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사람으로 살다가 안산에 정주한 사람이 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서 찐 안산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잇는 ‘기억과 약속의 길’ 시민 안내자이며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의 직무 지도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슴에 ‘별을 품고 사는 사람’으로 ‘춤추는 나무’. 4월이라 더 바쁜 고명선 활동가를 소개한다.
자신을 ‘춤추는 나무’라고 소개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20대 때부터 상담소에서 닉네임으로 ‘나무’를 썼다. 내 주변엔 뿌리 깊은 나무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이미 너무 많더라.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이웃들과 바람이 가는 대로 춤추며 살고 싶었다. 거창한 존재보다 주변과 어우러지는 사람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춤추는 나무로 매일 출근하는 일부터 소개해 달라.
안산의 한 카페에서 성인 발달장애인 바리스타 6명 곁에서 ‘직무지도원’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바리스타들이 샷 추출이나 음료 제조 실력은 정말 뛰어나다. 다만 숫자 계산, 재고 파악, 그리고 동료 간의 의사소통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속도에 맞춰 호흡하며 일상을 나누고 지역사회 안에서 당당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도록 곁을 지키는 ‘다정한 이웃’이 되는 일이다.

기억교실에서 '기억과 약속의 길'이 시작된다 사진 제공 4.16기억저장소

춤추는나무는 걷기를 좋아한다 사진 제공 고명선
장애인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와 이전의 이력이 궁금하다.
대학 시절,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재가장애인들에게 책을 배달하며 장애인 인권에 눈을 떴다. 이후 ‘장애여성공감’ 상담원으로 일했고, ‘성공회 나눔의집’에서 어린이와 어르신을 돌보고 성인장애인들과 함께 일했다.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활동의 뿌리가 됐다.
서울 사람이 어떻게 안산의 시민 활동가가 되었나?
결혼하면서 안산에 왔다. 세 아이 엄마로서, 2014년 4월 16일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다가 세월호 소식을 접했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믿고 큰 걱정 안 했다가, 저녁에야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화면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에 발만 동동 굴렀다. 다음 날,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아이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무작정 단원고로 달려갔다.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비는 밤이었다. 운동장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다. 여러 번 촛불을 들었지만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그 촛불이 제일 간절했다. 그 이후 화랑유원지, 안산문화광장, 광화문광장에서 나는 계속 촛불을 들었다.

기억과약속의길 시민안내자로 활동하는 '춤추는 나무' 모습 사진 제공 고명선
시민안내자로서 걷는 ‘기억과 약속의 길’은 무엇인가?
참사 직후부터 정부합동분향소와 단원고 교실을 찾아가는 ‘기억과 약속의 길’이 있었다. 나는 2017년 4.16기억저장소 ‘4.16 민주시민교육’에서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고잔동에서 별이 된 아이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수료생들과 함께 “누가 오든 안 오든, 우리끼리라도 한 달 한 번은 꼭 이 길을 걷자”고 다짐했다. 4.16기억교실에 모여서 단원고 추모조형물, 4.16기억전시관, 고잔동 마을의 골목골목을 지나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까지, 2~3시간을 시민들과 걷고 있다.
지난 7년여 동안 이 길을 지키며 느낀 건 ‘기억의 힘’이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떤 날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때론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모두 노란 우산을 쓰고 끝까지 걸었다. 걷는다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기억공간에서 서로의 기억을 꺼내고, 어떻게 기억하고 약속할까 이야기했다. 태풍 때 한 번 취소된 거 말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이 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이라고 본다.

기억교실 영상실에서 7반 허재강 어머니 양옥자 님(좌)과 1반 한고운 어머니 윤명순 님(우)과 함께 사진 제공 4.16기억저장소

가만히 있지 않겠다, 뭐라도 함께 해야 했다 사진 제공 고명선
‘기억과 약속의 길’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의례가 있다고 들었다.
매번 출발을 4.16기억교실에서 한다. 3월엔 3반, 4월엔 4반 이런 식이다. 교실에 모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출석’ 시간이 있다. 시민 안내자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그 아이 자리에 앉은 시민이 “네!”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아이들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그들의 삶과 꿈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기억과 약속의 길은 함께 기억하고 약속하는 연대의 길이다.
춤추는 나무는 별을 품은 사람들(이하 ‘별품사’)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2018년경 4.16 안산시민연대에서 ‘별을 품은 이웃’이라는 마을별 세월호 모임을 제안했다. 그때 나는 '함께크는여성울림'에서 상근 활동가로 피켓팅과 서명전 등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활동가들과 고민하다가 “울림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 활동하고 마음을 나누자”라며 회원들을 모아 소모임 ‘별품사’로 의기투합했다.

'별품사'는 단원고 약전부터 함께 읽었다 사진 제공 고명선

세월호 꽃누르미 공방의 5반 큰 건우 어머니 김미나 님 (좌) 4반 정차웅 어머니 김연실 님(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대단한 목표보다 그저 참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별이 된 아이들을 우리 가슴에 품고 살아가자는 뜻이었다. 별품사 첫 활동이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의 약전 읽기였다.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은 1반 1권으로 시작해 10반 10권까지, 그리고 선생님들과 일반인들 이야기 2권으로 책이 12권이다. 책을 펼쳐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이야기하는 게 처음엔 우느라 너무 어려웠다. 아이들의 꿈, 좋아했던 음식을 이야기했고 아이가 좋아한 음악을 모임에서 함께 들었다. 아이와 부모님들의 일상을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우리는 많이 울고 또 웃었다. 약전 전권을 2년에 걸쳐 완독 토론한 후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썼다. 그 결과물로 250편의 편지 모음집 《잊지 않을게 행동할게》를 펴내 기억교실 각 반에 갖다 두었다.
별품사는 세월호의 진실과 별이 된 아이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공부방’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세월호 관련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고 기억식 등 관련 행사에 참여해 왔다. 세월호 공방 어머니들을 모셔 와 꽃누르미와 다양한 기억 물품을 만들며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다. 416 희망 목공소에 가서 아버지들과 목공 실습도 했다. 올해는 별품사 새 회원들과 함께 약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3월에는 약전에 빠진 아이 중 1반 문지성 이야기를 어머니 안명미 님을 모셔서 생생히 듣는 시간도 가졌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유가족들 곁에서 안산의 한 귀퉁이를 지키는 온기가 되려고 한다.

약전에 빠진 1반 문지성 어머니 안명미 님(정면 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별품사가 엮은 284쪽 짜리 편지집 사진 제공 고명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소리를 내며 사진 제공 고명선
그 외에도 매달 피케팅과 생명 안전 공원 예배에 참여하지 않나.
피켓을 드는 것은 시민들에게 참사의 진실을 알리며 잊지 말자고 호소하는 직접적인 소통 창구다. 매월 둘째 수요일 5시 30분 광화문광장에서 ‘기억공간 지키기 집중 피케팅’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차가운 시선이나 “인제 그만 좀 해라”, “지겹지도 않냐?”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피켓을 놓지 않은 건, 다시는 어떤 참사도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고, 밝혀지지 않은 진상규명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매달 첫 일요일 오후 5시, 공사가 진행 중인 거친 흙바닥 위에서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노래한다. 예배에서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시간이 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이 모두 안산으로 돌아올 걸 믿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엄마아빠 마음이다. 4.16 생명 안전 공원은 별이 된 아이들의 봉안당을 포함해서 모든 시민이 찾아와 머무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생명안전공원 예배 사진 제공 고명선
생명 안전 공원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공원 부지 앞에서 반대하는 분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 “너희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라며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이 느끼는 불안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의 불안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깃을 눈앞의 노란 리본으로 정해버린 거다. 생명 안전 공원은 특정 누군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사를 성찰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다짐하는 공간이다. 그분들과도 결국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내 삶에 일어난 변화가 있다면?
배우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마누라가 바빠져서 얼굴 보기 힘들다”라더라. 그래서 “참사 이전에도 세 아이 엄마로 늘 바빴거든?” 농담해 줬다. 첫째 변화는, 내가 안산이라는 도시에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학교도 다녔기에 결혼하고 살게 된 안산이 늘 낯설었다. 그런데 참사가 터졌다. 어느 순간 차마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없더라. 그렇게 비로소 안산에 정주하는 진짜 ‘안산 사람’이 됐다.
둘째는, 참사 이후 그분들이 겪는 사회적 고립과 혐오를 보면서, “이분들 또한 우리 이웃으로서 존중받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함께 숨 쉬어야 하듯, 세월호 가족들도 우리 공동체 안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분들이 외롭지 않게 안산이라는 공동체의 품을 넓히는 것이 내 활동의 동력이자 철학이다.

별품사와 6반 신호성 어머니 정부자 님(앞줄 가운데)과 함께 사진 제공 고명선
세월호 가족들 곁에서 특별히 배운 점이 있다면?
10주기 때 ‘유류품 기록’ 작업을 함께했다. 아이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기록하며 부모님들이 들려주시는 목소리를 듣고, 다시는 어떤 참사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감히 “그 마음 다 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함부로 ‘공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됐다. 나는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이웃’이 되기로 했다.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고!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는 소회는 어떤가?
생명 안전 공원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건립되어 흩어져 있는 우리 아이들이 비로소 안산이라는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공사 부지를 지날 때마다 지난 10년여의 갈등과 눈물,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곳은 단순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무거운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산책하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일상을 나누고, 생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희망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그날, 안산이 비로소 참사의 아픔을 딛고 생명과 안전을 상징하는 새로운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춤추는 나무의 남은 꿈도 나눠달라.
내 곁에서 함께 일하는 발달장애인 동료들의 속도,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서로 연결된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살린다.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걸어가고 싶다.

생명안전공원이 완공돼도 계속 다정한 이웃으로 사진 제공 고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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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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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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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2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오색 스카프를 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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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8
진달래, 벚꽃, 철쭉 등 차례로 봄꽃이 피더니 계절이 어느새 여름의 문턱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생명이 피어나는 봄은 역설적으로 영문도 모른 채 짧은 생을 마감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2024년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안산에서는 ‘기억식’과 더불어 여러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 가운데 희생자들의 기억물품을 모은 특별전 ‘회억정원’에 다녀왔습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붉은 여행용 트렁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숨을 잠깐 멈추게 됩니다. 수학여행 짐을 꾸렸던 참사 전날의 마냥 설레었던 10년 전의 시간이 상기되기 때문입니다. 트렁크의 주인은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예쁜 사진을 찍고 싶었을 겁니다. 새로 산 옷, 치약, 칫솔, 드라이기 등을 넣었을 트렁크가 이제는 유류품으로 남았습니다. 세월호에서 수습된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유류품을 모아 작가들이 ‘세월호 참사 유품시’를 기록했습니다. 참사의 아픔과 상실의 기억을 공유하고, 안전한 사회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여행용 캐리어
널 낳은 날 여행이 시작되었지
기다가 걷다가 달리다가
비로소 네 스스로 처음 짐을 꾸린 날
어디로 가는지 왜 몰랐을까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던
네가 나를 낳은 그날
몸으로 낳은 아이를 잃고, '비로소 네 스스로 처음 짐을 꾸린' 아이를 마음속에 묻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 전혀 낯선 길로 들어선, 유가족의 고통과 훼손된 마음이 느껴집니다. ‘회억정원’ 특별전에서는 이와 같은 세월호 유류품을 바탕으로 탄생한 예술창작품 6개와 유가족들이 제공한 희생자들 유품 37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된 예술창작품은 4.16재단에서 2023년 진행한 “4.16 세월호참사 유류품을 활용한 예술창작품 아이디어 스케치 공모전” 당선작입니다. 유류품 가운데는 유난히 신발이 많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의 신발뿐만 아니라 제주도를 오가던 화물 트럭 운전자들, 가족 여행객들, 여행이나 작업을 위해 떠난 길이었기에 이동하기 편리한 운동화 차림이 많았을 것입니다. 전시된 작품 가운데 ‘안전화’는 유류품 중 짝이 없는 희생자의 신발을 모델로 삼아 잃어버린 다른 쪽의 신발을 도자기로 제작했습니다. 잘 관리되지 않으면 깨지기 쉽고 회복도 어려운 도자기의 특성을 살려 우리 삶에서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 그대로 반영하고자 했다고 작가 황미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전시제목 "회억정원"의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기억이나 추억이 아니라 왜 ‘회억’일까요? 회억(回憶)은 1940년대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한 단어 ‘Eingedenken’의 번역어입니다. 과거 시점에 박제된 기억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죽음에 대한 사회 공동의 책임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함을 되새기게 합니다. 안타까운 죽음을 의미 있는 생명으로 이어주느냐는 우리의 “연대와 실천으로서의 기억”에 달려있다고 전시 도록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대와 실천으로 함께하는 기억의 자리에는 혐오와 차별이 아니라 꽃, 생명안전의 꽃이 피어나길 바랍니다. 아이들의 유품을 담은 전시장을 정원으로 꾸민 이유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0년 전 과거의 그이를 기억하는 새로운 기억의 교차, 특별전 "회억정원"은 이제야 눈물을 닦고 고통의 언저리 대신 아이들의 꿈을 회고하는 유가족들의 한 걸음 내딛은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된 유품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후라이팬, 팔레트, 킥복싱 도복 등 세상에 다양한 꽃들만큼 아이들이 아끼던 물건도 다채롭게 빛납니다.

이태민의 후라이팬
“이태민에겐 열 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막내를 챙기는 것은 태민의 몫이었다. 어린 동생을 돌보다 자연스럽게 요리사를 꿈꾸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요리학원에 다니며 한식 자격증을 따고 양식 과정을 배우는 중이었다.”

빈하용의 붓과 팔레트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빈하용은 연필과 스케치북만 있으면 다른 장난감이 전혀 필요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림을 진로로 삼고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2014년 4월 사용하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관되었다.”

김민성의 킥복싱 도복
“김민성은 직업군인으로 진로를 정한 뒤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 킥복싱을 시작했다. 험한 운동이라 아빠가 반대했지만 민성의 진지한 태도에 아빠가 출장 간 사이 엄마가 등록을 해줬다. 수학여행 가기 전날도 밤 열두시까지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안주현의 일렉 기타
“이모에게 기타를 선물 받은 뒤 안주현은 독학으로 기타를 익혔다. 어느 날 퇴근한 부모님을 소파에 앉혀놓고 몇날며칠 연습한 곡을 들려주었다. 수학여행 가서 장기자랑으로 기타를 연주한다며 들떠있던 주현에게 이모가 값비싼 기타를 선물했다. 그 기타는 아직 바다 속에 있다.”
전시 해설을 맡은 주현군의 어머니 김정해씨는 자신의 얼굴보다 아이의 유품인
기타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김정해씨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주현군의 기타입니다. 핸드폰을 볼 때마다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쌓였을까요?

마침 단체 관람객이 찾은 날이라 전시를 여는 마음을 담은 유가족의 소소한 이야기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이 전시가 솔직히 10년 만에 처음 열리는 전시거든요. 이렇게 우리 아이들이 평소 사용했던 정말 우리 아이들의 손때가 묻어 있고, 아이들의 감정이나 성별이 살아있는 작품들을 이렇게 부모님들이 꺼내기까지는 너무 아픈 시간이었어요.
그 앞에 시간을 참고 견뎌 이렇게 ‘회억정원’이라는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아이들의 소견을 한 번 더 보시고 아이들의 어떤 꿈을 발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10년 동안 이렇게 달려오는 동안 저희만 이렇게 했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을 것 같아요. 앞에서 계신 여러분들이 저희와 함께해 주셨기 때문에 저희가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달려갈 꿈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추모 성악 공연도 함께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추모곡 '내 영혼 바람 되어'가 위로하듯 전시장에 스며듭니다.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여태 참사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되지 않아 상처와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회억정원" 특별전을 보며,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마다 회억정원을 가꾸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전시품 앞에서 골똘한 어린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무책임한 어른 때문에 생명을 잃은 형과 누나들이 그저 안타까울 것입니다. 이들의 희생이 거듭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한 세상을 아이들에게는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회억정원’은 오는 어린이날까지 이어집니다. 아직 전시를 못 본 분들은 행동하는 한 걸음을 떼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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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