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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대 대통령선거 개요와 특징
     
    2025년 6월 3일,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정권 재창출 여부와 주요 정책 방향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정치적 분기점이었습니다. 2022년 대선 이후 3년 만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국내외 정치·경제적 불안 요소 속에서 치러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특히 청년 실업, 부동산 문제, 기후 위기 대응, 인공지능 및 신기술 정책 등 미래지향적 아젠다가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정상화된 형태의 전국 단위 선거였다는 점에서, 유권자의 투표 참여 양상과 선거운동 방식에서도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이번 대선은 역대 두 번째 수준의 사전투표율인 34.74%을 기록했으며, 다양한 연령층에서 높은 참여율을 보였습니다. 특히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고, 정당과 후보들은 각종 공약과 메시지 전략을 총동원해 유권자의 표심을 공략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인·청년·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장과 정치 참여 확대 방안에 대한 논의도 주요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그중 발달장애인의 투표권 문제는 단지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선거제도의 포용성과 공정성을 점검할 수 있는 기준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제21대 대선은 결과 그 자체뿐만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제도적 한계와 인권의식 수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법원의 임시 조치 결정: 투표 보조 허용의 전환점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5년 5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50부(재판장 김상훈)는 발달장애인 A 씨와 B 씨가 제기한 임시 조치 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단지 두 명의 장애 유권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선거 시스템에서 발달장애인의 투표권이 어떻게 보호받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든 판결로 평가됩니다. 신청인들은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실제로 투표소에서 투표보조를 요청했지만, 선거 사무원으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에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투표권 침해 및 차별에 대한 구제를 요구하는 본안 소송과 함께, 다가오는 2025년 대선에 적용될 임시 조치도 함께 신청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현행 공직선거법상 보조 허용 대상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은 발달장애인의 경우라도, 그들의 인지적 특성과 실질적인 투표 수행 능력에 따라 적절한 보조가 필수적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재판부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스스로 기표를 하기 어렵거나 투표 절차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제한이 있을 수 있으며, 이를 방치하면 선거권의 실질적 박탈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조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닌 헌법상 권리 보장의 연장선상에 있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재판부가 이 사건을 ‘간접차별’의 시각에서 접근했다는 점입니다. 재판부는 “공직선거법상 보조 허용 범위를 시각·신체장애로 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보조가 필요한 발달장애인을 제외하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는 간접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판단은 기존의 법률 해석이 갖는 형식적 평등주의의 한계를 넘어, 실질적 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선거권 해석을 확장한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또한 이 결정은 본안 판결이 나기 전까지 치러질 모든 공직 선거와 국민투표에서 적용되는 ‘임시 조치’이므로, 단순한 일회성 허용이 아니라 향후 반복될 수 있는 선거 절차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입니다. 이는 국가가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국제 인권법의 흐름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실제로 UN 장애인권리협약 제29조는 각국 정부가 모든 장애인이 자율적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 특히 투표 방식, 절차, 보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행정 편의나 법률 해석의 틀 안에서 제외되어 왔던 발달장애인의 선거권 보장을, 헌법상 기본권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판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향후 공직선거법 개정 논의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장애인의 정치 참여 확대에 기초적인 법적 기반을 제공한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나아가 이 임시 조치는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모든 공공기관이 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공직선거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충돌
     
    현행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은 투표 보조의 대상 범위를 “시각 또는 신체장애로 인해 스스로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투표권 보장을 위해 일정한 범위의 장애인에게 한 해 가족 또는 지명한 두 명을 동반하여 기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육체적 제약으로 인해 실제로 투표용지를 작성하는 데 물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제도로, 그 취지 자체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이 조항의 문제점은 발달장애와 같은 인지적·정신적 장애 유형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은 감각기관이나 근육의 운동 능력에는 이상이 없을 수 있으나, 정보 이해와 처리, 의사소통, 복잡한 절차 수행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그들은 신체적 기표는 가능할지라도 투표 방식, 후보자에 대한 정보 해석, 절차 진행 등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공직선거법은 발달장애를 명시하지 않고 있어, 법 적용에서 이들이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반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권리를 보다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 제20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선거 등 공적 절차에서 장애인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편의 제공을 의무로 정하고 있으며, 특히 장애 유형에 따라 맞춤형 ‘합리적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발달장애인이 투표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보조는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로 간주됩니다.
     
    이처럼 공직선거법은 제한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반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보다 넓은 해석을 통해 실질적 평등을 지향하고 있어 양자 간 충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선거 현장에서는 이러한 법적 충돌로 인해 선거 사무원의 재량이 확대되며, 보조 허용 여부가 지역과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같은 장애를 지닌 유권자라도 어떤 투표소에 가느냐에 따라, 혹은 어떤 담당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헌법상 보장된 참정권과 평등권의 침해로 연결될 수 있으며, 법률 체계 내의 모순이 국민의 기본권 실현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현장 대응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선거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간의 적용 기준을 정비하고 양자 간 정합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공직선거법상 투표 보조 대상에 인지·정신적 장애 유형을 명시적으로 포함시켜, 법률적으로도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이 실질적으로 보호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투표소마다 다른 기준: 인권의 자의적 운용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된 2025년 5월 29일, 발달장애 유권자들의 투표소 이용 과정에서 현저한 혼선과 불일치가 발생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투표 보조 허용 여부가 전국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채 각 투표소의 해석과 판단에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혼선이 아니라, 장애인의 참정권이라는 헌법적 기본권이 현장에서 자의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인권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사례를 보면, 서울 종로구 사직동과 마포구 공덕동 주민센터에서는 발달장애 유권자의 보호자가 보조인으로 기표소에 함께 입장하려 하자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현장 선거 사무원들은 “비밀 투표 원칙상, 보호자가 동행하여 투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라며 입장을 제지했습니다. 이들은 공직선거법상 보조 허용 기준을 엄격히 해석하여, 시각 또는 신체장애가 아닌 발달장애의 경우에는 투표 보조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같은 날 서울 청운효자동과 북아현동 주민센터에서는 전혀 다른 접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 투표소에서는 선거 사무원이 유권자에게 “혼자서 기표할 수 있느냐"라고 직접 물었고, 유권자가 어렵다고 답하자 현장에서 본인 지명에 따라 보조인 두 명을 지정하여 기표소 입장을 허용했습니다. 이 같은 대응은 법원의 임시 조치 결정을 반영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상 ‘합리적 편의 제공’ 원칙에 부합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법률과 동일한 선거 절차 하에서 유사한 장애 유형을 지닌 유권자에 대해, 투표소마다 전혀 다른 판단이 내려졌다는 점은 국가의 권리 보장 시스템이 얼마나 불안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법의 해석과 적용이 일관되지 않으면, 국민의 권리는 사실상 운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며, 이는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과 법치주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또한 현장 선거 사무원의 권한이 모호하고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각 투표소에 제공한 매뉴얼 내용이 지역별로 다르게 해석되었고, 구체적 판단이 사무원의 재량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일부 주민센터는 “중앙선관위 매뉴얼에 따르면, 손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장애가 없는 한 동행이 어렵다"라고 했고, 다른 주민센터는 “발달장애도 등급에 따라 보조가 가능하다"라고 안내했습니다. 이런 편차는 표준화된 지침 부재와 행정 혼선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결국 이러한 구조는 장애 유권자가 어느 지역에 거주하느냐, 어느 투표소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헌법상 참정권이 침해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뜻합니다. 이는 평등권 침해이자 행정의 자의적 권한 행사로 인한 구조적 차별입니다. 장애인 참정권 보장의 핵심은 보편성과 일관성에 있으며, 동일한 법적 기준이 전국 모든 유권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매뉴얼 재정비와 함께, 명확한 법률 개정이 필수적입니다. 법률은 실효성 있는 권리 보장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 자기결정권 vs 대리투표 우려: 선관위의 입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발달장애인의 투표 보조 허용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 주된 이유는 발달장애가 시각·신체장애와는 달리 장애의 범위와 표현 방식이 매우 다양하여, 일률적으로 투표 보조를 허용할 경우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에 반하는 대리투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선관위는 ‘비밀 투표’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타인이 기표소에 동행할 경우 당사자의 의사를 온전히 반영한 투표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려를 제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보호주의’에 기반한 전통적 장애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보호주의적 시각은 장애인을 무능력한 존재로 간주하고, 권리 보장보다는 제한과 통제를 우선시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과소평가하고, 장애인의 정치적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발달장애인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충분한 설명과 보조가 주어질 경우,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정책에 대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다양한 연구와 현장 사례를 통해 입증된 바 있습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 제29조는 모든 장애인이 정치 및 공적 삶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며, 국가가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실질적 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투표의 비밀성과 더불어, 장애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 또한 핵심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즉, 보조 없이 투표할 자유와 함께, 보조를 요청할 자유 또한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 결론: 참정권은 선택적 권리가 아니다
     
    발달장애인의 투표권 보장 문제는 소수자의 권리에 국한된 논점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정의와 평등의 문제입니다. 선거란 단지 표를 던지는 행위가 아니라, 국민이 국가 운영에 참여하는 가장 본질적인 방식이며, 이 권리는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발달장애인이 기표소에서 보조인을 둘 수 있는 권리, 자신의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 중 하나입니다.
     
    지금의 제도는 발달장애인의 참여를 제한하거나 그 권리의 행사 여부를 ‘현장의 재량’에 맡기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선거제도가 진정한 보편성과 평등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투표할 수 있을 때, 모든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습니다. 참정권은 선택적 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시민에게 보장되어야 할, 양도할 수 없는 기본권입니다.
     
     

     
     

     

    같은 장애, 다른 대우… 발달장애인 투표는 복불복?
    주야

    조회수 64

    202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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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력으로 만든 작은 가능성, 공익 위키의 미래를 상상한다.
     
    처음, 이 교육에 참여할 때만 해도 '공익 위키, 위스퍼'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러나 위스퍼 교육 3회를 거치며 지금 나는 단 하나의 단어로 이 여정을 요약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협력’이다.
     
    -. 연결과 협력으로 완성된 공익 위키.
    -. 어떻게 협력을 잘할 수 있을까?
    -. 주도적인 협력이란 무엇일까?
    -. 협력적 운영자란?
     
    협력이란 단순히 ‘함께 한다’라는 뜻을 넘는다. 나눔과 경청, 조율과 실천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협력은 완성된다. 위스퍼는 바로 그 과정을 경험하게 했다. 매시간 운영자의 역할을 고민했고, 어떻게 하면 더 민주적이고 안전한 운영이 가능한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했다.
     
     
    공익위키 위스퍼 양성과정 3차시 강의자료 / 출처: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위스퍼는 말 그대로 ‘속삭임’이었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관심 주제로,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목소리를 기록하고 나누는 자리였다. 탄소배출권, 빈티지 패션, 지역축제, 통합 돌봄, 재건축, 청년 마음 건강. 각자가 바라보는 세상의 문제는 달랐지만, 그것을 ‘공익’의 이름으로 위키에 담아내겠다는 마음은 하나였다. 이 얼마나 협력적인 생산인가.
     
    나는 특히 협력적 운영자라는 말이 깊이 남았다. 위키를 운영하는 사람은 단순히 정보 정리를 잘하는 사람을 넘어서야 한다.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때로는 중재하며, 방향을 제시하고,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실험할 줄 아는 사람. 나도 그런 운영자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그 가능성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간 것만은 분명하다.
     
     
    공익위키 위스퍼 양성과정 3차시 강의자료 / 출처: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3회차의 첫 시간은 2회까지 진행된 교육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위키 모임 운영자로서의 경험과 위키 모임 참여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운영자의 역할에 대해 발전과 대안 찾기로 마무리했다.
     
    두 번째 시간은 각자의 관심 주제와 문제의식을 담은 ‘나만의 공익 위키 위스퍼 활동 계획’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활동 계획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은 공익 위키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과연 개인이 만든 공익 위키가 얼마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단지 몇 명이 모여 정리한 정보와 기록이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아니면 시민단체나 전문가 집단과 협업하고, 더 공신력 있는 구조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일일까?
     
    또 하나의 핵심은 ‘참여자의 동기부여’였다.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고 운영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끊임없이 던져졌고, 교육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관점에서 고민을 공유했다.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상태이고, 공익 위키라는 실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시행착오와 다양한 시도, 활발한 토론과 실천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방향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정답이 있는 길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위스퍼의 정신이 아닐까. 머지않아 우리는, 협력과 참여를 통해 마침내 우리만의 방향을 설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지금 이 자리에서 나눈 작고 진지한 질문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하지만 지금 나는 말하고 싶다. 공익 위키는 위대한 가능성의 작은 출발점이라고.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사는 지역의 문제, 내가 겪은 사회의 구조, 내가 알게 된 지식을 ‘공익’의 눈으로 정리해 올리는 것만으로도 공익 위키는 이미 충분히 가치 있다. 마치 작은 불씨처럼, 누군가 그 기록을 보고 공감하고, 다시 기록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공익 위키는 더 ‘열린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기록자와 독자가 분리되지 않고, 시민 모두가 참여자이자 생산자인 위키. 익명의 누군가가 쓴 글을 읽고 다시 덧붙이고 확장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정보만이 아니라 ‘경험과 사례’를 공유하고, 서로 배울 수 있는 배움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제 위스퍼 교육은 끝났다. 그러나 진짜 협력은 지금부터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공익 위키를 운영하며 작은 씨앗을 심는다. 오늘은 작고 느린 속삭임일지라도, 언젠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함께 기록하기를 바란다. 협력은 그렇게, 내일의 공익을 만든다.
    
     
     
     
     
    공익위키 위스퍼 양성과정 3차시 수료식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나의 첫 공익위키 체험기 (3회차)
    윤작가

    조회수 66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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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익활동 현장 취재 에디터로 3년째 활동하며 늘 고민해온 질문은 “공익이란 무엇일까?”, “나는 공익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공익활동의 가치를 잘 실천하고 있는가?”, “내가 쓴 공익활동 현장 취재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어떤 생각의 변화를 경험할까?”였습니다.
     
    고민했던 물음의 답을 찾고자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공익활동 사회적 가치 측정’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4월 9일, 16일, 23일(수요일), 총 3회에 걸쳐 ‘공익활동의 의미와 사회적 가치 측정의 필요성’,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의 이해’, ‘사회적 가치 측정 실습’이라는 주요 교육 내용으로 오후 2부터 4시까지 센터 내 주고받음실에서 김수진(한국사회가치평가 이사) 님이 강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교육이 진행중이다.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4월 9일. 첫 번째 강의, “공익활동의 의미와 사회적 가치 측정의 필요성”에서 먼저 공익활동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익활동은 「서울특별시 시민공익활동의 촉진에 관한 조례」제2조 1항에 따르면 “시민공익활동”이란 시민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공익성이 있는 활동으로 영리 또는 친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활동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하는 활동으로 자격이 따로 필요하지도 않고, 이웃과 사회 전체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결심했다면 바로 공익활동가라는 뜻입니다.
     
    공익성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므로 우선은 추구하는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 구성원 스스로가 명확히 정의해야 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고,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이 커지면 법 제도적 일정한 자격과 활동 상황에 따라 필요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공익활동 사회적 가치 측정의 개념”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나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과 변화를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수치화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활동 실적(산출)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한 정도(결과와 영향)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익활동 사회적 가치 측정”이 왜 필요할까요?
     
    강사님은 먼저 “단순히 ‘좋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만으로는 그 활동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활동이어도 그 가치를 객관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평가절하되거나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 “공익활동 사회적 가치 측정은 실질적 변화 확인, 성과의 가시화, 자원배분의 합리화, 신뢰성 강화, 정책적 활용, 혁신 촉진 등 공익활동의 효과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익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적, 공통의 가치 이해, 이해관계자 참여, 측정 가능한 지표, 실현 가능한 시스템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강의자료 / 출처: 한국사회가치평가 김수진이사
     
     
     
    또한 공익활동 사회적 가치 측정의 핵심 개념으로 조직이 사회성과 실현을 위해 어떤 전략과 기제를 마련하고, 이를 실제 사업과 운영에 어떻게 반영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사회에 어떤 긍정적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평가합니다.
     
    평가를 위한 측정의 범위는 사회적 미션의 실현, 경제적 성과(고용 창출, 재정성과 등), 혁신 성과(새로운 해결 방식 도입 등) 등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며, 측정 원칙에는 첫 번째로 측정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의견과 합의를 반영하여, 직접적 수혜자의 변화와 편익·비용을 파악합니다. 두 번째로 조직 활동을 통해 나타난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결과(outcome)에 초점을 둡니다. 세 번째로 사회성과를 금전적 가치로 환산(SROI 등) 하여 비교와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네 번째로 조직의 미션과 핵심 사업을 통해 창출된 직접적 사회성과 만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중요한 성과만을 포함합니다.
     
    성과 측정 방식 및 원칙으로 정량적 지표는 고용 창출 수, 매출액, 사회서비스 제공 건수 등 수치로 측정 가능한 성과이며, 정성적 지표는 사업의 사회적 가치, 조직의 민주성, 사회적 환원 노력 등 수치화가 어려운 영향력은 서술형 또는 단계 평가로 측정합니다. 그리고 화폐가치 환산으로 사회성과를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 SROI(Social Return On Investment) 등으로 측정합니다. 성과의 구분은 산출(output), 결과(outcome), 영향(impact) 등으로 나누어 평가합니다.
     
     
    강의자료 / 출처: 한국사회가치평가 김수진이사
     
     
    이러한 절차를 통해 조직은 활동의 실제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4월 16일에 진행된 두 번째 강의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의 이해’에서는, 활동이 기대하는 결과와 사회적 효과를 미리 정해두어야 그에 맞는 측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가?”, “누가 이 변화의 대상인가?”, “변화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이 변화는 얼마나 가치 있는가?”, “이 가치를 누구와,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사회적 가치 측정이 단순히 ‘성과를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회적 가치 측정은 공익 활동이 세상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를 설명하는 도구이자, 앞으로의 활동을 더 잘 설계하고 확산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적인 기반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사회적 가치 측정은 우리의 활동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를 숫자나 지표로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 표: 실제 사례로 보는 사회적 가치 측정 / 출처: 한국사회가치평가 김수진이사
     
     
    두 번째 강의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4월 23일 세 번째 강의는 ‘사회적 가치 측정 실습’으로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가장 핵심적인 편익을 측정하기 위해 지표 1, 2개를 설정해 측정 방법을 각자 조사해오고 함께 공유하며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회차 실습 강의 자료 / 출처: 한국사회가치평가 김수진이사
     
     
    이번 현장 취재를 통해 단순히 공익활동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활동의 실제 효과와 변화를 구체적으로 묻고, 수치와 증거로 보여주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즉, 단순히 “좋은 일을 했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넘어, 이제는 “공익활동의 가치를 어떻게, 얼마나 잘 증명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 교육이었습니다.
    
     

     
     

     

    공익활동의 사회적 가치 측정
    럭비공

    조회수 108

    202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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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 분야 활동가 및 당사자들이 바라는 우리 사회의 모습

    계엄으로 인해 치러진 조기 대선을 맞이하여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이하 경기공익센터)에서는 도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 청년, 퀴어, 풀뿌리단체 등 6개 분야의 활동가와 당사자 약 60명을 대상으로 515~ 26일까지 '내가 바라는 우리사회의 모습'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주민 분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핵심 키워드: 결혼이민자, 일자리 확대, 교육, 한국생활 적응

     

    이주민 분야에서는 특히 결혼이민자를 위한 실질적 지원이 가장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일자리 확대와 교육 기회 제공, 한국생활 적응을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이중언어 교육환경 조성과 지역별 다문화 커뮤니티 운영을 통한 정보 공유도 중요한 요구사항이었습니다.

     

    "시혜의 대상이 아닌 변화의 주체로 서고 싶다"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장애인 분야: "당연한 일상을 꿈꾸며"

    핵심 키워드: 장애, 평등, 평화, 소망, 희망, 배리어프리, 장애인이동권, 함께

     

    장애인 분야에서는 **'평등''장애인이동권'**이 가장 강조되었습니다.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웃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도 비 오는 날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사회, 계단 때문에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배리어프리 환경이 절실합니다.

     

    "많은 걸 바라지 않아요. 아주 작은 관심"이라는 한 마디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청소년 분야: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핵심 키워드: 공정한 세상, 정의, 행복한 사회, 청소년 권리, 인권, 양심, 안전

     

    청소년들은 무엇보다 '공정한 세상''정의'를 강조했습니다. 나이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공정한 대가를 받으며 지낼 수 있는 사회, 돈과 권력이 아닌 정의와 양심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원했습니다. 행복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청소년의 권리와 인권이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세요. 청소년이 행복한 나라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듭니다"라는 메시지가 울림을 줍니다.

     

     

     

     

     

     청년 분야: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핵심 키워드: 다양성, 청년, 민주주의 회복, 사회적 불평등 해소, 차별 없는 세상, 존중, 기후위기 대응, 협치, 청년일자리, 노동권

     

    청년들은 '다양성''민주주의 회복',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가장 많이 언급했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서로 존중받으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경력이 없어도 도전할 수 있는 청년일자리와 노동권 보장을 바랐습니다. 또한 서로 비난하기보다 국민을 위해 협력하는 협치 정부를 원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과 지역 균형발전도 중요한 과제로 꼽았습니다.

     

     

     

     

     

     

     

    퀴어 분야: "사랑하는 권리, 존재하는 권리"

    핵심 키워드: 차별금지법, 혼인평등, 성소수자 인권, 혐오 반대, 동성혼 법제화, 성별정정법, 트랜스젠더·퀴어, HIV/AIDS 감염인

     

    성소수자들은 '차별금지법''혼인평등'을 가장 절실하게 요구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혼 법제화를 통해 법적 보호와 사회적 인정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 보장과 혐오 반대, 성별정정법 개선 등을 통해 직장과 학교에서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원했습니다.

    소수자 안에서도 더욱 소외되기 쉬운 트랜스젠더나 HIV/AIDS 감염인에 대한 관심도 컸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표현이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풀뿌리단체 분야: "지역에서 시작하는 변화

    핵심 키워드: 풀뿌리단체, 지속가능성, 연대, NGO 자생력, 공존사회, 청소년, 이주민, 성평등, 평화

     

    풀뿌리단체 활동가들은 '풀뿌리단체'의 역할과 '지속가능성', '연대'를 가장 강조했습니다. 지역사회가 변화의 출발점이며, NGO의 자생력을 키워 공존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청소년과 이주민이 배제되지 않는 사회, 성평등이 실현되는 사회, 평화를 중심으로 한 사회를 바랐습니다.

     

    "평화는 노력과 연대로 만들어집니다"라는 메시지가 인상 깊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세상

    6개 분야 모든 응답자들의 목소리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키워드는 '존중', '평등', '공정', '함께'였습니다.

     

    이들이 바라는 사회는 특별히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각자의 목소리가 존중받으며, 함께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입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 "모두의 공익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도민 여러분의 참여와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관심과 배려로 시작하는 변화가 모여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다시 한번 6개 분야(이주민, 장애인, 청소년, 청년, 퀴어, 풀뿌리단체) 설문에 참여해주신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기획]모두의 공익으로 공존의 길을 묻다
    6개분야 관련 활동가 및 당사자

    조회수 104

    202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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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챗gpt 활용 ai제작
     
    
    최근 인공지능(AI)은 과제물 작성, 디자인, 음악, 글쓰기 등 다양한 창작 활동 영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생들의 리포트 작성이나 기업의 마케팅 콘텐츠 제작, 예술 창작 분야까지 그 영향력이 확장되면서, AI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이 아닌 창작 주체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저작권 체계가 전제로 했던 ‘인간 중심 창작’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법적·윤리적 논쟁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창작이라는 행위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간주되었으나, 이제는 AI가 수백만 개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자동 생성함으로써 인간의 창작을 보조하거나 심지어 대체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단지 기술적 진보에 그치지 않고, 저작물의 정의, 창작자의 범위, 저작권의 귀속과 같은 근본적인 법적 개념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법적 보호 여부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창작자와 플랫폼, 이용자 간의 권리 충돌과 법적 분쟁이 계속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AI 창작물과 저작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논의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 AI란?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모방하거나 이를 능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기반 기술입니다. 이 중에서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한 후, 인간의 개입 없이도 새로운 이미지, 텍스트, 음악, 영상 등을 자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텍스트 생성 기능을 제공하는 OpenAI의 ChatGPT, 이미지 생성 도구인 Midjourney, 그리고 음악 제작 플랫폼 Suno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성형 AI는 기존의 단순 자동화 기술을 넘어서 창작의 영역까지 진입함으로써, 기존의 창작 개념과 저작권 체계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 AI 창작물의 저작권 인정 여부
    AI 창작물이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오늘날 AI 시대의 저작권법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입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따른 법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의 본질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저작권법은 ‘인간의 창작행위’를 보호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AI가 스스로 생성한 이미지, 텍스트, 음악 등 결과물이 아무리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창작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현행 법체계 하에서는 이를 ‘저작물’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제 창작 과정에서는 대부분 인간이 AI에게 특정한 지시를 내리거나, 생성된 결과물 중 일부를 선택하고 편집·수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처럼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저작권 보호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단순히 “고양이 사진을 그려줘”라는 명령을 AI에게 내린 경우, 창작에 기여한 부분이 거의 없으므로 인간의 창작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용자가 수십 개의 프롬프트를 실험하고, 그중에서 창의성이 드러나는 결과물을 선별해 세부적으로 편집하거나 다른 이미지와 조합하여 최종 작품을 완성했다면, 이러한 행위는 창작성 있는 창작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사용자가 AI 도구를 마치 디자인 소프트웨어처럼 활용해 이미지의 구조, 색상, 구도, 스타일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며, 이는 저작권 인정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됩니다.
     
    또한 AI가 생성한 창작물의 저작권 귀속 주체에 대한 문제도 중요한 논점입니다. AI 자체는 법적 인격체가 아니므로, 창작물의 권리를 AI에게 귀속시킬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 권리를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크게 세 가지 입장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AI를 활용한 이용자에게 저작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인간이 AI를 도구로 활용해 창작에 실질적으로 기여했음을 강조하는 시각입니다. 둘째는 AI 개발자나 플랫폼 운영자에게 귀속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생성된 결과물이 AI의 설계 구조와 알고리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 자에게 일정한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셋째는 AI가 완전 자율적으로 생성한 결과물은 무저작물로 간주하고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창작물 이용의 자유와 기술의 개방성을 중시하는 주장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저작권청(US Copyright Office)은 2023년 기준,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생성한 작품에 대해 저작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생성 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했음을 입증할 수 있다면, 예외적으로 해당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입장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창작 기여도에 따라 AI 결과물에 대한 권리 귀속을 유연하게 판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이와 관련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나 판례가 없는 상황이며, 이에 따라 법 해석의 통일성과 입법적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AI 기술 발전 속도에 발맞추어 인간의 창작 개입 범위를 어떻게 정의할지, 그 경계를 법적으로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생성형 AI 플랫폼의 법적 책임
    생성형 AI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매우 강력한 창작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간단한 명령어 몇 줄만으로 문학 작품, 이미지, 음악, 영상 등을 손쉽게 생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능은 콘텐츠 제작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생성형 AI 플랫폼은 저작권 침해, 명예훼손, 허위정보 생성 등의 잠재적인 법적 위험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플랫폼의 책임 범위와 한계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플랫폼 사업자는 자신이 직접 창작에 관여하지 않으며, 단지 기술적 도구를 제공하는 중립적인 입장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이용자가 입력한 프롬프트와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플랫폼이 직접적인 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과거 인터넷 포털이나 동영상 공유 사이트처럼 플랫폼의 기술적 중립성을 인정받는 논리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반대 입장에서는 플랫폼이 생성형 AI의 작동 방식을 설계하고, 학습 데이터를 선택하며, 결과물의 특성과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저작권 침해나 명예훼손과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경우, 플랫폼이 이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나 정책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방조’ 혹은 ‘과실’에 따른 법적 책임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2023년 게티이미지(Getty Images)가 생성형 AI 기업 스태빌리티 AI(Stability AI)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는 자사의 저작권 이미지 수천만 장이 Stability AI의 학습 데이터로 무단 사용되었다며, 이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AI가 생성한 이미지에 게티이미지의 워터마크가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도 포착되면서, AI가 원본 저작물을 단순히 학습하는 수준을 넘어 ‘재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AI 플랫폼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생성물이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할 경우, 플랫폼에도 일정한 법적 책임이 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판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미국에서 코미디 작가 사라 실버먼(Sarah Silverman)을 포함한 작가들이 메타(Meta)와 오픈AI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책과 텍스트가 사전 동의 없이 AI 학습에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며, AI 플랫폼이 타인의 저작물을 학습한 결과를 이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간접적인 침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한 ‘도구 제공자’로서의 책임을 넘어서, AI 플랫폼이 결과물의 법적 문제에 대해 일정 수준의 감시 및 통제 의무를 지닌다는 주장으로 해석됩니다.
     
    이처럼 생성형 AI 플랫폼의 법적 책임을 둘러싼 논의는 단순히 기술적 기능의 제공을 넘어, AI의 작동 방식과 결과물에 대한 사회적 책임, 나아가 윤리적 기준 수립과도 연결됩니다. 앞으로 플랫폼 사업자는 저작권 침해나 권리 침해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강화해야 하며, 이용자가 생성한 콘텐츠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공, 신고 시스템 운영, 침해 시 신속한 삭제 조치 등을 통해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입법기관은 플랫폼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기술 발전과 권리 보호의 균형을 도모해야 합니다.
     
     
    ● 향후 과제와 정책적 제언
    AI의 발전과 함께 창작 환경은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창작 활동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는 저작권 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향후 저작권법은 기술의 발전을 수용하면서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균형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째, AI 창작물에 대한 창작성 기준을 법적으로 명확히 정립해야 합니다. 현재는 인간의 개입 정도에 따라 저작권 인정 여부를 판단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실무에서 혼란이 큽니다. 프롬프트 제공, 결과물 선택, 편집 및 조합 등의 창작 행위 중 어떤 수준 이상이 되어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AI 학습 데이터의 수집과 이용에 대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AI가 무단으로 타인의 저작물을 학습해 생성한 콘텐츠가 원 저작물과 유사하거나 이를 침해할 경우, 이는 심각한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 개발자는 학습 데이터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저작자의 동의를 받거나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이용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원 저작자에게 일정한 보상이나 수익 배분이 가능한 시스템 도입도 고려해야 합니다.
     
    셋째, AI 플랫폼에 대한 책임 기준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성형 AI 플랫폼이 생성한 결과물이 법적 문제를 일으킬 경우, 단순한 도구 제공자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일정 수준의 주의 의무를 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신고 시스템 강화, 사전 필터링 기술 도입, 침해 콘텐츠에 대한 신속한 삭제 조치 등의 기술적·정책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넷째, 저작권 보호와 기술 혁신 사이의 균형을 고려한 입법이 필요합니다. 무분별한 규제는 AI 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으며, 반대로 무제한적 자유는 창작자의 권리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정 범위 내에서의 공정 이용을 인정하면서도, 창작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 설계가 요구됩니다.
     
    마지막으로, 국제적 기준 마련과 협력이 중요합니다. AI는 국경을 초월하여 작동하기 때문에, 개별 국가의 법제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습니다. 국제 저작권 협약과 AI 기술 규범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수적입니다. 한국 역시 이에 적극 참여하여, 국제적 기준 형성과 국내 입법 간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처럼 AI 시대의 저작권 문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창작과 소유, 공정성과 책임, 법과 윤리의 복합적인 요소가 얽혀 있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제도의 정비와 함께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공론화, 교육, 그리고 국제적 연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AI와 저작권법: 현실과 쟁점 
    주야

    조회수 262

    202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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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반환공여지1), 무엇이 문제이고 경기북부에 무엇을 남겼나?

    경기북부는 대한민국 수도권임에도 불구하고 군사시설과 개발제한,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각종 중첩 규제로 인해 수십 년간 낙후되어 왔습니다. 특히 의정부·동두천·포천 등은 전국 기초지자체 중 재정자립도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이는 지역주민들의 교육, 복지, 문화생활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미군기지의 집중 배치입니다. 1953년 한국전 정전협상 이후 경기북부는 한미안보협력을 이유로 수많은 주한미군기지를 받아들였고, 이는 국방이라는 대의 속에서 지역의 개발 가능성과 자산을 오랜 기간 제약받게 만든 구조였습니다. 경기북부에는 반환된 기지만 해도 30여 개에 이르며, 그 면적은 약 2,000(600만 평)이상입니다. 예를 들어 의정부의 CRC(Camp Red Cloud)2)는 약 87, 캠프 스탠리3)250이상입니다. 반환 대상 기지 중 상당수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어 장기간 도시계획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들 기지가 차지했던 자산 가치(공시지가 기준)2023년 기준 약 5조 원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이 땅은 수십 년간 무상으로 사용되었으며, 지역은 오히려 출입제한과 환경오염, 보상 부재에 시달렸습니다.

     

    주한미군기지 및 한국군 주둔지는 군사시설보호구역, 고도제한, 출입통제를 낳고 이는 개발지연, 토지 이용 제한, 지역 공동화를 유발했습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은 해당 지역을 과밀 억제권역으로 지정하여 대기업·대학·공공기관 유치를 제한했고 일자리 부족·인구 유출 등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등 환경보호 명목의 개발 제한 구역 시행은 개발제한, 도시 성장의 왜곡을 군사시설보호구역은 군부대 인근 토지 개발 행위 제한, 토지매매·건축행위 제한 등으로 재산권 침해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산림보호구역 및 수변구역 규제는 산림,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을 통해 친환경 개발조차 지연시켰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균형개발 총량규제는 국토부의 광역권 개발 총량제인데 이 때문에 산업단지 조성, 공공시설 이전 등 제약이 가해졌습니다. 상수도보호구역 및 환경규제는 수질보호를 이유로 공장과 공공시설을 제한하였고 산업단지 유치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지역산업 기반을 약화시켰습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군 공항, 미군기지 인근 비행안전구역 등을 사유로 고도제한을 실시하여 고층건물 높이 제한 등으로 도심 발전에 한계를 설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중첩 규제가 경기북부에 끼친 핵심 악영향은 경기북부의 전 지역에 오랜 세월동안 그늘을 짙게 드리웠습니다. 경제 낙후와 일자리 감소, 대기업·공공기관 이전 제한으로 청년층 이탈, 저생산성 산업 구조 고착이 고질적인 병폐가 되었고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심화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정주 여건의 악화는 인구 유출을 초래했고, 이는 지역 공동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지속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문화 기반의 부족으로 젊은 세대의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시 공간의 불균형과 난개발, 정비계획에서 소외된 구도심의 슬럼화, 그리고 개발 가능한 토지의 부족으로 인해 외곽 위주의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도시 기능의 왜곡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주거·교통·문화 인프라 부족에 국책사업·광역교통망 투자 우선순위에서 제외됨으로 인해서 수도권에 있음에도 수도권답지 않은 생활환경 속에서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서 재정자립도 최하위권 고착화 되었고 세수 기반 약화 자체 사업 추진력 부족과 중앙정부 의존도 상승 정책 독자성 결여라는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중첩 규제는 경기북부가 수도권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지방보다 열악한 처지에 놓이게 만든 구조적 원인입니다. 규제 완화 또는 지역특례법 제정 없이는 근본적인 전환이 어렵다는 점이 정책적 교훈입니다.

     

     

    오염된 자연을 다시 지역의 품으로

    반환된 미군기지의 또 다른 문제는 심각한 토양·지하수 오염입니다. 환경부와 국방부의 합동 조사 결과, 벤젠·석유계 탄화수소(TPH)·납 등의 오염이 다수 기지에서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되었습니다. 이러한 오염을 정화하는 데 드는 비용은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화 주체가 한국 정부로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미군 측은 SOFA(주한미군지위협정)에 의거 현재 상태로 반환을 고수하고 있고 오염 정화 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또한 정화 방식에서 자연경관·건물 보존과의 충돌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CRC 내 예배당과 벙커는 보존 가치가 있지만, 해당 부지에 유류오염이 존재할 경우 철거 없이 정화가 어렵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는 다음이 요구됩니다.

    - 국방부 주관이 아닌 지자체 주도형 정화 및 보존 계획 수립

    - SOFA 개정 요구, 또는 한미 간 정화비용 분담 협정체결

    - 문화재·환경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지별 맞춤형 개발 가이드라인 마련

     

    철수 이후의 공동화(空洞化)4), 경제적 재설계는 필수

    반환된 기지들은 지역 공동화(空洞化)를 가속화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 인천의 캠프 마켓, 의정부의 CRC 그보다 더 큰 캠프 스탠리 등은 반환 이후 수년이 지나도 개발 지연으로 방치되거나, 군사시설로 제한된 용도만 부여된 상태입니다. 이는 경기북부가 자체 재정이나 개발역량이 부족한 반면, 중앙정부의 관심과 투자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남 판교는 1990년대 초 공군비행장 이전과 함께 국책개발지구로 지정되어 첨단산업단지로 전환되었습니다. 일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는 항만·미군기지를 시민 친화적 상업·문화지구로 개발해 도시의 대표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경기북부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나오길 바라는 것은 그간의 희생에 대한 당연한 권리입니다.

     

    따라서 경기북부는 국가 주도의 종합개발계획 수립을 통하여 경기북부형 판교 또는 메디-웰니스 산업지구 모델 등의 종합개발계획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광역교통망 확충 연계형 개발 죽 GTX-C 노선, 순환도로 등과 연계한 상권·인프라 구축이 요구됩니다. 그간의 희생을 고려할 때, 공익적 기능과 수익 모델을 병행한 공원·박물관, 창업 지원 시설, 의료 복합 시설 등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절실합니다.

     

    의정부의 선도적 사례: CRC 공론장의 의미

    2025, 의정부시는 전국 최초로 미군기지 반환을 둘러싼 시민 공론장(CRC 공론장)을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시민, 전문가, 정치인, 공무원 등 100여 명이 참여해 다양한 주제로 숙의하고, 실질적 대안을 도출했습니다.

     

    공론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핵심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첫째, CRC 부지는 시민의 땅으로 무상양여 되어야 한다.

    둘째, 개발은 정부가 주도하되, 시민의 참여와 지역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한다.

    셋째, 보존과 경제개발이 균형 잡힌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민주도 공론장은 참여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향후 전국 미군기지 반환 논의의 새로운 모델로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나아가야 할 방향 : 도민과 함께 만드는 공정한 전환

    미군기지 문제는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닙니다. 미군기지는 국가 안보라는 대의로 지역민의 희생을 담보로 사용되었기에, 반환 후에는 그 희생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시민 모두의 공유지(Commons)로 전환될 당위성이 있습니다. 공동체 복원, 환경·역사 보존, 참여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무상양여와 공공적 활용은 필수적입니다. 이는 환경 정의, 지역 균형발전, 그리고 참여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이제는 전문가와 정치인만이 아닌 경기북부 주민과 전 도민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시기입니다.

     

    경기북부는 오랜 시간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해 왔습니다. 이제 그 땅은 희생의 상징에서 희망의 공간이자 공공의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헌법이 말하는 정의이고, 지속가능한 지역의 미래입니다.

     

    1) 미군반환공여지 : 한국정부가 주한미군에 기지, 시설, 군사훈련 등에 필요한 땅을 공여해 미군이 사용권을 가지고 있는 땅으로, 미군기지와 시설을 포함해 미군의 군사훈련을 위해 확보한 땅이었으나 사용목적 종료 후 한국정부에게 반환된 땅을 뜻함 (출처 : 경기뉴스포털)

    2) 캠프 레드 클라우드(Camp Red Cloud) : 2018년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과 녹양동에 걸쳐있던 주한 미국 육군의 군영으로, 시설관리사령부 태평양 지역대에서 관리하였다.(출처 : 위키백과)

    3) 캠프 스탠리 :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에 위치한 주한미군 제8군의 군영으로, 46수송중대 등 여러 부대가 주둔했었다. 1955년 천막 마을로 시작해 1969년부터 본격적으로 건물이 들어섰다. 2017년을 기점으로 대부분 폐쇄되었다.(출처 : 위키백과)

    4) 공동화(空洞化) : 으레 있어야 할 것이 없어져 텅 비게 됨(출처 : 네이버 한자사전)

     

     

     

     

     

     

     
    [기획]미군반환공여지, 도민과 함께 만드는 공정한 전환이 필요하다
    미군반환공여지 시민사참여위원회 위원장 최경호

    조회수 84

    202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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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지만 먼 우리 : 함께 있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가족
     
    5월이 되면 거리에서 카네이션을 들고 가는 아이들, 청년들, 직장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여러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이 담겼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가족’을 위한 카네이션이 가장 많을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이 다가와 카네이션을 살 때, 혹은 소소한 선물을 살 때,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쓸 때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 멀게만 느껴졌던 순간, 함께 있어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순간, 같이 있어도 외롭게만 느껴졌던 순간들도 떠오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의 가족들이 존재하고, 또 본인의 가족이 그중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말이다. 어떤 가족은 함께 있어도 외롭다. 같은 식탁에서 밥 한 끼조차도 하지 않고, 설령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더라도 서로 말 한마디가 오가지 않는다. 집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눈 한번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잘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오늘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으나, 진정한 온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차가운 단절’ 속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이 많다. 자녀는 스마트폰 속 친구 및 미디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부모는 TV 속 세상과만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외로운’ 가족들이 과연 진짜 가족일까? 그리고 과연 이들은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출처: 챗GPT 제작 
     
    가족 간의 ‘대화’, 온기의 시작
     
    우리는 왜 이렇게 멀어진 것일까? 과거에 비해 가족 간의 유대감이 왜 낮아진 것인지 분석해 보면, 복잡해진 현대 사회의 흐름에 대응하여 개인의 삶도 더 바빠지고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온라인상의 네트워킹이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중심의 소통이 주가 되어 함께 있는 가족보다는 온라인 세상 속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즉, 같은 집에 살아도 서로 시간대가 맞지 않고 관심사가 급격하게 달라지면서, 물리적인 거리는 가까울지라도 정서적인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서로 대화하지 않는 순간,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다. 지금 현대 가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대화’일 것이다. 아무리 귀찮고 어색해도 서로의 하루를 묻거나 함께 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하는 등의 ‘용기’는 가족의 유대감을 존속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특별한 이야기일 필요도 없으며, “오늘 하루는 어땠니?”, “밥은 먹었니?”, “주말에 저녁 같이 먹을까?”와 같은 말들이면 충분할 것이다. 사소하지만 용기 있는 말들이 가족 사이에 자리 잡힌 단단한 벽을 서서히 허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소한 말들조차도 점점 더 건네기 어려워하고 있다. 물론 낯간지럽고 어색하겠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서로 용기를 내어야 한다. ‘용기’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가까운 사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제일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사이가 바로 가족이다. 서로 대화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제 대화를 위한 용기가 절실한 순간이다. 대화하기 시작하면 점점 가족이 지닌 온기를 되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이에도 절실한 ‘노력’
     
    우리는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는 위로의 말, 격려의 말을 너무나도 잘 건네지만 정작 본인의 가족에게는 퉁명스럽거나 무뚝뚝하게 대하는 경우가 꽤 있다. 때로 가족은 가장 가깝기에, 가장 막 대해도 되는 존재로 여겨질 때가 있는 것이다. 설령 마음은 진정으로 가족들을 함부로 대하고자 했던 게 아닐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차가운 말들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도 하나의 관계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존속될 수 없으며 순식간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기도 한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지내왔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는 관계가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 사이에서도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오히려 가장 오래된 관계일수록, 더 많은 대화와 배려가 필요하다. 현재 가족이 단절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대화를 위한 노력과 더불어 공감하는 훈련, 존중하는 방법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이제 잘 지내보자’라는 마음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잘 말하고 잘 듣고, 잘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제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연결의 손길’로, 다시 가족
     
    단지 가정의 달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혹은 거창하게 무언가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 물론 꽃과 선물 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전달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이다. 말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을 지니고 있다. 차갑고 날카로운 말들은 오래도록 서로의 마음에 박혀 더 단단한 벽을 만들 것이고, 따뜻하고 사랑이 담긴 말들은 그 벽들을 허물어 줄 것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한마디, 사소한 질문이 멀어진 가족을 다시 붙여주는 ‘연결의 손길’이 되어줄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태어날 때부터 그저 주어지는 것이지만, 가족이라는 관계는 평생 계속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했지만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손길들이 쌓이고 쌓여서 비로소 진정한 ‘가족’이 된다. 꼭 가정의 달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평생에 걸쳐 진짜 해야 할 일은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연습일 것이다. 이제 서투를지라도 조금만 용기를 내어 직접 손을 내밀어 보는 게 어떨까?
     
     
    
    출처: 챗GPT 제작
     

     
     
     
    다시, ‘가족’이 되기 위한 손길이 필요해
    코코볼

    조회수 220

    20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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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에도 꼭 오실 거죠?”
     
    첫 주 교육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나를, 나기님이 조용히 붙잡았다.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 주에도 꼭 오세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던 내 눈빛을 읽은 것일까? 선뜻 대답 못하고 머뭇거리는 내게, 나기님이 다시 쇄기를 박았다. “오늘 나눈 이야기, 정말 좋았어요. 다음 주에도 듣고 싶어요.”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내가 뭘… 나이 먹었다고 아는척하며, 말만 많았는데, 다른 분들에게 미안해 죽겠어요." “아니에요. 저에게는 새롭고,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제가 모르는 이야기, 꼭 더 들려주세요.”“어쩔 수 없이 또 와야겠네요. 그런데 나기님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해요. 자기는 낮추고, 남을 올리는 배려, 마음 씀씀이가 참 곱네요. 그 모습에 제가 반했답니다. 다음 주에 뵈어요.”
     
    그리고 일주일 뒤,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나기님의 환한 인사가 나를 맞았다.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자리에 앉는다.
     
    조금 늦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선 2교시 ‘내가 공익위키 모임을 연다면’ 수업 준비를 먼저 했다. 내가 준비한 공익위키 주제는 ‘중도입국 청소년의 꿈.’ ‘꿈’이라는 단어를 넣었다가, 지웠다가, 다시 넣기를 반복했다. 제안이 추상적이라는 피드백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중도 입국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들의 꿈을 응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소 추상적인 단어지만 꿈을 넣어서 수정했다. 30분쯤 지났을까?
     
     
    2교시 내가 공익위키 모임을 연다면 수업 자료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1교시는 권오현 빠띠 대표님의 강의였다. ‘연결과 협력으로 완성되는 디지털 민주주의.’디지털도 알겠고, 민주주의도 알겠는데, 디지털 민주주의는 무슨 말일까?
     
     
    1교시 강연 주제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대표님의 낮은 목소리는 자장가처럼 나른했고, 나는 연신 하품하며, 허벅지를 꼬집어 깨어 있으려 애썼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민의 집단 지성과 행동을 촉진하고… 존중과 포용의 가치를 실현하는…”
     
    용어는 여전히 어렵지만, 시민이 함께 협력해 인터넷으로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많은 민주주의, 일상의 민주주의, 더 나은 민주주의를 디지털로 만들자는 강의였다. 하지만 악플이 넘쳐나는 인터넷 세상,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는 나, 초등학생에게 게임 중 욕먹은 경험, 키보드 워리어들이 판치던 아고라 시절… 그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런 세상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가 과연 가능할까? 불신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몇몇 성공 사례가 있다니, 마음 한구석이 조금 놓인다. 혹시, 내가 너무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터넷 세상을 바라보았던 건 아닐까?
     
    2교시는 실습 시간이었다. 운영자로서 공익위키를 만들고, 이어 참여자로서 다른 주제를 접하는 시간이었다.
     
     
    2교시 실습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촬영
     
     
    1시간은 공익위키 운영자로, 마지막 1시간은 공익위키 참여자로 진행되었다. 3명씩 3개조를 만들었다. 시작하기 앞서 함께 지킬 약속과 그라운드 룰에 관하여 교육을 받았다. 이제 더 이상 몰라서 그랬다는 말은 안 통하는 시대가 왔다.
     
     
    2교시 실습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촬영
     
     
    내가 맡은 주제 ‘중도입국 청소년의 꿈.’ 처음엔 ‘중도입국’이라는 말조차 생소해하는 분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다문화 청소년’ 안에 그들을 넣지만, 중도 입국 청소년은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청소년들. 한국어가 서툰 채 공교육에 바로 편입되지만, 언어 장벽으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내 낙오되기도 한다.
     
    쉼터나 한국어 교육기관이 있긴 하지만, 접근성은 낮다. 제도권에서 벗어난 이 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밀려나고, 한국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홀로 남겨진다. 그들의 부족한 한국어 실력은 곧 일상생활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히 언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보호와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교육권은 단지 ‘학교에 다니는 권리’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 권리,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게 되는 첫걸음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운영자로서 한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내가 더 잘 준비했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밀려왔다.
     
    2교시 실습 중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자리 이동 후, 이번엔 참여자로서 민경님의 주제에 함께했다. ‘은둔 고립 청년’이라는 단어에 처음부터 마음이 찔렸다. 청년이면 성인인데, 성인이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두더지 땅굴’이라는, 은둔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들었다. 나는 그들을 단순히 혼자 있길 좋아하는 성향, 혹은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단정 지었던 것 같다. 민경님은 단호히 말했다.
     
    “은둔과 고립은 같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둘을 아무렇지 않게 붙여 써요. 거기서부터 문제예요.”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은둔은 어쩌면 벗어날 의지가 있는 상태, 고립은 의지조차 없는 상태일까요?”
    민경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의지라는 단어, 너무 좋아요.”그 순간, 내가 가진 시선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부끄러웠다.
     
    민경님은 주장했다.‘은둔’, ‘고립’이라는 단어에는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인식과 낙인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 당사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내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이 위키는 이러한 용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될 필요가 있음을 알리고, 다양한 청년들의 상황을 더 정확하고 존중하는 언어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청년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선 안 된다. 다양한 청년의 삶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업의 마지막은 타운홀 미팅. 운영자와 참여자의 입장을 오가며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타운 홀 마지막 질문은 “위스퍼 활동, 계속 참여하시겠어요?”였다.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마음속엔 작은 불씨가 생겼다. 우리는 늘 배우고 있다. 우리가 놓쳐온 이야기를, 누군가의 현실을, 다른 삶의 속도를. 이토록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괜찮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체사진 / 사진출처: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3주 차 교육이 끝나고, 그 불씨가 “위스퍼 활동, 계속 참여하시겠어요?”라는 질문에‘네’라는 대답으로 자라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첫 공익위키 체험기(2회차)
    윤작가

    조회수 361

    202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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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한 말이다. 5.18민주화운동 이야기인 《소년이 온다》를 쓸 때 그와 함께 한 질문이라 했다. 그 책을 쓰는 동안만의 질문이었을까. 지난 5월 17일(토) 광주의 5.18전야제를 다녀오는 동안 내게도 살아 있는 질문이었다.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45년 전의 광주가 오늘 대한민국을 구하고 있었다. 총칼이 아니라 노래와 시로, 춤과 연극으로 연대하는 민주주의 대축제였다.
     
    부끄러운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1980년 5월에 나는 대구에 사는 여고 2학년이었다. 당시 TV 화면에 나오는 광주는 ‘폭도’와 ‘빨갱이’의 도시였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광주는 두려운 ‘벽’이었다. 독재와 냉전 시대 교육에 길든 아이가 광주의 진실을 마주하기까지는 20년이 더 걸려야 했다.
     
    제45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로 올해도 광주를 다녀오는 복을 누렸다.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4.16합창단으로서 ‘민주주의 대합창’ 공연에 서는 덕분이었다. 구묘역 신묘역을 방문하고 5.18민중항쟁기념행사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전야제도 즐길 수 있었다. 올해는 18일 밤까지 1박 2일로 확대 진행된 전야제를 하루만 보고 돌아온 게 아쉽다. 5.18 민주 광장, 동구 금남로 1~3가 차 없는 거리, 동구 중앙로 일대는 시민 참여 부스 물결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질 때마다 누구라도 목청껏 함께 부르는 축제였다.
     
     
    행사장 일대 사진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
    17일(토) 오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추모식부터 소개하고 싶다. 안산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해 구묘역을 들르고 신묘역에 도착했을 땐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주최 주관하는 추모식은 끝나고 있었다. 식전 공연으로 놀이패와 장애인 예술단의 공연이 있었고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전통 제례 의식을 마친 전통 한복을 입은 분들을 볼 수 있었다. 2부 순서인 국민의례로 시작하는 추모식(10시 30분)은 내빈 소개, 추모사, 유가족 대표의 인사가 있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헌화와 분향이 있었다.
     
    추모식에서 가장 소개하고 싶은 순서는 ‘다시 만난 소년, 아 오월이여!’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5·18민주화운동 추모 시 낭송 퍼포먼스’였다. 광주시낭송협회 사람들이 5·18 광주 추모 시를 모아서 한 편 한 편 낭송하는 공연이었다. 오월 광주를 추모하되 시와 음악으로, 피로 쓴 민중항쟁의 역사가 노래와 시로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이창병의 ‘망월동에서’ 첫 자락을 보자. “광주 금남로에서/ 이 나라 최후의 거리마다 쓰러진 넋들의 통곡은/ 우리들의 침묵 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고정희는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라고 읊었다. 김준태의 ‘오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는 광주일보(구 전남일보) 1980년 6월 2일 자 조간 1면에 실렸던 시다. 계엄 당국의 검열에 기자들이 사표로 저항한 그 시였다.
     
     

     
     
    “우리는 사람이 개처럼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신문에는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45년 전 전남일보 기자들의 그 절규가 시로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끝나지 않는 오월 다시 찾은 민주주의 당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80년 오월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와 노래로 하는 기억의 다짐이었다.
     
     
    민주주의 대축제 대합창
    3부로 구성된 민주주의 대축제 5·18전야제는 지정남 배우가 진행했다. 1부 ‘오월광주 환영대회’는 오월길맞이굿을 시작으로 금남로에 집결하는 수만 명의 민주 평화 대행진 대열을 노래와 춤으로 환영하는 행사였다. 2부는 ‘민주주의 축제’로 뮤지컬과 노래로 꾸며지고 3부는 ‘빛의 콘서트’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비롯한 노래 밴드들의 무대였다. 전야제 중앙무대는 금남로 4가역 교차로에 설치되고 양방향으로 여러 개의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내가 416합창단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 대합창’ 공연은 17일(토) 오후 3시 반에 시작했다.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였다. 서울 부산 안산 광주 등에서 온 7개 시민합창단이 개별 공연으로 두 곡씩 부른 후 대합창단으로 함께 두 곡을 불렀다. 광주는 광주였다. 7개 합창단 중 푸른솔합창단, 1987합창단, 광주흥사단합창단 3개가 광주 소재 합창단이었다.
     
     
    박종철 합창단(부산) /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1987합창단(광주) / 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7개 민주주의 합창단이 함께 대합창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전가'를 불렀다. / 사진출처: 4.16합창단
     
     
    푸른솔합창단(광주): 2015년 6월 ‘합창’을 통해 민주 인권 평화로 상징되는 ‘광주정신’을 전달하고, ‘광주공동체’의 희망을 노래하고자 창단했다. 2017년, 2018년 창작 뮤지컬 ‘빛의 결혼식-임을 위한 행진곡’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615시민합창단(서울): 2009년 8.15행사 공연을 시작으로, 민족의 역사와 겨레의 삶에 수많은 아픔을 안긴 분단 장벽을 허물고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창단했다.
    1987합창단(광주): 광주 전남의 1980년 5.18민중항쟁의 불꽃을 1987년 6월 항쟁의 횃불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헌법을 쟁취한 그 뜻을 노래와 합창으로 계승하고자 2018년 창단했다.
    광주흥사단합창단(광주):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민족운동 단체 흥사단. 독립운동, 대한민국의 민주화, 청소년 계몽, 육성 운동으로 2017년 3월 창단, 형화와 자유를 노래한다.
    박종철합창단(부산):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와 6월 항쟁의 정신을 기리고, 시민문화운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2016년 8월 16일 창단했다.
    416합창단(경기 안산):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일반 시민으로 2014년 창단됐다. 소외와 불의, 불평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에 함께 한다.
    이소선합창단(서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의 영결식을 계기로 2011년 결성된 노동자 합창단이다. 서울시로부터 2020년 전문예술 단체로 지정받았다.
     
     
     
    민주주의 대합창에서 불린 노래 제목을 소개해 본다. 아, 민주정부/ 무궁화/ 다시 만난 세계/ 타는 목마름으로/ 죽창가/ 깍지손 평화/ 그날이 오면/ 죽순밭에서/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개벽/ 껍데기는 가라/ 인간의 노래/ 돌덩이/ 오월의 노래2/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체 합창단이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전가’를 불렀다.
     
     
    <봄의 겨울, 겨울의 봄> 뮤지컬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출처: 뉴시스
     
     
     
    전야제 2부 순서를 연 뮤지컬 <봄의 겨울, 겨울의 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80년 봄과 2025년의 겨울이 중첩되는 판타지 스토리의 뮤지컬. 공연은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계엄이 선포됐다.”를 반복해 부르면서 시작했다. 이어서 “2024년 12월 3일 도시를 통제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겠다고 계엄령이 선포됐다.”라는 가사는 45년 광주와 현재의 서울을 관통하는 ‘계엄’을 보여 주었다.
     
    “응 엄마, 나? 여의도 가는 길.”
    “응 여보. 걱정 말게. 서울 다 와 부렀어. 아 어치게 가만히 있나. 국회 앞에 탱크가 처들어와부렀다는디!”
     
    이어서 노래한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거리에는 탱크부대가. 상상해 본 적 없어. 이런 세상이 다시 올 거란 걸.”
     
    그랬다. 45년 전의 그 계엄령 세상이 21세기에 다시 올 줄은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추운 겨울이 더욱 추워질지도 모른다”라고 노래하면 “안 돼! 우리가 만든 나라야”라고 화답했다. “어떻게 가만히 있어. 학교에서 배웠는데. 나도 다 알아. 이거 5·18 때랑 똑같은 거잖아. 우리도 광주 사람들처럼 나서야 되는 거잖아.”라고 젊은 여성이 외치면 “어쩌면 다시 봄이 오지 않을지 모른다”라고 노래했다. 현재와 과거를 노래와 춤으로 연결해 주었다. 1980년 오월은 2024년 12월이 되었고, 광주의 영령이 오늘의 우리를 구했음을 알렸다.
     
    가수 이은미가 작곡가 김형석이 해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광주에서 사람들과 같이 부르고 싶었단다. ‘서른 즈음에’, ‘가슴이 뛴다’ 그리고 ‘애인 있어요’를 열창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서 일까, 시종 가슴 뭉클하고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작곡가 김종률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찬사 그리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담아” 작곡했다고 했다. 5·18전야제 브로슈어의 글을 옮겨 본다.
     
     
    민주항쟁의 연원 오월광주로 연어처럼 몰려오는 민주시민들.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하는 오월 광주 공동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금남로에서 새로운 세계를 전망하다.
    항쟁의 연원 5·18: 계엄의 밤, 장갑차 앞을 맨몸으로 가로막은 시민들의 용기는 광주 시민군의 헌신이었습니다. 남태령의 새벽, 고립된 농민들을 끝내 지켜낸 연대의 마음은 오월 어머니들의 사랑이었습니다. 한남동의 눈보라를 맞으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낭만은 민주대성회의 횃불이었습니다.
    승리의 약속 5·18: 오월의 기억으로 내란과 맞서 싸우고 있는 국민들이 민주주의 승리의 염원을 안고 광주로 달려올 것이며, 광주 공동체가 고향 집 부모의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내란 청산과 민주 승리를 약속하는 축제를 펼칩니다.
    미래의 표상 5·18: 5·18은 미래의 표상으로 승화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민주국가, 국가 주권이 실현되는 자주 국가는 오월 광주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입니다. 계급과 계층, 성별과 세대를 넘어 누구나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대동세상을 오월 광주가 먼저 체험했던 미래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5.18헌법’
    5·18전야제 시민참여 부스의 인상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올해도 45년 전 오월의 ‘주먹밥’이 있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사랑의 밥을 3개나 받아먹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모델인 독일 기자 한스 패터를 기리는 초록 택시와 운전자가 있었다. 그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광주의 소주 ‘잎새주’ 샘플 한 병 받을 수 있었다. 소주 병 라벨에는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라는 문구와 초록 택시가 새겨져 있었다.
     
     
    주먹밥 나눔, 택시운전사x잎새주 인증사진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 불리는 광주인권상을 아는가? 5·18기념재단이 2000년부터 인권과 평화를 위해 기여한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 수상자는 동남아시아에서 군사 폭력과 인권침해에 맞서 생존자 보호, 진실 규명, 평화 구축 활동을 펼쳐온 인권 단체 ‘아시아 정의와 권리(Asia Justice and Rights, AJAR)’다. 특별상은 필리핀 코르딜레라 지역에서 34년간 예술을 통해 인권과 공동체 권리를 옹호해 온 ‘DKK문화동맹’이 받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고 문재학 열사를 비롯한 민주유공자들의 묘비를 찾아보자. 구묘역에도 신묘역에도 너무나 어리고 젊은 얼굴들을 보라. “5·18정신 계승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유족과 가족들을 위한 교육 지원, 취업 지원, 의료 지원, 대부와 양로 지원, 양육 지원 등 다양한 지원뿐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가 각종 기념·추모 사업을 실시하고 민주화 운동 관련 시설과 교양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5·18정신 계승 민주유공자법 제정 손피켓(왼쪽),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부채(오른쪽) / 사진출처: 에디터 직접 촬영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라 적힌 부채를 보았다. 홍보 부스에서는 “청원 참여”를 유도하는 유인물이 배포되고 있었다. 5·18정신을 국가가 책임지고 헌법에 새겨야 한다는 요지였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광주의 희생과 단호한 투쟁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지켜졌다. 12·3 불법 계엄의 국민 승리가 바로 오월광주의 승리”라며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통해 대한민국을 지켜온 힘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새기겠다"라고 말했다.
     
     
     
     '아 오월, 다시 만난 오월'를 주제로 5·18민주화운동 45주기 기념행사 진행 / 사진출처: 아시아경제
     
     
     

     
     

     

    민주주의 대축제 5.18 전야제를 다녀와서
    꿀벌

    조회수 624

    202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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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안산의 다문화작은도서관에서 조용한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서로 다른 여섯 나라에서 온 이주민 여성들이 '수어'를 배우기 위해 모였습니다. 말이 아닌 손짓으로, 목소리가 아닌 표정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이 특별한 언어는 곧 그들의 삶을 바꾸는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지구인 수어 합창단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활기차게 활동 중입니다. 처음에는 엄마들만의 모임이었지만, 곧 아이들이 합류하며 그 세계는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코스모스 활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어린이 수어 팀으로 성장했습니다. 손끝으로 노래하고, 표정으로 감정을 전하는 과정은 단지 공연을 넘어서, 정체성과 자존감을 키우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회의 / 사진출처: 전연 합창단 회장
     
     
    낯선 땅에서 만난 또 다른 '낯섦'과의 교감
    합창단의 구성원 대부분은 제2 언어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이주민 여성들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 그들은 자국에서 당당한 한 명의 시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이방인'이 되었고, 언어 장벽으로 인해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소외감을 경험했습니다.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 아이의 학교 알림장을 읽을 때, 병원에서 자신의 아픔을 설명할 때마다 느끼는 불안과 무력감은 그들의 일상이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버스 타는 것조차 두려웠어요. 잘못 내리면 길을 잃을까 봐, 질문해도 못 알아들을까 봐…." 합창단의 한 회원은 회상합니다.
     
    다른 회원은 "아이 학교에서 엄마들 모임이 있을 때마다 가기 싫었어요. 대화에 끼지 못하고, 때로는 다른 엄마들이 수군거리는 것 같아서…."라고 말합니다.
     
     
    도서관에서 수어연습 중 / 사진출처: 전연 합창단 회장
     
     
    이러한 경험들이 그들이 수어를 배우며 농인들과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소리의 언어' 안에서 느꼈던 소외감, 낯선 문화에 적응하며 겪는 불안은 농인의 세계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감정은 닿아 있었고, 그 연대의 토대 위에 손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노래가 피어났습니다.
     
     
    드디어 초청 무대에 오르다.
    코로나 시기에도 합창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수어 경연 대회, 뮤직비디오 제작, 찾아가는 수어 교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갔고, 2024년에는 경기도 농문화제 수어 경연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상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가 손짓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인정이었기 때문입니다.
     
     
    2024년 경기도 농문화제 수어경연대회 / 사진출처: 전연 합창단 회장
     
    2021년, 2022년 경기도 수어경연대회 참가사진 / 사진출처: 전연 합창단 회장
     
     
    올해 4월 18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시흥시 초청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일은 합창단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농인을 포함한 관객 앞에서 손으로 노래하며, 이주민과 장애,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회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대에 섰을 때, 내가 더는 '외국인'이 아니라 '전달자'가 된 느낌이었어요. 우리의 손짓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습니다.
     
     
    시흥시 장애인의 날 기념식 초청 공연 / 사진출처: 전연 합창단 회장
     
    마을행사(깐 영화제(왼쪽), 마켓포레스트(오른쪽)) 초청 공연 / 사진출처: 전연 합창단 회장
     
     
    차별을 넘어, 다름을 존중하는 공동체로
    이주민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편견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언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지적 능력을 의심받기도 하고,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는 동등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거나, 승진에서 배제되는 일도 흔합니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무시당하거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픔도 겪습니다.
     
    "한번은 마트에서 계산할 때 직원이 나를 보지 않고 한국인 남편에게만 말을 걸더라고요. 마치 내가 없는 사람처럼요." 합창단의 한 회원이 털어놓습니다.
     
    또 다른 회원은 "아이 학교 상담 때 선생님이 나에게는 말하지 않고 통역해 준 한국인 친구에게만 이야기했어요. 내가 엄마인데도…."라고 말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지구인 수어 합창단 구성원들에게는 농인들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차별과 소외의 경험이 오히려 더 강한 연대 의식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수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들은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공통된 경험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성장하는 값진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시립합창단과 콜라보 공연 / 사진출처: 전연 합창단 회장
     
     
    손짓으로 키워낸 다음 세대의 감수성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며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 아이들이 보여주는 높아진 장애인 감수성과 또렷해진 자존감은 코스모스 활짝 합창단이 남긴 가장 큰 선물입니다. 어떤 아이는 수어를 통해 친구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만들었고, 어떤 아이는 "장애인 친구가 생겼어요"라며 밝게 말합니다.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은 종종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 한국에 왔지만, 외모나 부모의 출신으로 인해 '한국인이 아닌'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어 활동을 통해 이 아이들은 새로운 정체성과 자부심을 발견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한 것입니다.
     
    지구인 수어 합창단은 단순한 예술 단체가 아닙니다. 이들의 활동은 공감 교육이자, 문화 다양성과 장애 감수성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실천입니다. 각종 수어 축제와 행사에 참여하며 수어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무엇보다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 1월 소년원에서의 봉사 공연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연대와 이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심학교(소년원) 공연사진 / 사진출처: 전연 합창단 회장
     
     
    이들이 손으로 노래하는 그 모습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인가. 같은 언어를 쓴다고 다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닿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지구인 수어 합창단의 손짓은 오늘도 우리 사회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손끝으로 이어지는 이 노래가 더 많은 사람의 가슴에 닿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손짓 속에는 차별과 편견을 넘어, 더 포용적이고 따뜻한 세상을 향한 꿈이 담겨 있습니다.
     
     

     

     
    지구인 수어 합창단 전연 회장의 글
     
    전연 회장 / 사진출처: 전연 합창단 회장
     
     
    제가 한국에 처음 온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013년 2월, 추운 겨울이었어요. 바람이 차갑고 마음도 외로웠습니다. 모든 소리가 낯설고, 모든 글자는 마치 암호처럼 느껴졌어요. 한국어를 배우려고 외국인 지원본부에 다녔지만, 마음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다문화 작은 도서관’을 알게 됐어요. 지하 1층에 있는 그 도서관 문을 열었을 때, 전 세계 언어로 된 책들이 저를 반겨줬어요. 특히 중국어 책이 많은 책장을 봤을 때, 저는 처음으로 이곳이 조금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 자주 와요?”
     
    도서관에서 일하던 중국인 언니가 물었을 때, 저는 웃기만 했어요.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뜻했습니다. 그 도서관은 저에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도서관에서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고, 2018년 5월 29일, 한국 수어 수업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그 수업은 제 인생을 많이 바꿔줬어요.
     
    수업에는 저처럼 다른 나라에서 온 엄마들, 또 한국 엄마들도 있었어요. 모두 책과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무언가 배우고 싶은 마음도 같았어요. 그리고 또 하나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바로 언어 때문에 어려움을 느꼈던 경험이었습니다. 매일 저녁, 도서관에 아이들 손을 잡고 엄마들이 들어왔어요.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달랐지만, 인사를 주고받는 손짓에는 차별이 없었어요. 손끝으로 “안녕하세요”를 처음 배운 날, 저는 마음속으로 울었습니다. 말로는 잘 못해도, 손으로는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감동이었어요.
     
     
    2018년 경기도 농문화제  / 사진출처: 전연 합창단 회장
     
     
    수어를 배우면서 저는 농인들과 제가 비슷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수 언어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소외되고 외로운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몇 달 뒤, 우리는 ‘지구인 수어 합창단’을 만들어 대회에 나가게 되었어요. 2018년 10월 6일, 경기도 농문화제에서 우리는 수어로 노래를 했습니다. 여섯 나라에서 온 엄마들이 한국 수어로 하나의 노래를 표현한 거예요. 무대에 설 때는 많이 떨렸지만, 손으로 노래하기 시작하자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외국인도, 이방인도 아니었어요. 그냥 감정을 전하는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안산시 수어제 대상  / 사진출처: 전연 합창단 회장
     
     
    노래가 끝나고 관객들이 손박수를 보내줄 때, 저는 눈물이 났어요. 정말 처음으로 이 땅에서 ‘나도 이곳의 일부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8년 11월에는 안산 수어제에서 아이들과 같이 무대에 올라 대상을 받았어요. 아이들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고, 저도 정말 기뻤습니다. 이주민 아이들은 종종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데 수어를 통해 아이들은 ‘다름’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특별한 것이라는 걸 배웠어요. 아이들의 눈빛이 부드러워졌고, 친구들을 더 따뜻하게 대하게 되었어요.
     
    여섯 나라에서 온 엄마들과 함께한 이 경험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수어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언어였고, 누구도 먼저 잘하지 않았어요. 그저 같은 지구인으로, 손끝의 언어로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했어요. 우리는 ‘우리’와 ‘함께’라는 말을 손끝으로 배웠습니다. 지구인 수어 합창단은 올해도 계속됩니다. 다른 피부, 다른 언어를 가진 우리가 손짓으로 사랑을 전합니다. 말이 없다고 해서 마음이 없진 않다는 것,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깊은 소통은,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걸요.
     
     
    2025.05.08. 지구인 수어 합창단 회장 전연
    

     
     
     
    손으로 노래하는 지구인들 - 언어의 경계를 넘는 연대와 감수성의 힘
    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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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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