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공익활동, 혼자서는 지속되지 않는다
경기도 어느 시·군의 작은 공익활동 단체를 상상해 보자. 환경, 아동, 복지, 문화 등 각자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모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마주치는 현실은 이상과 다를 때가 많다. 단체를 법인으로 등록하는 절차는 복잡하고, 보조금 신청서 작성은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며, 회원 모집과 홍보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같은 고민을 나눌 동료나 단체를 찾기 어렵다. 공익에 뜻은 있지만 그것을 지속시킬 자원과 구조가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중간지원조직'이다. 중간지원조직은 공익활동 단체와 행정, 기업, 시민 사이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허브 역할을 한다. 이 중간지원조직의 생태계가 가장 체계적으로 발달한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다.
일본 내각부(2022) 정의에 따르면 중간지원조직이란 "다원적 사회에서 공생과 협동이라는 목표를 향해, 지역사회와 NPO의 변화와 필요를 파악하고 인재·자금·정보 등의 자원 제공자와 NPO를 연결하며, 넓은 의미에서 각종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을 조율하는 조직"이다. 요약하자면 'NPO를 지원하는 NPO'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약 30년에 걸쳐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의 지원 구조를 촘촘하게 구축해 온 일본의 경험은, 현재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포함해 여러 행정구역 단위의 공익활동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를 키워가고 있는 한국에 여러 시사점을 전한다.
자원봉사 원년 1995년, 일본 NPO 생태계의 출발점
일본의 NPO 생태계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는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이 있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일본 효고현 남부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대지진, 한신·아와지 대지진이다. 사망자 6,434명이라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 이 재난에서, 지진 직후 피해 지역에서 이재민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에 참여한 사람은 하루 평균 2만 명이 넘었으며 3개월간 연인원 117만 명에 이른다. 현지에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헌혈이나 기부, 물자 지원 등 후방 지원에 자원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최대 16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1995년은 일본에서 '자원봉사 원년'으로 불린다. 수십만 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일본 사회는 처음으로 시민사회의 힘을 실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한계도 드러났다. 자원봉사자들의 열의는 넘쳤지만 이들을 조직하고 연결할 구조가 없었다는 점이다. 자원은 넘치는데 배분이 안 되고, 현장마다 중복 지원이 발생하는가 하면 사각지대가 생기기도 했다. 시민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졌다.
일본 정부는 비영리단체를 손쉽게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1997년에 '특정비영리활동 촉진법(NPO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일본의 시민사회와 비영리 섹터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NPO법 제정 이전에는 일본의 소규모 시민단체들은 법인격을 취득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거 등장한 소규모 풀뿌리 시민단체들은 기존의 공익법인제도의 틀 내에서는 법인격을 부여받기가 쉽지 않아 임의단체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조직 기반이 약하고, 인지도나 사회적 신용도가 낮아 공익활동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NPO법 제정으로 이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법인격을 취득한 단체는 은행 계좌를 법인 명의로 개설하고, 계약의 주체가 되며, 사회적 신용도를 얻을 수 있었다. NPO법의 제정·시행을 계기로 그동안 임의단체로 활동해 왔던 시민단체들이 대거 법인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NPO법 시행 이후 일본의 NPO법인 수는 꾸준히 늘어 현재 수만 개에 달하는 생태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중간지원조직의 구조 :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의 촘촘한 네트워크
NPO법 제정과 함께 일본 전역에서 중간지원조직도 빠르게 증가했다. 중간지원조직의 설립 시기를 조사한 결과, 1995년 이후에 설립된 것이 전체의 82%를 차지했으며, 특히 민설·민영 형태의 중간지원조직은 그 비율이 92%에 달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NPO법 제정이 중간지원조직 확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구조는 크게 두 층위로 나뉜다.
- 전국 단위 : 일본NPO센터
일본NPO센터는 1996년 11월 NPO 관계자들의 협력으로 설립되었으며, 1999년 특정비영리활동법인, 2011년에는 인정특정비영리활동법인*으로 인정받았다. 정보 교류, 인재 개발, 조사·연구, 정책 제언 등의 활동을 통해 NPO의 기반을 강화하고, 기업·행정과의 파트너십 구축을 목표로 한다.
일본NPO센터는 분야와 법인격의 유무에 상관없이 NPO 등 민간비영리 섹터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데 힘쓰며, 각종 연수와 네트워킹 기회 제공, IT 지원, 자금 중개 프로그램 등을 통해 활동을 뒷받침한다. 기업을 대상으로는 NPO와의 협동 사업을 제안하고 상담하는 창구 역할도 한다.
* NPO 법인중에서 운영조직 및 사업활동이 적정하고, 공익의. 증진에 기여가큰 법인으로, 관할기관 (도도부현・정령시)으로부터 인정을받은 NPO
- 지역 단위: 도도부현 NPO지원센터 네트워크
일본NPO센터는 전국 도도부현별로 NPO지원센터 목록을 관리하고 있으며, 각 지역의 지원조직과 지원시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각 지역 센터는 NPO의 조직 상담에 대응할 수 있는 상근 스태프를 두고, 분야를 가리지 않는 종합 지원을 원칙으로 한다.
중간지원조직의 형태는 NPO, 타운 매니지먼트 기관 등 제3섹터적인 것, 자치체 내부에 설치된 것, 사회복지협의회가 설치한 것 등 다양하다. 공설公設 및 민설民設 양쪽의 형태가 있으며, 공설 중에는 민영(운영을 NPO법인 등 민간에 위탁하는) 형태도 있어 '공설민영' 형태가 증가하는 추세다.
중간지원조직의 주요 기능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상담과 정보 제공이다. 법인 설립부터 보조금 신청, 회계 처리까지 단체가 필요로 하는 실무적 지식을 지원한다. 둘째는 역량 강화 교육이다. 단체 운영, 모금, 홍보 등 다양한 주제의 연수를 제공한다. 셋째는 자원 연계다. 기업의 사회공헌 자금이나 재단 보조금을 NPO와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넷째는 네트워크 구축이다. 단체들이 서로 만나고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
일본NPO지원센터의 구체적 활동 : NPO서포트센터와 협동 모델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례는 NPO서포트센터다. NPO서포트센터는 1993년에 설립되어 일본 최초의 민간에 의한 NPO 지원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설립 당시는 NPO라는 개념이 '발견'되어 이입되기 시작한 시기로, 버블 붕괴, 한신·아와지 대지진, 지하철 사린 사건 등으로 상징되는 저성장과 혼미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 선구자들은 NPO의 가능성에 목소리를 높여 NPO법이라는 기반을 만들었다.
NPO서포트센터는 도쿄 중앙구와 협력해 '협동스테이션 중앙을 운영하며, 행정과 NPO의 실질적 협동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델에서 핵심은 행정이 공간과 일정 재원을 제공하지만 운영의 주도권은 민간 NPO가 갖는다는 점이다. 행정 주도로 운영될 경우 나타나는 경직성 문제를 최소화하면서도 공공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일본NPO센터가 행정과의 협동을 정의할 때 "이종·이질의 조직이 공통의 사회적 목적을 위해 각자의 자원과 특성을 모아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하여 함께 일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협동이 공동 의존이나 유착 관계가 되지 않도록 정보 공개를 철저히 하고 사업마다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행정으로부터 지원을 받되 독립성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중간지원조직의 존재 의의이기 때문이다. 일본NPO센터는 행정과 협동하는 NPO가 갖춰야 할 자세로 "행정에 의존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독립할 것"을 핵심 덕목으로 꼽는다.
국내 중간지원조직과의 공통점 및 차이점
필자가 6기 아카이브 에디터로 활동 중인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경기도민과 공익단체들의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증진하기 위해 경기도와 시민사회가 함께 설립한 중간지원조직으로,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구조와 비교할 때 몇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드러난다. 유사점으로는 먼저 행정과 시민사회의 협력 구조가 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경기도의 지원 아래 운영되면서도 시민사회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구조를 갖고 있다. 공익활동 단체 지원, 네트워크 구축, 콘텐츠 아카이빙 등 일본 중간지원조직의 주요 기능과 상당 부분 겹친다. 양성교육 프로그램 운영, 정기회의를 통한 네트워크 구축, 공익매거진 발간 등은 일본 지역 센터들의 활동과 흡사하다.
차이점에서는 역사의 두께가 가장 크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는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1998년 NPO법 제정을 출발점으로 삼아 약 30년의 축적을 가지고 있다. 전국 단위에 일본NPO센터가 있고, 47개 도도부현에 각각 지역 지원 조직이 있으며, 더 아래로는 시·구·정·촌 단위의 자원봉사센터와 협동 거점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이후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었고,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그 흐름 위에서 성장하고 있지만 역사의 두께 면에서는 아직 차이가 있다.
또한 일본은 NPO법이라는 명확한 법적 근거 위에 전체 생태계가 세워져 있어, 어느 지역에 어떤 종류의 지원 조직이 있는지 체계적으로 파악된다. 한국은 공익 관련 법인 형태가 분산되어 있고, 중간지원조직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법적 근거가 상대적으로 덜 명확하다.
기업 연계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본은 기업의 사회공헌(CSR·CSV) 활동과 NPO를 연결하는 매개 기능이 중간지원조직의 중요한 역할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 자원이 공익활동 생태계에 흘러드는 구조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반면, 한국은 이 연계가 아직 초기 단계인 경우가 많다.
일본 사례가 보여주는 중간지원조직의 세 가지 원칙
일본의 사례에서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를 비롯한 국내 중간지원조직 생태계가 참고할 만한 점을 세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 법적 기반이 생태계를 안정시킨다. 일본 NPO 생태계의 폭발적 성장은 1998년 NPO법 제정 이후에 일어났다. 법인격 취득이 쉬워지자 단체들이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위에서 중간지원조직도 자라날 수 있었다. 한국도 공익활동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의 논의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단체 등록, 세제 혜택, 보고 의무 등 법·제도적 환경이 공익활동의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 밀착성이 핵심이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은 전국 단위와 지역 단위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전국 단위 센터가 정책 제언과 정보 허브 역할을 한다면, 지역 센터는 실제로 단체들의 현장과 맞닿아 개별 상담, 역량강화 교육, 지역 네트워크 구축을 담당한다. 경기도는 31개 시·군이라는 방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만큼, 남부센터와 북부센터 체계를 기반으로 지역별 밀착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독립성을 지켜야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살아난다. 일본의 중간지원조직들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행정 의존 탈피'다. 재정 지원을 받되, 공익활동 현장의 목소리를 행정에 전달하는 정책 제언 기능, 단체들이 서로 연대하는 네트워크 기능을 유지하려면 운영의 자율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도 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생태계 전체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일본의 NPO 중간지원조직 생태계와 국내 중간지원조직 생태계를 비교하면 역사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1995년 대지진을 계기로 자원봉사의 원년을 선언하고, 1998년 NPO법을 제정하고, 그 위에서 30년에 걸쳐 촘촘한 지원 구조를 쌓아온 일본과, 공익활동의 제도화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된 한국의 차이는 단순히 따라잡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방향은 같다. 공익활동이 혼자서는 지속될 수 없다는 인식, 그것을 지원할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그 중간지원조직이 행정과 시민 사이를 '진짜 다리'로 연결해야 한다는 인식은 일본과 한국이 공유하고 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아카이브 에디터와 함께 공익활동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쌓아가는 것도 그 방향의 일부다. 30년 전 일본의 시민들이 대지진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보여준 시민사회의 힘처럼, 오늘 경기도의 공익활동을 기록하는 한 줄, 한 줄이 미래의 생태계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카드뉴스 제작 6기 아카이브 에디터 남철우(디어)
참고 자료
일본NPO센터 공식 홈페이지 https://www.jnpoc.ne.jp/
내각부 - 중간지원조직의 현황과 과제에 관한 조사 보고(2002)
https://www.npo-homepage.go.jp/uploads/h13b-2.pdf
NPO CROSS - "중간지원조직이란 무엇인가" https://npocross.net/1881/
복지타임즈 -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재해 지원 시스템 구축" https://www.bokj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865
민병로 (2010). 일본 시민 사회의 구조와 법인화 - NPO법인 제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10(2), 125-160.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469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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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3※ 「공익웹진」은 시민 기록 활성화를 위해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행하는 참여형 아카이브입니다. 경기도 공익활동 현장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글의 내용은 경기도민 에디터가 직접 취재·작성한 것으로, 내용 중 일부 의견은 기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편집자의 말

부천 보육교사의 비극과 ‘쉴 권리’
젊은 20대 돌봄 노동자는 독감 확진 후에도 출근했다. 그리고 사망했다. 경기도 부천, 한 사립유치원 교사에게 벌어진 일이다. 그는 1월 27일 B형 독감 확진을 받고도 사흘간 근무한 후 1월 30일 오후 조퇴했다. 그 후 31일에 입원한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2월 14일에 20대 돌봄 노동자는 사망했다. 사인은 B형 독감으로 인한 연쇄 구균 독성쇼크 증후군과 패혈성 쇼크로 알려졌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황당하고 원망스럽다. 밥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건데, 아픈 몸을 제때 돌보지 못하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은 모순적이다. 일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인간은 목적 그 자체여야 한다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파본 노동자라면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회사 업무에 차질이 생길 때, 회사에 눈치가 보였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출근을 못 한 만큼 소득이 감소할 것이라는 걱정, 나를 대신해 업무를 떠맡을 동료에 대한 미안함, 해고라는 두려움. 이 셋 중 하나 이상을 경험한다.
병가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의무 사항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업무와 관련없는 질병이나 부상은 무급으로 허용되나, 회사 규정에 따라 유급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소득 감소에 따른 생계유지 어려움을 예상해 아픈 몸을 일으켜 회사로 출근한다. 카드값과 월세, 자녀 학원비, 부모 요양비 등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술이나 입원 등으로 출근조차 하지 못하면 소득 감소로 인한 타격은 고스란히 노동자 개인의 몫이 된다. 비상금 대출을 알아보거나 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아프면 쉴 권리 보장 3법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5년 9월, 49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모여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출범했다. 공동행동의 주된 목적은 제대로 된 상병수당 제도화의 실현이다. 공동행동은 2024년 7월, 이수진 의원(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아프면 쉴 권리 보장 3법' 발의 기자회견을 했는데, 3법이라고 하면 「국민건강보험법」,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개정을 의미한다.
개정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건강보험 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질병 또는 부상으로 소득에 손실이 있는 경우 상병급여를 지급하고, 지급액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병급여(또는 상병수당)란 업무 외 질병·부상으로 일을 못 할 때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2022년부터 시범 사업을 운영하였으며 2025년 하반기부터 정식으로 도입될 예정이었으나 2027년으로 연기되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질병휴가를 연간 60일 범위에서 유급으로 보장하고, 평균임금 해당 금액을 지급하도록 하되 국가가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근로자에게 질병휴가급여를 직접 지원하여 사용자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을 통해 유급질병휴가를 법률로 보장하도록 각 국가에 권고해왔으나 우리나라는 이를 보편적 공적 제도로 도입하지 않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은 업무상 재해 인정과 산재 요양급여 결정하기 전에 「국민건강보험법」상 상병급여를 노동자에게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산재 요양급여 결정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아프면 쉴 권리 보장 3법’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노동자가 소득 감소라는 생계 위협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한다. 개정안을 읽으면서 필자에겐,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쉬어라. 소득을 유지할 수 있게 하겠다.”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이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2024년 11월 14일 상임위원회에 처음 법안이 소개되었고 소위원회로 넘어갔으나, 2026년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쉬겠다” 말할 수 있는 환경부터 보장돼야
공동행동 출범식에서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이 “우선 쉬겠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1고 말한 것처럼, ‘아프면 쉴 권리’는 월급 보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유급병가나 유급휴가가 있더라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인력이 없어, 나의 휴식이 곧 동료의 독박 노동으로 이어지는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이다. 인력 공백을 개별 노동자의 희생으로 메우는 구조는 노동자를 제때 쉴 수 없게 한다. 내가 휴식을 가질 때, 내 업무로 인해 옆자리 동료가 야근해야 하는 상황인 게 눈앞에 뻔히 펼쳐진다면 무리해서라도 출근하게 된다. 동료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보육교사 근로환경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2018)2에 따르면 어린이집 내 휴가 사용에 대한 분위기는 자유롭지 않으며(63.9%) 그 이유로는 '동료가 힘들어진다'(34.9%)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이미 1인분의 업무를 하고 있는 동료에게 전가할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만약 모든 직원이 평소 70~90%의 업무량만 맡는다면 어떨까? 소프트웨어 개발과 프로젝트 매니저로 20년 넘는 경력을 가진 톰 디마르코는 그의 저서『SLACK』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100% 가동률을 목표로 하는 조직은 역설적으로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직원이 1인분의 업무량을 갖고 있다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을 때 시스템이 마비되거나 동료들의 과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직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남은 자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돌봄 종사자는, 자신의 업무 공백으로 인해 동료뿐만 아니라 돌봄의 대상 또한 희생될 처지에 놓인다. 「경상남도 사회서비스 종사자 처우개선 연구Ⅱ-돌봄노동자를 중심으로」(2020)3를 살펴보면,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기관 이용자들에 대한 서비스 공백에 대한 우려’(28.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보육교사 역시 “보육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15일간의 유급휴가를 여름과 방학기간에 몰아 쓸 수 있을 뿐 개인의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운 구조”가 견고하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이러한 노동 환경에서 노동자는 아프면 안 된다. 상상해 보자.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온몸이 아프다. 출근은커녕 몸도 일으키기 어렵다. 당신은 직장 상사에게 뭐라고 말할 것인가? “안녕하세요. 부장님. 제가 몸이 너무 아파서요. 죄송하지만 오늘 출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다. 아픈 것은 잘못이 된다.
질병이나 부상이 있는 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비단 노동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쉽게 아픈 몸을 지워버린다. 건강하고 효율적인 몸만을 기본값으로 여기며, 그렇지 않을 때는 개인 관리의 부족으로 떠넘긴다. 건강은 선이고, 질병이나 부상은 악이 된다. 그러나, 질병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노동 현장이 질병을 포용하기 위해선 사회가 먼저 질병이 있는 몸도 시민으로 인정하고 사회 정책과 제도를 수립하여야 한다. 그리하였을 때, 노동 현장에서도 안 아픈 상태로 복귀할 때까지만 유예해 주는 방식이 아닌 아픈 몸을 가친 채로도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B형 독감 판정 후에, 20대 교사가 부담 없이 원장과 동료에게 “독감에 걸렸습니다. 병가를 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원장과 동료는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고 오세요”는 진심 어린 걱정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지 않기를 소망한다.
1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 출범... 상병수당 제도화 촉구”, <오마이뉴스>, 2025.09.10.,
2 이주연, 「전라북도 보육교사 근로환경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 정책연구 2018-11, 전북연구원, 2018, 여성정책연구소, 158쪽
3 임채영, 염동문, 박해긍, 「경상남도 사회서비스 종사자 처우개선 연구∥-돌봄노동자 중심으로」, 연구보고서 2020-2, 경상남도사회서비스원,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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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우리는 공익을 말할 때 보통 거창한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름이 붙은 운동, 조직화한 캠페인, 많은 사람이 모인 현장 혹은 뉴스에 등장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일 수도 있겠네요. 개인보다는 공익을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특별하거나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내 코가 석 자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내 마음 밖으로 새어 나오는 순간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춘삼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뉴스레터 <공익ON>은 군포의 한 동네의 작은 빵집에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이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사람은 고재영 대표인데요. 구호보다는 루틴으로, 특별한 자격보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일상의 공익을 실천하는 분입니다. 여러분도 <공익ON> 3월호의 주인공인 고재영빵집의 고재영 대표님을 함께 만나보시면서 함께 일상 속 공익활동의 비밀을 파헤쳐 보지 않으시겠어요?

<공익ON> 3월호의 주인공인 고재영빵집의 고재영 대표님
군포시 오금동 퇴계 1차 아파트 상가 1층에 위치한 고재영 빵집은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빵을 사랑하는 마음과 빵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고재영 대표님은 늘 간결하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군포에서 빵집을 하는 고재영입니다’. 이 담백한 말 안에는 어떠한 과장도 없죠. 하지만 고재영 대표가 매일 문을 열고, 반죽을 치대고 오븐을 달구는 그 공간에서는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늘 변함없이 빵을 구워내고 있는 고재영 대표님
고재영 대표가 꾸준히 하고 있는 공익활동 중 하나는 빵을 기부하는 것입니다. 매화종합사회복지관, 늘푸른 노인복지관, 군포시노인복지관, 1388공유냉장고, 군포시노인요양센터, 늘푸른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비롯한 여러 곳에 빵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식단에 늘 유의해야 하는 당뇨 환자를 위한 현미미강건강 빵을 만들기도 했죠. 고재영 대표는 자신이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해 나갔습니다. 고재영 대표에게 빵은 추억이자, 현실이고 동시에 사랑이었습니다. 그런 빵을 나누면서 자신의 따뜻했던 추억과 사랑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빵으로 추억과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헌혈증을 모아서 기부하는 활동에도 동참했습니다. 현재는 민원이 제기되어 잠시 쉬어가고 있지만, 시민들이 헌혈증을 가지고 가면 식빵과 바꾸어 주고 필요시 위급 환자에게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약 3,000여 장이 기부되었답니다. 이 역시 고재영 대표의 빵에서 시작된 활동입니다. 고재영 대표는 이 활동을 통해서 여러 공익활동에 대한 참여를 권유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다시 참여하게 된 활동이 바로 ‘미리내 가게 운동’입니다. 그는 군포에서 1호로 미리내 가게에 참여한 사람이기도 한데요. 미리내 가게 운동은 전국 약 600여개의 점포가 참여하고 있는 공익활동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탈리아의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 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은 다음 사람을 위해 카페에 간 사람이 미리 돈을 내주던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고재영빵집 역시 누군가 뒷사람을 위해 빵을 더 계산하고 가면 빵조차 사 먹기 어려운 이들이 빵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고재영 대표의 공익활동은 현재까지도 빵에서 시작해서 점차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공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활동에는 중요한 공익활동의 전환이 숨어 있는데요. ‘도와주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을 구분하기 보다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도움이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다는 점입니다. 손님은 자신의 선의를 남기고, 가게는 관리를 하면서 이어주고 이를 통해 누군가는 도움을 받죠. 그렇게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이 다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하면서, 누군가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도움의 선순환 속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재영빵집은 거창하지 않은 단순한 방식으로 공익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업을 이어 나가면서도 주변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으려는 노력이 지금의 고재영빵집과 고재영 대표를 만든 것이죠.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하려고 하지 마시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로 다른 이들을 도울 방법을 떠올려 보는 것이 일상 속 공익의 첫걸음이 아닐까요?
고재영 대표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는 늘 자신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소감보다는 활동에 참여해 준 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줍니다. 가령, 이사 갔던 주민이 다시 자신의 빵집을 찾아와 크리스마스 때 저소득층을 위해 케이크값을 미리 내고 가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는 이야기나, 멀리서 빵을 배달하는 손님이 주문한 금액보다 더 결제하면서 미리내 가게 운동에 동참해 주었다는 이야기는 모두 그의 남다른 ‘자랑’입니다. 가수를 하는 분들은 노래교실 무료 이용권을 놓고 가기도 한다는 그의 말에는 일상처럼 공익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향한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으니 말입니다.

군포시자원봉사센터 홍보 기자단으로 활동하는 고재영 대표님
고재영 대표님의 공익 실천은 빵을 매개로 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을 향합니다. 군포시자원봉사센터 홍보 기자단, 군포시직업체험처, 교육부인증진로체험기관, 군포시 1388 청소년지원단으로 활동하고 군포시 100인 위원회의 지역경제 소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지역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이유로 고재영 대표님이 유독 관심을 두고 하는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지원입니다.


(위, 아래) 청소년들에게 재능 기부를 실천하고 있는 고재영 대표님
고재영빵집은 교육기부 진로체험 인증기관이 되어 파티시에(patissier)라는 직업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재영 대표님은 경기도교육청에서 진행한 휴먼 라이브러리 활동에 참여하면서 빵집과 나눔에 대해서 학교마다 찾아다니면서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면서 인생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한 청소년기에 더 많은 학생이 자신의 직업과 기부, 공익활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그의 값진 노력입니다. 특히 요즘 청소년기에 있는 학생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공동체와 단체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이 사라지기도 했는데요.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인 만큼 그들이 일상 속 공익활동에 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우리가 모두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익활동이지만, 모두의 참여와 관심으로 이어지고 완성된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는 것이 오래 행복한 마음으로 공익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의 비밀이 아닐까요?
일상 속 공익활동의 마지막 비밀. “공익활동은 원래 우리 삶의 일부였습니다.”
사실 고재영 대표의 빵집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후기가 여럿 나오는 군포 맛집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매장에 들어서면 여러 표창장과 활동 인증서들이 놓여 있죠. 방송 출연도 여러 번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빵집에 더 많은 표창장과 상이 놓여도, 맛집을 인증하는 후기들이 계속 쌓여가도 그가 공익활동에 참여하면서 떠올리는 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김제의 시골 마을입니다.
고재영 대표님은 전라북도 김제 시골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기억은 ‘무엇이든 함께 했던 기억’이라고 하는데요. 어려운 일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서던 사람들, 밥을 안 먹은 사람이 있으면 들어와서 한술 뜨고 가라고 권했던 목소리가 고재영 대표를 자연스럽게 나눔의 길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김제농업고(현 김제농생명마이스터고)에서 식품가공과를 나와 제빵사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여러 제과점에서 일을 배웠죠.
이후 먼저 군포시에 자리 잡고 있던 처형을 따라 군포에 자리를 잡으며 고재영빵집을 열기까지 아주 바쁜 삶을 이어왔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먹고 살길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그렇듯,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죠. 군포시로 오기 전에도 고재영 대표님은 굿네이버스에 기부하는 등 일상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에서 무엇인가 빠진 것만 같은, 부족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나누고 함께 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은 자신 안의 마음에 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고재영빵집을 열면서는 화려한 결과보다는 지속성과 선순환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군포소상공인 소셜클럽 일원으로서 코로나-19로 고생하는 보건소에 물품을 기부한 모습

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 중인 고재영 대표님
그 옛날 우리가 자연스럽게 나누었던 따뜻한 정의 회복을 꿈꾸며, 고재영빵집은 오늘도 매일 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열고 닫습니다. 공익활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이 아닐까 합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큰 이벤트를 만드는 것도 물론 나름의 역할이 있지만 오래 이어지는 작은 실천을 유도하는 것이 공익의 확산에 있어서는 필수적이죠. 고재영 대표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익활동의 방향이 ‘우리가 잊었던 것을 기억해 내는 것’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바쁜 일상에 존재해 왔지만, 우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마음을 되돌아보는 것이 바로 일상 속의 공익을 실천하는 마지막 비밀이 아닐까요?
<공익ON> 3월호의 주인공인 고재영빵집의 고재영 대표님을 만나보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는 공익활동에 임하는 내 마음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심의 크기보다는 지속의 길이가 중요하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실천하고 계시는 고재영 대표님을 보면서 공익활동의 본질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게 되었답니다. 흔한 격언이기는 하지만, 성공의 비결은 바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죠. 빵이 발효를 거쳐야 비로소 제맛을 내듯, 실천도 그만큼의 시간과 지속이 필요한 것이죠.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재영 대표님의 빵집과 꼭 똑같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의 공간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일상은 과거의 어떤 따뜻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될까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질문을 하고 싶은 날입니다. 여러분의 일상 속 공익도 따뜻한 봄에 태양을 만난 새싹처럼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언제나 한결 같이 일상 속 공익을 실천하는 고재영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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