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콘텐츠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먼저,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주세요
윤금이.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에서 주한미군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여성입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 기지 주변에 형성된 '기지촌'에서 살았습니다. 기지촌이란 미군 기지 주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역으로, 극심한 가난 속에서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많은 여성들이 미군을 상대로 일하며 살아가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 구조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조직적으로 만들고 관리한 체계였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여성들에게 "달러를 버는 민간 외교관"이라며 애국심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안전은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살해당한 기지촌 여성은 윤금이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동두천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습니다. 캠프케이시 정문 앞에 시민 2천 명이 모였고, 동두천 상인들은 미군 출입을 거부했으며, 택시 기사들은 미군 승차를 거부하는 저항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동두천에서 시작된 이 목소리는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 시민의 힘이 역사를 바꿨습니다
윤금이 사건은 '주한미군의 윤금이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이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미군의 범죄는 대한민국 법정에서 다룰 수 없었습니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즉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라는 협정 때문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미군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한국 법원이 아닌 미국 군법에 따라 처리되는 구조였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한국 법정에 서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살인을 저지른 미군 케네스 마클을 대한민국 법정에 세웠고, 그는 최종 15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또한 불평등한 SOFA를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두 차례(1991년 1차 개정의 실질적 이행 및 2001년 2차 개정)의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윤금이씨의 죽음은 단순한 개별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한미 관계가 수직적 관계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온 국민에게 각인시킨, 가슴 아프지만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이었습니다.
■ 지금도 계속되는 기억
동두천에서는 매년 10월 사건 당일을 추모일로 정해 '기억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주관으로 열리는 이 행사에는 매년 30여 명의 시민이 모여 그날을 기억하며 평화를 향한 다짐을 이어갑니다. 올해 2026년이면 34주기가 됩니다.
기억은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계속 붙잡고 있기 때문에 남아 있습니다.
■ 이제,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2026년, 윤금이씨 사건이 있었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작은 건물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건물주가 시민들에게 매입 의사를 타진해 온 것입니다.
이 건물을 시민의 힘으로 매입해, 기억과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는 미래입니다. 복수나 응징이 아닌, 기억과 평화, 화해와 연대의 공간. 그곳에서 윤금이씨를 기억하고,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누는 것. 그것이 이 공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도 함께 지켜주세요
이와 함께, 지금 동두천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요산 초입에 서 있는 낡은 2층 건물, 1973년에 세워진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입니다.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성병 검사를 받고, 격리 수용되었던 곳입니다. 전국에서 당시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동두천시는 이 건물을 철거하고 관광시설을 지으려 합니다. 시민들은 600일이 넘도록 이를 막아왔습니다. 2024년 10월에는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포클레인 앞에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2025년에는 UN 특별보고관 세 명이 대한민국 정부에 공식 권고안을 보내왔습니다. "피해자들의 서사가 복원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을 다하고, 철거 계획을 철회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4월, 마침내 국가 주도 대화협의체가 출범했습니다.
이 건물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보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 새겨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역사가 지워지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 기억해 주세요.
윤금이라는 이름을, 동두천 성병관리소라는 공간을, 그곳에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세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이 역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둘. 알려주세요.
이 글을 주변에 공유해 주세요. 더 많은 시민이 알수록, 이 공간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커집니다.
셋. 함께해 주세요.
매년 10월 동두천에서 열리는 '윤금이 기억의 날' 행사에 참여해 주세요. 30명이 함께하던 자리에 300명이 모인다면, 그 의미는 달라집니다.
넷. 기금에 함께해 주세요.
윤금이씨 사건 현장의 건물을 시민의 힘으로 매입하는 기금 모금에 참여해 주세요. 작은 힘이 모여 공간이 되고, 공간이 기억이 되고, 기억이 평화가 됩니다.
■ 마지막으로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제야 국민이 되었다!"
2026년 3월, 국회 토론회에서 한 피해 여성이 외친 말입니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살아왔지만 늘 그늘에서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처음으로 국민으로 불린 날의 외침이었습니다.
이 외침이 오래 울리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평화가 미래입니다.
그 미래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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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하고 싶다면
문의 :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031-823-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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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6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에 참석하신 5기 에디터 옐로구피님이 작성하셨습니다.
실타래,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
‘실타래처럼 얽혔다’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됩니다. 하지만 홀로 떨어져 있는 실이 홀로 있지 않고 하나로 뭉쳐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실타래가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실 한 올, 한 올은 손끝을 지나며 방향을 틀고 때로는 얽히면서 다시 이어지죠. 이 실은 한 줄의 기록일 수도, 사람일 수도, 오래된 사건일 수도, 오래된 사건 혹은 잊힌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의 현장은 그런 실들에 주목하고 이들이 얽혀 만든 실타래에 주목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2025 시민기록 컨퍼런스가 진행된 경기상상캠퍼스 전경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에디터 직접 촬영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경기상상캠퍼스 멀티벙커로 시민기록자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올해 시민기록 컨퍼런스의 부제는 ‘깁다, 엮다, 잣다, 잇다’였습니다. 기록 속에 담긴 마음을 꿰매고, 함께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엮고, 진동하는 사유를 잣고, 각자의 결을 맞대어서 잇는 이 모든 과정의 끝에 있는 기록에 관해 다 함께 사유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날의 컨퍼런스는 실타래를 풀고 다시 묶는 여정이었는데요. 그 매듭을 꿰는 바늘이자 매개는 바로 ‘공익(公益)’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익이란 단어는, 사전 속에서는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만 남고 말죠. 그리고 그 정의만으로는 흩어진 것을 잇고, 찢어진 것을 기워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그 정의의 바깥에서, 몸으로 공익을 잇는 사람들, ‘시민기록자(에디터)’들이 모였습니다!
우리 에디터들은 세월호의 노래를 기록하고, 만세길의 발걸음을 담으며, 영케어러의 하루를 글로 남기고, 이주민의 언어를 번역하며, 기후 정의 행진과 시민 햇빛 발전소, 전세사기 대응까지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였습니다. 에디터들이 포착한 현실은 때로는 처절했고 어떤 때는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1기부터 5기까지의 에디터들이 남겨온 기록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는데요. 그간 에디터들이 모아온 세상의 목소리를 엮고 이어서, 세상과 유리되지 않은 숨 쉬는 기록을 만들기 위하여, 오늘의 자리가 마련된 것이랍니다.
마음을 깁다 - 전시 체험 부스
경기상상캠퍼스는 완연한 가을이었습니다. 더운 여름에 고통받으며 가을을 그리워하던 때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인 가을 풍경이 펼쳐져 있었는데요. 상상캠퍼스의 잔디밭과 건물 사이에 참가자들이 시민기록자들의 활동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와 참여형 부스가 운영되었습니다. 먼저 기록자들의 실제 필체를 따라 원고 속 문장을 직접 써볼 수 있는 ‘필사 체험’과 타자기로 엽서를 직접 완성할 수 있는 ‘타자기 엽서 체험’ 부스가 운영되었습니다. 타자기는 최근에는 만나보기 힘든 물건이다 보니 ‘타닥타닥’ 타자기 소리를 직접 들어보면서 가을의 낭만과 함께 신기한 기분을 느껴보려는 참가자들이 많았습니다.
타자기 엽서 체험을 해보고 있는 참가자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오)
귀로 듣는 기록물 전시 체험 중인 참가자들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왼),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오)
한쪽에서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자리에 앉아 기사를 귀로 감상하고 있는 참가자들이 보였습니다. 원고를 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에디터들의 음성으로 느껴볼 수 있는 기록 전시 방식이었습니다. ‘심지’ 에디터를 비롯한 3인의 에디터가 자신의 기록물을 직접 녹음하여 귀로 들을 수 있는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신기한 체험은 ‘챗봇과 대화하면서 글쓰기’였는데요. 최근에는 AI가 아주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죠. 그래서 AI와 나누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나만의 기록집이 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준비되었습니다. AI가 어떻게 기록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체험해 볼 수 있어서 아주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실뜨기 놀이 체험 부스 현장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다음으로는 추억의 ‘실뜨기 놀이’ 부스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추억을 되새겨보는 참가자들도, 어른들에게 실뜨기 놀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도 즐겁게 부스 체험을 이어 나갔습니다.
‘단어 교환소(우드 버닝)’ 체험 현장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단어 교환소(우드 버닝)’ 부스에서는 나무 조각 위에 불로 그림을 새기며 ‘기록의 흔적’을 남기는 체험이 진행되었습니다. 뜨거운 인두펜의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나무에서 나는 향은 마치 한 해의 기억을 조심스레 새기는 의식 같았답니다. 그리고 이 부스의 이름이 단어 교환소인 이유! 그건 바로 내가 새긴 글귀를 내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앞선 사람이 새긴 글귀를 내가 가져가고 나의 기록은 뒷사람을 위해 남겨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록을 내가 이어받아 보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오늘의 주제이기도 한 ‘잇다’를 직접 체험하는 것만 같았답니다.
닉네임 상상도 부스 체험 현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마지막 부스는 ‘닉네임 상상도(아날로그 감성 그림 그리기)’였습니다. 에디터들의 개성 있는 닉네임을 부스 참가자들이 그림으로 그리는 활동이었습니다. 하나의 단어도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결과물을 낸다는 사실이 정말로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부스 체험을 즐긴 참가자들은 본격적으로 1부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시간은 원고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함께 토크쇼를 진행하는 시간이었답니다.
생각을 잣다 - 1부: 원고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공연이 있는 토크쇼!
개회사를 하고 있는 유명화 센터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유명화 센터장님의 개회사가 본격적인 행사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저희가 여기서 행사를 하자고 결정하면서 에디터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기획하고 꾸밀지가 참 기대됐습니다. 그런데 어제 미리 와서 보니, 저희가 5기까지 진행되어 오는 과정, 노력, 역량의 성장이 다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타래라는 말을 들으면 각자 실타래라는 말에서 느끼는 느낌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실타래를 깁고 엮고, 잣고 잇기도 하니까요. 이 네 가지 표현들이 그동안 우리 에디터들이 해온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글을 쓴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부분이에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활동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매우 멋진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익활동지원센터가 공익 활동의 다양한 부분들을 기록으로 남기면 그 기록은 현장을 남기는 의미뿐만 아니라, 공익활동 활성화의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 행사는 5기 에디터들이 8월부터 기획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낸 것이 여기에 이렇게 구현이 잘 되어 기쁩니다. 이런 공간에서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성장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성장할지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주시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푸른 잎이었던 에디터들이 이제 단풍나무의 빛깔처럼 각자만의 색깔로 피어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또 하나의 역사와 기록을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공연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센터장님의 개회사 뒤에는 이번 컨퍼런스를 더욱 뭉클하게 만든 특별한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바로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공연이었는데요. 이들은 수어로 노래하는 팀으로, 언어의 경계를 넘어 마음으로 소통하는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이 무대의 주인공들은 5기 에디터 윤 작가님의 글, '손으로 노래하는 지구인들' 속 주인공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공연은 노래의 새로운 정의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몸과 눈으로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니 이날의 자리가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본격적인 토크쇼가 시작되었습니다. 토크쇼의 주인공이 될 기록 속 주인공들은 5기 에디터 두 분(윤 작가님, 꿀벌님)과 그 기록 속의 주인공 두 분(전연 단장님, 얼쑤 활동가님)이었습니다.
1부 토크쇼 진행 현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단장인 전연 님은 중국에서 오셔서 안산에서 다문화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에디터 ‘윤작가’와의 인연을 통해 글의 주인공이 된 전연 단장님은 한국에 처음 오셨을 때의 어려움과 수어를 배우게 된 계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셨답니다.
“한국어도 못하는 외국인들이 왜 한국 수어를 배우는지 많이 질문해 주십니다. 처음에 제가 한국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어요. 문화도, 언어도 달라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그때 안산시 외국인 지원본부에 한국어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었어요. 그때 우연히 안산 작은 다문화 도서관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도서관에 중국어책이 있더라고요. 그 책장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이 땅에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도서관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고 수어 수업을 들은 것은 아주 우연이었어요. 그런데 그 수어는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연 단장님이 겪었던 이국땅에서의 어려움과 외로움은 새로운 따뜻함을 찾아 나서는 원동력이 되었고 결국 수어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고 하는데요.
“저는 수어를 배우기 전에 청각 장애인분들이 저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수업을 하면서 서로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이주 여성들은 한국말이 서툴러서 마음에 있는 말을 다 전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데, 이런 것이 청각 장애인분들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아도 눈빛과 손짓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수어를 통해 배웠습니다. 같은 언어를 통해야만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더라고요. 언어를 진심으로 느낀 그 마음의 울림이야말로 진짜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장님이 생각하는 소통에 대해 들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소통과 협력이 아니라 표면적인 관계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기록이 기록 대상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대상과의 진정한 소통이 필수적인데요. 진정한 소통의 본질이 비단 말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단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토크쇼의 다른 주인공인 얼쑤 활동가님은 안산 YWCA, 환경운동연합 등에서 44년째 활동하고 계시는 '찐찐 안산 시민'이십니다. 꿀벌 에디터님은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얼쑤 활동가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워낙 광폭으로 활동하는 시민 활동가라서 어디 가나 계신 분"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토크쇼를 통해서 얼쑤님의 헌신적인 공익 활동 방식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자그마치 26개의 단체를 후원하면서도 나중에 자신의 수입이 줄어들 것에 대비하여 8개 단체에 평생 회비를 납부했다는 얼쑤 활동가의 행보는 최선을 다해 공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함께 토크쇼에 참여한 꿀벌 에디터님의 이야기 중에서는 글쓰기를 ‘침묵에 길들여진 여성’으로서 자신을 깨는 하나의 방식임을 역설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 해소 과정으로서의 글쓰기에 관해 들으면서 많은 참가자가 기록과 기록자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게 되었답니다.
서사를 엮다 - 2부: 실타래를 만들며 소감을 공유하기
2부에서는 '지금, 우리 이야기'라는 주제로 모든 참석자가 함께하는 '실타래 엮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사회자가 던진 실타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 실타래를 굴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물리적인 실타래가 얽히면서 참가자들의 이야기와 마음도 함께 연결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사의 주요 키워드인 ‘실타래’를 통해 행사의 의미를 살려낸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실타래를 옮겨 가면서 참가자들에게 기록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고 있는 의미 있는 현장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기록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쌓여갔습니다. 유명화 센터장님은 이 자리에서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나누셨습니다. 과거 권위적이고 평가 중심으로 여겨졌던 '기록'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 많았지만, 에디터들의 활동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셨습니다. 센터장님은 이러한 '말랑말랑한' 기록의 힘이 공익 활동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음을 강조하며, 자신도 다시금 기록 활동에 열정을 쏟아보겠다는 다짐을 전하셨습니다. 전시 기획에 참여하신 한 분은 에디터들의 글을 접한 소감을 나누며 깊은 통찰을 주셨습니다. 그는 에디터들을 '삶으로서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며, 이들의 '진실 말하기'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어떤 때는 물러나거나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도 그것들이 어느 지점에는 나선형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시민 기록 활동이 당장 눈에 띄지 않더라도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나선형의 진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하고 있다면 잠깐의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힘이 될 수 있겠죠.
또한, 기록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이야기들도 이어졌습니다. 한 에디터는 구술 기록 작업을 하며 제대로 된 기록이 부재한 상황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례를 본 경험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활자 권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기록이라는 게 글을 쓸 수 있고 글로 남길 수 있는 사람들의 권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옛날 기지촌 할머니나 이런 분들을 보면 자기 얘기를 남길 수가 없었죠. 국가가 남긴 기록은 그분들의 역사를 대신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런데 이런 기록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동두천에는 쌓아 두었던 공공 기록물이 홍수로 인해 소실되어 1950년대 자료는 없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이런 일들을 보면서 누구의 기록을 어떻게 남길까, 또 이런 기록을 어떻게 잘 보존할까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기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이것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힘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곤 하는데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지금 맡고 있는 기록이 먼 미래에는 참 절실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고 기록자인 내가 사라져도 세상에서 오래 살아남을 테니까요.
사람을 잇다.
이번 제5회 시민 기록 컨퍼런스 ‘실타래’는 단순한 기록의 공유를 넘어, 우리 시대의 진정한 공익 활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선사한 자리였습니다. 물리적인 실타래가 얽히고설키며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듯, 각자의 자리에서 써 내려간 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서로를 만나고 엮이며 거대한 ‘연대의 실타래’를 완성했습니다. 이는 컨퍼런스의 이름처럼 각자의 이야기가 “결국은 하나의 큰 흐름이 된다는 뜻”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실타래'라는 이름처럼, 우리의 삶은 단순히 각자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감싸안고 엮어지는 하나의 공동 운명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에디터와 그 삶의 주인공이 만나 서로의 존재를 빛나게 했듯이, 기록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사소한 발걸음이 이웃의 삶과 사회 변화의 큰 그림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민 기록이 가진 근원적인 힘입니다.
이제 컨퍼런스는 막을 내렸지만, 우리 안의 기록자 정신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기록은 우리가 더 이상 타인의 역사를 읽는 방관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삶을 기록하여 타인에게 마음의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존재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다짐입니다. 필사에서 AI에 이르는 기록의 진화처럼, 우리의 소통 방식 역시 단순한 정보의 전달을 넘어선 깊은 공감의 영역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오늘도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겠지요.
경기도 공익활동 지원센터가 시작하고 이어가고 있는 기록의 역사는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큰 뿌듯함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각자가 잡고 있는 기록의 끈을 놓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계속 엮어 나간다면, 우리는 분명 더 따뜻하고 의미 있는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겠죠? 손으로 노래하고, 삶으로서의 작업을 이어가는 모든 기록자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끝없이 이어질 다음 페이지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남기는 퍼포먼스!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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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7
세월의 그늘과 쉴 새 없는 차별의 소용돌이 뒤편에서, 굳건한 손길로 기억의 보석을 빚어내고 찬란한 연대의 내일을 마주하는 눈부신 발자취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경기도 구석구석의 아픈 역사와 삶의 흔적을 지켜내며 예술혼을 품어온 수많은 할머니들과 공익활동가들. 낯선 시선과 세상의 편견 속에서 “우리가 지나온 세월의 상처를 넘어 힙한 예술과 따스한 감성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사랑받는 존재로 거듭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깊은 울림의 질문 앞에 섰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걷어내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숨결을 보듬으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기지촌 할머니가 만든 굿즈, 왜 이렇게 힙하죠’ 속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기지촌의 역사와 할머니들이 겪어낸 삶의 아픔은 어두운 그늘 속에 묻어두어야 할 낡은 상처일 뿐, 평범한 이웃들과 젊은 세대가 손을 맞잡고 트렌디한 굿즈와 예술적 문법으로 소통하며 다정한 위로가 될 수 없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할머니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할머니들의 손끝 온기를 통해 꽃피우는 문화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역사 문화 자치와 상호 존중적 예술 공존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치유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역사 감수성 및 자발적 예술 생태계 구축’
기지촌의 역사를 무거운 부담이나 외면하고 싶은 기억으로 여기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할머니들이 예술의 마당에서부터 직접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힙한 굿즈를 통해 위로를 주고받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진정한 문화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역사 박물관의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네의 작은 공방에 모여 앉아 할머니들과 손을 잡고 '우리의 삶 자체가 찬란한 이야기이며 서로에게 사랑받는 존재다'며 어깨를 토닥이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예술 공감 및 연대 강화’
일상 속 외로움과 오랜 상처를 개인의 몫으로 치부하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혼자서 거대한 세상의 시선과 고립감에 마주하면 막막하고 시리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할머니들과 손을 잡고 함께 예술의 온기를 나누면 그 어떤 편견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환대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문화 네트워크’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다양한 문화 예술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표현의 자유와 문화적 권리가 차별 없이 보장되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시민 자치 실현.
"모든 도민과 할머니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도내 각지에서 모인 문화 예술가들과 따스한 공존을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기지촌 할머니들이 만든 힙한 굿즈가 전하는 묵직한 울림을 나누고,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이의 아픔도 예술과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평화와 자치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할머니들의 삶을 편견 어린 눈으로만 바라보았는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직접 만든 굿즈를 보고 손을 잡으며 '우리는 모두 굿처럼 신명 나고 사랑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다'며 서로를 바라보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손끝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경기도형 문화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할머니들, 문화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예술적 영감을 나누고 굿즈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동네 기억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반짝이는 에너지를 모아 더 큰 환대의 망을 만드는 '경기 문화상생 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편견의 벽과 상처의 파고가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예술의 물줄기가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시민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예술 통계 데이터나 거창한 정부의 문화 정책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경기도의 좁은 공방과 골목길에서 이웃들과 할머니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우리의 정직한 위로와 다정한 연대로 경기도의 찬란한 공생 역사를 활짝 밝힌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문화 예술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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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7
역사적 방치의 그늘과 쉴 새 없는 아픔의 기록 뒤편에서, 평화와 인권의 목소리로 일상의 정의를 빚어내는 눈부신 발자취를 마주하다
오랜 세월 국가 주도 기지촌 여성들의 아픔과 인권 침해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채 차가운 방치 속에 놓여 있던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의 현실. 침묵과 왜곡의 장막을 깨부수고, 묵묵히 그 아픈 기억을 평화와 인권의 자산으로 되살리며 따스한 연대의 그물망을 촘촘히 엮어 오기 위해 손을 잡고 걸어온 이들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과거의 아픈 역사나 기지촌의 상처는 지나간 일일 뿐, 우리 일상과 상관없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인권 활동가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통해 평화와 인권을 꽃피우는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역사 인권 자치와 상처 회복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인권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방관과 침묵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역사 기억 및 자발적 인권 생태계 구축’
아픈 역사를 외면하거나 철거라는 미명 아래 지우려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공익활동가들이 동네 골목과 일상에서부터 진실을 마주하고 인권의 가치를 나누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진정한 인권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역사적 심판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네 골목 작은 공간에 모여 앉아 이웃들과 손을 잡고 아픈 역사의 현장을 올바로 기억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인권 감수성 및 연대 강화’
역사적 상처와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혼자서 거대한 역사적 방치와 상처의 벽과 마주하면 막막하고 두렵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인권의 목소리를 높이면 그 어떤 아픔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인권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인권 네트워크’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인권 단체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존엄이 보장되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역사 자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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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1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아카이브 에디터로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의 구성원들은 어떤 활동을 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런 고민을 매니저님과 나누던 중,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다 오신 구성원분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를 여러분께 알려드리기 위해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소개해드릴 구성원은 이정희 성장지원팀장입니다. 인터뷰는 수원에 위치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나눔 소회의실에서 진행하였습니다.
1. 전에 다니던 직장이 어떤 곳인지 소개하자면?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경기여성연대라는 여성단체에서 활동을 했었다. 1994년도 당시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을 구명하기 위해서 경기지역 여성들이 모이게 되었는데 가정폭력 피해여성은 폭행을 지속적으로 당하다가 남편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고 살인죄로 수사가 이루어지자 이에 대응하며 여성들이 결집하였고 구명운동을 했다. 사건이 정리 된 후 모인 여성들이 계속 이어서 활동을 하자는 뜻을 모아 경기여성연대를 발족하게 되었고, 현재 20년 넘게 활동 중이다.
2. 경기여성연대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27살쯤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원래 여성단체나 여성인권에 대해 잘 몰랐다가 자원봉사를 오래 하게 되면서 복지관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복지관이 여성단체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여성학을 접했다. 고향이 경상도였기 때문에 여성학을 접하고 나서 내 삶을 돌아보니 모든 차별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의 충격은 마치 프라이팬으로 뒷통수를 한 대 맞은듯한 느낌이었고 이후부터 분노가 일기 시작해서 나같은 여성들이 몰라서 당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던 가부장성, 사실 가부장성이 뭔지도 몰랐지만 예를 들면 집안일을 여자들만 하고 오빠와 남동생은 손도 대지 않는 문화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원래는 경남 마산에서 일을 하다가 수원으로 이사오게 되면서 경기여성연대에 들어왔는데, 연대의 활동 방향과 잘 맞아서 10년 넘게 일을 해왔다.
3. 경기여성연대에서 일했을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굉장히 많다. 그 중에서 크게 세 가지 정도가 기억에 남는데, 첫 번째는 경기도기지촌여성지원조례를 통과시킨일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으나 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정부가 주한미군을 위해 성매매 행위를 조장하여 기지촌여성들이 인권침해를 당한것에 대해 2012년부터 관련단체들과 피해여성들의 인권회복과 피해보상에 대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여러 활동 중에 피해여성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집단소송과 지원조례 제정에 대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 했으며, 수 많은 기자회견과 토론회에서 피해 사실을 공론화 하며 기나긴 싸움 끝에 2020년 [경기도 기지촌 여성지원등에 관한 조례]가 통과되었다. 또한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국가가 책임이 있다]는 고등법원 판결을 통해 피해여성들의 인권이 회복 되는 큰 결과를 거두기도 했다.
사실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겪었던 큰 아픔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술해야 하는 과정에서는 정말 힘들어 하셨다. 그래도 모든 개인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이니 힘내시라고 지지하면서 결국 승소하고 언론에도 많이 보도되어 피해여성들의 인권회복 및 사회 인식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 평택에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까지 건립 되었다.
두 번째로는 성평등의식 확산 운동을 많이 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성평등한 사회라고 하긴 어렵다. 사회생활, 정치, 경제, 문화 등 많은 분야에 차별이 있다. 그리고 경기도는 여성단체의 지속적인 요구로 [경기도성평등기본조례]로 개정되었다. 사실 성에는 양성만 있는 것이 아닌데 아직도 양성평등에 의한 정책들로 소수성들은 차별과 소외 받는 일들이 많다. 경기도 내 지역을 다니면서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기자회견, 길거리캠페인, 1인피켓, 연극공연 등 참 많은 활동을 해왔다.
세 번째로는 [경기도 여성청소년 보건위생물품 지원에 과한 조례]를 만든 일이었다. 원래는 취약계층 여성들만 생리대를 지원받았다. 그런데 신발 밑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여성 인권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이런 세부적인 부분을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생리대 보편 지급을 조례로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무상급식을 하듯이 생리대를 취약계층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지급이 되어야 한다는 토론회 등 조례 제정을 위한 활동을 했다. 그 결과 2020년 만11세이상~만18세 이하의 여성청소년에게 보건위생물품을 지원할 수 있는 조례가 통과되었다. 또한 획일적으로 패드형 생리대만 지급되는 것이 아닌, 월경컵 등 여러 가지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여성의 건강과 환경까지 생각하는 중요한 문제이며, 무엇보다 월경에 대한 사회 인식개선이 되어야 한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생리대는 숨겨야 하는 물품으로 검은 봉지에 싸서 다녔는데 이제는 여성청소년들에게 ‘안심하고 월경할 권리’가 당연시 되어야 한다.
4. 경기여성연대에서 일하면서 뿌듯함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여러 활동을 하면서 순간 순간 뿌듯함을 느낄때는 참 많다. 그 중에서도 앞서 말했던 미군 위안부 관련해서 승소하고, 조례를 만든 순간에 가장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경기도성평등기본조례]로 개정한 활동들이 있다. 사실 정말 변화하기 어려운 일들을 조금씩 이루어내고 해낸 것이기에 매우 뿌듯했다.
5. 앞서 말한 일들을 추진할 때 가장 장애물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여성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운동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목적이 있다. 그런데 여성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 인식이다. 예를 들면 여성은 감정적이며, 논리적이지 않다. 또는 여성이 주장하는 것을 싫어하는 식이다. 그런 인식을 겪어가면서 여성운동을 해온다.
그 다음으로는 실질적인 장애물은 인건비의 부족이다. 10년 가량 월급을 100만 원 정도 받고 일을 했다. 금액 보다는 하는 일의 가치가 더 높기 때문에 자부심으로 살았다. 여성들과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봐왔으니 급여 같은 건 장애물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프로젝트 사업을 하기 위해서 사업비, 인건비가 지출되는데 보통 단체에서의 활동가는 1명 내지 2명이다. 이들이 인건비를 받으면서 정부를 상대로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보통 이러한 비용은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을 하게 된다. 경기지역에 있는 여성단체는 4개가 있는데, 경기여성연대, 경기여성단체연합, 경기자주여성연대, 경기여성단체협의회이다. 이렇게 4개 단체가 네트워크를 이루어서 큰 사업을 대응하기도 하고, 여성 관련된 모든 사업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6. 그렇다면 시민의식을 개선할 방안을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공연이나 연극 한편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개인적으로 문화 예술 분야를 좋아하기도 해서 연극이나 노래 공연을 지역을 돌아다니며 해왔다. ‘엄마는 지금 일하고 있다’ 라는 연극을 만들어서 공연했는데, 엄마가 밖에 나가서 일하고 돌아오면 남편이 피곤하다며 양말을 던지면서 눕고, 육아도 엄마가 다 하는 내용이다. 전하고자 하는 것을 글이나 말로 하는 것보다 연극을 통해서 보여주니까 시각화되어서 더욱 전달이 잘된다. 연극을 보면서 몰입하여 우시는 분도 있었으며 특히 경기 외곽은 가부장적인 정서가 더욱 심하기에 공감을 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는 이 연극을 남성들에게 더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시청, 공무원, 군인을 대상으로 보여주려고 전화도 많이 돌렸다. 물론 보다가 중간에 나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여성운동 또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활동은 하지 못하더라도 후원을 하는 등 꾸준한 관심을 가지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여성운동을 할 때 돈 때문에 활성화가 되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다. 우리는 모든 여성들이 평등해질 때까지 우리는 계속 간다는 구호를 외치곤 한다. 같은 여성끼리 지원해주고 연대하는 힘이 필요하다.
7.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새로 생긴 목표가 있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목표가 있어서 그 목표를 이루려고 이곳에 왔다. 경기 시민단체연대에서 운영위원장을 두 번 했었는데 시민단체가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들은 금전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렇게 일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세대는 교체될 것이고 윗세대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정신의 영향으로 열정페이로 일을 하지만 이후 청년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요구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시민단체가 안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시민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고민을 해보니 하나의 센터를 만들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비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제일 어려운데 그 과정을 함께해서 도와주고 싶어서 온 것이고 그 목표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 프로젝트에 매몰되면 정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런 어려움을 줄여주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 그들이 하고싶은 운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8. 앞으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나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일단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센터가 정말 중간지원조직으로써 해야 하는 일을 독립적이고 자율성 있게 하고 싶은데 아직 초반이라 그러지는 못한다. 기반이 다져져야 하는 시간과 기반이 필요한데 공약을 받고 시민단체들이 만든 센터라서 여러 의견들을 수렴하여야 한다.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지역의 활동가들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게 방향을 같이 고민하고, 같이 나누고 필요한 대로 유동적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이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최종적인 목적지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뿌듯함을 느끼며 충분히 활동할만하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다.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9.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이정희 성장지원팀장 :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나서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 이 길을 잘 왔다고 생각한다. 이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의 성장도 많이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깨달음이 있었기에 이 활동에 대해서 후회는 없다. 내가 자식이 있었다면 엄마는 이런 활동을 하고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부심이 있다. 다른 시민활동가들도 이런 마음가짐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시민사회 활성화가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한 개개인이 모여서 일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다 아울러서 우리 사회가 크게 변했으면 좋겠다. 지금 내 역할은 조그맣지만 사회가 변화하는데 참여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
본 에디터는 이정희 팀장님의 공익활동 경험을 인터뷰를 통해 전해 들으며 배울 수 있던 점이 아주 많았습니다. 경기여성연대에서도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도 위치와 상황에 관계없이 팀장님이 생각한 사회적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차근차근 만들어가시는 모습이 상당히 흥미롭고 인상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직접 발로 뛰었던 생생한 이야기와 실무자가 생각하는 앞으로 센터의 방향성을 듣고 센터의 에디터로 전달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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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