인 가구의 급증: 돌봄 수요의 폭발

    2024 년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 노인 인구의 증가는 곧 만성질환 , 거동 불편 등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인구의 증가와 직결된다 . 동시에 1 인 가구는 2023 년 기준 전체 가구의 35.5% 에 달하며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았다 . 특히 노인 1 인 가구와 비혼 청년 , 장애인 1 인 가구 등은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될 위험이 매우 크다 . 과거 대가족 제도 아래 가정 내에서 자연스럽게 소화되던 돌봄 기능이 핵가족화를 거쳐 이제는 각자도생의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 이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돌봄 수요를 더 이상 개인이나 개별 가구의 책임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

     

    2) ‘탈시설화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요구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집단 시설에 수용하여 관리하는 방식은 효율적일지 몰라도 , 개인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에 꾸준히 직면해 왔다 . 내가 살던 동네와 이웃으로부터 분리되어 낯선 곳에서 획일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 삶의 방식이다 . 이에 따라 장애인 , 노인 등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탈시설화 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이는 단순히 시설을 벗어나는 것을 넘어 , 지역사회에 완전히 통합되어 한 명의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 이러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바로 안정되고 적절한 주거 공간 이다 .

     

    3) 돌봄의 사회적 비용 증가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가족 돌봄이 한계에 부딪히고 시설 입소 수요가 늘어나면서 돌봄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 ‘ 살던 집과 동네에서 돌봄 받으며 최대한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예방적 · 통합적 돌봄 모델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 이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될 수 있다 . 이 새로운 돌봄 모델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도 주거 가 안정적인 거점 역할을 해야만 한다 .

     

    이처럼 인구구조의 변화, 인권에 대한 인식 개선, 사회적 비용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거대한 흐름이 맞물리면서, ‘돌봄은 더 이상 복지 정책의 하위 분야가 아닌 주거 정책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게 되었다.

     


     

     

    2. 지역사회계속거주와 지역사회통합돌봄, 그리고 주거의 중요성

    돌봄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지역사회계속거주지역사회통합돌봄(Community Care)’이다. 이 두 개념의 성공적인 정착은 주거 안정없이는 불가능하다. 지역사회계속거주와 지역사회통합돌봄은 돌봄의 패러다임을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하는 핵심적인 정책 방향이다. 그리고 이 전환의 가장 단단한 주춧돌은 바로 안정되고 적절한 주거의 확보다.

    전통적인 주택 공급 방식이 돌봄의 수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주택이 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회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주택으로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공급하고 운영하며, 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통해 공급된다. 사회주택은 단순히 주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입주민과 지역사회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회 서비스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주거 안정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사회주택은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1) 하드웨어: 돌봄 친화적 공간 설계

    사회주택은 처음부터 특정 입주자 ( 노인 , 장애인 , 청년 등 ) 의 필요를 고려한 맞춤형 설계가 가능하다 . 성별 , 연령 ,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다 . 사회주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개인 공간 외에 입주자 및 지역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 , 공유 주방 , 텃밭 , 공동 작업실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 이러한 공유 공간은 입주민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촉진하는 장이 됨과 동시에 , 외부의 돌봄 서비스 제공자가 방문하여 건강 상담 , 재활 프로그램 , 문화 여가 활동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 거점 으로 활용될 수 있다 . 이는 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을 높이고 입주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

     

    2) 소프트웨어 : 공동체 기반의 관계망 형성

    사회주택의 진정한 가치는 물리적 공간(하드웨어) 위에 사람 사이의 관계와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이 더해질 때 발휘된다. 대부분의 사회주택에는 입주민 간의 소통을 돕고 공동체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커뮤니티 매니저나 운영기관이 존재한다. 이들은 입주민의 필요를 파악하여 지역의 복지관,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등과 연계해 주는 자원 연계 전문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입주민들은 굳이 스스로 복잡한 정보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필요한 서비스를 손쉽게 안내받을 수 있다. 또한 이웃과의 일상적인 교류는 정서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느슨하지만 탄탄한 사회적 안전망을 형성한다. 함께 식사를 하고, 취미를 공유하며, 아플 때 서로의 안부를 묻는 관계는 공식적인 돌봄 서비스가 채워주지 못하는 정서적 지지와 위기 상황에서의 즉각적인 도움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노인, 청년, 신혼부부 등 다양한 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세대통합형사회주택의 경우, 세대 간 자연스러운 상호 돌봄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주택은 돌봄 친화적인 하드웨어와 공동체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결합하여, 집을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돌봄 서비스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한다. 입주민은 안정적인 주거와 함께 이웃의 지지를 얻고, 서비스 제공자는 특정 공간에 집중된 수요자들에게 효율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모두에게 이로운(win-win)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3. 주거와 돌봄을 연결하는 경기도 사회주택 사례

    고양시 공동체주택 여백
    고양시 지축동에 위치한 여백은 다양한 연령대의 세대혼합형 공동체주택으로 필자가 거주하는 집이다. 2016년에 준공되어 2025년 현재 10년차를 맞이한, 10가구 23명의 주거 공동체다. 나는 노년의 사회적 고립과 돌봄의 공백에 대한 고민 끝에, ‘함께 사는 삶이라는 대안을 찾게 되었다. 이웃과 적당한 거리에서 연결되고, 일상을 나누며 서로를 살필 수 있는 공동체주택, 이것이 내가 여백을 선택한 이유다.

     


    주택협동조합 여백 구성원 단체사진

     

     

    여주시 노인 셰어하우스 노루목향기
    농촌 지역의 고령화와 독거노인 문제는 도시 못지않게 심각하다 . 여주시에 위치한 노루목향기 는 여성 노인 1 인가구 셋이 모여 단독주택을 지어 살며 새로운 사회적가족 공동체를 이루었다 . 그들은 각자의 독립된 방에서 사생활을 유지하며 , 거실과 주방 등 공유 공간에서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며 어울려 산다 . 생활비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 가사노동을 분담하며 서로의 건강을 챙기는 과정 자체가 곧 일상이자 돌봄이 된다 . 이는 별도의 돌봄 인력이나 서비스에 의존하기보다 , 동료 노인 간의 수평적인 관계와 상호부조를 통해 존엄한 노년을 만들어가는 자발적인 돌봄 모델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

     

    공동체아파트 위스테이 ’ ( 주민 협동조합형 돌봄 공동체 )
    고양시 지축과 남양주시 별내에 위치한 위스테이 는 입주자들이 직접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대단지 공동체 아파트다 . 위스테이의 핵심은 자발성 자치 에 있다 . 입주민들은 수많은 커뮤니티와 동아리 활동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며 아파트 전체를 거대한 돌봄 네트워크로 만든다 . 특히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 는 위스테이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 이웃이 서로의 아이를 믿고 맡기는 과정에서 부모들은 육아 부담을 덜고 , 아이들은 아파트 전체를 놀이터 삼아 다양한 어른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란다 . 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육아 , 교육 , 생활문화 전반에 걸친 촘촘한 돌봄 시스템 구축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혁신적인 사례다.

     

     

    위스테이 어버이날 행사모습(출처 : 위스테이 별내 홈페이지)

     

     

    안산시 케어안심주택’ (의료-주거 통합 돌봄의 전형)
    케어안심주택은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돌봄이 필요한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주거 모델이다. 안산시와 LH가 협력하여 만든 이 주택의 기획과 운영은 경기안산지역자활센터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입주자들은 안정적인 주거와 함께 건강관리, 재활, 가사 및 식사 지원, 병원 동행 등 통합적인 돌봄 서비스를 집 안에서원스톱으로 제공받는다. 이는 집이 치료와 회복, 요양의 공간으로 기능하는 의료-주거 통합 모델의 전형으로, 지역사회통합돌봄의 가장 구체적인 구현 형태라 할 수 있다.

     

    용인 나이듦연구소’ (학습 공동체를 통한 예방적 돌봄)
    용인의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나이듦연구소는 돌봄의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사례다. 중장년층 회원들이 함께 모여 나이듦돌봄을 주제로 공부하고 토론하며, 건강하고 존엄한 노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스스로 해나간다. 이들은 질병, 죽음, 관계 등 나이 들면서 마주할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학습과 실천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지지하는 끈끈한 동료 관계가 형성된다. 이는 문제가 발생한 후에 대처하는 사후적 돌봄이 아니라, 삶의 전 과정에서 서로의 지적·정서적 성장을 도우며 건강한 노년을 함께 설계하는 예방적 돌봄 공동체의 성격을 띤다. 어떤 집에 사느냐 만큼, ‘누구와 함께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나이듦연구소는 지금 공동체 돌봄주택을 준비하고 있다


     


    4. 돌봄 사회로 가는 길에 사회주택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돌봄이 왜 주거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는지, 그리고 그 해법으로서 사회주택이 어떤 가능성을 가졌는지 살펴보았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은 공공, 민간, 협동조합, 시민사회가 각자의 방식으로 주거와 돌봄을 연결하며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돌봄의 미래는 더 많은 요양시설을 짓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의 성격을 바꾸는 데 있다. 사회주택은 바로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주거 안정, 사회적 관계망 형성, 맞춤형 서비스 연계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돌봄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사회주택은 혼자가 아닌 함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고립이 아닌 연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답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그 대답에 응답할 차례다.

    [기획]돌봄의 미래? 사회주택에 물어봐!
    탄탄주택협동조합 김수동 이사장

    조회수 1286

    2025-06-30
<< 1 2 3 4 5 6 7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