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끔 힘이 드는 날이면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 모래바람을 휘몰아치던, 구
름사다리 너머로 세상을 내려다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동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네모난 철봉과 미끄럼틀, 모
래 대신 깔린 고무매트, CCTV 아래 놓인 그네... 어쩌면 이건 ‘아이들을 위한 공
간’이 아니라 ‘어른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만든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곤 했습
니다. 사라진 놀이권, 아이들은 도시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사진 1 (출처 : 에디터 직접촬영)
“뛰면 혼나는 세상, 누구를 위한 놀이터인가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우리나라의 관리대상 놀이터는 총 83,810
개입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53.7%가 주택단지 내에 있으며, 이는 많은 놀이터
가 해당 단지 주민만 이용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도시공원 내 놀이터는
전체의 14.5%로, 아파트 외 거주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출처 : 행정안전부. (2025). 『전국 어린이놀이시설 안
전관리시스템(2024년 4월 기준)』. https://www.cpf.go.kr/cpf/ko/nori/0001/index.jsp)
공원은 또 다른 인간의 동반자인 반려견 산책로로 바뀌고, 방과 후 시간은 학원으
로 향하는 아이들의 스케줄에 밀려 놀이 시간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출생으로
아이 수가 줄어들었다는 말은 자주 들리지만, 그렇다고 놀이공간까지 줄어드는 것
이 당연한 일일까요?

사진 2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놀이가 사라진 아이들, 성장에도 틈이 생긴다
놀이는 단순한 시간이 아닌 감정 조절, 사회성, 창의성을 키우는 아이들의 필수
활동입니다. WHO와 유니세프는 놀이를 아동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유
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에서도 “모든 아동은 적절하고 균등하게 여가와 놀이를 누
릴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놀이를 ‘사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초등 입학
전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방과 후 시간을 채우는 학원 스케줄, 그리고 놀이를 위
한 공간은 점점 유료화되고 있습니다. 더하여, 관리 주체가 불분명한 놀이터는 민원이나 안전의 이유로 통제되는 놀이시
설도 많습니다. 미끄럼틀에서 넘어졌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그 시설을 없애는 경우
나 공원에서 ‘아이들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놀이터를 폐쇄한 사례도 흔치 않
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안전’을 이유로 아이들의 모험과 자율은 통제되고, 놀이
터는 규칙 속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아이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놀이를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기
쁨과 행복 같은 감정을 체험합니다. 이 자유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만큼, 이를 박
탈당하면 무력감에 빠지고 맙니다.” 라고 말합니다. (출처: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61006051800805)
놀이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놀이가 단지 여유가 아닌 권리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
다.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이 ‘놀이의 자유’입니다. 사라진 놀이권을 되찾기 위한 노력들 – 국내외 사례로 본 실천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실제 지역사회에서는 어떤 실천이 이루어
지고 있을까요? 제도적 한계를 넘어 아이들의 놀이권을 회복하고자 했던 국내외
의 시도들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살펴봅시다.
[경기도] 놀이활동가 파견사업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은 2022년부터 경기도 내 아동 돌봄시설과 놀이공간에 놀이활
동가를 파견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 사업은 전문 놀이활동가가 각 기
관에 상주하거나 정기적으로 방문해 아동의 발달 단계에 맞는 놀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회복하고
놀이를 통해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었으며, 기관 내 돌봄
교사의 부담을 줄이고 놀이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위축된 아동의 놀이 경험을 회복하는 데 기여한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
았습니다. (출처: 경기도여성가족재단, 2022)

사진 3 (출처 : 경기도여성가족재단 홈페이지)
[전북 완주군] 이동형 플레이버스
완주군은 교통이 불편하거나 놀이터가 없는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이동형 플레이
버스’를 운영하였습니다. 전문 놀이강사가 장착된 차량을 타고 마을을 순회하며
놀이 프로그램을 제공해 아이들이 매주 규칙적인 놀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
습니다. 이 사업은 놀이권 사각지대 해소와 더불어 지역 공동체 회복에도 기여했
습니다. (출처: 완주군청 아동청소년과, 2022)
[독일 프라이부르크] 자연 그대로의 놀이터 조성
독일 프라이부르크시는 기존의 인공적인 시설물 대신 자연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자연 놀이터’를 조성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흙, 나무, 돌 등을 활용해 아이들이 자
유롭게 탐색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위험 요소도 최소
화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 통제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부모들의 높
은 만족도와 지역 아동의 정서 안정에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
니다. (출처: Freiburg City Council, 2021)

사진 4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놀이터는 단지 미끄럼틀이 아닙니다. 그곳은 아이들이 사회를 배우고 자신을 시험
해보는 실험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공간을 줄이고, 통제하고 있습니다. 아이
들이 다시 놀이터로 돌아오게 하려면, 단지 공간만이 아닌 ‘놀이할 권리’ 자체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놀이권은 단순한 문화가 아닌, 아이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자 사회가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어른들의 작은 변화가 아이들의 큰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놀이터 옆 벤치에 앉기
보다, 아이 옆에서 한 번쯤 그네를 밀어주는 사회, 그게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첫걸음 아닐까요?
[참고자료]
경기도여성가족재단. (2024). 『아동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연구』. https://www.gwff.kr/storage/board/privacy/2024/11/11/PRIVACY_ATTACH_17313
04910929.pdf
경기데이터드림. (2024). 『어린이 놀이시설 현황』. https://data.gg.go.kr/portal/data/service/selectServicePage.do?infId=I6Y5W00421
151P0RPW7Y12521845&infSeq=1
행정안전부. (2025). 『전국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시스템(2024년 4월 기준)』. https://www.cpf.go.kr/cpf/ko/nori/0001/index.jsp
연합뉴스. (2016). 『놀이의 박탈이 만드는 감정의 상처』.
https://www.yna.co.kr/view/AKR201610060518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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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4
위협과 쉴 새 없는 청년 주거의 공백 뒤편에서, 굳건한 연대의 손길로 진실을 밝히고 찬란한 안전의 내일을 빚어내는 눈부신 발자취를 마주하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경기도 구석구석의 청년 삶을 보듬고 주거 안정을 지켜내려 애써온 수많은 청년들과 공익활동가들. 사회 경험이 부족한 2030세대를 겨냥한 무서운 전세 사기의 그늘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보금자리와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는 진짜 방패는 무엇인가”라는 뜨거운 질문 앞에 섰다. 방관과 무력감의 장막을 깨부수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2030 울리는 전세 사기, 어떻게 대응하나요?’ 기획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청년들이 겪는 주거 사기와 전세 불안은 개인이 계약을 잘못한 탓일 뿐, 사회나 공공이 함께 나서서 지킬 일이 아니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청년들과 주거 인권 활동가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전세 사기에 맞서며 꽃피우는 주거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주거 자치와 상호 존중적 방어 기제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평화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방관과 무력감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주거 안전 및 자발적 방어 생태계 구축’
전세 사기의 위협 앞에서 홀로 눈물 흘리거나 좌절하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공익활동가들이 동네 골목과 청년 커뮤니티의 마당에서부터 직접 계약의 위험을 진단하고 법적 대응 방안을 함께 나누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진정한 주거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부동산 대책의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골목 작은 모임방에 모여 앉아 청년들과 손을 잡고 안전한 계약 요령을 공부하며 서로의 불안을 다정히 어루만지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신뢰 감수성 및 연대 강화’
주거 위기와 계약 피해의 고통을 개인의 부주의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혼자서 거대한 사기 수법과 차가운 임대인의 벽과 마주하면 막막하고 두렵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대응 방법을 찾아보면 그 어떤 절망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안전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주거 네트워크’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청년 및 주거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주거권이 차별 없이 보장되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시민 자치 실현.
"모든 도민과 청년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도내 각지에서 모인 주거 인권 활동가들과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염원하는 수많은 청년 및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전세 사기의 실태를 냉철히 짚어보고,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청년도 주거 불안에 울지 않는 평화와 안전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사회초년생 시절 겪었던 전세 사기로 막막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았는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손을 잡고 '우리가 서로의 든든한 등대가 되어 주거 불안을 이겨내자'며 어깨를 토닥이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가슴 깊은 곳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경기도형 주거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청년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전세 계약 상식을 나누고 피해 대처법을 공유하는 '우리동네 주거 안전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청년들의 반짝이는 지혜를 모아 더 큰 방어의 망을 만드는 '경기 청년주거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불공정한 계약의 벽과 불안의 파고가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연대의 손길들이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시민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부동산 통계 데이터나 거창한 정부의 지원 정책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경기도의 좁은 방과 현장에서 이웃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우리의 정직한 연대와 다정한 정보 공유로 경기도의 찬란한 주거 안전 역사를 활짝 밝힌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청년들과 공익활동가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무력감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주거 안전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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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3공익활동 현장 취재 에디터로 선정되어 3년째 활동하는 입장에서 늘
고민하는 물음이 “공익이란 무엇일까?, 공익활동을 똑바로 하고 있는
가? ,공익활동의 가치를 잘 실천하고 있는가?, 공익활동 현장 취재 기
사를 읽는 독자에게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을까?” 였습니다. 고민했던 물음의 답을 찾고자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공익활동
사회적가치측정’ 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4월 9일, 16일, 23일(수요일), 총3회에 걸쳐 ‘공익활동의 의미와 사회
적 가치측정의 필요성’, ‘사회적 가치측정 방법의 이해’, ‘사회적 가치측
정실습’이라는 주요 교육 내용으로 오후 2부터 4시까지 센터 내 주고
받음실에서 김수진,한국사회가치평가 이사가 강의를 진행하였습니다.

4월 9일. 첫번째 강의, “공익활동의 의미와 사회적 가치측정의 필요성” 에서 먼저 공익활동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익활동은 서울특별시 시민공익활동의 촉진에 관한 조례 제2조 1항에
따르면 “시민공익활동”이란 시민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공익성이 있는
활동으로 영리 또는 친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활동을 말한다고 정의
하고 있습니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하는 활동으로 자격이 따로 필요하
지도 않고, 이웃과 사회 전체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결심했다
면 바로 공익활동가라는 뜻입니다. 공익성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므로 우선은 추구하는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 구성원 스스로가 명확히 정의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고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이 커지면 법제도적 일정한 자
격과 활동 상황에 따라 필요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공익활동 사회적가치측정의 개념”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나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과 변화를 체계적으로 평
가하고 수치화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활동 실적(산출)
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한 정도(결과와 영향)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익활동 사회적가치측정”이 왜 필요할까요?
김이사는 먼저 “단순히 ‘좋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만으로는 그 활동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그리고 아무
리 좋은 활동이어도 그 가치를 객관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평가절하
되거나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 “공익활동 사회적가치측정은 실질적
변화 확인, 성과의 가시화, 자원배분의 합리화, 신뢰성 강화, 정책적 활
용, 혁신 촉진 등 공익활동의 효과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필수
적인 과정이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익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적, 공
통의 가치 이해, 이해관계자 참여, 측정 가능한 지표, 실현 가능한 시
스템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공익활동 사회적가치측정의 핵심 개념으로 조직이 사회성과 실현
을 위해 어떤 전략과 기제를 마련하고, 이를 실제 사업과 운영에 어떻
게 반영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사회에 어떤 긍정적 변화가 일어났
는지를 평가합니다. 평가를 위한 측정을 위한 범위는 사회적 미션의 실현, 경제적 성과(고
용창출, 재정성과 등), 혁신 성과(새로운 해결방식 도입 등) 등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며, 측정 원칙에는 첫 번째로 측정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의 의견과 합의를 반영하여, 직접적 수혜자의 변화와 편익·비용을 파악
합니다. 두 번째로 조직 활동을 통해 나타난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결과(outcome)에 초점을 둡니다. 세 번째로 사회성과를
금전적 가치로 환산(SROI 등)하여 비교와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도
록 합니다. 네 번째로 조직의 미션과 핵심 사업을 통해 창출된 직접적
사회성과만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중요한 성과만을 포함합니다. 성과 측정 방식 및 원칙으로 정량적 지표는 고용창출 수, 매출액, 사회
서비스 제공 건수 등 수치로 측정 가능한 성과이며, 정성적 지표는 사
업의 사회적 가치, 조직의 민주성, 사회적 환원 노력 등 수치화가 어려
운 영향력은 서술형 또는 단계평가로 측정 합니다. 그리고 화폐가치
환산으로 사회성과를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 SROI(Social Return On
Investment) 등으로 측정합니다. 성과의 구분은 산출(output), 결과
(outcome), 영향(impact) 등으로 나누어 평가합니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조직은 사회적 가치 창출의 실질적 효과를 객관적
이고 체계적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4월 16일, 두 번째 강의는 ‘사회적 가치측정 방법의 이해’는 활동이 기
대하는 결과와 사회적 효과를 미리 설정해야 측정할 방향으로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가?", "누가 이 변화의 대상인가?", " 변화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이 변화는 어느 정도의 ‘가치’인
가?", "가치를 누구와,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사회적
가치 측정은 단순한 ‘성과 보고’가 아니라 공익 활동이 세상에 어떤 변
화를 만들었는가를 설명하는 도구이자, 다음 활동의 설계와 확산을 위
한 전략적 기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객관적으로 보여주
는 방법으로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가?”를 수치나 지표
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실제 사례로 보는 사회적 가치 측정. 독거노인을 위한 주거환경 개선 사업
사업 개요:지역 비영리단체가 독거노인 50가구에 대해
집수리와 주거 정비 활동을 실시
활동 내역:자원봉사자 120명 참여
전등 교체, 단열 시공, 안전손잡이 설치 등
성과 지표
지표 항목 수치 사회적 의미
개선된 가구 수 50가구 직접적인 생활환경 개선
낙상 사고 감소율 40% ↓ 심리적 안정, 정서적 건강 향상
거주만족도 83% →
96% 심리적 안정, 정서적 건강 향상
자원봉사자 재참여율
68%
지역사회 유대 강화, 공동체 신뢰도 증가
SROI (사회적 투자 수익률)
총 사업비 3,000만 원 → 사회적 가치 환산 약 1억 2천만 원
1:4의 사회적 투자 효과

4월 23일 세 번째 강의는 ‘사회적 가치측정실습’으로 작성된 내용 중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가장 핵심적인 편익을 측정하기
위해, 지표 1,2개를 설정해 측정 방식을 조사합니다. 이번 현장 취재에서 단순히 활동에 대한 근본개념의 인식보다는 "이
활동이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지원한 예산이 제대로 쓰였
을까?","이 일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라는 보다 구체적인
활동으로 수치와 증거로 보여줄 수 있는 의식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
실입니다. 막연히 “좋은 일”을 한다가 아니라 이제는 "착한 일을 어떻게, 얼마나
잘했는가"하는 “가치로 증명하는 일”이 진짜 좋은 일이라는 교육이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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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9“세월호참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날의 아픔만을 떠올리는 것이 아닙
니다.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안전이 기본이 되는 사회, 믿고 살아갈 수 있는 나
라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 기억 편지 낭독 중(세월호참사 생존 학생 장애진 씨)

매년 4월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다양한 자리를 만듭니다. 2025년 4월 16일은 세월호참사 이후 열한 번
째 맞는 4월 16일이었습니다. 16일 오후 3시부터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세월
호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렸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들, 노란 팔찌를 끼고 노란 리본 배지를
가슴에 단 많은 시민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또 참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고자 해양수산부 장관, 국회의장, 안산시장, 각 정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 및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의 참여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억식 행사는 304명 희생자에 대한 묵념, 각 분야를 대표하는 분들의 추도
사, 영상 상영과 뮤지컬 공연, 생존 학생의 편지 낭독, 4.16합창단의 합창 공
연으로 이어졌는데요. 현장에 참석한 3,000여 명의 시민들을 비롯해 언론사
의 생중계로 수많은 시민이 기억식을 지켜봤습니다. 사


기억식을 함께 준비한 4·16재단의 박승렬 이사장은 무대에 올라 “세월호참사
가 일어난 지 11년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사회적 참사와 자연 재
난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슬픔을 겪고 있습니다.”라며 “생명의 소중함과
일상의 안전이 최우선시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 세월호참사를
평생 잊지 않고 꼭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생명존중과 안
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4.16생명안전공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들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단원고 2학년 1반 故 김수진
학생의 아버지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참사 이후
11년이 지나도록 아직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
켜주지 못했는지 우리 가족들은 알고 있지 못합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어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
는 참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의무를 성실히 지키면서 국가를 믿고
의지하듯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임을
명심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추도사에 이어 상영된 <10년의 세월, 그리고 다시 첫 시작>이라는 제목의 영
상은 참가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는데요. 절대 변할 수 없는, 그래서 결국 그 무엇도 이겨내는
엄마의 약속
(중략)
10년 하고도 다시 1년 이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서야 아이들이 돌아올 보금자리의 첫 삽을 떴다. 아이들이 우리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면 그때는 진짜 봄이 올까?
진짜 진실이, 진짜 사죄가, 진짜 새 세상이 올까?
10년 하고도 다시 1년 오늘도 다시 약속한다. 꼭 밝히겠다고, 꼭 밝혀내고 말겠다고
- 영상 <10년의 세월, 그리고 다시 첫 시작> 중
참사 이후 10년이 넘도록 아이들이 왜 희생되어야만 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
고자, 나아가 안전사회를 만들고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지켜내고자 걸어
온 세월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반드시 약속을 지켜내
겠다는 엄마들의 굳건한 의지가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영상을 다 같이 본 후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공연 ‘나, 여기 있어요’가 펼쳐졌습니다. 지난해 10주기 기억식 무대에서 시
낭송을 했던, 그리고 세월호참사 10주기 프로젝트로 제작된 영화 <목화솜 피
※ 파일명 : (제출월일)제목_이름(활동명) / 사진파일 별도첨부
※ 경기천년바탕 Regular, 글자크기 13p(본문), 줄 간격 160%, 상하여백 15, 좌우여백 25, 머리말·꼬리말 15, 300단어 기준 양식에 벗어난
자료를 받았을 시 기준에 따라 수정하여 원고료 지급범위를 정함. ※ 1매에 27행을 기준으로 30%(8행)미만 작성된 매수는 지급매수로 산정하지 않으며 이미지는 홈페이지 업로드 크기와 별도로 센터
양식 기준 최대 10행으로 취급
는 날>의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박원상 배우가 열연을 펼쳐, 참가한 시
민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음 순서로 세월호참사 생존 학생인 장애진 씨가 무대에 올라 기억의 편지
글을 낭독했는데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
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고 언젠가는 괜찮아지리라 생각했지만, 봄이 올 때
마다 아직 마음 한편은 차가워지고 봄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두 번 다
시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그대들과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
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지만, 또 다른 비극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우
리가 아직 멈춰서 있는 것은 아닌가 자책도 하게 됩니다. 그날의 봄은 멈춰있
지만 언젠가는 영원히 따뜻한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며 진심을 눌
러쓴 편지글을 전했습니다. 기억식의 마지막 순서는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든 4.16
합창단의 공연이었습니다. 4.16합창단의 노래는 기억하고 행동하는 모든 시민
들의 마음을 울리는 빛나는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기억식이 진행되는 도중 오
후 4시 16분, 1분간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304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 사이렌이 안산시 전역에 울려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11주기를 맞은 4월 16일에는 오후 3시 안산에서 열린 기억식 뿐
만 아니라 오전 10시 30분에는 참사가 벌어진 해역에서 ’선상 추모식‘이, 오
전 11시에는 인천에 위치한 세월호일반인희생자 추모관 광장에서 ’일반인 희
생자 추모식‘이, 오후 4시 16분에는 서울에 위치한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시
민 기억식‘을 진행해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아카이브 자료
에디터 활동명 또봉 이 름 강진원
해시태그 #어린이 #놀이권 #보호권 제 출 일 2025년 4월 24일
제 목 놀이터엔 왜 아이가 없을까?
첨부파일명 (없을 경우 생략)
아직도 가끔 힘이 드는 날이면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 모래바람을 휘몰아치던, 구
름사다리 너머로 세상을 내려다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동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네모난 철봉과 미끄럼틀, 모
래 대신 깔린 고무매트, CCTV 아래 놓인 그네... 어쩌면 이건 ‘아이들을 위한 공
간’이 아니라 ‘어른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만든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곤 했습
니다. 사라진 놀이권, 아이들은 도시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사진 1 (출처 : 에디터 직접촬영)
“뛰면 혼나는 세상, 누구를 위한 놀이터인가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우리나라의 관리대상 놀이터는 총 83,810
개입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53.7%가 주택단지 내에 있으며, 이는 많은 놀이터
가 해당 단지 주민만 이용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도시공원 내 놀이터는
전체의 14.5%로, 아파트 외 거주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출처 : 행정안전부. (2025). 『전국 어린이놀이시설 안
전관리시스템(2024년 4월 기준)』. https://www.cpf.go.kr/cpf/ko/nori/0001/index.jsp)
공원은 또 다른 인간의 동반자인 반려견 산책로로 바뀌고, 방과 후 시간은 학원으
로 향하는 아이들의 스케줄에 밀려 놀이 시간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출생으로
아이 수가 줄어들었다는 말은 자주 들리지만, 그렇다고 놀이공간까지 줄어드는 것
이 당연한 일일까요?
사진 2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놀이가 사라진 아이들, 성장에도 틈이 생긴다
놀이는 단순한 시간이 아닌 감정 조절, 사회성, 창의성을 키우는 아이들의 필수
활동입니다. WHO와 유니세프는 놀이를 아동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유
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에서도 “모든 아동은 적절하고 균등하게 여가와 놀이를 누
릴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놀이를 ‘사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초등 입학
전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방과 후 시간을 채우는 학원 스케줄, 그리고 놀이를 위
한 공간은 점점 유료화되고 있습니다. 더하여, 관리 주체가 불분명한 놀이터는 민원이나 안전의 이유로 통제되는 놀이시
설도 많습니다. 미끄럼틀에서 넘어졌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그 시설을 없애는 경우
나 공원에서 ‘아이들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놀이터를 폐쇄한 사례도 흔치 않
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안전’을 이유로 아이들의 모험과 자율은 통제되고, 놀이
터는 규칙 속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아이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놀이를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기
쁨과 행복 같은 감정을 체험합니다. 이 자유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만큼, 이를 박
탈당하면 무력감에 빠지고 맙니다.” 라고 말합니다. (출처: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61006051800805)
놀이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놀이가 단지 여유가 아닌 권리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
다.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이 ‘놀이의 자유’입니다. 사라진 놀이권을 되찾기 위한 노력들 – 국내외 사례로 본 실천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실제 지역사회에서는 어떤 실천이 이루어
지고 있을까요? 제도적 한계를 넘어 아이들의 놀이권을 회복하고자 했던 국내외
의 시도들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살펴봅시다.
[경기도] 놀이활동가 파견사업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은 2022년부터 경기도 내 아동 돌봄시설과 놀이공간에 놀이활
동가를 파견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 사업은 전문 놀이활동가가 각 기
관에 상주하거나 정기적으로 방문해 아동의 발달 단계에 맞는 놀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회복하고
놀이를 통해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었으며, 기관 내 돌봄
교사의 부담을 줄이고 놀이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위축된 아동의 놀이 경험을 회복하는 데 기여한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
았습니다. (출처: 경기도여성가족재단, 2022)
사진 3 (출처 : 경기도여성가족재단 홈페이지)
[전북 완주군] 이동형 플레이버스
완주군은 교통이 불편하거나 놀이터가 없는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이동형 플레이
버스’를 운영하였습니다. 전문 놀이강사가 장착된 차량을 타고 마을을 순회하며
놀이 프로그램을 제공해 아이들이 매주 규칙적인 놀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
습니다. 이 사업은 놀이권 사각지대 해소와 더불어 지역 공동체 회복에도 기여했
습니다. (출처: 완주군청 아동청소년과, 2022)
[독일 프라이부르크] 자연 그대로의 놀이터 조성
독일 프라이부르크시는 기존의 인공적인 시설물 대신 자연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자연 놀이터’를 조성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흙, 나무, 돌 등을 활용해 아이들이 자
유롭게 탐색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위험 요소도 최소
화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 통제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부모들의 높
은 만족도와 지역 아동의 정서 안정에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
니다. (출처: Freiburg City Council, 2021)
사진 4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놀이터는 단지 미끄럼틀이 아닙니다. 그곳은 아이들이 사회를 배우고 자신을 시험
해보는 실험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공간을 줄이고, 통제하고 있습니다. 아이
들이 다시 놀이터로 돌아오게 하려면, 단지 공간만이 아닌 ‘놀이할 권리’ 자체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놀이권은 단순한 문화가 아닌, 아이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자 사회가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어른들의 작은 변화가 아이들의 큰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놀이터 옆 벤치에 앉기
보다, 아이 옆에서 한 번쯤 그네를 밀어주는 사회, 그게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첫걸음 아닐까요?
[참고자료]
경기도여성가족재단. (2024). 『아동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연구』. https://www.gwff.kr/storage/board/privacy/2024/11/11/PRIVACY_ATTACH_17313
04910929.pdf
경기데이터드림. (2024). 『어린이 놀이시설 현황』. https://data.gg.go.kr/portal/data/service/selectServicePage.do?infId=I6Y5W00421
151P0RPW7Y12521845&infSeq=1
행정안전부. (2025). 『전국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시스템(2024년 4월 기준)』. https://www.cpf.go.kr/cpf/ko/nori/0001/index.jsp
연합뉴스. (2016). 『놀이의 박탈이 만드는 감정의 상처』.
https://www.yna.co.kr/view/AKR201610060518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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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8● 슬립맥싱(Sleepmaxxing)이란 무엇인가
슬립맥싱(Sleepmaxxing)은 '수면(sleep)'과 '극대화(maximizing)'의 합성어로, 단순
히 오래 자는 것을 넘어서 '질 높은 수면'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수면을 소비하거나 낭비되는 시간이 아닌, 자기
관리와 웰빙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한 흐름입니다. 피트니스에서 몸을 가꾸
는 것처럼, 슬립맥싱은 뇌와 정신을 회복시키기 위한 수면을 전략적으로 ‘관리’하
는 방식입니다. 예전에는 '성공하려면 잠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 미덕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수
면 부족이 오히려 생산성과 창의력을 저해하고 정신 건강을 해치는 요소로 재조
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자기 효능감, 정신적 안정, 장기적 건
강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일종의 '자기
계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슬립맥싱은 단순히 ‘많이 자는 것’이 아니라, 수면 시간뿐 아니라 수면 환경, 수면
전 루틴, 수면 이후의 컨디션까지 포함한 ‘총체적 수면 관리’입니다. 이에 따라 스
마트워치, 수면 추적기, 고기능 매트리스 등 수면을 돕는 다양한 테크 제품도 함
께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슬립맥싱은 오늘날의 피로 사회 속에서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으며,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
운 트렌드라 할 수 있습니다. ● 수면의 생리학적 기능
수면은 단순히 피로를 푸는 생리적 반응을 넘어서,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복합
적이고 정교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우리 몸은 수면 중에도 끊임없이 작동하며, 낮
동안 쌓인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우선, 수면은 뇌를 청소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뇌에는 '글림프 시스템
(glymphatic system)'이라 불리는 림프계 유사 체계가 존재하며, 이는 우리가 자
는 동안 뇌척수액을 통해 독성 노폐물, 특히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베타 아밀로
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낮에는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수면을 통해서만 뇌 건강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면은 기억을 정리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
면은 크게 렘(REM) 수면과 비렘(NREM) 수면으로 구분되며, 각 단계마다 뇌는 서
로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비렘 수면 동안에는 하루 동안 입력된 사실
기반 정보가 정리되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고, 렘 수면에서는 감정적 경험이나 창
의적인 연결 고리들이 강화됩니다. 이는 학습 능력과 감정 조절 능력을 증진시키
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면역 체계 강화 또한 수면의 핵심적인 기능 중
하나입니다. 숙면을 취하면 면역세포의 분화와 재생이 활발히 이뤄지며, 염증을
억제하는 면역 반응도 활성화됩니다. 반대로 수면이 부족하면 감기나 독감 같은
바이러스 감염에 쉽게 노출되고, 백신 효과도 저하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존
재합니다. 마지막으로 수면은 신체 조직을 복원하고 회복시키는 시간입니다. 성장
호르몬은 대부분 깊은 수면 단계에서 분비되며, 이는 근육 회복, 세포 재생, 심지
어 상처 치유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격렬한 육체활동 후에는 양질의 수면
이 운동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상을 예방하는 데에도 기여합니다. 이처럼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뇌와 몸이 자신을 재정비하고 회복하며 미
래의 건강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생물학적 리셋'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면
이 부족하거나 질이 나쁘면 이러한 기능들이 왜곡되며, 장기적으로는 전신 건강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슬립맥싱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과
학적으로도 필연적인 흐름이라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 수면 부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수면 부족은 단순히 피곤함을 느끼는 수준을 넘어, 신체와 정신 전반에 걸쳐 다양
한 부정적인 영향을 유발하는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드러
나는 증상은 집중력과 사고력의 저하입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전두엽 기능이 저하
되어 주의력이 분산되고 반응 속도가 느려지며, 논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는 일상 업무의 효율을 낮추고, 운전이나 기계 조작과 같은
고위험 상황에서는 사고 발생률을 현저히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정서적 측면에서도 큰 타격을 입습니다. 수면 부족은 뇌의 편도체와 전전두
엽 간 연결을 약화시키며, 이는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야기합니다. 실제로 수면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사소한 자극에도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쉽게 분노하며, 우
울증과 불안장애 같은 정신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
속적인 수면 결핍은 감정적 안정성을 해치고 대인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
니다. 신체 건강 측면에서도 수면 부족은 만성 질환의 위험을 가중시킵니다. 충분한 수
면은 인슐린 민감도를 조절하고 호르몬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지만, 수면이
부족하면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고 렙틴과 그렐린 등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에
도 이상이 생겨 비만, 제2형 당뇨병, 고혈압 등의 질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이
외에도 수면 부족은 심혈관 질환, 뇌졸중, 대사 증후군 등 다양한 만성 질환과 직
결됩니다. 면역력 저하도 수면 부족이 가져오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숙면은 면역세
포의 활성화와 재생에 필수적인데, 수면이 부족하면 감기나 독감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쉽게 노출되고, 병에 걸렸을 때 회복 속도도 지연됩니다. 한 연구에 따르
면, 하루 6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들은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때 감염될 확
률이 4배 이상 높다는 결과도 존재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수면 부족은 뇌 신경
세포의 손상과 퇴화를 야기하여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을 높이는 요인
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심각한 만성 수면 부족 상태는 생존율 자체를 낮
출 수 있으며, 삶의 질 전반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수면 부족은 단순한
생활 습관 문제가 아니라, 인체 전반의 기능을 파괴하고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
질 수 있는 심각한 사회적·의학적 문제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 슬립맥싱 실천 방법
슬립맥싱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찍 자는 것’만으로는 부족합
니다. 수면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선 일상 속에서 전략적으로 수면
습관을 설계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실천 방
법은 일정한 수면 루틴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기
상하는 패턴을 만들면 생체 리듬이 안정화되며, 뇌가 자연스럽게 ‘수면 모드’로 전
환되는 시간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수면의 깊이도 향상됩니다. 전자기기 사용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스마트
폰, TV, 태블릿 등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는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수면을 방
해하므로, 최소한 수면 1시간 전에는 모든 전자기기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대신 독서나 스트레칭, 명상과 같은 이완 활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수
면 유도에 도움이 됩니다. 음식과 음료 조절도 슬립맥싱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카페인은 각성 효과가 강해 최소 4~6시간 전에는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습
니다. 알코올 역시 일시적으로 졸음을 유도할 수는 있지만 수면의 깊이를 얕게 만
들어 오히려 피로가 누적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수면 환경 역시 세심하
게 신경 써야 합니다. 조명이 어둡고 소음이 없는 공간, 약 18도 내외의 시원한
온도, 몸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매트리스와 침구는 수면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
인입니다. 실내 공기의 질도 수면에 영향을 미치므로 가습기나 공기청정기를 활용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수면의 질을 가시적으로 파악하고 개선하
기 위해 수면 추적 앱을 사용하는 것이 추천됩니다. 이러한 앱은 수면 시간, 깊
이, 뒤척임 등을 기록하고 분석해 사용자 맞춤형 수면 개선 방안을 제시해줍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수면 습관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나에게 맞는 최적의 수면 조
건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슬립맥싱은 결국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고 관리
하는 과정이며, 그 핵심은 '습관의 일관성'과 '환경의 조율'에 있다고 할 수 있습
니다. ● 슬립맥싱이 주는 사회적 함의
슬립맥싱은 단순히 개인의 건강 관리 방법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사회 전반에
걸쳐 의미 있는 변화를 촉진하는 문화적·산업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
선, 슬립맥싱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성과 중심의 근로 문화를 근본적으로 흔들
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더 오래,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생산성의 상징으로 여겨
졌다면, 이제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회복하고 집중하느냐'가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
고 있습니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시키
는 능동적인 자원으로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기업 문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선진적인 글로벌 기업들은 직원들의 정신
적·신체적 회복을 위한 복지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사내에 '수
면실'을 설치하거나, '파워낮잠'을 공식 근무시간에 포함시키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기적으로 직원들의 피로를 해소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조
직 전체의 창의력, 만족도, 이직률 감소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고 있습니다. 슬립맥싱 트렌드는 새로운 산업적 기회도 창출하고 있습니다. 고급 매트리스, 기
능성 침구, 스마트 수면 디바이스, 멜라토닌 보충제, ASMR 콘텐츠 등 수면 관련
상품의 시장 규모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으며, ‘수면 테크(Sleep Tech)’는 헬스테크
산업의 핵심 분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수면 전문 컨설턴트나 수면 코
치라는 새로운 직업군도 생겨나고 있어, 수면이 단순한 생리적 현상을 넘어 하나
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슬립맥싱은 단지
잠을 잘 자는 법을 넘어서, 일과 삶의 균형, 조직 운영의 패러다임, 소비자의 건
강 인식, 그리고 전 세계 산업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다층적인 트렌드입니다. 수면이 단순한 생존의 조건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자
원으로 인식되고 있는 시대. 슬립맥싱은 건강한 삶을 넘어, 건강한 사회를 위한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 조언
수면의 양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질’입니다. 하루 8시간을 잔다고 하더라도
수면의 질이 낮다면 피로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다음 날 더 무기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고 수면의 질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실천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이 중요합니다. 우선 낮잠은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20분 이내의 짧은 낮잠은 피로를 회복시키는
데 효과적이지만, 그 이상 자면 생체리듬이 교란되어 밤잠의 질을 해칠 수 있으므
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낮잠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지, 본 수면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운동도 수면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아침이나 이른 저녁
에 가볍게 땀을 흘리는 유산소 운동은 체온과 호르몬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
어 수면 유도를 돕습니다. 다만, 너무 늦은 시간에 격렬한 운동을 하면 오히려 각
성 상태가 유지되어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아로마테라피는 심신을 이완시키는 데 효과적입니다. 라벤더, 캐모마일, 일랑일랑
같은 향은 뇌파를 안정시키고 불안을 감소시켜 수면 유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
니다. 디퓨저나 아로마 오일을 이용해 수면 전에 방 안을 향으로 채우는 것도 좋
은 방법입니다. 자기 전 명상이나 일기 쓰기도 매우 유익한 습관입니다. 하루 동
안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리하고, 감사한 일들을 기록하는 ‘감사 일기’는 뇌를 긍정
적이고 안정된 상태로 전환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과정은 심리적 스트레스
를 해소하고 긴장을 완화시켜 수면에 보다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게 합니다. 음식 조절도 중요합니다. 취침 2시간 전에는 식사를 마무리해야 하며, 너무 기름
지거나 매운 음식은 위장에 부담을 주어 숙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대신 바나
나, 체리, 호두처럼 수면 유도에 도움을 주는 아미노산(트립토판 등)이나 멜라토닌
이 풍부한 식품을 간단히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처럼 수면의 질을 높이는 방
법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습관들에서 출발합니다. 꾸준한 실천이
쌓일수록 몸은 점점 더 깊고 안정된 수면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 맺음말
슬립맥싱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수면을 통해 삶을 재설계하는’ 깊이 있는 흐름
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잠을 줄이면 성공한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수면이야말로 창의력, 감정 안정, 생산성,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
는 데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슬립맥싱은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
고 돌보는 방식이며, 스스로의 삶을 보다 의식적으로 설계하는 실천이기도 합니
다. 오늘 밤, 내 침실의 조명은 적절한가, 잠들기 전 습관은 괜찮은가, 내가 정말
잘 자고 있는지를 점검해보시길 바랍니다. 아주 작은 변화 하나가 당신의 하루, 그리고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건강한 수면이 곧 건강한 삶의 출발점입니
다. ‘잘 자는 사람’이 결국 ‘잘 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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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8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경기도 구석구석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며 소통과 공감의 가치를 일구어온 수많은 농인들과 청인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 소리 없는 세상의 편견과 차가운 단절 속에서 “농 통역사로서 세상과 마음을 잇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깊은 울림의 질문 앞에 섰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깨부수고, 묵묵히 두 손을 모아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촘촘한 연대의 그물망을 엮어 온 ‘엄마의 메모가 들려주는 말 – 농 통역사 박수진의 이야기’의 눈부신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다.
"우리는 과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개인이나 그 가족이 알아서 감내해야 할 사적인 불편일 뿐, 사회나 공공이 함께 나서서 다리를 놓을 일이 아니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차가운 방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의 평범한 이웃들과 농 통역사들, 그리고 공익활동가들이 손을 맞잡으며 저마다의 진심으로 평화와 상생의 품을 엮어내는 ‘엄마의 메모가 건네는 온기를 통해 꽃피우는 수어 자치의 품’을 어떻게 활짝 열어갈 수 있을까?" 풀뿌리 수어 자치와 상호 존중적 소통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경기도 전역에 지속 가능한 상생과 평화의 숲을 깊이 일구어가는 감동의 여정을 깊이 조명한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허무는 ‘풀뿌리 소통 보장 및 자발적 수어 생태계 구축’
농인의 삶과 언어를 이질적이거나 특별한 배려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던 낡한 관행에서 벗어나, 경기도민과 공익활동가들이 동네 골목과 공공의 공간에서부터 직접 수어를 배우고 서로의 손짓에 귀를 기울이는 자발적 생태계 다지기.
"진정한 수어 자치의 완성은 거창한 복지 정책의 선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골목 작은 모임방에 모여 앉아 이웃들과 손을 잡고 엄마가 건네던 따스한 메모 속 진심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철학 실천.
고립을 넘어 온기를 잇는 ‘시민 참여형 언어 감수성 및 연대 강화’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겪는 단절과 오해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역 사회와 공익활동 현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혜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창출.
"혼자서 거대한 침묵의 벽과 마주하면 막막하고 외롭지만, 경기도 도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수어로 마음을 나누면 그 어떤 차별도 따스한 품으로 녹아내린다"라는 통찰.
경기도 31개 시·군 골목마저 평화와 소통의 그물망으로 잇는 ‘상생 수어 네트워크’
시·군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기도 내 농인 커뮤니티들과 도민들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고, 모든 이의 언어적 권리가 차별 없이 보장되는 상향식 민주주의와 시민 자치 실현.
"모든 도민과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공생의 무대" 완성.
도내 각지에서 모인 농 통역사들과 수어의 가치를 확산하려는 수많은 도민이 한자리에 모여 박수진 통역사의 깊은 이야기와 엄마의 메모가 담은 진심을 되새기고, 경기도를 진정한 '어떤 이의 목소리도 배제되지 않는 평화와 소통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았던 현장은 깊은 공감과 함께 뜨거운 연대의 온기로 가득 채웠다.
참가자들의 진솔한 고백 및 상생 나눔 세션: "세상에는 소리 외에도 마음을 울리는 수많은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이웃들과 손을 잡고 '서로의 손끝과 눈빛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자'며 온정을 나누니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따뜻한 온기가 내 가슴 깊은 곳에서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참가자들의 뭉클한 순간들.
경기도형 소통 자치 도시 확산을 위한 유쾌한 브레인스토밍: "동네마다 주민들과 농인들이 함께 모여 수어를 배우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우리동네 손빛 사랑방'을 상설화하자", "시민들의 따뜻한 손길을 모아 더 큰 소통의 망을 만드는 '경기 수어연대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꾸리자"며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반짝이는 눈빛들.
응원과 다짐의 피날레: "비록 우리가 마주한 침묵의 파고와 편견의 벽이 때로는 높고 매섭다 할지라도, 경기도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손끝의 온기들이 모여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란다"며 환한 미소와 박수로 마무리된 연대.
세상을 바꾸고 진정한 시민 자치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위대한 힘은 차가운 복지 통계 지표나 거창한 정부의 정책 보고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경기도의 좁은 만남의 장소와 골목길에서 이웃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당신의 손끝을 우리의 온기로 읽어내며 평화롭고 다정한 내일을 함께 열어간다"며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평범한 시민들과 농 통역사들의 정직한 땀방울과 다정한 연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방관과 외면의 장막을 걷어내고 경기도 구석구석에 평화와 소통의 숲을 영원히 일구어가는 공익활동가들과 도민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경기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이 지혜롭고 푸른 온기들이, 모든 도민이 소외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기도의 내일을 활짝 열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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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7최근 인공지능(AI)은 과제물 작성, 디자인, 음악, 글쓰기 등 다양한 창작 활동 영
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생들의 리포트 작성이나 기업의 마케팅
콘텐츠 제작, 예술 창작 분야까지 그 영향력이 확장되면서, AI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이 아닌 창작 주체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저작권 체계가
전제로 했던 ‘인간 중심 창작’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법적·윤리적 논쟁을 야기
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창작이라는 행위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간주되었으나, 이제는 AI
가 수백만 개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자동 생성함으로써 인간의
창작을 보조하거나 심지어 대체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단지 기술적 진보에 그치지
않고, 저작물의 정의, 창작자의 범위, 저작권의 귀속과 같은 근본적인 법적 개념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법적 보호 여부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창작자와 플랫폼, 이용자 간의 권리 충돌과 법적 분쟁이 계속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AI 창작물과 저작권의 관계를 재정립하
는 논의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 AI란?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모방하거나 이를 능가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기반 기술입니다. 이 중에서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한 후, 인간의 개입 없이
도 새로운 이미지, 텍스트, 음악, 영상 등을 자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텍스트 생성 기능을 제공하는 OpenAI의 ChatGPT,
이미지 생성 도구인 Midjourney, 그리고 음악 제작 플랫폼 Suno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성형 AI는 기존의 단순 자동화 기술을 넘어서 창작의 영역까지 진입함
으로써, 기존의 창작 개념과 저작권 체계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
다. ● AI 창작물의 저작권 인정 여부
AI 창작물이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오늘날 AI 시대의 저작권법
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입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따른
법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의 본질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저작권법은 ‘인간의 창작행위’를 보호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AI가 스스로 생성한 이미지, 텍스트, 음악 등 결과물이 아무리 창의적이고 독창적
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창작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현행 법체계 하에서는 이
를 ‘저작물’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제 창작 과정에서는 대부분 인간이
AI에게 특정한 지시를 내리거나, 생성된 결과물 중 일부를 선택하고 편집·수정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처럼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저작권 보호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단순히 “고양이 사진을 그려줘”라는 명령을 AI에게 내린 경
우, 창작에 기여한 부분이 거의 없으므로 인간의 창작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
나 반대로 사용자가 수십 개의 프롬프트를 실험하고, 그중에서 창의성이 드러나는
결과물을 선별해 세부적으로 편집하거나 다른 이미지와 조합하여 최종 작품을 완
성했다면, 이러한 행위는 창작성 있는 창작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는 사용자가 AI 도구를 마치 디자인 소프트웨어처럼 활용해 이미지의 구조, 색상, 구도, 스타일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
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평가할 수 있
는 기준이 필요하며, 이는 저작권 인정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됩니
다. 또한 AI가 생성한 창작물의 저작권 귀속 주체에 대한 문제도 중요한 논점입니
다. AI 자체는 법적 인격체가 아니므로, 창작물의 권리를 AI에게 귀속시킬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 권리를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
으며, 크게 세 가지 입장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AI를 활용한 이용자에게 저작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인간이 AI를 도구로 활용해 창작에 실질적으로
기여했음을 강조하는 시각입니다. 둘째는 AI 개발자나 플랫폼 운영자에게 귀속해
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생성된 결과물이 AI의 설계 구조와 알고리즘에 따라 달라
지기 때문에,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 자에게 일정한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는 논리
입니다. 셋째는 AI가 완전 자율적으로 생성한 결과물은 무저작물로 간주하고 공공
의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창작물 이용의 자유
와 기술의 개방성을 중시하는 주장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저작권청(US Copyright Office)은 2023년 기준,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생성한 작품에 대해 저작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생성 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했음을
입증할 수 있다면, 예외적으로 해당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입
장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창작 기여도에 따라 AI 결과물에 대한 권
리 귀속을 유연하게 판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이와 관련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나 판례가 없는 상황이며, 이에 따라 법 해석의
통일성과 입법적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AI 기술
발전 속도에 발맞추어 인간의 창작 개입 범위를 어떻게 정의할지, 그 경계를 법적
으로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필요
합니다. ● 생성형 AI 플랫폼의 법적 책임
생성형 AI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매우 강력한 창작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
니다. 사용자는 간단한 명령어 몇 줄만으로 문학 작품, 이미지, 음악, 영상 등을
손쉽게 생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능은 콘텐츠 제작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있
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생성형 AI 플랫폼은 저작권 침해, 명예훼손, 허위정보 생
성 등의 잠재적인 법적 위험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플랫폼의 책임
범위와 한계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플랫폼 사업자는 자신이 직접 창작에 관여하지 않으며, 단지 기술적
도구를 제공하는 중립적인 입장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이용자가 입력한 프롬
프트와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플랫폼이 직접적인 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과거 인터넷 포털이나 동영상 공유
사이트처럼 플랫폼의 기술적 중립성을 인정받는 논리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반대 입장에서는 플랫폼이 생성형 AI의 작동 방식을 설계하고, 학습 데이
터를 선택하며, 결과물의 특성과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저작권 침해나 명예훼손과 같은 문제가 반
복적으로 발생할 경우, 플랫폼이 이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나 정책적 장치
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방조’ 혹은 ‘과실’에 따른 법적 책임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2023년 게티이미지(Getty Images)가 생성형 AI
기업 스태빌리티 AI(Stability AI)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있습니다. 게티이미지
는 자사의 저작권 이미지 수천만 장이 Stability AI의 학습 데이터로 무단 사용되
었다며, 이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AI가 생성한 이미지
에 게티이미지의 워터마크가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도 포착되면서, AI가 원본 저작
물을 단순히 학습하는 수준을 넘어 ‘재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
다. 이 사건은 AI 플랫폼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생성물이 제3자의 권리를 침해
할 경우, 플랫폼에도 일정한 법적 책임이 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판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미국에서 코미디 작가 사라 실버먼(Sarah Silverman)을 포함
한 작가들이 메타(Meta)와 오픈AI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
신의 책과 텍스트가 사전 동의 없이 AI 학습에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며, AI 플랫
폼이 타인의 저작물을 학습한 결과를 이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간접적인 침해 책
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한 ‘도구 제공자’로서의 책임을 넘어서, AI 플랫폼이 결과물의 법적 문제에 대해 일정 수준의 감시 및 통제 의무를 지닌
다는 주장으로 해석됩니다. 이처럼 생성형 AI 플랫폼의 법적 책임을 둘러싼 논의는 단순히 기술적 기능의
제공을 넘어, AI의 작동 방식과 결과물에 대한 사회적 책임, 나아가 윤리적 기준
수립과도 연결됩니다. 앞으로 플랫폼 사업자는 저작권 침해나 권리 침해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강화해야 하며, 이용자가 생성한 콘텐츠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공, 신고 시스템 운영, 침해 시 신속한 삭제 조치 등을 통해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입법기관은 플랫폼의 책임 범위
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기술 발전과 권리 보호의 균형을 도모해야 합니다. ● 향후 과제와 정책적 제언
AI의 발전과 함께 창작 환경은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창작 활동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는 저작권 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향후 저작
권법은 기술의 발전을 수용하면서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균형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째, AI 창작물에 대한 창작성 기준을 법적으로 명확히 정립해야 합니다. 현재
는 인간의 개입 정도에 따라 저작권 인정 여부를 판단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
이 없어 실무에서 혼란이 큽니다. 프롬프트 제공, 결과물 선택, 편집 및 조합 등
의 창작 행위 중 어떤 수준 이상이 되어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명확
히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AI 학습 데이터의 수집과 이용에 대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합니
다. AI가 무단으로 타인의 저작물을 학습해 생성한 콘텐츠가 원 저작물과 유사하
거나 이를 침해할 경우, 이는 심각한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
개발자는 학습 데이터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저작자의 동의를 받거나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이용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원 저작자에게 일정한 보상이나 수익 배
분이 가능한 시스템 도입도 고려해야 합니다. 셋째, AI 플랫폼에 대한 책임 기준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성형 AI 플
랫폼이 생성한 결과물이 법적 문제를 일으킬 경우, 단순한 도구 제공자라는 입장
에서 벗어나 일정 수준의 주의 의무를 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신고 시스
템 강화, 사전 필터링 기술 도입, 침해 콘텐츠에 대한 신속한 삭제 조치 등의 기
술적·정책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넷째, 저작권 보호와 기술 혁신 사이의 균형을 고려한 입법이 필요합니다. 무분별
한 규제는 AI 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으며, 반대로 무제한적 자유는 창작자
의 권리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정 범위 내에서의 공정 이용을 인정
하면서도, 창작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 설계가 요구
됩니다. 마지막으로, 국제적 기준 마련과 협력이 중요합니다. AI는 국경을 초월하여 작동
하기 때문에, 개별 국가의 법제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습니다. 국제 저작권 협
약과 AI 기술 규범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수적입니
다. 한국 역시 이에 적극 참여하여, 국제적 기준 형성과 국내 입법 간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처럼 AI 시대의 저작권 문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창작과 소유, 공정
성과 책임, 법과 윤리의 복합적인 요소가 얽혀 있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제도의 정비와 함께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공론화, 교
육, 그리고 국제적 연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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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7지난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되었던 날, 저는 방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고 있
었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순간, “세상에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소셜 미디어가 우리가 가장 먼저 소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로 자리잡았음을 실감했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일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그 정보는 곧바로 사람
들을 행동으로 이끌어 냅니다.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는 단지 친구들과 소식을 나
누거나 재미있는 영상만을 공유하는 도구를 넘어, 사회적 변화의 핵심 도구로 자
리 잡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변천사 : 정보의 주도권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사회적 변화의 핵심 도구가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소셜 미
디어 사용 초기에 주로 친구들과의 연락, 자신의 일상적인 이야기나 사진을 올리
고, 소식을 나누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고,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공간으로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변화의 대표적 예로는 바로, 2016년부터 시작된 디지털 촛불 혁명(온라인에서 일
어난 한국의 촛불집회)입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서, 대규모 시민의 참여와 사회적 의견 형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고, 집회 현장 이미지를 공유하며 그 결과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광장에 모
여 정치적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그 당시, 사람들이 바쁜 일상을 살아내면서도 사회를 향한 나의 목
소리를 내는 유일한 장이자, 대중의 의사를 한데 모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저 역시도 알고리즘 속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이제
변화가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진 1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이와 비슷한 예로 #MeToo 운동도 있습니다. #MeToo 운동은 전 세계적인 소셜
미디어 캠페인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나누기 시작하
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나도 경험했다”는 의미로 해시태그를
달고, 성폭력과 성희롱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으며, 많은 사람들
이 용기를 얻어 서로의 목소리를 지지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전국 여성단체가 미투
운동에 힘입어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와 “우리는 너희들의 세계를 부술 것”이
라는 의미를 담은 ‘3.8 샤우팅 운동’으로 확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피
해자들의 이야기를 넘어서 사회적, 정치적인 변화의 핵심적인 촉매제 역할을 했습
니다.

사진 2 (출처 : 에디터 제작 / 챗GPT 활용 ai 생성 이미지)
‘좋아요’가 만든 참여의 물결
이런 사례들은 이제 그저 몇몇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제는 다양한 세대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20대
와 30대의 표현적 참여가 매우 활발해졌습니다.
‘좋아요’, ‘댓글’, ‘공유하기’라는 단순한 행동이 정치적 참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
습니다. 이는 시민사회와 사회적 변화에 대한 관심이 확장된 결과라고 생각합니
다. 예전에는 정부나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뉴스나 TV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곧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의 한 연구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는 민주주의 참여를 확대
시키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의 정치적 참여를 촉진하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
고 있다고합니다. 소셜 미디어는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젊은 세
대의 정치적 참여를 촉진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시태그는 어떻게 저항이 되었나
‘#MeToo’처럼 해시태그를 이용한 캠페인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혁신적인 방
법이 되었습니다. #BlackLivesMatter 운동은 2013년 미국에서 시작된 인종 차별
반대 운동으로, 당시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청년 트레이
본 마틴의 사건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소셜 미디어에서 “BlackLivesMatter”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빠르게 퍼
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인종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BlackLivesMatter
운동은 단순히 한 사건에 대한 반응을 넘어, 미국 사회 내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
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개선을 위한 활동으로 발전했습니다. 평화시위, 온
라인 캠페인, 거리 행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었으며, 결국 세계 각국에서
‘인종차별’과 ‘사회적 정의’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습니다. 운동이 확산되면서 미국 내에서 경찰의 폭력적인 행동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많은 이들이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동참하며 사회적 변
화를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이 운동은 단순히 트레이본 마틴 사건을 계기로 시작
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된 미국 사회 내 인종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
결하기 위한 운동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사진 3 (출처 :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이처럼 소셜 미디어는 단순한 의견 교환의 장을 넘어, 사회적 변화의 중심으로 떠
오르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소셜 미디어에서 시작된 캠페인이 인종차별과 경
찰 폭력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고,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거대한 흐
름을 만들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사람들이 ‘이건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높였을
때, 그 목소리가 실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첫걸음, 클릭
결국, 소셜 미디어는 시민으로서의 참여를 더욱 넓게 만들어주는 도구이자, 사회
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힘이 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디지털 촛불 혁명이
나 #MeToo와 같은 혁신적인 사회적 운동을 통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
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책임도 함께 커져가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는 ‘정보의 신뢰성’이라는 큰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요즘
은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너무 쉽게 퍼지기 때문에, 우리가 소셜 미디어에서
얻은 정보는 항상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참여
를 할 때는 반드시 ‘팩트체크’를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얻은 정보에 대해서는 그
맥락을 잘 이해하고, 여러 출처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분명히 필요
합니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이 시대에 누구나 소셜 미디어에서 중요한 목소리
를 낼 수 있지만, 그 정보가 진실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능력도 중요해졌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힘을 사회적 변화를 위한 긍정적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선, 정확한
정보와 사실을 기반으로 한 비판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적 변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성
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의 손끝에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
나 그 도구를 어떻게 쥐고, 어떻게 사용할지는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진실을 향한 감각을 잃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연대의 힘을 믿는 것. 그것이 우리가 ‘좋아요’를 누르는 이유이자, 이 시대의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 방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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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7엄마의 메모가 들려주는 말 – 농 통역사 박수진의 이야기
수어 통역사는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과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다
리가 된다. 한국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과, 한국어를 제1 언어
로 사용하는 청인 사이에서 그들은 단어와 표정, 침묵마저 언어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다리 위에 또 다른 다리가 존재한다면? 바로 ‘농(聾) 통역사’
이다. 공식 명칭은 ‘청각장애인 통역사’이지만, 현장에서는 농 통역사라
불린다. 이들은 청인 통역사조차 채 다 담아내지 못하는 농인의 삶과 언어, 그 미묘한 숨결을 대신 읽고, 대신 전한다. 농 통역사는 모든 농인을 위한 통역자이다. 왜냐하면 모든 농인이 수어를
완전하게 구사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글로 대화하고, 어떤 이
는 입 모양으로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오직 눈빛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농인의 언어는 하나로 묶을 수 없다. 유년기의 언어 환경, 교육, 가족, 그리
고 농 사회와의 연결 여부에 따라 언어의 형태도, 깊이도 달라진다. 그래서
농 통역사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는 소통의
안내자다. 그런 길을 걷는 한 사람, 박수진. 그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안산농아인협
회 간사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야기를 잃지 않은 한 명의 ‘나’다. 이
글은 장애에 대한 담론이 아니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고, 성장의 기록이
며, ‘엄마’라는 말이 품고 있는 깊이에 대한 증언이다.

(안산 농아인 협회 간사 박수진)
나는 농아인입니다. 나는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입술로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내 삶을 고요하다고 생
각하지만,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너무나도 분명한 울림을 들으며 살아왔습니
다. 그 울림은 언제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엄마’라
는 이름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한 번도 혼자라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
의 동생이었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빠의 손 편지, 아빠
의 눈물, 그리고 엄마의 수많은 메모. 말 대신 건네받은 글자들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스며들었고, 내 삶을 꿰뚫는 선이 되었습니다. 내가 두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말을 좀 늦게 배운다는 것 외에는 그저 귀
엽고 예쁜 막내딸이었어요. 어느 평범한 날, 나는 거실에서 놀고 있었고, 그
뒤에서 컵이 떨어졌습니다. 집 안은 순간 정적이 흘렀고, 모두가 놀란 눈으
로 나를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소리
를 듣지 못했던 것이죠. 그날 이후, 부모님은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받으셨고, 결국 의사의 입에
서 ‘청각장애’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 순간, 부모님은 눈앞이 깜깜했
다고 해요. 저는 변한 게 없었지만, 세상이 저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였습니다.

(두 살 박수진님)
내 고향은 부산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방파제에 갔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어요. 바다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손이 내 쪽으로 뻗어왔고, 나는 그 손을 잡았어요. 아버지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안으시고, 이마를
맞대며 웃으셨어요. 그리고 천천히 방파제 아래로 걸어 내려갔죠. 나는 아
빠 품에 있어도 넘실거리는 파도가, 얼굴에 날리는 바닷물이 무서웠어요. 그 순간, 나는 입을 열어 처음으로 소리를 냈어요. “아빠.”
아버지는 저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어
요.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앞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훗날 아버지
에게 물었어요. 그날, 방파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네가 살아갈 앞날이 너무 걱정돼서... 바보처럼 같이 죽으러 간 거였다. 그런데 네가 '아빠'라고 불러서... 정신이 번쩍 들었지.”
아버지는 어린 내게 세상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병원
에 보내 구화 훈련을 시켰습니다. 휴지를 입에 대고 불어 찢는 연습을 매일
같이했어요. 휴지가 찢어지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었죠. 나는 그 시간
이 괴로웠고, 슬펐어요. 무언가를 말해야 했지만, 무슨 뜻인지 몰랐고, 들리
지 않는 소리를 흉내 내야만 했어요. 입술은 움직였지만, 마음은 굳게 닫혔
어요.
* 구화인
모든 청각장애인이 농인은 아닙니다. 유년기에 청각장애가 생긴 사람 중
1보청기·인공와우 등 청각 보조장치를 사용하거나, 대화 상대방 입술
의 움직임을 읽어서 상대방의 발화를 파악하고
2발성 훈련을 하여 음성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구화 인이라고
합니다. 구화인은 청능훈련·구화법·발성 훈련 등을 통해 한국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나는 생모의 손을 잡고 서울로 이
사했어요. 이유는 몰랐지만, 오빠와 함께 낯선 도시에 전학을 가게 되었죠.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고, 수업 시간은 고통이었어요. 청인들과
함께하는 수업 시간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저는 바보처럼 앉아만 있어
야 했죠. 하지만 쉬는 시간에는 달랐어요.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재미있게
놀았죠. 쉬는 시간만 기다리는 무의미한 학교생활,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
요.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적어 내라는 것에요. 저는 장래 희망이라는 단어
의 뜻도 몰랐죠. 가만히 앉아 있는 저에게 선생님은 직접 저의 장래 희망을
적었어요. ‘왕자님과 결혼하기.’
저도 모르는 저의 장래 희망은 왕자님과 결혼이 되었죠. 한글도 모르는 저
는 멍청히 앉아서 쉬는 시간만을 기다리는 학교가 그래도 좋았어요. 나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뛰어놀고, 청소하고, 다시 조용히 앉아 있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공부는 못했지만, 청소는 누구
보다 잘했죠. 그래서일까요. 선생님은 나를 안쓰럽게 여기셨고, 엄마와 상의
해 나를 농아학교로 전학 보냈어요.

(서울 농아학교 운동장에서)
농아학교는 내게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나처럼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는 친구들이 이렇게 많다니! 처음으로 ‘같다’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기숙사 생활도 즐거웠어요. 밤늦도록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얼
굴을 마주 보며 수어로 수다를 떨었죠. 나도 평범한 아이였다는 것을 그곳
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주말이면 집으로 갔어요. 보통
오빠가 데리러 왔죠. 어느 날 오빠가 저에게 묻더군요. “수진아, 돈 있니?”
저는 많지 않지만, 학교에서 주는 용돈이 있었어요. 가끔 용돈을 모아서
오빠에게 주곤 했죠. 나에게 돈이 있냐고 물었던 그날, 오빠는 며칠을 굶은
상태였어요. 엄마의 방임으로 오빠는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았어요. 저는 엄
마에게 부산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떼를 썼어요.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면 보내주지 않겠죠. 그래서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꾀를 썼죠. 엄마는
마지못해 오빠와 저를 부산에 다녀오라고 허락을 해줬죠. 부산에서 만난 아빠는 우리를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그날 이후, 지루한
소송 끝에 오빠와 저는 아빠와 함께 살기로 했죠. 그때 제 나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어요. 그 당시 아빠는 대전에서 생활하고 있었어요. 대전 아빠 집
에는 처음 보는 언니가 있었어요. “이제부터 언니가 아니라 엄마라고 불러.”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닫았어요. 나에게는 이미 엄마가 있었으니까요. 그녀를 무시했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어요. 심지어 아빠에게 거짓말을 했어
요. “그 언니가 날 괴롭혀.”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리가 터졌어요. 너무나 무서웠
죠. 화장실에 숨어 울고 있는 저에게 언니는 달려왔어요. 회사에서 집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저를 구해주셨죠. 생리대 사용법부터 모든 것을 알려주신
언니는 그날부터 저에게 엄마가 되었답니다.

(중학생 박수진 가족 사진)
아이를 낳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어
요. “엄마는 왜, 아이를 낳지 않았어?”
엄마는 내 곁에 누워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너희들을 본 순간 알았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하나님이
이미 두 명이나 아이를 주셨는데, 또 아이를 낳을 필요가 있을까?”
제가 고등학생 무렵이었을까요? 버스 정류장에서 엄마와 두런두런 이야기
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때, 곁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나에게 물
었죠.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니?” 제가 어눌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외국
인인 줄 알았나 봐요? 엄마는 정색하며 아주머니에게 말했죠. “제 딸이에
요.” 저는 분명 엄마의 입술에서 나오는 ‘제 딸이에요’라는 말을 읽었어
요. 그때 저도 “우리 엄마예요.”라고 이야기해야 했는데 못 했어요. 죄송
해요. 하지만 엄마의 ‘제 딸이에요’라는 말은 저에게 힘이 되었어요. 내
가 엄마의 딸이구나. 그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나의 엄마 그
리고 서울 엄마는 생모가 되었어요. 엄마는 수많은 메모와 편지를 내게 남겨주셨습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냉장
고에 붙은 메모가 반겨주었고, 서랍 안에는 언제나 손 편지가 기다리고 있
었죠. 내가 힘들 때마다, 외로울 때마다, 엄마는 어떻게 알았는지 편지를 남
겼어요. 그 글들은 내가 버리지 못한 사랑의 기록입니다.




내가 생각이 짧아서 엄마가 수어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 저는 싫다고 했
죠. 엄마가 수어를 알면 간섭과 잔소리가 더 심해질까 봐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철이 없었어요. 엄마와 수어를 함께 배웠다면 지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요. 그리고 엄마, 나는 한 번도 엄마가 나를
낳지 않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엄마는 언제나 나의 엄마였고, 엄마
의 메모 한 장, 편지 한 줄이 나를 살아가게 했어요. 내가 흔들릴 때마다, 엄마의 글이 나를 붙잡아줬어요. 그러니까 저에게 미안해하지 말아요. 엄마,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20살 박수진 가족사진)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를 처음 만난 건 아마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그 시절
나는 엄마를 “언니”라고 불렀지요. 상봉국민학교에 다니던 나는 종종 아
빠 회사를 찾았고, 그때마다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시원한 물도 건
네주셨어요. 그런 순간들이 너무 좋아서, 나는 매번 엄마가 있는 그 공간을
향해 들떴던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어요. 그때의 나는 몰랐어요. 그 ‘언니’가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존재가 될 거라는 걸.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내가 아빠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그 ‘언니’가 어
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을 때, 어린 마음에는 그 변화가 너무 낯설고
어색했어요. 좋아했던 만큼 당황스러웠고, 그만큼 거리를 두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몰라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게
서 멀어지지 않았어요. 언제나 다정했고, 꾸준했고, 따뜻했어요. 나를 기다
려주고, 말없이 품어줬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자연스럽게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기억나요? 내가 흰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월경 자국이 묻은 줄도 모
르고 당황하며 집에 돌아왔던 날. 그날 엄마는 회사 일을 잠시 미뤄두고 나
를 향해 달려와 주셨어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다정하게, 월경에 관해 이
야기해 주고, 나를 부드럽게 감싸안아 줬어요. 처음 겪는 몸의 변화에 놀란
나에게 엄마는, 생리보다 더 큰 따뜻함을 가르쳐주셨죠.
감기로 앓아누웠을 때도, 몸살로 말 한마디 못 할 때도, 엄마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어요. 병원도 함께 가고, 약도 챙겨주고, 말없이 손을 잡아줬어요. 내가 엄마 껌딱지처럼 들러붙었던 시절, 엄마는 아마 많이 피곤했을 거예
요. 그런데도 엄마는 지친 내색 한번 없이 나를 안아줬어요. 그 모든 순간
에, 지금이라도 늦게나마 말하고 싶어요. 정말 고맙고, 정말 미안해요. 요즘 나는 다시 출근을 시작했어요. 아침마다 전쟁처럼 바쁜 하루가 시작
되고, 나도 정신없이 준비하면서 준혁이와 하나까지 챙겨야 하니 숨 돌릴
틈이 없어요.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문득 엄마가 떠올랐어요. 엄마도 예전에
출근 준비하며, 오빠와 나를 챙기고, 매일 아침 도시락까지 싸셨잖아요. 그
모든 걸 해내면서도 내 앞에서는 늘 웃어주셨던 엄마. 그때는 왜 몰랐을까
요. 왜 나만 힘들다고 여겼을까요. 요즘의 나는 많이 지쳐 있어요. 준혁이는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이고, 하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라 여전히 손이 많이 가요. 남편은 직장을 옮겨 정신
이 없고, 나는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며 모든 것이 낯설고 버겁기만 해요. 그런데 그런 순간마다, 이상하게 엄마가 떠올라요. 엄마를 떠올리면 이상하
게 마음이 놓이고,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하는 용기가 생겨요. 그건 아
마, 내 안에 엄마가 주신 힘이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겠죠. 엄마,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줘서 고마워요. 내가 엄마에게 벽을 세울 때도, 뒤돌아설 때도, 엄마는 한결같이 다가와 줬어요. 그 사랑이 나를 사람으로
키우고, 지금의 엄마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나도 이젠, 엄마처럼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나시던 날, 내가 할머니
앞에서 약속했었죠. “할머니, 엄마는 제가 꼭 잘 챙길 테니까 걱정 마시고 편하게 쉬세요.”
그 약속, 변하지 않을 거예요. 어떤 순간에도 나는 그 약속을 지킬 거예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아가는 동안 엄마는 내게 늘 멘토가 되어주었고, 따
뜻한 위로가 되어주었어요. 준혁이 키우며 막막했던 때, 조언해 주고 힘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우리 아빠요. 성격이 쉽지 않잖아요. 그런 아
빠 옆에서 묵묵히 함께해줘서, 아빠의 빈틈을 채워줘서, 정말 감사해요. 앞
으로는 엄마께 더 자주 안부 전화도 드리고, 더 자주 웃게 해드릴게요. 말
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삶으로 효도할게요.
2025. 04. 05
사랑합니다. 우리 엄마.
덧붙이며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혹시라도 농아인을 향한 낯선
시선이 있었다면, 이 글을 통해 마음이 조금은 바뀌었기를 바랍니다. 농아
인도 여러분과 다르지 않은 딸이고, 엄마이고, 아내입니다. 우리는 ‘소리
없이’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어떤 언어보다 깊고 진한 사랑이 있
습니다. 제 글에서 그 사랑을 느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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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2도종환 시인은 시 ‘화인’에서 4월을 이렇게 말한다.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도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란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 때문이다. 그게 어디 시인 한 사람만의 고백일까. 11년 전 4월 그날 이후
삶이 바뀌었노라, 고백하는 한 사람을 소개한다. 4.16 합창단원이자 세월호
시민 활동가 파주 시민 김서원(도로시) 님과의 일문일답이다.

자기소개와 근황 인사 부탁한다
파주에 있는 여성 위기 청소년 쉼터에서 밥하는 일을 한다. 24시간 생활시설
- 2 -
인데 활동가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도록 맛있는 밥을 해 주는
게 내 일이다. 청소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게 내 즐거움이다. 예산에 맞게
좋은 재료 공급 시스템을 만들었다. 매주 월요일 퇴근 후 안산으로 4.16 합
창단 연습하러 가고, 다양한 공연 활동도 한다. 윤석열 파면 결정 나오는 순간 제일 먼저 4.16가족들이 떠올랐다. 4.16 합창
단에서 노래한 건 3년이지만 세월호 가족들 곁에 있는 건 11년째다. 세월호
참사로 나는 정치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
다. 정치에 무관심한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투표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고, 유언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다.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자기 인생을 나누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내
삶도 그렇다. 그날이 나를 깨웠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다른 삶을 살게
해줬다. 남태령에 트랙터 몰고 온 농민들 얘기 중에 그곳에 세월호 아이들이
와 있는 거란 말이 있었다. 맞다. 나도 합창단에서 노래할 때 항상 아이들이
함께 있음을 느낀다. 20140416 참사 당일의 기억은?
애들 키우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아파트 평수랑 좋은 대학 보낼 생각하고 살
았다. ‘애들은 왜 나를 따라주지 않나, 남편은 왜 이렇게 무식할까, 나는 왜
이렇게 고생할까’라며 늘 화가 차 있었다. 노는 날도 놀 줄 모르고 신나는 생
각은 죽어도 못 하는 일 중독자였다. 그런데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갑자기 내 삶이 다 부질없어 보였다. 당일 제일 먼저 찾은 게 우리 애들이었다. 애들이 어디 있지? 아들하고 연락
이 돼서, 배고프지, 라며 짜장면을 사줬다. 짜장면을 먹이는데 더 할 말이 없
었다. 우리 애들은 교복 입고 이러고 다니는데 그 애들은 못 돌아왔잖아. 더
얘기할 수가 없고 마음이 안 잡혔다.


4.16 활동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있었나?
갈피를 못 잡다가 지역에서 진실 규명을 위해 서명받는 사람들이 있길래 참
여하고 그 곁에 있게 됐다. 2015년 들어서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을 한
다는 말이 들렸다. ‘아, 그럼 내가 음식을 할 수 있겠다’ 싶어 김경환 목사님
과 네댓이 안산으로 갔다. 가 보니 안산의 ‘치유 공간 이웃’이었다. 우리는 각각 작은 개다리소반에 밥
상을 받았다. 정말 정성스럽게 차려진, 울컥 뜨거운 눈물이 나는 밥상이었다. 가족들에게 차려지는 밥상이라는 생각에 나는 계속 울면서 밥을 먹었다. 이영
하 선생님이 그러더라. “이곳은 야전병원”이라고. 투쟁하고 다치고 지치면 잠
깐 쉬어 가는 곳이라고. 그게 4.16 활동과의 연결이었다. 봉사자 엄마들이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창비, 2015)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길래 함께 했다. 혼자서는 엄두
를 못 내던 책을 같이 낭독하며 실컷 울었다. 점차 노란 리본을 만든다든가
동네에서 세월호 특별법 서명대에도 섰다. 치유공간 이웃(이웃): 2014년 9월~2021년 2월까지 안산에 있었던 치유 공간. 정신과 의사 정혜신·심
리기획자 이명수 부부가 제안하고 시민단체 활동가 이영하 전 대표(50)가 실무를 맡았다. 수많은 활
동가와 봉사자들이 4.16 가족들이 안심하고 울고, 편하게 밥 먹고 쉴 수 있게 함께 했다. 별이 된 아
이들의 생일 모임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책 《밥은 먹었어요?》(이영하, 걷는사람, 2022)와 영화
<생일>(2019, 이종언 감독)에 이웃 이야기가 더 있다.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 모임과 밥 이야기
첫 생일 상차림을 위해 연 계좌에 80만 원이 모였다. 양을 대중 못해 장 보
고 나니 딱 만원 남더라. 이 정도로 돈이 든다면 내 카드 긁을 각오까지 했
다. 그렇게 준비된 영만이 생일 모임에 단원고 아이들과 사람들이 엄청 왔다.
- 4 -
50인분이란 음식이 100명 먹고도 남아, 화수분이라며 싸 주었다. -다음 모임은 다음팀이 단톡방을 열어 준비했다. 별이 된 아이 이야기를 공유
하고 좋아하는 메뉴로 준비했다. 나는 그런 팀을 조직하고 식재료를 연결하고
음식도 만들었다. 수많은 봉사자들이 ‘함께하는 이웃’ 밴드에 모여들었다. 저
명한 여성들인 ‘십자매회’를 비롯해 신부님, 선교사님 그리고 시민들의 후원
과 봉사로, 매달 40만 원 정도로 생일 모임을 할 수 있었다. 2015년 겨울에는 가족들을 위해 김장을 했다. 고양파주 생협과 유기농 식당
네트워크에서 재료를 댔다. 괴산 농부님들이 연결됐다. 몇백 포기 배추가 트
럭으로 오고, 성당에서 기도하던 할머니들이 나와서 배추를 절이고 소금, 고
춧가루, 깨 등을 아낌없이 가져오고, 뒷정리를 도왔다. 가족들께 보내고 쌍용
차나 투쟁하는 분들에게도 보내고, 이웃에서 먹을 수 있었다. 단원고 2학년 6반 고(故) 이영만(1998.2.19.~2014.4,16.) 군은 형제 중 막내로 약하게 태어났지만 건
강하게 자라 축구를 좋아하고 5km 마라톤에서 상을 받았다. ‘미소천사’로 밝고 순한 성격에 엄마와 학
교와 친구들을 좋아하고 공부도 잘해 우주학자를 꿈꾸었다. 2023년 ‘이영만 연극상’이 제정됐다. 사진5, 6
4.16 활동 이전에도 음식하기 좋아했나?
나는 4녀 1남 중 막내딸인데, 아버지가 내 밑에 남동생이 난 후로 “서원이가
제일 예쁘다”라는 얘기를 자주 하셔서 그렇게 알고 컸다. 어깨동무 잡지에서
나는 요리 칼럼을 제일 먼저 읽는 아이였다. 신문도 잡지도 요리 쪽을 1번으
로 봤다. 중학교 때 레시피를 보고 낯선 피자를 직접 만들어 봤다. 할라피뇨, 피망 등 없는 건 집에 있는 재료로 대체했다. 엄마가 정육점에서 살이 치렁치렁하게 큰 돼지고기 덩이를 사 온 적이 있는
데 내가 신문에 나온 레시피를 보고 돈까스를 만들었다. 소금 후추만 쓰란 법
있냐, 간마늘로도 재고, 양파로, 우리 아버지 좋아하시는 청양고추 양념으로
도 재어 튀겼다. 온 식구가 얼마나 맛있게 먹겠어. 입 짧은 남동생과 아버지
가 너무 좋아하니, 우리 엄마는 늘 내게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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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은 나를 “요리 천재”라고 불렀다. 장사하고 늦게 돌아오는 엄마에게 내
가 만든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 드리면 “서원이 때문에 내가 한숨 돌린다”라
며 좋아하셨다. 엄마가 아침에 도시락을 10개 싸던 시절, 내가 만든 반찬 덕
에 엄마 수고가 줄어드는 게 좋았다. 참사 이후의 달라진 삶 이야기
돈도 안 벌고 안산과 파주를 오가며 생일상 차리는 일을 한 2년 했다. 아이
디어로 생각하던 음식을 다 만들어 봤다. 그러나 절대 나 혼자 한 게 아니란
걸 말하고 싶다. 연대의 힘을 배웠다. 같이 메뉴 짜며 마음을 나눈 유가족들
과 십시일반 힘 보태 함께 한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런 중에 나는 이혼했다. 2015년 봄, 불교팀 주방에서는 고기 요리를 할 수
없어서 우리 집으로 장을 봐서 모였다. 남편이 폭발해 소리쳤다. “세월호 참
사 안 났으면 어찌 살았겠냐, 죽은 아이들 생일상 차리느라 가족들 밥은 안
차려주냐?” 그는 상을 뒤엎고, 빌려온 큰 팬을 내 쪽으로 던졌다. 남편이 일
베처럼 보였다. 그날 나는 온 가족을 모아 놓고 이혼을 선언했다. 살아온 날들을 부정해야 했고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던 때였다. 내 마음
은 그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혼이 정리되는 몇 달간 남편이 현관문 열고 들
어오면 내 몸이 아프고 소화가 안 됐다. 딸이 나서서 이혼 서류를 갖다 줄
정도였다. 그는 안 하겠다고 버텼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18년의 결혼 생
활, 연애까지 25년의 관계가 그해 말 허무하게 끝났다. 사진7,7-1, 8,
이혼 후에도 계속 활동가로
내가 저질렀으니 더 절실하게 활동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시국에 민중총
궐기 촛불집회가 매주 있었다. 생일 모임 후에 벙커 원 교회 친구들과 토요일
에 청계천으로 갔다. 매주 집회 광장에서 뭘 해볼까 궁리하다 주먹밥을 만들
어 팔기로 했다. 잘 안 팔리더라. 그래서 그냥 나눠줬더니 사람들이 돈을 던
지고 가더라. 그 후 뭐든 나눔으로 했다.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 청와대 앞
법외 노조, 비정규직 집회, 블랙리스트 예술인들. 노숙 농성하는 사람들이 많
았다. 토요일 새벽에 밥을 해서 싸우는 분들에게 가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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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까먹으며 살았다. 고기 안 사 먹고 애들 학원 안 보내고 보험 깨고
적금 해지하고 연금 없어지고 전세가 월세로 줄었다. 불만 많던 아들이 생일
모임에 참여해 보고 반항을 끝내더라. 세월호 당시 중2였던 딸도 생일 모임
에 다녀간 후 엄마를 이해하더라. 박근혜 탄핵 후 지역에서 소수당 진보당에 입당했다. 4.16 활동할 때 제일
묵묵히 함께한 그분들과 파주에서 4.16과 함께 노래하는 일을 시작했다. 음식
만들던 사람들과 함께 공모사업으로 파주 4.16 합창단을 3년 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안산 4.16 합창단까지 하게 됐다. 4년 정도 한 ‘동네
부엌 천천히’에서 청소년 시설로 올해 직장을 옮겼다. 그동안 소진되는 느낌은 없었나?
성과 위주의 인간이었는데 왜 없겠나. 파주 시민 합창단 3년 차 공연을 지역
에 있는 5개 팀 연합으로 잘 올린 후였다. 장애인 가족팀이 40여 명이 참여
해서 한 100명이 했다. 행복하게 끝나고 손뼉 치고 각계 인사들이 인사하고
있는데, 김서원 때문에 불편한 일이 많다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페이스북
에 관련 내용이 올라왔다. 한 번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내 욕심대로 활동한
적 없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맡은
일을 많이 정리하고 직장 일과 4.16 합창단만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여기저
기 삐끗대는 몸도 돌보며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9,9-1, 10
4.16 참사 11주기를 맞는 소회는?
11년간 할 만큼 활동하고 나니 속에 화가 많이 풀리고 너그러워졌다. 대규모
음식을 몇 년 하다 보니 나는 음식 전문가가 돼 있었다. 이제 나는 몸도 마
음도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성과 위주의 인간이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
다. 밥하는 일과 파주랑 안산 4.16 합창단 활동이 날로 재미있다. 그런 중에 작년에 엑스 남편하고 재결합하고 혼인신고도 했다. “당신은 활동
자유롭게 하고 내가 이제 당신한테 은혜 갚게 해 줘”라는 그의 말에 내 마음
이 열린 거다. 밥이나 사나 했더니 그는 점점 밥을 해 주고 싶다더라.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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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삶을 되찾은 셈이다. 가족밖에 모르는 성실한 남자였으니까. 바꿔 말
하면 나에게도 완벽주의를 요구하고 자식과 남편만 바라보길 원했더랬다. 그
집착과 강요와 구속이 내겐 화로 쌓였던 거다. 4.16 참사와 함께 깨졌던 관계가 4.16 활동 덕분에 다시 이어진 거다. 남편
은 노년에 내 수발을 잘 들려고 자기 몸 관리 열심히 했다는 사람이다. 우리
관계도 이전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나이 든 연인이
되었다. 내가 4.16 합창단 공연하고 늦게 오는 날 그는 세탁기 돌리고, 냉장
고 채우고, 맥주 두 캔 먹을 안주 준비해 놓고, 나 데리러 나온다. 돌아보면
이혼은 ‘신의 한 수’였다. 아니면 우리가 서로의 가치를 몰랐을 거다. 이후의 계획이나 꿈은?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이젠 장사하는 곳에서 밥을 상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소질이 없다. 내 엄마, 아버지에게 밥해줬던 재미, 우리 엄마가 늦
게 들어왔을 때 내가 밥 퍼서 김치하고 줘도 “세상에, 서원이 덕분에 엄마가
이렇게 밥을 맛있게 먹는구나.”라며 내 자존감을 키워준 밥이다. 밥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해 주는 일이 나는 즐겁다. 매일 출근할 때 일하
러 가는 마음보다는 아이들을 키우러 가는 마음이다. 먹이고, 입히고, 안전하
게 재우고, 내 밥을 먹고 애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4.16 가족
곁에서 4.16 합창단을 오래 하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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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